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5.05.24 (일)
150524 주일말씀 (성령) 내가 너의 몸을 쓰고, 너를 통해 나의 일을 하게 하라
- 선포일
- 2015.05.24 (일)
- 성경 본문
- 요한복음 15장 4-5
첨부 파일
- PDF
150524-주일말씀_(성령) 내가 너의 몸을 쓰고, 너를 통해 나의 일을 하게 하라.pdf
199.5 KB
<2015년 5월 24일 주일말씀>
(성령) 내가 너의 몸을 쓰고,
너를 통해 나의 일을 하게 하라
그러면 내가 같이 살 수 있다
본 문 요한복음 15장 4-5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 말씀의 주제는 성령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의 몸을 쓰고, 너를 통해 나의 일을 하게 하라.
그러면 내가 같이 살 수 있다.”입니다.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새벽에 깊이 기도하면서
‘어떻게 하면 내 곁에서 성령님을 떠나지 않게 하고
가까이 옆에 모시고 살 수 있나?’ 생각하며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공적인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성령님은 전능하신 존재자이시니
나를 계속 지켜보고 기뻐하며
곁에 계시지는 못하겠구나.’ 깨달았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성령님을 부르며 물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공적인 일을 열심히 하며 깨끗하게 산다 해도
성령님은 ‘하시는 일’도 다르고 ‘생각’도 높고 높으시니
계속해서 제가 하는 것을 쳐다보며
곁에 계시지 않을 것 같습니다.” 했습니다.
이에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하다.
나도 내 할 일을 해야지, 계속은 같이 못 있는다.
내 할 일을 크게 하려면 가야 된다.
마치 어린아이가 공부하고 엄마가 맡긴 일을 하는 것을
엄마가 옆에서 쳐다보다가
때가 되면 빨래를 하러 가고 시장을 보러 가듯이
나 성령도 내가 할 일을 하러 가야 된다.
잠깐 몇 분, 길면 몇십 분은 너희가 하는 것을 구경하면서
함께 있을 수는 있다.
하나님도 성자도 나 성령도
너희를 지켜보다가 각자 할 일을 하러 간다.” 하셨습니다. <끝>
이 말씀을 듣고
‘어떻게 하면 성령님이 내 곁을 떠나시지 않게 할까?
어떻게 하면 늘 성령님과 함께 살까?’ 밤낮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깨달았습니다. 오늘은 그것을 말씀해 줄 것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여러분들도 상천하지의 최고의 여왕이시며, 천모이신
성령님과 같이 살고 싶지요?
성령님은 ‘여성 신’이니
얼마나 잘해 주시고 얼마나 섬세히 살피시겠습니까?
성령님은 여자이니 약하다고 생각하는 자는 무지한 자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과 일체 되어 행하시니, ‘전능자’이십니다.
성령님은 사랑의 본체이시며,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체이십니다.
그러니 그 사랑이 어떻겠습니까?
태양같이 뜨거운 사랑 덩이입니다.
‘불’ 하면 성령님이고,
‘감동’ 하면 지구 덩이가 녹는 위력의 감동의 신, 성령님입니다.
선생이 며칠 동안 성령님과 동행하며 같이 살아 봤는데,
마치 짝사랑하는 자가 옆에 있으면서
자기 마음에 들게 하는지 지켜보는 것 같아서
몸이 부서지는 것도 모르고
성령님만 의식하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성령님이 내가 일하는 것을 쳐다보시며
“참 잘한다.” 칭찬해 주시니,
마치 공주가 자기 짝을 찾으러 다니다가
“너 마음에 든다.” 하고 칭찬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상천하지의 최고 미인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을 못 본 자는 상상해서 생각해 보면 됩니다.
성령님을 제대로 알면, 거기에 빠져서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안 보입니다.
그런데 뼈가 빠지도록 열심히 일하고,
성령님을 부르며 기도하고,
각종으로 사랑한다고 이야기해 줘도
마치 왕비가 잠깐 와서 일하는 것을 보고 갈 길을 떠나듯이
성령님은 잠깐 지켜보시고 할 일을 하러 떠나십니다.
<잠시 쉬었다가>
성자가 지상에서 할 일을 다 하시고
<휴거>로 ‘창조 목적’을 이루시고 승천하신 후,
<성령님의 때>가 되어 ‘성자’ 대신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이렇게 오신 성령님을 어떻게 모실까?
어떻게 해야 오랫동안 떠나시지 않고 곁에 머무실까?’
계속 기도하며 깨닫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은 본인이 깨달아야 더 좋지,
성령님이 직접 가르쳐 주시면
“왜 나에게는 하라고만 하지?” 하기에
각자 깨닫고 알라고 했습니다.
선생이 먼저 깨달으면, 모두에게 알려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자가 떠나신 후부터
어떻게 하면 성령님을 계속 내 옆에 살게 할 수 있는지
계속해서 연구하고 기도했습니다.
성자 떠나시고 38일째 되던 날
성자께 이것에 대해 물으니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그것을 깨닫고 확실히 알면,
순간이라도 성자와 통하게 해 줄게.” 하셨습니다.
성자가 떠나신 후 성자와 한 번도 못 통한 지
벌써 38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성령님을 모시면서 성령님이 내 옆에 계속 있을 수 있도록
성령님이 시키시는 대로 더 열심히 해서
6~7년 동안 밀린 일도 다 했습니다.
그런데도 일을 하다가 성령님을 불러 보면
멀리 계시고 통하기만 했습니다.
성령 본체든지, 혼체든지 멀리 떨어져서 통하는 것과
가까이 옆에 계시는 것은 정말 큰 차이가 있습니다.
얼마나 차이가 있냐 하면,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의 살이 닿는 느낌과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살이 닿는 느낌이 다르듯 차이가 있습니다.
귀로 듣는 것과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다르듯 차이가 있습니다.
자기가 최고로 사랑하는 자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야기하며 사는 것과
옆에 딱 붙어서 이야기하며 사는 것이 다르듯 차이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것과
몸이 닿아 사는 것은 느낌이 다르듯 차이가 있습니다.
이제 성령님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통하는 것과
가까이 옆에 계시면서 안 떨어지고 사는 것의 차이점을 알았습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노루나, 사슴이나, 치타나, 예쁜 새가
어느 날 자기 정원에 들어왔다 합시다.
‘어떻게 여기 계속 있게 하나?’ 연구하다가
계속 있게 할 방법을 알았다면 그렇게도 신기하고 좋을 것입니다.
이런 것도 깨닫고 행하여 같이 살면
그렇게도 기쁘고 좋고 신비한데,
천하에 최고로 예쁘고 아름답고
최고로 잘해 주시는 여신 성령님이
늘 자기를 떠나지 않고 같이 사는 방법을 알게 되어
그것을 허락하셨다면 얼마나 기쁨이고 행복이며 영광이겠습니까?
선생이 10대 때 석막교회에 오고 가면서 다람쥐를 봤습니다.
석막리에만 다람쥐가 살고, 월명동에는 잘 안 왔습니다.
그래서
‘월명동에도 다람쥐가 좋아하는 밤과 도토리가 있는데
왜 월명동에는 안 올까?
어떻게 하면 저 예쁜 다람쥐를 월명동에 살게 할까?’
연구하면서, 그 잡기 힘든 다람쥐를 잡으려고 쫓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기어이 잡았습니다.
잡은 그 다람쥐를 월명동 밤나무 밑에 놨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가 버렸습니다.
먹을 것이 그리 많아도 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또 연구했습니다.
결국 방법을 깨닫고 다시 잡아다 쳇바퀴를 돌리게 해 주고,
다람쥐가 좋아하는 ‘콩’을 주워다 주며
조망에 넣어 놓고 3년 동안 얼굴을 익히며 길렀습니다.
아버지는 그것을 보고
“1년이면 콩 석 되는 먹는데 뭐하러 기르냐? 돈이 나오냐?
그 콩 너 먹어라.” 하며 못 기르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도토리’를 주워다 줬습니다.
아버지가 “왜 다람쥐를 기르냐?” 하기에
“우리 집에서 살게 하려고 길러요.” 했습니다.
아버지는
“다람쥐도 하나의 쥐다.
길러도 가을에 쥐약을 놓으면 먹고 죽는다.” 했습니다.
그래서 “다람쥐는 쥐가 먹는 것 안 먹으니 안 죽어요.” 하니
아버지는 “차라리 취미로 돼지를 기르고 병아리를 길러.
그러면, 크면 잡아먹기라도 하지.” 하셨습니다.
그래도 선생은 기어이 다람쥐를 기르면서 계속 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조망에서 꺼내 놓고는 운동을 시키고
또 내 얼굴을 익히라고 얼굴을 보여 줬습니다.
그러면 다람쥐는 “나같이 미남이네.” 하는 듯 나를 쳐다봤습니다.
그리고 “너 여기에다 풀어 놓을게. 제발 가지 마.
내가 겨울에도 꼭꼭 먹을 것 갖다 줄게.” 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졸이며 발을 묶어서 밖에 내놔 봤습니다.
그러니 다람쥐는 그냥 기어 다니면서 내가 주는 것만 먹었습니다.
그래서 끈을 길게 해 주고 훈련을 시키다가
결국 어느 날 풀어 놨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곳으로 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먹을 것이 없으니 내가 밥을 주던 곳으로 찾아왔습니다.
너무 귀여워서 도토리와 콩을 주니,
그것을 물어다가 옆에다 놓고 또 갔습니다.
그리고 수시로 먹을 것을 먹으러 다시 왔습니다.
다람쥐가 오면 잡아서 놀아 주고 밥을 줬습니다.
그러다 날씨가 추워지니,
어떻게 데리고 왔는지 자기 식구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다 굴을 파고 살았습니다.
결국 ‘다람쥐 골짜기’가 됐습니다.
다람쥐만 자기가 원하는 대로 옆에 살아도 좋은데,
<여신 성령님>을 모시고
자기 정원과 방에서 같이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잠시 쉬었다가>
선생이 이 같은 마음으로 살면서
어떻게 해야 성령님과 안 떨어지고 같이 살 수 있는지
간절히 간구하며 그만큼 행하니
성령님은 그 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답은 아무에게나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것은 선생같이 성령님과 같이 살기 위해
그 어떤 것도 가까이하지 않고
성령님을 최우선으로 사랑하는 자와,
하나님과 성자를 최우선으로 사랑하는 자와,
자기를 구원하고 휴거시켜 주는 자를
최우선으로 사랑하는 자에게만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성령 부흥강사인 조은이에게 성령님에 대해 이야기해 주니,
성령님을 그리도 귀히 여기고 좋아하며 가치 있게 대했습니다.
그래서 원래는 조은 부흥강사에게만 이야기해 주려 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모두에게 다 가르쳐 주자.
그래야 나 성령이 그들과 같이 살 수 있다.” 하시어
오늘 말씀을 통해 모두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말씀하시기를
“모두에게 다 가르쳐 줘도
목숨 걸고 나 성령을 사랑하고 좋아하고
자기 생각을 버리고 뇌 속에 나 성령을 모시는 자에게만
내가 늘 떠나지 않고 함께하며 같이 산다.
답을 줘도 가치를 모르고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는 자와는
내가 같이 살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아무리 사랑해도 옆에 놓고는 못 삽니다.
인간의 차원이 낮으니 성령님과는 대화가 안 됩니다.
고로 성령님이 우리가 하는 것을 계속 쳐다보고 계시지 못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왕비가 시골을 지나가다가 누가 일하는 것을 보고,
잠깐은 지켜보며 구경할 수는 있습니다.
일하던 사람은 자기를 쳐다보는 자가 ‘왕비’라는 것을 알고
좋아한다고 말하며 온갖 수다를 떨고
노래하고 춤을 추며 불이 나게 일을 해도
왕비는 그것을 계속 쳐다보고 있을 수 없습니다.
또 왕비가 좋아하는 각종 과일과 음식을 대접해 줘도
그것을 다 먹은 뒤에는
“고맙다.
네가 백성들 가운데서 나를 알아보고 진정 좋아하니 나도 좋다.
그런데 이제 가야 된다. 계속 열심히 해.” 하고 떠납니다.
왕비는 ‘생각의 차원’이 다르고 ‘할 일’이 다르고
‘자기 위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도 그러하십니다.
우리가 온갖 것을 다 해 주면
“최고다. 대접 잘 받았다. 이제 내 할 일을 하러 떠난다.
계속 열심히 해.” 하고 떠나십니다. <끝>
이 같은 성령님인데
선생이 그동안 기도하고 간구하고 합당한 것을 행하면서,
1년이고 2년이고 계속해서
성령님과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 물으니, 성령님은 말씀하시기를
“그래. 그렇게 하면, 내가 안 가고 항상 같이 있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님께 묻기를
“성령님이 나와 늘 같이 살면,
다른 데는 어떻게 하고요?” 하니,
“여기서 지휘하고 감동을 주고 다 할 수 있다.” 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이 귀한 말씀은 <1조 천만금이 넘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해 주니 정말 귀히 듣고 행하여
성령님과 계속 같이 살기 바랍니다.
그럼 어디를 가도 성령님이 늘 따라다니시고,
성령님과 늘 대화하게 됩니다.
여러분도 천모이시고, 상천하지의 최고의 미인이시며,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체인 성령님과 늘 같이 살고 싶어요?
이에 대한 답은 40일 금식을 해도 가르쳐 주기 아깝고,
거금을 주며 감사해도 가르쳐 주지도 않습니다.
왜요?
이 말씀은 그것과는 아예 비교가 안 되게 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르쳐 줘도 힘들다고 안 하니,
주의 말씀이 땅에 떨어져 짓밟히기 때문입니다.
선생은 <성령님과 늘 같이 사는 방법>을 알고 행하여
늘 성령님과 같이 사니까
성령님을 모시고 <황금성>에서 단둘이만 사는 것 같습니다.
자기 영이 휴거됐어도
그 ‘육신’이 성령님과 같이 사는 자는 거의 없습니다.
있으면, 오늘 말씀을 해 주지도 않습니다.
조건이 되면 감동은 주시고, 도우시고, 성령의 역사는 해 주십니다.
그러나 ‘늘 같이 붙어서 사는 자’는 없습니다.
성령님의 프라이드는 상천하지의 최고입니다.
사랑한다 해도 크게 보시지 않습니다.
선생이 성령님께 진짜 사랑한다고, 성자보다 더 사랑한다고 하니
꿈에 그 실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어떤 6~7세 되는 여자아이가
엄마를 보고 “엄마 진짜 사랑해.” 하자,
그 엄마가 “나도 네가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해.” 하면서
어린아이를 쓰다듬어 주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선생이 성령님을 그리 사랑해도 그런 정도임을 보여 준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썩은 생각으로 더럽게 살지 말아라.
네 주변과 생활을 더럽게 하고 살지 말아라.”하고 감동을 주시어
선생은 늘 생각도 더욱 온전히 하고,
하루에 6~7번 정도는 깨끗이 청소하여 먼지도 없게 합니다.
성령님은 ‘청결하고 깔끔한 여신’입니다.
성령님이 얼마나 깨끗한지 비유를 들어 말해 줄까요?
<지구>를 씻어 오라고 했다면,
모래 하나만 묻혀 와도 다시 씻어 오라고 할 정도입니다.
성령과 같이 사는 것은 좋은데
이렇게 깔끔하시니 어떻게 성령님과 함께 사느냐고 하며,
차라리 떨어져서 사는 게 속 편하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이에 성령님은
“네가 깨닫고 나 성령과 같이 살면 다 해결된다.
나와 같이 살면, 내가 같이 해 주기 때문이다.” 하셨습니다.
<전환>
<성령의 감동>을 받기는 쉽습니다.
그보다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래도 하면 할 수 있습니다.
전도할 때, 설교할 때, 강의할 때, 찬양할 때, 기도할 때,
생명을 관리할 때, 맡은 일을 할 때,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님은 <감동>을 주시고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자기 육신’을 쓰고 행하시게 하며
늘 모시고 같이 살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성령님은 ‘왕비’라서 같이 사는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오늘 <상천하지의 최고의 여신이신
성령님과 늘 같이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니
말씀을 잘 듣고 일주일, 21일, 30일, 40일씩 기도하면서
정신 바짝 차리고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야 됩니다.
5월 21일 목요일부터 <40일 조건 기도>를 시작하여
환난, 핍박, 생명, 전도, 관리, 선생을 위해 기도하고 있지요?
이 기간 안에 오늘 말씀을 놓고서도 기도하며
정신 차리고 성령님을 모시고 같이 살기 바랍니다.
성령님과 같이 살면,
마치 시골 사람이 공주님을 모시고 같이 사는 격이 됩니다.
말씀을 들을 때 ‘필요성’을 깨닫고 잘 듣는 자가
곧 ‘성령님과 늘 같이 살 자’입니다.
마음과 생각을 다른 데 두지 말고 집중하여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 지금, <성령님과 떨어지지 않고 같이 사는 방법>을 말씀합니다.
어린아이와 어른은 같이 살아도
<생각과 행위의 차원>이 다르니, 계속은 같이 못 삽니다.
성령님은 ‘생각과 행위의 차원이 높고 예민한 여신’입니다.
고로 한방에서 같이 살아도
<마음과 생각과 행위>가 성령님과 떨어져 있으면 같이 못 삽니다.
(* 화면을 보면서, 확실한 답을 주며 말씀하겠습니다.) <영상3>
★ 성령님이 옆에 계셔도 <마음, 생각, 행위>가 떨어져 있으면
사명이 큰 자라도, 어른이라도, 어린아이라도
성령님과 같이 못 삽니다.
★ 그러나 나이가 어려도 성령님께 자기 육신을 내어 드리며
성령님의 마음과 생각과 일체 되어 성령님의 일을 하게 해 드리면
성령님은 그 사람을 ‘최고의 대상’으로 삼으시고,
그 육신을 쓰고 늘 같이 살아 주십니다.
한 주관권 안에서 성령님이 ‘그 육신’을 쓰고 행하시니
계속 같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 <끝>
★ 다시 정리해 볼까요?
성령님이 옆에 계셔도 성령님과 마음과 생각이 다르면,
성령님과 늘 같이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큰 자나, 어린 자나
자신의 몸을 내어 드리며 성령님의 일을 하게 해 드리면,
성령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니 기뻐하고 좋아하시며
그와 늘 같이 살아 주십니다.
그래서 계시자가 어려도 자기 몸을 쓰라고 내주니
성령님은 그를 통해 일을 하느라 안 떠나고 같이 사십니다.
비유로 설명해 주겠습니다.
왕비가 길을 가고 있는데, 한 남자가 풀을 베고 있었습니다.
그때 남자는 왕비를 보고
“시키는 대로 할 테니 무엇이든 시켜 주세요.” 했습니다.
이에 왕비가 “내가 시키는 대로 할 거야?” 하니,
남자는 “네. 그렇게 하고 싶어요.” 했습니다.
왕비가 “너는 왜 풀을 베냐?” 물으니,
남자는 “보기 싫어서 베요.” 했습니다.
그래서 왕비는 “지금부터는 풀을 모두 뽑아라.” 했습니다.
남자는 왕비가 시키는 대로 풀을 다 뽑았습니다.
그러자 왕비는 거기에 ‘잔디’를 심게 했고,
남자는 시키는 대로 ‘잔디’를 심었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니까
왕비는 그 남자의 곁을 떠나지 않고 계속 같이 있었습니다.
잔디를 다 심은 후에는
돌을 주워다 한 줄로 놓게 하고 길을 넓히게 했습니다.
남자가 그 말대로 하니 길이 넓어졌고,
그 길로 ‘왕비의 황금 마차’가 들어왔습니다.
왕비는 남자에게 “이제 나무를 베 오고 사 오기도 하자.” 했습니다.
남자가 그 말대로 하니, 왕비는 ‘집’을 구상해 주었고,
남자는 그 구상대로 ‘집’을 잘 지었습니다.
그러자 왕비는 “이 집, 이 방에는 내가 살 것이다.” 했습니다.
시키는 대로 일을 하다 보니,
남자는 왕비와 1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남자가 왕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일을 하니
왕비의 생각과 꿈이 실현되어 집이 건설되었고,
이에 왕비는 남자와 같이 살게 됐습니다.
알고 보니 왕비는 ‘별장’을 만들기로 구상하고 있었는데,
남자가 <왕비의 생각>에 맞추고
<왕비의 몸>이 되어 <왕비의 일>을 해 주니
왕비는 남자의 곁을 떠나지 않고 늘 함께한 것입니다.
(* 성령님도 그러합니다.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 성령님과 ‘한 주관권 안’에 살면서
<성령님의 생각>과 일체 되어
<성령님의 몸>이 되어 <성령님의 일>을 해 드리면,
성령님은 떠나지 않고
‘그 육신’을 쓰고 계속 같이 살아 주십니다. <끝>
★ 성령님은 말씀하시기를
<자막> “네 마음을 비우고
나의 몸이 되어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그 맛으로 늘 너와 같이 산다.” 하셨습니다.
★ 이것을 오늘 말씀의 주제로 다시 말해 볼까요?
<자막> “내가 너의 몸을 쓰고, 너를 통해 나의 일을 하게 하라.
그러면 내가 같이 살 수 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성령님은 ‘성령님이 원하시는 뜻’을 펴러 오셨습니다.
고로 ‘성령님의 뜻대로 사는 자’에게 가셔서
순간순간 역사하시며 도우시고 동행하십니다.
그러나 계속은 못 하십니다.
★ 선생이 그리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을 쓰고, 사랑해 드려도
성령님은 그때마다 순간 도우시고 역사하시고는 떠나셨습니다.
그러다가 내 마음을 다 비우고 성령님께 내 몸을 내어 드리며
성령님과 일체 되어 성령님이 시키시는 대로 했습니다.
그리함으로 ‘성령님의 희망’을 이뤄 드리니,
성령님은 내 속에 들어오셔서
나의 육신을 쓰고 나와 한 몸 되어 사셨습니다.
<성령>이 ‘육신’을 쓰고 행하시니
인간이 하는 것보다 얼마나 더 큰일을 하시고,
얼마나 더 신비한 비밀의 말씀을 하시고,
얼마나 더 위력 있고 힘 있게 말씀을 전하시고,
얼마나 더 필요한 생명들을 전도하시겠습니까?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중요
<신>은 ‘육신’이 없으니,
‘육신의 발판’이 없으면 세상에 큰 뜻을 못 폅니다.
하나님도 ‘육신’을 쓰고 창조 목적을 이루십니다.
<비행기>도 ‘활주로’가 없으면 착륙을 못 하고
당황하여 공중에서 빙빙 돌기만 합니다.
활주로를 내주는 곳을 최고로 좋아합니다.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도 그러하십니다.
신이 지상에서 뜻을 펴야 하니,
‘육의 발판’이 있어야 ‘하늘의 뜻’을 세상에 실현합니다.
고로 삼위일체가 최고로 좋아하는 자는
‘자기 마음을 비우고
삼위일체께 자기 육신을 내주는 자’입니다.
삼위일체는 그 사람을 ‘자신의 육’으로 삼으시고,
그를 ‘최고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시고,
그를 통해 ‘자신의 뜻’을 실현하십니다. <끝>
★ <자기 육신>을 내주되,
<자기 생각>을 비우고 <삼위일체의 생각>에 맞게 내줘야
삼위일체가 ‘그 몸’을 쓰고 역사하며 행하십니다.
<자기 생각>을 비우고 <자기 육신>을 삼위일체께 내 드리면,
그 몸과 마음이 ‘삼위일체의 궁’이 되고 ‘집’이 되니
삼위일체는 그 사람을 ‘사랑의 상대’로 삼고
그 육신을 쓰고 사십니다.
성경의 인물들도 그러합니다.
<자기 생각>을 비우고 하나님께 <자기 육신>을 내주니,
하나님은 ‘그 몸’을 쓰고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육신’을 쓰고
각종 표적을 보이시고 홍해 바다를 가르시며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구해 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육신’을 쓰고
가나안 복지를 점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삼손의 육신’을 쓰고 블레셋 군대를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육신’을 쓰고
원수 사탄을 멸하고 민족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선생은 이를 알고 10대 때부터 오직 성자만을 믿고 사랑하며
<나의 생각>을 싹 비우고 <나의 육신>을 내드렸습니다.
고로 성자는 나를 ‘자신의 육’으로 삼으시고
37년 동안 내 입을 통해 ‘시대 말씀’을 선포하셨고,
성자가 오신 징조로 ‘지구 세상에 수백 가지 징조’를 보이셨고,
‘성경에 말씀하신 것들’을 다 이루셨습니다.
결국 <재림과 휴거의 뜻>을 이루어 <창조 목적>을 실현했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선생의 육신’을 쓰고
<창조 목적>을 실현하신 것입니다!
자기중심 하면, 불안해서 안 쓰십니다.
자기 생각을 비우지 않고 자기를 중심하면,
즉시 ‘인성’으로 돌아가고 ‘사탄’이 들어가니
성자도 성령님도 그 몸과 마음에서 나와 떠나십니다.
그리고 ‘마음을 비우고 육신을 내준 자’에게 가십니다.
하늘의 일을 맡아 사명을 하는 자들도
‘자기 사명’에 빠져 일하면, 성령님은 잠깐만 보고 가십니다.
항상 변함없이 언제나 어디서나
<자기 마음>을 비우고 <자기 육신>을 내드려야 됩니다.
성령님이 ‘자기 육’을 쓰고 행하게 하려면 신령해야 합니다.
고로 늘 성령과 성자가 오셔서
‘자기 육신’을 쓰고 행하시라고 간구해야 됩니다.
그리고 성령이 하시는 것과 구원자가 해 주는 것을 깨닫도록
항상 기도해야 됩니다.
<성령>은 ‘구원자의 혼과 영’을 쓰고 가십니다.
남자와 여자도 서로 ‘육신’을 내줘야
사랑도 이루고 자녀도 낳습니다.
성령님께 ‘자기 육신과 마음과 생각’을 내드려야
성령님이 그를 통해 시대 복음을 전하며 전도하여 시대를 잡으십니다.
<자기 육신과 마음과 생각>을
‘사탄’에게 내주면 ‘사탄의 몸’이 되고,
‘이성’에게 내주면 ‘그 사람의 몸’이 되고,
‘성령’께 내주면 ‘성령의 몸’이 됩니다.
성령께 내드려야 큰 뜻을 이루고, 빨리 휴거되고,
휴거된 자는 더욱 휴거의 차원을 높입니다.
이제 <성령님을 모시고 같이 사는 방법>을 알았습니까?
이전에는 선생이 성령님을 부르면 대답은 하시는데
멀리서 “나 바빠. 이야기해라.”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선생이 깨닫고
<내 마음>을 비우고 <내 육>을 내드리니
성령님이 내 몸을 쓰고 같이 사셨습니다.
지금도 성령님이 ‘선생의 육’을 통해 이 말씀을 쓰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때 성자와 통했습니다.
그리고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나 성자와 성령님이
보이는 너의 육신을 쓰고 역사를 편다는 것을 알아라.”
성령이 오셔서 ‘시대 구원자의 육신’을 쓰고,
지금 역사를 펴 나가고 계십니다!
<전환>
◎ 말씀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2절, 누가복음 12장 10절을 보면
“성령을 거역하고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성령을 거스르면 안 됩니다.
성령을 거스르면 성령은 즉시 떠나십니다.
그 후로는 언제 다시 오실지 모릅니다.
그러고 나서 성령님을 부르면,
천사나 사역자들만 보내시며 성령으로 대하게 하십니다.
세상의 여왕을 봤지요? 냉철하지요?
“여자라고 무시하냐?” 하며 강하게 대합니다.
성령님은 ‘여성 신’이라 세밀해서, 아주 자세히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게으르고, 깨끗하게 하지 않고,
약속을 안 지키고, 혈기를 내고,
말을 강하게 하여 상대를 주눅 들게 하고, 형제를 무시하면,
성령님이 사람을 쓰고 나타나서 정말 따끔하게 혼내십니다.
그래도 안 고치면,
<최고의 여왕인 천모 성령님>을 무시한 것이 되어 정말 혼납니다.
우리가 성자의 말을 무시하여 성자의 마음이 돌아가면,
성자는 10~20일 만에 돌아오십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마음이 돌아가면,
떠나셨다가 1~3년 만에 다시 돌아오십니다.
성령님은 ‘여성 신’이라서 생각이 예리하십니다.
고로 성자가 그동안 우리와 함께하시며 겪은 것을 듣고서 그러시는지,
길게 끌지 않고 우리의 나쁜 버릇을 아예 고쳐 버리려고 하십니다.
<휴거 문>이 열렸으니, 정말 잘해야 됩니다.
<성자>는 ‘남자’라서 마음이 약합니다.
고로 ‘휴거’를 두고 급하니까 애원하며 빌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여자’라서 다릅니다.
“나는 그 꼴을 못 봐.
남자나 여자나 너희들은 누구를 닮아서 그러냐?
나 성령을 닮았으면 시대 신부들이 그렇게는 안 한다.
똑똑히 알아라.
내가 너희의 ‘나쁜 마음과 버릇’을 다 고친다.
남자들! 너희 말씀으로 모두 깨끗이 고쳐라.
여자들! 너희는 서운함을 잘 타.
서운함을 타는 것은 마귀 족속이 하는 짓이다.
그 썩은 정신을 가지고서 어떻게 <휴거 600선>을 이루냐.
서운함을 타는 것도 죄다.
나는 성자같이 애원하고 빌지 않는다.
너희가 내 말을 안 들으면 ‘감동’을 주고,
그래도 안 하면 다른 자에게 간다.” 하셨습니다.
누가 이성을 사귀고 교회에 안 나온다고 성령님께 말하니,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게 맡겨.
내가 몇 번 감동을 주고,
그때 순종하고 내 위신을 세워 주면 살리고,
내 감동을 무시하면 안 받을 거야.” 하셨습니다.
<전환>
오늘 상천하지의 최고의 여왕이신 천모 성령님과 같이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딱 하나뿐인 답>을 말해 주었습니다.
이 말씀을 쓰다 보니, 저녁 7시가 되었습니다.
<7시 기도 시간>입니다.
성령님은 “7시가 됐으니 기도하자. 시간 지키자.” 하셨습니다.
여기서 내 마음을 비우지 않고 ‘설교를 더 쓸까?’ 생각하면
성령님은 떠나십니다.
모두 말씀을 지키고,
자기 마음을 비우고 자기 몸을 내드려야
성령이 그 육신을 쓰고 성령의 일을 행하십니다.
고로 성령님은 안 떠나시고 계속 같이 살아 주십니다. (아멘.)
오늘 말씀 여기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