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15.06.15 (월)
월 새벽말씀 43f521c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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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1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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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15일 새벽말씀 (편집본)
사람들이 시험이 있다고, 어려움이 있다고 하는데 기도하라고 그런 환경에 부딪히는 것도
있고,
어느 때는 자기가 강해지지 않으면 감기에 걸립니다. 강하면 감기에 안 걸립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간구하면 그런 것이 없어집니다. 정신에서 누르면 육신에서 누르게 됩니
다. 기도하게 되면 하나님이 얘기 안 해도, 가만히 있어도 인간 본질의 개인의 책임분담을
함으로 힘이 생깁니다. 그 힘만 가지고도 이깁니다.
더 깊게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걱정하지 말라.”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고 나가
는 사람들은 웬만한 것은 넘고 넘어갑니다.
그러나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작은 일에도 몸부림치고, 힘들어합니다. 정신이 눌려서
그렇습니다. 그러면 흑암까지 동참해서 흔들고 그럽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찬양하고! 그러면 그로 인해서 이겨 나갑니다. 평소에 늘 얼마나 그가 하
나님께 영광 돌리고 좋아하느냐에 따라서 늘 하나님께서 기본으로 역사를 더 하십니다.
신앙을 어떤 사람은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고, 인생살이를 힘들게 사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쉽게 사는 사람이 있는 것은, 자기의 하는 여하에 따라서 좌우됩니다.
애들을 보면 작은 것을 가지고도 힘들어 하고 어려워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큰일
도 그냥 무난하게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만큼 정신을 누르고, 기도하고, 행동하면서 가니까 늘 유능해진 손발을 가
지고 다스려 나가니까 쉽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천국이 오고, 아무리 메시아가 오고, 아무리 이 시대가 뒤바뀌고 누가 왔어도 본인
이 늘 변화되지 않고 그런 환경 속에 있으면 안 됩니다. 뛰고 달리고 할 때에 큰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꾸 염려를 하면 자꾸 염려가 옵니다. 기뻐하면 기쁨거리가 오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너 그렇게 번민하고...”
내가 상당히 번민하는 머리통입니다. 걱정하는 머리통이고.
뭘 보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하는 그런 머리입니다. 완전히 꼬치꼬치 뭘 해도 밤새도록 생
각을 합니다. 밤새도록 생각하면서, 그냥 해 버리면 되는 것도 걱정을 또 하고 또 하고 그
럽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하나님께서, “근심은 근심을 낳고, 고독은 고독을 낳고, 번민은 번민을 낳
는 것이다. 기쁨은 기쁨을 낳는 것이다. 니가 자꾸 고민과 걱정을 하느냐?” 하셨습니다.
옛날에는 머리를 돌로 때리고 그랬습니다. 하도 머리가 아파서. 돌로 때리고, 물에다, 찬물
에 담가놓고 그랬습니다. 머리 다치기 전에 그랬습니다.
계속 그래서 “머리 아파 죽겠다.” 했는데, 그때당시 잘못했으면 뇌막염을 앓았을 수도 있습
니다. 머리 신경 많이 쓰면 뇌막염을 앓습니다. 뇌막염을 앓았는지, 그때는 사진을 안 찍어
봐서 모르지요. 그렇게 머리가 쑤시고 아팠습니다.
맨날 내가 걱정을 했습니다. “어떻게 살까? 아, 나는 무엇을 할까? 젊은데.. 지금.. 손발이
성한데, 참.. 나가서 무엇을 해야 되는데... 시키는 놈은 없고..”
하루는 지게자루 확 집어던지고 뭘 하러 간다고 진산을 돌아다녀보고 했습니다. 그러나 무
엇을 하겠습니까?
그날 나무 안 했다고 뒤지게 혼났습니다. 어디를 다녀 오냐고. 그러는 가운데 길을 찾았습
니다. 그래서 찾은 것이지, 그냥 찾은 것이 아닙니다. 그냥 인생길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눈물과...
그와 같이 선생님께서 온 인류의 근본을 해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 머리가 안 아프다는 것입니다. 다 풀립니다.
선생님 사명을 모른다고 해도 말씀만 내 놓아도 사람들이 머리가 안 아프다고 합니다. 어제
온 사람도 여기에 오면 마음이 편하다고 했습니다.
선생님도 그렇게 하다가, 눈물겨운 빵을 먹고 눈물겹게 하다가 왔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지역에, 이 지역이 다 그러던 지역인데, 이 지역이 이제는 다 완전히 기쁨의
환희의 거리가 되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하고 돌아다니던 장소가.
여기게 오면 사람들이 다 좋다고 하고, 그 전에는 선생님이 그렇게 하면서 눈물겹게 했는데
완전히 성지 땅이 되어 버렸습니다.
선생님이 죽기 살기 고민과 걱정과 근심가운데 인생 몸부림치던 장소가 이제는 만인이 와서
노는 장소가 되고, 공원이 되고, 또한 기도하는 장소가 되고. 그래서 여기와도 그런 것을 깨
달아야 됩니다.
금주의 말씀은 무슨 말씀인고 하니,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너희들이 스스로 발동이 걸려라. 옆 사람이 얘기해서 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신 것을 나는 늘 복으로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 단계까지 올라갔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다 해 주시지, 왜 안 해 주실까?” 하는데 하나님이 다 버리면 나는 못
하잖아요.
“여러분들이 시켜서는 못한다. 너희들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해야된다. 시켜서 하는 일은 힘
들다. 나도 자발적으로 역시 그랬다. 시켜서 한 것은 안 된다.”
여러분들, 자발적인 것! 알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들이 늘, 하나님께 큰 것 중의 하나가 자기가 하겠다고 대들 때, 하나님께서 일
어나서 도우시겠다고 합니다.
“어떻게 할 거여?” 그럽니다.
“너는 어떻게 할 거여?”
인간의 책임분담은 절대입니다.
“너는 어떻게 할 거여?”
대개 보면 결정을 못할 때, 어렵습니다. 결정을 못 할 때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다 하늘
앞으로 기울어져야 됩니다. 그게 최첨단의 방법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하겠습니다. 나 정말로 하나님 뜻대로 살겠습니다. 내 책임분담까지 몽창
다 하나님 뜻대로 살겠습니다.”
그것이 최고 첨단의 방법입니다.
“그래도 니가 꿈틀거리며 움직여봐라. 다 해 주는 것이 아니다.”
지난주에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쳐다보지 말고 그냥 열심히 하다보면, 하나님의 책임분담이면 하나님이 도
와줄 것이 아니겠습니까. 가다가 막 힘을 주고. 그러나 책임분담이 아닌 것은 안 도와줄 것
이 아닙니까. 그러면 힘들 것입니다.
‘아 이것은 나 혼자 할 것이구나. 힘 드는 것을 보니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배나 힘을 내고
서 해야 됩니다.
그런데 어떤 게 하나님의 책임분담인지, 어떤 게 아닌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이 끝
에서 저 끝까지 혼자서 할 생각하고 하다보면, 하나님께서 책임분담을 거기에 부합시킬 것
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하나님 책임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자기의 책임을 안 할 때는 이뤄지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삶을 살라고 했습니다. 무조건 하다보면 하나님의 책임분담이면 도와줄 것입니다.
우리 책임분담은, ‘어렵다.’고 할 때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때는 혼자 해야 하기에 더 생각하고, 더 연구하고 그래야 됩니다. ‘아이구, 이것은 내 책
임분담이구나.’ 하고서 그때는 하나님께 “이것은 내 책임분담 같은데,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지켜 봐 주세요.” 하고서 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지켜보시는데 열심히 안 하겠습니까? 선생만 지켜봐도 일할 때 막 정신 못 차리고
죽기 살기로 위험도 모르고 막 기어 들어가고 그럽니다. 내가 그게 제일 겁납니다. 내가 쳐
다보니까 막 사정없이 합니다. 그래서 내가 늘 쳐다보며 지적합니다. 항상.
여러분들에게 큰 것이 무엇인고 하니, 자기가 하는 것이 큽니다. 의욕심도 있어야 되고, 욕
심도 있어야 되고, 해욕도 있어야 되고.
만일 하나님께서 다해 주신다면 자기의 영광과 부귀영화를 못 누리는 것입니다. 다 해 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할 수 있는 것을 준 것은, 책임분담은 그것은 복덩이리라고 나는 생각
합니다.
그런데 어떤 것이 책임이고, 어떤 것이 아닌지 이것을 모릅니다. 선생님이 이것을 다년간
연구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 ‘다 내 책임이다.’ 하고서 하면, 알아서 내 것은 해 줄 것이 아
니냐. ”
그때는, 하나님이 나와 같이 할 때는 힘도 나고 좋습니다. 그런데 이상하니 힘들 때가 있습
니다. 그때는 ‘아, 내 책임분담에 들어갔구나.’ 생각하면 됩니다.
책임분담이라는 문제는 굉장히 큰 삶의 교리입니다. 기독교가 현재 책임분담을 모릅니다.
다 해 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안 되니까 자포자기합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이제 알아서 덜 한데,
리어카에 끌고 가는데 연탄 50장을 싣고서 끌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평지인데도
힘이 덜 든다면 누군가 밀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에 자기가 몸을 풀면서 잘해야 합니
다.
그러다가 힘이 들면 “내가 언제까지 이것을 끌고 다니면서 인생을 살아야 하나? 달동네에서
해동네로 가기가 너무 힘들다.”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때는 무게가 무거워졌기 때문입
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께서 나를 밀어주시다가 힘들어서 쉬시는구나. 하나님, 힘들면 쉬시며 그
냥 따라오고, 리어카에 올라타시려면 타십시오.” 그러면서 끌고 가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정신 교육이다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가야 됩니다.
몸부림치면서 막 기쁨으로 가는데, 그래도 어려움이 있고, 가로막히는 것이 있고, 거기에다
언덕까지 만났습니다. 그러면 뒤에다 괴어 받치고, 잡아당기고 하다보면 그 기간이 지나갑
니다.
하나님이 옆에서 보십니다. 그럴 때 기도도 해야 됩니다. 사탄이 방해하지 못하게.
우리가 꾸준히 일만 하면 되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누가 막 방해하고 막 대들고, 적들
이 와서 칼을 가는 놈이 있고 총을 쏘는 놈이 있습니다. 이때가 무섭습니다.
그때도 역시 하나님은 옆에서 지켜봅니다. 일은 안 도와줘도 지켜는 봅니다. 일은 안 도와
줘도 지켜는 볼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기가 힘내서 막 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은 쳐다보고서 너무 좋아하십니다. 그렇게 지켜보
다가 만약 무리하게 흑암들이 지랄들을 하면 하나님께서 “너, 내 책임분담을 손대면 죽여
버린다. 완전히 뭉개버린다.”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와 같이 그러면서 우리가 나아가야 됩니다. 항상 하나님이 역사를 하실 수는 없습니다.
나도 늘 옆에는 있지만 늘 역사는 못합니다. 늘 할 수가 없습니다. 늘 밥을 먹을 수가 없고,
늘 일을 못 하는 것입니다. 한계에 다다르면 딱 나가떨어집니다.
그래서 성서를 보면 “너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있을 때에 찾으라.” 했
습니다. 가까이 있을 때가 있고 멀리 있을 때가 있습니다.
지구가 돌기에 태양이 가까이 있을 때가 있고, 멀리 있을 때가 있어서 겨울철에는 얼어 죽
는 것입니다. 그러니 본인이 미리미리 본인이 옷도 많이 껴입고 다녀야 합니다. 그런 것을
생각할 때 결국은 본인이 강해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다니엘 같은 사람은 본인이 강한 사람입니다. 집념이 강한 사람입니다. 사자 굴이고 무엇이
고 그냥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내 책임분담이다.” 하고서 들어간 것입니다.
그만큼 생명에 어려움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못 잡아먹게 만들었습니
다.
그런 어떤 죽음의 사지의 결단을 내릴 때는 하나님이 함께합니다. 생명록에 있기 때문입니
다.
전국과 온 지구상에서 말씀 듣는 모든 자들이 그런 마음을 갖고서 본인들이 딱 발동을 걸
고, 본인들이 시작해야지 옆의 사람이 자꾸 얘기하면 옆의 사람도 민망합니다. 자꾸 하라고
하는 것도. 그러니까 본인이 알아서 탁탁 해 줘야 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 도>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하나님 일도, 가정 일도, 내 일도 알아서 하라고 했습니다. 의
로 채워주시옵소서.
다니엘은 강했습니다. 본인들이 강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강하지 않으면 가다가 꺾인다고
했습니다. 사탄에게 밟힌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총과 은혜로 채워 주시고, 의로 채워 주시옵소서. 전국과 온 지구상에 있는
모든 세계가 그리함을 믿습니다. 온전케 해 주시고, 의와 사랑과 공의와 진리로 충만케 해
주시옵소서.
우리가 결심했습니다. 하나님께 아침마다 영광 돌리며, 뜻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더욱 찬란
한 빛을 비추기 위해서 개인 기도도 하고, 또 찬양도 하고 노래하며, 하나님께 찬양키로 했
습니다.
전국과 온 지구촌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니 의로 채워 주시옵소서. 오늘도 아름다운 하나님
의 구상과 이상을 실천함이 충만하게 해 주시고, 이것뿐만 아니라 우리는 앞날의 구상이 너
무나 많습니다. 많은 이방의 세계, 저방 세계, 민족, 그리고 섭리사 모든 각종 각색이 시험
들지 않게 해 주시고, 민족을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시고, 섭리를 기억하사 일일이 하나님께
서 체크해 주실 뿐만 아니라, 일일이 내가 무섭게 사로잡고 가야되겠으니 의로 채워 주시옵
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