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15.04.01 (수)
수요 명설교 72c2edf8
- 선포일
- 2015.04.01 (수)
- 성경 본문
- 대하 35장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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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거스르지 말아라
일시 : 1998년 10월 25일 천안 한나라당 중앙연수원
본문 : 대하 35장 20~27
20 이 모든 일 후 곧 요시야가 성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 애굽 왕
느고가 유브라데 강 가의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왔으므로 요시야가 나가서
방비하였더니
21 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내가 오늘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와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 하나
22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변장하고 그와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23 활 쏘는 자가 요시야 왕을 쏜지라 왕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가
중상을 입었으니 나를 도와 나가게 하라
24 그 부하들이 그를 병거에서 내리게 하고 그의 버금 병거에 태워
예루살렘에 이른 후에 그가 죽으니 그의 조상들의 묘실에
장사되니라...(중략)
역대하 35장의 말씀은 30개론 중에도 나오는 교과서격의 말씀입니다.
본문을 보면 도움을 받을 자가 오히려 도와주는 자를 못 믿고 상극을
일으켜 개죽음을 당한 내용이 나옵니다.
이를 통하여 다시 시대를 되짚어보고 우리들의 처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요시아는 BC 640년에 8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서 31년간 유다를
치리한 왕입니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그였지만 BC 630년부터 국가의 중대 정책을
펼쳐나가기 시작하여 정치와 종교 등 민족의 문제를 정돈시켰습니다.
그에게 큰 업적이 있다면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우상을 다 정리하고
여호와의 전을 보수 수리하여 깨끗이 정돈한 것과, 민족의 해방절이라 할
수 있는 유월절을 사무엘 이후 전무후무하게 지킨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종교개혁을 하며 민족의 정책을 과감하게 펴 나갔지만
한 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면 국방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요시야왕은 그것 때문에 늘 걱정을 했는데 그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감동가운데 그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응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왕 느고를 불러 그의 강한 군대를 통하여 유다의 머리
아픈 적을 없애려고 계획하셨습니다. 느고왕 역시 신의 큰 감동을 받고
갈그미스를 향하여 대군을 이끌고 진군해 갔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갈그미스를 치려면 유다의 국경을 거쳐가야 했습니다.
유다 나라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늘 갈그미스 때문에 걱정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애굽에서 쳐들어 왔기
때문에 방비하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애굽왕 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유대를 치려는 것이
아님을 알려왔습니다.
"내가 당신과 싸우려는 것이 아니라 저 갈그미스를 치려고 그 나라를
행해서 가는 것이니 오해하지 마라. 하나님이 나를 들어서 그 나라를
없애라 명하셨다. 하나님을 거스리지 마라. 왕대 왕의 일이다. 나와
싸우지 마라.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리고 나와 싸우다 죽을까 하노라"하고
조서를 보내왔습니다.
그 때 요시야는 그 말을 듣고 너무 기뻤습니다. 그렇다면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시야는 다시 궁궐로 들어갔습니다.
느고는 여전히 강한 군대를 이끌고 유다의 전방을 누비며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시아가 궁궐에 들어갔을 때 신하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옛날에 고역을 시켰던 원수국인 애굽을 믿을 수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갈그미스를 치러가는 것이 아니라 유다를 치러 온
것이 틀림없다는 신하들의 의견이었습니다. 그들의 모사에 넘어가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전방의 유다 군인들도 계속 전갈을 보내 왔습니다. 애굽 군사들이
마음 놓고 유다의 땅을 밟고 지나가니 전방을 지키던 군인들은 가슴이
조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애굽 군대가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군사지역을 완전히 누비고 다니는데 이래도 됩니까?
왕은 우리 심정을 모릅니다. 놔두었다가는 큰일납니다." 이런 다급한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안 믿으면 불안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밑에서 보는 것과 위에서 보는 것이
다릅니다. 백성들이 믿음의 조건을 못 세운 것입니다. 대개 위에서는
안 그런데 밑의 사람들이 겁을 내서 일이 터집니다.
결국 요시야왕도 믿을 수 없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요시야왕은 변장을 하고서 느고를 대적하러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요시야가 활을 맞아서 죽어버렸습니다.
그 하나님을 잘 믿던 요시야가! 그 동안 해놓을 만큼 해놓고 먹을 만큼
되었는데 전장에서 어이없이 죽어버렸습니다.
백성들은 요시야왕이 민족을 위하여 순국하였다고 애곡하였습니다.
순식간에 므깃도 골짜기는 해골 골짜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어간 슬픔의 골짜기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요시야왕이 그렇게 변장하고 나갈 필요가 없었는데 밑의 사람의 말을
듣고 잘못 판단하여 자기는 물론 수많은 젊은이들까지 죽게 만들었습니다.
나중에 백성들이 보니 애굽 사람들이 유다와 싸우러 왔다면 계속 싸워야
하는데 그들의 목적은 갈그미스였기에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가더라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우리가 싸울 필요가 없는데 싸웠구나"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무지속의 상극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잘 믿는 사람을 멸망하게 놔두지 않습니다.
아벨이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유다를 도우러 애굽의 느고를
보냈던 것인데 요시야가 무지 속의 상극을 일으켰습니다.
가만히만 있었어도 괜찮은데 오도방정을 떨었습니다.
요시야왕은 자기가 하나님을 믿으니까 하나님이 자기를 통해서만
묵시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의 국방문제는 군사적 강자를 통하여
해결해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애굽을 들어 역사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예전에 자기 선조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기 때문에 항상
애굽을 껄끄럽게 생각했습니다. 당시 갈그미스를 칠만한 군사적 강자는
애굽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벨을 도울 때 선편에서 해결 못 하는 일이면 보다 악편을
움직여서 선편에게 도움을 주십니다. 요시야왕이 그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안 믿고 불신하는 자를 들어서도 역사하십니다. 결국
요시야는 그 도를 깨닫지 못하고 싸움을 하다가 죽었습니다. 민족을
위하여 순국을 한 것이 아니라 개죽음을 한 것입니다.
신학에서는 그가 하나님의 제물이 되었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성경을 좀 깊이 연구 하는 자는 왜 요시야처럼 선한 왕이 죽었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또 어떤 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처럼 그런 운명이 아니냐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조건을 못 세우고 오도방정을 떨다가
어이없는 개죽음을 했다는 것입니다.
요시야왕이 가만히 있었으면 한 발의 활도 안 쏘고도 깨끗하게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깨끗하게 해결해주십니다.
그리고 애굽은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갚아야 할 조건에 있었습니다.
옛날에 애굽이 굶어 죽을 지경에 요셉이 바로왕 밑에서 통치를 잘하여
그들을 살린 역사적 사건이 있었습니다.(창41장) 그 은혜를 갚는 기회가
바로 갈그미스를 치는 그 시기였던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풀기 위한 일들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인간은 반 로봇과 같은 입장입니다.
애굽이 이스라엘을 왜 도와주는지 이스라엘도 모르고, 또 애굽은 왜
자기네가 도와야 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근본은 하나님의 뜻이 있기로
애굽을 쓴 것입니다. 최종 마지막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요시야가 큰 문제를 일으킨 것은 늘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하셨던 것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국방문제는 거친 일거리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른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게 하셨습니다.
느고가 그렇게 함으로 애굽에도 이상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적은 애굽의 적도 되었습니다. 갈그미스는 직접적으로는
이스라엘에게 적 이였지만 간접적으로는 애굽에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느고도 그렇게 함으로 자국에 손해가 되지 않았기에 그런 일을 감행한
것입니다.
그 때 요시야가 본래의 약속대로 믿고 행했으면 이상의 세계가 되었을
것이고, 애굽의 느고왕도 본래대로 되었으면 갈그미스의 근본을 뽑아놓는
핵심적인 일을 했을 것인데 그것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도 각 처지와 입장에 따라서 요시야의 입장과 느고의 입장으로
양분되어 있습니다. 요시야의 입장에 있는 사람은 본래의 약속을 지켜
행할 것이고, 느고의 입장에 있는 사람도 잘해야 합니다. 남을 도와준다고
할지라도 가다 보면 도움을 받는 자가 오히려 적이 되어서 상당한 손해를
끼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남을 도와준다고 해서
칭찬만 받고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요시야는 하나님을 거스려서 죽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누구를
통하여 역사하실 줄 모르기에 우리는 여기서 또한 원수라도 사랑해야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요시야가 하나님만 열심히 믿었지 역사
공부를 많이 안 한 것 같습니다. 일개 나라의 왕쯤 되면 역사도 잘 알아야
합니다.
아까 애굽이 이스라엘을 도울 조건이 있었다고 했는데 요셉이 그들의
죽을 고비를 살려주었기에 그들도 이스라엘의 죽을 고비를 살려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국방문제를 돕게 하셨던 것입니다.
요시야는 죽어서는 안 될 사람인데 ‘무지 속의 상극세계’로 죽었습니다.
요시야의 첫째 문제는 믿음의 조건을 세우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말을 받아들였어야 합니다. 또 하나는 밑의 사람이 이러고
저러고 한다고 해서 흔들렸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건들이 그 당세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 참 많이
일어났습니다. 세례 요한도 다들 순교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무지 속의
상극세계로 개죽음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랐으면 괜찮은데 그도
믿음에 흔들렸습니다.(마11:3)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이 자기들을 위해서
엄명을 주신 것인데 오도방정을 떨다가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노아 때도 함 역시 믿음의 조건을 못 세우고 멸망의 길로 갔습니다.
알고 보면 결국 다 자기를 위하여 종을 울려주는 것인데 인간들이 믿음의
조건을 못 세움으로 역사가 깨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명령하니 그대로 믿고 행했습니다. (창12:1)
(창22:2~3) 하나님은 절대 믿고 따를 때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습니다.
여호수아 때도 가나안 땅의 31개 족속이 무지 속의 상극세계를
일으켰습니다. 그들이 “당신의 나라에 역사가 돌아간 것을 알았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머슴이라도 살겠습니다.” 했으면 안 죽였습니다.
그 근거가 뭐냐? 라합을 살려준 것을 볼 때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수6:23)
사실 역대하 35장의 슬픔과 아픔이 예수님 시대에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 민족은 요시야와 같이 로마의 속국에서 벗어나기를 고대하고
또 종교적 이상세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느고와 같은
사명자 예수님을 보내주셨지만 배척함으로 역사가 깨졌습니다.
무지 속에 상극세계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무지(無知) 속의 상극세계(相剋世界)’를 일으킬
것이 아니라, 지(知)속의 상응세계(相應世界)를 일으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기로 느고를 들어 역사하셨는데 요시야가 하나님께
물어보지도 않고 마음을 변장시켰습니다. 하필이면 하나님을 잘 믿는
요시야 때문에 역사가 깨지게 되었으니 얼마나 애곡할 일입니까?
하나님이 시킨 일이라면 일단 손해가 가도 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조건을
세우면 찾아먹을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시야는 가만히 있었으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해결하면
깨끗하게 해결해 주십니다.
여러분, 참고 견뎌야 하나니! 사랑은 오래 참아야 됩니다.
요시야가 하나님을 얼마나 잘 섬겼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사랑하면 반드시 도와주면 도와주었지 깨부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럴진대 하나님이 갈그미스가 이스라엘을 깔짝거리는 것을 그냥 보고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은 절대 그냥 역사하시지 않으십니다. 그 만큼
노력하고 수고하고 애를 써야, 인간이 책임분담을 다한 다음에
역사하십니다. 요시야가 그런 조건을 세웠기에 느고를 들어 역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을 거스르면 안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을 들어도 손해
가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무조건 믿음의 조건을 세우면
하나님이 결국 처리해주십니다. 여러분, 비바람을 통해 역사가 일어나기도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경영하신 것을 정녕코 이루고야 맙니다.(사14:24)
애굽이 이스라엘과 한판 붙고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가니 김빠지고
맥빠져서 싸울 힘을 잃었고, 또 이미 갈그미스가 이스라엘과 애굽이 붙는
것을 보고서 방비를 했기 때문에 그들을 다 쳐돌릴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엔 하나님이 바벨론을 들어 갈그미스를 치고 또한 이스라엘도 포로로
잡아가는 역사를 감행케 하셨습니다.(대하36:15~21) 바벨론에 의해
갈그미스는 완전히 소탕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크나큰 교훈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사건들이 항상 지나가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자기가 느고의 입장에 있는지
요시야의 입장에 있는지 잘 분별하며 순리의 길을 가야 합니다!
순리의 길속에 들어가면 가만히 있어도 잘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