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말씀2015.05.0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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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 계시말씀
♥ 05월 07일 목요일 ♥
성자의 헌금에 대한 근본
교육 - 축복의 비밀
작성일 : 2015. 3. 7. AM 1:00
작성자 : 주랑솔
(성자께서 이곳에 오심이 느껴서
성자를 뜨겁게 만나도록 기도했습니다.
순간 지난주 봉헌을 하며
“하늘 앞에 드릴 것에 있어 감사합니다.
늘 드릴 것이 있는 인생이 되고 싶습니다.”
라고 기도했을 때 성자께서 “돈이 없어도
있는 것에서 나눠 헌금해라. 그 정성을
보고 내가 채워 줄게.”라고 하셨던 것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그때 저에게
말씀하셨던 성자의 심정을 더 깊고 귀하게
듣고 싶습니다.”라고 기도하니 성자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 성자의 말씀 *
너희 선생같이 10의 10조를 드리는 삶을
어떻게 살겠느냐?
불가능하지.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 가랑이가
찢어진다.”라는 속담이 있다.
너희도 선생을 다 따라 하려면 육신의
삶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는 것이다.
선생이 수도생활 할 때
그리 육신을 포기하듯 살았다.
못 먹고 못 자고.
수도생활은 아무나 못 한다.
이 세상에 수도생활을
잘 해낸 사람이 몇이나 있나 보아라.
그런 사람은 위인전에 있다.
그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생은 그냥 도를 닦듯
수도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하늘을 모신 것이다.
하늘을 모시고 사는 수도생활을 했으니
그는 최고급 단계의 수도생활을 한 것이다.
선생의 삶을 따라서 살면
너희는 며칠 못 가서 병원에 실려 간다.^^
해 보고 싶은 자는 선생처럼 며칠 해 봐.
그러나 며칠만 해라.
병원에 실려 가면 큰일 나니까.
그러나 해 보지 않아도
그 심정을 알 수 있다면 안 해도 된다.
사랑하는 나의 섭리사야.
오늘은 너희의 봉헌하는
삶에 대해 교육하고자 한다.
봉헌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늘 앞에 너희의 것을 드리는 것이다.
감사하기에 감사헌금을 드리고,
너희의 수입이 있기에
십의 일조를 십일조로 드리는 것이다.
또한 너희 소원이 있기에 일천 번제를
드리는 것이고.
자, 그런데 여기서 정확히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너희는 너희의 돈이
누구 것이라 생각하느냐?
어떤 자는 이리 말한다.
“제 것입니다.”라고.
이런 자는 자기의 돈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헌금을 할 수가 없다.
왜 내가 헌금을 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
한다. 어떤 자는 헌금하기가 싫어
교회를 다니지 않는 자도 있다.
너희들은 이리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것이요.”라고 말하겠지.
선생에게 워낙 잘 배운 사랑하는 나의
신부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로 묻자. 정말 너희 돈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사랑하는 나의 섭리사야.
먼저는 근본을 알자.
내가 너희를 사랑해서 창조하였고,
이토록 길렀으며 이토록 멋진 인생을 살게
했다. 특히 섭리사 나의 신부들은 사랑으로
기르고 있으며, 사랑으로 구원의 길을
가도록 하고 있고, 사랑으로 너희를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 보호하고 있다.
나의 보호가 아니면 너희가 이토록
안전하고 건강하게 어찌 살 수 있겠느냐.
물론 너희가 열심히 육신을 사용하여
이토록 돈을 벌고 있음을 안다. 너희가
행했기에 받을 수 있는 수입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근본을 보면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세상의 사람들은 말한다.
내가 열심히 해서 번 돈인데
왜 이 돈이 하나님의 것이냐고.
그러나 사랑하는 나의 신부들은
나의 심정을 알아주기 바란다.
너희의 잘됨이, 너희가 축복받음이,
너희가 이렇게 잘살고 있음이
너희가 잘해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호하고 계심이란 것을 말이다.
모든 말씀은
말씀에 해당되는 자의 것이라고 했다.
이 말씀으로 심판과 축복의 잣대가 된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말이다.
그러나 알고 가는 자의 것이 되는 것이다.
가령 휴거는 모든 자들에게
동일하게 잣대가 떨어진다.
모두에게 지금이 휴거 때인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을 들은 너희만
휴거의 주관권에서 살고 휴거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태양이 모든 자들에게 비출 때
알지 못하는 자들은
그냥 매일 뜨는 태양에 불과하나,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사는 자들에게는
이 태양이 하나님의 사랑임을 알고 가는
것이고, 아는 자들만 감사 감격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뉴스를 보면 모두가 다
사건 사고들을 알고 그냥 넘어가나,
아는 자들은 그 사건이 왜 일어났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고 간다.
이와 같이 섭리사 너희들은 돈을 번다는
것이 당연히 네가 수고해서 얻은 것이나,
그것만이 아니라 이것은 하나님이 지켜
보호하심과 하나님의 사랑임을 알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를 알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하며 감사감격하며
사는 자들이 되기 바란다.
그 돈이 하나님 것이라고 고백하며 산다고
하여 하나님께서 “그럼 이것이 내 것이니,
너희의 것을 다 내어 놓아라.” 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런 고백에 기쁘셔서
더 갑절로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알고 사는 자가 축복이다.
너희가 헌금을 함에 있어 근본을 알아야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수고해서 얻은
것이라고만 생각하면 헌금이 아까울
수밖에 없다.
이는 세상에 나가서 돈을 버는 자들과
교회에서 일을 함으로 선교비를 받는 자들
다 해당되는 것이다. 또한 돈을 적게 벌고,
많이 벌고 상관없이 다 해당되는 말씀이다.
자신의 수고가 맞지.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 아래 얻어진
수확이라고 여기고 하나님 것이라고
인식이 전환이 되면 헌금이 아까울 수
없다.
과거 농촌사회일 때 자연의 신 앞에
그리도 헌금을 잘했다. 왜인 줄 아냐?
농촌사회이니 자신들이 얻는 수확물들이
자연의 도움이 없이는 안 됨을 정확히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셨으면
그러한 수확을 얻을 수 없었기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자연의 힘 앞에 무너짐을 알고
있었고, 자신들이 열심히 한다고만 하여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지금 너희들같이 자연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처럼 생산을 얻고, 수입을 얻게
되니 하나님 앞에 감사함을 사람들이 잊고
사는 것이다.
깊이 인식해라.
너희가 얻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너희 행함의 책임분담이 있지만
말이다.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과 이 근본을 아는 너희는
그리 알고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사랑하는 섭리사 나의 신부들아.
다시 한 번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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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얻게 되는 이 모든 수입들이
다 누구 것이냐?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이 진정으로 나오기를 바란다.
이 교육이 뇌에만 들어간 지식이 아니라,
진정 깨닫고 인정하고 시인하는 고백을
받고 싶다. 그러니 삶 속에서 기도하고,
삶 속에서 인정하고, 몇 번이고 시인하면서
나와 대화해서 이 삶이 너의 삶이 되길
바란다. 그럼 헌금을 드림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어떤 자들은 말한다.
내가 헌금을 해 보니 얼마나 축복받는지
알기에 헌금한다고 말이다.
여기서 한 가지 묻고 싶다.
축복받기만을 바라고 헌금하는 것이냐?
섭리사 너희는 아니길 바란다.
지금 기성은 그리 살고 있다.
헌금하면 축복받으니 그 비밀을 알고
헌금하는 자가 거의 다다.
진짜 기뻐서 감사함으로 헌금하는 자는
거의 없다.
나의 신부들아.
너희가 하늘 앞에 드린 것은 하나님께서
다 영육으로 갚아 주시는 것이 축복의
비밀이다. 그러니 아는 자는 헌금한다.
그러나 그것이 핵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먼저는 앞서 교육한 근본의 핵,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주셨다.
감사하다.’ 이 마음이 중심에 있어야 하고,
그 위에 헌금을 해라. 그럼 너희에게
아낌없이 하나님께서 다 돌려주신다.
중심 위에 이 축복을 받는 자와,
그냥 더 받기 위해 헌금하는 자와는 천지
차이다. 너희는 신부이니 내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드리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섭리사 나의 신부들아,
너희들 중에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자들도 많다. 그러나 섭리를 뛰고 있어
하늘 앞에 충성하느라 경제가 여유롭지
못한 자도 있음을 안다.
그래서 헌금할 돈이 없다고
말하는 자가 있음도 나는 알고 있다.
선생은 늘 말했다.
“돈이 없으니 시간으로 헌금하고,
젊음으로 헌금해라. 그렇게 하늘 앞에
드려라.” 그런데 선생은 그렇게 돈이 없을
때도 나에게 헌금을 했다.
참 신기하지 않느냐.
선생은 너희의 돈이 없어
드리지 못하는 마음을 알기에
자신이 하늘 앞에 그리 살았듯
그리하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자신이 돈이
땡전 한 푼 없을 그때가 아니면,
진짜 딱 차비만 있어도,
딱 밥 한 끼 먹을 돈만 있어도
선생은 아낌없이 하늘 앞에 드렸다.
그러니 내가 어찌 선생한테
반하지 않을 수 있었겠느냐.
영육으로 더욱더 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너희에게 말하고 싶다.
너희의 가진 돈이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적은 돈일지라도,
그 돈이 어찌 적다 말할 수 있느냐.
[마가복음 12장 41~44절]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성경에 보면 이 과부는 모든 소유를
드렸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아주 적은 돈이나 그에겐 전부였다.
하나님이 어떻게 갚아 주었을까.
그는 전부를 드린 것이니
전부의 가치만큼 그에게 갚아 주셨다.
그럼 대체 몇천 배로 갚아 주신 것이냐.
이와 같이 너희에게 말함은 많고 적음이
아니라 하늘 앞에 드릴 수 있는 자가 되길
바라는 것이다.
돈이 없어서 헌금을 못 한다는 자에게
말하고 싶다. 진정 백 원도 없느냐.
너희가 백 원을 드린다 하여
하나님이 적다고 혼내시겠느냐.
없는 돈에서 백 원을 드리는 너에게
갑절의 축복을 더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섭리사에서 충성하며 뛰는 자들
선교비가 얼마인지 왜 모르겠느냐.
그러니 너희가 드리는 액수가 적어도
너희가 받는 돈에 비해
드리는 비율로 하나님은 보신다.
즉, 그 마음을 보신다는 것이다.
기성인들이 무섭게 잘하는 것이 뭔지
아느냐? 헌금이다. 특히 한국인들이
그러하다.
왜인 줄 아냐?
한국은 경제성장을 하는 동안
기성도 함께 크게 성장했다.
그 배경에 헌금이 있었다.
기성인들은 헌금으로 축복받는 비밀을
알고, 무섭도록 헌금에 정성을 쏟았다.
그리고 그렇게 기성들은 커 나갔고,
경제도 더 활성화되었다.
기성인들 중 제대로 헌금하는 자들은
수입이 있을 때 먼저 생활비를 떼는 것이
아니라, 헌금을 먼저 떼 놓는 자들 많다.
헌금할 것을 떼 놓고 그 다음에 생활할
것들을 챙겼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은 그
정성 위에 축복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었다.
(맞아요. 저희 엄마가 그렇게 하시는
모습을 봤어요. 아빠의 수입과 상관없이 더
많은 금액을 정하고 늘 정해진 금액을
십일조를 했어요. 더 못 버는 달도 정한
금액을 드렸었어요. 근데 엄마는 늘
말씀하셨어요. 이렇게 헌금해서 얼마나
많은 경제 축복을 받았는지 모른다고.)
맞다. 경제 축복의 비밀을 너희 엄마도,
기성인들도 알고 그리 살았다.
사랑하는 섭리사 나의 신부들아,
기성인들은 무서운 헌금정신으로
먼저는 자신의 경제 축복도 받았고,
기성의 으리으리한 커다란 건물들이
세워졌고, 튼튼한 기성 문화가 만들어졌다.
성장하는 데 원동력이 되었다.
이 섭리역사가 누구의 것이냐.
너의 것이다. 너희의 것이다.
너희 후손의 것이다.
너희가 헌금하면
먼저는 너희에게 축복이 돌아가나,
더 나아가서 섭리역사를 위해 쓰이게 된다.
선생이 왜 모든 것을
다 하늘 앞에 드리는 줄 아느냐.
먼저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니,
나를 사랑하니 다 주는 것이다.
또한 너희를 사랑하니
너희에게 다 쓰는 것이다.
섭리역사를 사랑하니
섭리역사를 위해 아낌없이
다 내어 주는 것이다.
자신의 입에 들어갈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 입에 들어갈 것을 걱정하는 선생이다.
선생의 정신을 받아라.
네가 드리는 작은 정성이 모여
섭리역사를 위해 쓰이고,
후대를 위해 쌓이는 역사의 발판이 된다.
큰 것이다.
사랑아.
오늘 너희에게 말하고자 함은
감사헌금이 무엇인지,
십일조는 무엇인지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헌금의 근본을 말하고자 함이었다.
너희 뇌에 헌금의 근본을 정확히 넣어
정확히 깨닫고 인정하고
사는 인생이 되길 바라기에 전했다.
기성처럼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전했다.
그리고 나의 신부이니까
심정을 알고 가야 하니 전했다.
또한 헌금의 축복비결도 말했다.
깨달았느냐.
헌금의 중심에,
더 정확히 너희 삶의 중심에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정확히 인정하고 감사하며
사는 신부들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그 중심 위에 하늘 앞에 드림으로
영, 혼, 육에 축복받는 인생이 되길
바란다.
사랑한다.
오늘도 사랑해서 말하고 또 말한 성자다.
♥ 05월 07일 목요일 ♥
사랑은 나로부터 비롯되니,
어머니의 사랑도 내 것이라
작성일 : 2015. 2. 13. ~ 3. 6.
작성자 : 김혜경
2015_0507 목 계시말씀.hwp3
(선생님의 어머님께서 위독하시다는 문자를
받고 기도할 때 말씀하셨습니다)
-2015년 2월 13일 4:50 am-
*성자의 말씀*
사랑아, 선생의 마음을 헤아려라.
그의 어머니가 얼마나 애틋한 마음으로
선생을 위해서 기도했는지 아느냐.
그 사랑의 기도가 끊어진다면
나의 사랑 선생의 마음이 어떻겠느냐.
진정으로 그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자가 누구이냐.
사랑아, 어머니의 그 사랑이라는 것은
너도 느껴 봐서 알 것이니라.
사랑이 그리도 중요하다.
사랑이 그리도 중요하다.
그를 위해서 진정으로, 전심을 다하여서
오직 그를 위해서만 생각을 하는
그와 같은 자가 누구이냐.
사랑아, 어머니의 마음이 그러하지 않느냐.
어머니의 생각이 그러하지 않느냐.
늘 자식을 위한 마음뿐이고,
늘 자식을 위한 사랑의 시간들뿐이니,
그 사랑의 파장이 선생을 기쁘게 하고,
그에게 위로가 되고,
마음에 평안을 주지 않겠느냐.
사랑아, 선생을 위로하여라.
선생을 사랑하여라.
그를 위하여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그리도 정열을 다하여 기쁨을 주어라.
내 사랑, 그러하다.
내 사랑아, 그리하라.
사랑한다.
(이어서 제 영의 기도 소리가 들렸습니다.
“주여, 그 마음을 알게 하소서.
그리하여 내 마음이...
정녕 내 사랑이 부어지게 하옵소서.
사랑합니다. 기쁨으로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제 마음을 받으소서.
기쁨으로 함께하기를 원하옵나이다.”)
사랑이 그리도 중요하다.
사랑아,
그리하여라.
내가 마음을 다해 너에게 부어 줄 것이니,
그것이 또 선생을 위하여...
어머니를 잃게 된다면
그 마음의 허전함이 어떠하겠느냐.
늘 사랑으로 정열을 다하여서
그분을 위해서 살아 주어라.
그리한다면 그 마음이 얼마나 기쁘고
위로를 받겠느냐.
사랑은 그리하여야 하느니라.
선생은 위장된 사랑을 원치 않느니라.
사랑아, 어떠한 자들이 있는지 아느냐.
자신이 기뻐하기 위해서
그리도 위장을 하는구나.
그 사랑이 올바른 사랑이 아님을 알지
않느냐. 인생들이 사랑을 고백하고,
인생들이 그리도 정열을 다해 사랑하는 것
같지만 그것의 진의가 어디에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면, 그 행위가 단지
사랑하여서 그러한 줄 아느니라.
그러하지만 인생들은
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그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과 연관된 것이 있기에
그리도 역사를 원하고,
나의 사랑을 받고자 하지 않느냐.
전심으로 하늘을 위하는 자가 누구이냐.
전심으로 나만을 생각하는 자가 누구이냐.
선생도 그와 같은 마음이니라.
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자를,
전심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기쁨을 주는 자를 원하느니라.
어머니의 사랑....
깊고도 깊고,
전심으로 그 자식을 위하지 않느냐.
죽을 만큼 그 자식이 사랑스럽고 귀하고...
나의 사랑을 받는 것과 같이 어머니의
사랑은 그리도 선생에게 귀하고 귀하다.
함께하여 내 사랑을 받고자 그리도 역사를
하였으나, 이제는 육신의 생명이
다하였구나.
기쁨으로 함께하자, 나의 사랑.
그와 같이 정녕 내 사랑 선생을 위하여
기도하고, 내 사랑 선생을 위하여 기쁨을
주어라. 전심을 다하여 ‘어머니와 같은
사랑’을 그에게 주어라. 내 사랑, 기쁘다.
함께하자.
전심을 다하여 그를 위로하여라.
전심을 다하여 그를 사랑하여라.
기쁨은 그를 행복하게 해 주고,
너의 사랑을 받는 시간이 함께하는 시간과
같이 그리도 기쁘고 행복하지 않느냐.
행복하다. 함께하자.
- 2015년 2월 21일 1:55 am -
어머니를 위해서 기도하여라.
내가 사랑으로 지키고 있으니,
거룩한 생각이 그 모든 생각을
주관하게끔 역사하자.
왜냐.
어른들의 생각이 그렇지 않느냐.
오직 내 뜻을 위하다가도
치매가 걸리거나 온전하지 못한 상태가
된다면 생각이 다른 생각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고...
육신의 한계가 그러하다.
그러하니 온전함을 가지게끔
사랑으로 온전히 기도하자.
내 마음을 끝까지 지킬 수 있도록 그리
역사를 하자.
사랑아, 온전하지 아니하면
그 혼체가 고생을 하지 않느냐.
그러하니 올바르게 설 수 있도록 도와주자.
2015년 2월 24일 3:15 am <성령>
선생은 지금 아프지 아니하다.
그러하지만 그 모든 생각들이....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서로의 심정의 세계를 주고받던
그 아름다운 시간들이
또 기억이 나지 않겠느냐.
선생의 마음이 불안하지 아니하니 염려
말아라. 사랑으로 늘 함께하고 있으니
그 어떤 것도 방해할 수가 없느니라.
내 마음을 깨달아라.
함께하자.
- 2015년 2월 24일 7:45 pm <성자> -
(어머니가 오늘 밤을 넘길 수 없으실 것
같다는 문자를 받고, 어머니와 선생님을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선생님의 마음이
100% 준비되셨을 때에 어머님을 데리고
가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자.
사랑아, 사람은 간절히 구할 때에
내가 마음을 주는 것을 더 깊이 받을 수가
있느니라. 간절히 구한다는 것은, 자기가
전심을 다해서 이것을 받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나니, 그것을 함께하게 되는
그 기초로 삼고, 그 위에 더욱더 깊은
세계들을 받는 것에 집중을 하여,
해로운 것들을 멀리하고, 오직 내 것을
받겠다는 그 일념하에 집중을 한다면
모든 것이 나의 뜻에 따라서 온전히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느니라.
사랑한다.
깊이 생각하여 보아라.
내가 어떻게 행하는 것이 좋겠느냐.
선생의 마음이 어떠하냐.
선생의 마음은 늘 그와 같다.
나를 향한 사랑과 어머니를 향한 사랑,
뜻을 향한 사랑과 너희들을 향한 사랑......
이 모든 사랑으로 일관하고 있으니,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이,
그 갸륵한 마음이 다른 이들의 생각보다
그 차원이 더욱 깊고 높도다.
그 마음이 어떠한지 아느냐.
어머니가 지금 생각을 어디에 두고 있을까,
어머니의 마음과 육신이 그리 병들어
있는데 그것이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데에
있어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지...
마음을 다해 깊이 기도하고 있느니라.
마음이 병들고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면
더 할 수 없는 깊은 세계를 깨닫게 되나니
내가 어머니의 상황들을 알려 주지
않겠느냐.
어머니의 상황이 그리 아프지 아니하다.
선생이 그것을 알기에,
나의 사랑을 받아 그 깊은 세계들을
헤아리고 나서 그리 마음을 정하였으니,
그 마음이 오죽 답답하겠느냐.
내 것을 알기에 그 인생을 놓아 주어야
하는 그와 같은 상황에 있으니,
아직 여생을 더할 수도 있지만,
나의 사랑으로 인하여,
그리고 선생의 그 따뜻한 사랑으로 인하여,
어머니의 고통을 감하기 위해서
그리도 시험에 들지 않도록 고이고이
보내드리고자 그리 애쓰고 있지 않느냐.
자신의 마음보다는 어머니의 그 고통이
더하지 않을까
근심하고 사랑으로 인도하고 있으니
이 마음이 얼마나 깊고도 깊은 마음이냐.
아프지 아니하니 깊이 기도하여
더욱 함께하기를 간구하여라.
내 마음 함께하자.
나는 성자니라.
선생의 마음이 그리도 깊다.
2015_0507 목 계시말씀.hwp4
자신의 상황보다는 어머니의 상황을
더 깊이 헤아리고 있으니
어머니가 살아생전에
어떠한 모습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길렀으며, 태어나게 했음을
그 깊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 상황들이 어떠함이었는지 되새기고
기억을 더듬어 그리 아픔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구나. 어머니의 사랑을 깊이깊이
깨닫고자 하는구나.
내 사랑아, 그리 마음을 먹어라.
내 마음을 함께하는 것이 그와 같은
것이니라. 사랑은 그와 같은 것이니라.
상대에게 100% 몰입하여,
그 상대의 입장에서 100%의 것을
헤아리고, 그 마음 가운데에 좌정하니,
그 마음이 읽어지고, 그 마음이 느껴지고,
그 아픈 고통이 자신의 아픔으로 느껴져
깨달아지니, 그것을 어찌 인생들이
알겠느냐. 내 마음이 그러하다.
상황이 그러하다.
세상의 돌아가는 이치가 그러하니
어머니의 아픈 노정을 깊이 체휼하여
그리도 감하고자, 보내 주고자 하는구나.
나의 사랑 선생이 그 어머니를 붙들 수
없었더냐. 그러할 수 있으나
선생은 어머니의 아픔을 생각하여
모든 것을 다 보내 드리기로 결정하였으니,
그것이 선생에게는 아픔이 아니요,
‘사랑’이니라.
사랑...
(“어머니의 마음과 육신이 그리 병들어
있는데...”라고 말씀하시고, 또 “마음이
병들고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면
더 할 수 없는 깊은 세계를 깨닫게
되나니...”라고 말씀하셨는데, 병든
육신을 가지고 오래 누워 계시며 선생님을
그리워하신 어머니의 마음과 생각이
어떠했는지 저희는 다 헤아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사랑아,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너희 섭리인들이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왜이겠느냐.
너희들은 늘 선생을 생각하고,
나를 생각하고,
구원을 생각하고, 휴거를 생각하며,
사랑을 생각하고, 기쁨을 생각하기에,
그것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갈망하지
않느냐.
사랑아, 어머니의 생각이 어디에 있겠느냐.
너희 선생이 보고 싶고,
너희 선생을 끝까지 만나고자
그리도 열정을 다해 사모하고 기다림이
역사를 이루지 않았느냐.
그것이 무슨 말이겠느냐.
그리도 기다리고 사모함이 간절하고도
간절한 기도로
그 사랑의 함량이 극대화되어
나의 마음을 그리도 감동시켰으니,
그 사랑의 기도가, 그 마음이, 생각이
그리도 마음에 아찔한 생각을 가져다주지
않느냐. ‘아찔한 생각’이라는 것은...
그 생각이 극에 달하게 되면, 그 마음의
정열이 온전한 사랑으로 변화되어
극대화된 사랑의 정점에 달하게 되느니라.
사랑의 정점에 달한 그 마음....
육신의 생각을 벗어나 온전히 내 생각과
일체 된, 정열적인 사랑의 마음이
되느니라.
그 마음이 어떠하겠느냐.
나의 사랑아,
그 어머니의 사랑이 어떠하겠느냐.
해로운 것은 모두 다 지워 버리고
오직 내 뜻을 위해서만,
너희 선생의 갈 길을 위해서만
간절함으로 극대화된 사랑으로
그리도 정열을 다해 마음에
가득 채워 넣었느니라.
그 마음을 깨닫겠느냐.
그렇다면 왜 마음이 병들고
육신이 병들었다 하였느냐.
육신의 병은 육신의 소실로 인하여
오는 것이지만,
마음의 병은...
그 아득한 상대를 바라볼 수도 없고,
보고자 하지만 만날 수가 없기에
그녀의 마음은 병든 것과 같이
아련한 기억으로만 남아지게 되었으니,
그 마음이 성령을 받아
나의 사랑으로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역사의 근본이 되었느니라.
내 사랑아, 함께하여 내 뜻을 헤아려라.
어머니의 육신이 병들었으나
그 마음은 살아 있어 내 마음을 깨닫게
되고, 선생의 가는 그 역사가 어떠한지....
그 가슴에 상처가 되어, 나의 사랑이
그리도 역사를 하지만, 육의 생각에 따른
성향은 아픔이 극대화되지 않느냐.
선생의 가는 길이, 선생의 그 십자가의
길이 어머니에게는 가슴에 칼을 꽂는 것과
같은 아픔이 되지 않았겠느냐.
함정이 있으니,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어찌 마음의 행동이 바르게 온전히
잡히겠느냐.
사랑아, 마음을...
정열을 가지고 온전함을 가지기 위해
기쁨으로 노래하여라.
내가 사랑으로 인도하느니라.
(계시를 받던 중에 선생님의 형제분들이
생각났습니다. 어머니가 계시기에
선생님의 형님들이 월명동에 오실 수
있었으나, 어머니가 안 계신다면 형님들은
이제 더 이상 섭리에 발걸음을 안 하시지
않을까요?)
선생이 있다면 형제들이 모일 수 있지
않느냐. 어머니가 있을 때에 형제들이
모이지만, 그것에 더 발전된 모습은
기대하기가 어려우나, 선생이 있다면 더
많은 것으로써 역사할 수 있느니라.
그와 같은 상황은 염려하지 말아라.
내 사랑, 깊은 곳에서 더욱 함께하기를
원하노라. 어머니가 오늘 깊은 세계를
알리는 것을 더 할 수 없이 기뻐하는구나.
- 2015년 2월 25일 3:25 am <성자> -
선생은 지금 많은 것을 포기하고
그리 마음을 내려놓았느니라.
그러하니 어머니에 관한 것은 염려 말아라.
마음을 접고 나의 사랑을 받고자,
절대 내 사랑 안에서
100% 함께하고자 마음먹고 있으니 염려
말아라.
- 2015년 2월 26일 <선생님> -
...... 어머니는 내 이제 그만 생각하고자
하노라. 내가 함께하지 아니하면 그 어찌
구원을 받겠냐마는, 내가 이미 함께하고자
그리도 역사를 하여 왔고, 내 사랑
성자께서 그 마음을 위로하고자
미쁘신 사랑이 가족들에게 내렸으니,
나의 사랑, 너무 걱정 말아라.
내 마음이 기쁘다.
내 어머니, 하나님 곁에 나의 사랑을
전달하고자 하느니라. 반드시 내가
함께하고자 그리도 역사하고 있노라.
그리하여라.
너의 찬양을 내가 기뻐하니,
찬양하여 내 어머니의 가는 길을 밝히어라.
내 사랑, 함께하자.
나는 영결식에 가지 않는다.
내가 지금 그곳에 간다고
내 사랑하는 어머니가 어떻게 다르게
변하겠느냐. 어머니의 육신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그리도 붙들어 주었고 이제는
온전함을 가져 나의 사랑 깊은 곳에 그리
연결되어 가고 있으니, 내가 굳이 가서 그
무엇을 하겠느냐.
어머니가 육신에 거함은 내 마음을 기쁘게
하거니와, 이제 없는 곳에서 내가 무엇을
하겠느냐. 내 사랑, 기쁘다. 사람들의 말을
듣지 말고 내 말만 들으라. 성자의 말과
나의 사랑이 그리도 역사를 하여
너의 힘든 그 과정을 이기게 만들어 주고,
내 과정 가운데에 들어올 수 있도록,
온전함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와 같이 역사하고 있으니,
기뻐 받으라.
내 사랑, 함께하자.
- 2015년 2월 27일 5:30 am <성자> -
선생은 지금 마음이 편안하다.
상관이 없으니 염려 말아라.
오직 뜻을 위해,
하나님의 그 뜻을 실현키 위해
집중하고 있으니...
내 사랑하는 자이지 않느냐.
아픔을 뒤로하고, 슬픔을 뒤로하고,
그 마음을 평안키 위해서 애를 쓰고
기쁨으로 함께하고자
그리 노력하고 있구나.
나의 사랑, 기쁘지 않느냐.
너희 선생이 그와 같다.
나의 사랑하는 자,
내 육신이 된 자가 그와 같이
절대 나의 뜻을 기준으로 하여
모든 것을 맞추고자 애를 쓰니
그것이 갸륵하고 기쁘고,
2015_0507 목 계시말씀.hwp5
내게 속한 자가 이리도
나를 기쁘게 하는구나.
내가 염려 말도록
그리 역사를 하고 있으니,
그 마음을 헤아리어라.
사랑한다.
감사함으로 기도하자.
나는 성자니라.
(영결식에 갔다 온 후, 선생님의
가족분들의 모습을 기억하며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말씀하셨습니다)
- 2015년 3월 4일 3:35 am -
어머니의 사랑...
그녀가 내 마음을 받아 그리 행하였으니
단지 자신, 곧 ‘어머니’의 마음으로만이
아닌 내 사랑의 능력으로 그 마음을
주장하여 선생을 키워 내었느니라.
그러하니 ‘어머니의 사랑’은...
정작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에 의한
사랑은 그리 광범위하지가 않다.
그리 인류를 위한, 내 역사를 위한
인재를 키워 낼 수가 없느니라.
내가 관여하고 그녀의 마음을 감동시켜
내 뜻을 실현케 만들어 주었으니,
그 모든 어려운 과정들을 감당한 것은
자신의 신앙이요, 사랑이요, 기쁨이지만,
내가 그 가운데에 역사하여 선생을 길러
내었으니, 그녀 또한 ‘나의 육신 된 자’가
아니냐.
아무리 내가 행하고자 하여도
그녀의 마음에 선함과 사랑과 의로움이
없었다면 선생을 길러 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나, 온전히 예정되어 나의 사랑을
받기에 합당한 자였기에, 내가 그녀의 몸을
통하여 선생의 삶이 오직 내 뜻을
향하게끔, 오직 내 사랑의 역사를
실현하게끔 만들어 나가는,
━모든 역사의 완성인━
이 성약의 역사에
집중하도록 행할 수 있는
그와 같은 인재를 양성해 내었느니라.
나의 사랑을 받은 자가 어찌 합당하지
않겠느냐.
내 사랑아,
오직 내 뜻을 위하여 행한다는 것이
그리도 엄청난 역사를 가져오지 않느냐.
‘어머니의 사랑’...
그 사랑은 곧 나의 사랑이니라.
세상의 어머니가 가지는 그 마음과 다르니,
그 생각과 정신이 내 주관을 받아
나의 사랑하는 자를 양육하여 내었느니라.
내가 쓴 자이니 귀하지 않느냐.
그 육신도 귀하여
내가 끝까지 그녀를 지켜 행하지 않았느냐.
그와 같이 나의 뜻을 실현하는 모든
자들이 내가 사랑하는 그 방향에 따라
행하지 아니하면
어찌 내 사랑의 빛을 보겠으며
어찌 내 사랑의 역사가 실현되겠느냐.
모든 ‘어머니’들이 그와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할 것이니, 내 마음을 깨달아
행하는 것이 나의 육신이 된 자를 길러
내는 가장 합당한 길이니, 그와 같은
행함은 내 사랑을 실현하게 하느니라.
사랑으로 더하여라.
‘선생을 어머니의 사랑으로 사랑하라’는
말은 그와 같은 것이니라.
나의 사랑의 뜻,
나의 역사하는 그 생각과 그 정신으로,
그 마음과 방향으로 나의 사랑 선생을
지켜 주어라.
내 사랑이 끝까지 너희들과 함께하여
선생이 가는 길을 평탄케 할 것이니라.
어머니의 사랑으로, 선생의 어머니의
사랑으로 내 사랑을 이루어라.
나의 사랑 선생을 지키어라.
- 2015년 3월 5일 1:20 pm <성령> -
사랑아,
‘어머니의 사랑’이 어떠한지 아느냐.
성령의 역사함을 받아
나의 사랑을 나의 육신이 된 자 선생에게
부어 주기에 보다 더 합당한 모습으로
창조하였지 않느냐.
그녀가 내 마음을 깨닫기까지
근대의 혹독한 많은 세월을,
그 어려운 시기를 거치며 내 사랑을
배웠지 않느냐.
내 사랑이 어떠한지 가슴 깊이 새겨 넣고,
자식을 향한 나의 사랑이
얼마나 걱정과 근심과 늘 염려와...
새로운 마음을 주기 위해서 힘을 주고,
헌신하기 위한 그 모든 마음가짐을 갖추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하고
예비하였는지 아느냐.
그녀의 삶이 밝혀지지 아니하였으니,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이
그녀의 모든 인생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고, 그녀의 어릴 때부터의 모든 삶들이
인생을 다스려 나가는 것에 합당한
모습으로 그리도 교육하고 갖추어 나가게
함으로, 그 모든 생각들이 절대 내
사랑으로 무장되게끔 역사하여,
행복을 가져다주는 여인의 모습으로
그리 모든 것을 갖추어 나가게
가르쳤느니라.
이 시대 사명자를 낳을 자이니
얼마나 깊이, 세심하게 만들어 나갔겠느냐.
내 사랑아,
나의 사랑하는 자(어머니)에게
어릴 때부터 역사하여
내 마음을 가지게 만들고, 내 성품을
가지게 만들고,
더 뚜렷한 햇빛같이
강렬하게 사랑을 비춰 줄 수 있는
절대적 진리 가운데에 온전히 서게끔
만들어 나아갔으니,
너희 선생을 굳건히 붙잡아 줄 수 있었던
어머니의 사랑이 그것이지 않느냐.
진리는 아직 완전치 못하여
일찍이 그녀의 인식 가운데에 자리잡지
못하였었으나, 나의 성품과 나의 가르침을
통하여서 역사를 남길 수 있는,
그와 같은 인생을 낳을 수밖에 없는
그 정신을 뿌리 깊게 심어 놓았으니,
그녀의 정신이 자식들에게 전수가 되어
역사를 일으키는 온전한 자들로
성장하였지 않겠느냐.
내 마음 끝까지 정열을 다해
나의 마음을 깊이 깨닫는 자가 누구이냐.
그 정신이 나의 사랑을 바라보게 만들고,
그 정신이 나의 자식을 키우게 만들고,
그 정신이 나의 뜻한 바 역사를 일으키는
인재들을 키워 내게 만들었으니,
그녀의 씨앗이 나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구나.
암전된 상황이 밝아짐으로
그녀가 사명자를 알아보게 됨으로 인하여
역사는 더 힘을 발하게 되었으니
사랑아, 선생 홀로 역사를 이루어 나가는
것에 그 어머니의 사랑이 더하여지고, 그
기도가 더하여져 진리를 알고 핵심을 알고
역사하는 그 사랑의 역사가 얼마나 깊은
세계를 바라보게 만들었겠느냐.
아무리 어머니 자신이
‘어머니의 사랑’을 부어 준다 할지라도,
그 핵을 모른다면, 그 어찌 자식의 가는
길에 올바른 기도로 정열을 다해
그 마음을 부어 줄 수 있겠느냐.
그러하니 어머니의 사랑과 더불어
그 핵심의 성약의 핵을 간파할 수 있는
그러한 마음을, 정신을, 심령을 강건케
함으로 역사를 남기는 것에 일관된
정신으로 끝까지 함께하였으니,
나의 사랑하는 자 선생의 역사가 더욱
힘을 받아 마음을 평안케 만들어 주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인하여 더 깊은 세계가
펼쳐지게 되었느니라. 함께하지 아니하면
그 마음이 어떠하겠느냐. 자식을 향한
‘시험에 들지 않는 기도’가
어찌 내 심정에 합당했겠느냐.
[자식을 위하지만 성령을 받지 아니하고
내 뜻을 알지 못하여 행하는 기도는
시험에 들지 않을 수는 있으나,
그 뜻을 알 수가 없으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내 마음에 합당하지가 않느니라.
내 뜻을 알게 된다면 자식을 향한 그
애틋한 마음이 시험에 들지 않겠느냐.
마음이 정녕 나의 사랑으로 간절하지
않겠느냐. ]
절대 일체 됨으로 암전된 상황이
━오직 내 뜻으로 인하여━
밝아져 내 마음을 깨닫게 만들기까지
너무나 많은 세월 동안 나는 가르치고,
심령을 부어 주고,
내 사랑을 부어 주었느니라.
내 마음을 끝까지 알고자 그리도 애쓰는
어머니의 기도로 인하여
역사는 더 힘을 발하게 되었으니,
내 사랑, 나의 마음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느냐.
사명자의 심정을 깨닫는 것이 사명자에게
얼마나 깊은 힘이 될 수 있는지, 그것을
깨닫고 나의 모든 닮아 가는 자들의 심령
또한 그러하기를 원하노라.
2015_0507 목 계시말씀.hwp6
선생의 신부가 된 자들이
그리하여야 되지 않느냐.
그와 같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나의 모습을 닮아 가는 자들이니,
나의 마음과 나의 심정과 나의 사랑으로
사명자를 대하고, 사랑을 나누며,
그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신부들로
날마다 거듭나기를 원하노라.
내 뜻을 깨닫고 내 마음을 전하여라.
깊은 세계가 나의 사랑을 깊이 깨닫게
만들어 주느니라.
♥ 05월 07일 목요일 ♥
[천국 황금성]
독수리 모양의 ‘기도성’
작성일 : 2015. 1. 22. AM 1:00
작성자 : 주사랑빛
(선생님을 위해 작정하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단상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는 저의 오른편에 오셔서
서신 후, “내가 너희들이 결심하고
기도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한걸음에
달려왔다.”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모습이 왕과 같이 위엄이 있고
전능자 성자의 능력이 그대로 전해져
거룩한 모습이었습니다. 금빛의 슈트를
입으셨는데 참으로 멋진 모습이셨습니다.
사방이 환하게 빛이 나서 눈이 부셨습니다.
얼굴에서도 빛이 나고 저를 보시며 미소를
지으셨는데, 그 미소는 세상을 다 얻은
듯하고 여유롭고 아름다웠습니다.
마음으로 선생님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선생님의 말씀*
사랑하는 신부야, 성자 모시고 왔다.
너희가 스스로 결심하고 기도하는 모습에
사랑하여 왔노라.
(선생님의 목소리는 온 세상을 울리는,
참으로 위엄 있고 따뜻한 사랑이 그대로
전해지는 목소리였습니다. 이어서 성자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성자의 말씀*
너희 선생의 모습을 봐라.
선을 봐라.
(보석가루가 선생님의 몸의 선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왜 선 얘기를 했는지 아니?
선생은 천국에서도 지상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자란다.
특히, 그의 부활된 영의 모습은 신과 같다.
네가 본 모습은 선생 혼체다.
천국에서는 모든 삶의 공적, 의, 사랑이
영체의 선을 통해 나타난단다. 눈부시게
빛이 난다.
육계에서도 육의 선이 아름다운 자를
미인으로 보지 않느냐.
인생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각자의 삶이
육계에서 육으로는 다 나타나지 않지만
영계에서는 다 나타난다.
그 인생의 삶의 공적을
영체의 선을 보면 알 수 있어.
선이 아름다운 자가 되어야 한다.
미술 작품에서도 선을 잘 그려야 하듯이,
자신이 자신의 삶을 잘 그려야 한다.
이제 나 성자는 떠난다.
남은 시간 사랑의 사연을 만들자.
뇌 속에 말씀을 확실히 심어야 할 때란다.
돛 달아야 항해하지.
분체의 돛을 안 달면 삶의 선을 제대로
그릴 수 없다.
뇌 사랑이다.
온전한 신부의 영체가 되지 못한다.
나 성자가 분체를 남기고 간다.
각자 배에 분체 돛을 달아 준다.
말씀을 깊이 뇌에 새겨라.
이때 더 기도를 깊이 하여 나와 대화하고
사랑하자.
기도를 깊이 하는 자들은
선생이 그 영을 데리고 다녀.
고로, 육의 나이가 어린 자라도
영계에서는 어리다 할 수 없다.
나이에 상관없이 휴거된 자들은
모두 삶의 선이 아름답다.
선(善)한 자라고 할 수 있다.
기도를 해야 산다.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기가 없다.
아픈 자들을 보면, 아무리 운동해도
기가 없으니 빨리 낫지 않잖아.
기도하지 않는 것이 익숙해지면
기가 없는 영체들이라 힘이 없어 성자를
못 따라다닌다.
기도하는 자들 봐라.
기가 넘치니 늘 성자를 따라다니고 행해
계속 휴거 차원을 높여 나간다.
기도가 중요하다.
네가 겪은 것이 계시가 맞다.
(하루 전날, 화장실 청소를 했는데
성자께서는 “기도는 근본 죄를 다
청산하게 한다.” 하셨습니다.)
기도하면 근본 죄악이 다 없어지고
깨끗해진다. 나와 같이 황금성 가자.
(제 영은 선생님의 모습으로 오신 성자의
팔짱을 끼고 공중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밤하늘을 지나는데 별빛이
유난히 반짝이며 아름다웠습니다.
우주를 순식간에 지나 천국에
도착했습니다.
눈앞에는 놀라운 성의 모습이
펼쳐졌습니다. 전체적인 모습은 날아가는
독수리를 정면에서 순간 포착하여 찍은
모습 같았습니다. 얼굴이 컸고 자세히
보였는데
눈은 위엄이 있었고 쪼개는 듯한 눈빛이
참으로 멋졌습니다. 빛나는 황금색 독수리
모양의 큰 성이었는데 전체는 보석으로
만들어져 있었으며 표면은 미끈한
느낌이었습니다. 공중에 떠 있었습니다.
성 위로는 매우 반짝이며 빛나는
형형색색의 보석가루들이 건물 위로
폭포수같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성삼위의 백보좌에서 나온 성령이
부어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성의 크기는 지구의 100배
이상이라고 하셨습니다.)
선생의 성이다.
특히, 이 성에는 지금도 휴거된 영들,
선생을 위해 기도하는 자들이 온다.
기도하지 않고 휴거된 자들은 없다.
너희 각자도 선생같이 기도하면 성령을
부어 주니 힘이 생기고 능력이 생긴다.
(그렇다면 선생님을 위해 기도한 자들은
모두 이 성에 올 수 있나요?)
아니, 삼위가 보기에 기도의 그릇이
다 찬 자들이 온다. 기도를 깊이 한
자들은 모두 기도의 공적자들, 기도의
용사들이다.
(이 성에 와서 무엇을 하나요?)
선생의 기도를 받는다.
선생의 기도의 위력을 알아야 한다.
기도하면 선생의 기가 나가니
죽은 자들이 살아난다.
더 기도하면 할수록
휴거된 영이 이 선생의 성에서
선생에게 기도를 받으니 행함도 표가 난다.
선생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한 자,
이곳에서 선생과 함께 누리며 축복받는다.
그러니 육계에서도 실제로 기를 받는
것이다.
그 기로 살게 되니
뭐든지 하게 되고 능력을 받고
휴거 차원을 나날이 높이니,
전도하여 생명을 살리고
사랑 차원도 더 높아진다.
이리 행하니 선생의 몸이 되고
공적이 또 쌓인다.
고로 영계에서 보면 참으로 영체의 선이
아름답단다. 기도하면 만사형통이다.
기도를 깊이 많이 하라.
선생은 독수리봉에서 기도를 했잖아.
하늘이 놀랐다.
이토록 간구하며 기도하는 자가 없었다.
그리하여 동방의 독수리가 되었다.
이를 상징하기 위해
천국의 성도 독수리 모습이다.
독수리는 새 중의 왕이다.
그와 일체 된 자는 더욱 그를 위해
기도한다.
나 성자는 떠나는 이 시점에서
더욱 기도하는 자에게 머무른단다.
나를 부르는 자에게 가서 말한다.
2015_0507 목 계시말씀.hwp7
나를 잊은 자는 절대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 어젯밤에 기도했지?
연락이 안 되어 애타는 생명을 위해
기도하니 어떠냐?
즉시 그 생명과 연락되었지?
기도가 생명을 살리는 끈이 된단다.
기도하면 그 기가 생명에게 전달된다.
고로 생명이 산다.
선교하는 해,
기도로 생명을 살리고 선생도 살리어라.
선생이 너희를 위해 대신 지옥 전장에
나가 있지 않느냐.
너희가 할 수 있는 일은
끊임없이 그를 위해 기도하는 일이다.
오늘 너희가 합심하여
선생 위해 기도하니 사탄이 물러갔다.
기도하면 기를 받아 너희 영혼도 산다.
성의 모습을 봐라.
기도하면 독수리의 기를 받아서
너희도 개성의 왕이 된다.
기도하라. 기도하면 휴거된다.
시 줄게.
<기도>
기도하여 기 받고
살아난 자
기도하여 생명들
살리는 자 되었구나
독수리 위해 기도한 자
개성의 독수리 되어
황금성 날아다닌다
(기도하는 이유 중에 핵이 ‘하나님의
결재를 받기 위해서’라고 하신 말씀을
들었어요.)
맞다. 하나님의 결재를 받으면 모든 땅을
다 동원하여 기도대로 이루어 준다.
대통령의 결재를 하나 받으면 온 나라가
움직이지 않느냐.
하나님의 결재가 떨어지면 지구촌 운명이
달라지고 판도가 뒤바뀐다. 구원자
독수리는 결재를 받아 전해 주는 자다.
고로 나 떠나면 루트는 하나다.
이 루트를 통해서 결재가 내려온다.
더욱 나의 분체와 일체 되어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의 결재를 받게 된다.
기도하는 자에게 축복을 부어 주는 성자다.
♥ 05월 07일 목요일 ♥
성삼위의 창조 법칙
- ‘존재’를 위한 재창조
작성일 : 2015. 4. 6. AM 12:50-2:00
작성자 : 주수신
(성령님께 저를 창조해 주심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 이후 신의 ‘창조’와 그
창조의 결과물인 ‘피조물’, 인간으로부터의
2차 ‘창조’에 대해서 기도하다
받은 말씀입니다.)
*성령의 말씀*
성삼위의 창조로 이 모든 것들이
만들어졌고, 그 모든 것들은 성삼위의 창조
법칙 안에 있다.
‘천지 창조’를 놓고도
수없이 많은 법칙들이 있다.
오늘은 그중 한 가지 법칙을 알려 줄게.
“성삼위의 창조 법칙 속에서 존재하는
이 세상의 그 모든 것들은
매시, 매초마다 ‘재창조’된다.
이 법칙 속에서 있지 않으면,
더 이상은 ‘존재’하지 못한다.”
너희가 ‘살아 있다’고 보는 그 모든 것들은
매시, 매초마다 새로움을 입는단다.
그것이 긍정적인 방향에서든,
부정적인 방향에서든 말이다.
너희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미세한 부분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호흡하고 성장하며 번성하는
천지 만물을 놓고 보았을 때,
때에 따라서 그들을 구성하는 세포들은
죽기도 하며, 새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자세히 보지 않고 겉모습만 보았을 때,
그의 모습은 전과 다를 것이 없으나,
보다 깊이 보았을 때에는
수없이 많은 세포들이
제 기능을 다하고
명을 다하기도 하며,
새롭게 신생 세포들이 만들어져
그 자리를 메워 가기도 한다.
그것이 연속되지 못하면,
더 이상은 생명을 유지하지 못해
‘존재’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마치 DNA 내에 기록된 생체 프로그램과도
같다.
이와 같이 천지의 모든 피조물들에게
창조자가 부여한 프로그램이 있으니,
바로 ‘시시때때로 재창조’이다.
사랑아,
나 성령으로 인해 창조된 나의 사랑아.
너를 사랑하고자
나의 형상대로 창조한 내 사랑아.
너희의 육은 나의 창조 법칙 안에서
제 기능을 하고 있기에
이 시간에도 살아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너의 혼은 살아 있느냐?
너의 영은 살아 있느냐?
매시간, 그 흐름에 맞게
너의 혼과 영을
‘재창조’시키지 못하면
‘산 자’가 아니라, ‘죽은 자’가 된다.
‘특정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자’가
아니라, ‘존재하지 못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제 기능을 못 해서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죽은 자’는 살아 있는 자처럼
‘사고’할 수 없다.
‘산 자’처럼 생각할 힘도 없고,
‘산 자’처럼 행할 힘 또한 없다.
‘생각’을 ‘행동’으로
‘재창조’시킬 힘 또한 없다.
사랑아, 너에게 이러한
‘말씀’을 주는 이유를 알자.
‘자신을 재창조시키는 것’
이 재창조의 법칙을 알고
그 속에서 행해야만
너의 육도 혼도 영도
그 효율을 100% 발할 수 있는
최적화된 상태가 되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만들었듯,
너희 스스로가 너를 만드는 것이다.
‘재창조’란,
이미 만들어진 것에 손을 대
전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새롭게’는 전과는 다르다는 것이
아니더냐.
그러나 새롭게 하고자 하는 것에 있어서
너희의 구상이 나 성령과 다르다면
힘을 들여 ‘새롭게’, ‘재창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형상이 성삼위가 볼 때는
부정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누군가는 성삼위가 볼 때에 자신을 그릇된
방향으로 재창조하고, 누군가는 성삼위가
볼 때 보다 온전하게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이겠느냐?
그 모든 것은 ‘목적의식’에 있다.
자신의 ‘목적’을 ‘의식’하는 정도에 달려
있는 것이다. 목적을 잃은 자는 마치 길을
잃은 자와도 같단다. ‘성삼위’가 뚜렷한
자신의 ‘목적’인 자와 그 ‘목적’이 희미해진
자는 생각하는 것도, 성삼위가 보았을 때
온전한 생각을 행실로 옮기는 것도,
행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그로부터 비롯된 삶도,
그 모든 것이 너무도 다르다!
사랑아, 네 목적을 잊어버렸느냐?
그래, ‘행위’의 목적이 무엇인지 잊으면
이유를 모른 채 맹목적으로 행하는 것이
되니 그로 인해 곤고할 수 있지.
사랑아,
네가 길을 잃고 헤맬 때,
너에게 네가 가야 할 온전한 길을
제대로 알려 줄, 나 성령이 있는데
왜 나를 부르지 않는 것이냐.
어떠한 길을 가면서도
그 목적을 잊어버리면
더는 그 길로 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과는 다른 새로운 ‘목적’을
찾으며 그 새 목적에 부합하는 길로
가려고 하는 것이다.
네 ‘삶’의 ‘목적’은 무엇이냐?
네 ‘생각’의 ‘목적’은 무엇이냐?너의
‘행함’의 ‘목적’은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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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성령에게 한 번 말해 보아라.
그래, 너의 육, 혼, 영을 두고
수없이 많은 목적들이 있을 것이다.
그 ‘목적들’ 중 가장 큰 것은 무엇이냐?
(성령님, 저에게 있어서 ‘목적’이 되는
수없이 많은 단어들을 생각해 보고
상위 개념만을 추려내고 그중 가장 중요한
것만을 남기는 과정을 거쳐 제 머릿속에
남은 단 한 가지의 단어는
‘성삼위’입니다.)
그래, 너희 인생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것, 가장 큰 목적은 바로
‘성삼위’이다.
‘목적’은 ‘끝’이다.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뜻’이다.
‘달성’이다.
‘한계치’와도 같다.
네 자신을 수시로, 무시로 돌아보아라.
너희들의 궁극적 목적,
성삼위를 잃은 인생은
나날이 성삼위와는 먼 방향으로
자신을 ‘재창조’해 나간다.
너희가 알건 모르건,
인정하건 인정치 않건,
인간으로 창조된 이상,
너희 모두의 가장 큰 목적은
‘성삼위’일진대,
이 근본 목적을 뒤로하고
새로운 목적을 만들어
그쪽을 향해서 나아가면 너만 고생인
것이다.
네 마음에서도, 생각에서도,
행실에서도 ‘너’라는 그 모든 것에서의
‘희망’이 사라진다. ‘희망’ 없이 자기
차원의 ‘곤고함’ 속에서 갇혀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목적’을 잃은 자의 모습인
것이다.
‘목적’은 ‘이유’다!
‘목적’은 ‘이상’이다!
‘목적’은 ‘정상’이다!
‘목적’은 ‘꿈’과도 같다!
성삼위가 아닌 다른 목적을 가지려고 하지
말아라! 네가 생각하는 다른 목적들은
모두 부수적인 것이다.
근본은 오직 ‘성삼위’인 것이다!
그 근본 목적을 잊어버리면,
너의 생각대로 네 자신을 재창조해 나가게
된다. 그 재창조 속에 ‘성삼위’는 없다.
사랑아,
너희들은 시시때때로 너희들의 ‘목적’을
잊는다. 목적을 잊은 자는 목적을 잃은
자다. 마치 깊은 숲속에 들어갔으나
길을 찾지 못해 끝없이 헤매는 자와도
같다.
사랑아,
너희들은 깊은 숲속에서 길을 잃었으나,
‘지도’는 가지고 있는 자들과도 같다.
어떤 자는 그 지도를 보며
옳은 길을 찾고,
자신이 나가야 할 길을 재설정한다.
어떤 자는 지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도를 보려 하지도 않는다.
너희의
‘인생’에게 주어진 지도가 무엇이더냐?
‘성삼위의 말씀’이다.
‘성삼위’ 그 자체이다!
길을 잃어 고통받으면서도,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그 사실조차도
모르는 자들이 많다.
재창조에 대한 다른 법칙이 있으니,
바로 ‘재창조의 법칙 내에서 존재하는
자들만이 존재의 기쁨을 누리며 산다.’는
것이다.
그 기쁨이 없을 때,
너희 모두는 곤고함을 느낀다.
진보함 없이, 자신의 고정된 위치에서
머무르고 있는 모습을 볼 때 말이다.
더 나아진 것 없이, 전과 똑같은
모습만으로 존재하는 것을 볼 때 말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더욱 발전되기를
기대하나, 그와는 다르게, 더 나아진 것이
없을 때 말이다.
너희 스스로가 내는 생명의 소리를 들어
보아라. ‘존재’를 위해서 단 1초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네 소리를 들어 보아라.
네 몸 속에 있는 아주 작은 세포들,
근육세포, 신경세포, 그 어느 것 하나도
그저 멈추어 있지 않다.
쉼 없이 에너지를 공급하며,
생체 전기에너지를 만들고,
그 전기에너지로 움직이며
특정 신호를 다른 기관에 전달한다.
네 자신의 육에 있어서 ‘재창조’란,
네가 의식치 못해도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네가 그 활동과 그 가치를 잊어버리고
있지만 ‘너’는 그같이 네 자신을
‘존재’시키기 위해 단 1초도 쉬지 않고
요동치며 급히 행하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깨달았느냐?
(아멘.)
이와 같다.
‘육’이 그러하듯,
너의 혼과 영의 존재를 위해서도
그같이 자동적으로 행해야 한다!
네 ‘존재’를 위해서 그같이
쉼 없이 행해야 한다!
너의 ‘육’을 보고
네 ‘혼’과 ‘영’에 대해 깨달아라!
너의 ‘혼’과 ‘영’을 존재시키기 위해서
그같이 행해야 한다! 그 같은 행함이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당연시되어야 한다!
살기 위해서, 네 생각을 쉼 없이 네
스스로 자극시키고, 존재하기 위해서,
네 스스로 너의 영에게
쉼 없이 에너지를 공급해 주어야 한다.
그 ‘생명’의 근본은 ‘성삼위’이니,
그같이 행할 때, 네 ‘목적’이 ‘성삼위’가
되는 것이다.
나는 너의 육을 창조하면서도
‘육’만을 보고 창조한 것이 아니다.
‘육’을 가지고 살면서 영에 대해 알고
영원한 길을 찾아오라고 만들었다고
하였다!
‘육’을 통해 ‘영’을 알아야 할지니,
내 얼마나 너희의 육을 신비하게
만들었겠느냐.
그 모든 법칙이 ‘육’ 안에,
네가 살고 있는 이 ‘육계’에 다 들어 있다.
그 수준은 ‘영’과 ‘영계’에 비할 바가 아닐
정도로 아주 뒤처져 있지만, 같은 ‘존재
법칙’이 구현되었다는 점에서는
진정 그러하다.
성삼위가 너를,
네가 속한 곳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 창조의 법칙이 궁금하지 않느냐?
나 성령에게 물어라. 내가 알려 줄게.
사랑해서 알려 주니 그 법칙을 알고,
‘목적’을 잃은 자가 되지 말고
‘목적’을 늘 네 품에 새긴 자가 되어라.
마치 너희 ‘육’의 DNA에 너희의 형태,
성장, 행동, 탄생부터 죽음까지 그 모든
것들이 프로그래밍되어 있듯, 네 삶을 두고
이 ‘목적’ 프로그램을 가동시켜 보아라.
창조 법칙은 너희가 따라야 할
‘목적’과도 같다. 너희를 놓고 만들어진
법칙이기에, 그대로 따를 때,
제 기능을 하며 살 수 있고,
네 차원을 넘어 가장 최적화되어
그 이상의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칙 안의 프로그래밍대로 가면,
‘개인 차원’을 벗어나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
그리해 너의 차원을 넘어 그 이상의 것을
바라보는 시야를 가지게 되고
그로 인해 성삼위의 목적을 모르는
한 명의 인간의 수준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것들을
이뤄 가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남들이 할 수 없는 것을
보란 듯이 성취하는 자가 된다.
사랑한다!
내 너희에게 큰 ‘목적’을 두었기에
‘재창조’의 법칙을 두고
너희를 만들었으니,
너희 모두의 ‘근본 목적’인
‘성삼위’를 잊어버려
길 잃고 방황하는 자가 되지 말아라!
‘목적’을 강하게 인식해야 한다!
나 성령을 불러.
내가 너의 길을 인도할 것이다.
나의 사랑을 진정 알길 바라노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