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15.05.15 (금)
스승의 날 말씀
- 선포일
- 2015.05.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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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15일 스승의 날>
◉ 선생이 새벽꿈에 ‘나의 기쁨 나의 소망’을
5절까지 그리도 심정 깊이 불렀다.
그러고 나서 깨어 바로 붓을 잡고 이 말씀을 썼다. 하루 동안 썼다.
◉ 모두 우리의 기쁨과 소망과 생명이 되시는 주님을 생각하며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심정 깊이 이 찬양을 부르고
오늘 말씀 들어 볼까요?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양을 드려도 늘 아쉰 마음뿐일세.
<말씀 시작>
◉ 첫째, 성자는 왜 오셨을까?
<시대 구원자>를 믿게 해 주기 위해서 오셨다.
<구원자>에 의해 ‘운명’이 생명이나 사망으로 기운다.
<구원자>를 안 믿으면, 성자가 목적을 이루지 못하신다.
성자는 목적을 이루실 때, 구시대에서 새 시대로 전환하신다.
예수님 때도 성자가 예수님의 육신을 쓰고 오셔서
구시대 구약역사에서 새 시대 신약역사로 전환하셨다.
이 시대도 성자는 선생의 육신 쓰고 오셔서
구시대 신약역사에서 새 시대 성약역사로 전환하시며,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펴시고 목적을 이루신다.
성자가 선생을 통해서 행하셔도 <구원자>로 믿지 않으면
하나의 지도자나 평신도가 일반적으로 행한 것으로 본다.
고로 ‘뜻’이 이루어지지 않고, ‘목적’을 못 이루신다.
◉ 둘째, 성자는 ‘자기 육으로 쓰는 선생’을
<성자>같이 믿고 <시대 구원자>로 믿게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셨겠느냐.
수천 가지의 기적과 표적을 보이셨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들을 수천 가지 행하셨다.
선생이 자체적으로 바닷물을 멈췄겠느냐.
그것도 서해안 몽산포에서, 말레이시아 포딕슨 해변에서, 두 번씩이
나?
그러나 믿고 따르는 자들이 ‘우연’으로 볼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도 병을 고치고 능력을 부리기도 한다.
모세 앞에 다른 사람들도 능력을 부렸듯이 말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못 하는 일,
우연으로 본 것이 아님을 확신하는 일을 행하게 하셨다.
곧, 세계의 여러 가지 일들을 미리 예언하고 행하게 하셨다.
성자는 ‘그의 육’을 쓰고 민족적인 심판, 세계적인 심판을 하셨다.
그런데 ‘누구를 심판하여 죽었다.’, ‘어떤 사고가 났다.’ 하면,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그러냐?” 하면서
화살이 날아오고 큰일이 나니
구원자가 성자께 올려서 성자가 심판했다고 말을 못 한다.
너희가 까놓고 세상에 증거했느냐.
심판하여 엄청난 사람들이 죽었어도 증거하지 못한다.
고로 암암리에 아는 자들만 깨닫고 간다.
성령을 받고 감동으로 각자 알게 한다.
또한 구교인 <천주교>와 신교인 <개신 기독교>는
같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482년 동안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싸우고 전쟁까지 했다.
서로 죽이려고 쫓아다니고, 만나면 싸웠다.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는데,
<성자>는 ‘선생’을 육으로 삼고 나를 데리고 다니며
이것을 보게 하시고 482년 만에 화합하게 하셨다.
<하늘의 주>와 <땅의 주>, ‘주체와 대상’이 같이 행하니,
482년 동안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가 해결됐다.
남자는 ‘여자’를 통해서 아기를 낳아야 하듯이,
하늘의 성자도 ‘땅의 첫 신부인 선생’을 쓰고 했다.
신랑인 성자와 신부가 하니 된 것이다.
선생도 ‘대상인 조은이’를 쓰고 행하니,
역사가 일어나서 ‘삼위가 보낸 자를 믿게 하는 표적’을 이루었다.
그동안 성자께서 하나님과 함께 지구 세상에 각종으로 행하신 이유는
<선생>이 보이는 성자이며
성경에 예언하고 2000년 동안 기다린 그라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함이었다.
◉ 셋째, 성자는 ‘자신의 육으로 쓰는 자, 분체, 보낸 자’
곧 ‘시대 구원자’를 모든 사람들이 알게 해 주시려고,
선생을 연단시키시고 기도하게 하시며
새 역사를 시작할 <시대 말씀>을 주셨다.
선생이 15세 때부터
성자는 예수님의 모습으로 나타나시어 연단시키시고 기도하게 하시며
새 역사를 시작할 준비를 하게 하셨다.
선생이 준비가 되니 성자는 <시대 말씀>을 주셨고,
선생은 ‘그 말씀’을 가지고 행하며
‘성경의 각종 예언들’을 이루며 왔다.
선생이 성경의 예언을 이룬 것들을 보면
특히 수리적인 부분을 딱 맞추어 이루었다.
<때>에 대한 것이다.
<때>는 아무나 맞출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
다른 사람들은 ‘태어난 날’도 다르고, ‘시대’도 다르니
<때>를 맞출 수가 없다.
‘그 시대’를 맞춰야 하고, ‘연도’를 맞춰야 하고,
‘달, 날짜, 시간’을 맞춰야 되기 때문이다.
<3.16>같이 ‘해, 달, 날, 시간’까지 맞춰야 된다.
그리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는 그 때를 알아야 된다.
선생은 <때>를 맞추어 행하여 ‘시대의 뜻’을 펴고,
영들과 혼들이 천국까지 가서 확인하게 했다.
그리고 휴거되는 것도 보게 했다.
이것이 <시대 구원자>라는 근거다.
그는 ‘알파와 오메가’를 딱 맞춘다!
전자를 보아라.
그곳의 최고 지도자는 자기를 메시아로 믿게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 ‘때’가 안 맞으니 모두 의심했다.
<때>는 매우 중요하다.
사주팔자를 볼 때도 <때>가 좋은지 본다.
<때>가 안 맞으면 ‘삼위가 보낸 자’가 아니다.
하나님은 절대 <때>를 맞춰 행하시고,
메시아도 <때>를 맞춰 나타나고 <때>를 맞춰 행한다.
지구가 생긴 후, 종교 역사가 시작된 후
누가 <천국>을 그리 자세히 보고,
<황금성>까지 알고 본 자가 있느냐.
<천국>은 없다 하는 자는 <천국>을 못 봤기 때문이고,
<황금성>은 없다 하는 자는 차원이 안 되어 못 봤기 때문이다.
<하나님 보좌>가 큰 집만 하다고 하는 자는
그 정도로 떨어진 거리에서 봤기 때문이고,
지구만 하다 하는 자는 아주 가까이에서 봤기 때문이다.
<천국>도 <황금성>도 그렇게 자세히 보여 준 것은
이 지구 세상에 ‘섭리사’밖에 없다.
또한 성자는 3500회 이상 100여 명이 넘는 자들에게
계속 <계시>해 주시며 <영계>를 보여 주셨다.
이 같은 역사는 <신약>에도 없었고 <구약>에도 없었다.
미국의 ‘세계적인 영계의 거성’이라고 하는 자들을 봐라.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하며 책도 썼다.
예수님이 데리고 다니면서 보여 주셨는데 자세히는 못 봤다.
봤더라도 자기들 수준대로 조금 보고 왔다.
섭리사의 계시자들이 간 곳은 한 번도 못 가 본 자들이다.
그들이 예언한 것이 맞았냐? 틀렸다.
왜? <영적 전쟁>을 ‘육적’으로 본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섭리사 계시자들의 예언은 100% 다 맞았다.
미국에서 나오미 목사가 그들을 만나 봤다.
천국과 지옥을 보고 온 자들 중의 한 명은 선생을 ‘이단’으로 봤다.
선생이 너무 기가 막혀서 성자께 이야기했다.
“아니,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들도 ‘하나의 선지자’인데,
선지자들까지 나를 이단으로 보고 공격하게 합니까?
도대체 그들에게 누가 계시를 주는 겁니까?” 했다.
성자는
“그런 것은 그 차원, 그 수준의 급으로 말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너에 대해 이야기하니까
사람들 말에 영향을 받고 자기 의지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해해.” 하셨다.
선생은 요한계시록 11장 말씀대로 기도하며
“그러면 제가 이 시대 사명을 하는 데 지장이 있으니,
저도 제 사명대로 물이 피가 되게 하겠습니다.” 했다.
이에 성자는 “내가 하마.” 하셨다.
원래 ‘영계의 두 증인’이 있었다.
그런데 한 명은 죽었고, 한 명만 남았다.
선생이 2009년에 그 사람을 먼저 발견하여
섭리사 전체에 이야기해 주었다.
<휴거 시대>의 ‘하나의 증인들’이었다.
한 명은 영계의 내적 증인, 한 명은 영계의 외적 증인이었다.
그러다 ‘영계의 두 증인’이 자취를 감추면서
성자는 섭리사에서 계시자들이 나오게 하셨고
그들을 통해 계시해 주셨다.
2009년 선생이 한국에 들어오기 전까지
그들은 자기들이 본 것들을 증거했다.
그들이 본 것은 영계, 지옥, 천국 등이었다. 지금은 증거 안 한다.
<전환>
◉ 이제 본격적으로 중요한 말씀을 해 주겠습니다.
<예수님 때> 예수님을 ‘메시아’로 안 믿었기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믿은 자들만 겨우 ‘뜻’을 이루었다.
그 당시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으면
이스라엘 민족이 ‘핵 중심 역사의 민족’이 되었을 것이고,
그로 인해 복음이 온 세상으로 빨리 펴져 나가
온 세상이 빨리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이루고 뜻을 폈을 것이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못했기에
역사가 힘들었고, 더디게 펼쳐졌고, 뜻이 깨졌다.
전능하신 삼위일체의 성자가 쓰고 나타난 자,
성자의 육, 그 분체를 ‘실제 주’로
100% 믿느냐, 안 믿느냐가 ‘운명’을 좌우한다.
<전능하신 삼위일체의 성자>께서 ‘예수님’과 함께하여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게 한 것이었다.
<삼위일체가 보낸 자>를 메시아로 믿게 하는 것
- 이것이 예수님 때나, 지금 이 시대나
성자가 이루시려 하는 동일한 목적이다.
보낸 자를 알고 믿어야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보낸 자를 알고 믿어야 그 시대에는 ‘아들’이 되고,
이 시대에는 ‘신부’가 되기 때문이다.
보낸 자를 통해 ‘운명’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성자의 육, 예수님을 그냥 ‘최고의 사람’으로 봐도
<구원>은 못 받는다. (이 시대도 그러하다.)
<3.16>이 ‘휴거 날’이라는 것을 암암리에 안 자들만 알았지?
“2000년 동안 신약에서 예언한 것이 이루어지는
천사장이 나팔 부는 날이다!
성자가 떠나시는 날이 우리가 기다렸던 ‘휴거 날’이다.
휴거되어 성자와 같이 떠나는 날이다.” - 이와 같이 안 자 있느냐.
알았으면, 그날 왜 안 왔겠느냐. 알았으면, 왜 안 외쳤겠느냐.
각자 암암리에 ‘오늘 휴거되어 성자와 같이 가는구나.’
감동받고 느낀 정도였다.
확실히 알았다면 마이크를 잡고
‘오늘이 휴거 날이다. 휴거되어 성자와 같이 간다.
신랑 집 천국에서 혼인 잔치가 열린다.’ 하고
10초만 확실히 말하였어도 다 알았을 것이다.
고로 전체가 확실히 모르고 그날을 보냈다.
암암리에 알고 전체에 알리지 못하여
그날을 제대로 맞지 못하여 ‘한’이 되었다.
이와 같이 <주>도 암암리에 알면, 다시 ‘한’을 품어야 된다.
선생은 누가 정말 <주>를 알고 사는지 100% 안다.
어떻게? ‘하는 짓’을 보면 안다.
선생을 절대 ‘하나님이 보내어 성자의 육으로 나타난 자’
<시대 주>로 보고 대해야 ‘하나님의 한’이 풀린다.
<3.16>에 ‘육’은 몰랐지만 ‘영’은 휴거됐다.
육이 모르니, 기뻐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했다.
성삼위를 더욱 사랑해 드리지도 못했다.
이와 같이 <주>를 제대로 믿지 못하고 구원받으면,
‘육’이 기쁨도, 감사도, 사랑도 모른다.
<구원주>가 왔다가 그냥 가면
‘구원의 사명’을 못 한 것이 되니, ‘구원’은 시켜 준다.
그 대신 ‘본인의 육’이 모르니 곤고함을 면치 못한다.
육이 자기가 구원받고 휴거됐음을 알아야
기뻐하고 감사하고 주를 사랑하며
‘구원받은 것에 대한 복’을 누린다.
<3.16>에 ‘자기 영’이 휴거됐어도 모르니,
‘영’만 기뻐하면서 천국에 가지 않았느냐.
그 후에는 알고서 한이 맺혀 한탄하고,
다시 알고 기뻐하며 감사했지?
그제야 “내 영이 휴거됐구나!
알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사랑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구나!” 하고
월명동에서 모임만 하면, 거의 미쳐서 월명동에 밀려왔다.
<알파절>에도 10000명이 온다고 한다.
그날에는 많이 모이지 말고, 핵심만 와야 된다.
지금도 자기 영이 휴거된 것을 모르는 자는 곤고해하며
“어서 300선 휴거 이뤄야지.” 한다.
기뻐하고 감사하며 극적으로 ‘주’를 알고
주가 휴거시켜 준 것을 알고 믿어야 깨닫게 해 준다.
<주>는 안 가르쳐 준다. <주와 일체 된 자>는 깨닫게 된다.
<3.16 전>에 300선 휴거됐다고 알려 줬으면
태만해져서 더 행하지 못하여 휴거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가 행한 것에다가
성령님과 성자와 선생이 해 준 것을 더해야 <휴거 점수>가 나온다.
180선, 200선, 230선, 250선에다
성령님 것, 성자 것, 선생 것 합치니 <휴거 300선>이 된 것이다.
그런데 ‘본인 것’만 계산하니, 휴거 안 됐다고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100선 조금 넘게’만 해 놨다면,
자기 것이 너무 적어서
성령님 것, 성자 것, 선생 것 합쳐도
300이 안 나와서 그날 휴거되지 못했다.
성자가 그냥 가시면 원한이 되어서 웬만하면 데려가시는데,
왜 성자가 떠나실 때 휴거되어 같이 가지 못했겠느냐.
첫째, ‘죄’가 문제였다.
<육신>에 죄가 있으면 <영>에게도 죄가 있으니 안 된다.
<죄>는 금방 회개되지 않는다.
<죄>를 지은 대가로 그만큼 <의>를 행해야 되니
<3.16 날>에 어떻게 순간 데려가겠느냐.
다른 것들은 어느 정도 부족해도 괜찮다.
결혼식 때 인격, 인물, 키가 부족해도
신랑이 눈감아 줄 수 있다.
그러나 신부라면 ‘드레스’는 입어야 된다.
고로 2015년이 되기 전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죄’를 용서해 버렸다.
<죄>가 있으면 눈을 감아도 냄새가 나니까 사랑하지 못한다.
고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 용서해 준 것이다.
그래서 곧 회복하여 ‘드레스’를 입고 휴거된 것이었다.
성자와 주의 용서였다.
<중요>
<300선>은 ‘운명의 결정 선’이다.
<300선>은 ‘남녀가 결합하여 사랑하는 단계’다.
<그 전>까지는 ‘만지고 데이트하는 단계’다.
고로 <300선 미만>과 <300선>은 ‘땅과 하늘 차이’다.
극적인 비유 – 사랑의 비유를 들겠다.
여자도 남자와 같이 사랑에 불타서
남자를 안고 사랑해 줘야 되는데 여자가 안 하니,
남자가 심정이 타서 뜨겁게 다 사랑해 주듯,
6000년 원한 꿈이 <휴거>인데
신부들이 포기하고 안 하고 있으니
성자가 먼저 사랑하여 휴거시켜 데리고 가셨다.
물론 <3.16 날>에는 신부가 눈치 채고
미쳐서 나 좀 데려가 달라고 하며
성자를 미치도록 부르며 사랑한 자들도 있다.
그래서 <3.16>에 성자가 휴거시켜 데리고 간 영들도 있다.
300선까지는 성자와 주가 해 주었다.
300선부터 400, 500, 600, 700선에 오르는 것은
신부가 신랑을 먼저 사랑하면서 절대 본인이 책임을 다하며
성령을 받아 주와 일체 되어 주의 돛을 달고 행해야 된다.
천국에 가 봐라.
<700선>이 된 자가 있으니, 그 집도 성도 가 보아라.
그가 누구이겠느냐. 깨달아라.
차원이 올라가려면, 먼저 사랑이다. 먼저 올라타기 신앙이다.
(이 말씀은 3월 13일 금요 성령집회 말씀으로 자세히 해 주었다.)
성자와 주를 ‘먼저 사랑’으로 대해야
짝사랑을 벗어나 ‘신부’로 변화된다.
<신랑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신부가 먼저 사랑해 주지 않고
신랑이 자기를 사랑해 주기만을 원하는 것이다.
<신랑이 가장 원하고 좋아하는 것>은
신부가 불타서 먼저 사랑해 주는 것이다.
이 둘의 운명은 ‘땅과 하늘 차이’다.
이 시대도 그러하다.
이 역사는 지구가 생긴 이래
땅에서 하늘 앞에 ‘최고의 사랑의 조건’을 세운 자가
그 조건으로 세운 <사랑의 신부 역사>다.
그로 인해 성삼위 앞에 최고로 큰 자, ‘신부’가 된 것이다.
형제가 크냐, 자기가 미쳐서 사랑하고 사는 자가 크냐.
이 시대 섭리역사는 삼위일체 앞에 <신부 역사, 성약 세계>다.
<애인> 외에는 안 보이는 세계다.
<대상>이 ‘먼저’ <주체>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휴거되지 못하여 삼위일체의 창조 목적을 못 이룬다.
왜 삼위일체의 대상인 ‘인간’을 창조했겠느냐.
먼저 사랑해 주는 자를 통해 삼위가 사랑받기 위해서다.
남자가 ‘사랑을 목적하고 택한 여자’라면,
여자가 남자에게 ‘양복’을 사 줘도 관심 없다.
‘집’을 사 줘도 관심 없다.
오직 ‘사랑하도록 몸을 주는 것’만 최고로 본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도 그러하다.
오직 <신부>로서 불같이 ‘먼저 사랑’하는 것을 최고로 보신다.
이렇게 ‘애인, 신부’가 되어
‘먼저 사랑’하게 만드는 데 6000년이 걸렸다.
이렇게 인간을 창조하고 ‘애인, 신부’로 삼고 취하여
<창조 목적, 사랑의 뜻>을 이루려고
선생은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서
그 뜻을 <휴거>로 이루기 위해 돕고 밀어주며 행했다.
하물며 구원을 이루는 자들이랴.
안 믿고 행하지 않으면 본인 손해다.
<영혼>이 휴거됐어도 <육>은 곤고함, 걱정, 염려 속에 살게 된다.
자기가 먼저 차에 올라타고 사랑하기다.
<잠시 쉬었다가>
성자가 계시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성자>가 ‘그 육’에게 다 인계하여
그를 통해 다 행한다고 했다.
그 후로 뭐가 달라졌느냐. 말해 보아라.
지금도 <3.16 날>에 모르듯이 모르는 자들이 많다.
10명만 말해 보아라.
(<3.16> 후에 심정의 말씀 선포하며 가르쳐 주니,
집회나 모임을 보아라. 완전 뒤바뀌었지.)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느냐.
그냥 ‘우연’으로 된 일은 없다.
교역자들은 꼭 ‘정세’를 살피고 ‘뉴스’를 보면서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봐야 된다.
<휴거된 영들>이 성자를 따라서 천국에 간 이후,
천국에서는 <혼인 잔치>가 진행되고 있다.
이와 같이 땅에서는 섭리사에서 ‘땅의 잔치’를 하고 있다.
부활절, 꽃축제, 어린이날에 잔치했다.
선생이 하지 말라고 했으면 할 수 있겠냐.
<성자가 주신 권세>를 가지고 한다.
<3.16> 때처럼 각종 잔치가 진행되고 있어도 모른다.
모르면,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냐.
눅 12: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땅에 ‘불’을 던지러 왔다.
깨닫고 ‘불’이 붙기까지 내 마음이 어떠하겠냐.
오늘도 너희에게 ‘불’을 던지러 왔다.
<아는 것>이 ‘불’이다. <진리>가 ‘불’이다.
내 말을 듣고 깨닫고 알아 ‘불’을 받아라!
<잠시 쉬었다가>
허벅지 쪽 여자의 살을 보면 ‘금단의 열매’를 본 것이다.
가슴을 보면 ‘금단의 열매’를 본 것이다.
얼굴을 보면 ‘금단의 열매’를 본 것이다.
남자 얼굴을 보고, 살을 본 것은 ‘생명나무’를 본 것이다.
왜?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거늘...
예수님이 말하지 않았냐.
연결된 것은 ‘하나’다.
이 시대도 ‘선생’을 본 것은
하나님, 성령님, 성자를 본 것이다.
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낸 자 – 보냄을 받은 자>
- 이렇게 연결되어 보는 자는 운명이 ‘생명’으로 기울어지고,
이렇게 안 보는 자는 운명이 ‘사망’으로 기울어진다.
삼위일체와 선생을 연결해서 안 보니,
주를 등지고, 섭리사를 나가서 악평자가 된 것이다.
자기 스스로 자기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거늘...” 했다.
예수님을 보낸 하나님을 연결해서 못 봤기에
예수님을 하나의 사람으로 보고 그리도 핍박하고 죽인 것이다.
또 예수님을 따랐어도 어설프게 믿고 따랐던 것이다.
보냄을 받은 자를 보면서 보낸 자를 보는 것이다.
이 <진리>가 그리 귀하고, 이것을 <아는 것>이 그리도 귀하다.
누가 직접 ‘과일, 생명나무’를 까서 보이냐. 은밀히 보여 준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전능하신 ‘영체’시라 까서 안 보이신다.
전능자는 그가 ‘보낸 자’를 통해서 보이신다.
이 진리가 귀하고 귀하다.
천지는 없어져도 이 말은 없어지지 않는다.
연결된 것은 하나다. <성자 승천>과 <휴거>는 하나다.
신랑은 승천, 신부는 휴거 아니냐. 항상 은밀히 말한다.
노아 때 홍수 심판 이야기를 했지?
심판 전에도 사람들은 시집가고 장가가면서 자기 좋은 대로 살았다.
우리가 몰라서 그 설교를 하느냐.
그때와 같이 지금 우리도 그같이 했다는 말이다.
두 가지를 다 말하지 않는다.
하나만 말해 주고, 다른 하나는 깨닫게 한다.
<성자> 이야기하면,
<다른 하나인 휴거>는 이야기 안 하고 깨달아 알게 한다.
하나만 알고 연결된 것을 모르니, 그날을 제대로 못 맞은 것이다.
<성자 승천> 하면, <신부 휴거>를 깨닫듯이,
<시대 주> 하면, <신부 편인 성령 상징체>를 깨달아라.
둘 다 확실히 알아야 성령 역사, 사도 역사가 일어난다. (추가)
<잠시 쉬었다가>
선생은 특히 ‘3.16 휴거 전’까지 조은이를 쓰고 말씀하며 행했다.
교역자들은 그동안 조은이를 선생같이 보고 대하고
배우고 붙어서 행했어야 했다.
지난 6~7년을 돌아보아라.
선생이 조은이 외에 언제 누구를 쓰고 말씀한 적이 있냐.
범석이 쪽에도 말씀을 주긴 했지만,
90% 조은이에게 줘서 전하게 했다.
<성자>는 ‘대상인 신부, 선생’을 쓰고 하듯이,
조은이는 선생 앞에‘신부 전체의 축소판’이니까 조은이 쓰고 했다.
오늘도 이 말씀을 줘서 누구에게 보내서 전하게 하고 있냐.
선생이 성령과 함께 조은이 육신 쓰고 말한다.
조은이를 본 자는 ‘나’를 본 자다.
지금 조은이가 하는 말을 듣는 것이 ‘내 말’을 듣는 것!
너희가 나와 함께하기를 원하느냐.
지금 조은이 통해 전하는 내 말을 들어라.
성령과 함께 외친다. 지금 못 들으면 못 한다.
섭리사에서 조은이가 선생을 제일 많이 본다.
나를 보고 뭘 하겠느냐. <말씀> 가지고 간다.
그냥은 안 가지고 간다. 뜨겁게 요리해서 가지고 간다.
말씀 요리 시간은 적게는 4시간이고,
기본으로 12시간, 어느 때는 3~4일씩
기도하면서 뜨겁게 요리하고 잘 만들어서 가지고 간다.
조은이처럼 할 수 있는 자 없기에 조은이에게 맡겼다.
너희도 말씀을 뜨겁게 요리한 후에 설교해서
<성령의 불>을 일으켜 봐라. 해 봤지?
성도들은 모두 은혜 받으러 오는데,
교역자들이 말씀을 전하며 불을 줘야 되지 않겠느냐.
성령님은 말씀하시기를
“앞으로는 ‘성령의 불’이 있는 자를 세워라.” 하셨다.
그리고 성령님은 조은이처럼 행하는 자, 전체에게 불을 주신다.
섭리인들이 조은 목사가 언제 와 주냐고 묻는다.
나와 같이 일체 돼서 믿어 주고 모셔 가야지.
내 말을 알아들은 자 중에서 한 사람을 뽑아
성령께서 계시로 말씀하지 않으셨냐.
성령님은 성령님을 닮은 자를 대상으로 삼고,
그 사람을 ‘상징체’로 쓰고 나타나신다고 했다.
성령이 계시한 말을 깨닫고 믿어라.
성령님은 여성이시니 여자 중에서 ‘상징체’를 세워서
그 사람을 통해 나타나신다.
선생이 ‘금단의 과일이 있는 여자의 몸’이냐.
성령이 ‘여자’를 쓰고 나타나면
육안으로 그대로 성령님을 느껴 보게 된다.
<엄마>가 ‘딸’을 보이면서 “나 이렇게 생겼다.” 해야
자신을 제대로 나타내지 않겠느냐.
성령님도 그러하다.
<남자>를 보이면서 “나 성령은 이렇게 생겼다.” 하겠냐.
성령은 ‘여자 중에서 합당한 자’ 쓰고, 그를 <상징체>로 삼아서
그를 쓰고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셨다.
그것을 믿고 ‘성령님이 상징체를 쓰고 행하시는구나.’
절대 믿고 쳐다보는 자에게는 즉시 성령이 들어가 역사하셨다.
조은이가 설교할 때 선생의 영도 그 속에 들어가서 같이 설교한다.
그런데 지난 6년 동안 선생에게 보내온 편지를 보면,
불과 몇 명만이
“정말 선생님이 조은이 쓰고 나타난다.
성령의 상징체가 맞다.” 하며 고백했다.
나머지는 ‘일반적’으로만 생각했다.
선생이 보냈으니 조은이를 선생같이 보고 일체 되어
의논하고 뭉쳐서 했으면, 더 큰 역사가 일어났다.
진정 그렇게 했다면, 내게 다 보고되었을 것이다.
성자는 말씀하셨다.
“핵은 주다. 선생은 나의 분체다. 나의 몸이다.
나와 선생을 하나로 보아라.
그가 구원자라는 것을 믿도록 수천 가지로 역사했다.
성령님도 ‘상징체’를 쓰고 나타나서 행하신다.
고로 성령과 상징체를 하나로 보아라.
나 성자도 ‘영’이라서 땅에 나타날 때는
영체 혼자서는 못 나타난다.
그래서 ‘선생 육신’ 쓰고 나타났다.
성령도 ‘영’이라서 땅에 나타날 때는
꼭 ‘합당한 자’를 택하여 ‘그 육신’을 써야 된다.
그가 보이는 성령이다.”
선생이 눈에 보이게 실감 나게 성령님을 보여 달라고 했다.
보여 주셨는데 ‘영’이었다. 만지니 안 만져져.
<영체>이니 ‘육체’가 만졌을 때 실감이 안 났다.
성령님은 “실감 나게 보여 주마.” 하셨다.
그래서 “밤에 오랫동안 보여 달라고 해야지.” 하며
낮에 생활 가운데 성령님을 부르며
그리도 성령님을 챙기며 잘해 드렸다.
차도 타 주고, 음식도 대접해 드렸다.
그런데 성령님은 성자와는 달라.
성자도 ‘영’이라서 땅의 음식은 안 드시지만,
대접해 드리면 “같이 먹자.” 하셨다.
그런데 성령님은
“안 먹어. 나는 천국에서 갖다 먹는다.
땅의 음식은 보기만 하자.
천국 음식은 맵지도 않고 깨끗해.” 하셨다.
여성체라서 그 심정을 깨닫기가 참으로 까다로웠다.
성령님과 함께 생활하면 깔끔해야 된다.
죄도 다 회개하고 깨끗하게 해야 된다.
더러우면 성령님이 떠나가신다.
성령님이 보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셔서 성령님께 참 잘했는데,
벌써 5시간 동안 안 보여 주셨다.
그러다가 시간이 됐고, 조은이 면회가 있어서 나갔다.
면회가 시작되고 조은이에게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조은이’의 모습이
‘꿈에서 본 성령님의 형상’으로 뒤바뀌었다.
그때 ‘성령님이 이와 같구나!’ 깨닫고 세밀히 봤다.
<조은이>가 ‘성령님’과 겹쳐 보이면서,
성령님은 ‘영체’시라 <육계>에서 나타날 때는
천생 이같이 ‘상징체의 육신’을 쓰셔서
<육의 눈>으로 실감 나게 보이는구나!’ 깨달았다.
성령님의 머리는 긴 머리이고,
얼굴형은 계란형이다. 동그란 형은 아니다.
키는 2~3m로 보인다. 영의 크기니까.
그리고 허리는 잘록하다.
성령님의 분위기나 이미지는 사진을 찍어도 안 나온다.
자신이 그 급에서 느껴야 된다.
선생이 꿈에 성령님을 보면 처음에는 ‘일반 여인’같이 보인다.
그러다 깊이 보면, 점점 형체가 변화된다.
그런데 성령님의 얼굴에 광채가 나서 잘 안 보인다.
성령님은 거의 ‘본체’로 활동하신다.
다만 자기 영급대로, 혼급대로, 정신급대로 사람같이 보인다.
성령님이 육신 쓰고 나타나도 저마다 영급대로만 보인다.
자기 시력대로만 사물이 보이듯 한다.
면회 때 ‘성령의 영체가 조은이 육신 쓴 것’을 보고 와서
성령님을 실감 나게 봤다고 했다.
그랬더니 성령님은 말씀하시기를
“성자도 너를 통해 보여야 실감 난다.
더 이상 실감 나게 볼 수는 없다.
고로 ‘성자의 육’이 죽으면 <휴거>도 끝난다.
성자는 ‘보낸 자의 육신’을 통해 100% 봐야 된다.
그래야 확실히 보이고 능력이 온다.
나 성령도 <영>으로 나타나면 <너희 육>이 만져도 안 만져진다.
고로 ‘나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여자’를
나의 상징체로 삼고 역사한다. 그래야 실감 난다.
먼저 조건을 세우고 올라온 조은이 한 사람을
핵 상징체로 삼고 행하고,
나머지는 그때마다 임해서 쓴다.” 하셨다.
<선생>은 사명으로 볼 때 ‘신부’다.
신랑 성자 앞에 첫 신부가 되어 성자와 일체 되어 했다.
성자가 천국에 가셨어도 ‘보이는 몸’과 일체 되어 해라.
그러면 성자가 늘 역사하신다.
선생은 ‘신부’라서 신부의 근본은 성령님과 일체다.
<구약>은 성부 아버지시대, <신약>은 성자 아들시대다.
<성약>은 성령 신부시대다.
고로 선생은 사명으로 볼 때는 ‘성령체’다.
그러나 성령님이 자신을 나타내실 때는
선생을 믿고 따른 자들 중에 한 사람 뽑아서
그를 ‘성령의 상징체’로 뽑아서 쓰신다는 것이다.
가정에서 엄마를 가장 많이 닮은 자는 작아도 ‘딸’이다.
성령님은 ‘여자 중에서 세운 자’를
<상징체>로 삼으시고 그를 쓰고 나타나신다.
지금까지 기성의 부흥강사들에게 나타난 것과는
비교가 안 되게 성령의 역사가 크다.
기성의 부흥강사들은 <자녀권 성령의 부흥강사>다.
지금 이 시대에 세운 조은 목사는
<애인권 성령의 부흥강사>다.
최고다! 휴거시키는 성령 부흥강사다.
마치 전에는 엄마가 ‘아들’을 보이면서
아들을 쓰고 나타나 행했다면,
지금은 천모 성령님을 그대로 나타내기 위해
“나 이렇게 생겼다.” 하며 직접 보여 주며 쓴다.
지금 이 시대는
<삼위의 창조 목적>을 이루는 때라 다 밝히며 행하신다.
영계에 영이 들어가서 성령님을 보는 단계는
엄마가 목욕탕에서 지체를 다 보이면서
“엄마 멋있지? 최고지? 나 이렇게 생겼다.” 하는 격이다.
<영>은 ‘영’으로 봐야 된다.
그러나 ‘육’으로 보려면,
‘분체’를 보고 ‘성령 상징체’를 봐야 된다.
(하나님, 성령님, 성자 분체 – 성령 상징체
성령 상징체의 역할 – 역시 주를 깨닫게 하는 것)
<천국 황금성>에 못 간 자들은
계시자들의 계시를 잃고 상상해서 생각해 보아라.
계시를 보고 상상만 해 봐도 90% 다 맞다.
계시자들이 본 것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 환상이 아니다.
선생이 계시자들에게
“천국에 혹시 이런 건물 있는지 찾아봐라.” 했더니
정말로 그 건물을 보고 왔다.
영계에서도 짧은 치마도 입고, 수영복도 입고 다닌다.
<영계의 문화>가 곧 ‘땅의 문화’다.
그러나 땅에서는 영계의 것들을 타락되게 쓴다.
<잠시 쉬었다가>
<오늘 말씀의 핵심>은
<성자>는 ‘구원자’를 ‘주’로 믿게 하기 위해
하나님과 성령님과 함께 그리도 역사하셨다.
그래야 ‘메시아’를 믿고, ‘그의 말’을 믿고
<창조 목적>을 이루기 때문이다.
왜 결혼해서 사랑해 주며 관계해 주냐.
“너는 내 부인이다. 너는 나와 한 몸이다.” 하고
부인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다
성령님이 왜 ‘성령의 상징체인 조은이’에게만
그리도 크게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셨느냐.
“그는 선생의 몸이다. 선생과 일체다.
선생이 조은이 쓰고 행한다.
그러니 그 말 듣고 선생을 제대로 알아라.
또 조은이는 ‘보이는 성령’이다.
그를 보고 그 말 듣고 <성령의 역사> 알고
<시대의 주>를 바로 알고 휴거되어 살아라.” 함이다.
이제 이때는 끝났다.
<한 때>가 가고 <남은 한 때>가 남았다.
지금까지 제대로 못 했다면 이제 제대로 해야 된다.
<3.16>도 제대로 몰라서 못 맞고 아쉽게 보냈지만,
후에 모든 것을 알고 제대로 하듯 해라.
특히 섭리사의 지도자들이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는 조은이와 일체 되어 했다면
정말 엄청난 역사가 일어났을 것이다.
그를 통해 ‘선생’도 나타나고 ‘성령’도 역사하셨으니까.
<성령>을 받고 <주>를 제대로 알면 불덩어리니까!
조은이와 일체 되어
조은이를 선생으로 보고 모시며 대한 자의 천국 집은
조은이 성에 붙어서 건설되어 있다.
그 옆에 붙어야 좋아. 왜?
<조은이 성의 성벽>이 ‘선생의 성 옆’에 붙어 있으니까.
비밀이라 다 말은 안 한다.
영계에 다니는 자들은 본다.
<조은이 황금성 집, 성>에 최고 가까이 있는 집들은
조은이를 선생으로 보고 쫓고 따른 자들의 집이다.
선생 나가면, 조은이 계속해서 나와 같이 일한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는 자들은 안 된다.
지금 것은 지금 못 하면 못 하고 끝난다. .
지금 하는 자가 그때에도 할 자다.
조은이에게 말했다.
“<성령 그룹> 만들어라. <네 족속>을 만들어라.
그러면 너도 더 엄청나게 된다.
그들을 만들어 놓고 그 터전 위에 성령운동 해라.
그러면 마른 장작에 불을 붙인 후에
그 위에 마른 통나무를 쌓아 놓고 불 지른 격이 된다.
그러면 성령으로 불타고 있는 터전 위에
네가 성령으로 불을 지르니 역사가 더 크게 일어난다.
설교도 교역자 300~400명이 모두 너같이 되게 하자.
그동안 6~7년 동안 보고 배웠으니 이제 하면 된다.”
하고, 조은이에게 새로운 방향을 주며 교육하게 했다.
지금은 모두가 일어나 주를 증거해야 된다.
자기가 본 것, 느낀 것, 깨달은 것들을 자기가 증거해야 된다.
교회에서는 각각 증거하며 말해도 된다.
영계에 가서 ‘성자’를 보려면 힘들지 않느냐.
그러나 성자가 <육>을 쓰고 나타나니, 육은 보기 쉽다.
지금 선생은 1년에 250번 볼 수 있다.
그마저도 못 보면 또 ‘보낸 자’를 쓰고 보면 된다.
내가 나가면 매일 볼 수 있다.
사람이 차원을 높인다는 것이 뭐냐?
연결된 것을 하나로 보는 것이 차원 높여 보는 것이다.
살덩이 보면 과일덩이 본 것으로 느끼고 행하는 자다.
보냄을 받은 자를 100% 보낸 자로 보고,
그 말을 듣고 100% 행할 때 성자와 겹쳐 보인다.
바로 그런 사람이 한 차원 높이 보고 생각한 것이다.
섭리인들은 ‘보낸 자 선생’을 ‘성자’로 보니,
성자가 재림하신 것을 알고 한 차원 높이 삶으로
신부가 되고 휴거된 것이다.
<성령님 본체>도 얼마나 보기 힘드냐.
(본 사람 있으면 나와서 이야기하며 은혜 나누자!)
<성령 본체>를 보기 힘든데 ‘육신’ 통해서 보면 얼마나 좋으냐.
<육신 쓴 성령>은 실감 나게 눈만 뜨면 계속 본다.
꿈에도 성령님 ‘상징’으로 ‘여자’로 보인다.
- 조은이로 보이고,
- 여자인 것을 인식시켜 주려고 자기 부인으로 보이고,
- 엄마로도 보인다.
처음에는 ‘여자’로 보이다가
점점 ‘성령의 형체’로 변화되어 보인다.
선생은 <성자>가 ‘예수님’으로 보였다.
그러다가 시대가 바뀌어 <성자 본체> 선포되니,
성자는 더 이상 ‘예수님’으로 나타나지 않으셨다.
또 꿈에 ‘초등학교 선생’으로 보여서
죽은 스승이니 바꿔 달라고 기도했다.
그래서 지금은 성자가 다른 자로 나타나신다.
누구? ‘조은이’로 나타나신다.
왜? 내가 원하는 자, 내가 사랑하는 자로 바꿔서 보여 달라고 했다.
성자는 내 사랑이니까.
내가 인식을 달리 하니, 성자는 그렇게 나타나셨다.
이와 같이 인식을 모두 바꿔야 된다.
그래야 꿈에 성자도, 선생도, 성령님도 합당하게 나타나신다.
<잠시 쉬었다가>
◉ 마지막으로 이야기 하나 해 주고 마치겠다.
독일에서 중고등부 때 섭리에 온 한 여자 이야기다.
월명동 잔디밭을 넘어가서 기도했다.
선생님 못 만나도, 면회 못 해도
아빠가 없을 때 선생님이 아빠같이 편지해 주고,
친구가 없으니 선생님이 친구같이 대해 주고,
또 애인이 없으니 선생님이 애인도 되어 주고,
엄마는 있어도 수억 만리 떨어져 있어서 못 보는데,
선생님이 갇혀 있어도 엄마도 되어 주면서
늘 ‘자기의 대상’이 되어 준다고 하며 기도했다.
그러니 그러하다고 감동이 왔단다.
그리고 최고로 원하던 ‘휴거’도 되었으니
감사하다고 고백했단다.
이때 뭔가 자기 앞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나서
‘뱀인가?’ 하고 눈을 떠 보니,
앞에 ‘큰 노루’가 서 있었단다.
쳐다보니 너무 귀엽고 예쁘고 멋있었다고 한다.
이것을 보고
‘성자와 선생님이 오셨구나! 노루로 나타나셨구나.’
믿고 생각하니, 감격하여 눈물이 쏟아졌다고 했다.
그래서 선생이 편지로 답을 주었다.
“네가 깨달으니, 내가 노루 타고 갔다. 만물 계시다.
이같이 네가 받은 것 깨닫고 제대로 하면 만물 타고 나타나는데
선생이 사명을 준 자, 성령의 상징체 통해 안 나타나겠냐.
바로 생각해라.
<3.16> 때 못 깨닫고 못 했다고 탄식하지 말아라.” 편지해 줬다.
유럽에서는 중고등부들도 가까이 대하면
남자도 여자도 이성으로 대하니,
선생이 의식하고 멀리 하니 다 나갔다.
그래서 그 후 3년 동안 기도해서
독일에서 중고등부가 왔고, 그가 후자가 되었다.
그런데 이 애는 인식관이 있었는데,
빨리 결혼해서 아기를 낳아서 기르고 싶은 것이었다.
그래서 ‘유치원 근무’가 소원이었다.
아기 기르는 것을 배우려 함이었다.
선생이 편지로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 관이 없어지지 않았다.
왜? 외동딸이라서 자기도, 엄마도 외로우니까.
아기를 많이 낳아서 살고 싶어 했다.
그러한 마음이 굳어져 살았다.
결국 선생을 아기로 보고 키워라.
나도 너를 아기로 보고 길러 줄게.
그리고 친구도, 애인도, 아빠도, 엄마도, 구원자도,
아기 역할도 다 해 줄게. - 했다.
그것을 이제야 깨닫고 고백한 것이다.
선생이 친구도, 애인도, 아빠도, 엄마도, 구원자도,
아기 역할도 해 주는 것을 이제야 깨닫고 고백하니,
내가 성자와 함께 ‘노루’를 타고 간 것이다.
월명동에 ‘노루’가 쉽게 보입니까?
일주일을 다녀 봐라. 거의 못 본다.
노루는 가까이 안 온다.
모두 <만물 계시> 귀히 보아라.
삼위일체와 주는 ‘새, 동물, 바람, 구름, 사람’ 등을
쓰고 나타나시니 귀히 보아라.
설교할 때 ‘성령 이야기’ 하면,
조은이 옷만 ‘바람’으로 흔들지 않느냐.
그래도 보통으로 본다. 바보다. 10대들도 보고 편지한다.
자기가 자기를 바보, 소경으로 만들지 말아라.
자기가 마음의 인식관을 바꾸고, 눈을 떠야 된다.
삼위일체도, 주도 늘 ‘육신’ 쓰고 나타난다.
생각의 눈을 떠라.
선생 보고 싶어 하니, 말로 하고 이야기해도 모르냐.
악한 자들의 유혹과 이성의 유혹을 이기도록
교역자들은 교인들을 철저히 교육하고 가르쳐라.
오늘 들은 것도 가르쳐라.
면회 때 조은이가 “저 교역자들에게 갑니다.” 해서
이 길고 긴 글 써서 보낸다.
선생이 조은이를 사랑하듯 모두 사랑한다.
그러나 ‘나’와 붙고, ‘내가 보낸 자’와 붙어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