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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2015.08.01 (토)

토 계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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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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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_0801 토 계시말씀.hwp1 2015년 08월 계시말씀 ♥ 08월 01일 토요일 ♥ 생명 관리법 작성일 : 2015. 6. 14. AM 4:00 작성자 : 정솔아 ( 생명을 관리할 때 생명에게 맞춰 주려고 노력을 하는데, 생명이 말도 안 되게 할 때도 계속 맞춰 주려 하다 보니 “어디까지 맞춰 줘야 되지?”라는 생각이 들며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말씀을 받는 날 1시 새벽기도를 했지만, 선생님을 만나지 못해서 다시 3시부터 기도를 할 때 주신 말씀입니다. ) * 선생님의 말씀 * 맞춰 주는 것과 끌려가는 것은 다르다. 선을 지키지 않으면 그 생명에게 휘둘린다. 그럼 온전히 관리가 안 되고 자칫 생명이 나쁜 버릇이 들 수 있다. 애인처럼 잘해 주는 것은 맞지만 무조건 맞춰 주는 것이 최고 관리가 아니다. 선을 지켜 해 주는 것이다. 말씀에 따라 빗대어 보고 그 때마다 내게 깊게 물어 그 선을 깨달아라. 생명마다 관리법이 다 다르다 기본적인 것은 같지. 하지만 사람의 개성이 다 다른데 다 똑같이 대하면 실수한다. 상대의 성향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 그 생명의 성향에 맞게 그 생명이 신앙을 재밌게 잘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기다. 나와 함께 영, 혼, 육으로 생명들을 이끌기다. 생명이 너의 말을 다 잘 들을 수 없다. 너도 나의 말씀, 나의 감동을 100퍼센트 지키지 못할 때가 많은데 너보다 육으로 더 어리고 너보다 영적으로 더 어린 생명이 어떻게 지도자의 말을 다 들을 수 있겠느냐. “왜 그렇게 하지 못하지?”라는 생각을 가질수록 관리하는 생명이 100% 너의 말을 듣지 못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수록, 그 생명이 아직 영육으로 어리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수록 오히려 네가 힘들다. 한없이 낮아져라. 생명을 관리할 땐 한없이 낮아지는 것이다. 한없이 낮아지고, 한없이 이해하며, 한없이 용서해 주고, 한없이 사랑해 주며, 한없이 십자가를 져 주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 또 그 생명이 네게 그런 것보다 몇 배나 너는 하늘 앞에 주 앞에 속 썩이지 않았느냐. 삶 속에 크고 작게 그리하지 않았느냐. ‘아이를 낳기 전까지 부모 심정을 모른다.’ 하였듯이 자기가 생명을 관리하기 전까지는 나의 입장에 처해 보기 전까지 나의 입장을 모르는 것이다. 네가 나의 심정을 받고 싶다 기도하지 않았느냐. 네가 빨리 크고 싶다 하지 않았느냐. 네가 나의 육이 되어 주고 싶다 그리 기도하지 않았느냐. 어떻게 과정 없이 결과가 있으며 어떻게 연단 없이 성장이 있겠느냐. 어떻게 불순물을 걸러 냄이 없이 순금이 탄생할 수 있겠느냐. 너의 기도의 응답인 것이고 네가 성장하고 있는 증거이고 나의 심정받고 있음이고 축복을 받기 위해 그릇을 준비함이고 뛰어오르기 위해 준비하는 단계이고 휴거 차원을 높이고 있는 증거이다. 그러니 나만 보고 가자. 그 생명만 보고서는 절대 관리할 수 없어. 계속 나를 보며 관리해야 되고 계속 나와 함께 관리해야 된다. 그래야지 안 지치고 끝까지 생명 관리할 수 있고 그래야지 생명 관리할 수 있는 힘이 오며 그래야지 인성이 아닌 신성으로 나의 뜻대로 관리하며 그래야지 생명을 크게 키우며 그래야지 생명 관리하며 너 또한 크게 클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생명을 잘 관리하려면 관리하는 지도자들끼리 절대 하나 되고 겹줄 관리하여라. 생명의 비밀 사연은 꼭 알아야 될 자만 알고 철저히 지켜 주기다. 생명의 비밀을 함부로 남발할수록 큰 죄가 됨을 명심하여라. 꼭 알아야 될 자가 아니고서 함부로 생명의 비밀이 남발되고 누설되는 건 내가 원하는 뜻이 아니니라. 지도자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 또한 분별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 분별하기 위해 기도해야 된다. 관리자가 생명을 책임질 수 없다. 그런데 부서장, 목회자, 선생에게 보고해 해결해 주고 치료해 주어야 될 것을 비밀을 지켜 준다 하며 자기만 알다가 그 생명이 더 사탄에게 잡혀서 질질 끌려 다니다 사망으로 떨어진다. 그러니 생명을 관리할 때 주와 주의 몸이 된 자와 하나 되는 것이 정말 중하고 중하다. 기도해야 힘이 빠지지 않고 기도해야 나의 뜻대로 관리하며 기도해야 사탄이 틈타지 않는다. 기도하지 않을수록 육적 관리에 쏠리게 되고 기도하지 않을수록 나의 뜻과 반대로 생명을 관리하게 되니 기도하지 않고 나를 모시지 않고 나를 부르지 않고 면담하고 관리하니 생명이 실족하고 생명이 상처받아 오히려 면담과 관리 후 더 상태가 안 좋아지며 영적으로 피를 철철 흘리다 사망길로 되돌아간다. 절대 나와 일체 되어라. 절대 나를 모심으로 관리하여라. 나를 모시지 않고 관리하는 자 오히려 생명을 죽임으로 관리하지 않는 것이 좋을 법하였노라. 그렇다고 “난 안 할 거야.” 하지 말고 나를 부르고 찾고 모심으로 나의 육이 되어 주길 바란다. 나의 심정을 받다 안 받다 하면 안 된다. 나와 일체 되었다 안 되었다 하면 안 된다. 나와 생각이 같았다 같지 않았다 하면 안 된다. 사람이 숨을 쉬었다 말았다 하면 안 되듯이 그렇게 나와 붙었다 떨어졌다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정확히 알겠느냐. 자꾸 연습하는 것이다. 자꾸 훈련하는 것이다. 사람이 한 번에 어떤 것에 능통해질 수 없다. 반복할수록 노력할수록 그 부분에 능통해지고 달인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자꾸 나와 일체 되려 노력하다 보면 한 번에는 잘 안되지만 자꾸 늘게 되고 그러면서 변화되는 것이다. 알겠지. 나와 같이 하면 불가능도 무서움도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나와 같이 자꾸 하자. 나와 같이 생명 관리하자. 나의 몸이 되어 줘. 내가 너에게 사랑을 준 것처럼 그 생명에게 그와 같은 사랑을 다오. 나의 사랑에 보답하는 건 큰 것이 아니라 생명에게 잘해 주는 것이다. 나의 몸이 되어 생명을 관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나의 사랑에 보답하는 것이고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자가 원하는 것을 행하는 것이다. 사랑할수록 그가 원하는 것을 행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이곳에 왜 있느냐. 한평생 내가 무엇을 하였느냐.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2015_0801 토 계시말씀.hwp2 너희의 수고를 안다. 관리하며 생명이 말을 안 들어 너무 답답하지? 때론 포기하고 싶기도 하지. 너무 속상해 혼자 운 날도 많은 거 알아. 내가 다 안다. 나도 그랬어. 섭리역사를 37년 동안 펴 오면서 섭리 사람들을 성삼위의 육이 되어 관리하며 많은 환난풍파 닥치면서 끝없이 관리, 사랑, 희생하며 신부를 세우면서 또 지구와 섭리 전체 생명의 죄까지 나의 죄라 하며 대신 조건을 세우면서 끝없이 사랑으로 키운 자가 성삼위와 나를 배신하며 섭리를 등질 때... 내 마음이 어떠하였겠느냐... 하지만 나도 하잖아. 그러니 우리 같이 하자. 조금만 더 해 보자. 나를 위해 수고해 주니 정말 고마워. 사람은 몰라도 아무도 너희의 수고, 희생, 노력을 모르는 것 같아도 나는 아니 나를 보고 시작했듯이 나를 보고 끝까지 하자. 내가 너희와 늘 함께하리라. 진정 사랑한다. 늘 너희에게 고맙고 늘 너희를 사랑하는 선생이니라. 안녕. ♥ 08월 01일 토요일 ♥ 주를 위해 행하고자 한다면 모든 것을 성령님과 함께 해 나가야 한다 작성일 : 2015. 5. 29. AM 1:00 작성자 : 주달해 ( 며칠 전, 성령님과 대화 중에 성령님께서 “나 성령은 오직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기를 갈망한다.”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저의 뇌리에 꽂혔습니다. 새벽에 성령님의 그 말씀을 생각하며, 저도 오직 주의 소원을 이루기를 원한다고 기도했습니다. 주님을 부르며 오직 주의 뜻이 삼위의 뜻이니 그 뜻을 이루어 드리길 원한다고 고백할 때, 그러려면 정말 성령님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그래서 성령님과 함께 살기를 원한다고 기도했는데, 그때 성령님께서 오셔서 물으셨습니다. ) * 성령님의 말씀 * 네가 나와 같이 살려면 정말 많은 것들을 새롭게 해야 할 텐데, 이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네가 나와 함께하기를 원하느냐? 네가 나와 함께 살겠느냐? ( 아멘, 성령님! 제가 원하니 성령님과 함께 사는 삶에 도전하겠습니다. ) 이제는 도전에서 끝나면 안 되는 때다. 이제는 진정 도전했으면 역사를 이뤄 내야만 하는 때다. 실전이고 실제다. 그러한 때가 왔다. 선생이 나오기까지 2-3년이다. 이 시간 동안 나와 함께 시대를 뒤집을 자가 필요하다. 곧 나의 마음과 같을 자가 필요하다. 내게 몸을 내어 주고 나의 일을 할 자가 필요한 것이다. 신약 때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 그 이후의 때를 위하여 나 성령이 역사했다면, 이제는 완전히 다른 때다. 시대 사명자가 시대와 온 인류 앞에 조건을 세웠고 그의 육이 살아 있는 이때, 나 성령은 다른 차원으로 역사한다. 나사렛 예수 때는 그를 영광의 주로 맞을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인류 구원의 십자가를 지고 그의 육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고로 그는 따르는 소수 앞에는 영광의 주였지만, 시대 앞에는 고난의 주로서 그 육의 인생을 끝마쳤다. 예수의 십자가는 온 인류 앞에 새로운 시대급 구원의 문을 열었지만, 그 조건 이후 따르는 자들이 예수의 육을 이 지상에서 맞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다르다. 선생이 온 인류를 위한 마지막 조건을 세웠다. 인류를 향한 뜻을 완성하였다. 이는 곧, 선생이 온 인류 앞에 구원의 몸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믿고 시인하는 자마다 신부급의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함이다. 그러나 이 시대는 무엇이 다르냐. 다른 것이 많고도 많지만 핵심은 시대 구원자의 조건 이후로도 그의 육신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고로 이때는 너희가 준비할 것도 다르고, 행할 것도 다르며 생각할 것도 다르다. 너희는 그를 맞기 위한 때를 지내야 한다. 나 성령과 함께 시대 구원자의 첩경을 예비해야 한다. 신약 때와는 다르다. 고로 신약의 때를 생각지 마라. 시대 구원자도 다르고 시대 구원자가 시대 앞에 지불한 조건도 다르고 그 조건에 따른 대가도 다르다. 너희가 받을 것은 신약 사도들의 성령이 아니라 나 성령 자체이니라. 너희는 성령을 받지 말고, 나 성령 자체를 너희 인생에 모시고 살아야 할지니라. 마음 그릇에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니라 육신 삶의 그릇에 나 성령 자체를 받아야 할지니라. 내가 네 생각이 되고 주체가 되어 행하게 하라. 이것이 나와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사는 것이다. 성령을 받는 것과 아예 나 성령과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사는 것은 마치 구원과 휴거처럼 차이가 있다. 성령 받은 자의 행함과 성령을 모시고 사는 자의 행함 차원 역시 구원과 휴거급의 차이다. 이는 미완성과 완성의 차이다. 너희에게는 한때가 남아 있다. 지금은 그 남은 한때를 위해 목숨 걸고 행해야 하는 때다. 그를 진정으로 맞는 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나 성령이 역사하고, 주가 와서 너희와 함께할 때는 신약의 영광과는 비할 수 없는 영광의 때가 올 것이다. 그 때를 위해 행할 자들이 바로 너희다. 너희가 행해야 너희가 맞는다. 행한 자가 주인이 되어 역사를 맞는 것이다. 성령을 받는 것은 어렵다. 나 성령 자체를 인생에 받아 나와 함께 살아가는 것은 그보다 더 어렵다. 너희도 나와 함께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렵겠지만, 나도 너희와 함께 사는 것이 쉽지 않다. 힘든 것이다. 그러나 하면 할 수 있다. 서로 원하면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너희가 진정 바라고 원하여라. 그리해야 그 간절함이 힘이 되어 너희를 행하게 한다. 나 성령도 하나님의 뜻과 소원과 역사를 이루기 위해 너희와 함께 살기를 원하노라. 너희가 나 성령의 차원에 맞춰 나와 함께 살기 어렵고 힘이 든다고 해서 나 성령이 너희의 차원으로 내려가겠느냐. 편히 통하고 편히 같이 살려면 그것이 좋지. 그러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는 절대 안 된다. 너희가 내 차원으로 올라오고 내게 맞춰야만 성약에 합당한 역사가 일어난다. 우리 같은 뜻을 바라보니 같이 행하자. 나 성령과 함께 행하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다. 곧 시대 앞에 주를 증거하는 역사이며, 주를 깨닫게 하는 역사이며, 주를 받아들이게 하는 역사다. 2015_0801 토 계시말씀.hwp3 그와 같은 역사가 일어나야만 섭리세계가 이 시대를 잡고 간다. 시대를 잡아야 시대 앞에 시대의 구원자를 영광으로 모실 수 있는 것이다. 정신을 잡는 자가 세계를 잡는다. 나 성령을 잡는 자가 시대를 잡아 나간다. 이때의 핵심은 ‘나 성령과 함께’다. 지금 이때는 시대 사명자의 육이 살아 있는 고로 모든 것이 그를 중심해서 돌아간다. 그러므로 주를 위해 행하고자 한다면 증거의 신이며, 감동 감화의 신이며, 하나님 사랑의 대상체 사랑의 신인 나 성령과 모든 것을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다. 증거는 나 성령이 그 때마다 합당하게 해 나간다. 고로 주를 위한 모든 것들은 나 성령과 함께다. 이를 명심해라. 시대 구원자가 살아 있는 이때, 모두 나와 함께 행함으로 새로운 역사를 쓰자. 너희 앞에도 시대 앞에도 영광으로 그를 맞이하자. 그와 같은 역사 이루기를 축복한다. 네게 말씀한 자, 나 성령이다. ♥ 08월 01일 토요일 ♥ 영의 구조의 비밀 작성일 : 2015. 5. 16. AM 1:44 작성자 : 주금빛 ( 월명동에서 철야를 했는데 새벽부터 성령님께서는 저에게 때가 착착 맞게 행해 주셨습니다. 성령님께 “성령님~ 오늘 영의 구조를 확실하고 세세하게 알고 싶고 보고 싶습니다. 이 계시는 정말 중요한 계시인데 제가 의사가 되어 배울 테니 선생님의 조건으로 보여 주세요. 세세하고 깊게 말씀해 주세요.”간절히 기도하던 중 성령님께서 빛을 찬란하게 뿜으시며 저에게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 *성령님의 말씀* 그래. 사랑아. 오늘 내가 영의 구조를 세세하게 알려 줄게. 나와 같이 가자. 육은 성삼위와 같은 구조로 창조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렇듯 영의 구조는 육의 구조와 같다. ( “성령님~ 영의 피부는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습니다. 전에 한 번 만져 보았었는데 어떤 느낌인지 확실히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때 제 앞에 지나가던 영의 손을 만져 보았습니다. 만져 보는 순간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었습니다. 아기 살보다 더 부드러웠습니다. 너무나도 투명했고 기름을 통째로 발라 놓은 것같이 윤기가 자르르 흐르며 눈이 부셨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깜짝 놀랐습니다. “와! 성령님. 제가 전에 만져 보았던 느낌보다 오늘 만져 본 느낌이 더 실감나고 확실히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 그렇지? 오늘 내가 최고의 비밀인 영의 구조가 세세하게 담겨 있는 성에 데려다 줄게. 영계 구조 성이다. 성 안에 들어가니 정말 실제 영의 형태를 실물같이 만든 형체가 판 위에 누워 있었습니다. 투명하기도 했다가 진짜 살아 있는 것처럼 형태가 손에 잡히기도 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영의 구조는 육과 똑같다. 하지만 구조만 그렇지. 속은 그렇지 않다. 천국에서는 배설과 먼지 등이 존재하지가 않으므로 오물은 없다. 코는 있지만 코딱지는 없다. 눈곱도 없다. 귓밥도 없다. 배설하는 구멍도 있다. 하지만 육과 같지 않다. 육의 음식은 먹으면 분해돼서 몸 밖으로 나오지만 영은 영의 음식이니 먹으면 포만감을 느끼고, 씹으면 맛도 느끼고, 씹는 느낌도 있으며 행복감을 느끼지만 배설은 안 한다. 먹는 즉시 분해가 되어 없어지기 때문이다. 배설 구멍은 왜 있을까? 성삼위는 완전한 존재체이다. 배설하는 구멍 하나라도 빠진다면 구조의 완전함이 흐트러진다. 배설 구멍이 있어야지 구조가 아름답게 보인다. 이와 같이 아무리 작은 존재라도 그 존재가 없다면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봐라. 제 앞에 있는 영체 모양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영은 장기도 다 있었습니다. 육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 성령님, 발톱도 자라나요? ) 발톱은 적당한 크기만큼 길러져 있다. 천국에서는 육계처럼 발톱을 자를 시간이 없다. ( 성령님, 여자의 유방에는 모유가 나오나요? ) 아니다. 모유는 나오지 않는다. 육계에서는 양육을 위해 모유가 필요하겠지만 영계에서는 필요하지가 않다. 왜? 양육하지 않으니까. 남녀 영마다 과일은 있다. 핵심 지체이지. 천국에서는 양육하지 않는다. 너는 성삼위의 신부 격이기 때문이다. 천국에서는 피를 흘리지 않는다. 다치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 관계를 하느냐고? 아니다. 관계라는 것은 육계에서 쓰이는 육적인 것이다. 영계에서는 관계를 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체 사랑이다. 영계에서는 정신으로, 뇌로 사랑 관계를 한다. 쓰이는 것이 육계와 영계가 약간씩 서로 다른 면이 있다. 육계와 영계를 왔다 갔다 하기만 해도 느끼지 않느냐? (네, 성령님 육계에서는 하체의 사랑이지만 영계에서는 정말 정신적 사랑인 것을 늘 느낍니다.) 배설이 나오는지 몸을 보니 배설이 나오지 않게 되어 있었습니다. 구조는 다 있는데 육계와 같이 노폐물이 액체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 성령님, 배설은 무엇으로 합니까? ) 사랑으로 한다. 영의 몸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기에 모든 것을 사랑으로 배출한다. 사랑 안에서 살아간다. 방귀도 뀌지 않는다. 천국의 음식도 ‘영’의 것이기 때문에 영의 음식이다. 고로 부패되지 않는다. 육신이 먹는 것은 배설물로 없어진다. 그로 인한 영양분은 육의 살과 피와 뼈가 되어 존재하지만, 그 역시 늙으면 썩어 없어진다. 영은 음식을 먹을 때 느낌, 맛 등을 느낄 수 있다. 음식이 부패하지 않는 고로 방귀가 나오지 않는다. ( 성령님, 지체 과일은 왜 필요하나요? ) 왜 필요한지 알고 싶으냐? (네.) 과일은 영계에서도 육계에서도 다 갖고 있는 공통 지체이다. 이 지체는 몸의 구조에서 핵심 지체라고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육계에서 핵심 지체이다. 과일은 몸의 중앙에 붙어 있어야만 아름답게 보인다. 영체를 본떠서 육의 지체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영이 표상이다. 과일은 육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 본질은 성삼위께 영광이 된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해 주노라. 과일은 왜 필요할까? 영계에서는 관계를 하지 않는데 왜 필요할까? 필요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과일이기 때문이다. 천국은 사랑의 세계이다. 육계에서는 사랑의 과일로 만들었는데 2015_0801 토 계시말씀.hwp4 지체 안에는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으로 나누어져 있다. 과일은 보다 육적 사랑이고 마음, 정신, 생각은 보다 영적 사랑이다. 고로 같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서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영계에서는 병이 없다. 영은 털이 없다. 성삼위는 각 나라마다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햇볕을 피하기 위해 피부색을 검게 하거나 햇빛을 막기 위해 속눈썹을 길게 하였다. 하지만 천국은 온도가 알맞기에 필요가 없다. 겨드랑이 털이나 과일에 털, 팔이나 다리에 난 털 등은 없다. 천국은 모든 것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 와! 아멘. 성령님. 정말 세세하게 가르쳐 주시고 제가 듣고 보게 하심에 진정 감사합니다. 비밀의 말씀 감사해요. ) 그래. 이와 같이 영의 구조는 육과 똑같다. 쓰임이 다를 뿐이다. 육의 구조는 영의 구조와 연결되어 있다. ( 성령님. 혹시 제가 놓친 것이 있는지요. 제가 성령님께 꼭 여쭤 봤어야 하는 것이 있는지요. 제가 본래 성령님께서 원하셨던 질문을 안 한 것이 있는지요. 이 계시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 너희의 지체를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느냐는 것이다. ( 성령님. 어떻게 하면 성삼위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각 지체를 하늘을 위해 쓰일 수 있나요? ) 너희의 각 지체는 성삼위와 똑같은 구상대로 만들어져 있다. 지체 하나하나 육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영을 위해 쓰라고 만들었다. 영적으로 너의 눈은 이 시대의 말씀과 주를 보라고 만들었고, 너의 코는 이 시대의 향기를 맡으라고 만들었고, 너의 입술은 성삼위를 증거하고 영광 돌리라고 만들었고, 너의 두 손은 말씀을 적고 영광 돌리라고 만들었으며, 너의 두 다리는 이 시대의 구원자를 위해 뛰고 달리라고 만들었다. 너의 각 장기는 네가 이 시대를 뛰고 달리는 가운데 생명을 불어 넣으라고 있고, 신경 하나하나는 이 말씀을, 주를, 성삼위를 보고 느끼고 행복해하며 깨달으라고 이어져 있으며 그리고 너의 지체 중 가장 핵심 지체인 뇌는 진정 ‘환상적’으로 만들어져 있다. 보고 느끼고 깨닫고 행하며 말하고 표현하는 모든 것을 다스리는 지체이고, 성삼위가 말하는 것을 보고 느끼고 천국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유일한 지체이며, 사랑의 지체이다. 너의 과일은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유일한, 축소하면 생명이 살아 있는 ‘지구’와 같은 존재이다. 이 지체를 통해 생명을 번성할 수 있으며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지체이다. 과일도 정말 중요한 지체 중의 하나이다. 너의 각 지체는 다 조화가 있다. 신경 하나하나 놓여 있는 자리도 자리에 딱 알맞게 있다. 이 모든 지체는 뇌가 다스린다. 뇌 안에는 성삼위가 있다. 하지만 뇌를 잘못 써서 사탄이 너의 뇌를 조종케 하지 마라. 뇌를 귀히 써라. 잘못 쓰는 경우가 많다. 잘 써야지만 뇌가 활발히 움직인다. 성삼위가 너의 뇌를 통해 역사하고 쓰게 하면 된다. 네가 뇌의 생각을 육의 눈으로 볼 수 있느냐? 신비하지 않느냐? 뇌는 혼으로도 연결되며 영으로도 연결된다. 가장 신비한 지체이다. 뇌는 보다 영적 사랑을 할 수 있다. 뇌를 통하여 혼적 세계를 경험할 수 있고 혼을 통해 영의 세계, 천국까지 볼 수 있다는 것은 뇌의 숨겨진 능력이다. 이 지체는 알고 쓰면 귀히 쓴다. 너는 알았느냐? 너의 지체 중의 육적, 영적 핵심 지체에는 비밀의 지체, 숨겨진 지체이기 때문에 ‘털’로 가려져 있다. 과일은 ‘음모’로 가려져 있고 뇌는 ‘머리카락’으로 가려져 있다. 모든 것은 연결, 연결되어 있다. 육-혼-영처럼 말이다. 내가 ‘연결된 것은 하나다!’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고 느끼게 하는 지체가 바로 ‘뇌’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저 뇌를 ‘육’세계에서만 쓰려고 한다. 다른 세계가 있는 것을 모른다. 가치를 알아야지 쓸 수 있고, 이 시대 말씀을 들어야지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뇌는 쓰면 쓸수록 깊이 보고 느낄 수 있다. 모든 것은 만드는 대로 된다. 너의 모든 각 지체는 이 시대를 위해, 성삼위를 위해, 주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없는데 어찌 너의 지체를 너의 것, ‘육적’으로 삼고 성삼위를 위해 쓰지 않느냐. 너의 각 지체의 본래의 창조 목적을 몰라서 그러느냐? 너의 각 지체는 성삼위의 것이다. 그러니 함부로 쓰지 말고 잘못 쓰지 말고 각 지체의 의미를 깨달아 귀히 써라. 어떻게 쓰는지 알아야 행하게 되고 귀히 쓰게 된다. 필요성을 알아야 행하고 깨닫는다. 영원한 것이 얼마나 좋은지 깨달아라. 각 지체를 비유하면 월명동과 같다. 내가, 성삼위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의 각 지체를 통해 깨달아라. 너의 각 지체는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하게 창조되어 있다. 뇌 사랑하여라. 뇌 사랑은 영원히 남는다. 뇌 사랑이란,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하며 숨겨진 비밀이고 사랑이며 하나님이고 나 성령이고 성자이며 선생이다. 그리고 연결된 것이다. 연결된 것이니 뇌를 통해 육, 혼, 영을 하나로 보는 것이다. (와! 아멘! 아멘. 진정 감사합니다. 성령님의 말씀이 너무나도 귀하고 황금 같은 말씀이어서 주체를 못 하겠습니다. 뇌를 어떻게 성삼위의 뜻대로 쓸 수 있을까요?) 성삼위가 곧 말씀이고 성삼위의 뜻이 곧 말씀이니 너의 뇌를 말씀으로 만들어라. 말씀 속에 모든 비밀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서가 다 나와 있으니 너의 뇌는 말씀을 들음으로써 그대로 행하기만 하면 된다. 뇌를 다이아몬드같이 황금같이 만들어라. 내가 오늘 비밀의 말씀을 세세히 말해 주었으니 이것을 진정 깨달아라. 안녕. ♥ 08월 01일 토요일 ♥ 주와 하나 된 자와 하나 되어라 작성일 :2015. 5. 13~15 AM 1:00 작성자 : 주효심 (새벽에 기도할 때 주일말씀으로 부흥강사를 증거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 연고를 알아야 한다고 주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성령님과 주님께서 같이 말씀하신 것을 기록하였습니다.) * 성령님과 주님의 말씀 * 너희는 부흥강사를 증거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 연고를 알아야 한다. 부흥강사는 휴거 때인 성자 승천 날 전까지 너희의 휴거를 가장 많이 도운 자이다. 부흥강사는 내적 지도자로서 휴거되는 데 가장 핵심적인 말씀을 전하며 너희의 구원에 있어서 핵적으로 알아야 할 것을 증거한 자이다. 부흥강사가 너희에게 늘 증거한 것이 무엇이냐? 이 시대를 늘 증거하고 말씀을 증거하고 주를 증거했다. 나 선생이 이 시대 구원의 핵적인 말씀을 전할 때는 꼭 부흥강사를 통해서 전했다. 내가 부흥강사를 통해 나타난다고 한 말씀이 그러하니 관념이겠느냐? 2015_0801 토 계시말씀.hwp5 사명자의 육신이 살아 있으니 나에게 배우며 상대로서 조건을 세운 부흥강사가 내 몸이 되어 너희에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자가 계셨을 때 너희의 휴거를 가장 많이 도운 기간에도 나는 부흥강사를 통해서 너희에게 나타나며 가르친 것을 알아야 한다. 만약 선생 앞에 상대로서 조건을 세운 자가 없었으면 그같이 선생의 몸이 되어 외쳐서 섭리사를 이끌 자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선생의 몸이니라. 마음 깊이 인정하며 선생과 선생의 분체가 진정 하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알고 너희도 선생이 세운 분체와 하나 되어야 선생과 하나 될 수 있다. 언제까지 부흥강사를 육적인 시선으로 보며 판단할 것이냐. 부흥강사가 휴거에 있어서 핵이 되는 말씀들을 선생의 몸이 되어 증거할 때 증거하는 말을 듣고 불 받고 행하여 변화된 자들은 모두 증거할 수 있다. 부흥강사가 선생의 몸이 되어 증거한 말씀에 불 받고 행하여 휴거된 것을 알면 아는 자의 도리로 증거할 줄 아는 것이 마땅하다. 또한 선생이 말하니 부흥강사가 선생의 몸이 되어 선생을 증거하고 말씀을 증거한 것을 듣지 않고서 신부로서 휴거된 자는 없으니 진정 귀한 줄 알고 기도해 주고 그를 통해 전하는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 그녀는 섭리사의 환난 때 선생의 육이 어려움에 갇혀 있을 때 중심을 잡아 주고 섭리사가 쓰러지지 않고 역사를 진행할 수 있게 하는 데에 결정적인 사명을 한 인물이다. 선생을 똑바로 보고 깨닫고 증거하여 섭리사가 구원의 핵심을 알고 갈 수 있게 한 인물이라는 말이다. 구원의 핵심은 바로 주를 제대로 아는 것이었다. 부흥강사가 세운 조건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니 알고 불 받고 외친 것이다. 섭리사는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점점 구원의 핵심을 알아 가게 되었다. 같은 사람인데 왜 증거해야 하냐고 생각한 자가 있느냐? 그래. 너희가 말한 대로 같은 사람인데 섭리사에서 가장 주를 잘 맞고 확실히 깨닫고 주의 정신을 받아서 그 어떤 것에도 마음, 정신, 생각이 꺾이지 않고 성약역사 신부들의 휴거에 선생 몸이 되어 중요한 사명을 한 자이다. 사람일지라도 증거하라고 말한 것은 선생은 너희에게 그 같은 사도의 정신을 바라기 때문이다. 섭리의 모든 자들이 어서 깨어 일어나 주를 증거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도의 정신을 가진 자는 사도의 정신으로 사는 자를 알아보기에 진정 귀한 줄 아는 것이다. 너희가 그같이 사도의 정신을 가진 부흥강사를 귀히 보는 자세를 갖춘다면 사도의 정신을 갖췄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씀에도 핵심을 알아라. 부흥강사의 외모를 보고 귀히 여기는 자들을 뜻함이 아니다. 평소에 부흥강사가 전하는 증거를 듣고 깨달아 귀한 줄 아는 자들을 뜻함이다. 부흥강사가 누구의 몸인지 누구와 하나 됐는지를 알고 귀히 여기는 자들을 뜻함이다. 주가 하는 말의 깊은 뜻을 알겠느냐? 육적으로 보니 ‘사람을 왜 증거해야 하지?’ 하고 생각하며 주의 말씀을 오해하는구나. 사람이 육적이고 자기 인식에 갇혀 살면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서 깨닫기 전까지 벗어나지 못하기 마련이다. 주가 하는 말의 뜻을 모르고 의문이 갈 때가 있으면 자기 인식관에 갇힌 것에서 벗어나 풀리기를 간구하며 몸부림쳐라. (이후 부흥강사님을 위해 기도했을 때 성령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을 기억했다가 다음 날 새벽에 더 깊이 말씀해 주시길 기도드렸을 때 말씀해 주셨습니다.) 선생이 그곳에서 전할 수 있는 말씀이 있으면 부흥강사가 단상에서 전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부흥강사는 말씀을 전할 때 이 시대와 구원자를 깨달은 발판 위에 주의 말씀을 전하지. 그러나 부흥강사의 모든 깨달음을 단상에서 다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그러니 말씀을 들을 때 말씀을 듣는다는 그 자체를 목적할 것이 아니라 말씀 속에 깨달아야 할 것을 깨닫기 위해 깊이 들어야 한다. 단상에서 말씀 속에 모든 것을 다 말해 줄 수 없기에 말씀을 들으면 깨닫는 몫은 너희의 몫이다. 너희는 그러니 주체인 선생과 선생의 상대가 되어 말씀을 전하는 자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 너희도 주의 상대로서 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주를 모르는 생명과 모르는 자들이 알도록 전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것은 깨달은 자들이 해 줘야 할 일이다. 그래야 깨달은 자도 깨닫지 못한 자도 모두 존재할 수 있다. 선생이 선생 자신을 부흥강사가 선생을 증거하는 것처럼 증거할 수 없고 부흥강사는 단상에서 외칠 때 주의 이름으로 오직 주의 말씀을 주를 향한 흔들리지 않는 확신과 주를 깨달은 조건으로 외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너무나 귀한 섭리에 없어서는 안 될 사명을 하는 자이다. 주를 진정 깨닫고자 하는 자는 주를 진정 깨닫고 외치는 자의 증거를 들어라. 그러한 증거를 하는 자가 부흥강사이다. 그러니 삼위도 증거의 사명자로 더욱 부흥강사를 세워 주는 것이다. 선생을 육으로 직접 만날 수 없는 때는 말씀으로 나타나는 선생을 만나며 깨달아야 하거늘 선생을 섭리에서 제일 잘 깨달은 부흥강사가 외치는 말씀과 그 증거하는 소리를 듣고 너희는 더욱 선생을 깨달아라. 주가 부흥강사를 귀하게 생각하는 정도로 귀히 여기는 자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성령이 부흥강사를 증거했노라. 부흥강사가 선생의 몸이 되어 말씀을 전하고 증거할 때 말씀을 듣고 불 받아 깨달은 너희들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자들이냐. 세상에 선생을 중보하는 역할이다. 선생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선생으로 향할 수 있는 다리가 되어 주는 역할이다. 이 말씀의 요점을 알겠느냐? 선생은 말씀으로 이 역사를 이끌고 부흥강사는 말씀을 전하며 너희에게 선생을 증거하면 너희는 세상에 선생을 증거하는 사명자들이다. 이 말씀은 곧 섭리 안에서 부흥강사가 말씀으로 증거하며 성령의 바람을 일으키면 너희는 세상에서 너희의 환경에서 성령의 바람을 일으키는 사명자들이라는 것이다. 성령의 바람은 주체와 대상이 일체 되어 할 일을 할 때 마치 저기압과 고기압이 만나 바람이 불듯 성령의 역사, 성령의 바람은 주체측도 상대측도 할 일을 해야 일어난다. 책임분담을 하라는 것이다. 성령역사를 일으키는 핵적인 말씀은 지금 선생을 통해 선포되고 있지 않느냐. 주체측이 선생이다. 상대측에서는 선생이 전하는 말씀의 말귀를 잘 알아듣고 깨달아서 앞으로 진행되는 역사의 흐름이 어떠한지 신령하게 성령 받아 각자가 깨닫고 자기가 지금부터 준비하며 만들며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즉시로 행할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렵다고 생각하느냐? 어렵지 않다. 주체측인 선생이 말씀을 전할 때마다 한 가지라도 제대로 깨닫는 자는 실천하기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제대로 깨닫느냐고? 그것도 어렵지 않다. 깨닫고 하는 자들이 있으니 말이다. 깨닫고 실천하는 자들 중 표상으로 세운 자가 부흥강사다. 부흥강사는 선생이 말씀을 전하면 그 말씀이 맞다는 확신이 생길 때까지 행하면서 왔다. 표상이 되지 못하는 자들이 말씀을 대함은 어떤지 아냐? 2015_0801 토 계시말씀.hwp6 깨달은 자들이 위대한 말씀이라고 증거할 때 말씀을 깨닫기까지 말씀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코치받으려 하지 않는다. 말씀을 전했을 때 의도적으로 자신이 말씀과 같이 행하고 만들고 고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러하지 못한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말씀을 전하는 목적은 사람이 말씀을 듣고 온전한 신부로 변화되게 함이 목적인데 말씀을 듣는 목적성을 잃고 말로는 위대하다 하지만 정작 말씀을 대할 때는 어영부영 깨닫지 않아도 넘어간다. 확신이 들 때까지 행치 않고 말씀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넘어간다. 고로 말씀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 말씀을 전해도 자기가 육적으로 좋고 편한 대로만 사니 주와 일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부흥강사는 선생 앞에 상대로서의 조건을 세웠기 때문에 자신을 그렇게 만든 만큼 삼위도 주도 역사하며 만들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조건은 선생의 생각을 닮기 위해 몸부림친 조건이다. 선생의 생각을 닮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표현을 하였지만 그 몸부림은 상대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이다. 부흥강사는 말씀을 들을 때 깊이 받아들이는 노력을 하며 선생처럼 외치는 자의 심정을 알기 위해 더 깨닫고자 매일 외치는 노력을 하였다. 깊이 받아들이기 위해 한 노력은 깊이 생각하고 말씀이 몸으로도 와 닿아 실체가 되길 원하며 행하기도 했다. 왜 그러한 노력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는지 알아? 왜 그자만 그 방면에 표상자가 되었는지 아느냐? 부흥강사는 말씀을 들을 때 자신에게 말씀이 관념으로 남았는지 실체가 되었는지 늘 쪼갰고 관념으로 남겨 두지 않고 확실히 풀며 갔기 때문이다. 그러니 표상이 되느냐 못 되느냐는 말씀을 선포할 때 갈라지는 것이다. 말씀을 확실히 알 때까지 실체로 남기는 책임을 하고자 하는 자인가 그렇지 않고 말씀을 들어도 관념으로 듣고 평소에 자기 좋은 대로 하는 자인가로 나누어진다. 말씀을 전해 줬을 때 확실히 알지 못했는데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는 기질을 지녔다. 완벽한 말씀을 자신의 머리로 삼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길 원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머리가 되는 삶이 아닌 온전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길 원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이 말씀이니 말이다! 진정으로 이것을 원하며 소신껏 이 중심을 절대 꺾지 않고 말씀을 대했기에 지금의 그녀가 있을 수 있는 것이지. 이 중심을 삼위는 알아보았다. 그러니 기어코 그녀는 마지막 역사, 부흥강사가 되어 최고의 말씀을 증거하고 선생의 상대가 되어 너희에게 구원자를 증거하는 인물이 된 것이다. 지난날 너희의 휴거를 위해 선생의 몸이 되어 돕는 사명을 다하게 되었다. 너희도 이제는 표상이 되어야 한다. 성약의 첫 사도가 부흥강사인데 부흥강사 혼자만 사도의 자리를 지키게 하지 마라. 너희는 무엇에 만족하고 안주할 것이냐? 실체를 남길 때까지 만족하지 말고 안주하지 마라. 말씀의 실체를 말이다. 불의의 실체 말고 이 땅에 의로운 실체를 남기는 것이다. 오늘은 주와 하나 된 자를 인정하고 하나 되어서 주와 일체 되라고 이같이 증거하였다. 중요한 것은 핵심을 아는 것이다. 하나라는 그 사실 자체만을 아는 것이 아니라 주의 몸이 되어 전하는 말씀을 듣고 깨닫고 알고 전하는 자가 하나 된 자다. 너희도 진정 주와 하나 되어라. 너희에게 깨닫는 역사가 충만하길 원한다.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