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15.06.29 (월)
월 새벽말씀 dac121bd
- 선포일
- 2015.06.29 (월)
첨부 파일
- PDF
20150629 월 새벽말씀_dac121bd.pdf
197.1 KB
2015년 6월 29일 월요일 새벽말씀(편집본)
다시금 오늘의 새벽이 돌아왔습니다. 여러분들, 잘 있었어요?
새벽! 새벽이라는 것을 얼마나 중요한 시간으로 요즘에 보내는지, 여러분들
도 그렇게 중요하게, 귀하게 새벽을 보내니까 귀하고 중요한 하늘의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쏟아져 오는 것입니다.
항상 조건 반사입니다. 조건을 세워야 거기에 해당되는 것이 항상 온다는
것입니다. 거저가 없습니다. 온 세계의 각 나라가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새벽을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는 것은 왜 그런고 하니, 우리가 살았
으니까 이제 할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잠자는 사람에게는 할 일이 많이 있어
도 모르고, 잠을 자는 사람들은 좋은 데서 잠을 자는지 나쁜 데서 잠을 자는
지 모르지 않습니까.
사망권의 삶은 무심하고 한심하고 때를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잠
을 깨고 일어나면 그때서야 알지요.
“하나님이 새벽에 역사하니 우리도 새벽에 역사하며 일어나 빛을 발하자.”
내가 늘 이야기합니다. 너희들 집에서 새벽예배 나올 때 앉았다가 일어났는
데 또 졸린다. 그때 어떻게 하라고 했지요? 방법이? 딱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확 일어나 버려야 됩니다. 거기 조는 장소를 떠나 버려야 됩니다. 떠나서 어디
로 가지요? 목욕탕에 가야지요. 목욕탕에 가서 팍 물을 끼얹어 버려야지요. 그
래도 졸리겠습니까.
그러면 그때 무슨 이야기가 나오는지 압니까? “아, 잘 뛰쳐나왔다. 지금도
거기 앉아있었으면 계속 졸 것인데.”
5분 졸았는데 교회에 와보니까 5분 설교를 못 들으니까 엄청난 것입니다.
앞의 5분 설교를 못 들었습니다. 옆 사람에게 계속 물어보는데 “묻지 마라.
나도 지금 정신 못 차린다.”
“아니, 뭘 그러냐? 묻는데 대답 좀 해 주지.”
왜 자기가 5분을 졸았습니까? 자기는 그것을 생각치 않고 계속 물어보기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슬럼프에 빠져 있다, 그리고 엎어져 있다 할 때는 후닥닥 일어나
라고 했습니다. 내가 방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그 비법을 안 사용합니다. 내가
그것을 수백 번 해 본 것입니다.
도(道)라는 것은 하늘로부터도 받지만, 본인도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
닥닥! 후닥닥! 후닥닥! 하는 것입니다. 벗어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래야
벗어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개 어려움이 있는 것은, 자기로 인해서 오는 것이 많습니다. 방법론을 잘
못했을 때 자기로 인해서 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지 않습니다. 대개 자기
가 잘못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왜 이런 일이 오지?’ 합니다.
제일 처음에는 자기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자기로부터 오니까 자
기를 딱 보고 자기 내다보는 것을 잘 해야 합니다.
“자기를 늘 살피라.”
철학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자기!
“너희 자신을 알라. 너희 자신을 알라.”
그것이 철학의 핵심입니다. 한마디잖아요.
예수님은 “사랑하라.” 입니다.
철학은 자기를 내다보는 것이 철학입니다. 그래서 철학자들이 자기를 내다
봤습니다. 자기를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항상 무슨 일이 있으면, 자기를 쳐다보라! 모두 전부 다 자기를 쳐다보면서,
자기를 생각하고 뉘우치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세요. 이것이 그릇이 됐으니까 평생 손댈 것이 없습니다. 이건 이
제 흙으로 안 변합니다. 1200도에 구웠으니까. 이렇게 되도록 하라.
그 근성을 버려요.
“섭리사가 시작되면 기쁨만 있고 천국만 계속 되리라.” 그런 것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다 그런 것이 있으면 이건 섭리사 아니다 생각합니다.
나간 사람이 왜 나갔나 보라는 것입니다. “이건 섭리사가 아니다. 이런 모순
이 있기 때문에 아니다.” 했지만, 자기가 볼 때 모순이지, 하나님이 모순이라
는 말입니까? 왜? 이것을 쌓을 때도(월명동 돌 조경), 이것을 만들 때도 모순
이라고 했습니다. 나간 사람들이 이것을 할 때도 그랬습니다.
이것을 만드는 것이 모순입니까?
그런데 “이것도 모순이다, 선생님이 하는 일도 모순이다, 그리고 축구하는
것도 모순이다.” 전부 그렇게 봤습니다.
그리고 “여자들을 목회자로 내보내는 것도 모순이다.” 그랬습니다. 그렇게
안 했으면 누가 합니까?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나는 알지요. 거기에
넘어가지 않지요. 확실히 알고 하니까.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하시는 일인지
아니까. 내적인 모든 세계를 잡아주지 않습니까. 지금도 그렇습니다. 계속 잡
아주지 않습니까.
남자들은 큰일들 하고 다른 일도 하고, 여자들도 큰일도 하고 목회도 하고
다 합니다. 큰일 하잖아요.
그러나 나간 사람들은 “그러면 안 된다. 남자들을 중심해서 해야 된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 때부터 예수님은 그렇게 안 했습니다. 지금은 신
부시대이기 때문에 신부들을 굉장히 크게 보는 것입니다.
자, 이래서 말씀으로 볼 때
첫 번째, 이것은 꼭 알아야 됩니다.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어도, 어려운 환난이 있어도 긴 것은 기구나.(맞는 것
은 맞구나.)
기라고 해 놓고 환난이 오면 ‘이건 아닌가 보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
다. 지금 이 시간 다 고쳐요.
“아, 그것이 아니구나. 환난이 있어도 어려움이 있어도...”
아니 추운 계절이 온다고 그건 계절이 아닙니까. 추운 계절도 계절, 여름도
뜨거워도 계절, 가을도 계절 다 계절이지요.
“겨울은 계절도 아니다. 아 이게 무슨 계절이냐. 나는 계절 속에 안 넣는
다.” 해도 그건 자기만 그런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 말씀의 첫 번째로 근본으로 깨닫고 알아야 됩니다. 핍박과 환
난과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저게 천국이냐? 저렇게 핍박받고 하는데, 저게 새로운 역사
냐?” 그랬습니다.
그들만 남아지게 딱 잘랐습니다.
“너희들이 그렇게 함으로 그런 일들이 더 일어났지, 그 역사가 아니냐?” 그
랬습니다.
오늘 아침 말씀 가운데 핵심은, “이런 어려운 것이 반드시 있다. 그것을 너
희는 깨닫고 알도록 하라.” 했습니다.
신약 시대 때는 엄청난 고통을 받았습니다. 상상도 못하게. 우리는 그 다음
역사가 아닙니까. 무지무지하게 어려움을 받고 고통을 받지 않았습니까. 사탄
마귀 귀신들!
우리가 사탄의 세계, 사망의 세계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몇 마디로 얘기해
주겠습니다. 잘 모르면 안 됩니다.
“왜 사탄과 귀신들을 안 가두냐? 가두어 놓지.” 하는데 현재 가두어 놓았습
니다.
사탄과 마귀 귀신들을 가둬 놓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있는 데로 왜 오지요?”
그것은 왜 그런가하니, 자기 때문입니다. 지금 어둠은 어둠에다 가두어 놓았
습니다. 그런데 여기 방안의 불을 끄면 어둠이 싹 들어옵니다. 그 원리나 똑같
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천상 의롭게 살아야 됩니다. 선하게, 항상 빛 가운데! 그러
면 어둠은 평생 안 받는 것입니다. 왜? 자기가 빛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방안에 불을 끄지 않는 이상 항상 환하잖아요. 낮에는 햇빛으로 환하고, 밤
에는 불빛으로 환합니다. 끄면 어둠이 들어오듯이 여러분이 사탄 짓이나 어둠
의 짓을 하면 사탄이 거기가 자기 주관권이라 어둠이 먹어 들어온다는 것입니
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공산주의는 공산주의의 지역이 있습니다. 그런데 공산주의 사람들이 안 와
도, 독재주의가 안 와도 자기가 책을 읽고 독재를 주장하면 자기 속에 독재
사상과 정신이 그대로 들어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독재에다
가둬놨는데, 자기 자신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반항하거나 하나님께 오해하거나, 예수님 때도 예수님을 오해했습
니다.
오해한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모른다.’ 그 말입니다.
자꾸 얘기하면 풀어집니다. 오해는 어떻게 풀어지느냐 하면, 대화해서 풀어
진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세계도 우리가 모르고 오해했었습니다. 사탄이 풀어놓아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 막 집적거리는 줄로 아는데, 물론 잘 되는 사람도 집적거립니다.
욥과 같이 잘하는데도 집적거리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인들이 그렇게 할 때에 사탄이 자기 주관권이니까 그냥 자동적으
로 파장이 통합니다. 전파를 잡을 때 방송 채널을 미국 방송으로 돌리면 하루
종일 미국 방송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본인이 항상 의롭게 결국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의롭게 삶으로 인해서 사탄 주관권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새로운 진리의 말
씀을 듣고 따라 감으로 그 주관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냐.
사람이 잠을 사탄이라고 보자. 잠 세계를 사탄의 세계로 비유를 들어봅니다.
“잠은 잠이라는 세계에 가두어 두었다.”
이렇게 깨어 있을 때는 괜찮은데, 이렇게 꾸벅 졸면 잠의 세계가 그대로 들
어온 것입니다. 그 세계는 잠의 세계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누구든지
그렇습니다.
의심하면, 의심의 세계에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의심하면, 의심이 누구든지
자기 자체에서 생겨서 의심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제 알겠습니까. 나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빨간 색은 빨간 색에 가두어 놓
았습니다. 여기 넥타이의 파란 색이 빨강이 되면 거기에 빨강이 들어온 것입
니다. 선생이 배울 때 항상 그렇게 배웠습니다.
이런 평면에 물방울이 한 방울 있었습니다. 수평으로 놓으면 물방울이 그대
로 있지만, 본인이 한쪽을 기울이면 물방울이 자동적으로 쭉 적셔지는 것입니
다.
의의 세계도 그러하다! 자기가 의를 행하면 의의 세계, 은혜의 세계의 주관
에 딱 들어온 것입니다. 의를 행하면.
그래서 무엇을 잘못했을 때 회개 안 하면 계속 사탄이 먹어 들어갑니다.
사탄은 지금 모릅니다. 걔가 지금 죄를 지은 것을 모릅니다. 그 애 혼자 사
탄 주관권 속에 있는 것입니다. 사탄들은 모릅니다. 사탄이 아직 안 왔습니다.
그런데 본인이 죄를 짓고 있으면 이미 그 자체가,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흑암의 주관권에 있는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흑암권을 심판한다고 딱 모터를 누르면 그 사람까지 다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들이 보니까 자기들은 1천명이 있었는데 1001명이 죽었네요.
“어디에 또 한 명이 있었대?”
“아, 지금 심판 받고 죽은 사람이 1001명입니다.” 해서 보니까
“어? 어디 있었지?” 했는데, 의인 중에서 마음 변한 사람이 있어서 거기서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자꾸 들어야 됩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배웠습니다.
모르니까 자꾸 배우고 알아야 됩니다.
사탄들을 다르게 생각하지 마라. 그런 주관이 있으면, 사탄들이 늘 자기 어
둠의 길을 가다가 보니까 ‘이 집이 저렇게 불안하고, 저렇게 막 싸우고..’ 하니
까 사탄이 쑥 들어오는 것입니다. 금방 들어오는 것입니다. 개인에게도. 쑥 들
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과 하나 됩니다. 그렇게 되면 너무 너무 어렵지요.
그 공식은 영계를 보나 마나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100번
200번 똑같이 보여줬습니다. 성경에 보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울 왕이 어떻게 되었지요? 사울이 하나님을 떠나니까 그냥 자동적으로 자
기 자신에게 악심이 생기면서 악령이 들어왔습니다. 똑같은 사울인데, 다윗을
미워하니까 그냥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좀 이해하겠지요?
사탄의 세계와 이상세계가 이루어져도 환난과 핍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래서 우리가 이상세계가 이루어지는데 환난과 핍박과 어려움이 있어도 천국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여기 개발할 때 어려운 일이 있고, 동네사람들이 나타나고 할 때 ‘뜻이 아닌
가보다. 무슨 다른 뜻이 있는가보다.’ 그랬지요? 환난과 핍박이 일어나도 월명
동은 월명동입니다. 계속 만들었습니다.
선생님 보세요. 가장 어려웠던 것은 무엇이냐 하면, 내가 산에서 기도하고
여러 가지로 할 때 모든 사람들이 한 가지로 100% 말렸습니다. 뜻이 아니라
고.
“조언을 들어보라.” 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전도사님 데려다가 나를 설득시켜보라고 하며 내게 얘기도
들려주고 그랬습니다. 다 100%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혈육과 의논하지 말라!
모든 신학교 다니는 목사님들도 다 나를 보면 그것이 아니라고 설득했습니
다. 뭐라고 하지는 않고 이건 이렇다 이건 이렇다 이건 이렇다 얘기를 해 줬
습니다.
“우리가 신학교를 전문으로 해도 산에 가서 기도하고 그렇게까지 안 한다.
잘못 계시를 받는다. 예수님이 나타나도 잘못된 계시다. 그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니냐. 주일날은 교회 가서 예배 드려야 하고 기도해야 하는데, 주일날은 정
집사 교회 거의 안 왔네.”
그것 가지고 늘어졌습니다.
“주일날 거의 교회 안 왔네. 이건 안 된다. 전도사님이 얘기하더라. 신경을
많이 쓰인다. 우리는 형이 얘기하는 것과 다르지. 형은 무조건 동생이니까 그
러지만, 나는 제 2자에서 볼 때 그렇지 않겠냐.” 했습니다.
그래도 내가 “그것이 아닙니다. 앞날을 보세요. 그것이 아닙니다.” 했습니다.
“내가 그전에 교회 다닐 때는 몰랐는데, 여기서 성경 읽고 정신 차리고 냉
수목욕하면서 내가 바르게 살고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을 모르지 않습니까.
낮에는 전도를 하고 오는데 전도를 10명, 20명, 50명씩 하고 옵니다. 본인들
신학교 다니면서 지금 하루에 20명씩 합니까. 못하지 않습니까.” 했더니 “그
건 잘하는 일이지.” 했습니다.
“내가 이것을 못하면 그런 일 못하는데, 얼마나 했는지 모릅니다. 수를 못
셉니다.” 그러니까 “아, 한번 잘 해 봐. 걱정돼서 그랬으니까.” 그랬습니다.
그 후에 내가 만났습니다. 고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때 어렸을 때 너무
신경써줘서 고맙습니다.” 그랬더니 “무슨 신경이냐. 정말 미안하다. 나 솔직히
말해서 고백하고 싶다. 우러러본다. 정말 우러러본다. 너무 우러러본다. 지금
모든 사람이 욕하지만 그것이 아니다. 전혀 달라. 우러러 본다. 우리 장로교에
서 얼마나 싸우는지 모른다. 다 그런 거야.” 하면서 정말 우러러 본다고 했습
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빨리빨리 회개하고 뉘우치고 그래야 됩니다. “그래
야 운명이 좌우된다!” 그랬습니다. “항상 그것이 그렇게 크다.”
여기서 단상에서 말씀하는 것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크던 일을 다 모릅니
다. 그런데 여기에 오면 탁 생각납니다. 그 말씀을 하게 만듭니다. 전혀, 전혀
모르는 말씀을 여기서!
그래서 묵시이고, 하나님이 생각나게 만들고, 주시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그렇다!
“가장 큰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 가장 큰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이들이
말씀 들을 때.”
“내 말인 줄을 알고 듣는 것이다. 내 말인 것을! 나 여호와가 말씀하신 것을
알고 듣는 자들이 가장 말씀을 깊이 듣고, 가장 깊고 좋은 밭에다 씨를 뿌리
는 입장과 같다.”
하나님의 말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혼자 해도 내가 누굽니까? 내 사
명 갖고 와서 혼자 그냥 한다고 해도 누굽니까? 그렇지요?
지금은 부활되어서 하나님께서 특별기간으로 함께하시기 때문에 말씀을 꼭
꼭 합니다.
내가 산에 가서 기도했을 때나, 월남에 가서 총을 겨누었을 때 그 음성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직접 듣고서 실천했기 때문에 살았다는 것입니다. 아니면
그 바위 위에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제자들 가운데 가까이 있는 제자나, 멀리 있는 제자들이 말씀을 하면 하나
님의 음성으로 안 듣습니다. 그러면 딱 덮습니다.
“그래. 너희들이 한번 들어봐라. 말씀을 들어봐라. 하나님의 원본을 들어봐
라. 너희들은 평생 못 듣는다.
성경에 “모세에게만 내가 말씀하지, 너희에게는 환상으로 끝난다. 어떻게 평
생 동안 이 손바닥이 음성을 듣느냐? 못 듣지. 감각이 예리한 말초신경까지
동원해 봐라. 그 음성이 들리나? 안 들리지.” 그렇지요? 제일 큰 것이 그것입
니다.
여러분 서로 선생 옆에 있기를 원합니까? 나와 손을 한 번도 안 잡아봤어도
신앙이 저 앞에 간 사람이 많습니다. 왜 그런지 압니까? 말씀 듣는 데서 운명
이 좌우되어버린 것입니다.
나간 사람들을 보세요. 얼마나 가깝게 지냈습니까? 자기는 수제자다, 수제자
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된 줄 압니까?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
으로 직접 딱 못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으로!
‘저렇게 소리 지르면서 말씀하시는구나. 하나님이! 저렇게 사랑스럽게 말씀
하시는구나.’
그게 제일 큰 것입니다. 말씀 듣는 자세들이!
지금은 애인시대라 정말로 웃으면서, 노래하면서, 정말로 기뻐하면서 말씀하
지!
기독교?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이야기는 그렇게 웃으면서 못 합니다. 왜?
체질이 그렇게 되어있기 때문에 안 됩니다. 될 수가 없습니다. 안 되는 것입니
다. 말씀 자체가 그렇게 나오는데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말씀 자체가 그런데.
시대 자체가 그런데.
어떻게 물속에 있으면서 물의 감각을 안 느끼고 물속의 행위를 안 할 수가
있습니까? 할 수밖에 없지요. 물에서 나와야 그 행위를 안 합니다. 물에서 나
와서도 물속에서 하는 행동을 계속 하면서 시내를 돌아다녀 봐요. 그러면 미
쳤다고 하지요. 그래서 못하는 것입니다. 물에서 나와서도 물속에서같이 합니
까? 안 되는 것입니다. 신약권에서는 할 수가 없느니라.
“말씀을 들을 때 그렇게 듣도록 하라. 그래야 말씀을 내가 너희에게 해 주
리라.”
하나님이 지적하시잖아요.
“말씀을 들을 때 어떻게 그렇게 듣느냐?”
선생님 앞에 늘 여러분들이 그것을 못 하더라구요. 딱 오면 두려워함으로,
감격함으로, 감사함으로, 고마워함으로 대해야 합니다.
섭리사를 나간 사람들은, 나를 확실히 믿은 사람들은 잘 안 나갑니다. 절대
안 나갑니다. 나갈 수가 없습니다.
지옥이 있는 것을 확실히 믿은 사람은 안 나갑니다. 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
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냥 이론적으로, 지식적으로만 믿습니다. 그러나 알면
무서워서라도 못 나갑니다. 사망의 세계로 가니까 무서워서 못 나갑니다. 몰랐
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이 말씀을 듣고 깨닫고 알지 않았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
시오.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섭리사 뛰면서 조금 어려운 일이 있다고 어렵다고 하고, 애들과 조금 부딪
혔다고 뭐라고 하고, 또 애들이 조금 힘들다고 막 하고, 누구와 부딪혔다고 하
고 하는데, 그것은 스스로 자기들이 함정 파는 핍박이고 어려움입니다.
신약역사 2천년 동안 있었던 역사들을 말해보면, 그때 끝난 것이 아닙니다.
계속 각 나라마다 핍박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어려움이 있었잖아요. 지금도 천주교에서 복음 넣
으러 들어가면 선교사들을 죽이고 밤에 때려죽이고 합니다. 몇 년 전에 인도
에서도 그랬습니다. 지진 나기 전에. 이번 지진 말고 그 전 지진 나기 전에 그
랬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핍박하고 어렵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극적인 핍박은 안 받지 않습니까? 조금 부딪히는 것, 조금
어려운 것, 나간 애들이 깔짝거리는 문제들이지 않습니까.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정말 이젠 바로 알고 바로 깨닫겠습니다. 말
씀 들어보니까 그러네요.”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라고 하십니
다. 하나님이 말씀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잖아요.
“너희들 보라. 너무 위해서 기르니까 너무 습관이 잘못되고, 버릇이 잘못되
지 않았느냐? 그렇지 않느냐? 그러면 안 된다. 이제는 그렇게 안 기른다. 너희
들이 자립해서 하게 기르고, 지옥을 면하려면 열심히 하라. 천국생활을 하려면
열심히 하라. 새벽도 깨우고 열심히 하라.”
오늘은 여기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 도>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들어보니까 정
말로 그렇습니다.
우리의 심령 골수를 쪼개서 말씀하시는데, “너희들이 핍박받은 사람의 이야
기를 들어볼래? 같은 대열의 역사들인데. 너희 바로 앞에 있는 선조들이, 신약
역사의 사람들이 그렇게 고통을 받았다는 거야. 너희는 조금 부딪히고 어려움
이 있고, 뭐한다고 해도 자기 할 일을 못해서 그러는데 그것을 갖고서 그러느
냐? 이런 일, 저런 일 모두 그렇다.”고 했습니다. 용서와 사유를 주시고, 이제
핍박과 어려움이 있어도 다 천국이라고 했습니다. 역사가 시작되었으니까!
사람들은 천국이 오면 어려움은 전혀 일절 없는 세계로 생각합니다. 아니,
겨울이 오면 방안에 있어도 추운데. ‘겨울에는 어떻게 천국이 될 수 있지? 방
안에 있어도 추운데.’ “아니 옷을 입어도 춥잖아. 방안에 있어도 춥고 옷을 입
어도 춥잖아. 히터를 틀어도 춥잖아. 겨울이 오니까 그 영향을 받고서.”
그 환난기의 영향과 어려움을 이기면서, 견디면서 열심히 하게 해주시옵소
서.
“이래도 하나님의 천국은 가고 있다. 추워도 계절은 간다. 지금 봄이 왔는데
도 춥지 않느냐? 봄이 왔는데도 추운 것이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옛 조상들이 환난을 당한 것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받는
것은 아주 적은 것인데, 이들이 모두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고 우러러보며 좋
아할 줄을 모르니까 그런 일이 너무 너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기 잘못으로 일어난다고 “늘 네 자신을 알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러함을
갖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살게 해 주시고, 우리 잘
못도 용서해 주시고, 잘하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과 은혜가 이들에게 함께 하고, 성령의 감동 감
화 역사하심과, 주 그리스도의 사랑하심이 우리에게 항상 충만하심을 간절히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