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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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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_0617 수 계시말씀.hwp1 2015년 06월 계시말씀 ♥ 06월 17일 수요일 ♥ 환난은 또 다른 기회요, 차원을 높이는 것이다. 작성일 : 2015. 5. 28. PM 3:00~ 작성자 : 주여미마 ( 요즘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데다 계속 사건들이 터졌습니다. 또 각종으로 힘들어하는 생명들을 보면서 진짜 환난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며칠간 생각하며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해 주신 말씀입니다. ) * 성령님의 말씀 * 다시 시작하고 다시 도전하여라. 환난으로 쓰러지는 것을 두려워 말고 다시 시작하고 다시 도전하여라. 멈출 때가 끝이다. 환난이 오면 많은 자들은 힘들어하며 포기하고 가던 길을 멈춰 버린다. 그때가 끝인 것이다. 환난이 오고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어도 그 자리에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나고 끝까지 하는 자는 다시 시작이다. 지금은 많은 환난과 핍박이 일어나고 있는 때이다. 왜 선생이 40일 기도를 하자고 했는지 앞으로 여러 환난을 보면서 알 수 있을 것이다. 개인, 가정, 민족, 세계의 환난과 핍박 중에 너희는 깨달으리라. 왜 선생이 40일 기도를 시작했는지 말이다. 하지만 너희는 환난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움은 마음을 꺾이게 한다. 너희가 겪을 환난과 핍박은 너희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 것이요, 굳건하게 만들 것이다. 비바람을 맞고 큰 나무는 굳건하다. 독수리를 보아라. 독수리는 자신의 새끼를 절벽 아래로 떨어뜨려 스스로 올라와 살아남게 한다. 강하게 키운다. 그렇게 강하게 큰 독수리는 하늘의 왕을 살아 먹는다. 지금은 작고 크게 모두에게 환난과 핍박이 일어나고 있으나 하늘은 그것을 통해 더욱 굳건하게 키우고 또 환난을 통해 진짜를 찾는다. 환난은 고통만이 아니요, 또 다른 전환이요, 성장이요, 또 다른 차원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너희는 앞으로 생각을 달리해라. 고통으로만 생각하면 두렵고, 피하고 싶고, 포기하게 된다.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우고 더욱 강하고 견고하게 만들어지는 과정임을 깨달아라. 사람들은 태풍이 불면 각종 피해와 받을 어려움만 생각한다. 하지만 태풍은 물 부족 현상을 해소하기도 하고 지구의 온도를 유지시키고 또 해수를 순환시켜 바다의 생태계를 활성화시키기도 한다. 너희의 환난을 또 하나의 기회로 삼고 성장하여라. 더욱 기도하고 더욱 말씀을 중심하여 더욱 행하여라. 하늘은 좋을 때만 지켜보지 않는다. 힘들고 어려울 때 고통 속에서 어떻게 하는지 본다. 잘될 때는 누구나 진짜 같다. 하지만 어렵고 힘들 때 그때 하늘을 찾는 자가 진짜다. 욥이 그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수많은 시험과 환난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감사하니 진짜임이 증명된 것이다. 사랑하는 신부들아, 각자 개인에 따라 민족에 따라 다르게 환난이 올 것이다. 너희는 더욱 기도하라. 더욱 찾고 불러라. 더욱 사랑하여라. 이때가 기회이다. 기도하지 않는 자는 그저 힘들어만 하다가 끝날 것이다. 지금은 너희 개인을 위해 가정, 민족, 세계를 위해 기도할 때이다. 기도하여라. 또 섭리의 핵, 선생을 위해 기도하라. 그의 운명이 너희의 운명이 될 것이다. 끝은 강하다. 끝인 선생을 위해 기도하라. 나 성령이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다. 다만 너희를 비우고 오직 나의 마음, 정신, 생각에 맞추어라. 환난 때에는 차원을 높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더욱 온전하게 하지 않고 더 행하기를 포기하면 끝없이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포기하면 끝이다. 다시 시작하고 다시 도전하여라. 이 환난의 때에 포기하고 낙심하여 사탄의 위신을 세워 주는 것이 아니라 더욱 결단하고 행하여서 하늘의 위신을 세워 주는 자가 되어라. 너희를 진실로 사랑하기에 힘을 주고자 이야기했다. 부담 갖지 말고 사랑으로 들어라. 너희를 끝까지 사랑할 성령이다. 사랑해 안녕. * 선생님의 말씀 * 성령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환난과 핍박은 또 다른 기회요, 전환이요, 또 다른 차원으로 올라가는 때이다. 요즘 내게 환난과 핍박을 받고 있는 자들, 힘들어하는 자들, 환난과 핍박에 쓰러진 자들의 편지가 온다. 그럴 때마다 육이 매여 있으니 할 수 있는 것이 한계가 있어 정말 답답하다. 기도도 하고 편지도 써 주지만 속 시원히 행할 수 없으니 답답하다. 내 말 한마디로 풀릴 것들이 글로 쓰니 두세 장이 넘어가고 또 편지가 오가는 시간이 걸리니 시간이 지체된다. 생명에 관한 일들은 빨리 진행되어야 생명을 잃지 않는데 시간이 이렇게 걸릴 수밖에 없으니 속이 타고 애가 탄다. 그러니 내 몸이 되어 뛰는 너희들이 움직여 줘야 한다. 성령님의 몸이 되어 나의 몸이 되어서 성령님의 마음에 맞게 생명들을 잡아 주고 살펴 주어야 한다. 부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하지만 너희들의 도움이 너무 필요하다. 그리고 환난에 힘들어하는 자들아. 사랑해. 나에게 너 하나가 너무 귀하다. 너도 나 보고 싶겠지만 나는 네가 너무 보고 싶다. 기도할게. 그리고 내 몸이 된 자를 보내 줄게. 끝까지 하자. 환난이 시작된 때가 있으면 끝날 때도 있다. 이 환난의 파도를 잘 타서 나와 꼭 만나자. 40일 너를 위한 기도다. 너도 같이 기도하자. 사랑하니까 나를 떠나지 말고 끝까지 가자. 진짜 사랑해. 사랑한다. 선생이다. 2015_0617 수 계시말씀.hwp2 모두 40일 기도에 집중하자. 처음 시작을 잘 못 했다고 낙심할 것 없다. 끝까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축복의 끝에서 보자. 사랑한다. 안녕. ♥ 06월 17일 수요일 ♥ 천국 집 체험 (천국 최고의 선물은 희생이다! 희생이 보물이고 보화다. 이것은 실체다.) 작성일 : 2015. 4. 25. AM 1:00-5:00 작성자 : 김지혜 (성자 승천 날 이후로, 제가 휴거되었음이 너무 실감이 나서 매일같이 감사함으로 영광 돌리며 꿀 같은 기쁨의 날들을 보냈습니다. 제 영에게도 계속 말을 걸면서, “내 영아. 너 천국에서 살고 있는 거 맞니? 너 휴거된 거 맞니?”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제 영의 모습이 자주 보여서 대화도 하면서 입고 있는 옷 등을 관찰하여 스케치를 해 두기도 하였습니다. 내 영이 지금 정말 천국에서 살고 있다면, 천국에 더욱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계속 천국에 파장을 맞추고 느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한 저는 지난 몇 개월간 천국 계시 말씀 삽화 작업의 사명을 계속 맡고 있었는데, 정말 한계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인물을 표현하는 것에는 크게 어려움이 없었는데 천국의 건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계시자들의 설명을 아무리 들어도 표현하는 것에 한계가 느껴져 답답했습니다. 천국을 동화의 나라처럼 잘못 인식하고 잘못 표현하지 않게 해 달라고, 어느 순간부터 저도 제발 천국 체험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 정말 제 천국 집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조금씩 보여서 그때그때 부분 부분을 파악해 나갔습니다. 주로 개인 기도와 찬양 때, 또는 주님의교회에서 예배 드리며 찬양을 할 때마다 조금씩 보여서 서서히 전체 구조를 종합해 나갔습니다. 처음에는 커다란 원형 기둥 모양으로 된 매우 단순한 형태의 성 같은 건물 하나가 보였고 제가 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색깔은 밝은 백금색이었습니다. 벽을 만져 보니 소재가 보석인 듯한데 결이 보드라운 느낌이었습니다. 성 앞에는 신비로운 무늬의 대리석이 넓고도 길게 뻗어 있어 성문 앞으로 인도해 주었고 좌우로는 꽃밭 정원이 있었습니다. 성 가운데는 신비한 문양으로 된 핑크색 대문이 있었습니다. 설마 이게 내 천국 집...? 너무 단순한 디자인에 실망감이 들었습니다. 꼭 보온 도시락통 모양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명색이 예술 하는 자, 미술 하는 자의 집인데... 이 원통 모양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지붕은 둥근 원형의 평평한 공간이었는데 마치 헬기장 같기도 했습니다. 역시 전혀 그 의미를 알 수가 없었고 기대와 너무 달라 실망이 컸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예배 때 찬양을 드릴 때였습니다. 정말 불이 나게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찬양을 매우 좋아하여 죽을 때도 찬양을 하면서 죽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아, 천국에 가면 세상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주님께만 영광 돌리며 찬양할 수 있겠지? 얼마나 행복할까!’ 하면서 늘 소망해 왔었습니다. 찬양으로 극적인 불을 내고 있을 때, 다시 천국 집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내 영이 그 원형 평면 지붕의 높은 꼭대기에 서서 모든 천국의 풍경을 내려다보며 웅장하게 찬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엄청난 무대 중앙에 선 대여배우나 국민 가수라도 된 느낌이었습니다. 천국 전체가 마치 한 무대처럼 느껴졌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고,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했습니다. 그곳에서 드리는 모든 영광이 백보좌로 바로 직결되어 있음이, 삼위께서 직접 보고 계심이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깨달아지며 제 눈에서는 뜨거운 감격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저의 천국 집은 집 자체가 삼위께서 제게 마음껏 영광 돌리라고 마련해 주신 하나의 거대한 원형 무대였던 것입니다. 육계에서 저는 어떤 여가수가 엄청나게 높은 원형 기둥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고, 그때 그 가수를 부러워하며 ‘나도 그런 곳에서 영광 돌려 보았으면 좋겠다.’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주님께서는 잠깐의 스쳐간 그 생각의 소원마저도 실체로 이루어 주신 것이었습니다! 뜻을 깨닫고 삼위의 마음을 깨닫고 눈물로 감사드리자, 주님께서는 천국 집의 나머지 부분을 더 보여 주셨습니다. 그저 단순해 보였던 원통 모양의 건물 몸통에는 그 성의 크기보다도 훨씬 더 거대한 크기의 황금 날개 조형물이 원통을 부드럽게 감싸 안 듯이 오른쪽 방향으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이건 또 무슨 의미지? 내 천국성은 날개성인가?’ 그 순간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가 ‘선생님의 날개가 될게요.’라고 편지로도 기도로도 고백했잖아!” 저는 얼마 전 ‘돛을 달아라!’ 섭리미술대전에 참여했었습니다. 휴거의 왕이신 선생님께, 휴거시켜 주신 감사로 최고의 사랑으로 영광 돌리는 선물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독수리로 형상화하여 날개를 활짝 편 독수리가 배를 붙잡아 돛이 되어 주고 신부를 이끌어 항해해 주고 있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독수리의 펼쳐진 양 날개를 황금색으로 칠하고,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보석을 그 날개에 두루 장식하고 독수리의 머리에는 보석 왕관도 만들어 장식했습니다. 오직 사랑 고백만을 하였습니다. 황금 날개를 그릴 땐, 날마다 심정의 금실로 선생님께 금의를 지어서 입혀 드리는 인생이 되겠다고 금 옷 천만 벌도 아깝지 않노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황금성에서 신부가 영광 돌릴 때 다이아몬드 눈물이 흘렀다는 한 계시말씀을 보게 되었고, ‘천국에서는 보석으로 그림을 그리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그림을 크리스털 보석과 반짝이 가루로 장식했습니다. 크리스털을 붙일 땐 천국이라면 진짜 다이아몬드를 드렸을 텐데, 가짜 보석이라서 죄송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독수리의 머리에 왕관을 씌워 드리며, 선생님을 영원한 영광의 구원자로 모시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내 모든 사랑과 눈물을 담아 최고의 사랑으로 영광 돌리려고 몸부림쳤었습니다. 아! 그 날개성은, 제가 선생님께 드렸던 작품이 그대로 거대하게 형상화된 것이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황금 날개를 자세히 보니 중간 중간에 거대한 다이아몬드 보석들이 박혀 있었습니다. 저는 그저 깨알만 한 작은 가짜 보석을 달아 드렸을 뿐인데 이렇게 억만 배나 더 큰 진짜 보석을 달아 주시다니...! 다이아몬드를 손으로 만지니 너무 따뜻하고 사랑스러웠습니다. 감격스러워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제가 원형 무대에서 찬양을 하자, 그 보석들에게서 번쩍번쩍한 형형 색깔의 빛이 나와 신비한 조명의 역할도 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꽃이 가득한 넓은 정원에는 제 키보다도 더 큰 꽃들도 있었습니다. 전에도 찬양할 때마다 천국의 한 꽃밭에서 찬양하는 환상을 자주 보았었는데, 실체로 존재하는 곳이었습니다. 2015_0617 수 계시말씀.hwp3 숲을 무척 좋아하는데 개인용 숲이 있었고, 분수대를 무척 좋아하는데 화이트 분수대가 있었고, 천국 집 전체 코스를 신나게 둘러볼 수 있도록 공중에 물길을 만들어서 스릴 있게 이동시켜 주는 신기한 황금색 보트까지 있었습니다. 이번 섭리 대전에 주 돛단배를 그렸는데, 아마도 그래서 천국 집에도 배가 생긴 것 같았습니다. 꼭 놀이동산의 청룡열차 같았습니다. 어느 날은 그 보트를 성자와 함께 타고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제 모습이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육계에서 저와 선생님의 사랑의 사연을 하나하나 기념하여 작품처럼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작년만 해도 휴거에도, 천국 집에도 별로 자신이 없었던 저였습니다. 뜻밖의 큰 규모에 감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과분하고 의아한 마음이 들어 여쭈었습니다. 제 천국 집 원형 지붕 위에서 성자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성자와의 대화* (성자여, 제가 무슨 조건이 있기로 이같이 엄청난 것을 주십니까?) 네가 희생한 조건. 너는 희생을 이룬 자다. 형제를 위해, 생명들을 위해서 희생한 조건, 섭리사와 선생을 위해 희생한 조건, 하늘을 위해 희생한 너의 모든 눈물을 기쁨으로 바꾸어 이곳이 지어졌다. 네가 희생해 보니 어떻더냐? 네가 아주 어린 시절, ‘섭리는 희생이구나. 선생의 삶이 희생이구나.’ 깨달았었지? 그래서 너 또한 그러한 삶을 살기로 약속하고 하늘 앞에 그리 살지 않았더냐. (네.) 그래. 삼위도 네가 중도에 그 길을 포기할까 봐 마음을 졸였다. 네가 끝까지 할 수 있었던 에너지원이 무엇이었더냐? (선생님처럼 살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그 깨달음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심정을 체휼하는 것이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 길 끝엔 항상 그 깨달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 희생은 위대한 것이다! 희생을 피해서 어찌 섭리를 이룰 수 있단 말이냐. 선생의 희생이 없었다면 어찌 너희가 존재할 수 있단 말이냐. 천국은 선생의 희생으로 지어졌으며 이곳도 선생의 희생으로 네가 받은 것이다. 어때, 인정하지? (네!) 그래. 선생의 위대한 희생의 선물을 오늘날 네가 이토록 값없이 받았듯이 희생이란, 생명들을 위해 줄 수 있는 너희의 선물이다. 받았으니 너희도 나누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이렇게 큰 것을 받은 것에 비하면 희생은 너무 작은 것이지. 아무것도 아니지. 그러나 따지고 보면 너무도 큰 것이지. 가장 위대한 것이지. 그것을 잊지 마라. 희생하면서도 주께서 책임져 줄까 불안해하는 자들아. 걱정 마라. 마음 푹 놓고 드려라. 맘껏 드려라. 불안해하지 말고 순전한 기쁨으로 나아와서 드려라. 너희가 드린 작은 희생 앞에 이토록 위대한 결과가 있으니 알면 놀라서 서로 희생하겠다고 할 거야. 내가 신랑인데 안 갚아 주겠느냐? 불안해하는 자들아. 나를 백퍼센트 신뢰하지 못했기에 불안증이 생기는 것이다. 천국에 와서 결과를 보면 모두 놀라 자빠질 거야. (맞아요. 성자가 안 갚아 주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 불안해지고 다 무의미해지고 더 행할 수 있는데도 기운이 빠져 덜 행하게 되었었습니다. 의심이 행함의 발목을 잡았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겨 낸 너의 에너지원은 무엇이었느냐? (‘그래도 드리고 싶다!’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확인해 보니까 어때? (정말 짱이에요!정말 하나님은 멋쟁이세요. 이 모든 것을 감추어 두었다가 때가 되니 밝히시다니요.) 그래. 결국은 우리 서로 약속된 장소에 왔구나. 약속이 실체가 되었다. 믿음은 작은 조건이나 실체는 웅장한 것이다. 섭리의 사랑하는 신부들아! 아무것도 두려워 말고 걱정 마라. 너희의 모든 눈물과 희생을 내가 천 배, 만 배로 갚아 주리라. 수십억만 가지의 깜짝파티를 행하는 중이다. 다 너희 것이니 실컷 누리기를 바란다. 이 휴거파티에 날마다 참석하여라. 기쁨의 잔치를 하여라! 결코 허황된 삶이 아니요, 허황된 기쁨이 아니다. 기쁨의 왕이 된 나 성자와 선생의 이름으로 평강을 빈다. 샬롬. ♥ 06월 17일 수요일 ♥ 나 성령의 목회를 하여라 작성일 : 2015. 5. 8. AM 1:00 작성자 : 김보배 (어떻게 해야 목회를 잘할 수 있느냐고 선생님께 기도와 편지로 묻고, 또 기도하던 중 마음속에 “나 성령의 목회를 하여라.”라는 진한 감동의 말씀이 전달되어 왔습니다. 성자가 떠나신 후 받는 계시는 처음인지라, ‘이것이 성령님이 주시는 계시의 목소리인가?’하고 고민하고 생각할 때, “내 느낌은 다르다. 성자의 계시는 불같이 뜨겁게 찌르듯 오지만, 나 성령의 계시는 온유하게 부드러운 비단결이 스치듯 온다. 마음을 편하게 가져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듯 의식하지 말고 마음을 편하고 부드럽게 가져요.”라고 하셔서 감동의 말씀을 받아 적었습니다. ) *성령님의 말씀* 1. 따르는 자의 마음이 스스로 감동되어 행하게 하는 목회를 하여라. 무력이 아닌, 자의로 하도록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목회를 해야 한다. 2. 성령은 화평과 온유와 절제의 신이다. 화평하게 하며 온유를 베풀어 말하며 화를 절제하는 목회를 해야 한다. 3. 성령은 하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여 그를 보좌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 땅 가운데 부드럽게 이행한다. 너희도 구원자를 변함없이 사랑하여 그를 위로하며, 그의 뜻을 교회에 부드럽게 이행하는 것이다. 4. 어머니의 태와 같은 목회를 하여라. 늘 변함없이 따뜻한 어머니의 태 속에서 생명이 크듯 변함없이 따뜻한 목회자의 태 속에서 많은 신부와 생명이 성장되는 것이다. 5. 아랫사람을 무시하지 않는, 의논하는 목회를 하라. 주와 의논, 형제와 의논이다. 성령은 교통의 신이다. 너희들도 주와 교통, 형제와 교통하며 목회의 선을 이루어라. 6. 성령은 중보의 신이다. 성령께서 깊은 탄식으로 너희를 하나님 앞에 중보하신다고 했지? (롬 8:26-27) 목회자들도 교회의 부족과 교회의 크고 작은 일들을 너희 구원자께 사랑 어린 보고와 편지와 기도로 중보하여라. 중보하는 것이 목회자의 아주 큰일이다. 7. 부드러운 지도를 하라. 흐르는 물이 바위를 돌아가는 듯하나 결국 바위의 모난 부분을 깎아 내듯, 그러한 부드러운 관리를 해야 한다. 2015_0617 수 계시말씀.hwp4 8. 오래 참고 양선하라. 어린아이를 키워 내듯 하는 것이 목회다. 어린아이에게 “너, 못한다.”라고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다. “우리 교회는 지도자가 없어 안 된다. 우리 교회는 쓸 사람이 없어 가능성이 없다.” 하지 말라. ‘교회’라는 ‘어린아이’를 길러 내는 것이 목회다. 어떤 교회는 0대 같은 교회가 있다. 순수하고 말을 잘 듣지만, 눈에 띄는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하는 곳이다. 어떤 교회는 10대 같은 교회가 있다. 열정 있고, 개성은 있으나, 사춘기의 소년, 소녀를 다루는 듯한 어려움이 있다. 어떤 교회는 20대 같은 교회가 있다. 활기는 넘치지만, 자기 방법과 방향이 정해져 있어 공들여 고쳐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여러 종류의 교회가 있고, 그에 따른 여러 종류의 결실이 있는 것이다. 봄에는 새싹이 결실이요, 여름엔 무성한 잎이 결실이요, 가을엔 열매가 결실이요, 겨울엔 추운 환난 가운데 살아서 버티는 게 결실이듯, 교회마다 여러 종류의 결실이 있는 것이다. 교회마다 조건도, 역사도, 특색도, 주의 기대도 다르니, 주가 원하는 방향 그대로 이끌어 가는 것이 목회다. 목회자는 선생의 대리인이다. 과수원을 대신 맡은 관리자이다. 자기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 (“성령님, 부족한 목회자가 많죠? 주로 어떤 잘못들을 하나요?”라고 제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아무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그때 제 마음속으로 뜨겁게 ‘아, 역시 쉽게 잘못을 지적하지 않는 성령님이시구나! 이와 같이 목회해야 하는구나. 지적을 아껴야 한다!’라고 깨달아졌습니다. ) 월명동도 하루아침에 지어진 게 아니고 꾸준히 계획을 가지고 10년간 꾸준히 변화시켜 완성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도, 천 년을 하루같이 수백억 년에 걸쳐서 완성했다. 목회자 너희들이 교회를 세우고, 그 안에 모든 사람들의 신앙을 세우는 것, 그것 또한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한 삽, 한 삽 흙을 퍼서 산을 옮기는 것과 같은 역사다. 성령은 오래 참는다고 했지? 꾸준히 오래 참는 목회를 해야 해. (성령님, 저는 그냥 전도, 관리만 하며 뛰던 자라 목회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전도는 10개월간 뱃속에서 아이를 잉태시켜 태어나게 하는 것과 같다면, 목회는 그 아이를 백 년 일생을 보살피며 ‘사람답게 만드는 것’에 비할 수 있다. 전도는 ‘육을 만드는 것’에 비한다면 목회는 ‘영을 만드는 것’에 비할 수 있다. 오래 참음. 이것이 목회자의 덕목이다. 목회자는 감정적으로 행해선 안 돼요. 나 성령은, 인간이 한순간 잘못한다고 해서 그를 미워하지도 따돌리지도 피하지도 않아요. 목회자들이 ‘오래 참음’의 덕목을 갖추지 못하면, 교인들을 감정적으로 대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어요. (“성령님, 교인을 감정적으로 대하는 목회자는 후에 어떻게 되는데요?”라고 제가 물어도 또 대답이 없으셨습니다. 그때 ‘아, 무서운 얘기를 절대 안 하시는 성령님이구나. 목회자는 이렇게 해야 되는구나.’ 하고 깨달아졌습니다. ) 기도하여 나의 마음을 받아요. 성령의 마음을 받으면, 늘 희락과 기쁨입니다. (“인생 일생 자기 하나 만들듯, 목회 인생 자기 하나 만드는 것이네요.” 제가 고백했습니다. 또 그 순간, 성령님의 그 넓은 인격에 뜨겁게 감동되어 “우주보다 넓은 마음을 가지신 성령님, 바다보다 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신 성령님.”하며 한참 동안 제가 고백하자, 말씀을 더 해 주셨습니다. ) 9. 또 목회자는 한 사람을 교회 전체로 확대해서도 보고, 교회 전체를 한 사람으로 축소해서 볼 수도 있어야 한다. 축소, 확대의 법칙을 잘 알아야 해. 전도할 때 전도된 자의 기분을 예민하게 살피듯, 교회 전체의 파장의 흐름을 예민하게 느끼고 살펴 그때그때 말씀으로 방향을 잡아 줘야 한다. 한 사람을 전도, 관리할 때 말씀은 잘 듣는지, 깨달음이 어떠한지, 가족 관계와 경제 상황이 어떤지, 사랑의 감수성을 타는지, 이성이 있는지, 늘 파악하고 살피듯 교회를 볼 때도, 교육과 재정과 지도자의 움직임과 사람들 마음의 흐름까지 봐야 한다. 한 사람의 상황도 여러 가지를 복합적으로 살펴 주듯, 교회 전체를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목회자에게 ‘설교 시간’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신입생을 놓고 강의하는 순간에, 그 신입생을 알아보고 파악할 수 있듯, 단상 말씀을 대언할 때가 교회 전체의 상태를 보고 알고 교훈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강의 없이 신입생을 못 잡듯, 불같은 설교 없이 절대 교회를 주의 것으로 잡을 수 없다. 설교 시간은 성삼위가 목회자에게 가장 영적인 능력을 부어 주는 시간이다. 가장 큰 직감과 영감을 받아 투시 능력을 받는 시간이다. 그래서 ‘설교 시간’이 귀한 것이다. (이때 선생님의 혼체가 오셔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목회자와의 문제로 오는 편지가 너무 많다. 목회자부터 600선에 올라야 한다. 600선이란, 육의 완성선이다. 300선 영의 완성을 넘어, 육의 말과 행실까지 완성되는 선이 600선 ‘절대 선’이다. 목회자 너희에게 잘하는 자에게 잘해 주는 것은 ‘상대 선’이다. 자기에게 잘해 주는 자에게 잘해 주는 것은, 악한 자들도 한다. 목회자를 어렵게 하고, 고민거리가 되게 하고, 힘들게 하는 자일지라도, 절대적인 선을 베풀어 행동하는 목회자가 600선에 도달한 자다. 목회자들아, 완성되어라. 육의 말과 행실까지 완성되어 600선에 오르는 모두가 되길 원한다. 사랑해. ♥ 06월 17일 수요일 ♥ 성자의 육, 선생 작성일 : 2014. 4. 14.-4. 21. 작성자 : 정빛별 (월명동에서 계시를 받기 위해 기도하였고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주신 말씀이 너무 어려워 이해가 되지 않아서 계시를 받다가 중도에 포기를 했습니다. 그다음 날에 계시 제목을 알려 주시면서 이 계시를 계속 주고 싶어 하셨지만 제가 깨닫지 못하니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4월 19일 주일말씀을 듣자마자 선생님께서 주시려 했던 계시의 내용이 확실하게 깨달아졌고 그 말씀과 연관된 선생님의 잠언이 생각나서 잠언을 찾아보며 확인했습니다. 깊은 말씀을 받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기뻐하였고 이어 나머지 계시를 받기 위해 기도했을 때 나머지 말씀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의 말씀* 나 선생이다. 섭리사 신부들, 잘 들어라. 성자가 떠나시고 성자가 안 계신다고 우왕좌왕 기도도 제대로 못 하고 답답해하고 신앙을 제대로 못 하는 자들이 왜 그리 많으냐. 나 선생을 제대로 못 깨달아서 그런 것이다. 너희, 잘 생각해 봐. 내가 오늘 강의 하나 해 줄게. 신약 때를 보자. 신약 때 처음부터 끝까지 누가 역사를 펴고 떠났느냐? 2015_0617 수 계시말씀.hwp5 성자가 이 땅에 오셨지만 성자가 자기 자신을 직접 드러내셨느냐? 성자 본체가 직접 계시해 주시며 역사해 주셨느냐? 성자는 전부 다 나사렛 예수를 쓰고 역사하셨다. 성자 본체로 직접 역사를 펴신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오직 분체 그 육신을 쓰고 역사를 펴셨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를 성자로 인식하고 성자로 생각했다. 그것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성자가 예수를 썼으니 곧 예수가 육신 쓴 성자가 아니더냐. 신약 때는 성자 본체를 밝힐 필요가 없었다. 성자 본체를 밝히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때는 마지막 완성의 역사가 아니라 과정 중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마지막 완성의 역사가 아니기에, 본체가 신랑으로 강림하여 이 땅의 신부들이 본체를 맞이하고 사랑하며 성자 본체와 함께 휴거되어야 하는 역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휴거 때이다. 휴거된 신부를 성자 본체가 신부로 데리고 가는 때, 휴거 때이기에 성자 본체를 드러낸 것이다. 휴거 때가 시작되기 전에는 섭리사에도 성자를 드러내지 않았지 않느냐. 너희 전반기 때 잘 생각해 봐. 그렇다고 해서 그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전반기 때도 휴거로 역사를 완성하는 완성기의 역사가 아니라 과정 중의 역사였으니 그러했던 것이다. 지금은 휴거의 때를 지나 완성하는 시기이기에 앞으로의 방향을 일러 주는 것이다. 원래 땅에서는 육신을 통해 역사를 펴야 역사가 더 잘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여태껏 성경 역사를 살펴보면 모두 다 육신을 통해서 역사를 펴지 않았느냐. 그 육신은 절대 그 혼자가 아니다. 절대 성삼위가 그와 함께하며 그에게 역사한다. 성자는 이 땅을 떠났지만 선생과 함께한다. 성자 본체는 천상천국에 있다. 하나님, 성령님과 함께 있다. 하지만 성자는 천국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태양 본체는 우주에 떠 있지만 태양빛은 지구 만방에 다 퍼지지 않느냐. 그와 같은 원리이다. 그렇게 나와 늘 함께하신다. (그럼 성자께서는 저희들과도 매일 함께하시는 거죠? 태양빛은 모든 곳을 다 비추잖아요.) 너희들과 매일 함께한다. 나를 통해서만 그리할 수 있다. 예전처럼 성자 본체의 영체 자체가 너희 옆에서 너희와 늘 함께할 수는 없다. 그것이 차이점이다. (너무 어렵습니다.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세요. 태양빛은 늘 함께 저희들을 내리쬐는데 성자께서는 왜 그렇게 안 되시나요?) 나에게 늘 함께하는 성자가 그렇게 가능하다는 말이다. 성자께서 나에게 늘 함께할 수 있는 원리를 일러 준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 중에 휴거된 자들은 영으로 천국을 왔다 갔다 할 수 있으니 언제든지 너희 영이 가서 성자를 만나고 온다. 나를 통해서 성자가 늘 항상 역사하고 있으니 나를 통해서 성자를 만나면 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휴거되어 성자를 만나러 가면 되지 않느냐. 정말 쉬운 이치이다. 성자를 영영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성자를 아무나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자기가 차원을 높이는 만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통해 만나면 된다. 네가 계시를 받고 있는 것도 나를 통해 주는 성자의 말이다. 내가 육신 쓴 성자인 것을 잘 생각해 보아라. 그냥 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성자이다. 육신인 성자이다. 그 말은 곧 성자가 나를 썼다는 말이다. 선생 홀로가 아니다. 선생 홀로인데 나를 믿으라고 하고 나를 중심하라고 하면 그것은 이단인 것이다. 선생을 중심하라고 하니 어색하냐. 섭리사가 아직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여 어색한 것이다. 선생은 하늘 역사의 방향, 흐름에 맞도록 잘 행하고 있다. 너희들이 차원 높아진 역사의 흐름에 맞도록 깨달아야 한다. 선생을 육으로 보고 육으로 인식하니 어색하다 느끼고 어색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너의 인식관, 고정관념이 잘못되어서 그러한 것이다. 너의 잘못된 인식관과 고정관념을 깨부수어라. 새롭게 변화다. 휴거 때라서 성자가 휴거시켜 천국 황금성으로 데려가야 하니 성자를 드러낸 것이다. 이제 역사는 다른 차원으로 한 단계 올라왔다. 이제 너희는 선생을 육신 쓴 성자로 인식하면 된다. 신약 때와 같으니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신약 때를 잘 생각해 보면 된다. 신약 때 어땠는지 봐라. 성자가 예수를 쓰고 모든 것을 다 했다. 단 하나도 자신의 뜻대로가 없었지. (말씀이 너무 어렵고 이해가 되지 않아 더 이상 말씀을 받을 수 없어서 중도에 받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야 할지 며칠 동안 계속 고민하고 있었는데 4월 19일 주일말씀 속에 “성자 본체는 천국에도 있고 땅에도 있다. 인간에게 육체뿐만 아니라 혼체, 영체가 있듯이 삼위일체도 혼체도 있고 영체도 있다. 혼체는 영체와 다름없이 일체 되어 행한다.”라는 말씀을 듣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선생님께서 이에 대해 주셨던 잠언을 정리해 놓은 것이 생각났고 그 잠언을 읽으니, 생님께서 계시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를 더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고 다시 나머지 말씀을 받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을 통한 성자의 말씀* 잘 들어라. 성자 본체에게는 혼체와 영체가 있다. 성자 본체의 영체가 있고 성자 본체의 혼체가 있다. 성자 본체의 영체와 혼체는 성삼위 일체의 전지전능한 유일신이다. 너희 인간의 영체와 혼체와는 달리 성삼위 유일신의 영체, 혼체는 각각 그 존재만으로도 전지전능한 존재이다. 그 권능과 위력은 너희 인간의 영체, 혼체와는 전혀 다르다. 성삼위의 법칙이 있으니 성삼위의 영체, 혼체를 직접 나타내기도 하지만 단독적으로는 성자의 영체, 혼체를 거의 나타내지 않는다. 세상의 분체를 쓰고 역사한다. 분체의 영과 혼과 육을 쓰고 역사한다. 이것은 선생을 통해 알려 주었던 사실이다. 그래서 그동안 너희가 예수를 나 성자로 인식했기에 예수의 영과 혼을 쓰고 선생에게, 너희에게 나타난 것이다. 인류 역사가 펼쳐져 온 모든 순간순간에 나 성자가 역사했다. 근본은 모두 다 성자였다. 하지만 내가 누구를 쓰고 역사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성자는 성자의 분체를 쓰고 이 땅 가운데 역사한다. 성자 본체의 영체와 혼체를 직접 드러내고 나타내는 것은 성삼위의 창조 법칙에 맞지 않다. 그것은 천륜의 법칙이다. 2015_0617 수 계시말씀.hwp6 성자 본체의 영체, 혼체를 보여 준다고 해서 믿고 안 보여 주니 안 믿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너희는 육신이니, 성자가 역사를 더 펴기 쉬운 방법은 분체를 통해 역사하는 것이다. 성자는 분체를 통해 역사해야만 역사를 더 쉽게 이룰 수 있다. 육신인 분체를 통해 역사해야만 성삼위의 역사가 너희에게도 더 강하게 펼쳐질 수 있다. 너희가 육신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같은 육신이기 때문에 사람인 분체의 육과 혼과 영을 통해 너희에게 역사해야만 너희가 공감하고, 느끼고, 이해하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분체가 너희와 같은 육신이니 그가 너희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기에 그를 통해 역사하는 것이 너희에게 역사를 더 크게 펼 수 있는 방법이다. 비유를 들어 보자면, 일본 사람은 일본 사람끼리 통하는 것이 있기에 말이 더 잘 통하지 않느냐.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끼리 통하는 것이 있기에 말이 더 잘 통하지 않느냐. 미국 사람은 미국 사람들끼리 말이 더 잘 통한다. 이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이지 않느냐. 그 나라 사람이 그 나라의 문화와 풍습을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자는 이 땅 가운데 역사할 때, 항상 분체를 통해 역사하고 분체를 쓰고 역사한다. 이것은 하늘의 법칙이다. 그리하여 성자는 신약 때 나사렛 예수의 육신을 쓰고 역사했다. 예수의 육신이 죽고 없어졌을 때는 예수의 혼과 영을 쓰고 역사했다. 그래서 2000년 동안 신약 사람들은 예수를 성자로 인식했다. 나 성자는 여태껏 단 한 번도 예수를 쓰고 나타나지 않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본체 그 자체로 나타난다고 해서 나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있었을까? 오히려 내가 예수로 나타나야 나를 인식하고 알아볼 수 있었다. 내가 계속 예수를 쓰고 역사를 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예수가 나 성자인 줄 알고 예수가 다시 올 줄 알고 예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냐. 지금 이 시대, 성약역사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여태껏 단 한 번도 선생을 통해 나타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전반기 때 선생의 육을 쓰고 계속 너희 가운데 나타났다. 지금도 선생의 육을 쓰고 나타나고 선생의 혼을 쓰고 나타나고 선생의 영을 쓰고 나타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여기서 너희들이 헷갈리는 것은 성자는 하늘에 갔다고 했는데 성자가 이 땅에 선생을 통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간단하다. 성자 본체의 영체는 하늘나라로 갔다. 선생을 통해 이야기했었지. *선생님의 잠언* [ ‘성자 본체 영체’는 낮은 인간들에게 나타나실 필요가 없다. 성자는 ‘혼체’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지상의 일을 다 할 수 있고 도울 수 있다. 성자 본체는 천사장이 나팔 부는 때, 휴거의 영을 천국으로 휴거시킬 때나 특별할 때만 행하신다. ‘성자의 혼체’도 혼돈되기에 잘 안 보여 주신다. 성자 본체를 봤다고 할까 봐서다. 고로 성자는 ‘그 분체의 혼체나 분체의 영체’를 쓰고 나타나신다. 성자 본체는 너무 안 쓰면 아까우니, 차원이 높게 행할 때는 세상의 짝꿍인 ‘분체의 영을’ 쓰고 나타나 행하신다. ] 이 말대로 성자 본체의 영체는 하늘나라 천국 황금성으로 갔다. 백보좌에 앉아 있다. 성자 본체의 혼체는 이 땅에 남아 있다. 선생과 함께 있다. 선생을 통해 역사한다. 선생은 신적 차원으로 거듭나고 변화되었지만 엄연히 따지면 신이 아니다. 선생은 사람이다. 선생 스스로는 절대 신적 차원의 역사를 펼 수 없다. 선생을 통해 성자가 역사하는 것이다. 그러니 ‘선생만 믿고 따라가도 된다.’라는 그 말에는 선생을 통해 역사하는 성자를 믿고 따라가라는 말이 들어 있다. 선생 안에 성자가 있기 때문에 선생을 통해 역사하는 성자를 믿으면 선생을 믿는 자체가 곧 성자를 믿는 것이 된다. 예전에는 성자 본체의 영체가 너희들에게 가끔씩 역사할 때가 있었다. 너희들과 함께했지만 거의 선생의 영체를 통해 역사했다. 계시자들이 천국에 갈 때 선생의 혼체, 영체를 봤다고 하는 자들이 많이 있지. 그때 대부분 성자 본체의 영체가 선생의 영체를 쓰고 나타난 것이다. 또 성자 본체의 혼체가 선생의 혼체를 쓰고 나타난 것이다. 성자의 영체는 너희와 함께 계속 있었고 선생과 계속 함께 있었다. 그동안은 분체를 쓰고 너희들에게 갔다. 혼체 시대가 열렸고 선생의 혼체 또한 더 차원 높게 완벽한 신적 차원으로 부활하면서 성자의 혼체가 선생의 혼체를 쓰고 독립적으로 많이 역사하기 시작했다. 성자의 혼체가 선생의 혼체를 쓰고 역사해도 신적 차원으로 역사를 펼 수 있을 정도로 선생의 혼체가 완벽하게 부활했기 때문이다. 성자는 성자의 영체가 완벽히 떠나도 될 만큼 선생을 완벽하게 만들었다. 성자의 혼체가 선생의 혼체를 쓰고 역사해도 역사가 이루어질 만큼 완벽히 역사하였고 그 정도로 완벽히 선생을 만들었다. 성자 강림의 역사는 선생 1명을 키우고 만드는 역사라고 했지. 그래서 선생의 영과 혼과 육은 지금 완벽하게 부활하였다. 지금 성자 본체의 영체는 완벽히 떠났다. 선생이 지금도 계속 신적 차원으로 행할 수 있는 것은 성자의 혼체가 선생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과 성자는 일체이다. 성자의 혼체가 선생의 혼체를 쓰고, 선생의 육을 쓰고, 선생의 영을 쓰고 역사를 편다. 선생 안에 성자가 계속 들어 있고 선생은 이제 성자의 신성을 마음껏 나타내고 드러낼 수 있는 영, 혼, 육이 되었기에 선생이 곧 이 땅의 성자인 것이다. 알겠느냐? 그래서 성자는 떠났지만 떠나지 않은 것과 같고 성자는 남아 있는 것과 같다. 성자 본체의 영체가 너희를 데리고 갔으니 성자 본체의 영체의 역할은 다 끝났다. 성자 본체의 영체 역할은 선생을 완벽한 성자의 육으로 만들고 너희들을 휴거시키는 역할이었다. 그것을 위해 강림했으니 이제 본체의 영체 역할은 끝났고 완벽하게 거듭난 선생이 이제 성령과 함께 성자의 혼체와 함께 역사를 이룰 것이다. 이 땅은 육계 세계이다. 육을 통해 역사를 펴야 역사가 더 불같이 엄청나게 일어나는 것이다. 성자가 떠난 이유는, 너희와 같은 육신이자 성자의 육신으로 완벽히 거듭난 선생을 통해 더 불같은 사도의 역사,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라고 선생을 남겨 놓고 선생과 일체 되어 행하라고 떠난 것이다. 2015_0617 수 계시말씀.hwp7 성자와 일체 된 선생과 휴거된 너희가 선생을 중심하여 역사를 일으킨다면 얼마나 폭발적인 대역사를 일으킬 수 있겠느냐. 너희 한번 생각해 보아라. 성자의 몸으로 완벽히 거듭난 선생을 통해 역사를 펴는 것이 더 강하고 빠르고 웅장하다. 육계에서 역사를 펴야 하기 때문이다. 개미와 대화하려면 개미가 되어야 한다고 했지. 아무리 개미보다 지능이 뛰어나고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라도 개미 세계에서 역사를 펴려면 개미가 되어야 개미와 말이 통하고 개미에게 말을 전달할 수 있으며 개미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전지전능한 성자이고 성삼위 유일신이어도 성자는 육신이 없으면 말 한마디 전하지 못하고 역사를 하나도 이루지 못한다. 오직 이 땅은 육의 세계이니 육신을 통해서만, 육신이 있어야만, 역사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선생이 성자의 분체인 것처럼 너희 전체가 나의 분체가 되어서 선생의 분체가 되어 행한다면 얼마나 크고 엄청난 대역사가 일어나겠느냐. 상상해 보아라. 천군 천사 수억 명이 이 땅에 내려와도 너희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 너희 한 명이 외쳐야 세상 사람들이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지 않느냐. 그러니 휴거된 너희들이 정말 귀하고 중요한 것이다. 선생이 왜 성자의 육신인지 알겠지? 성자의 혼체는 절대 스스로 활동하지 않는다. 반드시 분체를 쓰고 분체를 통해 역사한다. 그러니 선생의 육신이 행하는 것, 선생의 혼체가 행하는 것, 선생의 영체가 행하는 것, 모두 다 성자가 그를 쓰고 직접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은 성자의 육신이며 육신 쓴 땅의 성자인 것이다. 이것을 깨달아야 희망과 기쁨이 솟아오르며 너희가 당대에 태어난 것에 감사 감격하며 주와 함께 남은 역사를 너희의 육신으로 이룰 수 있다. 성자 본체, 분체를 쪼개어 내는 것에서 한 차원 더 높여서 성자 본체의 혼체와 일체 된 선생을 깨달아야 한다. 쪼갠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친 것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다. 절대 따로, 또 같이인 것을 너희들이 먼저 정확하게 깨닫고 이것을 생명들에게 정확하고 확실하게 증거하고 외치고 가르쳐라. 전반기 때와 같은 실수를 하면 안 된다. 나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고 나는 그렇지 않은데 따르는 자들이 선생을 그와 같이 깨닫지 못하고 그와 같이 인식하지 못하면 선생은 그 정도 차원과 수준으로밖에 나타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엄청나고 위대한 말씀이며 엄청난 역사이며 완성급의 역사이냐. 진정 깨달아라. 완벽하게 인식해라. 육적으로 선생을 인식하면 큰일 난다. 한 차원 더 높아진 선생을 깨달아라. 선생 ‘한 길’ 남은 것이 성자가 떠나고 안타깝게 남은 한 길이 아니다. 성자와 선생이 합쳐진 한 길인 것을 깨닫고 각각 쪼개되 합쳐진 한 길이니 선생 안에 역사하는 성자를 정확하게 확실하게 인식하고 깨달아라. 성자를 모르면 선생의 능력과 위력과 권세를 제대로 깨달을 수 없다. 인간의 육신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성자만 깨닫고 안다면 인간의 육신을 통해 역사하는 성자를 느끼지 못하니 위력이 없고 힘이 없다. 너희 인간에게 영과 혼과 육이 있듯 선생이라는 육신과 성자라는 영적 입장인 혼체가 합쳐져야 인간 세계, 육계에서 위력과 권세를 나타내며 역사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육신은 선생이며 성자의 혼체가 남아 있으며 성자의 혼체는 영체와 같은 위력을 가진 전지전능한 신이기에 그 성자의 혼체가 선생의 영과 혼과 육을 다 쓰고 역사하기에 선생은 성자의 육신이다. 선생이 땅의 육신을 쓴 성자인 것을 완벽하게 깨닫고 이해하여 너희들은 선생의 분체가 되어, 선생과 함께 이 시대 역사를 찬란하게 이루어 나가자꾸나. 사랑한다. 너희를 사랑하여 성자의 혼체가 선생을 통해 이야기했다. 즉 선생이 전하였다. 이제 앞으로 선생이 전하는 모든 것은 성자가 선생을 쓰고 전하는 것이다. 너희들에게 인식시켜 주기 위해서 성자의 혼체가 전했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즉 선생이 하였다. 곧 성자가 한 것이지. 그러니 선생의 말을 들으면 성자의 말을 듣는 것과 같다. 선생만 따르는 것이 성자를 따르는 것과 같다 선생만 따라라. 선생만 믿어라. 선생만 사랑해라. 그 안에 성자를 따로 쪼개고 인식하고 그리 행하면 된다. 알겠지? 너희가 어려워할까 봐 길게 설명하였다. 잘 인식하고 이해하고 이제 정확히 깨닫고 선생을 증거해라. 선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