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5.07.20 (월)
월 새벽말씀 1ffe3a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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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7.2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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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20일 새벽말씀(편집본)
지난주 말씀에 이어서 오늘은 요한복음 15장을 보겠습니다. 신약 174페이지입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
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
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
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
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
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그런 말씀으로 연속되는데 여기서 자르겠습니다.
나무를 들어서 사람을 교훈하셨고, 아담서부터 계시록까지 인간에 대해 여러 가지로 비유
를 많이 했지만, 그 중에 하나가 나무를 들어서 인간을 비유하셨습니다.
특히 나무는, 핵심적인 것은 생명나무와 선악나무로 비유한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가지
가지 나무로 비유했습니다.
아담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말씀을 어긴 원인 때문에 좋은 열매를 맺지 않고 가
지만 무성한 나무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난 주일말씀에, 길가에 심은 무화과나무가 잎만 무성해서 심판을 받은 것처럼 아담도 심
판을 받고 4,000년 동안 그 후손들이 심판받았다는 것을 더욱 실감 있게 본문 말씀을 통해
서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의 탕감 형벌이 끝나고 신약의 새로운 인물의 나무가 났으니, 그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메시아 나무>가 났습니다. 역시 생명나무라고 칭했습니다.
2000년 이후까지 그 생명나무에 붙지 않은 나무마다 전부다 열매를 맺을 수 없고, 가지만
무성할 수밖에 없고, 잎만 무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볼 때 그랬습니다.
일체 되지 못했을 때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또 하나의 나무의 비유를 든 것이, 가장 적절하게 비유를 들었는데, 신약권 속에서
많이 비유를 들었습니다. 그것이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입니다. 특히 유대인들을 포도나무
로 비유했습니다.
주와 함께 된 나무마다 산(生) 포도나무라고 칭했습니다. 그렇지 않은 종교인들은 돌 포도
나무라고 칭했고, 다른 말로 표현하면 원(原) 나무에 붙지 않은 가지가 돼서 그 나무가 마
르던지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가 됐다 했습니다. 죽은 나무 가지가 돼서, 하나님과 하나 되
지 않은 것을 곧 죽었다고 표현한 그대로 됐습니다. 죽은 신앙의 가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과 일체 되지 않았을 때 죽었다고 합니다. 더 다른 차원으로 얘기할 때 믿지 않은 사
람을 죽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일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튼 포도나무 비유를 들어서,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다. 구세주는 참 포도나무다. 그 시대 중심인물, 중심자는 참 포도나
무다. 하나가 되어야 된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하나 되지
않으면 이미 마른 가지라 불사른 바가 될 수밖에 없다. 말씀으로 불사른 바 가 됐다.”
우리가 말할 수 없이 많은 열매를 맺으려면 역시 하늘의 보낸 자나 세운 자와 일체 되어야
됩니다.
“그래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참 포도나무 같은 참 인간의 행실을 맺을 수 없고, 행할 수 없
다는 것입니다.
쉬운 예를 말하자면, 이런 <시대의 진리의 말씀>을 선생님이 나와서 얘기하지 않았을 때는
도대체 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프로그램이 다른 세계로 생활하고 살았습
니다. 하루도 섭리사적인 그런 생활을 못했습니다. <말씀>이 없었기 때문에!
<참 행실>을 하려면 <참 진리의 말씀>을 들어야 되는데, 참 진리의 말씀을 못 들으면 참
행할 수가 없기 때문에 죽은 가지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 가지를 들어서 말한 것같이, 역시 이런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 될 때 참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좋은 행실을 다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좋은 행
실을 할 수 없습니다. 선이 무엇인지, 악이 무엇인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어떤 것이 선이고 어떤 것이 악인 줄을 모르겠다." 하는 말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말씀을 배웠기 때문에 어떤 것이 선이고, 어떤 것이 악인 줄을 알 수 있습니
다.
말씀대로 안 하면 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근본된 말씀대로 못 하면 그것
이 악입니다.
아무튼 우리가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그리스도와 일체 되고 메시아와 일체 되어야 좋은
행실을 한다! 좋은 행실을 하면 좋은 결과가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열매란 좋은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서로 일체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심정 일체, 행동 일체! 그러면 무엇이든 구하라. 그러면 들어 주리라. 내가 네 안에 거하고
너희가 내 안에 거한다면 심정 일체 된 사람인데, 어떻게 네가 구한 것이 네 것이 되면 네
것이 내 것인데 어찌 안 들어 주겠느냐."
결혼하기 전에는 역시 어떤 남자가 여자에게 뭘 해 주는 것이 많은 것에 있어서 구분 됩니
다. 그러나 완전한 완벽한 애인이라면 전혀 그런 것에 차이를 두지 않을 것입니다. 왜? 애
인 것이 내 것이 되고, 내 것이 애인 것이 되기 때문에 그러할 것입니다.
신은 좋은 열매를 맺지 않았을 때 4,000년 400년 40년 4년 혹은 10년씩 형벌을 받게
한 후에야 다음 세계로 다시금 뛸 수 있는 기간을 줘서 뛰게 만들고 그럽니다.
하늘 앞에 꼴을, 속을 잘못 보여 한 번 찍히면 무엇을 구할 면목이 없는 것입니다. 뭘 해달
라고 할 면목이 없습니다. 철판을 깔아도 안 됩니다. 사람에게는 철판을 깔고 할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는 철판도 안 깔아집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속을 보이지 말고 해야 됩니다.
그래서 잠언의 말씀 가운데 "이왕에 하고 어차피 할 것, 왜 속 보이고 하려고 하느냐." 했습
니다. 어차피 할 것 왜 속 보이고 하냐 그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행실의 열매를 스스로 점검했을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행실과, 자신에 대한 생
각과 사고가, 자기 마음 밭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 상대의 밭에 부딪혀 보니까 슬슬 갈아보
니까.
밭을 간다는 것은 그 사람과 대화하고 여러 가지를 하는 것이 밭을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데 돌에 부딪히고, 바위에 부딪히고, 나무뿌리가 나오고 이런 것을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
다. 툭툭 받히는 소리가 나고.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의 가장 고상하고 위대한 신혼골수를 쪼개는 말씀을 갖고 세상
에 있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투시를 할 수 있습니다.
자기 행실의 열매가 잘 돌아가고 있는지 날마다 점검해야 됩니다. 교정 하지 않으면 안 됩
니다.
여러분이 편지를 써 놓고, 책을 써 놓고 교정을 또 하고 또 봐야 됩니다. 전문적인 교정이
10번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책을 써 놓고. 그래도 오자(誤字)가 또 생깁니다. 오자가 생긴
것은 그 책이 나왔을 때 오려 내고 싶습니다. 다시 찍어낼 수도 없습니다
옥(玉)에 티가 없다고 하는데, 티 없는 사람을 옥에 비유해서 티 없는 옥과 같다고 합니다.
티를 날마다 빼야 됩니다. 행실의 티!
여러분들의 얼굴에 티들이 배겨 있으면 좋겠습니까? 꺼먹 사마귀가 계속 나 있으면 좋겠습
니까? 빼내 없애야지요. 행실을 고치지 않는 사람은 그와 같다 했습니다.
이런 말씀으로 오늘 말씀을 줬습니다. 많은 성서의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좋은 열매를 맺
지 못하는 나무마다 전부 찍어서 불에 던지는 역사가 나와 있습니다.
아벨 편과 가인 편의 역사 싸움의 결말을 보십시오.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종교나 교단들, 가만히 보세요. 좋은 열매를 맺나.
좋은 행실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받아 놓은 밥상으로, 우리가 볼 때는 받아 놓은 밥상이
아니겠습니까. 아주 너무너무 불행스러운 일들을 생각할 때 남의 일 같지 않고 정말 섬뜩하
기만 합니다.
오늘 하늘과 더불어 일체 돼서 많은 열매를 맺는 자들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일체 되지 않았을 때 말할 수 없는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고, 가인처럼 혹은 가룟 유다처
럼, 세례 요한처럼, 사울처럼 그런 모든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 행위들, 결국 심판을 받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좋은 열매를 항상 맺게끔 날마다 보는 데서나, 안 보는 데서나 열심히 하도록!
내가 보는 데서는 열심히 하고, 안 보면 열심히 안 하는데 나는 사람이기 때문에 볼 때가
있고 안 볼 때가 있지만 하나님은 볼 때 안 볼 때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밥 먹는 시간에 못 보고, 화장실 가는 시간에 못 보겠습니까. 그런 시간이 있겠어
요? 항상 우리를 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완벽하게 아시는고 하니, 자기의 눈에 티가 들어갔을 때 알듯이 그만큼 지구촌
의 저기 어느 한 나라의 산골짜기에 사는 사람의 그 모든 것까지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자
기 몸같이 온 만민을 그렇게 해 놨습니다.
손에 가시가 들어갔는데 모르겠습니까. 바로 알지. 여러분, 손에 가시가 박혔는데 모르는 사
람이 있습니까? 그 순간에 정신이 약간 헷가닥 했다면 모르지 왜 모르겠습니까. 그와 같이
모든 것을 해 놓고서 하나님께서 아신다고 했습니다.
누가 모가지를 잡았는데 자기 모가지 잡은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와 같이 하나님
은 모든 것을 자기 지체와 같이, 지체에 이상이 있는 것을 아는 것처럼 아십니다.
저 같은 입장도 누가 어디 아프면 바로 내 몸이, 머리가 아파요. 그러면 ‘아 머리가 아프다.’
하는 것을 바로 압니다. 그러면 틀림이 없습니다. 무릎이 쑤시면 "무릎이 쑤시죠?" 하고 물
어보면 틀림없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자기를 통해서, 자기 자신의 이상여부를 보고 상대를 아신
다고 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기 도 >
거룩하시고 은혜로우신 우리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 수요 제단을 말씀으로 채웠
습니다. 이제 모두 들었으니, 돌아갈 시간이 되었으니 가서 말씀을 실천하는 자들이 되게
해 주시고, 날마다 의로 채우심이 크시옵소서.
오늘 이 주일의 말씀처럼 날마다 일평생동안 이 말씀의 핵심을 적어놓고 늘 교훈 삼고 알고
깨닫고 살아야 되겠습니다.
모든 힘들고 어려운 속에서 환난을 받는 가정들, 개인들을 기억하심이 크시고, 잔잔하고 고
요하라!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능력과 권능으로 행하시는 일들임을 깨닫게 해 주시옵소서.
이제 돌아갈 시간이 되었으니 모두 일찍 왔다 일찍 돌아가는 예배가 되도록 하라고 했사오
니 그리하도록 했사오니 은총을 더해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