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새벽말씀2015.07.13 (월)

월 새벽말씀

선포일
2015.07.13 (월)

첨부 파일

2015년 7월 13일 월요일 새벽말씀(편집본) 어떻게 하면 영혼이 잘 되느냐? 이 영혼에 대해서는 본 자도 드물고, 또 영혼의 세계는 누 구든지 자신만만하게 육신의 눈을 떠서 보듯이 볼 수가 없는 그런 영의 세계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해서 죽 성서에 의해서 보겠습니다. 물론 사람의 정신적인 건전은 육적인 건전을 가져오고 이상을 가져오는데, 특히 종교에서 말하는 대로 우리 개인의 차원으로 축소시켜 보면 모든 영적인 문제 여하에 따라서 육의 모 든 문제와 영의 문제가 잘 되고 형통케 된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좀 크게 확대를 시켜보면, 종교가 잘되면, 그 시대 종교가 잘하면 그 사회와 민족의 세계, 육이 되는 민족 형태도 역시 범사 간에 잘 되게 해 주겠다 이런 얘기나 같은 말입니 다. 성서의 흐름을 죽 창세기부터 보면, 아담서부터 종교가 무너지고부터 타락함으로부터 그의 범사 간에 하는 일들이 저주받은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고의 땀방울이 너무너무 많이 흘렀고, 그 대가로서 겨우 인생살이에 생계 를 유지하는, 수고를 많이 했으나 생계를 유지하는 것밖에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100배 혹은 200배 300배 결실을 받지 못하고 수고의 대가만 겨우 받는 정도에 끝났습니 다. 그래도 아담과 하와는 그 나름대로 신앙생활하면서 축복이라고 했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그 시대를 볼 때에 창세기에 있는 말씀대로 그들이 저주를 받아 엉겅퀴가 나게 되었고, 저주를 받아 땀방울을 흘리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수고를 해도 밭에서, 논에서 소산물을 많이 낼 수 없게 됐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물론 논과 밭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마음 밭에 엉겅퀴가 절어 붙어서 마음에 기쁨 의 열매를, 이상적인 열매를 맺지 못했고, 항상 짜증과 고통과 번민과 아픔과 쓰라림이 아 담과 하와의 마음 밭에는 그칠 날이 없었습니다. 눈보라, 비바람, 회오리바람, 강풍이 치닫고 항상 해일이 일어나고, 태풍이 항상 일어서 그 마음은 광야의 벌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영적인 세계라는 것은, 다시 말해서 신앙적인 세계입니다. 형이상학적인 천법을 어김으로 그렇게 됐습니다. 영혼이 잘못 되니까. 영혼은 어떻게 해야 잘 되는고 하니, 첫째는 하나님과 교류가 끊어져서는 절대 잘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는 영과 육의 문제가 끊어졌습니다. 하나님과의 교류가 끊어져서 잘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졌고, 하나님과의 수수작용이 끊어졌습니다. 하나님과 주고 받고 하는 심령적인 내통이 끊어졌고, 또 나아가서는 과학의 원리에 구심력과 원심력이 있 듯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심정적인 교통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사도신경에 말한 대로 서로 교통이 있어야 되는데, 교통이 끊어졌습니다. 교통이 끊어 지고 두절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에서 말하는 대로, 우리가 특히 말씀에서 배운 대로 이것이 바로 죽음입니 다. 영과 육의 세계의 이상이 끊어졌습니다. 우리 영혼과 하나님의 영의 세계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전화선이 끊어지듯이. 전화선이 끊어지면 부산과 서울 사이의 전화선이 끊어지면 통화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걸어 가서 전달해야 될 것입니다. 끊어지지 않았을 때는 말 한마디 갖고 전달되고, 1분 안에 다 소식을 듣게 되고 2분 만에 듣게 되는데, 이것이 끊어졌을 때는 부산까지 다시 내려가서 전 해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수억만 리를 언제 갔다 오겠습니까. 이런 고통과 쓰라림이 있어서, 많은 날을 살았어도 발전할 수가 없고 발달할 수가 없는 세 계가 된 것처럼 아담과 하와는 이런 경지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는 유선을 갖고 통할 수도 없고, 무전기 갖고 통할 수도 없는 거 리이고, 전화선이 연결된 것도 없습니다. 오직 영적인 세계로만 교류되는 곳이고, 오직 영으로만 서로 교통이 되는 곳이기 때문에 영 의 세계에서 서로 끊어지고 두절된다면 도대체 이것은 서로 통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이 병들거나, 영이 이상이 생기거나, 영이 고장이 났으면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것으로는 도대체 전달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전파가 끊어졌을 때는, 라디오가 고장 났을 때는 다른 것으로는 전할 수가 없지요? 이와 같이 하늘나라는 이 세상에서는 교통이 끊어지면 불편한 대로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전할 수 있지만, 하늘나라와의 교통이 끊어졌을 때는 누가 가서 전할 수도 없는 세계입니 다. 어떻게 그 세계를 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 요새 안 통해서 올라왔습니다.” 하고 올라가서 이야기할 수도 없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교류가 끊어졌다고 해서 사닥다리 놓고 올라가서 찾아갈 수도 없고, 비 행기 타고 올라갈 수도 없는 것이고, 아폴로를 타고 갈 수도 없는 것이고, 오직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는 오직 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전화기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과 무선으로 전파로 통하는 세계가, 그것이 바로 심령적 세계의 <영>입니다! 영파를 통해서 영의 세계와 서로 주고받고 하는 세계인데, 만일 그것이 끊어진다면 우리는 완벽하게 두절되고 말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완전히 끊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 으로는 통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것이 끊어지니까,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과) 통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의 기준자가 있고 중심자가 있는데, 그 중심자가 끊어지니까 도대체 가능성이 없었습니 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배운 대로 ‘영적인 죽음’입니다. 영적인 죽음! 이것은 병이 아니라 죽었 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조금씩 병이 난 것은 한 군데 한 군데 어떻게 치료를 해서 가능성을 볼 수 있지 만, 죽었다 할 때는 살아나기 전에는 다시금 취급을 못 받는 것입니다. 산 사람 취급을 못 받는 것입니다. 호적에서도 지워야 됩니다. 이것이 바로 죽음인데,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 교통이 끊어졌을 때 아담은 ‘영적인 죽 음’을 했습니다. 영적인 죽음. 육적인 죽음을 하지 않고. 육적으로는 930년 동안 살았습니다. 그래도 그것이 숨만 쉬고 살았을 뿐이지 문화권의 혜 택이나 하늘나라의 이상적인 혜택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왠고하니, 영적인 세계가 끊어졌기 때문에 영으로 받아서 보다 이상적인 사고와 생각과 모 든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살기는 살았어도 저능아적으로 살았습니다. 무 식하게 살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저능아로 살듯이, 정신이상 된 우두머니가 산 인생과 같이 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볼 때는 그렇지 않다고 하나, 하나님이 볼 때에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어떤 사람은 ‘복 복(福)’ 자를 글로 써 놓고 복을 받기를 원하고 이상적인 세계를 누리기를 원해서 복 자를 많이 찾는다 하고, 나아가서는 복 받는 것이 여러 가지인데 구제사업을 하 고, 각종각색으로 선하게 산다 하지만 그것은 평범한 일들입니다. 그것은 마치 밥을 먹을 때 필요한 부식을 먹는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러나 극적인 병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는 그 런 부식 갖고는 될 수가 없습니다. 음식 갖고는 될 수 없습니다. 극적인 약이 필요하겠지요. 극적인 약이 필요하고, 극적인 병원의 의학적인 도구와 의술이 동원되어야 되겠지요. 이러하듯이 우리 모든 영적인 특수한 병들이 고침을 받으려면 <특수한 말씀>으로 치료함을 받아야 될 것이 아니겠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말씀을 찾는 자들이 많이 있으나, 그런 말씀이 어디 있겠냐는 것입니다. 이런 진리는 땅에서 파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누가 금전을 가지고 사는 것도 아 니고, 어떤 재벌가가 희생함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은 돈을 가지면 다 된다고 하지만, ‘진리의 세계’는 돈을 갖고도 안 되는 세계입니다. 이와 같이 그럴진대 그런 문제들이 어디서부터 풀어지느냐? 이것은 금전도 아니고, 명예 권 세도 아니고, 어떤 그런 다른 세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금은보화 모든 이런 세계에서도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진리’로부터 출발하여 진리가 해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도 그리했고 여러분들 그리함을 체험해 왔습니다. 이것은 금과 은을 주고 살 수 없고, 귀 하고도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그때그때 주셔도, 이 진리의 세계는 ‘때와 시기’를 따라 주시지, 아무 때나 줄 수 없었던 종교역사를 떠들어 볼 수 있고 신앙역사의 흐름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이 흔들리고 마음에 병이 오기 시작하고, 마음이 심란하기 시작하고, 마음이 허 무주의에 빠지기 시작하고, 마음이 허탈감에 빠지기 시작하고, 마음이 인생 문제에 봉착하 기 시작하고 마음을 잡지 못할 때는 도대체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입니다. 돈을 껴안고 있 어도 떠날 수가 없고, 금은보화를 껴안고 있어도 떠날 수가 없고, 여자를 껴안고 뒹굴어도 떠날 수가 없고, 나아가서는 호의호식을 하며 문전옥답을 가지고 고대광실 높은 집에서 살 아도 그것은 안 떠난다는 것입니다. 명예 지식을 껴안고 있어도, 권세를 껴안고 누리고 있 어도 안 떠난다는 것입니다. 그런 문제는 어떤 세계에서 이루어지는고 하니, <하나님의 진리 말씀>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옛부터 모든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진리를 찾아 헤맸습니다. 석가도 인생의 길을 찾아 헤맸고, 공자도 학문을 통해 찾아 헤맸고, 니이체도 헤매고 찾아 돌아다녔고, 아리스토텔레스도 찾아 헤맸고, 각종 모든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찾아 헤맸습니 다. 보다 이상을 향해서 가려고 이상을 찾지 않은 사람이 이 세상에 없습니다. 모든 국민학 생부터 중학생부터... 다 찾았습니다. 보다 이상적인 세계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알고 보면, 바로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데서 오는 것이 근본이었 습니다. 영의 세계를 몰라서 그렇지, 영의 근본을 몰라서 그렇지 알고 보면 그런 문제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갈등이 어디서 왔냐? 영적인 세계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그 모든 세계는 하나님을 믿음으로써만이 해소될 수 있습니다. 믿어도 그럭저럭 믿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기성의 기독교와 같이 믿는 것도, 그것 가지고 안 된다고 나는 반기를 들고 일어난 사람입니다. 나도 그렇게 믿어봤지만 해소가 안 됐다는 것입니다. ‘나 같은 사람도 해소가 안 되는데, 고래만큼 한 자들이 해소가 되겠냐?’ 하고 나는 일찍부 터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물이 없어 갈함이 일어난 것이다. 물고기가 물이 없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허우적거리지, 애인이 없어 허우적거리겠느냐. 그 바다에 그 많은 고기들이 많은데.” “허허벌판에 모든 잡목, 초목들, 만물이 왜 비들비들 하냐? 애인이 없어 배들배들 하느냐. 역시 비들비들 꿰 돌아가는 원인은, 가물어서 꿰 돌아가지 그럴 리가 있겠냐. 애인이 없어 꿰 돌아가겠냐. 가물 때는 물만 있으면 비만 오면 그만이지! 물만 있으면.” 바다에 물만 있으면 고기는 그만입니다. 새우도 물이 없으면 뛰는데, 고래가 안 뛰고 배기 겠습니까. 안 뛴다면 물이 많아서 안 뛰는 것이 아니라 벌써 뛰다 지쳐 이미 쓰러져 있어서 안 뛴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다면, 우리 인간도 물이 없어서가 아니고, 입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고, 잘 곳이 없어 서가 아니라 ‘오직 여호와의 말씀, 진리’가 없어서! 그 말씀이라는 것은 사랑이 될 수 있고, 그 말씀은 의가 될 수 있고, 그 말씀은 모든 문제를, 만병을 고칠 수 있는 치료자가 될 수 있고, 그 진리는 영혼을 소생시키는 세계가 될 수가 있고, 그 진리를 들음으로써 바로 천국 문을 열 수 있고, 그 진리를 통해서 지옥문을 벗어날 수 있고, 이러한데 이 진리가 크지 않 다는 것입니까. 이 진리! 이것이 바로 영혼이 잘 되는 문제가 가장 좌우되고, 운명이 좌우되는 데 있어서 큰 요소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이 진리입니다. 이 진리는 아무나 가서 폭발시킬 수 없습니다. 맛을 보면 압니다. 우리는 이런 진리를 통해 우리의 심령이 변화를 받고 이상을 가져왔으니, 그것이 효과가 있 었던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이 엄청난 효과를 낸 것입니다. 어떤 약은 먹은 지 석 달 만에 표가 나고, 어떤 약은 1년 가서 표가 나고, 어떤 것은 2-3년 가야 표가 나는 것도 있고 여러 가지가 많이 있습니다. 이 진리를 통해서,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병적인 세계들이나 인생의 모든 번민 하는 세계들이나 이런 세계들이 그만큼 해소가 되었으니 그만큼 부활이 되었고, 그만큼 이 상적으로 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가 교류가 되고 교통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끊어졌던 사이 가 다시 연결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금 삶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장 큰 무섭고 무서운 세계는, 종교에서나 사회에서나 무서운 것은 죽었다는 것입니다. “신앙이 죽었다, 사랑이 죽었다, 정치가 죽었다, 부패됐다, 썩었다, 종교가 죽었다, 썩었다, 부패했다.” 이런 여러 가지 말들을 하지요. 성서는 말하기를 에스겔 골짜기로 표현했습니다(겔37:1-11). 그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기 를 원하고 기대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이 볼 때 가장 이상적인 삶을 살아야 되겠다는 것입 니다. 이것이 바로 살아 움직이는 세계입니다. 이 진리의 말씀은 우리가 종전에 비할 수 없는 말씀이고, 하늘과 인간의 사이를 서로 교통 케 하는 말씀입니다. 다시 이상(理想)된 세계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이 신앙적인 병폐들을 없애야 되겠는데 어떻게 없애야 되느냐? 말씀 갖고 없 애야 되겠습니다. 신앙의 병폐를 없애게 되면 우리 마음의 세계에서부터 평화롭게 되고 나아가서는 통, 반, 동, 구 그리고 시와 수도권과 온 민족이 편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병을 고치지 못할 때 온 민족이 모든 괴롬과 고통과 어려움과 모든 칼을 빼들고 정 치를 한다 하고, 총칼을 휘두르면서 정치를 한다 하니 괴롭다 그것입니다. 오직 이 모든 것은 영적인 모든 세계가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에 바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 까.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는 모두가 다 괴로운 인생길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개인도 정말로 사는 보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모든 종교는 더 뛰고 연구하고 기도하고 합니다. 이것을 교회에서 해결을 못하고 지도자가 해결을 못 해 주니까 산에 가서, 능력봉에 가서 기도를 하게 되고, 삼각산이 닳도록 오르내리게 되고, 기도원에서 철야를 하게 되고, 밥을 먹지 않고 기도만 하게 되고, 이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눈물겹게 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안 되니까 돈을 벌어서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 니까 이성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니까 학문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또 나아가서는 정권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모든 주권으로 해결하려고 모두 하나, 그들이 가 보나 마나 끝터리에 가면 산은 하늘 아래 뫼[山]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앉아서 쉽게 되는 길이 바로 이 길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이 시대 말씀을 듣고 바로 알고 100% 알아야 됩니다. 99% 알아도 안 됩니 다. 100% 알고, 그 말씀을 100%는 실행하지 못할지라도 50%라도 하면 50% 이루어집니 다. 80% 하면 80% 이루어지고. 인생이 100% 이행하기가 어렵지요. 물론 그것은 자기의 수단과 방법 여하에 있겠지만, 그 래도 바로 알고 50%라도 하는 것이 바로 모르고 100% 하는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 과거에는 바로 모르고 100% 하고 120%, 150%를 했는데도, 역시 모든 사람들이 왜 눈물 짜면서 괴롭게 살았느냐는 것입니다. 바로 모르고 150%를 한 것이고, 바로 모르고 200%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고하고 애쓰고 눈물을 흘렸어도 엉겅퀴가 나게 됐고, 아담이 땀 방울을 홍수심판 하듯이 차고 넘치게 흘렸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 땀방울을 흘리면서도 인 생에 대해 푸념을 하고 인생에 대해 한을 남기고 ‘인생이 무엇인가?’ 했습니다. 그러나 그 눈물 흘리고 애쓰고 한 모든 것은, 인간이 겨우 빵문제를 해결했을 뿐입니다. 영 적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고. 우리는 눈물을 흘리면서, 그리고 몸부림을 치면서 영적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영적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나는 빵문제 해결하면 될까 했더니 그것으로는 안 됐습니 다. 그러나 나는 빵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오직 눈물을 흘리면서 영적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되 었다는 것입니다. 한번 물어봐요. ‘저분이 영적문제를 해결했나, 안 했나?’ 하고 한번 기도를 해 보세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들의 그 기도를 꼭 들어주실 것입니다. 나를 보는 사람마다 “저 사람은 자유된 몸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 다. 나는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어디서? 진리에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사망권에서 자유함을 얻고, 문제에서 자유함을 얻고, 성서의 모든 문제에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이런 자유함을 얻은 몸이 됐습니다. 와서 내가 여러분에게 말씀을 전해 주지 않았으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궁금증, 심판에 대한 궁금증, 나아가서는 성서에 대한 궁금증으로부터 시작해서 여러 각종각색으로 모든 이 상세계의 궁금증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진리의 말씀을 듣고 은혜의 말씀을 듣고, 즉 여기서 가르치는 하나님의 그 모든 론을 전부 전해 듣고 재림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휴거에 대해서, 지상천국에 대해서, 창 조하신 목적에 대해서 확실히 분명히 알고부터는 모든 번민과 고통의 병들이 떠나갔다 그겁 니다. 이것을 모든 자에게 전해 주었더니만 여러분들도 그런 병이 떠나가면서 모교회를 애굽같이 등지고서 모두 나와서 새로운 역사 앞에 서게 되지 않았습니까. 모교회를 신광야 등지듯이 등지고 와서 이 역사 앞에 오지 않았습니까. 올 때 죽는 데를 가 는 줄 알고 붙잡고, 사탄의 앞잡이가 되는 줄 알고 나아가서는 고통의 세계를 가는 줄 알고 망하는 세계로 가는 줄 알았지만, 망하기는 뭘 망합니까? 그 병은 부모도 못 고쳤고, 금전으로도 못 고쳤고, 캠퍼스에서도 못 고치고, 학문도 못 고쳐 서 고민하고 걱정했는데 지금은 여러분들 그런 머리 아픈 일들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골치 아픈 일들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머리 아프고 골치 아픈 인생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마 삼각산 골짜기에 머리가 길어서 엉덩이까지 내려온 남자가 있는데, 그 사람이 인생문 제를 잘 해결해 준다면 아마 그 사람을 만나려고 삼각산이 미어질 것입니다. 좁은 거리가 아마 대로가 될 것입니다. 서울 시내에 소문만 나 보십시오. 일요일만 만나준다면 모두 거 기에 간다는 것입니다. 갈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은 뭐인가 이익을 본다면 쫓아가니까! 이 섭리사도 그와 같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이 있다. 가자.” 하니까 여러분들이 온 것입니다. 와서 이렇게 뭉쳐지고 이 밤중에도 이렇게 온 것입니다. 일일이 못 만나니까 말씀으로 만나 주고 떠나야 되지 않겠습니까. 영육 강건 즉 영혼 강건은 육적인 강건을 가져 온다는 지난 주일의 말씀을 우리가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오늘 구체적인 말씀을 다시 듣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도하겠습니다. <기 도> 거룩하고 은혜로우신 우리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은 지난주 말씀에 다시 토를 달 아서 수요말씀을 전했습니다. 신앙의 모든 병들이 고침을 받을 때 신앙생활이 건전케 되고 가정, 민족, 세계도 그러하다 고 했습니다. 종교가 부패되면 사회가 부패되고, 종교가 건전하게 되어 이상적인 세계로 나가게 되면 하 나님의 사랑을 받고 사회도 그와 같이 범사에 잘되고 형통된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지구촌의 모든 정치 문제는 종교문제가 그 운명을 좌우하고 있습니다. 북한과 같은 세 계는 역시 종교문제가 살지 못하기 때문에 육신의 세계가 우두머니 같은 짓들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 민족이 종교문제가 이만치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척 도의 법에 따라서 그만큼 자유로운 세계가 되었고, 그만큼 이상적인 세계가 되게 만들어 주 셨으니 우리 종교인들이 더욱 정신을 차리고 이상(理想)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한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가정에 종교인이 있으면, 그 종교인 하나가 시험을 이기고 어려움을 이기고 꿋꿋하게 열심히 나가게 되면 이상하니 그 가정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함께하시는 것을 우리가 느껴오지 않았습니까. 그 하나가 쓰러져 버리면 가정도 같이 쓰러지는 것을 봤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 선지자 하 나가 쓰러질 때는 종교가 쓰러지게 되었고, 종교가 쓰러질 때는 역시 민족도 로마 박해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을 생각할 때 그와 마찬가지임을 믿습니다. 지구촌에 세운 아담 하와가 범죄함으로 넘어짐으로 인해서 역사가 무너지게 되었고, 또 민 족사, 세계사적으로 흑암권에서 살아 왔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가정에 하나 세운 중심인물 하나가 얼마나 귀하고 가치 있는지를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모두 가정 세계의 기준을 세우고 믿음의 조건을 세우고 행동의 조건을 세워서, 흑암의 세계를 벗어버리고 어둠의 세계를 벗어버리고 심적인 건전과 강건함을 갖고 병폐 없는 세계를 가져야겠습니다. 우리에게 신앙의 어폐가 있으면 하나님이 볼 때에 꼽추로 보고, 폐병환자로 보고, 눈먼 자 로 보고, 팔다리 잘린 불구(不具)로 보고, 우두머니로 보고, 정신병자로 보고 또한 불치(不 治)의 병에 걸린 환자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신앙의 불치의 병이 걸렸는가 늘 자각(自覺)하며 수시로 보라고 했습 니다. 불구자를 누가 세계적인 인물로 길러 주겠습니까. 이왕이면 성한 사람이 되어야 되지 않겠 습니까. 누가 꼽추에게 투자하면서 도와주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한 사람이 되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건전한 사람이 되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미친 사람에게 돈을 투자하면서 출세시켜 주겠다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 이 있다면 병을 고치겠다고 투자할 수밖에 더 있습니까. 극심한 영적 고통의 세계를 벗어나 게 해주셨고 신앙의 병이 치료함을 받으라고 말씀했습니다. 세상의 문제가, 문제가 아니고 영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고 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독수리 같은 신앙의 기세를 가지고 독수리 같은 날개와 건강을 갖고서 하 늘을 날음이 합당하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면 모든 것이 잘되고 형통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세상에 병든 사람같이 불쌍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병들었을 때 역시 나사로와 같이 죽 어 버립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도 죽어버리지 않았습니까. 병을 해결하지 못해서 죽고야 말았습니다. 그것도 과부의 아들이 죽어 버렸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젊은이들이 죽으 면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하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한 가지씩 있는 병을 고치고 또 고침을 받게 축복해 주시옵소서. 병을 고쳐 야 축복해 준다고 했습니다. ‘네 병이 고침을 받았을 때 내가 너에게 재산을 주리라.’ 하는 부모의 말씀과 똑같습니다. ‘병은 안 고치고 왜 재산만 찾느냐?’ 하는 말씀과 똑같습니다. 우리에게 병 고침이 충만함을 받게 축복해 주시옵소서. 우리의 신앙의 병폐가 모두 고쳐진 후에 사회의 병폐를 지적함이 합당한 줄을 믿습니다. 자기도 병을 앓고 있으면서 사회의, 국가의 병들을 지적하고 있으니, 그 모든 꼴이 꼴불견 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너희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속의 티를 지적하고 있느냐?’ 했습니다. 그런 병들이 다 고침을 받고 이상화될 있는 축복 과 이상을 주시옵소서. 병이 무엇인지 우리 자신들이 꼭 알아야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 병을 고침을 받을 때에 우리의 심령이 모든 의의 날개를 펴고, 이상적인 휴거를 할 수 있고 이상적인 부활을 할 수 있고 이상적인 심판을 거침으로 이상적으로 깨끗함을 받아 이상적인 의의 날개를 펼 수 있 사오니, 그런 모든 병을 여지없이 고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 자신은 자신의 병을 잘 알 수 있사오니 그 병들을 고치심이 합당한 자들이 되게 축복 해 주시옵소서. 오늘 이 말씀을 오늘만 생각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1년 동안 이 말씀을 잊어버리면 잊어 버리는 만큼 생각 안 하면 안 한 만큼 병이 온다는 것입니다. 늘 이 말씀을 중심할 수 있게 해 주시고 늘 잊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말씀이 생명이니 목에 새기라.’ 했습니다. 그 새긴 말씀을 갖고 늘 살아야만 형통케 되리라고 말씀했사오니 역시 형통하게 해 주시옵소서. 옳은 자마 다 이 말씀에 신앙의 근본을 두고 있습니다. 모든 병이 고침을 받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인자와 사랑과 공의를 채우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감사하며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