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15.07.22 (수)
150722 수요말씀
- 선포일
- 2015.07.2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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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22일 수요말씀은 <계시 한 편>과 <잠언 말씀>으로 진행됩니다.
이번에 전할 계시는 선생님께서 ‘전체 설교’로 하라고 말씀하셔서
즉시 생방송이 가능한 ‘주님의교회’에서 진행됩니다.
◉ 먼저 각 교회는 찬양으로 수요예배를 준비합니다.
◉ 저녁 8시가 되면, 생방송을 시작합니다.
주님의교회에서 사회자가 나와서 잠시 전초해 주고,
계시자가 나와서 계시를 전하며 전체 설교를 합니다.
◉ 다시 주님의교회에서 사회자가 나와서 짧은 마무리를 해 주고,
생방송을 마칩니다.
◉ 이어서 각 교회 교역자 및 설교자가 각 교회 단상에 서서
<잠언에 대한 전초>를 짧게 해 주고, <잠언>을 전해 줍니다.
<잠언>도 설교처럼 은혜롭게 심정적으로, 강약을 조절하면서
띄워서 읽기를 잘하면서 시선 처리, 발음에 신경 쓰면서 전합니다.
◉ 말씀을 마치면, 수요예배를 은혜롭게 마치도록 이끌어 줍니다.
<2015년 7월 22일 수요말씀>
<말씀 시작>
사람이 ‘필요성’을 못 느끼면, 하려고 하지 않는다.
얼마나 ‘필요성’을 알고 깨닫느냐에 따라서 하게 된다.
<새벽기도>도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깨달아야 하려 하고,
<휴거>도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깨달아야 되려고 한다.
<휴거>는 ‘영원한 죽음과 고통’,
혹은 ‘영원한 생명과 기쁨’을 좌우한다.
<휴거되지 못한 자>는 수백만 가지를 ‘실패’한 것이다.
<휴거된 자>는 수백만 가지를 ‘성공’한 것이다.
<휴거된 자>는 ‘생명을 구원한 자’다.
<자기 육의 생명>이 죽지 않으면,
자기의 ‘살아 있는 몸’을 가지고 일생 가운데 수만 가지 일을 한다.
고로 <자기 육의 생명을 죽지 않게 구원한 자>는
수만 가지 성공을 한 것과 같다.
그러나 <자기 육의 생명을 구원하지 못한 자>는
자기 ‘육’이 죽었으니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된다.
고로 수만 가지를 실패한 것이다.
<휴거>는 ‘육’을 구하고 ‘영’을 구한 것이다.
고로 ‘육신 일생 동안’ 살고, ‘영은 영원히’ 살게 된다.
고로 수백만 가지를 성공한 것이다.
<휴거된 자>는 다 성공한 자다.
<휴거>는 ‘인생의 핵 성공’이다.
인생이 다 성공해도 ‘핵’을 성공하지 못하면,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인생 최고의 핵 성공>은 ‘육 구원, 영 구원’이고,
<최고의 핵 구원>은 ‘휴거’다.
<창조 이후 최고의 구원>은 ‘휴거 구원’이다.
시장에 각종 물건들이 많고 많다.
그 많은 물건들 중에서
‘자기가 최고로 필요했던 물건을 사는 것’이 <구원>과 같다.
‘시장 전체를 사는 것’이 <휴거>와 같다.
<구시대 구원>은 ‘구시대 차원의 구원’이다.
<휴거>는 ‘하나님이 최고로 원하시는 일’로서
‘더 이상 없는 하나님의 천지 창조 목적을 이루는 일’이다.
어떤 남자에게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 남자의 최고의 소원은
‘그 여자를 자기 사랑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첫 단계로 그 여자를 ‘자기 회사의 직원’으로 썼다.
이 단계가 <구약 종급 구원>이다.
그다음에 여자를 사귀어 겨우 ‘자기 형제’같이 대했다.
이 단계가 <신약 자녀급 구원>이다.
그다음에는 ‘최고로 원하던 소원’을 이룰 단계였다.
곧 ‘사랑의 대상으로 만들어 같이 사는 단계’다.
고로 여자를 더 사귀고 키워서 ‘자기 사랑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 단계가 <성약 신부급 구원>이다.
그리고 거기서 더 키우고 만들어서 결혼하여 같이 살게 되었다.
이 단계가 <휴거>다.
하나님은 인생들을 향해서 이와 같은 단계로 역사를 펴 오셨다.
지금은 <휴거 기간>이다.
곧 <사랑의 대상, 신부>로 만들고 뽑는 기간이다.
<잠시 쉬었다가>
<사람>은 ‘자기 최고의 뜻’을 이뤄야
더 이상 없이 최고로 기뻐하고 만족한다.
<하나님>도 ‘자기 최고의 뜻’을 이뤄야
그제야 최고로 기뻐하고 만족하신다.
<삼위일체가 최고로 원하시는 뜻>이 있다.
곧 인생들이 ‘삼위의 사랑의 대상이 되어 주는 것’이다.
이럴 때 성삼위는 최고로 기뻐하신다. 그것이 곧 ‘휴거’다.
<휴거의 때>가 와서
인생들이 <휴거의 말씀>을 듣고 행하여 <휴거>될 때,
성삼위는 그리도 기뻐하신다.
<삼위의 사랑의 대상>이 되어 주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그 사람의 <육신>을 ‘자신의 몸’으로 삼고 쓰신다.
그리고 그 <영>은 ‘하늘나라 형체’로 변화되어
삼위일체의 ‘사랑의 대상’이 되어
<천국 황금성>에서 영원히 ‘신부’로서 살게 된다.
하나님은 ‘이것’을 목적하고,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셨다.
인간은 모르니,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잠깐 ‘육의 사랑’을 즐기다가 결국
- 그 <육신>도 ‘창조자의 사랑이 없는 삶’을 살다가 끝나고,
- 그 <영혼>도 ‘삼위의 사랑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고통의 영’으로 형성되어 영원한 사망으로 가게 된다.
창조자 ‘하나님, 성령님, 성자의 사랑의 대상’이 되지 못하면,
<자기 인생 최고의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인생 최고의 뜻>은 ‘사랑’이다.
큰 자이든, 작은 자이든 어느 누구라도
사람은 사랑받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면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이 위대한 사랑’을 창조자와 일체 되어 이루지 못하면,
<사랑>도 실패한 것이고 <인생>도 실패한 것이다.
‘사랑’, 그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땅에서 ‘구원자’를 만나 ‘그 말씀’을 듣고,
‘삼위일체’를 알고 ‘삼위일체의 뜻’을 알고,
‘하나님이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을 알고,
‘그 말씀’대로 행하여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었으면,
→ 그것이 ‘하나님의 소원을 다 이루어 준 것’이다.
이렇게 살지 못하여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깨뜨리면,
→ 그것이‘하나님의 소원과 목적을 다 깨뜨린 것’이다.
<큰 목적>을 이루었으면, <다른 작은 목적들>도 다 이룬 것이다.
<휴거된 자>는 ‘만 가지를 성공한 자’다.
<하나님, 성령님, 성자의 최고 목적, 최고 소원>을 이뤄 준 자가
‘지구 역사상 최고로 큰 자’다.
한 개인이 있는데, <그 사람이 원하는 최고의 목적>을 이뤄 준 자가
그의 일생에 있어서 ‘최고로 큰일을 해 준 자’라고 할 것이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도 <창조 목적을 이루어 휴거시킨 자>를
‘창조 이후 최고로 큰일을 해 준 자’로 보신다.
<최고 목적을 이뤄 준 자>가 ‘최고의 위치’에 간다.
<하나님의 최고의 목적인 창조 목적을 이뤄 준 자>가
천국 최고의 위치인 ‘황금성’에 가고,
삼위 앞에 최고의 위치인 ‘사랑의 신부 위치’에 간다.
<잠시 쉬었다가>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인간을 사랑의 대상>으로 만들어 ‘최고의 소원’을 이루도록
단계별로 구원역사를 펴 오셨다.
곧 구약 소생기 역사 – 신약 장성기 역사 – 성약 완성기 역사다.
<구약> 때는 믿는 자들을 ‘종’같이 대하며
4000년 동안 역사를 펴 오셨다.
<신약> 때는 ‘구원자 예수님의 몸’을 쓰고
사랑의 목적을 두고 믿는 자들을 ‘자녀’같이 대해 주고 사랑하며
2000년 동안 역사를 펴며 구원해 오셨다.
그러나 신약 때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소원’을
완전히 이루지 못했다.
다만, 예수님의 몸을 통해 인생들을 삼위일체 앞으로 바짝 당기며
‘자녀’같이 대해 주며 역사를 펴셨다.
아직 ‘최고의 소원, 최고의 목적’이 남아 있었다.
곧 인생들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향해 사랑의 눈을 떠서
삼위일체를 사랑하는 단계다.
고로 이 세상에서 자녀급 주관권에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 중에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최고로 사랑하여
삼위 앞에 인정받은 자 ‘한 사람’을 뽑아서
그를 ‘삼위의 사랑의 대상’으로 삼고,
그를 시대에 세워 그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의 뜻’을 이루며
<삼위의 마지막 소원, 최고의 소원을 성취하는 역사>를 펴신다.
곧 <성약 신부급 1000년 역사>이며,
그가 살아 있는 당세에 이루는 <휴거 역사>다.
<휴거 역사>는 ‘사랑의 역사’다.
곧 사랑하여 ‘같이 살려고 데려가는 역사’다.
<육>은 ‘삼위의 사랑의 대상, 신부’로서
육이 살아 있는 동안 <땅>에서 ‘구원자’와 함께 혼인 잔치 하고,
<영>은 ‘삼위의 사랑의 대상’이 되어
<천국 황금성>에서 ‘삼위와 영원히 같이 사는 역사’다.
<휴거된 영들>, 곧 <삼위의 사랑의 대상이 된 영들>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매일 ‘사랑의 대상’으로 사랑해 주며 쓰신다.
그 <육신들>도 매일 ‘사랑의 대상’으로 사랑하며 쓰신다.
그러나 <자녀급 구원을 받은 자들>은 달리 대하신다.
마치 한 가정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자기 사랑의 대상’으로 삼고 사랑하고
<자녀들>은 ‘자녀’로서 사랑하는 것같이
<자녀급 구원을 받은 자들>은
그 육도 영도 ‘자녀급 주관권’에서 살게 하시고,
매일 ‘자녀’로서만 사랑하며 쓰신다.
한 가정에 한 남자가 있다.
<그 남자의 사랑의 대상>은
‘자기가 사랑해서 데려온 여자 한 명뿐’이다.
오직 그 여자 한 명만, 오직 그 남자의 사랑의 대상이 되어서 산다.
<나머지>는 ‘형제들’로서,
사랑하더라도 ‘형제 사랑’을 하면서 산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도 그러하시다.
하늘나라 전체, 이 세상 전체를 두고
<사랑의 대상>으로 삼고 사랑하며 같이 살 자들은
오직 ‘사랑의 대상, 신부로 휴거된 자들 뿐’이다.
나머지는 구원받았더라도 ‘자녀’같이 대하신다.
<휴거된 육과 영>은
항상 ‘삼위일체의 사랑의 대상’이 되어
‘사랑의 대상’으로만 쓰인다.
무엇을 하든지 ‘삼위의 사랑의 대상’으로만 쓰인다.
<휴거된 육과 영>도
삼위일체를 오직 ‘사랑의 대상’으로 대하고 산다.
이것이 삼위일체가 최고로 원하시는 일이며,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다.
<자녀급 구원을 받는 자들>은
삼위일체가 ‘자녀 취급’만 하는 것이 아니고,
마치 한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와 같이 살듯이
실제로 항상 ‘자녀’로 대해 주고 사랑해 주고 쓰신다.
<신부로 구원받고 휴거된 자들>은
삼위일체가 ‘신부 취급’만 하는 것이 아니고,
마치 한 가정에서 부부가 사랑하며 같이 살듯이
실제로 항상 ‘사랑의 대상’으로 사랑해 주며 같이 살아 주신다.
<삼위일체가 ‘사랑하는 자 취급’만 해 주는 자들>은
‘신약 자녀급 구원을 받은 자들’이다.
<삼위일체의 사랑의 대상이 되어 삼위와 사랑하면서 사는 자들>은
‘성약 신부급 구원을 받고 휴거된 자들’이다.
땅도 사 놓고 ‘자기 땅으로 취급만 하는 땅’이 있고,
그중에서 ‘자기 집을 짓고 사는 땅’이 있다.
<자기 땅으로 취급>만 하는 땅은, ‘하나의 정원’에 속한다.
이와 같이 <휴거된 신부>라도
각자 사랑의 행위대로 ‘신부 취급만 받는 자’가 있고,
매일 삼위를 사랑하며 사는 진정한 삼위의 사랑의 대상체로서
실제로 ‘삼위와 같이 사는 자’가 있다.
<휴거된 신부>라도
매일 잊지 않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주를 사랑하며
매일 떨어지지 않고 삼위와 주와 일체 되어 사는 자가
<하나님의 창조 목적, 최고의 소원>을 이뤄 준 것이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극치의 목적은 ‘사랑’이다.
곧 ‘사랑의 대상을 만들어 같이 사는 것’이다.
인간의 극치의 목적도 ‘사랑’이다.
곧 ‘창조자의 사랑의 대상이 되어 창조자와 같이 사는 것’이다.
극과 극이 하나 되는 것이 ‘사랑하며 사는 휴거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