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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2015.03.0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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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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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9일 새벽말씀(편집본) /2005.3.15 섭리의 나라 모두, 새벽을 깨우며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 안녕하셨습니까? 또 한 날이 시작 되었습니다. 또 말씀이 시작되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선생이 말씀합니다. 여러분들은 듣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들으면서 깨닫고, 좋으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 때 그 때, 그 순간순간 화답해 주시면 서 말씀을 듣기 바랍니다. 어른이 이야기를 하든지, 애인이 이야기할 때는 꼭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대답을 해야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장로들이나 그 모든 영광을 돌리는 자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옳소이다.” 그럽니다. 그리고 “아멘~”그럽니다. “옳소이다. 아멘~” 그렇게 합니다. “할렐루야!” 그렇게 꼭 응답을 해야 됩니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도 이야기를 하면 늘 화답을 해야 됩니다. 이러면서 말씀을 들으면 됩니다. 이 <역사>라는 것은 당세에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그런 터전 위에서 이 역사가 온 것을 생각할 때 과거 역사를 생각해야 됩니다. 어떻게 해서 자기네 집이 집을 짓고 사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자기 할아버지가 머슴살이하 고, 자기 아버지도 그 뼛골이 빠지며 일을 해서 겨우 집을 장만했다는 것을 알아야 그 집이 ‘아, 중요하구나. 죽어서도 귀히 쓰이기를 원하겠구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이렇게 만들었 구나. 이렇게 뼛골 빠지게 만든 집을 늘 귀하게 쓰고 귀하게 여겨야지. 늘 기도하고 써야 지.’ 그런 것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이렇게 난 것은 그런 터전 위에서, 그들이 세운 그러한 공적과 의의 표준에서 ‘너 의 자손들이 너의 뒤를 따라오면 잘되리라.’ 해서 그런 복을 받고 있어서 이만큼 좋아진 것 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서 감격하고 살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2000년 동안 터전을 닦아서 해 놨기 때문에 그 터전에서 이런 역사가 오지 그냥 은 못 옵니다. 월명동 돌 쌓을 때 30억년 씩, 20억년 씩 이 돌이 된 다음에 그 돌을 갖다가 쌓지, 그 당세 에 돌이 됩니까? 월명동 들어갔다고 해서 이 장소가 그냥 우리 장소가 됩니까? 우리 땅이었습니까? 조상들이 이미 오래 전인 150년 전, 160년 전에 쓰던 땅을 하나님이 주셔서 이렇게 땅이 되게 되었 지, 그냥 됩니까? 이 땅이 그냥 되었습니까? 우리 조상 때부터, 그 160년 전부터 고생하면서 여기서 살면서 이 땅을 차지해서 이 땅을 계속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된 것이 아닙니다. 그와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여기에 살면서 돈 많이 벌었어도 안 나가고 그 산골짜기를 지켰습니다. 본인 은 몰랐지만 하나님의 뜻이 있었으니까 지킨 것입니다. 아버지께 그러니까 “몰랐지. 그래도 안 간 것이 뜻이었던가 보다.”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대 전으로 이사 갔어 보십시오. 서울로 이사 갔어 보십시오. 아버지는 80년도에 이사 갔습니다. 80년도에 아버지가 어머니와 서울로 이사를 가셨습니다. 나는 그래도 초가집 그 조그마한 것 하나 남겨놓은 것을 계속 붙잡고 있었습니다. 뜻이 있 으니까. 이렇게 해서 이곳을 잡은 것입니다. 이 성지 땅을. 이렇게 하나님이 계속 역사해서. 붙잡아 주고, 역사해서 이곳을 잡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우리 섭리의 조상들, 일찍 온 사람들이 여기 가서 파고, 리어카로 흙 실어 날랐습니다. 리어카로 수천 리어카, 수만 리어카를 끌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차로 만 트럭 이상의 흙을 파냈습니다. 포클레인으로 파내고, 삽으로 파냈습니다. 그러면서 눈물겹게 80년도부터 한 10년, 20년 가까이 우리 전반전 뛴 사람들이 계속 작업 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눈물겹게 해서 얻었습니다. 많은 어려움과 핍박 이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못 올라가게 막고, “안 된다. 거기서 꾸정물 내려온다.” 하며 계속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기면서 결국 이것을 만들어 놨으니 지금은 귀하게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조상들이 한 것도 생각하고, 또 여러분들도 생각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를 했 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 후에 일찍 온 사람들이 리어카 끌고 다니면서 계속 눈물겹게 일했던 것을 생각해야 됩니 다. 80년대에 범석이가 서울에 와서 보니까 남의 운동장에서 배구만 해도 때가 되면 쫓겨나고 그러니까 ‘야, 이것 우리도 어디에 가서 무엇 하나를 만들자. 실컷 하루 종일 배구 좀 하게. 안 쫓겨나고 하루 종일 하게. 석막리, 월명동에 가서 만들자.’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통 해서 하셨습니다. 그가 사명자입니다. 항상 사명자에게 그것을 맡깁니다. 사명자에게 그것을 맡겨서 일을 하게 만듭니다. “네가 이것을 해야 되겠다.” 하면 이것을 맡기고, “네가 해야하겠다.” 하면 이것을 맡기고 그럽니 다. 그것을 반대하면 큰일 난다는 것입니다. “사명자를 통해서 사명을 맡긴다.” 그런데 사명자는 자기가 혼자 다 한다고 하면 안 됩니다. 나부터도 그럽니다. 나에게 다 안 줍니다. 내가 다 안 하는데 왜 나에게 다 줍니까? 내가 못할 것인데요. 그러니까 사명자, 이 주관권의 사명자를 통해서 무엇을 하면 “그렇다. 잘 봤다. 네가 해야 된다. 그렇다. 너 잘 봤다. 네가 해야 된다.” 하니까 너무 좋잖아요. 머리이니까요. 머리가 미처 생각 못했던 것에 손이 막 가잖아요 “어? 그래 잘한다. 그 물 컵 가지고 와라. 잘되었다 마시자.”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손발이 맞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명자를 시켜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렇게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그 피눈물 나게, 여러분이 못 먹고, 잠을 못 자가면서 만들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러분들이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핍박과 어려움을 겪고, 조상들을 통해서 역사를 했기 때문에 된 것입니다. 요즘 온 사람들은 뭐가 있습니까? 요즘에 온 사람들을 쭉 왔다가 그냥 기도만 하고 가고, “야, 너무 좋다.” 합니다. 요즘 온 사람이 무슨 작업을 합니까? 운동장에 청소나 조금 하지요. 요즘에 온 사람들은 특별히 할 일이 많이 없잖아요. 이제 일꾼들이 조금씩 뒷일 못한 것만 하지요. 여기에 와서 일한 사람들은 건축가들이라는 것입니다. 성전이니까요.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과거에 이런 핍박과 어려움이 엄청나게 많았구나.’ 알아야 됩니다. 몇 번 죽을 고비도 넘겼습니다. 한 두 명이 아니고 여기서 일하던 사람들은 여기가 무너져 서 다 죽을 뻔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 계속 왔던 것입니다. 요즘은 그냥 사용하 잖아요. 이제 온 사람들은 그냥 사용하지요? 그 감격하고 감사한 것을 모르잖아요. 모두 깨닫고 감격하고 감사함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온 사람들이 이렇게 눈물 나게 했다. 하다가 지쳐서 모두 쓰러졌다.” 그리고 일 하다가 허리가 아프고 몸이 아프고 쑤시고, 완전히 그 항우 같은 젊은 사람들이 쓰러져 버렸고, 신앙도 팔아먹게 되었고, 나중에 가서는 또 쓰러져서 잡아당겨 오고, 낙심하 고 이 정도로 하면서 계속 해서 여기를 일으킨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도 이렇게 수고를 해야 됩니다. 여기가 가나안 복지입니다. 우리의 현대식 가나안 복지입니다. 성전 가나안 복지입니다. 이곳을 여러분들이 차지했잖아요. 이곳을 차지 해서 이제는 모두 쓰잖아요. 눈물겹게 만들어서 쓰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수고하고 애쓰면 그 수고한 나름대로 다 받습니다. 받은 것을 가지고 귀히 쓰고, 기뻐하며 쓰고, 즐거워함으로 쓰고, 감탄함으로 쓰고, 하나님과 좋아함으로 쓰고, 하나님을 그 장소에 모시고 늘 영광 돌리며 쓰고, 그리고 노래하고 그렇게 써야 됩니다. 그렇게 안 쓰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똑같은 삶을 두고서 지루하게 인생을 사는 사람들... 똑같은 삶을 가지고.... 선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똑같은 24시간이고, 여러분들도 24시간인데, 어떻게 시간들을 사느냐? 나에게 준 말씀의 볼, 사명의 볼을 재미있게 하다보면 해가 넘어가고, 재미있게 산다는 것 입니다. 여러분들도 말씀 가지고 재미있게 뛰어야 됩니다. 그래야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그러면서 지구력 있게 하다보면, 재미있게 하다보면 언제 홀연히 나타나서 말씀을 전하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야, 나 왔다.”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겹 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들어 놓지도 않고 뭘 그럽니까? 선생님의 큰 것 중에 하나가 감사하는 생활을 많이 했습니다. 왜? 나는 돈도 없으니까, 백 도 없으니까, 줄 것이 없으니까 입으로만 한 것입니다. “하나님 너무 감사합니다.” 왜? 다른 사람은 돈을 내 주는데, 옛날에 내가 어렸을 때는 헌금가지고 가서 감사하다고 낯 내미는데 나는 헌금도 없고 하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 몸을 받으시옵소서.” 맨날 그랬는데 결국 받아주셨습니다. “내 몸을 받으시옵소서. 나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내 몸을 받으시옵소서. 어제도 드렸는데 오늘 또 드리겠습니다. 내 몸을 받으시옵소서. 내 몸을 하나님이 쓰시옵소서.”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니까 하나님이 잘 쓰시잖아요.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몸을 드려야 하나님이 잘 쓰신다는 말입니다. 10대들, 20대, 30대들, 가정국들도 다 하나님께 몸을 드렸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몸을 맡기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좋잖아요. 내가 계속 축복 해 줄 테니까 잘 되 라는 말입니다. “사기 당하지 않게 해 주옵소서. 그리고 잘 되게 해 주옵소서. 이들이 그 환난을 이기고 믿 고 따라왔으니까 앞으로 축복 받고..” 물질의 축복을 앞으로 얼마든지 받을 수 있도록 믿음의 조건을 세우고, 물질축복 받아도 흔 들리지 말아야 됩니다. 잘 되고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며 주님과 같이 먹고 마시고 같이 해야지, 자기만 먹고 마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도 축복 받으면 여러분과 같이 먹고 마실 테니까, 서로 그렇게 하자구요. 그것이 무엇인 가 하니, 신약 시대 같이 유물상통주의입니다. 나도 축복 받으면 여러분에게 같이 줄 테니 까, 여러분도 축복 받으면 같이 먹고 살자구요. 너무 좋잖아요. 신부이고, 신랑이니까요. 신 랑은 신랑대로 꼽치고 신부는 신부대로 꼽치면 무엇을 먹겠습니까? 그렇게 되어서 나중에 먹을 것이 없으니까 서로 각각 먹으면 안 됩니다. 가정 생활하다보면 신랑 못 믿어서 꼽치잖아요. 조그만 사업체 하나 만들어놓고, 남편은 남 편대로 만들어놓고 꼽치고 그러는데, 그러지 마십시오. 나는 그렇게 추접한 인생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습니다. 무엇을 꼽치고 그렇게 안 했습니다. 꼽쳤으면 결국은 여러분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니까 너무 좋으 니까. 새벽예배 나오고, 열심히 하니까. 새벽예배 나오기 힘들지요? 몸부림치지요? 너무 힘들지요? 오늘 아침에 자는데 “시간 되었다. 종 밥이 울린다. 종이 울리기 전에 일어나려면 지금!” 그 랬습니다. 그래서 내가 “으음, 아이고 목 아파.” 하고 후다닥 일어나니까 나중에 종 밥이 울렸습니다. 그 말하고 나서 30초 넘어가니까 딱 종이 울리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여유 있게 일어났습니 다. 아주 여유 있게 일어났습니다. 10분 더 자 봤자 계속 하루 종일 10분에게 쫓깁니다. 그 러나 10분 여유 있게 하면 계속 하루 종일 10분 여유 있게 해 나가니까 그렇게 사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즐거워하면서 기뻐하면서 사십시오. 그런데 한 가지는 뭔가 하니, 혼자 하나님과 즐거워하고 영적으로 하는 것도 좋은데, 그래 도 사람들이 있어야 되겠더라는 것입니다. 앞날을 희망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 분들 만나고 이야기하는 그런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이 엄청난 것을 합니다. 여 기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내가 자체로 되어야 될 것은 자체로 해야 됩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필요 없습니다. 연단하는데, 그리고 시대의 신령한 말씀을 하는 데는 사람이 필요치 않지 않습니까? 여러분들도 한참 연단 받고, 막 하는 데는 내가 필요 없단 말입니다. 부활되는 이런 때, 여 기저기서 일어나고 빽빽거리고 후다닥 거리는 데는 내가 필요 없습니다. 개가 훈련할 때는 주인이 옆에 서있으면 절대 못 합니다. 주인만 자꾸 쫓아가고, 주인 말만 들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엄하게 해서 훈련을 시킵니다. 훈련을 다 한 다음에 주 인이 데리고 가면 그때는 주인 말을 듣지요. 대신 훈련시킨 사람이 주인한테 “이렇게 하라 고 하면 할 것입니다. 옛날식으로 하지 마십시오.” 이런 입장과 같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귀하니까 하나님께 묻습니다. “나는 애들을 그렇게 귀하게 보고 맨날 크게 본다고 하는데 얘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습니 다. 얘는 지금 뭐하지요?” “얘? 지금 뭐하고 있다.” “나에게 관심 갖고 있나요?” “아니.” “이것이 뭐야? 나만 관심 갖고. 정말 눈물이 찔찔 나네... 나는 얘들에게 관심 갖고, 많은 기 도도 해 주고 그러는데.” 몇 번을 물어봐도 “너에게 지금 관심을 안 갖고 있어. 네가 그렇게 기도하는지 몰라. 아무 것도 아니다.” 하십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했습니다. “이와 같이 내가 세상을 그렇게 사랑하는데도 어느 누가 그렇게 나에게 관심을 갖느냐? 관심을 안 갖는다고 버려 보아라. 나만 손해가지. 관심 안 가져도 조금씩이라도 내가 이야기하면 듣기라도 하니 다행이다. 설교시간이라도 듣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살아야지.’ 하니 그것이라도 다행이다. 평소에 하루 종일 범사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합니다.’ 하면서 살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게 얼마나 삶에 보람이 있겠느냐? 그렇게 못사니까 인생들이 곤고하고, 쓸쓸하고, 고적하고, 그 나머지 시간에 염려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냐?” 그래서 내가 “이들이 이렇게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강압적으로 역사해서 은혜를 주옵소서. 그렇게 뒤집어지고 하게끔 은총을 주시옵소서. 불같은 역사가 식지 않게 해 주옵소서.” 라 고 매일 기도합니다. “애들이 어리니까 힘을 주시옵소서.” 기도합니다. 사람에게는 이것이 있습니다. “모든 법칙은 동일하다.” 어린애가 낳아서 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부모가 몇 달 동안 했다고 해서 그렇게 큽니까? 내내 어린애이지요. 몇 달 동안 그렇게 막 안아 주고 빨리 크라고 했는데, 몇 달 사이에 그 렇게 컸습니까? 역시 어린아이지요. 우리들은 몇 달 동안하고 나면 ‘야아, 이제 내 신앙이 많이 컸겠다.’ 하는데 정신이 사상만 다른 사상으로 뒤집어졌지요. 몇 달 안에 그렇게 큽니까? 나무에 물을 막 주고 퇴비한다고 몇 달했는데 그렇게 큽니까? 안 크는 것입니다. 나무도 그 렇고 모든 법칙은 동일한 것입니다. 한 3년쯤을 그렇게 물을 주고 하면 나무가 조금 큽니 다. 큰 것이 표가 납니다. 손가락만 한 어린 나무도 한 3년을 하게 되면, 부지런히 하면 손 목 정도 큽니다. 3년 부지런히 하면 그렇게 됩니다. 사람도 똑같습니다. 3년을 기르니까 어느 정도 큽니다. 이제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기어 다 니고 어느 정도 컸습니다. “그와 같이 똑같다.” 나무를 갖다가 옮겨놓으면 새 뿌리를 박고서 새롭게 속잎이 다시 올라옵니다. 그러니까 3년 동안 무엇을 하면 조금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새 뿌리를 박아서 ‘이제는 살겠다.’ 그럽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제 몇 달, 5-6개월, 1년, 이 정도로는 어린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다 컸다고 놔두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관리자들이 관리를 못하는 것이고,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3년은 길러야 겨우 엎어졌어도 일어나서 왔다 갔다 합니다. “엄마, 엄마!” 합니다. 귀엽지 않습니까? 사람의 신앙이 그렇게 금방 크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나 같은 사람이 있다 합시다. 그러면 새로 교회를 다닌다면 그 영이 다시 작아 지지 않습니다. 그 영이 있는데, 새로운 영으로 거듭난 영으로 되었을 때 한살입니다. 신앙 1년 했으면 영 적 나이 1년입니다. 어떤 사람이 1년 동안 영어공부를 배웠습니다. 그러면 나이가 30살이 되었을지라도 영어실 력으로는 1년에 있는 것입니다. “영어 실력 1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영들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여줄 때는 인식하라고 어린아이로서 보여 줍니다. “그 영은 크다. 그러나 모든 신앙적인 것, 모든 것이 1년 컸으면 1년만큼 신 앙이 들어갔기에 1년 나이로 보는 것이다. 영은 크다. 그러나 어린아이로 보여준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사는 것도 있고, 고욤나무에 접붙이는 것으로 어린 영으로 생각하는 것도 있 다.” 여러 가지 방향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래서 여러분들이 “몇 년씩 커야 성장된 사람이다. 오래되었어도 짧은 시간에 많이 배운 사람하고는 또 다르다.” 어떤 사람이 영어공부를 5년 동안 했습니다. 그런데 5년 되었어도 3년 동안 열심히 한 만 큼 못 배운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이 2년 동안 열심히 한 만큼 그 실력이 없는 사람도 있 습니다. 정확하게 안 배운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열심히 안 한 사람은. 그와 같이 그러하다 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들도 이제 왔다고 해서 1년 되었다고 허리 펴지 말고, 2년 되었다고 허리 펴지 말고, 3년 되었다고 허리 펴지 말아라. 계속 꾸준하게 여기서 커라. 옆에서 도와주기도 하지 만, 본인도 커라. 그러다 보면 하나님이 지켜 주니까 잠깐 큰다. 그렇게 금방 크는 것이 아 닌 것으로 알도록 하라.” 10년 되었어도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흔들거리면 안 됩니다. 이런 진리의 말씀이 철근입니다. 손가락 같은 철근 넣지 말 고, 한 아름 되는 철근을 넣고, 팔뚝만한 철근을 넣어서 건물을 탁 지어야 흔들림이 없습니 다. 그래서 반석 위에 집을 지어야 됩니다. 그리스도 위에, 그리스도를 중심한 위에 집을 지어 야 됩니다. 메시아를 중심해서 집을 지어야 됩니다. 그러면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런 한 아름씩 되는 철근이 무엇입니까? “이런 진리의 말씀이 바로 철근이다.” 철근이 많이 들어가야 그 건물이 좋단 말입니다. 요새는 한 아름씩 되는 철근이 막 들어가 잖아요. 큰 골격이 들어가잖아요. “철근 넣고 이 시대의 복음의 말씀을 듣고 나가면 흔들림이 없다.” 이러면서 가야지, 흔들 리면 절대 안 됩니다. 흔들리면 하나님이 역사 안 합니다. 지금 역사가 가고 있잖아요. 2000년 넘어가서 가고 있잖아요. “2천년에 누가 온다. 말세 때 온다.” 했는데, 말세 때 모두 다르게 됐잖아요. “지구 없어진다. 심판한다. 녹아진다. 해가 변한다. 뭐 한다.” 했지만 해가 변하기는 뭘 변했습니까? 일식하는 것 봤잖아요. 프랑스에서 일식 하는 것을 봤습니다. 나는 봤습니다. 비디오로 다 찍어 놓았습니다. 그 성경에 있는 것하고 이렇게 다릅니다. 핵심적인 근본으로 이야기한 것은 무엇인가 하니 그 해가 변한 것 보다 근본은 “해 같은 구시대가 빛을 잃는다.” 입니다. 구시대가 빛을 잃 었습니다. 새 시대가 빛나게 계속 가지 않습니까? 우리 전반기 역사는 보다 육적 역사라고 했지요. 빛을 잃고 새 시대 역사로 쫙 갑니다. 후반기도 계속 해서, 육신이 안 죽었으니까, 영이 살았으니까 계속 주관하면서 가는 것입니 다. 그래서 가나안복지형에 우리가 와서, 우리가 젊은 시대, 2세들같이 하고 있습니다. 여러 분들은 다 2세들입니다. 기독교 2세들입니다. 나이가 40살, 50살 먹어도 믿고 따라온 사람 들은 전부 2세들입니다. 그러면서 새로 지금 오는 2세들, 젊은 애들과 같이 자체의 새로운 땅을 발견하여서 이제 자체로 우리가 역사를 해 나가면서 쫙 펴 나갑니다. 생명은 길러놓고 봐야 됩니다. 어찌 되었든지. 잃은 양을 꼭 찾으러 다녀야 됩니다. 놔두면 안 됩니다. 찾다보면 산양도 찾고 되고, 남의 양도 찾아서 많이 데려올 수 있잖아요. 끝끝내! 이제는 앞으로 뜻 있게 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 도> 사랑하는 아버지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 새벽에 이와 같이 말씀하심을 감사하고, 주님 께서 말씀하심을 감사하고, 성령으로 감동시킴을 감사합니다. 과거를 생각할 때 힘 있게, 뜻있게 역사하셨고, 지금도 하나님께서 힘 있게 우리를 붙잡아 주십니다. 애인이니까 사랑하는 신부들이니까 좋아하면서 사랑하니까 늘 그런 것을 생각하 면서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살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뜨거운 역사로 우리에게 늘 뜨겁게 역사하니 지금도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이 뜨거워 지고, 심령이 뜨거워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충만케 채우시고 함께해 주옵소서. 신부들이니까 늘 걱정하지 말고, 기뻐하면서 “이런 환난기도 참았는데 이까짓 것 아무 것도 아니다.” 하면서 가라고 했습니 다. 모두 의논하면서 하나 되어서 열심히 말씀의 뜻을 깨닫고 살게 축복하심을 감당케 해 주시 옵소서.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과 은혜가 이들에게 함께하고, 그리고 성령의 감동 감화역사하심과 은 혜로움이 함께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하심과, 나의 빈 사랑과 은혜와 진리가 이들에 게 차고 넘쳐서 이 말씀을 듣는 이 시대 사람들과, 후대에 있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심령이 살아나 시대를 믿고 열심히 따라서 모든 것을 해결 보며 가게 축복해 주옵소서. “너희 중 핍박을 받는 자, 복이 있다. 천국이 저희 것이다. 핍박과 환난을 이긴 자, 받는 자 는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놨다.” 했습니다. 핍박을 받고 이길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늘 지켜주심을 감사하옵나이다. 평강이 이들 위에 함께 하고 영원할지어다. 할렐루야 아멘.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