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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말씀2015.05.21 (목)

말씀 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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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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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_0521 수요(감을 잡아라, 선생님 말씀).hwp1 2015년 05월 20일 수요일 감을 잡아라 먼저 주금빛 계시자의 ‘감을 잡아라’ 계시가 나간 후에 이어서 선생님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작성일 : 2015. 4. 22. 9:00 PM 작성자 : 주금빛 (수요예배를 드리던 중, 성령님께서 ‘감’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전부터 감동으로 생활 가운데 깨닫게 해 주신 것이었는데, 제가 의식을 못 해서 감을 못 잡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후 성령님의 말씀을 받아 적었습니다.) * 성령님의 말씀 * 나 성령이다. 오늘은 내가 생활 속에서 너희가 꼭 잡아야 하는 비밀을 말해 주겠다. 이 말씀은 다 해당되니 집중해서 들어라. 오늘은 생활 속에서 ‘감을 잡는 것’에 대해서 말해 줄게. <감을 잡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성삼위와 선생과 ‘감’을 맞춰야 한다. <감을 잡는 것>은 ‘파장’을 맞추는 것인데 너희가 ‘성삼위와 선생의 감’을 잡지 못한다면 정말 힘들다. <감>은 ‘주파수’로 나타낼 수 있다. 너희가 성삼위와 선생을 진정 사랑해서 사랑이 가득 차고 매 순간 감사 감격하고 말씀을 행한다면, ‘주파수’가 올라간다. 이 순간을 계속 유지하고 있어야 된다. ‘지속’이 중요하다. <감>은 무엇인가? ‘감’은 오직 성삼위만을, 선생만을 위해 파장을 맞추는 것이다. ‘감’은 오직 성삼위만을, 선생만을 위해 잡아야지만 ‘최고의 주파수’가 나온다. ‘감’은 한 번 떨어져서 다시 올라가려면 힘들다. <감>이 어떨 때 다시 떨어지는지 아느냐? - 세상 문화에 빠졌을 때, - 인터넷을 볼 때, - 이성에 빠질 때, - 낙심할 때, - 성삼위와 주를 최우선 순위에 놓지 않을 때, - 성삼위만을 위해 사랑하지 않을 때, - 늘 감사 감격하지 않을 때, - 오해할 때, - 시기 질투할 때, - 용서하지 않을 때 등 이러할 때 ‘감’이 원위치로 떨어진다. 아무리 네가 노력했다고 해도 감을 잃어버려 다시 원위치로 떨어진다면 다시 ‘처음의 감’을 잡기가 너무 어렵다. 세상 문화를 쳐다보지 마라. 세상 문화를 왜 보지 마라 하냐면, ‘감’을 못 잡기 때문이다. 다시 올라오기가 힘들다. 지속적으로 본다면 더 높은 곳으로 차원을 뚫지 못한다. 한 번 세상 것을 보면, 영적인 상태에서 육적인 상태로 떨어진다. 다시 올라가야 되는데 다시 처음 느낌 그대로 가기까지 다시 집중해야 되고, 했던 대로 다시 차원을 쌓아 감을 잘 잡아야 한다. <300선 이상>이 되면 황금성에 가는 것은 확정되었고 다시 휴거선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 것을 조금이라도 본다면 ‘감’이 확 떨어진다. 휴거선과는 다르다. 300선에서 나아가지를 못하고 감을 못 잡는다. 생활 속에서 감을 잡는다는 것은 기본이다. 300선 된 자로서 늘 열심을 내라. 내가 오늘 해 준 말씀은 정말 <비밀의 말씀>이고 <너희가 지상에서 늘 지켜야 하는 말씀>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 각자는 ‘자신의 감’이 떨어졌다는 것을 다 느껴 보았다. 성삼위와 선생을 잠깐만이라도 잊었다면 감이 떨어졌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느냐. 무엇인가 뒤처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느냐. 감을 잘 잡아라. 차원을 높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사랑의 감. 감사의 감. 휴거의 감. 은혜의 감. 감동의 감. 축복의 감. 성령의 감. 전도의 감. 기도의 감. 회개의 감. 말씀의 감. 다 기억하여라. 이 외에도 모든 감들이 다 살아나야 된다. 감을 어떻게 다시 잡을 수 있는가. 지난날 네가 해 왔던 모든 행함을 되살리면서 다시 너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기도함으로 성삼위와 주를 최우선 순위에 놓으면서 다시 살리는 것이다. 처음에는 힘들다. 얼마만큼 감이 떨어져 간격이 많이 벌어졌는지에 따라 다시 처음 감을 잡는 것의 어려움 정도가 달라질 것이다. <감>을 제자리에서 머물게 하지 말고, <감>을 떨어트리지도 말고, 계속 위를 향해서 차원을 높이는 것이다. ‘밑’이 아니라, 오직 ‘위’만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네가 감을 잘 잡고 가는지, 감이 있는지 늘 확인해 보아라. 2015_0521 수요(감을 잡아라, 선생님 말씀).hwp2 네가 지금 무엇을 함으로 인해서 감을 못 잡고 있는지 깨달아라. 네가 느끼지 못한 일 중에도 있다. 네가 깨달았는데도 깨달은 것대로 행하지 못할 때가 많다. 깨달았으면 그대로 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의식적으로 살아간다. 스쳐 지나가는 일 중에도 있다. 자기가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함으로 인해 감을 못 잡고 있는지 파악해라. 의식하지 못하고 있으면 모른다. 감을 잡아라! 감을 잡으면 승리한다. 늘 생활 속에서 너는 지금 너의 주파수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 확인해라. (성령님, 진정 감사드립니다. 늘 생활 속에서 감을 잃지 않으며 살겠습니다. 진정 중요한 말씀 감사드려요. 진정 사랑합니다.) 너희의 행동의, 마음의, 뇌의 주파수를 최고 수치로 높여라. 너희가 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주파수의 위치가 달라진다. 각자의 주파수의 맨 위의 위치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차원은 계속 높이고 높여도 더 온전하게 변화되기 때문이다. 주파수의 방향은 오직 성삼위와 선생만을 위해 맞춰라. 이 주파수가 확실한 주파수이다. 확실한 목표다. 감을 절대 잃지 마라.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주파수를 높여 깨달아 보아라. 전율이 퍼진다. 너희에게 감을 잡으라고 중한 말씀을 전한 나 성령이니라. ◎ 이제 오늘 말씀을 전해 주겠습니다. (간단히 전초하고 시작하기) <말씀 시작> ◎ 선생이 새벽에 기도하며 성령님과 대화할 때, 성령님은 나를 깨닫게 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하나씩 말씀해 주겠습니다. 사람이 쓰는 전자 기기도 자꾸 차원을 높여서 성능이 좋아집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이 그만큼 연구하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 사명을 하면서, 자기가 맡은 일을 하면서 자꾸 연구하고 노력하면, ‘뇌 핸드폰’이 차원을 높여 ‘뇌 스마트폰’이 됩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안에 살면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고로 그 마음에 들게 하는지 늘 기도하고 확인하면서 해야 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믿고 사랑하면서 살되, ‘한 가지’만 하고 살지 않고 ‘두 가지’를 하면서 삽니다. 곧 ‘삼위일체’만 중심하며 살지 않고 ‘세상’과 ‘자기’도 중심하면서 삽니다. 이 시대 신부 역사에 와서 ‘하늘의 신부’가 되어 사는 우리들은 ‘오직 삼위일체’만 믿고 사랑하고 중심하며 살아야 됩니다. ‘성자’를 믿고 사랑하며 살되, ‘세상’과 ‘자기’도 중심하며 살기에 - 온전치 못한 신앙을 하는 것입니다. 두 주인을 섬기는 신앙을 하면, 두 가지 다 실패하는 삶이 됩니다. <온전한 길>을 가려면, ‘하루에 한길’만 가야 됩니다. 가령 하루 걸려 가는 길이 각각 두 군데 있다 합시다. 하나는 <하늘 길>이요, 하나는 <자기 길>입니다. <이 길>도 가 보고 <저 길>도 가면, 결국 둘 다 못 가고 끝납니다. 사람들은 믿기는 믿고 사랑하기는 하되, ‘세상’도 ‘자기’도 믿고 사랑하며 행하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도 믿고 사랑하며 행합니다. 오직 ‘한길’을 가는 자만 ‘온전한 자’입니다. <하나님 안>에는 다 있습니다. 그 안에 ‘육도 영도 잘되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중심한 삶’을 살아야 됩니다. 그 안에 필요한 것들이 다 있습니다. 세상의 것을 얻되 ‘하나님이 줘서 얻는 것’과, ‘자기를 중심해서 행하여 얻는 것’은 다릅니다. <성자와 주를 중심한 삶>은 ‘성자와 주의 뜻을 이루는 삶’입니다. ‘영생의 길’입니다. ‘휴거의 길’입니다. 절대 ‘삼위일체를 중심한 삶’을 살지 않으면, ‘삼위일체의 것’이 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믿고 살되, 그때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세상 것’도 하고, ‘하나님의 것’도 하고 삽니다. <진짜 온전한 길>을 가는 자는 ‘한길’만 갑니다. 하나님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음을 진정 깨닫기 바랍니다! 두 가지를 하면서 사는 자는 ‘이 시대 구원’을 받지 못하여, 그 영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최고 차원 높은 영의 세계>로 못 가고 <선영계>나 <하급 영계>로 가게 됩니다. <온전한 길>은 온전히 행해야 가게 됩니다. 가령 100리를 가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적지’가 있다 합시다. 온종일 그 길을 가는 자만이 해가 지기 전에 겨우 간다 합시다. <그 길>로 가다가 <다른 길>로 갔다가 다시 <그 길>을 가는 자들 중에는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자가 한 명도 없습니다. 2015_0521 수요(감을 잡아라, 선생님 말씀).hwp3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을 향하여 ‘오직 한길’만 가라. 끝까지 ‘한길’만 가라. <끝>에 ‘모든 것’이 있다. <휴거>도 ‘6000년 구원역사의 끝’에 있었다. ‘기다리는 자’도 끝에서 만난다.” (하셨습니다.) 끝을 보려고 일을 하고, 수고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봄내, 여름내 수고하여 과일나무를 가꾸고 관리하고 퇴비하니, 계절의 끝인 <가을>에 ‘열매’를 얻어 추수합니다. 봄과 여름에는 봐도 ‘열매’가 없었는데, 끝인 <가을>에 보니 ‘열매’가 열렸습니다. 끝을 보기 위해 일하고 수고했기에 <끝>에 얻은 것입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알파>는 ‘씨’이고, <오메가>는 ‘열매’다. 성공하려면 <시작>해라. ‘씨’를 뿌리며 수고해라. 그래야 <끝>에 ‘열매’를 얻는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왜 성공하시는지 압니까? 시작하면 끝까지 행하시고 끝까지 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다 성공하십니다. <호랑이>도 끝까지 쫓으면, 결국 호랑이가 굴로 들어가서 잡게 됩니다. <토끼>라도 쫓다가 말면, 못 잡습니다. <육지>에서 끝까지 가야 <바닷물>이 보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날마다 동행해야 됩니다. 그래야 ‘삶’을 제대로 살아갑니다. <세상>을 중심하고 <자기>를 중심해도 얻기는 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세계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를 중심하면 ‘인간의 세계에서 얻지 못할 것’을 얻게 됩니다. 성자의 선물이 큽니까? 왕의 선물이 큽니까? <왕>은 ‘사람’이고, <성자>는 ‘전능자’입니다. 성자와 성령 안에서 살면, 작으나 크나 ‘하늘에 속한 것’을 받게 됩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시기를 “매일 보아라. 무엇을 받았는지 보아라. 자신은 안다.” 하셨습니다.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조건 대 대가’입니다. 각종 물건을 얻을 때 어떻게 얻습니까? 거기에 해당되는 수고를 하거나, 돈을 지불해야 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속한 것도 받으려면, 거기에 해당되는 수고를 하고, 의를 지불해야 됩니다. 삼위일체 앞에는 <의>를 ‘돈’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전환> 성령님께 “저를 떠나지 마세요.” 하니, 성령님은 “네가 나를 떠나지 말아라. 그래야 내가 너를 떠나지 않는다.” 하셨다. 성령님이 옆에 계셔도 자기가 떠나면, 성령이 떠난 것입니다. 아무리 전기선이 옆에 있어도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떨어져 있어 전기를 못 받는 것입니다. 천 리나 떨어져 있어도 <연결>되어 있으면 하나입니다. <연결>만이 ‘하나’가 되게 합니다. 떨어지면, 가까이 있어도 ‘각각의 삶’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죽음’입니다. 성자는 <진리>만 가르치지 않으시고 <감동>도 주시며 뜨겁게 역사하십니다. 성령님은 <감동>만 주시며 뜨겁게만 하지 않으시고, <성경>을 가르치시고 <진리>를 가르치십니다. 성경에 “성령이 오면, 그가 너희에게 모든 진리를 가르친다.” 했지요? (요16:13) 성경에 말씀한 대로입니다. 하나님이 오시든, 성령님이 오시든, 성자가 오시든 - 삼위일체는 항상 <진리>를 가르치시고, - <감동>을 주시며 뜨겁게 하시고, - <사랑>을 주어 행하게 하십니다. 이것을 알고 행하기 바랍니다! 사람은 아는 대로 행합니다. 행한 대로 얻습니다. 고로 모르고 사는 것같이 억울한 것이 없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말씀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마지막 말씀을 듣고서 <기도>로 구할 것을 꼭 구하고, 수시로 <성령님과 대화>하고, <성자와 교통>하면서 이야기하고, 남은 이때를 온전하게 살아서 얻고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상대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면 법적으로 줄 것인데, 이야기하지 않아서 못 얻고 매일 굶주리고 고생하며 살았습니다. 참고 견뎠으니 잘했다 할 줄 알았는데 미련한 종 같고, 미련한 자녀 같고, 미련한 애인 같다고 했습니다. ‘안 되는 것’이라 생각돼도 ‘되는 일’인지 꼭 이야기해 봐야 됩니다. 첫째, 항상 자기가 아는 것이 100% 통달하여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2015_0521 수요(감을 잡아라, 선생님 말씀).hwp4 둘째, 전에는 그러했지만 그 후에 바뀌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온종일 산을 지키던 자가 해가 지기 시작하니 빈손으로 내려왔습니다. 지나가는 자가 “왜 그냥 돌아오냐?”하니, “하루 종일 놀든지, 산을 지키든지 해는 진다. 해가 지니 내려오는 것이다. 지금 해 그늘에 짐승들이 구름같이 내려온다. 그래서 산에서 내려와야 된다.” 했습니다. 사람이 <때>를 모르면, 온종일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도 ‘빈손’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자기가 얻을 수 있었는데도 <때>를 모르니 구하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여 시간을 쓰며 수고는 했지만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만, 이미 해가 졌으니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길입니다. 얻으려면 ‘때’를 알고 살아야 됩니다. ‘때’를 모르는 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낙심합니다. 안 되는 것이라 생각돼도 자기 생각에 안 되는 것이라 생각하고 포기할 수도 있으니 지금 때가 어느 때인지 알고 포기하지 말고 구하고 말해야 됩니다. 또한 전에는 안 됐지만 지금은 되니, 구하고 말해야 됩니다. 또한 그냥 자기 자리만 지키지 말고, 그 시간에 연구하고 수고하고 노력하여 얻어야 됩니다. 가만히 있어도, 놀아도, 부지런히 행해도 ‘해’는 집니다. 그러나 해가 진 후에 ‘결과’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성자는 지상에서 할 일을 다 마치고 떠나셨습니다. 이제 성자가 남기고 간 분체와 함께하는 때만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오직 분체가 ‘너의 휴거를 이루게 할 자’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며 더욱 함께하십니다. 분체가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지 항상 생각하기 바랍니다. 분체는 성자와 100% 연결되어 있습니다. 분체에게 한 것이 100% 성자께 갑니다. 이를 진정 깨닫고 더욱 말할 것을 말하고 구할 것을 구하고 행할 것을 행하며 <자기 생각과 몸>을 놀리지 말고 <성령과 분체>를 놀리지 말고 100% 사용하기 바랍니다. 그리함으로 지금 누릴 것을 누리고 지금 이룰 것을 다 이루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