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5.07.01 (수)
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
- 선포일
- 2015.07.01 (수)
- 성경 본문
- 요한복음 14장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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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01일 수요일
<핵>을 차지해라
[ 요한복음 14장 6절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6 Jesus answered,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이번 주 주일에는
‘성경을 억지로 풀면 스스로
망한다.’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성경뿐 아니라 꿈,
만물 계시를 억지로 풀거나,
자기 생각, 상대의 마음을
억지로 잘못 풀거나,
주의 말, 주의 생각을
억지로 잘못 풀어도
스스로 고통을 받고 망한다고
말씀했습니다.
◎ 오늘은 ‘<핵>을 차지해라.’라는
주제로 말씀하겠습니다.
<전체>를 못 얻어도
<핵>을 차지하는 것이 잘되는
비법으로서 성령의 계시입니다.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사람들은 마귀에게는 시간을 잘
주면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는
인색하게 시간을 안 주고 문제가 있을
때만 해결해 달라고 하며 찾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모든 것의 핵>인데, <핵>에게 시간을
안 주고 <핵>을 뺏기니, <전체>가
영향을 받아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핵>은 작아도
‘전체의 에너지 역할’을 합니다.
고로 작아도 <핵>을 빼면
<전체>에 영향이 갑니다.
가령 가정에 소, 돼지, 말, 개가 있다
합시다. 많은 가축들 중에서
<개>는 작습니다. 작다고 빼면
‘집을 지키는 일’을 못 하니
<전체>에 영향이 갑니다.
이와 같이 <그 일의 사명자들>도
작다고 빼면 <전체>에 영향이 갑니다.
<구원자>는 ‘지구 세상의 에너지
역할’을 합니다. 고로 전체에 비해
작지만, <구원자>가 빠지면 <전체>에
영향이 갑니다.
<눈>은 전 지체에 비하면 작습니다.
그러나 <눈>이 사명을 안 하고 감고
있으면 <전체>에 영향이 갑니다.
<구원자>도 이 세상 앞에 그러합니다.
<한 교회의 그 센터의 충성자>는
작지만, 그 한 사람이 빠지면
<전체>에 영향이 갑니다.
글을 다 쓰고 <핵심 한 줄>만 빠져도
<글 전체>에 영향이 가서 ‘뜻’이
전달되지 않습니다.
설교할 때나, 시대와 주를
증거할 때나, 강의할 때
<목적을 둔 한마디 말>은
전체에 비해 작지만,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여 빼고 가르치면 <전체>에
영향이 갑니다.
고로 그 말씀을 듣고도 감동이 안
됩니다. 고로 수고가 헛되게 됩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 <핵>을 빼면 안 된다는 것에 대해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한 친구를 찾아가서
이야기했습니다.
<이야기하는 목적>은 그 친구에게
‘자기 생일’을 알려 주고 초대하여
함께 생일을 보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했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내 생일이야.
모두 바쁘겠지만, 내 생일이니 와서
축하해 줘. 생일에 잘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리’이며 ‘우정’이잖아.”
친구는 이 말을 듣고 이해가 잘되어
꼭 생일날 가겠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원래는 안 갈 마음이었는데,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돌아갔습니다.
그는 친구에게 또 말했습니다.
“내 생일은 3월이야. 봄에 생일이
있으니 얼마나 좋아?”
그 말을 듣고 그 친구는 하기를
“맞아. 봄에 생일이 있으면 정말 좋아.
내 생일도 3월 13일이야.” 했습니다.
그 사람은 그 말을 듣고
“고마워. 내 말을 듣고 이해하고
내 생일에 온다니까 정말 좋아.” 하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자기 생일에 그 친구가 올
것으로 알고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생일 당일>이 됐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 친구는 안 왔습니다.
몹시 서운하게 생각하고, 음식을
먹으며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했습니다.
“꼭 온다고 했는데 왜 안 왔지?”
하니, 옆에서 말하기를
“온다고 약속했어도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겼으니 못 왔겠지. 한 번 전화해
봐.” 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전화가 없어서 연락할 수가
없었습니다.
옆에서 또 말하기를
“혹시 그 친구가 ‘생일 날짜’를
모르는 것 아니야?” 했습니다.
그제야 그 친구에게 생일이
‘봄’이라고만 말했지,<핵>인 ‘날짜’는
못 알려 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친구와 하루 종일 이야기했는데
<핵>, 곧 ‘날짜’를 못 알려 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설교할 때나,
증거할 때나, 강의할 때나,
이야기할 때나, 대화할 때나,
기도할 때나, 전도할 때나, 일할 때나,
작품을 만들 때나, 글을 쓸 때나,
시를 쓸 때나, 잠언을 쓸 때나
<거기에 해당되는 핵>을
꼭 말해야 됩니다.
<핵>을 미리 써서 잊지 않도록
전초하고, <핵>을 중심으로 ‘배경’을
설명하고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 <핵>을 넣어야 생명이 살아
역사가 일어나고 전체가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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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에 대해서
‘다음 단계’로 말씀해 주겠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육>은 ‘배경’이고,
<마음·정신·생각>,
즉 <뇌>는 ‘핵’입니다.
<뇌의 생각>에 따라서 <육>이 행하여
그로 인해 운명이 좌우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을 보실 때,
<인간의 영>은 ‘핵’이고
<인간의 육>은 ‘배경’입니다.
<핵>인 ‘영’을 위해
<배경>인 ‘육’을 창조하셨습니다.
<영>을 ‘하늘나라 형체’로 만들어
구원시키고 휴거시키기 위해
<육>을 ‘배경’으로 사용하여
육이 행함으로 육신의 행위에 따라서
<영>이 변화되게 하셨습니다. <끝>
◎ <영>은 ‘핵’이고, <육>은
‘배경’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겠습니다.
(* 다시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사람>은 ‘지구의 핵’이고,
<만물들>은 ‘배경’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만일 <배경>인 ‘만물’을 창조하지 않고
<핵>인 ‘사람의 육’만 창조했다면,
육신은 ‘살아갈 터전’이 없어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고로 <핵>인
‘사람의 육’이 존재하도록 <배경>인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배경>인 ‘육’을 창조해야
<핵>인 ‘영’이 육을 배경으로 삼고
살기에 <영>을 위해 <육>을
창조하셨습니다.
<육>이 구원자의 말씀을 듣고
삼위일체를 사랑함으로 <육의 행위>에
따라서 <영>이 변화되게 하고,
<육>이 죽으면 결국 <영>을 취하여
영원히 사랑하며 사는 것에 근본의
목적을 두고 <핵, 영>을 위해
<배경, 육>을 창조하셨습니다. <끝>
<존재물의 핵>은
밭에 감춰진 보화입니다.
★ 하나님은 <사랑>을
‘핵’으로 두고 역사하십니다.
고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매일 진정으로 최우선으로 사랑하는
자를 삼위일체도 역시 진정으로
최우선으로 사랑해 주시며, 그를
‘신부’로 삼으시고, 그를 통해
역사를 펴 나가십니다.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믿고
구원자를 통해 말씀을 듣고 순종해도
<핵>인 ‘사랑’이 빠지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달성되지 않습니다.
<핵>이 있어야 <목적>이 달성됩니다.
<핵>인 ‘사랑’이 있어야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이루어집니다.
미련하고 무지한 자는
<전체>만 차지하려 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핵>을 차지하고,
<배경>은 만들어 나갑니다.
<핵>은
사랑 덩이이며,
보화 덩이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핵>은 반지 중앙을 장식하고 있는
‘다이아몬드’와 같고, <배경>은
반지의 틀인 ‘금’과 같습니다.
<핵>인 ‘다이아몬드’만 있으면,<배경>인
‘금’은 사서 만들면 됩니다. <끝>
지혜와 지식 중에서
<지혜>가 ‘핵’입니다.
<지식>은 ‘배경’입니다.
먼저 <핵>인 ‘지혜’가 있어야
그 터전 위에 <배경>인 ‘지식’을
쌓아 가며 빛을 발하게 됩니다.
지식을 지혜롭게 쓰기입니다.
모르는 자는 <핵>을 중심하지 않고,
<핵을 싼 배경>을 중심합니다.
어떤 산과 밭을 샀다 합시다.
<핵>을 보고 산 것입니다. 그러나
<핵>은 숨어 있어서 안 보입니다.
모르는 자는 <핵>은 안 보이니, 산과
밭을 핵으로 알고 거기에 농사나
짓고 나무만 가꿉니다. 지혜로운 자는
그 산과 밭의 <핵>을 찾아서
개발합니다.
모르는 자는 <조개>만 가지고 가고,
지혜로운 자는 <조개 속에 든 핵,
진주>를 따 가지고 갑니다.
<전체>는 <핵>을 위해 존재합니다.
<전체>가 <핵>을 만듭니다.
그리고 <핵>은 <전체>를 위해
쓰여집니다. 그리고 <핵>으로 인해
얻게 됩니다. 고로 <핵>을 중심하지
않으면 얻지 못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핵>을 보내십니다.
<핵>이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며,
<핵>이 구원이며, 최첨단인
휴거입니다.
<핵>은 곧 ‘구원자’입니다.
★ <핵>은 하나입니다.
태양과 같습니다.
어제의 태양은 끝났습니다.
오늘이라는 날에 ‘삼위일체의 태양’이
떠서 <땅의 핵>과 일체 되어
세상을 비추고 있습니다. <끝>
<핵>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곧 <핵, 구원자>가 인생 문제,
구원 문제, 영혼 문제를 해결합니다.
<핵>이 답입니다. 곧 <핵, 구원자>가
인생의 답, 구원의 답, 휴거의
답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하늘의 핵>이 와야 <땅의 핵>과
하나 되어 역사가 시작됩니다.
곧 <성자>가 오셔야 <보낸 구원자>와
하나 되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완성할 <성약역사>가 시작됩니다.
이미 이 역사는 시작되었고,
완성하였고, 다음 차원으로
계속 진행 중입니다. <끝>
<핵>이 없으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인간의 생명>도
‘핵’에서 시작합니다.
한 지역도 <핵>을 차지하면 <전체>를
차지한 것보다 낫습니다. 월명동도
수천 평 중에서 <핵>인 ‘옛날 집터
200평’을 차지했기에 <그 지역의
전체>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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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의 핵>은
‘하나님, 성령님, 성자’이십니다.
선생이 <핵>인 ‘하나님, 성령님,
성자’를 차지하니, 그로 인해
<땅의 백보좌, 월명동 전체>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핵>을 보고 “명당이다. 자미원이다.
천하의 길성지다.” 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도 <핵심지역>이 있습니다.
곧 <에덴동산>입니다.
구약 때는 <에덴동산>이
‘하나님 역사의 핵 지역’이었습니다.
<신약의 에덴동산>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지역’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가
태어난 지역이
<그 시대의 에덴동산>이며
<하나님 역사의 발원지>이며
<핵심지>입니다.
그곳에서 보낸 자도 태어나고, 새
역사도 시작됩니다.
곧 신약 때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 예수님이 태어난 지역이
<신약의 에덴동산>이 되고
<신약역사의 발원지, 핵심지>가 되어
그곳에서 구약 앞에 새 역사인
<신약역사>가 시작됐습니다.
구약 때 하나님이 역사를 시작하신 곳,
아담과 하와가 살던 에덴동산은
완전한 이상세계가 아니었습니다.
형체와 모양은 갖춰져 있었지만,
개발하지 않아서 삭막했습니다.
전혀 개발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뜻대로
성장하여 먼저 자신을 개발시키고
완성시킨 후에, 따르는 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구상대로 그 지역을
개발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성장하지 못한
채 타락했기에 <에덴동산>은 전혀
개발하지 못한 상태에서 타락함으로
인해 쫓겨나고 끝났습니다.
그 후에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이
개발했고, 이스라엘 민족이
‘종의 입장’에서 개발했기에
<구약 종급 차원>으로 개발하여
<구약 종급 구원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예수님 때는 예수님이 태어난 지역이
‘제2의 에덴동산’이었습니다.
그곳이 “명당이다. 길성지다.
자미원이다.”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살아 계셨던
당세에는 그 지역을 개발하지
못했습니다.
환난과 핍박으로 인해 3년 동안
겨우 ‘신약 복음’만 전했지, 그 지역을
개발할 정황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나심으로 인해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 지역,
환경’만 차지했습니다. 그 후에
‘제2의 신약 에덴’이 개발되어
<지금의 신약 성지>가 되었습니다.
그곳이 <하나의 성전 지역>이
되었습니다.
<이 시대 성약 에덴동산>은 역시
이 시대에 하나님이 보낸 자가
태어난 고향 땅입니다. 그 지역은
‘지형, 모양, 환경’이 다 갖춰져
있었으나, 즉시 개발할 수는
없었습니다.
<시대 성약 복음>을 전하면서
10년이 지나고 나서야 따르는 자들과
함께 삼위일체의 구상대로 조금씩
개발했습니다. <복음>과 함께
개발되는 것입니다.
<성약 복음>을 전하면서
따르는 자들과 함께 삼위일체의
구상에 의해 점진적으로 개발하여
<오늘날 시대 에덴동산>이 되었습니다.
제1의 구약 에덴과
제2의 신약 에덴은 당세 때
개발하지 못했습니다.
제3의 성약 에덴만 당세 때
개발했습니다.
<성약 섭리역사>는
성자가 지상에 계실 때 당세에
<핵>을 다 개발하고 썼습니다.
나머지 더 손대고 개발할 곳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성약 복음>을 계속 전함으로 따르는
자들이 더 많아지면 장소가 좁으니,
<핵심지>를 중심해서 계속 개발해
나가는 것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6>
★ <이 시대 성약역사>는
성자께서 분체와 함께 당세에
<휴거>까지 다 이루었고,
<성약의 에덴>도 개발해서 쓰고
만족했고, 신부로 단장하고 준비된
자들을 휴거시켜 <천국 황금성>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이로 인해 구원자가 살아 있는
당세에 ‘휴거의 문’이 열렸습니다.
★ <구약역사>는 ‘소생기 역사’이고,
<신약역사>는 ‘장성기 역사’이고,
<성약역사>는 ‘완성기 역사’입니다.
고로 하나님은 마지막 완성기 역사인
<성약 당세 때>정녕코 행하여
‘창조 목적’을 이루고야 마셨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구원자를
쓰시고 ‘창조 목적’을 이루신
것입니다. <끝>
◎ 비유를 들어 말씀하겠습니다.
어떤 남자가 한 마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돕고, 그 마을을 개발해
주며, 자기가 사랑할 자를 수십 년
동안 길렀습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어 자기가 목적한
대로 사랑으로 키운 자를 ‘배우자’로
택하여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고,
자기와 함께 ‘회사 일을 할 인재들’을
택하여 데리고 갔습니다.
이로써 <자기 목적>을 이룬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도
우주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구원역사를 시작하시고
인생들을 돕고 사랑해 주고
키우셨습니다.
이로써 ‘신부들’을 만들어 휴거시켜
<천국의 최고 세계인 황금성>에
데리고 가셨고, ‘자녀들’과 ‘종들’도
만들어 <그에 해당되는 세계>에
데리고 가셨습니다.
처음에 다 이루는 역사는 없습니다.
처음에 복음을 전한 생명들이 다
깨닫고 오는 역사는 없습니다.
역사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섭리역사>를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시대 구원자 한 명’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두 명, 세 명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역사라도 처음부터
10명, 100명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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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진적으로 깨닫고 역사를 따라옵니다.
<휴거>도 처음에는 한 명이 되고,
그다음에 군중을 이룬 것입니다.
휴거되면 위력이 엄청납니다.
<육신>이 땅에서 살고 있어도
<혼>이 <자기 육>을 벗어나서
영적으로 행하면, 육신의 제재를
안 받으니 그 행함이 엄청납니다.
<영>도 그러합니다.
<육>이 할 일을 다 하고
<영>이 휴거되면, <영>은 <육>을
완전히 벗어나 영계에 가게 됩니다.
그러면 육신의 제재를 받지 않고
행하게 됩니다.
고로 그 위력이 엄청납니다.
그로 인해 큰 역사를 일으킵니다.
한 명에서 시작한
<휴거>로 인해 군중을 이루었습니다.
<역사의 핵>인 ‘휴거’를 차지했습니다.
휴거된 군중들이
‘시대의 핵, 구원자’와 일체 되어
행하면, 그 위력은 엄청나고
돌풍 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 말씀 마무리합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휴거에 대해 불이 식었느냐.
기도의 불이 식었느냐.
각종 행위의 불이 식었느냐.
고로 차원을 높이지 못하고 있느냐.
뜨거운 물이 식었다고
낙심하지 말아라.
또 뜨겁게 하면 뜨거워진다.
마음과 생각을 뜨겁게 해라.
그러면 즉시 휴거의 감도 살아나
뜨거워지고 기도도, 각종 행위도
뜨거워진다.”
★ 오늘 말씀
<핵>을 차지해라. <전체>를 못
차지하면 <핵>을 차지하기다.
이것이 ‘잘되는 비법’이며
‘성령의 계시’입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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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05일 주일
연결된 것은 하나다
[ 요한복음 14장 8-11절 ]
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8 Philip said, 'Lord, show us the Father
and that will be enough for us.'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9 Jesus answered: "Don't you know me,
Philip, even after I have been among
you such a long time? Anyone who has
seen me has seen the Father. How can
you say, 'Show us the Father'?
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0 Don't you believe that I am in the
Father, and that the Father is in me?
The words I say to you are not just my
own. Rather, it is the Father, living in
me, who is doing his work.
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11 Believe me when I say that I am in
the Father and the Father is in me; or
at least believe on the evidence of the
miracles themselves.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은 신령해지고
영적인 자가 되기를 원합니까?
현재 위치에서 <차원>을 높이기
원합니까?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잘 듣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차원을 높이게
해 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전하고, 잘 듣고, 잘 행하면
<지혜와 지식의 차원>이
‘한 차원’씩 올라가게 되고,
<영적 차원>이
‘한 차원’씩 올라가게 되고,
육의 행실도 영도 더욱 변화되어
<휴거의 차원>도 ‘한 차원’씩
올라가게 됩니다.
그저 이론적으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며, 말씀을 듣고 기분 내고
힘내라고 심리적으로 영향을 주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이 말씀을 듣고 믿고 행하면,
즉시 지혜, 지식, 영적 차원, 휴거의
차원이 한 차원씩 올라가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신령해지고, 영적인 자가
되고, 차원을 높일 수 있는지 그 답을
알려 주는 말씀입니다.
구시대 기성인들은 <기도>를
엄청나게 합니다. 그리고 방언도 하고,
예언하고, 영적으로도 밝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새 역사>를
못 찾아옵니다. <신령한 말씀>을
못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를 죄에서 구원하고 천국으로
인도하는 구원자는 아무도 모르게
하나님과 성자께 이 시대를 구원하는
말씀을 받아서 가지고 옵니다.
이 시대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성자’를 모릅니다. 전능하신
삼위일체의 성자, ‘성자 본체’를
모릅니다.
오직 성자가 이 시대에 자신의
육으로 보낸 자, 시대 구원자만이
<성자 본체>를 압니다.
고로 성자는
‘온전히 아는 자, 자신의 분체,
자신의 육’에게만 이 시대를 구원하고
휴거시키는 말씀을 줍니다.
또한 시대 구원자도 조건을 세워
스스로 말씀을 깨달아 알기도 합니다.
그는 이 시대 말씀을 세상에 전하며
비진리와 기성의 그릇된 성경 해석과
그릇된 사고를 깨부수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고, 이 시대 사람들의
육과 영을 구원하고 휴거시킵니다.
◎ ‘연결된 것은 하나다.’
- 오늘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 먼저 오늘 하고자 하는 말씀이
무엇인지 이해시켜 주겠습니다.
오늘의 성경 본문 말씀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8-11절 말씀입니다.
이번 주에는 요한복음 14장 전체를
읽어 보고, 그 말씀처럼 이 시대도
그러함을 깨닫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가르쳐 주고 증거하며 이야기해 주니,
제자 빌립은 예수님께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았으니 정말 보고 싶다고
하며 보여 주면 만족하고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빌립아.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거늘
어찌하여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못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심을 믿어라. 내 말을 듣고
내가 행하는 일을 보고서 나를
믿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는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자’이시고,
<예수님>은 ‘메시아’이지만
‘땅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을 본 것이
<하나님>을 본 것일까요?
아무리 메시아가 한 말이라도
예수님을 본 것이 하나님을 본
것이라고 하는 말은 확 납득이
가지 않을 것입니다.
<전능하신 성자>께서 ‘예수님의 입’을
통해 하신 말씀입니다. 그 말이 확실히
맞지만, 이해하고 납득해야 확실히
알고 외칩니다.
★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다.
이 말씀은 정말로 엄청난 말씀입니다.
이 한마디를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서 <구원>이 좌우되고 <운명>이
좌우되고 <화>를 받느냐, <축복>을
받느냐가 좌우됩니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6
★ 이 말씀을 듣고 이해하지 못한
자들은 예수님을 극적으로 반대하는
반대자, 악평자가 되어
“참람하다. 자기를 신이신 하나님으로
보라고 한다.” 하며 즉시 배척하고
이단시하며 핍박했습니다. 그리함으로
<운명>이 ‘사망’으로 갈려 갔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듣고 이해하고 믿은
자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운명>이
‘생명’으로 갈려 갔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본체’가 아닙니다.
몸도 다르고, 살도 다릅니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 예수님을 본 것이
하나님을 본 것이라고 말씀했는지,
그 입장을 깨달아야 됩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을 본
것이 <하나님>을 본 것이라는 것만
깨닫지 말고, 이 시대도 <보낸 자>를
본 것이 <하나님, 성령님, 성자>를 본
것임을 꼭 깨달아야 됩니다.
그래야 신령해지고,
지혜와 지식의 차원도 높아지고,
영적 차원도 높아지고,
휴거의 차원도 높아집니다.
<잠시 쉬었다가>
오늘 말씀은
<최고로 합당한 비유>를 들어서
말해 주면, 모두 확실히 알 것입니다.
전에 성자께서 분체인 선생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것을 확실히
깨우쳐 주고 이해시켜 주려면,
<더 이상 없는 최고의 비유>를 들어
말해 줘야 된다. 그러나
이 <최고의 비유>는
신령한 자가 줘야 받을 수 있다.
본인이 그만큼 실력이 있어서
<비유>를 깨닫고 말하기도 하지만,
<더 이상 없는 최고의 비유>는
신령한 자가 줘야 받는다.
그런 비유는 밭에 숨겨진
보화같이 귀한 비유의 말이다.”
<합당한 비유>는
1억 천만금같이 귀한 말입니다.
이 비유를 들어 깨닫게 해 주겠습니다.
<최고의 비유>를 들어 말하는 자는
- 지혜를 받은 자이고
- 삼위일체가 깨우쳐 준 것을 받은
자입니다.
하루 종일 말하고,
한 시대를 두고 말해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럴 때 <최고의 비유>를 들어
‘한마디’만 해 주면 듣는 자들이
확 받아들이고 이해합니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다.
이에 대해
<1억 천만금의 최고로 합당한 비유>를
들어서 설명해 주고 이해시켜
주겠습니다. 이 비유를 찾으려고,
마치 보물을 찾듯 ‘수백 가지의
비유’를 찾았습니다. 그중에서
<최고의 비유>를 찾았고, 그제야
성령님은 이 설교를 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다.
<1억 천만금의 최고의 비유>가
무엇인지 영상을 볼까요?
수백 가지 비유 중에서 찾은
<최고 극적인 비유>입니다.
<최고 극적인 비유>이니,
먼저 마음의 준비를 잘하기 바랍니다.
최고로 잘 납득시키기 위함입니다.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예~쁜 여자 한 명이 극히 야한
비키니를 입고 해변에 출현했습니다.
순식간에 뭇 남자들이 여자를
쳐다보며 “정말 멋있다! 알몸과
같다!” 했습니다. 여자가
“저 예뻐요? 아름다워요?” 하니,
남자들은 “정~말 말로 할 수 없이
아름다워요!” 했습니다. 여자가
“저는 몸을 가꾸기 위해 21년 동안
운동을 했어요. 만족해요?” 했습니다.
이에 뭇 남자들은 “금단의 열매를
보면 더 만족할 거예요!” 하며
함성을 질렀습니다.
여자는 말했습니다.
“<내 몸>은 <금단의 열매>와 연결되어
있으니, <거의 벗다시피 한 내 몸>을
보는 것이 <금단의 열매>를 보는 것과
다름없어요.
그런데 어찌하여 <금단의 열매>를
보여 달라고 하는 것입니까?
만져 보려고 하는 것입니까,
따먹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이렇게 해도 이해를 못 하면,
옷을 입어 버리겠어요.” 했습니다.
그랬더니 남자들은
“알았어요! 이해했으니,
제발 옷을 입지 말아요. 옷을 입으면
물에 빠져 죽어 버릴 거예요.
비키니를 입은 것만 봐도 만족해요.
<금단의 열매>는
<몸>과 연결되어 있으니, 그것만 봐도
‘생각의 눈’으로 느껴져 보여요.”
했습니다.
여자는 “나를 잘 보세요.
앞도 보고 뒤도 보세요.” 하며
여자의 ‘각 지체’를 다 보여 줬습니다.
그러나 ‘핵’인 <금단의 과일>만
비키니에 숨긴 채 안 보여 줬습니다.
<금단의 과일>에 대해서는
말로 다 설명해 줬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내 몸>을 다 봤으니
<금단의 열매>를 본 것입니다.
<내 몸>을 보면서 <핵>을 느끼고
만족하면 됩니다. 더 이상은 없어요.
<금단의 열매>는 나와 결혼한
자에게만 보여 줄 거예요. 그 사람은
딱 한 명뿐입니다.” 했습니다. <끝>
◎ 이 여자는 누구일까요? 그리고
여자의 몸은 무엇을 뜻할까요.
이 비유를 ‘오늘 말씀’으로
연결시켜야 됩니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다.
이 말씀을 최고로 이해하도록
<최고의 비유>로 말씀했습니다.
(* 다시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 이 비유에서
<여자>는 ‘구원자’입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이고,
<이 시대 성약>에서는 ‘시대
구원자’입니다.
그리고 <여자의 몸>은 ‘구원자를 통해
전하는 하나님과 성자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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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열매>는 구원자의 육신을
쓰고 오신 ‘하나님, 성령님,
성자’이십니다.
곧 <구원자>가 <말씀>을 가지고
<삼위일체>를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끝>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직접
나타나지 않으십니다. 자신의 육으로
쓰는 ‘구원자’를 보이며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나타나십니다.
마치 <여자>가 자기 몸의 각 지체를
보여 주며 금단의 열매를 느끼고 보게
하듯이, <삼위일체>도 사랑하는
자들에게 구원자의 육을 보이며
나타나시고, 말씀으로 나타나십니다.
그러나 삼위일체와 그 삼위와 연결된
구원자를 하나로 안 보니,
<여자>가 <옷>을 입어 가리듯
<구원자>는 자신을 숨겨 버립니다.
<예수님>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본 자다.
이제 이 말씀이 이해되지요?
이와 같이 이 시대도 <시대 구원자>를
본 자는 <하나님, 성령님, 성자>를 본
자입니다.
신약 때 예수님은
‘육신 쓴 하나님과 성자’입니다.
성약 때 보낸 자는
‘육신 쓴 하나님과 성자’입니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 성자가 ‘예수님의
육신’을 쓰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이 시대에도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선생의 육신’을 쓰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본 것이다.
<분체>는 ‘사람’이고
<삼위일체>는 ‘신’이지만,
<삼위일체>가 ‘그 육신’을 쓰고
나타나 말씀하며 자신을 나타내고
드러내며 역사하신다.
연결된 것을 하나로 보아라.”
<신>이 그냥 말씀하면, <인간>은
아무도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고로 하나님과 성자는
‘그 시대에 딱 한 사람’을
‘자신의 몸’으로 택하여
‘전체’에게 말씀하며
‘자신의 뜻’을 전달하십니다.
(* 이에 대해 또 <비유>를
들어 말씀해 주겠습니다.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방송국의 프로그램은
‘전파’로 내보냅니다. 그러나
‘화면’이 없이는 못 봅니다.
하나님과 성자가 ‘말씀’을 주셔도
그냥은 못 듣습니다. 고로
‘그 시대 구원자’를 보내십니다.
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전파로
내보내면 ‘화면’을 통해서 보듯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시대 구원자의 육신’을 쓰고
‘시대를 구원하는 말씀’을 전파하여
<삼위>와 <삼위의 행하심>을 보게
하십니다. <끝>
◎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다.
- 말씀이 이해되지요?
지금까지 말씀해 준 터전 위에
<핵심>을 한 번 더 찔러서 말씀해
주겠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본체는 ‘인간의 육’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구원역사 6000년
동안 ‘본체’는 안 보여 주셨습니다.
모세,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봤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만,
그것은 ‘본체’가 아니라 그때 하나님을
깨우쳐 주려고 ‘그 차원 급’으로
보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신을 보이며
말씀하시기를 “손을 보아라. 뒤를
보아라. 세 사람을 보아라.”했습니다.
모두 ‘그 차원 급’으로만
나타나셨습니다.
그 모습이 ‘본체’가 아닙니다.
★ <여자의 금단의 열매>는 못 봐도
<여자의 몸>은 늘 볼 수 있습니다.
<몸>을 통해서 항상
<핵>을 보는 격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오셨을 때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못 봐도
육신 쓴 하나님, 성령님, 성자,
곧 <예수님>은 늘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보니 쉽게 자주 봤습니다.
만족했습니다.
이렇게 연결된 것을 하나로 본 자들은
종의 운명에서 아들의 운명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들이 곧
‘차원 높은 사도들’이었습니다.
사도들에게 ‘예수님의 정신’이
임하여 그들은 ‘제2의 예수님’이 되어
<신약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들의
증거를 듣고 그 시대 사람들은
“기다리던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오셨구나! 약속대로 오셨구나!
구약에서 하나님이 온다고 했던
역사가 예수님을 통해 새롭게
이루어지는구나!” 알게 됐습니다.
특히 열두 제자들과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몸’이 되어 <신약 복음>을
담대히 전함으로 예수님이 살아 있을
때 못 한 것들을 하면서 <신약역사>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직접
보려는 율법 아래 제사장들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못 봤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이 오시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결국 그 <운명>이 ‘사망’으로 갈려
갔습니다.
이 시대는 <성약시대>입니다.
다시 오신다는 약속대로 <성자>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함께 다시
오셨습니다. <시대 구원자의 육신>을
쓰고 다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고
‘성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성자의 육’으로서
‘신약의 구원주’입니다.
고로 그 육신은
다시 살아오지 않습니다.
육신이 죽은 후 2000년 동안
영으로 <신약역사>를 폈습니다.
이제 새롭게 시작된 <성약역사> 때는
예수님의 육신을 쓰고 신약역사를
펴셨던 성자가 시대 구원자의 육신을
쓰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함께
다시 오셨습니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8
그리고 성자는 그를 통해
이 시대에 해당되는 말씀을 주시며
<신부급 구원역사>, <휴거 역사>를
폈습니다.
신약 때와 같이 이 시대도
<구원자의 육신>을 통해 <삼위일체>를
본 자들은 아들의 운명에서 신부의
운명으로 바뀌었습니다.
더 나아가 구원역사 6000년 만에
<휴거>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고 삼위의 사랑의 대상체 신부가
되어 <천국 황금성>을 차지하고
영원한 운명이 뒤바뀌었습니다.
연결된 것은 하나입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 중요 부분
★ 핵심은 이것입니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다.
연결된 것을 하나로 봐야 됩니다.
→ 이것으로 인해 <운명>이 갈립니다.
<신약 때> 예수님의 육신을 통해
삼위일체를 본 자들은
구원받고 아들의 운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육신을 통해
삼위일체를 못 보고 믿지 않고
이단시한 자들은 구시대에 머무르거나
악평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성약 때> 시대 구원자의 육신을 통해
삼위일체를 본 자들은 구원받고
신부의 운명이 되었고,
더 나아가 휴거되어
<천국 황금성>을 차지하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고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시대 구원자의 육신을 통해
삼위일체를 못 보고 믿지 않고
이단시한 자들은 구시대에 머무르거나
악평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연결된 것을 하나로 보느냐,
못 보느냐에 따라 이와 같이
<운명>이 갈리게 됩니다.
섭리역사 안에서도 그러합니다.
시대 구원자를 통해서 얼마나
삼위일체를 보고 느끼느냐에 따라서
상, 중, 하로 운명이 갈리게 됩니다.
<휴거>에도 큰 차이가 생깁니다.
★ 구원자를 통해 삼위일체를 못 보고
삼위일체를 직접 보여 달라고 하면,
마치 비키니를 입은 여자가 옷을 다
입고 자신의 몸을 숨기듯,
구원자도 숨어 버립니다.
그러면 옷 위로 여자의 몸을 상상해야
하니 감도가 떨어지듯, 구원자를 숨긴
상태에서 삼위일체를 봐야 하니
깨달음의 강도, 불의 강도,
역사의 강도가 너무나 약합니다.
★ 사람들이 구원자를 통해
삼위일체를 못 보고 불신하니, 환난 때
구원자는 <옷>을 입고 숨깁니다.
한 개인이라도 구원자와 삼위일체를
하나로 안 보면, 구원자를 숨겨
버립니다.
그리고 보통으로만 말해 줍니다.
★ 개인이든, 민족이든 구원자와
삼위일체를 하나로 안 보고
안 믿어 주면, 마치 <옷>을 입듯이
<말씀을 내놓는 강도>와
<주가 나타나는 강도>를
낮추어 숨깁니다.
★ <몸>을 보면, 느낌이 강하게
옵니다. 그러나 <옷>을 입어 버리면
느낌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구원자와
삼위일체를 하나로 안 보고 안 믿으니,
구원자는 서서히 ‘말씀의 옷’을 입고
숨깁니다.
그러면 흥분이 가라앉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삼위일체는 ‘영’이니, 육으로 직접
보려고 하면 못 봅니다. 고로 예수님
때와 같이 이 시대도 하나님의 뜻을
이룰 육신, 구원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쉽게
구원자의 육신을 보여 주고
그를 통해 <말씀>을 주면서
삼위일체의 모습이 겹쳐 보이게 하며
<성약 구원역사>, <휴거 역사>를 펴
왔습니다.
그리고 ‘그 육신’을 쓰고 행하면서
<휴거>로 <창조 목적>을
완성하셨습니다.
특히 마지막 성약역사에 와서
삼위일체의 신부가 된 여러분들은
어느 시대 어느 누구보다도 구원자가
전하는 <가장 차원 높은 신부의
말씀>을 통해서 <삼위일체>를
보고 사는 자들입니다.
이 말씀을 주시면서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너희들은 구원자와
삼위일체를 하나로 보고 따랐기에
신부의 운명으로 뒤바뀌었고,
더 나아가 휴거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더 차원을 높이고
신앙의 열을 내야 된다.
휴거의 가치, 구원자의 가치,
섭리사의 가치, 시대 말씀의 가치를
더 차원 높여 깨닫고 열을 내지
않으면 <휴거의 차원>이 높아지지
않는다. <너희 생각의 차원>만큼만
역사가 일어난다.”
그리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해야
<지혜, 지식, 영적 차원>이
한 차원씩 올라가고,
어떻게 해야 <휴거의 차원>이
한 차원씩 올라가겠느냐.
연결된 것을 하나로 보아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그 모습과 신성을 나타내실 때
첫 번째로 <구원자의 육신>을
쓰고 나타내십니다.
<인간의 육신>은 기본적으로
‘삼위일체의 형상과 모양’을
닮아서 태어납니다.
눈, 코, 입, 귀, 머리, 손, 발, 팔,
다리, 몸 등 기본 구조는
삼위일체와 닮았습니다.
<구원자>도 인간입니다.
고로 ‘기본 구조’는
삼위일체와 닮았습니다.
그러나 ‘생김새’는
삼위일체와 다릅니다.
생김새만 다를 뿐이지, 삼위일체는
‘구원자’를 통해 말씀하시고 행하시며
구원하시니 연결되어 있으니
‘하나’로 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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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구원자의 육신을 쓰고 오신
삼위일체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만물>을 쓰고도 나타나십니다.
로마서 1장 20절을 보면
사도 바울도 말하기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했습니다.
지금까지
<보낸 자의 육신 쓰고 나타나신
삼위일체>에 대해서 말씀했지요?
말이 나왔으니,
<만물을 쓰고 나타나시는 삼위일체>에
대해서 조금만 말씀해 주겠습니다.
꼭 <만물의 글>을 배우고
귀히 여겨야 됩니다.
가르쳐 줬는데도 감각이 둔하고
무디니, 하나님이 <만물>로 여러
가지를 보여 주셔도 하나님이 무엇을
행하시는지도 모르고, 몰라서 사고도
당하고, 고통도 당하고, 고생도 하고,
육적으로도 해를 보고, 경제적으로도
못살게 됩니다.
<세상 학문>은 보편적으로는 다
배웁니다. 고로 습득한 지식이 거의
다 비슷합니다. 아무리 수준이 높아도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전능자의 글>은 ‘세상 학문’보다
만 배나 수준이 높습니다.
<전능자의 글>은
‘삼위가 창조하신 만물’입니다.
하나님, 성령님, 성자는
‘창조해 놓은 만물’로도
가르쳐 주십니다.
고로 ‘만물의 글’을 배워야 됩니다.
<만물의 글>을 배워서
<축복의 만물 계시 글>을 잘 읽어,
한 번에 평생 번 것만큼
돈을 많이 번 사람도 있습니다.
<만물의 글>을 배우고 잘 읽는 자가
더욱 ‘축복’을 받게 됩니다.
<만물의 글>도 역시 해변가에서
비키니를 입은 여자를
보여 주는 것과 같습니다.
노골적으로 다 벗어야 느끼는 것이
아니듯, 노골적으로 다 까놓고 말해
줘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해변가에서 수영복을 안 벗고 느끼게
하듯, <만물>을 들어 비유로 보여 줄
때 ‘만물의 글’을 읽고 느껴야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3.16>도 성자에게 해당되는
‘승천’은 알았지만, <승천>과 연결되어
있는 우리에게 해당되는 ‘휴거’는
몰랐기에 정말 억울하고 한이
남았습니다.
이와 같이 <만물 계시>를 보여 줘도
<만물의 글>을 못 읽고 못 깨달으면
하나님이 무엇을 행하시는지도 모르고,
자기가 기도한 것을 들어주시는지도
모르고, 자기만 계속 손해를 보고
억울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끝>
벌거벗은 모습을 까놓고 보여 주지
않듯이, 항상 다 까놓고 밝히지
않습니다. 옆의 것만 밝힙니다.
옆의 것을 보면서 ‘연결된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선생도 지난 70년 동안 <만물의 글>을
못 읽을 때는 못 얻었습니다. 그러나
<만물의 글을 읽는 법>을 배우고, 읽고
행하니 얻었습니다. 지도자들도 하늘의
일을 하니, <만물의 글>을 꼭 배우고
읽어야 됩니다.
작년 여름에 수련회를 통해서 가르쳐
줬고, 그 후에도 계속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고 있으니 꼭 배우고 읽어야
됩니다.
<3.16 날>에도 ‘만물의 글’을 읽고
‘휴거’를 깨달으라고, 여기저기에
‘만물’을 보여 주며 읽게 했습니다.
야심작에만 무지개가 깔려 있었고,
구름이 구름 기둥같이 공중으로
올라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며,
모두에게 알게 했습니다. 그러나
‘만물 글의 문맹’이니 못 읽었습니다.
자기 책임분담을 하여
깨달은 사람만 알았습니다.
<하나>를 가르쳐 주면
<그와 연결된 것>도 알아야 됩니다.
<육> 하면 <영>을 알아야 되고,
<여자> 하면 <남자>를 알아야 되고,
<보낸 자> 하면 <그를 보내신
삼위일체>를 알아야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한국의 세종대왕은 나라와 백성들을
사랑하여 백성들이 쉽게 배우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한글>을
만들었습니다.
세계의 여러 문자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한글>만이 누가 만들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고, 글자를 만든
원리까지 알 수 있기에 <한글>은
신비하고 뛰어나며 세계에서 최고로
언어의 표현을 다양하게 할 수 있는
글자입니다.
고로 진즉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이 시대 보낸 자도 그러합니다.
이 시대는 ‘삼위일체의 신부’가 되어
사랑하는 시대입니다.
선생은 <이 시대>를 너무나 사랑하여
하늘의 신부들이 <하나님, 성령님,
성자>를 잘 알고 잘 통하라고,
선생 먼저 <만물의 글>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과 성자는 선생에게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모습’을
보여 주시며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고, <하나님의 역사>는 낮은
데서 높은 데로 차원 높여 흐른다.”
하며 <만물의 글>을 읽어 깨닫게
하셨습니다.
선생이 먼저 <만물의 글>을 배우고
모두에게 가르쳐 주어 하늘의
신부들이 <만물 계시>로 삼위와 잘
통하며 살게 해 주었습니다. <끝>
섭리사의 계시자들 중에서
<만물의 글>을 매우
잘 읽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어느 날은 <월명동 잔디성전>에서
기도하는데, 벌레 한 마리가
자기 몸에 기어올랐답니다.
즉시 “이곳에는 사람들이 많으니
계시를 못 준다.” 하는 <만물의 글>을
읽고 자리를 옮겨서 <전망대>에 가서
기도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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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즉시 하늘이 주시는
계시를 길게 받았습니다.
그 사람은 ‘만물의 글을
정말 빨리 읽는 프로’입니다.
계시자로서 주님의 교회에 다니는
사람입니다.
모두 그같이 배워야 됩니다.
그래야 그로 인해
문제도 풀고, 얻을 것도 얻습니다.
삼위일체도 주도 급할 때는 순간
<만물>을 보여 주며 계시하고,
어느 때는 <말씀>으로 직접 계시해
주면서 할 일을 깨닫게 해 주고,
문제를 풀게 해 줍니다.
선생이 매일 <잠언>을 기록하여
‘하늘의 음성’같이 내보내면서
모두 각자 기도할 때나,
잠언을 들을 때나 각자에게
필요한 계시를 보냅니다.
그러나 모르고 의식하지 않으니
거의 못 받습니다. 받는 자들 소수가
선생에게 편지를 보내옵니다.
삼위일체께, 주께 ‘마음과 생각’을
향하게 하고 집중해 봐요.
즉시 깨닫게 됩니다.
선생이 섭리사의 수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면회해 주며 만나려면
불가능하니, <만물의 글>을 보면서
‘스마트폰’으로 통하듯 통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삼위의 글>인
‘만물 글의 가치’를 몰라서 못 통하고,
배우기 싫어서 안 하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외국어>만 배우려고 하지,
<삼위일체와 주와 통하는 언어>는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외국어에
능통한 자를 알아주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 영을 변화시켜 삼위의
영원한 사랑의 대상체가 된 자를
최고로 봅니다.
이것을 해야 모두 잘되기 때문입니다.
모르면 사탄과 상대에게 패하고
당하고 결국 실패합니다.
밤새워 공부하듯 자기 육과 영을
위해서 이에 해당되는 <만물의 글>을
공부해야 됩니다. <만물의 글>을
배우고 알아야 보여 줍니다.
고로 <만물의 글>을 공부하면,
<만물>을 보면서 삼위일체와 주와
수시로 통하게 됩니다. <스마트폰>을
사용해서 통하려면 돈이 많이 들지만,
<만물의 글>은 사용해도 돈이 안
듭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많이 얻게 됩니다.
앞으로 설교할 때나 어느 특별한 날을
정해서 만물의 글 읽기 시험을 보고,
평소에도 만물의 글을 잘 읽는 사람을
교회에서 뽑아서 상도 주고 용돈도
주라고 할 것입니다.
◎ 핵심을 한 번 더 말씀해 주고,
말씀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신약 때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보낸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구원주입니다.
고로 삼위일체와 연결되어 있으니,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 성령님,
성자와 하나님, 성령님, 성자가 보내신
예수님은 각각이면서도 하나입니다.
마치 부부끼리 애인끼리 <몸>은
‘각각’이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고
통하니 ‘하나’로 보는 것과 같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6>
이 시대 성약 때도 그러합니다.
<시대 구원자>는 성약 때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보낸 자로서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뜻을
<휴거>로 완성한 구원자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성령님, 성자>는
절대신, 유일신입니다. <보낸 자>는
삼위가 육으로 쓰는 자입니다.
삼위일체와 보낸 자 분체는
‘각각’이지만, 연결되어 있으니
‘하나’입니다. 고로 ‘그’를 본 것이
곧 ‘삼위일체’를 본 것입니다.
성자는 떠나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지상에서 있으면서 분체를 쓰고
일할 때는 <나 성자>와 <분체>를
‘각각 따로’ 봤다. 그러나 내가
지상에서 할 일을 다 마치고
휴거된 영들을 데리고 떠나면서
<분체>에게 다 맡기고 가니,
이제부터는 <나 성자>와 <분체>를
‘하나’로 보고 <나 성자>를 대하듯
<분체>를 대해라.
<나무>와 <열매>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고로 <나무>에게 잘하면,
그 영양분이 모두 <열매>에게 간다.
<내 분체>에게 잘하면, 그것이 모두
연결된 <나 성자>에게 온다.”
하셨습니다. <끝>
<연결된 것>을 ‘하나’로 봐야 되는데
‘각각’으로 보면, 자기만 손해를 보고
뒤처지게 됩니다. 성자가 말씀하신
대로 안 보면, 수준이 낮은 자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7>
<애인>은 천 리나 멀리 떨어져 있어도
연결되어 있으니 ‘하나’로 봅니다.
그러나 <남>은 옆에 가까이 있어도
연결되어 있지 않으니 ‘둘’로 봅니다.
이와 같이 <연결된 자>는
멀리 있어도 ‘하나’로 봅니다.
그러나 <연결되지 않은 자>는
가까이 있어도 ‘둘’로 봅니다. <끝>
현재 섭리사에 아직도
<분체, 구원자>에 대해 관념적으로만
알고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상태로 살다가는
휴거되지 않습니다.
겨우 <부끄러운 구원>을
받고 끝나는 자들도 있습니다.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인식과 사고가 다른 데 있으니
안 하는 것입니다.
이는 운전하는 자가 한눈팔고
운전하는 것과 같아서 순간 꽝 하고
사고가 나면 자기만 튕겨 나가고
그제야 ‘내가 왜 이렇게 됐지?
살 수 있을까?’ 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8>
<구원자>를 통해 <삼위일체>를
육으로 본다는 말은 전혀 허황된 말도
아니고, 환상적인 말도 아니고,
착시 현상도 아닙니다.
<뇌>를 못 봐도
<자기 몸>을 보면 됩니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11
<온몸>에 ‘신경’이 다 깔려 있어서
<뇌>와 연결되어 있으니,
<몸>을 본 것이
<뇌>를 본 것과 같습니다.
또한 지체는 다 연결되어 있으니
<왼손>을 봤으면 <오른손>을
본 것과 같습니다. 다만 모양과
생김새가 다를 뿐입니다.
그러나 연결되어 있으니
‘같은 살, 같은 몸’입니다.
이와 같이 <삼위일체>가
<구원자>를 보내어 연결되어 있으니,
<그>를 본 것이 <삼위일체>를 본
것입니다. <끝>
<월명동 성지 땅>도
‘보이는 곳’만 성전이 아닙니다.
연결된 곳은 다 통하니 월명동
전체가 모두 <자연성전>이고
<하나님의 백보좌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몸을
상징하여 전개한 곳>입니다.
고로 전체를 깨끗하게 의미 있게
써야 됩니다. 이를 알고
귀하게 보는 자만 귀히 씁니다.
<말씀 마무리>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영>은 잘 못 보지요?
그러니 ‘제2의 영’인 <혼>을 보면
<영>을 본 것과 같습니다.
<혼>은 말하기를
“<나 혼체>를 본 것이 <영>을 본 것과
같다. 그런데 어찌하여 <영>을 보여
달라고 하느냐.” 합니다.
<자기 혼>을 못 보는 사람도
있습니까? 그렇다면
<자기 육의 행위>를 보면 됩니다.
왜요?
<육>은 ‘제2의 혼’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낮에도 <자기 육의 행위>를 보면,
‘자기 혼’을 본 것입니다. 꼭 꿈에
<혼체>를 봐야만 본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눈’으로 못 봐서 못 본 것이
아닙니다. <인식>을 잘못하고 보니까,
봐도 못 보는 것입니다. 인식과 사고를
바로 하고 ‘눈’으로 봐야 그제야
보이게 됩니다.
<이 시대 보낸 자>를 본 것이
상징적으로 <하나님, 성령님, 성자>를
본 것입니다. 삼위일체가 그를 보내어
그를 통해 말씀하시고 행하시니,
<보낸 자>를 본 것이 <삼위일체>를
본 것입니다. 이것이
‘삼위일체를 육으로 본 것’입니다.
<보낸 자>가 하나님과 성자의 말씀을
전할 때는 거의 하나님과 성자가
말씀하신 그대로 줍니다. 어려워서
정말 못 알아듣는 것만 풀어서 전해
줍니다.
하나님, 성령님, 성자께서 ‘보낸 자’를
통해 직접 말씀하십니다.
<삼위일체가 보낸 구원자>의
‘육’마저 떠나면, 더 이상은
‘육’으로는 전능자의 말씀을
못 듣게 됩니다. 고로 그가 살아 있을
때 들어야 됩니다. 이제는 <성자>와
<분체>를 나누지 말고 연결되어
있으니 ‘하나’로 봐야 됩니다.
<하나님, 성령님, 성자>가
<선생>을 통해 말씀해 주셨는데
하나로 안 보고 둘로 따로 보니,
선생의 말을 믿지 않고 ‘성자가 직접
하시는 말씀’만 들으려 하게 됩니다.
이미 <성자>가 <분체>를 쓰고
말씀하셨으니, 성자는 더는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성자가 직접 하시는 말씀’만
들으려고 기다리면, 성자는 더는
말씀하지 않으시니 기다리다가
기회를 놓치는 자가 됩니다.
가르쳐 줘도 절대 믿지 않으면
그는 어쩔 수 없습니다.
아는 자들이 계속 가르쳐 주며
제대로 인식시켜 줘야 됩니다.
섭리사에 아직도 <성자>와 <분체>를
‘하나’로 안 보는 자들이 많습니다.
연결된 것을 하나로 봐야
‘근본’을 보게 되어 불이 붙고,
지혜와 지식의 차원도 높이고,
영적인 차원도 높이고,
휴거의 차원도 높이는데,
연결된 것을 하나로 못 보고
각각으로 보니, 자기만 육적으로
생각하여 ‘차원’을 높이지 못하고,
그에 따라 ‘영’이 빨리 변화되지도
않고, 그로 인해 <휴거>도
뒤처져서 본인만 손해입니다.
★ <휴거 300선 이상>부터는
연결된 것을 하나로 봐야
차원을 높여서 계속 올라가고,
배에 돛을 단 자가 되어서 먼 길을
항해하는 데 수백 미터씩 앞질러
갑니다.
★ 그동안 자기 공적이 부족해도
성자와 분체가 90% 이상 책임을 지고
이끌어 주어 불가능한 <휴거 300선>을
거의 다 이루었습니다. 고로
<3.16 날>에 성자는 300선 휴거의
영들을 데리고 <천국 황금성>에
가셨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이루어졌습니다! 핵심 경기는
‘승리’로 끝났습니다.
<휴거 300선>까지는
성자와 분체가 거의 다
해 주니 쉽습니다. 이제부터
‘더 높은 차원으로 도전’입니다.
★ <휴거 300선>은 이제
집을 짓기 시작한 격입니다.
이제 나머지는 ‘자기’가 하여
<휴거의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이때 휴거의 차원을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연결된 것을
하나로 보는 것입니다.
곧 <성자>는 떠났어도
<그의 육, 분체>는 땅에 있으니,
영이신 성자가 그의 육을 쓰고 계속
행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성자>와 <분체>를
‘둘’로 보는 자는 힘이 없습니다.
고로 차원을 못 높입니다.
★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보낸 자>를 통해
‘하나님과 성자의 말씀’을 듣고
행하며, 삼위일체를 사랑하며 살면서
‘신부’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면 됐지, 왜 <삼위일체>를 보여
달라고 하느냐.”
<심부름 하는 자>를 통해
‘목적’을 전해 줬으면
<심부름 시킨 자>가 안 나타나도
되는데 왜 그렇게 보려고 하느냐.
봐야만 믿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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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낸 자>를
보고도 못 믿겠거든
그가 하는 말과
그가 하는 일들을 보아라.”
모두 오늘 말씀을 제대로 알고
기존의 자기 사고를 다 쏟아 버리고,
연결된 것을 하나로 보고 살아라.
<삼위일체>와 <분체>
<분체>와 <하와의 표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연결된 것을
‘하나’로 보는 자는
주관권이 바뀌어,
지혜도, 지식도, 신령함도, 능력도,
휴거의 차원도 한 차원씩
쑥쑥 올라가게 된다.”
◎ 연결된 것은 하나다.
- 말씀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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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08일 수요일
<상징>을 보고
<주인>을 생각해라
[ 마태복음 18장 21-22절 ]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1 Then Peter came to Jesus and asked,
'Lord, how many times shall I forgive my
brother when he sins against me? Up to
seven times?‘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22 Jesus answered, 'I tell you, not seven
times, but seventy-seven times.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이번 주 주일에는
‘연결된 것은 하나다.’라는 주제로
깊은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 오늘은 ‘<상징>에 매이지 말고
<주인>을 생각해라.’라는 주제로
말씀하겠습니다. ‘연결된 것은
하나다.’라는 주일말씀과 하나로
연결된 말씀입니다.
◎ <핵>인 <주인>을 나타내기 위해
<상징>을 보여 줍니다. <상징>을
통해서 <주인>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저 기성인들도
<상징>에 매여 <주인>을 못 보고,
섭리인들도 <상징>에 매여
<주인>을 못 보는 자들이 있습니다.
<상징>에 매이면, ‘신앙’도 ‘마음’도
죽어 있게 됩니다.
◎ 기성인들은 <상징>에 매여
<신앙>이 죽어 있습니다. 예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듣고, 강사들은 이
말씀을 가지고 잘 가르치기 바랍니다.
◎ <상징>에 매이지 말고 <주인>을
생각해라.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자기 뇌 속의 ‘걱정, 염려, 잡생각,
썩는 것들’은 <생각>으로 싹 없애 버릴
수 있습니다. <영>도 그런 방법으로
썩는 것들을 없앱니다.
<영>도 ‘영의 음식’을 먹습니다.
<육>은 음식을 먹으면 배설물이
생기지요? 그러나 <영>은 음식을
먹어도 배설물이 생기지 않습니다.
<생각>으로 ‘자기 뇌 속의 걱정과 썩는
것들’을 없애듯, <영>도 ‘음식’은
먹지만 <생각>으로 아예 없애
버리기 때문에 배설물이 없습니다.
<영의 세계>는
‘생각 실상 세계’입니다.
생각한 대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 지금부터 오늘 말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에게 한 가지 묻겠습니다.
<여자의 선실과>를 제일 크게 만들어
놓았는데, 어디에 가면 이것을 볼 수
있는지 압니까? 여러분들이 섭리사에
와서 배운 것들 중에 있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바로 <월명동 지형>입니다.
<월명동>은 몇 가지 형상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여자의 선실과, 자궁 모양’입니다.
<여자의 선실과, 자궁>에서
생명이 잉태되듯, <월명동>은
‘시대 신부들이 탄생되는
상징적인 땅’입니다. <끝>
사람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도
건성으로 외식으로 생각하고 보고
들으면, 스치는 바람 격이 되어
보나 마나, 들으나 마나입니다.
사람들은 ‘크면’ 형태를 모릅니다.
<월명동 지형>도 크니, 어떤
모양인지 형태를 모릅니다.
성경에 ‘에덴동산’이 나옵니다.
<에덴동산>을 확대해서 보면,
‘구약, 신약, 성약역사’를 뜻합니다.
구약, 신약, 성약역사가 점진적으로
펼쳐지면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게 됩니다.
<에덴동산>을 축소해서 보면,
‘생명나무’와 ‘선실과’를 뜻합니다.
여기서 ‘생명나무’와 ‘선실과’는
<상징>입니다.
‘생명나무’와 ‘선실과’가 완전해야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완성하게
됩니다.
(* 생명나무와 선실과는 무엇을
상징하는지, 화면을 보면서 말씀을
듣겠습니다.) <영상2>
상징적인 것을 볼 줄 알아야 됩니다.
<생명나무>는 ‘아담’을 상징했습니다.
그런데 ‘아담’을 보세요. 아담의
몸이나 살이나 뼈에 ‘나무 같은 것’이
있습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비유>이며 <상징>입니다.
<상징>을 ‘비유’로 보고 깨닫는
지혜자가 돼야 합니다.
<신약 때 생명나무, 아담>은
‘메시아 예수님’입니다.
<성약 때 생명나무, 아담>은
‘이 시대에 보낸 자’입니다.
<선실과>도 ‘상징’이며 ‘비유’입니다.
바로 ‘하와’입니다. 하와의 지체나
살이나 뼈가 과일 같습니까?
전혀 아닙니다.
<상징>이며 <비유>입니다. <끝>
신약역사 때도, 성약역사 전반기 때도
‘시대의 하와’를 찾지 못했습니다.
<복직된 하와, 선실과>를 찾아야
<복직된 아담, 생명나무>와 일체 되어
비로소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완성합니다.
섭리역사는 37년 만에 <복직된 아담>
앞에 <복직된 하와>를 찾아서
<휴거>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완성했습니다.
이제 여러분 모두가 ‘제2의 복직된
하와, 복직된 선실과’로서 빛을 발하며
살아야 됩니다. 어떤 사람을
상징적으로 나타낼 때는
‘바위’, 혹은 ‘과일’ 등 여러 가지
만물을 비유로 들어 말합니다.
<바위>를 보여 주며 ‘어떤 사람’을
상징한다고 해도 그 사람의 살이나
뼈가 ‘돌’ 같지 않습니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14
<그 바위>를 보면서
<그 사람>을 생각하라 함입니다.
<계시>도 ‘상징’으로 옵니다.
지혜로 깨달아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성경을 보면 ‘메시아는
<구름> 타고 온다.’ 했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구름>은 ‘상징’입니다.
<메시아>가 ‘보이는 구름’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그 육신’을 타고 오십니다.
또한 <따르는 자들>이
‘보이는 구름’입니다.
<메시아>가 말씀을 전하면서
‘따르는 자들’을 타고 나타납니다.
<끝>
메시아, 따르는 자들 모두
‘사람’입니다. 그런데 <구름>을
비유로 들었습니다. <사람>과 <구름>이
비슷한 것이 무엇입니까?
없습니다. <구름>은 ‘상징’입니다.
<실체>를 깨달으면 ‘비유’ 없이
실감 있게 깨닫게 됩니다.
메시아는 구름 타고 온다고 했지만,
<메시아 실체>를 깨달으니
‘구름 비유’를 들지 않아도
<메시아 실체>를 보며 살게 됩니다.
<상징>은 ‘그 사람’을 생각하라고,
간접적인 ‘다리 역할’을 해 줍니다.
‘<상징>을 통해 <핵, 주인>을 알아라.’
함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월명동 <성자바위>도 ‘상징’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성자’를 생각하라
함입니다. 그런데 그 바위를 붙잡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해외 섭리인들은 월명동에
자주 못 오니까, <성자바위>를 자주
못 잡아서 ‘성자’와 함께하지 못하여
힘이 없지 않겠습니까?
<성자바위>를 보면서
‘생각의 눈’을 떠서 하나님, 성령님,
성자를 생각하고, 주를 생각하고,
삼위일체와 주와 교통하며 살라
함입니다. 그런데 <상징>을 통해
‘실체’를 보지 못하고, 돌만 붙잡고
기도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육적이며,
우상을 섬기는 자들과 같습니다. <끝>
글로 ‘어떤 사람의 이름’을 써 놓으면,
사람들은 그 글자만 만집니다.
<그 글>을 보고
‘그 사람’을 생각하라 함입니다.
<상징>은 ‘다리 역할’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상징>만
만지면서 대화합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처음에는
상징인 ‘바위, 나무, 각종 만물’을 쓰고
대화하십니다. 그러나 ‘그 만물’만
보고 끝내지 말고, <상징>을 통해서
<핵>인 ‘하나님, 성령님, 성자,
주’를 생각하고 대화하고 교통하라
함입니다.
<성자>는 ‘성자 상징’으로
<성자바위>를 선물로 주고 가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늘 나를 생각하고
나와 대화하고 이야기하기다.
돌과만 대화하면 돌대가리 된다.
<만물>은 하(下)차원이다.
<만물>은 ‘상징’으로서
‘주인에게 인도하는 인도자’다.”
어떤 사람은 월명동의
‘선생 상징 나무’를 보고서,
그것만 껴안고 기도합니다.
그 옆에 신령한 자, 주인이
서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선생 상징 나무>를 보여 주는 이유는
<선생 상징 나무>를 보고
<핵, 선생>을 생각하며
기도하고 대화하라 함입니다.
항상 <상징>를 보고 <핵, 주인>을
생각하며 기도하고 대화해야 됩니다.
<상징>을 보고,
<주인>을 생각하기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상징물>을
<실체>로 보고 섬깁니다.
그 상징물, 만물이 자기를
구원시키겠습니까?<상징>에 매여
‘생각’도 ‘신앙’도 죽어 있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만물>, 곧 ‘상징체, 표상적인 것’을
보여 주며 <핵>, 곧 ‘주인, 만물의
영장’을 깨우쳐 주려는 것입니다.
<주인>을 잊어버리고 사니,
<상징>을 눈으로 보고 <주인>을
생각하라 함입니다. <끝>
비유를 들어 말씀해 주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먼저 앞서 가면서
뒤에 따라오는 사랑하는 자가
잘 따라오도록
“나 이쪽으로 가니 잘 따라와라.” 하고
<글>을 써 놨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자는
‘그 글’만 만지며 좋아했습니다.
<그 글>만 만지며 좋아하라 함이
아니고, <그 글>을 보고
“나 앞에 있으니, 어서 와.” 함입니다.
(* 구체적으로 한 번 더 설명해
주겠습니다.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6>
어떤 사람이 앞에 가면서
뒤따라오는 사랑하는 자를 위해
나무에다 “나 상징 나무다.” 하고
써 놓고 갔습니다. 그 뒤를 따라가던
사랑하는 자는 <그 나무>를 보고서
<그 나무>만 안아 주고 가꾸고
퇴비하고 좋아하고 기뻐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는 진수성찬을
차려 주려고 만들어서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려도 안 와서 다시 가 보니,
<상징 나무>만 껴안고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끈으로 <상징 나무>와
<그 사람>을 묶어 놓고
“그렇게 좋으면 <나무>를 껴안고
사랑하며 같이 살아라.”했습니다.
그리고 <상징 나무>를 보고
<주인>을 찾아온 자와 함께
기뻐하고 잔치하고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후에 <상징 나무와 함께 묶여 있던
자>가 곤고하여 끈을 끊고 와서
‘뒷마당 잔치’에 참여하고 설거지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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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떠날 때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즉시 여행 짐을 싸고
짊어지고 따라왔습니다. <끝>
성자도 성령님도 말씀하십니다.
“상징에 묶이지 말아라.”
<기성>은 ‘상징’에 꽁꽁 묶여
있습니다.
<구름>에 묶여 있고,
<공중>에 묶여 있고,
<불 심판>에 묶여 있고,
<예수님 육체>에 묶여 있습니다.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온다고 하니
<구름>에 묶여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고, 육신이 공중으로 휴거된다고
하니 <공중>에 묶여서 영을 쳐다보지
못하고 있고, <불 심판>에 묶여 있으니
새 역사 진리의 말씀, 쪼개는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고,
예수님이 2000년 전의 그 모습
그대로 올 것으로 생각하며
<예수님 육신>에 묶여 있으니
예수님의 육신을 쓰고 오신
‘전능하신 성자’를 못 보고,
새 역사로 오지 못하고,
새 주인을 맞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지한 믿음의 줄로 묶인 것입니다.
구시대에서 외치던 자들은
<상징>으로 묶어 놓고 무책임하게
사라졌습니다.
상징에 매인 자들은
‘문자 신앙, 육적 신앙’이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결국 <새 역사의 핵>인
‘보낸 자’를 맞지 못했습니다.
결국 기다리기만 하고 끝나게
됐습니다. 모르고 산 자는
너무, 너무, 너무 억울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만물>만 ‘상징’이 아니라
<사람>도 ‘상징 인물’입니다.
<핵, 주인>을 위해서
‘그 사람’을 상징으로 보냅니다.
곧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메시아 예수님> 앞에
‘상징 인물’입니다.
곧 <세례 요한>의 증거를 듣고
<핵, 주인, 메시아 예수님>을
깨달으라 함입니다.
그러나 <상징 인물, 세례 요한>에게
매인 자는 <세례 요한>을 따르느라
<메시아 예수님>을 맞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그러합니다.
<구 역사>는 ‘새 역사 앞에
상징적 역사’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7>
<구약역사>는 ‘신약의 상징’이고,
<신약역사>는 ‘성약의 상징’입니다.
<구약의 아담>은
‘신약의 메시아 예수님 상징’이고,
<신약의 아담 예수님>은
‘성약 때 올 자 상징’입니다.
<구약>에 매인 자들은 기다리던
<신약의 메시아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또한 <신약>에 매인 자들은
기다리던 <이 시대 보낸 자>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끝>
섭리사에서도 그러합니다.
<주>는 ‘핵, 주인’입니다.
<교역자, 지도자, 관리자들>은
‘상징’입니다.
그러나 마치
<상징 바위, 상징 나무>를
붙잡고 기도하듯,
<교역자, 지도자, 관리자들>에게만
매여 있으면 <주>를 못 보게 됩니다.
이제는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마치 수료한 후 3년이 될 때까지는
성자와 분체가 시대 말씀을 가르쳐
주며 책임을 다해 도와주고 이끌어
주듯, <휴거 300선>까지는 성자와
분체가 책임을 다해 이끌어 줬습니다.
구원받은 후부터는 자기가 배우고
알았으니 구원자를 믿고, 시대 말씀을
행하고, 생명을 전도하고 관리하며,
주의 일을 하고, 교육도 받고 질책도
받으며, 삼위일체와 주를 더욱
사랑하며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이와 같이 <휴거 300선>부터는
자기가 <핵>을 깨닫고 <말씀>을
절대 믿고 행하면서 점점
<휴거의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 <휴거의 차원>을 높이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상징 인물’을 통해 ‘핵’을
깨닫는 것입니다.) <영상8> 중요
삼위일체 앞에 상징은
‘보이는 성자, 성자 분체,
땅의 구원자’입니다.
분체 앞에 상징은
‘보이는 성령, 분체의 분체,
하와 표상’입니다.
<땅의 분체, 구원자>는 ‘하나님,
성령님, 성자의 상징체’입니다.
삼위일체 앞에는
‘핵으로 인도하는 상징체, 상징
인물’이지만, 땅에서는 ‘주체’이며
‘핵’입니다.
<그>를 통해 ‘삼위일체’를 제대로
알고 삼위일체와 하나 되어
‘신부’로서 사랑하며 살라 함입니다.
<구원자가 보낸 자>가
‘구원자의 분체’로서 ‘핵, 곧
구원자에게로 인도하는 상징체,
상징 인물’입니다.
그 사람은 ‘성령의 상징체’이며
‘성자의 사랑의 대상체’입니다.
그 사람은 ‘전체 앞에 표상’으로서
분체, 구원자 앞에는 ‘상징체,
상징 인물’이지만, 따르는 자들 앞에는
‘핵’입니다.
곧 그 사람을 통해
‘핵, 구원자’를 깨닫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받아
신부로서 단장하라 함입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이것을 알고 평생 행하면,
<휴거 700선>까지 오른다.
그렇지 않으면 오르다가 만다.”
하셨습니다. <끝>
◎ 말씀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16
<상징>은 ‘핵, 주인에게로 인도하는
인도자’입니다. <상징>을 보면서
‘핵, 주인을 생각하기’입니다.
<성자바위>를 한 번 더 예로
들겠습니다. <성자바위>는 ‘상징’으로서
그 속에 있는 형상인 하나님, 성령님,
성자, 구원자, 치타를 알리는
중매자입니다.
만일 <성자바위>를 ‘상징’으로 안 보고
‘실체 핵’으로 본다면, <성자바위>와
떨어지면 안 됩니다.
<성자바위>는 ‘상징’입니다.
상징이 뜻하는 ‘핵, 주인’은
<삼위일체와 주>입니다.
고로 <성자바위>를 보면서
핵이며 주인인 <삼위일체와 주>가
항상 동행한다는 것을 깨닫고
인식을 바로 해야 됩니다.
<상징>은 ‘핵인 주인’이 없을 때,
상징으로 나타나 대화하기도 합니다.
<상징>에는
‘두 가지 뜻과 가치’가 있습니다.
첫째, ‘상징이 뜻한 상징 인물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둘째, 하늘이 상징으로 선물해
주셨으니 ‘선물의 가치, 작품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상징>은 ‘만물’이니, 꼭 관리해야
됩니다. 이와 같이 ‘그 상징의 주인’도
관리해 줘야 됩니다.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3.16> 이후로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한 가지만 이야기하니, 그와 연결되어
있는 ‘짝’을 몰라서 실패합니다.
<성자 승천>만 이야기하니, 그와
연결된 <자기 휴거>를 몰라서
곤고했습니다.
<시대 대표, 시대 아담>만 이야기하니,
그와 연결된 <신부 대표, 하와 표상>을
몰라서 차원을 높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짝, 두 가지’를 다
까놓고 말해 줍니다.
이는 마치 자녀가 엄마에게
“나 누가 낳았어?” 물으니,
엄마가 자기 몸을 보여 주고
비디오를 보여 주며 세밀하게
확실하게 가르치는 격입니다.
시대가 무지하여 깨닫지 못하니,
이같이 가르칩니다.
<짝의 원리>를 깨달아야 됩니다.
<성자 승천 - 신부 휴거>가 짝이고,
<시대 대표, 복직된 시대 아담,
신부 대표, 복직된 하와>가 짝이고,
<상징, 주인>이 짝입니다.
한 가지에 매이지 말고,
양쪽을 깨달아야 됩니다.
<짝의 원리>를 깨닫고 알 때 신기하고,
더욱더 믿어집니다.
자기가 보화를 찾은 격입니다.
설교할 때 모두 들으라고 말해 줘도
모르니 편지로 말하든지, 혹은
성령이 “너다. 깨달아라.” 하고
노골적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깨달으라고 <꿈>으로도, <만물>로도,
<말씀>으로도 ‘상징’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자기를 보고 말하고 계시해도
모르니, 그때는 직접 몸부림치게 하여
깨우쳐 주십니다.
<상징>으로 보여 줬는데 모르니,
결국 직접 사고를 당하거나 직접
몸부림쳐야만 그제야 압니다.
고로 꼭 <상징체>를 보고
<핵, 주인>을 깨달아야 됩니다.
깨달으면 몸에 안 부딪히고
해(害)를 피하는데, 깨닫지 못하면
몸에 부딪혀야 해를 피합니다.
깨닫는 것은 ‘인간 책임 분담’입니다.
가령 ‘샘’을 발견했다 합시다.
그런데 그 샘에서 나오는 물이
먹어도 되는 물인지 확실히 모르면,
- 그 샘물을 먹다가 도중에
‘못 먹는 물이겠지?’ 하고
의심하며 안 먹기도 하고,
- 혹은 목이 탈 때만
샘물을 이용하며 먹습니다.
하나님이 <시대 표상으로 세운 자>도
확실히 모르면,
- 믿고 동행하며 살다가도
등을 돌리고,
- 혹은 가까이하다가도
믿음이 약할 때는 멀리하게 됩니다.
<삼위일체 앞에 육으로 세운 상징자
분체>도 자기가 아는 것에 따라서
믿어졌다가, 안 믿어졌다가 합니다.
확신에 선 자는 분체와 일체 되어
그를 중심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오늘 말씀
“<상징>을 보고 <핵, 주인>을
생각하고 깨달아라.”입니다.
<상징>에 매이면
<핵, 주인>을 못 보고
<상징>으로 인해
‘신앙’이 죽어 버립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17
2015년 07월 10일 금요일
신약의 성령 역사와
성약의 성령 역사
작성일 : 2015. 6. 12. AM 1:00
작성자 : 주달해
(새벽에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
*성령님의 말씀*
<신약의 사도들이 받은 성령>과
<성약의 사도들이 받는 성령>은
그 자체가 너무도 다른 것이다.
<신약의 성령>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 이후
마가의 다락방에서
그를 깨달은 소수의 제자들,
곧 신약의 사도들에게 임하였고
<성약의 성령>은 성자의 승천 후
신부의 권세를 가진 모든 자들에게
승리한 역사를 깨닫게 하며 임한다.
<신약의 성령>은 ‘한의 성령’이었고,
<성약의 성령>은 ‘희망의 성령’이다.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
그를 깨달은 자들이
‘이미 지나간 때’에 대한
‘후회’와 ‘한’으로
주를 증거하며 그의 말씀을 외쳤다.
그때에도 나는 그들에게 임하여
그들을 ‘깨닫게 함’으로 역사했다.
제대로 깨닫고 알아야
지나간 과거가 영광이었는지,
후회스러운지 알게 된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기 전
자신의 주를
세 번 부인한 베드로의 한,
나사렛 예수가 살아 있을 때
예수와 그를 따르는
제자들을 죽이고 핍박했던
사도 바울의 한,
주를 안다 하나
깨닫지 못했던 제자들의 한,
예수와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마지막인 줄을
몰랐던 제자들의 한,
예수의 육이 살아 있을 때
더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한, 그를
온전히 모시지 못한 것에 대한 한...
나 성령이 신약의 제자들에게 임하여
지난날 예수의 육을 쓰고 행했던
모든 것들을 가르쳤으며,
지난날 예수가 그들에게 말씀했던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였다.
고로 성령으로 깨달으니
지난날이 그들에게 한이 되었다.
지나간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 속의 뜻을 모르면
한 또한 없는 것이다.
주를 진실로 깨달음으로,
주와 함께했던 지난날들을 깨달음으로
<신약의 성령>이 그들에게
‘한’으로 임했다.
성령을 받고 이를 알고 느끼고 깨달은
자들이 한을 품고 목숨 다해 외쳤다.
고로 기독교는 전 세계로 뻗어 나가며
그 교세를 확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의 역사>는
<한의 역사>다.
성약의 역사도 그와 같다.
예수의 십자가 길,
곧 선생의 시대 선고 기간 10년의
세월이 아니냐.
선생이 그 안에 있는 동안은
그를 따른 너희들에게
예수의 십자가 사건 후 제자들이 맞은
때와 같은 때였다.
한과 후회의 세월이었다.
이 시기에 섭리의 한과 후회는
신약 제자들의 그것과 같았다.
곧 과거로 인한 현재의 한이었다.
그러나 나 성령이 재차 강조하기로는,
“현재의 역사는 시대 구원자의 육이
살아 있다!” 했다.
시대 구원자의 육신이 살아 있다 함은
삼위가 이 땅에 발을 대고, 몸을 쓰고
직접 역사함이니 이를 진정 깨달아라.
너희는 그의 육신이 살아 있어 모른다.
신약시대 그 제자들의 한을 모른다.
그들의 심정을 모른다.
예수가 시대를 향한
십자가 조건 이후에도
‘그 육신이 살아 있었더라면...’ 하고
제자들이 얼마나 바라고 원했는지
너희는 진정 모른다.
예수의 육이 죽어
이 땅에 없음으로 인해 느꼈던
삼위의 심정을 너희는 모른다.
모르니, 지금 이때
얼마나 크고 감사한 때를 보내고
있는지 모른다. 진정 깨달아라!
인류 역사 이래,
지구 창조 이래 가장 큰 날인
<성자 승천일>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
그 한을 너희도 가지고 있지.
그러나 시대 구원자의 육을 빼앗긴
한에 어찌 비하랴!
땅에서 매야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어야 하늘에서도 풀린다.
시대 구원자의 육이 시대 역사의
판도를 좌우한다.
섭리사는 시대
구원자의 육과 함께한 전반기 21년,
그를 보지 못한 무덤 기간 14년,
시대 사명자의 인류를 향한
조건 지불 이후 부활을 이루었고,
독립의 때를 이미 맞았다.
이제는 성약역사 부활과
독립 이후로 역사가 펼쳐져 와서,
완전한 역사의 승리를 선포하였다.
하나님의 인간 창조의 목적을
이곳 섭리에서
그를 통해 이루었노라고
진리로써 완전히 선포했다.
<신약 때>는
나사렛 예수의 죽음 이후
‘완전한 한의 역사’였다.
시대 구원자는 시대를 향한
완전한 구원의 조건을 지불하였고,
남은 때는 영광의 때와
역사 승리의 때만이 남아 있었는데,
그 승리의 주인인 구원자와 함께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사렛 예수는 육신 없이
신약시대의 사명자로서,
2000년 역사를 영으로
성자와 함께 이끌어 갔다.
육 없이 영으로 하는 역사가
그 얼마나 힘이 드는지,
이 또한 너희는 모른다.
너희는 선생 없이 역사를 뛰어 본
적이 단 한순간도 없었다.
이를 감사하며 시인하여라.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18
섭리사에서
영으로, 혼으로
영계와 영의 실체를 보고
시대 구원자를 마주하며
삼위와 통하는 자들이
과연 몇이나 있느냐?
육을 통해 섭리하기에 통하고
완전한 역사를
이루어 갈 수 있는 것이다.
재림과 휴거의 인봉,
부활과 독립의 역사,
완전한 역사의
승리로 이끌어 오기까지
그의 육이 없었다면
비교도 할 수 없이
더디고 힘들었을 것이다.
말씀을 받는 자가 없으면,
역사의 길이 막혀 만사가 불가능하다.
성약역사는 지금과 같이
성장하고 승리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를 진정 알고
주께 영광을 드리고 그를 지키신
삼위께 감사와 영광을 무궁하게
돌리고, 그때마다 삼위의 몸이 되어
선생을 지킨 부흥강사에게 감사하라.
육신을 위한 역사는 육으로 100%
하기에 육 없이는 100% 불가능하다.
육이 있어야 100% 완성한다.
육으로 승리하고 육으로 완성해야
영의 세계에서도 100% 여한이 없는
영광의 승리로 인정이다.
고로 섭리사는 100% 승리했고,
100% 완성했다.
2015년 3월 16일, <성자 승천의 날>
너희는 성자와 ‘희망 있는 이별’을
하였다. 왜 사랑하는 성자와의 이별이
희망이 있는 이별이냐?다시 만나되,
기쁨으로 더 이상적으로 다시 만나기
때문이다.
너희와 선생도 그와 같다.
<이 기간>은 너희의 육과 선생의 육이
다시 만나되, 기쁨으로 더 이상적으로
다시 만나기 위해 ‘희망 있는 이별’을
한 것이다.
고로 지금 이때는 희망의 때,
성약역사의 최고 절정의 때,
곧 승리한 역사 이후 구원자와 함
께할 그날을 맞이하기 위해 보내는
희망의 때다.
<신약>,
시대가 구원자의 육신을 잃고 맞은
불의 역사는 ‘한을 품은 역사’이고,
<성약>,
구원자의 육신을 지키고 맞은 불의
역사는 ‘희망을 품은 성령의 역사’다.
신약의 철길이 끊겼고, 이제는
성약역사의 철로만이 남아 있다.
<길>이 남았고,
<그 길을 달릴 자들>과
<시대 사명자의 육>이 살아 있으니
진정 희망의 역사다. 영광의 역사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역사다.
찬란한 빛의 역사다.
승리한 역사에서
너희의 남은 한때는 곧 이때이니,
선생의 육신과 함께 뛰는 때다.
(성령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님께,
“성령님! 너무 엄청나요. 저는
선생님의 육과 함께 뛰어 본 적이
없으니까 그 영광의 날이 너무
기대돼요! 그런데 두렵기도 하고,
그날이 어떨지 상상조차 안 돼요.”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
상상할 필요 없어.
늦게 왔어도 불리한 것이 없다.
왜냐하면 과거와는
절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들을
진정 기억하여라. 매일을 남은 한때,
희망의 때, 그 때를 위하여 살아라.
이 역사와 너를 승리로 이끈
구원자를 위하여 살아라.
또한 그를 진정
네 마음에 구원자로 모셔라.
현재에 충실함으로 미래를 예비하여라.
‘희망의 성령’,
‘기쁨과 환희의 뜨거운 성령’을 받고
승리한 구원자의 증거자가 되어라.
승리한 역사의 증거자가 되어라.
<신약 때>
나사렛 예수가 죽은 후
무엇으로 그를 증거했겠느냐.
그를 믿는다는 것만으로도 목숨이
위태로웠던 그때, 무엇으로 구원역사의
희망을 주었겠느냐.
‘지난날의 역사’를 들어,
그가 다시 온다는
희망을 주며 증거했다.
<성약>은
‘구원자와 함께할 남은 때’가 있기에,
그 희망이면 된다.
‘승리한 역사 위에
주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가장 뜨겁고 불같고
위력 있는 말이다.
너희의 희망이
세상의 희망이 되게 해 주어라.
또한, 너희도 매사에 이것을 잊지 말고
불같은 희망에 취해 살아라.
허상의 희망이 아니다.
미련한 일이 아니다.
실체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끝나지 않은 역사의 가장 찬란할
마지막 한때이기 때문이다.
나 성령의 마음을 받으라.
그 날을 바라보며 느끼는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을 같게 하여라.
희망을 잊지 마라.
그 희망을 망각하지 마라.
너희 모두와 천주가 함께 고대한
그 날이 이제 왔고, 지금도 오고 있다.
이를 늘 생각하고 기억하고 사는 자가
되어라.
이를 잊으면
희망이 죽고 역사가 죽는다.
나 성령이 너희와 함께하리라.
진정 사랑한다.
성령이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19
2015년 07월 10일 금요일
나와 목적을 같이함으로
영원히 동행하자.
지금은 여리고 성을 도는
일곱째 날이다.
작성일 : 2015. 6. 12. AM 3:00
작성자 : 정은조
(며칠 전, 모교에서 어떤 교수가
인터넷 강의 도중 이단 종교들에 대해
얘기하면서 섭리를 악평하는 인터뷰
영상도 상영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교수에게 적극 항의해서 결국 그
교수는 인터넷에 사과문을 올리고
그 영상을 삭제했습니다.
그 교수와 통화한 내용을 전해
들었는데, 그 교수의 자세와 선생님에
대한 오해가 너무 속상해서 정말
우리가 제대로 증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새벽기도 때 선생님과 다른 얘기들을
하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
*선생님의 말씀*
어제 악평한 교수와 통화한 내용을
들어 보니 어땠느냐?
(너무 속상했어요. 정말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구나.”
싶었어요.
“정말 저희들이 선생님과 이 역사를
증거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정말 빨리 선생님의 발판을
만들어야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리고 모르면서 함부로 악평하면
하나님께서 가만있지 않으실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심판은 하나님이 하시되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은
너희들이 해야 한다.
너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만큼이다.
(아멘, 가만있지 않겠어요. 더 많은
생명들, 더 멋진 생명들로 선생님의
청중 발판을 만들어 세상 앞에,
기성 앞에 그것이 증거가 되게 할게요.
선생님, 각자의 파트에서 전 섭리가
온전하게 하나 되어 일어나서
밀어붙여야겠어요. )
사랑아, 그것이다.
너희가 너희 각자 한 명이 전도하는
것으로 생각해서 되겠느냐.
나와 손발이 맞으려면
전 섭리가 하나 되어
일어나야 되는 것을 깨닫고
그에 해당되는 기도,
그에 해당되는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
내가 너희 전체가 하나 되어
‘우~’ 하고 일어나도록
복직된 하와, 신부 대표의 사명까지
이제 확실히 밝혀 주며
하나 되도록 잡아 주지 않았느냐.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
마지막 7일째에는
7바퀴를 돌고 나서
다 함께 소리 지를 때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을 기억하지?
그러한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여호수아 6장 2~5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섭리야, 일어나라!
하나 되어 일어나라!
너희가 너희 혼자 한 명을 전도해서
전도 공적을 쌓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나와 같은 스케일로 크게 생각하고
움직이자.
너 한 사람만 생각지 말고
섭리 전체를 생각하며
오늘, 올해만 생각지 말고
나의 당세 때, 그리고 앞으로의
1000년을 내다보고 나와 함께
스케일을 맞춰 뛰자!
(이후 깊은 기도에 들어가
성령에 사로잡혀 기도할 때,
‘지금 우리는 세상과 기성이라는
여리고 성을 마지막 7일째에,
7바퀴 도는 단계이구나.’ 하고
깨달았을 때 성령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
맞아.
곧 “와~” 하고 소리를 질러야 한다.
지금 모든 준비를 해서 선생이 나올
때는 “와~” 하고 소리를 질러 세상과
기성이라는 여리고 성을 무너뜨려야
한다.
(이후 새벽예배 시간이 되어,
새벽예배 후에 다시 기도했습니다.
오늘 새벽잠언이
‘구원자의 육신이 살아 있는 기간이
휴거 기간’인 것에 대한 말씀이라서,
얼마 전 선생님께 결재받은 계시말씀
<휴거 기간의 근본 의미>를
다시 읽어 보고 기도했습니다.
‘누군가가 이런 말씀의 앞뒤를 자르고
일부분만 악의적으로 발췌해서
악평하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악평했던 교수처럼 섭리에서는 선생님
자체를 하나님으로 가르치고 그렇게
믿는다고 오해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문득, 대학교 1학년 때
선생님에 대한 악평 즉,
“어떤 사람이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한다.”는 친구의 말을 들었던 때가
생각이 났습니다.
기독교를 싫어하고
하나님도 잘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선생님과
기성에 대해 한마디씩 악평해 버렸던
것이 기억이 났습니다.
당시에는 모르고 내뱉었던 말이었지만,
섭리에 온 이후로 그날의 그 한마디를
엄청나게 회개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나니 너무 죄스러워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어제 그 교수가 ‘섭리 회원들은
선생님을 하나님으로 믿는다.’고
악평한 그 말과 과거에 제가 말했던
것이 오버랩되면서 너무나 큰 죄를
짓고 사는 이 시대임이
깨달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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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선생님의 억울함을 없애고,
이 시대가 지은 가장 큰 죄에서
벗어나게 하는 길은 오직
‘선생님을 통해 성삼위를 만나는 것’에
대해 세상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을
진리의 말씀으로 증거하는 것밖에
없다고 깨달아졌습니다. )
진정 깨달았느냐?
네가 지었던 죄를
세상 사람들이 짓고 있다.
보낸 자를 알지도 못하면서
무심한 말로 툭툭 악평하고
지나가는구나.
그래도 너는
시대 말씀을 들었기에
네가 무심코 악평했던 자가
너를 구원할 자임을 깨닫고
회개함으로 믿고 따라 구원도 받고,
끝까지 사랑으로 따름으로 인해
급기야 휴거까지 되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자주 없구나.
자신을 구원할 자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들의 죄를 대신해서 짊어지고
악인의 누명을 쓰고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자기들 배부르기에만
급급해 바쁘게 살고 있다.
너처럼 이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주를 따르지 않고서야
어찌 그들에게 구원이 있겠느냐.
그러니 너희들이 시대의 악만을
탓하지 말고 이 말씀으로 그들을
구원시켜야 한다.
나와 함께 그 일을 하자.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이 시대 구원과 휴거를 위해서이다.
나는 오직 그 일을 하기 위해
이 땅에 존재한다.
성삼위께서 나를 쓰시는
이 목적이 아니면 내가 이 세상에
오래오래 살며 각종 부와 명예를
누린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이제 너희의 삶도 그러하지 않느냐.
휴거로 이미 이 땅에 태어난 창조
목적을 다 이루었고 더 이상 이
땅에서 이룰 것이 없는 너희들이다.
물론 내가 살아 있고 너희가 살아
있는 동안 휴거의 차원을
높이는 것이 남아 있지만 말이다.
핵적인 창조 목적을
휴거로 이루었으니 너희가 이 땅에서
이룰 근본 목적을 이루었다.
이제 너희에게 남아 있는
인생의 목적은 무엇이냐?
그 목적이 나와 같은 자,
영원히 같이 동행하게 될 자이다.
휴거로 황금성에 올라왔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미 영으로 육으로 그 차원을 높이며
시대의 사도가 된 자들이 나오고 있다.
영계에서도 나와 함께 사도의 삶을
사는 자들이 있다.
(“와! 영계에서 벌써 사도의 삶을
사는 자들이 있어요? 죽어서도
영계에서 선생님을 따라다니며
선생님을 돕게 해 달라고
기도했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 휴거가 되었으니 그렇게 사는
자들이 있다는 말씀이신 거죠?
영원한 목적입니다.” )
나와 목적을 같이하겠느냐?
그럼 이제 나와 함께하자.
나와 함께 외치자.
내가 선포한 이 진리의 말씀을
알아듣고 뒤집어져서
내가 살아 있는 당세에
나를 통해 성삼위를 만나고
사랑함으로 휴거되어
창조 목적을 이루고 나와 너희와 함께
그 남은 인생의 목적을 같이할 자들을
찾자.
영원히 나와 너희와
함께할 신부들을 찾아내자.
시간이 얼마 없다.
많이 전도하는 것이 맞되,
이런 자들을 찾아내어라.
진정 너희가 나와 목적을
정확히 같이하고 전도해야
너희와 그들로 인해
내가 살아 있는 당세에
시대를 뒤집는 역사가 일어난다.
명심하여라.
먼저는 너희가
나와 목적을 같이해야 한다.
그리고 그럴 자들을 찾아내어
동역자로 삼아 함께하는 것이다.
자신 한 몸 휴거되었으니
안심하고 그냥저냥 남은 인생을
살겠다는 마음을 가진 자들은
부족한 자신의 휴거 점수에도
불구하고 성자와 내가 세운 조건으로
300선을 채워 휴거되었으나
거기서 계속 멈춰 서 있으리라.
일단 나는 구원자로서의 사명과
사랑으로 거기까지는 해 주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끊임없는
말씀과 관리로 너희의 휴거선을
올려 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은 너희의 몫이다.
나는 할 것을 다 했다.
이제는 너희가 얼마나 나와 목적을
같이하고 동행하느냐에 따라
천국에서 나와 너희 성의 거리가
정해지는 것이다.
사랑아, 이 말씀을 꼭 전해라.
부끄러워도 너의 사연도 얘기하고.
수많은 자들에게 자극이 될 것이다.
그 옛날 네가 무심코 한마디 악평을
내뱉었을 때 나는 이미
혼으로 영으로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이 섭리에 오는 것을 허락했다.
(선생님, 정말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
아무리 악평한 자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받아 준다.
문제는 그들이 지은 악평으로 인한
죄가 크면 클수록 그 죄 짐이 무겁고
사탄이 그들에게 씌운 죄의 사슬이
커서 이 말씀을 듣고 자신 스스로
인정하기가 쉽지가 않을 뿐이지.
이 말씀을 듣고 자신의 무지와 악평의
죄를 진정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온
자를 내가 내치지 않는다.
내가 누구인지 알겠지?
(아멘. 진정 삼위의 몸이십니다.
정말 성경에 나온 대로 사셨습니다. )
(베드로후서 3장 9절)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내가 성삼위의
단순한 몸이기만 하겠느냐.
삼위의 정신, 사상, 사랑을 품음으로
행함까지 일체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너희가 이것을 증거해라.
내가 살아 있는 기간이 얼마나 길다고
너희들이 그렇게 안일하게 사느냐.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21
진정 나와 목적을
함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서 나와 목적을 맞추어라.
그것이 나와 즉, 나를 통해 역사하는
성삼위와 영원히 동행하는 삶이다.
휴거만 된다고 해서
나와 나를 통해 역사하는 성삼위와
영원히 동행하는 것이 아니다.
너희가 이룬 너희의 휴거 점수와
지금 너희의 삶을 생각해 보면
너희 스스로도 깨달아질 것이다.
그러니 천국에서
나의 성과 너희의 성이
얼마나 가까울지, 막연히
욕심만 내고 끝내지 마라.
너희가 진정 지금부터 나와
동일한 목적으로
동일한 심정으로
동일한 행동으로
영, 혼, 육 모두 가까이 살 때
천국에서 너희 성과 나의 성도
그만큼 가까워지는 것이다.
거의 다 휴거되었다고 하니
안심하고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는
자들이 없도록 이리 내가 말해 준다.
이 말은... 모두 나와 함께
가까이 같이 살자 함이다.
그만큼 너희를 사랑한다 함이다.
그러니 진정 나의 사랑을
제대로 알고 나와의 사랑을 이루자.
사랑하면 동행한다.
한곳을 바라보고 같이 걷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뛰고 날아야 하는 때다.
내가 나가서 외치는 때는
여리고 성을 도는 때가 아니다.
여리고 성을 향해 마지막으로 ‘와~’
하고 소리 질러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때다.
그것을 진정 깨닫고
지금 너희가 각자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너희 모두가 삶의 한순간도
이 목적을 잊어버리지 않고
나와 동행할 때
세상을 뒤집는 역사가 일어난다.
이미 휴거로 창조 목적을
이루었으므로 핵적인 승리를 했지만
여기서 끝낼 역사가 아님을
너희도 알지?
진짜 너희가 원하듯
나의 명예도 회복시켜 주고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최대로 많은
자들을 휴거시키는 휴거의 역사,
진정 너희가 나와 목적을
같이하는 만큼 이뤄진다.
그리할 때 세상을 뒤집게 된다.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어서
너희의 마음부터 뒤집도록 해라.
(아멘. 진정 선생님과 남은 생의
목적을 함께하고자 합니다. )
모두 내 앞에
그러한 마음으로 나오너라.
내가 너희와 함께하리라.
내가 영원히 그런 너희와 동행하리라.
자기 앞에 있는 문제들을 어서
정리하고 뛰어넘어 극복해라.
큰 목표를 가지고 가는 자는
사소한 것은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이다.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어서 나서자.
나의 손을 잡고 나와 함께 나서자.
알파절에 너희들이 다짐했던
그 마음을 더 견고히 만들어라.
근본적으로 나와 목적을 함께함으로
너희의 마음을 계속 칼처럼 갈고 닦아
너희 앞에 있는 사탄을 무찌르고
무지와 악평으로 사탄의 사슬에 묶여
있는 자들을 시대 복음의 칼로
죄의 사슬을 끊어 내고 구해 내자.
내가 작년 연말에
섭리의 너희들뿐 아니라
세상 모든 자들, 악평자들의 죄까지도
용서해 준 것 기억하지?
나는 이미 다 용서해 줬다.
그들이 더 죄를 짓기 전에
복음으로 구원하자.
너희가 들었던 말씀을 가르쳐 주고
그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져
휴거로 창조 목적이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그러한 일을 해 준 내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가르쳐 주어라.
그러한 자가 사도다.
진정한 사도들이 넘쳐 나는
사도의 시대가 되길 내가 기도한다.
너희들을 사랑해서
너희들과 영원히 동행하고 싶어 하는
너희들의 구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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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12일 주일
진리와 성령
인간과 영의 한계
[ 요한복음 5장 24절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4 'I tell you the truth, whoever hears
my word and believes him who sent me
has eternal life and will not be
condemned; he has crossed over from
death to life.
[ 고린도전서 15장 53절 ]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3 For the perishable must clothe itself
with the imperishable, and the mortal
with immortality.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세 가지를 말씀해 주겠습니다.
말씀 내용이 좋아서,
특별히 대만 순회 때
주일말씀으로 전해 주게 했습니다.
말씀의 주제는 ‘진리와 성령,
인간과 영의 한계’입니다.
◎ 오늘은 세 가지를
말씀해 준다고 했지요?
이 세 가지 말씀의 핵심을
잊지 않도록 먼저, 오늘 말씀할
세 가지 말씀을 잠언 세 개로
축소해서 해 주겠습니다.
오늘 첫 번째로
전할 말씀의 잠언입니다.
(* 이해가 잘되도록 화면을 보면서
전해 주겠습니다.) <영상1>
<좋은 세계>로 가느냐,
<악하고 나쁜 흑암의 세계>로 가느냐
하는 것은 자기 생각과 행실에 따라서
좌우된다. 자기 손으로 물건을 만들
듯이, <좋은 삶>도 <나쁜 삶>도
자기가 생각하고 행하면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끝>
두 번째로 전할 말씀의 잠언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사람도, 만물도, 신도 ‘한계’가 있다.
하나님은 사람과 만물뿐 아니라
신에게까지 ‘한계’를 정해 놓고
창조하시어 그 한계를
넘지 못하게 하셨다. <끝>
세 번째로 전할 말씀의 잠언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사람에게도,
만물에게도, 신에게도 절대적 ‘한계’를
정해 놓았으나 그 한계를 넘어서
행하는 방법이 있다. <끝>
◎ 오늘은 이 세 가지에 대해서
말씀할 것입니다.
정말 잘 들어야 됩니다.
각자 기도해서 깊은 차원으로 말씀을
받으려면 1년, 10년, 100년이 가도
힘듭니다. 하나님은 사명대로 말씀을
주십니다. 성령님도 그러하십니다.
자기가 10년, 100년씩 깊이 기도해도
받기 힘든 말씀을 지금 여러분은 듣게
될 것입니다.
그런 말씀을 지금 이 시간에 듣게
되는데 제대로 못 들으면 마치 물이
강으로, 바다로 흘러가 버리고 끝나듯,
지금껏 바라고 원하던 것들이 흘러가
버리고 끝납니다.
오늘 1시간 30~40분 정도
말씀해 주고 끝납니다.
그러니 평생 가도 못 받을 말씀을
집중해서 자세히 듣기 바랍니다.
◎ 휴거의 차원을 높이는 방법 중의
하나가 ‘말씀 잘 듣기’입니다.
<말씀>을 잘 들어야 이해가 되어
<성령의 뜨거운 감동>을 받게 되고,
그에 따라 말씀을 실천하게 됩니다.
그리함으로 그 어려운
<휴거의 차원>을 높이게 되고,
육과 혼과 영이 더욱 변화되어
<현재 주관권>을 벗어나
‘새로운 차원’으로 가게 됩니다.
◎ <현재 주관권>을 벗어나
‘새로운 차원’으로 가면 얼마나
좋은지 압니까?
차원을 높여서 가 본 자만 압니다.
더 받고, 더 누리고, 더 기쁘고,
더 편하고, 더 알고, 더 괴로움과
걱정이 떠나고, 더 문제가 해결되고,
더 행복해집니다. <영>이 ‘천국의
더 이상적인 세계’에 거하게 됩니다.
◎ <진리> 위에 <성령의 역사>입니다.
◎ 황금 같은 말씀,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 첫 번째 말씀>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1번 영상과 동일
첫 번째, <좋은 세계>로 가느냐,
<악하고 나쁜 흑암의 세계>로 가느냐
하는 것은 자기 생각과 행실에 따라서
좌우된다. (했습니다.) <끝>
◎ 지금부터 이 잠언을
풀어서 말씀해 주겠습니다.
사탄, 마귀, 악인들, 악평자들,
꾀는 자들, 막는 자들, 반대하는
자들이 있어, 그들이 악한 생각을
넣으며 악하게 꾑니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
그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가 하나님과
성자와 주의 말씀을 듣고
생각하고 행하기에 따라서 자기를
선하게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자신이 강하게 하면
사탄, 마귀, 악평자, 꾀는 자들,
반대하는 자들의 영향을
별로 안 받고 굳건합니다.
절대 어떤 악도 그릇된 자들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마음과
생각에서 악과 불의를 용납하지 않고
절대로 의를 행하면 됩니다.
자기 마음에서 악과 불의를
조금씩 용납하고 의를 살살 행하니,
바람을 타고 흔들리는 것입니다.
철강같이 강하게 해야 됩니다.
그래야 제2의 복직된 아담, 복직된
하와가 되어 더욱 완벽하게 됩니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너를 나는 사랑을 하였다.
비바람 불어도 굳건한 너를
나는 변함없이 사랑하였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23
- 이 노래가 ‘자기 고백의 노래’가
돼야 합니다.
자기 손으로 물건을 만들고
환경을 만들 듯이,
<자기 인생>은
자기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하느냐에
따라서 좋게 만들어지기도 하고,
혹은 나쁘게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자기가 오직 하나님과
성자와 주의 말씀을 듣고
의롭게 생각하고 행하면,
<자기 인생>도 좋게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사탄, 악한 자, 꾀는 자,
반대자들의 말을 받아들이고
악과 불의를 용납하고 악하게
생각하고 행하면, <자기 인생>도
나쁘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생각>이 그리도 중합니다.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몸>으로도 그와 같이 행하게 되고,
그에 따라 ‘자기 삶’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생각>에 의해
‘성공과 실패’가 좌우됩니다.
인생은 저마다 만들기에 달려
있습니다. 육도, 생각도, 혼도, 영도
<생각>을 통해서 만들기에 달려
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인생... 자기
육도, 생각도, 혼도, 영도 위대하고
영원하게 만들 수 있는 자료는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과 성자와 성령께서
구원자를 통해 주신 말씀뿐입니다.
다른 것으로는 <육>도
이상적으로 만들 수 없고,
<영>도 영원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 하는데,
무엇이 그리도 전지전능한지 보세요.
자기를 보면 됩니다.
사람들을 보면 됩니다.
남성인 하나님과 성자의 형상과
모양대로 남자를 창조하시고,
여성인 성령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의 구조와 모양을 보면,
그리도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합니다.
사람의 몸 안에 모든 기능이
들어 있고, 그것으로 사람은
존재하며 살아갑니다.
삼위일체가 태초에
‘사람’을 창조하셨고, 그 후부터는
남자와 여자가 사랑의 결합을 하여
생명들을 탄생시키게 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 외에는
‘인생’을 창조할 존재가 없습니다.
남녀가 사랑의 결합을 하여
생명이 탄생되는 <하나님의 창조 법칙,
인생 탄생 법칙>을 떠나서 사람이
‘인생’을 창조할 수는 없습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인간 복제’를 말하지만,
그것은 절대 사람이 할 수 없습니다.
아예 불가능합니다.
<창조>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십니다.
고로 ‘자기 자신의 구조’를 보면서
하나님이 <인체>를 얼마나 신비하고
아름답게 창조하셨는지 알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깨닫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것을 모르고 가치를
상실하고 사니, 인생을 가치 없게
살아갑니다. 결국 <육의 인생>만
살다가 죽어서 끝납니다.
<영>만이 영원히 삽니다.
그런데 육신이 살아 있을 때
<영>을 위해 살지 않았으니,
<영>이 의롭게 만들어지지 못하여
<영원한 고통의 세계>로 가서
영원히 고통받으며 살게 됩니다.
<육신>도 잉태되면, 모
태에서 성장해야 됩니다.
모태에서 ‘모든 지체와 구조’를
만들어서 세상 밖으로 나옵니다.
<영>은 육신이 태어날 때 같이
태어납니다. 그러나 <영>도 ‘지태, 곧
지구 세상’에서 성장해야 됩니다.
태아가 모태에서 엄마 탯줄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아 성장하듯,
영도 지태에서 자기 육신의 행위를
통해 그 의를 받아 의롭게
‘하늘나라 형체’로 만들어집니다.
육을 선하고 위대하게
이상적으로 만드는 자료,
생각, 혼, 영을 위대하게
영원하게 만드는 자료는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과
성자와 성령께서 구원자를 통해
주신 말씀뿐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 말씀처럼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되,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의 말씀을
확실히 듣고 행하며 살아야
육도, 생각도, 혼도, 영도 위대하게
영원하게 만들어져서 인생 10배,
100배, 1000배 보람 있게 살게
됩니다.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와 하나님이
그를 통해 하시는 말씀을 모르는 자나
아는 자나 자기 나름대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모르는 자나 아는 자나
<겉>을 봐서는 별 표가 안 납니다.
<속>을 봐야 됩니다.
곧 <영>을 봐야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와
하나님이 그를 통해 하시는
말씀을 모르는 자는 영원히 고통받는
<지옥 길>로 가는 삶을 살고 있고,
아는 자는 영원히 기쁨과 사랑을 받는
<천국 길>로 가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육신>만 봐서는
별표가 안 납니다.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끝>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이 시대에 보낸
구원자를 만나서
하나님이 그를 통해 하시는 말씀을
듣고 행하며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원치 않는 우상을 섬기며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이단 종교에
빠져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구시대 종교에서 살아갑니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24
<육신>만 봐서는 별표가 안 납니다.
그러나 <그 영혼>을 보면 완전히
다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6>
하나님이 이 시대에 보낸
구원자를 만나서 하나님이 그를 통해
하시는 말씀을 듣고 행하며 사는 자는
<자기 육신>이 ‘지금껏 행한 모든
의’를 <그 영혼>이 다 받아서
‘신의 영’으로 변화되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자들은
<자기 육신>이 ‘지금껏 행한 모든
불의’를 <그 영혼>이 다 받아서
‘초라하고 불쌍한 영’이 되어
흑암권에서 고통을 겪으며 살고
있습니다.
자기 생각과 행위대로입니다. <끝>
<영>은 ‘자기 육신의 생각과 행위’를
다 받아서
그에 따라 변화되고 형체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영의 형체’가 만들어진 대로
<그에 해당되는 영의 세계>로 가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영>이 구원자의 말씀을 듣고 행하여
‘신의 형체’로 변화됐으면,
<영원히 빛나는 황금 천국>에 갑니다.
거기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함께, 구원받고 휴거된 영들과 함께,
끝없이 영원히 ‘기쁨과 사랑과
즐거움’으로 삽니다.
그렇지 않은 ‘어둠의 영들’은
<어두운 흑암 사망권 지옥의 세계>로
갑니다.
거기서 기한 없이 영원히
‘고통’ 속에 살아갑니다.
◎ <영> 이야기가 나왔으니,
<영>과 관련된 ‘혼체’에 대해서
말씀해 주겠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7>
꿈에 보이는 것이 ‘혼체’입니다.
이는 ‘자기 혼체’, 혹은
‘타인의 혼체’이며, 혹은
‘영체’이기도 합니다. <끝>
안 좋은 꿈을 꾸면 기분이 나쁘고,
기분만 나쁜 것이 아니라 생시에
생활할 때 그 영향을 받아서
육신도 안 좋습니다.
좋은 꿈을 꾸면 기분도 좋고,
생시에도 그 영향을 받아서
육신도 좋고, 그 꿈에 따라
좋은 것을 얻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좋은 꿈>을 꾸려고 합니다.
좋은 꿈을 꾸는 방법이 있습니다.
뭐냐고요?
자기 육신의 생각과 행위를
좋게 하고 살아야 됩니다.
곧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행위를 하고 살아야 됩니다.
좋은 생각, 좋은 행위는 무엇입니까?
전능자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혼’이
그 영향을 그대로 받아서
- 좋은 꿈이 꿔지고,
- 자기 혼이 좋은 환경으로 다니고,
- 꿈에서 귀한 것도 찾게 되고,
- 꿈에서 혼이 찾은 것을 생시에
육이 실천하여 얻기도 합니다.
<혼>은 ‘제2의 영’이라고 합니다.
<혼>이 잘되려면, <육신>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의롭게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혼>도 좋게 되고,
그로 인해 또 <육>도 좋게 됩니다.
꿈에 보이는 것이 ‘자기 혼’이니,
<꿈>을 ‘단순히 생각한 것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꿈 세계>는 ‘혼의 세계’로서
하나님은 ‘꿈’을 통해 계시하십니다.
생시에 <자기 육>이
생각하고 행한 대로 <자기 혼>이
그대로 영향을 받게 됩니다.
선생은 ‘최고로 좋은 것들’을
거의 다 <꿈>으로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잘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선생은 사명도 <꿈>에
‘혼’이 깨닫고 찾았습니다.
그것을 <생시>에서
‘육신’이 행했습니다.
그 꿈은 곧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과
성자께 시대 말씀을 받아 전하여
이 시대 온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는
삶이었습니다.
<꿈>에 ‘혼’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생시>에 ‘내 육신’이 조건 세우고
연단받으며 행했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8>
또 월명동을 자연성전으로
개발하는 것도 10대 때
<꿈>으로 받았습니다.
그 꿈대로 ‘내 육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구상에 따라서
월명동을 개발했습니다.
결국 <월명동>은 하나님과 성자께서
나를 통해 전하시는 시대 말씀을 듣고
따르는 자들이 쓰는 역사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꿈>은 ‘하나님의 계시’이니
예사로 여기지 말아야 됩니다. <끝>
이와 같이 <자기 영>을 잘되게 하고
<영>이 좋은 환경인 천국에서 살게
하려면, <육신>이 하나님과 성자가
구원자를 통해 주시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따라 의롭게 잘 살기입니다.
그러면 <자기 영>이 자기 육신이
행한 차원대로 변화되고 휴거되어
<높은 황금성 천국>에서 살게 됩니다.
그에 따라 <자기 혼>도
차원이 높아져서 꿈에 좋은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자기 육신>이
행하게 하여 좋은 것을 얻고
누림으로 <육>도 잘됩니다.
◎ 꿈 이야기를 통해 ‘혼과 영에
해당되는 말씀’을 깨달았지요?
여기서, ‘꿈속의 혼과 생시의
자기 육’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해 주겠습니다.
꿈속의 자기 혼은 생시의
자기 육이 하는 일은 못 합니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25
<혼>과 <영>은 신령하여
날아다니기도 하지만, <육의 세상>에서
직접 물건을 들고, 나무를 베는 등
육처럼 움직이는 일은 못 합니다.
<육>이 바쁘다고 해서
<혼>이 대신 밥을 해 줄 수도 없고,
육 대신 시장에서 물건을 사 올 수도
없습니다.
다만 <혼>은 <육>보다 신령해서
자기 영과 혼이 본 것을
생시에 <자기 육>이 직접
찾거나 행하게 해 줍니다.
<혼>은 꿈에나 생시에 나타나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을 보고
<육>이 판단하게 하고 감동시켜
좋은 일은 행하게 하고, 나쁜 일이나
위험한 일은 못 하게 합니다.
◎ 이제 두 번째 말씀을
해 주겠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9> 2번과 동일
두 번째, 하나님은 사람과 만물,
그리고 신에게까지 <한계>를
정해 놓고 창조하셨다. 그리고
그 <한계>를 넘지 못하게 하셨다.
(했습니다.) <끝>
◎ 지금부터 이 잠언을
풀어서 말씀해 주겠습니다.
인간·과학·의학·정치·경제 등
세상의 수만 가지 모두
<한계>를 넘지 못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인간의 육신>은
무한하게 끝도 없이 행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지능과 생각도 한계가 있고,
행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기술과 재능도 한계가 있고,
수한도 한계가 있습니다.
<한계> 이상은 못 갑니다.
<육신>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아무리 뛰어나도 육신은 영계에
못 가고, 천국에도 못 가고,
지옥에도 못 갑니다.
다만 <육신>은 세상에서
‘천국의 기쁨’은 누리고
‘지옥의 고통’은 받습니다.
그런데 저 기성인들은
<육>이 휴거되어
<천국>에 간다고 가르칩니다.
그 말씀을 듣고 <육>을 가지고
<천국>에 간 자가 한 명도 없는데,
지금도 그렇게 가르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대로 아는 자’를 통해
시대의 뜻을 펴고 가십니다.
꿈에 보이는 자기 모습도,
타인의 모습도 <육>이 아닙니다.
<혼>입니다. 이것을 모르니
<육>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만물에도 <한계>를 정해 놓고
창조하셨습니다.
바닷물이 한계를 넘지 못하게 하여
바다와 육지를 구분하듯
인간의 육도, 혼도, 영도 각각
<육의 법, 혼의 법, 영의 법>을
넘지 못하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도 <한계>를 넘어서
행하지 않으십니다.
가령, 하나님은
‘영’이신데, 한계를 넘어 ‘사람’같이
돌아다니며 육체같이 말을 한다든지,
육체같이 육의 음식을 먹고 화장실에
간다든지 하지 않으십니다.
<영>인데 ‘영의 한계’를 넘어
<육>같이 하지 않으십니다.
<영>이 됐다가 <육>이 됐다가 하면,
죽도 밥도 아닙니다.
저 기성인들은
‘하나님’에 대해 말하기를
“하나님은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니다. 중성이다.” 하며
말도 안 되는 말을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에 대해 모르고 사니,
어떻게 ‘이 시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겠습니까?
하나님은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니다. 중성이다.
- 하는 말은 하나님이 <남자>도
됐다가 <여자>도 됐다가 한계를
넘어서 사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전지전능한 것이 아니라
무섭고 끔찍한 일입니다.
<남자>인데,
여자가 됐다가
남자가 됐다가 합니까?
또 <여자>인데, 때에 따라 남자가
됐다가 여자가 됐다가 합니까?
만일 그렇다면, 정말 무서울 것입니다.
<육지>가 바다가 됐다가
다시 육지가 됐다가 하면,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못 살고 죽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한계>를 벗어나서 살아갑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0>
<여자>인데 한계를 넘어서
남자 행실의 사랑을 하며
‘남자’가 됐다가 다시
‘여자’가 됐다가 합니다.
또 <남자>인데 한계를 넘어서
여자 행실의 사랑을 하며
‘여자’가 됐다가 다시
‘남자’가 됐다가 합니다.
곧 ‘동성연애’입니다.
이는 한계를 넘어서 행하는 것으로
정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벗어난 행위이니, 하나님이
정말 싫어하시고 축복해 주시지
않습니다. <끝>
하나님도 <한계>를 넘지 않고
행하시고, 사람도 만물도 <한계>를
넘지 않게 창조하셨는데 사람들은
자꾸 <한계>를 벗어나서 삽니다.
남자는 남자로서 사랑하고, 여자는
여자로서 사랑해야 정상입니다.
그러나 미개한 나라는 정상대로
하지 못하고, 법까지 개정합니다.
미개한 나라가 어떤 나라입니까?
선진국이나 후진국이나 정상대로
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근본자’로서
남자는 ‘남자로서의 사랑’만
폭발되게 창조하셨고, 여자는
‘여자로서의 사랑’만
폭발되게 창조하셨습니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26
이 질서를 파괴하면,
제대로 존재하지 못합니다.
사랑의 이상세계를 이루지 못합니다.
사랑해도 무지로 인해 자기
스스로 사랑의 고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이상세계가 일어나는
한계>를 정해 놓고 세상도 인간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필요 없이
<한계>를 넘어 노력하고 수고하다가
모든 수고가 헛되어 허무로 끝나게
되고, 자기가 행한 것으로 오히려
억울함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도 <한계를 넘는 사랑>은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남성’으로서 ‘남성으로서의 사랑’만
하십니다.
성령님도 ‘여성’으로서 한계를 넘지
않으시고 100% ‘여성으로서의
사랑’만 하십니다.
각자 개성대로 <한계>까지는
도전하되 <한계>를 넘어서 도전하면,
위험과 죽음의 손에 잡혀 해를 당하고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돈도, 부귀도, 명예도
<한계>까지만 하면 최고입니다.
죄도 하나님이 보실 때,
개인·가정·민족적으로
<한계>를 넘고 행하다가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죄악이 관영했다고
하시며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많이 봤지요?
심판은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
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통해, 만물을 통해 하십니다.
1000년이 가도 하나님은
‘영’이라서 단 한 번도 ‘사람의 눈’에
보이게 나타나지 않으십니다.
<죄>가 관영하여 한계까지 차면
‘심판’하시듯, <의>가 차서 한계에
이르면 ‘축복’해 주십니다.
수천 년을 축복해 주셔도
하나님은 <영의 한계선>에 계시니,
‘사람의 눈’에는 안 보입니다.
인간은 ‘한 개’입니다.
‘두 개’가 아닙니다.
<구약역사>도
‘한 개’로 ‘한계’까지이고,
<신약역사>도
‘한 개’로 ‘한계’까지입니다.
<구약역사>가 끝났는데
또 구원역사를 펴려면, 하나님은
‘모세’가 아닌 ‘신약의 새로운
구원자’를 뽑아서 그를 통해 차원을
높인 새로운 역사 <신약역사>를 펴
나가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신약역사>가 끝났는데 또 구원역사를
펴려면, 하나님은 ‘신약 때 보낸 자’가
아닌 ‘새로운 구원자’를 뽑아서
그를 통해 차원을 높인 새로운 역사
<성약역사>를 펴 나가며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십니다.
인간은 <한계>까지만 알고 살아갑니다.
고로 <구약 주관권>에 있으면
‘구약’까지만 알고 살아갑니다.
새 역사 ‘신약’을 모릅니다.
한계를 넘어 알려면 구약 주관권을
벗어나 신약권으로 와서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을 듣고 따라야 됩니다.
이와 같이 <신약 주관권>에
있으면 ‘신약’까지만 압니다.
새 역사 ‘성약’을 모릅니다.
한계를 넘어 알려면 신약 주관권을
벗어나 성약권으로 와서 시대
구원자를 믿고 그 말씀을 듣고
따라야 됩니다. 인간은 ‘한계선
안’까지만 알고 살아갑니다.
과학도, 의학도, 정치도, 경제도,
종교 역사도 모두 <한계선>까지만
알고 행하지, 더 이상은 모르고
못 합니다.
◎ 여러분은 지금
1년, 10년, 100년씩 기도해도
못 받는 황금 덩이 같은 말씀,
행한 만큼 영원히 얻는 말씀을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듣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사명대로 말씀을 주시니,
이 말씀은 이런 말씀을 할 만한
사명자, 그만이 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제대로 듣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원하고 바라던
것들이 흘러가지 않도록, 평생의
한 번뿐인 기회로 생각하고 계속해서
집중해서 듣기 바랍니다. <참진리>로
인해 <성령>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전환 : 세 번째 말씀>
◎ 이제 두 번째 말씀에 이어서
세 번째 말씀을 전해 주겠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1>
3번과 동일
세 번째,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사람에게도, 만물에게도, 신에게도
절대적 한계를 정해 놓았으나 그
한계를 넘어서 행하는 방법이 있다.
(했습니다.) <끝>
◎ 이것에 대해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겠습니다.
한마디로 축소해서 쉽게 말하면,
<인간의 육신>은 천국이나
영계에 못 갑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2>
<꿈>에 ‘육신’이
보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혼체>는 ‘하나의 영체’이니
꿈에 ‘혼’이 보고 듣고 와서
‘육의 뇌’와 일체 되어 혼이 본 것을
‘육의 뇌’에 저장시켜 육의 생각으로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영이나 혼이 본 것을
‘육의 뇌’에 녹화해 두면,
그것을 ‘육’이 보는 것입니다. <끝>
<육>은 ‘육의 한계’ 이상은 못 봅니다.
<육의 눈>으로는 ‘보이는 세계’밖에 못
봅니다. <영계>는 ‘영’이 보고 ‘혼’이
봅니다.
<육>이 육계의 한계를 넘어서
‘영계’를 보려면 영계에 사는
<영과 혼>이 ‘육의 선’을 넘어서
봐야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3>
<천국>도 영의 세계이니, ‘육신’으로는
못 갑니다. 고로 <육>이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의 말씀’을 듣고 행하여
<자기 영>을 ‘하늘나라 형체’로
변화시켜 육이 못 가는 천국에
가게 해야 됩니다. <끝>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27
<육>으로는 ‘육의 한계를 넘는 일’은
절대 못 합니다. 그러나 <혼>이나
<영>은 육의 한계를 넘어
‘영 주관권’에서 사니 그 일은
<혼>이나 <영>을 통해서 해야 됩니다.
<육>이 ‘자기 혼’에게 (말하기를)
“내가 <혼계>에 못 가니 오늘 밤 꿈에
너 혼이 가서 내가 원하는 것 좀
찾아봐라. 좋은 것 좀 발견해라.
그러면 내가 생시에 찾고 행해서
얻겠다.” 하면 <자기 혼>이 육이
혼계에서 못 하는 일을 해 줍니다.
그리고 혼계에서 본 것을 육의 뇌,
생각을 통해서 ‘자기 육’에게
전달하여 행하게 합니다.
그러나 <혼>도 한계가 있어서
절대 ‘하나님의 법’ 안에서 행하고,
하나님이 허락한 한도 내에서
육이 못 하는 큰일들을 해 줍니다.
그래서 <육>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절대 믿고 사랑하며
그 말씀을 듣고 행해야 됩니다.
그래야 혼도 영도 차원을 높여서
육이 못 하는 것을 해 줍니다.
교역자도 ‘자기 한계 이상’은 못 하니,
개성대로 그 센터에 맞는 자들을
찾아서 그를 통해 해야 됩니다.
모두 <자기 한계선>은
‘다른 자 통해서 하기’입니다.
<자기 한계선>이 있는데, 고집 부리고
자기가 계속하면 망하고 안 됩니다.
◎ 계속해서 말씀하면서, 세 번째
말씀의 핵심을 정리해 주겠습니다.
<육>은 한계가 있습니다. 고로
‘자기 선’까지만 행할 수 있습니다.
그 한계를 넘어서 행하려면,
<그 주관권에 사는 사람>을
가지고 해야 됩니다.
섭리사도 온 세계에 이 시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니, <육>을 가지고는
시간적 한계, 그 밖의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 사람들’을 가지고
그 나라 사람들을 가르치고
행했습니다.
고로 오늘날 온 세계에
<시대 복음>을 전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성약 복음의 이상세계>를
이루게 됐습니다.
첫째, 육계의 한계를 넘어 영의
세계에 있는 것을 보고자 할 때는
<육>은 육의 한계를 넘지 못하니
영의 주관권에 사는 <혼>이나
<영>으로 하면 됩니다.
둘째, 육계에서도 자기 한계선을
넘어서 그 이상의 것을 하고자 할
때는 <그 주관권에 사는 사람>을
가지고 하면 됩니다. 깨달았습니까?
세 번째로 이것도 알아야 됩니다.
<마음과 생각, 혼, 영>도 한계가
있습니다. 모두 ‘자기 주관권,
자기 한계’까지입니다.
마음과 생각의 주관권, 혼의 주관권,
영의 주관권을 넘은 것은 하고 싶어도
‘한계선’이 있어서 못 합니다.
마음과 생각 자체,
혼 자체, 영 자체로는 <육의 세계>에서
<육>같이 행하지 못합니다.
<육>같이 육계의 음식도 못 먹고,
물건도 못 들고, <육>같이
일도 못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물건을 훔치며
그리 도둑질을 해도 <혼>이나 <영>이
도둑질했다는 소리를 못 들어
봤습니다.
<혼>과 <영>이 한계를 넘어서
<육의 세계>에 와서 <육>처럼
도둑질을 할 수 있다면,
<악한 영들>이 <육의 세계>에 와서
얼마나 도둑질을 해 가겠습니까?
고로 하나님은 ‘한계’를
정해 놓으셨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4>
<혼>과 <영>이 영의 한계를 넘어
<육의 세계>에 와서 자기 생각대로
행하려면, 혼 자체, 영 자체로는
직접 못 합니다.
세상에서 자기를 믿는 자,
자기가 사랑하는 자의 육신을 쓰고
<육의 세계>에 와서 그 육신을 통해
자기 생각을 행하며 목적을
달성합니다.
<혼>이나 <영>은 세상에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 또 자기도
사랑하는 자의 육신을 쓰고 자기
목적도 행하고, 그 육신이 원하는 것도
해 줍니다. 깨달았습니까? <끝>
자기 혼과 영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혼과 영의 한계가 있습니다.
고로 <육신>이
하나님, 성령님, 성자와
주의 말을 잘 듣고, 그 말씀을 통해
혼과 영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기 혼과 영>이 ‘자기 육신’을
쓰고 행하게 해 줘야 됩니다.
그래야 영의 일도 잘되고,
육신도 잘됩니다. 믿습니까?
선생이 예전에 이것을 알았지만
생활 속에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는 <내 영>에게 ‘내 육이
하는 일’을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영>이 ‘내 일’을 못 해 주니
싸우기도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성자를 믿고 사랑하며
산속에서 21년 동안 연단받고
배우면서 너를 구원하여 <영계>에서
날고 기게 해 줬잖니.
그런데 너는 날고 기면서,
왜 나를 위해서 일을 못 해 주냐.
나 바쁘니까 내 일 좀 도와라.
밭에서 밭 좀 매 줘.
나 기도할 시간도 부족하니까.
내 일 좀 해 줘.” 했습니다.
그러나 <내 영>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습니다.
<영>이 영의 한계를 넘어
<육의 세계>에 와서 행하려면, 반드시
‘육신’ 쓰고 해야 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 <혼>과 <영>이 영의 한계선을
넘어서 <육신 주관권>으로 와서
행하려면, 반드시 육신 주관권에 사는
육신을 쓰고 행해야 된다고 했지요?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28
이 부분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최고로
중요한 한 가지를 잠깐 말씀해 주고,
오늘 말씀 마치겠습니다.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신 삼위일체
<하나님, 성령님, 성자>도 영의
존재자이시니, <영의 세계>에서는
직접 다 행하십니다.
그러나 영의 한계를 넘어서
<육의 세계>에 와서는
<영의 세계>에서 하듯이 못 하십니다.
육신같이 음식을 먹고,
육신같이 화장실에 가고,
육신같이 물건을 들고 나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영>이라서 영의 한계를
넘지 못하시고, <영>으로서
<영계>에서 존재하십니다.
전지전능하셔도 ‘존재의 한계’를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성령님과 성자와 함께
우주와 지구, 인간을 창조하셨기에
모두 ‘자기 것’이지만, 필요하면
하루는 <영>이 됐다가 하루는
<육>이 됐다가 하거나 필요하면
하루는 <여자>가 되어 사랑을 받아
보고 하루는 <남자>가 되어 사랑을
받아 보거나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영의 한계를 넘어 인생들을
구원하시고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시대마다
그 시대에 이 세상에서 가장 합당한
자 이 세상에서 삼위일체를 절대
사랑하는 자, 이 세상에서 삼위일체를
제대로 깨닫고 아는 자를 택하시고,
그를 가르치시고, 그에게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룰 말씀>을
주고 전하게 하며, 그 육신을 통해
행하시며 <구원역사>를 펴십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5>
<신약 때>는 ‘예수님의 육신’을 쓰고
<그 시대에 해당되는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모두에게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함으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게 하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믿어
구원받게 하시며
<신약 아들급 구원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이 시대 성약 때>는
‘이 시대에 택한 자의 육신’을 쓰고
<이 시대에 해당되는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모두에게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함으로 그 말씀을 전하는 자를
‘구원자’로 믿게 하고, 그를 통해
‘삼위일체’를 믿고 사랑하게 하시어
그들을 구원하시고 휴거시키십니다.
이미 <성경에 예언된 휴거>는
이루어졌고, 이제 <휴거의 문>이 열려
- 더 높은 차원의 휴거에
도전하게 되었고,
-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며 시대
복음을 전하여 아직 모르는 자들,
휴거되지 못한 자들을 휴거되게 하는
역사가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끝>
이 이치의 절대 진리의 말씀을
깨달았습니까? 오늘 말씀은
진리와 성령의 말씀입니다.
<진리> 위에
<성령의 신의 역사>입니다.
이것을 알고 행하는 자들은 복 있는
자들입니다. (믿습니까?)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절대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이 시대에 가장 사랑하는
자의 육신을 쓰고 전해 주신 말씀을
모두 들었습니다.
이 말씀을 ‘받은 자 선생’이
직접 못 전하니, 성령과 주의 영이
‘전하는 자의 육신’을 쓰고
전했습니다.
이 말씀을 믿고 따르고 행하면
<시대 구원>을 받고, 더 나아가
당세에는 <휴거>를 이루게 됩니다.
(* 오늘의 마지막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6>
<육신>이 ‘시대 구원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하며 삼위일체를 사랑하면,
<영>이 변화되어 <천국>에 갑니다.
<육신>이 ‘자기 영의 구원과 휴거’를
위해 그리도 수고했는데 땅에서 생이
다하면 아무 유익 없이 죽고 끝나게
하지 않습니다.
<제2의 육신>이 있습니다.
곧 ‘자기 마음과 혼’입니다.
<자기 마음과 혼>이
‘구원받고 휴거된 자기 영’과 일체
되어 <천국 황금성>에 가서 영원히
삼위일체의 사랑을 받으며 살도록
하나님은 ‘인생의 육·마음·혼·영’을
창조하셨습니다. 고로 <육신>이
‘자기 영의 구원과 휴거를 위해
행한 수고’는 하나도 헛되지 않고
몇억 배 이상으로 다 받게 됩니다.
<끝>
오직 ‘하나님이 그 시대에 보내신
자’가 세상에 와야 그를 통해 하나님,
성령님, 성자가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그 말씀을 들었고, 듣고 믿고 따르고
행하기만 하면 그 말씀대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천지는 변해도 ‘진리의 말씀’은
변하지 않으며, 반드시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고 따르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진리와 성령>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29
2015년 07월 15일 수요일
[명설교] 시대의 표상
[ 요한복음 14:6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6 Jesus answered,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1990.4.25.(수요말씀) / 낙성대교회
지난주까지는 지방 순회의 역사를
영상으로 직접 봤습니다. 어떻게
역사를 뛰고, 어떻게 시대의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진행하는가를.
지난주 말씀이 요한복음 14장 6절,
곧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신 주시다.
그렇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아야 하늘
아버지의 뜻에 합당한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다." 이런 말씀으로 요한복음
14장 6절의 말씀을 가지고서 1,2부가
모두 화면을 통해서 한 주일동안
지난주에 있었던 전국순회의
경인지방의 역사를 지켜봤습니다.
그래서 지난주 말씀을 제대로
못했는데, 오늘은 보다 구체적인
말씀을 듣겠습니다.
쉽고도 어려운 말씀으로 표현될 수
있는데, 요한복음 14장 6절은
어렵다면 어려운 말씀이고 쉽다면
쉬운 말씀으로 이해를 시킬 수 있는데,
상당히 쉽고도 어려운 그런 표현으로
이해를 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에게는
반드시 가야할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을 볼지라도 꼭
인생은, 사람은 어떻게 살으라는 길이
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 인간이 성장하면서,
보다 내적과 영적으로 성장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계획한 길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살까? 어떻게 사나?
물론 ‘어떻게 살까?’ 우리가 그냥
생각할 때는, 육적인 세계는 여러
가지로 계획이 있지만, 정신적으로 볼
때 ‘어떻게 살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게 참 쉽고도 어려운
것이고, 너무너무 어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답을 주지
않으면 도저히 길이 없다고 봅니다.
가령 집에다 개를 사다가 기른다고
한다면, 그 개가 어떻게 살까할 때
그냥 밥 먹고, 도둑놈이 오면 짖고,
그냥 앉아 있다가 돌아다니고...
이게 어떻게 살까의 최종적인 개의
최대 목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 단계 더 만물의 영장에
입장에서 뜻을 두고 본다면, 개가
‘어떻게 살까?’ 하고 고민하고 있으면,
그것을 주인이 봤다면 주인이 어떻게
사는 것을 알까요? 모를까요? 아까
얘기한 것은 개가 사는 것이고.
개가 생각한 것이고.
개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살까?"
이 어떻게 살까는 아까 얘기한 그것을
떠나서입니다. 지금 얘기하는 것은.
형이상학적인 이야기입니다.
전편으로 생각한 것은,
“어떻게 살까?밥 먹고, 주인이 밥
먹으면 밥 먹고, 도둑놈이 오면 짖고,
이런 것이 어떻게 살까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지.” 하지만 그것
말고, 또 다른 개는 어떻게 살까
했는데 “어떻게 살아? 밥 먹고,
도둑놈이 오면 짖고, 밤이 되면 잠 안
자고 밤새도록 철야하다가 짖고,
낮에는 잠자고. 이렇게 사는 것이지.”
“아니여, 그것이 아녀!
그건 나도 해왔어.”
“그럼 뭐 뾰족한 수가 있냐?”
“다른 것이 있을 거야.”
그것은 개들이 답을 못 줍니다.
개들끼리는 동네 개가 다 모여도
답을 못 줍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나는 놈, 기는 놈 다 모여도 안
됩니다.어떻게 살까의 그 답을
고민하는 그 개에게는 사람이
등장해야 됩니다. 주인이!
주인이 등장하게 되면 어떻게 살까
하는 것은 일반적인 개의 주장에서
아는 것 이상으로 바로 아는 길이
있으니, 그것은 주인이 어떻게 사는
것을 가르쳐 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주인이 가르쳐 주는 대로 사는
개는 그 개 자신이 보편적으로
그냥 밥 먹고, 짖고 이 정도에서
떠나서입니다. 그것은 보편적인
세계입니다. 그것은 기본으로 알고,
기본적인 삶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가르치면) 기본적인 개의 삶을
벗어나서 가르쳐 주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주인이 등산을 가면 따라가기도 하고,
가자는 데 가기도 하고, 또 이렇게
하기도 저렇게 하기도 하고.
주인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바로 그것이 개로서는 최대의 길을
발견한 것입니다.
주인을 기쁘게 해 주고, 즐겁게 해
주고, 여러 가지 재롱과, 여러 가지
모든 개로서 사람에게 맞는 일을 해
주면서 사람이 가르쳐 주는 대로
그것을 해 나간다면 개는 10년을 살든
20년을 살든 가장 최대로 개 중에서
보람되게 살고 갔을 것입니다. 다른
개들은 그냥 보편적인 삶을 살다가
갔는데. 그런 것을 말한 것입니다.
우리들도 길이라는 것은,
인간의 길은 뭐냐?
어떻게 살까? 어떻게 할까?
우리들을 동물로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을 빼놓고 우리끼리 살 때는
"어떻게 살까? 어떻게 하나?" 이것은,
일반적으로 밥 먹고 일을 하기도 하고
또 존재하기 위해서 삶의 투쟁을 하고,
이렇게 사는 것인데, 그걸 다 해도
사람들이 뭐인가 만족을 못하고
`뭔가 있는데....' 그럽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나타나서
"이렇게 살라." 하는 프로그램을
주어서 그대로 살 때 그 길이 바로
보편성을 떠난 이상적인 삶이 오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사람들이
찾았던 것입니다! 이것을 찾을 때에
그것이 하늘로부터 찾는 것인 줄
모르고, 인간의 노력과 방법으로 찾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안 됩니다!
제가, 선생님께서 그것을 일찍이 온
인류를 구원시키기 위해서 훈련을
받은 일이 있는데, 깨닫게 한 일이
있는데 어느 날 내가 얘기를 했지요.
지금쯤 되면 그런 일을 많이
할 것입니다. 시골에 가면 두꺼운
비료부대가 있습니다. 그 비료포대에다
개구리를 잡아다가, 반 포대를
잡아놓고서, 지금 선생님 고향에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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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거기서 물을 떠 왔다고 물을
먹었는데, 반쯤 담아다가 위의 뚜껑을
열어놓고 세워 놨습니다.
여기가 미끄러우니까 (개구리가)
못 뛰어 올라갔습니다. 뛰어올라가도
또 내려오고, 뛰어올라가도 또
내려오고 그랬습니다.
밤에 졸려서 밤 1시나, 2시 즈음에
냉수목욕을 하라 갔습니다. 가서
보니까 아까 애들이 잡아다 넣은
개구리가 거기서 버리적 거리고
있었습니다. 다른 놈들은 다 포기하고
자는데, 그 중 한마리가 뛰었습니다.
그런데 뛰어봤자 올라올 수가
없습니다. 반도 못 올라옵니다.
너무 높기 때문에. 뛰어봤자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평생 뛰어도 못
넘어간다고 느꼈어요.
반이 찼는데, 뛰었다가 내려왔다
뛰었다가 내려왔다 그랬습니다.
목욕을 다 할 때까지도 뽀스락뽀스락
거렸습니다. 플래시를 비춰보며 가만
쳐다보니까, 뛰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그게 바로 다른 세계로 벗어나려고
하는 그 광경이었습니다. 그것은
보통 개구리가 아니고, 삶의 애착심이
심히 강한 개구리였습니다. 잘 생긴
것도 없고 특별히 눈깔이 큰 것도
아닌데, 입이 더 찢어진 것도 아닌데,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니 꼴도 내 꼴과 똑같다.”
“나도 밤 3시에 일어나서, 더 살려고
버리적 거리는 것인데 개구리 너도..."
이것이 3시까지 버리적 거렸으니,
여러 수천 번은 했을 것입니다.
“야 지구력이 대단하다. 2시 3시까지
그렇게 뛰었는데, 그래도 또 뛰고
있으니... 야 초저녁에 뛰어 넘어가지
못했으면 지금 못 뛰어 넘어간다.
지금까지도 못 뛰었으면 안 된다.”
딴 놈들은 다 포기하고 “에라.” 하고
자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놈은
뭔가를 받은 것 같았습니다.
다음날 아침이면 전부 씻어서 솥에
넣고 삶아 먹는다는 것을 알았는지,
아무튼 참으로 지혜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선생님은 그냥
들어왔을까요? 내 자신을 거기에다
포함을 시켰습니다.
‘내가 저렇게 살려고 발버둥치는
입장이, 개구리 신세와 똑같구나! 아,
그렇지, 그러하구 말구! 나도 이렇게
살려고 발버둥 치며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냉수목욕을 하고..’
딴 놈들은 다 잤습니다.
우리 집 식구들은 잠자는 개구리들과
똑같더라구요. 나만 유난히 나타나서
냉수욕을 하는 것입니다.
좀 확대시켜보면, 온 마을이 조용하고
멀리 떨어진 곳은 보이지 않지만
영적으로 보면 다 자고 있습니다.
나 혼자 발버둥치는 그 모습이
개구리가 뛰는 모습과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개구리가 혜택을 받게
되었습니다.
온 인류의 사람이 개구리와 똑같고,
나는 하나님 같았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 한 마리를 딱 쥐었습니다.
딱 쥐고서 내놓았습니다.
그랬더니 밤에, 가만 있었습니다.
이제 안 뛰어도 되지요.
내가 내어놓은 것을 그 개구리가
알까요? 모릅니다! 내가 뭐하는
사람인가도 모르고 잘 모를 것입니다.
그 개구리가 그걸 깨달을 때까지
살려면 아마 천년은 살아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깨닫게 하는 마음을 주기
전에는 절대 못 깨닫는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베드로에게 깨닫게 하는
마음을 주었기 때문에 주님을
알아보았던 것처럼 그냥은 못
깨닫습니다. 신의 영력과 권능이
아니면 절대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동물이 깨닫게끔 사람이 기도를 하면
동물일지라도 그 머리가 깨달아집니다.
그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야 사람이 깨닫게 기도해 주면
깨달아집니다.
혹시 다음날 아침에 애들이 다시
잡아서 넣을까봐 저쪽까지 배웅을 해
줬습니다. 빨리 뛰어 도망가라고!
‘아하, 맞아!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특별히 잡아당겨 주었지! 다른 놈들은
다 솥뚜껑 씌우고 나를 이렇게 했지.
맞아!’
그날 새벽에 그것을 느끼고서 많은
힘을 얻었습니다. 삶에 대한 그 희망과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셨다. 보시고
개구리를 내놓듯이 내 놨다. 틀림없어!
맞아! 틀림없어, 맞아! 맞아! 내가
한량없이 발버둥치는 것을 하나님이
보시고 손길을 내밀었어. 개구리는
나를 못 깨달았지만 나는 깨달아.
하나님이 나를 내 놨어! 틀림없어!
이걸 통해서 나는 믿어!'
자연계시를 통해서 믿게 되었습니다.
한 단계 높은 단계를 본인은 못
깨닫습니다. 못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이 하는 것을 못
깨닫는다는 그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그러나 개구리를 통해서는
깨달았습니다. 개구리를 통해서
"그와 같이 그러하다." 하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높은 단계는 반드시 낮은 단계를
통해서 깨닫게 해 줍니다. 자기보다
높은 단계는 절대 못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지구가 돈다." "맞아! 돈다. 다 돈다고
하는데 나만 안 돈다고 할 수 있나?
돌지!" 그런데 확인 안 하면 잘
모릅니다. 근거를 제시하라 하면 잘
못합니다. 그러나 작은 것을 통해서
확인하는 길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돌고 있구나. 맞아.
돌고 있어. 그러니까 해가 왔다 갔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왔다 갔다 하지.
맞아! 돌아." 이렇게 확인하는 길이
있습니다.
길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이 찾는 그런 길 말고,
아까 얘기한 것같이 개구리가 찾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을 찾아봤자
개구리 차원밖에 길을 못 찾습니다.
그러나 형이상학적인 세계는 내가
손을 들어서 갖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놨다는 것입니다.
이게 길을 찾은 것이라 그것입니다.
개구리는 길을 찾았습니다.
무슨 길을? 생명길을 찾았습니다.
길을 찾으니까 생명이 되었고,
진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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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진리의 근본체가 되시고,
또 생명의 근본체가 되셨습니다.
개구리에게는 생명이 다시 되었다
그것입니다. 나머지 개구리들은
다 죽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영적 나머지 사람들은 다 죽었다.
나는 살았다. 그것이 개구리이기
때문에 그렇지, 사람이라면 또 끄집어
내야 되지 않겠냐. ' 이 원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기도하면서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 중에 다시금 힘을
얻게 되었고, 또 어려움을 극복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 주면 여러분들도 많이 깨달아질
것입니다. ‘아 맞아, 이와 같이 나에게
함께해 주셨어! 맞아!' 그것을 깨닫는
것이 도입니다.
도는 직설적으로 깨닫는 것도 있지만,
만물을 통해서, 자연을 통해서, 자연
과학을 통해서 계시가 온다고 했지요?
자연과학을 통해서 계시가 정확히
오는 것입니다. 꿈을 통해서 오는 것도
있고, 자연과학을 통해서 오는 것도
있고, 만물을 통해서 오는 것도
있습니다.
그때 내가 만물을 통해서 계시를 받은
것입니다. 뛴 보람이 이고, 밤잠을
못자고 몸부림을 친 보람이 있는
개구리라고 몇 번이나 단상에서
비유를 들어 그 실제 이야기를 하니까
여러분들은 더 감명스러울 것입니다.
그게 바로 길을 찾았던 것입니다.
개구리가. 여러분들도 무엇인가를
깨닫고 통해서 길을 찾았지요?
그러니까 이 길이라는 것은,
형이하학적인 사람이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절대 못 찾습니다.
찾아봤자 사람 속에 있는 길밖에 못
찾습니다. 형이상학적인 길은 하나님이
나타나서 가르쳐 주지 않으면 절대 그
길은 못 찾는다는 것입니다. 그 길은
영혼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에! 그
길은 육신을 살리는 길이 아닙니다.
영혼을 살리는 길때문에!
영혼을 살리는 길이 먼저 결정되면,
육신을 살리는 길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지금 얘기하고 선포한
말씀같이, 죽은 영혼이 다시 사는
것처럼 또 인생의 행동적으로 죽은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행동적인 삶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과
육이 생활적으로 부활된다는 것입니다.
길을 찾게 되면.
길을 찾게 되면 영과 육이 생활적으로
부활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겁한
인생을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담이후 시대가 그 어떤 이상적인
삶을 산다고 하는 사람들은 마치
개구리가 박박 뛰는 것과 똑같습니다.
거기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서
섭리해 주셨고, 그리고 여호수아를
보내서 섭리해 주셨고, 많은 선지자를
통해서 섭리해 주셨고, 아브라함이나
노아를 통해서 섭리해 왔습니다.
그들이 인생으로서 하나님을 향한
길을 가르쳐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길을 찾은 것이 바로 종들 시대에
그 나름대로 하나님을 믿었던 것이,
그게 길이었습니다. 인생 최대의 길!
하나님의 그 정통적인 세계에서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그 나름대로의 길이었습니다.
이방에서는 그 나름대로 또 이방의
세계에서 양심을 찾아서 찾아온 것,
그게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학문을
통해서, 양심을 통해서 찾아오는 것이
길이었는데 모두 수준 이하의
길입니다.
길을 찾은 것이 잘못 찾으면 사람이
찾은 길이 돼서 일반적인
사람들보다는 낫지만, 조금 위에 있는
길밖에 못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타나 인도하시고 말씀을 주시고
법을 주시고 뜻을 주시고 한 길은
그래도 구약시대였지만 그 나름대로
사람들이 찾은 길보다는 훨씬
이상적인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김으로 해서
길을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을 두고 "탈락됐다" "타락됐다"
"낙오됐다" "부패됐다" 이런
여러 가지로 표현되는 세계로
파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구약시대 때 말씀을 중심해서
따랐던 사람들이 길을 찾았다고
했지만, 그 길은 가시밭길보다 조금
나은 산골짝의 소롯길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가시밭길보다는 나은.
하나님을 안 믿고 살았던 시대는
가시밭길로 엉금엉금 간 것과
같습니다. 길은 길이지요.
그런데 그 고통과 고해와 아픔과
찔림과 상함과, 전진할 수 없고,
절벽길로 다치고, 또 질주할 수 없고
전진할 수 없는 길, 그것도 가면
길은 길이지만 그러한 고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계명을 통한 길이 나기
시작하면서 그래도 산골짝의 등산로
같은 길 정도는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걸어서 다 가겠습니까. 거기에
대관령 한계령 같이 길을 냈습니다.
그 꼬불꼬불한 길, 소롯길, 모두
걸어서만 넘어 다니던 것이 이제
큰 대 길이 되었습니다. 이제 버스도
다니고 자가용도 다니고, 이런 길같이
된 것이 신약시대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의 길, 꼬불꼬불한 길.
이런 길을 확장해서 6미터 8미터
12미터 확장해서 길을 내놓은 것을
보면, 설악산 한계령 대관령, 이런
길들을 보면 소롯길에서
큰 길이 났지요.
구약은 소롯길 같은 길이고, 구약에서
안 믿던 사람들은 마치 가시덤불로
그냥 막 나무하며 다니던 사람의 길과
똑같습니다. 그것은 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짐승들이나 왔다 갔다
하지요.
그리고 구약에서 율법을 중심해서
모두 오던 길들이 그나마 산골짝에
있는 소롯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약시대 때 예수님이
오셔서는 마치 차가 다닐 수 있는
한계령 고개를 꼬불꼬불 길을 낸
것같이 내어 놨다는 것입니다.
그럼 성약 시대 때는 어떤 길이냐?
그 길보다는 더 좋은, 뻥 구멍을
뚫어서 직통할 수 있는 길이냐?
그 길보다 더 좋은, 비행기를 타고서
휭 지나가는 길이 된다는 것입니다!
형이상학적인 영적인 최첨단의 세계!
비행기의 항공 길로 쑥 넘어가버리면
뭘 꼬불꼬불 왔다 갔다, 이것저것 재며
올라갑니까? 그냥 쓱 지나가버리면
끝나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세상 길이 필요
없습니다. 어떤 가시덤불 길이 필요
없고, 아무리 지상에 도로가 잘
뚫렸어도, 지상세계의 길이 좋다고
해서 비행기가 더 잘 가고 못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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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전혀 없습니다. 이와 같이
형이상학적인 최첨단의 성약 역사의
길은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길로
역사를 표현할진대 그렇습니다.
‘길’에 대해서 제가 물었을 때 어떻게
대답하셨는고 하니 "길 이라는 것은,
길은 마치 무엇인고 하니, 곧
<역사>라는 말이다." 그랬습니다.
길을 <역사>로 표현한다고 했습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했더니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고 하지만,
우리 인생의 모든 길들은
말씀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말씀이
간 곳이 바로 역사가 되지 않았느냐?
하나님의 참된 역사가 되었노라. 그
길의 표상들이 노아 때에는 노아가,
아브라함 때에는 아브라함이, 모세
때에는 모세가, 요셉 때는 요셉이,
여호수아 때에는 여호수아가, 많은
선지자들 때는 선지자들이 그 시대의
길이 되고 표상이 되어서 연결시켜
왔노라." 했습니다.
참된 역사가운데 참된 진리가
솟구치게 되었고, 진리가 가는 곳에
참된 생명이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길과 진리와 생명이란 단어를
놓고 볼 때 그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길을 찾는데, 아까
얘기한 대로 하늘은 가장 절감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철학적으로 길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과학적으로 길을 찾았습니다.
과학적이고 철학적이고 모든
심리적으로, 양심적으로 길을 찾았는데
그런 길들은 아까 얘기한 대로 ‘인생의
한계’ 안에서 다만 수준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어떤 형태를 벗어난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땅을 달리는 차는 아무리 길을 잘
닦아도 땅에서 달려야 됩니다.
비행기는 길이 닦여진 것과 안 닦여진
것과 상관이 없습니다. 그냥 뜨면
가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아프리카
밀림지역의 상공을 날지라도 가는
것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백만분의
일도 차이가 없습니다. 길을 잘 닦아
놓은 고속도로 위를 난다 해서 더 잘
가는 것이 아닙니다.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왜? 전혀 다른 세계에서
놀기 때문에! 전혀 다른 세계에서
달리기 때문에!
그와 같이 똑같습니다. 우리 인간의
한계성! 우리 인간은 길을 찾아도
한계 이상을 못 벗어나고 한계 안에서
길을 찾고 있습니다.
니이체 같은 유명한 철학자도 길을
찾으러 쫓아다녔는데, 결국 못
찾았습니다. 찾아봤자 자기도 만족치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도 만족치 못한 그 길을
딴 사람들이 영원히 갈 수 없다
생각하고, 다시금 7년 동안 산길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도의 길을
찾았지만, 학문을 통한 철학의 길을
찾았지만 철학을 통해서 길을
찾았지만 못 찾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길을 찾았을까?’ 하고
가보았지만, 그들도 못 찾은 것을
보고, "하나님이 없구나. 죽었구나!
있다면 이렇게 놔 둘 리가 만무하다.
오히려 내 주관을 내세우는 것이
낫겠다. 그래도 그것이 낫겠다."
했습니다.
여기 있는 선생님도 길을 많이
찾았습니다. 길을 찾았는데, 바로
그런 길들을 찾았습니다. 사람에
해당되는 길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길을 가지고는 나도 만족치
못하고, 그리고 이 길을 가지고는 모든
사람이 갈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길은 어떤 길들인고 하니 선한
일들을 많이 하는 일과, 악한 일을
버리는 일과, 긍휼을 베푸는 일들과,
불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일들과,
그리고 삶의 경제권의 세계에서 보다
소롯길을 벗어난 일들과.. 이런 것들이
최대의 길들이라고 하며 나름대로 더
이상 다른 길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착하게 살았을 때 그 기쁨을 누리고,
그리고 이웃을 위해 살았을 때 기쁨을
누리며 사는 것, 이게 길로 생각하면서
역시 마음을 굳히며 행하였지만, 그런
일은 보편적으로 누구든지 다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수천 가지
길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백 가지 길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길들은 나뿐만 아니라 다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길은 나도
만족치 못하고 모든 사람이 갈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산에 갖다 놓으면 지가 걸어갈 때
낫으로 치고 걸어간다는 것입니다.
대개 괭이를 파고 간다는 갑니다.
그런 길은 산에 갖다 놓으면, 괭이나
낫이 다 있으니까 그런 길은 각각
다 내서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런데 불도저를 갖다가 싹
밀어붙이고 넓은 길을 내고 하는 것은
보통 사람이 못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찍어서 낼 수 있습니까.
이와 같이 하늘로부터 시대에 준
말씀이, 선생님이 준 말씀이,
그것이 바로 이 시대 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 시대에
그런 말씀을 가지고 와서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 사람으로 표현하면 그
자신이 길이 되고 생명이 되고,
그리고 진리가 됩니다.
똑같은 말이지만, 분석하게 되면
다른 말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영과 육과 혼이다!
진리, 참! 참에는 생명이 생기니까.
참된 길에는 진리가 서게 되고, 철길
위에 천리마가 왔다 갔다 하듯이.
천리마 위에는 생명이 왔다 갔다
하지요. 이런 입장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길을 못 찾아 많은 사람이
얼마나 방황하고 당황합니까.
길을 못 찾아서 얼마나 고생합니까.
여러분들은 밤중에 길을 못 찾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길을 묻고 또 묻는 사람이
있지요? 여러분들이 길을 가르쳐
주었을 것입니다. 그 사람으로서는
길을 못 찾습니다. 아는 사람이 가르쳐
줄 수밖에 없습니다. 아는 사람이
얘기하기 전에는 모릅니다.
길을 못 찾을 때 방황하는 것같이
인생길을 못 찾아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방황하는지.. 이것은 누구든지
동일합니다. 꼭 그렇습니다. 물어볼
것도 없습니다. 일반적인 길들은 모두
사람들이 찾으려고 하지만, 그 길은
찾아봤자 찾아놔도 그렇게 만족이
없고 근본 문제가 청산이 안 됩니다.
인생의 일반적인 길은 다 나름대로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된
참된 길, 이것은 하나님이 가르쳐
주지 않고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막막한 바다 위를 쳐다보면서 어떤
길이 뱃길이냐고 물어보면 찾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33
선장 외에는 모릅니다. 선장과
나침반과, 수십 년 동안 그 길을
연구한 사람 외에는 모릅니다.
“육지의 길을 닦을 때에는 어렵지만
바다위로는 배만 가면 되겠다." 하지만
바다의 길을 닦는데도 역시 수년씩
걸린답니다. 암초가 있나 1000미터를
확인하는 데만 한 달씩 걸린답니다.
암초의 깊이와 바다의 깊이를 전부
조사해서 길을 내는 것입니다. 암초가
없는 곳으로 길을 내는 것입니다.
그 길만 안전하고 다른 데는 암초가
있기에 안전치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길을 아는 사람만 알지
모릅니다.
또한 하늘을 딱 쳐다봤을 때 누가
비행기가 다니는 항로를 알겠습니까?
그냥은 모릅니다.
저도 어렸을 때는
"비행기가 왜 저기로만 가나?"
했습니다. 그것은 그래도 유식한
무식입니다. 유식한 자로서 무식이지,
그것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지요.
여러분들도 다 그랬지요?
“왜 저기로만 가나? 이상하네..”
항로 길이 있기 때문에.
기류가 있기 때문에.
또 "아이고, 왜 저렇게 삐뚤빼뚤
가냐?" 하지만 공기 기류가 있기
때문에 반듯하게 갈 수 있지만
꼬불꼬불하게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공기가 없는 데로 가면
후두둑 떨어집니다.
내가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를 가면서
내가 탄 비행기가 반듯하게 못가고
돌아서 가는 것을 분명히 봤습니다.
거기에 기류가 있기 때문에 절대
무공(無空) 기류는 공중에 암초가
있는 것이나 똑같습니다. 그래서
비행기가 그 곳을 지나면 10미터
20미터 툭 떨어집니다. 떨어지다가
공기가 있는 곳에 가면 서기는 하지만,
차 가다가 브레이크를 잡은 것만큼
출렁하는데 얼마나 큰 충격입니까.
그러다가 떨어지는 비행기도 많이
있지요.
이와 같이 다 닦아 놓은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을 중심해서
신약을 닦아 놓은 길이 있고, 신약을
중심해서 성약의 닦아 놓은 길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내가 구약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고
더 완전케 하러 왔다." 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길을 가면서 보다
높은 차원으로 가셨습니다.
성약의 말씀을 볼지라도 신약의
말씀을 중심해서 더 이 시대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지 신약말씀을 무시하고
선포하지 않습니다.
신약말씀에 “뭘 갖고 심판을 하냐?
불 갖고 한다. 즉 진리를 갖고 한다."
이것을 기본으로 하고, 더 좋은 말씀을
시대에 더 높은 차원을 줄 뿐이지
그것을 기본으로 하지 않고는 안
합니다.
신약말씀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신약말씀을 더 이루러 오지,
더 빛나게 하러 오는 것입니다.
기본기를 중심해서 하고, 기본기를
무시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항상
기본기를 중심해서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하신 것은, 길도 되고
진리도 되고 생명이 되는 예수를
떠나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메시아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떠나면 절대로
허용할 수 없고,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차가 길을 떠나서 존재하겠습니까?
그게 탈선이고 사고지요.
길을 떠나게 되면 진리를 벗어난
것입니다. 법칙을 벗어난 길입니다.
궤도 법칙을 벗어난 길이기 때문에
결국 생명의 운명이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길을 벗어나면 안 됩니다!
가끔 섭리권에도 보면 길을 벗어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길과 진리와 생명,
그 존재의 핵심지를 벗어납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어떻게 되느냐?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파괴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길을 벗어나면
절대 안 된다는 것입니다.
파도가 친다고 배가 뱃길을 벗어나면
암초에 부딪히고 맙니다. 그래서 잠언
집에도 이러한 잠언이 나옵니다.
"파도가 친다고 항로를 벗어나지 마라.
항로를 벗어나다가 암초에 부딪혀
크게 파선함을 받으리라. 파도에 배가
부서지는 일은 아주 극소수니라. 다만
겁이 날뿐이지. 두려울 뿐이지."
암초는 우선 안 보이니까 무섭고
두려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파도가
안 치는 곳에만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파도가 안 친다고 자꾸
바닷가로만 가면 배가 100%
파선됩니다.
암초는 다 밖에 있습니다.
그러나 파도가 쳐도 가운데로
깊은 바다로 들어가야 암초에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을 알고 여러분들도 많은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친다고 해서 자꾸
궤도를 벗어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구가 존재하는 것은 초등학교
상식이지만 궤도를 벗어나지 않지
않습니까. 궤도만 벗어나면
완전히 끝나니까.
구심력과 원심력에 의해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있으므로 제대로 그
길을 갑니다. 모든 존재하고 움직이는
것들이 잘 자전 공전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아름답고 멋있고 보다
미가 있다는 것은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그 인생이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
뜻한 바를 가지고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꾸준히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는 아름답고 멋있고 가치 있고,
그리고 그 미적인 것이 얼마나 굄을
받고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볼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궤도를 벗어났다는 것을 후진 말로
말할 것 같으면 참 꼴이 바라보이고,
정말로 무가치하고 한스러운 것이
말할 수 없이 폭발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신앙의 궤도를 벗어나지
말고, 섭리의 길을 벗어나지 마요.
섭리라는 것도 하나의 길입니다.
길을 발견하여 길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 길을 벗어난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애들을
통해서 가끔 들어보는데 정말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나는 직접
만나보지 않습니다. 왜? 내 심령이
병들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의
괴로움이 너무 강하게 부딪쳐 옵니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34
그 파문이 너무너무 웅장하고
커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차가 가다가 도로에서 벗어났을 때
그 다친 사람의 아픔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 순간뿐이겠습니까?
평생의 운명이 좌우되고 완전히
병신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는 길을 벗어나서는 절대로
안 되겠습니다. 핍박이 올지라도,
어려움이 올지라도, 눈물겨운 일이
있을지라도 길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온 인류는 지금도 길을 못 찾고
있습니다. 어떤 길이냐?
고차원적인 길입니다.
일반적으로 흔히 말하기를
이렇게 말을 합니다.
"서울을 가는데 고속도로로 가면 좀
편하게 가겠지. 국도도 그 나름대로
재밌더라. 서울 가는 데 까짓 거 좀
늦어서 그렇지 걸어가도 발바닥이
부르터서 그렇지 그 나름대로
괜찮더라.“ 그런 정도의 차원을 두고
얘기하는데, 선생님이 직접 그것을
표현한다면 그렇지 않습니다.
목적지가 다릅니다! 서울이 아닙니다.
또 오는 길도 고통스럽고, 또 힘들지만
가는 궤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목적지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흔히 보면 서울 가는데, “힘들고
발병이 나서 그렇고, 또 리어카를 타고
가는데 좀 늦어서 딴 사람보다 그
좋은 곳에 닷새 늦게 참석해서 그렇지
가기는 마찬가지다.” 이렇게 흔히들
얘기합니다.
종교를 설명할 때도 그럽니다.
"기독교? 장로교? 불교, 유교 할 것
없이 차원만 다를 뿐이지 목적지는
같아.“ 그지만 그것은 너무
부시멘적인 설명입니다.
참조:부시멘(Bushmen; 아프리카
흑인의 일종으로 남아프리카의
칼라하리(Kalahari) 사막에 살고 있는
수렵민, 키가 작고 (약 152cm)
허리는 구부정하며 엉덩이가 툭
불거졌음.
내가 시대의 구원의 근본을 외치는
사람으로 왔기 때문에 확실히
이야기를 하는데, 오늘 저녁에 똑똑히
짚고 넘어갑시다.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우리끼리라도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나를 포함해서 과거에
그런 길을 갔던 사람입니다.
자, 불교를 봅시다. 불교의 그 길은
육신의 곤욕이 너무너무 셉니다.
3천 번씩 절을 합니다. 그래야 돌로
새긴 부처가 눈을 떠서 본다는데,
말이 그렇지 사실은 눈을 떠서 보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3천 번 절을 하면
부처가 조금 눈을 떠 본답니다.
"정성이 지극하구나." 한다는데,
그것은 자기 자각이지 실제는 안
그렇습니다. 십억 만 번 절을 한다고
해도 눈을 떠 본다던가 고개를
숙인다거나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얘기입니다. 오히려 죽은 조상에게
절을 한다면 한 번만 절을 해도
확실하게 눈알이 튕겨쳐 나올 정도로
눈을 뜨면서 "이게 웬일이냐?
이거 과분해서 어떻게 하지?" 하고서
똥구멍이 깨질 정도로 털퍼덕
주저앉습니다.
백팔번뇌라는 말도 있지만 너무너무
고뇌가 많습니다. 세상과 동떨어져서
너무 적적하고 고독하고 쓸쓸한 그
세계를 가는 것이 불교인들이 가는
길입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오랫동안
앉아 있습니다. 불교는 지금도
(이런 의자가 있는지 모르지만)
거진 무릎을 꿇고서 설법을 듣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너무너무 떨어져
있습니다. 아까 얘기한 개구리가 뛰는
식입니다. 그것이 인간에게 너무너무
혹사적인 것이 심히 크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불교에서 오신 분들이 있지요?
모두 해 봤지요? 내가 국민학교
때부터 세밀하게 지켜봤습니다. 왜?
이런 세계적인 구원의 일을 손대러
와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계획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계획적으로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절간마다 돌아다니며 보았습니다.
기독교에 비교할 수 없는 많은
스님들의 수도길, 피눈물 나는
수도길.. 다리가 저리고 쑤시고 아픈
그 수도생활.. 정말로 남다른 곤욕의
길에 깊이 들어가서 생활합니다.
깊이 가면 갈수록 도대체 닦을 수
없는 그 어려움을 닦고 있습니다.
닦는다는 것은 깎아내는 것입니다.
뼈와 살을 깎아내듯이 깎는다는
것입니다. 도를 닦는다 하는데,
도 닦는다는 말은 불교에서
가장 많이 씁니다.
기독교는 그렇게 맨 바닥에 무릎을
꿇고 1천 번씩 2천 번씩 3천 번씩
절을 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에서 절하는 것을 봤습니까?
못 봤지요? 설교만 한 30분 들으면
끝납니다. 찬송 몇 번 부르고 헌금하면
끝납니다. 상당히 자유로운
종교입니다. 너무너무 자유롭고
너무너무 고차원적이고, 고뇌와
번민과 고통을 벗어난 종교입니다.
비교를 해 봐요. 그런가 안 그런가.
그래서 차이가 굉장히 많습니다. 하는
것을 보면 수준차이가 많습니다.
불교는 일단 머리를 깎아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절에 들어가고
싶어도 머리를 깎는 것 때문에
못가겠다고 합니다.
머리를 한번 깎아 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너무너무 부끄럽습니다.
여러분들 어렸을 때 할아버지들이
마빡까지 싹싹 밀어 놨을 때도
부끄러워서 어쩔 줄을 몰랐지요.
나는 다 컸을 때까지도 배코칼로
밀어놔서 꼭 모자를 쓰고 다녔습니다.
이와 같이 스님이 되려면 그런 창피와
모든 것을 다 없애 버려야 됩니다.
기독교는 볶으려면 볶고, 기르려면
기릅니다. 기독교에 삼손이 있었지,
불교에 있었던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상당히 머리기 길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머리를 빡빡 밀어 놓으면 대추
방망이같이 보기 싫습니다. 그러나
머리를 깎지 않으면 머리로 인물을
커버할 수 있습니다. 나도 오늘 머리를
깎고 다듬었더니 단정하게 보이고,
인물이 또 다른 폼이 납니다.
머리를 깎아 버리면 도대체 다른
폼을 낼 길이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 머리 가지고 인물이
상당히 좌우됩니다. 인물에 자신이
없을 때가 있으면, 자신을 가질 수
있는 길은 머리 하나입니다. 머리를 좀
짧게 깎든지, 파마를 하든지, 옆으로
살살 멋있게 다듬는 것이 있습니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35
“얼굴이 자신이 없으니까 머리로 내가
인물을 내려고 하니까 부탁합니다.”
하고서 한 2000원만 더 주면 아주
멋있게 빼놓습니다. 그런데 불교는
그것을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는 또 하나, 전문자가
되려면 중 옷을 입어야 됩니다. 그것을
입고 다니면 "중! 저 중!" 그럽니다.
의상부터 사회에서 우러러 보는
의상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중 의상을 입으면, 나도 중
의상을 입으면 바깥에 나가면, 머리
깎아 놓으면 폼이 안 납니다. 정말
폼이 안 납니다. 깎아 봐야 알겠다고
하지 마세요. 나는 내 머리에 대해서
압니다. 이발사가 이발을 조금만 잘 못
해 놔도 다시 깎으라고 하는데, 머리를
싹 밀어 놔 보십시오. 얼마나 보기
싫은가.
나는 중이 입는 재색을 제일
싫어합니다. 중 색깔 옷을 제일
싫어합니다. 검은색 옷을 입으면
입었지 그 옷을 안 입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습니다. 그 옷을 입으면
폼이 안 납니다. 그 옷 입고 폼이 날
자신이 있는 사람은 나한테 와보라는
것입니다. 여자고 남자고 그 옷을
입으면 폼이 안 납니다.
기독교는 자유롭습니다. 불교는 자꾸
산 속으로 파고 들어갑니다. 기독교는
자꾸 성장할수록 사회 속에 들어가서
그들과 같이 하나 됩니다. 이런 식으로
다릅니다.
기독교는 먹는 음식을 볼 때도
웬만하면 다 먹습니다. 멍멍탕까지
다 먹은 입장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불교는 멍멍탕은 고사하고 비린내
나는 것을 먹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먹는 것에 자유가 없습니다.
먹는 것, 입는 것, 멋, 패션, 이런
것이 다 천국입니다. 육신을 쓰고
일어나는 것을 보면 천국입니다.
그 천국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고정된 세계에 집어넣고서.
그렇기 때문에 차이가 있지 않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비교를 해 주는 것입니다.
길에 대한 비교를. 인생 삶의
생활에 대한 비교를.
먹는 것에 지장이 참 많아요.
요즘은 불교가 개방된 편입니다.
범석 총무가 그랬습니다. 범석 총무가
잘 가던 음식점이 있는데 어느 날
가보았더니, 머리를 길게 늘여서 보는
사람이 `머리 좀 깎았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앉아 있더랍니다.
‘머리 좀 깎았으면.. 겨울철도 아닌데
머리를 길게 하고 있냐.’ 그 생각을
하고, 같이 밥을 먹고 술도 한 잔
마시고 했는데 돼지고기를 아주 잘
먹더랍니다. 범석이가 그 전에
여기 오기 전에 일입니다.
그 사람이 나간 후에
주인아주머니한테 "그 사람, 참
푸짐하게 먹고 나가네요! 그런데 머리
좀 깎고 다니지..."그랬더니만
아주머니가 귀 좀 빌리자고 하더니
"스님입니다." 하더랍니다.
스님이 장발을 하고 와서 돼지고기를
맛있게 먹고 가서 "참 푸짐하게 먹고
간다." 그랬더니만 그 아주머니가
심정모르는 이야기를 하니까 한마디
해 준 것입니다.
"스님입니다. 어느 절의 스님입니다.
밤만 되면 저렇게 나오셔서
돼지고기를 몇 근씩 먹고
들어가십니다."
"그럼 멍멍탕도 먹겠네요?"
"멍멍탕은 우리가 안 하니까 모르는데,
한번은 여기도 멍멍탕을 하냐고 슬쩍
묻는 것을 보니까 그것도 먹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이 있어서 보다 개방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불교에서도
원불교는 그런 것을 개방해서 머리도
안 깎고 고기도 먹습니다. 결혼식도
합니다. 스님들은 결혼을 안 하지
않습니까.
이런 여러 가지로 볼 때 차이가
많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예수를 코치하신 분은 하나님이고,
석가를 코치한 분은 누구냐? 냉철하게
따질 때는 물론 하나님이 그 나름대로
역사를 했다고 하지만, 그냥 따질 때는
스스로 닦았다는 것입니다. 왜?
석가는 "하나님이 계시다." 하는
소리는 안 했습니다. 불교 전경에다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깨우쳐 줬다.
하나님이 이렇게 해 줬다.” 하는
소리를 안 했기 때문에, 본인이
깨달았기 때문에 ‘인간의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길.
길은 길이지요.
그런데 사람이 손으로 닦은 길 하고,
불도저로 닦은 길 하고는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나무를
가지고 만든 것 하고 쇠붙이를 갖고
비행기를 만든 것 하고는 차이가
있듯이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입는 것도 천국입니다. 새 옷을 사
입으면 그렇게 기쁘지요? 천국에
가면 그렇게 삼박한 기쁜 것이
있습니다. 또 먹는 것도 먹는 나름대로
여러 가지로 기쁘고 희락이 있는데, 몇
가지만 먹는 사람은 맛을 몇 가지만
느끼기 때문에 희락에 그만큼 제재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안식교는 구약을 좇고 있습니다.
완전히 구약을 좇기 때문에 구시대를
지키고 있습니다. 통일교도 구약을
많이 좇고 있습니다. 구약을 많이 좇고
있습니다. 왜? 구약에 있는 근본만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왜 그러냐? 그것은 이 세상에서
아무도 해석을 못합니다. 딱 나 하나만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
통일교는 보다 새로운 역사를 뛴다고
뛰었지만 신광야에서 놀았기 때문에
보다 구약적인 세계라고 선생님만이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딱 쳐다보면
아니까! 나는 성경만 연구했기 때문에
딱 쳐다보면 압니다. 어느 종교든지
그냥 쳐다보기만 하면 압니다.
앞으로는 종교를 다루는 근본을
선생님이 가르쳐 주겠습니다.내가
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안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내가 웬만하면
안 하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얼마만큼 이상적인
세계로 왔는지를 내가 안 가르쳐
주려고 했는데, 다 똑같이 반지를 끼고
다니니까 다 똑같은 반지인줄 알지만
이 반지 저 반지 다 다릅니다.
석수 차이가 있을 것이고, 모조품도
있습니다. 모조품 큰 놈이 있으니까
그 놈이 크다고 따라가는 어린아이와
똑같습니다.
“왜 그렇게 반지가 크냐?”
“이것 바꿨어요. 한나절 동안
졸랐더니 바꿔줬어요.”
“이것 모조품이다. 엿밖에 못
사먹는다. 빨리 가서 바꿔와.”
이와 같이 여러분들이 지금 가는 길이
얼마나 위대하고, 얼나나 가치 있는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36
길인지를 잘 모릅니다. 그런데 내가
이야기를 하면 압니다. 그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안 했는데 오늘부터 얘기를
하게 되네요. 하늘이 이야기를 하네요.
왜? 길에 대해서 얘기하고, 길의
차원을 이야기를 하려니까 천상천하로
말씀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믿습니까?
닦는 것은 나도 산에 있을 때 꽤 많이
닦았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닦는 길은
역시 인간 안의 수준급적인 한계 안에
있는 길들이라는 것을 이미 나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봉천동에 있을 때
한 4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한 스님이
찾아 왔었습니다. 그때 내가 그
스님에게 "석가가 이미 닦아 놓은 길을
그냥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뭘
본인이 다시 닦고 있습니까?" 했더니
몰랐습니다.
그림을 그려 보여 주며
“석가 스승이 닦아 놓은 그 길로
따라가면 되는데, 당신은 왜 또 40년
동안 닦았습니까?” 했습니다.
닦은 것을 또 닦고 하니까 거기서만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거기서 계속 가기 때문에 그
길이 무한정으로 끝이 없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석가 살아 있을 때 인간 인위적인
것으로 당세만 닦아 놓았기 때문에
죽으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 스님의 말이 자기가 그것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이미 닦은 길로
가면 되지, 뭘 그 닦은 길을 또 40년
동안 닦았냐고 하니까 자기가 40년
동안 닦은 후에 인생의 허무를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인생이 허무하구나.” 그러니까
‘허무’ 이 두자를 깨달았답니다.
그래서 "나는 국민학교 때 깨달았다."
했습니다.
어떻게 깨달았는고 하니, 철학을
하면서 깨달았습니다. 4학년 때
깨달았습니다. ‘참 허무하다.’
왜? ‘묘’를 쳐다보고 깨달았습니다.
‘나는 놈도 기는 놈도 다 죽어서
거기로 들어가니까 인생이 허무하다.’
석가도 허무한 것을 깨달았지요?
그런데 허무하지 않은 길을 가르쳐 준
것이 "선하게 착하게 살라."
이것이지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보다 ‘영원한 길을
가도록 하는 그 세계’를 말씀했습니다.
아까 이야기 한대로, 예수님은
하나님이 인도해 주셨고, 석가는
하나님이 인도했다는 소리가 한마디도
없습니다. 그냥 깨닫고 신이 있다고
했을 뿐입니다.
내가 그랬습니다.
“야, 석가가 설산에 들어가서
누구를 불렀을까?”
신을 불렀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본인 이름을 부르면서
"석가야, 석가야! 너 내 기도 좀
들어다오." 이렇게 안 했을 것이
아닙니까. 신을 부르면서 어디에 길이
있냐고 찾았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결국 근본자를 부른 것이
아니겠습니까. 알겠습니까?
하나의 종의 입장입니다.
이방의 종의 입장입니다.
구약적인 이방세계라는 것입니다.
구약역사 바로 밑에 있는 종교라고
그렇게 배워 가지고 왔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불교에서는 "오래 되었으니까 그래도
형님이 아니냐?" 하지만 오래된 것은
골동품밖에 못합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냉철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나는 종교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왜? 지금도 항상 생방송을
할 수 있으니까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렴풋이 그냥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논리를
깔아놓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직접 백마강을 보고 와서, 사람들이
추측하는 그 장소에서 뛰어내려서
물에 닿은 여자는 한 명도 없다고
확실하게 이야기 하듯이!
얼마나 확실하게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그래서 불가사의가 없습니다.
내 앞에는.
그러다가 어디로 가겠느냐?
이 세상 삶에 대한 상대 세계로
간다는 것입니다. “생각 상대 세계!
생각 실상 세계로 간다.” 그랬습니다.
이 세상에서 산 것에 대한 실상
세계로 갑니다. 그 수준급에서
살았으면 ‘그 수준의 상대세계’로 가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믿었을 때는 그 수준의 상대로 갑니다.
그래서 영계를 가 보면 불교 영계가
따로 있습니다. 기독교 영계가 따로
있고. 기독교 중에도 구시대 영계가
따로 있고, 신시대 영계가 따로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천주교 영계가 따로 있고,
장로교 영계가 따로 있습니다. 지금 이
지상세계도, 보이는 세계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지상 세계’도 기독교 영계가 따로
있어서, 우리 섭리사가 영계가 여기에
따로 있지 않습니까. 여기뿐만 아니라
전국에 쫙 깔려 있지 않습니까.
우리 섭리사 영계는 우리만이
독특하게 가지고 있는 영계입니다.
왜? 그 수준급이 비교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아예 비교가
안 됩니다. 어린아이와 어른과
비교하듯 치는 입장입니다. 그런
수준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계를 가보면
기독교 영계가 따로 있고, 천주교
영계가 따로 있고, 유교 영계가 따로
있고, 불교 영계가 따로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건너오느냐?
그것을 ‘믿음’으로 건너옵니다.
우리가 이렇게 믿다가도 다시금
목탁을 치고, 산에 가서 절에 가고
그러면 그 영계가 다시 옮겨집니다.
그 수준급으로. 그러면 답답하지요.
못 삽니다. 왜? 큰 옷을 입다가
작은 옷을 못 입듯이.
기독교에서 생활할 때,
기독교 신앙생활을 할 때 달동네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불교에
가도 "아, 괜찮다."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해 동네 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혜택 받고 은혜 생활을
하던 불교세계에서는 못삽니다. 다시
건너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요?
그렇기 때문에 "야, 나는 기독교에
다니다가 불교에 가서 이렇게 잘
다닌다."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이 싫어서 "너, 거기 가서
한 번 살아봐라." 하고 던진 것입니다.
음식을 먹다가 냄새가 나서 개라도
먹으라고 개에게 줬다 그것입니다.
이렇듯이 한 단계 낮은 세계로 주는
것입니다. 온 지구상을 설명한다면
그렇게 되게 되어 있습니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37
여기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원청 못 한 것들이 기독교에 가면
어떻게 다닙니다. 여기서 뜻을 깨닫고
잘 다닌 사람들은 절대 못 다닙니다.
못 다니게 되어 있습니다. 법칙상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래서 오늘날 그런 것이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를
보면 영계가, 가는 장소가 다릅니다.
아까 얘기한 대로 "거꾸로 가도 서울만
가면 그만이지." 하지만 한번 거꾸로
부산에서 서울까지 와보라는 것입니다.
말하고 실제하고는 다르니까. 사람이
한 시간, 두 시간만 거꾸로 서 있어도
피가 거꾸로 쏠려 뇌가 터져 버립니다.
그러니까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는
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이구, 다 길이 달라서 그렇지,
내내 다 일반이야. 똑같이 서울로 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래?” 하고
따라 갑니다.
“아니야. 달라! 길이 다르고,
위치가 달라.” 믿습니까?
“길이 다르고, 위치가 달라. 가다가
길이 합쳐지지 않아. 건너뛰어야 된다.
여기로 건너와야 돼.” 건너오기
전에는 그 길로 갈 수가 없습니다.
건너오기 전에는 절대로 우리가 가는
목적지를 못갑니다. 못 가게 되어
있습니다. 영계에 가서도 건너오기
전에는 못 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길이 다릅니다. 길이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표현했습니다.
그 사람이 그 사람 같고,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아도 체질이 다 다르고,
다 태(胎)보자기가 다릅니다. 그리고
모두 심리가 다릅니다. 체질이
다릅니다. 그래서 똑같은 약을 주면
안 됩니다. 한약을 쓰시는 분들,
양약을 조제하는 약사님들, 모두 다
있지만 같은 증상이라 할지라도 한
사람은 그 약을 먹고 낫고 또 한
사람은 부작용이 일어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래서 그 차이가 상당히 크고
크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기독교의 낙원과 불교의 극락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차이가 너무
많습니다.
똑같은 금이라도 우리나라의 24금과
저쪽 브라질의 금과는 다릅니다.
똑같은 순금이라도 차이가 많습니다.
색깔 차이가 다릅니다.
그것도 하물며 그러한데, 영계는 더욱
그 차이가 엄청난 세계입니다.
같은 남자라도 미국사람 다르고
한국사람 다릅니다. 생명나무가
붙었다고 해서 같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다릅니다. 같은가 한 번 벗겨
보십시오. 성품도 다르고 모두
다릅니다. 차이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여자들도 다 다릅니다. 얼굴이
다르듯이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얼굴이 다 다르지요? 다
다릅니다. 똑같은 것 같아도 다
다릅니다. 체내에 있는 모든 구조도다
다릅니다. 쉽게 말하면 여자들의
선악과도 십억만 명이면 십억만 명이
다 다릅니다.
어떻게 그걸 알았습니까?
그것은 영계에서 배워서 안 것입니다.
그래서 맞다고 박수를 세 번을
쳤습니다. 세 번만 치면 안 된다고
해서 백 번을 쳤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합니까?” 했더니
“얼굴이 다르듯이 다르다고 하라.”
했습니다. “아, 그렇구나.”
“손금이 다르듯이 다르다고 하라."
내가 말하면 백 번 해도 다 틀렸다는
말이 안 나옵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흥분된다고 하지요.
진리를 들으니까 질리겠습니까?
안 질리지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그것입니다.
종교를 한번 잘못 접하면
10년, 20년, 30년 가다 보면
인생의 젊음은 잠깐입니다.
버뜩입니다. 마치 목련이 피었다가
지는 기간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종교를 한번 잘못 선택하면
참 고생합니다.
여러분들! 친애하는 우리 섭리의
신사 숙녀 여러분! 남녀노소
여러분들! 정말로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감격하고 감사해야 됩니다.
다음 주에 헌금을 많이 가져 오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헌금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내가 가끔 가만히 있을 때마다
애들이 나를 푹 찌르면서
"누구를 생각하는 거에요?" 그럽니다.
"지랄하지 말어. 가만있어.
나 건드리지 마! 나는 지금
감격감사하고 있다."
"왜요?"
"하필이면 내가 그 많은 길들 중에서
정말로 정통적인 하나님을 믿고,
정통적인 주를 믿고, 정통적인 진리를
내가 깨닫고 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감격하고 감사스러운지 나는 지금
이 순간도 혼이 빠지게 뿅~ 가고
있다. 너희들은 왜 그걸 모르냐?
너희도 그것 좀 깨닫게 해 줄까?
일주일만 금식해라.
2주일, 3주일을 해야겠어?"
나는 왜 금식도 안 하고 기도생활을
안 해도 늘 평소에 그것을 따끔하게
깨닫습니다. 뜨겁게 깨닫습니다.
그 뜨겁게 깨달은 것을 설교시간에
오면 불이 붙어서 이야기를 합니다.
‘평소신앙’을 가지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늘 감격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따끔하게 심판합니다.
완전히 심판합니다.
"너, 그럴 수가 있냐? 니가
돼지머리냐? 치타 머리가 좀 돼 봐라.
독수리 머리가 되어 봐라."
꼭 그러함을 받는 여러분이
되어야겠습니다.
너무너무 차이가 많습니다.
여러분들 하고 현 기성시대 하고는
차이가 너무너무 많이 있습니다.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그들은 진리가 없고, 우리는 진리가
있는데 차이가 많지요!
우리는 문제와 답을 같이 갖고 있고,
현 기성시대는 문제만 가지고
있습니다. 차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엄청나게 차이가 많지요.
구원의 차이가 천 층, 만 층, 구만
층이라는 소리를 들었지요? 같은
건물에 살아도 8층에 사는 사람이
있고, 2층에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파트도 마찬가지입니다. 1층에 사는
사람이 있고, 3층에 사는 사람이 있고,
5층에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차이가
많습니다. 가격 차이도 많습니다.
시야(視野) 차이도 많습니다.
이와 같이 똑같은 것입니다.
차도 많은 차들이 있지만,
“나도 차 있어.” “나도 차 있어.”
하지만 차도 나름입니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38
"나도 돈 있어." “나 돈 있어.” 하지만
그것도 나름입니다.
“천 원짜리가 들어있냐,
일 억짜리 수표가 들어있냐?”
나름입니다.
"나도 섭리사 뛴다.“
“나도 섭리사 열심히 뛴다.”
이것도 나름입니다.
“나도 섭리의 엠에스 뺏지(badge)를
달았어." 해도 그것도 나름입니다.
나는 이렇게 예리하게 따지는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 지나치게
얘기했나요? 여러분들, 밤잠이
안 올지 모르지만, 심각할 때는
심각해야 됩니다.
나도 하늘로부터 이 진리를
깨달을 때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그런 말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그 단계를 벗어나서
더 위의 단계, 다른 세계에 있으니까,
하여튼 종교에서 아무 종교라도
부럽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섭리에 오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부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럽게 생각할 것이 뭐 있습니까.
종교는 무조건 깊은 최대 차원의
말씀을 주고, 최대의 말씀을 주는 것,
그것 딱 하나입니다! 최대 근본된
말씀만 주면 최고입니다. 나머지는
자기의 생활 차에 의해 좌우되겠지요.
내가 오늘 낮에 뒷동산에 올라가
봤는데, 나무들이 많이 죽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 봄에는 죽은 나무인가 산
나무인가를 확인하는 계절이며,
여름에는 무성하게 잎사귀가 피는가,
마음놓고 잎사귀가 만발하게 피는가
확인하며, 가을에는 열매가 맺는가 안
맺는가 확인하고, 겨울에는 상록수인가
아닌가를 확인하는 계절이다." 그런
하늘의 유식한 말씀을 했더니만
애들이 "너무 유식한 이야기라
부시멘들은 알아듣기 힘들다."
했습니다.
여러분들, 얼마나 위대한 삶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까. 믿습니까?
얼마나 가치 있는 목적지를 놓고서
우리는 가고 있습니까. 그것이야 말로
얼마나 이상적인 일인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
진리에 대한 것을 알았지요? 바로
이 시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그
진리를 믿으면 살아납니다. 거기에
생명이 다시 부활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더 하고 싶은데,
시간상 더 못 하고 이만치만 하면
나머지는 여러분들이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공자는 “어진 마음을 가지라.”
이게 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곧 진리를 선포하며 길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분명코 차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종교한테도 꿇림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알겠습니까?
독수리가 어떤 날 동물한테도
업신여김을 받을 것이 없습니다.
독수리가 까마귀를 보고
“야, 나도 좀 저렇게 새카맸으면
좋겠다. 아이고, 왜 나는 ‘뀌-익,
뀌-익’ 하냐? ‘까악 까악’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한이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오늘날 천주교가
"아, 기독교는 너무 좀 소란하다.
우리는 조용한 것을 원한다." 하는데
그것은 인간에 대한 일반적인
것입니다. 나를 보십시오. 운동도
하고, 외칠 때는 뼈저리게 신혼골수를
쪼개내는 말씀을 줍니다.
어느 축구선수가 그랬습니다.
"선생님은 말씀 전할 때는 분명
신(神)이야. 그런데 말씀이 끝나면
분명 사람이야. 그리고 볼을 찰 때
보면 분명 선수야."
"그것이 아니다. 자기 신발을 벗는다고
그 신발이 어디 가냐? 신고 다녀도
자기 신발이고 벗어놓고 방에
들어가도 자기 신발이지. 이와 같이
하나님은 나와 항상 함께 계신다.
운동할 때도 가만히 봐라. 하나님이
함께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안산에서 6시간동안 축구를 했는데,
축구 선수들이 4-5시간이 이르니까
도대체 발이 안 올라가더라는
것입니다. 대학교의 대표선수들인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자기네들 끼리 "정말로
초인이구나. 정말 초인이야. 맞아!"
했답니다. 그러면서 나에게
"얼마나 더 하실 수 있습니까?" 했을
때 내가 "잔디가 다 문드러질 때까지
할 수 있다." 했지요.
그렇게 해서 6시간동안 볼을 차고
또 1시간동안 배구를 하는데 그때도
날아다니니까 `아, 세상에! 저럴 수가
있을까?' 했답니다. 그리고 수영장에
가서 3시간동안 수영하고 와서
만나자는 사람들을 다 만나 주고
했으니 정말로 철판이지요, 철판!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는 대로
"우리는 초인을 보았노라."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그 말이 맞지요!
자기 나이 또래가 그렇게 해도
놀라는데 자기들보다 배(倍)나 나이를
더 먹은 사람이 그렇게 하니까 얼마나
놀래겠습니까?
사람이 40살이 넘어가면 다리에서
오도독 소리가 꼭 난다고 하더니만
정말로 오도독 소리가 나더라구요.
여러분이 이 말을 적어놨다가 40대가
되면 꼭 보십시오. 반드시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만들어 놨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40이 넘은
지가 옛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하는 것을 보면 정말로
신이지요!
나는 맨날 다리통을 잡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 이 다리를 철근을
만들어 놨으니 다행이지, 참 큰일 날
뻔 했네요. 정말로 하나님은 구경할
것이 많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을 다 철근으로 만들어 주세요."
하고 기도를 합니다.
이런 것이 길이라고 외쳤습니다.
누구는 "너 자신을 알라. 이것이
길이다." 그랬지만, 우리는 곧 길이
뭐냐? 이 시대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이 시대 길이 날 테니까.
시대를 모르니까 모두 자살해 죽고,
길을 모르니까 모두 허탄한 길로
갑니다.
내가 이런 노래를 많이 불렀습니다.
"길도 없이 거친 넓은 들에서 갈 길
못 찾아 애쓰며 이리 저리로 헤매는
내 모양 저 원수 조롱하도다."
그 노래를 부르면서, “내 자신이 길을
못 찾고 돌아다닐 때 원수가 얼마나,
마귀가 얼마나 조롱하겠습니까? 나 길
좀 찾게 해 달라”고 그렇게 했습니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39
그리고 나도 어둔 세상 지날 때 햇빛
좀 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햇빛이
없어서 도대체 이 등불을 가지고 살
수가 없다고 그랬습니다. 정말로
이제는 ‘해’가 되었습니다! 정말로
길을 찾았습니다! 자신이 길이 되었고,
자신이 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뿅~ 갔지요!
요즘은 다 자기 피알 시대니까.
< 기 도 >
거룩하고 은혜로우신 우
리 아버지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 아버지의 길과 진리와
생명의 말씀을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비교도 해 보았습니다.
비교된 말씀을 영원히 머릿속에 넣고
감격감사 해야 되겠습니다.
그 전에는 그런 비교를 할 줄
몰랐는데 비교를 해 보니까 너무
차이가 많습니다.
의와 사랑과 진리로 함께 해
주시옵소서. 우리가 시대의 가장
고차원적이고 고상하고 위대한 길로
가게 되었으니 이제는 길갈로도 가지
말고, 바벨론으로도 가지 말고 오직
이 길을 찾아 가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오라, 저기서 오라 해도 가지
마라.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말고,
오직 나만 따라오도록 하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갈 자가
없느니라.
오는 한주일 동안도 붙잡아 주시고,
또 우리 여생을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신앙의 굳은 각오를 베드로 같은
신념을 통하기를 원하노라.
아버지의 인자하심과 사랑하심과
은혜가 이 곳을 중심해서 전국 교회와
온 지구촌에 있는 사랑하는 모든
섭리의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해
주시고, 앞으로 섭리를 쫓아 올 모든
자들에게 길을 열어 주사 그들로
사망권에서 생명권으로 건너뛰게
축복해 주시고, 말씀가운데 시험과
어려운 일이 있어도 이기고 승리함이
충만함을 주시옵소서.
한 주일 동안도 무슨 일이든지
뜻있고 가치 있는 생활이 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감사하며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40
2015년 07월 19일 주일
알고 행하라
[ 마태복음 18장 21-22절 ]
12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
12 Hope deferred makes the heart sick,
but a longing fulfilled is a tree of life.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 말씀의 주제는
‘알고 행하라’입니다.
무엇을 확실히 알고 행해야 되는지,
크게 세 가지를 말씀해 줄 것입니다.
◎ 먼저 세 가지의 핵심을 짚어 주고,
하나하나 풀어서 설명해 주겠습니다.
첫째, 휴거의 차원을 높여라.
휴거의 차원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둘째, 시대 아담을 알았으면 시대
하와를 확실히 알고 인정해라.
그러나 시대 하와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알아라.
셋째, 주의 돛을 달아라.
삼위일체가 보낸 자가 오직 핵이다.
중심이다. 성자 떠나신 후에는 보이는
성자와 땅에서 혼인 잔치 해야 된다.
이것이 성약역사의 핵심이다.
원동력이다.
지금 이때에 이것을 알고 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 오늘 말씀은
지난 주 대만 집회 말씀과 주일말씀에
이어지는 2편이기도 합니다.
◎ 오늘 말씀을 집중해서 잘 듣고,
이해하고 깨닫기 바랍니다.
이해해야 깨달아지게 됩니다.
깨달아져야 그때부터 즉시 차원을
높일 수 있습니다.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우리는 이 역사가 하나님의 마지막
역사로서 아담과 하와 때 못 이루고,
신약 때 완성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완성할
역사>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근본 창조 목적>은
땅에 ‘사랑의 대상체, 신부’를
만들어서 그 육을 통해 ‘영’을
변화시키고 휴거시켜
<천국 황금성>에서 성삼위와
영원히 사랑하며 혼인 잔치 하고,
<땅>에서도 ‘육’을 가지고
땅의 구원자와 함께 혼인 잔치 하며
사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했는데
어떻게 다시 왔는지 배웠습니다.
<성자 본체>를 밝히며
‘성자’가 다시 오셔서
이 시대에 가장 합당한 자,
하나님, 성령님, 성자에 대해
제대로 확실히 아는 자, 그리고
삼위일체를 가장 사랑하는 자의
‘육신’ 쓰고 오셔서 이 시대에
성경에 예언된 <휴거 역사>를
펴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휴거>가 무엇인지 배웠고,
<육>은 어떻게 휴거되고 <영>은
어떻게 휴거되는지 배웠습니다.
그리고 <휴거>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룬
성약 섭리역사에서 살고 있습니다.
<휴거된 영들>은 성자 승천 때
성자와 같이 <천국 황금성>으로 가서
지금 혼인 잔치를 진행 중입니다.
역시 이 땅에서도
‘휴거된 영들의 육신들’은
성약 신부 역사, 휴거 역사의
혼인 잔치를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휴거에도 차원이 있다.’라는
것을 배웠고, 현재 우리는
<휴거의 차원>을 높이며
<신부 사도 역사, 성령의 역사>를
일으켜야 할 시점에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모른다면,
말씀을 배우면 됩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았다면,
흔들림이 없습니다. 알았으니,
행하여 날마다 차원을 높일 것입니다.
힘들지만, 매일 도전하는
인생을 살 것입니다.
세상이 몰라 줘도, 매일 증거하며
외치는 삶을 살 것입니다.
매일 성령이 그 육신을 쓰고
살아 주실 것입니다. 매일 기쁨과
감사가 넘쳐 날 것입니다.
육신도 매일 ‘휴거의 삶’을 살면서,
더욱 삼위일체를 사랑하고 주와 일체
될 것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이 역사의 핵심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어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창조>부터 <휴거>까지
‘성경의 핵심’을 이루었습니다.
아담과 하와 때 깨졌던 뜻을
구원역사 6000년 만에 이루어
승리하고야 말았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믿고,
삼위가 보낸 자를 믿고 따르고
그 말씀을 행하는 가운데 최고의
보람과 기쁨과 성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성자가 말씀하신 것,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목적을 이룬 것입니다. (맞습니까?)
섭리역사는 개인·가정·민족적 핍박과
환난, 무수한 악평과 어려움 속에서도
절대 굴하지 않고, <시대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휴거’를
이루었습니다.
<분체>는 극한 억울함 속에서
시대 십자가를 지면서까지 모든
조건을 세우고 사탄과 사망을 이기고
나와서 성경의 인봉들을 하나하나
낱낱이 밝히며 <휴거 말씀>을
쏟아부어 주면서 우리를
휴거시키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분체>는 ‘시대 아담’으로서
구약 때 깨지고 신약 때 하지 못했던
<시대 하와>를 세우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함으로 <성령>께서 ‘그 몸’을 쓰고
휴거 때 ‘성령의 역사’를 일으켜
따르는 자들을 ‘신부’로 단장시키게
했습니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41
먼저 <분체>가 다 이기고 승리했기에
그로 인해 <시대 하와>도 세워졌고,
먼저 <시대 아담과 하와>가 사탄을
이기고 휴거됐기에 그로 인해
<섭리사 신부>들도
휴거시킬 수 있었습니다.
<성경>이 이루어졌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이루어졌습니다.
승리했습니다.
성공했습니다.
섭리역사는 승리하고 성공했기에
과거에 수고했던 모든 것,
사탄과 인사탄으로 인해 받았던 고통,
주를 따름으로 인해 받았던 핍박과
환난, 신부로 살기 위해 참고 견디며
행했던 모든 수고가 단 하나도
헛되지 않고 모두 기쁨 거리,
자랑 거리가 되었습니다.
현재 자기 인생이 성공한 사람은
과거에 살아온 삶이 모두
기쁨 거리로 떠오르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현재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과거에 살아온 삶이 모두 슬픔과
고통으로 떠오르고 생각됩니다.
영이 휴거되어 천국에 간 자는 과거
세상의 삶이 모두 천국 생활로
떠오르고 생각나 기뻐합니다.
그러나 영이 지옥에 간 자는
과거 세상의 삶이 영화로웠든지
힘들었든지 간에 모두 지옥의 생활로
떠오르고 생각나 괴롭습니다.
현재 영과 육이 하나님, 성령님,
성자와 구원자를 만나
하나님이 최고로 원하시고
구원역사 6000년 동안 이루려던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어
영이 휴거되어 휴거의 차원을 높이며
가고 있는 자들은 인생 어느 누구보다
최고로 성공한 자입니다.
또한 휴거되기 위해 휴거 길을 가고
있는 자들도 인생 최고의 성공 길을
가는 자들입니다. 고로 모든 삶을
기쁨의 삶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기뻐하고 사는 것이
<휴거된 자>와 <휴거 길을 가는 자>의
마음과 생각이 돼야 합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지 않으면,
사탄이 들러붙어서 <육신>이 더
괴로운 고통의 삶을 살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사도 바울은 ‘소망’에 대해서
엄청나게 많은 말씀을 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따르는 자들을
계속해서 핍박하며 이단이라고 했지만,
그리함으로 인해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셨지만,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소망, 천국의 소망,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성도들을
다독이고 오직 메시아를 증거하며
예수님의 몸이 되어 외치고
행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으면서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소망,
천국의 소망, 영생의 소망이 없다면
무슨 힘으로 신앙생활을 하며
행하겠습니까?
기독교인들은 그 소망과 희망으로
예수님 당세부터 후대까지
2000년 동안 신약역사를
펼쳐 나가며 살았습니다.
성약 섭리역사는
‘신약 때 말한 모든 것’을 밝히며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소망,
천국의 소망, 영생의 소망을
완전히 이루는 역사입니다.
기다리는 삶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루고 지금
삼위일체와 주와 함께 사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섭리역사에서 살면서
휴거의 소망이 없고,
휴거의 기쁨이 없고,
휴거의 가치를 모르고 살고,
휴거의 삶을 살지 못하고,
휴거의 차원을 높이지 못한다면
우리는 섭리사의 자부심을 잃게 되고,
불이 식고 열정이 사라지게 되고,
이 복음을 자신 있게
담대히 전할 힘도 없고,
우리만 가진 능력을 발휘할 수도 없고,
더 이상 앞으로 전진할 수도 없습니다.
<휴거>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고 영으로 <천국 황금성>을
차지하여,천국에서도 삼위일체와
주의 성벽과 붙은 곳에서 신부로서
영원히 삼위일체와 주를 사랑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최고 자부심이며
자랑이며 기쁨입니다.
육으로는 땅에서
<휴거의 삶>을 살면서 시대 복음을
증거하며 성령의 불을 일으킴으로
신앙의 조상이 되고, 계속해서 차원을
높이며 <지상천국>을 이루며 사는
것이 우리가 섭리사에서 사는
목적이며 우리의 최고 자부심이며
자랑이며 기쁨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지금 이때를 사는 우리들이 정말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잊어버리면, 생각도 안 나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고로 잊지 않도록 늘 생각하고,
늘 말해 줘야 됩니다.
고로 말해 줍니다.
★ 첫째, 날마다 휴거의 삶을 살면서
<휴거의 차원>을 높이는 것입니다.
<휴거된 영>은 보나 마나 확실히
<천국 황금성>에서 ‘성자’와 함께
혼인 잔치를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휴거된 자의 육신>입니다.
<육신>도 이를 확실히 알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매일 <땅>에서
‘보이는 성자, 곧 분체’와 함께
혼인 잔치를 하고 있느냐,
그리고 더욱 행하면서
<휴거의 차원>을 높이고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휴거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영>도 하늘나라 형체로 변화되어
천국에 가고, <육>도 이 세상에서
천국의 삶을 누리며 살기
위해서입니다.
<영>만 천국에 가면 뭐합니까?
<영>이 휴거된 혜택으로
<육>도 땅에서 그만큼
누리며 살아야 됩니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42
땅에서 우리 육신도 성자 분체와 함께
혼인 잔치를 하면서 더욱 삼위일체를
사랑하고, 신부로서 사도들이 되어
외치면서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며,
매일 기뻐하고 감사하고 차원을
높이며 휴거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그런데 휴거되고도 <육신>이 ‘휴거된
자로서 휴거의 삶’을 살지 않으면
더 이상 ‘휴거의 차원’도 높아지지
않고, 곤고함에 빠져 <육>이 힘을
내지 못하고, 그러다가
‘사망의 세계’로 가게 되기도 합니다.
왜 최고로 좋고 영원한 성공을 하고도
웅크리고, 짜증 내고, 감사하지 않고,
기뻐하지 않고, 신세 한탄이나 하면서
삽니까? 참으로 미련하고 몰라서
억울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전능하신 하나님, 성령님,
성자께서 ‘시대 구원자의 육신’을 쓰고
가르쳐 주시니, 말씀을 듣고 즉시
마음을 돌이켜 행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마음에 묶인 것들이 있습니까?
휴거되고도 곤고해하고 웅크리고
있습니까? 묶인 것들은 말씀을 듣고
행하면 풀어집니다. (아멘.)
사람이 물질을 풍부하게 가졌다고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영>을 구원해야 행복합니다.
<영>이 휴거되어
<영원한 최고의 황금성>을 가졌다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더 행복합니다.
성약역사에 와서 울고 웃고,
수고하고 노력하고, 참고 견디며
행한 보람을 다 이룬 것입니다.
인간이 태어난 목적을 이루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었으니,
인간으로 태어나서 최고로 성공한
자이며 인간으로서 최고의 가치를
지닌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휴거되고도
행복하지 않다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세상 물질을
얻어도 행복하고 기쁘게 살지 못할
자들입니다.
세상 물질, 명예 등 세상의 것들이
갖춰져야만 감사하고 기뻐하며 사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육적인 신앙인’이라서
아예 ‘영 변화’가 안 됩니다.
선생은 과거에 그렇게도 가난하여
못 먹고 고생했습니다.
이 시대 복음을 전할 때도,
월명동을 개발할 때도, 또 해외에서
10년 동안 복음을 전할 때도 많이
고생했습니다. 또 지금 시대 십자가를
지고 가고 있는 이때도 주는 것도
못다 먹고 하루에 한 끼만 겨우 먹고
하루 종일 일합니다.
그러면서도 이 시대 인생들을
휴거시키는 데 목숨 걸고 살았습니다.
그래도 인간으로 태어나서 지구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 중에서
창조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최고로 감사하며 살고 있고,
따르는 자들에게 인상 찌푸리지 않고
웃으면서 살았습니다.
못 먹고 고생했다고 해서 휴거에
지장이 있지도 않았고, 육신이 폭삭
늙거나 병들지도 않았습니다.
정말 그렇다는 것을 접견하러 온
자들은 확인했습니다.
<하늘의 신부>라면,
‘신랑 성자’를 따라서 신랑과 같은
마음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사는
것이 정상입니다. 정상으로 살아야
받을 것들을 계속 받게 됩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고 진정 깨달아야
성령이 불로 역사하시어 성령님께서
‘그 육신’을 쓰고 행하십니다.
고로 그 <마음>이 더욱 강해지고,
<육신>도 더욱 힘을 내어 살게 됩니다.
그로 인해 <영>도 자꾸
‘휴거의 차원’을 더욱 높이게 됩니다.
그러니 <삶>이 더욱 기쁘고 보람되고
행복합니다.
무조건 ‘성령의 불’을 달라고 하면,
안 줍니다. 말씀을 듣고 이해하고,
제대로 깨달아야 줍니다.
<잠시 쉬었다가>
<3.16> 이후에 달라진 것이 무엇인지
압니까? 선생은 <3.16>을 보내고
한 가지를 크게 깨달았습니다.
‘섭리인들은 ‘말하는 것 한 가지’만
생각하고, 그 외에는 달리 생각하면
안 된다고 늘 가르쳐서 말하는 것
외에 ‘그와 연관된 다른 한 가지’는
모르는구나.
과거에 그리 가르쳐 줬어도
또 다시 말을 해 줘야 알지,
다시 말을 안 하면 모르는구나.
“숟가락 가져와라.” 하면 숟가락만
가져오지, 절대 젓가락은 생각하지
못하고 안 가져오는구나. 그러니
앞으로는 ‘한 가지’만 말하며 가르쳐
주지 않고, 구체적으로 ‘두 가지’를
다 가르쳐 줘야 되겠다.”
하고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3.16>이
신랑 성자에게 해당되는 성자
승천일이라는 것은 가르쳐 주고,
신부 자기들에게 해당되는 휴거
날이라는 것은 안 가르쳐 줬더니
자기가 휴거됐어도 모르고 그날을
보냈습니다.
옆에 구름같이 많은 영들이 휴거되어
성자와 천사들과 함께 행렬을 맞춰
가는데도 못 보니 몰랐습니다.
선생은 이것을 보고
‘알고 깨닫는 것이 아니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영>을 못 보면,
영의 <육>을 보면 알지 않습니까?
<육>도 ‘하늘의 신부’입니다.
그러나 <육>이 알고 깨달아야
<육>도 ‘하늘의 신부’가 되어
지금도 <땅>에서 성자의 육과 함께
혼인 잔치를 하며 살게 됩니다.
★ <영>이 휴거되어 ‘천국’에서
혼인 잔치를 하니, <육>도 ‘땅’에서
휴거의 삶을 살면서 혼인 잔치를 해야
됩니다.
<육>과 <영>이 다 ‘혼인 잔치’를 해야
완전한 삶입니다. 모르면, 억울합니다.
★ 구원역사 6000년 만에
<마지막 성약역사>에서 성약역사를
시작한 지 37년 만에 이룬
<휴거>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지구 역사상 ‘그날’보다 더 큰 날은
찾아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최고 목적을 이룬 날입니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43
그러나 알지 못하고
완전히 깨닫지 못한 채 행하니,
그 엄청난 <휴거>를 이루고도
곤고해하며 힘이 빠져 있고,
휴거의 삶을 살지 못함으로 인해
차원을 높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차원을 높이지 않으면,
그 위치에서 머무르게 됩니다.
그 위치에서 머무르면,
그 위치에서 만족하며 기쁘게
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차원을 높이지 않고 그 위치에서
머무르면, <휴거의 문>이 열리고
<구원자와 함께 살아가는 이때>
더 발전하여 차원을 높이지 못한 채,
섭리사 안에서 ‘기성인’처럼 되어
버립니다.
그리함으로 핍박과 환난이 없어도
스스로 곤고함을 면치 못하고 힘이
없어 쓰러지게 됩니다. 스스로 비전을
느끼지 못하고 성공과 승리의 휴거의
삶을 저버리게 됩니다. 반드시
700선까지 도전하기입니다!
그러면서 계속 기뻐하고
감사하기입니다!
그러면서 시대 복음을 담대히 전하고
외치며 생명들을 구원하고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기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휴거의 차원>을 높이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휴거된 자기 영>을 부르고 써야
됩니다.
자기 영이 휴거됐는데
왜 놀리고 있습니까? 매일
<자기 영>을 부르며 함께하며
도와달라고 해야 됩니다.
<휴거된 자기 영>을 쓰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자기 육신>이 확실히 알고
‘휴거된 자기 영’을 부르며,
더욱 주와 일체 되고 성삼위를
사랑하면서 날마다 ‘휴거의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한계’에 대해서 말씀했지요?
<영>이 휴거되어서 아무리 뛰어나도
‘영의 한계선’을 넘어서 행하지
못합니다.
<영>이 한계를 넘어 ‘육의 세계’에
와서 행하려면, ‘자기 육신’을 쓰고서
해야 됩니다.
고로 <육>이 자기 영이 휴거됐다는
것을 알고, 휴거의 기쁨과 감사를 잊지
말고, 생각을 온전히 하여 생각의
파장을 영에게 맞추어 매일 ‘휴거된
영’을 부르며 도와달라고 해야 됩니다.
그리함으로 <휴거된 영>이
‘자기 육신’을 쓰고 행하며, 자기
육에게 힘을 주고 자기 육을 도와
날마다 차원을 높이게 해 줘야 됩니다.
그러나 <휴거된 영>이 ‘자기 육’을
쓰고 행해도 한계가 있으니 매일
하나님, 성령님, 성자와 주를 부르면서
함께 하자고, 도와달라고 해야 됩니다.
사람은 ‘망각의 존재’입니다.
매일 생각하지 않으면 잊어버립니다.
잊어버리면 아무 생각도 안 나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자기 영이 휴거됐어도 그것을 잊으면,
휴거의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고로 매일 말씀을 상고하고, 매일
기도하고, 매일 삼위와 주를 부르고,
매일 휴거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육>은 힘도 능력도 한계가 있어서
반드시 휴거된 영, 하나님, 성령님,
성자, 주의 도움을 받아야 됩니다.
그러나 <영>도,
<하나님, 성령님, 성자>도, <분체>도
우리의 삶 가운데 들어와 직접 행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우리 각자의
육신을 쓰고 행해야 됩니다.
곧 <휴거된 자기 영>이 ‘자기 육신’
쓰고 행하도록 생각을 온전히 하며
자기 육을 자기 영에게 내줘야 됩니다.
그것으로는 또 한계가 있으니,
<성령님과 주>가 ‘자기 육신’을 쓰고
행하여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지고
행하도록 생각을 온전히 하며 자기
육을 성령님과 주께 내드려야 됩니다.
이 <한계>를 알고,
또 <한계를 넘어서 행하는 방법>을
알고 행하는 자가 날마다
‘휴거의 삶’을 살면서
‘휴거의 차원’을 높이게 됩니다.
휴거 700선까지 도전입니다.
그러기 위해 ‘육신의 삶’이
‘휴거의 삶’이 되게 해야 됩니다.
우리의 <육신>이,
우리의 <생각>이,
우리 <육의 행동>이
정말 중요한 이때입니다.
<휴거 300선>은 대학 입시에 합격되어
대학교에 들어간 격입니다.
열심히 해서 <400선>으로 가면
대학교 1학년을 마친 것이고,
또 열심히 해서 <500선>으로 가면
대학교 2학년을 마친 것이고,
또 열심히 해서 <600선>으로 가면
대학교 3학년을 마친 것이고,
<700선>으로 가면 대학교 4학년을
마치고 졸업하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도전입니다.
그리함으로 <휴거 300선의 승리>를
아깝지 않게 해야 됩니다.
<전환>
◎ 지금까지 <휴거>에 대해
말씀하면서, =<휴거된 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씀해 주었고,
어떻게 해야 <휴거의 차원>을
높이는지 말씀해 주었습니다.
◎ 이제 두 번째 말씀을
해 주겠습니다.
<3.16> 이후,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3.16>과 같은 날이 또 온다.
그때처럼 모르면, 또 억울하고 한이
되는 일이 있다. 한 가지를 말하면,
그것과 연관된 다른 한 가지를 꼭
깨달아야 된다.” 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나가도 섭리인들은
그것이 뭔지 알기 위해 기도하지도
않았고, 그것이 뭐냐고 선생에게
묻지도 않았습니다. 정말 답답한
신부들입니다. 고로 성령님이
답답해서 ‘그것’이 무엇인지
계시하며 밝히셨습니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44
곧 시대 대표,
시대 아담 앞에 세워진 신부 대표,
시대 하와에 대한 것입니다.
<이 시대 성약역사>는
‘성약의 에덴동산’입니다.
이 역사에서 복직된 아담이며
생명나무인 시대 대표 선생은 아는데,
복직된 하와이며 선한 열매인 신부
대표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역시 ‘한 사람’만 알고
그 앞에 있는 ‘다른 한 사람’은
보여도, 외쳐도, 같이 살면서도
몰랐습니다.
모르고 살면, <3.16>같이
억울한 역사가 됩니다.
알아야 성령님이 ‘휴거의 차원’을
더 높여 주시기 위해
<그 육신>을 쓰고 역사하시어
<그 영>을 400선, 500선, 600선,
700선으로 단장시키십니다.
또 <3.16>같이 억울하게 되려 하니,
성령님은 <6월 1일 알파절 때>부터
따끔하게 말씀하시며
“휴거된 자들의 생각이 그 정도냐?”
하시며 섭리인들이 모르는 중요한
한 가지 복직된 하와에 대해
자세히 가르치셨습니다.
먼저 <시대 구원자>가 시대 대표로,
성자 분체로 할 일을 다 하고,
조건을 다 세우고, 완성하니,
그 앞에 <시대 하와>가 조건을
다 세우고 신부 대표로 나와 성령의
상징체로서, 분체의 분체로서 행한
것입니다.
사탄과 사망을 다 이기고 나온
시대 아담 앞에 시대 하와가 나와서
역시 사탄을 이김으로 인해 이 둘은
<천주 앞에 두 증인>이 되어
섭리인들을 <성자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단장시켜
휴거시키고 성자가 떠나실 때
같이 <천국 황금성>으로 가게
해 주었습니다!
자기 실력으로
<휴거 300선>이 된 자가 있습니까?
한 명이라도 있는지 이야기해 봐요.
하나님, 성령님, 성자와 구원자가
총동원해서 여러분을 돕고 이끌어
휴거시켰습니다. 거의 90% 이상은
4다 해 주었습니다.
거기에 본인이 행한 것
50, 100, 200을 채워 겨우
<휴거 300선>이 되어 휴거됐습니다.
최고로 어려운 것이
<휴거 300선>입니다.
★ 일단 <300선>까지만 되면,
그다음에는 ‘본인’이 하면 됩니다.
그때부터는 본인이 알고 행하는 만큼
충분히 차원을 높이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휴거’로
완성됩니다. 이 역사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은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의 생명나무인
‘첫 아담’과 선한 나무인 ‘첫 하와’,
이 두 사람의 ‘육신’을 가지고
<종교 역사>, 곧 <하나님의 창조
목적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천적 루시퍼는
앙심을 먹고, 어린 아담과 하와를 꾀어
이성으로 타락시켰습니다.
고로 역사는 깨지고 구약 4000년
동안 죗값을 받으면서, 나름대로
<종급 역사>를 펴 왔습니다. <끝>
(* 여기까지가
<구약 4000년 종급 역사>입니다.
계속해서 화면을 보면서,
다음 말씀을 듣겠습니다.) <영상2>
그 후 때가 되니,
성경에서 말한 대로 하나님은
메시아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신약 에덴동산의 생명나무,
후 아담으로서 아담 때 못 한 뜻을
이룰 ‘신약의 메시아’였습니다.
그러나 유대 종교인들은 하늘에서
하나님이 구름 타고 직접 온다는
잘못된 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에 사탄들은
‘잘못된 관을 가지고 있어 모르는 유대
종교인들’을 쓰고 예수님을 핍박하다가
결국 죽이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겨우 3년 동안 복음을
전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고로
그때는 시간적으로 ‘복직된 하와’를
만들 경황이 없었습니다.
<신약역사>는 ‘자녀급’으로 2000년
동안 펼쳐져 왔습니다. <끝>
(* 여기까지가 <신약 2000년 자녀급
역사>입니다. 계속해서 화면을 보면서,
다음 말씀을 듣겠습니다.) <영상3>
그 후 다시 때가 되었고 다시 온다는
약속대로 <성자>는 다시 오셨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성약 에덴동산의 생명나무,
마지막 아담을 예정하여 뽑으시고
긴긴 세월 동안 그를 가르쳐서
세우셨습니다.
<다시 오신 성자>는
‘그 육신’을 쓰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신약 때 예언한 비밀들을
밝히시고 시대 말씀을 전하게 하시며
<성약 신부급 구원역사>를 이루어
나가셨습니다. <끝>
★ 그러나 <성약역사>는 완성기
역사로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완성하는 역사입니다.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만
가지고는 ‘다른 일’은 해도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못 이룹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와’를 통해서
하려고 했던 일이 있는데, 하와가
책임을 못 하여 <창조 목적>이
깨졌기에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완성하려면, 이 시대에 ‘하와가 못 한
일을 할 자, 하나님이 예정해서 기른
상대체 복직된 시대 하와’가 있어야
합니다.
남자 중에서는 ‘시대 대표, 구원자’가
있으니, 여자 중에서도 ‘상대 하와
격인 신부 대표’가 있어야 됩니다.
즉 복직된 하와,
하와 표상입니다. 후 하와 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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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된 하와는 ‘절대 예정된 자’가
아니고서는 못 합니다.
예정되어 있지 않으면,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쓰지 않으십니다.
그 사람은 삼위일체가 직접 키우고
기르고 가르쳐서 쓰십니다.
구원자도 그 사람을
직접 가르치고 기릅니다.
복직된 하와는 예정됐어도 구약
에덴동산의 하와같이 루시퍼의
꾐을 받고 넘어지면 안 됩니다.
루시퍼는 하나님을 대항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뜨리려 하는
무시무시한 악질입니다.
루시퍼는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고
인간들을 꾀어 타락시키기 전에,
하늘나라에서 ‘루시엘 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모셔 봤기에
하늘의 비밀을 조금 압니다.
고로 그 비밀을 알고
인간을 꾀어 타락시켜
하나님의 뜻을 깨뜨리려 합니다.
생각하는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그것’뿐입니다.
루시퍼는 ‘복직된 하와’가 나오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이뤄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고로 역사적으로
‘복직된 하와’가 나오지 못하도록
그리도 수백 가지로 유혹하고, 꾀고,
힘들게 하고, 무너지게 했습니다.
루시퍼는 ‘하나님을 안 믿는 자들’을
‘자기 편’으로 삼아 악한 사고를 넣어
하나님을 대항하게 만들었습니다.
<시대 대표, 생명나무, 마지막 아담>은
이미 루시퍼의 수천 가지 꾐을 이기고
승리하고 나왔습니다.
이제 예정된 시대 하와만 루시퍼의
수천 가지 꾐을 이기고 승리하면
끝납니다. 뿐만 아니라 그를 따르는
수백만의 마귀들과 사탄, 마귀의 몸이
되어 괴롭히는 족속인 악평자들과
악한 세력들까지 다 이겨야 됩니다.
예정된 시대 하와는 이 시대에
사탄과 사탄 족속들을 다 이기고,
조건을 세우고 나왔습니다.
또한 물질·명예·이성·학문의
시험과 시대에 오는 환난과 핍박과,
때마다 매일 오는 시험을
<시대 아담>과 함께 삼위께
순종하면서 이겼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마음에 들게 살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 앞에
절대 믿음과 실제 행동의 조건을
세웠습니다.
흔들림 없이 굳건했습니다.
100% 절대적으로 행해서
‘그 면의 절대자’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선생도 그 사람이
‘시대 하와’인지 몰랐고, 본인도
몰랐고, 섭리인들도 몰랐습니다.
다 성장하기 전에 드러나면
사탄도 인사탄도 알고 여지없이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사탄도 ‘시대 하와’가 누구인지 모르니
하나님의 일만 하면 ‘저 여자인가?’
하며 꾀고 막았습니다. 고로
다 클 때까지 숨겨서 키웠습니다.
시대 구원자를 키울 때도 그러했고,
예수님도 그러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하나님 앞에 두 증인은
‘절대신, 성자와 성령님’이십니다.
성자와 성령님이 땅에 와서 ‘육신’을
쓰고 행해야 하니, 남자 중의 한 사람,
여자 중의 한 사람을 키우고 완성하여
천주 앞에 두 증인으로 세웁니다.
곧 시대 대표,
시대 아담과 신부 대표,
시대 하와입니다.
성자와 성령님은 ‘그 육’을 쓰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십니다.
곧 <휴거>입니다.
고로 <휴거>를 이루게 할 자가
‘천주 앞에 두 증인’입니다. <끝>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겠습니다.
다시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성자>는 ‘분체’ 쓰고,
시대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분체>는 ‘생명나무, 시대 아담’으로서
성경의 모든 비밀을 밝혀 외적으로
‘시대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 말씀을 여러분의
‘육’이 듣고 행하여 각자
‘자기 영’을 변화시킵니다.
분체, 곧 시대 구원자, 성자의 육,
곧 시대 아담은 이 시대에
‘정자 역할’을 합니다.
<성령님>은 ‘예정된 자, 택한 자,
기준을 세우고 복직된 시대 하와’를
쓰고 마음 놓고 내적으로 성령의
역사를 일으켜 시대 말씀을 듣고
따르는 자들의 영을 ‘신부’로
단장시킵니다.
시대 하와는 여자로서 성령의
상징체이며, 분체의 분체입니다.
그는 이 시대에 ‘난자 역할’을 합니다.
<끝>
<성자 승천 날, 휴거 날> 전에
2009년부터 2014년까지 6년 동안
휴거의 비밀을 낱낱이 파헤쳐 휴거
말씀을 쏟아부어 주며 성령의 역사를
불같이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 동안은 핵적으로 극적으로 불같이
휴거 말씀의 역사와 휴거 성령의
역사를 일으켜 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정한 날
2015년 3월 16일에 <휴거>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뤘습니다!
- 우주를 창조하고 137억 년 만에
- 구원역사를 시작하고 6000년 만에
- 섭리역사를 시작하고 37년 만에
- 성약의 마지막 아담을 보내고 70년
만에 해냈습니다!
시대 아담과 시대 하와가 나와야
<휴거>로 <창조 목적>을 이루니,
- 우주를 창조하고 137억 년 만에
- 구원역사를 시작하고 6000년 만에
시대 아담과 시대 하와가 나왔다는
말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6일 만에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셨다.” 했지요?
여기서 ‘6일’은 축소한 날입니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46
이와 같이 구원역사를 시작하고
6000년 만에 <휴거>로 <창조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시대 아담과 시대 하와도 구원역사를
시작하고 6000년 만에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6일째 되는 날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구원역사를 시작하고
6000년 만에 시대 아담과 시대
하와를 세우시고 그들을 통해
<휴거>로 <창조 목적>을 이루신 후에
그리도 좋아하고 만족하고
기뻐하셨습니다.
시대 아담도 시대 하와도
‘영’이 다 완성되어 휴거됐습니다.
그리고 ‘그 영’이 성자와 함께
<천국 황금성>에 갔습니다.
고로 이제는 ‘사탄’과 상관이
없습니다.
고로 성령께서 시대 아담과 시대
하와가 행한 것을 밝히셨습니다.
그 공적은 영원합니다.
시대 아담이 먼저 서고,
그 앞에 시대 하와가 서서 휴거됐기에,
시대를 따르는 자들의 영도 휴거되어
제2의 시대 아담, 제2의 시대
하와들이 되어 삼위일체의 신부로서
지금 <천국 황금성>에서 성자와 함께
‘혼인 잔치’를 하고 있습니다.
고로 <땅>에서도
‘육신들’이 화평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땅의 성자 분체와 함께
꼭 ‘혼인 잔치’를 해야 됩니다.
역시 <영의 것> 하나만 알고
<육의 것>을 못 하면 또 억울합니다.
그러면서 300선에서 다음 400, 500,
600, 700선으로 가야 됩니다.
이 기간은 ‘성자의 육이 살아 있을
때까지’입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3.16> 이후, 전체가
모두 꼭 차원을 높여야 된다.
차원을 높이지 않으면, 환난과
어려움이 없어도 스스로 곤고함에
빠지고 힘들어진다.
그러다가 <육>은 땅에서 성자 분체와
함께 혼인 잔치를 하지 못하고
평생 억울하게 끝나게 된다.
모두 차원을 높이려면 ‘한 가지’ 뿐
아니라 그와 연결된 ‘다른 한 가지’를
확실히 알고 행해야 된다.
<3.16> 때 신랑 성자 승천은 알고
그와 연결된 신부 휴거는 몰라서
한이 되고 평생 미련으로 남았듯이,
또 시대 아담은 알고 시대 하와는
모르면 <휴거 300선> 이상으로 차원을
못 넘고 <신부 사도 역사>를 제대로
못 일으켜 평생 한으로 남게 된다.
고로 시대 비밀을 말해 준다.”
“완전한 자와 일체 돼야 자기도
완전하게 만들 수 있다.
첫째, <성자>는 ‘완전한 자’를 자신의
육으로 삼고 성경의 비밀을 밝히고
시대 말씀을 선포하며 행하니, 시대
아담을 확실히 알고 그와 일체 되고,
둘째, <나 성령>은 ‘완전한 자’를
나의 육으로 삼고 성령의 역사를
일으켜 그 영들을 단장시키니 시대
하와를 확실히 알고 그와 일체 돼야
한다.
이것을 100% 알고 행해야
나 성령이 온전히 역사하여
<신부 사도 역사>가 일어나고
400, 500, 600, 700선으로
휴거의 차원을 높인다.”하셨습니다.
여러분이 <휴거 300선>까지 가도록
성자와 성령님의 몸이 되어 인생을
바치면서 전적으로 도운 자가
이 땅에서 ‘천주 앞에 두 증인’입니다.
고로 천주 앞에 완전한 조건을 세워
여러분의 휴거를 위해 인생을 바치고
수고하며 행한 대표를 위해 정말
기도해 줘야 됩니다.
대표 본인은 사탄을 이겼으나
생명들이나 온전치 못한 사람들로
인해 사탄이 침범하여, 그 하는 일이
방해되지 않도록 꼭 기도해 줘야
됩니다.
또한 섭리사 전반적인 일들을
밤낮으로 행하니, 그 육신의 건강을
위해 꼭 기도해 줘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도 핵심자의
힘과 능력, 사명과 심정이 전달됩니다.
믿습니까?
* 이 부분에 분체의 분체,
성령의 상징체, 시대 하와로서
증거할 부분이 들어간다.
이 부분에 오늘 말씀의 두 번째,
세 번째 말씀이 포함되어 있다.
(이 부분은 7월 19일 주일예배
전후로 보내 줄 것임.)
◎ 오늘 말씀의 세 가지 핵심을
간단히 정리해 주겠습니다.
첫째, 휴거의 차원을 높여라.
휴거의 차원을 높이려면,
‘휴거된 자기 영’을 써야 된다.
그러나 <휴거된 영>이 아무리
뛰어나도 ‘영의 한계선’이 있다.
그 한계를 넘어 <육의 세계>로 와서
행하려면, ‘육신’을 써야 된다.
고로 ‘육신’이 매우 중요하다.
<휴거된 영>이 ‘자기 육신’을 쓰고
더욱 돕도록 <육의 생각>을 더욱
온전히 하고 <삼위일체와 주>를 더욱
사랑하고 <주>와 더욱 일체 되어
<그 말씀>에 순종해라.
그리고 매일 <휴거된 영>을 불러서
함께하자 하고, 더욱 <삼위일체와
주>를 부르며 함께 살아야 된다.
둘째, 시대 아담을 알았으면 시대
하와를 확실히 알고 인정해라.
그러나 역시 한계선을 넘으면 안 된다.
시대 하와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알아라.
셋째, 주의 돛을 달아라.
연결된 것은 하나다. 삼위일체의
분체는 오직 한 명이다.
성자 떠나신 후에는 보이는 성자와
땅에서 혼인 잔치 해야 된다.
이것이 성약역사의 핵심이다.
원동력이다.
<마무리 : 시 한 편>
◎ 시 한 편 읽어 주고,
오늘 말씀 마치겠습니다.
이 시는 <3.16> 때 성자가 떠나시면서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47
“나는 지상에서 할 말을 다 하고,
할 일을 다 하고, 신부들을 휴거시켜
데리고 가면서 만족하다.” 하며
주신 시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6>
만족
사랑하는 자가
희망하고 소원한 것들도
스스로는 얻을 수 없는 것들도
나 성자가 사랑해서 해
주고 싶은 것들도
모두 다 해 주고
이제 떠날 때가 되어
마지막으로 얼굴 보고 떠난다
할 말을 다 해 주고
내 할 일을 다 하고 떠나니
내 마음이 얼마나 기쁘고
보람차겠느냐
정말 기쁘고 좋아서
가는 길 날아가련다
더 이상 지체하고 있을 시간도 없고
더 이상 지체하고 있을 필요도 없다
만족하다
미련없다
내 할 일을 다 하고 간다 (하시도다)
그 얼굴에
사랑 빛, 기쁨 빛이 솟아난다
나 성자가 주고 간 것
두고두고 쓸 때마다
나 생각나겠지
나를 생각하면서
귀히 쓰고 지혜롭게 써서
빼앗기지 말아라
은밀히 써라 (하시며)
마음 풀고 떠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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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23일 수요일
오직 사탄과의
싸움이다.
작성일 : 2015. 6. 22. AM 5:00
작성자 : 정수현
(말씀 가운데 사탄을 이기도록
기도하고 실천하라고 하셨는데도
주변 사람들도 저도 긴장하여
근신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것에 대해 애타는
심정으로 말씀하고 싶으신 것이
있다고 며칠 전부터 느껴져
이것을 두고 새벽에 기도할 때
주신 말씀입니다.)
* 선생님의 말씀 *
사랑아, 적어라.
깊이 적어 섭리사에 알리자.
사탄과의 싸움이다.
본격적인 싸움을 선포하였다.
너희들의 휴거를 막으려고
사탄이 총공격하는구나.
영적인 눈을 떠서 보아라.
육의 눈으로는 평안한 것 같고
심각한 것 같지 않아 보여도
영적으로 조금만 기도해 보면
알고 느낄 수 있지 않느냐.
사탄이 얼마나 너희를 괴롭히고
나와 사랑을 못 하게 하는지
알아야 한다.
영적 전쟁이다. 육의 전쟁이 아니다.
사상의 싸움이고,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다.
네 자신과의 싸움이다.
명심하고 기억하기다!
내가 너희를 위해
이 환난과 싸움을 놓고
기도하라 하였다.
역사의 바통을 이을 자들을
총공격하여 쓰러뜨리겠다고
저들이 선포하였다.
내가 <3.16> 성자 승천을 선포하고,
알파절에 복직된 하와를 선포하니,
이제 저 사탄의 나라에서 사탄들이
우리를 없애려고 모두 총공격이다.
이때 정말 근신하고 기도하여
살아남아야 한다.
내가 얼마나 더 심각하게, 급절하게
얘기하여야 하느냐. 비상시,
전시(戰時)가 되면 어떻게 하지?
모든 것을 금하고, 오직 살아남기 위해
목숨을 걸고 생명을 지키지 않느냐.
6천 년 역사 중 최고의 사랑과 진리의
때, 가장 최고의 역사의 때를 보내고
있다. 하늘의 역사가 찬란하고
그 빛이 강한 만큼 어두움의 세력도
최고로 발악하니, 너희는 이것을 꼭
염두에 두고 명심하여야 한다.
지도자들은 생명을 꼭 관리하여
뺏기지 않도록 점검하여라.
조그만 틈도 주지 않도록 하여
꼭 생명을 해하는 이리,
사자와 같은 사탄들에게서
생명을 지켜야 한다.
이제는 완성을 선포하였다.
그 말은 너희가 신과 같이
완전하지 않으면 이 환난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수준까지 올라야
이 극심한 대환난에서
영원히 벗어난다.
홍수가 나서 떠내려갈 때는
더 높은 곳에 올라가 그 해를 피하듯
너희들의 영적 수준, 사랑의 수준,
행실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차원을 높이고, 고도를 높이면
비바람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듯
너희 신앙의 고도를 높여라.
배가 침몰하지 않도록
나의 돛을 높이 달아라.
높이 올려라.
태풍 속에서도
배가 뒤집히지 않는 방법은
돛을 높이 다는 것이다.
그 돛이 부러지지 않게 튼튼해야 한다.
어떤 바람이 불어도 부러지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나에 대한 안테나를
세우며 오직 나를 중심에 꽂아라.
사랑의 돛이다.
말씀의 돛이다.
행실의 돛이다.
기도의 돛이다.
너희가 마음을 놓고 방심하는 순간,
사탄이 들어오니 아예 틈도 주지 마라.
그 틈으로 인해 물이 들어와 댐이 다
무너질까 하노라.
조금의 조건이라도 허락하지 말고,
늘 근신하고 깨어 사탄을 멸하여라.
이것이 체질이 되지 않은 자는
사탄과의 싸움에서 져서 넘어질
것이다.
휴거 300을 이룬 자들도
그 영은 성자와 보낸 자의 조건으로
휴거를 이루었지만, 그 육이 아직
휴거의 삶을 살지 못하는 고로
그 육신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부족함으로 인해 환난이 온다.
개인의 환난은
개인이 각자 이겨야 한다.
전쟁 중 총알이 날아다니는 상황인데
너는 어찌 갑옷도 입지 않은 채
아무렇지 않게 다니느냐.
적에게 노출되어 표적이 되니
공격당해 쉽게 넘어지는구나.
내가 얼마나 더 이야기하여야
긴장하고 기도하며 다닐 것이냐.
내 마음이 너무 타는구나.
내가 이리 알려 주는데도 안 하는
자는 사탄이 쏘는 총에 다 맞아
쓰러지는구나.
그 쓰러진 자를 다시 안고 데려와
치료해 주고 보살피는 데만 해도
내 모든 시간이 들어가는구나.
어찌하느냐.
내 시간은 한계가 있는데...
그러니 너희들이
미리미리 조심하고
기도해야 하는데
기도하지 않으니
전쟁터에 무방비 상태로 서 있는 것과
같아서 엄청나게 쓰러지는구나.
영적 전쟁이다.
긴장하여라.
나만 하면 이길 수 없다.
얼마나 더 급절하다고
얘기해야 하느냐.
섭리인들이 죽어 나가고 어린
생명들이 죽어 나가는구나.
너희들의 자체적인 힘으로
이겨 내야 한다.
내가 도와주는 것은 한계가 있고
내 시간은 한계가 있으니
너희 스스로 방어하여라.
그러면 난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49
나는 너희 위해 기도하느라
밀린 일도 손대지 못하고 있다.
너희가 자신들을 위해 기도만 하면
내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건만
아직도 나의 말을 소홀히 듣고
다들 다치고 쓰러져 오는구나.
그러니 제발, 제발
내 말을 듣고 기도하여라.
실천하여라.
정신을 놓고 있지 말고 몸부림치거라.
너희들이 각자의 기도 분량을 채우고
내가 선포한 말씀대로 살아 주기만
한다면 내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건만 어찌 내 말을 그리 건성으로
듣느냐.
건성으로 듣고 실천하지 않아
해를 당하고 고통을 당하고 나서
도움만 요청하니 그런 일을 처리하다
정작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한다.
나의 이 심정을 아느냐.
그렇다고 죽어 가는 사랑하는 자들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느냐.
내 입이 아프고 손이 마비되도록
또 쓰고 또 말한다.
기도한다. 오열한다.
너희를 살려 달라고...
나의 시간이 24시간이 아니면 좋겠다.
내가 기도할 시간이 더 많으면
살리겠건만...
나의 육은 한계가 있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구나.
신부들아.
내 사랑하는 여인들아.
제발 각자 책임분담을 하여
근신하여 깨어 사탄을 물리쳐라.
말씀으로 먼저 다 알려 주었으니
그것만 실천하면 된다.
머리로 듣고 앉아 있지만 말고
너희 생명의 구원과 휴거를 위해 꼭
실천하여라.
이 심정을 받아라.
받으면 불이 오지 않겠느냐.
더 기도하여라.
나와 같이 기도할 자 찾는다.
그러한 자가 필요하다.
함께 하자.
내가 이리 말하는데도 외면할 것이냐.
너희들이 너무 필요하다.
내게 힘을 다오.
정말 힘이 필요하다.
내 심정이 타서 너희에게 이야기한다.
정말 중요한 영적 전쟁의 때이니
꼭 나와 함께 이기자.
정말 사랑한다.
(선생님, 그 심정을 알고 열심히
기도할게요. 그런데 이 환난은
언제까지 가나요?)
이 환난이 끝나는 날은
개인마다 다르다.
사탄을 가두는 것은 너희들이
완전해지는 것이라 했지?
각자 완성을 이루는 날, 그때
개인의 환난은 끝이 난다.
자기가 얼마나 완전히 복직된
신부의 영, 혼, 육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그 개인의 환난은 끝이 나는
것이다.
그것이 사탄을 가두는 것이다.
이 싸움은 천 년을 갈 것이다.
완전하지 않은 너희의 모순을 통해
사탄은 늘 너희를 괴롭힐 것이니
말씀을 가지고 어서 너희를 만들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여라.
전쟁 때는 사령관의 말에
무조건 복종이다. 맞지?
내가 전체 영계를 보고
선포한 것을 믿고 안다면
그리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해도
실천하지 않는 자, 누구냐?
지금이 어떤 상황이라고
누가 잡아 주고
내가 지켜 주기만 바라느냐.
내가 전체를 보고 통솔하고 지휘하니
너희 각자의 책임분담을 하여라.
자기 영혼을 지키며 구하는 것은
자기가 먼저 기본으로 해야 한다.
내가 어찌 모든 사람을 다 지켜 주랴.
그러면 벌써 다 구원시켰을 것이다.
너희가 해야 할 책임분담도 있지...
나의 말을 듣고 그냥 있어서는
안 된다.
힘들어서 일어날 힘이 없느냐?
그러면 내게 힘들다고 SOS라도
해야지.
내가 일일이 많은 자들을 알아보고
들춰 보며 죽었는지 살았는지 쓰러져
있는지 점검해야 하느냐. 전쟁 때는
일일이 다 볼 시간이 없지 않느냐.
너희들이 먼저 내게 이야기하여라.
아니면 아프다고, 힘들다고
손을 들고 외쳐라.
신음 소리라도 내라.
너희 잃은 양들, 다친 영혼들을
다 찾아올 것이다. 한 명도 저
사탄들에게 뺏기지 않을 거야.
내가 누구냐.
네 영원한 신랑, 애인이며
이 세상 구원자가 아니냐.
만왕의 왕과 일체 된 자가 아니냐.
승리는 예정되어 있다.
그러니 저들이 발악하는 것이다.
모든 것에서 승리한 나의 이름을 걸고
기도하여 물리쳐라. 나의 이름과 나의
능력을 믿고 써먹어라.
꼭 이 사탄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수준을 높여 나에게 올라오너라.
마음을 먼저 뺏기지 마라.
네 마음의 틈을 먼저 막기다.
한순간도 생각을 돌리지 않아야 한다.
먼저는 생각, 사상, 마음으로 들어오니
너는 나의 말씀을 완전히 머리에 넣고
그 생각만 하여라.
머릿속에 먼저 나의 말씀을 넣어야
다른 생각이 안 들어오지.
네 생각은 지극히 육적인 생각,
즉 사탄이 좋아하는 생각이다.
그 생각을 타고 먼저 들어오는 거야.
네가 마음을 철통같이 잡고
내 생각만 하면
어찌 다른 게 들어오겠느냐.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 있다.
마음, 정신, 생각의 영웅이다.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사랑의
마음이다.
굳건한 마음이다.
마음 단속하자.
어디로 들어올지 모르는
마음의 구멍을 막고
오직 나에게 집중이다.
24시간 절대 내 생각에서
떨어지지 마라.
먼저 생각 잡기, 마음 잡기다.
알겠지?
잘 안 되면 기도해.
내가, 성령이 도와준다.
기도하고 말하고 부탁한 조건으로
도와준다고 하지 않았느냐.
즉각 천사가 출동하고 내가 간다.
안 될수록 기도해.
힘들수록 기도하고.
편지도 쓰고... 힘들다는
편지는 왜 안 하느냐.
그러다 더 힘들어진
너희를 잡는 게 더 힘들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50
문제가 뭔지 알려 주면
더 해결하기 쉽지.
처음에 작은 문제일 때
해결하는 게 더 낫다.
연락을 안 하는 자들,
힘든 자들 파악도 내가 다 하려면
너무 힘들다.
육으로 편지하고 영으로도 고해.
그러면 즉각 반응이 온다.
내가 일일이
다 답을 안 해 줘도 해결된다.
내 능력을 무엇으로 아느냐.
나는 너희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러 왔다.
생명을 살려 주러
사탄을 다 이기고 왔다.
그럼 나 써먹어야지.
내 힘으로 이겨야지,
너희 혼자는 안 된다.
그러니 너희 혼자 해 보겠다고
끙끙대지 말고 나를 부르고
찾는 게 지혜다.
나와 일체 되면
사탄이 절대 못 건드려.
내 신부를 어떻게 건드리느냐.
사랑으로 일체다.
꼭 붙어 있기다.
어디에 가 있느냐.
나한테 붙어야지.
정말 사랑한다.
너희를 목숨처럼
사랑하여 말한 선생이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51
2015년 07월 24일 금요일
늘 감사하라
작성일 : 2015. 4. 24. 8:40 PM
작성자 : 주금빛
작성일 : 2015. 4. 24. 8:40 PM
작성자 : 주금빛
(금요예배를 드리면서 제가 천국을
보지만 이날은 더욱더 천국이 실체의
세계라는 것이 정말 뼛속 깊이
느껴지면서 지금까지 봐 왔던
웅장하고 빛을 뿜어내는 성들을
보기만 해도 너무나도 황홀하고
기뻐서 미칠 것 같은데 이곳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니! 정말
행복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천국을
생각하면서 정말 휴거되어
얼마나 얼마나 행복한지 너무나도
간절히 느껴졌습니다.
내가 이 실존의 세계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이,
이 세계를 뚜렷하게 보며
만질 수 있고 갖가지 보석의 성을
다니고 빛나는 옷을 입으면서
날아다니며 다 가질 수 있으며
무엇보다 가장 사랑하는 성삼위와
선생님을 영원히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눈물 나게
미치도록 영원히 감사한 일인지
제 육신의 몸이 너무 기뻐서 안달이
날 정도였고 미칠 정도였습니다.
정말 우리를 영원한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조건을 세우시며 휴거시켜
주신 선생님께 진정 감사했습니다.
저희 모두 지옥에서 완전히 면하게
하시며 꿈꾸던 세계를 저희의 천국이
되게 하시고 실존하는 영원한 천국을
갈 수 있음을 보장해 주심에
황홀하도록 미치도록 감사했고
눈물이 흘렀습니다.
진정 너무나도 감사했고
다시 한 번 선생님이 얼마나
위대하시며 진정한 구원자이시고
사명자이신지 가슴에 불꽃이 딱
꽂히도록 깊이 깨달았습니다.
기도 시간에 찬양을 드리면서
선생님을 계속 부르며
너무 행복하다고 진정 행복하다고
성령님께 고백드렸습니다.
성령님께서는
“내가 휴거되어 감사하는 영들을 보여
줄게.”하셨고 바로 천국의 한 영을
보여 주셨습니다.
한 여자 영이 오직 선생님의 조건과
사랑으로 황금성에 온 기쁨을
온몸으로 행복해하고 있었습니다.
주위에는 기쁨이 넘치는 천국의
풍경들이 펼쳐져 있었고
여자 영은 두 팔은 하늘을 향해
쭉 펼치고 있었고 얼굴은 입이
찢어지도록 활짝 웃고 있었으며
머리는 특이한 모양이었는데
황금색이었고 길이는 어깨를 약간
넘었는데 윤기가 빛나게 흘렀으며
위에는 차분하다가 귀 부분부터
볼륨감 있게 둥근 모양이었습니다.
얼굴을 자세히 보니 한국 회원이
아니고 해외 회원이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입고 있는 드레스는
온통 흰 색이었고 풍성했습니다.
여자 영은 연신 웃으며 성삼위와 주께
계속 감사와 사랑의 고백을 했습니다.
하늘을 쳐다보며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빙빙 돌면서 기쁨에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선
옥색 다이아몬드로 된 기다란 왕관을
쓰고 있는 남자 영을 보여 주셨습니다.
남자 영은 온통 하얀색의 빛나는
다이아몬드 정장을 입고 있었고
양손은 하늘을 향해 뻗으며
입이 찢어지도록 웃었고
기쁨이 흘러넘쳐서 기쁨의 노래를
계속해서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 영들을 보면서 저도 너무 기뻤고
기쁨의 에너지가 공유되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휴거된 영들의 모습이다. 그토록 살고
싶었던 곳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냐. 늘 감사 감격하니
얼마나 얼굴이 빛나는지 사랑의 빛,
감사의 빛이 감돈다. 정말 아름답구나.
기쁨의 한계가 극치에 다다른다.
너무나도 기뻐서 어쩔 줄 모르고
늘 감사 감격하니 감사가 영원토록
식지가 않으며 계속 그 행복이
지속된다. 그래서 지상에서도 늘
기뻐하고 잔치하며 감사하라는 것이다.
너희 선생에게 진정 감사해라.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온 일생을 다 바쳐 휴거시키고
성삼위가 지구 창조 이래
그토록 원했던 소원을 이룬 자이니
너무나도 위대한 자이다. 늘 감사를
몸에 달고 다니는 선생은 정말
자기 자신을 온전하게 만든 자이다.
늘 감사하라!
감사의 맛을 들여라.
감사의 맛을 알아라.
알아야 안다.
알아야 산다.
늘 감사하라. 감사는 끝이 없다.
네가 감사할수록 너희의 영은 감사의
엄청난 힘을 받고 더욱더 빛나며
영이 더 민감하기 때문에
지상에서보다 몇백 배
더 감사 감격한다.
그 사랑스러운 모습들을 보면서
성삼위는 너에게 감사의 보석들을
퍼부어 준다.
감사하지 않으면 기쁨이 없다.
고로 늘 너희의 생활 속에서 성삼위와
주를 부르고 찾으며 감사한다면
너희 각자에게 뼛속 깊이 감사함의
뜻을 더 간절히 깨닫게 될 것이다.
해 보아라. 하는 즉시 알게 된다.”
성령님과 저는
꽃밭으로 장소를 옮기었습니다.
꽃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는데
꽃들마다 다이아몬드 가루가 뿌려져
나왔습니다.
이 꽃들은 지상에는 없는 꽃이었는데
핑크색과 노란색 튤립 같은
모양이었고 크기가 엄지만 했고
줄기는 아주 가늘고
길이는 제 허벅지까지 왔으며
이 꽃들이 촘촘히 잔잔하게
안개꽃과 같이 피어 있었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행복했습니다.
막혀 있던 가슴이 뚫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깊은 산속에서 나는
냄새와 꽃에서 나는 향기로운 향기가
함께 났는데 너무나도 상쾌했습니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52
저는 꽃들을 꺾어서 제 머리에
꽂았는데 성령님께서도 머리에
꽂으셨습니다.
풍경이 너무나도 평화로웠습니다.
저는 꽃밭에 누워 보기도 했습니다.
저의 옷을 보니 온통 노란 색이었는데
너무나도 예쁜 원색의
노란색이었습니다.
위에는 하트 모양으로 되어 있고
얇고 투명한 실크가 양 팔을 감싸고
있었으며 밑으로 갈수록 풍성했습니다.
얇은 다이아몬드로 만든 투명한 천이
덮여 있었는데 잔잔한 핑크색, 노란색
잔잔한 꽃들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성령님의 옷을 보았습니다.
위에는 핑크색 바탕에 꽃잎 모양을
포개어 놓은 듯하였고 밑은 핑크색,
보라색의 얇고 부드러운 실크가
여러 겹으로 겹쳐 있으며 차분한
모양이었는데 실크가 너무 부드러워서
걸으실 때마다 우유가 떨어지는 듯이
부드럽고 하늘하늘 거렸습니다.
조그마한 동그란 다이아몬드들이
군데군데 박혀 있었습니다.
그렇게 성령님과 함께 꽃밭을 거닐며
데이트하다가 성령님께서 반지를
보이시더니 저에게 그 반지를 끼워
주셨습니다. 반지 가운데에는 루비로
만든 장미 모양이 박혀 있었고
양옆으로 다이아몬드로 만든
나뭇잎 모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링은 백금 같은 느낌의
천국 보석이었습니다.
너무나도 맑고 깨끗했으며
아름다웠고 빛이 엄청났습니다.
“내가 너에게 주고 싶어서 주는
나의 사랑의 반지이다. 진정 사랑한다.
널 정말 사랑해. 늘 끼고 다녀라.
사랑의 빛이다. 사랑은 정말
강력한 힘의 에너지다. 안녕.”
2015년 07월 24일 금요일
최고의 선택
작성일 : 2015. 4. 25. 2:10 AM
작성자 : 주금빛
(월명동에 철야를 하러 갔습니다.
월명동에서 찬양을 한 후 기도
표적솔(해태소나무)에서 기도를
했습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새카만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반짝 빛을 내며 촘촘히 박혀
있었습니다.
어두워서 형태만 보이는 소나무들이
각기 다 다른 모습으로 아름답고
우아하게 모양을 잡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풍경들이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눈물이 났습니다.
기도하면서 성령님께 “성령님, 이
자리에서 성령님이 너무나도 강하게
느껴집니다.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너무나 행복해요. 오늘 깊은
말씀 해 주세요.” 했습니다.
그때 성령님께서 바로
제 앞에서 서 계셨습니다.
빛이 엄청 났는데 너무나도 맑고
깨끗한 다이아몬드 빛 같은
느낌이었고 성령님의 온기가 제
온몸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온화하신 성령님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성령님의 말씀*
늘 최고의 선택을 해라.
최고의 사랑을 해라.
최고의 감사를 해라.
최고의 기도를 해라.
최고의 영광을 돌려라.
성령께서는
“내가 오늘 최고의 성을 보여 줄게.”
하셨고, 저는 천국으로 순식간에
왔습니다.
성령님께서는 파란색의 장미로 된
성을 보여 주셨습니다.
장미 한 송이 모양이었는데
줄기가 땅에서부터 위까지 옥빛
다이아몬드로 기다랗게 뻗어 있었고
파란색 장미가 위에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꽃이 접혔다 펴지기도 하였고
장미 속에는 다이아몬드들을 품고
있었습니다. 아주 진한 파란빛은
아니었고 하늘빛도 섞여 있었는데
아주 신비스러운 색이었습니다.
파란빛과 하늘빛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습니다.
푸른빛을 뿜어내는데 너무나도
아름답고 온화하고 따듯하며
신비했습니다. 이 성은 평평한 잔디밭
위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꽃이 활짝 필 때마다 조그마한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별들이
꽃 속에서 뿜어져 나왔습니다.
반짝반짝 빛이 났습니다.
그리고 장미가 펴질 때마다
다이아몬드 가루도 같이
하늘로 뿌려졌습니다.
성령님께서는
“극적으로 기도했을 때 곧 최고의
기도 때 성삼위께 극적으로 조건 쌓은
모든 것이 이 성에 기록되어 있다.
최고의 것만 기록되었으니
최고의 성이지. 이 성의 위치도
천국 최고의 위치에 세워져 있다.
안으로 들어가 보자.”
들어가기 전에 성의 규모를 보았는데
성의 규모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컸습니다. 지구와 비교도 안 됐습니다.
안은 겉모습과 다른 모양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고
살과 살이 닿듯이 실감났습니다.
천장에는 아주 큰, 거의 천장을 다
덮을 것 같은 옥색 다이아몬드로 만든
샹들리에가 달려 있었습니다. 공중에는
투명한 하트로 된 방울이 있었는데
그 안의 투명한 화면에는 각 사람들이
극적으로 성삼위와 주께 최고의
조건을 드리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이 하트 방울들은 각기 다 다른
위치에 떠 있었습니다. 하트 위에는
동그란 다이아몬드로 이어진 줄이
이어진 채 세워져 있었습니다.
바닥은 금으로 되어 있었으며
여러 문양들이 원을 이루며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 모든 광경들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황홀했습니다.
한 하트를 보니 어떤 여자 회원이
극적으로 조건을 세우며 준비해서
신입생에게 최고의 말씀을 전해 주니
그 신입생이 불을 받는
모습이었습니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53
다른 한 하트를 보니 그동안 극적으로
연습하여 성삼위께 영광 돌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다른 한 하트를 보니 어떤 한 여자
분이 극적으로 최고로 합당한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천사들이 금, 은,
다이아몬드 가루를 뿌려 주었고
보석들을 떨어트려 주었습니다.
저는 하트들을 만져 보고
신기해하며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영상에 있는 분들은 꼭
전사 같은 느낌도 났습니다.
너무나도 멋졌습니다.
제가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보니
목 라인은 U자 모양이었고 소매는
반팔이었는데 풍성했고 전체적으로
순백색 드레스였습니다.
목 테두리를 보니 성에서 뿌려지는
것과 같이 다이아몬드로 만든
선명하고 깨끗하게 빛나는 별
모양들이 많이 박혀 있었는데 하늘색
다이아몬드 가루가 팔 쪽과 어깨
부분만 뿌려져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예뻤습니다.
허리 양쪽에는 별 모양이 수없이
빽빽하게 박혀 기다랗게 꽃잎
모양처럼 붙어 있었고 밑은
다 순백색이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하늘하늘한 하늘빛의 실크 같은 옷을
입고 계셨는데 천의 그 선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부드럽고 우아했습니다.
퍼진 모양은 아니었고 차분하게
밑으로 쭉 펴진 느낌이었습니다.
어깨 부분은 하늘빛 다이아몬드
가루가 뿌려져 있는 순백색의 실크가
어깨를 감싸고 있었고, 위쪽은
주름지고 허리 부분은 그것을 딱 감싸
주는 듯 허리에 딱 붙어 있었는데
저와 똑같은 별들이 한 4줄 정도
조그맣게 띠처럼 박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치마 끝자락에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빛나는
하늘빛과 푸른빛과 다이아몬드 빛이
동시에 나는 조그마한 물방울 모양의
다이아몬드들이 굴곡이 있게 많이
붙어 있었고 치마에도 군데군데 박혀
있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너와 나의 옷에 박혀 있는 별도, 이
물방울 보석도 천국에서 최고급
보석들이다. 정말 깨끗하고 빛나지?
그리고 너랑 나 옷이 세트야.
내가 전에 너한테 선물로 줬던
옷이야.”
(성령님, 정말 감사해요. 성령님께서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어디에서나
느낄 수가 있습니다. 최고 급에 있는
최고의 성을 보여 주셔서 진정
감사합니다. 최고의 말씀 진정
감사해요.)
그래. 하루를 살더라도 늘 네 한계의
최고의 위치에 다다라야 한다.
그것을 목적으로 삼아라.
늘 최고의 것에 도전하여라.
최고의 한계에서 말씀을 들으며
계시를 받을 때 최고의 급에서
최고의 기도로 인해 최고로
급이 높은 계시를 받아라!
세상에서는 ‘파란색’이 불가능한 것,
얻을 수 없는 것을 뜻하지만
천국에서는 자신이 최고의 한계에
올라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것,
얻을 수 없는 것을 얻게 되는 것을
뜻한다.
(와! 아멘. 성령님, 생활 가운데
최고의 한계에 도전하면서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고
얻을 수 없는 것을 얻는 생활을
이루겠습니다. 진정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최고의 것은 최고에 도전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최고의 것과 보통의
것과의 차이는 급이 완전히 다르다.
최고의 한계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
성삼위를 최고로 사랑하여라.
최고로 사랑하는 자에게 더 사랑이
간다. 성삼위는 너에게 최고의 사랑을
주는데 네가 네 안에서 최고의 사랑을
드리지 않으면 안 맞다.
적고 많음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희가 먼저 최고의 사랑을
드림으로써 성삼위와 주께 맞추어라.
최고의 사랑을 드리지 않는다면
너의 사랑의 그릇이 차지 않기에
허전하다.
최고의 것을 드린다는 것은
네 최고의 한계의 것을 드린다는
말이다. 최고의 수준에서 하였기에
그만큼의 공적을 쌓게 된다.
오늘 월명동에서
나를 찾으며 간절히 기도하니
너의 최고의 사랑에 너와 내가 맞아서,
내가 찾아와 오늘 이 ‘최고의 성’을
보여 주었느니라.
더 생생하게 느끼니 더 발전시키자.
늘 나와 함께하자. 사랑해.
오늘 잘 왔다. 안녕.
2015년 07월 24일 금요일
‘주’라는 핵을 꽂아
승리하여라.
작성일 : 2015. 6. 18. AM
1:00~2:00 작성자 : 주빛랑
(새벽에 성령님께 기도하길
“하나님께서 역사의 승리에 100%
만족하시고 기뻐하시듯, 선생님께서
오직 감사 감격뿐이다 하셨던 그
심정대로 저희도 감사 감격하고
싶어요. 그리고 정말 사탄을 이기고
승리하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저희도
개개인의 환난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했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하나하나 세밀히
쪼개어 깨우쳐 주셨고 그것을
기록하였습니다.)
*성령님의 말씀*
기뻐하라, 감사하라.
역사가 승리했다.
곧 네가 승리함이다.
말씀은 ‘목표점’을 향해 가는 ‘길’이다.
길이라 함은, 곧 그 목표점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고로 말씀을 들을 때는, 성삼위가
지금 네게 어떤 ‘목표점’을 제시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목표점’을 가기
위해서 네게 ‘어떤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지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성자 승천 전, 모든 말씀은 오직 휴거
300선이라는 목표점을 향한 길이었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54
휴거 300선이 무엇이냐,
곧 개인 휴거선이다.
고로 모든 말씀은
개개인이 휴거 300선에 도달할 수
있도록 단장시키는 말씀이었다.
오직 ‘주’를 믿고 사랑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을
기본 중심으로 하여 모순을 고쳐라,
굳은 뇌를 풀어라, 체질을 바꿔라,
이성의 모든 죄에서 벗어나라 등
너희가 묶인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말씀을 주면서 너희 개개인을 이끈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선포되는 말씀을 보아라.
지금은 휴거 300선이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휴거 700선,
곧 사도선이다.
사도가 누구냐,
곧 역사를 뛰는 자다.
고로 성자 승천 후
선포된 모든 말씀을 보아라.
휴거의 기쁨도,
성령의 강림도,
복직된 아담과 하와의 인봉도
모두 역사적 차원의 말씀이다.
고로 너희가 ‘개인 차원’에 머물러
있으면 이 ‘역사 차원’의 말씀에 함께
기뻐 좋아할 수가 없다.
진정 섭리역사를
나의 역사라 생각하며 뛰는 자,
진정 섭리역사가 잘되길 바라는 자,
진정 섭리역사의 승리를 바랐던 자는
지금 이때 선포되는 모든 말씀에
성삼위처럼 기뻐 좋아 뛸 것이다.
(성령님, 정말 맞습니다. 그럼 역사를
뛰는 자란 어떤 자입니까?)
역사를 뛰는 자란,
곧 성삼위와 ‘목적이 같은 자’다.
성삼위는 창조 목적이라는 뚜렷한 한
가지 뜻, 곧 목적을 가지고 여기까지
달려왔다.
그것이 무엇이냐?
너를 성삼위의 사랑의 대상체로
만들고자 함이다. 확대시켜 지구
전체를 성삼위의 사랑의 대상체로
만들고자 함이다.
이 시대 사명자 역시, 말로 할 수
없는 환난, 핍박, 십자가 길 가운데도
이 한 가지 뜻, 곧 창조 목적을
이루겠다는 목적이 있으니
포기치 않고 끝까지 달려온 것이다.
너희는 무엇을 위해 지금껏
달려왔느냐. 너희는 무엇을 목적으로
하여 지금 섭리에 존재하느냐.
너희의 뜻이 우리의 뜻과 같다면,
너희의 목적이 우리의 목적과 같다면
너도 우리와 함께 ‘역사를 뛰는 자’다.
선생의 조건으로,
부족한 자라도 사랑으로 휴거
300선으로 끌어올렸다.
고로 휴거를 이룬 자들은,
이제 개인의 평안, 개인의 안정을
목적으로 할 때가 아니다.
선생이 너희 휴거를 책임졌으니,
이제 너도 선생과 함께 역사를 뛰는
자가 되어라. 진정 역사를 사랑하는
자가 되어라.
목적이 같은 자, 곧 심정이 같은 자다.
고로 성삼위와 주의 주관권에
올라와라. 그리하면 네가 받는 불과
힘과 능력이 다를 것이다.
복직된 아담과 하와의 인봉을 말씀한
이유가 무엇이냐. 곧 역사의 승리를
밝혀 역사를 기록하고자 함이요,
너희 역시 그와 같이 승리하라 함이다.
내 누누이 말하였다.
상대체를 세움은 주체를 증거함이요,
주체를 증거함은 성삼위를 증거하고자
함이다. 고로 표상을 세워 증거하는
것도 너희도 그와 같이 행하여
승리하라 함이다. 승리 비법을
너희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성삼위가 어떻게 역사의 승리를
이끌었느냐. 이 땅에 오직 ‘핵 하나’를
꽂음으로 승리했다. 각 시대마다 ‘한
인물’, ‘한 뜻’을 세움으로
역사를 승리로 이끈 것이다.
성약역사 역시,
성삼위는 영계와 육계를 꿰뚫어
‘핵 하나’를 온전히 세웠다.
곧 주체인 시대 구원자로,
이 땅에 세워진 생명나무다.
핵 하나 세우는 데 총력을 다하여
정녕코 이루었다.
생명나무 하나를 온전히 세우니,
그를 통해 생명의 구원, 부활, 휴거
역사가 일어났다.
‘핵 하나’는 미약한 듯 보이나
온 지구를 집어삼킬 창대한 역사를
이루게 한다.
주체 메시아 역시
‘핵 하나’를 세움으로 승리한다.
완전한 상대체, 곧
이 땅에 세워진 선한 나무다.
어떻게 선한 나무를 세웠느냐,
오직 ‘주’라는 핵을 선한 나무에
꽂음으로 승리했다.
이 시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역시 선한 나무로
자신을 온전히 세워 승리했다.
어떻게 선한 나무로 우뚝 섰느냐,
그 중심에 오직 ‘주’라는 핵을
세움으로 승리했다.
복직된 하와가
모진 환난, 핍박, 악평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오직 주 중심, 주 일체,
주 말씀대로 행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주’라는 핵이 꽂히니
모든 것에 승리한 것이다.
이와 같이 이러하다.
‘주’라는 핵이 구원과
부활과 휴거의 시작이다.
‘주’라는 핵이 꽂히는
개인, 가정, 민족, 세계에는
반드시 ‘생명 역사’ 곧
구원, 부활, 휴거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너희도 중심에 ‘주’라는 핵을 강력히
꽂음으로 모진 풍랑에도 흔들리지
마라. 너희 각 사명지에 ‘주’라는 핵을
강력히 꽂음으로 모든 풍랑을 잠잠케
하며 앞으로 전진하여라.
사탄을 어찌 이기려느냐.
너희 영급으로
사탄을 이길 수 있겠느냐.
이 땅에 사탄을 이긴 자가 있다.
그 이름으로 강력하게 기도하는
것이다. 그 이름과 완전하게 일체 되어
사탄을 멸하며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다.
지금 사탄은 사상 전쟁을 벌이고 있다.
‘주’사상을 흔들어 놓으며
‘역사관’을 흔들어 놓는다.
고로 기도하라.
절대 믿음을 가지고
나 성령에게 나아와라.
답은 사람의 말에 있지 않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55
답은 성삼위께 있다.
왜 그러하겠느냐?
그를 세운 자가 사람이 아니요,
그 자신도 아니요,
오직 성삼위이기 때문이다.
오직 성삼위가 그를 뽑아 길러
인류 가운데 보낸 것이다.
고로 내게 나아와라.
내가 답해 주리라.
깨어 있는 자, 기도하여라.
천주 앞에 선 두 감람나무를 위하여
사랑으로 기도하여라.
섭리 전체는 하나로 똘똘 뭉쳐서
한뜻으로 한목소리를 내며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
심정의 틈으로 사탄이 들어오니
모두의 심정을 하나로 모아 개개인
모두 승리하자.
사랑한다.
증거의 신 성령이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56
2015년 07월 26일 주일
매일 <생각>을
온전히 하고, 사탄과
악을 대적해라
[ 마태복음 18장 21-22절 ]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8 Be self-controlled and alert. Your
enemy the devil prowls around like a
roaring lion looking for someone to
devour.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 말씀의 주제는
‘매일 <생각>을 온전히 하고,
사탄과 악을 대적해라.’입니다.
◎ 오늘은 먼저 선생이 말씀하고,
이어서 성령님이 주신 한 편의
계시를 말씀해 주겠습니다.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의 육신>은
정말 귀하고도 귀합니다.
하루 종일 생활하면서,
혹은 일주일 동안 생활하면서
<자기 육신>이 얼마나 귀한지,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사람은 <자기 몸>을 가지고
수천 가지, 수만 가지를 행합니다.
사람이 ‘기계’까지 가지고 행한다면,
수백억 가지를 할 것입니다.
기계는 사람보다 빨리 고장 납니다.
<사람>은 존재 기간이 70~100년이고,
<기계>는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사용 기간이 길어야 40~50년 정도
됩니다.
그러나 사람도, 기계도 ‘관리’를
잘해야 존재 기간까지 잘 존재하며
쓰입니다.
특히 사람은 <자기 몸>을 철저히
‘관리’해야 됩니다. 그래야 존재 기간
동안 이상 없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몸 관리’를
너무도 안 하는 편입니다.
<사람의 각 지체>를 보세요.
눈·코·입·귀·팔·다리·손·발 등 각
지체를 보세요.
하나하나 얼마나 귀하고 중합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각 지체’가
얼마나 중한지 깊이 모릅니다.
만일 ‘지체 중의 하나’라도 고장 나서
당장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제야
얼마나 중한지 깊이 깨닫게 됩니다.
가령 ‘눈’이 잘 보이다가 안 보이면,
당장 앞이 안 보이니 답답해서
미칩니다.
가령 ‘귀’가 잘 들리다가 안 들리면,
당장 아무것도 안 들리니 답답해서
미칩니다.
또 ‘코’로 숨이 잘 안 쉬어지면,
정말 당황하게 되고 정신이 없고
미쳐 버립니다.
또 갑자기 ‘입’으로 말이 잘 안
나오면, 곧장 답답해서 미쳐 버리고
정신이 없어지게 됩니다.
또 ‘팔, 다리’가 멀쩡하다가 사고가
나서 잘리거나 아파서 못 쓰게 된다면,
금방 좌절하고 주저앉게 됩니다.
이와 같이 평소에는
‘각 지체’가 아무 문제가 없다가
사고가 나거나 이상이 생겨서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제야
‘그 가치’가 절실히 깨달아집니다.
<잠시 쉬었다가>
★ <지체 전체의 핵>은 무엇이지요?
무엇이 ‘각 지체’를 움직이게 하지요?
네! ‘뇌’입니다. 더 근본으로 말하면
‘생각’입니다.
만일 사고가 나든지 고장이 나서
제대로 ‘생각’하지 못한다면,
정말 답답하고 미칩니다.
고로 <자기 생각>에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매일 점검해야 됩니다.
★ <생각>을 잘못하여 문제가
일어나고, <생각>을 잘못하여
‘그 멀쩡한 지체’도 제대로
쓰지 못합니다.
고로 <생각>이 강철같이 되도록
‘매일 기도’해야 됩니다.
또한 <생각>이 삼위일체와 같아지도록
‘매일 기도’해야 됩니다.
★ 사람은 <생각>에 따라서
<행동>하게 되고, <그 행동>에 따라서
<삶>이 좌우되고, <육신의 삶>에
따라서 ‘영’이 만들어져
<영의 운명>이 좌우됩니다.
곧 <생각>에 따라서 ‘휴거’가
좌우되고, <생각>에 따라서
‘천국’으로 가느냐, ‘지옥’으로
가느냐가 좌우됩니다.
★ 그래서 사탄도 악한 자들도
<생각>에 ‘잘못된 관’을 넣습니다.
<생각>이 잘못되면, ‘주’도 불신하고
‘말씀’도 불신합니다. <생각>이
잘못되니, ‘휴거’를 멈추게 됩니다.
★ 고로 선생은 매일 <여러분의
생각>을 위해서 기도해 줍니다.
고로 ‘강철 같은 생각, 삼위일체와
같은 생각’으로 사탄도, 악도, 잘못된
것들도 이기고 물리쳐야 됩니다.
선생이 한번은 하루 종일 지나치게
‘글’만 쓰며 일을 했더니, 순간 글씨가
안 보였습니다.
빨리 ‘말씀’을 마무리해서 보내야
기다리는 자들이 ‘희망의 답’을 받고
행하여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육이
되어 살고
- 자기 문제도 해결하건만,
우편으로 말씀을 부칠 시간은 다 됐지,
그런데 눈은 잘 안 보이지, 정말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하루 종일 글을 보면서 글만 쓰니
<눈>이 충혈되고 흐려져서 글씨가
잘 안 보이고, <생각>도 흐려져서
당황이 되니 당장 ‘쓸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눈·코·입·귀·팔·다리·손·발
등 <자기 몸>에 이상이 생기면 기능을
못 하고, 그때는 심난해서 더 이상
그 무엇도 할 수가 없습니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57
여러분도 이런 때를 겪어 봤지요?
★ 눈·코·입·귀·팔·다리·손·발보다
100배 이상 귀하고 중한 지체가
있습니다. 곧 ‘뇌’입니다.
왜 ‘뇌’가 그리도 귀합니까?
- 지체 전체의 기능을 통솔하고,
- 지체에 힘도 주고,
- 지체를 움직이게 하기 때문입니다.
★ <뇌>에서 하는 일은
‘생각하는 일’입니다.
★ 인간을 지으신 절대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인간의 육신을
창조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곧 <인간의 육신을 통솔할 생각>을
창조하여 <생각>을 가지고 <육>이
행하게 함으로 <혼과 영의 운명>을
좌우하게 하셨습니다.
<인간의 생각>이 그리도 중합니다.
★ <인간의 육신>을 창조했어도
<뇌>를 창조했어도
<생각>을 제대로 못 하면,
<육의 몸>도 <뇌>도 다
무용지물입니다.
마치 <TV>를 만들었는데,
<화면>이 안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화면>이 안 나오니,
<TV>도 무용지물이 됩니다.
★ <사람 몸의 핵>은 ‘뇌’입니다.
<뇌의 핵>은 인간의 육의 생명이 되는
‘생각’입니다. 뇌를 창조한 이유는
‘생각’을 창조하기 위함입니다.
★ <생각>이 고장 나면 ‘지체’가 고장
난 것과 같고, <생각>이 정상이 아니면
‘지체’가 제대로 있어도 제대로
움직이며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생각>을 잘못하면 ‘작은 일’도
‘큰일’도 모두 손해가 가고
실패합니다. <생각>이 고장 나서
기능을 상실하면 <만사>가 실패입니다.
★ 인생은 <생각>이 ‘핵’입니다.
<생각>이 무기력하고 감각을 잃으면
- <구원>도 <휴거>도 실패하고,
- <혼>도 <영>도 영원히 실패하고,
- <육>까지 실패합니다.
<뇌>는 ‘지체를 움직이게 하고
기능하게 하는 기계’이니,
<생각>을 잘해야 됩니다.
<생각>을 잘못하면,
뇌가 헛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가 <생각>을 창조하신 이유는
첫째, <생각>을 온전히 하고 삼위의
생각대로 행함으로 <육>도 땅에서
‘지상천국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함이고,
둘째, 그 <육의 행실>을
‘혼과 영’이 받아서 <혼과 영>이
하늘나라 형체로 변화되고 구원받고
휴거되어 <황금성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자기가 때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육신>이 천국의 삶을 사느냐,
지옥의 삶을 사느냐 <육의 운명>도
좌우되고, 자기가 때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영혼>이 천국으로 가느냐,
지옥으로 가느냐 <영의 운명>도
좌우됩니다.
사람은 행동할 때마다
<확실한 생각>으로 해야 됩니다.
또한 행동할 때마다 <생각>을
정말 잘하고 해야 됩니다. 또한 행동할
때마다 늘 <확인>하고 해야 됩니다.
또한 행동할 때마다 <총명하고
지혜로운 생각>으로 해야 됩니다.
그러려면
<성령과 성자와 주의 생각>으로
행해야 됩니다.
<성령과 성자와 주의 생각>으로
행하려면,
- 늘 자기 입으로 생각이
흐려지지 않게 지시하고,
- 늘 말씀을 잊지 말고 생각하며,
- 항상 기도해야 됩니다. 그래야
삼위의 생각과 일체 되어 행하게
됩니다.
<생각>이 흐려지면,
‘사탄·마귀·잡생각’이 들어옵니다.
사탄과 마귀도, 악한 자들도, 꾀는
자들도 <생각>이 흐리고 <주관>이
흐리멍덩한 자를 주관하고 꾑니다.
<생각>이 흐리니, 사탄이 100% 틈을
타고 역사하여 해를 주고 섭리사를
벗어나게 합니다.
고로 늘 <자기 생각>이 흐려지지
않도록 입으로 지시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말씀>을 멀리하지 말고,
수시로 무시로 꼭 <기도>해야 됩니다.
<삼위와 주의 생각과 주관>을 확실히
가지고 행해야 됩니다.
틈을 주면 ‘방에서 기르던 귀뚜라미’도
문 사이로 빠져나가 도망갑니다.
이와 같이 틈을 주면 ‘생명들’이 점점
세상으로 흘러가고, 사탄은 그 틈을
타고 더욱 ‘교회와 섭리사 안’으로
들어옵니다.
고로 목회자, 지도자, 관리자들은
<생각>을 잊으면 죽습니다.
<생각>이 ‘신’이고, ‘자기
경호원’입니다.
<생각>을 잘하고,
<삼위와 주의 생각>으로 무장해야
그 생각이 ‘신’이 되어 자기를 옳은
길로 인도하고, 그 생각이 ‘자기
경호원’이 되어 자기를 지켜 줍니다.
★ 모두 <신의 생각, 주의 생각>과
일체 되도록 하나님, 성령님, 성자와
주를 하루에 100번씩, 200번씩,
300번씩 불러야 됩니다.
삼위와 주를 부를 때나 기도할 때는
생각에서 ‘사탄과 잡념’이 떠나갑니다.
이것이 ‘매일 이기는 삶,
승리하는 삶’입니다.
최고의 삶은
‘자기 생각을 주관하고 다스려
생각으로 사탄과 잡념을
물리치기’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1차 말씀 마무리>
◎ 한 가지만 더 말씀하고
1차 말씀을 마치고 계속해서
성령님이 주신 계시를 전해
주겠습니다.
300선 이상으로 휴거된 후에
계속 변질되지 않고 행하면,
<영의 황금성 천국의 삶>이
보장됩니다.
<300선 이상으로 휴거된 것>은
‘결혼한 것’과 같습니다.
결혼한 여자가 계속해서 사랑이
변질되지 않고 사랑하며 살면,
남편과 헤어지지 않고
같이 사는 것이 보장됩니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58
그러나 다른 남자와 사랑하여 ‘생각과
몸’이 타락되면, 남편이 그 여자와는
같이 살지 못하고 이혼하게 됩니다.
만일 남편이 용서한다면, 여자는
그 용서를 받고 더 잘하면서 사랑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여자가 자기 스스로 ‘다른 남자’를
택해서 사랑했으니, 남자가 헤어지자고
하지 않아도 자기가 그 길을 가면서
‘운명’이 뒤바뀌게 됩니다.
이와 같이 <휴거된 자>도 그러합니다.
성자와 주가 <300선 휴거>까지는
다 이루게 해 주었으니, 이제 자기가
<400선, 500선>으로 올라가야
됩니다.
- 그런데 “300선 휴거됐으니
다 됐다.” 생각하고,
- 휴거되고도 기뻐하지 못하여
곤고함에 빠지고,
- <자기 생각과 주관>을 다른 데
뺏기어 세상으로 가거나 타락이
된다면,
→ <휴거된 영>이라도 <육>과
연결되어 있으니, 육과 같은
운명이 됩니다.
선생이 “휴거된 영은
<천국 황금성>이 보장됐다.” 했지요?
휴거된 후에 <휴거의 삶>을 살지
못하고 <차원>을 높이지 않고,
<자기 생각과 주관>을 다른 데
뺏겨 제 갈 길을 가고 타락돼도
<천국 황금성>이 보장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휴거된 후에도 정말 잘해야 됩니다.
아직은 ‘육신’을 쓰고 살기
때문입니다.
<육신>이 ‘자기 생각’을 온전하게
하고, 더욱더 ‘성삼위’를 사랑하며
‘주’와 일체 되어 <휴거의 삶>을
살면서 날마다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휴거됐다고 자기 마음대로 살고, 제 갈
길로 가고, 타락해 놓고 회개도 안
하고 가면, 그때는 <영>이 ‘천국’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자기 육>과 <자기 영>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육의 생각과 행실>이 계속해서
<영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휴거된 후에 <휴거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놀아나는
자들의 영은 아예 <천국>에서
내쫓아 버리자.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천사를
천국에서 쫓아내 버리듯 하자.
이런 자들의 영은 쫓아내고
다른 자들의 영을 <황금성>에
불러와도 일점일획도 하나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 하셨습니다.
휴거됐으니, 매일 <휴거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머물러 있지 말고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매일 하나님, 성령님, 성자와 주를
부르고 기도해야 됩니다.
매일 하나님, 성령님 성자를 사랑하며,
주와 일체 돼야 합니다.
매일 말씀을 잊지 말고
뇌 속에 가득 채워야 됩니다.
그리함으로 <자기 생각>을 온전히
해야 됩니다. <생각>을 다른 데
뺏기지 말아야 됩니다. 이제는 정말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됩니다.
‘사탄도 스스로를 날마다 새롭게 한다.
너희의 적인 사탄의 동태에 대해서
알고, <말씀 실천>과 <기도>로 사탄을
철창에 가둬 버려라.’
◎ 이제 성령님이 주신
계시 한 편을 전해 주겠습니다.
제목은 ‘사탄도 스스로를 날마다
새롭게 한다. 너희의 적인 사탄의
동태에 대해서 알고, <말씀 실천>과
<기도>로 사탄을 철창에 가둬
버려라.’입니다.
이 말씀은 주수신 계시자가
성령님께 받은 계시입니다.
◎ 저녁 7시 기도를 하던 중
“발전 없이 한 위치에 매여 있으면,
뒤떨어져서 사탄에게 낚아채인다.’라는
말이 들렸습니다. 성령님을 부르니,
그 말을 풀어서 세세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령님의 가르침을 받아 적었습니다.
* 성령님의 말씀 *
발전 없이 한 위치에 매여 있으면,
뒤떨어져서 사탄에게 낚아채인다.
너희만 날마다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
사탄도 날로 새롭게 한다.
사탄이 날로 새롭게 하는 근본 목적은
<인류의 휴거를 막는 것>이다.
인류의 휴거를 막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이성으로 타락시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사탄은 휴거된 너희를
두고 <더 차원 높은 휴거>를 이루지
못하게 막고, <이 세상의 다른
사람들을 휴거>시키지 못하게 막는다.
너희도 새벽, 낮, 밤으로 기도하며
자기를 새롭게 하듯, 사탄들도 새벽,
낮, 밤, 수시로 무시로 자기들끼리
모인다.
어떻게 하면 너희의 발목을 잡을지,
어떻게 하면 창조 목적을 이루는 것을
더 보편화되지 못하게 할지,
하나하나를 놓고 날마다 새롭게
계획하며 그 계획대로 매일 실천한다.
그러한 상황을 알기에 나 성령도,
선생도 너희에게 “늘 <기도>해라.”
하며, 늘 <말씀>을 주면서 너희가
‘말씀과 기도의 끈’을 놓지 못하도록
긴장시켜 준다.
진정 알아야 한다! ‘적’을 보지
못하고, ‘네 자신’만 보면 안 된다!
하늘이 급히 말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고 하늘 따로, 너 따로 ‘네 삶
속’에만 갇혀 있으면 안 된다!
하늘을 중심치 않고 ‘너’를 중심하면
너희는 절대 사탄의 손을 못 벗어나고
그 손아귀에 잡히게 된다!
<너희를 막고자 하는 자들>이 늘
너희를 쳐다보며 늘 여럿이 모여
‘어떻게 막을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날마다 그대로 행하고 있다.
그런데 너희는 그러한 <사탄>도 못
보고, 심지어는 선생이 말씀을 주며
<말씀과 기도>를 중심하라고 해도
그것 또한 등한시하면 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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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자>는 행치 않으며
모르는 대로 편히 살아가다가
‘근본의 화’를 피하지 못하고 살고,
<아는 자>는 아는 대로 행할 것을
행함으로 ‘근본의 화’를 피해
편히 살아간다.
행하지 않으면, 그 순간은 편한 것
같으나 근본을 보면 진정한 편안함이
아니요, 그것이 ‘모든 고통의
시작’이며 ‘사탄을 부르는 행위’다.
사탄들도 기도한다.
그리고 늘 자기들의 추축인
‘루시퍼’에게 보고한다.
너희가 새벽, 낮, 밤으로
삼위께 기도하는 것보다 더 간절히,
더 격렬히, 더 자주 기도한다.
<사탄들>은 자발적으로 그리 행하나,
<하늘 신부들>은 그저 삼위와 주가
하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하는
자들이 많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지금 이때는 창조 목적을 이루는
한때, 즉 <3.16>이 지나고
‘마지막 한때’를 보내고 있다.
너희는 ‘최소한의 목적’은 이루었다.
바로 <300선 휴거>다.
<휴거>는 700선까지 있는데
<300선>은 ‘황금성에 입성하기 위한
최저 기준선’이다.
<300선 휴거>를 이루었으니,
‘하(下)차원의 목적’은 이루었다.
<300선 휴거>를 이룬 너희 모두가
‘또 이뤄야 할 목적’이 있다.
첫째, 이제는 더욱 삼위를
사랑하고 구원자와 일체 되어
더욱 행하며 휴거의 삶을 삶으로
<700선 완성 단계>에 올라야 된다.
둘째, 아직 이 시대 말씀을 듣지 못한
민족과 세계의 사람들을 이 시대
역사로 데리고 와서 구원하고
휴거시켜 먼저 <300선 휴거>에
도달하게 해야 하는 목적이다.
너희는 휴거됐으니, 이제는
<더 큰 규모의 뜻>을 펼 수 있다!
그러나 그 방향에 맞게,
사탄은 날로 더 큰 구상을 지닌다.
고로 사탄을 철창에 가둬야 된다.
‘휴거된 자로서 사탄을 철창에
가둔다.’는 말은, 너희가 ‘자기 책임’을
온전히 했을 때 이루어진다.
기도하고, 말씀을 귀히 보고,
말씀대로 행하며, 말씀을 전하면
너희 자신도, 그 말씀을 듣는 자들도
모두 사탄을 이긴다. 고로 사탄을
철창에 가두어 제 힘을 발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아무리 휴거됐다 해도
<자신의 책임>을 하지 않으면, 사탄이
‘네 영’은 못 괴롭히나 ‘네 육’은 더
극심히 괴롭힐 것이다. 왜?
너 자신이 이제는 ‘너 혼자’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요,
<휴거된 영의 권세>를 지녔기에
‘다른 자들’도 휴거시켜 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 성령도, 천국으로 간 성자도,
네 선생도 <너>를 통해 ‘더 큰 하늘의
뜻을 펼 수 있다.’ 했다.
<너>를 통해
‘더 큰 하늘의 뜻’을 펴려면,
<너의 생각>을 온전히 하고,
<너의 육신>을 내 주며
‘너의 책임’을 다해야 된다.
너희가 <자기 책임>을 온전히 할 때는
사탄을 멸하여 ‘더 큰 하늘의 뜻’을
펼 수 있지만, 너희가 <자기 책임>을
못 했을 때는 전보다도 더 많은
‘고급 사탄들의 큰 표적’이 되어
버린다.
사탄들은 하다 말지 않는다. 왜?
절대 하나님의 뜻을 막고 싶기
때문이다.
사탄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왜?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의 육’을 보면,
<인간의 육신>은 ‘유한한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끝까지 행하지 않고,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것만 고려하여
과정 중에도 자꾸 그만두려 한다.
사탄은 이것을 알고,
자기들만 끝까지 하면 반드시
인간들에게 ‘틈탈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한다. <사탄>은 ‘영물’이다.
사탄은 누구의 족속이냐?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반대하다가
1차로 땅으로 내쫓기고, 땅에서
하와를 깨어 하나님의 뜻을 막아
2차로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을 받은
‘루시퍼’의 족속이다. 루시퍼는
타락하기 전에 천국에서 삼위와 함께
살았다. 거기서 삼위가 끝까지 하는
것을 봤다.
인간이 사탄의 꾐을 받고 타락했으나,
하나님이 성령님과 성자와 함께
‘끝까지’ 행하시니, <창조의 근본
목적>이 이루어진 것까지 보았다.
고로 사탄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행한다. 자신들이 끝까지 하면,
하나님의 뜻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로 <휴거된 너희들>은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생각>을 잘해라. 사탄이 <네 생각>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라. <네 생각>이
꾐에 빠지지 않게 해라. 네 생각을
<삼위의 생각>으로 무장시켜라.
그리함으로 날마다 새롭게 무장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아라.
<생각>이 ‘핵’이다.
<생각>으로 ‘육의 운명’도
‘영의 운명’도 좌우되고, ‘휴거’도
‘휴거의 차원’도 좌우된다.
<생각>을 강철같이 만들어라.
<생각>을 ‘삼위의 생각’으로
무장시켜라.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매일 <기도>해라.
쉬지 말고 <기도>해라.
늘 <말씀>을 가까이해라.
<말씀>을 잊지 말아라.
이것이 핵이다.
<기도와 말씀>
외에 다른 것들도 중하다. 그러나
‘핵’을 빼먹고 다른 것들을 하면 핵이
없는 고로 흔들리게 되니 다른 수고가
헛되게 되고, 너라는 생명, 그리고
다른 생명들에게 손실이 날 수 있다!
사탄이 저리 발악하는데 그저
안일하게 행하는 너희를 보고
내가 답답해서 말해 주었다!
<말씀>을 늘 네 뇌 속에 채우고
날마다 행하고, 다른 자들에게도 전해
줌으로 너도, 다른 자들도 ‘사탄
불가침’의 상태로 만들어라!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60
<틈>이 없을 때에는
사탄이 절대 틈탈 수 없다.
그것은 영계의 법칙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는 휴거된 자들로서, 의인이
되었다. <의인의 말과 기도>에는
‘삼위를 움직일 힘’이 있다!
영계의 근본자, 천지와 영계를 창조한
<창조자>를 움직일 힘, 그 큰 힘이
있다는 말이다!
고로 각자 ‘위력’을 발휘해라!
위력을 발휘함으로 ‘선과 악’을 쪼개
내라! 절대 선의 편에 서서
‘자기 책임’을 다해라!
가장 기본적 책임은
<기도>와 <말씀 실천>이다.
그리하면 사탄들이 절대 너희에게
발도 붙이지 못할 것이다! 그리함으로
사탄을 물리치는 것이다!
<사탄>이 ‘그 악한 생각’을
<너의 생각>에 집어넣지 못하도록
<너의 뇌, 너의 생각>을 ‘나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라!
사탄은 너희가 <휴거의 삶>을 살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너희가 시대
복음을 전하여 이 시대 <휴거>시키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날마다 모여서
의논하고 너희를 바라보며 <틈>을
타고 들어가려고 노리고 있다.
이것을 꼭 알고 행하여라.
사탄도 아는데 너만 모른다.
사탄은 날로 작전을 새롭게 하면서,
너희를 막을 궁리를 한다.
고로 삼위는 애가 타니 선생을 통해
<사탄을 철창에 가둘 말씀>을 계속
준다.
그러나
<말씀>을 멀리하고,
<기도>하지 않으니,
너만 그러한 상황을 모르고
안일한 너의 생각과 삶에 빠져 있구나.
그리하다가는 <사탄>이
‘너’를 철창에 가둔다.
<생각>을 사탄에게 뺏기고,
<생각>을 강철같이 무장하지 못함으로
‘사탄의 철창’에 갇힌 바 되어 힘을
잃고 고통받는 자가 되지 말아라.
나 성령이 너희에게
<사탄의 철창을 부수고 그들을
결박할 말씀>을 주었으니, 이 말씀을
귀히 보고 <너의 생각>을 강하게
무장하면서, 날마다 <너의 행실>을
점검하여라! <사탄>은 너에게
‘잘못된 생각’을 넣어 준다.
그때마다 <생각>을 강하게 하고,
<말씀>에 근거하여 ‘사탄의 준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쪼개 내라!
그러면 <사탄>이 철창에 갇혀 고통을
받게 된다. 너희가<생각>에 틈이 없고
강철 같아서 오직 <하늘의 말씀>대로
생각하고 행하면, 사탄과 싸울 필요도
없이 사탄은 자연스럽게 사망에
갇히게 된다.
사탄을 철창에 가두지 않으면,
네가 갇힌다.
사탄을 물리치지 않으면,
네가 해를 당한다.
사탄을 쫓아내지 않으면, 네가 도리어
너의 차원에서 쫓겨남을 당한다.
기도할 시간에 기도치 않으면 네가
철창에 갇힌 바 되어 그 시간
동안에는 하늘의 생각의 축복을 못
받고 삼위와 교통이 단절된다.
그러나 네가 시간을 지켜 기도하면
기도하지 못하게 막는 사탄들을
철창에 가두고 그들이 방해하려고 한
강도만큼, 그것이 네게 악영향을
미치는 만큼 그들이 크나큰 고통을
당하게 된다.
신부가 신랑과 교통치 못함으로
받게 될 그 악영향이 얼마나 크냐!
사랑하는 자와 만나지 못함으로
받을 그 고통이 얼마나 크냐!
<피조물인 너희>가 <창조자인 삼위>를
한 번, 한때라도 만나지 못해 단
한시라도 단절됨으로써 너희가 받게
될 손해가 그 얼마나 크냐는 말이다!
네가 사탄을 이기지 못하면 네가 해를
당하고, 네가 사탄을 이기면 사탄이
철창에 갇혀 해를 당한다.
이를 꼭 알고 행하자.
◎ 성령의 계시 말씀 서서히
마무리합니다. 집중해서 귀히 듣고,
먼저 <생각>으로 사탄을 물리치기
바랍니다.
사탄은 그리도 ‘사상 교육’을 받아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제때, 제 할 일을
칼같이 행한다. 너희도 삼위와 선생이
그리도 교육시켜 주지 않느냐.
고로 제때, 너 스스로 그 말씀들을
가지고 행함으로 사탄이 틈탈 기회를
주지 말기 바란다.
만사의 모든 일이 그러하다.
사탄이 틈을 타면, 그때부터
사탄의 영향을 받게 된다.
고로 잘될 일인데 잘 안 되고,
큰 힘을 발할 일인데
작은 힘만 발하고 끝난다.
사탄이 틈을 탄 만큼
‘네가 갇힌 바’ 되기 때문이다.
<삼위가 너에게 준 그 힘>을
사탄에게 빼앗기지 마라!
<삼위가 너에게 준 최고의 축복,
최고의 힘>이 무엇이냐?
휴거의 축복이다.
휴거된 영의 권세와 힘이다.
영원히 삼위와
사랑할 수 있는 축복이다.
<너의 영>이
‘삼위의 사랑의 상대체’가 되었으니,
<너의 육>도
‘사랑의 대상’으로서 귀히 대우받으며,
삼위와 함께 근본의 뜻을 펼 수 있는
축복이다.
<삼위의 큰 사랑>을 받고
<함께 뜻을 펴 나갈 입장>이 되었는데,
‘너의 기도 하나하나’가,
‘말씀을 지켜 행하는 너의 행실
하나하나’가 그 얼마나 큰 위력을
발하겠느냐는 말이다!
알고 행하자! 제대로 알고,
제대로 행하자! 네 힘을 알고
사탄에게 휘둘리지 말아라.
1000년 동안 사탄을
철창에 가두는 때가 왔으니,
<온전한 말씀>을 ‘네 생각’에 채우고
<온전한 행실>을 함으로
사탄이 빠져나오지 못할 철창을
만들고 그 속에 사탄을 가두어라!
절대 ‘사탄 박멸’이다! 그래야
‘선과 악’이 쪼개져 ‘선’만 남으니,
- 너희가 ‘휴거된 자’로서
‘더욱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고,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61
- 삼위가 너희와 함께 행함으로
‘극적인 역사’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은 <사탄>에 대해서 가르쳐 주며,
사탄들은 늘 모여서 의논하며 날마다
새롭게 한다고 알려 주었다.
그러나 <그 새로움>은 삼위를
더 사랑하여 더 가까워지기 위한
새로움이 아니다.
삼위의 형상, 하늘나라의 형상을
입기 위한 새로움이 아니다.
날마다 휴거의 삶을 살면서 차원을
높이기 위한 새로움이 아니다.
사탄은 어떻게 하면 하늘의 신부들이
‘휴거 자격을 상실’하게 할까?
어떻게 하면 휴거된 자들이
‘더 높은 차원의 휴거’를
이루지 못하게 할까?
어떻게 하면 이 시대 사람들이
‘시대 구원자’와 ‘시대 말씀’을
몰라서 휴거를 이루지 못하게 할까?
이것을 날마다 생각하고 연구하며
더 강력하고 더 잔인하게
<인간의 생각>을 주관하고 꾀려 한다.
그들은 ‘삼위와는 전혀 다른 형상’으로
날로 더 추악해지고 있다. 그들은
날마다 ‘추악함’을 덧입으며
새로워지고 있다.
고로 너희들도 ‘그러한 사탄의 동태’를
파악하고 더욱 <말씀>으로, <기도>로,
<삼위를 향한 사랑>으로,
<삼위를 부르며 만남>으로 날마다
새롭게 돼야 한다고 일렀다.
사랑해!
사탄이 제아무리 발악할지라도
- <나 성령>이 날마다
너희를 가르치고,
- <선생>을 통해
‘철장 같은 권세의 말씀’을
날로 차원 높여 선포하니
→ 이 <말씀>을 잡고, <기도>하고,
<행하는 자들>은 문제없다.
사탄을 모두 가둬 버리자!
너희의 ‘눈’이 되고,
너희의 ‘머리’가 되는 성령이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62
2015년 07월 29일 수요일
삼위일체가 주신
조건 네 가지
[ 마태복음 18장 21-22절 ]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20 For I tell you that unless your
righteousness surpasses that of the
Pharisees and the teachers of the law,
you will certainly not enter the kingdom
of heaven.
* 교역자들은 잘 준비해서
심정 있게, 확신을 가지고 확실하게,
성령으로 불같이 강하게 외치며,
이 말씀으로 은혜 집회를 해 봐라.
(강하게 외쳐도 강약 조절은
꼭 해야 한다.)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이번 주 주일에는 ‘매일 <생각>을
온전히 하고, 사탄과 악을 대적해라.’
에 대해서 말씀했지요?
◎ 오늘은 삼위일체가 주신 네 가지
조건에 대해서 말씀해 주겠습니다.
먼저 이 말씀을 듣고, 이어서 성령님이
주신 계시 한 편을 전해 주겠습니다.
◎ 오늘 말씀은 짧습니다.
반가운 말이지요?
그 대신 제대로 들어야 됩니다.
말씀이 짧을수록 ‘핵심’만 말씀하니,
한 마디라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생각을 다른 데 뺏긴 상태에서
들으면 안 됩니다.
◎ 성령님은 오늘 말씀을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휴거>되어 하나님이 예비하신
<천국 황금성>에 가는 데 있어서
기본 네 가지 조건은 꼭 갖춰야만
자격이 되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만족하시고 미련 없이
<천국 황금성>에 받아 주신다.
그 네 가지 조건이 무엇인지,
오늘 말씀해 주어라.” 하셨습니다.
◎ 바로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조건>
첫 번째 조건입니다.
‘이것’보다는 나아야 됩니다.
‘이것’이 무엇일까요?
곧 하나님의 원수, 반역자, 배신자,
불순종자, 하늘나라에서 쫓겨난
‘루시퍼, 사탄 마귀’보다는
나아야 됩니다.
루시퍼는 원래 ‘천사장 루시엘’로서
천국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이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여 이 세상을 ‘사랑의 세계’로
만들고, 인간들을 ‘삼위의 사랑의
대상체’로 만든다고 하니까
<하나님의 뜻>을 반대했습니다.
왜 반대했을까요?
<천국>에 이미 ‘천사들’이 있는데,
<지상>을 창조하고, 거기에 ‘인간들’을
또 창조하여 천사들보다 더 차원이
높은 ‘사랑의 대상체’로 만든다고
하니, 그것을 싫어하여 반대한
것입니다.
고로 루시퍼는 자기 주관, 자기 취향,
자기 생각을 내세우다가 <지상>으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생각>과
같지 않으니, 하나님과의 ‘연결된
것’이 끊어지고 ‘관계’가 끊어져서
더 이상 ‘하나’가 아닌 고로 같이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루시퍼는
<지상>으로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루시퍼를 즉시 심판하지 않고,
위험하게 아담과 하와가 사는
<지상>으로 쫓아내셨을까요?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이
즉시 ‘영원한 심판’을 하신다면,
그것은 공의가 아닙니다.
1차로 <회개 기간, 회심 기간>을
주십니다. 그때 회개하고 회심하면
그 자리에 두십니다.
그러나 그때 회개하지 않고
또 죄를 지으면, 그때는 2차로
<영원한 심판>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사랑의 뜻을 이룰 대상’으로
삼고 그들에게 ‘지켜야 할 말씀’을
주시며 역사하려 하셨습니다.
그들은 아직 어렸습니다. 고로
하나님이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탄 루시퍼는 먼저
‘어린 하와’를 꾀어 아담과 하와를
이성으로 타락시켰습니다.
<지상>으로 쫓겨났으니
회심하고 회개해야 되건만,
거기서 또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루시퍼를 저주하며
‘영원한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이로써 사탄 루시퍼는 천국에서도
땅에서도 ‘하나님의 반역자, 곧
역천자’가 되었고, 죄악의 근원이
되어 ‘지옥으로 영원한 처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이때부터 루시퍼와 같이
<하나님의 생각>과 끊어지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막는
족속은 천사들이나 사람들이나 모두
‘사탄 루시퍼 족속’이 되었습니다.
이 사탄의 족속들을 영원히 지옥에
가두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사탄을 물리쳐야 됩니다.
사탄을 이겨야 됩니다.
어떻게 해야
사탄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여 타락했으니,
절대 <삼위일체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삼위일체의 생각>대로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손을 대지 않고도,
사탄과 싸우지 않고도
사탄을 물리치고 이길 수 있습니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63
<사탄>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원수’입니다. 하나님은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여 인간을 ‘사랑의 대상체’로
삼아 그 <육>도 땅에서 ‘천국의 삶’을
살게 하고, 그로 인해 <영>도
‘하늘나라 형체’로 변화시키고
휴거시켜 천국에 오게 하여 영원히
사랑하며 살도록 <목적>을 두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원수, 사탄의
족속들이 하는 짓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뜻을 이루지 못하도록 막는
것입니다.
고로 삼위일체의 원수이며 역천자인
사탄과 마귀의 꾐, 각종 반대, 각종
교활한 짓을 물리쳐야 됩니다.
하나님의 원수, 사탄과 마귀를
파괴시켜야 됩니다.
이 조건은 절대 세워야 됩니다.
(믿습니까? 아멘.)
하나님의 원수, 사탄과 마귀를 이기고
<삼위의 생각>대로 행하여
<휴거>됐습니까?
하나님, 성령님, 성자의 원수를
갚았으니 속이 시~원합니다!!
사탄과 마귀를 이기는
공력 없이는 <휴거>되지 못하여
<천국 황금성>에 갈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1000년 왕국 역사 때>는
사탄을 이기고, 영원히 지옥에
가둔다고 했습니다.
지금이 그때이니,
그 뜻을 이뤄야 됩니다.
<두 번째 조건>
두 번째 조건입니다.
<섭리역사>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행하시는 역사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터전 위에 마지막으로
행하시는 역사입니다.
그런데 섭리사를 배신하고 나가서
악평하며 섭리인들을 꾀려고 간교하게
행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100% 확실히 물리쳐야 됩니다.
이들을 물리치지 못하고 그들의 말에
동조하면, 그들과 같이 ‘사망’으로
갑니다.
<시대 말씀>으로 강하게 무장하고,
<삼위의 생각>으로 강하게 무장하고,
<섭리사에 선포된 휴거의 역사>를
100% 확신하며, 삼위와 주의
이름으로 강하게 기도함으로
그들의 갖은 악평 글과 거짓된 말과
꾀는 말을 100% 불신하며 물리쳐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구원자도 기뻐하며 “미련 없이 했다.
잘했다. 천국 황금성에 갈 자격이
있다. 휴거 합격이다.” 하십니다.
이 조건을 절대 세워야 됩니다.
(믿습니까? 아멘.)
<세 번째 조건>
세 번째 조건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못 한 일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 됩니다. 곧 타락하지 않고
100% 사랑의 조건을 세워야 됩니다.
하나님을 벗어나서 육으로 성적
타락을 하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사랑을 배신한 행위이며
주를 등진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다가
<사탄의 꾐>을 받고 하나님을 벗어나
타락한 것이 아담과 하와의 못된
행위였고, 배신의 행위였습니다.
자기들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 타락하여 하나님과 연결된
것이 끊어졌고 하나님을 등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역사가 진행 중입니다.
성약 1000년 섭리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완성하는
역사입니다.
섭리사에는 <그 뜻을 이룰 말씀>이
있고, <조건을 세워 복직된 아담과
하와>가 있습니다.
모두 절대 삼위일체를 사랑하여
‘사랑의 조건’을 세움으로
‘제2의 복직된 아담과 하와’가
돼야 합니다.
그리함으로 하나님의 원수 사탄을
멸해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구원자도 기뻐하며
“내 사랑하는 자야. 너를 사랑한 것에
후회 없다. 미련 없다. 잘했다.
천국 황금성에 갈 자격자다.
휴거 합격이다.” 하십니다.
휴거된 후에도 <생각>을 뺏기고
<몸>을 뺏겨 타락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그전보다 세 배나 더 힘들게
올라와야 됩니다.
<육신>은 보고 듣는 대로
‘생각의 영향’을 받으니, 자꾸
‘휴거된 자기 영’을 부르고,
자꾸 ‘성삼위와 주’를 부르고
교통하며, 더욱더 ‘성삼위’를
사랑하며 ‘휴거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한 자들은
섭리사를 벗어나서 ‘사랑의 배신’을
당하고, <사랑 없는 영원한 고통의
세계>로 형벌을 선고받게 됩니다.
<사랑의 조건>이 최고로 큽니다.
이 조건을 절대 세워야 됩니다.
(믿습니까? 아멘.)
<네 번째 조건>
네 번째 조건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시대 구원자를 절대 믿기’
하나님과 성자가 ‘그를 통해 주신
말씀을 듣고 행하기’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 말씀에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하나님을
믿어라.” 했지요?
먼저 <시대 구원자>를 믿고
그와 일체 되고, 그를 통해
<하나님, 성령님, 성자>와 일체 되어
<하나님, 성령님, 성자>를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은 시대마다
‘합당한 사람’을 보내시고,
그 한 사람을 통해서만 말씀하시며
역사를 펴 나가셨습니다.
고로 ‘그, 곧 하나님이 보낸 자’를
믿어야 그 말이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임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됩니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64
<주의 돛>을 달지 않으면
세상 파도, 악평자가 주는 파도,
꾀는 자가 주는 파도,
자기 생각, 자기 삶의 파도에
휩쓸려 갑니다.
항상 <삼위가 보낸 자>를 중심하고,
또 <보낸 자와 일체 된 자>와 함께
뜻을 이뤄야 삼위일체는 ‘그 영들’을
휴거시켜 <황금성>에 데리고 가십니다.
이 조건을 절대 세워야 됩니다.
(믿습니까? 아멘.)
<마무리>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이 네 가지 조건은 휴거된 자들도,
휴거될 자들도 절대 지켜야 할
조건입니다.
이 네 가지 조건을 지키는 데 있어서
미련도 후회도 없이 해야 됩니다.
아쉬움을 남기면,
100%가 될 수 없습니다.
삼위일체는 ‘미련’을 두고는
<영원한 역사>를 안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아쉽게’는 안 이루십니다.
<완전한 황금성>으로 가는 것이니,
아쉽지 않게 미련 없이 하는 자들만
휴거시키고 <사랑의 대상체>로 삼아서
영원히 사랑하며 같이 살아 주십니다.
그 터전 위에
- 매일 생활 속에서
삼위일체를 사랑하고,
- 매일 생활 속에서
삼위일체와 대화하고 교통하며,
- 매일 주를 위하고
주와 일체 되어 살고,
- 전도하고, 가르치고,
증거하며 공적을 쌓고,
- 죄를 지었으면 꼭 회개하고,
- 성삼위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조건을 못 지키면
신앙이 점점 쇠해져서
‘신앙의 중병’을 앓게 되어,
결국 사탄과 인사탄이 끌어가기도
하고, 스스로 섭리사를 나가기도
합니다.
<영원한 천국 황금성>에 가는 것인데,
자기 할 일 다 하면서, 자기 생각대로
살면서 가려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10대나, 20대나, 30대나, 40대나,
어른들이나 자기 삶 속에서 ‘이것’을
꼭 지켜야 됩니다.
이 네 가지 조건을 지키고 사탄을
이기는 자들은 늘 ‘기쁨, 사랑, 희망,
평화’가 넘치고, 늘 ‘상’을 받고, ‘복’을
받고, ‘하늘의 유업’을 받고, 더 나아가
‘재물’도 받고, ‘밭에 숨겨진 보화’도
받습니다.
이 네 가지 조건을 못 지키고 패하는
자들은 사랑도, 기쁨도, 희망도,
축복도, 경제도 메말라 버립니다.
꼭 이 조건을 지키고 행하여
사랑, 감사, 희망, 평화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매일 주와 일체,
주와 교통함이 충만하고,
매일 기도, 매일 감사,
매일 성삼위 사랑,
매일 생명 사랑,
매일 생명 관리가 충만해야 됩니다.
이 말씀을 듣고 행하는 모든 자들에게
삼위의 사랑과 진리와 은혜와 성령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 <전환>
◎ 이제 성령님이 주신
계시 한 편을 전해 주겠습니다.
제목은 ‘생각의 틈을 타고 사탄이
공격하니 지금은 더 생각의 틈을
조심할 때다.’입니다.
이 계시는 성령님께
채주명 계시자가 받은 것입니다.
◎ 기도하는 며칠 동안
성령님은 계속 “생각의 틈이 생기면
안 된다.” 강조하시며 지금 이때는
‘생각이 매우 중요한 때’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 성령님의 말씀 *
사랑으로 말하는
나의 마음을 전해 다오.
사랑하는 섭리의 신부들아,
내가 ‘너희’를 보고 말하며
‘지금 현시대’를 보면서 진실로
말하노라.
신은 깊이까지 볼 수 있으며,
원인과 결과까지 세밀히 볼 수 있으니
<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영과 육이
모두 잘된다.
지금은 ‘기도할 때’다. <기도>는
‘지금 너희에게 꼭 필요한 무기’다.
방향을 모르고 기도하면 안 되지만,
너희는 ‘선생의 말씀’으로 ‘방향’을
알고 기도할 수 있으니 너희의
기도는 <삼위의 마음>에 합당하며
<그 기도의 위력> 또한 크다.
그러하기에 너희가 기도해야
너 개인과, 가정, 민족, 세계가
주가 원하는 대로 운행되고,
운명이 뒤바뀐다.
사랑하는 신부들아, 지금은
‘기쁘고 즐거운 휴거의 잔치의 때’다.
삼위가 원하고 원했던 ‘창조 목적이
이뤄지는 기쁨의 때’다.
지금 이때, 꼭
‘휴거의 확신’을 가지라고 말했다.
그래야 ‘그 마음’을 통해 ‘기쁨’이
전달된다.
그러나 휴거됐다고 해서
눈앞에 어떤 휘황찬란한 역사가
일어나거나 삶의 환경이 달라지는
것들이 눈에 보이지는 않으니,
진정 ‘그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있구나.
그러나 ‘감사와 기쁨’이다.
이 조건이 있어야
‘황금성의 기쁨의 문’을 연다.
사랑하는 신부들아, 내가 너희에게
간곡히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너희가 <휴거된 자의 생각>을 갖지
못하니, 사탄은 ‘그 생각의 틈’을
타고 들어온다.
<생각의 틈>이다.
<생각의 틈>을 조심해라. 지금의
환난은 ‘생각의 틈’을 타고 들어온다.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65
<생각>이 ‘신’이요,
<생각>에서 ‘너희 운명이 좌우’되며,
<생각>에서 ‘휴거의 기쁨’도
느낄 수 있다.
지금 진행되는 <휴거의 혼인 잔치>는
상상할 수 없는 기쁨과 환희이다.
이 <휴거 혼인 잔치의 기쁨과 환희>도
먼저는 ‘생각’으로 보고, ‘생각’으로
가슴 벅차게 깨닫는 것이다.
더 나아가 <휴거된 영의 능력>도
‘생각’으로 그 힘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 사탄은 ‘그 생각의 틈’을
노리고 공격한다.
처음에는 ‘작은 틈’을 노리다가,
순간 ‘휴거의 기쁨’을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
◎ 휴거되었는데 아직도 사탄이
틈을 타고 들어올 수 있나요?
휴거된 후, 너희는 정말 기뻐했다.
너희는 ‘성자와 분체의 조건’으로
거의 다 <300선 휴거>를 이루었다.
놀라운 기적이며, 성자와 분체가
너희를 사랑한 표다.
성자와 분체가 너희
한 개인, 한 개인을 사랑한 증표를
너희는 말씀으로 받은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자와 분체의 조건>으로 거의
휴거됐기에 <너희 영>은 휴거를
이루었는데 <육>이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고로 <육>이 감사하지 못하면,
그 틈으로 사탄이 들어온다.
<성자와 분체의 조건>으로 휴거됐기에
너희가 ‘더 감사와 기쁨의 조건’을
쌓고 매일 ‘성삼위를 사랑’하며
‘주와 일체’ 되어 매일 ‘휴거의 삶’을
살면 틈이 없지만, “휴거됐구나!”
생각하고 <자기 책임 분담>을 안 하면
그 틈이 ‘너의 마음에 환난’으로 온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금은보화’를
주었지만, 감당하지 못하면 축복이
오히려 버겁고 힘겨운 것과 같다.
섭리의 신부들아, 사탄들이
‘사랑하는 신부 너희들’을 노리고
있다. 너희들의 ‘생각’을 노리고 있다.
<생각의 틈>이 생기면, 사탄이 그 틈을
타고 들어와 ‘섭리사의 휴거의 기쁨’을
빼앗고 ‘환난’에 빠지게 한다.
지금 이 시대는 <성자>가 떠나고
‘환난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러나 이미 너희는 그 환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휴거>를 외쳐
주었다. 너희들의 조건이 부족하니,
성자와 분체는 ‘너희 모든 죄’까지
용서하며 결단코 휴거시켜 주었다.
그런데 너희가 <생각의 틈>을 주어
<시대의 환난>에 같이 휘말리면
안 된다. 사탄은 마지막까지
<휴거의 역사>를 방해하기 위해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다.
이미 세상은 사탄이 주관하여
<환난의 바람>에 정신없이 당하지만,
너희는 이미 ‘이긴 자’가 됐는데
어찌 그 바람에 빠져 있느냐.
<생각>으로 ‘천국과 지옥’이 갈린다.
<생각의 환난>을 맞지 말아라.
<생각의 천국>을 이미 너희에게
주었으니, ‘생각의 틈’을 내주지
말아라.
<생각>을 잘하기다.
<생각>을 절대 뺏기지 말아라.
너희의 조건이 아닌
<성자와 분체의 조건>으로 휴거됐지만,
너희가 ‘생각’으로 선생과 일체 되고
감사하고 기뻐하면 다 ‘너희의 조건’이
되어 절대 틈이 생기지 않는다.
<잠시 쉬었다가>
섭리의 신부들아,
선생이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마음을 너무 모르는구나.
얼마나 너희를 그리워하고 너희를
얼마나 사무치게 사랑하는지 그
마음을 잘 모르니 ‘휴거를 시켜 준
그 뜨거운 사랑’도 깨닫지 못하고
또 ‘생각의 틈’이 생기는구나.
안타깝고 안타깝다. 선생의 사랑을
어찌 가르쳐 줘야 하나...
그 사랑은 하나님이
‘인류를 향한 사랑’으로 강을 이룬
것같이 한이 없는 사랑인데, 너희가
‘삼위가 보낸 자의 그 사랑’을
모르는데 어찌 ‘그를 보낸 삼위의
사랑’을 알까?
섭리의 신부들아,
선생의 사랑을 제발이나 알아 다오.
말씀을 듣기만 하지 말고 깨달아
보아라.
선생이 왜 그리 애타게 전하는지,
그 심정 좀 받아 보아라.
사랑이라고, 사랑한다고 말씀에
새겨 놓은 그 심정의 말이
너희에겐 들리지 않느냐.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으로 말하고 있는 그 심정이
너희는 아직도 느껴지지 않느냐?
그것에서부터 틈이 생겼구나.
말씀을 듣는 자세가 선생을 멀리하고
있구나. 말씀을 듣는 너희들의
마음부터 선생을 멀리 생각하고
있구나.
사랑하는 신부들아,
선생이 “사랑한다. 사랑해.” 이렇게만
말하면, 너희가 <휴거의 방법>을
알겠느냐. 악인들이 쫓아오는데
“사랑해.”라고만 말하면,
살릴 수 있겠느냐.
휴거되어 영원히 누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사랑’이다.
사탄과 악인들을 이기고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사랑’이다.
너희를 위해 기도해 주고
너희가 자기 스스로를 지키도록
가르쳐 준 것이 ‘사랑’이다.
<사랑>에 눈을 떠라.
<말씀>에 눈을 떠라.
<심정>에 눈을 떠라. 제발이다.
<생각의 틈>을 사탄에게 내주어
세상을 향해 가지 말아라.
착각의 마약이요, 틈을 타고 들어온
사탄의 행악이다.
세상은 지금 심판과 환난이
일어나는데, 그곳에 가면 기쁨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사탄의
최면에 걸린 것이 아니냐.
<생각의 틈>이 그리 무섭다.
‘작은 틈 하나’가 하염없이 커져서
‘전체’를 장악하고 결국은
‘휴거의 영’을 버리고 간다.
조심하기다. 너희가 받은 축복을
‘생각의 틈’으로 인해 버리지 말아라.
2015_07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66
진실로 ‘생각을 지키기’다.
그리고 ‘생각으로 더 높은 차원으로
휴거되기’다. 알겠지?
<생각>이 ‘핵’이다.
<생각>이 ‘주를 만나는 핵’이다.
◎ 마무리하겠습니다.
지금은 <기도의 무기>를
사용하여 사탄을 이기고 <생각>을
‘완전히 선생과 일체 시키기’다.
지금은
‘선생과 함께 같이 기도할 때’다.
선생이 기도할 때, 너희도 같이
기도하여 삼위 앞에 나아와라.
그 조건이 크다는 것을 알고,
처소에서 놓치지 말고 기도하기다.
사랑하여 선생이 너희에게
<축복받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으니
생각의 틈을 내주지 않는 재창조의
기도 시간을 놓치지 말기다.
이것이 생각의 틈을 사탄에게 뺏기지
않는 방법이니 지켜 행하기다.
<기도>하여 ‘승리’하고,
<기도>하여 ‘시대 축복’을
온전히 받기를 바란다.
오늘도 나 성령은
<생각의 축복>을 주며
너희에게 간절히 말하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