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5.06.18 (목)
목 계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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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6월 계시말씀
♥ 06월 18일 목요일 ♥
이제는 완전한 섭리사,
견고한 섭리사다.
작성일 : 2015. 5. 25. AM 2:00
작성자 : 최은디
( 새벽 1시 기도를 나갈 준비를 하는데,
문득 주일말씀이 떠오르며, 성령님은
깨끗하고 온전하시니 그러한 성령님을
만나기 위해 그냥 나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보다 육도 더욱
정결하게 하고 복장도 갖추어 입고 교회에
나가 기도드릴 때, 바로 성령님이 느껴져
대화했고 말씀해 주신 것을 기록했습니다.
)
*성령님의 말씀*
나 성령은
완전하고 온전한 신이다.
구약도 신약도 아닌
성약시대에 나 성령이
직접 역사하는 이유가 있지.
바로 성약은 완전히 행해야 하는 역사,
완전한 인간 책임분담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사랑아,
나는 엄하기만 하고
완벽하기만 한 신이 아니라
어머니와 같이 따뜻한
사랑이 가득한 신이기에,
사랑의 본체이기에,
나의 완전함 안에는
오직 사랑만이 가득함을 기억해라.
아이가 어릴 때부터 성장시키고
모진 어려움과 고통을 견디며
아이와 끝까지 함께하는 어머니와 같이
나 성령은 인류가 성장함에 있어,
너희들의 인생에 있어
가장 세밀히 관여하였으며
지금도 그 모든 사연,
사연마다 함께하며 역사하고 있노라.
나 성령을 바로 알아라.
나 성령은
그저 완벽하기만 한 신이 아니라
그 완벽 안에 온전한 사랑이 가득하며
너희의 모든 것을 세밀히 꿰뚫고
너희가 더욱 온전한 성장을
이루도록 돕는 사랑의 신이니라.
사랑이 아니면 존재할 이유가 없는
신이니라.
사랑의 본체,
사랑의 완전체,
나 성령을 바로 알아라.
성약은 인간 책임분담의 역사다.
성부와 성자 시대 때는
인류를 이해해 주고
보듬어 주고 성장시켰다면
성령의 역사는
그 바탕 위에 보다 세밀하게
완전을 가하는 역사다.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들 때
그 모든 재료를 구해 오고
구상하며 행하여
어느 정도 만들었으면
이후 마지막 마무리를 하는 단계가 있지?
바로 그때가 지금 이 시대라
비유할 수 있겠구나.
마무리는 세밀해야 한다.
마무리는 완벽해야 한다.
‘완전함’, ‘완성’
하늘 지상천국의 뜻을
마지막으로 이루는 성약의 상징
단어이니라.
휴거도 이제는
600선까지 완전하게 이루어야 하기에
누구보다 세밀한 나 성령이 돕나니
선생을 붙들며, 선생이 잡아 주는
방향에 오직 집중하며 나 성령 앞에
나아와 세밀히 코치받도록 하여라.
나에 대해 오해하고 모르는 자들이 있기로
내 너에게 말하고 간다.
( 성령님이 떠나시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도하며 계속 붙들었습니다. )
선생도 완전을 향해 나아간다.
더 견고하게, 더 아름답게 자신을 만들고
성약역사를 만들고자 몸부림치는구나.
사랑아, 내가 선생을 사랑하노라.
하늘을 붙잡는 애절함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으니 선생은 나 성령의 마음에
합하노라.
진정 선생을 위해 살아 주자.
나 또한 하나님의 역사를 도우며
함께 역사를 이루며 그 어려움,
아픔을 다 지켜보며 포기하지 않았다.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의 곁을 지키며
너희를 이끌어 왔다.
너희도 이제는 땅에서 선생과 일체 되어
나 성령과 같이 포기하지 말고 행하자.
말씀으로 인류의 무지한 자들을
지도하며 나아가자.
내 너에게 할 말이 많으나
더 기도하길 원한다.
( 성령님은 조건이 있어야 말씀을 더 해
주신다는 것이 깨달아져서 계속 기도로
성령님께 감사와 사랑을 고백드렸습니다. )
사랑해.
사랑한다.
섭리야, 좀 더 행하자.
좀 더 온전해지자.
이제 내가 나선다.
선생이 이룩해 놓은 발판 위에
부흥강사가 견고하고 세밀하게
선생의 심정을 대언해 외치며
생명역사를 이루듯,
나도 하나님과 성자가
이룩해 놓은 발판 위에
이제는 세밀히 코치하며
견고하게 섭리역사를 완성하려 하노라.
너희도 이제는 나와 같이,
선생의 몸이 되어 행하는 부흥강사처럼,
손발 맞추어 행하자꾸나!
‘관념 신앙’은 아니 된다.
‘실체 신앙’이다.
말만 하지 말고 행해라!
잠에서 깨어나라!
관념의 잠에 취해 있는 섭리야,
정신 차리자.
실속이다. 오직 실속.
생명이 역사와 분체를 깨닫고
뒤집어지도록
능력과 실력을 쌓으며
부지런히 행하자.
( 계속 성령님과 대화하며 성령님의
모습을 보여 달라고 간구드렸습니다.
그때 푸른 하늘 눈부신 태양 아래
노란 열매가 열려 있는 청청한 야자수가
보였습니다. 마치 선생님의 야자수 그림
작품 속에 있는 야자수 같았습니다.)
야자수는 생명력이 있다.
어머니는 강인하지?
아름답지만 강인하고
꿋꿋한 나 성령을 상징하는 것,
야자수가 딱 맞구나.
그래서 선생도 늘 야자수를 좋아하고
많이 그리지 않았느냐.
청청한 아름다움!
나 성령을 상징하며
너희가 그러한 나 성령을
닮길 바라는 마음으로
성자가 선생에게 그리게 하였다.
사랑들아,
어떤 어려움에도
굳건하게 자라 열매를 여는
야자수 나무와 같은 인생이 되어라.
금방 고꾸라지는 꽃같이
연약한 신부가 아닌
사막에서도 청청하게 성장하며
빛을 발하는 야자수와 같이 살자.
야자수 곁에 오아시스가 있지?
너희도 말씀의 오아시스 곁에서
성장하라는 말이다.
사막과 같은 세상에서
오로지 주의 말씀을 붙잡고 성장해
야자수같이 빛나는 신부들이 되어라!
(“아멘! 아름답고 웅장하고 신비로우신
성령이시여, 사랑합니다. 온전과 완전이
무엇인지 성령을 통해 배우니 명쾌합니다.
선생님을 보좌할게요. 선생님 곁을 떠나지
않을게요. 선생님을 사랑하며 삼위를
사랑합니다. 진정 사랑합니다.”)
야자나무 숲을 만들어라!
섭리의 세계를 이루자!
2015_0618 목 계시말씀.hwp2
너희부터 온전해지고
온전한 자를 만들어 성장시키자.
너희의 몫이니라.
세상을 보아라.
민주주의, 인간 존중 사상이
중심이 되어 돌아가고 있다.
이제 세상도 무력은 싫어한다.
내가 이끌었다.
구원역사 막바지이기에 그러하다.
이제 세상에서도
인격적이지 않은 자는
인정받지 못하며
시간 약속, 자기 관리에 철저한 자가
각광받는 시대가 되었다.
섭리에서도 그러하다.
철두철미한 자들이 되어라.
하나라도 완벽하고
세밀히 보고 행하며
긴장하고 살아야 한다.
대충하는 자는
그 수준, 그 주관권에서 살다가
그 정도 차원에서 끝날 것이다.
이제 나 성령이
이끄는 대로 따라오는 자들만이
휴거 차원을 높이며
성령 역사를 이룰 것이다.
자기 스타일을 버려라.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 보아라.
나는 개성을 죽이는 신이 아니라
각자의 개성대로
완전에 이끄는 성령이니
그것을 잊지 말아라.
예전과 같은 방법으로는 안 된다.
그래서 “새롭게 하라.” 선포한 것이다.
성령 시대에 맞게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라.
세밀하게 하자.
막무가내로 하면 실속 없다.
내가 아까 실속적으로 하라고 했지?
그것은 세밀하게 하자는 말이다.
이제부터는 앞도 뒤도
세밀히 따져 보고 외쳐야 한다.
영육으로 준비할 것을 준비하고
생명에 대한 파악도 온전히 하여
맞춤식으로 외쳐라!
한 번 할 때 잘해라.
생명들을 그물로 모으듯
많이 모으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하나하나 낚시질하여
대어를 골라 낚듯 해야 한다.
신약은 베드로가 3천 명씩 돌이켰듯
그물로 끌어 모아
외치는 역사를 이루었다면
성약은 하나하나 살피며
골라잡아야 한다.
그만큼 정신적으로 예민한 시대이며
유혹이 많은 시대이기에 그러하다.
부흥강사를 봐라.
완전하게 행하지?
목회할 때도 세밀히 코치하며
교육하며 이끈다.
나 성령이 하는 목회이니라.
나 닮았다.
그래서 성령의 상징체라고 하는 것이다.
표상자를 세웠으니 보고 따라 해라.
부흥강사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가운데서도 한다.
그것이 성령의 정신이다.
어떻게?
하나하나 따져 보고
자를 것을 자르고
방법을 달리하니 가능해지는 것이다.
사랑아, 그리 행하자.
이제는 완전한 섭리사,
견고한 섭리사다.
이 세상, 선생의 복음으로
바로잡아 나가자꾸나.
성령이다.
♥ 06월 18일 목요일 ♥
마지막 남은 한때를
여한 없이 보내려면
나 성령을 잡아라.
작성일 : 2015. 6. 1. PM 1:30
작성자 : 주현정
(알파절 행사에 찬양을 하고 있는데
너무 뜨겁게 성령님이 느껴져서
성령님을 간절하게 부르며 고백했습니다.
“정말 지금 이때를 여한 없이 보내고
싶어요. 지금 성령님이 이 땅에 계시니
지금 이때를 여한 없이 보내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를 하니 성령님께서
“이 시대 마지막 남은 한때는 바로
성령의 역사이다. 고로 나를 잡아라.”
하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행사가
시작되었고 이후 기도 시간에 이것에 대해
기도하니 말씀해 주셨습니다. )
*성령님의 말씀*
이 시대 마지막 남은 한때는
바로 성령의 역사다.
고로 너희가 이 한때를 맞으려면
나 성령을 잡아야 한다.
곧 성령이 기회다.
그러니 성령을 잡아야 한다. 성령의 때가
마지막 때라는 것을 명심하여라.
마지막의 한을 다 풀어라.
그러니 선생을 쓰고 역사하는
나 성령을 잡아라.
마지막 한때는 지금이며, 흘러가고 있다.
너희가 절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으니
성령의 역사이다.
깨달으면 깨어 있게 되어 행하게 된다.
지금 나 성령이 선생을 쓰고
완벽히 역사한다.
너를 네가 깨닫게 하여 깨우쳐라.
나 성령은 너를 깨닫게 할 준비가 되었고,
깨우치게 할 준비가 되었다.
마지막 한때를 <3.16> 성자 승천일,
휴거 날처럼 보내면 안 된다.
절대 한을 남기지 않는 한때가 되어라.
그러려면 나 성령을 잡아야 한다.
나는 할 일이 많기에
나를 부르고 찾는 자,
나와 함께 있고자 하는 자,
나의 일을 하려고 하는 자에게 가서
나의 할 일을 한다.
선생은 이것을 알기에 나를 끝까지
붙잡아서 끝내 나와 계속 함께 있을 수
있는 방법을 풀었다.
사랑아.
너는 진정 나의 몸이 되어라.
너는 내 것이 되어라.
나 성령이 너를 쓰고 역사하면
너의 몸이 너의 몸이 아니라 나의 몸이다.
그러니 이 역사는 성령의 역사이기에
나 성령에게 매달리고 간구해야 한다.
그러면 나는 너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네가 너를 계속 비우고
나의 몸이 된다면,
너는 이 역사에
성령 시대의 성령의 몸이 되는 것이다.
진정 깨달아라.
내가 너를 쓰면 다르다.
네가 너를 쓰는 것과
나와 주가 너를 쓰는 것은
이와 같이 비교가 안 된다.
직접 느껴 보아라.
나 성령과 주가 직접 느껴 보라고
나의 말씀을 전해 주었다.
그러니 그 말씀을 행하는 자만 안다.
이제 나 성령은 하는 자에게만 간다.
시대가 바뀌었다.
이제 이 땅은 나 성령이 역사하니
나 성령의 역사를 확실히 깨닫고
온전히 나의 몸이 되어라.
성령의 몸이 되어 행하여라.
너희가 이 한때를 여한 없이 보내려면
먼저는 나 성령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나 성령을 잡으면 사도가 되어,
시대 신부들을 데려와야 한다.
그러니 우선 네가 나를
부르고 찾으며 나 성령에게 와라.
너와 나의 사이가 멀면 안 된다.
왜냐면 이 땅에선 지금 내가 역사하기에,
너의 옆에서 역사해 줄 수 있는 신은
나 성령이다.
하나님과 성자는 하늘에서 지켜보며
감동을 주고 생각을 주지만
나는 바로 옆에서 너에게 역사할 수 있다.
진정 네가 깨달아라.
진정 네가 성령을 받아라.
진정 너를 성령의 몸이 되게 해라.
성령의 몸이 되면
이 한때를 여한 없이 보낸다.
그러니 온전하고 완전하게 너를 비워
성령의 몸이 되라.
나 성령이 너에게 이 마지막 한때를
여한 없이 보내는 방법을 말해 주었다.
나는 네가 나의 몸이 되길 원한다.
너를 쓰며 역사를 펴고 싶구나.
내가 너를 쓰게 하여라.
너를 쓰고 싶어 말한 성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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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월 18일 목요일 ♥
얻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제대로 된
휴거의 삶을 살아라.
복도 아는 자만 누린다.
작성일 : 2015. 4. 27. PM 7:30
작성자 : 장정임
( 며칠 동안 신경이 예민해져서 별것 아닌
것에도 화가 나고 속이 상했습니다. 주변을
둘러봐도 휴거 전후에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듯한 사람들의 모습에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늘 앞에 감사
영광은 돌려야겠기에 기도 시간에 맞추어
감사와 기쁨의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고
나서 기도할 때 마음속에 “네가 얻은 것에
비하면 네가 느끼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는 주의 음성이 선연히
들려왔습니다.)
* 주님의 말씀 *
나비가 되었는데
왜 아직도 애벌레처럼
기어 다니며 사느냐.
네가 진정 나비가 된 것을
모른단 말이냐.
두 날개가 있으니 날아 보아라.
더 이상 기어 다니며
살 필요가 없다.
너무 오랫동안 기어 다녔기에
날개가 있어도 쓰는 법을 몰라 못 쓰면
어찌 나비가 된 기쁨을 누리겠으며
나비로서 누릴 것을 누릴 수 있겠느냐.
날아야지 더 먼 것, 더 높은 것,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지 않겠니.
성자께서 너희 모두에게
휴거의 축복을 주셨다.
그런데 왜 그 복을 누리지 못하느냐.
마치 날개를 단 나비가 되었는데도
자신은 여전히 애벌레라 생각하며
기어 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느냐.
복도 알아야 누린다.
자신이 가진 것이 어떤 것인지,
얼마큼의 가치가 있는지 알아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손에
천만 원짜리 수표를 쥐어 주어도
그것으로 딱지나 만들어 가지고 논다.
그러나 그 수표의 값어치를 아는 자는
그것으로 그에 해당되는 것을 사서
취하여 누린다.
휴거도 마찬가지다.
너희가 휴거의 가치를 모르니
휴거되었어도 얼마나 기쁜지 모르고
그에 맞는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다.
깨달아라.
휴거됨으로 인해 얻은 것에 비하면
너희가 겪는 삶 속에서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다.
1조 원 복권에 당첨되었는데
누군가 십만 원이 든 네 지갑을 훔쳐
달아났다고 노할쏘냐.
사기꾼이 너를 속여
네 사는 집을 팔아넘기고
너를 길바닥에 내쫓았다고 싸우겠느냐.
그냥 허허 웃고 말 것이다.
그깟 지갑, 그깟 집 한 채는
네가 얻은 행운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지 않느냐.
휴거를 보장받은 자는
그와 같이 살아야 한다.
지구덩이를 다 주고도 살 수 없는
황금성에 네 집이 있지 않느냐.
그곳에서 영원한 사랑을 하며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보장받았으니 세상만사
그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하여도
웃음이다. 행복이다. 기쁨뿐이다.
오직 기쁨과 감사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래도 다 표현치 못할 행복이다.
못 느끼는 자,
내 말을 듣고 먼저 기뻐 감사해 보아라.
눈앞에 어려움이 닥치고
삶의 곤고와 고통이 닥치고
근심, 걱정이 크게 보인다 해도
그것이 네가 받은 복을
없애지 못한다.
네가 누릴 축복을
빼앗아가지 못한다.
그러니 항상 휴거로 인해
네가 받을 복을 생각하라.
네 영혼이 누리고 있는
행복을 잊지 마라.
잊는 순간, 곤고함이 밀려오고
육의 것이 크게 보이고 느껴져서
고통의 파도가 한순간에 너를 덮치니
네 영은 기뻐해도 네 육은 고통 가운데
거하게 되지 않겠느냐.
똑같이 1조 원을 얻었는데
한 사람은 그 가진 것으로
때로는 베풀며
때로는 넉넉히 쓰면서
때로는 지혜롭게 투자하여
더 많은 것을 얻고 누리는데
한 사람은 장롱 속에
쑤셔 박아 놓고 잊은 채
여전히 쓸 돈이 없다고
힘들다며 투덜거리고 산다면
1조 원을 준 자의 마음이
어떠하겠느냐.
사랑하여 행복하게 살라고,
거칠 것 없이 누리며
기뻐하며 살라고 주었는데
받았는지도 모르고,
받은 줄은 알았어도
어떻게 쓸 줄을 몰라
깊이 처박아 두기만 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느냐.
휴거되었어도 육신이 있기에 겪는
어려움과 고통은 여전하기도 하다.
그러나 똑같은 상황이라도 그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여기느냐에 따라
순간에도 천국과 지옥을 오고 가지 않느냐.
휴거된 자는
어떤 고통이 와도 이길 힘이 있다.
그 어떤 고통이라도
휴거라는 축복이 주는 행복을
능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또한 휴거의 가치를
아는 자에게만 허락되는 축복이다.
그러니 휴거의 가치를
절실히 느껴 보라고 말하는 거야.
고기도 먹어 본 자가
그 맛을 안다고 하듯
휴거도 그 가치를 아는 자가
그 복을 양껏 누리게 된다.
그러니 깨달아.
깨닫는 순간 천지개벽하듯
세상이 아름다워 보일게다.
네가 어떤 처지에 있든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든
상관없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천국은 여기도 저기도 아닌
네 마음에서부터 시작됨을
꼭 기억해.
마음, 생각이
너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급이 달라진다.
휴거되었어도
휴거된 자로서의 삶을 살지 못하면
지상에서 어찌 천국을 누리며
살 수 있겠느냐.
휴거의 가치를 알고
생각의 차원을 높여
휴거된 자로서의 삶,
곧 지상천국의 삶을 살아라.
이미 천국을 너희 각자에게
모두 선물한 주다.
♥ 06월 18일 목요일 ♥
똑똑한 생각
작성일 : 2015. 5. 26. AM 1:00
작성자 : 주달해
( 평소 부흥강사님이 “사람은 정말 똑똑한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많이
해 주시는데, 이번 주일에도 그와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흥강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마음속으로 ‘똑똑한 생각을
딱 한마디로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면 그 한마디를
마음에 새기고 다녀야겠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하늘과 얼마나 가까운
생각을 하느냐가 똑똑한 생각의 척도다.”
하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음 날 새벽에
부흥강사님의 말씀과 선생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기도할 때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
2015_0618 목 계시말씀.hwp4
* 선생님의 말씀 *
‘똑똑한 생각’은
영원히 남아지는 것을
최우선에 두고 행하는 것이다.
사람이 인생을 살며 보다 이상적인
생각을 하려는 이유가 무엇이냐.
생각 수준을 높임으로
삶의 차원을 높이려는 것이다.
생각을 잘해야 인생을 잘살지?
생각을 똑똑하게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고로 사람이 살아가면서
생각에서 판단, 분별, 확인을
정말 잘해야 된다.
순간 생각에서 판단하고
분별하고 확인한 대로
육이 행하기 때문이다.
당장 자기에게 유익이 된다 하더라도
영혼에게 해가 가고
영원히 손해가 가는 일이라면
그것이 자기에게 유익이라 할 수 있겠느냐.
인생에 속한 시간은
영원에 속한 시간이다.
사람들은 모르니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이 길면 100년,
육의 인생이라고 생각하지만
창조주는 인간 창조 자체를
‘영원’에 목적을 두고 창조하셨다.
이것에서부터 벌써 창조주 하나님과
인간의 생각 출발점이
달라지는 것이다.
바로 ‘무엇에 목적을 두고 사느냐’다.
영원이냐, 사라지는 육 일생 순간이냐의
차이다. 사람이 무엇이든 순간, 잠깐에
목적을 두면 이룰 것이 없고,
쓸 것이 없고, 볼 것이 없다.
하찮은 물건 하나라도
오랫동안 제대로 쓸 것인가,
잠깐 한철 쓰고 버릴 것인가에 따라
같은 것이라도 수준이 천차만별이듯이
인생 또한 그러하다.
큰 뜻을 두고 가져오고,
거금을 들여 얻을수록
가치 있게 대하고 귀히 쓰듯이
인생 또한 이러하다.
자기 인생에 별 뜻이 없는 자는
자기를 귀히 보지도 않고,
스스로를 막 대하며
되는 대로 인생을 산다.
그저 잠깐 사는 것,
순간 이때를 지내는 것을 목적한 것이다.
그러한 자는 절대 이상적인
생각 자체를 하며 살 수가 없다.
언제나 이상적인 것은
하늘에 속한 것이다.
하늘에 속한 것은
곧 영원에 속한 것이다.
영원을 생각하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인생을 제대로 살 수가 있겠느냐.
이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인생은 영원하신 하나님이
창조한 대로 살아야 된다.
그것이 최고로 이상적이고 온전한 삶이다.
그것이 제대로 사는 삶이다.
곧, 영원함에 목적을 두고 사는 것이다.
목적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모든 생각의 판단이 좌우된다.
이는 목적, 목표물에 따라
방향이 달라지는 것과 같다.
방향은 과정이며 목적은 결과다.
목적을 둔 대로 생각하고
행하며 살아간다.
영원함을 목적하면
인생의 방향이 달라진다.
육과 영의 기준은 너무나 다르다.
그 기준 따라 결정이 바뀐다.
순간 자기에게 좋은 것을 따르는 자는
인간이 아니라 짐승의 삶을 사는 자다.
왜? 영원히 남아지지 않고 육계에서
끝나니 짐승과 무엇이 다르냐.
행복이 무엇이냐?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은 각자 다 다르다.
어떤 자는 물질이 풍족한 것,
어떤 자는 좋은 음식을 많이 먹는 것,
어떤 자는 이성의 사랑,
어떤 자는 자기에게 보람된 일을 하는 것,
어떤 자는 존경받는 삶을 사는 것,
어떤 자는 자기가 사랑하는 자들과 사는
것 등 각자의 행복의 기준이 다 말할 수
없이 다름은, 각자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행복에 대해
“행복이란 영원히 행복해야 행복한
것”이라 하였다. 이 한마디가
모든 인생들 앞에 동일한 답이다.
물질이, 이성 사랑이, 명예가,
사람이 자기를 영원히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느냐?
사람이 생각의 차원을 높이면
답이 하나로 보인다 하였다.
바로 목적을 어디에다 두느냐다.
하나님적 차원에서 보면
모든 것의 답은 하나다.
너무나 간단하다.
순간 좋은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순간 편한 것은 편한 것이 아니다.
육의 세계는 잠깐이고 순간이다.
네가 과거를 돌아보고 생각할 때,
분명 오랜 세월을 살아왔는데
순간으로 느껴지고
짧게 보이고 생각나듯,
인간이 영을 쓰고
육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가
그와 같은 느낌이다.
영의 몸을 쓰고
영원이라는 시간의 기준에 속해
더 이상 시간을 셀 수도,
헤아릴 수도 없이 되면
육의 일생은 순간의 순간이라
생각조차 나지 않을 때가 온다.
지옥 고통을 받는데
육으로 누렸던 호사가 생각나랴.
시간을 헛되게 쓴 것에 대한 후회뿐이다.
천국에서 삼위와 함께
사랑하면서 살 때에
과거 육으로 받았던
고통이 생각나고 느껴지랴.
과거의 세월이
자기에게 영광이 될 뿐이다.
이를 진정 알고 살아라.
섭리의 사람들도
시대를 깨달은 자들로서
영을 위해 산다고 하나
육을 쓰고 있기에
순간순간 생각이
육적인 생각으로 돌아가고
육 인생에 기준을 맞춰
살아가게 될 때가 많다.
이같이 살면 알고 살아도
모르는 자의 삶과 같은 것이다.
오직 선생같이 살아.
내가 어디에다가 기준을 두고 행하는가를
늘 보아라. 그 누가 똑똑한 자이냐?
누가 제대로 된 인생을 사는 자이냐?
똑똑한 생각의 척도는
그 생각이 얼마나
삼위의 생각과 가까우냐다.
인간으로서 얼마나 신이신
하나님의 생각과
일체 된 생각을 하느냐이다.
이를 진정 알고
하나님과 같은 차원의 생각을
하기에 늘 힘써라.
말씀에 기준하여
생각을 교정해 나가는 것이다.
이를 생각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육의 삶에서 맞추는 것이다.
나 선생이 네게 한글만 알아도
선생처럼 하늘 위해 살 수 있다 하였지.
지혜, 지식은 창조하신 근본자
하나님에게서부터 나온다.
육계를 벗어나
영계로 들어와 보면
육계에서는 더 배울 것이 없다.
근본을 배우고 깨치기 때문이다.
육계에서 배우는 것은
과일의 겉을 보는 것이고,
영계에서 배우는 것은
속 알맹이 열매를 먹는 것이다.
고로 사람이 하나님을
먼저 배우고 알고 살아야 한다.
먼저 근본을 배우면
연결된 것은 이와 같이
그러함을 깨달을 수가 있다.
근본의 생각, 하나님의 생각,
전능자의 생각, 영원히 남아지는 생각이
최고로 똑똑한 생각이다.
근본을 기준하여
바라보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네가 그리했을 때
전능자 하나님과 같은 판단을 하면,
하나님과 생각이 맞아 같이 사는 것이다.
하나님과 같은 생각을 하여라.
이것이 축복 중에 축복이다.
생각 축복을 가르친 선생이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