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2015.03.06 (금)
금 계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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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계시말씀
♥ 03월 06일 금요일 ♥
인재를 키워라
작성일 : 2015. 1. 15. (목) AM 1:00
작성자 : 이찬
(성자께서 “나의 길을 예비할 자들이
필요하다. 영적, 육적으로 인재들이
필요하다.” 말씀하셨습니다.)
*성자의 말씀*
섭리야,
인재를 키워라.
이제는 섭리역사도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야 될 때가 왔다.
나의 길을 예비해야 한다.
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선
영적 관원만 있어서도 안 되고
육적 관원만 있어서도 안 된다.
육과 영이 공존하듯
양쪽 모두 각각 존재해야 한다.
역사의 초기에는
영적 발판 역사가 진행되어
영적 관원들이 중점적으로 세워지지만
이젠 어느 정도 역사가 흘렀기에
육적 발판도 세워져야 한다.
앞으로는 너무 내적으로만 몰리면 안 된다.
그러다 보니 개성도 사라지고
외적 관원이 되어 크게 주를 증거할 자인데
그 뜻을 이루지 못할 때가 있다.
휴거 때라
당연히 영적인 것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넓게, 깊이, 멀리 봐야 한다.
휴거 때라고 그 사람의 개성과 재능까지
잘라 버리면 안 된다.
내가 사람을 어떻게 키웠고 관리하였느냐.
개성과 재능을 잘 살려서 영적인 것까지
하늘 앞에 영광이 되게 이어 주지 않았느냐.
영과 육의 비율을 잘 맞춰 주며 정말 멋진
하늘의 작품으로 인생을 키워 냈다.
너희들은 너무 한 곳만 보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춤을 잘 추는 자가 있다면
무조건 춤을 추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 앞에 영광이 되게 재능을 키워 주고
시를 잘 쓰는 자가 있다면 시로써
주 앞에 영광이 되게 키워 줘야 한다는
것이다.
선생이 너희 곁에 있을 땐
너희의 모든 재능과 개성을 받아 주지
않았느냐.
지도자들이 밑에 있는 자들의 개성과 재능을
감당 못 하니 그냥 잘라 버린다.
그러다 하늘의 인재를 버린다.
직장에 간다고 하거나
대학원에 간다고 하거나 하면
무조건 안 된다고 하는 지도자들이 있다.
직장 다닐 시간에 직장 안 가고
말씀 보고 기도하는 것이 순리이겠느냐.
순리적이지 못하다.
때에 맞게 인생을 살아야 한다.
세상으로 나간다는 자들을
무조건 안 좋게 본다거나
은연중에 신앙의 차원을
판가름 지어선 안 된다.
무조건 섭리 안에서
열심히 뛰는 것을 좋다고 생각하고
또 그 생각을 그대로
생명들에게 심어 주는 지도자들이 많다.
세상에서 주를 증거할 자들은
세상에서 주를 증거해야 된다.
주의 길을 예비함에 있어 필수다.
세상도 누구의 것이냐.
모두 나의 것이 아니냐.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듯
세상으로 나가야 세상을 잡지 않겠느냐.
나의 차원에서 바라보아라.
모두 양단간에 나의 뜻이 있고 계획이 있으니
오직 선생의 뜻에 맞게 생명을 관리해라.
다만 핵이 무엇이냐.
주를 아냐 모르냐가 핵이지 않느냐.
하나님 역사를 통틀어
주를 아냐 모르냐가 언제나 핵이었다.
세상으로 나가려는 자가
주를 알고 깨달은 자라면
외적 관원으로서 주를 증거할 수 있게
혹은 경제적으로 주 앞에 도움이 될 수 있게
날개를 달아 주라는 것이다.
또 부족하다면
개성과 재능에 맞게 이끌어 주라는 것이다.
하늘 앞엔 영적 관원이든 육적 관원이든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사랑하는 하늘의 신부이고
없어선 안 될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러니 너무 한 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양단간에 잘 이끌어 주라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자들 들어라.
너희의 개성과 재능,
이루고자 하는 꿈 모두 좋다.
하지만 너희가 주를 모르고 이루는 꿈들은
아무 소용이 없다.
영적 관원이 될 자이든
육적 관원이 될 자이든
작든 크든 하늘이 보기에
주를 얼마나 깨달았느냐가 중요하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대기업 회장이든
주를 모르면 아무 소용없다.
너희는 먼저 가슴 속 깊이 주를 깨달아라.
주를 너희 목숨보다 더 사랑하라.
그로 인해 너희가 어디를 가나
하늘이 함께하고 세상을 다스리게 되며
너희가 하는 일마다 형통하며
하늘의 축복이 가득할 것이다.
난 세상의 사지 멀쩡한 자보다
주를 깨달은 불구가 낫다.
영적 지도자가 될 자들은
보다 더 주를 깊이 깨달아야 한다.
그리하여 완전히 선생과 일체 되어
생명을 관리하며 섭리를 꾸려 나가야 한다.
현재 섭리 지도자들의 몫이 크다.
섭리의 목회자들, 지도자들은
앞으로 멀리 봐야 한다.
너희는 1000년 역사의 조상들이 될
자들이다.
절대 너희의 감정과 주관으로
생명을 키워선 안 되고
오직 선생과 일체 되어
생명을 키워야 한다.
하늘의 생명을 키울 때
‘너’가 있어선 절대 안 된다.
하늘 역사에 흠이 될까 염려된다.
너희가 얼마나 선생과 일체 되어
생명을 키워 내느냐에 따라
섭리의 질이 달라진다.
정말 선생과 나와 일체 된 지도자라면
자신보다 더 큰 지도자,
주 앞에 크게 쓰일 지도자를
키워 낼 줄 알아야 한다.
쉬운 일 아니다.
하지만 주를 위한 사랑으로 키워 낼 수 있다.
섭리에 많은 지도자들이
자신의 밑으로는 잘 키워 내는데
자신보다 더 크게는 못 키워 낸다.
그러니 어린 자라도
선생과 나 성자가
개성과 재능을 보고 뽑아 쓴다.
섭리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아,
너희는 나의 몸이다.
나와 선생과 심정 일체 되어
생명을 키워 내야 한다.
그래야 하늘의 큰 인재들이 쑥쑥 배출된다.
그것이 하늘 역사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고
기쁨이 되는 줄 아느냐.
그리하면 너희도 진정 큰 자가 되는 것이다.
정말 큰 지도자는
밑에 있는 자를 자신보다 더 크게 키우고
크게 쓸 줄 아는 자이다.
선생 보아라.
자신이 가지지 않은 개성과 재능은
밑에 있는 제자를 쓰고
자신이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어린 자에게도 배우지 않느냐
자신의 권위와 위신을 절대 세우지 않는다.
자신의 자존심도 버리고 섬겨 준다.
그리고 생명에게 유익이 되는 일이라면
써도 삼키고
생명이 자신을 미워할지라도
오직 사랑으로 이끌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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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뜻이 있는 생명이라면
자신이 흙투성이가 될지라도
품어 주고 결국 키워 낸다.
첫째는 자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해서이고
둘째는 하늘 앞에 자신이 1%도 없기
때문이고
셋째는 나와 완전히 일체 되었기에 그러하고
넷째는 선생 자체 인격이 너무 착하다.
너희는 이런 선생에게 배웠는데 삶이
어떠하느냐.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생겨나지 않았느냐.
자신의 권위가 생기고 자신의 위신이 생기고
자신의 자랑이 생기고 말이다.
자신에게 맘에 드는 생명을
더 키워 준 적은 없느냐.
선생과 나 성자는
다른 자에게 그 뜻이 있는데
너희의 감정대로 생명을 세운 적은 없느냐.
생명에게 조금의 시기와 질투를 느낀 적은
없느냐.
생명을 키우려면
나무 키우듯 가지도 쳐 줘야 하고
손질도 해 줘야 하는데
자신을 싫어할까 봐
하늘 앞에 크게 될 자인데도 자신을
좋아하게끔만 이끌지는 않았느냐.
자신의 감정에 따라 생명의 기를 꺾어 놓든가
눌러 놓은 적은 없었느냐. 선생과 나 성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했더라면 이렇게 생명을
키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핵심은 얼마나 주를 깨닫고 일체 되어
생명을 키우느냐다.
얼마나 주를 사랑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위해서 사느냐다.
섭리의 영적 지도자들이라면
자신의 주관과 감정을 버리고
오직 나와 일체 되어
섭리역사를 이끌어 나가길 바란다.
영적으로 보면
얼마나 큰일을 한 줄 아느냐.
생명을 전도하면 영계에서 조상이 되듯
주와 일체 되어
생명을 크게 키워 내면
영계에선 더 큰 자가 되어 그에게 상이 크다.
자신의 부족함으로 하늘의 인재를 하나도 못
키워 낸 지도자는 그만큼 영광이 적으리라.
사랑들아,
너희들이 꼭 해야 한다.
너희들을 향한 믿음이
크고도 크다.
모든 것은 사랑으로 해야 한다.
조금 더 큰 생각을 가지고
조금 더 높은 차원으로
나와 일체 되어 행하자.
나의 길을 예비할 모든 자들아,
너희를 너무 사랑해서 하는 말이며
너희를 너무 사랑해서 주는 축복이노라.
너희 한 명, 한 명이 내겐 너무 소중하고
각 위치와 차원에 맞게 나와 불같은 사랑을
이루길 원하노라. 주를 중심으로 내적,
외적으로 훨훨 뻗어 나가라.
주를 깨닫는 모든 자들에게
나의 모든 축복을 부어 주겠노라.
선생이 너희 곁으로 곧 가리라.
주의 길을 예비하라.
핵은 지도자들이나 크고 있는 생명들이나
주 중심이다.
각자 자신이 얼마나 주를 깨닫고
중심하느냐가 핵심이다.
알겠느냐.
사랑한다.
성자다.
안녕.
(선생님께서 한 말씀 더 해 주셨습니다.)
*선생님 말씀*
나를 알아야 해.
나 모르면 아무 것도 안 된다.
성삼위께서도 모든 것의 핵을 나에게 두신다.
모든 축복권도
나를 아는 자에게 돌아가게 하신다.
너희 나 더 알아야 해.
그래야 성삼위도 온전히 알게 된다.
특히 지도자들
자신의 가치관과 주관 버리고
오직 나의 방식, 나의 말씀대로 생명
가르쳐라.
오직 주만 나타나야 깊이 깨닫는다.
부흥강사 봐라.
오직 나만 나타나지 않느냐.
지도자의 방법과 뜻이 들어가면
그만큼 덜 깨닫고 덜 큰다.
완전히 내가 돼서 해야 된다.
그게 일체지.
그래야 내 마음도 놓이고
이곳에 있어도 보람되고 힘도 난다.
내가 좀 답답한 것은
너희가 나의 방법과 나의 말씀대로
생명을 키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이
조금씩 다 들어가 있다.
내가 이곳에 있으니
더 깊이 기도하고 더 말씀 중심하고
내가 세운 자와 일체 돼라.
모르면 지도자라도 배우고 행해라.
난 아직도 성자께 배운다.
오직 주의 사랑, 주의 사상, 주의 방법, 주의
말씀이다.
자신의 것이 조금도 들어가면 안 된다.
그럼 만족이 없다.
알겠냐.
섭리의 모든 자들,
나를 깊이 깨달아야 한다.
나 모르면 죽는다 생각하고 살아라.
모든 역사는
주를 깨닫는 것에서 시작된다.
1000년 역사 멋지게 이끌자.
모두 각자 오직 나만 보고 나와만 일체 되어
역사의 길을 걸어라.
사랑한다.
선생이다.
안녕.
♥ 03월 06일 금요일 ♥
천국 : 선생님의 어머니 집
작성일 : 2015. 2. 11. PM 4:10
작성자 : 김영호
(선생님의 어머니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을 때
성자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 성자의 말씀 *
나와 같이 천국 가겠느냐?
선생의 어머니 집을 다녀오자.
(성자께서는 시대 사명자의 모습으로
흰 세마포 옷을 입으시고 황금색 샌들을
신으셨고 금 휘장을 두르시고 빛나는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저는 성자의 손을 잡았고
몸에서 쑥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성자와 같이 천국으로 갔습니다.)
선생의 어미를 위해 기도해 주니 고맙다.
천국을 보고 와서 기쁜 소식을 알려 주자.
(“성자여, 정말 감사합니다.”)
너 궁금한 것은 없냐?
(“사실은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다고
소식을 들었어요. 그래서 기도하고 있었어요.
또 선생님이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볼 수
없었어요. 물론 천국에서 보겠지만 지상에
남아 있을 때 보지 못하면 너무
슬프잖아요.”)
그래, 맞다.
지상에 있을 때와 천국에 있을 때는 달라.
무엇이 다른 줄 아느냐? 마치 한 과일나무에
열매가 맺혀 있다고 하자.
열매가 나무와 하나 되어 만나고 있을 때와
열매가 떨어져서 그 열매가 과일나무가 되어
옆에서 만나고 있을 때가 다르지 않냐.
너도 나 성자가 지상을 떠난다고 하니
많이 슬퍼하지 않았느냐.
희망의 이별을 하는데 왜 슬프겠느냐?
마치 이와 같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천국에 왔다.
들어가서 황금성으로 가자.
(늘 천국은 기쁨의 세계였습니다.
입구를 들어가니 양 옆에 천사들이 일렬로
서서 웅장한 찬양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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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웅장한 나팔 소리와
찬양하는 웅장한 소리가
순간 너무 기분을 좋게 해 주어서
머릿속에서 아픈 생각들, 슬픈 생각들이
다 날아가 버렸습니다.
“성자여, 역시 천국은 천국입니다.
들어오니 기쁨이 넘칩니다.”)
그래, 기쁨의 세계다.
여기서는 아픈 자도 없고
슬퍼하는 자들도 없다.
다들 그 차원에 맞게 기쁨을 누리며
오직 하나님과 성령님과 나 성자를 찬양하며
사랑과 환희에 차서 살아가게 된단다.
황금성으로 날아가자.
(저는 성자와 함께 천국 공중을 높이 날아서
황금성으로 향했습니다.
수많은 구름들 사이를 뚫고서 보이는
황금성이 빛이 나서 멋있어 보였습니다.
하나의 나라를 보듯이 너무나도 컸습니다.
황금성 입구에서 황금성으로 들어가니
또 천사들이 맞이해 주었고
‘아름다운 혼인 잔치,
하나님의 6000년 모든 한을 푸는 이 순간
모든 신부들이 모여서
기쁨과 사랑의 나라여~
이룩하였네.’
하는 찬양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무 기쁘고 너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성자여, 이곳은 정말 더 기뻐요.
마치 천국을 두 번 들어온 것 같아요.”)
이곳 황금성은 신부들의 성이다.
당세에 주를 믿고 따른 자들이 오는 성이다.
그것도 당세에 성약의 주가 살아 있을 때에
주를 깨닫고 나의 말을 듣고서
온전한 신부가 되어 300선 휴거를 이루는
자들이 이곳 황금성으로 들어오게 된다.
황금성은 구원역사에 있어서
가장 차원이 높은 곳이며
황금성에 들어온 신부들은 구원역사 중에서
하늘과 가장 최고조의 사랑을 나눈 자들이다.
깨진 사랑을 온전하게 하여
아무런 죄도 없고 흠도 없는
완전한 자들만이 있는 세계가 바로 이곳이다.
이제 선생의 어머니의 집으로 가 볼까?
(황금벌판에 옥색 동그란 성이 있었습니다.
옥색 동그란 성에 벨트를 찬 듯한
금띠가 둘러져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습니다.
옥색 동그란 성은 작은 삼각형의 면들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 위에는 면류관을 찬 듯한
보석이 얹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옥색 성 양옆은 금색 탑이 있었는데
마치 소라같이 생겨서 위로 쭉 올라간 금색
탑이었습니다.
그리고 옥색 동그란 성에 들어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고 그 계단 또한 황금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계단 앞으로는 넓은 호수가
있었는데 마음이 편안해지는 호수였습니다.
너무나도 오묘한 빛을 내며
모든 것들이 빛나는데
그 빛들이 모이면서
너무나도 멋있고 은은했습니다.
또 옥색의 성을 보니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성자여, 이 성은 무슨 성이며
이 성의 크기는 얼마나 됩니까?”)
이 성은 여자의 선실과와 비슷하게 만들어져
있다. 바로 선생을 낳은 여인의 성으로서
이곳은 선생 어머니 집의 핵심지이다.
또한 크기는 지구 세상을 주관하고 다스릴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를 낳았으니
저 옥색 성은 지구 정도의 크기이다.
그러니 저 황금 탑까지 같이 하면
지구보다도 더 큰 땅을 가지고 있다.
어머니의 집도 여러 곳에 더 있다.
그러나 오늘은 어머니의 성 중에서
가장 가운데에 있는 성이며
핵심적인 성인 옥색 성을 보여 주었다.
바로 이 집의 이름은
‘생명의 성’이다.
또 다른 곳도 가 보겠느냐?
(“네! 너무 아름답습니다.
보는 순간 모든 만민의 어머니에게 느끼는
그러한 사랑이 느껴지는 성이었습니다.”)
그래, 맞다.
이곳은 성령님께서 직접 구상하시고
성령님께서 사랑을 담아
만들어 주신 성이기 때문이다.
다른 곳을 가 보자.
(저는 그곳의 아름다움을 잊지 못하였습니다.
너무나도 아름답고
마음이 다 녹아지는 성이었습니다.
성자를 따라서 다음 성으로 갔습니다.
그 성은 너무나도 놀라웠습니다.
바로 가는골에 있는 나무의 모양이었는데
어머니가 아들을 껴안고 있는
나무의 모습이었습니다.
본래의 월명동에 있는
이 나무의 작품과 모양은 똑같았지만
뿌리부터 잎까지 모두 다
매끈한 금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보는 순간 웅장했고
입이 벌어질 정도로 너무 컸습니다.
멀리서 볼 때에는 나무라는 것을 알았으나
가까이서 보니 너무 높아서
그냥 하나의 기둥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성자여, 이 성은 어떠한 성이며
이 성의 크기는 어느 정도입니까?
이 성은 하나님께서 구상하셨나요?”)
맞다.
하나님께서 친히 구상해 주신 성이다.
이 성은 월명동 가는골에 위치한
감나무를 키우기 전에
이곳에 먼저 구상한 성이었다.
그리고 성이 완성되자
하나님께서는 지구에도 이 형상대로 창조하신
것이다. 나무는 생명을 뜻한다.이곳에 이러한
성을 세운 것은 선생의 어머니를 통하여
선생에게 축복을 주었듯이 지구 세상에 모든
자들에게 축복을 빌어 준 하나님과 성령님과
나 성자의 역사를 보여 준다.
선생의 어머니가 선생만 기도해 준 것이
아니다.
바로 선생의 어머니는
지구 세상을 위해서 기도했고
또 삼위의 강력한 역사로
세상을 구할 시대 사명자를 축복한 것이다.
고로 ‘구원의 역사를 할 수 있는 땅을
하나님께서 미리 마련해 놓으셨다.’ 함이고
또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니
내가 축복해 주고
모두 내 품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함이다.
이 성은 날마다 커져만 간다.
선생을 깨달을수록
선생을 통해 말한 나의 말을 듣고서
섭리사로 몰려올수록
이 성은 그 숫자대로 날마다 성장하는
성이다. 이 성은 살아 있는 성이다.
마치 지상에 나무같이 진짜로 살아 있는
성이다.
후대에 수많은 자손들이 따라오면
이 성이 선생의 어머니 집들 중에서
가장 큰 성이 되겠구나.
마지막으로 하나의 성을 보자꾸나.
(저는 그 웅장한 성을 보고서 감격스러웠고
성자를 따라 다음 성으로 갔습니다.)
이곳은 내가 구상한 성이다.
아름답게 산책도 하고
나와 사랑도 나눌 수 있는 공간이지.
(이 성은 유리성같이 깨끗해 보였는데
성자께서는 이것은 유리가 아니라
천국에만 존재하는
깨끗하고 투명한 보석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성은 원통 모양이었는데
가운데는 원통 모양으로 비어 있었습니다.
위에는 대나무를 칼로 자른 것같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공중에
커다란 독수리가 비상하는 모습의
황금이 떠 있었습니다.
너무 신비롭고
마음에 휴식을 가지게 할 성 같았습니다.
또 이 성 밖에는 동물들도 뛰어놀았고
용도 있었고 사슴들도 있었고 봉황도
있었으며 모두 빛이 나는 동물들이었습니다.
2015_0306금 계시말씀.hwp4
그리고 이 성 주위에는
모두 산책할 수 있는 산책로가 있었고
성 앞으로 조금만 가면
작은 분수대가 하나 있었습니다.
모두 하나같이 너무 아름다웠고
신비로웠습니다.
“성자여, 이곳을 보니 조금 편안해집니다.”)
이곳은 산책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밖에도 돌아다니며 마음대로 춤도 출 수 있고
나 성자와 만나서 대화를 나누기도 할 수
있지. 선생의 어머니는 그동안 많이 고생하지
않았냐. 그녀를 위해서 내가 만든 성이다.
이제 지상으로 돌아가자꾸나.
(저는 하나의 세계를 여행한 듯이
너무 좋았습니다.
“성자여, 제 집도 좋은가요?
저는 많이 부족해서
제 집이 안 좋을까 걱정돼요.”)
하하.
네 집도 좋아.
네가 오면 만족하게 지어 놨으니까
더 온전해지길 바란다.
사람은 끝없이 온전해질 수 있어.
사람에게 한계를 정해 놓기는 했다.
그 한계는 하나님의 한계까지다.
고로 사람들에게는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단계까지 올라오려면
마치 지구에서 우주선을 쏘아 올려
우주를 뚫고 나갈 때까지 가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지 않느냐?
우주는 계속 팽창하니 불가능하지.
우주가 팽창하듯이 하나님도 늘
온전해지신다.
고로 너도 더 온전하도록 하여라.
(“휴, 저는 사실 제 집이 아파트일까
걱정했어요. 제가 아파트에서 주님을 모실
수는 없잖아요. 지상에서 누추한 곳에 모셔서
정말 죄송한데 영계에서까지 누추한 곳에서
모실까 걱정했고 또 누추하면 아예 오지
않으시니 이제 주를 못 만나면 어쩔까 걱정도
했었어요.”)
너도 성이 있으니 걱정 말아라.
내가 찾아가도록 더 행해라.
내가 매일 찾아가도록 더 행해라.
기본이 중요한 것이야.
그리고 늘 사랑의 마음으로 형제들을 품어
주고 지상에서는 선생을 최고로 사랑해라.
그것이 바로 삼위를 최고로 사랑하는 것이다.
이는 섭리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이제 지상이다.
내가 모두를 사랑하는 것을 잊지 말아라.
그리고 모두를 1:1로 사랑하는 것도
잊지 말아라.
내가 사랑한다.
또 선생의 어머니를 위해서 기도하는 자들도
그만큼 선생의 어머니와도 가깝다.
상대를 위해 기도해 주는 만큼
영계에서는 친해진다.
선생을 위해서 기도하는 자는
그만큼 또 친해진다.
두 증인을 위해서 기도하는 자는
그만큼 또 친해지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고
아껴 주고 사랑해 주어라.
네가 진실로 구하니 천국을 보여 주었다.
사랑한다.
안녕.
♥ 03월 06일 금요일 ♥
섭리 2세 부모 교육
(자녀와의 관계 회복,
신앙 코치, 공부)
작성일 : 2014. 8. 7. (목) PM 9:00
작성자 : 김주완
(최근 섭리 부모들이 자녀들 교육 문제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섭리 부모들이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게 되었고
섭리 자녀들이 고민하는 것들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저 역시
부모님과의 관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문제만
해결되면 정말 많은 자들이 휴거될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성자께 이에 대한 말씀을
달라고 간절히 간구했습니다. 그때 성자께서
오셔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 성자의 말씀 *
지금 섭리 2세들과
부모들과의 관계 문제가 심각하다.
자녀와 부모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존중해 주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있구나.
섭리 2세와 부모와의 관계를
잘못 인식하고 있다.
섭리 부모들은 부모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섭리 2세를
교육하고 가르치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 주는 입장이 아니다.
많은 부모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구나.
너희들은 시대 사명자가 아니고
메시아가 아닌데
어찌 너희 자녀의 인생을
책임져 줄 수 있겠느냐.
자신이 이때까지 살아왔던 방식,
즉 자기 주관과 생각으로
자녀를 키우면 안 된다.
아직도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주관과 생각으로 자녀를 키우고 있고
그렇게 키워야 되는 줄 알고 있다.
만약 너희들의 주관과 생각으로 자식을
키운다면 너희들의 자녀는
절대 너희의 차원을 넘을 수 없다.
오직 말씀을 중심해서 키워야 된다.
너희들의 자녀는
너희들이 키우는 것이 아니라
성삼위와 선생이 키워야 된다.
그래야 너희의 자녀들이
섭리 안에서도 세상에서도 성공한다.
지금 휴거 200, 300선이
충분히 될 수 있는 섭리 2세들의 70~80%가
부모와의 관계 때문에 휴거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부모들도 자녀들 때문에
휴거 200, 300선에 오를 수 있는데도
못 되는 자가 많다.
섭리 안에서 가정을 이루고
그 가정을 축복해 주려고
성삼위께서 예정해 놓으셨는데
원래 예정과는 반대의 상황이 되어 버렸구나.
섭리 2세와 부모는
서로가 서로의 휴거를 도와주어야 한다.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훈계하려 하면 안 된다.
인간이 인간을 가르치면
인간의 차원과 주관권을 벗어나지 못한다.
오직 말씀을 중심해서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며
휴거 길을 가야 한다.
(자녀와 부모들의 관계가 회복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세요.)
자녀와 부모와의 관계 회복의 키워드는
대화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가족이라도 심지어 애인이라도
대화하지 않으면
사이가 점점 멀어진다.
평소에 기도를 열심히 하고
하늘을 많이 찾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기도하지 않고 대화하지 않는다면
성삼위와의 거리가 멀어지듯
섭리 부모와 자녀도 마찬가지다.
부모와 자녀 간에 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대부분의 부모와 자녀들은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비난, 험담을 하거나
자신이 옳다는 것을 납득시키기 위해
각종 방법으로 상대를 설득시키려 한다.
같은 말을 하더라고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상대가 느끼는 감정은 천차만별인데
어찌 함부로 말하느냐.
너희들은 서로가 서로를
존중해 주고 사랑해 주어야 하는 입장인데
어찌 서로가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
진정한 대화는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다.
자기 혼자 말하는 것은
대화가 아니다.
대화는 쌍방향 소통으로서
서로 의사소통을 하며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고
서로의 감정을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는
것이다.
부모들아,
자녀들아,
2015_0306금 계시말씀.hwp5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 주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해 주어야 한다.
부모와 자녀가 하나 되어
서로의 휴거를 돕는다면
순식간에 휴거 300선에 오를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인내해 주고 사랑해 주고 기도해 주어야
한다.
이때까지 서로가 서로에게
잘못한 것이 있다면
대화로 다 풀어라.
처음부터 속 이야기는 못 할 것이다.
하지만 계속 서로가 대화하려고 노력한다면
어느 순간 서로가 서로한테
잘못했던 것들을 알게 될 것이며
그것들을 대화로 해결함으로써
관계를 회복하게 될 것이다.
만약 상대가 대화 자체를 거부한다면
나머지 한쪽이 기다려 주어라.
그동안 쌓였던 것이 많은 것이다.
상대가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도록 기다려
주어라.
대화의 문제가 해결되면
이때까지 풀어지지 않았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다.
(부모의 입장에서 현재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자녀들에게 어떻게 신앙 코치를
해 주어야 할까요?)
질문 잘하였다.
많은 부모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일 것이다.
먼저는 부모와의 관계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대화를 통해 관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관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그때부터 비로소 자녀들이
너희의 말을 들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이기에
자기가 교육해 보려고 하고 바뀌게 해 보려
한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성삼위와 선생에게 맡겨라.
성삼위와 선생에게 맡기라 함은
말씀으로 교육하라 함이다.
오직 말씀으로만이다.
절대 너희의 주관과 생각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면 안 된다.
그리고 말로만 하라고 하지 말고
너희들이 직접 그것을 행함으로
모범을 보여 주어라.
지도자가 따르는 자들에게
어떤 것을 해야 한다고 말해 놓고
자기가 그것을 행하지 않는다면
따르는 자들이 그것을 행하겠느냐.
어떤 것을 배울 때도
먼저 시범을 보여 주면
따라 하기가 쉽듯이
너희들이 말씀을 행하는 것을 보여 주면
자녀들도 그것을 행하기가 쉬운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자기가 스스로 하게끔 만들어 주는
것이다.
신앙을 해야 하는 이유를 가르쳐 주고
신앙을 하면 좋은 점을 가르쳐 주며
재미를 붙여 주어라.
‘너는 신앙생활을 어떤 방식으로 해 볼래?’
하고 물으며 각자 자신에게 맞는 신앙생활을
하게 만들어 주어라.
자녀들 한 명, 한 명이 전부 개성체이니
각자 개성에 맞게 신앙생활을 하게 해
주어라.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기다려 주기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누구나 실수를 하고 가다가 넘어지기도 하니
신앙생활을 하다가 자녀가 신앙을 어려워할
때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것을
물어보고 같이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또한 부모들 역시도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말고
솔직하게 이야기하여라.
자신의 속 이야기도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자녀의 속 이야기만 듣기를 바라느냐.
서로가 서로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며
신뢰감을 쌓아 가는 것이다.
(아멘. 교육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공부에 대해 교육해 주세요.)
공부를 할 때
먼저 명심하여야 할 것은
신앙이 먼저 잡혀야
공부도 잘된다는 것이다.
신앙이 안 잡힌 상태에서 공부만 하게 된다면
공부에 빠지게 된다.
성삼위보다 공부를 더 우선시하게 되고
학문을 더 우선시하게 된다.
영적인 것이 바탕이 되었을 때
나 성자도 역사하는 것이다.
부모들아,
자녀들 공부 때문에 걱정이지?
학원 안 다니면
다른 세상 아이들보다 뒤처질 것 같고
공부 안 하면 커서 세상에 나갔을 때
무시당할 것 같고 그렇지?
오늘 내가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주겠다.
먼저 너희들 자녀 휴거부터 시켜 놓아야
한다. 공부보다 자녀와의 관계 회복이 먼저고
영적이 것이 먼저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 있지 않는다면
더 이상 공부의 차원을 높일 수 없다.
너희들 자녀 공부시키는 이유가
자녀가 섭리에서도 세상에서도 성공해서
멋진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지?
만약 너희들 자녀가
휴거 200선, 300선에 오른다면
혼체로 공부하고 성삼위와 선생이
한 사람당 공부 천사 4명, 5명 이상씩 붙여
준다. 남들 5시간 공부할 것
1시간 안에 끝내게 해 줄 수 있다.
불가능할 것 같으냐?
가능하다.
부모와의 관계가 회복되고
영적인 것이 바로잡혀 있다면
공부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선생이 2세들 중
세상에서도 엄청나게 이름을 떨치며
선생을 증거하는 자들이 많이 나오도록
축복기도 다 해 놓았으니
행하는 자는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휴거된 자가 무엇이 불가능하겠느냐.
혼체로 공부하면
한 달 만에도 성적이 오른다.
혼체로 공부하면
아이큐 180 이상인 사람이 공부하는 것처럼
기억도 잘 나고 안 잊어버린다.
그러니 공부 걱정 말고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 회복과 신앙을
우선순위에 두고 행하여라.
자녀들에게 신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라.
오늘은 나 성자가
대화, 신앙 코치, 공부에 대해 교육하였다.
사랑한다.
섭리 2세와 부모들 모두가
300선 휴거되기를 바라는 성자다.
샬롬.
♥ 03월 06일 금요일 ♥
‘선생’이 삼위의 대명사다
작성일 : 2014. 10. 17. (금) AM 3:00
작성자 : 장정임
(선생님과 성자의 일체 됨에 대해 확실히
깨닫고 싶다고 간구하며 “하나님이 성자가
아니듯 성자가 선생님은 아니지 않나요?
다만 같은 뜻, 같은 능력으로 일체 되어
역사하시지만 각체로 존재하지 않으십니까?
많은 계시 글을 통해 나와 선생을 따로 보지
말라고 하신 성자의 말씀이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이해 안 되니 관념적으로만 믿고
가게 되어 힘들 때가 있습니다. 정말 잘
깨닫고 가고 싶으니 가르쳐 주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 성자의 말씀 *
그래.
하나님과 내가 동일 인물이 아니듯
나와 선생은 각체로 존재한다.
그러나 예수를 통해 말하길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 안에 내가 있다 했지.
곧 아버지와 내가
일체로 존재함을 말한 것이다.
예수는 곧 성자로 인식되었기에
예수를 믿는 자들에겐
이 말이 그나마 받아들이기 쉬웠으리라.
그러나 본체, 분체 말씀을 들은 너희는
나 본체가 분체 된 예수를 통해 역사를 폈고,
이 시대는 분체 선생을 통해 역사를 편다
하니 좀처럼 나와 선생을
하나로 보지 못하게 된 듯하구나.
하지만 사랑하는 자야.
본체와 분체는
따로 존재하며 역사를 펼 수 없다.
키를 집에 놓고 나오면
2015_0306금 계시말씀.hwp6
자동차가 눈앞에 있어도
시동을 걸어 움직여 목적지로 갈 수 없고,
키는 가지고 있으나
차가 견인되어 끌려가고 없으면
역시 목적지에 갈 수 없듯이
본체인 나 성자는 선생 없이
그 무엇 하나도 할 수가 없고
선생 역시 내가 없이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키와 자동차, 그리고 기름과 운전자
4가지가 모두 있어야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듯이
삼위와 선생이 모두 일체로 움직여야
뜻을 이룰 수 있다.
그 뜻은 하나요,
삼위와 선생이 일체 되었기에
하나의 뜻이 된 것이라.
흔히 너희는 자가용을 몰고
목적지에 가면서 말하기를
“차를 가지고 간다.” 하지 않느냐.
그러나 그것이 어디 말 그대로
차만 가지고 가는 것이냐.
아니지?
그렇다고 대화할 때
차와 기름과 키를 가지고 운전해서 가겠다고
하느냐?
그것도 아니지?
이처럼 차를 가지고 간다는 말 안에
차와 기름과 키와 운전자를 다 포함하듯
선생이라는 이름 안에
삼위가 모두 포함됨을 알아라.
선생은 삼위의 대명사다.
고로 너희가 선생을 부르면
삼위가 함께 대답하는 것이야.
차도 달릴 때 보면 차만 보이지
운전자와 키와 기름은 안 보이지 않냐.
그렇다고 진짜 차만 홀로 달릴 수 있겠냐.
그같이 지상에서 역사를 펴는 것이기에
자동차 격인 선생만 보이는 것이다.
보이는 선생 안에 삼위가 있는 것이야.
본체, 분체 밝히기 전에는
멀리서 자동차 격인 선생만 봤다면
이제는 그 움직이는 자동차 안에
키 격인 하나님도 계시고
기름 격인 성령님도 계시고
운전자 격인 나 성자도 있음을 알고
더 수준 높여 보라는 것이다.
자세히 보는 것이 차원 높여 보는 것이다.
모르고 하나로 보는 것과
알고 하나로 보는 것은
엄청난 수준의 차이가 있음을 알아라.
달리는 자동차를 자세히 보고 알아야
운전자도 보이고 키도 보이고 기름이 있기에
움직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듯 선생
가까이 와서 자세히 볼수록 삼위가 보인다.
4가지가 모두 있어야 움직이듯 삼위와 선생이
하나 되었기에 성약역사가 출발했고 휴거라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선생을
그리도 강조하는 줄 아느냐?
카레이스를 봐라.
똑같은 기름과 키와 운전자라도
어떤 차를 만나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된다.
성약성까지 도착할 수 있는 성능을 가진 차는
선생밖에 없다.
고로 그 차를 선택하여 삼위가 출발했으니
너희에게 그 차를 타라고 하는 것이다.
버스 탈 때 운전자가 아닌
버스의 번호를 보고 타듯
선생 보고 타라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을 강조하는 것이다.
선생이라는 차를 타야만
그 차를 운전하고 있는
나를 만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고로 선생이 곧 나라고 말한 것이야.
선생이라는 차를 내가 운전하고 있으니
선생 차 타야
나랑 같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알겠냐?
그러니 선생이 곧 나요,
내가 곧 선생이라는 말을
정확히 알고 따라와라.
내가 선생 차에 타서 운전하고 있으니
내 차가 선생 차요,
선생 차가 내 차이지 않느냐?
그렇지?
(아멘.)
어려워하는 이들에게 잘 설명해 줘.
이를 잘 모르고 확실히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그저 믿기만 하고 가는 자들 많다.
실체 없는 믿음은 언젠가 무너진다.
너희가 이토록
굳건한 신앙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냐.
바로 선생이 신약의 믿음 역사를
실체로 풀어내어 가르쳤기 때문이 아니냐.
확실히 알고 확실히 가르쳐야 한다.
지금까지 내가 차 입구에 서서
너희들에게 차 주인이 나라는 것과
이 차를 타야 성약성에 간다고 외쳤다면
이제는 내가 다시 운전석에 앉을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밖에서는 안 보일 것이야.
선생 차에 올라타야 나 보인다.
알겠지?
그래서 자꾸 선생 강조하며
선생과 일체 되고 소통하라 말한 거야.
안 보이는 나 더 이상 찾아 헤매지 말고
선생 찾아서 얼른 선생 품 안에 들어오란
말이다.
그 속에 나 있다.
이미 선생 차 탄 자들은
내가 운전하는 것 직접 보고 아니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지?
바로 휴거되어 선생과도 소통,
나와도 소통하는 자들이다.
얼른 타.
그러면 나 보여.
제발 얼른 타라.
선생 안에서 운전하고 있는 나
얼른 알아채고 선생 붙잡아.
나 이제 선생 차 운전해서 떠난다.
다음 차 기다려도 안 와.
기다리다 엉뚱한 차 타지 말고
지금 어서 타라.
밖에서 나 안 보인다고
꽁무니 빼고 있지 말고
타면 보이니 얼른 타라.
(이 말씀, 신입생에게 하시는 말씀인가요?)
아니, 너희에게 주는 말씀이다.
아직 나와 선생을
일체로 못 보는 자들에게 주는 말씀이다.
일체로 못 보기에
선생을 앞에 두고
나를 따로 부르고 있다.
즉 차 밖에서
차 안의 운전석에 앉아 있는 나를 못 보고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는 격이다.
차가 성약성 가는 차라는 것도 알고
내가 운전하여 가는 것이라는 것도 아는데
이미 내가 운전석에 앉아서 출발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기에 차 밖에서 나를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는 것이다.
차에 올라탄 자는 선생을 나로,
나를 선생으로 정확히 본 자다.
정확히 보았기에 탄 것이다.
곧 선생을 나 자체로 인식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선생 따로, 나 따로 인식한
자들은 차를 못 타고 있는 격이니
내가 애가 타서 말하는 것이다.
알아도 타지 않으면 소용없다.
‘탄다’ 함은
나와 선생을 하나로 인식하는 것이다.
서둘러 선생 속에 있는 나를
확실히 인식하고 선생 차에 올라타길 바란다.
마음이 뇌의 이름이듯
선생이 내 이름이다.
고로 너희가 선생을 부를 때
내가 응답함이라.
선생이라는 차만 보고 따라온 너희에게
본체, 분체 말씀으로 선생 차를 운전하는
나 성자가 있음을 알려 주었고,
이제 다시 내가 선생 차에 들어가
운전대를 잡고 있으니
운전자가 누구인지를 제대로 알고
오직 선생 차만 중심하며 놓치지 말고
따라오라고 알려 주는 성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