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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5.06.24 (수)

수요

선포일
2015.06.24 (수)
성경 본문
요한계시록 20장 1-3

첨부 파일

2015_0624 수요(명설교 - 사탄의 멸망).hwp1 2015년 06월 24일 수요 사탄의 멸망 [ 요한계시록 20장 1-3절 ] 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1 And I saw an angel coming down out of heaven, having the key to the Abyss and holding in his hand a great chain. 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2 He seized the dragon, that ancient serpent, who is the devil, or Satan, and bound him for a thousand years. 3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3 He threw him into the Abyss, and locked and sealed it over him, to keep him from deceiving the nations anymore until the thousand years were ended. After that, he must be set free for a short time. 지금 비 온다고 차 안에 들어가 있고, 또 나머지 사람들은 우산을 받고 서 있습니다. 그래도 말씀을 들어야지, 밤새도록 기도해도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열흘을 기도하고 산에 가서 한 달을 기도해도 음성이 그렇게 들리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오늘 주일말씀을 들어야 또 다음에 일주일동안 사탄들과 싸우고, 생활과 싸우고, 부딪히는 육계의 모든 여건들과 싸워서 또 한 주일을 우리가 지탱해 나갈 수 있습니다. 말씀을 주일마다 잘 못해 주면은, 그 말씀을 못해 주면은 그 주일에 아마 힘이 들 것입니다. 싸우는데. 그래서 말씀을 듣고서 가면 한주일 동안 싸우는데 아주 신바람이 나지요. 사탄들도 주일날이면 아마 설교를 할 것입니다. 아마 그 전 날 할 것입니다. 주일날 공격을 위해서. 사탄들에게 세뇌교육을 시켜서 “너희들은 이겨야 된다. 엠에스 하나가 천 명이라고 하는데, 이겨야 한다. 빌빌 대는 놈을 이겨라.” 이런 이야기들을 할 것입니다. 사탄들도 귀신들도 밤마다 심방 돌고, 낮이면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니면서 자기 백성을 관리하는 것을 나는 영계에서 똑똑히 봤습니다. 오래 됐어요. 그것을 본지가. 심방을 다니더라는 것입니다. 언제 다니는지 압니까. 우리가 먼저 심방을 갔다 옵니까? 사탄이 먼저 갔다 옵니까? 그 애들은 두 번 다닙니다. 우리가 가기 전에 한 번 갔다 오고, 우리가 끝난 다음에 또 갑니다. 말씀 끝나고 돌아왔을 때 팽그르 넘어집니다. 왠고하니, 그것이 아니라고 아주 강력히 주장하고 아주 생과 사를 흔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힘들어 하고, 헷갈려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심방 다니는 것을 봤는데, 오늘 교역자가 심방 갔다 왔으면 바로 오더라는 것입니다. 바로 들어가더라는 것입니다. 그 애들은 집집마다 다닙니다. 우리들은 자기 교인들만 가잖아요. 걔들은 거진 다 갑니다. 일개 골짜기 오두막살이 집까지 다 뒤집니다. 철저하게 관리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사람들은 심방 갈 때, 기분이 좋으면 안 믿는 사람들 집에도 가끔 들렀다가, 심방 나갔을 때 들렀다 오는데 사탄과 귀신들은 아주 본격적으로 메주 밟듯이 밟고 돌아다닙니다. 그것을 내가 보고부터 신앙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 부나 늘 산으로 돌아다니면서 기도하고, 사탄과 귀신의 세계를 “내가 너희를 나쁜 놈의 세계를 쳐 없애겠다. 완전히!” 그러면서 기도하러 다녔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이런 비가 오는 날, 바람 부는 날, 그런 날 잘 옵니다. 간첩들이 오듯이. 계절 따라서 잘 옵니다. 계절에 많이 흔들리거든요. 그래서 계절을 따라서 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여러 가지로 동태를 살피고, ‘마치 간첩들이 오듯이 이놈들도, 흑암들이 이렇게 오는구나.’ (하고 살핍니다.) 본인이 자포자기해서 일으키는 것도 있지만, 거진 다 흑암의 세계에서 많이 주관을 줍니다. 그러나 본인이 섰을 때는 흑암들은 마음을 접어버리고, 본인들이 자신이 많이 참고해서 일으켜 나가면 됩니다. 자포자기 않고. 이제 단상에 올라가서 말씀을 할 테니까 말씀 듣고 움직이도록 해요. 오늘 말씀 간단하게 주면서 죽 교훈의 말씀을 주겠습니다. 말씀을 봉독할게요. 420페이지. 신약 420페이지, 요한계시록 20장 1절부터 봉독하겠습니다.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본문은 20장 1절로 3절까지 하고, 그 밑에까지 말씀을 죽 주겠습니다. 앉아서 할게요. 지난주의 말씀은 “영원한 복음, 복음으로 맺은 인연” 이었습니다. 사람이 여러 가지로 인연을 맺지만, 그 맺은 인연은 일반적인 세계는 가다가 끊어질 수도 있고, 그 인연이 서로 관계가 끊어지는데 복음은 끝이 없기 때문에 영원하기 때문에 영원한 인연이 됩니다. 그리고 복음의 파워가 종교에서 가장 큽니다. 말씀이 가다가 끊어지면 백성은 갈 길을 못 찾고, 그리고 방자하게 되고, 그리고 망한다고 그랬습니다. (잠 29:18) 말씀이 끊어진 역사를 본다면, 선지자 시대 때 말씀이 왔지만 선지자들이 끊어졌을 때는 벌써 말씀을 주기 싫어서 그랬습니다. 때와 시기를 따라 선지자들이 없을 때는 복음이 깨졌습니다. 말씀이 오지 않았을 땐 역사가 깨져버렸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다시금 온다.’ 하면 역사가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시작됐다 하면 역사가 다시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에덴에서부터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을 때 말씀의 권위를 상실했고, 인간들이 되어먹지 못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망각했을 때 인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이 깨져 버렸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세워 주지 못하고, 하나님의 위대한 말씀을 위대하게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통해 오기 때문에 사람의 말같이 들리나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시대의 말씀을 항상 하셨지 특별히 하나님이 2015_0624 수요(명설교 - 사탄의 멸망).hwp2 마이크를 잡고 외친 역사가 없었습니다. 항상 사람을 통해서 시대의 말씀을 외치셨습니다. 모세 때는 모세를 통해서, 아브라함 때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사야 선지자 때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여호수아 때는 여호수아를 통해서, 사사 때는 사사들을 통해서, 예수님 때는 예수님을 통해서... 그렇게 시대마다 사람을 통해 하늘은 말씀을 외쳐 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위대하게 보지 못하고 말씀을 권위적으로 대하지 못하고, 하나님 대하듯 못했을 때는 그런 일을 당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과 같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자기가 직접 가지 않을지라도 자기의 말을 누구한테 전하게 했는데, 그 말을 무시할 때같이 크나큰 무렴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자기 말을 잘 듣고 자기 말을 들어 줬을 때는 그 말씀과 같이 인연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왔을 때, 선생님이 가지고 왔는데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이 참인 줄 알고, 하나님이 나를 가르쳐서 나를 통해 보낸 말씀인 줄 알고 여러분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말씀과 더불어 자신의 인격뿐만 아니라 사망권에서 생명권으로 벗어나게 되었고, 부활이 되었습니다. 부활뿐만 아니라 구원이 이루어졌고, 구원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난 보람을 찾게 되고, 가치를 찾게 됐다는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 이러한 말씀을 가지고 살면서 그 말씀에 대한 것을 다시금 느꼈을 것입니다. 월명동에 오면, 선생님이 어느 곳을 돌아다닐지라도 선생님이 <말>을 안 하면 힘아리가 없습니다. 내가 힘아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따라다니는 사람이 힘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가다가도 딱 붙잡고 대화를 하게 되면 그때는 버뜩 힘이 오고, 신바람이 납니다. 바로 말씀 바람이 신바람입니다. 말씀이 곧 신(神)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바람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말씀이 크다는 것입니다. 대화 속에도 말씀 안 하면 무슨 힘이 있습니까. 부부 사이도, 애인 사이도, 선생과 제자 사이도, 주권자와 백성 사이도 서로 말이 없으면 힘이 없는 것입니다. 결국 제 갈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하루의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을 하게 되면 안 갑니다. 말을 하게 되면 <말 책임>을 또 져 줘야 됩니다. 말한 사람은. 그마 만큼 말의 권위를 살려주는 사람은 바로 그만큼 선생님이 인정을 해 주는 것입니다. 말의 권위를 살려주지 않으면 그 만큼 인정을 안 해 줍니다. ‘운명이 돌아간다.’ 그럽니다. 지난주에도 내가 왔을 때, 화요일인가 수요일에 왔을 때 애들이 MT왔다가 모두 간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냐? MT가 언제까지냐?” “토요일까지요.” “토요일까지면 내가 여기 있는데, 와서 내가 일하는 것도 보고 가지, 왜 가냐? 있고 싶으면 있어라.” “있을까요?” 그렇게 해 놓고 3-4일 동안 계속 일하러 돌아다니다가 나중에 보니까, 아침에 불러 보니까 여기 막사에 와서 잘 데가 없니까 설겆이 해 주고 계속 그러면서 막사에서 잤던 것입니다. 아침에 내가 불렀습니다. “화요일에 내가 가지 말라고 했던 그 아이가 있나 찾아봐라.” 하고서 오늘 아침에 그 아이를 찾아 왔는데 보니까 신입생이었습니다. 내 말을 지켜 줬기 때문에, 시적부적 말한 것 같은데 내 말을 지켰던 것입니다. “너 가지 말아라. 가면 죽는다. 만약 안 가면 내가 특별히 너를 만나 줄게.” 나는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슬그머니 은밀한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여기 MT 왔으면 토요일까지 있다 가지.” “토요일까지 있으려고 했는데 잘 데도 없고 해서 그냥 가려고 해요.” “그래? 그냥 아무 데서 자다 가는 거지 뭐.” 일반 엠에스 같으면 안 그러지요. 일반 엠에스에게 있으라는 소리를 했다가는 두 달 석 달 있습니다. 신입생은 그런 것에 관심이 별로 없으니까 은밀한 중에 “그러면 아무 데나 있다가 가는 거지 뭐.” 그렇게 하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렇게 해 놓고 선생님은 쳐다봅니다. 닷새 동안 ‘얘가 어떻게 움직이나.’ 하고 봤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 그 아이를 못 봤는데 여기 와서 설거지 해 주고 계속 밥도 해 주고 그랬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에 불러서 얘기해 줬더니만 그렇게 지냈다고 했습니다. 잘했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너는 선생님을 찾아오면 만나 줄게! 그리고 멀리 있어도 잘 보이니까 나를 만나려고 발버둥치지 않아도 너를 눈으로 쳐다보고 관심 갖는다는 것을 알고 늘 그렇게 생각하도록 하라. 내가 너를 석 달, 넉 달, 일곱 달씩 손을 못 잡아 줘도 내가 너를 알고 있으니까. 한 번 이렇게 불렀으면 그렇게 생각하도록 하라.” 그랬더니 알겠다고 했습니다. 똑같습니다. 지난주에 “말씀의 복음을 귀히 여기라”는 것은 결국적으로 핵심적인 것은 “내 말 좀 귀히 여기라” 그런 이야기입니다. 내가 만일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살짝 했는데 내가 그것을 안 지켜봐요. 그것을 안 지킨다면 얼마나 큰 손해가 가겠습니까. 똑같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그 손해가 크게 가듯이, 여러분과 나 사이에 손해가 크게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의 권위를 지키라!”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오려고 하면 벌써 반대 현상을 일으켜 놓고 갑니다. 마음 밭을 흔들어 놓고 갑니다. 마음 밭에다 씨를 뿌리려고 하는데 자갈을 잔뜩 집어던져 놓고 가듯이 갑니다. 씨를 뿌려놓으면 또 쥐가 와서 까먹듯이 씨를 까먹는 것과 같은 현상을 벌여놓고 갑니다. 창세기에도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의 뜻을 가지고 왔을 때 사탄이가 처음에는 (천사가) 변질되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2015_0624 수요(명설교 - 사탄의 멸망).hwp3 마음이 변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합니다! 사탄이가 본래 천사가 아니었습니까. 천사도 마음이 변하면 일단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게 만듭니다. 우리 엠에스들도 마음이 변하면, 벌써 선생님에 대한 것을 거부반응을 일으키게 만들더라는 것입니다. 꼭 그럽니다. 마음이 변하면 선생님과의 관계에 거부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알아봅니다. 계시록 20장의 말씀을 창세기 3장의 말씀과 연결시켜 보겠습니다. “내가 본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와 용을 잡으니” 이 천사는 변질되지 않은 천사입니다.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옛이라 했으니 옛날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계시록에서 창세기이면 40세기 곧 4000년이라는 기간 이전의 이야기이니 옛날이야기이지요. “옛 뱀이요.” 하면 창세기에 있는 뱀을 말합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뱀이 하와를 꼬였다는 했는데, 그 뱀입니다. 바로 루시퍼를 말합니다. 루시퍼가 구약에서부터 활동하다가 신약에 이르기까지 계속 해서 활동했던 것인데 그러한 모든 일들을 신약에서는 모두 밝혀 놓았습니다. 신약에서는 영적인 세계를 밝히기 때문에 구약의 흘러간 4천년 동안의 일들을 밝힌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영(靈)에 대한 이야기조차 잘 안했는데 구약에서 영적인 세계를 알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신약에서는 내적(內的)인 세계를 내다보고 밝히는 수준의 삶을 살기 때문에, 바로 영적인 중심자요 지도자요 하나님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주인 예수님이 오셔서 영적인 모든 세계를 완전히 홀라당 까발려 버렸습니다. 영적인 세계를 내놓지 않으면 말씀이 풀려나올 수가 없고, 영적인 얘기가 나오지 않으면 성경의 답을 내놓을 수 없습니다. 사람도 근본을 알려면 속이야기를 들어봐야 합니다. 속이야기를 내어놓지 않을 때는 그 사람에 대해 알 수가 없습니다. 겉 이야기로는 모릅니다. 구약에서는 겉 이야기만 계속 했습니다. 겉 이야기만 했기 때문에 구약에서는 인류가 그 정도로 타락하고 뒤집어지고 망한 이유를 몰랐습니다. 속 이야기를 하니까 모두 다 알게 된 것입니다. 신약에 와서 속 이야기를 해 버렸습니다. “그 손에 쇠사슬을 갖고서 하늘에서 내려와 용을 잡으니 곧 옛뱀이요, 마귀요, 사탄이요...” 뱀이나 사탄이나 용이나 똑같은 이야기들입니다. 타락한 천사를 마귀요 사탄이요 뱀이요, 이 세 가지로 표현한 것입니다. 똑같은 표현들입니다. 일반적으로 나쁜 사람을 표현할 때도 보면 “아주 악질이다.” “괴물이다.” “능구렁이같은 놈이다.” “뱀같은 놈이다.”... 등등 여러 가지로 흉측한 표현을 다 붙이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타락한 천사를 두고서 그렇게 여러 가지로 붙인 것입니다. 여기 있는 용도, 사탄도 천사였습니다. 그 천사가 똑같은 형을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타락한 마귀가 오면 특별히 표가 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표가 안 납니다. 나쁜 사람이라 해서 표가 납니까? 인신매매 자들이 표가 납니까. 그들이 더 멋있게 하고 돌아다닙니다. 영동에 있는 제비족들도 더 멋만 있더라는 것입니다. 옷도 비싸고 좋은 것으로 입고 돌아다니고 나쁘게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쁜 짓만 한다는 것입니다. 골라 가면서. 그것을 “마귀다. 사탄이다. 귀신이다.”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신약이 아닌 이 시대에서 홀라당, 마치 가을 하늘 아래 넝쿨을 다 까붙인 호박만 지붕위에 보이듯이 몽땅 지금은 호박들만 달랑 다 까붙여놓는 것입니다. 지금은 호박들만 달랑 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호박 속까지 배를 갈라서 속을 보이게 만들은 세상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엔 사탄들이 못 디뎌놓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사탄에 대해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사탄들이 올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사탄을 그냥 철수시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사탄을 구분하고, 사탄이 용납할 수 있는 여건을 마음으로나 행동으로 주지 않을 때 사탄이 철수되고 거기서 근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만 무저갱에 잠기움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 시대 때 예수님의 속을 알고 깨닫고 주님을 따른 그 사람들만 마귀와 사탄들을 분별해서 쪼개놓았지, 다른 사람들은 사탄이 무엇인지, 귀신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옛 뱀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러분들이 사탄에 대한 공부를 할 때 나왔을 것입니다. 이것은 6000년 전 얘기입니다. 6000년 얘기를 이제 와서 하니 얼마나 모르고 산 것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이 뱀 이야기입니다.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뱀 이야기가 여기서 나왔지, 딴 데는 안 나왔습니다. 뒤에도 특별히 안 나왔습니다. 여기에 나왔습니다. 여기에 나와서 신약의 마태복음에 “너희는 뱀같이 지혜로워라 (마 10:16)” 했는데 사실 뱀이 지혜롭습니까? 뱀을 하루 종일 쫓아다녀 보십시오. 매일 잡히기나 하고 멍청하기만 하지 지혜로운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뱀이 지혜롭다고 하고 이 책 저 책에서 뱀에 대한 지식을 꿰어다가 잘도 붙여댑니다. 성경에 뱀이 지혜롭다고 하니까 지혜에 관한 좋은 문구를 다 동원시켜서 뱀에게 갖다 붙입니다. 목사님들마다 “뱀을 그냥 볼 것이 아니다. 굉장히 지혜롭다. 내가 보니까 뱀이 사람을 보면 살살 피해가더라. 얼마나 지혜로운지 모른다. 멍청하면 대들지 도망가겠냐?” 하면서 각종각색의 지식들을 동원시켜 성경의 뱀이 지혜롭다는 이야기에 살을 붙이고 뼈를 붙여 뱀에 대한 권위를 세워 줍니다. 그것이 아니고 순리적으로 풀어야 합니다. 2015_0624 수요(명설교 - 사탄의 멸망).hwp4 천사는 지혜롭다고 해야지, 미련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천사는 지혜롭습니다. 타락한 천사가 왜 지혜롭냐? 지혜가 없으면 존재를 못합니다. 남을 꼬이는데 지혜롭고 각종각색의 지혜가 있으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실 때 너무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타락한 놈들도 저렇게 하는데 너희들도 좀 그런 지혜를 가지고 있으라. 그 지혜에다 하늘의 지혜를 더하면 사탄들 쯤이냐? 깔고 뭉갤 수 있지 않겠냐?” 여러분들은 심정(心情)이라는 단어를 배웠을 것입니다. 나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은 <심정>이라는 단어를 배우면 가서 설교도 잘하고 말씀도 잘 전합니다. 심정이 무엇인가? 사람에게 자기 애인이 있는데 그 애인이 자기 심정을 몰라주면 너무 답답합니다. 너무 몰라주면 입을 딱 벌려서 마이크를 불어버리지요. “저 미련한 년, 미련한 놈, 저렇게 미련하다니, 아휴, 답답해라. 자기를 위한 일인데 이렇게 심정을 몰라 주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볼 때에 마귀들만큼도 지혜가 없고, 타락한 천사들만큼도 지혜가 없으니 너무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쉬운 예를 들면, 나를 만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지혜가 없이 와 모여들면 내가 “따라오지 마! 지혜 없는 사람들 같으니.” 하고 한 번에 선언해 버립니다. 선생님이 방에 있다가 머리가 아파서 바람 쐬러 탁 뛰쳐나올 때가 있는데 그때 확 달려드는 것은 지혜 없는 짓들입니다. 멀리 서 있다가 아쉬움을 줘야 됩니다. 멀리서 손 흔들면서 “선생님, 수고 하셨습니다.” 하고 있으면 나 혼자 가기도 심심하니까 가까이 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막 달려들면 고개를 쌀쌀 흔들면서 “안 따라오는 게 뜻이다.” 그럽니다. 원래 따라오는 게 뜻이었지만 거기서 내가 따라오지 말라는 뜻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뜻을 내가 만들 때가 있습니다. 왜? 본인의 무지로 인한 잘못이기 때문에 내가 뜻을 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본인이 지혜로우면 탕감을 안 주지만, 무지하면 탕감을 꼭 받아야 됩니다. 그래야 다음 코스를 뛸 수 있습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그렇게 안 하고 지혜 있게 행합니다. 그 지혜를 배우려면 많이 해야 됩니다. 내가 보면 사람들이 지혜가 뭔지를 모릅니다. 나를 만나는 데에도 지혜가 있어야 하고, 면담하는 데에도 지혜가 있어야 하고, 결혼하는 데에도 지혜가 있어야 하고, 나를 삶는 데에도 지혜가 있어야 되고, 지혜가 여러 수만 가지인데 한 가지를 모르니.. 한 가지만 하면 됩니다. 그 한가지를 몰라서 무지한 세계로 넘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지혜가 없어서 이 백성들이 주(主)까지도 죽이는구나.” 하고 고린도 전서 2장 8절에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지혜를 받아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돈도 부귀도 영화도 좋지만 지혜를 달라고 해야 됩니다. 지혜가 뭐냐? 지혜는 위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월명동 작업을 하는 가운데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혜가 딴 것 있습니까? 하나님께 묻는 것이 지혜입니다! 묻는 게 지혜입니다. 자기 머리를 사용하면 지혜가 무지가 됩니다. 그런데 자기 머리를 사용해야 될 때 하나님께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그러면 또 혼납니다. “그걸 가지고 나한테 물어보냐? 바늘구멍에 실을 끼우는 것까지 나한테 해 달란 말이냐? 동아줄 가지고서 나무를 둘러매는 것이라면 몰라도.” 하고 혼내킵니다. 어떤 것은 또 안 물어 본다고 혼납니다. 지혜가 있으면 안 그럽니다. 그래서 사람이 항상 생각을 해야 됩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지혜인데, 그 뜻을 어떻게 아느냐? 그래서 뜻을 알기 위해서는 자주 물어보기도 해야 되는데, 묻다가 잘못 물으면 혼나고... 그러니까 눈치만 보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 엠에스들이 눈치는 빠릅니다. 눈치는 빠른데 눈치를 잘 채기가 어렵습니다. 눈치를 채야 깨달은 것인데. 하도 답답하니까 내가 가끔 애들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쟤는 이렇게 이렇게 하면 만나 줄 텐데 저렇게 하니까 한 달 가도 안 만나 주고 두 달 가도 안 만나 준다. 저렇게 멍청하면 못 만난다.” 사실 그 사람은 그렇게 멍청한 사람이 아닙니다. 생각할 수 있는 머리가 있기는 있는데 그걸 못 써먹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자꾸 듣고 배우고 깨달으라는 것이지요. ‘옛 뱀’이란 바로 타락한 천사를 말한 것입니다. 구약에 있는 것은 문제요, 신약은 답입니다. 내가 대한민국의 내 놔라 하는 종교의 거성에 비하면 어린아이 수준밖에 안되던 자입니다. 이 어린 주일학생도 찾아가지고 나와서 외치고 있는데 대한민국의 종교의 거성(巨星)들이 이런 것을 못 찾았습니다. 그들이 신앙의 거성, 영계의 거성이라는 것은 본인들이 만들어 붙인 것이지요. 본인들이 진짜 영계의 거성이면 ‘영계의 거성’ 이라는 딱지를 붙이기도 싫어합니다. 예수님 때도 예수님이 메시아인데, 자기에게 ‘메시아’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냥 순수하게 “형제여, 자매여” 하면서 “나를 너무 드러내지 말라. 나를 드러내 놓고 너희들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그 바람은 너희들한테 다 오는 것인데”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아닌 사람들이 자기를 막 구세주화하고, 또 아닌 사람들이 자기를 사도화 하고, 아닌 사람들이 자기가 그런 것처럼 합니다. 항상 보면 실제 주인은 가만있습니다. 주인은 가만있는데 주인이 아닌 사람들이 더 야단을 치지요. 이단(異端)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들은 가만히 있습니다.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이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2015_0624 수요(명설교 - 사탄의 멸망).hwp5 “성경은 성경을 해석한다” 이것이 선생님이 하늘로부터 받은 잠언의 말씀입니다. 이게 성경을 해석하는 원리입니다. “성경은 성경을 해석한다. 수학은 수학을 해석한다. 남자는 남자에 대한 것을 해석할 수 있고 여자는 여자에 대한 것을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 문제도 성경, 답도 성경인데 왜 답을 찾으러 돌아다니냐? 성경만 읽으면 답이 나오는데” 알겠습니까? 성경에서 뱀을 뭘로 비 했나 찾아보면 유다서 1장 6절에 보면,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에 심판 때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다” ‘천사’를 따로 보고 ‘뱀’을 따로 보면 안 됩니다. 그놈이 그놈이고 다 통하는 놈들입니다. “천사가 쫓겨났다” “뱀이 심판을 받았다” “천사가 심판받았다”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창 3:14, 벧후 2:4, 유 1:6) 이런 것을 볼 때 옛 뱀이 천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용이라고도 했습니다. 큰 사람을 용이라고도 표현하지 않습니까. 천사장이 큰 자이니 용이라고 표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들이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주고 가면 말씀을 부인(否認)케 만들든지, 하나님의 뜻을 세워놓고 가면 그것들이 와서 마음을 흔들어 놓고 갑니다. 영적인 세계. 그래서 영적인 사람이 그것을 잡아내고 그것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육적인 사람은 처리를 못합니다. 영적인 세계의 일이므로. 그래서 구약에서는 이것을 처리하지 못했고, 신약에서 어느 정도 처리를 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그 나름대로 2천년 동안 사탄을 묶어놓았습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 오직 주님의 말씀을 믿는, 오직 그 말을 믿고 따른 사람만 사탄이 못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주관이 얼마나 무서운지 압니까. 자기 주관을 딱 세우는데 사탄이 들어올 수 있습니까. 자기 주관을 딱 세워놓으면 사탄이 범접(犯接)을 못합니다. 주관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사탄과 마귀와 귀신에 대한 주관이 서게끔 하나님께서 주님을 통해 말씀하셨기 때문에 “아, 이것들이 나쁜 놈들이구나” 하고 인식을 하니 사탄이 뛰어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항상 흑암세계, 어둠세계의 사탄들이 인사탄들을 통해 복음지역의 주관을 바꿔놓는 일들을 했습니다. 그렇게 주관이 바뀌면 다시 주관을 바꾸기가 참 힘듭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2장 27절 말씀과 같이 “그의 말씀은 철장 같아서 가서 질그릇을 때려 부수듯이 때려 부수어 버립니다.” 했습니다. 그래서 주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말씀에 부딪히면 다 깨져 버립니다. 처음에는 앙앙거리지만 말씀이 쑥 들어가면 벌써 주관이 깨져버립니다. 그 깨지는 것이 마치 철장으로 질그릇을 때려 부수는 위력과 같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위대한 말씀이, 이 시대의 말씀이 떨어지는데 사탄이 그 말씀을 흐려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본인들이 말씀의 주관을 세우지 못할 때는 힘이 들고 어렵습니다. 사탄과 마귀는 구약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하나님의 말씀만 떨어지면 이 사탄들이 말씀이 흐려지게 만들고 자기 주관으로 바꾸는 그런 일들이 있어서 4천년 동안 그렇게 애를 먹었는데,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께서 영적인 세계를 뒤집어 놓고 사탄의 세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주관을 찾고 자기주관을 찾으라고 말씀한 대로 따라왔을 때 2천년 동안 사탄들이 흑암에 갇힌 격이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금 천년 동안 이 말씀을 듣고 행한다면 사탄들이 천년 동안 갇히는 것입니다. 본인들이 절대로 사탄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안 믿으면 사탄이 바로 들어와 버립니다. 말씀으로 인해서 사탄이 온다고 했잖아요. 죄도 계명을 통해서 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계명을 지키고 안 지킴에 따라서 죄가 온다는 것입니다. 안 지키면 죄, 지키면 순종했으므로 의(義)가 됩니다. 그래서 말씀의 권위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했을 때 안 지키면 그것이 그렇게 큰 것입니다. 그게 작은 것이 아닙니다. 무진장 크다는 것입니다. 탕감기간, 형벌기간이 있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왜 그렇게 귀한 것을 딱 붙잡고 이야기하지 그렇게 안하고 슬쩍 이야기 하십니까?” “그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은밀히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은밀히 말씀하신다.” 나는 가서 막 붙잡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애들은 서로 얘기할 때 못 박듯이 얘기하지만 어른들은 서로 얘기할 때 차분하게 물 흐르듯이 얘기합니다. 꼬마들이 이야기할 때는 “너, 이렇게 하면 안 돼! 나 학교 갔다 올 동안 건드리지 마.” 그러지만 어른들은 “그거 건드리면 안 돼. 나 장에 갔다 올게.” 그럽니다. 그렇게 슬쩍 얘기한 것을 건드리면 꽝 터집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같이 움직입니다. 선생님도 그렇습니다. 그래도 이런 간판을 가지고 와서 다 아는데 뭐하러 소리를 지릅니까? 그럴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별 4개짜리가 얘기할 때 뭐하러 소리를 지르며 얘기하겠습니까? 그러나 소령이 얘기할 때는 안 그렇습니다. 또 대위가 얘기할 때는 안 그렇습니다. 소위가 얘기할 때는 안 그렇다는 것입니다. 점점 더 소리를 지릅니다. 병장이 이야기할 때는 완전히 반은 패 죽인다고 하면서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나 별자리들은 안 그렇습니다. 나타나지도 않고 글로 보내줍니다. “사단장 방침, 제때 제시간을 지키도록 할 것” 그래놓고 안 지키면 사단장 방침을 어겼다고 영창에 보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인데 뭐하러 그렇게 소리를 지릅니까? “음, 알았어.” 하고 말지요. 하나님께서 나한테는 “음” 소리도 안 합니다. 그냥 쳐다보면 마음으로 옵니다. 그게 제일 겁납니다. 그래서 최대의 도(道)의 경지에서 2015_0624 수요(명설교 - 사탄의 멸망).hwp6 서있지 않으면 눈치를 못 챕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아무리 못해도 항상 그 기본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양떼를 거느릴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난번에 앞산을 어떻게 개발해야 될 줄 몰라서 기도하러 전망대가 있는 뒷산에 올라갔습니다. 올라가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드렸으면 좋겠습니까? 내 것이 아닌데” 했더니 “가운데를 끊어서 하라”고 하셔서 끊었습니다. 환경만 너무 웅장해도 보기 싫거든요. 그래서 가운데를 끊어서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했습니다. “눈요기가 되지 않고 사람이 다니도록 하자” 해서 가운데를 끊은 것입니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소리를 지르면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은은한 가운데 깨달음이 옵니다. 천년동안 가둔다는 것은 뭔고 하니, 본인들이 가만있으면 사탄을 가둘 리가 있겠습니까. 본인들이 조건을 세워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탄을 가둘 수 있을 정도로 본인들이 시대의 말씀을 믿고, 하늘의 보낸 자를 따를 때에 그런 조건하에서 사탄을 본인이 가두는 것입니다. 본인이 갖다 가두는 것입니다. 그런 조건을 갖고. 그냥은 안 가둬 집니다. 그만큼 조건을 제출하고 본인이 가두는 것입니다. 사탄과 마귀를 가둬놓으면 좀 편하지요. 여러분들은 지금 편하지 않습니까? 그전에는 괴로웠지요? 사탄과 마귀들이 생활고(生活苦)를 괴롭게 한 것입니다. 옛날에도 밥 먹고 지금도 밥 먹고 똑같은데 옛날에는 편하지 않았고 지금은 편하거든요. 왜냐하면 지금은 사탄이 여러분들에게 갇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미 사탄들이 여러분에게 갇혔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덜 가둔 사람에게는 사탄이 가끔 휴가 나왔을 때 건드리고 들어갑니다. 가끔 비집고 나왔다 들어갑니다. 그래서 시원찮게 가두면 안 됩니다! 돼지 막에 돼지를 시원찮게 가둬놨더니만 뛰쳐나와서 마당에 있는 것을 다 헤치고 돌아 다녔다면 얼마나 화가 납니까? 두 번째는 ‘안 되겠다’ 하고서 본격적으로 산에서 칡을 구해다가 칡으로 묶어 놨는데 그래도 칡을 다 끊어 버렸습니다. 그 다음에는 철사를 갖다가 꽉 묶어 놓으면 지가 어떻게 나옵니까? 시원찮게 가둬놓으면 또 나온다는 것입니다. 돼지 막에서 돼지가 뛰쳐나오듯이 사탄이 또 나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단단히 가둬야 합니다. 돼지는 철사를 갖다가 꼭꼭 잡아매고 참나무 말뚝을 박아놓으면 못나오지만, 그 사탄은 절대 말씀을 믿고, 시대 말씀을 믿고, 시대의 보낸 자를 목숨 걸고 철저히 믿어야 됩니다. 그래야 사탄이 갇히는 것입니다. “사탄의 계교! 너희는 계교를 모르는구나. 내 말 좀 들어봐라” 하고 요한 계시록에서 말씀하지 않습니까? “사탄의 그 깊은 것을 모르는구나.” 이 사탄들이 얼마나 웃기는지 압니까? 속이는 것도 수백 가지 종류로 속이고, 사기 치는 것도 수백 가지 종류로 사기를 치고... 이런 것들이 사탄들의 계교입니다. 사탄과 마귀들은 타락한 천사들인데, 이 시대의 말씀을 잘 믿고 따르면 사탄은 어둠이기 때문에 빛 가운데에서 자동적으로 갈려나갑니다. 빛과 어둠은 자동적으로 갈려나갑니다. 뒤를 쳐다 볼 것도 없습니다. 절대 믿고 따라가면 사탄과 흑암이 자동적으로 갈림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은 빛이기 때문에! 진리는 빛이기 때문에! 그 원인자(原因者)는 태양과 같은 빛이기 때문에 믿고 따라가면 자동적으로 그냥 갈려 나갑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바로 빛 가운데 사는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빛 가운데 살게 되고, 사탄의 세계는 자동적으로 천년 동안 갇히는데 여러분의 당세뿐만 아니라 계속 영원토록입니다. 그러니까 천년 동안의 기준을 본인이 못 세우면 안 됩니다. 본인이 기준을 세우면, (사탄이) 그 갇힌 데에서 나와도 못 건드립니다. 그냥은 못 건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조건을 통해서만 건드리는 것입니다. 그냥 사탄이 건드리겠습니까. 조건을 통해서 건드린다는 것입니다. 혼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옆에 함께 계시기 때문에 그냥 건드리면 그냥 두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건드리지를 못학 되어 있습니다. 그냥 건드리면 모가지를 비틀어 놓습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이 옆에 계심을 알아라 하잖아요. 그래서 제일 무서운 것이 사탄을 무서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무서워하고 그 조건을 항상 세워줘야 됩니다. 그러면 마음 놓고 다리를 뻗고 잘 수 있습니다. 내가 일어나면 사탄들이 꼼짝 못하지만, 일반 엠에스들에게는 대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관이 확실하고 강한 엠에스들은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하고 나아갑니다. “니가 언제 이겼냐?” “이긴 자와 하나 되었으니 이긴 게 아니냐?” 하고 나아갑니다. 섭리사에도 바둑 두듯이 도급(道級)이 있어야 합니다! 그냥 멍청히 있으면 사탄들이 밀어 붙이지요. 자기가 사탄 편에 섰나, 안 섰나는 보면 압니다. 말씀을 절대 믿고 시대를 믿고 나를 믿으면, 그러면 사탄편에서는 일단 벗어난 것입니다. 나머지는 자기와의 작은 심리적인 싸움이 있지요. 사탄이 없을지라도. 이와 같이 천년 동안의 기간을 줘서, 이 기간에 그 원수 사탄, 징글징글한 그 뱀을 가뒀습니다. 세상에서 뱀이 아니면 사탄을 비유할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 징글징글하고 악독한 것, 아주 지독한 것을 뱀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천사가 그렇게 망하게 되었습니다. 천사가 그렇게 될 수 있나? 그렇게 될 수 있지요. 선생님 앞에서 말 안들은 사람들은 완전히 원수가 되어서 나갔습니다. 이와 같이 똑같은 사람인데 말썽부리면 섭리의 원수가 되지 않습니까. 그들이 나가서 돌아다니며 계속 자기 백성들을 모집해서 우리를 대적했는데, 이제 그런 것들도 한 시대가 가버렸습니다. 우리는 이제 공적(功績) 세우는 데에 전력을 다합니다. 이제는 그런 것들이 있어도 문제없습니다. 원청 군사가 많고 대국이 되었기 때문에 충분히 때려 부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탄, 흑암, 마귀들을 일천년 동안 잡아 가두니 얼마나 속이 시원한 일입니까? 여러분이 일평생 가운데 여러분의 믿음으로 인해서 사탄이 철수되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이 편안한 2015_0624 수요(명설교 - 사탄의 멸망).hwp7 것입니다. “절대 믿었냐?” “믿었습니다.” 나를 믿겠다고 하면 사탄들이 그때부터 자동적으로 철수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이성(異性)의 범죄를 하고 왔어도 선생님이 용서해 주었는데, 그런데도 자꾸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사탄이 와서 그러는 것입니다. 사탄이 “너는 내 것이었잖느냐?”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용서를 하면 그것으로 그냥 끝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흑암이 하던 짓들과 어둠의 속세계를 전부 밝혀 버렸고, 또 말씀도 상징적인 말씀을 실질적인 말씀으로 밝혔으며, 그러므로 우리는 상징적인 믿음이 들어갈 수가 없고, 어떠한 시적부적한 믿음이 안 들어갑니다. 확실히 알았으니 확실한 믿음이 들어가고 확실한 실제가 들어갑니다. 월명동 개발이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야, 이제 운동장이 다 다듬어졌구나. 이제 됐구나’ 했지만 우리들이 됐다는 것이지 하나님이 됐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 하는 작업이 마지막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잔디밭도 이제 땅을 고르게 하고서 잔디를 심었기에 우리 평생 동안에는 특별한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앞산의 조경도 이번에 작업하면 그것으로 끝날 것입니다. 조경이 끝나면 마당도 끝나고 잔디밭도 끝납니다. 모든 것이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앞산이 허물어지니까 아주 못 움직이게 조경을 만들어서 거창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시원찮게 해 놓으면 계속 무너집니다. 보다 이상적인 세계까지 가는 데는 오랫동안 작업을 하고 또 하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이 월명동에 올 때마다 달라졌다고 했을 것입니다. 완성이 아직 안됐기 때문에 달라지는 것입니다. 완성되면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완성해 버리면 달라질 리가 있겠습니까? 미완성이기 때문에 계속 손을 대기 때문에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신앙도 하루 이틀 손을 댄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고 오랫동안 손을 대야 됩니다. 선생님이 직접 손을 대서 대담하게 불도저(bulldozer)를 가져다 일을 막 했다 하지만 수백 명 수천 명이 손을 대서 이만치 달라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아주 100% 완공된 곳은 없습니다. 전부 미완공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완공되었다는 소리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계속 가면서 보다 더 좋게, 보다 더 이상적으로 자기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작품도 더 좋게 만들고 싶다는 것입니다. 왜? 두고두고 보기 때문에. 또 미완성으로 만들어 놓고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도 보다 더 이상적으로 깊은 단계까지 더 계속 개발해야 됩니다. 미완성에서 만족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다가 딱 끝나는 날이 있습니다. 늦게 만들수록 손해 갑니다. 이곳을 늦게 개발할수록 우리가 손해 간다는 말입니다. 결말을 못보고 목적을 못보고 과정만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빨리 만들수록 우리가 보고 즐기기가 더 좋습니다. 여러분의 신앙도 누구든지 빨리 개발하고 빨리 만들수록 좋은 것입니다. 늦게 만들수록 본인에게 손해 가는 것입니다. 선생님 같은 사람은 그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산에서 내려오지도 않고 밥도 먹지도 않고 화장실도 안 가고 계속 내 작품을 만들어 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완성해 가지고 온 것입니다. 지금은 작은 것만 깔짝깔짝 손을 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도 자꾸 손을 대야 됩니다. 자기 자신을 손을 대야 됩니다. 더 이상적으로, 더 멋있게 하기 위해서. 여기도 자꾸 더 멋있게 손을 대니까 좋은 것입니다. 자꾸 손을 댈수록 좋아지니까 여러분이 좋아하지 않습니까. 손을 안 대어 보십시오. 지금은 만족하지만 3년 있다 보거나 5년 있다가 보면 만족치 않을 것입니다. ‘더 만들 걸 그랬다. 왜 저렇게 만들다 말았지? 더 할 걸 그랬다’ 할 것입니다. 자꾸 개발할수록 멋있게 달라지니까 좋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도 자꾸 손을 대야 됩니다. 우리가 천년 동안에 육적인 작품뿐만 아니라 영적인 작품까지 손을 대는 것입니다. 손을 대면 하나님같이 됨이라!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처럼 완전하도록 하라!” 했습니다. (마 5:48) 그 단계까지 올라가면 그대로 천국의 자민권이 돼서 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답답해서 못삽니다. 내 가까이 사는 애들이 답답하면 못 있습니다. 답답하면 만나지를 않습니다. 그것을 고칠 때까지 안 만납니다. 뭐하러 만납니까? 내가 흰머리 나게. 답답하면 아예 안 만나 버립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도 답답한 사람하고는 안 삽니다. 천국에서 답답하면 어떻게 삽니까. 세상에서도 답답하면 벌써 이혼(離婚)하는데 살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도 우리가 답답하면 못삽니다. 흑암과 사탄을 먼저 제거시켜야 우선 급한 대로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 다음에 가서는 지혜롭게 살아야 하나님께서 안 답답해합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웬만하면 지혜를 다 줍니다. 답답해서라도 지혜를 줍니다. 또 어느 정도 사는 꼴을 봐야 하나님도 안 답답하니까 할 수 없이 복(福)을 줍니다. 데리고 살려고 하니까 복을 안 줄 수가 없습니다. 복을 주니까 또 어느 정도 대상이 됩니다. 이렇게 해서 이지가지를 선(善)하게 살게도 만들어 주고 자꾸 해 줍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 줘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살려고 발버둥을 치고 몸부림을 쳐야 됩니다. 이 월명동에도 보면 나무 하나라도 갖다 심어야 꽃이 피지 안 심어 놓으면 황토밭에 꽃이 피겠습니까? 꽃이 안 핍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꽃이 필 리가 만무합니다. 생명의 꽃이. 지혜에도 꽃이 피고, 말씀에도 꽃이 피고, 전도하는 데도 꽃이 피고, 모든 것이 다 꽃이 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2015_0624 수요(명설교 - 사탄의 멸망).hwp8 오늘 여러분들이 흑암을 쫓아내고 어두움을 쫓아내고, 본래의 하나님이 창조한 목적에 의해서 다시 말씀을 순종하고 왔으니까 이제 다시 뜻이 성사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큰 것입니다. 사람들이 머리가 돌아가려면 지혜를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께 매달려야 됩니다. 하나님께 매달리고 하나님께 잘해 달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열심히 조건을 세울 테니 하나님! 우리를 잘 좀 해 주세요.” 그러면서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흑암의 세계, 어둠의 세계가 큰 지장을 일으키고 사탄들이 창조목적을 깨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깨지게 하지를 않습니다. 계속 축복해서 내 보내니까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동산이 뱀의 소굴이고 잡초의 소굴이었는데 완전히 다 홀라당 벗겨놨습니다. 그래서 어딜 가도 잡초에 걸리지 않게 만들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돌아다녀도 안 걸리게 만들어 놨습니다. 뾰족구두를 신고 돌아다니게끔 만들어 놨습니다. 내 성질이 그렇다니까요. 완전히 뒤집어 놓습니다. 가다가 엉겅퀴가 있고 조금만 걸려도 톱 갖고 와서 다 베어 버리고 기어코 뿌리를 뽑아놓고 갑니다. 그렇게 계속 하다 보니까 길이 되고, 역시 넓은 곳이 되어 버리고 꽃동산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천오백만원어치의 꽃나무를 잔뜩 심었습니다. 불같이 개발하는 것입니다. 나무 심는 것도 식목일 한 달 전부터 심기 시작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있는 말씀을 계속 보면 사탄과 흑암의 세계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께서 부활된 심령으로 취급해 줬습니다. “사망이 그들을 다스릴 권세가 없어졌더라.” 했습니다. 주를 믿고 따르니까 없어졌지요. “오직 그리스도가 제사장이 돼서 그들을 천년 동안 다스리게 되더라. 왕노릇 하면서. 천년이 차매 사탄도 옥에서 다시 놓였다.” (계 20:4, 계 20:7) 흑암의 세계들이 발악들을 하는 것을 말했습니다. “천년 후에 흑암들이 완전히 발악을 하더라. 영창에 갔다 와서 발악을 하듯이.” 그래서 “이들은 결국 안 되게 생겼다. 유황불에 던져서 완전히 씨를 말려야 하겠다.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과 이런 사람들 전부 한꺼번에 모아서. 이미 믿다가 타락된 사람들, 거짓말을 하는 이런 사람들이나, 또 짐승같이 사는 사람들. 육적인 사람들이나 하나님을 중심치 못하는 이런 자들은 모두 사탄과 같이 한방살이를 시킬 수밖에 없다. 감방살이를 영원히 시켜야 한다.”고 말씀이 나왔습니다. 이래서 그들의 심판을 영원히 매장시키는 모습으로 20장에는 나왔습니다. 사탄의 형벌과 마귀의 형벌을 20장에서는 근본으로 다뤘습니다. “영원토록 이들은 불 못에 던져 완전히 없애야 된다. 처리를 시켜야 된다.” 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심판이었습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핵심적인 것은 뭔고 하니, 우리가 복음을 믿음으로 그리고 시대를 믿음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사탄이 갇혔으니 <공적>을 세워야 되지 않겠습니까. 맨날 사탄 때문에 일을 못하고 마귀 때문에 일을 못하고 흑암 때문에 일을 못했는데, 그래서 부지런히 흑암의 세계를 없앴으니까, 조건을 세워 없앴습니다. 이제는 공적을 세우자! 섭리의 공적을 세우고, 일을 하면서 열심히 해야 되지 않겠냐. 이제 우리는 모든 하늘의 상황과 비밀의 세계를 모두 아는 바 되었고 주인들이 되었습니다. 오늘 주제 말씀은, 사탄의 멸망! 사탄의 멸망은 그 시대가 와야만 되지, 그 시대가 오지 않고 본인 개인으로는 할 수가 없습니다. 한 시대가 와야 사탄을 멸망시키지 (그렇지 않고는) 멸망시킬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천년 동안은 멸망을 시켜야 됩니다. 천년 동안 이 놈들이 가까이 못 오게 만들어야 됩니다. 흑암의 세계, 어둠의 세계를.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도 조금 본인이 실족을 했을 때, 사탄이 싹 들어와서 그냥 완전히 뒤집어 놓고 갑니다. 그때부터는 다시 일어날 힘이 없습니다.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흑암을 이겨야 하고 사탄을 이겨야 합니다. 우리들의 싸울 것은 군대도 아니다! 이웃도 아니다. 혈육도 아니다! 오직 사탄과의 싸움이다!! 사탄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엡 6:12) 주님께서 “내가 사탄을 이겼다. 세상을 이겼다. 흑암을 이겼다.” 그랬습니다. 바울도 늘 일할 때마다 사탄이 막았다고 했습니다. 늘 막아서 못 갔다 했습니다. “이놈의 사탄들이 너와 나 사이를 막아서 서로 못 만나게 됐다. 이 흑암의 세계가 원수다.” 그랬습니다. 여러분이 사탄만큼은 다시금 내놓지 말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열쇠를 갖고 있습니다. 의심하면 사탄이 들어옵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사탄을 딱 묶어놓아야 됩니다. 이놈의 사탄들이 우리에게 크나큰 지장을 주고, 엄청난 섭리적인 피해를 주게 만들었습니다. 흑암 세계들이. 사탄이 의심하게도 만들고, 사탄이 자포자기하게도 만들고, 사탄들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담을 만들게 죄를 짓게 만들고, 사탄들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깨뜨리게 만들고.... 계속 이런 일들을 하고 왔습니다. 흑암 세계들이. 그런 사탄의 계교를 이기고 이제는 철저히 가둬놨으니, 또 이놈들이 나오지 못하게 해야 됩니다. 본래 우리의 원수, 섭리의 원수, 우리 역사의 원수, 하나님의 원수 된 사탄들은 구약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룰 때에 깨부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사탄의 계교를 깨부수고, 사탄의 행동을 깨부수고 속 시원하게 통쾌하게 하나님의 뜻을 세우고 가니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될 수밖에 없고 우리의 근원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해 주니까 조건대가로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2015_0624 수요(명설교 - 사탄의 멸망).hwp9 그 만큼 하나님께 조건을 세워 주고 그 만큼 하나님의 사람이 돼야 그 만큼 우리가 하나님께 받을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창세기의 근원을 다시 일으키는 것입니다! 신약 때 못 일으킨 것을 지금 일으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창세기에서 지랄했던 그놈의 사탄들, 용들을 다 없애버리고 마귀들을 없애고, 시대의 역사의 말씀을 들었으니 또 깨부수려고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깨부수려고 돌아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세 때는 아마 꼼짝도 못할 것입니다. 완전히 섬멸하고 가니까! 우리는 항상 사탄의 깊은 회(會)를 알고, 사탄의 깊은 것을 우리는 깨닫고 시대를 판단하고 가야 됩니다. 우리는 다시금 오늘도 하나님의 창조목적인 뜻을 사탄을 쫓아냈으니까 이루고 나가고, 또 이루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됐지요? 말씀 마치겠습니다. < 기 도 > 거룩하시고 은혜로우신 우리 아버지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흑암의 세계를 제거해 주셨습니다. 그놈의 찰거머리들, 모가지를 칭칭 감고 허벅다리를 칭칭 감던 무서운 뱀들을 다 우리에게서 제거시켜 주셨으니 은혜를 감사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따랐던 대가(對價)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우리의 믿음을 더욱 확실케 해 주시옵시고 영원케 해 주시옵소서. 오늘 말씀의 중심적인 것은 하나님이 역사를 창조하신 목적을 이루려고 할 때마다 사탄들이 큰 방해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놈의 사탄, 마귀들! 이 시대에도 또 이런 흑암의 세계가 있을 거라고 과감히 말씀하며 우리는 시대 앞에 이렇게 뜻을 이루고 하나님 창조하신 뜻을 이루고 가는 도중에 있습니다.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은총을 주시옵소서. 날마다 이곳을 개발하듯이 심령을 계발하라고 했습니다. 더욱 이상적인 것을 위해서는 더 땀을 흘리고 더 수고하고 한삽 뜨기를 더 하라고 했습니다. 의와 사랑과 진리가 함께하고 영원하며, 말씀을 듣고 행하는 모든 자들이 그같이 살기를 원합니다. 너희들이 사탄과 마귀를 도대체 쫓아낼 수 없고 괴로움을 해결할 수가 없나니 그러므로 내 말을 믿고 나 보내신 자를 믿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내가 사탄과 흑암을 물리치고 네 심령의 낙, 곧 마음의 천국을 이루면서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말씀이 아니고서는 사탄이 나갈 수도 없고 하나님이 나가게끔 조건을 줄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시대에 하나님이 영원한 말씀을 주심으로 인해서 이 말씀으로서 우리가 사탄을 멸망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들이 천년 동안 갇혀서 역시 우리에게 도달치 못하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가 영원한 말씀을 받고 진리를 받았으니 빛과 어둠이 갈려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의와 사랑과 진리가 충만하고 영원하게 함께 해 주시옵소서. 이 한주일 동안에도 우리가 사탄과 흑암의 세계를 다스리며 선하게, 부지런히, 의롭게, 착실하게, 하나님 앞에 대상이 되어서 살 수 있는 은혜를 더해 주시옵소서.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이 되어서 흑암과 어둠의 밥이 되지 않게 해 주시고, 오직 신령한 하나님의 자녀권과 그의 나라와 그 본연의 백성이 되어 살게 축복해 주시고, 이곳을 항상 뜻있게 의미 있게 오고갈 수 있는 이들의 발걸음이 되도록 은혜를 더해 주시고, 은총을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