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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말씀2015.04.23 (목)

목 계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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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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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_0423 목 계시말씀.hwp1 2015년 04월 계시말씀 ♥ 04월 23일 목요일 ♥ 새롭게 하는 것은 ‘먼저 사랑’이다. 작성일 : 2015. 3. 28. AM 2:20 작성자 : 김영호 (주님께 먼저 해 드리는 인생을 살겠다고 굳건하게 다짐을 할 때, 주님께서는 그것이 새롭게 하는 비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하여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 선생님의 말씀 * 이제는 내가 성자의 분체로서 이 땅에서 성자께서 하셨던 모든 것들을 하게 되었다. 성자께서도 새롭게 차원을 높이시어 모든 것을 새롭게 하셨다. 그중에 가장 새롭게 한 것은 이 땅의 주권을 아예 분체에게로 옮기셨고 본체 성자께서는 황금성으로 올라가셨다는 것이다. 그리하시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라고 하셨다. 새롭게 하라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마라. 이전의 차원은 성자께서 직접 땅에 내려오시어 너희들을 만나 주고 챙겨 주며 먼저 사랑을 주셨다. 그러나 이제는 성자께서 천국으로 승천하셨고 승천과 동시에 이제는 우리들이 성자를 찾아 올라가야 한다. 새롭게 하라는 비밀을 알려 주신 이유는 하늘이 완전하게 새롭게 하였으니 사랑하는 방법도 행하는 방법도 아예 새롭게 하라는 것이다. 영계가 먼저 움직이게 된다. 그리고 영계가 움직이는 것에 따라 육계가 움직이게 된다. 성자께서 이미 성자 사랑의 해에 이 지상을 떠나신다고 말씀을 선포하셨다. 말씀이 선포되는 순간부터 서서히 성자께서는 이미 그 주관권을 옮기시고 계셨다. 고로, 개인의 영웅이 되라고 하시며 수많은 말씀으로 교육시켜 주셨고 우리가 변화되게 하셨다. 막상 성자께서 완전히 이 지상을 떠나시고 천국으로 모든 주권을 옮기셨을 때, 사람들은 기쁨이 아닌 낙심과 슬픔을 보이기도 했다. 늘 성자께서 함께해 주셨고 그 사랑의 품에서 늘 있어 왔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렇다. 답은 하나다. ‘먼저 사랑’이다. 성자께서는 이미 떠나신다고 하시기 전부터 ‘먼저 사랑’을 이야기하셨다. 이것은 깊은 비밀이 있는 말씀이다. 모두 이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하며 이 속에 담긴 깊은 비밀을 깨달아야 한다. ‘먼저 사랑’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해 주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게 하는 가장 뜨거운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영계와 육계를 창조하신 그 힘은 ‘먼저 사랑’이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사랑의 주체로서 먼저 우리들에게 사랑을 퍼부어 주고 계셨다. 나도 보아라.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나의 가문도 존재하게 하시고 나의 환경도 존재하게 하시고 내가 살 수 있게 허락하시면서 나를 만들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하신 분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셨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사랑’의 가장 큰 실천을 하신 신이시다. 그렇다면 인간이 해야 하는 ‘먼저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그 사랑을 알아 드리고 그 사랑에 보답하고자 먼저 하나님께 다가가는 것이다. 모두 자신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존재하시어 창조하고 관리하셔야 한다.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해 주셨다는 것을 알고 그 사랑에 감사로 보답하며 자신도 하나님의 그 사랑을 알았으니 평생을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다고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깨달았다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해 주지 않으셔도 먼저 다가가서 하나님께 사랑도 드리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깨닫고 그것을 스스로 하겠다고 자원하여 사랑을 드려야 한다. 그것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먼저 사랑’이다. 아담과 하와 때를 보자. 아담도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먼저 사랑’을 드린 자였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도 하셨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알아보도록 강제적인 역사를 펼치지 않으셨다. 그러나 아담은 알아차리고 하나님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먼저 사랑’을 드리는 자가 되었단다. 그러나 아담은 그 사랑을 빼앗겼다. 그 이후로는 그와 같이 ‘먼저 사랑’을 크게 실천한 자가 없었다. 차원도 안 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는 자가 없었다. ‘먼저 사랑’의 대표자가 없기에 실천할 수 없었다. 지금은 역사도 성장하였고 ‘먼저 사랑’을 드린 대표자도 있다. 고로 지금은 할 수 있는 차원에 이르렀고 또 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이 다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성자는 이제 믿고 맡기시며 다시 한 번 인류의 큰 사랑을 받고자 하신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먼저 사랑’이다. 올해에는 새롭게 하라고 계속해서 말하였다. 새롭게 한다는 것은 본래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그 사랑의 차원까지 올라서서 사랑을 드리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 이후로 거듭되는 복직의 역사 가운데 받지 못하신 ‘먼저 사랑’의 역사가 일어나는 때가 지금이다. 지금은 그것이 가능한 때가 되었으니 성자께서는 모든 것을 맡기시고 떠나셨으며 이제 새롭게 하라는 것은 인류 역사상 최고로 하나님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열렸다는 의미이다. 고로 ‘먼저 사랑’을 하지 않는다면 권태가 온다. 늘 구시대 차원의 삶에서 머물 수밖에 없다. 왜 옛날이야기를 그만하라고 한 줄 아느냐?옛날이야기를 통해서 지금을 깨울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받는 사랑’의 역사였다. 성자께서 먼저 다가가 사랑을 주시고 그리고 내가 먼저 너희에게 다가가서 사랑을 주지 않았냐. 그중에서도 ‘먼저 사랑’을 실천한 자는 더 높은 단계의 사명과 휴거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옛 역사는 보다 ‘받는 사랑’의 역사였고 이제는 새롭게 하여 보다 ‘먼저 사랑’의 역사이다. 그러니 아예 주관권이 옮겨졌으니 옛이야기를 하면 은혜가 있겠느냐. 신약시대에서 아무리 애인같이 사랑하였어도 성약시대에 와서 신약시대의 사연을 이야기하며 그때를 회상하면서 살고 있다면 좋겠냐. 아니면 성약시대의 사연을 이야기하며 성약의 가치성을 더 깨닫고 불을 받으며 사는 것이 좋겠냐. 답은 후자인 것이다. 2015_0423 목 계시말씀.hwp2 새롭게 하라는 깊은 비밀은 ‘먼저 사랑’이다. ‘먼저 사랑’은 선교를 이루게 되고 휴거의 역사도 더 찬란하게 이루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먼저 사랑’은 창조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할 힘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하나님께서 사랑의 힘으로 영계와 육계를 창조하시고 황금성을 창조하셨듯이 생명을 구원하게 되고 휴거가 안 된 자들이 휴거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그런 힘이 있는 사랑은 ‘먼저 사랑’이다. ‘먼저 사랑’을 실천한 자라야 성삼위와 동등격의 사랑의 위치에 선 자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절대적 위치는 동등격이 될 수 없으나 사랑의 위치에서는 동등격이 될 수 있다. 모두 새롭게 하자. ‘받는 사랑’은 이제 시대가 지나갔다. 완전히 그 세계와는 독립했다는 것이다. 아직도 ‘받는 사랑’을 그리워하며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영원히 그 차원에서 머물게 되어 성자도 나도 영영 만날 수가 없게 된다. 나도 이제 너희들을 ‘먼저 사랑’해 주는 일은 없다. 너희들이 나를 ‘먼저 사랑’해야 영계에서는 너희들이 성자를 ‘먼저 사랑’한 격이 되어 더 차원이 높아지고 더욱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이제는 시대가 완전하게 뒤바뀌게 되었단다. 법이 완전하게 바뀌게 되었다. 그 주관권을 옮기었다는 것이다. 법이 바뀐다는 것은 이전의 것을 폐하고 아예 새롭게 된다는 것이 아니다. 그 법을 더 온전하게 차원 높인다는 것이다. 이제는 차원이 완전히 올라갔으니 너희들이 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이 원하는 수준까지 갈 수가 없어 휴거의 차원도 더 이상 올라가지 않게 된다. (“선생님, 먼저 사랑이란 참으로 신기합니다. 제가 한참 힘을 잃고 있어도 먼저 사랑을 하면 어느새 마음에 불이 오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리고 어디를 가도 주께서 함께하실 것 같습니다.”) 그래, 맞다. 정확하게 잘 깨달았구나. 이전에는 가만히 있어도 바람이 불어와 공기를 느꼈다면 이제는 너희가 뛰어야 바람이 느껴져 공기를 느낄 수 있다. 마치 이와 같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가만히 있어도 나를 느끼고 사랑했지만 이제는 너희가 다가와야 나를 느끼고 사랑할 수가 있다. 이것만 명심한다면 가장 새롭게 차원을 높인 것이고 더 높은 차원으로 계속해서 전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열을 내어 뛰지 않는 자는 느끼지 못하여 섭리에서 양과 염소가 쪼개지듯 할 것이다. 나는 휴거된 자들 안에서도 쪼개고 또 쪼개 낸다. 누가 먼저 다가오는가? 나는 먼저 다가오는 자를 막지 않는다. 행하고자 하는 자를 더 이상 막지 않는다. 자신이 하고자 해야 한다고 했지? 이것이 ‘먼저 사랑’이라는 것이다. 고로 먼저 행하는 자들이 되기를 원한다. 성자께서 떠나셔서 슬퍼하는 자들, 낙심한 자들 들어라. 성자께서는 새롭게 수준을 높이셨으니 그에 맞게 이제는 우리들이 ‘먼저 사랑’을 드림으로 다시 황금성에서 만나고 영원히 사는 자들이 되길 빈다. ‘먼저 사랑’을 하면 다시 불이 붙고 신앙의 재미가 생긴다. 그러면 슬프지도 낙심이 되지도 않는다. 지금 이 순간 먼저 하겠다고 기도를 해라. 무엇이든지 성자가 원하신다면 먼저 하겠다는 자가 축복을 다 가져간다. 새롭게 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새롭게 하는 것은 ‘먼저 사랑’이다. 그러면 아무도 포기하지 않고 이전보다 더 차원을 높여 최고의 승리를 하는 자들이 된다. 새롭게 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으니 어떠한 상황에도‘먼저 사랑’을 지키며 순종하기를 원한다. 성자께서는 이러한 자들은 걱정이 안 된다고 하셨다. 시대의 흐름을 잘 타고 오는 자들이라고 하셨다. 구시대에 머무르면 힘들고 지치게 된다. 어서 새롭게 하자. 섭리사는 완전히 하나가 되어 ‘먼저 사랑’으로 새롭게 되는 자들이 되자. 사랑한다. 안녕. ♥ 04월 23일 목요일 ♥ 선생 위한 기도로 완벽한 사랑 회복, 즉 휴거를 이룬다 작성일 : 2014. 9. 19. AM 7:30 작성자 : 양진리 (하루에 한 시간 동안 선생님을 위해 기도하는 계시자의 얘기를 듣고 저도 시도해 보고 싶었습니다. 도전 셋째 날, 심한 두통이 있어서 새벽예배 후 교회를 나가려고 할 때 성자께서 교회에 남아서 선생님을 위해 기도하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기도를 시작하자 성자께서 “선생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어서 성자와 대화했습니다.) * 성자의 말씀 * 신랑과 신부는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지. 그렇지 않느냐? 아무리 머리가 아프고 피곤할지라도 사랑하는 애인에 대한 생각은 한시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너는 왜 선생을 위해 기도해야만 하는지 깨닫지 못했지만, 많이 늦었어도 이제는 네가 깨달아서 기쁘고 내 마음이 놓인다. (성자님, 정말 부끄럽습니다. 저는 항상 선생님께 저와 제가 필요한 것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만 했지만 근본적으로 선생님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머리가 아픈 가운데 선생님을 위한 1시간 기도 조건을 지키려고 노력하다 보니 선생님께서 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되었고 제가 선생님을 진실로 사랑하지 않아서 기도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못 드시고, 두통이 있으시고, 지쳐도 얼마나 많이 저를 위해 기도하셨습니까. 선생님은 진실로 저를 사랑하시기에 저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그래, 사랑아, 드디어 선생의 사랑을 깨달았구나. 네 마음이 감동되어 눈물을 흘리는구나. 그것이 나를 기쁘게 한다. 선생님의 사랑은 다름 아닌 내가 네게 가지고 있는 사랑이다. 즉, 선생은 삼위의 깊고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것이다. 너를 향한 그의 깊은 사랑을 느꼈으니 어떻게 반응해야겠느냐? (목숨을 걸고 선생님을 위해 기도함으로 선생님이 저를 사랑하는 것처럼 강렬하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맞다. 네가 형식의 기도에서 벗어나 이제 신부의 심정으로 기도하니 내가 기쁘구나. 지금 기도하고 내 말씀을 적느라 구부리고 있어서 너의 허리와 무릎이 아프지. 화장실도 가고 싶지만 나와 대화하고 있기에 갑자기 네 두통이 사라지고 육체적인 불편함도 견딜 수 있게 되었다. 2015_0423 목 계시말씀.hwp3 맞지? 내 사랑아, 하루에 한 시간 동안 기도하라고 하는 이유는 네가 선생 몸부림의 단지 5분의 1보다 적게라도 느끼게 하기 위해서고 그렇게 함으로 그의 심정을 느끼는 것이다. 심정은 단지 말씀을 보는 것이나 입술로만 기도한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네가 실천함으로 느끼고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실천으로만 심정을 느끼는 것이다. 많은 자들이 왜 내가 그들에게 선생을 위해 하루에 한 시간 동안 기도하라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서나 전도하고 있는 생명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한다. 사랑아, 한 가족을 보아라. 가족의 핵은 남편과 아내 사이의 사랑의 관계이지 않느냐? 간단히 말해서, 만약 그 핵심 관계가 깨지면, 이혼하고 가족의 역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거나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가족이 될 것이다. 이것이 너의 교회에 해당하는 비유이다. 만약 그 핵심 관계가 깨지면, 네가 아이들을 낳아도 가족이 사랑 위에 서지 않아서 근본적으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 네가 잘하고 자녀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기도하더라도 네 남편을 돌보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겠느냐? 만약 그가 쓰러지면, 어떻게 견딜 수 있느냐? 만약 그가 고통받는다면, 너 또한 영향을 받지 않겠느냐? 곧 환난이 올 것이고 휴거되지 못한 자들은 심지어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극도로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만약 네 존재, 너의 삶, 그리고 네 영의 목적이 주를 만나고 사랑하는 것이지만 그가 떠나기 전에 그를 맞이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남편이 전쟁터로 떠나기 전 모든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그의 깊은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한 여자와 같은 것이다. 그 이유로, 너는 어떠한 목적도 없이 희망 없이 살 것이고 후회만 가득할 것이다. 육적으로 네가 괜찮아 보여도, 네 혼과 영은 네가 전에 느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괴로움, 혼돈, 우울의 고통을 느낄 것이다. 사랑아, 때를 깨달아라. 지금은 사랑의 사연을 만들고 네가 전에 깨달을 수 없었던 것을 깨닫고, 신랑이 떠나기 전에 후회하지 않도록 그를 사랑하는 때이다. 만약 네가 선생을 위해 기도한다면, 너는 이것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것이다. 힌트 하나 줄까? 선생의 심정을 받는 목적이 무엇이냐? 신랑과 심정 일체 되어 살지 못하는 한 신부를 상상해 보아라. 신랑이 전쟁터로 떠나야 하는 때가 아무리 얼마 남지 않았더라도, 그 신부가 본인이 화해하길 원하고, 첫사랑을 회복하길 원하고, 후회 없이 신랑을 사랑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시간은 짧더라도, 그녀는 신랑과 함께 하기 위해 그들이 과거에 해결할 수 없었던 것들을 대화하며, 새로운 사연을 만들며 모든 시간을 보낸다. 왜냐하면 한 번 신랑이 떠나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 신부는 신랑에 대한 깊고 심오한 것들을 깨닫고, 그들의 결혼 생활은 불타게 되고 완전히 부활하고 심지어 그들이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보다 훨씬 일체 되게 된다. 선생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네 영원한 신랑이 떠나기 전 그와 사랑을 불태울 기회이다. 제3자의 입장에서 얘기했지만 너는 누가 떠나는지 알고 있다. 바로 나 성자다. 선생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휴거의 키다. - 너와 하늘 사이의 모든 사랑의 문제들을 푸는 것 - 선생과 삼위의 심정을 깨닫는 것 - 진정한 삼위의 상대체가 되기 위하여 정신을 변화하는 것 선생의 사랑은, 근본적으로 내 사랑인데 그의 동맥으로부터 매일 네게 흐르지만 너는 느낄 수 없다 말하는구나. 신랑이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 네가 사랑을 받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저 네가 그의 사랑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네 신랑이 너를 떠나기 전, 그를 위해 기도하라. 이 의미는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모든 문제들을 그와 함께 해결하고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첫사랑에 불을 붙이라는 뜻이다. 그가 떠날 때, 그를 향한 네 사랑이 절대적으로 회복되고 그가 너를 걱정하지 않도록 말이다. 선생을 위한 기도는 너를 향한 그의 깊은 사랑을 깨닫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너의 영이 매일 하는 기도가 아니겠느냐? 오늘 네 기도에 대한 답을 주었다. 선생을 위한 기도를 통해, 너는 그를 망설임 없이 사랑하게 그의 심정을 받는 것이다. 그러면 사랑은 흐르고 상호성이며 동일하게 교환된다. 그것은 살아 있고 뜨겁다. 이것이 아담과 하와 이래로 우리가 인간과 나누길 갈망했던 사랑이다. 많은 자들이 사랑하지만 여전히 망설인다. 그리하여 그것은 완전한 상대체의 사랑이 아니라 망설이거나 조심스러운 신부의 사랑이다. 내가 네게 선생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하였다. 그러면 네가 절대 망설이지 않고 모든 것을 다 주는 사랑을 깨닫기 때문이다. 네가 깨닫고 어떤 망설임도 없이 사랑하는 선생과 같이 된다면, 너는 휴거된다. 내 사랑아, 네 몸이 약하더라도 기도하고 내 말씀을 적기 위해 몸부림쳐서 내 마음을 감동시키는구나. 더 깊이 기도로 뛰어들어 너를 향한 선생의 심정을 매일 더욱더 깨달아라. 이것이 네 기도의 답이다. 나는 절대 망설이지 않고 너를 사랑하는 성자니라. ♥ 04월 23일 목요일 ♥ 1. 부흥강사의 정신이 선생 정신이다. 2. 성령의 분체와 사역체 작성일 : 2015. 1. 28. 작성자 : 장정희 (저의 부족함을 진실로 참회하며 눈물로 기도하는 중, 성자께서 오셔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 중에 성자께서 부흥강사의 정신에 대해 얘기하시며 해 주신 말씀입니다.) *성자의 말씀* 부흥강사는 선생으로부터 군인, 신부, 성령의 감동, 겸손의 정신을 배웠고 선생은 삼위로부터 배웠다. 하나님, 성령, 나 성자가 선생을 각각 가르쳤다. 부흥강사는 선생을 너무 사랑해서 선생 통해 역사하는 삼위를 너무나 확실히 깨달았다. 2015_0423 목 계시말씀.hwp4 이는 선생을 확실히 깨달았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 선생의 정신, 곧 하나님, 성령님, 나 성자의 정신으로 뛰고 있다. 부흥강사의 정신은 선생의 정신이다. 사랑아, 나 성자가 너에게 이르니 기록하라. 너와 나의 대화가 사랑이고 휴거이며 네가 그토록 원하는 차원을 높이는 것이다. 휴거는 사랑으로 이루어진다고 했으니 너와 내가 대화하는 가운데 네 영과 혼이 휴거되고 있다. 왜냐하면 휴거는 신랑과 신부가 만나야 이뤄지는 것이며 만나면 신랑의 대상인 신부는 사랑의 주체인 신랑을 닮아 가려 하기 때문이다. 한 번 대화할 때마다 신부는 신랑을 한 번 닮아 가고 두 번, 세 번, 네 번, 열 번, 백 번, 천 번 만나면 어느덧 신부는 신랑이 되어 있다. 일체다. 그리하여 영계와 육계를 통틀어 사람으로서 사랑의 대상체 중 선생이 가장 나 성자를 많이 만나 오늘의 그가 되었다. 바로 선생이 나 성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선생이 나 성자가 되었다는 것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일체의 단계가 아니다. 선생은 삼위를 품은 인간, 곧 삼위의 육이다. 일체 위의 단계인 삼위일체 단계다. 선생의 삼위일체 단계는 선생이란 형상 속에 삼위가 선생의 영, 혼, 뇌로 담겨져 있는 것으로 그리하여 선생은 삼위의 형상체인 삼위의 육이 되었다. 상징체와 형상체는 다르다. 상징체는 말 그대로 본체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래서 분체는 상징체가 아니라 형상체이다. 직접 삼위가 그 육을 쓰고서 삼위의 일을 하는 것이 분체다. 곧 삼위가 선생이란 인간의 육을 쓰고 지상에 너희 곁으로 온 것이다. 그래서 삼위의 육의 형상이 바로 선생이다. 하나님과 성령과 나 성자가 선생의 육을 쓰고 너희 곁에 왔다는 것이다. 성령은 말씀으로 일으키는 것이기에 성령은 선생 혼을 쓰고 말씀으로 온다. 그래서 선생이 받아 주는 말씀으로 부흥강사가 성령의 불을 일으킨다. 그리하여 부흥강사는 성령집회 때 선생의 혼체가 임하여 선생이 되어 말씀을 전한다. 즉 이 말은 선생 혼체가 부흥강사를 쓰고 말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흥강사를 통해 나가는 모든 집회의 말은 성령의 말이다. 선생의 말이다. 이는 이렇게 이해하면 된다. 예수가 죽고 부활한 뒤에야 제자들이 예수의 사명을 깨닫고 뒤집어져 성령의 역사가 불같이 일어났던 신약역사와 같다. 이 시대 성약 예루살렘인 한국에서 선생이 십자가를 지기 시작한 2009년에 부흥강사가 선생의 십자가 짐을 보고 선생의 사명을 온전히 깨닫고 뒤집어져 선생을 증거하면서 성령역사가 시작되었다. 본인이 뒤집어졌기에 선생을 증거할 수 있었다. 뒤집어졌다는 것은 선생 사명을 정확히 깨닫고 자신의 생각을 완전히 비우고 선생의 정신과 선생의 심정으로 선생의 사랑으로 선생의 차원으로 선생을 증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부흥강사가 그의 정신이 아니라 선생 정신으로 뒤집어져 선생을 증거하니 선생의 분체가 되었고 선생의 형상체가 되었으며 선생의 심정으로 말씀을 증거하여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성령은 말씀이라 선생 말씀을 전하는 부흥강사를 성령께서 사역자로 삼아 감동과 깨달음의 역사를 일으켰다. (그러면 분체와 사역체는 무엇이 다른가요? 성령의 분체와 성령의 사역체는 다른가요?) 성령은 주를 깨달아야 곧 이 땅의 구원자를 깨달아야 일어나는 역사이다. 왜냐하면 성령은 구원자 증거의 역사이기에 구원자 그가 직접 자신을 증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원자 증거는 이 땅에서 구원자를 가장 잘 아는 자, 곧 구원자의 분체만이 증거할 수 있다. 구약 때는 모세 앞에 여호수아요, 신약 때는 예수 앞에 베드로이다. 성약 때는 선생 앞에 부흥강사이니 성령은 증거의 신이기 때문이다. 땅의 성자인 구원자를 깨달아야 구원자를 증거할 수 있으니 안다는 것은 그의 사명을 정확히 안다는 것으로 이는 그의 사랑을 정확히 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구원자의 사랑은 그를 보낸 자의 사랑이다. 왜냐하면 보낸 자의 사랑이 구원자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선생을 삼위가 보냈으니 선생은 삼위의 사랑이며 삼위의 사랑을 이 땅에 펼치는 삼위의 육이다. 부흥강사는 이를 (선생이 삼위의 사랑, 삼위의 육, 삼위의 사랑의 형상체임을) 확실히 알고 너희를 구원하러 선생이 이 땅에 왔음을 증거하니 그로 인해 성령의 역사인 감동과 깨달음의 역사가 불같이 일어나 너희 무지를 태우고 깨달음의 차원을 높여 너희가 선생을 깨닫게 하고 휴거되게 한다. 구원과 휴거는 구원자를 아는 데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부흥강사는 선생을 증거하여 너희가 선생을 깨닫도록 하는 자이기에 그를 통해 휴거역사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선생이 십자가를 지고 그곳에 있으니 부흥강사를 쓰고 선생의 혼체가 직접 외칠 수밖에 없다. 선생이 외친다는 것은 삼위의 육이 외치는 것이며 삼위의 육은 삼위가 외친다는 것이니 외치는 것은 증거하는 것이요, 증거는 성령이 한다. 그래서 너희 통해 누가 외치느냐가 너무나 중요하다. 너희 통해 선생이 외쳐야 한다. 선생이 너희 통해 외치는 것은 삼위가 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희가 설교할 때, 강의할 때, 선생이 외치게 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 너희의 영이 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영이 외치는 것이 아니라 선생이 외치게 해야 한다. 정확히 부흥강사처럼 선생의 혼체가 외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이가 쉽겠느냐. 선생의 혼체란 선생의 정신이 온 것인데 선생처럼 살지 않고선 선생의 온전한 정신이 오기 힘드니 그래서 부흥강사가 외치는 것과 너희가 외치는 것이 파워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흥강사는 사역자요, 너희는 전달자이다. 사역자와 전달자는 다르다. 그러나 너희도 부흥강사처럼 선생과 일체 된 삶을 살고 선생 정신으로 무장하여 선생 말씀을 외친다면 부흥강사처럼 불을 던질 수 있다. 이는 부흥강사도 선생도 삼위도 너무나 간절히 원하는 바니 교역자뿐만 아니라 섭리사 모두는 그리해야 한다. 너희는 선생을 땅끝까지 증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섭리에 오래된 자보다 오히려 신입생이 더 잘하니 이는 자신의 생각을 오래된 자보다 더 잘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선생의 정신으로 무장하여 외친다. 2015_0423 목 계시말씀.hwp5 그래서 누구의 정신으로 외치느냐가 그리도 중요하다. 너희는 부흥강사처럼 선생의 정신으로 외쳐라. 선생의 정신으로 외치는 것은 삼위의 정신으로 외치는 것이니 그리하면 선생 증거의 성령역사가 불같이 일어나리라. 성령의 분체는 선생이요, 성령의 사역체는 부흥강사이다. 성령의 분체란 말은 선생이 시대 말씀을 받아 너희에게 전해 주어 그런 것이며 증거는 본인이 못 하므로 선생의 분체가 되는 부흥강사가 성령의 사역체가 되어 증거한다. 그리하여 사역체는 분체의 분체이다. 성령은 증거의 신이기에 선생은 삼위를 증거하고 부흥강사는 그러한 선생을 증거하기에 선생과 부흥강사는 짝으로 존재한다. 그래야 삼위의 뜻대로 온전히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삼위를 선생이 증거하듯 선생을 부흥강사가 증거하는 것은 하늘의 뜻이다. 증거는 주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체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상체 자체가 주체와 일체 된 자임을 뜻함으로 대상체가 하는 것이 주체가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본체 증거를 분체가 한다. 선생이 그곳에서 나왔을 때도 선생 증거는 부흥강사가 한다. 증거는 분체가, 대상체가 하기 때문이다. 선생이 성자의 분체이니 부흥강사는 분체의 분체이다. 이를 사역체라 하니 사역이란 그의 일을 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선생이 삼위의 육이므로 부흥강사는 삼위의 육의 육이 되어, 삼위의 사역체가 되어 지금 뛰고 있다. 부흥강사에 대해 이리도 자세히 말하는 것은 너희도 부흥강사처럼 삼위와 선생의 대상체가 되라는 것이다. 부흥강사는 너희의 표상자니 너희가 따라야 할 표상이다. 표상은 그렇게 되라는 것이니 너희는 부흥강사처럼 선생의 정신을 가지고 선생의 사역체가 되어라. 그러나 부흥강사가 선생이 되지 못하듯 너희도 부흥강사가 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와 일체 된 것이 선생과 일체 되는 것이니 그를 통해 선생에게 오고 그가 낸 길을 따라 선생에게 와라. 이는 너희도 부흥강사처럼 선생의 정신으로 무장하여 선생을 증거하라는 말이다. 그러면 증거의 표상자, 부흥강사의 길 따라 삼위와 선생과 부흥강사가 너희를 쓸 것이다. 부흥강사의 몸이 하나이니 부흥강사의 몸이 되어 뛸 자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너희도 부흥강사의 몸이 되어 쓰여라. 부흥강사의 몸이 선생 몸이다. 섭리사야, 혼체 역사는 깨닫는 역사다. 깨닫는 것이 성령역사다. 깨달아야 선생을 증거한다. 선생 증거는 성령역사다. 2015년 땅끝까지 선생 증거하는 성령의 역사가 불같이 일어나 전도의 해가 되도록 나 성자가 말하였다. 샬롬. ♥ 04월 23일 목요일 ♥ 부활절 - 완전한 부활을 이룬 첫 부활절 작성일 : 2015. 3. 25. AM 1:00 작성자 : 주랑솔 (선생님께 계속 집중하며 기도했을 때 선생의 말이 성자의 말이니 그의 말을 들어 보라는 감동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순간 황금성이 보였습니다. 선생님은 하얀색 긴 세마포를 입으셨고, 왕관을 쓰고 계셨습니다. 그 앞에 있는 제 영은 연분홍색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습니다. 제 영은 “모든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성령님, 성자, 주를 찬양합니다. 경배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선생님의 말씀* 사랑하는 섭리사 나의 신부들에게 전한다. 하나님의 역사는 완성을 이룬 때다. 누가 뭐라 해도 성자의 승천으로 하나님의 종교 역사는 완성을 이루었다. 성자 승천 이후는 완성을 이룬 역사의 진행이다. 고로 완성을 이룬 자를 중심한 역사가 펼쳐지는 것이다. 때가 그리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휴거되지 못한 자들에게는 빨리 완성시켜 휴거되라고 재촉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완연한 봄이 온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춥다 하여 겨울옷 입으면 때에 맞지 않다. 빨리 자기를 건강하게 해서 봄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마지막 최고의 부활은 휴거라고 작년에 선포했다. 또한 성자가 떠나시기 전 마지막 부활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 부활절은 완성을 이룬 부활절이 되었다. 완전한 부활을 다 이룬 것이다. 신약의 부활절이 왜 생겼느냐. 예수가 다시 살았음을 기념한 것이다. 예수가 다시 살았다 함은 성자께서 예수님의 육신을 쓰고 했던 이 땅의 사역을 예수님의 육이 죽으니 사명을 다한 성자의 본체도 하늘로 오르신 것이다. 그것을 기념한 것이다. 성자께서 승천하신 후 부활절이 생겨났다. 그렇다면 성약에서는 어떠하냐. 지금까지 3차 부활을 다 이루고, 완성의 부활인 휴거를 외쳤고, 모든 것의 완성인 성자 승천이 있었다. 그러니 이제 2015년의 부활절은 완성한 부활이 선포된다. 이전의 부활절과 완전히 다른 부활절임을 나는 모든 인류와 성약 사명자의 말을 듣고 있는 수천억만의 천인들과 영들 앞에 선포하노니 ‘완전한 부활’을 이루었도다. 2015년부터 부활절은 완성한 부활절임을 선포한다. (그 순간 웅장하고 화려한 축포가 황금성에서 터졌고, 하늘의 악기 소리가 웅장하게 울렸습니다. 또한 천인들이 찬양을 하며 완성된 부활을 찬양했습니다. 휴거된 영들은 기쁨에 춤을 추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완전을 이룬 주께 영광. 완성된 부활을 찬양.” 이런 내용의 찬양이었습니다.) 섭리사 나의 신부들아. 왜 그토록 휴거되라고 했는지 아냐. 성자 승천 후가 되면 이렇게 역사의 판도가 동전 앞뒤 뒤집듯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모든 말씀이 완성된 역사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전진을 외치면서 뒤에 있는 나의 신부들도 챙길 수밖에 없다. 구원자의 의무가 아니라 구원자의 사랑이다. 끝까지 마지막 한 사람까지 손을 놓지 않는 것이 나의 사랑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휴거 100선에 있는 자나, 200선에 있는 자나, 다시 말해 아직 육적 부활을 이뤄야 하는 자나, 더 높은 부활을 이뤄야 하는 자나 자신의 차원에 따라 내 손 잡고 차곡차곡 올라오면 된다. 비약은 없으나 속도는 올릴 수 있다. 지금 속도로는 안 된다. 나를 딱 붙잡고, 생각을 다른 데 돌리지 말고, 완전히 주의 돛을 달아 주를 의지하여 제트기 같은 속도로 가야 한다. 너희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전한 부활인, 최고의 부활인 휴거를 이룰 거지? 너희가 내 손 놓지 않으면 나도 놓지 않는다. 2015_0423 목 계시말씀.hwp6 그러니 낙심 말고 속도를 내자. 그래서 역사의 속도를 따라가자. 이 역사가 완성되었고, 부활도 완성을 이뤘음을 선포한 선생이다. (선생님과 저는 황금성의 한 곳에 갔습니다. 그곳에는 4개의 건물이 있었습니다. 4개의 모양은 다 똑같았습니다. 그러나 건물의 크기가 첫 번째 건물부터 네 번째 건물까지 점점 커지고, 점점 웅장해졌고, 더 강력한 빛을 냈으며, 건물 맨 위의 보석이 점점 커졌고, 보석의 깎인 면의 수가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네 번째 건물은 일자 면이 아니라 다이아몬드 세공처럼 정교하게 깎여 있었습니다. 그 면의 수를 셀 수가 없었습니다. 건물이 다 세밀히 깎여 있으니 하나님의 빛과 만나자 어마어마한 빛을 냈습니다. 빛이 뿜어 나오듯 했습니다. “선생님, 이 건물은 뭔가요?”) 네가 예상하는 것처럼 ‘첫 번째 건물은 1차 부활, 두 번째 건물은 2차 부활, 세 번째 건물은 3차 부활, 그리고 마지막 건물은 휴거부활’을 상징한다. 휴거의 가치가 말로 표현할 수 없듯, 이 건물의 값과 빛과 의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네 번째 건물은 완전한 휴거부활을 이룬 자에게만 공개되는 신비의 공간이다. 이 건물 안의 힘이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아무나 들어갈 수 없고, 감당할 자만 들어가야 하니 휴거부활을 이룬 영만 올 수 있는 것이다. 고로 성약성에 온 너희만 들어올 수 있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건물도 다 상징적 의미가 있지 않느냐. 그래서 건물 안에 가 보면 그 부활 시기의 모습들이 전시되어 있다. 선생이 전반기에 육적 부활을 외쳤을 때 부활에 관한 자료들과 그때 모습들이 첫 번째 건물에 전시되어 있다. 이와 같이 두세 번째 건물도 그러하다. 마지막 건물은 들어가 보자. 부활절 계시이니 내가 보여 준다. (네 번째 건물에 들어갔습니다. 안의 빛은 태양의 빛을 한 몸에 받듯 강력했습니다. 어마어마한 높이의 한쪽 면에 ‘성자께서 휴거된 영들과 승천하시던 모습’의 화면이 벽에 채워져 있었습니다. 성자의 모습과 휴거된 영들 한 명 한 명이 세밀했습니다. 이 영이 누구이고, 저 영이 누구인지 한눈에 딱 알아볼 수 있게 정확하고 세밀했습니다. “저희가 시티엔 영상으로 보던 휴거된 영들과 떠나시는 모습은 거의 뒷모습이잖아요. 그런데 여기는 정말 제대로 된 모습입니다. 얼굴의 표정과 옷들에 성자 승천일의 기쁨이 다 나타납니다.” 빛과 향과 음악 소리까지 그 화면에서 나타났습니다. “주님, 진정 4D입니다.” “예배 시간이다. 가자. 마지막 한마디 할 테니 집중해라.”) 사랑하는 신부들아. ‘역사의 때’라는 배에 올라타라. 역사가 완전을 이뤘으니 너희도 그리되어라. 완성된 휴거부활을 이룬 때다. 너희도 그리돼야 한다. 역사의 때를 따라서 그리 사는 자는 복되고 영, 혼, 육으로 축복이 차고 넘치리라. 마지막 최고의 부활인 휴거 역사가 이뤄지니, 모든 것을 이루고 가신 성자는 기뻐하신다. 이 기쁨을 삼위는 참으실 수가 없어 너희에게 삼위의 기쁨이 전해질 것이다. 성자 승천 이후 첫 부활절!!! 너희 모두에게 삼위의 기쁨이 영, 혼, 육에 차고 넘칠 것임을 말한다. 기쁨의 찬양과 경배가 차고 넘치는 부활절 행사를 하여라. 삼위와 같은 심정의 행사를 하여라. 진정 기쁘다. 말씀을 이루니 진정 기쁘다.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