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2015.05.08 (금)
금 계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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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 계시말씀
♥ 05월 08일 금요일 ♥
하늘을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사랑하는 것에 도전하여라!
100% 사랑에 도전하여라!
작성일 : 2015. 3. 20. PM 9:30
작성자 : 주수신
(지역 집회에서 합심기도 중, 역사를 놓고
기도했을 때 성령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령의 말씀*
사랑의 강도가
마음의 강도이고 실천의 강도다.
하늘을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사랑하여라!
그리 사랑함으로
선생같이 ‘기어코 해내고 말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그 마음으로 기어코 해내고 말아라!
성삼위를 ‘불같이’ 사랑하여라!
삼위가 너의 사랑을 모두 취하리라!
나 성령의 불같은 사랑을 너희에게 주니,
내 사랑을 받아라!
나의 불같은 사랑을 받은 자,
너의 사랑이 날로 불타리라!
꺼지지 않는 사랑을 품고 살아가리라!
그 사랑으로 모든 것들을 이기며,
그 사랑으로 내 ‘뜻’을 반드시 이루리라!
하늘의 사랑 뜻을 이룬 자는
‘성삼위’의 중심이 된다!
‘성삼위’는 그를 보고 행하신다!
‘성삼위’는 그를 보고 역사를 펴신다!
너희 모두,
‘성삼위를 맘과 뜻과 목숨 다해 사랑하는
것’에 도전하여라!
하늘을 그같이 사랑함으로
시대 사명자가 살아 있는 이때,
이 당대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라! 그같이
사랑해 행하는 자만이 주인공이 된다!
네 마음먹은 것을 행함에 따라서
네 일생을 영생을
오직 하늘만을 사랑하며
가장 큰 사랑을 누리며 살 수 있는데
왜 네 위치에서 그저 안주하고만 있는
것이냐!
너희가 진정 ‘가치’를 몰라서
그 정도로만 행하는 것이니
나 성령이 애가 타
자꾸만 알려 주는 것이다!
비록 너희가 가치를 모를지라도,
아는 자인 나 성령이 알려 주니,
나의 말대로 행해 보아라!
네 행함이 절대
그저 땅에 떨어지지 않으리라!
하늘을 향한 사랑이 절대
그저 ‘무’로 끝나지는 않으리라!
성삼위는 그 무엇보다도
하늘만을 사랑할 자가 필요하다!
삼위를 가장 사랑할 자가 필요하다!
너는 그 무엇보다도 삼위를 사랑하느냐?
하늘을 가장 사랑하느냐?!
성삼위가 부르면 그 어떤 것도
‘즉시’ 버리고 오직 하늘 앞으로 달려올 수
있는 자가 필요하다! 너희는 나 성령이
너를 부르면 너의 모든 소유를 버리고,
나에게로 올 수 있느냐?
이같이 할 수 있는 자가 바로 하늘을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사랑하는 자이다!
하늘을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사랑하는
자가 필요하다!
하늘 신부들아,
삼위를 그같이 사랑하는 차원에 올라라!
그 사랑의 차원을 두고 늘 도전하여라!
그 같은 차원의 사랑을 하는 자와
내 앞으로 이 역사를 창대히 펴 나갈
것이다!
그러니 너희 모두는 진정 삼위가 원하는
차원의 사랑에 도전하여라!
하늘을 사랑하는 강도만큼
이 역사를 강하게 증거하고,
강하게 펴 나갈 수 있다!
사랑이 힘이다!
사랑이 능력이다!
너희의 ‘사랑의 강도’대로,
너희의 ‘행함’대로,
네가 앞으로 어떻게
성삼위와 시대 주와 함께
이 역사를 펴 나갈지가 결정나니
이것을 진정 알고,
그 무엇보다도
하늘을 향한 네 사랑을 키워라!
삼위에 대해서 알고,
하늘을 뜨겁게 사랑하여라!
너희 사랑의 강도대로 하늘이
너희를 대해 주리라!
나 성령이 너무도 큰 사랑을 품고
너희에게 왔다!
내 커다란 사랑을 받고
하늘과 큰 사랑을 이룰 자를 찾고 있다!
하늘을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사랑함으로
이 사랑을 이룰 자 누구이냐?
성삼위가 원하는 차원에 도전하여라!
도전해서 네가 바로, 그 주인공이 되어라!
하늘 사랑에 도전하겠다 결심한 자들아,
70%만, 80%만 사랑하지 말고
네 사랑을 100% 하늘 앞에 다오.
100% 사랑에
100%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100% 극적인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너희 모두는
100% 사랑에 도전하여라!
나를 사랑한다고
모두가 같은 길을 가고
같은 사랑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하늘을 얼마나 화끈히 사랑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랑의 급이 달라지고
그 사랑급으로, 그의 인생급 또한
달라진다!
하늘의 기준은 오직 “사랑”이다!
너희의 사랑으로 너희를 향한
하늘의 계획 또한 달라짐을 알아라!
‘오직 하늘만을
100% 사랑하기’에 도전하여라!
그로 네 모든 것들이 극적으로 바뀌리라!
너의 생각도, 마음도, 정신도, 행실도,
계획도, 진로도, 미래도, 환경도, 여건도,
그 모든 것들이 너를 향한 하늘의 계획
안에서 극적으로 바뀔 것이다!
내 사랑에 도전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너희가 되길 진정 바라노라.
그 어떤 성공도 성삼위와의 사랑에 성공한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하늘과의 사랑은
‘자신을 버리는 사랑’이다.
‘자신을 내려놓는 사랑’이다.
‘오직 성삼위만을 남겨 두고
다른 것들을 잘라 내는 사랑’이다.
그렇게 해서 진정 하늘만을 두고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자,
삼위를 100% 사랑하는 자이다.
그자에게 삼위는 100% 역사한다!
나에게 100% 모든 것을 주듯
삼위 또한 그자에게 100% 줄 것이다.
사랑에 대한 내 심정을 알렸으니
내 말씀 속 너에게 하고자 하는 나의 말이
무엇인지 알고 내 뜻대로 행하길 진정
바란다. 그리해 너의 육도 혼도 영도
네 차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의 사랑 속에서 그 모든 것들을
다스리며 살아가길 진정 바라노라.
그리해 너를 통해
나의 뜻이 이루어지길 진정 바라노라.
너무도 사랑한다! 너, 하늘 절대 사랑,
하늘 100% 사랑에 도전해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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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월 08일 금요일 ♥
시작은 생명이다.
그래서 생명의 날이다.
작성일 : 2015. 3. 13. PM 9:40
작성자 : 주내별
(생명의 날 주간, 진리사랑성령운동 때
성자께 그동안의 추억을 회상하며 미리
작별인사를 드렸습니다. 성자가 떠나시기
전에 한마디 해 주시기를 간구했을 때
말씀해 주셨습니다.)
* 성자의 말씀 *
그래. 간구하니 말한다.
나 너희 신랑 성자다.
전에도 후에도 없을 신랑이로다.
사랑들아. 나 떠난다고 슬퍼 마라.
마치 겨울에도 비닐하우스 재배로 과일을
먹을 수 있듯이 나 성자가 떠난 후에도
그 사랑을 보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제철과일 먹는 것같이는 못 한다.
섭리사 신부들 그 추억과 각종 사랑
고백을 내가 다 가지고 간다.
그리고 영원 끝까지 기억한다.
이젠 선생 없으면 그 무엇도 못 한다.
선생이 막혀 버리면 섭리길
그 누구도 못 간다.
그러니 선생 위해 기도하는 게 답이다.
답답해하지 말고 기도가 답이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희 섭리사를 보고 세상 죄를 보고
그 기울었던 마음을,
선생의 그 붙잡음 때문에 다시 돌이키셨다.
그래서 작년 연말 심판이 없었다.
연말 심판은 하나님이
각종 죄를 결산하는 심판이다.
연말에 세금을 정산하듯이
하나님이 죄를 세어 보고 달아봐서
그에 맞게 심판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모든 공의를 깨뜨린
것은 오직 선생 때문인 것을 깨달아라.
그 누구 때문이 아니요,
그 무엇 때문이 아니요,
오직 선생이라.
작년 연말 그리 지나갔으니...
올해는 어찌 되는지 아느냐?
결국 정산의 때가 온다는 것이다.
용서했으나 돌이켜 회개하지 않던 세상에
앞으로 성자가 떠난 징조가 세상에
떠들썩할 것이다.
그것은 말세의 징조, 새 역사의 징조이다.
말세의 징조는 나 성자가 떠나는 징조,
새 역사의 징조는 새 역사의 주인인
선생이 탄생한 것이 징조다.
곧 역사는 끊어짐이 아니요,
하나로 이어지는 것이다.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고 다시 끝이 온다.
하나님의 역사 법칙이다.
그러니 선생이 탄생했던 날쯤
내가 떠난다고 한 것이다.
그 징조가 세상에 수없이 나타날 것이다.
성자가 떠났으니 각종 재해와 각종 고통의
울음소리가 터지나
새 주인이 태어난 날이니
각종 축복과 각종 은혜의 웃음소리가
섭리에 떠나지 않으리라.
말세의 징조가 바로 선생 어머니가 아니냐.
내가 떠나 슬프지만 슬프지 않은 것은
이것을 두고 얘기한 것이다.
섭리사 모든 신부들은
마음을 다스리고 행실을 다스려라.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자가 뇌를
다스리는 자이고 행실을 다스릴 줄 아는
자가 진정 휴거된 자라 할 수 있다.
선생도 평생 그 행한 것을 보여 주며
살았다.
사람이 감춰진 것이 없이
다 드러나는 삶이 쉬운 삶인 줄 아느냐.
영적인 지도자의 삶이 다 드러났으니
세상 지도자의 삶도 다 드러났다.
그러나 세상 지도자의 삶이
깨끗한 삶이더냐.
더러운 각종 불의가 드러났다.
온전한 자 하나로
세상의 모든 불의를 드러낸다.
완전한 사실 하나로
모든 가설과
모든 추측을 깨 버리는 것이다.
완전한 것 하나로 모든 것을 측정하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완전하라. 온전하라. 이것은
너희에게 주는 축복이다. 사랑이다.
진리다.
생명의 날을 맞는 너희들은
진정 이 뜻을 알고 맞아라.
끝이 오면 시작인 것을 알아라.
그러니 새롭게 해야 한다. 전과 같이 하면
말세의 때와 같이 끝나 버린다. 과거의
모든 것은 말세의 때와 끝나 버린다.
새로운 것만 새 주인과 새 역사와 시작할
수 있노라.
하나 더 얘기하자면
차원이 날로 더 높아지는 이때에
온전하게 하고 완전하게 하는 것이
새롭게 하는 것이다.
무엇을 새롭게 할지 모르는 자들도 많으니
더욱 차원을 높여 완벽하게 견고하게
자기 자신을 만들기를 바란다.
그것이 2015년 새롭게 되는 방법이다.
사랑하여 떠나며 말해 줬다.
사랑해서 그냥 끝내지 않고
다시 시작해 줬다.
그러니 끝이 아니다. 다시 시작한다.
선생을 통해 시작이다.
축소해서 생명의 날이 그 스타트다.
말세는 죽음이면 시작은 생명이다.
그래서 생명의 날이다.
역사적인 생명의 날, 잘 맞이하자.
안녕. 영원히 너의 신랑 성자
♥ 05월 08일 금요일 ♥
생명의 날의 핵은
‘선생 제대로 알기’다
작성일 : 2015. 3. 10. AM 5:00
작성자 : 주소유
( 성자께서 “생명의 날 주인공은
선생이니 선생을 밝히는 말씀을 해야지.
올해는 정말 선생을 제대로 알기다.”
하시며 해 주신 말씀입니다. )
* 성자의 말씀 *
생명의 날의 핵심은 ‘선생 알기’다
선생을 알지 못하면, 선생이 태어난 날을
왜 ‘생명의 날’이라 지칭하는지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기 때문이다.
관념적인 모든 것을 오늘부로
다 내던지고 새롭게 하기다.
어떤 것을 새롭게 할까.
선생이 누구인지
새로운 차원에서 깨닫기다.
선생에 대한 낡은 사고와 인식을 다
태우고 선생을 새롭게 맞고, 알기다.
새롭게 하지 않으면 갈 길이 막혀
버린다고 했지?
선생을 새로운 차원에서 깨닫고 알지
못하면 스스로 무너지게 된다.
선생이 조건을 세우므로
새로운 차원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모두가 그 길을 따라가야 차원을 높이고
이상적인 뜻을 펴게 되고
가장 빠른 휴거를 이룰 수가 있게 된다.
하지만 선생을 모르고, 관념으로만 알고,
선생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면
선생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니
자기의 길을 가게 되고,
자기 인생을 살게 됨으로
선생 따라가는 길은 막히고
자기 뜻만 펴다 인생이 끝나게 되는
것이다.
선생을 안다는 것은 그저 막연하게
선생의 사명이 나의 육이 되어
구원의 사명을 펴는 자로서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 성자님, 정말 선생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제껏 섭리를 따라온 자들은 분명
선생님의 사명을 알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만이 선생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면,
정말 선생님을 안다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진정 알기를 원해요. )
너희는 배가 고플 때,
밥을 먹어야 ‘살겠다’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지? 그리고 그것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밥을 먹고자 하고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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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약을 먹을 때,
이 약을 먹으면 ‘낫겠다’ 하는 것을
알고 믿고 그 약을 먹지?
또한 너희는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빠르다,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편리하다’
하는 것을 알고 사용하며 살고 있지?
이렇듯 ‘안다’ 하는 것은,
먼저는 가치를 안다 함이다.
행할 때도,
알고 행하는 것과 모르고 행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알고 행하는 것은
‘확신’과 ‘믿음’이 있기에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거침이 없고 망설임도 없다.
너희가 밥을 먹을 때,
‘이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를까?
살 수 있을까?’
생각이 들어 밥을 먹는 것이
망설여졌던 적이 없지 않느냐?
그처럼, 알고 행하면
망설이고 갈등할 필요가 없이
‘즉시’ 행하게 된다.
선생을 ‘안다’ 하는 것은
선생의 ‘생명 같은 가치’를 안다는 것,
즉 선생이 너희에게
‘생명’과 같은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선생이 너희에게 ‘생명’임을
확실히 ‘안다’는 것이다.
너희는 모두 선생을 귀히 여기고
선생이 얼마나 위대한 자인지도 알며
나 성자의 육신임도 알며
성약의 신부시대의 문을 연,
나의 첫 신부임도 알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아느냐,
이것이 문제가 아니겠느냐.
모두가 똑같이 선생을
‘생명’같이 인식한다 하여도
어떤 이는 30%만 생명같이 인식하고
어떤 이는 70%만 생명같이 인식하고
어떤 이는 100% 생명같이 인식할 것이다.
이것은 선생이 정말 너희에게
100% 생명과도 같다는 것에 대한
믿음과 확신의 정도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왜이겠느냐.
겪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아무리 좋은 것을 알아도
스마트폰을 사용할 줄 모르면
좋은 것을 모를 것이고,
스마트폰을 사용할 줄 알아도
그 성능과 기능만큼 사용할 줄 모르면
스마트폰이 ‘얼마나’ 좋은지는
알지 못할 것이다.
모두 자기가 겪어 본 만큼,
사용해 본 만큼 안다는 것이다.
즉, 자기가 아는 만큼
그 가치를 아는 것이다.
너희 모두도 선생을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선생의 말씀을 삶 가운데 순간순간 적용해
보지 않으니 선생이, 또한 선생이 주는
말씀이 그것이 왜 생명인지 온전히 체험해
보지 못했고, 혹은 체험은 해 보았으니
100% 지키며 살지 않았기에 자기
자신에게 100%의 가치로 적용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선생의 말씀을 실천하며
겪어 보고 그렇게 살아 본 만큼
선생이 주는 말씀 하나하나가 왜 생명이며
어떻게 도움이 되며, 어떤 유익이 되는지
알 것인데
너희는 그렇게 살아 보지를 않으니
말씀의 가치를 모르게 된 것이고,
말씀의 가치를 모르니
선생을 모르는 것이 아니냐.
밥을 먹어야 밥맛을 알고,
약을 먹어야 약으로 인한 효능을 알고,
스마트폰을 사용해야
스마트폰이 좋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선생이 늘 받아 전해 주는
‘생명의 말씀’을 사용하고
삶 속에서 말씀대로 살아 봐야
말씀이 생명인 것과,
말씀대로 살아야만 하는 것과,
그 말씀을 쉼 없이 받아
너희에게 값없이 주는 선생이
얼마나 귀한지, 그가 왜
생명의 근본인지를 너희가 알지 않겠느냐.
‘생명의 날’이 너희에게 정말 너희를
살게 하는 온전한 가치를 발하는
‘생명의 날’이 되게 하려면,
먼저는 선생을 알고 깨닫기다.
하지만, 아직도 섭리사에는
선생을 왜 알아야 하는지,
왜 깨달아야 하는지조차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자가 많고
관념적으로는 선생을 알고 깨달아야 함을
앎에도 불구하고 자기 삶이 우선시됨으로
선생을 아는 것이 자기 삶에 밀려나고
있으니 이 때문에도 선생을 모르는 자들이
많다.
결국 너희 삶에서,
너희의 것이 중요시되고 먼저가 되니
선생과 말씀은 너희 삶에서 사라져 가고
있고 가치성도 뒤로 밀려나고 있는 경우가
있으니 오늘 이 ‘생명의 날’을 기점으로
하여 너희 모두가 자기 자신을 점검하여
정녕 새롭게 하지 않는다면
너희 스스로가 이 섭리와 선생을 중심하지
않음으로 섭리에서 밀려나는 인생이 될
수도 있음이 아니겠느냐.
이는 나 성자가 밀어냄도,
선생이 밀어냄도 아닌
스스로가 뒷걸음질 치는 격과도 같으니
지금 내가 너희에게 ‘생명의 말’을
하고 있음을 진정 알아라.
사랑들아. 들어 보아라.
세상도 작은 사물 하나를 알기 위해서
사물을 해체해 보고 파헤쳐 보고
온갖 연구를 다하지 않더냐.
그런 연구로 인하여 하나의 사물도
새롭게 거듭하여 출시되며
그 가치를 아는 자들은
새로운 것을 얻으려 노력하지 않더냐.
선생이 너희에게 그 작은 사물 하나만도
못한 존재는 아니지 않느냐.
너희는 말로는 선생을 귀히 여긴다고 하고,
위급할 때는 선생을 부르기도 하고,
또 너희가 좋을 때는
나를 사랑한다,
나를 원한다고 말을 하지만,
내가 너희의 신혼골수를 꿰뚫어보고
말하건대, 너희에게 나 성자는,
나의 육신인 선생은
작은 사물 하나만도 못한 존재로
취급될 때도 있더구나.
운동을 좋아하는 자는
축구공, 농구공을 옆에 늘 끼고 다니고
기계를 좋아하는 자들은 컴퓨터,
스마트폰 등을
늘 잡고 사는데
너희는 그것만도 못하게 선생을 대하며
그것만도 못하게, 선생을 너희 뇌 속에
잡고 살지를 않으니 그것을 어찌 선생을
안다 하는 삶이라 할 수 있겠느냐.
선생을 알되 선생의 크기만큼 알아야지.
선생을 멀리서 바라보면 그만큼 선생이
작게 보인다.
하나의 산도 그렇지 않느냐.
실제로 가까이서 보면 크고 웅장한 산인데
멀리서 보면 작아 보이고,
한 손으로 가려지지 않느냐.
너희가 선생을 멀리서 보고,
방관하듯이 쳐다보기만 하면
선생이 그만큼 작아 보이고,
선생이 얼마나 큰지
웅장하고 신비하고 아름다운지
그 가치를 제대로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선생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선생의 위엄과 그 사명의 빛이
더 자세히 보일 것이고
선생의 모든 것을 더 깊이 있게
알게 될 수밖에 없겠지.
그렇다면, 선생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이란
무엇이겠느냐.
(선생님을 위해 늘 기도하고,
선생님을 늘 생각하고 부르는 것,
선생님을 알고자 하고 깨닫고자 하는
것입니다. 생각하면 보는 것이라 하셨으니
선생님을 생각할수록 또 더 많이 생각하고
정신에 품을수록 더 자세히 보이고
점점 더 가까이 보이게 됩니다. )
맞다.
또한 선생의 말씀을 네 몸에 붙이고
다니며 상황에 맞게 실천하며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 생각할수록 선생은 너와
가깝게 있음을 알게 될 것이고
생각할수록 생각의 시력은 좋아져서
흐리게만 보였던 선생이 선명하게 보여
선생의 빛을 알고 아름다움을 알게 되리니
너희는 정녕 좋아서 기뻐 뛰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2015_0508 금 계시말씀.hwp4
섭리사 올해 모두는
‘선생 알기. 선생 깨닫기’에
더욱 주력하여 완전히 새롭게 하여
뒤집기다.
올해 선교하는 해이니
선생을 모르면 선교하는 해라는 것이
오히려 버겁고, 왜 선교해야 하는지
크게 와 닿지도 않게 되어 행함이
막히게 될 것이다.
너희가 모든 것을 할 때에
핵심이며 중심이 무엇이겠느냐. ‘선생’이다.
선생을 앎으로부터 모든 것은 시작되고
그로 인한 끝은 너희의 휴거로 완성이 될
것이다.
알면, 아는 힘이 있으니
거침이 없고 막힘이 없다.
그래서 알고 행하라 한 것이다.
주를 알고 행하여라.
생명의 근본을 알고 행하여라.
그것이 주의 돛을 다는 것이며
그것이 가장 빠른 휴거의 길임을 알려
주었다.
사랑하여 잘 설명하였으니
너희도 사랑하여 잘 들었으리라 믿는다.
올해 사랑으로 살아나고 빛을 발하여라.
안녕.
♥ 05월 08일 금요일 ♥
깨달아야 휴거된다는 말을
깊이 깨달아라.
작성일: 2015. 2. 7.
작성자: 정형호
(성자께 간절한 사랑을 담아,
철야기도를 할 때 주신 말씀입니다. )
* 성자의 말씀 *
사랑해서 말씀 주고
사랑해서 희생하고
사랑해서 너를 섭리사 가운데 불러왔다.
사람이 잊고 사는 것이 많구나.
이것을 기억해야 해.
잊지 않으려면 뇌에서 떠나보내면 안
된다는 것을
아무리 나를 생각 속에 담고 있어도
순간 다른 생각에 빠지면
그때는 나를 멀리하는 것이고
나를 버리게 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너희들이 이런 질문을 하겠지?
24시간을 어떻게 생각에 두냐고.
가능하다.
확고한 믿음과 정신, 사상 속에
말씀이 들어 있고 중심이 서 있으면 된다.
각자 일에 빠지면
그 일에 몰두해서 힘들기도 하지만,
그 일 안에 중심이 서 있으면 된다.
중심이 서 있어야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정확히
깨달아야 된다. 알겠느냐.
중심만 바로 서 있어도
절대 잊지 않고 놓치지 않는다.
중심이 서 있다는 것은
사랑 일체, 사랑이 오고 가며
사랑을 나누는 사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단계를 극복하면
먼저 하는 시랑을 하고
항시 생각하는 단계가 된다.
왜! 그것이 중요하니까.
그래서 먼저 중심관이 바로 서야 된다.
모든 시작은 주를 정확히 아는 데서부터
시작되고 그래서 주를 정확히 배워야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근본 뜻을 정확히
모르니 실수도 하고 죄도 짓고 자기
판단을 주가 주신 판단으로 여기며
일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힘들어지면 어떤 자는
원망하고 낙담하고 낙심도 한다.
대다수 낙심이 심한 자들을 보면,
자기 식대로 되지 않을 때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니
낙심을 많이 한다.
그럴 때는 자기 생각에 빠져 있으면
더 미궁으로 빠지니
얼른 자기 생각에서 나와,
주의 생각에 빠져야 된다.
자기 생각대로 하는 자들을 보면,
기도를 깊이 하지 않고,
말씀을 제대로 보지 않고
연구하지 않고,
자기 잣대대로 행하며
행했다고 하는 자들이다.
섭리사에 아직도 이런 자들이 많다.
돛을 확실히 달라는 말!
중심을 확실히 잡으라는 말이고
사랑을 확실히 이루자는 말이고
그래야 휴거될 수 있다는 말이다.
너희는 시대 사명자 선생을 누구로 보느냐.
중심자, 구원자, 사명자로만 보느냐.
그는 너희 앞에 신랑 격이요. 나다.
그러니 사랑의 대상체로 봐야 하며,
사랑의 뜻을 확실히 이루어 먼저 주는
사랑을 해야 할 근본인 자다.
육의 사랑이 아니라
혼적, 영적, 신적 사랑이다.
선생이 나 성자를 사랑한 것을 보면 된다.
배워야 될 것을 배우고
따라 해야 할 것을 따라 해야 하는데
지도자들이 선생의 권위와 사명만 보고
겉사랑만 하고 받으려고만 하면 안 된다.
이런 자가 있기로 말한다.
조금 하고 많이 얻으려고 하는 것도 죄다.
양심이 고장 난 자다.
다 자기가 한 만큼 받는 것이다.
그래야 공의의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일점일획도 오차가 없다.
그것이 하늘 법이다. 완벽이다.
사랑아.
중심이 바로 서려면,
생각부터 잡고, 그를 닮아 행하고
그와 함께 모으고 헤쳐라.
그 전에 선생에 대한
깨달음의 기도를 꼭 해라.
섭리사 모두가 해야 할 숙제다.
나 성자가 기도하고 행하는 자에게 가고
꼭 충격적으로 깨닫게 해 줄게.
나와 통할 수 있는 관문이요,
이것이 방법이다.
선생에 대해 제대로
배우고 싶은 자는 알려 줄 테니
너희는 선생에 대해 정확히 배워라.
선생이 주는 말씀을 통해
정녕 제대로 배울 수 있다.
이 말씀을 많이 듣는 것은
1차원적인 것이고
그 말씀을 쓰는 것
(말씀을 써 보고 정리하는 것)은 2차원,
그것을 완성하여 일체 되어
이루는 것이 3차원,
이루었다면
딱 붙어 함께하는 것이 4차원,
함께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은 꾸준한 것이니
꾸준하게 하는 자는
하늘이 쓰는 것도 다르다.
꾸준한 것에 차원을
높여 가는 것까지 하면 100점이다.
실상 선생이 차원을 높여 가니 함께하면
차원이 높아진다.
기록적인 삶을 살고
기록적인 인생을 사는 자가 되어라.
운동경기에도 기록을 세우면 다르지 않냐.
이것을 꼭 기억하고 기록을 세워라.
각자마다 자기의 전문파트에 기록을
세우고 특히나 기도와 말씀에 기록을
세우고 휴거되기 위해 의의 일을 하는 데
기록을 세워라.
알겠느냐.
이렇게 해야 내가 떠나도
너희의 휴거의 문이 닫히지 않는다.
선생이 조건을 세워서
그 문을 닫지 않았다.
이것이 시대 사명자의 사랑이요,
능력이다.
능력은 행했으니 받았고,
그렇게 사니까 받는 것이다.
그의 삶은 일점일획 오차 없이
완전한 사랑의 삶이다.
평생 원망하고 힘들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감사와 사랑만이 넘치는 것이
기적이다.
그 기적을 일구어 냈으니,
이제 너희가 행함으로
기적을 일구어 내자.
내가 선생을 통해 함께함을
절대 기억하고 이것을 정확히 깨달을 때
더 큰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알겠지?
사랑하고 사랑하니 말씀했다.
오직 주 중심의 관이다.
이것이 휴거의 지름길이요.
2015_0508 금 계시말씀.hwp5
용서의 축복을 감당하고,
하늘이 계획한 뜻을 이루는 지름길이다.
시대의 핵, 선생을 모르면 휴거는 없다.
휴거와 상관없는 자며, 휴거와 먼 자다.
이 말을 깊이 깨달아라.
섭리사를 안다고 하나
제대로 모르는 자가 많은 것이 현실이라,
나 성자가 떠나며 말한다.
제발 시대 핵인 선생을 깊이 알고
깨달아라.
그의 숨결까지도
닮는 자들이 되길 바란다.
그를 닮는 자가 휴거된 자요,
성자와 선생이 쓸 자다.
나의 이 말 한마디가 크다는 것을 알아라.
한마디를 들어도 누구의 말인지를 알고
들어야 느낌도 생각도 다르다.
나의 말을 깊이 새겨듣는 자가
지혜로운 자요,
슬기 있는 자요,
현명한 자다.
하늘 신부는
지혜와 슬기, 현명함과 동시에
빠른 실천력이 핵이다.
나의 말 한마디에
즉시 움직이고 행하며 노력하는 자는
내가 눈을 떼지 않을 것이다.
사랑한다.
섭리역사의 중심 성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