주일말씀2015.03.01 (일)
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
- 선포일
- 2015.03.01 (일)
- 성경 본문
- 마태복음 22장 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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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_03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
2015년 03월 01일 주일
출처 : 만남과 대화 god21.net
[ 마태복음 22장 37-38절 ]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 말씀의 주제는
‘나 여호와를 중심해라.’입니다.
◎ 오늘 말씀을 전하기 전에,
2015년 3월을 시작하면서
성자께서 섭리인 전체에게 주신
말씀을 핵심만 전해 주겠습니다.
성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올해는 모두 새롭게 해라.”
하셨습니다.
왜 새롭게 해야 되냐고 성자께 물으니,
“새롭게 해야 되니 새롭게 하라고
하는 것이지, 새롭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새롭게 하라고 하겠느냐.
그걸 뭘 물어보냐.” 하셨습니다.
그래도 ‘사랑하는 신부’이니 말해
달라며 성자께 사랑을 고백하면서
1시간 동안 졸라 댔습니다.
이에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원래 왜 해야 되는지 이야기해 주면
안 된다. 내가 말해 줘서 너희가
행하면, 그것 때문에 행하는 격이
된다.
그러나 네가 고통받으면서 조건을
세우고 있고, 내가 너를 사랑하니
말해 줄게. 귀를 대 봐.” 하셨습니다.
성자께 ‘마음의 귀’를 대 주니,
“전같이 그대로 하면 길이 막혀
끝장나고, 실망으로 끝난다.
고로 새롭게 해야 된다.” 하셨습니다.
→ 이 한마디로 <올해 승리의 길을
가는 방법>을 다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식, 작년에 하던 식으로 하면
전에는 됐지만, 금년부터는 그대로
하다가는 ‘갈 길’이 막힌다. 작년에도
나 성자가 시켜서 했지만, 금년에는
작년에 했던 식으로는 안 된다.
나 성자가 떠나니 올해는 새롭게 하고,
더 차원 높여서 해야 된다. 새롭게
차원 높여서 안 하면, 하나 마나
<앞길>이 막혀서 못 가.
지금 <앞길>을 내다보고 말한다.
지금 <앞길>이 막혀 있다.”하셨습니다.
모두 새롭게 해야 됩니다.
옛날 방식으로 하면, 길이 막혀
실패입니다. 새롭게 하고
새 사람으로 해야 됩니다. 아멘!!
누구나 새롭게 하지 않으면,
절대 가다가 막힙니다.
(조은 그림 그리면서) <과거 식>은
<과거>에서 끝난 것입니다. <새해>에는
‘새롭게 하기’입니다.
◎ ‘새롭게 해라.’
- 이 말씀은 <3월 15일 주일말씀>을
통해서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겠습니다.
<전환>
◎ 이제 오늘 말씀을 전해 줄 텐데요,
오늘은 특별히 <하나님과 성자께서
계시해 주신 말씀>을 전해 주겠습니다.
<섭리사 모두가 진정 꼭 듣고 알아야
할 말씀>입니다.
◎ 물론 하나님과 성자는 선생을
통해서 ‘시대 말씀’을 주시어 모두를
가르치십니다. 선생이 다 말해 주고
싶은데 <시간적 제한>이 있어서 다
말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고로 하나님도 성자도
‘사건마다 합당한 자’를 택하시고,
선생이 그들을 지도하게 하시어
하나님과 성자의 계시를 받아
모두에게 전하게 하십니다.
◎ 오늘 말씀을 전해 주기 전에
선생이 먼저 <말씀>에 대해 소개하고
전초하겠습니다.
<전초>
◎ 요즘 성자께서 제일 많이 계시를
주시며 그 계시를 제일 많이 전하러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이가 어립니다.
◎ 선생은 지난 6개월 동안 이
사람에게 편지를 주면서 100% 흠
없게 해야 된다며 날카롭게 지적하며
지도했습니다.
<깊은 계시>를 받으려면 계시를 받는
자가 정말 ‘흠’이 없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 계시를 받을 때만 잘하고 끝나도
안 되고, 또 집회하러 다닐 때만
잘하고 끝나도 안 되고, 자기 생각을
중심해도 안 됩니다.
생활 속에서 ‘마음·정신·생각’까지
온전해야 하나님과 성자가 주시는
깊은 계시를 받아 전하여 모두 깊이
깨닫게 해 줄 수 있습니다.
◎ 그래서 지난 6개월 동안 100% 흠
없이 해야 된다고, 엄격하게 지도해
주었습니다.
“흔히 섭리인들은 이성 죄도,
각종 모든 죄들도
<행동으로 짓는 죄>만 죄로 생각한다.
그러나 <마음과 생각>까지 깨끗해야
하나님도 성자도 그 마음에 임하신다.
<마음과 생각>을 성삼위께 내 드려야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주도 와서
그 ‘몸’을 쓰고 마음 놓고 역사하신다.
계시를 받을 때나 집회를 할 때만
잘하고, 끝나면 마치 손님이 떠나면
자기 마음대로 하듯 하면 안 된다.
계시를 받은 후에도, 집회를 하고
나서도 ‘동일하게 온전한 삶’을 살면서
성삼위와 주를 제대로 모시고 살아야
된다.”하며, 편지로 길고 심각하게
말씀해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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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람은 선생의 편지를 받고서
그동안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안
했는데 또 <죄>에 대해 말하니 어떻게
더 잘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죄>
때문에 살 수도 없다고 하며
낙심했답니다.
◎ 그러나 기도하니 성자께서
<감동>을 주시기를
“<하나님의 백보좌 앞>을 통과해야
되니, 하나님께 물어봐라.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어 보아라. 하나님이
<축복>도 주시고 <심판>도 하시니,
네가 직접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여
물어봐라. 나 성자도 허락하고, 내
육도 허락하니 네가 기도하여
물어봐라.” 하셨습니다.
◎ 그래서 그 말씀대로 기도했는데,
<행동>으로 죄를 안 지었어도 왜
<죄>에 대해서 말하면서 제대로 해야
된다고 했는지, 하나님께서 성자와
함께 속 시원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선생이 <이 계시>를 읽다가
“이 말씀은 ‘섭리인 모두’가
꼭 들어야 됩니다. 전체에 전해 주면
어떻겠습니까?” 하고, 성자께
말했습니다.
이에 성자는 “계시를 받은 자가 자기
혼자 다니면서 전국, 전 세계에 전하면
1년은 훨씬 더 넘게 걸리니
‘한 번의 설교’로 온 세계에 전해
주자.” 하셨습니다.
◎ 이 말씀은 여러분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오늘 전해 줄 테니,
정말 잘 듣기 바랍니다. 신혼골수를
살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 <죄>에 대해, <의>에 대해
판단하고 심판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심판 때>에는 심판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무엇을 보시는지
하나님만이 알고 계십니다.
고로 어떤 것을 고치고 회개해야
하는지 알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 <시험>을 보기 전에 <답안지>를
미리 보여 주는 것과 같은 말씀입니다.
<사고>가 나기 전에
“사고 나니 피해라.” 하며 미리
알려 주고 피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성공>을 앞두고
“여기서 어떻게 하면 실패한다.” 하며
미리 실패할 것들을 알려 주고 피하여
성공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심판> 전에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그 내용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명심하고, 기록하고,
꼭 행해야 되겠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흔히 사람들은 나이가 어리면
무시하고, 자기 밑으로 봅니다.
못된 마음들입니다.
<섭리인 전체>보다
<그 어린 자 한 사람>이 그 입장에서
가장 합당하기에 ‘그’에게 계시를
주시는 것입니다.
◎ 선생이 ‘그 사람’을 몇 달 동안
코치하고, 기도해서 받은 말씀입니다.
성자와 분체가 허락하여 받은
말씀이니, <성자와 분체가 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 왕이신 <하나님의 조서>를
‘어린 자’가 가지고 왔다고 해서
<그 내용>까지 ‘어린 자의 수준’으로
보면, 무식한 자입니다.
◎ 역사적으로 보면, 항상
‘선지자’나 ‘하늘이 보낸 자들’은
<자기 주관권>이나 <고향>에서는
높임 받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고,
‘하늘이 보낸 자’들을 귀히 대하고
‘그를 통해 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들어야 되겠습니다.
◎ 그래서 <오늘 말씀>은 말씀의
가치를 알고 가장 잘 전할 수 있는
부흥강사가 전 세계 생방송으로
말씀을 전하게 했습니다.
◎ 말씀은 ‘지금 이 순간에 할 일,
당장 해야 할 일’을 전하는 것이
큽니다.
그런데 나이 든 자들은
‘옛날이야기’만 합니다.
◎ ‘1년 전’도 멀고 먼 과거입니다.
‘단 하루 전’도 지난 과거입니다.
그런데 섭리사의 나이 40이 넘은
자들을 보면 아직도 ‘옛날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선생에 대해 증거할 때도 옛날 전반기
때 선생을 봤던 이야기만 하니,
은혜가 안 되고 들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섭리인들이 몇 시간씩
그 말을 듣고, 짧아도 좋으니
<지금 선생이 이 시대에 하는 말씀>을
해 달라고 호소합니다.
◎ 섭리사가 무덤 기간을 거쳐
벌써 <휴거의 때>를 맞이했는데,
옛날이야기만 하면 되겠습니까?
옛날이야기를 하더라도 이 시대에
이어지도록 지나온 시간을 쭉
증거해야 됩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새롭게
- 선생 옆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쭉
제대로 배운 부흥강사와
- 선생이 코치하고 깊이 기도하여
성자께 계시를 받은 자들만 <집회>를
할 수 있게 했습니다.
◎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이야기 그만해라. 자기 수준으로
본 옛날 섭리 이야기, 옛날 선생
이야기 그만해라.
지나간 <구약>이나 <신약>이 중하지
않고, 지금 <성약역사>가 중하다.
고로 이 시대에는 ‘이 시대 이야기’를
해 줘야 하듯이, 지금은 ‘지금 나
성자가 전하는 말’을 전해 줘야 된다.”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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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성자와 주’를 증거하되,
<자기 수준에서 바라본 것>을
증거하지 말고, <옛날이야기>만
하지 말고, <지금! 성자께서
전하시는 말>을 증거해야 됩니다.
<휴거>에 대해 깊~이 말해 줘야
됩니다.
◎ 누구나 새롭게 하지 않으면,
절대 가다가 막힙니다.
(이 부분은 반복임)
<과거 식>은
<과거>에서 끝난 것입니다.
<새해>에는 ‘새롭게 하기’입니다.
◎ 선생은 새롭게 하라는 성자의
말씀을 듣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새롭게 다른 방법>으로 해서
고민하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섭리인 모두에게 성자의 말씀대로
코치하니, 오해하지 말고 성자의
말씀대로 해야 되겠습니다.
◎ 여기서 <오늘 말씀>에 대한 소개와
전초가 끝났습니다.
◎ 그러면 지금부터 <섭리인 전체를
대표해서 전능자께 받은 말씀>을 들어
보겠습니다. 말씀 중간에 이해를
돕도록 ‘설명’도 해 주면서 전해 줄
것입니다.
(설명은 설교 원고에 없음.)
<말씀 시작>
◎ 선생님께 지적을 받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근래에 선생님이 지적하실 만한 일을
한 적이 없었기에 ‘나는 왜 혼나고
있지?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며
마음이 뒤숭숭했습니다.
◎ 하지만 ‘지적한 편지’를 보면
볼수록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저의 <육>은 그같이 행하지
않았더라도 제 <혼>은 그같이
행할 수도 있겠다 싶었고, 제가
의식할 때는 그렇게 행하지 않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생각>이 그렇게
흘러갈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내가 <육>으로 어떠한 것을 행해 죄를
짓지 않아도 나의 <혼>이 죄를 지을
수 있고,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차원>으로도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마음이 더
뒤숭숭했습니다.
◎ 이러한 마음으로 취침 기도를
마치고 자려고 누웠는데 마음이
괴로워서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때 성자께서 일어나 더 기도하라고
하셨고, 하나님께 제 마음을 고백하며
기도했습니다.
◎ 하나님...
왜 나를 부르느냐.
◎ 저의 죄가 너무도 많지요?
<육>으로 옳지 못한 것을 행하여서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도
‘아~ 저 사람이 죄를 지었구나!’ 하는
차원이 아니라
신혼골수를 쪼개어 보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실 가닥만 한 죄도
없어야 하나님의 승인을 받을 수
있다고 선생님께 들었습니다.
제가 <행동>으로 이성 죄를 짓거나
다른 죄는 짓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심정을 거스르고 행한 모든 것들>을
정말 회개합니다.
<나 여호와를 중심하지 않고 행한
모든 것들>이 죄다. 네가 ‘나 여호와를
중심하지 않고 행한 그 모든 것들’을
회개해라.
◎ 도대체 제가 어떻게 늘 하나님을
중심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다면, 진정 그
말씀대로 행함으로 이 괴로운
마음에서 정말로 벗어나고 싶습니다.
<여호와의 말씀 시작 전에
잠시 쉬었다가>
사랑아. <죄의 근본>에 대해 일렀다.
너희가
<나 여호와의 주관권>에 거하려면,
‘나의 말’을 지켜 행해야 된다.
첫째, 나는 너희에게
“나 여호와를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사랑해라.” 했다.
그 어느 때라도 ‘나 여호와를 너의
중심에 두라는 것’이다.
둘째, “나 여호와를 최우선 순위에
두어라.” 했다.
단 한 순간이라도 ‘나보다 다른 것에
더 큰 가치를 두지 않도록 만들라는
말’이다.
(* 다음은 설명을 잘해야 하는 부분)
★ 절대적으로 보았을 때, 나 여호와는
진정 그 어떤 것보다도 큰 자니라.
나 여호와의 가치는
<너희 인간의 차원>에서는 절대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너희의 말>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 그러나 상대적으로 보았을 때
너희에게 나 여호와의 가치는
천차만별로 계산된다.
나 여호와뿐 아니라 너희가 접하는
그 어떠한 것을 보더라도
<그것이 가진 본연의 절대적 가치>와
<그것에 대해서 너희가 느끼는 상대적
가치>는 다르지 않느냐.
(* 예를 하나 들어서 설명해 주기.)
사회에서도 수없이 많은 것들 중에서
사회 구성원 전체에 보다 큰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있고,
이성적으로 계산해 봤을 때
그것이 가치가 크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상대적>으로는
그 가치를 낮게 평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너희 삶 속에서 그 가치대로 대하지
않고, 그 가치를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을 보면, 네가 그것을 얼마나 크고
가치 있게 생각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 있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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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같이 너희는
<절대적으로 큰 가치를 가진 것>을
귀히 대하며 거기에 중심을 두고
행하기보다
너희 중심, 너희 마음 가운데서
<상대적으로 자기가 더 크다고
판단하는 것>을 귀히 대하며
거기에 중심이 쏠려 행한다는 말이다.
(*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까?)
나를 늘 중심하라는 말은
그저 ‘말’뿐인 고백이 아니라
실체적으로 <나 여호와>를 ‘네 마음속
우선순위’로 두고 나를 기준하여 모든
것을 행하라는 말이다.
(곧 <절대적으로 믿어야 할 존재>라서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너의
개인적 주관>으로도 네가 좋아서 나를
믿고 나를 우선순위에 두고 살라는
말이다.)
이것이 순리대로 사는 삶이다.
<잠시 쉬었다가>
<그릇된 길>로 가는 너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방향을 말해 주니
잘 들어라. 너희가 전보다 더 차원이
높아졌으니 말한다.
<갓난아기>에게는 그저 건강하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장하다!’ 한다.
그러나 <성인이 된 자>에게도
<갓난아기>와 똑같은 기준이
적용되겠느냐.
너희의 차원이 높아졌으니
나 여호와가 너희에게
<더 높은 차원의 것>을 바라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지 않느냐.
★ <너의 중심>에 ‘나 여호와’가
완전히 있기를 원하노라. 나 여호와의
<절대적인 가치> 때문에 나 여호와를
크게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너의 주관적 가치> 속에서도 나
여호와가 너에게 ‘가장 큰 자’이길
바란다는 것이다.
◎ 그러면서 하나님은 저의 특성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조금이라도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행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생각, 절대적인
가치>입니다. 그러나 <제 주관적인
생각, 상대적인 생각>은 조금이라도
더 일찍 일어나 무엇을 행하기보다는
5분이라도 더 자기를 바라고 그렇게
행합니다.
<부지런한 것>이
‘절대적인 가치’이지만,
<조금이라도 더 자는 것>이
‘개인의 주관적 가치’이기 때문에
<부지런한 것>보다
<조금 더 자는 것>이
더 큰 가치로 인식된다는 것입니다.
고로 생활 속에서
‘자기 주관적 가치’에 중심을 두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 너희 모두는
‘너희가 가진 주관적 인식’에
중심을 두고 행한다.
그것이 절대적으로 너희에게 더 큰
유익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상대적인 관, 주관적인 관’이
자기에게 더 맞고, 더 좋고, 더
편하니, <자기 주관적인 관>을 더 가치
있게 보고 중심하여 행한다는 것이다.
★ 나 여호와를 절대 중심하여라.
너희에게 <절대적>으로도,
<너희 개인의 상대적, 주관적
관>으로도 최고로 큰 영향력을 미치는
대상이 되고 싶은 나 여호와니라.
너희가 삶 속에서 그 어떠한 것을
행하든 항상 나에게 고하며 나와 함께
행하기를 원하노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너의 삶에서
항상 함께하길 바란다. 이와 같이
행한다면, 지금처럼 네 마음이
괴롭지는 않을 것이다.
<잠시 쉬었다가>
◎ 정말 마음이 무거워요. 자꾸 한숨만
나오고 힘들어요. 제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 정확히 몰라서 너무
답답해요. 제가 인지하지 못하는 모든
죄들, 성삼위의 마음을 거스른 모든
죄들을 용서해 달라고 고합니다.
네가 하늘 앞에 무슨 죄를 지었는지,
그 죄명은 확실히 모르겠으나
괴롭다고 했지?
너희가 통상 알고 있는 것처럼
‘잘못된 행위를 육으로 행하는 것’만이
죄가 아니다.
형제 사이의 죄, 음란한 죄, 금품
횡령죄 등과 같이 ‘너희 육이
죄라고 규정하는 행위’를 해야만
<죄의 주관권>에 속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 근본을 알아라.
나 여호와를 네 중심에 두지 않은 것,
고로 성삼위의 심정을 상하게 한 것이
죄다. 삼위의 사랑하는 대상이면서도
삼위의 심정을 맞추지 못한 죄가
그리도 크다. 너희는 늘 자신의
마음을 살펴라.
<나 여호와>가 아니라 <네 자신>을
‘중심’에 두고 네가 하고픈 대로
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라.
또한 <다른 사람>을 ‘네 중심’에 두고
그 사람의 말대로 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라. 또한 <네가 좋아하는
것>을 ‘네 중심’으로 삼고 그것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라.
<나 여호와의 말>을
‘절대적’으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생활 속에서는
<네 주관적, 상대적 관>을 더 가치
있게 보며 그 생각을 중심으로 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라.
그 모든 것들이 죄다.
나 여호와를 최우선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 죄다.
나 여호와를 가장 사랑해야지.
이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자는
내 심정에 합당한 자가 아니다.
나 여호와가 아닌
<다른 것>이 ‘너의 중심’에 있으니
내 마음이 상하였다.
나 여호와가 아닌 <너 스스로>가
‘너의 중심’에 있으니 내 마음이
상하였다.
이것을 알고 회개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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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쉬었다가>
너의 삶 속에서 ‘모든 것’을 놓고서
나에게 고하며 나에게 묻고 행하여라.
그래야 너의 하루를 놓고도 온전히
‘내 뜻’대로 살아갈 수 있다.
네가 ‘너를 향한 나 여호와의 사랑’을
안다면, 또한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왜 ‘나의 뜻’대로 행해야 하는지 알
것이다.
내가 너를 지극히 사랑하니,
늘 너에게 ‘최상의 것’을 주려 한다.
하지만 네가 오직 나 여호와를
최우선으로 할 때 내가 너에게 주려고
하는 ‘최상의 것’을 받을 수 있다.
<뜻>이란, 나의 계획이다.
<뜻>이란,
내가 너를 사랑하므로 너를 위해
만들어 놓은 나의 구상이다.
<뜻>이란, 너와 내가 서로를 우선시할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뜻>이란, 너에게 주어진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 중에서 절대적으로
보았을 때 가장 이상적인 선택이다.
<뜻>이란, 나 여호와의 사랑이다.
<뜻>이란, 네가 생각한 방법과는
다르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뜻>이란, 네가 영원한 것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이다.
<뜻>이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속에
내포하고 있는 것이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을 말한다.
<뜻>이란, 네가 취할 수 있는 모든
것들 중에서 절대적으로 가장 큰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잠시 쉬었다가>
이제 나 여호와를 네 중심에 두지
않는 것이 <죄>라는 것을 알겠느냐.
너희 모두는
‘나의 뜻’대로 해 달라고 구하면서도,
또 나의 신부가 되기 위해서 자신을
만들고 있으니 제발 자기를
도와달라고 성삼위 앞에 구하면서도,
나 여호와가 너희에게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잊고서 나 여호와를
중심하지 않고, 삶 속에서 너 스스로를
중심하거나 다른 것들을 중심하는
때가 많다.
하루를 놓고도 무수히 많은 시간들을
그렇게 보낸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이제는 너희의 차원이 예전보다
높아졌으니, 너희를 더욱 온전히 할
때이기 때문이다.
전에는 하루를 살다가 그저 기도할
때만 나 여호와를 찾았으나,
너희의 차원이 그 정도이니 그
정도로도 나 여호와는 기뻐했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차원이
높아졌으니, 하루를 두고도 하루 종일
나 여호와를 찾고, 나에게 ‘고할 것’을
고하고 ‘구할 것’을 구함으로 나의
뜻을 알고 내 뜻대로 행하여 받을
것을 충만히 받는 단계로 살아야 된다.
★ 차원을 높여서 새롭게 해야
<더 새로운 것>을 받는다. 새롭게 하지
않으면, 길이 막혀서 못 간다. 새롭게
해야 <새 길, 희망의 길>이 나온다.
이것이 안 되니, 내 심정이 상하는
것이다. 나의 심정이 상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죄’가 된다는 말이다.
<신부>이니, 그렇게 살아야 된다.
<신부>이니, 진정 온전하게 하라는
말이다.
<종들>에게 이렇게 말하겠느냐.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하겠느냐.
사랑의 족속으로서 나의 창조 목적의
뜻을 휴거로 완성할 나의 신부들에게
말한다. 또한 예전보다 차원이
높아졌으니 말한다.
너희는 <신부>로서 매사에 나의
뜻대로 행하지 못함으로 받을 것을
받지 못하니 마음이 불편한 것이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중요
<하늘 신부>로서 늘 <하늘 신랑>과
함께 살아야 하는데, 자기 생각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행하니,
그 순간 삼위와 교통하지 못하고
하늘의 것을 받지 못하니 마음이
채워지지 않은 것처럼 허하게 느끼는
것이다.
나와 함께 살려면,
<나 여호와>를 늘
‘네 마음의 중심’에 둬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너 스스로 혼자
살아가는 것이며 네가 좋아하는
것들과 같이 사는 것이다.
나와 일체 되지 않으면,
너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다.
<다 큰 여자>가
<신랑>과 함께 있지 않으니,
강도가 그 여자를 가만히 두겠느냐.
어느 때든지 나와 일체 되지 않으면
사탄이 너희를 넘보고 너희를 취하려
한다. <끝>
이를 반드시 알아라.
너희가 <성삼위>를 중심하지 않을 때,
<내 신부인 너희>가 <사탄>과
놀아나는 격이니 <나의 심정>이
상한다는 것이다.
<성삼위의 마음>이 상했다는 것을
느끼니, <너> 또한 마음이 그리도
불편한 것이다.
<잠시 쉬었다가>
매일 잠들기 전에 나 여호와 앞에
기도하여라. 나를 중심하지 않음으로
내 심정을 상하게 한 것이 있는지
점검하고, 그런 것을 발견하면 전심을
다해 회개하여라. 진정 그 죄들이 나
여호와의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
신부들아~
너희는 <나의 사랑의 대상체>이고
<너희를 향한 나의 사랑>이 크기에
이러한 죄 때문에 내 심정이 상할
때가 많다.
자기 전에 나 여호와에게 기도하며
네가 하루를 놓고 나를 얼마나
중심했는지 점검하고, 다음 날은
나와 더욱 함께하겠다고 약속해.
그리고 그 약속대로 행하여라.
2015_03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6
신랑, 신부임에도
나 따로, 너 따로 생각하고 행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나 여호와의 생각은 늘 내 사랑하는
신부, 너희에게로 향한다.
그러니 너희만 생각의 방향을
나에게로 온전히 향하게 한다면,
하루를 놓고도 ‘너를 향한 나의
뜻들’을 수없이 많이 이뤄 갈 것이다.
그같이 나 여호와를 중심에 두는
인생은 단 하루만 살 수 있다 해도
보람이다. 아깝지 않다.
이런 자는 다른 자들이
‘1년 동안 해도 못 이루는 뜻’을
‘단 하루 만’에 이룬다.
네가 나 여호와를 매초마다
중심한다면, 너는 나의 뜻을
매초마다 이루는 인생이 된다.
진정 이와 같이 살아라.
그러면 단 1초를 두고도
사탄이 네게 틈타지 못한다.
<너의 모든 순간>을 나에게 고하고,
<너의 모든 상황>을 나에게 고하여라.
<너의 모든 감정>을 나에게 고하고.
<너의 모든 생각>을 나 여호와에게
고하여라.
이렇게 나와 수시로
무시로 통하며 살자.
나 여호와를 중심하면 중심할수록
네 인생이 보람차고, 찬란한 빛을 내는
인생이 된다.
<말씀 마무리>
너희가 ‘나의 뜻을 얼마나 이뤘느냐’에
따라서 너의 육, 혼, 영이 빛나는
강도가 달라진다.
나의 뜻을 이루려면, 너의 중심을
나 여호와에게 온전히 둬야 한다고
일렀다. 또한 죄의 근본을 알고
행하라고 했다.
이 모든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오직 나 여호와를 중심하여라.”다.
더 짧게 말하자면 ‘오직 나 여호와’다.
너희를 사랑하니, 말해 주었다.
깊은 비밀을 알려 주었으니
앞으로는 늘 ‘오직 나 여호와만을
중심’함으로 네 삶 속 모든
순간마다 ‘나의 뜻’을 이루며 사는
<가장 보람차고 가치 있는 인생>이
되길 축복하노라.
<너를 향한 크고 작은 뜻들>이
무수하게 많으니 오직 나 여호와를
중심하여 그 뜻이 무엇인지 찾고,
반드시 이루어라.
그래서 육을 가진 짧은 시간뿐 아니라
영원을 두고도 ‘가장 큰 것들’을
누리며 사는 자가 되어라.
전지전능한 여호와니라.
(* 화면을 보면서 오늘 말씀
마치겠습니다.) <영상2>
(성 자) 옛날 식으로 그대로 하면,
<갈 길>이 막힌다. 새롭게 해라.
새롭게 해야 <승리의 길>을 간다.
(하나님)
오직 나 여호와를 중심하여라.
신부는 신랑과 늘 함께다.
<끝>
2015_03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7
2015년 03월 08일 주일
출처 : 만남과 대화 god21.net
[ 다니엘 10장 10-12절 ]
10) 한 손이 있어 나를 어루만지기로
내가 떨었더니 그가 내 무릎과 손바닥
이 땅에 닿게 일으키고 11) 내게 이르
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 다니엘아 내
가 네게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
내가 네게 보내심을 받았느니라 하더
라 그가 내게 이 말을 한 후에 내가
떨며 일어서니 12)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
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
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는 ‘대화’입니다.
누구와의 대화입니까?
성삼위와 주와의 대화입니다.
<기도>는 ‘사랑’입니다.
누구와의 사랑입니까? 성삼위와
주와의 사랑입니다.
◎ 사람끼리도 ‘대화’가 없으면
멀어집니다.
사랑하는 자인데 ‘사랑’이 없으면 같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앞에도
그러합니다. <신부>라면,
‘늘 신랑과 함께’입니다.
고로 <하늘 신부>라면 <하늘 신랑>과
늘 대화하고, 신랑을 찾고, 부르고,
사랑하며 살아야 됩니다.
고로 <기도>는 꼭 해야 됩니다.
◎ 오늘은 왜 기도해야 되는지에 대해
말씀해 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기도하는 자’에게 <1억 천만금 같은
말씀>입니다.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집중해서 잘
듣고, 꼭 행하기 바랍니다.
< 말씀 시작 >
사람마다 <기도하는 목적>은
‘각각’입니다. 그러나 <핵심>은
‘하나’입니다.
<기도>는 자기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얻고 이루기 위해서 합니다.
사람마다 원하고 바라는 것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하는 일이
잘되기를 원하고, 어떤 사람은 주가
맡기신 일을 잘하기를 원하고,
어떤 사람은 하늘과 가까워지기를
원하고, 어떤 사람은 지혜 받기를
원하고, 어떤 사람은 어려움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등 각자 다릅니다.
고로 <기도하는 목적>은 각각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바라는 것을 얻고
이루기를 원하는 것’은 모두 다 같은
마음입니다. 고로 <기도의 핵심>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어느 날 선생이 20년 동안 원하던
것을 놓고 <117기도>를 하는데,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문제>를 놓고서,
기도를 정말 간절히 해야 된다.
네가 구하는 것은 섭리의 모든
자들에게 필요한 것이고, 오랫동안
모두가 써야 되는 것이다. 고로
<그것들>을 놓고, 네가 정말 간절히
기도해야 된다. 그러니 내가
<기도의 비밀>을 더 깊이 알려 주마.”
하셨습니다.
(* <기도>는 왜 하는지,
화면을 보면서 <성자의 말씀>을 들어
보겠습니다.) <영상1> 중요 영상
<기도>는 ‘하나님께 결재받기 위해
하는 것’이다. (천천히 강조한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결재하지
않으신다.
<기도>로 하늘 앞에 간~절히 상황을
알려라. (천천히 강조한다)
하나님이 들으시고, 감동되고 합당하면
결재하신다.
결재만 나면,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명령하신 것이다.
- 고로 <천사들>도 돕고,
- <성령님>도 감동시키시고,
- <나 성자>도 역사하여 합당한
자들을 총동원하여 그때마다 행함으로
성공하게 한다. 혹여 사탄이 막아도
이미 ‘하나님의 결재가 난 일’이니,
정녕코 이루어진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결재를 받기 위해 <할 일>과
<원하는 것>을 놓고 기도하는 것이다.
(초록색 천천히 강조)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끝>
성자는 <기도>에 대해 이같이
말씀하시며 “깨달았으냐?” 하고,
내게 물으셨습니다.
이에 선생은
“뇌가 찡하고 짜릿하게 깨달았습니다.”
하며 성자께 고백했습니다.
이 말씀은 <1억 천만금과 같은 귀한
말씀>입니다.
<117기도>를 하며 성자와 대화할 때,
해 주신 말씀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기도는 하나님께 결재받기 위해 하는
것이다. (초록색 천천히)
하는 <성자의 말씀>을 듣고
20년 이상 그토록 원했던 소원을
놓고서, 하나님 앞에 더욱 간절히
상황을 고하며 기도했습니다.
20년 이상 그토록 원했던 ‘그것’은
섭리의 모든 사람들이 1000년 동안
쓸 것입니다.
고로 하나님의 결재를 받기 위해
애~타게 간~절히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애타게 간절히 잘 표현할 것)
“제가 그것을 얻으려고 20년 이상
기도해 왔습니다. 그것을 남에게 주면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심정이
괴로우실 테니, 꼭 저에게 주세요.
2015_03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8
그러면 세상 누구보다 하나님 위해,
섭리 위해 끝까지 감사하며 사랑하며
쓰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이
구상하신 대로 멋지게 만들겠습니다.”
(하며 간구했습니다.)
그랬더니 성자는 말씀하기를
“그것을 너에게 줘도 후회하지
않겠냐?”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선생은
“그것을 얻으려면 마음과 뜻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값을 많이 줘야 하니
약간은 후회할 수도 있지요.
그래도 저에게 주세요.”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결재’가 안 났습니다.
그다음에 다시 기도할 때,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후회하지 않을 테니
달라고 해야 준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도 성령님께도
“후회 안 할 테니 저에게 꼭 주세요!”
하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나의 신혼골수를 다시
살펴보시더니 “결재하니, 후회하지
않기다! 심정 상하게 하면 안 준다.
주면, 꼭 약속대로 더 값있게 써라.
기다려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꿈>으로 보여 주면서
‘결재’를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결재를 받고,
즉시 ‘그 일을 맡긴 자’와 ‘선생’이
책임을 하며 실천했습니다.
그리함으로 결국 ‘그것’을 얻었습니다.
(얻은 기쁨을 표현하며, 한손 기본
제스처 하며 전하기)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정한 기간>이 끝나고 네가 간절히
기도하니, 너에게 준 것이다.
- 네가 하나님과 성령님과 나를
사랑하고
- 그동안 그것을 나의 것처럼 귀히
보고 아끼며 사용했으니 가치를 아는
자가 주인이 되어 사용하라고
결재한다.” 하셨습니다.
(가치를 아는 자 강조하면서,
초록색 부분 보다 천천히 전하기)
지금은 바빠서, 그 사연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지 못합니다.
때가 되면 자세히 해 주겠습니다.
<그것>은 ‘그동안 섭리인 모두가
밟으며 사용했던 곳’입니다.
(초록색 보다 천천히 전하기)
설교를 들을 때 <그곳>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은 섭리 전체에서 20명쯤 될
것입니다. 우선은 모두 쓰면 됩니다.
(쓰면, 강조) 쓰다 보면 “이것이다!”
하며, 아는 사람이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곳>은 월명동에 있는데요, 그동안
섭리인 모두가 쓰면서 ‘섭리의 것’으로
알고 썼던 곳입니다.
(파란색 글씨 강조)
그러나 그동안은 ‘남의 것’이었습니다.
(파란색 글씨 강조)
이제 ‘우리 섭리의 것’이 되어서 쓰게
됐습니다. (파란색 글씨 강조)
늙어 죽을 때까지 귀히 쓰면서
감탄하면서 기뻐 좋아할 것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할 일>을 놓고서 <원하는 것>을
놓고서, 꼭 <기도>해야 됩니다.
(기본 제스처)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서로 답이 올
때까지 끝까지 말합니다.
그런데 기도하다가는
하나님과 성자께 결재도 못 받고
기도를 끝내는 자들이 많습니다.
길이 잘못 들었습니다.
<사람이 다니는 길>도 잘못 닦아
놓으면 평생 불편하게 다닙니다.
사람도 <길>이 잘못 들면 그러합니다.
기도해도 응답도, 허락도 못 받을 때가
있으니, 그대로 끝내지 말고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됩니다.
또한 사람들과는 길게 통화도 하고
대화하면서, 말씀을 좀 길게 하면
‘언제 끝나지?’ 하면서 시계나
쳐다보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말씀이 ‘뇌’에 절대 안
들어옵니다. 그런 자들은 ‘말씀이 아예
없는 곳’으로 보내서 1년, 3년, 1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못 듣게 합니다.
역시 <길>이 잘못 들었습니다.
말씀을 줄 때 귀히 여기고 감사히
여겨야 ‘말씀이 충만한 곳’에 있게
하십니다. <말씀>은 하나님이며,
성자이며, 주입니다. 말씀을 귀히
여기는 자가 <말씀이 있는 곳>, 곧
<성삼위와 주가 있는 곳>에
늘 머물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지금까지 기도는 왜
해야 되는지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기도는 왜 해야 된다고요?
네! 하나님의 결재를 받기 위해서
해야 됩니다. (기본 제스처)
<하나님의 결재>를 받고 <허락>을
받아야 (초록색 강조) 천사도 돕고,
성령님도 도우시고, 성자도 사람들을
통해서 도우시고, 하나님도 각종
여건을 틀어 도우십니다.
<하나님의 결재>를 받았으니,
(초록색 강조) 사탄과 악한 자들이
막아도 ‘하는 일’이 정녕코
이루어집니다.
<전환>
◎ 그런데 <기도>를 해도
늘 ‘결재’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결재를 잘 안 해 주는 원인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왜 결재를 안 해 주시는지 모두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원인이 있지요?
(초록색 강조)
기도한 것이 합당하지 않으니,
(초록색 강조) 결재, 응답, 허락을 안
해 주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깊은 비밀’이
있습니다. 이것을 알고 기도하면,
결재와 응답과 허락을 더 잘 받습니다.
이것은 ‘행하는 자’만 압니다.
◎ 지금부터 ‘이 깊은 비밀’을 말해
주겠습니다. (잘 들으세요.)
2015_03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9
<잠시 쉬었다가>
어떤 것을 원하고 그것을 달라고 할
때는 정말 애원합니다. 그러면서
주시기만 하면 그것이 없어질 때까지
감사하며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며
귀히 쓴다고 합니다. 그러나 받은
후에는 ‘말’과는 다릅니다. 하나의
‘사기꾼 신앙’입니다.
<전능하신 사랑의 하나님>과
<흠 없고 진실하신 성자>를 그리
대하니 하나님과 성자는 줘 놓고는
“다음에 보자.” 하십니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라는 한국 속담이 있습니다.
‘처음 마음’과 ‘나중 마음’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인심조석변(人心朝夕變)이라는
말과 비슷하지요?
- 사람의 마음은 ‘아침’과 ‘저녁’이
다르게 변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얻기 원할 때’와
‘얻은 후의 마음’이 참 다릅니다.
★ 무엇을 얻기 원할 때는 하나님과
성자를 부르고 찾고, 애간장 태우고,
끼니를 거르며 기도하며,
울고불고합니다. 하나님이 주시기만
하면, 하나님이 시키시는 것을 다
한다고 하며 약속합니다. 그러다가
받으면, 자기가 어떻게 하겠다고
약속한 것들을 다 잊어버립니다.
아직 젊은데, 자기가 말한 것을 자꾸
잊어버리는 ‘치매 신부’가 있으니
걱정입니다. 자신들이 그렇게 했는지,
안 했는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2007년 이전에 섭리사에 온 자들은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2007년도에 큰 환난으로 인해서
10개월 동안 선생과 연락이
끊겼습니다.
그때 선생이 중국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정말 잘하겠다고 약속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선생이 돌아와서
후에 보니 자기 좋은 대로 살고,
연애나 하고, 불의를 행하며
살았습니다. 약속대로 하지 않으니,
괴로운 고통만 당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약속한 대로 하면 축복과
기쁨이 기다리고 있고, 하나님과
약속한 대로 안 하면 괴로움과 고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그동안 못 한 것 하자.
부흥강사가 간단히 설명)
<월명동 성지 땅>을 가꾸고 개발해
주었으니 성삼위께 늘 감사하며
날마다 차원 높여 귀히 쓰고, 매일
감격하며 사연을 말하고 감사의
이야기를 하면 그로 인해 더 주십니다.
하나님과 성자께서
기도한 대로 주셨으면
- 더욱더 하나님과 성자를 사랑하고,
- 매일 감사 감격하며,
- 자기 모순과 잘못을 고치고,
- 주신 것을 귀히 쓰면서
- 또 구할 것을 구하며 달라고 해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자기가 원하는 것>과 <자기 할 일>을
놓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 ‘결재’를 잘
받으려면
- 첫째, 합당한 것을 구해야 하고
- 둘째, 속이지 말고 구해야 하고
- 셋째, ‘간구할 때의 마음’과
‘받은 후의 마음’이 같아야 됩니다.
간구한 것을 받은 후에도 늘 감사
감격하며 하나님께 약속한 것들을 잘
지키며 <신부>로서 하나님과 성자를
사랑하며 살아야 됩니다. 문제가
있는데 그것을 받으려고 속이고
구하면, 하나님은 결재해 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결재받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으니, 구하는 자가
<사랑하는 자>인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강조하며 기본 제스처)
① 하나님과 성자 앞에
<사랑의 대상>이 아니고,
(오른손 다섯 손가락 편 상태에서
엄지를 구부려 하나를 표현한다)
② <삼위와 일체 된 자>가 아니면,
(위의 상태에서 검지를 하나 더
구부려 둘을 표현한다)
→ ‘큰 것’은 결재해 주지 않으십니다.
세상에서도 남자가
상대에게 무엇을 결재해 줄 때,
<자기 애인>이 아니고
<자기와 일체 된 자>가 아니면
‘큰 것’은 결재해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도
그러하십니다. - 생각해 봐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신부급 구원의 사명>을 주시는데,
삼위와 일체 되지 않고 삼위의 것이
아닌 자에게 그 큰 사명을
주시겠습니까?
삼위와 일체 되지 않은 자,
삼위의 것이 아닌 자,
삼위를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
<신부급 구원의 사명>을 주면,
- 그 사명을 가지고
‘자기’를 위해서 쓰고
- 생명들을 구원하여
‘자기 사람’으로 삼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가 아니면,
<신부급 구원의 사명>을 안 주십니다.
종급이나 형제급에게는 그 정도의
사명만 주십니다. 특히 이단 종교들은
사명을 줘도 ‘자기’를 중심하니,
<구원하는 사명>은 절대 안 주십니다.
섭리사 안에서도 하나님과 성자는
‘결재’를 잘 안 하십니다. 주면 ‘자기
것’으로 삼고 ‘자기 영광’을 위해서만
쓰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줘야
‘자기’를 위해 쓰지 않고 삼위와 일체
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쓰니,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결재해 주십니다.
(강조하며 기본 제스처)
<잠시 쉬었다가>
◎ 지금은 하나님과 성자께서
왜 기도해도 결재를 안 해 주시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각자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모두가 <어떤 것>을 얻기 원하여
간절히 구하며 그것을 얻으면 정말
잘하겠다고 하고, 끝까지 감사하며
귀히 쓰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니 하나님도 주시고,
성자도 주시고, 주도 주면 그때만 잠깐
좋아하며 미쳐서 삽니다.
그러다가 한 때가 가면
<좋아했던 마음>이 식어 버리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잊어버립니다.
각자 자신들을 생각해 보세요.
2015_03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0
<자기가 간절히 구한 것들>을
성자나, 선생이나, 어떤 사람이 주면
‘받는 그때’만 좋아합니다.
그러다가 한 때가 가면, 좋아했던
마음과 감사가 식어 버리고 흔적도
없이 잊어버립니다. 이에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신부들아. 이것을
지적하니 꼭 고쳐라.” 하십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2015년 아시안컵>에서
한국이 50년 만에 우승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며 꼭 이기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아시안컵
결승 경기 시간>에 TV를 켜고
<한국 팀>을 응원하며 이기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호주와 한국의 경기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한국’은 패하고 끝났습니다.
<끝>
이 경기를 본 사람들은 ‘선수들이
조금만 더 잘했으면 50년 만에
<우승의 꿈>을 이뤘을 것인데...’ 하며
선수들이 못한 것만 아쉬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수들이 못한
것에만 ‘한국’이 패한 원인이 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자의 한마디 말씀을
들어 보면, 그 비밀이 풀립니다.
선생이 <한국 팀>이 이기게 해 달라고
간구했더니 성자는 왜 지는지
말씀하지 않으시고, 이 말씀만 몇 마디
하셨습니다.
“너희 민족은 뭘 해 달라고 할 때는
모두 미쳐서 불같이 열정적으로
원한다. 하늘을 쳐다보면서 진정
애원한다. 그래서 민족에 해당되는
것을 해 주면, 그때뿐이다. 그 후에는
그 뜨겁던 열정이 다 식어 버린다.
감사가 없다. 또 불만이 터져 나온다.
이것이 네 나라의 민족성이다.”
(하셨습니다.)
모두 설명을 안 해도 잘 알 것입니다.
무엇을 도와주거나 해 주면 그때만
미쳐 좋아하다가 그때가 지나가면 다
잊어버리고, 그때의 사연도 이야기하지
않고 나 몰라라 하며 살고, 도와주고
해 준 자에게 고마워하지도 않고,
매몰차게 다 잊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지나면 교통도, 사랑도, 감사도
없다는 것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생각해
보세요. <한국>이 얼마나 기적적으로
‘4강’에 올라갔습니까? 하나님이
<국가>를 위해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이 시대 ‘요나의 표적’이었습니다.
<끝>
<예수님 때>는 그 시대가 예수님을 안
믿으니 요나의 표적밖에 보일 것이
없다 하시며, 요나가 3일 동안
바닷물고기 배 속에 있다가 살아
나왔듯이 예수님도 만민의 죄를
대신하여 죽어 주시고 3일 만에 ‘영이
살아나는 표적’을 보이며 믿게
하셨습니다.
이 시대도 하나님과 구원자를 안
믿으니, 하나님은 성자와 시대
사명자와 함께 ‘월드컵의 표적’을 이
시대의 표적으로 보이며 믿게
하셨습니다.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진출한 것은
정말 표적입니다. 불가능한 것을 한
것입니다.
만일 ‘실력’으로 이겼다면 그 후에도
계속 그 실력으로 이겨야 하는데,
그 후에는 계속해서 저조한 실력으로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실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표적>으로 이긴 것입니다.
깨닫기 바랍니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엄청난 성적을
내고, 국가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했어도 꾸준히 끝까지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았어도
꾸준히 끝까지 찾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해도 꾸준히 끝까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위급할 때나,
무엇이 필요할 때나, 경기의 승패를
겨룰 때나 하나님을 열정적으로 찾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끝나면,
그 열정이 사라집니다.
그때뿐, 한 때뿐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선생은 <2015년 아시안컵 결승전>을
보며 성자와 이야기하다가, 성자의
말씀을 들은 후부터는 그냥 구경만
했습니다. 그리고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역시 성자의 말씀대로 됐습니다.
<후반전>에 1: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가 거의 끝나 가는
마지막 순간에 <한국 팀>은 포기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뛰다가 한 골을 넣어
동점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연장전>으로 가서 계속 열정적으로
뛰었습니다.
그런데 ‘호주의 한 선수’가 열정적으로
볼을 따라갔고, ‘그를 막던 한국의 한
선수’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에 순간
볼을 뺏겼고, 그것이 ‘골인’으로
연결되는 것을 봤습니다.
결국 2:1로 패하고 말았습니다. <끝>
★ 이와 같이 할 때 열심히 하다가
순간 서 있으면 그로 인해 지게
되듯이, 섭리인들도 할 때 열정적으로
하다가 말면, 그렇게 열정적으로 한
것이 모두 허사가 됩니다.
★ 무엇을 해 달라고 할 때도
애타게 하나님을 찾는 그 마음과
열정이 순간에서 끝나면 (강조)
하나님은 안 도우십니다.
절대 <하나님의 법>입니다.
★ 열정적으로 간절히 구하고
받았으면, 그 <열정>과 <간절한
마음>을 잊지 말고, 도우시고 주신
것을 인연으로 삼고 꾸준히 끝까지
감사하고 하나님과 성자를 사랑하며
살아야 됩니다.
선생은 하나님이 무엇을 주시면,
계속해서 잊지 않고 감사하고
사랑하며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함께 기뻐하며 더욱 귀히 씁니다.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우리를 돕기만 하고 우리의 시중을
들다가 마는 존재자가 아닙니다.
도움 받기 전의 <열정>과
<간절한 마음>으로 인연을 맺고
끝까지 감사하고 사랑하며 살라는
목적으로 도와주는 것입니다.
(기본 제스처)
기도하며 간구할 때는 해 주기만 하면
자기 인생을 바쳐 평생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사랑하겠다고
다짐합니다.
2015_03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1
그러나 그 마음이 한 때뿐입니다.
받으면 다 잊어버리고 삽니다.
<목회>도 그렇게도 간절히 원하며
허락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래서
허락하면, 목회할 때는 편지도 없고
의논도 없습니다.
섭리사에서 분체와 최고로 의논을
잘하는 사람이 두 명 있습니다.
여자 한 명, 남자 한 명입니다.
누구인지 본인에게 물어보면 알
것입니다.
★ 무엇을 얻고자, 무엇을 하고자
간구할 때의 그 <열정>과 <간절한
마음>을 잊지 않고 받은 후에도
꾸준히 끝까지 삼위일체를 사랑하고
감사하며 삼위일체와 일체 되어
행하며 살면, 삼위 앞에 ‘합당한 자,
신뢰를 받는 자, 사랑받는 자’가 되어
계속해서 절대 도우시고 더욱
주십니다.
섭리인들도 ‘인간의 육성’과 ‘민족성’의
영향을 받아서 할 때는 잘하는데 한
때뿐입니다.
<접견>도 그리 원하고 간구하여
허락해 주면 그때만 잠깐 좋아하고,
한 때가 가면 소식도 없고, 몇 달 못
가서 마음이 식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고로 올해부터는 안 속고 끝까지
잘하는 자들만 각 교회에서 뽑아서
접견을 해 주기로 했습니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얻었으면
꾸준히 끝까지 삼위일체를 사랑하고,
그것을 가지고 성자와 인연을 맺고
감사하면서 같이 써야 됩니다.
섭리사도 ‘잘하는 자들’ 때문에
하나님이 줄 것을 주시어 모두 같이
쓰고 있습니다. 변함없이 해야 됩니다.
(양손 기본 제스처)
가다가 변질돼 봤자 그 <육>도 <영>도
고통이며, 사망에 처해 살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말씀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할 일>도 ‘하나님의 결재’가 나야
잘됩니다. <구하고 찾는 것>도
‘하나님의 결재’가 나야 얻게 됩니다.
<죄>도 ‘하나님의 결재’가 나야 완전히
소각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결재’가
그리 쉽게 나는 것이 아닙니다.
집을 짓거나 공사를 할 때도 그냥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는
‘해당 서류’를 작성하여 국가에 내야
됩니다.
한동안 <해당 기관>은 합당한지,
필요한 서류를 다 제출했는지,
조건이 되는지, 문제는 없는지, 여러
가지를 다 봅니다.
그러니 결재가 나려면
열흘, 한 달, 세 달, 혹은 1년, 3년,
5년씩 걸립니다.
집 지을 때 ‘국가 허가’를 받는 것도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의 결재’를
받으려면 어떻겠습니까?
현재도 보시고, 앞날도 보시고,
그것을 결재하면 다른 사람에게
지장이 없는지도 보시고, 그것을 주면
얼마나 귀하게 사용할 것인지도
보시고, 얼마나 감사하며 쓸 것인지도
보십니다.
그때만 애타게 받으려 하고, 받고 난
후에는 <감사와 사랑>을 꾸준히 하지
않으니, 준 것을 도로 빼앗아
버립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변치 않고
감사하고 사랑하며 하늘 앞에 소출을
드리는 자에게만 주십니다.
<자기>라는 인생도 사망권에서
생명권으로 나왔으니 늘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감사하고 사랑하며,
하늘 앞에 드릴 것을 드리며,
전능자와 함께 누리며 써야 됩니다.
<결재>는 ‘꿈’으로도 해 주십니다.
또한 기도할 때 “걱정 마라.” 하며
‘감동’이 오기도 합니다.
<신용>이 좋으면, 은행에서 바로
대출을 해 주지요? (이와 같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일체 된 자,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자, 지난날 ‘받은 것’을
계속해서 감사하며 쓰는 자, ‘받기
전의 애타는 마음과 열정’이 변함없는
자는 <신뢰>가 있는 자로서 할 일과
구할 것을 놓고 기도하고 간구하면,
하나님은 그 일이 이루어지고 그것을
얻도록 바로 결재해 주십니다.
<말씀 마무리>
<하나님의 결재>를 받기 위해,
꼭 기도해야 됩니다.
이것이 ‘기도하는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결재>를 못 받고 끝나면
‘받는 것’이 없습니다. 이를 알고,
꼭 ‘할 일’을 놓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결재>를 받아야 됩니다.
<결재>를 받아야 하니, 기도하며
무엇을 구할 때는 그냥 기도만 하지
말고 목적, 원하는 것, 용건을 대면서
구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땅의 성자의
육’을 통해서도 주십니다.
기도는 왜 하느냐. <하나님의 결재>를
받기 위해서 한다. (기본 제스처)
이 말씀을 잊지 말고 하나님과 성자
앞에 깊이 기도하여 결재를 받고,
구한 것을 받았으면 <마음> 변치 말고
<은혜와 사랑>을 잊지 말고 감사하고
사랑하며 살기 바랍니다. (아멘.)
2015_03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2
2015년 03월 15일 주일
출처 : 만남과 대화 god21.net
[ 로마서 12장 2절 ]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
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사랑과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새롭게 해라.’입니다.
이 말씀은 <3월 1일 주일>에
잠깐 몇 마디 전해 주면서 ‘방향’만
알려 주었지요?
오늘은 새롭게 하라는 성자의 말씀을
<주일말씀>으로 전해 주겠습니다.
◎ 이번 주는 <생명의 날 주간>인데요,
새롭게 하라는 말씀을 ‘생명의 날
선물’로 주겠습니다.
<말씀 시작>
◎ 이제 때는
<완연한 성약의 때>입니다.
성경에 예언된 <휴거의 역사>를
이루었고, 또 이루는 중입니다.
2015년부터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섭리역사의 차원을 더 높여
‘뜻’을 이루시고자
- 모든 죄를 깨끗하게 용서해 주시고,
- 주의 돛을 달고 힘차게 인생의
항해를 하도록 방향을 주시고,
- 온전하게 사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시며
더욱더 ‘승리’하며 ‘형통’하도록
이끌어 주고 계십니다.
◎ 그러나 여기서 <한계 상황>에
처하면 ‘앞길’이 막혀 앞으로 전진할
수 없고 ‘주시기로 예정된 것들’도
받을 수 없으니, 성자는
<새로운 방법>을 주셨습니다.
선생이 성자께 기도하기를
“가다가 <한계 상황>에 처해 ‘길’이
막혀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 부분은 여기서 끝입니까?
어떻게 해야 될까요?” 하며
물었습니다.
이때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새롭게 해라. 이전 것은 끝났다.
이제는 <다른 방법>으로 새롭게 해라.
새것이 네 앞에 왔다.” 하셨습니다.
<옛날 식>으로 하면, ‘예전 것’은 길이
생기고 얻어졌습니다.
그러나 <옛 방법>으로는
- ‘새것’이 얻어지지 않고,
- ‘갈 길’이 막히고,
- ‘하는 일’이 되지 않습니다.
형통하는 길, 승리하는 길은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기본 제스처)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선생은 성자의 말씀을 듣고
<새로운 다른 방법>을 찾아서
행했습니다.
<1차> 새롭게 했더니 ‘새로운 것’을
얻었고, 거기서 ‘2차로 새롭게 할
것’이 생각나고 보였습니다.
그래서 <2차>로 새롭게 행했습니다.
그랬더니 ‘전보다 더 새로운 희망의
역사’가 일어났고, ‘밭에 묻힌 새로운
보화’와 ‘새것’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래서 성자께서 새롭게 하라고
하셨구나.’ 절실히 깨닫고,
모두 <사명>도 새롭게 하고,
일할 때도 <새로운 방법>으로 하라고
오늘 말씀을 전해 줍니다. <끝>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올해 형통함의 답은
‘새롭게 하는 것’이다.
(기본 제스처, 파란색 강조)
과거 식으로 하면
‘희망의 길’이 막힌다.
‘앞날’이 막힌다. 힘들고 곤고하다.”
하셨습니다.
새롭게 하는 것은 ‘문제의 답’입니다.
‘문제의 해결’입니다.
‘희망의 방법’입니다.
‘성자의 지시’이며 ‘특별 계시’입니다.
(한 문장씩 ‘핵심’을 또박또박 말하며,
한 손 기본 제스처 한다.)
그래서 목회자들도,
부서 중앙 지도자들도
새롭게 할 자들은 새롭게 하라고
방향을 주었습니다.
이동하여 새롭게 할 사람들은
이동하게 해 주었고,
대기하면서 준비하여 새롭게
할 사람들은 준비하게 해 주었습니다.
현재 위치에서 계속 사명을 하게 된
사람들은 그 위치에서 더 차원을
높이면서 새롭게 해야 됩니다. (강조)
그리고 성자께서 ‘교회를 얻고 사는
일’도 새롭게 하라고 하시어, 교회를
새롭게 얻기도 하고 사기도 했습니다.
목회자나 각 부서 사명자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한계 상황>에
처하여 ‘길’이 막히게 되면,
첫째,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것’과
둘째, ‘그 자리에서 차원을 높여서
새로운 방법으로 하는 것’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방법으로 하는 것이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어떤 일을 하든지 <한계 상황>에
처하여 ‘길’이 막히게 되면
첫째, ‘새로운 곳으로 가서 새로운
방법을 찾아서 하는 것’과
둘째, ‘차원을 높여서 새롭게 하는 것’
두 가지의 방법으로 새롭게 해야
‘희망의 길’이 뚫립니다.
2015_03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3
이 말씀은 ‘섭리사 전체’에
다 해당됩니다. 말씀대로 새롭게 하지
않으면, 성자는 그 사람과는 같이 일을
못 하십니다.
<잠시 쉬었다가>
성자께서 새롭게 하라고 하셨는데,
선생도 새롭게 하지 않고 예전에 하던
대로 그냥 열심히만 했습니다.
그런데 할수록 <한계 상황>에
부딪혀서 ‘길’이 막히니, 더 이상은
그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 그 사연을 화면을 보면서 말씀해
주겠습니다.) <영상2>
전 세계에서 매일같이 각종 서류들과
편지들이 밀려오니, 동서남쪽에 쌓아
놓고 하나하나 처리했습니다.
이전 서류와 편지를 없애면 다음
서류와 편지가 왔을 때 비교해 볼 수
없으니, 이전 서류와 편지들을 다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그 좁은 방이
각종 서류들과 편지들로 가득 차서
급기야 앉아서 잠을 자야만 했습니다.
이때 새롭게 하라는 성자의 말씀을
생각하며 ‘새롭게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찾았습니다.
‘아~ 방 정리도 새롭게 해야 할
일이구나.
새롭게 하지 않으니,
한계 상황에 처해 문까지 막혀서
앉아서 자게 됐구나.’ 하고,
일주일 동안 ‘뺄 것’과
‘가지고 있을 것’을 쪼개서 추려
냈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내보낼 것들’은
일부 보내고 ‘없앨 것들’은
찢어서 없앴습니다.
3분의 1 이상을 해결하니,
좁은 방이 아주 넓어졌습니다.
걱정이 없어지고, 곤고함이 해결되고,
막힌 길이 뚫렸습니다.
누워서 자게 됐습니다.
‘또 새롭게 할 것’이 무엇인지 계속
생각하니,
성자께서 “<꼭 필요한 것>만 앞에
남겨 놓고 <나머지>는 한쪽에 쌓아
놓아라.” 하시어,
2차로 또 정리하여 새롭게 하니,
거기서 ‘반 이상’이 또 줄었습니다.
새롭게 하니 <새로운 환경>이 되었고,
<새로운 마음과 몸>으로 <새롭게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서류들과 편지들이 문까지
막고 쌓여 있으니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마치 산을 넘듯이 서류들을
넘어서 들어왔는데, 새롭게 하니
‘변화’가 일어나 편해졌습니다.
새롭게 하니, 정말 좋았습니다. <끝>
섭리사에서 사명을 맡아서 뛰는
자들도,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도,
말씀을 배우는 자들도,
전도하는 자들도,
각자 자기 위치에서 뛰는 자들도
새롭게 하지 않고 옛날 식으로 하면
곤고하고 힘들어집니다.
모두 새롭게 해야
‘가던 길’이 안 막힙니다.
새롭게 하지 않으면, 길이 막혀서
‘희망’이 끝나게 됩니다.
새롭게 해야 ‘문제’가 해결되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새롭게 할 엄두가 안 나지만,
꼭 새롭게 해야 됩니다.
새롭게 하지 않으면 곤고하여 밤잠도
안 오고, 쪼그리고 자야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모두 새롭게 해라.
새롭게 하는 자에게
‘새 희망의 길’이 열린다.
새롭게 하는 자는 ‘문제’가 해결된다.
새롭게 하는 자는 ‘새것’을 얻게 된다.
<생명의 날 선물>로
‘새롭게 하라는 말씀’을 주니,
받고 쓰면서 누려라.”
(하셨습니다.) <끝>
<잠시 쉬었다가>
◎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도
때에 따라 새롭게 하셨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구약인들>도 처음에는 잘하다가
한계 상황에 처하여 나태해지고
부패되었습니다.
그대로 두면 <하나님 역사의 길>이
막히니, 하나님은 새롭게 하셨습니다.
곧 땅에서 메시아 예수님이 태어나게
하여 구원자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키우고 가르쳐서
<새로운 신약 말씀>을 주시고,
새롭게 <신약 구원역사>를 2000년
동안 펼치셨습니다.
새롭게 하니 <구약>보다
10000배나 더 얻었고
이상세계를 이루었습니다. (아멘.)
<구약 유대 종교>는
따르는 자들도 ‘소수’였지만 차원도
‘종 차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후 시작된
<신약역사>는 따르는 자들도 죽은
자들까지 합치면 ‘수십억 명’이고,
차원도 ‘아들 차원’입니다.
<구약역사>와 <신약역사>는 아예
비교가 안 됩니다. 하나님과 성자께서
새롭게 하시니, 대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끝>
(*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여기서
끝이 아니지요? 하나님은 정녕코 뜻을
이루기 위해 또 새롭게 하셨습니다.
다시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신약역사>도 정한 때까지 하니
마치 기계가 오래되어 제 기능을 못
하는 것같이 한계 상황에 이르러
부패되고, 곤고해지고, 늙어서 힘이
없어지고, 뇌가 굳어서 <새 역사>를
기다리지 않고 안주하게 됐습니다.
고로 하나님은 땅에 ‘새로운 사명자’가
태어나게 하셨고, ‘하늘의 성자’를
보내어 ‘그’를 키우고 가르치게
하셨습니다.
그리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2015_03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4
이 역사는 <신약>보다
더 새롭게 차원을 높인 역사입니다.
시작한 지는 ‘육’으로는 70년이 됐고,
‘사명’으로는 37년이 됐습니다.
이 역사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때에 따라 새롭게 시작하신
<성약의 역사>입니다.
삼위일체가 행하시니 이 역사는
세계적으로 뻗어나갔고, 앞으로는
<구(舊)역사>를 뛰어넘어 더욱
웅장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과
성자와 하라는 대로 하니, 역사가
이같이 커졌습니다.
삼위일체가 행하시니 누가 막아도,
누가 아니라고 해도 역사는 정·녕·코
창대하게 이루어져 나갑니다. <끝>
<잠시 쉬었다가>
섭리역사도 전반기 때 하던 식으로
또 반복해서 하면 답답합니다.
<새로운 역사>라도 날마다 새롭게
해야 됩니다. (강조하며 기본 제스처)
지금은 <섭리역사>가 진행 중이면서도
<완전한 새 역사의 때>입니다. 고로
<완전한 새 역사의 때>답게 정말
새롭게 해야 됩니다.
그런데 섭리사 안에서
‘옛것’만 보고 듣고 행한 자들은
지금도 ‘옛이야기’만 합니다.
그러니 ‘새로 온 자들’에게는
그 말이 안 통합니다.
지금은 휴거 때인데 자꾸 옛이야기만
하니, 휴거를 준비하던 자들의 뜨거운
마음의 불을 꺼뜨립니다.
뉴스도, TV 프로그램도 이미 방송한
것을 또 해 주면, 사람들은 바로
채널을 돌려 버립니다.
사람들이 이리도 민감합니다.
그런데 2000년 전 이야기나, 섭리의
옛이야기만 반복한다면
얼마나 듣기 싫어하겠습니까?
결혼하여 같이 사는데 자꾸
‘자기 어렸을 때 이야기’만 하면,
상대는 듣기 싫어서 귀를 막아
버립니다.
어떻게 해야 결혼생활이 이상적으로
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사랑이
꺼지지 않고 불타는지, 이런 이야기를
해야 됩니다.
또 섭리역사 중에서도
<완연한 휴거의 때, 새로운 때>가
왔는데도 주의 심정을 알아야 한다며
아직도 <옛 노래>만 부르며 옛날만
회상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지금은 <지금 이때 해당되는 말씀>을
들어야 하며, 그 말씀을 잊지 않도록
그에 따라 <새 노래>도 만들어서
부르고, 마음도, 행실도, 증거도
날마다 새롭게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섭리사에 온 지 오래 된 자들 중에서
섭리사에 새롭게 진행되는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아직도 ‘옛 추억,
자기 주장’에 빠져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 차원’에서 말하고
살아갑니다.
섭리역사에서도 이제
‘완연한 새 역사의 때’가 왔는데도
<새로운 말씀>을 듣지 않고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옛것>만 주장하며 외치고 있으니,
아직도 ‘옛것’을 벗어나지 못한 채
살고 있습니다.
지난날 <섭리사의 환난기 때>가
그리도 중한 때였습니다.
그때 자기 개인만 챙기며 산 자들이
있고, 그때 사명자와 함께 환난을
받으며 쓴 잔을 마신 자들이 있습니다.
그 중의 최고 공적자가
부흥강사입니다. 그래서 환난이 끝난
후에도 주를 증거하도록 귀한 사명을
주었습니다.
역시 환난 때, 힘들 때 신앙을 지키며
주 앞에 죽도록 충성하고 연단받은
자가 때가 되니 욥처럼 단련하고
나와서 외치고 있습니다.
<환난 때>는 자기를 연단하고
단련하는 때입니다. 주를 향한 변치
않는 믿음과 사랑을 보여 주는
때입니다. <환난 때> 신앙을 저버리지
않고, 오히려 주를 더욱 사랑하고 믿어
주며, 주의 일을 행하며 충성한 자들이
- 준비된 자들이 되어 지금
그리도 빛을 발하며 살고 있습니다.
<새로운 역사>라도
때마다 새롭게 하지 않으면,
‘새로운 자들’이 오래되고
‘새로운 것들’이 오래되어
기성화됩니다.
그래서 <말씀>도 계속해서 차원 높여
해 주고, <섭리의 문화>도 계속해서
차원 높여 만들어 나가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발전도 없고, 변화도
없고, 더 좋은 것도 얻지 못합니다.
<교회>도 <부서>도
계속해서 새롭게 해야 됩니다.
새롭게 하지 않으면 옛것이 되고,
옛것에 갇히고, 갈 길이 막히고,
지루하고, 권태가 오고, 한계 상황에
처하여 힘들어집니다.
섭리사 안에서도
<옛 방법, 작년까지의 방법>으로
그대로 하면
- 계속 한계 상황에 처하게 되고,
- 못 하고 끝나게 되고,
- 쪼그리고 앉아서 걸어가는 격이
되어 힘듭니다.
새 시대에는 새로운 자들이 밀려오니
새롭게 해야 됩니다. 그래야 따르는
자들이 만족해하고, 힘을 얻고, 뛰고
날게 됩니다.
(힘 있게 외치며 기본 제스처)
섭리 전체는 모두 새롭게 해야 됩니다.
새롭게 해라.
(오른손 검지를 가슴 위로 든다)
이 말씀은 성자의 말씀으로서
선생이 먼저 행하여 ‘새것’을 얻은
후에, 여러분도 ‘새것’을 얻고
‘형통’하라고 <생명의 날>을 맞아
모두에게 ‘선물’로 줍니다.
(힘 있게 외치기)
이 말씀은
‘형통하는 삶의 길잡이’입니다.
(힘 있게 외치며 기본 제스처)
모두 새롭게 행하여 새것을 얻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힘 있게 외치며 기본 제스처)
<잠시 쉬었다가>
2015_03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5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6>
선생이 일을 하다가
‘빵 하나’를 먹었습니다.
팥빵인데 철판에 구운 것입니다.
먹어 보니 맛이 없어서
성자께 “정~말 맛이 없네요.” 하니,
성자는 “새롭게 해라. 어떻게?
따뜻하게 하면 새롭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철판에 다시 구울 수도 없고,
따뜻하게 데울 수도 없으니, 팥빵을
비닐봉지에 넣고 뜨거운 물에 넣어
두어라. 그러면 뜨거워져서 맛있게
된다.” 하셨습니다. <끝>
<식은 빵>을 뜨겁게 하듯이
<식은 신앙을 뜨겁게 하는 것>이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힘 있게 외치며 한 손 기본 제스처)
<음식>이 식으면 맛이 없지요?
<신앙>도 <사명>도 ‘열’이 식으면
힘들고, 느낌도 없고, 보람도 없고,
사는 맛도 없습니다.
신앙을 할 때나, 사명을 할 때나
뜨끈뜨끈, 펄펄 끓듯 해야
힘들지 않고 쉽습니다.
(뜨끈뜨끈, 펄펄, 표현하면서 전하기)
새롭게 하지 않으면 죽는다.
곧 새롭게 하지 않으면
마음이 죽고, 심령이 죽고,
열정이 죽고, 신앙이 죽습니다.
성자는 ‘식은 음식’을 가지고
자연계시를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세상만사 새롭게 하는 것이 답이다.
꿀맛이다. 진수성찬이다.
(새롭게 하는 것 강조하며, 답, 꿀맛,
진수성찬 맛깔나게 표현하기)
새롭게 해야 ‘밭에 묻힌 보화’를
발견하게 되고,
‘보화가 묻힌 밭의 주인’이 된다.
<과거의 방법>으로는 헛수고하고
‘밭에 묻힌 보화’를 발견하지 못한다.”
하고 못을 박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도 올해
1월부터 새롭게 하고 계십니다.
선생도 성자의 말씀대로 먼저 본을
보여 새롭게 하여 얻을 것을 얻고
나서 자신 있게 외치고 있습니다.
(자신 있게 외치기)
어느 한 지역은 <성전>이 좁아서
예전대로 하면 안 되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성자의 말씀대로 새롭게
했습니다. 결국 <좋은 새 성전>을 얻게
됐습니다. 역시 새롭게 하는 것이
‘답’입니다.
성자가 코치해 주신 대로
‘돛을 단 배’를 가지고 새롭게 행하니,
엄청난 파도가 해결되었습니다.
상대는 ‘노 젓는 배’를 가지고
행하니 파도에 밀려갔습니다. 결국
‘돛을 단 우리’가 차지하게 됐습니다!
(얻은 기쁨으로 외치기)
모두 새롭게 하는 것이
‘배에 돛을 다는 것’입니다.
(힘 있게 외치며, 한 손 기본 제스처)
<말씀 마무리>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성자는 “잠깐만!” 하시며,
“새롭게 해라. 이 말을 잊으면 죽는다.
신앙이 죽는다.
원하는 대로 희망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죽는 격이다.
곤고하고, 걱정하며 염려하게 되고
힘이 드니 그것이 바로 죽는 것이다.”
하셨습니다. (진지하고 또렷하게)
새롭게 하면 빠르게 하게 되고,
성령 충만, 지혜 충만, 지식 충만하여
능히 하게 됩니다.
(힘 있게 외치며, 한 손 기본 제스처)
고로 ‘희망했던 새것’을 얻게 됩니다.
새롭게 하니 걱정·근심·염려가
없어지고, 쉽고 편안하고,
이상세계에서 사는 자가 됩니다.
올해는 모두 새롭게 하여 ‘돛’을 달고
편~히 항해하기 바랍니다.
새롭게 하는 것이 ‘복’입니다.
(기본 제스처)
성자는 사랑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는데, 먼저는 <말>로 주십니다.
(‘말’ 할 때 손으로 입을 가리키며
표현한다)
그 말을 듣고 행하면,
‘복’을 받게 됩니다. (초록색 강조)
<성자의 말씀>은 ‘엄청난 것이
해결되는 절대신의 말씀’입니다.
(파랑 글씨 한 글자, 한 글자 강조하며
한 손 기본 제스처 하면서 전한다)
새롭게 해라.
- 이 한마디는 ‘천만금의 값’입니다.
행하기만 하면, 즉시 밭의 보화를
발견하듯 저마다 ‘문제를 해결’합니다.
희망과 생명의 기쁨이 일어납니다.
(기본 제스처)
사람이 늘 새롭게 해야
<마음과 생각>도 새로워지고
<행실>도 새로워집니다.
그리함으로 ‘새 힘’이 솟아나고
‘새 희망의 불’이 붙어서
‘새것들’을 다시 얻게 됩니다.
고로 잔치하게 됩니다.
그러니 거기서
또 ‘새 힘’을 얻게 되고,
‘새 은혜’를 받게 됩니다.
‘강의도 새롭게, 전도도 새롭게,
관리도 새롭게, 목회도 새롭게,
사명도 새롭게, 지도자도 새롭게,
집회하는 자들도 새롭게’입니다.
새롭게 해야 <변화>도 빨리 되어
<휴거>도 빨리 됩니다.
(힘 있게 외치며, 한 손 기본 제스처)
저마다 <성자의 말씀>을 중심하여
새롭게 행함으로 ‘새것’을 얻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새롭게 하려면
<성령의 역사>가 진정 필요합니다.
그러니 <성령의 역사>를 기대하고
구하여 성령의 힘으로 새롭게 행하여
‘새것’을 얻기를 축원합니다!
2015_03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6
2015년 03월 22일 주일
출처 : 만남과 대화 god21.net
[ 마태복음 22장 37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7절 ]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사랑과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부흥강사 - 지난 한 주간 간단하게
정리해 주고 인사하고 말씀 시작)
◎ 오늘은 두 가지를 말씀해
주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축복과
영광 중의 최고의 축복과 영광은
<휴거>다.
둘째, <생각>을 뺏기지 말아라.
(입니다.)
◎ 오늘 말씀을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를 말씀해 줄 텐데요,
올해 <생명의 날>은
<성자 승천일>이었지요?
<성자 승천> 속에 어떤 의미가 들어
있었는지 먼저 말씀해 주며 <휴거>에
대해서 깨우쳐 주겠습니다.
<말씀 시작>
지난날 성자는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는 <휴거에 대한 말씀>이
주일말씀으로도, 계시 말씀으로도
잘 안 나갈 것이다.”
성자는 특히 2009년부터 섭리사에
<재림과 휴거에 대한 말씀>을 쏟아
내시며 우리가 휴거되도록 엄청난
인봉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2012년에는 아예
<휴거의 성령집회>를 한국의 각
지역별로 돌아가면서 매주 해 주었고,
단상의 말씀을 통해 <휴거>에 대해
엄청나게 말씀해 주었습니다.
말씀마다 ‘휴거, 휴거’ 하며
숨넘어가듯 재촉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다 작년 하반기부터 서서히
“앞으로 <휴거 말씀>이 잘 안 나갈
것이다.” 했는데, 정말로 그러했습니다.
물론 꼭꼭 <휴거>에 대해 말씀했지만,
한창 모든 말씀마다 ‘휴거, 휴거’ 했을
때와는 달랐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전에는 “급하다. 서둘러라.
해가 저물어 간다. 휴거 열차가
떠나가기 직전이다.” 하며 숨넘어가는
소리를 하셨는데, 그 후부터는
조용해졌습니다.
그때는 성자가 이 땅에 계시면서
마지막으로 외치실 때입니다. 성자가
떠나실 때 휴거된 영으로 같이 가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3월 16일 <생명의 날>,
<성자 승천일>에 휴거된 영들이
성자와 함께 천국으로 떠나면서 혼인
잔치를 하니, 그리도 기쁘고 흥분되는
축제의 행사를 한 것입니다.
월명동 <성자 사랑의 집> 현장에 와
있었던 사람들은 누구보다 잘 알
것입니다.
“<성자 승천일>은 기쁜 날이다.
고로 성자께 감사와 기쁨과 영광을
돌리자.” 한 대로 성자께 영광을
돌릴수록 큰 기쁨이 밀려왔습니다.
<성자 승천일>은 슬픈 날이 아니라
휴거된 영들이 성자와 함께 천국에
가서 혼인 잔치를 하는 날이니
그리도 기뻤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도 당일 아침에
“준비됐든, 준비되지 않았든 모두
무대에 올라가서 성자께 영광 돌려라.”
했던 것입니다. <끝>
정말 감사하게도 <성자의 계시>를
보니, 아직 휴거 100선, 200선이라도
특별히 <성자 승천일> 하루는 성자와
함께 황금성에서 잔치할 수 있도록
모두 초청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정말 엄청난 날이었습니다.
성자가 재촉하시고 서두르라고 하시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성자는 우리를 오직
<구원의 길, 휴거의 길, 생명의 길>
로만 인도하시고 <최고로 좋은 길>
로만 인도하십니다.
역시 신부는 신랑의 말을 들어야
만사형통이고, 기쁨과 보람과 만족이
늘 충만합니다.
(* 다시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성자가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계실
때는 마치 ‘차를 타고 가는 격’이라서
누구든지 하기만 하면 쉽게 휴거를
이루지만,
성자가 떠나시면 ‘걸어가는 격’이라서
자기 혼자서 해야 하니 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자께서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도우실 때 어서 그 말씀을
듣고 재촉하고 서둘러서 성자의
도움을 받아 빨리 <휴거>를 이루어,
성자가 떠나실 때 같이 가자는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끝>
그때 그렇게 숨넘어가듯 말씀하셨어도
보통으로 들은 자들은 그때 ‘휴거의
잠’을 깨지 못했습니다.
작년부터 “성자가 곧 떠나신다.”
말씀했기에 올해 수료생들까지는
“성자가 떠나시기 전, 마지막으로
휴거 열차에 올라탔다.” 하며
<휴거에 대한 성자의 긴급한 말씀>을
모두 들었을 것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휴거 역사>는
‘성자의 육이 살아 있을 때’까지
진행되지만, <성자가 떠나시는 날>은
2015_03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7
‘지구 역사상 한 번뿐’이니, 이때
휴거를 이루었으면 성자가 떠나실 때
같이 떠나는 영광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성자가 떠나실 때 <황금성>으로 같이
못 가고, 이제야 깨닫고 서두르는 자는
늦게라도 ‘휴거의 영’이 되는 대로
<황금성>에 가게 됩니다. <끝>
성자가 급한 소리를 하실 때는 꼭
정신 차려야 됩니다. 아무 이유도
없는데 그냥은 절대 급한 소리를 하지
않으십니다.
성자께서 급절하게 말씀하시며
재촉하실 때 보통으로 하고, 하찮은
것들을 끊지 못하고, 휴거에 잠을 자듯
하여 휴거되지 못한 자들은 성자가
떠나실 때 같이 못 갔으니, 이제
뒤늦게라도 행하여 ‘자기 영’을
완성시켜 완성되는 대로 <황금성>에
가서 성자를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휴거되려면,
그만큼 ‘자료’가 필요합니다.
자료는 곧 ‘말씀’입니다.
휴거를 완성시키려면 그만큼
<휴거 말씀>이 나와야 하는데
성자가 떠나셨으니 이제는 가끔만
<휴거 말씀>을 하게 됩니다.
휴거될 자가 아쉽지, 성자는 천국에
가서도 ‘휴거된 영들’과 함께
<혼인 잔치>를 하셔야 되니 아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자가 떠나시기 전에
그리도 말씀해 주실 때, 그때가
<휴거될 최고의 기회>라는 것을
알고 했어야 합니다.
<최고의 기회의 때>에 못 한 자들은
앞으로 1년, 2년, 3년, 5년 동안
계속해야 됩니다.
늦게 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늦게 하는 만큼 정신 바짝 차리고
하면 됩니다. 사람이 정신을 차리는
대로 뭐든지 빨리하게 됩니다.
2013년, 2014년이 <휴거>를
이루기에 최고로 좋은 때였습니다.
올해 수료생들 정말 복이 있습니다.
선생도 지금 <휴거 말씀>을 더 해
주고 싶어도 휴거에 있어서 가장
급절한 때가 지났기에 안 해집니다.
이제는 <전에 해 줬던 휴거 말씀>을
읽고 새기면서 하나하나 행하여
<휴거>를 이뤄야 됩니다. 그때
급절하게 외칠 때, 깊이 듣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신랑이 “보라. 신랑이다. 나와서
맞아라.” 할 때 나와서 맞아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성자는 떠나가실 때 휴거된 영들을
1차로 <천국>에 데리고 가셨습니다.
이들은 신부로서 신랑이 떠날 때 같이
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성자와 같이
못 간 영들은 앞으로 휴거되는 대로
<천국>에 오게 하십니다.
신랑이 먼저 떠나신 후에
신부가 뒤따라가는 격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휴거되는지는 그동안 정말
많이 말씀해 주었습니다. 반드시
<휴거가 진행되는 역사>로 와서
<휴거 말씀>을 듣고 행하며
<성자와 분체>를 알고 믿고 사랑 일체
되어 살아야 휴거된다고 했습니다.
다른 말씀으로는
‘그 차원의 구원’밖에 이루지
못합니다.
이제 그동안 성자께서
그리도 심정 태우며 해 주었던
<이 시대 휴거의 말씀>을 간절히
듣고 행하면 휴거됩니다.
오늘은 <오늘에 해당되는 말씀>을
해야 됩니다. 고로 휴거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오늘은 말씀하지 못합니다.
예전에 다 해 주었습니다. 그때 해
주었던 급절한 말씀으로 <휴거>를
이루기에 충~분합니다.
항상 ‘때’가 있습니다.
고로 항상 ‘때에 해당되는 말씀’을
급히 해야 됩니다.
겨울의 때가 지난 후에 여름이
되었는데 그때 눈 오기를 기다리면
되겠습니까? 겨울의 때가 지났으니,
여름에는 기다려도 눈이 안 옵니다.
눈이 오는 것을 보려면, 다시 겨울이
오기를 기다려야 됩니다. 이와 같이
‘때’가 돼야 <휴거의 말씀>을 해 주니,
그때 다시 듣고 행해야 됩니다.
어서 휴거되기 원하는 자들은
<그동안 해 주었던 휴거의 말씀>을
읽고, <그동안 해 주었던 휴거의
성령의 역사>를 다시 보면서
말씀대로 행하여 휴거를 이루기
바랍니다.
성자가 <휴거>에 대해 직접 말씀하실
때 제대로 듣지 않고 행하지 않은
자들은 글을 보고, 녹화해 놓은 것을
보고 행해야 됩니다.
행한 대로 받는 것입니다.
때가 지나서 늦게 온 자들도
<이미 해 준 말씀과 역사>를 보고서
행하도록 가르치기 바랍니다. 그래서
‘때’를 알고 맞은 자가 최고로 행복한
자입니다. 때를 놓치면, 후에는 꼭
후회하게 됩니다.
앞으로는 후에 후회하지 않도록
결심의 강도와 마음의 강도를 높이고
그동안 못 한 것들을 꼭 행하여 얻기
바랍니다!
<전환>
◎ 이제 오늘 성자가 해 주시는
<희망의 말씀>을 해 주겠습니다.
선생이 새벽기도를 하면서 성자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제 어머니의 영이 휴거되게 해
주시기 위해 성자께서 그동안 지구
덩이만큼 정말 애쓰셨습니다. 그
대가로 더욱더 성자를 잘 모시고
살겠습니다.
제 어머니와 제가 둘이 성자를 들어
손가마를 태우고 평생 감사하고
증거하며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제 어머니가 휴거되도록 성자는
그에 해당되는 것은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휴거되신 것입니다.
저는 겨우 아들로서 할 것을 해 줬을
뿐입니다. 또 하늘의 사명을 받았으니,
당연히 해 줄 것을 해 줬을 뿐입니다.
또 성자께서 어머니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아버지보다 10년 더 살게
해 주신다고 했는데, 딱 그 말씀대로
해 주셨습니다. 성자께서 어머니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셔서 그동안
어머니의 영을 온전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2015_03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8
어머니가 아파서 육이 행하지 못한
것들이 있는데, 대신 <기도>로서 할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어머니의 영이 ‘휴거의 영’이 될 수
있었습니다.
휴거시켜 <황금성의 한 성>을
주셨으니, 정말 감사합니다.
제 어머니를 보면서 사랑하는
섭리인들도 고생돼도 성자를 믿고
신앙을 지킨 보람이 있다고 하며
자신들도 ‘휴거의 희망’을 확신하게
되었고, 힘을 얻고 꼭 휴거되겠다고
다짐하게 됐습니다.
정말 엄청난 역사를 일으켜
주셨습니다. 진실로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했습니다.)
성자는 “네 어머니 사연 이야기 끝도
없다. 내 이야기를 들어 보아라.”
하셨습니다.
내가 늘 말하고 또 말했지만,
<신부로서 휴거된 자들>은
이 지구 세상에서 인간으로 태어난
자들 중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과 영광을 누리는
자들이다.
<이 역사로 와서 신부로 휴거된
영들>은 천국에서도 최고로 좋은
<황금성>에 간다.
그 자리는 영원한 영광의 자리다.
세상의 왕이나 재벌이나 명예자나
권세자가 누리는 영광은
<휴거되어 황금성에 가는 영광>에
비하면 1억 분의 1도 안 된다.
이 세상에서 평생 영광을 받아도
<황금성에서 1분 동안 받는
영광>만큼도 안 된다.
세상은 세상에 속한 영광일 뿐이다.
(* 화면을 보면서, 계속해서
<성자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영상4>
신부로서 휴거되어 가는
<황금성 천국>은 수백 가지의 실제
보석으로 만들어졌다. 고로 그 값은
‘지구 100억만 개’를 팔아도 못
만드는 값이다. 육체 30억 개를
가지고도 ‘영 한 명’을 못 만들듯이,
지구 70억 개를 팔아도 ‘황금성
천국의 값’이 안 된다.
이렇게 귀한 <영원한 세계>에 가는
것이 인간으로서는 최고의 영광을
받는 것이다. 그 외에 하나님이 주시는
더 큰 영광은 없다. 평생 수고해서
<휴거>만 된다면, 그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이다. (하셨습니다.) <끝>
사람이라면 누가 세상 욕심, 명예
욕심, 돈 욕심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자기 인생을 바쳐 삼위를 위해
살고, 역사를 위해 살고, 힘들어도
말씀대로 행하며 휴거를 이루며 산
자들은 “행한 대로 정녕코 갚아
주리라.” 하신 말씀처럼 그 영광이
영원히 끝이 없도록 최고로 받게 해
주십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지구 하나’를 살 수 있습니까?
<황금성 천국>은 ‘지구 70억 개’를
팔아도 못 삽니다.
성자와 분체를 믿고 사랑하며
말씀대로 살았더니,
그 세계를 얻게 되었습니다!
고로 이 세상에서 ‘구원자’가 최고로
고난을 많이 받지만, 최고로 행복하고
영예로운 권세자입니다.
그다음 최고로 행복하고 영예로운
권세자가 있으니, 환난과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주를 믿고 따르고
그 말씀대로 살면서 그를 통해
성삼위를 사랑하며 신부로서 살면서
휴거를 완성한 자들입니다. (아멘!)
<잠시 쉬었다가>
◎ 성자는 또 말씀하셨습니다.
(* 다시 화면을 보면서 <성자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영상5>
전능하신 삼위일체는 휴거된 영들에게
‘천국의 기본 구조’는 다 주신다.
그러나 기본 터전 위에 ‘황금성의 자기
집과 정원’을 더 지으려면 자기가
그만큼 행해야 된다.
자기가 행하는 대로 ‘황금성의 자기
집과 정원’을 계속해서 더 지어 가게
된다. 이를 정녕코 알아라.
너희 육의 행위가 <휴거>를 좌우하고,
너희 육의 행위가 <황금성의 너희
집과 정원의 구조>를 좌우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끝>
<이 세상에서 우리 육신을 가지고
살아갈 때>가 영혼의 운명을 결정짓는
정말 중요한 때입니다.
이때 육으로 인한 유혹이 오고,
환난과 어려움이 있고, 주의 말씀을 다
지켜 행하는 것이 쉽지 않고 힘들어도
<이 귀한 육신>을 가지고서 정신 바짝
차리고 성자와 주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최고의 삶입니다.
(* 화면을 보면서 <성자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영상6>
<이 세상>은 ‘천국 가기 위한 삶의
터전’으로 창조했다.
<이 세상>은 ‘어머니의 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어머니의 태>는 생명이 잉태되어
지구 세상에 나와 살기 위해 성장하고
인체를 형성시키는 역할을 한다.
<모태>에서 ‘생명’을 만들지 못하고
유산되면, 생명은 그대로 죽어서 지구
세상을 구경도 못 해 보고 끝나듯,
<지구라는 태>에서 ‘자기 영’을 만들지
못하고 최고의 영광인 ‘휴거’를 이루지
못하면, 영이 사망으로 유산되어 ‘죽은
영’으로 끝나고 만다.
<구원과 휴거>는
‘황금성 천국에 가는 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 준다. <끝>
이것을 모르고 사는 자들은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만 천국같이 누리다가
끝난다. 그 <영>은 영원히 ‘죽은 영’이
되어서 영원히 ‘사망’에 갇혀 살게
된다. 아는 것이 그리도 크다.
세상만사 모든 것들이 ‘아는 자’만
알고 행하여 얻고, ‘모르는 자’는
모르고 살다가 끝나지 않느냐.
하나라도 더 배우고 아는 자가
자기 육신의 운명, 영혼의 운명을
좋게 결정짓는다.
모두 <시대 복음>을 전해라.
그리함으로 <생명을 구원>하자.
2015_03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9
<생명 구원>은 ‘자신의 휴거’에 미치는
영향이 크며, ‘나 성자와 내 분체의 몸
역할을 하는 자’가 된다.
올해는 <선교하는 해>다.
자신만 구원받고 휴거되지 말고,
어서 전도하자.
2015년이 벌써 3개월이나 지났다.
나 성자를 사랑하는 힘으로 전도하자.
기뻐서 하자.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하자.
올해가 시작되어 3개월 동안 전도한
자는 나 성자 옆에서 나와 사랑하며
나와 함께 먹고 마시는 자다. 아직
전도하지 못한 자는 내 등 뒤에 서
있는 자다.
행하는 자는 ‘행한 것’을 가지고
나 성자와 사연을 나누고 대화하며,
대화를 나눈 모든 것이 천국에
기록되어 있다.
고로 그것이 또 사연이 되어 계속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3개월 동안
정말 전도하고자 했다면, 누구든지 한
명은 꼭 전도했을 것이다. 모두 ‘자기
공적’으로 살아간다. <천국>도 ‘자기
공적대로 받고 누리는 삶’이다.
기도하여 나 성자와 교통하며
나를 먼저 사랑하는 ‘산 올라타기
삶’을 살자. 고로 그 힘으로 생명들을
전도하자.
너희 모두에게 ‘나를 먼저 사랑하는
힘’과 ‘생명들을 이 시대로 이끌어
오는 능력’이 충만하기를 축원한다.
<전환>
◎ 지금까지 <첫 번째 주제>인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축복과 영광
중의 최고의 축복과 영광은
<휴거>다.’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이제 <두 번째 주제>인
‘생각을 뺏기지 말아라.’에 대해서
말씀해 주겠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똑같은 시간>에 시장에 가고,
등산을 가고, 해외에 나가는 것을
동시에 하지 못합니다. 맞지요? 이
말을 완전히 깨달아야 다음 말씀을
깨닫게 됩니다.
‘이와 같이 이러하다.’ 하고 말씀하려
합니다.
(* <성자의 말씀>을 들어 보겠습니다.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7>
<같은 시간>에 두 가지, 세 가지 일을
못 하니, 꼭 ‘한 가지 일’을 골라서
해야 된다. <하려고 하는 일 중에서
최고로 좋은 것>을 골라서 그것을
최우선으로 해야 된다. 그래야 ‘신앙의
부도’가 나지 않고, 승리하고
성공한다.
(하고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끝>
그 시간에 ‘최우선으로 할 일, 최고로
좋은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분별하고
알려면, 꼭 <기도>해야 됩니다. 그
시간에 무엇을 해야 되는지 분별이 잘
안 되니, 기도하여 성자께 감동을 받고
느끼게 해 달라고 해야 됩니다. 이것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성공하는 최고의
지혜>입니다.
<같은 시간>에 ‘급하게 할 일’이
두세 가지가 있으면 일단 기도하고
분별하여 ‘최고로 할 일’을 골라서
먼저 하고, 다른 한두 가지는
희생시켜야 됩니다.
가령, <1년에 딱 한 번 시장에서 각종
물건을 파는 날>인데 같은 날, 같은
시간에 <1년에 딱 한 번뿐인 섭리
행사>가 있다고 합시다.
이런 때는 기도하여 성자께 물어보고
‘자기 육과 영에게 연관된 일’
‘하나님과 성자와 연관된 일’을
우선으로 해야 됩니다.
자기가 꼭 사야 할 물건은 교회에 안
다니는 친구나, 가족이나, 옆의 사람을
시켜서 사 오게 하면 됩니다. 항상
‘같은 시간’을 두고 ‘여러 가지 할
일’이 있으면, 꼭 <영적인 일> 먼저
해야 됩니다.
만일 그 일이 <육적인 일>인데
누가 죽었거나,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라면 그것은 ‘생명에 관한
일’이니 <육적인 일> 먼저 하되,
꼭 성자를 중심해서 해야 됩니다.
항상 어느 때든지
‘성자의 것, 영적인 것’을 우선으로
해야 됩니다. 그래야 육적인 것도,
영적인 것도 양쪽 다 손해가 없습니다.
<먼저 할 것을 먼저 하는 자>가
‘영적인 자’입니다. 생활하다 보면,
많은 일들 중에서 ‘먼저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핵적인 일’이니,
그것 먼저 해야 됩니다. <핵>을 뺏기면
안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사람이 하고 싶어도 ‘힘’이 없으면,
의욕이 없어서 못 합니다. 육신의 최고
에너지는 ‘육의 힘’입니다. 그 힘은
‘정신’에서 나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8>
<정신적인 힘의 핵심>은 ‘생각’입니다.
사람은 <생각>이 없으면, 약하고 힘이
없습니다. <생각>이 잘못되어 있으면,
약하고 힘이 없습니다. <생각>에서
힘이 ‘강하게’ 오기도 하고 ‘약하게’
오기도 합니다. <생각>이라는 힘을
다른 데 쓰면 힘이 소모되어 자기 할
일을 제대로 못 합니다.
고로 성자는
“<생각>을 다른 데로 뺏기지 말아라.”
하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끝>
잡다한 것이나 육적인 것에
<생각의 힘>을 쓰고 뺏기면,
‘힘’이 없고 ‘의욕’이 없어서 자기가
최고로 이뤄야 할 <휴거>를 중심하여
<각종 일들>을 그때그때 행하지
못합니다.
고로 ‘그때 행하여 얻을 것’을 얻지
못하고, 사탄에게 당하고 끝나게
됩니다. 그러니 큰 손해입니다.
<육신의 힘>을 이성이나 각종 육적인
일들에 소모시키고 힘이 없어서
‘영적인 일’을 못 하면 그때 얻을 것을
얻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생각의 힘>을 이성, 세상 오락, TV,
스마트폰, 컴퓨터, 자기가 좋아하고
중심하는 것에 소모시키면 그
시간에는 ‘육적’으로 <생각의 힘>을
뺏기니 <축복의 기회>를 줘도 ‘힘’이
없어서 행하지 못하여 얻지 못하고
끝나게 됩니다. (잘 알겠지요?)
◎ 이 말씀은 <핵심>만 말씀하고
여기서 끝내니, 잊지 말고 꼭 기억하기
바랍니다. <잠시 쉬었다가>
◎ 이제 <생각에 대한 근본의 말씀>
하나만 더 말씀하고 마치겠습니다.
2015_03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20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생각>을 뺏기지 말아라.”
하셨습니다.
“왜요?” 하고 물으니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나 성자는 항상 <생각>을 통해서
말씀을 주고, 축복을 주고, 깨닫고
결심하게 하는데 <생각>을 빼앗겨
<생각>이 없으면 몰라서 못 받는다.
다른 것에 <생각>을 빼앗겨 넋이 나간
사람을 보아라. 그에게 무슨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들리겠느냐.” 하셨습니다.
(* 화면을 보면서, 계속해서
<성자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영상9>
<생각>은 ‘몸을 행하게 하는 몸의
주인’이다. 나 성자가 ‘밭에 감춰진
보화’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려고
대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부르고
있는데, <주인인 생각>이 없으니 말해
주지 못하고 그냥 돌아오게 된다. <끝>
나 성자는 <생각>을 통해 축복도 주고,
예고도 해 주고, 앞날도 이야기해
주고, 휴거의 답도 주고, 사랑도 해
주고, 경고도 해 주는데 <생각>을 뺏겨
<생각>이 다른 것에 쏠려 있으면
주인 없는 집 같아서 심정 상해서
그냥 돌아온다.
고로 <생각>을 뺏기지 말아라.
<생각>을 뺏긴 것은
‘하나의 죽음’이니라. <생각>을 뺏기면,
‘육체덩이만 있는 빈집’이니라.
나 성자가 도적같이 너에게 가서
그 순간 <너의 생각>을 작동시켜 줄
것을 주려 하는데, <너의 생각>을
‘다른 데’ 뺏긴 상태이니 내가 줘도
길바닥에 놓고 가는 격이다. 그러면
사탄이 가져가니, 그때는 안 주고 그냥
가지고 돌아간다. (하셨습니다.)
생각을 뺏기지 말아라.
- 참으로 귀한 말씀입니다.
고로 기도할 때, 영계에 갈 때, 성자를
만날 때는 <생각>을 집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성자는 말씀하십니다.
“이제부터 <생각>을 다른 데로 뺏기지
말고, 나 성자에게 집중해라.
앞으로 <생각>을 다른 데 안 뺏기고
내게 집중하면 내가 너희 각자에게
주려고 하는 것을 주겠다.
저마다 나 성자와 내 육을 얼마나
귀히 대하고 사랑하는지 보고,
너희 각자에게 주려고 하는 것을
주겠다.
내가 너희에게 자주 가는데,
너희는 이성과 각종 것들에 <생각>을
뺏겨 딴생각을 하고 살아간다.
<신부>가 되려면, 신랑 되는
<성자와 분체>를 늘 생각해라.
그래야 <생각>을 다른 것에
안 뺏긴다.” (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그리고 성자는
‘뺏기지 말아야 할 것 한 가지’를
더 말씀해 주셨습니다.
(* 화면을 보면서 <성자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영상10>
“<시간>을 뺏기지 말아라.
인간은 <시간>에 매여서 행하며
살아가는데, <시간>이 없으면, 나
성자가 무엇을 줘도 못 받는다.
고로 <시간>을 TV, 각종 오락, 세상
헛된 것, 이성에 절대 뺏기지 말아라.”
하셨습니다. <끝>
온종일 <시간>을 아껴 쓰기 바랍니다.
잡다한 것을 하는 데 시간만 안
뺏겨도 <시간>은 충분합니다.
그 좋은 시간을, 한 번 가면 다시는
안 오는 귀한 시간을 <성자>를 위해서
쓰고, <황금 같은 일>을 위해서 쓰고,
<휴거>를 위해서 쓰기 바랍니다.
이미 휴거된 자들도 <휴거의 차원>을
계속 높여야 됩니다.
<300선 휴거>는
‘차에 올라탄 격’이라고 했지요?
차에 올라탔으면, 그때부터는 달려야
됩니다. 이제 차를 타고 달리면서
400선, 500선, 600선으로 올라가야
됩니다. 그러면 <천국의 집>도 더욱
갖춰지게 되고, <영>도 더욱 찬란히
빛나게 됩니다.
아직 육신이 살아 있으니
<휴거의 차원>을 높이, 더 높이
올리려면 얼마든지 끝없이 할 수
있습니다. 고로 끊임없이, 꾸준히,
끝까지 하라고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또 하나 ‘절대 뺏기지 말아야 할 것’이
있지요? (뭘까요?)
<사랑>을 뺏기지 말아야 됩니다.
<사랑의 대상>을 뺏기지 말아야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1>
영원히 사랑할 대상인 ‘성자와 분체’를
두고 다른 것에 <사랑>을 뺏기면,
혼자가 되어 육도 혼도 영도 슬피
울게 됩니다. 결국 자기 홀로
자위행위적의 삶을 살면서 혼자
즐기다가 끝나게 되고, 쓸쓸함과
외로움으로 살게 됩니다.
<자기가 사랑할 성자와 분체>를
뺏기니, <세상>을 쳐다보며 <세상>을
‘자기 사랑의 대상’으로 삼고 살아야
됩니다. <사랑하는 대상>을 뺏기고
<자기 할 일의 대상>을 뺏기면, 자기
홀로 남습니다. 자기를 중심하면
뺏깁니다. 이 말씀을 꼭 명심하기
바랍니다. <끝>
<말씀 마무리>
◎ 오늘은 ‘두 가지’를 말씀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축복과
영광 중의 최고의 축복과 영광은
<휴거>다.
둘째, <생각>을 뺏기지 말아라.
<시간>을 뺏기지 말아라.
<사랑>을 뺏기지 말아라. (입니다.)
◎ 말씀을 주신 성자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성자의 사랑과 평강을
빕니다.
◎ 이 말씀이 ‘성자와 주’가 되어
자기를 지키고, 이 말씀을 잊지 않고
삶 속에서 행함으로 말씀의 주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하고, 말씀 마치겠습니다.
2015_03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21
2015년 03월 29일 주일
출처 : 만남과 대화 god21.net
[ 사도행전 9장 1-22절 ]
1)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8)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10)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12)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 민수기 22장 13-33절 ]
13)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발락의
귀족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의 땅으로
돌아가라 여호와께서 내가 너희와 함께
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모압 귀족들이 일어나 발락에게로 가서
전하되 발람이 우리와 함께 오기를
거절하더이다 15)발락이 다시 그들보다 더
높은 고관들을 더 많이 보내매 16)그들이
발람에게로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십볼의 아들 발락의 말씀에 청하건대
아무것에도 거리끼지 말고 내게로 오라
17)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하게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하시더이다 18)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19)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 20)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21)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고관들과
함께 가니 22)그가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시므로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서니라 발람은 자기
나귀를 탔고 그의 두 종은 그와 함께
있더니 23)나귀가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들어간지라 발람이 나귀를
길로 돌이키려고 채찍질하니 24)여호와의
사자는 포도원 사이 좁은 길에 섰고
좌우에는 담이 있더라 25)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몸을 담에 대고 발람의 발을
그 담에 짓누르매 발람이 다시 채찍질하니
26)여호와의 사자가 더 나아가서 좌우로
피할 데 없는 좁은 곳에 선지라 27)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발람 밑에 엎드리니
발람이 노하여 자기 지팡이로 나귀를
때리는지라 28)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 29)발람이 나귀에게 말하되 네가
나를 거역하기 때문이니 내 손에 칼이
있었더면 곧 너를 죽였으리라 30)나귀가
발람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이 오늘까지
당신의 일생 동안 탄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 당신에게 이같이 하는 버릇이
있었더냐 그가 말하되 없었느니라 31)그
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들고 길에
선 것을 그가 보고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니 32)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 보라 내 앞에서 네 길이
사악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더니
33)나귀가 나를 보고 이같이 세 번을
돌이켜 내 앞에서 피하였느니라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지난주에 <성자 승천>에 대한
말씀을 듣고, <성자 승천일>에 행사
현장에 참여하지 못한 자들 중에서
자기는 휴거되지 못해서 그랬다며
낙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육>으로 휴거되어 천국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휴거되어
천국에 오릅니다. 알지요?
그러니 휴거되지 못해서 그날 현장에
참석하지 못했다며 낙심하거나
자기중심으로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또 성자 떠나실 때 같이 못 갔다고
낙심하지 말고, 어서 부지런히
<지난 휴거의 말씀>을 듣고 행하며
휴거되어 성자를 만나러 가기
바랍니다.
◎ 휴거된 자들도 계속해서
400선, 500선을 향해 가기 바랍니다.
◎ 이제는 성삼위와 보낸 자를
‘먼저 사랑’하며 ‘그동안 못 한 것들’을
부지런히 찾아서 해야 될 때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그러면 오늘 말씀을 전해
주겠습니다. 말씀을 시작하기 전에,
<말씀>에 대해서 잠깐 전초하겠습니다.
2015_03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22
◎ 원래는 선생이 성자께 앞으로는
설교를 짧게 줄이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성자는 <말씀의 비밀>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 <말씀>은 ‘칼’과 같다.
칼로 고기를 썰어서 음식을 만들어야
되는데, 아무리 ‘예리한 칼’이라도
한두 번만 썬다고 고기가 썰리겠느냐.
예리한 칼로 썰어도 여러 번 썰어야
고기가 썰려서 음식을 만들 수 있다.
이와 같이 아무리 <생명의
말씀>이라도 ‘합당한 시간’만큼은
들여서 말씀해 줘야 충분히
이해시키고 깨닫게 해 준다.
(하셨습니다.)
◎ 그리고 또 <말씀>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 <말씀>은 ‘돌을 깨는 석공의
쇠망치’와 같다.
<설교 시간>은 ‘말씀의 망치’로
너희 뇌와 마음의 그릇된 것들과
궁금한 것들을 깨부수어 궁금증과
의문을 풀어 주는 시간이다. 그런데
<말씀의 망치>로 한두 번만 때린다고
그것이 다 깨져 없어지겠느냐.
어떤 자의 것은 시간이 모자라서 다
못 깨 주어 머리에다 모순을 그냥
달고 가게 한다.
★ 또한 <설교 시간>은 조각가가
조각을 해 나가듯 나 성자와 네가
설교자의 육을 쓰고 ‘각 사람들의
마음을 조각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말씀 시간>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
만들다가 도중에 끝나면, 얼마나
찜찜하겠느냐.
★ <말씀>을 들으면서 너희 자신이
떼어 낼 것은 떼어 내고, 쫓아낼 것은
쫓아내어 너희 ‘육과 혼과 영의 형상을
예쁘고 멋있게 만드는 시간’이 곧
<설교 시간>이다. 그러니 <설교
시간>이 얼마나 좋은 시간이냐.
오히려 말씀을 더 달라고 하여라.
(하셨습니다.)
◎ 그래서 오늘도 <말씀>을 충~분~히
해 줄 것입니다. 여러분도 성자의
마음과 동일합니까?
그럼, 오늘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 삼위일체가 인간에게 역사하며
행하실 때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행하십니다. 오늘은 이 두 가지 비밀에
대해 말씀해 주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인간이
유익하도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우시고 축복하십니다. 그리고 인간을
통해 삼위의 뜻을 실천하시는데, 수십
가지, 수백 가지, 수천 가지 방법으로
행하십니다.
오늘 말씀해 주는 ‘두 가지 핵심’만
알면, 삼위가 행하시는 수천 가지의
방법도 알고 이와 같이 이러하다고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이 두 가지’로 행하신다는 것을
배우고 알아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행하심을 오해하지 않고,
불만할 상황에도 감사하며, 서운해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고 감탄하며
삼위를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말씀을 잘 듣고, 삼위일체를 제대로
알고 대하며 살아야 삼위도 우리를
더욱 보호해 주시고, 우리의 꿈을 더욱
실현시켜 주시고,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더욱 주십니다. 꼭! 오늘
말씀을 잘 듣고 잘 배우기 바랍니다.
◎ 오늘 말씀을 시작하기 전에
<말씀>에 대해 조금만 더 전초하고
말씀 시작할까요?
<똑같은 말씀>을 <똑같은 귀>로
듣습니다.
그런데 누구는 더 감동받고 실천해서
엄청난 것을 얻지만, 누구는 덜
감동받고 실천하지 못해서 얻지
못하고, 알지 못하여 하늘의 도움을 못
받아 다치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고생하기도 합니다.
<말씀을 실천하여 얻는 자>와
<말씀을 실천하지 못하여 못 얻는
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 그
차이는 마치 ‘부자’와 ‘거지’ 같습니다.
어디에서 이런 차이가 나는 문제가
발생하는지 한마디로 말해 주겠습니다.
말씀을 귀히 여기느냐, 보통으로
여기느냐 그 ‘생각의 차이’에서
발생합니다.
<생각>이 ‘칼’이며 ‘무기’입니다.
<생각의 강도>에 따라서 원자폭탄이
되고, 전투기가 되고, 조약돌이 되고,
바위가 됩니다. <말씀>을 ‘금’같이
귀히 여겨야 됩니다. ‘말씀을 귀히 안
듣고 안 지키면 오늘 죽는다.’
생각하고 들으면, 목숨같이 귀히 듣고
지키게 됩니다. 말씀을 보통으로 듣는
자들에게는 정말 전해 주고 싶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말씀을 귀하게, 중하게 듣는
자들만 따로 빼다가 전해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말씀을 못 들은
자들은 계속해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선생을 모르고 오해하고,
등을 돌리기도 하고, 또 얻을 것을 못
얻게 됩니다.
그래서 설교 때, 마치 진수성찬을
모두에게 먹이듯 성자의 말씀을
모두에게 전해 주니 모두 말씀을 귀히
중히 여기고 듣고 행하기 바랍니다.
말씀을 귀히 듣고 매일 생각해야
그 말씀이 ‘자기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삼위가
자기에게, 형제에게, 섭리사에 어떻게
행하시는지 알고 증거하며 가르치고
전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사탄을
물리치고, 무지 속에 상극하지 않게
됩니다.
삼위의 행하심을 모르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자기를
위해 무엇을 해 줘도 무지 속에
상극하여 서운해하고, 오해하고,
등을 돌리게 됩니다.
◎ 이제 <말씀에 대한 전초>가
끝났습니다. 모두 말씀을 귀하게
받아들이고 생각할 준비가 됐습니까?
(아멘.) 정말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어떤 목적을 두고 사람을 통해 행하실
때는 크게 나누어 ‘두 가지 방법’으로
행하십니다.
<첫 번째 방법>은
감동을 주시어 순리적으로 행하십니다.
<두 번째 방법>은
우리가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우리가 하는 일을 막고 틀어서
못 하게 하여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뜻을 이루시고, 그 사람이
원하는 뜻을 더 좋게 이루게 해
주십니다.
2015_03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23
이 두 가지 방법은 ‘성삼위가 행하시는
방법의 핵심 답’입니다. 이 두 가지를
꼭 암기해야 됩니다.
간단히 말하면, ‘감동시키기’와
‘뜻이 아닌 것은 틀어 버리기’입니다.
다 같이 크게 따라 해 볼까요?
<영상1> 첫째, 감동시키기.
둘째, 뜻이 아닌 것은 틀어 버리기.
선생도 여러분들을 도울 때는 먼저
여러분이 ‘하나님의 올바른 뜻’을
깨닫도록 편지나 말씀으로 감동시켜서
행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 말을 안 들으면, 그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뜻’이 아니니 그 일을
틀거나 막으면서 돕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도 그리하시니,
선생도 그 방법을 따라서 행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모두 겪어 봤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 때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먼저
감동을 주시며 못 하게 하셨습니다.
마음에 감동을 주기도 하시고, 사람을
통해서 못 하게 하며 감동을 주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감동을
무시하거나, 하나님이 사명자로 쓰고
막은 사람만 은근히 원망하며 자기를
막았다며 욕하고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선생까지 오해하며
“왜 막고, 틀고, 허락하지 않았지?”
하며 서운해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계속 섭섭해하다가
섭리사를 나가기도 하고, 혹은
괴로움으로 시험에 들어서 신앙의
힘이 빠져 주저앉고 낙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성자는
<“잠깐만!”에 속하는 비밀의 말씀>을
전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죽을 곳>인데 모르고 가니
감동을 주어 못 가게 하고,
<고생 길, 고통 길>인데 모르고 가니
감동을 주어 못 가게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인데 육성이
강해서 좋아하며 계속하니
감동을 주어 못 하게 막습니다.
또한 전환할 때가 되어서 <다른 일>을
하도록 틀어 주는데, 그것을 모르고
서운하게 생각하며 힘들어하기에
감동을 주어 깨닫게 합니다.
또한 그 일을 하기에는 너무
부족하거나 안 맞으니 <다른 일>을
하도록 상황을 틀어 주며 교정해
주는데 서운해하며 이해를 못 하니,
이때도 감동을 주어 깨닫게 합니다.
그러나 감동을 줘도 계속 하던 대로
하니, <두 번째 방법>으로 ‘천사나
사람’을 통해서 그 하는 일을 틀고
막아서 안 되게 합니다.
그러면 “왜 막냐? 왜 트냐?” 하면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원망하며
서운하게 생각하고, 선생에게 불만을
품고, 하늘 심부름을 하러 간 사람을
은근히 미워하고 싫어하고 욕하며
“쥐뿔도 모르면서 내 인생길 막네.”
합니다. 이런 자들이 정말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 무슨 일을 할 때
계속해야 되는지 성자께 물어보면,
성자는 앞날을 보시고 그 일이 안
맞으니 못 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 말을 전해 주면, 은근히
서운하게 생각하고, 선생을 오해하고,
마음을 돌리고, 등을 돌리고, 뒷말을
합니다. 그러니 ‘살 길’을 전해 주기도
부담되어 어느 때는 편지도 안 하고
기도만 해 줍니다. 말로 하면 잠깐이면
되는데, 기도로 하니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선생은 더 좋게 하기 위해 말해
주는데 말을 해 줘도 혹시나 오해할까
봐 겨우 몇 마디 이야기해 놓고
반응을 봅니다. 성자께 ‘어떻게
하라.’는 답을 받고도 그 말을 듣고
오해하고 서운해할까 봐 전해 주기가
힘드니, 구원하는 사명자라도 그런
사람을 대하는 것이 참 부담됩니다.
그 사람이 하는 일을 새롭게 다른
방법으로 해야 하니 성자의 말씀대로
‘방향’을 틀어 주면, 자기는 자기가
하던 대로 하는 게 좋은데 왜 틀고
막냐고 따집니다.
왜 그렇게 하는지는
‘앞날의 비밀’이니, 선생도 모릅니다.
오직 하나님, 성령님, 성자만
아십니다.
선생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성자의 방향과 다르면, 성자는
선생에게 감동을 주시며 그 일을 못
하게 하십니다. 그래도 선생이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성자는 바로
‘방향’을 틀고 ‘상황’을 틀어서
그 일을 막고 못 하게 하십니다.
그때는 토를 달지 않고, 성자께
순종합니다. 성자가 좋게 해 주시지,
안 되게 해 주시겠습니까?
사람이 육성이 강하면, 하지 말라는
것과 뜻이 아닌 것을 자꾸 하게
됩니다. 그러다 다치고, 사고도
당하고, 죽기도 합니다. 그러니 성자는
다치지 않게, 죽지 않게 미리 틀고
막으십니다.
그때 왜 막았냐고 하면,
하나님도 성자도 답을 안 주십니다.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가면 사고 난다. 사기 당한다.
다친다. 네 수고가 헛되게 된다.
차가 뒹굴어서 다 죽는다. 비행기가
추락한다. 건물이 무너진다.”
다 알아도 <비밀>이라서 안 알려
주십니다. 그러나 절대 감동을 주시며
못 가게, 못 하게 하십니다. 또한
방향과 상황을 틀어서 못 가게, 못
하게 하십니다. 내용을 알고 안 하는
것은 누가 못 하겠습니까?
사람이 항상 다치고, 사고가 난 후에야
“내가 왜 그랬나?” 하며 후회합니다.
감동을 주고 상황을 틀고 막는 것이
강력하게 내용을 말해 주는 것과
똑같습니다. 또한 <앞날>은
‘하늘의 비밀’이라서 하늘이 보낸
사명자 외에는 누구에게도 다 말해
주지 않습니다.
고로 내용을 몰라도 감동을 주거나
상황을 틀고 막으면, 믿음의 조건을
세우고 하늘이 보낸 사명자를 믿고 그
말을 듣고 행해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첫째, 감동시키기.
둘째, 틀고 막기.
이것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잠깐만!” 하시며 우리를 붙잡고
도우시고 역사하시는 방법입니다.
2015_03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24
어떤 자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선생’을 통해 막았는데 말을
안 듣고 가다가 <육신>이 해를 받기도
했고, <영혼>이 죽어 사망으로 가기도
했고, 어떤 자는 <재산 수십억>을 사기
당해서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섭리역사 37년 동안 이런 일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특히 삼위는 우리가 <이성의 죄>를
안 짓도록 감동을 주시고, 상황을 틀고
막으며 역사하십니다. <이성의 죄>를
지으면 ‘창조 목적’이 깨지기
때문입니다.
설교할 때, 평소에 생활할 때
“그것은 하지 마라. 그곳은 가지
마라.” 하며 감동을 주십니다.
사고 나지 않고, 다치지 않고,
죽지 않게 미리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 <감동>이 얼마나 귀한지,
진정 깨닫기 바랍니다!
중요 부분
<지혜롭고 큰 사람>은 자기가 어떤
곳을 가려고 했는데 하늘이 감동을
주고 틀고 막으면, ‘아! 무슨 일이
있구나. 무슨 사연이 있구나.’ 하며
순종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며 안
갑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가려던 그곳>에
사고가 나서 그곳에 간 사람들이 거의
다 죽는 일이 발생한 것을 알고,
더욱더 성삼위께 감사하며 영광
돌립니다.
그러나 <무지한 사람>은 하늘이 다
알고 못 가게, 못 하게 감동을 주고
틀고 막으면, 자기 육성으로 불평하고
불만하며 가 버리고 행해 버립니다.
그러다가 해를 당하고는
“하나님은 왜 안 도와주셨지?”
합니다. 자기가 가 놓고, 해 놓고는
하나님을 향해 서운하게 생각합니다.
세상에도, 섭리사에도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자기 인생의 원망의
대상’으로 삼는 자들이 참 많습니다.
이들은 정신이 정상이 아닙니다.
자기의 육, 혼, 영을 도우시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자기
스트레스를 푸는 대상으로 삼고 자기
맘대로 생각하고 말하는 자들이 참
많습니다.
기저귀를 차고 사는 철부지
어린아이입니다. 나이를 먹었는데
‘삶의 기저귀’를 차고 다니면,
모두 비웃으며 정상인으로 안 봅니다.
어서 정신의 수준, 생각의 수준,
신앙의 수준을 높여서 인격 있는
신부로서 살기를 진정 축복합니다.
항상 ‘합당하지 않은 길’을 가거나
‘합당하지 않은 일’을 하면,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그 분체도 직접, 혹은 천사나 사람을
통해 감동을 줘서 못 하게 합니다.
그래도 하면, 상황을 틀어서 안 되게
합니다.
이 두 가지를 알았으니 매일 잊지
말고 기도할 때도 그리하겠다고
고백하고, 꼭 자기에게 그렇게 역사해
달라고 구해야 됩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로 역사해 주시면,
모든 것을 하늘 앞에 맡기고 삼위와
분체를 오해하지 않고 이해하며
하나님의 뜻도 이루고, 자기 뜻도
더 좋게 이뤄야 됩니다.
어느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것’을
잘되게 해 주기 위해서 ‘상대의 것’을
틀어 안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만물 계시>로
<감동>으로 강하게 역사하시어
그것을 행하여 얻게 하십니다.
그러나 자기가 간절히 원해도
하나님은 ‘때’에 맞춰서 더 좋게 해
주시려고 처음에는 잘 안 되게 상황을
틀기도 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나는 지금이 좋은데,
왜 지금 안 해 주시지? 내게 해
주시면 해가 될 것이 없는데 왜
상황을 틀고 막으시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해’를 피하고
‘더 좋게’ 해 주시려고 <때>에 맞춰서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니까 자기가
해를 피하고 더 좋은 것을 얻고 겪은
뒤에야 깨닫고, 하나님을 찾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제야 하나님을
찾고 좋아하고 감사하니까 삼위는
영광을 안 받을 수 없으니 찜찜하게
영광을 받으신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우리를
사랑해서 더 챙기십니다.
또한 ‘하늘의 뜻’에 맞춰서
‘더 잘해 주시려고’ 자기중심으로 가는
길과 자기중심으로 하는 일을 어련히
알아서 틀고 막으신다는 것을 미리
알고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이런 자는
진짜 믿음을 지키고 믿음의 조건을
세운 자입니다.
삼위 앞에는 항상
‘감사, 영광, 기쁨, 사랑’입니다.
(믿습니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섬기고 사랑하는 자들이 때를
골라 가면서, 상황을 골라 가면서
자기를 중심하여 자기 좋은 대로
영광 돌리면 안 됩니다.
삼위가 자기를 어떻게 대하시든지,
언제나 ‘감사, 감격’하고 ‘사랑과
영광’을 돌려야 됩니다.
마음이 좁고, 너그럽지 못하고, 착하지
못하고, 옹졸하여 삐쭉빼쭉하면서 자기
기분에 따라서 전능자와 주를 대하면
안 됩니다.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환난 때나, 어려움을 당할 때나,
기쁠 때나 항상 웃으면서 사랑으로
전능자와 주를 대해야 됩니다. 성자와
주가 하는 것을 끝까지 봐야 됩니다.
그래야 최고 신앙의 신부가 되고,
삼위일체의 사랑의 대상이 되고,
휴거되는 자로서의 인격을 갖춘 자가
됩니다. 결국을 보면 전능자도 주도
축복해 주기 위해서, 좋아서, 사랑해서
더 좋게 해 주기 위함입니다.
<똑같은 말씀>을 들어도
‘자기 정신, 생각, 행위’에 따라서
신부가 되기도 하고, 못 되기도
합니다. <신부 시대>라서 여러분은
‘성자와 분체의 신부’입니다.
고로 성자도 분체도 <신약시대>,
곧 <자녀 시대, 형제 시대> 때보다
더 자세히 가르쳐 주어 행하게 합니다.
<전환>
◎ 이제부터 삼위가 <감동>을 주실 때
왜 그 말을 들어야 되는지, 실제
사례를 말해 주겠습니다.
◎ 삼위가 <감동>을 주시며 행하신
일은 본인이 겪었으니 본인이 직접
증거해야 실감 나고, 여러분도 그와
같은 사연이 있음을 깨닫고 삼위께
영광 돌리게 됩니다.
2015_03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25
◎ 섭리사에서 자기가 각종으로 겪은
일들을 선생에게 편지로 보내 줍니다.
그러나 선생이 직접 겪은 일이
아니라서 그 심정 표현을 본인만큼
실감 나게 해 주지 못합니다.
그러니 삼위가 감동을 주시고 상황을
틀어 주시어 꼭 죽을 것인데 살아난
사람들이 있으면, CTN에서 취합하여
수요일 밤에 잠깐씩만 증거하게 해
주겠습니다.
그러니 하루에 세 명씩 돌아가면서
간증하여 보여 주고, 격월간지
<섭리역사>에도 기사를 실어서
간증하기 바랍니다.
◎ 지난번 주일설교 때
<한국의 삼풍백화점>이 무너져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때, 삼위가
감동을 주시어 살아난 자의 이야기를
들었지요?
그 말씀을 듣고 섭리인들 중에서
“저도 그날 <삼풍백화점>에 있다가
나와서 살았습니다.” 하며 선생에게
여러 사연을 보내 준 자들이
있었습니다. 선생이 그 편지를 받고
너무 놀라고 감사해서 오늘 몇 가지만
말해 주려 합니다.
이때의 사연 세 가지와 다른 사연
한 가지를 말해 주겠습니다.
◎ 첫 번째 사연입니다.
(간증 내용을 설교로 넣어야 함)
하나님은 모든 것을 완~전히 아시고,
감동을 주시며 상황과 여건을 틀며
역사하십니다.
이때 깨닫고 행하는 자를 살리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실 때
서운함을 타거나, 오해하거나, 등을
돌리고 안 하면 큰 해를 보게 됩니다.
◎ 두 번째 사연입니다. 두 번째
사연은 영상을 통해서 듣겠습니다.
<영상2>
하나님이 감동을 주시며 상황과
여건을 틀어 주시는데도 사람들은
자기 생각대로 기도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해 달라고 합니다.
참 하나님의 심정을 모르고 삽니다.
하나님이 더 좋게 해 주시고,
해를 피하게 해 주시려고 감동을
주시고 상황과 여건을 틀어 주시니
불평불만 하지 말고 감사하며
기뻐해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 세 번째 사연입니다. 영상을 통해
그 사연을 듣겠습니다. <영상3>
여러분도 모두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도움으로 살았습니다.
꼭 생각해 보고 깨달아야 됩니다.
그리고 감사하며 영광 돌려야 됩니다.
선생이 조은 목사를 한창 가르칠 때,
조은 목사에게도 꼭 지난날을 돌이켜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꼭 죽을 데서 살려
주신 일이 있으니, 생각하고 기억하고
감사하며 영광 돌려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때 조은 목사는 사연
하나를 기억하고 이야기했고,
지금까지 그때를 잊지 않고 늘
감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 네 번째 사연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이같이
‘작고 큰 사고’를 두고도 감동을
주시고 여건을 틀어서 행하십니다.
그런데도 모르고 하나님을 오해하고,
서운하게 생각하고, 등을 돌립니다.
이런 근성은 ‘사탄의 근성’이니, 꼭
고쳐야 됩니다. 그래야 죽을 데서
살고, 다칠 데서 피하고, 고생할 데서
피하여 유익이 되고 복을 받게 됩니다.
(아멘.)
★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에서 최고로 큰일이 무엇이냐.
<육신>을 죽음에서 살게 해 주고,
<영혼>을 죽음에서 살게 해 준 일이
아니냐.
기쁨이 무엇이냐. 낙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나 성자와 성령님과 함께 해
준 것을 생각할 때다. 그것을 잊으면
‘기쁨’이 죽는다. ‘사랑’이 죽는다.
과거에 해 준 것을 생각해라.
그것을 잊으면 ‘희망’도 ‘낙’도 없다.”
(하셨습니다.)
★ 평생 인생을 살면서 사랑과 기쁨을
느끼라고 <인생에서 최고로 큰일>을
해 준 것입니다. 곧 <육>을 죽음에서
살려 주고, <영>이 지옥 가는 데서
살려 준 일입니다.
그러니 그날을 생각하고 기억하며
늘 전능자를 사랑하고 기뻐하며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선생은 지금까지 60번 정도 죽을
고비가 있었는데 삼위께서 감동을
주시고 틀고 막아 주시며 살려
주셨습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죽음의 위기가
있었기에 어머니는 내게 명이 길게
오래 살라고 이름을 ‘명석’이라고 지어
주셨습니다.
한 사람당 세 번에서 오십 번 정도는
육도 영도 죽음에서 살려 주셨습니다.
고로 깨닫고 감사하며 기뻐하라고
성자는 말씀하십니다.
저마다 하나님이 감동을 주시고
막고 틀어서 역사하신 사연이 있으니,
생각하고, 깨닫고, 기억하고, 감사
감격 감탄하면서 마음 변치 않고
끝까지 잘하겠다고 약속하기 바랍니다.
(아멘.)
하나님이 상황과 여건을 틀어서
막으시는데도 안 하면, 그때는
매질하시고, 병으로 치시고, 고통이
닥쳐도 안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특히! <말씀>으로 감동을
주시고, 틀고 막으십니다.
<전환>
◎ 지금 이 말씀을 쓰고 있는 날은
2월 28일입니다. 선생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3일째 되는 날입니다.
그때부터 금식을 시작했기에 금식한
지 3일째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날은 전국과 세계에서 월명동에
찾아와 조문을 하고 있을 때이고,
장례식을 3일 앞두고 모두 부엌에서
밖에서 수고하고 있을 때입니다.
◎ 여러분이 기도했지요?
기도한 것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듣고 감사하기 바랍니다.
2015_03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26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과 어머니가
서로 못 보고 가시다니, 왜 하나님은
수만 명이 기도하는데도 안 도와줘요?
하며 하나님께 서운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상황을 틀어서 ‘때’에
맞춰서 해 주셨고, 또 십자가를 질
때는 못 돌아다니는 법이 있으니
몸은 못 가지만 감동을 주시어 더
좋게 해 주셨습니다.
◎ 선생이 말 안 하면 겪은 자들도
모르니, 오늘 마지막으로 삼위께서
선생의 어머니에게 역사하신 사연과
선생에게 감동을 주시고 상황을 틀고
막으시어 더 좋게 해 주신 사연
하나를 더 말해 주고, 말씀 마치려
합니다.
선생의 어머니는 15년 전 선생이
<이탈리아>에 있을 때 이미 숨이
끊어져서 장례를 준비하려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께 간구하여 다시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 후로 15년을
더 사셨습니다. 고로 언제 가셔도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오직 감사뿐입니다.
그 후 2006년도에 어머니가 중국으로
오셔서 많은 대화도 나누고 해 드릴
것도 해 드리며 오랫동안 만났습니다.
그리고 6년 전, 선생이 한국에 왔을
때 직접 만나서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그러다가 2014년 가을에 어머니의
생명이 많이 위독해졌습니다.
그때 기도하며 성자께 물었더니,
성자는 “네 의견대로 할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생은 “추운 겨울은 지나면
좋겠습니다.” 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한계’가 와서 어머니는
숨을 못 쉬시고, 하루하루 호흡기로
연명하셨습니다. 숨을 한 번 쉬려면,
산을 한 번 넘어가듯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한계가 왔습니다.
이때 선생은 ‘생명의 사명자’로서
기도하여 표적을 일으켰습니다.
선생은 매일 어머니를 하루만 더 살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성자께
기도하여 생명 연장의 허락을 받고,
또 하나님께 기도하여 생명 연장의
허락을 받고, 또 성령님께 이유를 대고
기도하여 생명 연장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매일 그렇게 했습니다.
인간 생명의 한계가 왔으니, 이제는
아무래도 삼위일체 중의 한 분이
상황을 틀 것 같아서 삼위께 각각
매일 기도하며 결재를 받고 어머니를
더 살게 했습니다.
기도가 이리도 큽니다.
어머니뿐 아니라 섭리사 전 교인들의
부모들을 위해서도 그와 같이 매일
기도했습니다. 이 기간에 많은
부모들이 돌아가셨습니다.
때를 맞춰서 기도해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선생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고 죽는 것이 소원이니 꼭 한
번이라도 얼굴을 보이려고 이곳으로
오시게 하려다가, 아무래도 오시다가
오는 길에 죽을 것만 같아서 못 오게
했습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죽을
정도로 한계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2014년 겨울에는 도저히
고비를 못 넘기게 되는 상황임을 듣게
됐습니다. 어머니가 이제는 더 살기
어렵다고 어머니 옆에 있는 규석 목사,
혜선 목사에게서 위급할 때마다
수시로 편지가 왔습니다. 그때부터는
‘기도의 방향’을 틀어서 기도했습니다.
“추운 겨울만 넘기게 해 주세요.
어머니를 눈 속에다, 얼음 속에다 묻지
않게 해 주세요. 어머니가 겨울에
돌아가시면 모두 다 고생합니다.”
하고, 이유를 대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니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자. 그것이 내 마음이고,
너의 마음이고, 섭리인들의 마음이다.
하지만 때가 있으니 기도하며
준비하자. 네 엄마, 지금 숨 못 쉰다.
인간 생명의 한계는 자체로 숨을 쉬는
것이다. 그런데 자체로는 더 이상 숨을
못 쉬니, 한계가 왔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생이
“그러면 전능자가 숨을 쉬게 해 주면
되지요.” 하니
성자는
“인간이 의학을 총동원하여 자기가 숨
쉬는 데까지가 한계다. 도와주마.”
하셨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생명을
지켜 주셔도 인간 생명의
정한 시간도 있고,
자체 한계도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의 한계>는 의학을
총동원하여 자기가 숨을 쉬는
데까지입니다.
그래서 성자께 간구하기를
“그러면 추운 겨울이 빨리 가고,
따뜻한 봄이 오게 해 주세요.”
했습니다.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차라리 그게 낫다. 하루 숨 쉬는 것을
1년같이 힘들어한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하루 속히 따뜻한
봄 날씨가 되도록 간구했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결국 봄이 일찍 찾아와서 개구리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뉴스에서 “50년
만에 일찍 찾아온 봄이다.” 했습니다.
사람들은 지구온난화 때문에 날씨가
금방 따뜻해졌다고 했지만, 그것이
아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바로 전날 눈이 내려서 10~20cm까지
쌓였습니다. 개구리가 굴에서 나왔다가
다시 굴로 들어갔습니다. <끝>
그때 섭리사적으로 볼 때, 꼭 눈이
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눈이 와야
하나님과 성자께 구한 것을 얻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눈이 와서, 1년 동안 기도한
것을 결국 이루게 됐습니다. 그때 눈이
안 왔으면, 다음 해로 넘겨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먼저 이루고,
다시 빨리 봄이 오게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바로 날씨가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육신을 따뜻한
날씨에, 따뜻한 땅에 보내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생은
‘한국의 최대 명절인 설’이 지나야
어머니가 가시기에 좋지 않겠냐고
성자께 간구했습니다.
이때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은 오래 살면 좋다고 하지만,
네 엄마는 하루하루 숨 쉬는 게
힘든데 본인도 생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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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간호하는 규석이와 혜선이,
간호사들과 의사들도 생각해야지.”
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생은 “예.”
하고, 성자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설 명절>이 되기 며칠 전, 어머니의
숨이 멈췄습니다. 호흡기도 안 통하고,
맥박이 완전히 멈췄습니다.
의사들이 “이제는 의학적으로는
돌아가셨습니다.” 하여 정말 장례를
준비하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래서 규석 목사가 마지막으로
선생의 목소리 듣고 가시라고
어머니 귀에다 선생의 녹음된 음성을
들려주니 어머니는 선생이 온 줄 알고
다시 맥박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들이 ‘이제 어머니 숨이
끊어졌습니다.’ 한 말은 허사로
돌아갔습니다. 어머니는 ‘아들
음성’만으로 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인생들을
구원하라고 보낸 자이니, 그 이름을
부르고, 그 음성을 들으면 <육들>도
일어나고 <영들>도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도 다시 살게 된
것입니다. 제대로 다시 알기 바랍니다.
어머니가 계시는 방에 못 들어갔던
목사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우리가 충격 받을까 봐 숨기는 거야.”
하며, 집에 돌아가면서 속닥속닥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선생에게 묻지 않고 말하면,
틀린 것들이 참 많습니다.
제대로 확실히 알고 말해야 됩니다.
그리고 간구한 대로 어머니는
<설 명절>을 넘기시고 <따뜻할 때>
가셨습니다.
선생은 이때 집에 ‘전화’로라도
어머니와 통하려고 <전화 신청>을
했으나, 안 됐습니다. 부모가 위독하면
전화하게 해 주는데 안 됐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위해 더욱 기도해
주고, 어머니의 영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사연을 하나님과 성자께 더
고했습니다.
그 후 이곳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선생을 만나자고 하여 만났습니다.
이곳 책임자는 가정 문제가 있으면,
가정에 대해 물어봅니다. 하나님이
그를 감동시키시어, 때가 되니
처음으로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가 내게 “애로 사항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위독하시어 전화 한 번 하려고
수차례 신청했으나 못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건강을 묻더니만,
지금은 <설 명절>이라 책임자들이
없으니, 명절이 지나면 한번 의논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명절이 지난 후에 다시
<전화 신청>을 했더니 이틀 만에
바로 전화하게 해 주었습니다.
전화 시간은 3분이었습니다.
“어머니, 명석이에요.
나 안 죽었어요.”
어머니는 ‘명석이는 죽었어.
살았으면 올 텐데...’ 하셨는데,
전화로 선생의 음성을 들으니
말씀은 못 하셔도 알아듣고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 꼭 할 말을 했습니다.
“어머니 잘 가요.
이제 <하나님의 시간>도 다 됐고,
<어머니의 시간>도 다 됐습니다.
제 음성 들어야 편히 가시니,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성자께서 통하게
해 주셨어요.” 했습니다. 그리고 천국
황금성에서 만나자고 말하려는데, 차마
입이 안 떨어졌습니다.
아직 살아 계신 어머니에게 어서
천국에 가라고 하는 말은 죽으라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전화가
끊기면 끝나니,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어머니 잘 가요.
천국 황금성에서 만나요.”
그리고 전화로 통해도 어머니는
유언을 못 하시니 선생이 그 마음을
받아서 대신 형제들에게 말했습니다.
“서로 화목하고,
내가 도울 테니 걱정 말아요.”
그리고 어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드렸습니다.
“어머니, 영원히 사랑해요.
잘 가요. 성자께서 내 영과 같이
천국에 데려가십니다.”
올해 성자가 떠나시는 표상 중의
하나가 바로 ‘어머니의 영을 데리고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선생이 전에는 그렇게 <전화 신청>을
해도 안 됐는데, 하나님과 성자께서
여건을 틀고 감동을 주시어 마지막에
꼭 해야 할 때에 전화를 하게
됐습니다.
티켓은 딱 한 장인데, 하나님이 때에
맞춰 그 티켓을 쓰게 하려고 전에는
안 되게 하신 것입니다. 시간을 딱
맞춰서 ‘유언과 마지막 인사’를 하게
하려고 상황을 트신 것입니다.
한때 전화가 안 될 때는
너무 애타는 마음에 성자께 말하기를
“정말 이것도 못 해 줘요? 전화 한 통
하도록 능력을 못 부려요?” 했습니다.
이때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전화 못 하게 트는 것도 내 실력이다.
네가 어머니의 영을 만나서
이야기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때 어머니를 위해 더욱
기도해 주고 어머니의 영을
휴거시키는 데 전력을 쏟았습니다.
어머니는 육의 뇌가 거의 다 죽어서
기도를 못 하시니, 내가 대신 어머니의
육이 되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수시로 내 혼으로 어머니를 만나러
갔습니다.
하나님과 성자께서 전화하는 것을
트셨기에 선생은 기도로, 혼으로 더욱
실속 있게 어머니를 도왔습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어 다시 상황을 틀고
감동을 주시어 2월 23일에 전화로
통하게 하셨습니다.
그때 선생의 목소리를 듣고
“선생이 왔나?” 하고
잠깐 눈을 떴다고 합니다. 원래 거의
몇 년 동안 눈을 못 뜨고 있었는데,
그때 잠깐 ‘한 눈’만 떴다고 합니다.
그때 규석 목사가 선생의 사진을 보여
줬답니다. 왜 ‘한 눈’만 떴겠습니까?
‘두 눈’을 뜰 힘이 없으니 ‘한 눈’만
크게 뜨고 선생의 사진을 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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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도 선생의 녹음된 목소리를
30분씩 들려주니 눈을 깜빡거리며
알았다고 하더랍니다.
성자는 상황을 틀어서 전화가 안 되게
했다가 마지막에 내게 감동을 주시며
상황을 틀어 때에 딱 맞추어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는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선생이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전화’로 통했다고 하니 섭리인들도
그 소식을 듣고서 “그럼 만난 것이네.
우리 기도대로 하나님이 합당하게 다
들어주셨네.” 하며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고 기쁘게 장례를 치르고
감사하다고 고백하게 됐습니다.
신기하지요? 주최 측
‘하나님의 구상’이었습니다.
때에 맞춰서 더 좋게 해 주시려고
상황을 틀고 막고, 때가 되니 감동을
주시며 역사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연을 모르니 기도해도 우리
기도대로 안 된다고 하며 애간장을
태우고 하늘 앞에 서운해하고 이해가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성자는 이미 어머니의 상태를 아시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10일 전에
까마귀가 청기와집 앞을 쳐다보고
우는 것을 계시로 보여 주며 어머니가
돌아가신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또 성자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섭리사의 계시자들 세 명을 불러다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어머니의 영’이 와서
말하기를 “나는 때가 되어 가는
것이고, 선생 육 못 보고 가도 기쁘게
가니 전해 주어라.” 했습니다. 또한
‘선생의 영’도 와서 말하기를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다른 사람들처럼
못 간다. 하늘 운명, 세상 죄 짐 지고
갈 수 없다. 하늘 뜻 따라 가야 된다.
너희가 장사 잘 치르고 어머니
잘 모셔라. 나 못 가도 걱정 마라.
뜻이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선생이 가서
보는 것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살아 계실 때 전화로 통하게
하셨습니다. 살아 있을 때
도와주셨으면 최고입니다. 죽은 후에
가면, 만 번을 불러도 ‘육’은 대답을
못 합니다. 모든 인생들이 그러합니다.
죽어서 시체가 되면 하나님도
못 도우시니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우리가 살아 있을 때
‘땅과 하늘 때’에 맞춰서 도우십니다.
이것을 알고, 틀고 감동을 줄 때
원망 없이 감사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향해 서운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릅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모두 살아 있을 때
도와주신 것들을 생각해야 기쁨이
오고, 낙이 오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선생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어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
도와주신 것을 감사드리고,
섭리인들과 선생을 도와주신 것을
감사드리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성자는 계시자를 통해서
어머니의 영이 단독으로 거할
황금성의 집을 보여 주시며
섭리인들 모두 슬퍼하지 말고
희망으로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성의 크기는 ‘지구’만 하다고
했습니다. 선생을 낳고 극한 환난에서
넘어지지 않고 다 이기고, 칼이 가슴을
찌르는 심정의 고통을 받았어도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고,
섭리역사를 알고, 선생을 알고
휴거되었으니 그 영광을 준 것입니다.
선생을 낳은 여인은 지구 세상에서
한 명뿐이니, 그로 인해 고통도 크게
받았지만 그로 인해 최고의 영광을
받았습니다. 또한 지구 세상에서는
어머니가 선생을 위해서 최고로,
진정으로, 끝까지 기도해 주었기에
그로 인한 영광을 받은 것입니다.
◎ 이 말씀을 전해 줄 때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한 달 정도
지난 때입니다. 오늘 말씀에 따라서
하나님과 성자는 때를 맞추려고
상황을 트시고 때가 되니 선생에게
감동을 주어 역사하셨으니, 오늘
그 사연을 말해 주었습니다.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핵심을 한
번 더 짚어 주고, 말씀 마치겠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역사하며 행하십니다.
첫째, 감동을 주시고
둘째,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직접, 혹은 사람이나 선생이나 천사를
통해 틀고 막으며 뜻에 따라
더 좋게 해 주십니다.
그러니 막는다고 삼위도, 막는 사람도,
선생도 오해 말고, 미워하지 말고,
서운하다 하지 말고 감사하기
바랍니다. 회사 일도, 학업도,
자기 일도, 사명도, 신앙의 일도
만사의 모든 것이 그러합니다.
오해하지 말고 제대로 분별하고
신령하도록 기도해야 됩니다.
요시야 왕같이 무지로 인해 자기를
돕는 자와 다투지 말아야 됩니다.
자기를 막는 자를 무조건 오해하지
말아야 됩니다. 틀고 막는 자는
‘사람’이 아닙니다. 근본은
‘하나님, 성령님, 성자’이십니다.
삼위가 우리를 진정 사랑하시어
더 잘되게 해 주려고 틀고 막고
감동을 주시는 것이며, 육신도 영혼도
해를 당하지 않게 해 주려고 틀고
막고 감동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큰 비밀을 알려 주었으니,
혹여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안 되더라도
삼위께 감사하며 삼위를 사랑하며
살기 바랍니다. 소쩍새가 봄부터
그렇게도 울더니, 알고 보니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와 같이 왜 그리 상황을 틀고 막고
감동을 주시는가 하니, 찬란하고 멋진
하나님의 뜻을 같이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아멘.)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