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5.03.29 (일)
주일말씀
- 선포일
- 2015.03.29 (일)
- 성경 본문
- 사도행전 9장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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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29일 주일말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행하신다
본 문 사도행전 9장 1-22절
민수기 22장 13-33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지난주에 <성자 승천>에 대한 말씀을 듣고,
<성자 승천일>에 행사 현장에 참여하지 못한 자들 중에서
자기는 휴거되지 못해서 그랬다며 낙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육>으로 휴거되어 천국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휴거되어 천국에 오릅니다. 알지요?
그러니 휴거되지 못해서 그날 현장에 참석하지 못했다며
낙심하거나 자기중심으로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또 성자 떠나실 때 같이 못 갔다고 낙심하지 말고,
어서 부지런히 <지난 휴거의 말씀>을 듣고 행하며
휴거되어 성자를 만나러 가기 바랍니다.
◎ 휴거된 자들도 계속해서 400선, 500선을 향해 가기 바랍니다.
◎ 이제는 성삼위와 보낸 자를 ‘먼저 사랑’하며
‘그동안 못 한 것들’을 부지런히 찾아서 해야 될 때입니다.
(* 성자 승천에 대한 자세한 말씀은 3월 22일에 해 주었지만 한 번 더 해 줌 – 시기)
<잠시 쉬었다가>
◎ 그러면 오늘 말씀을 전해 주겠습니다.
말씀을 시작하기 전에, <말씀>에 대해서 잠깐 전초하겠습니다.
◎ 원래는 선생이 성자께 앞으로는 설교를 짧게 줄이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성자는 <말씀의 비밀>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 <말씀>은 ‘칼’과 같다.
칼로 고기를 썰어서 음식을 만들어야 되는데,
아무리 ‘예리한 칼’이라도 한두 번만 썬다고 고기가 썰리겠느냐.
예리한 칼로 썰어도 여러 번 썰어야
고기가 썰려서 음식을 만들 수 있다.
이와 같이 아무리 <생명의 말씀>이라도
‘합당한 시간’만큼은 들여서 말씀해 줘야
충분히 이해시키고 깨닫게 해 준다. (하셨습니다.)
◎ 그리고 또 <말씀>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 <말씀>은 ‘돌을 깨는 석공의 쇠망치’와 같다.
<설교 시간>은 ‘말씀의 망치’로
너희 뇌와 마음의 그릇된 것들과 궁금한 것들을 깨부수어
궁금증과 의문을 풀어 주는 시간이다.
그런데 <말씀의 망치>로 한두 번만 때린다고
그것이 다 깨져 없어지겠느냐.
어떤 자의 것은 시간이 모자라서 다 못 깨 주어
머리에다 모순을 그냥 달고 가게 한다.
★ 또한 <설교 시간>은 조각가가 조각을 해 나가듯
나 성자와 네가 설교자의 육을 쓰고
‘각 사람들의 마음을 조각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말씀 시간>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
만들다가 도중에 끝나면, 얼마나 찜찜하겠느냐.
★ <말씀>을 들으면서
너희 자신이 떼어 낼 것은 떼어 내고, 쫓아낼 것은 쫓아내어
너희 ‘육과 혼과 영의 형상을 예쁘고 멋있게 만드는 시간’이
곧 <설교 시간>이다.
그러니 <설교 시간>이 얼마나 좋은 시간이냐.
오히려 말씀을 더 달라고 하여라. (하셨습니다.)
◎ 그래서 오늘도 <말씀>을 충~분~히 해 줄 것입니다.
여러분도 성자의 마음과 동일합니까? (잠시 대기)
그럼, 오늘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삼위일체가 인간에게 역사하며 행하실 때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행하십니다.
오늘은 이 두 가지 비밀에 대해 말씀해 주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인간이 유익하도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우시고 축복하십니다.
그리고 인간을 통해 삼위의 뜻을 실천하시는데,
수십 가지, 수백 가지, 수천 가지 방법으로 행하십니다.
오늘 말씀해 주는 ‘두 가지 핵심’만 알면,
삼위가 행하시는 수천 가지의 방법도 알고
이와 같이 이러하다고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이 두 가지’로 행하신다는 것을 배우고 알아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행하심을 오해하지 않고,
불만할 상황에도 감사하며, 서운해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고 감탄하며 삼위를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말씀을 잘 듣고, 삼위일체를 제대로 알고 대하며 살아야
삼위도 우리를 더욱 보호해 주시고,
우리의 꿈을 더욱 실현시켜 주시고,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더욱 주십니다.
꼭! 오늘 말씀을 잘 듣고 잘 배우기 바랍니다.
◎ 오늘 말씀을 시작하기 전에 <말씀>에 대해
조금만 더 전초하고 말씀 시작할까요?
<똑같은 말씀>을 <똑같은 귀>로 듣습니다.
그런데 누구는 더 감동받고 실천해서 엄청난 것을 얻지만,
누구는 덜 감동받고 실천하지 못해서 얻지 못하고,
알지 못하여 하늘의 도움을 못 받아
다치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고생하기도 합니다.
<말씀을 실천하여 얻는 자>와
<말씀을 실천하지 못하여 못 얻는 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
그 차이는 마치 ‘부자’와 ‘거지’ 같습니다.
어디에서 이런 차이가 나는 문제가 발생하는지
한마디로 말해 주겠습니다.
말씀을 귀히 여기느냐, 보통으로 여기느냐
그 ‘생각의 차이’에서 발생합니다.
<생각>이 ‘칼’이며 ‘무기’입니다.
<생각의 강도>에 따라서
원자폭탄이 되고, 전투기가 되고,
조약돌이 되고, 바위가 됩니다.
<말씀>을 ‘금’같이 귀히 여겨야 됩니다.
‘말씀을 귀히 안 듣고 안 지키면 오늘 죽는다.’ 생각하고 들으면,
목숨같이 귀히 듣고 지키게 됩니다.
말씀을 보통으로 듣는 자들에게는 정말 전해 주고 싶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말씀을 귀하게, 중하게 듣는 자들만 따로 빼다가
전해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말씀을 못 들은 자들은
계속해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선생을 모르고 오해하고,
등을 돌리기도 하고, 또 얻을 것을 못 얻게 됩니다.
그래서 설교 때, 마치 진수성찬을 모두에게 먹이듯
성자의 말씀을 모두에게 전해 주니
모두 말씀을 귀히 중히 여기고 듣고 행하기 바랍니다.
말씀을 귀히 듣고 매일 생각해야
그 말씀이 ‘자기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삼위가 자기에게, 형제에게, 섭리사에 어떻게 행하시는지 알고
증거하며 가르치고 전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사탄을 물리치고, 무지 속에 상극하지 않게 됩니다.
삼위의 행하심을 모르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자기를 위해 무엇을 해 줘도
무지 속에 상극하여 서운해하고, 오해하고, 등을 돌리게 됩니다.
◎ 이제 <말씀에 대한 전초>가 끝났습니다.
모두 말씀을 귀하게 받아들이고 생각할 준비가 됐습니까? (아멘.)
정말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어떤 목적을 두고 사람을 통해 행하실 때는
크게 나누어 ‘두 가지 방법’으로 행하십니다.
<첫 번째 방법>은
감동을 주시어 순리적으로 행하십니다.
<두 번째 방법>은
우리가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우리가 하는 일을 막고 틀어서 못 하게 하여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뜻을 이루시고,
그 사람이 원하는 뜻을 더 좋게 이루게 해 주십니다.
이 두 가지 방법은 ‘성삼위가 행하시는 방법의 핵심 답’입니다.
이 두 가지를 꼭 암기해야 됩니다.
간단히 말하면,
‘감동시키기’와 ‘뜻이 아닌 것은 틀어 버리기’입니다.
다 같이 크게 따라 해 볼까요?
<영상1> 첫째, 감동시키기.
둘째, 뜻이 아닌 것은 틀어 버리기.
선생도 여러분들을 도울 때는
먼저 여러분이 ‘하나님의 올바른 뜻’을 깨닫도록
편지나 말씀으로 감동시켜서 행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 말을 안 들으면,
그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뜻’이 아니니
그 일을 틀거나 막으면서 돕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도 그리하시니,
선생도 그 방법을 따라서 행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모두 겪어 봤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 때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먼저 감동을 주시며 못 하게 하셨습니다.
마음에 감동을 주기도 하시고,
사람을 통해서 못 하게 하며 감동을 주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감동을 무시하거나,
하나님이 사명자로 쓰고 막은 사람만 은근히 원망하며
자기를 막았다며 욕하고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선생까지 오해하며
“왜 막고, 틀고, 허락하지 않았지?” 하며 서운해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계속 섭섭해하다가 섭리사를 나가기도 하고,
혹은 괴로움으로 시험에 들어서 신앙의 힘이 빠져
주저앉고 낙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성자는 <“잠깐만!”에 속하는 비밀의 말씀>을
전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죽을 곳>인데 모르고 가니 감동을 주어 못 가게 하고,
<고생 길, 고통 길>인데 모르고 가니 감동을 주어 못 가게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인데 육성이 강해서 좋아하며 계속하니
감동을 주어 못 하게 막습니다.
또한 전환할 때가 되어서 <다른 일>을 하도록 틀어 주는데,
그것을 모르고 서운하게 생각하며 힘들어하기에
감동을 주어 깨닫게 합니다.
또한 그 일을 하기에는 너무 부족하거나 안 맞으니
<다른 일>을 하도록 상황을 틀어 주며 교정해 주는데
서운해하며 이해를 못 하니, 이때도 감동을 주어 깨닫게 합니다.
그러나 감동을 줘도 계속 하던 대로 하니,
<두 번째 방법>으로 ‘천사나 사람’을 통해서
그 하는 일을 틀고 막아서 안 되게 합니다.
그러면 “왜 막냐? 왜 트냐?” 하면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원망하며 서운하게 생각하고,
선생에게 불만을 품고,
하늘 심부름을 하러 간 사람을 은근히 미워하고 싫어하고 욕하며
“쥐뿔도 모르면서 내 인생길 막네.” 합니다.
이런 자들이 정말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 무슨 일을 할 때 계속해야 되는지 성자께 물어보면,
성자는 앞날을 보시고 그 일이 안 맞으니 못 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 말을 전해 주면,
은근히 서운하게 생각하고, 선생을 오해하고,
마음을 돌리고, 등을 돌리고, 뒷말을 합니다.
그러니 ‘살 길’을 전해 주기도 부담되어
어느 때는 편지도 안 하고 기도만 해 줍니다.
말로 하면 잠깐이면 되는데, 기도로 하니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선생은 더 좋게 하기 위해 말해 주는데
말을 해 줘도 혹시나 오해할까 봐
겨우 몇 마디 이야기해 놓고 반응을 봅니다.
성자께 ‘어떻게 하라.’는 답을 받고도
그 말을 듣고 오해하고 서운해할까 봐 전해 주기가 힘드니,
구원하는 사명자라도 그런 사람을 대하는 것이 참 부담됩니다.
그 사람이 하는 일을 새롭게 다른 방법으로 해야 하니
성자의 말씀대로 ‘방향’을 틀어 주면,
자기는 자기가 하던 대로 하는 게 좋은데 왜 틀고 막냐고 따집니다.
왜 그렇게 하는지는 ‘앞날의 비밀’이니, 선생도 모릅니다.
오직 하나님, 성령님, 성자만 아십니다.
선생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성자의 방향과 다르면,
성자는 선생에게 감동을 주시며 그 일을 못 하게 하십니다.
그래도 선생이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성자는 바로 ‘방향’을 틀고 ‘상황’을 틀어서
그 일을 막고 못 하게 하십니다.
그때는 토를 달지 않고, 성자께 순종합니다.
성자가 좋게 해 주시지, 안 되게 해 주시겠습니까?
<잠시 쉬었다가>
사람이 육성이 강하면,
하지 말라는 것과 뜻이 아닌 것을 자꾸 하게 됩니다.
그러다 다치고, 사고도 당하고, 죽기도 합니다.
그러니 성자는 다치지 않게, 죽지 않게 미리 틀고 막으십니다.
그때 왜 막았냐고 하면, 하나님도 성자도 답을 안 주십니다.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가면 사고 난다. 사기 당한다. 다친다. 네 수고가 헛되게 된다.
차가 뒹굴어서 다 죽는다. 비행기가 추락한다. 건물이 무너진다.”
다 알아도 <비밀>이라서 안 알려 주십니다.
그러나 절대 감동을 주시며 못 가게, 못 하게 하십니다.
또한 방향과 상황을 틀어서 못 가게, 못 하게 하십니다.
내용을 알고 안 하는 것은 누가 못 하겠습니까?
사람이 항상 다치고, 사고가 난 후에야
“내가 왜 그랬나?” 하며 후회합니다.
감동을 주고 상황을 틀고 막는 것이
강력하게 내용을 말해 주는 것과 똑같습니다.
또한 <앞날>은 ‘하늘의 비밀’이라서
하늘이 보낸 사명자 외에는 누구에게도 다 말해 주지 않습니다.
고로 내용을 몰라도 감동을 주거나 상황을 틀고 막으면,
믿음의 조건을 세우고
하늘이 보낸 사명자를 믿고 그 말을 듣고 행해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첫째, 감동 시키기. / 둘째, 틀고 막기.
이것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잠깐만!” 하시며
우리를 붙잡고 도우시고 역사하시는 방법입니다.
어떤 자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선생’을 통해 막았는데 말을 안 듣고 가다가
<육신>이 해를 받기도 했고,
<영혼>이 죽어 사망으로 가기도 했고,
어떤 자는 <재산 수십억>을 사기 당해서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섭리역사 37년 동안 이런 일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특히 삼위는 우리가 <이성의 죄>를 안 짓도록
감동을 주시고, 상황을 틀고 막으며 역사하십니다.
<이성의 죄>를 지으면 ‘창조 목적’이 깨지기 때문입니다.
설교할 때, 평소에 생활할 때
“그것은 하지 마라. 그곳은 가지 마라.” 하며 감동을 주십니다.
사고 나지 않고, 다치지 않고, 죽지 않게
미리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 <감동>이 얼마나 귀한지, 진정 깨닫기 바랍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지혜롭고 큰 사람>은 자기가 어떤 곳을 가려고 했는데
하늘이 감동을 주고 틀고 막으면,
‘아! 무슨 일이 있구나. 무슨 사연이 있구나.’ 하며
순종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며 안 갑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가려던 그곳>에 사고가 나서
그곳에 간 사람들이 거의 다 죽는 일이 발생한 것을 알고,
더욱더 성삼위께 감사하며 영광 돌립니다.
그러나 <무지한 사람>은
하늘이 다 알고 못 가게, 못 하게 감동을 주고 틀고 막으면,
자기 육성으로 불평하고 불만하며 가 버리고 행해 버립니다.
그러다가 해를 당하고는 “하나님은 왜 안 도와주셨지?” 합니다.
자기가 가 놓고, 해 놓고는 하나님을 향해 서운하게 생각합니다.
세상에도, 섭리사에도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자기 인생의 원망의 대상’으로 삼는 자들이 참 많습니다.
이들은 정신이 정상이 아닙니다.
자기의 육, 혼, 영을 도우시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자기 스트레스를 푸는 대상으로 삼고
자기 맘대로 생각하고 말하는 자들이 참 많습니다.
기저귀를 차고 사는 철부지 어린아이입니다.
나이를 먹었는데 ‘삶의 기저귀’를 차고 다니면,
모두 비웃으며 정상인으로 안 봅니다.
어서 정신의 수준, 생각의 수준, 신앙의 수준을 높여서
인격 있는 신부로서 살기를 진정 축복합니다.
항상 ‘합당하지 않은 길’을 가거나
‘합당하지 않은 일’을 하면,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그 분체도
직접, 혹은 천사나 사람을 통해 감동을 줘서 못 하게 합니다.
그래도 하면, 상황을 틀어서 안 되게 합니다.
이 두 가지를 알았으니 매일 잊지 말고
기도할 때도 그리하겠다고 고백하고,
꼭 자기에게 그렇게 역사해 달라고 구해야 됩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로 역사해 주시면,
모든 것을 하늘 앞에 맡기고
삼위와 분체를 오해하지 않고 이해하며
하나님의 뜻도 이루고, 자기 뜻도 더 좋게 이뤄야 됩니다.
어느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것’을 잘되게 해 주기 위해서
‘상대의 것’을 틀어 안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만물 계시>로 <감동>으로 강하게 역사하시어
그것을 행하여 얻게 하십니다.
그러나 자기가 간절히 원해도
하나님은 ‘때’에 맞춰서 더 좋게 해 주시려고
처음에는 잘 안 되게 상황을 틀기도 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나는 지금이 좋은데, 왜 지금 안 해 주시지?
내게 해 주시면 해가 될 것이 없는데
왜 상황을 틀고 막으시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해’를 피하고 ‘더 좋게’ 해 주시려고
<때>에 맞춰서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니까
자기가 해를 피하고 더 좋은 것을 얻고 겪은 뒤에야 깨닫고,
하나님을 찾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제야 하나님을 찾고 좋아하고 감사하니까
삼위는 영광을 안 받을 수 없으니
찜찜하게 영광을 받으신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우리를 사랑해서 더 챙기십니다.
또한 ‘하늘의 뜻’에 맞춰서 ‘더 잘해 주시려고’
자기중심으로 가는 길과 자기중심으로 하는 일을
어련히 알아서 틀고 막으신다는 것을
미리 알고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이런 자는 진짜 믿음을 지키고 믿음의 조건을 세운 자입니다.
삼위 앞에는 항상 ‘감사, 영광, 기쁨, 사랑’입니다. (믿습니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섬기고 사랑하는 자들이
때를 골라 가면서, 상황을 골라 가면서
자기를 중심하여 자기 좋은 대로 영광 돌리면 안 됩니다.
삼위가 자기를 어떻게 대하시든지,
언제나 ‘감사, 감격’하고 ‘사랑과 영광’을 돌려야 됩니다.
마음이 좁고, 너그럽지 못하고, 착하지 못하고, 옹졸하여
삐쭉빼쭉하면서 자기 기분에 따라서 전능자와 주를 대하면 안 됩니다.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환난 때나, 어려움을 당할 때나, 기쁠 때나
항상 웃으면서 사랑으로 전능자와 주를 대해야 됩니다.
성자와 주가 하는 것을 끝까지 봐야 됩니다.
그래야 최고 신앙의 신부가 되고,
삼위일체의 사랑의 대상이 되고,
휴거되는 자로서의 인격을 갖춘 자가 됩니다.
결국을 보면 전능자도 주도
축복해 주기 위해서, 좋아서, 사랑해서 더 좋게 해 주기 위함입니다.
<똑같은 말씀>을 들어도 ‘자기 정신, 생각, 행위’에 따라서
신부가 되기도 하고, 못 되기도 합니다.
<신부 시대>라서 여러분은 ‘성자와 분체의 신부’입니다.
고로 성자도 분체도 <신약시대>, 곧 <자녀 시대, 형제 시대> 때보다
더 자세히 가르쳐 주어 행하게 합니다.
<전환>
◎ 이제부터 삼위가 <감동>을 주실 때 왜 그 말을 들어야 되는지,
실제 사례를 말해 주겠습니다.
◎ 삼위가 <감동>을 주시며 행하신 일은
본인이 겪었으니 본인이 직접 증거해야 실감 나고,
여러분도 그와 같은 사연이 있음을 깨닫고
삼위께 영광 돌리게 됩니다.
◎ 섭리사에서 자기가 각종으로 겪은 일들을
선생에게 편지로 보내 줍니다.
그러나 선생이 직접 겪은 일이 아니라서
그 심정 표현을 본인만큼 실감 나게 해 주지 못합니다.
그러니 삼위가 감동을 주시고 상황을 틀어 주시어
꼭 죽을 것인데 살아난 사람들이 있으면,
CTN에서 취합하여 수요일 밤에 잠깐씩만 증거하게 해 주겠습니다.
그러니 하루에 세 명씩 돌아가면서 간증하여 보여 주고,
격월간지 <섭리역사>에도 기사를 실어서 간증하기 바랍니다.
◎ 지난번 주일설교 때 <한국의 삼풍백화점>이 무너져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때,
삼위가 감동을 주시어 살아난 자의 이야기를 들었지요?
그 말씀을 듣고 섭리인들 중에서
“저도 그날 <삼풍백화점>에 있다가 나와서 살았습니다.” 하며
선생에게 여러 사연을 보내 준 자들이 있었습니다.
선생이 그 편지를 받고 너무 놀라고 감사해서
오늘 몇 가지만 말해 주려 합니다.
이때의 사연 세 가지와 다른 사연 한 가지를 말해 주겠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첫 번째 사연입니다. (간증 내용을 설교로 넣어야 함)
하나님은 모든 것을 완~전히 아시고,
감동을 주시며 상황과 여건을 틀며 역사하십니다.
이때 깨닫고 행하는 자를 살리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실 때
서운함을 타거나, 오해하거나, 등을 돌리고 안 하면
큰 해를 보게 됩니다.
◎ 두 번째 사연입니다.
두 번째 사연은 영상을 통해서 듣겠습니다. <영상2>
하나님이 감동을 주시며 상황과 여건을 틀어 주시는데도
사람들은 자기 생각대로 기도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해 달라고 합니다.
참 하나님의 심정을 모르고 삽니다.
하나님이 더 좋게 해 주시고, 해를 피하게 해 주시려고
감동을 주시고 상황과 여건을 틀어 주시니
불평불만 하지 말고 감사하며 기뻐해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 세 번째 사연입니다.
영상을 통해 그 사연을 듣겠습니다. <영상3>
여러분도 모두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도움으로 살았습니다.
꼭 생각해 보고 깨달아야 됩니다.
그리고 감사하며 영광 돌려야 됩니다.
선생이 조은 목사를 한창 가르칠 때,
조은 목사에게도 꼭 지난날을 돌이켜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꼭 죽을 데서 살려 주신 일이 있으니,
생각하고 기억하고 감사하며 영광 돌려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때 조은 목사는 사연 하나를 기억하고 이야기했고,
지금까지 그때를 잊지 않고 늘 감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 네 번째 사연입니다. (정조은 목사가 직접 간단히 설명)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이같이 ‘작고 큰 사고’를 두고도
감동을 주시고 여건을 틀어서 행하십니다.
그런데도 모르고 하나님을 오해하고,
서운하게 생각하고, 등을 돌립니다.
이런 근성은 ‘사탄의 근성’이니, 꼭 고쳐야 됩니다.
그래야 죽을 데서 살고, 다칠 데서 피하고, 고생할 데서 피하여
유익이 되고 복을 받게 됩니다. (아멘.)
★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에서 최고로 큰일이 무엇이냐.
<육신>을 죽음에서 살게 해 주고,
<영혼>을 죽음에서 살게 해 준 일이 아니냐.
기쁨이 무엇이냐. 낙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나 성자와 성령님과 함께 해 준 것을 생각할 때다.
그것을 잊으면 ‘기쁨’이 죽는다. ‘사랑’이 죽는다.
과거에 해 준 것을 생각해라.
그것을 잊으면 ‘희망’도 ‘낙’도 없다.” (하셨습니다.)
★ 평생 인생을 살면서 사랑과 기쁨을 느끼라고
<인생에서 최고로 큰일>을 해 준 것입니다.
곧 <육>을 죽음에서 살려 주고,
<영>이 지옥 가는 데서 살려 준 일입니다.
그러니 그날을 생각하고 기억하며
늘 전능자를 사랑하고 기뻐하며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선생은 지금까지 60번 정도 죽을 고비가 있었는데
삼위께서 감동을 주시고 틀고 막아 주시며 살려 주셨습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죽음의 위기가 있었기에
어머니는 내게 명이 길게 오래 살라고
이름을 ‘명석’이라고 지어 주셨습니다.
한 사람당 세 번에서 오십 번 정도는
육도 영도 죽음에서 살려 주셨습니다.
고로 깨닫고 감사하며 기뻐하라고 성자는 말씀하십니다.
저마다 하나님이 감동을 주시고 막고 틀어서 역사하신 사연이 있으니,
생각하고, 깨닫고, 기억하고, 감사 감격 감탄하면서
마음 변치 않고 끝까지 잘하겠다고 약속하기 바랍니다. (아멘.)
하나님이 상황과 여건을 틀어서 막으시는데도 안 하면,
그때는 매질하시고, 병으로 치시고, 고통이 닥쳐도 안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특히! <말씀>으로 감동을 주시고, 틀고 막으십니다.
<전환>
◎ 지금 이 말씀을 쓰고 있는 날은 2월 28일입니다.
선생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3일째 되는 날입니다.
그때부터 금식을 시작했기에 금식한 지 3일째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날은 전국과 세계에서 월명동에 찾아와 조문을 하고 있을 때이고,
장례식을 3일 앞두고 모두 부엌에서 밖에서 수고하고 있을 때입니다.
◎ 여러분이 기도했지요?
기도한 것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듣고 감사하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과 어머니가 서로 못 보고 가시다니,
왜 하나님은 수만 명이 기도하는데도 안 도와줘요? 하며
하나님께 서운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상황을 틀어서 ‘때’에 맞춰서 해 주셨고,
또 십자가를 질 때는 못 돌아다니는 법이 있으니
몸은 못 가지만 감동을 주시어 더 좋게 해 주셨습니다.
◎ 선생이 말 안 하면 겪은 자들도 모르니,
오늘 마지막으로 삼위께서 선생의 어머니에게 역사하신 사연과
선생에게 감동을 주시고 상황을 틀고 막으시어
더 좋게 해 주신 사연 하나를 더 말해 주고, 말씀 마치려 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선생의 어머니는 15년 전 선생이 <이탈리아>에 있을 때
이미 숨이 끊어져서 장례를 준비하려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께 간구하여 다시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 후로 15년을 더 사셨습니다.
고로 언제 가셔도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오직 감사뿐입니다.
그 후 2006년도에 어머니가 중국으로 오셔서
많은 대화도 나누고 해 드릴 것도 해 드리며 오랫동안 만났습니다.
그리고 6년 전, 선생이 한국에 왔을 때
직접 만나서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그러다가 2014년 가을에 어머니의 생명이 많이 위독해졌습니다.
그때 기도하며 성자께 물었더니,
성자는 “네 의견대로 할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생은 “추운 겨울은 지나면 좋겠습니다.” 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한계’가 와서
어머니는 숨을 못 쉬시고, 하루하루 호흡기로 연명하셨습니다.
숨을 한 번 쉬려면, 산을 한 번 넘어가듯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한계가 왔습니다.
이때 선생은 ‘생명의 사명자’로서 기도하여 표적을 일으켰습니다.
선생은 매일 어머니를 하루만 더 살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성자께 기도하여 생명 연장의 허락을 받고,
또 하나님께 기도하여 생명 연장의 허락을 받고,
또 성령님께 이유를 대고 기도하여 생명 연장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매일 그렇게 했습니다.
인간 생명의 한계가 왔으니,
이제는 아무래도 삼위일체 중의 한 분이 상황을 틀 것 같아서
삼위께 각각 매일 기도하며 결재를 받고 어머니를 더 살게 했습니다.
기도가 이리도 큽니다.
어머니뿐 아니라 섭리사 전 교인들의 부모들을 위해서도
그와 같이 매일 기도했습니다.
이 기간에 많은 부모들이 돌아가셨습니다.
때를 맞춰서 기도해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선생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고 죽는 것이 소원이니
꼭 한 번이라도 얼굴을 보이려고 이곳으로 오시게 하려다가,
아무래도 오시다가 오는 길에 죽을 것만 같아서 못 오게 했습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죽을 정도로 한계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2014년 겨울에는
도저히 고비를 못 넘기게 되는 상황임을 듣게 됐습니다.
어머니가 이제는 더 살기 어렵다고
어머니 옆에 있는 규석 목사, 혜선 목사에게서
위급할 때마다 수시로 편지가 왔습니다.
그때부터는 ‘기도의 방향’을 틀어서 기도했습니다.
“추운 겨울만 넘기게 해 주세요.
어머니를 눈 속에다, 얼음 속에다 묻지 않게 해 주세요.
어머니가 겨울에 돌아가시면 모두 다 고생합니다.”
하고, 이유를 대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니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자.
그것이 내 마음이고, 너의 마음이고, 섭리인들의 마음이다.
하지만 때가 있으니 기도하며 준비하자.
네 엄마, 지금 숨 못 쉰다.
인간 생명의 한계는 자체로 숨을 쉬는 것이다.
그런데 자체로는 더 이상 숨을 못 쉬니, 한계가 왔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생이
“그러면 전능자가 숨을 쉬게 해 주면 되지요.” 하니
성자는
“인간이 의학을 총동원하여 자기가 숨 쉬는 데까지가 한계다.
도와주마.” 하셨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생명을 지켜 주셔도
인간 생명의 정한 시간도 있고, 자체 한계도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의 한계>는
의학을 총동원하여 자기가 숨을 쉬는 데까지입니다.
그래서 성자께 간구하기를
“그러면 추운 겨울이 빨리 가고,
따뜻한 봄이 오게 해 주세요.” 했습니다.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차라리 그게 낫다.
하루 숨 쉬는 것을 1년같이 힘들어한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하루 속히 따뜻한 봄 날씨가 되도록 간구했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결국 봄이 일찍 찾아와서 개구리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뉴스에서 “50년 만에 일찍 찾아온 봄이다.” 했습니다.
사람들은 지구온난화 때문에 날씨가 금방 따뜻해졌다고 했지만,
그것이 아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바로 전날 눈이 내려서 10~20cm까지 쌓였습니다.
개구리가 굴에서 나왔다가 다시 굴로 들어갔습니다. <끝>
그때 섭리사적으로 볼 때, 꼭 눈이 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눈이 와야 하나님과 성자께 구한 것을 얻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눈이 와서, 1년 동안 기도한 것을 결국 이루게 됐습니다.
그때 눈이 안 왔으면, 다음 해로 넘겨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을 먼저 이루고, 다시 빨리 봄이 오게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바로 날씨가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육신을
따뜻한 날씨에, 따뜻한 땅에 보내 드릴 수 있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그리고 선생은 ‘한국의 최대 명절인 설’이 지나야
어머니가 가시기에 좋지 않겠냐고 성자께 간구했습니다.
이때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은 오래 살면 좋다고 하지만,
네 엄마는 하루하루 숨 쉬는 게 힘든데 본인도 생각해야지.”
그리고 간호하는 규석이와 혜선이,
간호사들과 의사들도 생각해야지.” 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생은 “예.” 하고, 성자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설 명절>이 되기 며칠 전, 어머니의 숨이 멈췄습니다.
호흡기도 안 통하고, 맥박이 완전히 멈췄습니다.
의사들이 “이제는 의학적으로는 돌아가셨습니다.” 하여
정말 장례를 준비하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래서 규석 목사가 마지막으로 선생의 목소리 듣고 가시라고
어머니 귀에다 선생의 녹음된 음성을 들려주니
어머니는 선생이 온 줄 알고 다시 맥박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들이 ‘이제 어머니 숨이 끊어졌습니다.’ 한 말은
허사로 돌아갔습니다.
어머니는 ‘아들 음성’만으로 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인생들을 구원하라고 보낸 자이니,
그 이름을 부르고, 그 음성을 들으면
<육들>도 일어나고 <영들>도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도 다시 살게 된 것입니다.
제대로 다시 알기 바랍니다.
어머니가 계시는 방에 못 들어갔던 목사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우리가 충격 받을까 봐 숨기는 거야.”
하며, 집에 돌아가면서 속닥속닥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선생에게 묻지 않고 말하면, 틀린 것들이 참 많습니다.
제대로 확실히 알고 말해야 됩니다.
그리고 간구한 대로
어머니는 <설 명절>을 넘기시고 <따뜻할 때> 가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선생은 이때 집에 ‘전화’로라도 어머니와 통하려고
<전화 신청>을 했으나, 안 됐습니다.
부모가 위독하면 전화하게 해 주는데 안 됐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위해 더욱 기도해 주고, 어머니의 영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사연을 하나님과 성자께 더 고했습니다.
그 후 이곳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선생을 만나자고 하여 만났습니다.
이곳 책임자는 가정 문제가 있으면, 가정에 대해 물어봅니다.
하나님이 그를 감동시키시어, 때가 되니 처음으로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가 내게 “애로 사항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위독하시어 전화 한 번 하려고
수차례 신청했으나 못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건강을 묻더니만,
지금은 <설 명절>이라 책임자들이 없으니,
명절이 지나면 한번 의논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명절이 지난 후에 다시 <전화 신청>을 했더니
이틀 만에 바로 전화하게 해 주었습니다.
전화 시간은 3분이었습니다.
“어머니, 명석이에요. 나 안 죽었어요.”
어머니는 ‘명석이는 죽었어. 살았으면 올 텐데...’ 하셨는데,
전화로 선생의 음성을 들으니
말씀은 못 하셔도 알아듣고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 꼭 할 말을 했습니다.
“어머니 잘 가요.
이제 <하나님의 시간>도 다 됐고, <어머니의 시간>도 다 됐습니다.
제 음성 들어야 편히 가시니,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성자께서 통하게 해 주셨어요.” 했습니다.
그리고 천국 황금성에서 만나자고 말하려는데,
차마 입이 안 떨어졌습니다.
아직 살아 계신 어머니에게 어서 천국에 가라고 하는 말은
죽으라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전화가 끊기면 끝나니,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어머니 잘 가요. 천국 황금성에서 만나요.”
그리고 전화로 통해도 어머니는 유언을 못 하시니
선생이 그 마음을 받아서 대신 형제들에게 말했습니다.
“서로 화목하고, 내가 도울 테니 걱정 말아요.”
그리고 어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드렸습니다.
“어머니, 영원히 사랑해요. 잘 가요.
성자께서 내 영과 같이 천국에 데려가십니다.”
올해 성자가 떠나시는 표상 중의 하나가
바로 ‘어머니의 영을 데리고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선생이 전에는 그렇게 <전화 신청>을 해도 안 됐는데,
하나님과 성자께서 여건을 틀고 감동을 주시어
마지막에 꼭 해야 할 때에 전화를 하게 됐습니다.
티켓은 딱 한 장인데,
하나님이 때에 맞춰 그 티켓을 쓰게 하려고
전에는 안 되게 하신 것입니다.
시간을 딱 맞춰서 ‘유언과 마지막 인사’를 하게 하려고
상황을 트신 것입니다.
한때 전화가 안 될 때는 너무 애타는 마음에 성자께 말하기를
“정말 이것도 못 해 줘요?
전화 한 통 하도록 능력을 못 부려요?” 했습니다.
이때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전화 못 하게 트는 것도 내 실력이다.
네가 어머니의 영을 만나서 이야기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때 어머니를 위해 더욱 기도해 주고
어머니의 영을 휴거시키는 데 전력을 쏟았습니다.
어머니는 육의 뇌가 거의 다 죽어서 기도를 못 하시니,
내가 대신 어머니의 육이 되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수시로 내 혼으로 어머니를 만나러 갔습니다.
하나님과 성자께서 전화하는 것을 트셨기에
선생은 기도로, 혼으로 더욱 실속 있게 어머니를 도왔습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어 다시 상황을 틀고 감동을 주시어
2월 23일에 전화로 통하게 하셨습니다.
그때 선생의 목소리를 듣고 “선생이 왔나?” 하고
잠깐 눈을 떴다고 합니다.
원래 거의 몇 년 동안 눈을 못 뜨고 있었는데,
그때 잠깐 ‘한 눈’만 떴다고 합니다.
그때 규석 목사가 선생의 사진을 보여 줬답니다.
왜 ‘한 눈’만 떴겠습니까?
‘두 눈’을 뜰 힘이 없으니
‘한 눈’만 크게 뜨고 선생의 사진을 본 것입니다.
그 후에도 선생의 녹음된 목소리를 30분씩 들려주니
눈을 깜빡거리며 알았다고 하더랍니다.
성자는 상황을 틀어서 전화가 안 되게 했다가
마지막에 내게 감동을 주시며 상황을 틀어
때에 딱 맞추어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는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선생이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전화’로 통했다고 하니
섭리인들도 그 소식을 듣고서
“그럼 만난 것이네.
우리 기도대로 하나님이 합당하게 다 들어주셨네.” 하며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고
기쁘게 장례를 치르고 감사하다고 고백하게 됐습니다.
신기하지요? 주최 측 ‘하나님의 구상’이었습니다.
때에 맞춰서 더 좋게 해 주시려고 상황을 틀고 막고,
때가 되니 감동을 주시며 역사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연을 모르니
기도해도 우리 기도대로 안 된다고 하며
애간장을 태우고 하늘 앞에 서운해하고
이해가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성자는 이미 어머니의 상태를 아시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10일 전에
까마귀가 청기와집 앞을 쳐다보고 우는 것을 계시로 보여 주며
어머니가 돌아가신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또 성자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섭리사의 계시자들 세 명을 불러다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어머니의 영’이 와서 말하기를
“나는 때가 되어 가는 것이고,
선생 육 못 보고 가도 기쁘게 가니 전해 주어라.” 했습니다.
또한 ‘선생의 영’도 와서 말하기를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다른 사람들처럼 못 간다.
하늘 운명, 세상 죄 짐 지고 갈 수 없다.
하늘 뜻 따라 가야 된다.
너희가 장사 잘 치르고 어머니 잘 모셔라.
나 못 가도 걱정 마라. 뜻이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선생이 가서 보는 것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살아 계실 때 전화로 통하게 하셨습니다.
살아 있을 때 도와주셨으면 최고입니다.
죽은 후에 가면, 만 번을 불러도 ‘육’은 대답을 못 합니다.
모든 인생들이 그러합니다.
죽어서 시체가 되면 하나님도 못 도우시니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우리가 살아 있을 때 ‘땅과 하늘 때’에 맞춰서 도우십니다.
이것을 알고,
틀고 감동을 줄 때 원망 없이 감사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향해 서운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릅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모두 살아 있을 때 도와주신 것들을 생각해야
기쁨이 오고, 낙이 오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선생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어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 도와주신 것을 감사드리고,
섭리인들과 선생을 도와주신 것을 감사드리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성자는 계시자를 통해서
어머니의 영이 단독으로 거할 황금성의 집을 보여 주시며
섭리인들 모두 슬퍼하지 말고 희망으로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성의 크기는 ‘지구’만 하다고 했습니다.
선생을 낳고 극한 환난에서 넘어지지 않고 다 이기고,
칼이 가슴을 찌르는 심정의 고통을 받았어도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고,
섭리역사를 알고, 선생을 알고 휴거되었으니 그 영광을 준 것입니다.
선생을 낳은 여인은 지구 세상에서 한 명뿐이니,
그로 인해 고통도 크게 받았지만
그로 인해 최고의 영광을 받았습니다.
또한 지구 세상에서는 어머니가
선생을 위해서 최고로, 진정으로, 끝까지 기도해 주었기에
그로 인한 영광을 받은 것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이 말씀을 전해 줄 때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한 달 정도 지난 때입니다.
오늘 말씀에 따라서
하나님과 성자는 때를 맞추려고 상황을 트시고
때가 되니 선생에게 감동을 주어 역사하셨으니,
오늘 그 사연을 말해 주었습니다.
<말씀 마무리>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핵심을 한 번 더 짚어 주고, 말씀 마치겠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역사하며 행하십니다.
첫째, 감동을 주시고
둘째,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직접,
혹은 사람이나 선생이나 천사를 통해 틀고 막으며
뜻에 따라 더 좋게 해 주십니다.
그러니 막는다고 삼위도, 막는 사람도, 선생도
오해 말고, 미워하지 말고, 서운하다 하지 말고 감사하기 바랍니다.
회사 일도, 학업도, 자기 일도, 사명도, 신앙의 일도
만사의 모든 것이 그러합니다.
오해하지 말고 제대로 분별하고 신령하도록 기도해야 됩니다.
요시야 왕같이 무지로 인해 자기를 돕는 자와 다투지 말아야 됩니다.
자기를 막는 자를 무조건 오해하지 말아야 됩니다.
틀고 막는 자는 ‘사람’이 아닙니다.
근본은 ‘하나님, 성령님, 성자’이십니다.
삼위가 우리를 진정 사랑하시어
더 잘되게 해 주려고 틀고 막고 감동을 주시는 것이며,
육신도 영혼도 해를 당하지 않게 해 주려고
틀고 막고 감동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큰 비밀을 알려 주었으니,
혹여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안 되더라도
삼위께 감사하며 삼위를 사랑하며 살기 바랍니다.
소쩍새가 봄부터 그렇게도 울더니,
알고 보니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와 같이 왜 그리 상황을 틀고 막고 감동을 주시는가 하니,
찬란하고 멋진 하나님의 뜻을 같이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아멘.)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