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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5.08.02 (일)

+ 2015년 08월 주일수요말씀

선포일
2015.08.02 (일)
성경 본문
잠언 4장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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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1 2015년 08월 02일 주일 <말의 능력>을 받아라 <생각>에 대해 깨달아라. <생각>은 ‘신(神)’이다 [ 잠언 4장 23절 ] 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23 Above all else, guard your heart, for it is the wellspring of life. [ 마태복음 22장 37-40절 ]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37 Jesus replied: "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38 This is the first and greatest commandment. 39 And the second is like it: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40 All the Law and the Prophets hang on these two commandments.'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지난주에는 <생각>에 대해서 말씀했지요? 매일 <생각>을 온전히 하고, 사탄과 악을 대적해라.’ 했습니다. ◎ 앞으로 2주 더, 주일말씀으로 <생각>에 대해 말씀하며수련회 기간 동안 <생각>에 대해 총 세 편의 말씀을 줄 것입니다. ◎ 이번 주 말씀의 주제는 ‘생각에 대해 깨달아라. 생각은 신(神)이다.’입니다. <생각>에 대해서 말씀하기 전에 ‘말의 능력을 받아라.’에 대해서 먼저 말씀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너무도 깊고 신비하고 좋습니다. 그런데 받아서 쓸 때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글>로 쓰면, 실감이 안 나기 때문입니다. <글>은 ‘전달하는 데 있어서 최하위의 수단’입니다. <행동>으로 직접 보여 줄 때 최고로 이해가 잘되고, 생각에 확 와 닿고, 전달 속도가 가장 빠릅니다. 가령 ‘폭탄’이 꽝 터지면 폭탄에 대한 <설명>도 필요 없고, <말>도 필요 없이 가슴에 쿵 하고 뇌가 찌릿하게 ‘폭탄의 위력’이 전달됩니다. 그래서 읽기만 하지 말고, 듣기만 하지 말고, <말씀>을 읽고 들었으면 행하라는 것입니다. <육>이 행해야 <휴거의 삶>이 실감 나고 불이 붙습니다. 그래야 가슴이 찡하고, 뇌와 생각에 불이 붙어서 탑니다. 성령의 불덩어리가 됩니다. <육>이 행해야 <혼>도 영계에 자주 가고 차원이 높아집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실천력’이 참 약합니다. 별것도 아닌 것, 작은 것을 가지고도 밍기적거리며 행하지 않습니다. 독사가 물려고 쫓아와도 밍기적거리고 일어나지 않을 겁니까? 행하지 않으면, 만사의 모든 것이 잘 안 되고 오히려 당하게 됩니다. <행동>으로 직접 보여 주는 것 다음으로 이해가 잘되는 전달 수단은 <말>입니다. <말>로 들으면, 그래도 귀가 솔깃하고 가슴에 와 닿습니다. 고로 <말>을 할 때 실감 나게 하고, 뜨겁게 하고, 내용에 따라 강하게, 보통으로, 약하게 조절하면서 해야 됩니다. 만일 강조한다고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면 괴성이 됩니다. 마치 노래하듯이 ‘강약’을 조절하면서 해야 됩니다. 또 때마다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몸짓을 하면서 말해야 됩니다. 그래야 가슴에 더 와 닿고 이해가 잘됩니다. 이렇게 설교하는 자가 ‘잘하는 설교자’입니다. 이렇게 안 하면, <말씀>을 ‘글’로 전달한 것보다도 못합니다. 그러니 듣는 자들이 <말씀>을 실감하지 못하고, 가슴 찡하게 은혜를 받지 못하고, 성령의 불을 받지 못합니다. <글>로 어렵게 ‘말씀’을 받아서 써 주는 선생의 마음이 참으로 답답합니다. 그러니 이렇게 안 하는 설교자가 있으면, 꼭 선생에게 편지를 보내 줘요. 답답한 것들을 바로 고쳐 주겠습니다. 아무리 <깊은 말씀의 글>이라도 그 말씀을 전하는 자가 <말>로 전달을 잘해 줘야 됩니다. 그냥 노인이 책 읽듯이 읽거나, 혹은 빨랫줄같이 굴곡 없이, 높낮이 없이, 강약 없이 전하면 100% 중에서 30%도 말씀의 감이 안 오고 실감이 안 납니다. 고로 교인들은 은혜를 받지 못하고, 성령이 식어 버립니다. 교역자의 실력 중 하나가 무엇입니까? 곧 <말씀>을 실감 나게, 뜨겁게, 심정 있게 잘 전하고 성령의 불과 능력을 가지고 전하여 교인들이 은혜를 받고 깨닫게 해 주는 것입니다. 교역자들은 꼭 ‘생명들’을 위해 노력해야 됩니다. 그리고 ‘직접 행하고 조건을 세우면서 어렵게 말씀을 받아 주는 선생’을 보고 노력해야 됩니다. 그리고 ‘말씀을 주시며 뜻을 이루기 원하시는 삼위일체’를 보고 노력해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행동>으로 직접 보여 줄 때는 ‘가장 큰 위력’이 나갑니다. <말>로 전달할 때는 ‘두 번째로 큰 위력’이 나갑니다. 고로 <하늘의 말씀, 주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은 기도를 많이 하고 준비하여 입에서 불이 나가게 해야 됩니다. 그래야 말씀으로 선과 악이 쪼개지고, 사탄이 물러가고, 말씀을 듣는 자들이 불을 받고 은혜를 받고, 주의 진리의 말씀이 뇌에 꽂혀 감동되어 행하게 됩니다. 그리함으로 사탄과 싸워 이기게 되고, 하늘의 뜻을 이루며, 날마다 휴거의 차원을 높이게 됩니다. 설교자뿐 아니라 ‘강사’도 ‘생명을 만나 대화하는 자’도 <말의 능력>을 받아야 됩니다. 섭리사에서 누가 <말의 능력>을 받아서 말을 잘하는지 보고, 자꾸 배워야 됩니다. 선생은 특히 단상에 서는 자들, 강의하는 자들을 위한 기도를 하루도 빼놓은 날이 없습니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2 그리도 기도해 주는데, 말씀을 실감 나게 전달하지 못하는 이유는 말하는 자가 기도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 그 말씀이 얼마나 중한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알아야’ 필요성을 느끼고 행합니다. 사람의 머리는 약 5kg이라고 합니다. 머리를 바로 하면 목이 5kg의 무게만 받는데, 머리를 수그려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으면 목이 5배인 25kg의 무게를 받아서 뒷목의 힘줄이 당겨 피곤함이 오고, 목 디스크가 생깁니다. 고로 기도할 때 고개를 수그리면 어깨가 굳고, 피로하고, 순간 잠이 옵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면 어때요? 고개를 수그리지 않습니다. 사람은 ‘알아야’ 필요성을 알고 행하니, 오늘 말씀을 전하기 전에 <말을 하는 자의 말의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 줬으니, 꼭 알고 행하기 바랍니다. <말의 능력>을 받으면, <말>로 ‘성’도 무너뜨리고, ‘지진’도 나게 하고, ‘태풍’도 불게 하고, ‘비’도 오게 합니다. <말의 능력,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자가 말하니, 하나님이 ‘만물’을 명하여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비’가 못 오게 했습니다. 그 시대의 아합 왕은 갖은 악행을 저지르며 우상 숭배를 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는 말하기를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했습니다. 정말 그 말대로 되어, 그 당시 이스라엘은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습니다. 그 후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 불로 응답받고, 우상을 숭배하는 거짓 선지자 850명을 물리쳤습니다. 그 후 엘리야의 말대로 다시 ‘비’가 내렸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섭리인들은 <이 시대 최고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자들입니다. 고로 <말>을 잘해야 됩니다. <말>을 잘해야 <시대 말씀>도 권세 있게, 위력 있게 잘 전할 수 있습니다. 고로 ‘말 잘하기 도전’을 해야 됩니다. <좋은 음식>이 있어도 잘 안 먹힐 때가 있습니다. 이때는 ‘더 먹기 도전’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먹고 건강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잘 소화되지 않을 때가 있고, 잘 전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고로 ‘잘 듣기 도전, 잘 전하기 도전’을 해야 됩니다. 매일 ‘말 잘하기 도전’을 하면서 매일 노력해야 <말의 차원>을 높이게 되고, 고로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그 입을 ‘자신의 입’으로 귀히 쓰십니다. <말의 능력자>가 말씀을 전하면, 청중의 마음을 용광로같이 뜨겁게 해 주고 감동을 줍니다. 말씀을 전할 때는 첫째, 실감 나게 능력 있게 잘 전해야 하고 둘째, 꼭 ‘성령의 감동의 역사’를 같이 일으켜야 됩니다. <감동>이 얼마나 무섭고 위력이 있는지 압니까? <감동>을 주면, 자기가 스스로 막 행합니다. 고로 <성령의 감동>을 달라고 꼭 기도해야 됩니다. 그렇게도 “안 하겠다. 안 믿겠다.” 하던 사람이 <성령의 감동>을 받으니, 본인이 스스로 마음을 돌이키고 행하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말>을 하거나 <말씀>을 전할 때는 그냥 ‘말’만 하지 말고, 꼭 ‘감동’을 줘야 됩니다. <감동을 주는 자>가 ‘말을 잘하는 자’입니다. 조은 부흥강사같이 말을 잘해야 됩니다. 타고나기도 했지만, 자꾸 연구하면서 극적인 노력과 실습을 했기 때문에 말을 그리도 잘하는 것입니다. 조은 목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설교를 잘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설교를 많이 하며 극적인 노력과 실습을 합니다. 그만큼 영적으로 준비하고, 기도하고, 성령의 능력을 받고 말씀을 전하니 잘합니다. 또한 ‘선생의 글’을 정리하고 교정하면서 말씀을 더욱 깊이 보고 이해하며 매일 연구하니 <말의 프로>가 되어, <글>이 틀리면 안 되듯이 <말>도 틀리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말>을 할 때는 상대가 잘 알아듣도록 ‘발음’이 분명해야 됩니다. 한번은 조은 목사가 목사가 되기 전에 같이 대화를 하는데, 조은이는 보통으로 말하는데 그 소리가 분명하고, 크고, 발음이 확실해서 엄청나게 들렸습니다. 그래서 선생이 “소리가 너무 분명하고 크니 귀가 울린다. 청중도 없는데 왜 그렇게 크게 말하냐. 대화식으로 해야 상대가 잘 듣게 된다.” 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대화식으로 하다가 조금 있으니 또 소리가 분명하고 커졌습니다. 그래서 선생은 양손으로 귀를 막고, “이래도 네 목소리가 잘 들린다.” 했습니다. 그때 “타고난 네 음성을 못 고치겠다.” 했습니다. 그날 기도 중에 깨달아지기를 “섭리사에는 청중이 많고, 그들에게 귀한 하나님의 말씀, 내 말씀을 전할 일이 많다. 그러니 말씀을 전하는 데 귀히 쓰면 좋겠다!” 했습니다. 그리고 조은이에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의식하지 말고 말해라. 너, 청중 앞에서 귀한 말씀 전하는 데 쓰신단다.”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들어 봐도 소리가 일반 소리가 아니고 ‘질이 좋고 성능이 좋은 앰프에서 나오는 소리’ 같았습니다. 보통 말해서는 목도 잘 안 쉬고, 고장도 잘 안 나는 소리였습니다. 결국 <삼위일체가 선생에게 주신 그 귀한 말씀>을 전하는 데 매우 귀히 쓰이고 있습니다. 조은 목사는 <말의 능력>이 있고 <심정>이 있습니다. 거기에 <말씀의 세력과 권세>가 있습니다. 거기에 <성령의 불>이 있습니다. 선생은 말씀을 수만 번 외치며 살았기에 ‘목소리의 성능’을 잘 압니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3 조은 목사는 목소리가 희귀종으로 타고난 데다가 꾸준히 노력하고, 피하지 않고 실습을 해서 말의 능력을 받은 자로서 ‘말씀을 전하는 데 귀한 보물을 가지고 있는 자’입니다. 선생이 하늘의 말씀을 받아서 줄 때 <글>로 써서 주려니 표현하는 것도 어렵고 실감이 나지 않아서 늘 답답합니다. 깊은 말씀인데 실감 나게 전달이 안 되니, 답답합니다. 그래서 <그 깊은 심정의 글>을 받아서 설교자, 강의자들이 <말>로 잘 표현하며 실감 나게, 능력 있게, 권세 있게, 감동을 주고 불을 주며 전해 줘야 됩니다. 그리함으로 청중이 감동을 받고, 성령을 받고, 깨닫고 행하게 해 줘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실 때 지금은 새 시대이니 이 시대에 합당하게 말을 하고,이치에 맞는 말을 해야 됩니다. 이렇게 하는 자가 ‘말을 잘하는 자’이며, 이렇게 해 주는 자가 ‘정말 큰일을 해 주는 자’입니다. <하늘의 귀한 말씀>을 ‘글’로 써서 보내는 선생이 볼 때, 이런 것이 항상 너무 아쉽습니다.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변호사들도 많고, 직업상 말을 조리 있고 설득력 있게 잘하는 직업인들도 많고, 말을 잘하는 설교자나 강사들도 많습니다. 자꾸 도전해야 됩니다. 말 잘하기 도전, 실감 나게 말하기 도전, 능력 있고 권세 있게 말하기 도전, 감동을 주며 말하기 도전입니다. 조은 목사같이 한다고 <음성>까지도 똑같이 따라 하는 자들이 있는데, 자기 개성을 살리면서 배우는 것이 더 좋습니다. 모두 기도하고, 노력하고, 연구하고, 어떤 상황이 있어도 말하고,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말씀을 전하는 것을 피하지 말고 자꾸 실습해야 됩니다. 그리함으로 <말의 능력>을 받고 <말의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선생은 우리 식구들 중에서 제일 말을 못했습니다. <시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는데도 말하는 것이 둔해서 잘 전하지 못하니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노력하고 도전했습니다. 그러니까 입이 풀어져서 말을 잘하게 됐습니다. 여러분도 도전입니다! 증거하는 자들이 능력 있게, 권세 있게, 감동을 주고 불을 주며 말을 잘하도록 선생이 쉬지 않고 기도해 주니, 실수 없이, 후회 없이, 미련 없이 도전하고 행하여 <달변가>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함으로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주신 시대 말씀을 가지고 나가서 담대히 외치며 증거하기를 축원합니다. ◎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만 더 말씀하고, <생각>에 대해서 말씀하겠습니다. <행동>으로 직접 보여 줄 때는 ‘가장 큰 위력’이 나가고, <말>로 전달할 때는 ‘두 번째로 큰 위력’이 나간다고 했지요? 가장 전달력이 약한 방법이 <글>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하나님, 성령님, 성자의 말씀>과 <메시아 예수님의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성령님, 성자가 직접 말씀하시고, 메시아 예수님이 직접 말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읽어도 ‘그 내용’이 <뇌, 마음, 생각>에 와 닿는 것이 별로입니다 만일 그 말씀을 직접 말로 듣는다면, 충격일 것입니다. 감동에 불타서 온몸에 전율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이 ‘글’로 나타나니, 30%도 효과가 없습니다. 선생도 그러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이 시대에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직접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늘의 신부로 변화시키고, 구원하고, 휴거시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글’로 써서 전하니 효력이 별로 없고, 감동도, 실감도, 불도, 심정도 약합니다. <말>로 하면 ‘1분’이면 하는데, <글>로 쓰려면 ‘20분’을 써도 다 표현을 못 합니다. 당세에는 ‘몸으로 행하는 것’을 보고 ‘말로 외치는 것’을 듣지만, 후손들은 ‘기록해 놓은 글’만 봅니다. 지금 몸으로 행하는 것과 지금 외치는 것을 ‘녹화’해 놓으면, 후손들도 ‘몸으로 행한 것과 말로 외치는 것’을 보면서 더욱 실감 나게 깨닫고 행할 것입니다. 선생이 없을 때 보고 들으라고, 과거에 선생이 ‘몸으로 행한 것’과 ‘말로 외친 것’을 녹화해 놨습니다. 성삼위의 말씀을 받은 주인공의 말은 다릅니다. 아무도 못 따라갑니다. 세력과 권세가 있습니다. 고로 오래된 자들도, 얼마 안 된 자들도 선생이 외쳤던 것을 자꾸 보고 들어야 됩니다. 많이 보고 들어야 감각이 무뎌지지 않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사는 자들은 삼위일체가 이 시대에, 지금, 오늘 하시는 말씀을 <삼위의 육>을 통해 직접 듣고, 또 선생이 직접 못 할 때는 <선생이 보낸 육>을 통해 직접 말씀을 들으니, 정말 복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받아 주는 자’를 확실히 알고 늘 감각을 잃지 말고 ‘그’를 생각하면서 들으면, 훨씬 더 은혜와 감동과 불이 옵니다. ◎ 이제 ‘생각에 대해 깨달아라. 생각은 신(神)이다.’에 대한 말씀을 해 주겠습니다. ◎ 어렵게 <글>로 받은 말씀을 <말>로 실감 나게, 능력 있게, 권세 있게, 감동을 주며 전해 주기 바랍니다. 듣는 여러분들도 이 말씀을 주신 <삼위일체>를 생각하고 <이 말씀을 준 선생>을 생각하면서 들으면, 더욱 실감 나게 은혜를 받으며 듣게 될 것입니다. ◎ 먼저 <생각>에 대한 핵을 말씀해 주겠습니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4 ★ 사람은 ‘육신’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자기 몸을 가리키면서) 고로 <인간 형상의 핵>은 ‘육신’입니다. 이 <육신>은 ‘생각’을 가지고 움직입니다. (자기 몸을 가리키면서) 고로 <인간 근본의 핵>은 ‘생각’입니다. ★ 고로 사람은 ‘생각’을 정말 잘해야 됩니다. <생각>에 따라서 <행동>하게 되고, 그 <행동>에 따라서 <육의 삶>이 좌우되고, 그 <육의 행실>에 따라서 <영혼>이 만들어지고 변화되어 <영혼의 운명>을 좌우하게 됩니다. 고로 <육계와 영계의 핵 원자탄>은 ‘생각’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 중요 ★ <육신>은 ‘육’으로 통하고, <혼>은 ‘혼’으로 통하고, <영>은 ‘영’으로 통합니다. ★ <육신>은 ‘영’과 직접 못 통합니다. 고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육신인 인간과 통할 때는 이와 같이 하십니다. 첫째, <만물>도 ‘육과 같은 물질’이니, 하나님은 ‘만물’을 보여 주면서 계시하십니다. 둘째, <사람 중에서 합당한 자의 육신>을 쓰고, 그를 통해 나타나 역사하십니다. 셋째,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생각>을 주면서, 그 생각을 통해 인생들과 통하십니다. ★ <육신>이 ‘자기 혼’과 통하려면, <뇌의 생각>을 통해야 됩니다. <육신>이 ‘자기 영’과 통하려면, <혼>이 ‘자기 뇌의 생각’과 연결되어 통해야 됩니다. ★ 이와 같이 <생각>은 육계와 영계의 다리 역할을 하고, 육, 혼, 영이 서로 통하게 하는 송수신기 역할’을 하고 삼위일체와 통하게 하는 송수신기 역할’을 합니다. <끝>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죄>를 짓고 ‘화’를 받기도 하고 <의>를 행하여 ‘복’을 받기도 합니다. <생각>만 절대 완전하게 하고, <자기 생각>을 ‘삼위일체와 주의 생각’으로 무장하여 누구에게도 틈을 주지 않으면, 사탄 수백만이 몰려와도 손대지 않고 다 이깁니다. <생각>에 대해서 배우고 연구해야 됩니다. 조은 목사도 ‘이것’을 배우고, 사탄을 다 이겼습니다. ★ <생각>에 따라서 ‘신’이 됐다가 ‘인간’이 됐다가 합니다. <생각>이 ‘신’입니다. <생각>이 ‘자기 몸의 신’입니다. 그러나 이렇게만 말하면 오해합니다. <생각>이 왜 ‘신’인지, <생각>에 따라서 왜 ‘신’이 됐다가 ‘인간’이 됐다가 하는지, 이에 대해 잘 이해하도록 선생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면서 잠깐 설명해 주겠습니다. (이 부분은 전반적으로 웃으면서, 여유 있게 설명해 주듯 전해 준다.) 어떤 사람이 ‘선생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 소문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내게 물었습니다. 그 소문은 모르니까, 몰라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는 내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신으로 쓰이는 몸’입니까? ‘신’입니까?” 선생이 “네. 저는 ‘신’입니다.” 하니, (웃으면서 너스레 떠는 듯 말하기) 그는 “들리는 소문이 맞군요.” 했습니다. 선생은 “내가 왜 ‘신’인지 말해 줄게요.” 하며 설명해 주었습니다. “첫째, 사람에게 ‘영’이 있습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하니, “성경적이니 믿습니다.” 했습니다. “그렇다면 내게도 ‘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니, “있지요.” 했습니다. “<내 영>은 내 것이지요? <영>은 ‘신의 존재’입니다. <그 영>은 ‘내 육’과 일체 되어 삽니다. 그리고 <혼>도 있는데, 혼도 ‘신’입니다. <정신>도 ‘신’입니다. (정신의 ‘신’을 강조한다.) <육신>도 ‘신’입니다. (육신의 ‘신’을 강조한다.) 즉 ‘보이는 신’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는 신이다.’ 말씀했는데, <전능자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믿고 받아들이니 인간으로서 ‘신’이 되어 사는 것이 아닙니까?” 했습니다. 그리고 또 말했습니다. “흔히 ‘신’이라 하면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내가 ‘신’이라고 하니까 나를 하나님 같은 존재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으로 압니다. 모르니까, 바보들이나 그리 생각합니다.” 했습니다. ★ 인간에게는 <신>이 ‘세 가지’나 있습니다. 영신, 혼신, 육신입니다. 곧 ‘삼신’입니다. 그리고 영, 혼, 육의 매개 역할을 하는 영, 혼, 육의 핵은 ‘생각’입니다. ★ <생각>이 ‘육’을 행하게 하고, <생각>이 ‘혼’을 행하게 하고, 그로 인해 ‘영’과 연결되어 ‘영’이 변화되게 합니다. ★ <생각>에 의해 육, 혼, 영이 제대로 존재하니, 정신에 이상이 있는 사람은 <생각>이 ‘신 역할’을 못 합니다. 생각이 흐리멍덩한 사람은 <생각>이 ‘신 역할’을 못 합니다. <정신>에 이상이 있으니, 영, 혼, 육에게도 이상이 생기고, <생각>이 흐리멍덩하니, 영, 혼, 육도 흐리멍덩한 존재가 됩니다. ★ 그래서 <생각>이 ‘신’이 돼야 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 <신>은 절대 ‘뜻’을 두고 요동하지 않습니다. ‘뜻’을 두고 멈추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정녕코 이룬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신이신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서 그 말씀대로, 그 생각대로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인간으로서 신’이 되어 ‘신’같이 살 수 있습니다. 그리함으로 성경의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는 신이 된다.” 하는 말씀을 이룹니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5 ★ 하나님은 “나는 정녕코 이룬다.” 말씀하신 대로 <뜻>, 곧 <천지와 인간을 창조한 목적>을 두고 요동하지도 멈추지도 않으셨습니다. 인생들이 배신해도, 믿다가 말아도, 아예 안 믿어도, 보낸 자를 핍박하며 옥에 가둬도, 죽여도 절대 <뜻, 창조 목적>을 두고 요동하지도 멈추지도 않으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최고로 큰 뜻, 창조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 <이 시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이 시대 구원자>를 확실히 깨닫고 요동하지 않으면, ‘인간으로서 절대 신’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반대자, 꾀는 자, 유혹하는 자, 악평자가 10억 명이 됐든지 70억 명이 됐든지, 다 이깁니다. 반대자, 꾀는 자, 유혹하는 자, 악평하는 자들은 하늘이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은 말과 행위를 합니다. <강철 같은 정신>과 <삼위를 닮은 신의 생각>을 가지고, <시대 말씀의 철장 권세>로 그 말들을 질그릇 깨부수듯 깨부숴야 됩니다. 섭리인들은 모두 <시대 말씀의 철장 권세>를 받았습니다. 고로 “태양이 멈췄다. 예수님의 육신이 구름 타고 온다. 육신이 부활되고 휴거된다.” 하며 정신이상자들이 하는 소리들을 <진리의 철장 권세>로 모두 질그릇 깨부수듯 깨부수고, “옛 역사는 끝났다!” 하며 하나님, 성령님, 성자의 속이 시원하게 해 드려야 됩니다. 세상을 보면, <종교인들> 중에 정신이상자들이 제일 많습니다. 지구 세상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안 믿고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20억 명도 더 됩니다. 이단들은 수백만 명 됩니다. 비진리를 믿으며 그대로 이루어질 것으로 믿고 사는 자들이 수십억 명입니다. <정신과 생각>이 ‘정상’이 아닙니다. 그러다가 <육>이 죽으면, <그 영>이 자기가 전혀 모르는 세계로 가서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됩니다. 정말 불쌍합니다. 선생이 하나님과 성자가 주시는 시대 말씀을 받고 세상에 나와서 외치니, 기성인들은 각종으로 따지고 100가지 이유를 대면서 “그것이 아니다. 그것은 네 주장이다.” 하면서 나를 무시했습니다. 그래도 선생은 그들의 말을 100분의 1도 안 믿고, “까불지 마. 내가 누구인지 알았으면, 그리 안 하지. 너희가 진리라고 말하는 것은 가다가 깨지고, 내가 말하는 진리, 곧 하나님과 성자가 내게 주신 진리만 남는다.”하고 절대 꺾이지 않고 요동하지 않고 굳건했습니다. <신의 말씀>을 받았으니 내 생각이 ‘신’이 되어 신과 같이 <뜻과 진리>를 두고 절대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의 말은 ‘거짓’이 됐습니다.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구름 타고 온다고 했던 자도 오지 않고 허무하게 끝났습니다. 앞으로 100년, 1000년을 더 기다려도 그렇게는 안 옵니다. 믿었던 대로 안 되니, 그 신앙도 파괴되었습니다. 정말로 불쌍하게 됐습니다. <시대 말씀>을 100% 믿고, <자기를 구원할 자>를 알고 100% 믿고 말씀대로 행하며 절대 흔들리지 말아야 됩니다. 그래야 전능하신 삼위일체가 ‘그 육과 생각’에 좌정하십니다. 선생이 처음에 기도하고 조건을 세운 후 하나님과 성자께 <시대 말씀>을 받은 후에 동네 목사들과 신학교를 다니는 형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육신 부활이 아니다. 영의 부활이다. 태양이 멈춘 것이 아니다. 시대적으로 태양이 멈춘다고 믿는 때였기에 태양이 멈췄다고 한 것이지, 실상 하나님이 함께하여 시간적 표적을 일으켜서 승리했음을 말한 것이다.”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그들은 “그렇게 가르치면 예수님께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간다.” 하고 막 소리를 지르면서 나를 혼냈습니다. 그때 선생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참 아기들이네. 내가 커서 목회하면, 너희가 목회한 것을 다 합쳐도 내 앞에는 빙산의 일각이야. 내가 살아 있을 때, 반드시 그 모습을 보여 줄게!” 했습니다. 당시 영계에서 그들의 앞날을 보니, 몇백 명의 성도만 모아 놓고 목회하고 끝났습니다. ★ 선생은 말대로 됐습니다. 말대로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역시 <생각>이 ‘신’입니다. 오직 하나님, 성령님, 성자입니다. 오직 하나님, 성령님, 성자의 말씀을 받아서 행하니,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오직 하나님, 성령님, 성자의 뜻을 이루는 역사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날이 갈수록 <하나님과 성자의 계획>은 그 말씀대로 실행됩니다. 형제들도, 동네에서 난 목사들도 나를 믿고 따랐으면, 지금도 외치고 다니면서 귀히 쓰이고 시대 구원도 받고 휴거도 되고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내가 스스로 ‘신’이 되어 잘못되게 행하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신령하지 못하니 몰랐던 것입니다. 모르니까 오해할 수밖에 없고, 그러니 따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구시대 기성인들이 불신하고 안 따라오니, 아무것도 몰랐지만 시대 말씀을 듣고 깨닫고 따라온 자들이 그들이 받을 영광을 다 받게 됐습니다. 영원히 그 영광을 받게 됩니다. 구시대인들은 봉사라서 눈 뜬 자들이 무엇을 하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기성인들이, 사탄이, 악평자들이 막아도 이 <섭리역사>는 ‘하나님 최고의 목적을 이루는 새 역사’라 갈수록 번창하고 창대하게 됩니다! 그러나 <구시대 저 기성>은 차를 사용할수록 낡고 망가지듯 갈수록 망가집니다. 어서 빨리 <시대>를 증거해야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절대 <생각>이 ‘철강’같이 강해야 됩니다. <생각>을 ‘삼위일체의 생각’으로 무장해야 됩니다. 그리고 절대 흔들리지 말고, 어떤 말에도 요동하지 말고, 끝까지 가야 됩니다. 생각을 강하게 하고, 절대 요동하거나 꺾이지 말고, 끝까지 따라오면 구원자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함께 <구원>도 해 주고 <휴거>도 시킬 수 있습니다. <생각>이 ‘신’이 되어 다 다스려야 됩니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6 <강력한 시대 말씀>과 <삼위의 생각>과 <주와 일체 된 생각>으로 사탄과 악을 물리치고, 비진리를 물리치고, 온전치 않은 말들을 물리치고, 자기 육적인 생각을 물리치고, 세상과 이성으로 흐르는 생각을 물리치고, 못 하겠다는 생각을 물리쳐야 됩니다. 사람은 <생각>으로 ‘죄’를 짓고 ‘이성’에도 빠집니다. <생각>으로 ‘하나님, 성령님, 성자’를 만나기도 하고, 아니면 불신하기도 합니다. <생각>을 온전히 해서 말씀을 믿고 행하여 자기 영을 변화시켜 휴거를 이룸으로 ‘천국’을 차지하기도 하고, 아니면 <생각>에서 시대 말씀을 불신하여 자기 영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지옥’에 가게 하기도 합니다. 고로 <생각>이 그리도 큽니다. <생각>에서 믿느냐, 안 믿느냐가 좌우됩니다. <생각>은 자유의지입니다. 고로 믿느냐, 안 믿느냐도 자유의지입니다. 다만, 자기 자유의지에 따라 자기가 책임을 지면 됩니다. 진리가 맞는데 자기가 안 믿으면 자기가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망’으로 가면 되고, 자기가 믿고 따르면 그에 대한 책임과 대가로 ‘생명권, 천국’으로 가면 됩니다. 하나님도 <인간의 생각>을 무력으로 100% 주관하지 않으십니다. 양심을 주어 깨닫게 하고, 만물을 보이며 깨닫게 하고, 구원자를 보내 시대 말씀을 주어 깨닫게 한 후에, - 인간이 <자기 생각>을 자기 마음대로 쓰면서 사는지, - 아니면 <자기 생각>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생각>대로 행하면서 자기 책임 분담을 하는지 보십니다. <자기 생각>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생각>대로 행하면서 자기 책임 분담을 하는 자만 하나님이 그 ‘생각’을 100% 주관하여 지키시고, 그 ‘육신’을 자기 몸으로 쓰면서 역사를 이루십니다. <의로운 강한 생각>으로 인해 ‘자기 육’을 가지고 행하여 <자기 육의 행실>로 인해 ‘자기 영’을 휴거시켜 <천국 황금성>에 가게 합니다. 그리고 <주와 일체 된 강한 생각>이 자기를 멈추지 않게 하여 <휴거의 차원>을 높이게 하고, 그리함으로 ‘자기 육과 영의 운명’을 좌우시킵니다. 잘못된 생각, 불의한 생각, 이성을 향한 생각, 자기중심적 생각을 <주와 일체 된 강한 생각>을 가지고 깨부숴야 됩니다. <생각>은 ‘무기’입니다. <생각>에 따라서 ‘천재’도 됩니다. <생각>에서 ‘환상’도 봅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만물’도 새롭게 보게 됩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천 리’도 내다봅니다. 그러나 <생각>을 잘못함으로 ‘그릇된 인식’도 하여 오해도 하고, 그로 인해 해도 당하고, 화도 당합니다. <생각>을 잘못하면 자기가 몽땅 해를 받으니 꼭 확인하고 생각하고 행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역사>를 확인하지도 않고 <생각>을 잘못하여 막고 욕하고 해를 주는 자들은 결국 그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 몽땅 해를 받게 됩니다. ◎ <생각>에 대해서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해 주고, 오늘 말씀 마치겠습니다. 잘 들어요. 선생이 기도하다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물었습니다. “인간은 아이큐가 평균 120 정도이니, 지능이 낮아서 자꾸 사고가 나서 다치고 죽습니다. 왜 인간의 지능을 그렇게 낮게 창조하셨습니까?” 했습니다. 이때 답을 주셨습니다. “자동차의 속도계를 보아라. 시속 200~300km까지 달리도록 표시되어 있지 않냐. 그런데 운전할 때는 시속 120~200km까지만 달린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아서 ‘엔진’에 가속이 붙으면, 그 차가 달릴 수 있는 한계까지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다. <인간의 뇌, 생각>도 그러하다. <인간의 지능 지수>는 300, 500, 1000, 2000까지 차원을 높일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정신과 생각>을 집중하지 않으니, 아이큐 120~160까지밖에 안 나오고, 그 수준으로만 생각을 사용하는 것이다. 생각을 집중해라. 생각을 집중할수록 <신의 생각>이 되어 다스린다. 그러면 사고가 나지 않는다. 사고가 안 나려면, 어떤 일을 하든지 정신과 생각을 집중하여 전능자 삼위와 일체 되어라. 이것을 가르쳐 주어라.” 하셨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신령한 말씀이라도 아무리 지식과 지혜의 생명의 말씀이라도 <자기 생각의 차원>이 낮으면, 말씀이 뇌 속에 안 들어갑니다. 아이큐 200은 돼야 위대한 하늘의 말씀이 깊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아이큐 200이 나옵니까? 아이큐 200이 되는 방법! 즉시 ‘생각을 집중’하고 ‘삼위와 일체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깊이 하고 생각을 집중하여 영계에 들어가면, 아이큐가 수천만이 됩니다. 어떻게요? <육>이 아닌, <영>이 보고 듣기 때문입니다. <영>은 ‘신적 존재’라서 엄청납니다. 고로 매일 ‘휴거된 자기 영’을 부르면서, <자기 육의 생각>을 ‘영의 생각’과 일체 시켜야 됩니다. 또한 매일 ‘하나님, 성령님, 성자’를 부르고, 매일 ‘말씀’을 잊지 않고 뇌에 새기면서 <자기 생각>을 ‘삼위의 생각’와 일체 시켜야 됩니다. 그래야 <생각>이 위대해지고 강철같이 강해집니다. 하나님 생각, 성령님 생각, 성자의 생각, 주의 생각은 어마어마합니다. 고로 <그 생각>을 ‘자기의 중심’에 꽂고 살아야 됩니다. 그리함으로 사탄과 싸우지 않고도 이기고, 악의 세력과 나쁜 생각들을 완전히 물리치고, 절대 <뜻>을 두고 요동하지 않고, 날마다 <성삼위를 사랑>하고 <주와 일체> 되어 <휴거의 삶>을 살면서 <휴거의 차원>을 높이기를 축원합니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7 2015년 07월 13일 수요일 말씀은 길이다. 길을 가면서 대화다. 실천이다 [ 잠언 4장 23절 ] [ 요한복음 10장 35절 ]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If he called them 'gods,' to whom the word of God came-and the Scripture cannot be broken-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이번 주 주일에는 ‘생각에 대해 깨달아라. 생각은 신이다.’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 <생각>은 ‘뇌’에서 하게 됩니다. 고로 <생각>하지 않으면, <뇌>도 기능을 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뇌와 생각’에 대해서 말씀할 것입니다. 오늘은 <잠언>으로 하나씩 쉽게 말씀해 주겠습니다. 잘 전해 주고, 깊이 듣기 바랍니다. ◎ 사람은 <생각>이 좋아야 ‘손발’이 고생하지 않고 ‘몸’도 고생하지 않습니다. <생각>에 따라서 ‘신’이 되어 행하게 됩니다.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 성령님은 <깨우쳐 줄 것>을 꿈이나 생시에 ‘만물’로 보이며 이와 같이 이러하다 깨닫게 하시고, 꿈이나 생시에 ‘그 사람의 행실’을 보이며 이와 같이 이러하다 깨닫게 하신다.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사람의 육신’을 쓰고 행하며 깨우쳐 주시는데, ‘당사자의 육신’을 쓰고 행하며 깨우쳐 주시거나, 혹은 ‘상대의 육신’을 쓰고 행하며 깨우쳐 주신다. -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뇌에다 말씀을 주시고 깨닫게 하시며 ‘뇌’를 조종하신다. 그러면 ‘뇌’에다 말씀하시고 깨닫게 한 것이 생각나면서, 그 ‘생각’을 가지고 행하게 된다. - <사람의 뇌>는 마치 ‘녹화’를 하고 ‘녹음’을 하듯이, ‘본 것’과 ‘들은 것’을 뇌에 입력한다. - 비디오나 녹음기는 녹화는 하고 녹음은 할 수 있지만, 자체적으로 ‘생각’은 못 한다. <사람의 뇌>는 보고 들은 것들을 입력하고, 그것에 대해 자체적으로 ‘생각’도 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 <뇌>는 생각한다. 수만 가지, 수백만 가지를 생각한다. - 하나님은 <뇌>를 통해 ‘하나님’과도 통하게 창조해 놓으셨다. - <사람의 뇌>는 ‘하나님의 뇌 원리’로 창조해 놓으셨다. - <사람의 뇌>를 최고 이상적으로 쓰려면, 창조자 성삼위의 말씀을 받고 그 정신과 생각을 받아라. 그리고 창조자 하나님, 성령님, 성자와 통해라.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뜨거운 불’로 임재하기도 하시고, ‘말씀’으로 임하여 역사하기도 하신다. - <불>이 느껴지는 것은 ‘말씀’이 임하여 감동받고 깨달았기 때문이고, ‘성령’이 임했기 때문이고, ‘성령’과 통했기 때문이다. - <통신 기계>를 만들면 ‘전파’를 통해서 각종 기능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이 <자기 생각>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신의 생각을 받아 온전하게 하면 ‘영파’를 통해서 삼위일체와 통하게 되고, 이에 삼위일체는 ‘그 육신’을 쓰고 각종 일을 행하신다. - <생각>을 안 하면, 바로 ‘생각의 뇌’가 굳는다. - 눈, 코, 입, 귀, 손, 발, 팔, 다리, 심장 등 각 지체는 <뇌>같이 ‘생각하는 기능’은 못 한다. 그러나 <뇌>는 <생각하는 것>을 행하며 기능을 하고, <자체>로도 존재하며 기능을 한다. - <뇌>는 지체의 생명을 위해서 ‘생각하는 기능’을 해야 된다. <뇌>에서 ‘생각’해야 각 지체가 제대로 기능하며 할 것을 행하게 된다. - 손으로 글씨를 반복하여 쓸수록 더 잘 써진다. 이와 같이 깊이 생각할수록 더 좋은 것을 생각하게 되고, 더 좋은 방법도 생각하게 된다. - <뇌>는 반복해서 생각할수록 더 좋게 차원을 높여 구상하게 된다. - 깊이 생각하고 반복해서 생각하되, <자기 생각, 인간의 생각>으로는 ‘생각의 한계’를 맞게 되니 <전능하신 삼위일체의 생각>을 받아서 깊이 반복해서 생각해라. 그러면 가장 좋고 이상적인 구상과 방법이 나온다. - <뇌의 생각>을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접목시키면, 생각이 ‘신의 생각’으로 뒤바뀐다. 본인이 ‘신의 말씀, 신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입으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부르며 고백하고 시인해라. - <뇌의 구조>를 알아라. <뇌>는 자기가 생각해야 기능을 한다. 생각하는 대로 ‘뇌가 작동’하여 바뀐다. 본인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구원자를 불러야 뇌의 생각이 그 방향으로 가서 그쪽으로 기능을 하게 된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8 먼저 입으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부르고 고백하며 시인해야 <뇌의 기능, 뇌의 생각>도 그쪽으로 바뀌게 된다. - 사람이 배우고, 고백하고, 믿고, 시인하고, 행하는 대로 <뇌의 기능, 뇌의 생각>이 그쪽으로 굳어진다. - 공부를 하면 ‘공부 쪽’으로 뇌가 기능을 하고, 게임을 하면 ‘게임 쪽’으로 뇌가 기능을 하고, 말씀을 전하면 ‘말씀 쪽’으로 뇌가 기능을 하고, 전도를 하면 ‘전도 쪽’으로 뇌가 기능을 한다. - 농사짓는 사람은 <뇌의 기능, 뇌의 생각>이 농사 쪽으로 바뀌고, 신앙인은 <뇌의 기능, 뇌의 생각>이 신앙 쪽으로 바뀐다. - <만물>을 가지고 만드는 대로 ‘모양과 형태’가 형성되듯이, <뇌>를 가지고 생각하고 행하며 만드는 대로 ‘뇌의 기능’이 형성된다. - <뇌의 기능>을 배워라.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거나, 무엇이 깨달아졌을 때 즉시 기록해라. <뇌의 기억력>은 ‘기록’을 못 따라간다. <뇌>는 순간 보고 듣고 깨달을 때만 기억한다. <기록>하면 그것을 볼 때마다 생각난다. - <기록>은 ‘신’이 되게 한다. - 가는 자도 오는 자도 막지 말아라. 뜻이 있다. 그러나 분별은 하여라. - <손>은 한 번에 많은 것을 들려고 하면 못 든다. 몇 번에 나눠서 옮겨야 된다. <뇌>는 ‘손’과 같다. 고로 한 번에 많은 것을 생각하면 집중적으로 생각을 못 한다. 지속적으로 단계적으로 여러 번 집중해서 생각하면서, 깊고 높은 것을 생각해야 된다. - 한 번에 100개의 계단을 뛰어오르지 못한다. 하나씩 오르다 보면, 결국 100개의 계단을 오르게 된다. <뇌>도 그러하다. 지속적으로 단계적으로 집중해서 생각하면서, 깊고 높은 것을 생각해야 된다. - <인간의 생각>은 아무리 깊고 높게 생각해도 한계가 있다. 아무리 <차원 높은 사람의 생각>도 역시 ‘인간의 생각’이니, 가다 보면 결국 한계를 맞게 된다. 절대신 하나님, 성령님, 성자와 통하며 그 말씀대로 생각해라. 그러면 ‘높은 영의 세계의 신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신의 생각>을 받아도 ‘자기 뇌의 기능’만큼만 생각하고 ‘자기 실력과 차원’대로만 생각하게 된다. 고로 <뇌의 기능>을 유능하게 만들어 놓아라. - <뇌의 전개체>는 ‘몸’이다. 고로 <자기 뇌의 기능>을 보려면 ‘몸의 기능’을 자세히 보아라. <뇌의 기능>에 따라서 ‘몸’도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 <몸의 기능>을 유능하게 하려면, 좋은 방법을 가지고 반복해서 지속적으로 행해야 된다. 어떤 것을 만들 때도, 글씨를 쓸 때도 손으로 반복해서 해 보면 처음보다 유능하게 만들어진다. <뇌의 기능>도 그러하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차원을 높여서 생각하면서 자꾸 생각을 교정하면, 이상적이고 좋은 생각이 된다. - <뇌의 기능>을 좋게 하려면, ‘하나님, 성령님, 성자’를 부르며 ‘신의 말씀, 신의 생각’을 받아서 행하되, ‘자꾸 차원을 높이면서 반복해서 지속적으로 행하기’다. - 잠언도 처음, 중간, 나중의 차원이 다르다. 쓰면 쓸수록 계속 차원을 높여서 쓰게 된다. 처음보다 나중에 더 높고 깊은 잠언이 생각나는 이유는 앞에 쓴 잠언의 계단을 밟고 오르기 때문이다. <생각>도 그러하다. 신의 말씀, 신의 생각을 받아서 행하되, 자꾸 차원을 높이면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깊고, 높고, 좋고, 이상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앞에 했던 생각의 계단을 밟고 오르기 때문이다. - 동물들도 그러하다. 옛날의 동물보다 지금 동물들이 더 발달되었다. 사람도 그러하다. 옛날에 태어난 원시인보다 지금 태어난 사람들이 생각도 더 발달되었고 모습도 더 아름답다. - <뇌 체질, 생각 체질>이 ‘행동 체질’을 만든다. <행동 체질>이 ‘삶의 체질’을 만들고 ‘영의 체질’을 만든다. - <뇌>가 굳으면, 굳은 대로 생각하고 행한다. - <뇌>는 그때 보고 느낀 대로 표현한다. 과거의 것은 거의 잊어버리고 생동감이 없다. 고로 매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구원자를 생각해라. 매일 기도해라. 수시로 삼위일체와 구원자를 불러라.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의 생각’을 받아라. 그래야 잊지 않고, 매일 실감하며 생동감 있게 살아간다. - <뇌>가 굳으면 성공하지 못한다. 꿈을 이루지 못한다. - <뇌의 생각>으로 인해 ‘천국과 지옥’이 좌우된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9 <뇌의 생각>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천국’을 거부하고 <뇌의 생각>에서 ‘지옥의 근본’을 모르고 받아들이니, 그 생각대로 행하며 살아가게 된다. -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된다. <생각>에서 거부하면 다 끝이다. <생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그 생각에 따라 <몸>도 행하게 된다. 그에 따라서 <영>도 변화된다. - 현대인은 ‘지옥의 삶’을 살면서 자기는 지옥으로 안 간다고 한다. <말>로 지옥에 가고, 안 가느냐. <자기 행위>대로 매일 지옥으로 가고 있다. <자기 행위>가 ‘자기 삶’을 좌우하고, <자기 육의 삶>이 ‘미래 자기 영의 운명’을 좌우한다. - 자기가 ‘열매는 없고 잎만 무성한 나무’를 심어 놓고 가꾸면서, 가을이 되면 ‘주렁주렁 열린 열매’를 딴다고 생각하며 산다. 역시 그 행위대로 가을이 오니 ‘추풍낙엽’ 되어 ‘가지만 앙상한 지옥’이다. <인생 삶>도 그렇게 살면, ‘가지만 앙상한 지옥’을 피할 수가 없다. - 자기가 물질·쾌락·명예를 위해서만 인생을 사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겠느냐. 절대 전능자 삼위일체를 믿고, 그 말씀을 생각에 받고 그 말씀대로 행하며 살아야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다. 이것을 안 하면, 세상에서 아무리 즐겁고 기쁘게 살아도 <하나님의 나라>에는 절대 못 간다. - 가령 ‘자동차’를 만든다 하자. 누구든지 안 만들면 영원토록 자동차는 없다. 만들어야 자동차가 있게 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믿고 그가 보낸 구원자를 믿고 그를 통해 주는 시대 말씀 듣고 행해야 <자기 육의 삶>도 제대로 만들고, 그로 인해 <자기 영혼>도 하늘나라 형체로 만들고, 그로 인해 <천국의 집>도 만들게 된다. 이 세상에서도 ‘자기 살 곳’을 만들어야 살 수 있듯이, 이 세상에서 삼위일체와 구원자를 믿고 그 말씀대로 행한 행위로 ‘자기 영혼’도 만들고 ‘천국에서 살 집’도 만들어 그 영혼이 천국에 가서 살게 된다. - <음식>도 맛있게 요리해야 맛있다. <인생>도 맛있게 요리해서 살지 않으면 맛없게 살게 된다. - 모르면 행하지 못하여 ‘하나님이 예정하신 혜택’을 못 받는다. - 삼위일체와 일체 되어 ‘인생 삶’을 맛있게 요리해서 살아라. - 하나님의 법을 어겨 가면서 불의와 불법을 행하며 자기중심대로 인생을 요리하며 사는 자는 육도 영도 망한다. ◎ 꿈 이야기를 하나 해 주고, 다섯 개 잠언을 더 전해 주고, 오늘 말씀 마치겠습니다. - 새벽 2시에 잠에서 깼는데, 선연히 기억나는 꿈이 있었다. 꿈에서 보니, 여자의 치마에 방금 페인트로 곱게 줄무늬를 그려 놓은 모습이 보였다. 페인트가 굳어야 옷의 줄무늬가 아름답게 된다. - 그때 일어나서 기도하지 못하고 눈을 감고 더 누워서 어떻게 되는지 계속 지켜보았다. 그때 어떤 사람이 옷의 줄무늬를 손가락으로 만지니 줄이 뭉개졌다. 만지면 안 된다 해도 자꾸 손가락으로 슬슬 건드렸다. 그러니 줄무늬가 자꾸 희미해졌다. - 결국 어떻게 되는지 계속 안 일어나고 지켜봤다. 새벽 3시였다. 옷의 줄무늬가 뭉개져서 약간 검은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 계속 어떻게 되는지 보니, 어떤 사람이 그 옷을 입었는데 비닐 옷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비가 내렸다. - 제시간에 일어나서 기도해야 되는데 안 일어나고 누워 있으니, 나의 행실이 그러하다는 것을 ‘옷’으로 보여 준 것이다. 제시간에 성령님이 깨워 주신 대로 기도하고 행할 것을 행해야지, 안 하면 그 행실에 따라 옷이 변하듯 모두 변한다. 비가 내리는 것은 ‘게으르다’ 함이다. - 모두 이와 같다고 깨우쳐 주려고 끝까지 보고 성령님이 계시해 주신 것을 전한다. 누구든지 이같이 안 보여도 <자기 행실>에 따라서 그러하다는 것을 깨달아라. - 하나님, 성령님, 성자가 나타나 보이지 않아도 <만물>로 보이고 깨닫게 하고, <생각>으로 깨닫게 하고, <각 사람의 몸>을 쓰고 행하신다. <신>을 보려 하지 말고 가장 잘 보이는 <혼>을 통해서 보고 깨닫고,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만물>을 통해서 깨달아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가장 쉬운 방법’인 <혼>을 통해, <만물>을 통해 삼위일체를 나타내고 보여 주며 깨닫도록 역사하신다. 고로 항상 기도하고, 부르고, 찾고, 대화하고 물어보아라.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 하루 종일 성령이 옆에 있어도 안 보인다. 영안이 열린 자는 순간 본다. - 성령이 안 보여도 역사는 하신다. 생각해라. 불러라. 대화해라. 합당하면 ‘자기 생각’을 쓰고 자주 행하신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10 - 대화다. 설교를 듣고 강의를 듣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니다. 그것만으로는 신앙생활을 충분하게 하지 못한다. 늘 삼위일체와 대화다. 구원자와 대화다. 형제들과 대화다. - <말씀>은 ‘길’이다. 이 길을 가면서 삼위일체와도, 구원자와도, 형제와도 이야기하면서 가는 것이다. - 사람은 ‘생각’으로 살아간다. <생각>은 실상 ‘말’이다. 사람은 ‘말’을 하면서 살아간다. 고로 ‘생각해라’ 함은 ‘말해라. 불러라. 대화해라.’ 함이다. 하나님, 성령님, 성자와 구원자를 생각하라 했다. 이는 하나님, 성령님, 성자와 구원자와 대화하라 함이다. 삼위일체와 구원자와 대화하며 살아가기다. <말>은 실상 ‘행동, 실천’이다. 사람은 ‘행하면서’ 살아간다. 고로 ‘말해라’ 함은 ‘행해라. 실천해라.’ 함이다. 말씀을 듣고 신의 생각을 받아 행하면서 살아가기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11 2015년 08월 09일 주일 다른 길이 있으니 목매지 말아라 [ 시편 23편 1-2절 ]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1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be in want.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2 He makes me lie down in green pastures, he leads me beside quiet waters,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7월 26일 주일, 8월 2일 주일말씀에 이어서 오늘은 <생각에 대한 세 번째 말씀>을 전해 준다고 했지요? 그런데 이 말씀은 이번 주 수요일에 전해 주겠습니다. 오늘은 이보다 더 먼저 급히 전할 말씀을 전해 주겠습니다. ◎ 지금까지 <생각>에 대해서 엄청나게 많은 말씀을 해 주었습니다. <생각>에 대한 말씀은 끝이 없습니다. 지금까지도 <생각>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해 주었고, 7월 26일 주일과 8월 2일 주일에도 또 <생각>에 대한 말씀을 해 주었고, 이번 주 수요일에도 <생각>에 대한 말씀을 해 줄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주 수요일에 한 번 더 <생각>에 대한 말씀을 해 주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나간 <생각>에 대한 말씀을 총집합해서 책으로도 만들어서 모두 보게 해 주기 바랍니다. ◎ <생각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내용 - 생방송 때 설명) ◎ 그렇다면, 오늘은 어떤 말씀을 전해 줄지 궁금하지요? 오늘 말씀의 주제는 ‘다른 길이 있으니, 목매지 말아라.’ 입니다. ◎ 오늘 말씀이 어떤 말씀이냐고요? <주제> 속에 <핵심>이 들어 있습니다. 자기 개인이나, 가정이나, 단체나, 민족이나 <정말 중요하고 중요한 계획한 일>이 자기 실수로 안 됐다고 낙심하고, 마음 애태우고, 자포자기하며 그것에 목매지 말아라. <다른 길>이 있다. - 이러한 뜻을 담은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현재에도 미래에도 이런 일을 당할 때마다 언제든지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길>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니 그때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구원자를 부르면서 <다른 길>은 무엇이냐고 생각나게 해 달라고 간구하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정말 잘 들어야 됩니다. 다른 생각을 하면, 문제의 답을 못 듣고 지나가 버립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한 가지를 가지고 “이와 같이 이러하다.” 하면서 생활 속에 수백 가지를 계시해 주고 말씀해 주십니다. ◎ 이제 오늘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7월 말경, 올해 여름 수련회를 며칠 앞둔 상황이었습니다. 이미 <수련회 말씀>은 보낸 상태였지만, 수련회를 위해 ‘다른 것들’도 준비해서 보내야 했습니다. 8월 1일 토요일에 첫 수련회가 시작되니, 늦어도 7월 30일 목요일에는 준비한 것들을 다 우편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잠언 150여 개를 써 놓고, 수련회 때 준비할 것의 핵심을 글로 써서 다른 편지들과 함께 큰 봉투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우편으로 부치기 전에 빠진 것이 없는지 방바닥을 자세히 살폈으나 빠진 것 없이 다 봉투에 넣었습니다. 그래서 마감 3분 전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전날부터 이것 때문에 너무 신경을 썼는데, 불가능한 것들을 다해서 보내고 나니 속이 시원했습니다. 편지를 보내고 나서 행여나 또 빠뜨린 것이 없는지 다시 봤습니다. 예전에도 그렇게 확인하고 보냈는데도 중요한 것 한 장을 빠뜨리고 보낸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오늘까지 편지를 못 보내면 수련회 때 해 줄 것을 해 주지 못하여 섭리사 전체에게 영혼의 양식을 전해 주지 못하여 1년에 딱 한 번뿐인 수련회의 때를 놓치게 되기 때문에 혹여 한 장이라도 빠졌는지 다시 확인했습니다. 다 확인하고는 성령님께 말했습니다. “성령님, 감사합니다. 최고로 신경을 쓰고 정신일도해서 할 일을 다 하고 보낼 것들을 속 시원하게 보내고 나니, 그동안 애쓰면서 힘들었던 몸이 다 풀립니다.”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속 타는 시간이 끝났으니 물이나 마실까?’ 하고, 방바닥을 봤는데, 글쎄 글을 써 놓고 늘어놓은 종이들 중에서 딱 한 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한 장’이 수련회 때 해야 될 것들을 기록한 것으로 보낸 편지들 중에서 최고 핵이 되는 중요한 한 장이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가장 중요한 한 장이 빠진 것입니다. ‘이런, 어쩌지? 큰일 났다! 빨리 이 한 장을 따로 다시 보내야겠다.’ 하고, 3000원짜리 우표를 붙여서 다시 보내려고 하니, 시간이 다 돼서 책임자가 떠난 상태였습니다. 왜 이 중요한 한 장이 빠지게 됐나?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100% 내 잘못이었습니다. 항상 편지를 쓰고 나면, 빠뜨리지 않고 보내도록 즉시 봉투에 넣으라고 성령님도 성자도 말씀하셨는데, 내가 못 넣었기 때문입니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12 하필이면 수련회 때 어떻게 하라고 지시한 것을 기록한 아주 중요한 한 장을 빠뜨리다니, 정말 난감했습니다. 한숨을 쉬면서 내 머리를 나무랐지만 소용이 없었고, 환경을 미워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내가 행한 일이니, 내 자신이 한심하고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편지를 써서 봉투에 넣고 빠진 것이 없는지 네다섯 번이나 확인했는데 왜 안 보였지?’ 하며 내 자신을 책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다른 길이 있는데 목매지 말아라.” 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길>로는 이 편지 한 장을 보낼 길이 전혀 없었습니다. 편지는 오늘 아까 그때까지 보냈어야 딱 수련회 시간에 맞춰서 도착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편지 보내는 시간이 마감됐으니, <다른 길>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며 성령님께 물었습니다. 이때 감동이 되기를 “내일 조은이 면회 오지 않느냐. 내일 빠진 것을 직접 말로 해 주면 된다. 그러면 편지는 내일 오전 10시에 도착하지만, 조은이는 내일 오전 9시에 면회를 오니 한 시간 더 빨리 빠진 것들을 전해 줄 수 있다.” 하셨습니다. 달력을 보니, 내일이 조은이가 면회 오는 날이라고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내일 아침에 전해 주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편지로 못 보낸 한 장의 내용을 내일 면회 때 전해 주려고 준비했습니다. 그때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마음이 일순간 편해지고 문제가 해결되어 기뻤습니다. 조은이가 하루 빨리 왔어도 안 되고, 하루 늦게 와도 안 되는데, 딱 내일 온다고 하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일 조은이가 정말 오려나? 만일 못 오면 어떻게 하지? 모레 오면 안 되는데’ 하면서 또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때 조은이가 보낸 편지를 보니, 내일 ‘7월 30일 목요일’에 꼭 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께 내일 목요일에 꼭 오게 감동을 달라고 했습니다. 전에는 조은이가 ‘금요일’에 면회를 왔는데, 지난주부터 다시 하루 당겨서 ‘목요일’에 면회를 왔습니다. <3.16>을 제대로 맞지 못하여 충격적인 일을 겪고, 이후에 그 같은 날이 또 있다고 하셨는데, 정말이었습니다. 성령님은 이미 아시고, ‘금요일’에 면회를 오면 늦어서 안 되니 조은이에게 감동을 주시어 ‘목요일’에 오게 하신 것입니다. <3.16>을 제대로 맞지 못하여 최고로 애간장을 태운 자가 선생과 조은이었습니다. <책임자>만 더욱 애간장이 타는 것입니다. 그때는 정말 절벽이라도 뛰어 내리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구원역사 6000년 만에 최고의 역사를 진행하시는 날인데, 그 날이 <영 휴거 되는 날>인지 제대로 몰라서 그렇게도 후회가 되고 억울했습니다. 이번에도 <3.16> 때와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3.16> 때 확실히 이야기하지 못하여 제대로 못 맞았지만, 그 후에 다시 이야기해 주어 <부활 주일>에 3.16의 한을 풀고 문제를 해결해 버렸지요? 그때 성령님이 나와 함께 ‘조은이’를 쓰고 해결했는데, 이번에도 또 ‘조은이’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수련회 행사 때 선생이 100% 하지 못하여 실수했지만, 이로 인해 ‘교훈’을 얻었습니다. 선생이 쉬지도 못하고 죽도록 행했어도 인간인지라 ‘내 일’에 실수를 하여 큰일 날 뻔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요? 살다 보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자기 일’에 실수하여 자기를 원망하고 한탄하고 포기하며 그 일에 목을 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삼위일체가 예비하신 다른 길>이 있습니다. 마치 첫 번째 <3.16>에 못 한 것을 두 번째 <부활 주일>에 하여 문제를 해결하듯이, <다른 길>이 있으니 목매지 말고 <그 길>로 하라고 섭리사 전체에 특별히 계시를 해 주는 것입니다. 먼저 선생이 충격적으로 뼈저리게 깨닫고 ‘섭리인 모두에게 꼭 이 말씀을 해 줘야겠다.’ 깨닫고 오늘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잊으면, 자신의 무지로 100% 못 해서 실수한 것을 <다른 길>로 해결하지 못하고 목을 매고 애간장을 태우다가 끝나게 됩니다. 그러면 손해가 되고, 한이 되고, 괴로워서 기쁨이 없습니다. 자기가 실수하고 못 한 것을 생각하며 한탄만 하고 낙심만 하면 안 됩니다. <삼위일체가 예비하신 다른 길, 달리 행할 길>이 있습니다. 고로 꼭 할 일을 못 했다고 포기하지 말고, 기회를 놓쳤다고 그 일에 목매지 말고, 정신 차리고 기도하여 빨리 <다른 길>을 찾기 바랍니다. 사람이 <자기 할 일>을 못 하고 기회를 놓치면 당황하고, 포기하고, 정신과 생각이 혼돈되어 주저앉게 됩니다. 그때는 아무 생각도 안 납니다. 고로 옆에 있는 사람이 쫓아가서 다독이며 생명을 구해 줘야 됩니다. 그때 기도하며 <다른 길>을 찾으면 <다른 길>이 있으니, 성령님과 함께 그 길을 찾고 기쁨으로 잔치하기 바랍니다. 다음 날 목요일에 조은이가 면회를 와서 편지를 써 놓고서 못 보냈던 핵심 한 장의 내용을 심정으로 전해 주었습니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13 그리고 담당자에게 그 내용을 전해 주게 하여 수련회 때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잠언에 대한 내용>이 중요했는데, 다 전달해 주어 차질 없이 진행했습니다. 모두 자기가 실수하여 할 일을 못 하고 기회를 놓쳤어도 <달리 할 수 있는 길>이 있으니, 그 길을 찾기 바랍니다. 이번 수련회 때도 선생이 <잠언>을 보내어 잠언을 읽을 담당자를 세워서 읽어 주게 하기도 했고, 산행 코스에 잠언을 붙여 놓고 스스로 읽어 보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 150개의 잠언은 <하나님의 말씀>이라서 평생 도움이 되고, <말씀>이 곧 ‘하나님, 성령님, 성자’가 되어 그때마다 우리를 지도해 주십니다. 대학부 청년부 수련회에 다녀온 사람들은 이 잠언들을 읽고 들었지요? 수련회 잠언들 중에서 특히 생각나는 잠언 있어요? 각각 생각나는 잠언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연이 있는 곳’에 역사를 펴신다. 이 잠언도 기억나요? 어떤 것을 근본으로 두고 성자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는지 이 잠언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수천 명 중의 30명 정도 될 것 같습니다. 기도를 많이 해야 ‘잠언의 근본 뜻’을 깨닫고, 같이 기뻐하며 잔치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월명동>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그 사연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얽힌 사연’입니다. 사연이 있으니, 하나님께서 <월명동>에 역사를 펴셨습니다. <인대산>에도 ‘사연’이 있기에 올해 수련회 때는 그쪽을 산행하게 하면서 ‘계곡 피서 역사’를 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릿골>에도 ‘사연’이 있기에 그쪽을 꾸며 놓고 가보게 했습니다. <치타솔>이 있는 곳도 ‘사연’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그에 해당되는 잠언’도 붙여 놨습니다. 올해 수련회 때는 삼위일체와 주의 돛, 시대 말씀의 돛을 확실히 달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두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처럼 요동하거나 흔들리지 않도록 확신에 서는 계기로 삼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난날 하나님, 성령님, 성자와 선생과의 사연이 있는 곳을 거닐며 깨닫고, 여러분도 하늘과 사연을 만들고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사연>은 ‘사랑’입니다. <끝> 오늘은 자기 실수로 자기 할 일을 못 하고 기회를 놓쳐서 애를 태우며 후회하여 목만 매고 있는 자들에게 <해결 방법>을 주었습니다. 곧 다시 <다른 길>을 주며 기회를 주니 정말 잘 행하여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모시고 사랑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며 잔치해야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하나님의 역사도 그러했습니다. <구약>에서 못 한 것은 때가 되어 <신약> 때 ‘후 아담, 예수님’을 통해서 하시며 신약역사 2000년 동안 잔치했습니다. 또 <신약>에서 못 한 것은 때가 되어 <성약> 때 ‘제3의 아담, 보낸 자’를 통해 하게 하여 1000년 동안 <휴거 혼인 잔치>를 하게 합니다. <영>은 성자와 함께 ‘천국 황금성’에서 혼인 잔치를 하고, <육>은 분체와 함께 ‘땅’에서 혼인 잔치를 합니다. <끝> 저 기성은 아직도 기다리고 있고, 우리 섭리역사는 <하나님의 시대 역사>를 맞고 지금 역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그렇게도 기다렸던 역사입니다. <재림과 휴거의 역사>입니다. 저들은 그 희망으로 어떤 환난과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신약역사 2000년 동안 잔치하며 살았습니다. 섭리역사는 그 희망을 이룬 역사입니다. 더 이상 기다리며 잔치하는 역사가 아닌, 맞고 뜻을 이루며 잔치하는 역사입니다. 이 가치를 정말 깨닫고 전심으로 행하며 살아야 됩니다. 이 귀한 것을 받고도 <가치>를 몰라서 뺏기면 안 됩니다. 그런데 따라오면서도 <가치>를 제대로 모르고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생각>이 죽어서 <생각>을 다른 데 뺏겼습니다. 고로 감사하고 기뻐하지 못하고 ‘섭리의 삶’을 내던지고 그 좋은 ‘천국 황금성 길’을 포기하고 제 갈 길을 가기도 합니다. <보화가 묻힌 밭의 가치>를 모르고 내던지고 가는 자입니다. 그러면 <보화가 묻힌 밭>이 버림받을 것 같지만, 결국 <본인>이 버림을 받고, 그 <밭>은 ‘다른 사람’이 차지하여 그 사람이 자기 대신 영원히 영광스럽게 살게 됩니다. <사망길>은 뻔합니다. <사망길 자체>가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길이라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으셔도 그 길로 가면 너무도 허무하고 처참합니다. 그 길은 <자기 생각>과 달라서 즉시 후회하고, 거기서 이를 가는 고통을 겪으며 별의별 생각을 다하게 됩니다. <새 역사 하나님의 품>을 떠나면 별 볼일 없는 가련한 한 인생에 불과합니다. 섭리사에 있을 때나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주와 함께 그렇게 아끼고 살피며 챙겨 주지, 세상은 정말 삭막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변화무쌍하여 처음에는 그 길로 가면 편할 것 같아도 곧 마음이 변하고 후회하게 됩니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14 <새 역사 하나님의 품>을 떠나니 <영원한 사랑과 생명의 세계>가 자기와 끊어지고, <영원한 고통과 사망의 세계>만 자기를 기다리게 됩니다. 고로 영도 혼도 아무 희망과 낙이 없고, 육신이 별짓을 다해도 영과 혼은 다 포기해 버립니다. 육체덩이만 마음과 함께 살아가지, 영과 혼은 육과 같이 즐거워하며 살지 않습니다. 그러니 <황금성 천국 길>을 가는 자들은 ‘가치’를 알고, 삼위의 정신을 받아 <뜻과 목적>을 두고 요동하지 말고, 하나님, 성령님, 성자와 함께, 주와 함께 끝까지 감격하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사랑하면서 살기를 축원합니다. ◎ 올해 <여름 수련회>에 관한 이야기 하나를 또 해 주겠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철렁하면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100번씩은 감사할 것입니다. 올해 6월에서 7월 초까지 한국은 ‘메르스’로 인해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는 ‘모임’이 다 취소되었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발길이 끊어져 경제적으로도 큰 손실이 일어났고 국가적으로도 큰 손해였습니다. 이로 인해 섭리사도 ‘대모임’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국가에서 ‘완전히 안전하다. 메르스가 완전히 소강됐다.’ 하기 전에는 올해 여름 수련회도 못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국가적 손해도 컸지만, 우리 섭리사가 최고 큰 손해였습니다. 섭리사 수련회는 기성의 수련회와는 달라서 수련회 때가 영적 수련을 하면서 신앙을 무장하여 영적 기반을 확실히 잡는 중요한 때입니다. 하나님의 시대 역사를 펴는 데 있어서 <섭리역사>는 ‘핵의 역할’을 합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고로 이 문제를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면 섭리사만 최고 손해라는 것을 깨닫고, 하루 속히 ‘메르스’가 완전히 사라지도록 극적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다 뉴스를 보니 ‘대전 지역’도 메르스가 심했는데, 점차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름 수련회 때> 이쪽에서 모여야 되는데, 이쪽이라도 메르스가 사라지니 다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국과 세계에서 모여드니, 한국 전체에 메르스가 사라져야 문제가 해결되지, 우리가 모이는 대전 지역에만 메르스가 사라지면 안 되는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전체’를 놓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1장, 19장 말씀을 놓고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가 합당하니 하나님께 상달되어,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메르스’가 점점 사라지게 하셨고, 수련회 전에 ‘메르스’가 완전히 사라져 간신히 때에 맞춰서 <여름 수련회>를 하게 됐습니다. 그리함으로 전도하고, 신앙을 무장하고, 하늘과의 사연을 만들고, 여름 여행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성령님, 성자 앞에 늘 감사 감격하며 기도해야 됩니다. 그래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짜증내고, 포기하고, 낙심하고, 가만히 있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항상 하나님, 성령님, 성자와 대화입니다. <말씀>은 ‘길’이라고 했지요? 말씀만 듣는다고 신앙생활을 하며 휴거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의 길을 가면서, ‘항상 대화’입니다. 이것을 알고 감사 감격하고 기뻐하면서 <여름 수련회>를 최고의 수련회로 삼고 하늘과의 깊은 사연을 만들고 신앙도 무장하기를 바랍니다. ◎ 또 <여름 수련회>에 관한 이야기 하나를 더 해 주겠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철렁하면서 올해 수련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감사 감격할 것입니다. 잘 들어봐요. 올해는 한국에 극심한 가뭄이 찾아왔습니다. 그 영향으로 월명동 소나무들과 각종 나무들도 걱정이었습니다. 나무가 한창 커야 될 때인데 비가 안 오니, 일일이 물을 줘야만 했습니다. 이때 못 크면, 올해 1cm씩 더 못 큽니다. 가뭄이 심하니, 꽃나무들도 다 말라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은 “월명동 호수의 물을 빼지 말고, 그 물을 월명동 전체에 줘라. 가뭄이 극심하다. 메르스, 가뭄 모두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다 하나님과 연관된 일이다. 우리도 조심하자. 월명동에만 비가 오게 하고, 월명동에만 메르스가 없게 하겠냐. 다 연결되어 있으니 우리가 기도하며 조심해야 된다. 호수의 물을 다 빼고 깨끗이 청소해야 호수에 다시 물을 받아서 수련회 때 <월명 파크 수영장>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호수의 물을 빼지 말고 그 물을 나무들에게 주자.” 했습니다. 그 대신 <인대산 계곡>을 준비했습니다. 그곳을 준비하느라 두 달 정도 풀을 베고 청소하고 정리했습니다. 앞으로 장마가 와서 비가 많이 올 것만 생각하고 했습니다. 그러던 중, 교단에서 선생에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월명 호수>를 사용하려면, 지금쯤은 결정을 해 주셔야 됩니다. 물을 빼고 깨끗이 청소하고 다시 물을 채우는 데 약 한 달이 걸리는데, 시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월명 호수>를 청소하는 데 2000~3000만 원의 경비가 듭니다. 어떻게 할까요?”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이 최종으로 결정하여 답을 주기를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15 “지금 <인대산 계곡>을 준비 중이니, 올해는 <월명 호수>를 사용하지 말고 <인대산 계곡>을 쓰게 하자. 그리고 <월명 호수>를 청소할 돈으로 과일 몇 트럭을 사다가 나눠 주자.” 하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8월 1일 대학부 청년부 첫 수련회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시간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표도 많이 붙여서 꼭 제때, 교단에 편지가 도착하도록 하여 보냈습니다. 그런데 4일 후에, 내가 교단으로 보낸 그 편지가 우체국까지 갔다가 다시 나에게 되돌아왔습니다. 알고 보니, 이미 쓴 우표 두 장이 붙어 있어서 다시 되돌아온 것이었습니다. 선생이 잘못 인식하고, 이미 쓴 우표 두 장을 붙인 것입니다. 그래도 그 옆에 새 우표를 더 많이 붙였기에 우표에는 이상이 없었으나, 다시 되돌려 보낸 것입니다. ‘이상하다.’ 하고, 내가 보낸 편지를 다시 뜯어 봤습니다. 그 봉투 안에 든 편지의 내용은 올해는 <월명 호수>에 물을 안 받을 것이니 호수의 물을 빼지 말라는 편지였습니다. 이 편지는 꼭 가야했는데, 못 가고 내게 되돌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데 깨닫게 됐습니다. 성령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편지는 가면 안 된다. 올해는 너무 더워서 꼭 <월명 호수>를 ‘수영장’으로 써야 돼. 지금 범석이 호수의 물 다 빼고 청소하고 있는데, 이 편지를 받으면 하다가 중단한다.” 하셨습니다. 만일 성령님이 이런 식으로 상황을 틀고 막지 않으셨다면, 올해 <월명 호수>를 ‘수영장’으로 사용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후에 알고 보니, 장마철에도 비가 많이 안 와서 <인대산 계곡>에 물이 흘러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호수의 물을 안 빼고 청소를 못 하고 다시 물을 안 채웠으면, 올해 이 찜통더위에 몸을 식히지도 못하고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 후에 범석이에게 편지했더니, “월명동은 제가 알아서 하는데, 호수에 물을 빼고 청소하는 데 무슨 2000만 원씩 들어가요? 포클레인으로 호수 안의 자갈을 뒤집고 씻는 데 기름 값과, 청소하는 자들 식비까지 500만원이면 충분합니다.” 하고, 후에 내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모두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성령님이 이리저리 상황을 틀고 막아서 좋게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산전수전을 겪은 끝에 기적으로 <월명 파크>를 사용하게 됐습니다. 2014년에는 ‘세월호 사고’로 모두 조심해야 하는 때라서 <월명 호수>를 사용하지 못해서 손해였습니다. 올해도 사용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기적적으로 사용하게 됐습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가슴이 찡하지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이같이 늘 기적적으로 행하시어 우리가 즐겁고 기쁘게 잔치할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이를 깨닫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진정 감사하다고 진정 사랑한다고 해야 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우리가 실수해도 이같이 도우시며 <초상집>이 될 것인데 <잔칫집>이 되도록 기적으로 역사해 주십니다. 개인도, 가정도, 민족도, 섭리사도 모두 그렇게 해 주시니 늘 감사하고 기뻐하며 낙심하지 말고 해야 됩니다. (믿습니까?)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 자기가 계획한 일, 자기가 한 일이 자기 실수로 못 하여 기회를 놓쳤다고 당황하고, 한탄하고, 애태우고, 낙심하고, 포기하고, 주저앉으면 안 된다. <삼위일체가 예비하신 다른 길, 달리 행할 길>이 있다. 고로 꼭 할 일을 못 했다고 포기하지 말고, 기회를 놓쳤다고 그 일에 목 매지 말고, 정신 차리고 기도하여 빨리 <다른 길>을 찾아라. 그리고 하나님, 성령님, 성자와 주와 함께 <그 길>로 행하면서 기쁨으로 잔치해라. (했습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16 2015년 08월 12일 수요일 <생각>에서 성공한다 [ 요한복음 10장 35절 ] 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35 If he called them 'gods,' to whom the word of God came-and the Scripture cannot be broken-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7월 26일 주일, 8월 2일 주일말씀에 이어서 오늘은 <생각>에 대한 세 번째 말씀을 해 주겠습니다. 주제는 ‘생각에서 성공한다.’입니다. 이 말씀은 원래 이번 주 주일에 해 주려던 말씀입니다. 그런데 주일에는 ‘다른 길이 있으니 목매지 말아라.’에 대해 먼저 말씀해 줬습니다. 그래서 오늘 수요일에 <생각에 대한 세 번째 말씀>을 전해 주게 됐습니다. 다음 주 수요일에 한 번 더 <생각>에 대한 말씀을 해 준다고 했습니다. ◎ <생각>에 대한 말씀은 끝이 없습니다. <생각>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지금까지 전해 준 <생각>에 대한 말씀을 총집합해서 책으로도 만들어서 모두 보게 해 주라고 했으니, 자기도 늘 써먹고, 생명들도 가르치고, 강의하고 설교하는 데도 늘 사용하며 전해 주기 바랍니다. ◎ 생각에서 성공한다. - 오늘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전초> 하나님은 <인간의 육신>을 창조하시면서, 육신의 핵인 <뇌>를 창조하셨습니다. <뇌>에서 ‘생각’을 하게 하셨고, 그 <생각>을 가지고 <자기 육신>을 움직이게 하셨습니다. 사람은 <생각>을 가지고 <뇌>를 작동시키고 <육의 몸>도 사용하기 때문에 <생각>을 제대로 못 하면 <육>도 <뇌>도 다 무용지물입니다. <TV>를 만들었는데 <화면>이 안 나오면, TV는 무용지물이라고 했지요? 이와 같이 <자기 몸과 지체>가 멀쩡해도 <생각>이 잘못되면 무용지물입니다. <생각>이 고장 나면 ‘지체’가 고장 난 것과 같고, <생각>이 정상이 아니면 ‘지체’가 제대로 있어도 제대로 움직이며 사용할 수 없습니다. 고로 <생각>이 고장 나서 기능을 상실하면, 큰일은커녕 작은 일도 못 하고 <만사>가 실패입니다. 사람에게는 <생각>이 ‘핵’입니다. <생각>이 무기력하고 감각을 잃으면 - <육의 삶>이 망가져서 실패하고, - <구원>도 <휴거>도 실패하고, - <혼>도 <영>도 영원히 실패하게 됩니다. 사람은 <생각>에서 성공합니다. <생각>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합니다. 그런데 때마다 <하고 싶은 생각>이 있고, <하기 싫은 생각>이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인데 ‘하기 싫은 생각’이 들면 실패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인데 ‘하고 싶은 생각’이 들면 실패합니다. <해야 할 일>인데 ‘하기 싫은 생각’이 드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생각>에서 ‘필요성’을 못 느끼니 의욕이 없기 때문이고 둘째, 가만히 있으면 <육신>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배가 고프면 배고픔을 느껴서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요? 그리고 <육신>도 배고픔을 느끼게 됩니다. 그때 ‘하기 싫은 생각’을 이기고, 몸이 편하게 가만히 있는 것보다 일어나 몸을 움직이며 스스로 밥을 먹으려 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어떤 자극’이 오면, 움츠렸던 생각과 몸을 펴고 일어나 행하면서 이깁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어떤 일을 놓고 ‘하기 싫은 생각’에 부딪히게 됩니다. <생각>도 하기 싫은 생각이 들고, <몸>도 하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마치 하기 싫다고 계속 밥 안 먹고 누워만 있으면 못 견디듯이, 할 일을 안 하고 계속 누워서 가만히 있으면 못 견딥니다. 지금 당장은 하기 싫어도, 결국은 해야 될 일입니다. 하기 싫어도 힘들어도 <그보다 강한 생각>으로 꺾고 이겨야 됩니다. 그래야 제때 행하게 됩니다. 때가 지나 어쩔 수 없어서 억지로 하는 것은 차 떠난 후에 걸어서 가는 격입니다. 성령님께서 <생각의 역사>는 해 주십니다. 그러나 마치 어린아이가 말을 안 들으면 엄마가 아이의 몸을 들고 가는 것처럼 ‘우리의 몸’을 직접 들어다 주지는 않으십니다. <신>도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전지전능하셔도 ‘역사하시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전능하신 신>이라도 ‘우리의 몸’을 직접 들어다 주지는 못하십니다. 엄마가 어린아이에게 설명해 주면서 “가자!” 하고 말해 주며 <생각>을 돌려 주면서 아이를 움직이게 하듯이, 성령님은 우리에게 <강한 생각>을 주시면서, 사람이 ‘자기 몸’을 움직이게 하십니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17 그런데 그 말을 듣고 자기가 안 가면, 못 가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신의 책임 분담’만 해 주십니다. 나머지는 <성령의 생각>을 받아서 ‘자기’가 해야 됩니다. 가령 성령님이 새벽에 깨워 준다고 합시다. 깨워 줬으면, 일어나는 것은 ‘자기’가 해야 됩니다. 성령님이 직접 그 몸을 일으켜 주고, 잡아당겨 줘도, 다시 잠이 들면 얼굴을 씻겨 주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들에게 자기가 필요한 대로 쓰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태양’이 있으면, 이 태양을 자기가 필요한 대로 쓰는 것입니다. <태양 에너지>를 연구하여 쓰게 했으니 필요한 사람은 ‘태양 에너지’를 쓰고 사는 것이고, 자기가 싫으면 ‘태양 에너지’를 못 쓰고 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구원자를 통해 <말씀>을 주시고, <강한 생각, 삼위의 생각>을 주시며 인간이 ‘자기 몸’을 가지고 행하게 해 주십니다. 직접 팔을 잡아서 끌어당기고, 몸을 들어다 옮겨 주고, 손과 발을 움직여 주지 않으십니다. <신의 한계선>까지만 공의롭게 해 주십니다. 고로 구원자를 통해 <하나님과 성자가 주시는 말씀>을 듣고, <성령이 주시는 감동과 은혜>를 받고, <삼위의 생각>으로 강하게 무장하여 자기가 ‘자기 몸’을 가지고 행해야 됩니다. 그리고 사람끼리는 ‘육’으로 서로 통하니, 약한 자들을 붙잡아 주고 이끌어 줘야 됩니다. <자기>가 ‘자기’에 대해서 가장 잘 압니다. 고로 <자기>가 ‘자기 자신’을 파악하고, <삼위의 생각>을 받아서 ‘생각이 신’이 되어 <자기>를 다스리며 <자기>를 위해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있어도 인생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살아 주지 않으십니다. 전능자는 ‘전능자의 코스’대로 행하며 살아야 됩니다. <자기가 할 일>은 ‘자기’가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이 그것까지 일일이 다 해 주시겠습니까? 로봇도 움직이도록 입력을 해 두면 움직이는데, 하물며 사람이 <뇌, 생각, 몸, 혼, 영>이 있는데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서 하나님이 다 해 주기만을 바라면 되겠습니까?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게 하려면, 하나님이 왜 인간을 창조하셨겠습니까? 가정의 부모를 보세요. 아무리 부모라도 <자녀가 할 일>을 다 해 주겠습니까? 아무리 사랑하는 애인이라도 자기 할 일은 안 하고 <애인이 할 일>을 다 해 주겠습니까? 만일 그렇게 한다면, 본인은 언제 ‘자기 삶’을 살겠습니까? 아무리 부모라도, 사랑하는 자라도 할 일도 다르고, 학교나 직장도 다르고, 먹는 것도 다릅니다. 고로 부모라도, 사랑하는 자라도 <자녀가 할 일>과 <애인이 할 일>을 대신 다 해 주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주고 여건을 만들어 주고 자기 할 일을 하러 갑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주도 그렇게 하십니다. 인간이 아무것도 안 하려면 왜 존재합니까? 인간은 생각하고 행하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구원자를 통해 <말씀>을 주시며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고로 그 말씀을 듣고 <삼위의 생각>과 <주의 생각>을 가지고 <자기>가 ‘자기 몸’을 움직이면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성령님, 성자는 ‘신’으로서 <영>으로 존재하십니다. <육>이 아닙니다. 고로 <육신을 가진 인간>과는 다릅니다. 그러니 <인간>이 ‘신의 생각’을 받아서 <신>과 하나 되어 ‘자기 할 일’을 해야 됩니다. <자기>가 ‘자기 일’을 하면서 희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어떻게 하는지 <방법>을 가르쳐 주고 할 일을 하러 떠나시고, 우리가 <그 방법>대로 하면 삼위일체가 강하게 역사하신다 생각하고 꼭 자기가 행해야 됩니다. ★ 자기 자신에게는 신의 몸인 ‘영의 몸’이 있고, 신에게는 없는 ‘육의 몸’이 있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혼의 몸’이 있습니다. 곧 사람에게는 <몸>이 ‘세 개’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생각>까지 더하면, ‘네 가지’를 가지고 행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우리를 보고 “너, 나 좀 도와줘라. 나는 육신이 없으니, 세상에서 행할 때는 네 육신을 써야 되겠다.” 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늘 하나님께 도와달라고만 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도우시지요. 하지만 ‘작은 것, 자기가 할 수 있는 것’까지 지나치게 해 달라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신의 노선’까지만 도우시며,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들>은 인간이 할 수 있게 하십니다. 이것을 모르면, 무조건 삼위께 도와달라고 하면서 “왜 불렀는데, 간구했는데 안 도와주시지? 하나님, 성령님, 성자는 나를 싫어하시네. 하나님은 없는 거야.” 하게 됩니다. ★ 자기 육도 있고, 도울 혼도 있고, 휴거된 영도 있고, 생각도 있고, 환경도 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말씀도 있으니, <자기 일>은 ‘자기’가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고로 도와달라고만 하지 말고, 신이 일으키고 잡아당겨 주고, 끌어서 해 주기까지 원치 말아요.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18 <자기>가 ‘삼위의 생각’을 받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해 놓고, 그래도 힘이 부족하면 삼위께 도와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육>으로 나타나서 도우시는 것이 아니라 감동을 주며 도우시고, 생각의 힘을 주며 도우시고,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며 도우시고, 여건을 틀어 도우시고, 만물을 통해 도우시고, 말씀을 주어 깨닫게 하며 도우시고, 합당한 사람을 통해 도우십니다. 그러니 이때는 “내가 하고 싶어서 했다. 사람이 나를 도왔다. 환경이 좋아져서 할 수 있었다.” 하지 말고,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해야 됩니다. 사람은 <생각>에서 성공한다. 성령님은 새벽에 이 한마디를 해 주시고, 자기 일을 하러 가셨습니다. 선생이 그 말씀을 받고, 모두에게 이 말씀을 이해시키기 위해 길게 풀어서 말씀해 줬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자기 인생, 자기 할 일>은 자기가 행함으로 거기서 희락을 얻고 누리게 됩니다. <자기>는 ‘행하는 몸’이 되고, <삼위와 주의 생각>이 ‘자기 생각’이 되어서 날마다 ‘삼위와 주와 함께 행하기’입니다. 사람이 ‘행하는 시동’이 걸리면 가만히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누워 있거나 하지 못합니다. 그때는 일어나 행하게 됩니다. 고로 어떤 상황에서도 행하게 하는 <말씀>을 놓지 말고, <성령의 불>을 받아서 행해야 됩니다.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듯, 행하는 자에게 운이 흘러갑니다. 자꾸 행할수록 서툰 것이 유능해집니다. 고로 유능하게 행하여 많이 얻으려면, 많이 행하면 됩니다. 자꾸 행하고 많이 행하되, <불의>를 자꾸 많이 행하면 안 되겠지요? <불의>를 행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기다리고 있고, 불의를 끊지 못하면 매일 ‘망하는 길’로 가게 됩니다. 자꾸, 매일, 많이 행하되 <삼위의 생각>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매일 미련 없이 <삼위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매일 ‘승리하는 삶’을 사는 자입니다. 사람은 <생각>에 따라서 ‘다른 사람’이 됩니다. 고로 <자기 생각>에 ‘불의, 악한 말’이 들어가지 않도록 <의로운 생각, 삼위의 생각, 주의 생각>으로 해야 됩니다. 그러려면 ‘매일 말씀 듣기, 매일 기도하기’ 입니다. 또 ‘매일 삼위일체와 주 부르기. 매일 휴거된 영 부르기’ 입니다. 또 ‘매일 삼위를 더 사랑하기. 주와 일체 되기’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시대마다 ‘땅의 합당한 자의 육신’을 쓰고 오셨습니다. 왜 오셨겠습니까? <삼위가 보낸 자, 땅의 구원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 인생 창조의 뜻’을 가르쳐서 인생들이 그 말씀을 믿고 행하여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따라오게 하려고 오셨습니다. 그리함으로 <육신>은 ‘땅에서 천국의 삶’을 살고, <영>은 ‘천국’에 와서 살게 하려고 오셨습니다. 고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보낸 구원자’를 따라서 행하면, 먼저 <생각의 차원>이 높아지게 되고, 그로 인해 <행실의 차원>이 높아져서 땅에서 기쁨으로 <신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함으로 <영>이 차원 높게 변화되어 <영>은 ‘천국’에서 ‘신의 삶’을 살게 됩니다. <생각의 결과>로 ‘육의 인생’이 결정되고, <육의 행실의 결과>로 ‘영의 운명’이 결정되어 영계에서 ‘영이 거할 곳’이 결정됩니다. 고로 <자기 뇌와 생각>을 놀리지 말고, 매일 써야 됩니다. <생각>을 놀리면,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 것을 뺏기게 됩니다. <생각의 차원>을 높여 ‘신’이 되게 해야 됩니다. <생각의 차원>을 높이고 생각하면 <생각의 차원>이 낮을 때의 생각과 정말 다릅니다. 그로 인해 육의 삶, 영의 삶이 결정됩니다. 고로 <생각의 차원>을 높이고 결정하고 행하기 바랍니다. ★ <자기 생각>이 ‘신’이 돼야 전능하신 삼위일체와 통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삼위일체는 ‘신의 생각’으로 통하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는 ‘신의 생각’으로 통한다. - 이 말은 인간이 ‘삼위일체’를 깊이 생각할 때 생각나게 해 주고, 깊이 생각할 때 감동을 주고, 깊이 생각할 때 느끼게 해 준다는 말입니다. 또 생각을 깊이 할 때 ‘만물’로도 깨닫게 하시고, 생각을 깊이 할 때 ‘육을 자극’해서 느끼게 하십니다. 어느 때는 생각을 깊이 할 때, 혼이나 영이 영계에 가서 ‘영’을 만져 느끼게도 하십니다. 고로 <생각>을 ‘신의 생각’으로 만들기 바랍니다. <자기 생각>이 ‘신의 생각’이 되려면, 구원자를 통해 <신의 말씀>을 받으면 됩니다. ◎ 말씀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마음·정신·생각>과 <몸>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생각>이 닿으면 ‘손’이 닿고 ‘몸’이 닿은 것입니다. 고로 <생각>에서 허락하면 ‘몸으로 진행’됩니다. 모양과 형체는 달라도 <연결된 것>은 ‘하나’입니다. <인간>과 <하나님>이 연결됐으면 ‘하나’입니다. 끊어졌으면 ‘둘’입니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19 ★ 하나님, 성령님, 성자와 끊어지고 삼위가 보낸 구원자와 끊어지면 <생명>에서 떨어져 나가 ‘사망의 인생’이 됩니다. <생명>과 끊어지면 ‘사망’이고, <생명>과 연결되면 ‘생명’입니다. ★ 끊어지지 않아야 ‘상대의 심정, 마음, 상황’을 압니다. <주>와 끊어지지 않아야 ‘주의 심정, 마음, 상황’을 알고, <삼위>와 끊어지지 않아야 ‘삼위의 심정과 생각’을 알게 됩니다. <하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삼위와 주의 생각, 심정’을 모르고 행하니, 그러다가 결국 ‘음부, 무저갱,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끊어지지 않고 연결돼야 ‘하나’입니다. 삼위와 주와 끊어지지 않고 연결돼야 ‘하나’입니다. 하나이니, 육도 영도 삼위와 주와 항상 붙어서 살게 됩니다. ★ 삼위와 끊어지지 않으려면, 제일 먼저 <생각>이 끊어지면 안 됩니다. <생각>이 삼위와 끊어지면, 결국 <육, 혼, 영>도 삼위와 끊어져셔 사망으로 가게 됩니다. ◎ <생각>이 이리도 중요합니다. 더 깊이 말씀할 테니, 잘 들어 봐요. ★ 자기 영이 휴거됐어도 <자기 육의 생각>이 ‘삼위와 주’와 끊어지면 안 됩니다. 그러면 ‘육신’만 고통이고, 그로 인해 ‘육과 연결된 영’까지 다시 고통을 받게 됩니다. ★ 휴거됐다는 것은 <영>은 이미 ‘천국 황금성의 시민권’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이때부터는 <자기 육의 생각>을 ‘삼위와 주’와 일체 시키고 매일 ‘휴거의 삶’을 살면서 타락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혹여나 <휴거된 영>이 “나 천국에서 살기 싫어.” 해도 하나님이 영원히 이혼을 안 해 주십니다. <영>이 휴거되어 ‘삼위의 사랑의 대상’이 되었고, 그로 인해 ‘황금성’을 차지했고, <육>도 땅에서 계속 ‘휴거의 삶’을 살면서 삼위를 더욱 사랑하며 행하니, 영원히 이혼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 <천국 황금성>에는 한 번 가면,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절대 단 한 번도 들지 않는 곳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요! <천국 황금성>은 더 ‘사랑의 차원’을 높이면서 영원히 ‘삼위와 사랑하며 사는 세계’입니다. 그곳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단 하루도 변함없이 <영원한 기쁨과 사랑과 만족의 세계>입니다. ★ 고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휴거>만 되면, 인간으로서 최고 성공했다.” 하십니다. 휴거됐으면, 매일 휴거된 자로서 생각을 강철같이 하고, 매일 삼위와 주를 사랑하고 부르고 교통하면서 날마다 휴거의 차원을 높이며 휴거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그 성공은 영원합니다. ★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휴거> 한 가지만 알고 살지 말아라. 휴거됐으니 ‘삼위일체를 더욱 사랑’하고, ‘삼위일체를 더욱 부르고 교통’하며 살아라. <삼위일체 사랑, 교통> 한 가지만 알고 살지 말아라. ‘휴거된 자기 영을 매일 부르며 교통’해라. <휴거된 영> 한 가지만 알고 살지 말아라. <자기 육의 생각, 땅에서의 육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자기 생각’을 강철같이 해라. 그러면 만사가 쉽다.” 하셨습니다. ★ 그리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영과 대화하는 것>은 자기 애인과 대화하듯 쉽다. 그러니 꼭 대화해라. <휴거된 영>은 ‘신’이다. <영>에게 천국에서 본 것도 물어봐라. <휴거된 영>과 같이 <육>도 같이 ‘휴거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라. <육>이 애타게 행해서 <자기 영>을 휴거시켜 천국에 보내 놓고서 왜 <육>은 ‘휴거된 혜택’을 못 누리고 사느냐. <생각>을 뺏기지 말아라. <영>과 같이 <육>도 ‘천국의 삶’을 누려라.” 하셨습니다.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휴거된 자들>을 보고 “귀하고 귀한 자야. 너는 나를 쏙 빼닮아서 멋있다. 나를 쏙 빼닮아서 예쁘고 아름답다.” 하며 안아 주십니다. 그리고 영원 영원히 식지 않는 사랑으로 사랑해 주시며 천국의 어마어마한 것을 다 누리게 해 주십니다. 그 영원한 삶, 영원한 사랑, 영원한 행복, 영원한 기쁨을 뺏기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말씀 마무리> ◎ 오늘 말씀 ‘생각에서 성공한다.’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인생들은 <생각>대로 살아가지요? 고로 <생각>이 ‘신’이 되어 살아야 됩니다. 사람들은 ‘환경’이 변하면, 그때는 보이는 대로 듣는 대로 느끼고 행하게 됩니다. <환경>에 요동하면 안 됩니다. 고로 <생각>이 ‘신’이 되어 자기를 다스려야 됩니다. <생각을 보통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생각은 별것도 아니다.” 하지만, <생각을 극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생각을 정말 신같이 창조하셨구나.’ 합니다. <생각의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생각의 차원>을 높이면 새같이, 비행기같이 날면서 삽니다. ★ <생각의 차원>을 높이되, <삼위일체의 생각>까지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어떻게 하면 <생각의 차원>을 ‘삼위일체의 생각’까지 높일까요?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20 구원자를 통해 전하는 ‘삼위일체의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삼위일체의 말씀을 듣는 것이 신의 차원까지 생각을 높인 것입니다. <신의 생각>을 받아서 그대로 행하면, 자기 육도 혼도 영도 행한 만큼 변화됩니다. 변화된 만큼 그 차원에서 살게 됩니다. 매일 하나님과 성자가 구원자를 통해 주신 <시대 말씀>을 듣고 <성령의 감동>으로 행해야 됩니다. 매일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 때는 ‘권태’가 오기도 합니다. 이것은 당연합니다. 왜요? 하루 종일 일하다 보면 피곤하니, 하기 싫은 것입니다. 일한 만큼 몸이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때 잠깐 쉬면, ‘하기 싫은 마음’이 없어집니다. ★ ‘매일 생각을 잘하도록 기도하기’입니다. ‘매일 신의 생각을 받도록 말씀을 뇌에 새기기’입니다. 그러면 <보통 생각>에서 벗어나 <신의 최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을 늘 실천하기’입니다. ★ 세상에서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모두 <생각>이 좋고 훌륭합니다. 그들은 수많은 생각들 중에서 <강철 같은 생각, 좋은 생각>을 택하여 행했습니다. 좋을 때나, 잘될 때나, 힘들고 어려울 때나 한결같이 <강철 같은 생각, 좋은 생각>을 택해서 행했기에 육적으로든 영적으로든 성공한 것입니다. 세상을 쳐다보려면, 사람들을 쳐다보려면 쾌락, 향락, 이성, 나쁜 것들, 불의한 것들을 쳐다보지 말고 이런 부분을 쳐다보며 자기도 자극받고 육계와 영계를 통틀어 <가장 강철 같고 좋은 생각>인 <삼위의 생각>을 가지고 행하기를 축원합니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21 2015년 08월 16일 주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인간과 사연이 있는 곳’에 역사를 펴신다 [ 창세기 22장 2절 ]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2 Then God said, 'Take your son, your only son, Isaac, whom you love, and go to the region of Moriah. Sacrifice him there as a burnt offering on one of the mountains I will tell you about.' [ 이사야 45장 23절 ] 23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내 입에서 공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 하였노라 23 By myself I have sworn, my mouth has uttered in all integrity a word that will not be revoked: Before me every knee will bow; by me every tongue will swear.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때가 되면 인간과 사연이 있는 곳에 역사를 펴신다.’라는 주제로 말씀해 주겠습니다. ◎ 섭리인 모두 누구든지 과거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영광 돌리던 곳이나, 희망으로 뛰면서 사연이 얽힌 그곳에다 삼위일체는 ‘계획하신 뜻과 목적’을 이루게 하십니다. 오늘은 이 같은 내용의 말씀을 해 줄 것입니다. 말씀을 잘 듣고 지난날 삼위일체와 자기와 얽힌 사연이 있는지 생각하고, 그로 인해 하늘과 맺은 사연을 생각하며, 삼위일체를 모시고 사랑하고 감사하며 뜻 있게 기쁘게 가치 있게 행하며 살기 바랍니다.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전능하신 하나님은 <사연과 뜻이 있는 곳>에 ‘목적을 구상’하시고 <하늘과 사연이 있는 자>의 육신을 쓰고 행하십니다. <과거에 아무 사연도 없는 곳>에는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한때’는 거쳐 가시지만, 그곳에는 ‘뜻’을 펴지 않으시고 ‘목적’을 이행하지 않으십니다. 과거에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며 순교했던 <순교자의 사연이 있는 곳>에는 그들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고 빛내기 위해 성당이나 교회를 세우든지 기념할 곳을 만들어서 현실에 ‘뜻’을 펴 나가십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아들 이삭’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리려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아브라함의 절대 믿음과 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절대 믿음’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자손인 ‘솔로몬 왕’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절대 믿음과 순종의 사연이 있는 그곳>에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며 나아가는 사연의 장소>로 쓰시며 <사연 역사>를 펴셨습니다. 여기서 <제물>은 ‘하나님께 드리는 진수성찬’입니다. 또한 야곱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외가로 가는 길에 <돌단을 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다가 하늘 문이 열리고 천사들이 오르내리던 장소>가 있습니다. <사연이 있는 이곳>에는 ‘벧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곳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장소가 되어 <사연 역사>를 펴 나가게 됐습니다. 또한 모세가 <광야에서 양을 치던 곳>은 사연의 장소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곳으로 인도’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이 주신 10계명’을 받았습니다. 이 밖에도 구약의 선지자들과 사사들도 <하나님과 사연이 얽힌 곳>에서 역사를 펴며 표적을 일으켰습니다. 또한 신약 때 ‘메시아 예수님’을 중심하여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사연이 있는 곳>에 복음을 전하여 역사를 펴 나가고, 성전도 세워 그곳에서 후손들이 하나님을 모시고 영광 돌리며 살았습니다. <끝> 하나님은 <과거에 하나님이 함께하시어 사연이 있었던 곳>에 <하나님과 사연이 있는 사람>을 데리고, 그가 컸을 때 그를 통해, 혹은 그를 따르는 자들을 통해서 ‘뜻 있는 일’을 행하십니다. 한 나라의 왕들도 <자기 사연이 있는 곳>에 ‘기념관’도 짓고, ‘궁’도 짓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이 있는 곳은 원래 산속이었습니다. 그곳은 루이 13세가 사냥하며 별장으로 사용하던 곳으로 <사연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은 파리 시내에서 떨어져 있으니 혹여 전쟁이 일어났을 때 더 안전하다 생각하고, 루이 14세 때 그곳으로 궁을 옮겼다고 합니다. <끝> 사람들도 <사연 있는 곳>에 집을 짓고, 땅도 삽니다. 또 <사연이 있는 사람>과 사랑하고, 결혼하여 같이 살기도 합니다.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사연이 있는 곳>에 <삼위가 사랑하는 자>와 <그를 따르는 자들>과 함께 <사연 역사>를 만들지 않으시겠습니까? 꼭 만드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사연이 있는 자>를 택하시고 전도해 오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시대 말씀을 주시고, 구원자를 알게 하시고, 사랑해 주시고, 구원하고 휴거시켜 <황금성 천국>까지 가게 하십니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22 과거에 울부짖으며 하나님을 찾은 사연, 진리를 찾고 옳은 길을 찾기 위해 간구한 사연, 하늘을 쳐다보며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고 살았던 사연, 선조나 부모가 자손과 자식이 잘되기를 빌었던 사연, 기성에서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며 살았던 사연, 세상에서 살면서 ‘인생이 잘 먹고 잘살고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에 가면 인생의 목적을 이룬 것인가?’ 생각하면서 ‘인생의 허무’를 느끼고 신을 찾은 사연 등 하나님은 <사연이 있는 자>를 택하여 이 역사로 불러오십니다. 자기와 직접적인 사연이 없더라도 선조나 부모의 사연이 자녀에게까지 닿았기에 하나님이 이 역사로 불러오기도 하십니다. 이렇게 <사연이 있는 자>를 택하시고 전도해 와서 시대 말씀을 주시고, 구원자를 알게 하시고, 사랑해 주시고, 구원하고 휴거시켜 <황금성 천국>까지 가게 하십니다. 그런데 ‘사연’을 잊거나 생각하지 않고 ‘가치’를 모르고 살면, 제 갈 길로 가게 됩니다. 섭리사에서 태어난 2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삼위일체와 주와 얽힌 사연을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역시 ‘사연’을 잊거나 생각하지 않고 ‘가치’를 모르고 살면, 제 갈 길로 가서 남남처럼 살게 됩니다. 모두 ‘삼위일체와 얽힌 사연’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섭리사에 와서 시대 말씀을 듣고 하나하나 배우면서, 하늘과 어떤 사연을 맺었는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월명동의 감람산과 집터골, 그리고 대둔산은 선생이 21년 동안 하나님을 찾으며 기도하던 곳으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의 사연이 있는 곳’입니다. 그 사연이 있은 후 1978년에 선생은 그곳의 논도 환경도 다 내던지고 ‘선생의 가족이 살던 함석집 한 채’만 두고, 하나님과 성자께 받은 <시대 말씀>을 전하려고 서울로 떠났습니다. 선생의 부모도 형제들도 다 그곳을 떠났습니다. 두고 간 집 마당에는 잡초가 커서 무성했고, 흙벽돌로 지은 헌 집은 그나마 벽이 무너졌고, 선생이 다니던 산과 밭에는 잡초와 엉겅퀴가 무성했습니다. 감나무에도 감이 안 열렸고, 열렸어도 크기가 작았습니다. 이 골짜기는 정말 외롭고 쓸쓸했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초 가을에 다시 와 봤는데, 감란산과 집터골, 선생이 나무를 하러 다니던 산길에는 잡초와 엉겅퀴가 꽉 절어서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역시 너무도 외롭고 쓸쓸한 골짜기였습니다. 그런데 월명동은 <하나님, 성령님, 성자와의 사연이 있는 곳>이라서 때가 되니 하나님은 그곳을 ‘새롭게 구상’하셨습니다. 그리고 ‘시대 말씀’을 전하며 생명들을 전도하여 어느 정도의 무리가 형성되니, 월명동을 ‘자연성전’으로 개발하게 하시며 월명동에 <사연 역사>를 펴기 시작하셨습니다. <끝> 전능자의 행하심은 처음에는 모릅니다. 처음에는 예전에 ‘사연’이 있어서 역사를 펴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사연의 주인’까지도 모르게 행하십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사연의 주인’에게 진지하게 말씀하시며 가르쳐 주고 깨우쳐 주시면서, 그곳에 ‘뜻 있는 일’을 행하게 하시고 따르는 자들과 함께 <삼위일체의 사연 역사>를 펴 나가게 하십니다. (* 다시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결국 하나님은 <사연이 있는 월명동>에 하나님의 구상대로 ‘자연성전’이 건축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곳을 성약역사 1000년 동안 쓰게 하시며, 하나님의 마지막 구원역사를 펴 나가고 계십니다. 옛날 아담과 하와 때 에덴동산에서 인간의 타락으로 못 이룬 ‘사랑의 뜻’을 이곳에서 구원역사 6000년 만에 이루고 계십니다. 그리함으로 섭리사를 따르는 자들과 함께 최고 역사인 휴거의 역사, 삼위일체 사랑의 역사를 펴 나가고 계십니다. <끝> 섭리사로 온 여러분들은 모두 ‘이 뜻과 역사’를 이루라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부르셨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삼위일체를 최우선으로 사랑하고 타락하지 않음으로 ‘본이 되는 사연’을 만들어 하나님이 그곳에 <사연의 대 역사>를 하시게 해야 됩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같이 타락하면 <하나님의 목적>이 깨지기에, <사연>이 있어도 하나님은 후에 <사연 역사>를 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사연>이 있어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섭리사로 데리고 오셔서 시대 말씀을 전해 주며 사랑해 주고 구원해 주고 휴거시켜 ‘사랑의 대상체, 신부’로 삼으셨습니다. 이제 더욱 주와 일체 되고, 삼위일체를 부르고 사랑하며, 타락하지 말고, 매일 휴거의 삶을 살면서, 휴거의 차원을 높이며, ‘본이 되는 사연’을 만들기 바랍니다. 그리함으로 자기가 있는 그곳에 <하나님의 사연의 대 역사>가 일어나게 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 ‘어디’에 <사연 역사>를 펴시는지 잘 보고, 매일 삼위일체께 영광 돌리며 가치 있게 쓰면서 매일 ‘사랑과 감사의 사연의 삶’이 일어나게 해야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선생이 21세 때 국가의 부름을 받고, 평화를 위해 <베트남전쟁>에 참전하러 가면서 네 번 오고 간 곳이 있습니다. 거기 논두렁에 들어가서 구석에 있던 샘물의 물도 먹었습니다. 그곳은 베트남과 한국을 오고 가기 위한 <사연이 있는 항구>입니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23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그곳을 준비하셨다가 그곳에 ‘성전’을 세우시고 옛 사연이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끝>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 뜻 있는 자와 얽힌 하나님의 사연은 참으로 신기합니다. (* 다시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6> 옛날에 선생이 나무를 지고 다니며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영광 돌리며 찬양했던 길은 모두 ‘자연성전 안의 산책로’가 되었고, 혹은 ‘월명동을 오고 가는 차가 다니는 차로’가 되었습니다. 때가 되니 <삼위일체와 사랑의 사연이 있는 곳>은 빛이 나고, <삼위일체와 사랑의 사연이 있는 자>도 빛나게 해 주셨습니다. <끝> 이외에도 <사연이 있는 곳들>이 너무 많으니, 오늘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성자가 가시기 전에 다 주고 가셨습니다. 성자는 가시면서 “해 줄 것을 다 해 주고 가니 정말 기쁘다.” 하셨습니다. <조건>을 행하니, 성자는 다 주고 가셨습니다. (* 성자가 떠나시기 전에 <사연이 있는 곳>에 또 ‘무엇’을 세우고 가셨는지, 많은 사연들 중에서 한 가지만 더 말씀해 주겠습니다.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7> 선생은 1972년부터 1975년까지 <경기도 광주>에서 ‘70일 금식 기도’를 하면서 깊이 기도했습니다. 성자는 떠나시면서 이 사연이 있는 곳 근처에 ‘성전’을 준비했다가 주셨습니다. 바로 ‘주님의교회’입니다. 이곳은 선생이 기도했던 곳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곳입니다. 주님의교회는 원래 서울 강남 쪽에 성전을 알아보았으나,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로 상황을 트셔서 ‘현재 성전’을 주셨습니다. <사연이 있는 뜻 깊은 곳>에 ‘성전’을 주신 것입니다. 역시 하나님은 <사연이 있는 곳>에 ‘사연의 뜻’을 펴십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니 막지도 못합니다. <끝> 주님의교회 외에도 하나님은 선생이 다녔던 사연이 있는 곳에 ‘교회’를 세우게 하시고, 그곳에 생명들이 모여들게 하셨고, 성삼위께 영광 돌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면 <사연이 있는 곳>에 ‘뜻’을 펴시려고,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상황과 여건을 틀고 막으시며 정녕코 행하여 <사연 역사>를 펴 나가십니다. 모두 깨닫고, 감격하고 감사해야 됩니다. (* 마지막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8> 대둔산 용문골도 그러합니다. 그곳은 선생이 20년 이상 기도한 곳이며, 하나님과 성자께서 이 시대 모든 자들을 구원하는 시대 말씀을 주신 곳입니다. 성자는 그곳을 국가적으로 개발하지 않고 조용히 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조용히 산책하는 장소, 하늘의 사연 장소’로 쓰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때에 따라 행하시는데, 상황에 따라 ‘합당’하게 통치하고 다스리며 행하십니다. <끝> 말씀을 들은 여러분 모두도 <지난날 사연>을 잊지 말고, 깨닫고 행하기 바랍니다.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반복하여 말씀합니다. 사람들도 <사연 있는 곳>에 집을 짓고 땅도 삽니다. 또 <사연이 있는 사람>과 사랑하고, 결혼하여 같이 삽니다.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사연이 있는 곳>에 <삼위가 사랑하는 자>와 <그를 따르는 자들>과 함께 <사연 역사>를 만들지 않으시겠습니까? 꼭 만드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사연이 있는 자>를 택하시고 전도해 오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시대 말씀을 주시고, 구원자를 알게 하시고, 사랑해 주시고, 구원하고 휴거시켜 <황금성 천국>까지 가게 하십니다. 그리함으로 <최고 휴거의 역사, 창조 목적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그런데 이것을 생각하지 않고 성의 없이 살고 가치를 모르고 사니, 하나님은 이를 원치 않으시고 섭리사에서 내쫓아 고통의 세계에서 이를 갈게 합니다. 그곳은 한 번 가면, 98%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거기서 영원히 끝나게 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사연>이 있어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섭리사로 데리고 오셔서 시대 말씀을 전해 주며 사랑해 주고 구원해 주고 휴거시켜 ‘사랑의 대상체, 신부’로 삼으셨습니다. 이제 더욱 주와 일체 되고, 삼위일체를 부르고 사랑하며, 타락하지 말고, 매일 휴거의 삶을 살면서, 휴거의 차원을 높이며, ‘본이 되는 사연’을 만들기 바랍니다. 그리함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사연의 대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사연>을 잊으면 현실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신앙도 죽고, 영도 죽고, 기쁨과 감사의 삶도 죽고, 휴거의 삶도 죽습니다. <지난날의 사연, 하늘과 맺은 인연의 사연>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24 2015년 08월 19일 수요일 쳐다봐야 보이듯 생각해야 보인다 [ 잠언 4장 23절 ]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 서 남이니라. Above all else, guard your heart, for it is the wellspring of life.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생각>에 대한 말씀을 또 해 준다고 광고했지요? 오늘 말씀의 주제는 ‘쳐다봐야 보이듯 생각해야 보인다.’입니다. ◎ <생각>에 대한 말씀은 끝이 없습니다. <생각>은 육을 움직이게 하고, 혼과 영과 통하게 하고, 육과 혼과 영의 운명을 결정짓는 ‘생명의 근원’입니다. 고로 <좋은 생각>을 해야 됩니다.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수많은 생각들 중에서 ‘가장 좋은 생각’을 골라서 그 생각을 가지고 ‘행한 자’입니다. 수많은 생각들 중에서 ‘좋은 것 하나’를 골라서 행하기입니다. ◎ 영원한 성공을 하려면, <구원자의 말씀>을 듣고 <삼위일체의 생각>을 받아서 <생각>을 ‘신’으로 만들어서 행해야 됩니다. <신의 생각>을 받아서 행하니, <신>과 같이 행하는 것이 되어 <신>과 같은 역사가 일어납니다. ◎ 쳐다봐야 보이듯 생각해야 보인다. 오늘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사람이 눈으로 쳐다봐야 보이지요? 쳐다보지 않은 것은 안 보입니다. 이와 같이 생각도 그러합니다. 쳐다봐야 보이듯, 생각해야 보이고 느껴집니다. 이것이 <생각의 핵심>입니다. 생각하지 않으면 존재해도 안 보이고, 눈에 보여도 안 느껴집니다. 그러나 생각하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보이고 느껴집니다. 다 같이 <생각의 핵심>을 말해 볼까요? <자막> 쳐다봐야 보이듯 생각해야 보인다. <요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음식의 맛’이 좌우되듯이,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마음의 맛’이 좌우됩니다. <생각>을 잘못하면, 옳은 것을 두고도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자기 인생, 자기 생각을 하나님께 맡기면 흔들릴 것이 없습니다. 모르고 보면, 봤어도 모르지요?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자기가 보고 싶어 했던 사람인지 모르고 만나면 만나서 얼굴을 봤어도 모르고 지나갑니다. 그러니 자기가 원하고 생각했던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만나서 볼 때는 몰랐지만 본 후에 자기가 보고 싶어 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 본 것을 생각하며 그때 느낄 것입니다. <하나님과 성자가 시대에 보낸 자>도 ‘알고 보기’입니다. 모르고 보면 ‘상상의 인물’에 불과하여 잘 느껴지지 않지만, 알고 보면 ‘그 사명만큼’ 느끼고 불을 받게 됩니다. 가령 <하나님>이 지나가면서 ‘한 남자’를 쓰고 자기에게 와서 말씀하고, 자기와 이야기도 하고 갔다 합시다. 그를 ‘세상의 한 남자’로만 알고 봤다면 <하나님>을 봤어도 생각도, 마음도, 느낌도, 감동도 사람을 보고 대한 것과 동일합니다. 세상의 어떤 물건도, 어떤 지역의 형상도 모르고 보면 ‘그 존재물의 맛’을 못 느끼게 됩니다. <월명동>을 봤어도 월명동이 어떤 곳인지, 어떤 뜻을 두고 개발했는지, 그곳에서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지 모르고 본다면 생각도, 마음도, 느낌도, 감동도, 깨달음도 하나의 관광지를 본 것과 동일합니다. 똑같은 물건도 ‘보는 각도’에 따라서 형체가 달리 보입니다. (강대상을 예로 들면서 설명해 준다. 이 강대상만 봐도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달리 보입니다. - 하며 옆, 뒤, 앞의 모양 설명해 주면서 이해시켜 주기) 이와 같이 사람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느낌’도 달라지고, ‘행동’도 달라지고, ‘결과’도 달라지고, ‘육의 삶’도 달라지고, ‘혼과 영의 운명’도 달라집니다. <근본 형상>이 있는데도 <자기 생각>을 ‘자기중심’으로 굳히고 보면, 자기가 생각한 대로 보입니다. (<코끼리바위>의 ‘두꺼비 형상’과 ‘코끼리 형상’ 비교하면서 설명하기) <코끼리바위>도 근본 형상은 ‘코끼리 형상’입니다. 그러나 <생각과 인식>을 ‘두꺼비’로 굳히고 보니, ‘두꺼비 형상’으로 보였지요? 다시 근본 형상을 제대로 인식하고 보니, 그때부터 ‘코끼리 형상’으로 제대로 보였습니다. <사람의 뇌>는 생각하는 대로 형성되어 생각하는 대로 보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은 보기에도 먹음직스럽게 보이고, 입맛도 당기지요? 이와 같이 사람은(생략) 자기가 생각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보이고 느껴집니다. 고로 다른 사람은 ‘보통’으로 보는데도 자기는 그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최고’로 보게 됩니다. <뇌의 기능>을 알고 써야 됩니다. <좋은 것>이라도 뇌에서 ‘나쁘게 보겠다.’ 생각하고 보면, 나쁘게 보입니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25 <나쁜 것>이라도 뇌에서 ‘좋게 보겠다.’ 생각하고 보면, 좋게 보입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뇌에서 ‘하겠다!’ 마음먹으면, 꼭!! 하고야 맙니다. 뇌에서 ‘하겠다!’ 생각하고 허락하니, 뇌가 ‘기쁨’으로 작동되어 돌아가면서 <자기 몸>도 ‘기쁨’으로 행합니다. 고로 <좋은 일>은 뇌에서 ‘하겠다!’ 마음먹고 그 일을 하는 것이 기쁨으로 작동되게 만들어야 됩니다. 그리고 <나쁜 일>은 뇌에서 ‘하지 않겠다!’ 마음먹고 그 일을 안 하는 것이 기쁨으로 작동되게 만들어야 됩니다. <나쁜 일, 불의한 일>은 참고 절제하며, <좋은 일, 의로운 일>은 하고자 마음먹고 결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언제 참고 절제해야 할지, 언제 하고자 마음먹고 해야 할지 뇌가 제대로 분별하고 판단하여 제대로 작동되게 하기 바랍니다. <생각>으로 ‘생각’을 조종하고, <생각>으로 ‘생각’을 온전히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나 어려움이나 환난이 있어도 먼저는 ‘생각’으로 해결하고 이기는 것입니다. 그 생각에 따라 ‘실제 행실’로도 문제를 해결하고, 어려움과 환난을 이기게 됩니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못 합니다. 먼저는 <생각>으로 결단하고 해야 됩니다. 그래야 <몸>이 그 생각대로 행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도 <듣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못 듣지요? 말씀을 행할 때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못 하지요? 휴거도 <휴거되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못 합니다. 먼저는 <생각>에서 결정하고, 그다음에 <몸>으로 행하게 됩니다. 고로 ‘옳은 것’과 ‘옳지 못한 것’을 <생각>에서 분별하여, 옳은 것은 행하고, 옳지 않은 것은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생각>을 잘못해서 다치고, 사고 나고, 죄를 짓고, 실패하고, <생각>을 잘해서 잘되고, 의를 행하고, 성공합니다. 기도하면서 성령님께 말했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너무 무모하고 약합니다. 그러니 인생을 살아가는 데 <생각>을 가지고 제대로 못 삽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생각>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게 만드셨는데, 생각이 약하니 사람이 너무 약합니다. <더 강한 것>을 가지고 살게 하시지, 왜 그렇게 안 하셨나요?”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영’으로 살아야 돼. <영의 생각>은 ‘육의 생각’같이 약하지 않고 충분히 강하다. <영의 생각>은 ‘육의 수준에서 오는 생각’보다 훨씬 더 높고 강하고 확실하다. 또 기도하면, <영>이 ‘삼위의 생각’을 받아서 사니까 그 생각이 훨씬 더 이상적이고 강하다. <육의 생각>은 약해. 변화무쌍해. 모르는 것이 많아. <자기 생각>은 ‘육신의 뇌에서 나오는 정도’야. <영의 생각>은 다르다. <영의 생각>은 육신을 능히 다스린다. 고로 <약한 자기 생각, 육의 뇌에서 나오는 생각>으로 살지 말고, 삼위의 말씀을 받아서 ‘확실하고 강한 영의 생각’으로 살아라.” <육의 뇌에서 작동되어 나오는 생각>은 약하고, 확실성도 없습니다. <영의 생각>은 ‘신’과 같아서 <자기 육신>을 충분히 다스리고도 남습니다. 고로 <휴거된 자기 영>을 부르세요! <휴거되어 신과 같이 된 영의 생각>을 받아서 행하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생각>을 받으면, 더욱 확실하게 ‘자기 육신’을 다스립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영의 생각>으로 ‘자기 육신’을 다스리냐고요? 사람도 <같은 차원>에 있는 사람이 다스리면 약합니다. 직장에서도 <같은 직급>에 있는 사람이 다스리면 못 다스리지요? 학교에서도 <같은 학년>이 다스리면 못 다스립니다. 한 직급 높은 사람, 한 학년이 높은 사람이 다스려야 다스립니다. 이와 같이 <육신의 생각>이 ‘육신’을 다스리니 약한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한 급 높은 혼’이 다스리고, 거기서 ‘또 한 급 높은 영의 생각’으로 살면, 충분히 <육의 생각>을 강하게 다스리고 관리하게 됩니다. <같은 급, 같은 차원>에서는 더 많은 것, 더 좋은 것, 더 이상적인 것을 못 봅니다. <같은 종류, 같은 품질>로는 다른 것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포클레인은 ‘비행기 역할’을 못 하지요? 비행기로 할 것은 ‘비행기’로 해야 됩니다. 사람도 그러합니다. 고로 하나님은 ‘때마다 합당한 자’를 들어 쓰십니다. 이것을 꼭 깨달아야 됩니다. <그 일을 맡은 사람>은 ‘그 일’만 보지, ‘다른 것’은 못 봅니다. 다른 것은 ‘그 일의 전공자’가 봅니다. 바로 그 사람이 ‘거기에 합당한 자’입니다. <만물 계시>를 주실 때도 수백만 가지 만물 중에서 ‘깨우쳐 주기 가장 합당한 것’이 눈에 띄게 하면서 계시해 주십니다. <사람>도 그러합니다. 직급이 높은 자라고 해서 ‘그 일에 합당한 자’가 아닙니다. 직급이 낮아도 ‘그 일에 합당한 자’가 있습니다. 고로 하나님은 그 일에 합당하면 직급이 낮은 자라도 그 사람을 중심해서 순간 쓰십니다. 이것을 모르고 배척하거나 안 믿어 주면 바보이며, 무지자이며, 소경입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주도 그때마다 ‘그 일에 합당한 자’를 들어 쓰신다는 것을 꼭 알아야 됩니다. 각종 기계를 보세요. 많은 기계들 중에서 ‘그때마다 합당한 기계’를 골라서 씁니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26 포클레인이 필요할 때는 포클레인을 쓰고, 크레인이 필요할 때는 크레인을 쓰고, 트레일러가 필요할 때는 트레일러를 씁니다. 시대를 봐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그 시대에 합당한 자’를 뽑아서 쓰셨습니다. 사사들, 선지자들, 중심인물들입니다. 그때마다 ‘합당한 자’를 들어서 쓰셨습니다. 그리고 신약 때 한 번, 성약 때 한 번 ‘구원의 사명에 가장 합당한 자’를 ‘구원자’로 뽑아서 그를 통해 말씀하시고 역사를 펴 나가셨습니다. 합당하다는 것은 ‘그 일을 해낼 수 있다. 옷이 맞듯이 그 일에 맞다. 크기와 색상이 맞듯이 그 일에 맞다.’ 함입니다. 합당하지 않으면 거기에 맞게 만들어서 쓰게 됩니다. 그래서 <합당한 자>가 ‘거기의 보화’입니다. 사람을 택할 때 <자기가 원하는 것>과 <목적한 것>이 갖춰졌으면, ‘그것’을 보고 택하게 됩니다. <일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면, 인물이 잘났든 못났든 일을 잘하니까 ‘그것’을 보고 택하게 됩니다. <키 큰 사람>을 좋아하면, 몸이 젓가락같이 말랐든 뚱뚱하든 키가 크니까 ‘그것 한 가지’를 보고 택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도 ‘때마다 그 일’을 하실 때에는 다른 것은 안 보고 ‘그 일에 합당한 것 한 가지’를 보고 쓰십니다. ◎ 하나님은 ‘합당한 것 한 가지’를 보고 쓰신다. 이것에 대해서 한 단계 더 깊이 말씀해 주겠습니다. 중요한 말씀이니, 잘 듣기 바랍니다. <형상석>을 찾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형상>만 ‘자기가 원하는 형상’이 갖춰졌으면, 돌이 못생겼어도 매끄럽지 않아도 그 돌을 ‘보물’로 생각하고 택하고 좋아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도 그러하십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사랑>을 ‘핵’으로 보십니다. 고로 삼위일체를 100% 사랑하고 그 마음이 변치 않으면 ‘그것 한 가지’를 보고 택하시고, 그 영혼을 휴거시켜 영원히 사랑하며 같이 살아 주십니다. 만일 ‘핵’이며 ‘목적’인 <사랑>이 깨지면, 어쩔 수 없이 버리십니다. 사람은 자기가 ‘목적한 것’을 보고 택합니다. 하나님도 그러하십니다. 하나님은 ‘목적한 사랑 한 가지’를 보고 택하십니다. 그런데 자기가 “나는 이것이 부족하다. 저것이 부족하다.” 하며 필요 없는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가령 국가에서 ‘100m 달리기를 하는 데에 최고로 빠른 선수’를 뽑는다 합시다. 좋은 학교를 나왔든 못 나왔든, 키가 작든 크든, 인물이 좋든 못났든, 부모가 있든 없든 다른 것들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세계 대회에 나가서 ‘금메달’만 따 오면 그만입니다. 국가에서는 “너는 왜 그렇게 못생겼어? 왜 그렇게 키가 작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는 어떻게 그렇게 잘 뛰냐. 번개 같다. 신기하다. 신이다. 네가 최고다. 얼굴이 금메달을 따게 생겼다.” 합니다. 사람은 <특기>로 <재능>으로 <사명>으로 빛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앞에도, 주 앞에도 인물, 키, 학벌, 집안, 명예를 따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그 일>을 하고 <가장 핵심인 사랑>을 안 뺏기면,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합당한 자, 귀한 자’로서 누구든지 다 아름답게 보시고 귀히 여기십니다. ◎ 말씀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뇌>를 ‘유동성’ 있게 창조해 놓으셨습니다. 고로 생각하는 대로, 좋아하는 대로 <생각>이 움직이고 <뇌>가 작동됩니다. 만일 <뇌>가 ‘한 가지 생각’에 고정되어 있다면, 그것만 생각하며 사니 제대로 존재하지 못할 것입니다. <손>을 보세요. 하나님은 <인간의 손>도 ‘유동성’ 있게 창조하셨습니다. 만일 손이 ‘한 각도로 고정’되어 있다면, 그쪽으로만 발달되어 ‘그것 한 가지’만 할 것입니다. <손>이 필요한 대로 움직이며 ‘여러 가지’를 하도록 유동성 있게 창조하셨습니다. <손>은 ‘뇌의 전개체’입니다. <뇌>는 유동성 있게 창조되어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서 빛을 발하며 살 수 있습니다. 고로 <뇌>를 발달시키고 개발시켜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10분의 1 정도만 쓰고, 보편적으로 쓰고, 기본적으로만 쓰고 말게 됩니다. <뇌>를 발달시키려면 ‘영의 생각’으로 살아야 됩니다. <육의 생각>으로는 ‘육신’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육의 생각>보다 한 급 높은 ‘혼’이 다스려야 하고, 그보다 한 급 더 높은 <영의 생각>이라야 ‘육’을 다스립니다. 그리고 기도하며 늘 말씀을 통해 ‘삼위의 생각’을 받아야 됩니다. 그러면 <영의 생각>이 더 강해져서 ‘육’을 더욱 강하게 다스립니다. 그리함으로 영적 차원, 삶의 차원, 행실의 차원, 휴거의 차원을 높이게 됩니다. ◎ 여러분 모두에게 <성삼위와 주의 강한 생각>이 들어가서 <육의 생각>을 다스리고 힘 있게 행함으로 날마다 승리하며 차원 높이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 그리고 <주>를 제대로 알고, 꼭 보면서 살기 바랍니다. <보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보는 것>과 <안 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주를 본 자>와 <안 본 자>의 차이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생시에 눈으로 보든, 꿈에서 혼으로 보든, 생각하며 생각으로 보든, 꼭 <주>를 봐야 됩니다. 주를 보되, 알고 봐야 됩니다. 알고 봐야 확실히 느끼고, 불을 받습니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27 제대로 알고 ‘한 번’만 보면, 그것으로 운명이 좌우됩니다. <주>를 ‘육의 눈’으로 못 보면 ‘생각’으로 보세요. 그리고 ‘혼과 영’으로 보세요. 쳐다봐야 보이듯, 생각해야 보입니다. 눈으로 못 본다고 <생각>에서 잊으면 ‘남남’이 됩니다. 눈으로 못 봐도 <생각>에서 잊지 않으면 늘 ‘함께’입니다. ◎ 늘 삼위일체와 주를 생각함으로 잊지 말고, 날마다 ‘삼위와 주의 돛’을 ‘자기 뇌’에 확실히 꽂고, 그로 인해 ‘강한 힘’을 받고 멋있게 <인생 항해, 휴거 항해>를 하기 바랍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28 2015년 08월 23일 주일 모르니, 삼위일체가 역사하셔도 예사로 여기고 그냥 지나간다 모르니, 도와줘도 아쉬워하고 불평한다 [ 시편 106편 1절 ]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Praise the LORD. Give thanks to the LORD, for he is good; his love endures forever. [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 (범사에 감사하라. 핵만 봉독)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8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for this is God's will for you in Christ Jesus.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하나님, 성령님, 성자께서 역사하시는 것에 대해 두 가지를 말씀해 주겠습니다. 제대로 배워야 삼위일체가 역사하셔도 알고, 즉석에서 감사하고 기뻐하여 영광을 돌립니다. ◎ 모르면, 하나의 짐승과 같습니다. 짐승도 모르는데, 사람도 모르니 똑같습니다. ◎ 오늘 말씀의 주제는 ‘모르니, 삼위일체가 역사하셔도 예사로 여기고 그냥 지나간다. 모르니, 도와줘도 아쉬워하고 불평한다.’ 이지요? ◎ 오늘은 먼저 ‘하나님, 성령님, 성자의 심정’을 말해 주고, 말씀을 시작하려 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 사랑하는 전능자 하나님, 성령님, 성자가 우리를 정말 사랑하셔서 해 주시는데도 그것을 모르면, 하나님은 심정이 답답하고, 어이가 없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신답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알고 뛰며 좋아할 것인데, 왜 내 사랑하는 자가 저럴까? 민망하다.” 하십니다. 그리고 누가 이 사실을 보고 비웃을까 하여, “꼭 깨닫게 해 주고 알게 해 주자. 내 사랑하는 자, 나의 시중을 드는 자를 통해 가르쳐 주자.” 하십니다. ◎ 가르쳐 줬는데도 ‘깨닫지 못하는 자’는 <삼위일체가 도우신 것>을 보고도 모릅니다. 그러니 “우연이다.” 하고 말하며,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내게 무엇을 해 주시나? 하나님, 성령님, 성자는 너무나 큰 전능자이시니 이런 것은 신경도 안 쓰실 거야. 지구 세상 73억 명을 살피시느라 이런 것을 생각하시겠어?” 합니다. 그리고 “나의 구원자는 십자가를 지느라고 못 봐. 육인데 눈으로 봐야 알지. 눈으로 못 보니 모르지. 내가 무엇을 바라는 것이 미련한 것이지.” 하며, 입이 커지도록 쫑알거리며 말합니다. 그런 말들을 들으면, 해 줄 것을 해 주고도, 도울 것을 돕고도 열불이 납니다. ◎ 영원, 영원, 영원한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해 주고 휴거만 시켜 줘도 그리 큽니다. <구원과 휴거>는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못 해 줍니다. 아무리 돈이 있어도, 백이 있어도, 학식이 있어도, 명예가 있어도,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자라도 <구원과 휴거>는 절대 시켜 줄 수 없습니다. <구원과 휴거의 크기>는 ‘전체’만 합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한 감사도 없을뿐더러 그 외에 수백 가지, 수천 가지를 도와줬는데 모른다면,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별의별 생각’을 하게 됩니다. ◎ 모르니, 삼위일체가 역사하셔도 예사로 여기고 그냥 지나가고, 모르니, 도와줘도 아쉬워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 이 정도만 말하면 유초등부·중고등부·대학부·청년부·가정 국·장년부 모두가 다 깨닫고, 생각이 깊은 동물들까지 깨닫습니다. ◎ 오늘 말씀 잘 듣기 바랍니다.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8월 4일에 낮 기도를 하려는데, 날씨가 너무 더워서 방의 온도가 30도가 훌쩍 넘었습니다. 이곳은 선풍기도 없으니 그야말로 찜통이었습니다. ‘너무 더운데 기도가 제대로 될까?’ 생각했는데, <생각>을 집중하여 ‘영계’에 못 들어가면 안 되니까 <생각>을 단단히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다가 너무 더워서 더 이상 기도를 못 하고, 하나님께 몇 가지를 물었습니다. 그러다가 10분 정도 지났는데, 방 안이 서늘했습니다. ‘벌써 가을이 되었구나. 그렇게도 덥더니, 벌써 한 세월이 갔구나.’ 했습니다. ‘기도하기 전에는 더워서 어떻게 기도하지? 했는데, 그새를 못 참고 덥다고 했네. 금방 시원해지는 가을이 오는데 그것도 몰랐네. 벌써 ‘입추(立秋)인가?’ 하고 눈을 뜨고 달력을 봤습니다. 그런데 아직 ‘입추’가 아니었습니다. 기도하니, 하나님이 오셔서 시원하게 해 준 것입니다. <내가 있는 곳>만 시원한지, <전체>가 시원한지, 누구한테 물어보고 싶어도 옆에 사람이 없어서 못 물어봤습니다. ‘이상하다. 왜 이렇게 시원하지? 살결이 시원하네.’ 했습니다. ‘기도하다가 말고 눈을 떴으니, 더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물어봐야지.’ 하고, 다시 기도했습니다. 그때 ‘매일 오는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받아서 사인을 하고 있는데, 그때 다시 방이 찜통이 되었습니다. 그때 더욱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대화할 때는 하나님이 오셔서 ‘서늘한 표적’이 일어났구나! 맞아! 아직 ‘입추’도 아닌데 하나님이 행차하심으로 인해 공기의 변화가 일어났구나!’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29 이제 왜 갑자기 방이 시원해졌는지 확실히 ‘확인’은 됐는데, 다시 시원하게는 안 됐습니다. 너무 더워서 하나님께 시원하게 해 달라고 해도 안 되고, 땀만 줄줄 흘렀습니다. 그래서 “시원하게 안 해 주려면 <말씀>을 받을 테니 <말씀>을 주세요.” 하고 기도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말씀해 주셨습니다. “나 여호와와 성령과 성자가 그때마다 역사하며 도와줘도 사람들은 네가 방금 겪은 것같이 헷갈려하거나 모른다. 너무 더우니 시원하게 해 주며 역사해 줘도 ‘입추인가? 때가 되어 시원한 것이지. 때가 되어 추운 것이지. 때가 되어 더운 것이지. 변화무쌍한 기후의 조화이지. 내 기분이지.’ 한다. 너같이 꼬치꼬치 따지고 확인하는 자는 <전능자의 행함>을 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삼위일체가 사랑하여 그때마다 작고 크게 역사해 주면, ‘우연인가? 기후의 변화인가? 내 착각인가? 이런 때도 있고, 저런 때도 있지.’ 하고 그냥 지나가 버린다. 삼위일체는 <만물>로도 계시한다. 그리고 <사람>을 통해서도 계시하며 돕는다. 그때마다 ‘합당한 만물’을 들어 계시해 주고, ‘구름으로 각종 형상’을 만들어 보여 주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만물 계시>를 받고도 ‘만물을 많이 보다 보니, 내가 상상한 것이 보이네?’ 하기도 하고, 삼위가 <사람>을 통해 역사하여 도와도 ‘가다 보니, 뇌에 스친 사람도 만나게 됐네. 우연의 일치다.’ 하기도 한다. <만물>이나 <사람>을 보여 주며 깨닫게 해 주기까지 하니 나 여호와와 성령과 성자가 주는 계시인 것이다. 항상 ‘전능자’를 인식하고 생각해라. 늘 <생각>에서 잊지 않고 생각해야 내가 ‘만물’이나 ‘사람’을 통해 도와도 알고, 불러도 알고, 계시해 줘도 알게 된다. 나는 너희를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나니, 그것으로 인해 나 여호와가 역사하지 않아도 표적이 일어나는 때도 있다. 또한 ‘사역자’를 통해서 행하여 표적을 일으키고, 수시로 축복을 받게 해 주어 표적이 일어나게 해 주기도 한다. 또한 본인이 노력하니, <공의의 법>에 따라서 본인의 수고와 노력으로 얻게 하기도 한다.” 하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서론에서 말한 대로 삼위일체가 우리를 사랑해서 해 주셨는데 그것을 모르고, “우연이네. 날씨 조화네. 기후 변화네. 바람이 불 때 되니 불었네. 해가 비칠 때 되니 비쳤네.” 합니다. 그러니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시는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심정이 답답하고, 어이가 없고, ‘왜 내 사랑하는 자가 깨닫지 못하나.’ 하며 어느 때는 화도 난다고 했습니다. 해 줘도 모르면 ‘지극히 육적’입니다. <깨닫는 것>에 아둔하면, 삼위일체는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왜요? 해 줘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해 줘도 모르니까 뜨겁든지, 춥든지, 비가 오든지, 눈이 오든지, 바람이 불든지 그냥 놔두십니다. 지나가다가 가랑잎만 몸에 스쳐 가도 ‘혹시 하나님, 성령님, 성자께서 나를 부르셨어요? 말씀하실 것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해야 됩니다. 그랬는데 아무 말씀이 없으시면 그때는! ‘내 얼굴이 크니까 가랑잎이 내 얼굴을 스쳤구나.’ 하면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작년 2014년 여름 수련회> 기억나요? 각 부서 수련회 때마다 ‘비’가 오고 ‘구름’이 꼈습니다. 비가 오니 산행을 할 때 꿉꿉하고, 비 맞은 옷이 몸에 들러붙어서 찝찝했습니다. 그러니 ‘에이! 수련회 때 제발 비 좀 안 오면 좋겠다. 어떻게 매년 비가 오냐? 하나님, 비 좀 안 오게 해 주세요.’ 했습니다. <끝> 그때는 <비>가 얼마나 소중한지 몰랐습니다. <여름철 무더위 때의 비>는 ‘축복’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올해 첫 수련회인 <청년부, 대학부 수련회>에 참석하여 ‘비가 안 온 날씨’를 겪어 본 사람들은! 작년 여름 수련회 때 꼭꼭 ‘비’가 온 것이 얼마나 좋은 축복이었는지 진정 알았을 것입니다. 겪어 보기 전에는 모릅니다. <하나님의 심정>도 <하나님의 도우심>도 겪어 보기 전에는 모릅니다. 8월 1일 <청년부, 대학부 수련회>에 참석하여 땡볕에서 비 한 방울 없이 있다가 온 사람들은 작년에 비 왔을 때가 좋았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까? 그동안 하나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셨겠습니까? 그러니 겪어 보지 않아도 미리 알고 감사해야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올해는 ‘가뭄’에다가 ‘불볕더위’에다가 ‘비 한 방울’ 안 오니, 처음에는 “올해는 비가 안 오니 좋다! 비가 안 오니 날씨 좋다!”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다가 너무 더워서 뻗어 버리고, 예술제를 하다가 너무 더워서 뻗어 버리고, 산행을 하다가 너무 더워서 뻗어 버렸습니다. 열사병으로 아픈 사람들이 속출하여 <성자 사랑의 집 통로>는 ‘병원’이 되어 더위를 먹은 사람들이 쭉 누워 있었습니다. <끝> 하나님은 말씀하시며 깨우쳐 주셨습니다. “내가 어련히 알고 해 주겠느냐. 늘 어련히 알아서 해 준다는 것을 항상 깨닫고 감사해라. <비>가 와도 감사하고, <햇빛>이 나도 감사해라. 생활 속에서 나 여호와와 성령과 성자가 도우며 표적을 보이는데 ‘우연인가? 날씨의 변화인가?’ 하지 말아라. 때에 따라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구름이 끼고, 차갑고, 덥고 하는 것은 <삼위일체의 기적의 도움>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때 즉시 소리를 지르며 삼위일체를 부르고 감사 감격해라. 아둔하여 그때 그 즉시 깨닫지 못하고 다 끝난 후에야 감사하다고 하지 말아라.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30 애인이 껴안고 사랑할 때 ‘우연인가? 심리적인 행위인가?’ 하다가, 다 끝나고 시간이 흐른 후에 ‘아~ 나를 사랑해서 그렇게 했구나.’ 하면, 사실 웃기는 것이다. 삼위일체가 돕고 행해도 ‘깨달음’이 아둔하면 안 된다. 모르면, 도와주는데도 아쉬워하고 불평불만만 쏟아져 나온다. 모두 이 센터에 대해서 깨달아라.” 하셨습니다. (추가 설명할 부분 <중고등부 수련회> 시원한 비로 물을 뿌려 주심 <장년부 수련회> 날짜 옮기고 수련회 기간 중 최고 좋은 날씨 말씀 시작할 때 ‘할렐루야!’하는 순간 1초간 해 방긋 처음부터 끝까지 구름 기둥으로 인도해 주신 것 중간중간 해 방긋하면서 사랑을 표시해 주시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역사와 도우심을 생각하게 하심 <가정국 수련회> 입추가 지났는데도 무더위, 비로 더위 식혀 주신 것 구름 기둥이었다가 해가 쨍쨍 비추면서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사랑해 주시고, 표적을 일으켜 주시고, 도우시고, 역사해 주실 때 그때! 즉시! 깨닫고 “이런 일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며, 그때! 다 말해야 됩니다. 시장에서 옷을 사 줄 때는 가만히 있다가 시간이 지난 후에 옷을 입다가 다 떨어질 때가 되면 그제야 감사하면 되겠습니까? 사랑하는 하늘의 신부들이 항상 이런 식으로 삼위께 감사하니, 해 주시는 하나님, 성령님, 성자께서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축복’을 주시는 것도 즉시 알고 감사드리며, 하나님이 ‘심판’을 하시는 것도 즉시 알고 피해야 됩니다. 심판이 다 끝난 후에 그제야 깨닫고 피하면 되겠습니까? 한 세월이 다 간 후에 ‘심판’인 줄 알고, 그제야 “그때 하나님이 심판하셨지요?” 하면, 하나님은 “그때 내가 장난친 거야.” 하는 식으로 비웃으며 말씀하고 그냥 지나가십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그 행위를 보고 비웃는다.’ 했습니다(시 2:4, 시 37:13). 깨달음이 아둔하여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인생들은 스스로 고통을 받고 화를 면하지 못하고 살고 있으니, 하나님이 보실 때 답답하고 어이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삼위일체>가 행하시고 <삼위가 보낸 구원자>를 통해 행하시면, 행할 때 즉시 알고 같이 행해야 됩니다. 유대 종교인들은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어 <차원 높인 새로운 역사>를 진행하시며 돕고 역사하시는데도 2000년이 넘도록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진짜로, 진실하게 믿는다면 바로! 압니다. 그것은 상식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데도 모르고 불신하고 사니, 그들은 결단코! ‘진짜로 믿는 자들’이 되지 못합니다. 이 시대도 그러합니다. 성경에 예언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약역사, 휴거 역사>를 지금 이 시대에 진행하고 계신데도 역사를 시작한 지 37년이나 됐는데도 저 기성은 모르고 안 믿고 삽니다. 진정으로, 진짜로, 진실하게 믿는다면 모를 수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은 ‘포도나무 비유’를 들어 말씀했지요?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너희는 가지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과 ‘심정 일체’ 되어서 진실로 진짜로 믿어야 됩니다. 그래야 진짜로 하나 되어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역사를 알고 깨닫고 따릅니다. 하나 되지 않으면 한 명이든, 10억 명이든, 수십억 명이든 모릅니다. 지금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시대 보낸 자’와 함께 <성경에 예언된 역사, 성약역사, 휴거 역사>를 진행하셔도 ‘하나님, 성령님, 성자와 하나 되지 않은 자’는 모릅니다. 삼위일체와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끊어진 것입니다. ‘자기 생각의 줄’로 연결되어 삼위일체를 꽁꽁 매고 사는데, <삼위의 행하심과 역사하심>을 모르겠습니까? 삼위일체와 주와 사랑 일체, 생각 일체 되지 않고, 자기 주관, 자기중심으로 살고 믿어도 자기 좋은 대로, 자기 편한 대로 믿고 사는 자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고, 축복하시고, 도우시고, 역사하셔도 모릅니다. 삼위일체와 주와 하나 되어 그 말씀에 순종하고 살면, 이 시대 하나님이 어떤 것을 심판하셨는지 알고 헛소리를 안 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어떤 것을 축복하셨는지 알고 감사하고 기뻐하며 따릅니다. 아모스 3장 7절을 보면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적인 심판인데 모르고, “날씨가 너무 덥네? 더럽게 사니 병이 왔네? 하다 보니 실수로 손해를 봤네?” 합니다. 하나님은 ‘행위’대로 심판하시고, ‘행위’대로 축복도 주십니다. 악인은 그 행위대로 심판하시는데 ‘병’이나 ‘경제’로 때려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더라도 자기가 게을러서 ‘자기 건강관리’를 안 하다가 치명적인 병들이 와서 그 병이 몸에 자리 잡아 목숨을 빼앗아 가기도 합니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31 이 부분은 이전 설교 때 말씀해 줬습니다. <삼위일체와 하나 되지 않은 자>는 삼위일체가 구원자와 함께 행하는 것을 모릅니다. <삼위일체와 하나 된 자>는 삼위일체가 구원자와 함께 행하실 때 즉시 압니다. 하늘과 끊어진 자는 죽은 자, 잠자는 자입니다. 죽은 자, 잠자는 자는 모르듯, 하늘과의 연결이 끊어진 자는 모릅니다. 세상에서 그렇게도 큰소리치며 떵떵거리던 자들의 영이 <천국>에 가서 뭐하나 보면, 천국에 없습니다. 그 영이 어디 갔나 했더니, <흑암 세계>에서 고통받느라 이를 갈고 있습니다. 그렇게도 세상에서 세상을 구한다고 하더니만 결국 ‘자기 하나’도 못 구했습니다. 그를 따르는 자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도자가 <지옥>에 갔으니, 그를 따르는 자들도 ‘같은 사상’을 가지고 사니 똑같이 그 세계로 갑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고, 계속 믿고 삽니다. 불행한 종교인들입니다. 따르는 자들에게 이야기해 줘야 되는데 안 합니다. 왜요? 몰라서 말을 못 합니다. 영계에 가서 확인하면 아는데, 실력이 없어서 확인을 못 합니다. 오직 절대신 전능자 하나님, 성령님, 성자와 절대 일체 되어, 그가 보낸 자를 알아보고 그 말씀을 듣고 하나 돼야 합니다. 그러면 <삼위의 행하심과 역사>를 알게 되고, 그로 인해 표적을 보고 능력을 행하며 살게 됩니다. 어떤 일이든지 <삼위일체>가 행하시고 <삼위가 보낸 구원자>를 통해 행하시면, 행할 때 즉시 알고 같이 행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성령님, 성자께서 껴안고 사랑해 주실 때 즉시 깨닫고 “아이, 좋아! 사랑해요. 시원해요. 따뜻해요. 눈이 와요. 비가 와요. 구름이 꼈어요.” 하며 감탄해야 됩니다. 또한 만물로 계시를 주실 때 즉시 깨닫고 “만물 계시를 주셨네요. 깨달았어요! 감사해요! 지금 시원하지만 더 시원하게 해 주세요. 더 짜릿하게 기적을 보여 주세요.” 해야 그 순간!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돌풍 치게 역사하여 짜릿하고 화끈하게 <기적의 임재 역사>를 하십니다. (믿습니까?) 오늘 이것을 깨우쳐 주었으니, 앞으로는 성삼위의 행하심을 모르고 “왜 안 도우시나? 이런 것까지 신경 쓰실까?” 하며 답답하게 자기 생각대로 함부로 말하지 말고, 아둔하게 때 지난 후에 감사 감탄하지 말고, 삼위일체가 역사하셨는데 모르고 “우연이지. 기후 변화이지.” 하며 엉뚱한 소리로 삼위의 심정을 답답하게 하면 안 됩니다. 재치 있게 눈치 빠르게 알아차려야 됩니다. 그렇다고 눈치로 넘겨잡아 팔 부러뜨리지 말고, 정상적으로 잘 깨닫고 행하기 바랍니다. (아멘!) ◎ 한 가지만 더 짧게 이야기해 주고, 오늘 말씀 마치겠습니다. 기도하다가 성령님과 대화하며 물었습니다. “오늘은 어디로 가십니까?” 하니, “오늘은 여기 있겠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씀을 쓰니 여기에 계시는가?’ 생각하고, “무슨 일이에요? 성령님이 하루 종일 여기 계신다니 정말 좋아요! 오늘은 하루 종일 잠시도 성령님을 잊지 않고 잘 모실게요!” 했습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일순간도 성령님을 잊지 않고 가까이에서 모셔야지.’ 생각하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일하다 보니, 순간! 종일 내 옆에 있겠다고 했던 성령님을 잊었습니다. 그래서 ‘아! 잊어버렸네.’ 하고, 성령님을 부르며 말했습니다. “그렇게도 성령님을 잊지 않고 모시겠다고 다짐했는데, 일하다 보니 30분이나 잊고 있었어요.” 했습니다. 성령님은 “그렇게도 안 잊는다고 해 놓고 잊었냐?” 하셨습니다. “이제는 1초도 공백 없이 연속적으로 잊지 않고 모실게요.” 했습니다. 성령님은 “말씀만 쓰지 말고, 덥지만 뛰면서 운동하자. 그래야 내 마음을 깨닫는다. 그러니 지금 뛰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몇 바퀴를 뛰었는데, 뛰면서 다른 것을 생각하다가 또 성령님을 잊었습니다. 성령님이 내 옆에 계신 것을 잊었습니다. 성령님을 부르면서 “안 가셨어요?” 하니, 성령님은 “내가 아까 말한 대로 오늘은 하루 종일 옆에 있는다니까.”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나를 또 잊었냐? 정말 못 말리겠네.” 하셨습니다. 결국 “제가 왜 이러지요? 정말 안 되겠어요! 성령님을 <손>으로 움켜잡고 다니면 안 잊어버리겠어요.”했습니다. 이에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손>으로 내 팔목을 쥐고 다녀도 <뇌>에서 <네 생각>에서 잊으면 잊어버린다. 사람이 <눈>으로 봐야 보이고 잊지 않듯이 <생각>으로 생각해야 잊지 않는다. <눈을 뜬 자>는 보면 알듯이, 누구든지 ‘삼위일체를 생각’하면 삼위일체가 함께한다는 것을 느끼고 감사하고, 삼위일체가 역사할 때 알고 감탄하고, 삼위일체가 도울 때 알고 감탄하고, 삼위일체가 만물로 계시할 때 깨닫고 안다.”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이것을 가르쳐 주시려고 하루 종일 안 가고 내 옆에 계신다고 했구나.’ 깨달았습니다. 깨닫고 계속 성령님을 생각하니, 하루 종일 잊지 않고 같이 살 수 있었습니다. 섭리인 모두도 성령님의 말씀대로 하고, 선생이 성령님께 배우고 행한 대로 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계속 삼위일체를 잊지 않고, 삼위일체가 역사하시고 도우실 때 바로 알고 감탄합니다. <눈>으로 보듯 <생각>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살아서 존재하시니 바로 느끼고, 잊지 않고 계속 생각하니 같이 살게 됩니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32 선생도 <눈>으로 못 보니 실감 나지 않는다고 하고, 혹은 믿어지지 않는다고 하고,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육의 눈>으로 보듯이, 매일 <생각의 눈>으로 보세요. 살아서 여러분과 함께하며,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함께 끊임없이 뜻을 위해 행하고 있으니 생각하면 느끼고 실감하고 가까워집니다. ◎ 모르니, 삼위일체가 역사하셔도 예사로 여기고 그냥 지나간다. 모르니, 도와줘도 아쉬워하고 불평한다. - 말씀 마쳤습니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33 2015년 08월 26일 수요일 범사에 감사하라 [ 살전 5:15-18 ] 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5 Make sure that nobody pays back wrong for wrong, but always try to be kind to each other and to everyone else. 16 Be joyful always; 17 pray continually; 18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for this is God's will for you in Christ Jesus. 전국에 있는 엠에스 그리고 세계에 있는 사람들, 그동안 얼마나 수고 많았습니다. 선생님이 서 있는 이곳은 월명동, 여러분들이 아끼고 또 하나님이 선물로 하나님의 귀한 자연의 전, 성지입니다. 오늘은 이곳에서 지도자들이 어제부터 모임이 있었고, 오늘 주일날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벌써 2시가 가깝게 되었지요? 오늘이 10월 18일입니다. 지금 잔디밭 위에서 우리 엠에스들이 전부 모여 있는데, 예배 말씀 들으러 올라가는 중에 잠깐 만났습니다. 올라가서 말씀할 테니까 말씀 듣고 오늘 일주일의 말씀을 잘 들어서 이곳에서 되어진 사실과, 환경 배경을 비디오에 담았으니까 잘 보고 이후에 왔을 때도 지도자들을 통해서 말씀 듣고 여러분들이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십시오. 최대 복음의 전방인 캠퍼스와, 직장에서 최대 많은 생명들과 부딪히면서 일하는 그 복음의 전선에서 뛰느라 여러분 정말로 수고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지도자들은 지도하고 통솔하느라 또 수고가 많았습니다. 어젯밤에 뒹글고 몸부림을 친 장소가 바로 이 장소입니다. 아침에 물을 줘서 잔디를 다시금 촉진을 시켰습니다. 낮에는 밟아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이 만든 장소, 여러분이 쓰기위해서 만들었으니 써도 괜찮은데, 진땅에는 밟으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사람도 시험 중에는 밟는 것이 아닙니다. 잔디도 시험이 있을 때 비바람이 칠 때, 그때 밟으면 맥을 못 씁니다. 여러분들, 시험 든 사람을 짓밟지 말고 잘 보호해야 되겠습니다. 어제 왔다가 작업하는 현장도 보고, 또 오늘은 주일을 여기에서 지키게 되었는데, 120개 교회와 세계 20개 나라의 지도자들은 미처 못 온 자는 못 왔습니다. 그래도 와서 실제로 보니까 가을의 모임도 필요하고, 이제 우리가 인원이 많아져서 다는 모일 수가 없습니다. 지도자만 해도 100명, 200명 딸린 사람들 중에 한명씩만 온 것이 이렇게 많은데 다 오면 끝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 모임은 24일에 우리 한국에서 제일 큰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에서 모이기로 하고 이곳에는 지도자들만 조용히 모이자고 했습니다. 어젯밤 지내고 나니까 별 것도 아니지요? 그래서 시험 핍박과 어려움이 있어도 겁내지 말라. 어젯밤에 비닐을 못 뒤집어 쓴 사람들은 마구 맞았습니다. 어제 비닐도 없어서 마구 맞은 사람들은 한번 손들어 보세요. 그렇게 맞은 사람들도 여기 앉아 있으니까 표가 안 납니다. 옷이 다 말라서 똑같습니다. 그것이 24시간 안에 치료가 되더라 그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들도 지내고 나면 별것도 아닙니다. 비 맞아봤자 별것도 아니고 어려운 일을 당해도 별것 아니고 지나고 나면 다시 복직만 할 수 있다면 사실상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직이 문제이지 당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앞에 축대가 무너져 100트럭씩 무너졌는데 밀어붙이고 다 복직해 버리니까 오히려 “잘 무너났구나. 오히려 운동장이 더 넓어졌다.” 이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모이게 되었습니다. 전국에 있는 엠에스들, 이 비디오가 지도자의 행함에 대해서 말씀해 줄 것입니다. 전국과 세계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선을 위해서 살겠다고 하는 분들, 수고가 많습니다. 오늘 이곳은 여러분들이 늘 얘기로 듣던 선생님의 고향, 저 멀리 보이는 것이 생가입니다. 그리고 그 앞에 운동장입니다. 그래서 축구장의 면모가, 길이는 135미터이고 넓이가 좁은 데가 45미터이고, 넓은 데는 55M쯤 됩니다. 충분히 축구장의 면모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소원하던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항상 남의 운동장에서 가서 놀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청소를 잘 합니까. 정말로 절에 간 색시같이 말을 잘 듣는 우리들이 잘 닦아 놓으면. 금방 내놓으라고 하면 내놓고 그랬는데, 그래서 내가 마음에 한이 있었습니다. 애들은 많고 장소는 없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애들은 많고 집이 없어서 그렇게 걱정을 했는데, 그것을 못 때려 부셨는데 내가 때려 부셨듯이 과감하게 여러분에게 이 장소를 하나님의 선물로 받고서 이 만큼 해 놨으니까 충분히 산골짜기에서 이만치만 있어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더 이상 앞산을 파 파들어 가면 보기 싫고, 뒷산도 파면 보기 싫습니다. 여러분이 심었던 잔디는 이렇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잘 자랐습니다. 어젯밤에 밟았지만, 내년 봄에는 또 새파랗게 일어날 것이니까 괜찮을 것입니다. 오늘 주일입니다. 지도자들이 다, 목사님들이 다 왔기 때문에 그들끼리 예배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시장에 갔을지라도 때가 되면 자기들이 찾아 먹습니다. 한 끼 잘 못 먹었다고 해서 죽는 것은 아니니까 걱정할 것 없이 여기서 말씀 듣고 가십시오. 여러분들이 힘나게 잘 돼야, 지도자가 잘 먹고 잘 지내고 건강하고 기분이 좋아야 기분 좋게 가서 인도할 수 있습니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34 내가 기분이 나쁘면 여러분들 전체가 안 되잖아요. 그래서 지도자가 첫째 배불리 먹고, 첫째 잘 돼야 여러분이 잘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지도자로서 가장이 아니겠습니까. 가장이 쓰러지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러분 먼저 기분전환도 시키는 것입니다. 가을 되면 일반 교회 같으면 다 돌아다니는데, 여기는 여러분이 돌아다니지 말라고 해서 안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근본된 양심을 찾고 근원적인 인생을 찾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마음 돌린 아들이, 탕자가 집에 돌아와서 마음대로 못 하듯이 누가 시켜서 마음대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운전하고 컨트롤하고 나가기 때문에 돌아다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을 돼서 이곳으로 모두 석막리 감나무골, 월명동이 산 좋고 물 좋다고 하는데 그동안 와 봤지만 지도자들끼리 같이 만남의 장소가 없었는데, 그동안 서로 만나서 서로 얘기를 못했지만 이번에 지도자들끼리 서로 만나니까 ‘아, 이들이 지도자구나.’ 하며 서로 눈으로 봤습니다. 서로 확인하고. 지도자들만 해도 거진 다 모이면 한 2천여 명이 됩니다. 그 인원으로 섭리 전체를, 세계를 관리하고 나가는데 어리지 않습니까. 많이 커야 되지 않겠습니까. 부지런히 크고. 지도자를 하다가 사정상 일선에서 물러난 사람들 중에 다른 데서 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꼭 C.L만 되고, 간사만 되고, 교역자만 된다고 지도자가 아니라 이름 없는 교역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정치인만 국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농촌의 농민들도 얼마나 국가를 사랑하고, 그 최전선에서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 예리하게 뛰는지 모릅니다. 대동맥에만 피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실 동맥에도 피가 흐르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섭리를 아끼며 뛰고 있다는 것을 지도자는 알아야 됩니다. 오늘 말씀에 이렇게 접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구름만 쳐다봐도 여러분들의 가슴이 좀 떨릴 것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어제 맞아봤거든요. 시험이란 것은 그렇게 한번 당해봐야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심을 하지요. 시험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도 다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시험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비닐을 씌워주듯이, 선생님이 하듯이 여러분들도 최대로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들을 쫓아다니면서 관리를 해 줘야 됩니다. 1) 계속 쫓아다니면서 관리를 해 줘야 됩니다. 지도자가 할 일입니다. 어제 새벽 3시부터 7시까지 4시가 50분 동안 뜨락에 서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밤을 거뜬하게 새고 해가 불끈 뜰 때까지 말씀을 들었지요? 지도자가 나타나면 그렇게 간단합니다. 지도자가 시적부적하면 따르는 백성들은 너무 고생스럽다는 것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모든 사회의 지도자들을 보면 답답하지 않습니까. ‘내가 지도자가 되면 저렇게 안 하겠다.’ 했으니까 한번 그렇게 안 하고 열심히 해 보라는 것입니다. 어젯밤에 5시간 가까이 했는데, 오늘 또 말씀을 한다는 것이 무리지만 주일말씀만 전하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4절부터 죽 말씀했습니다. “내가 권면한다. 규모 없는 자같이 행하지 말고 규모 있는 자같이 하라.” 사람이 규모가 있어야지, 규가 있고 모가 있어야지 두루뭉술하면 호박풀대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서로 규모 있게 살도록 하라. 약한 자도 안위해 주고, 보호해 주고, 그리고 서로 붙들어 주며, 또 모든 사람에 대해서 오래 참으라. 이게 지도자들이 특히 해야 될 사명들입니다. 2) 지도자들은 규가 있고 모가 있어야 됩니다. 그냥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그리고 흐리멍덩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서로 안위해 주고, 보호해 주고, 그리고 붙잡아 주고! 붙잡아 주면 절대 안 넘어갑니다. 이런 것을 꼭 지도자들이 철저히 해야 합니다. 3) 지도자들은 성경을 많이 읽고. 성경의 일반적인 것은 여러분 자신이 충분히 해석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못하지요. 4)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캠퍼스나 사회에서 여러분에게 마음 심정 꼴 틀리게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다 환영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모르는데 처음부터 환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가서 잘 붙잡아 주고, 서로 잘 대해 주고, 원수까지 사랑해 주며 할 수 있는 그런 자가 되지 않고서는 이런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피차에 모든 사람을 대할 때 항상 선(善)을 중심해서 선을 좇아 행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도자들이 먼저 시범적으로 해야 될 문제들입니다. 5) 항상 기뻐하라! 여러분들이 기뻐할 것이라는 것은, 꼭 돈을 주워야 기뻐하고, 가다가 미인을 만나 애인이 돼서 기뻐하기보다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라. 하나님을 보고 기뻐하라! 이것을 중심해서 이뤄질 때 땅에서도 모든 일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짜증부리며 나가면 사람이 일찍 늙게 되고 병들게 됩니다. 6) 쉬지 말고 기도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어느 날을 정해놓고 기도하기보다 한 술 밥에 배부를 수 없으니까 여러분들이 무시로 늘 기도할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부모 앞에 대화하고, 형제 앞에 대화하는데 정해놓은 시간에만 “토요일 오후 1시에 서로 대화하자.” 하면 그동안의 대화거리가 있는데 못 하면 어떻게 합니까. 항상 미리미리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35 7) 범사에 감사하라! 오늘 주제의 말씀이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꼭 감사해야 됩니다. 감사하는 데 있어서 모든 것을 알아야 감사하지, 그냥은 감사를 못합니다. 모든 것을 알아야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냥은 감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감사할 것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감사할 것이 없다는 사람은 그만큼 무지하다! 인생에 대해서 무지하고, 하늘에 대해서 무지하고 이웃에 대해서 무지하고, 사람에 대해서 무지합니다. 그래서 서로 끊기지요. 그만큼 모르기 때문에 감사를 안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제까지 살아온 것을 감사하고, 지도자를 만난 것도 감사해야 될 것이고. 요새 지도자가 그렇게 쉽게 됩니까. 그리고 생명을 책임질 수 있는 정도까지 맡은 지도자를 찾았다면 감사할 일이고, 또 영원히 인생을 맡길 수 있는 그런 존재자를 깨우쳐 줬으니, 알았으니 그것도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지난주 말씀에 “너희는 나를 위해 지음을 받았다.” 했습니다. 온 인류가 온전히 하나님을 위해 지음을 받았는데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원히 우리를 맡겨도 손색없는 분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영원히 감사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나는 하나의 여러분들을 전도한 자에 불과한 사람입니다. 감사하면 뭐가 좋은가 하면, 골자만 이야기하겠습니다. 흔히 가다가 불만이 있을 때 슬럼프에 빠져버립니다. 불만을 일으킬 때, 감사하지 않을 때. 사람이 제일 무서운 것이 슬럼프에 빠지고, 자포자기할 때. 그때 왜 그런가 하면, 자기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 자포자기해 버립니다. 슬럼프에 빠져 버리게 됩니다. 그것이 없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게 되면, 마치 무엇과 같은고 하니, 매일 기도를 한 시간씩 꼭꼭 하고, 성경을 한 시간씩 꼭꼭 보고, 그리고 매일 한 시간씩 전도하고 돌아다닌 만큼 실적이 올라갑니다. 감사하면 자기가 죽지 않습니다. 대개 불만할 때 자기가 쓰러지고 넘어지거든요. 사회에서 성공할 때도 마찬가지이고, 어떤 재벌가들도 마찬가지로 감사하는 마음이 없고 불만이 있으면 못하는 것입니다. 감사할 때 자포자기에 빠지지 않고,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실의에 빠지지 않고. 그 문제에 부딪힐 때는, 자포자기에 빠져있을 때는 옆의 사람이 힘 있게 붙잡아 줘도 헛일입니다. 제일 무서운 고질적인 난치적인 무서운 것이 자포자기하는 것입니다. 자포자기하면 그냥 끝나버립니다. 감격하고 감사할 때는 희망이 와 버립니다. 희망이 올 때 실적이 오르고, 뛰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Thank you very much! 감사합니다.” 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감사의 도의 원리’가 거기에 있습니다. 감사도 범사에 감사해야지, 어떤 뜨끔할 때만 감사하고, 좋으면 감사하면 안 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24시간 다! 비 올 때 애인이 좋다는 소리를 안 하고, 애인을 사랑치 않으면 되겠습니까. 그러면 날이 좋기만을 기다릴 것 아니겠습니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좋아해야지요. 비 오고 눈 오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시험, 핍박받는 것과 상관이 없습니다. 시험 핍박 어려움이 오는 것은 자기가 보다 이상적인 세계를 가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안 가고 핍박이 있다고 안 가면 되겠습니까. 안 되지요. 볼을 차는 사람이 볼(ball)을 쫓아가다가 “아, 지쳐죽겠다.” 하면 나와 버려야지요. 그와 같이 어떤 이상적인 세계를 발견하고 가는데, 어려움이 있지만 그것은 어려움이 아닙니다. 홍시를 하나 따먹으려고 해도 감나무에 올라가야 됩니다. “아 정말 미끄러져서 미치겠다.” 하고 불만불평하려면 올라가지 말아야지요. 따먹지 말고. 여러분의 입장이 그와 똑같습니다. 의(義)를 위해 핍박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본인에게 얻어지는 것이 있기 때문에 뛰는데, 그것 때문에 불만과 불평이 있으면 절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도자들은 특별히 그렇게 하십시오. 대개 큰일을 한 사람들은 항상 환경에 감사하고, 자신이 늘 감격감사 하면서 자연에 감격감사하고, 모든 일을 감사로 돌려버린 사람이 성공했습니다. 여러분들 매사에 일을 해 왔을 때를, 그동안 인생을 살아온 것을 보십시오. 불만불평 했을 때 가정이 별로 안 좋게 되고, 또 개인도 안 좋게 되고, 환경이 안 좋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냥 “좋은 게 좋다. 서로 좋은 게 좋지.” 이러면서 살아야 됩니다. 환경에 적용하면서 꼭 감사를 해야 됩니다. 내가 지휘를 할 때 노래에 적용해서 지휘를 하듯이 똑같습니다. 환경에 적용해서 하고, 너무 과격한 지도자도 싫어합니다. 너무 과격한 지도자는 군 출신이라고 합니다. 국가에서는 그것을 싫어합니다. 또 민간 출신으로 너무 흐리멍덩해도 싫어합니다. 그래서 민간인적인 것도 섞이고, 군인적인 것도 섞어서 여러 가지로 잘 통솔해야 군인 출신들도 잘 할 것이고, 민간 출신도 잘 할 것입니다. 세모진 성격들, 네모진 성격들, 원 같은 성격들이 여러모로 잘 하니까 있는데, 8) 지도자가 그런 여러 성격으로 돌려나가야 됩니다. 선생님의 성격이 어느 때는 불같기도 하고, 어느 때는 시골 농촌 태생 같은 것이 풍기지 않습니까. 또 어느 때는 아주 정치적인 스타일(style)이 나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그렇게 해야 됩니다. 여러분들 친구 같기도 하고, 애인 같기도 하고 그런 여러 가지를 가지고 지도자들이 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을, 지도자를 교육하는 것이 큽니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36 여러분이 특히 그렇게 하고 가도록 하고, 지도자들이 감격하는 것을 배우고, 감사하는 것을 배워서 따르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정신을 넣어줘야 됩니다. 9) 지도자는 아주 나와 같이 배짱이 두둑하고 가라 하면 가는 것입니다. 비가 와도 가고 눈이 와도 가고, 갈 때는 그냥 가는 것입니다.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합니까? 무서워하면, 심령 기준에 따라서 날씨가 바뀝니다. 여러분의 심령 기준에 따라서 환경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심령을 그렇게 먹으면 그렇게 되어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비가 올까? 오겠다. 오겠다.’ 하며 무서워하면 자꾸 비가 오면 불만입니다. ‘비가 왜 안 오냐? 비 좀 한번 싹 맞아봤으면 좋겠다.’ 그런 대담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지요. 앞으로 살 때 인생을 그렇게 살도록 하고, 죽을 때까지 그런 삶을 지향해서 살도록 하십시오. 내가 그렇게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내가 늘 무시로 감사하면서 감격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감사하다는 소리를 하루에 수십 번씩 합니다. 진실로 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뭐가 감사하냐?” “이러이러해서 감사하지 않습니까! 나를 그냥 놔뒀으면 이 산골짜기를 떠나는 사람들의 논밭이나 사려고 하고, 저 집에 앉아서 한번 살아보려고 그렇게 몸부림치지 않았겠습니까.” 제일 불쌍한 것이 새로운 역사가 왔는데 기성에 있는 기성인들입니다. 나도 기독교에서 오랫동안 살아봐서 잘 압니다. 맨날 눈물을 흘렸지만 고민문제가 처리되지 않았습니다. 걱정 문제가 처리가 안 되고. 이런 새로운 역사를 받고 나니까 이렇게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여러분들같이 모든 대한민국의 종교인들이 뒤집어지고 새로운 역사로 와야 되는데, 너무 불행하게 되었습니다. 총각이 처녀를 기다리다가 늙어서 흰머리가 나면 너무 불쌍하지 않습니까. 혹시 50대에라도 기다리던 아가씨가 나타나면 너무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만나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을 전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옛날 유대종교인들이 4000년 동안 메시아를 기다렸는데, 역시 정말로 총각 때 주님이 왔습니다. 가장 처녀 같은 때, 총각 같은 때에 메시아 예수님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입을 잘못 놀려서 망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지 않았다고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메시아가 안 온 것이 맞습니까? 왔잖아요. 그런데 왜 안 믿었냐? 자기들이 성경을 문자대로 해석했기에 메시아가 구름을 타고 올 줄 알았습니다. ♬ (선생님 노래) 아 - 으악새 슬피 우니 아아 으악새 슬피우니 이렇게 가을이 왔어 기나긴 그 세월이 나를, 너를 울립니다 이와 같이 으악새가 새인 줄 압니다. 으악새가 억새잖아요. 왕바위골에 가면 억새가 많이 있습니다. 으악새가 나는 새가 아니듯이, <구름>이 이런 ‘구름’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요 위의 날망에서 메시아가 온다고 맨날 흙을 파놓고, 반반하게 해 놓은 데가 있지요? 여기 황토박이! 반반하게 몇 평씩 만들어 놓고 거기 구름 지나가면 예수님이 거기 앉으라고 했습니다. ‘혹시 모른다. 나한테 올 것만 같다.’ 해서 항상 기다렸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15년 이상 그랬습니다. 진짜 구름 타고 오는 것을 믿는다면 그 짓이라도 하는데, 목사님들은 그 짓을 안 합니다. 그래서 내가 알아봤습니다. 한번은 내가 가보니까 발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회골을 넘어가다 보니까. “야 왔구나! 주여!” 하고서 무릎을 꿇고 방향을 보니까 여기로 내려왔더라는 것입니다. 눈물이 막 나서 “야~ 드디어 오셨구나. 그런데 예수님 발이 도둑놈 발같이 크다.” 했습니다. 보니까 너무 크더라는 것입니다. 내려 가보니까 어떤 남자가 미듭을 베고 있었습니다. “개새끼, 저 새끼 사람이네. 왜 그렇게 반반하게 해 놨는데 왜 걸어갔냐? 상식이 있지.” 하고 속으로 소리를 막 지르면서 욕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뭐여: 여기 달밝골 살아?” 하길래 화가 나서 대답도 안 했습니다. “벙어리 마빡을 찼나, 소리도 않고 있어? 남의 산에서 미듭을 베어간다고 쳐다보고 있는 거야?” 그래서 내가 다시 거기를 반반하게 해 놨습니다. 그렇게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내가 메시아를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산꼭대기에 구름이 지나가면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항상 이 근방에서 꼭 올 것만 같았습니다. 분명히 이 근방에서 올 것 같았습니다. ‘대둔산에서 내려오시려는가? 대둔산이 명산이니까.’ 명산 중에 ‘돌바위’ 하면 대둔산이 제일 낫거든요. 내가 설악산은 안 가봤으니 대둔산에서 올 것만 같아서 ‘혹시 왔나?’ 하고 산꼭대기를 갔다 오고 맨날 돌아다녔습니다. 그래서 산꼭대기마다 다 기도하고 돌아다닌 것입니다. 그것이 근거가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예측이 틀림없습니다. 영감이 민감하게 잠깐 오면, 번뜩하고 조금만 와도 맞습니다. 그것만 사용하면 여러분 전체가 머리 써도 못 따라 옵니다. 운동장을 보십시오. “저것 뒤집어라. 빨리 마르게 하려면.” 그랬습니다. 물이 철퍽철퍽 모를 심을 정도였는데 뒤집고 나니까 바싹 말라 버렸습니다. 그게 영감입니다! 여러분들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뒤집으라고 하잖아요. “뒤집어라. 뒤집으면 금방 마르니까.” 그 영감을 따라갈 수가 없잖아요. 그렇게 무섭습니다. 영감을 가지면 죽을 곳에서도 살고! 앞산을 불도저로 밀고 작업하고 있는데 돌이 많이 굴러 내립니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37 그 중에 밤만 한 작은 돌 하나가 굴러왔습니다. 그 놈이 지나가면서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산 온다! 산!” 그와 같이 그러합니다. 징조가 조그마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무너난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도저는 멍청하니 빨리 못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저가 반쯤 묻혔습니다. 돌을 한 100트럭 실어냈습니다. 그때 애들은 다 이쪽으로 나왔고. 그래서 영계가 필요하고 영감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여러분을 통솔하지 않습니까. 10) 지도자들은 영적이어야 됩니다. 지도자들은 역시 민감해야 됩니다. 영특해야 된다 말이여!! 멍청하면 애들이 안 따라 와! 못 따라와! 미련하면 쓰겠어? 지도자들이? 누가 너희에게 생명을 맡길 사람이 있어? 여러분들이 섣불리 하면, ‘직접 통로’가 있지 않습니까. 나한테 오면 됩니다.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을 지도자로 세웠기 때문에 여러분을 거쳐서 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아, 놔두면 선생님을 직접 만날 수 있다. 얘들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본인이 선생님의 대신자가 되어서 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지도자 대신 여러분에게 맡긴 것입니다. 영적이어야 된다! 그러려면 하나님께 하라! 나도 기도했으니까. 요새도 기도하잖아요. 엊그제도 13시간 동안 일하고, 새벽 1시에 산에 올라가서 5시까지 서서 기도하고 내려왔습니다. 어제도 금방 나와서 서서 새벽 3시에서 7시까지 말씀을 하지 않습니까? 11) 지도자는 과감해야 됩니다. 지도자가 과감해야 따르는 사람도 과감하게 됩니다. 영웅이 다른 것이 없습니다. 나폴레옹이 나면서부터 담대한 줄 압니까? 한 가지 해 보니까 자신이 생기고, 두 가지 하니까 더 자신이 생겨서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고 자꾸 하니까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 놈의 쓸개는 다르게 생긴 것이 아닙니다. 내 쓸개도 다르게 생기지 않았습니다. 똑같습니다. 과감하고 대담한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앞으로 자식을 낳아 기를 때도 필요하고, 사회생활을 할 때도 필요하고, 사회에서 성공할 때도 필요하고, 다 필요한 것입니다. 담대한 것이! 자포자기하지 않는 것이 자본입니다. 그리고 내가 돌아다니면서 운동장의 돌도 주우라고 해야 줍는데, 돌을 줍는 것은 상식이지 않습니까. 나는 주일학교 다닐 때부터 돌을 주웠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땅바닥을 사랑하니까, 길을 낼 수 있는 것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20년 후에! 기어이 길을 내게 해 주셨잖아요. 불도저가 밀어붙이게 만들잖아요.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라고 모으지 않고 힘쓰지 않고 되는 것이 있겠습니까? 더 노력하고, 더 애쓰고, 더 발버둥치고, 더 열심히 합니다. 선생님은 농촌에서 살아봤기 때문에 일을 보면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편하고 싶습니다. 나야 말 한마디만 하면 됩니다. 방안에다 마이크 갖다놓고 하면 되고, 무선 마이크 갖고 돌아다니면서 지시하면됩니다. 그게 지도자가 가는 원칙의 길입니다. 12) 뛰고 달리고, 같이 노동하고, 같이 뛰고, 한 삽 떠 뜨려고 하고, 일을 5배 이상 더 하려고 하고 6배 더 하려고 하고, 지도자는 그런 욕심이 있어야 됩니다. 누가 시켜서 할 것이 아니라 솔선수범해야 됩니다!! 맨날 어떻게 “국가를 사랑하라.” 하고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본인이 하는 것만큼 본인이 잘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가정 일을 어떻게 시켜서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어떻게 맨날 시켜서 하냐?‘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야, 너! 시켜서 어떻게 하냐? 집일이지 않냐. 혹시 남의 집 사람 같으면 시킨다.” 똑같습니다. 하나님이 부모님을 통해서 나에게 교육한 것입니다. 어느 때는 어머니를 통해서 교육하고, 어느 때는 동네 사람을 통해서 교육하고, 어느 때는 산을 통해서 교육하고, 어느 때는 벌레를 통해서 교육했습니다. 13) 지도자는 시키니까 하지 마십시오. 솔선수범해야 됩니다. “몰라서 못하는데요...” “왜 그렇게 몰라!” 대학교까지 나오고 공부했는데, 왜 모릅니까? 길바닥에 돌이 있어서 자기가 채여 넘어가는데도 모릅니까? 지도자가 되려면 다 뜯어고쳐야 됩니다. 인생의 근본을 뜯어 고치는 데는 선생 외에는 없다고, 대한민국에서. 모두 장관들이 얘기하잖아요. 1200만 명을 맡긴다고 책임을 져달라고 하잖아요. ->(번역용) 장관들이 나에게 “인생의 근본을 뜯어고치는 데는 대한민국에서 당신밖에 없습니다. 젊은 청년 1200만 명을 맡길 테니 책임을 져 주십시오.” 했습니다. 국가도 책임을 못 지고 부모도 책임을 못 지니 이들을 어떻게 하냐고 했습니다. 마약을 하는 애들이 전체 청소년의 10분의 1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참고해서 앞으로 오는 청소년들을 다룰 준비를 하라고 나에게 정보를 정밀하게 빼 줬습니다. 그렇게 마약을 많이 먹습니다. 마약을 먹고 환각작용을 일으키고, 그렇게 하는 불량 청소년이 전체의 10분의 1이라고 합니다. 10분의1이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입니다. 100만이 넘습니다. 그리고 금방 오염되어 버립니다. 한 동네에 노름쟁이가 한 명 있으면 옆의 사람 없이 혼자 노름할 수 있습니까? 열대여섯 명이 어울려서 합니다. 그렇듯이 금방 오염되어 버립니다. 여러분이 그런 세계에서 벗어난 것을 생각할 때 감사해야 됩니다.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 음성으로 듣지 말고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어(요).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38 왜 미련합니까? 미련하면 안 됩니다. 나도 이와 같이 혼나가면서 사람이 되어가지고 나와서 인간 영웅이 된 것입니다. 내가 입만 열면 금방 되어버립니다. 미련하면 안 되고 열심히 하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을 안 믿었을 때는 많이 미련했잖아요. 고달프게 살았잖아요. 그렇게 엄청나게 하늘의 은총을 받고, 말씀의 은총을 받았어도 감사치 않기 때문에 환경적으로 하나님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안 드는 것입니다. 나도 많은 사람을 도와주었는데 감사하지 않을 때는 안 도와주고 싶습니다. 좋아하고 감사할 때는 아까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코치를 해 줘도 왜 그렇게 모릅니까? 내가 벌어서 여러분에게 얼마나 줄 수 있겠습니까? 못합니다. 사랑하고 사랑해서 빵 하나씩만 주려고 해도 빵 사 줄 시간이 없고, 돈을 나눠 줄 시간이 없습니다. “오직 너희에게 방법론을 가르쳐 줄 테니까 하늘 앞에 이렇게 하도록 하라.” 여러분이 전도를 해서 “선생님에게 한번 잘 보이면 너 팔자가 편다. 너 잘 보여라. 이렇게 이렇게 해라.” 하고 코치를 해 줬는데, 엉뚱한 짓을 하고 선생님과 말다툼을 하고 왔다고 하면 여러분이 얼마나 속상하겠습니까. “그분에게 한번만 잘 보이면 너 진짜 괜찮다. 네가 스튜어디스가 되겠다, 방송국의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하는데 그분 따라가면 진짜 성공한다. 어느 국회의원이 기른 것보다, 어느 누가 기른 것보다도 영원히 영원히다.” 국회의원이 길러봤자 영원히 잘 되겠습니까. 대통령이 기르면 영원히 잘 되겠습니까. 오히려 정치가 뒤집어지면 정신을 못 차리고 골치 아파서 죽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상관없지 않습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이 소개한 사람이 나와 말다툼하면 속상하듯이, 하나님께 여러분을 내가 소개시켰는데 감사치 않고... “감사함으로 가라. 시편 100장의 말씀같이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고, 노래함으로 그 궁에 들어가라.” 불만불평하면서 들어가면 되겠습니까. 앞으로 나를 만나려면 7개월간 교육을 받고 오라는 것입니다. 대통령 만나는데 교육을 6개월 걸려 받는다고 합니다. “7개월 교육을 받아라. 한 달 동안 공적 쌓고, 한 달 동안 기도 하고, 한 달 동안 전도 하고, 한 달 동안 교육을 받고, 한 달 동안 실습하고, 이렇게 과정을 거쳐서 나한테 와라. 7개월 교육받다 보면 올 필요가 없겠구나 할 것이다.” 여러분이 친구 만나듯이 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자주 만나면 나는 다른 사람을 못 만납니다. 지도자들이 이런 문제도 교육을 시켜요. 알겠어요? 나중에 돌아다닐 때 바깥에서 만나면 좋잖아요. 꼭 개인적으로 보려고 하고, 앉아서 보려고 하는데 응접실에서 앉아서 볼 시간이 어디 있고 방 안에서 앉아서 볼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한두 명이 아니고 지도자만 해도 이렇게 많으니 지나가다가 만나도 그것이 만난 것입니다. 어떻게 내가 하나님 보좌에 가서, 옆에 앉아서, 조용히 앉아서 그럽니까. 응접실에서 밥을 먹어가면서 만나는 것만 만나는 것입니까? 길거리에서 만나든 여기서 만나고 저기도 만나도 만나는 것입니다. 음성이 나면 옆에 있는 것을 알 것 아닙니까. 그것으로 만족하면 되는데, 악수하고 만났으면 그것으로 끝난 것입니다. 특별히 만나야 된다 하는데, 특별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귀가 4개 달렸다면 그 사람은 내가 특별히 한 번 더 보고 싶습니다. (웃음) 인식을 뜯어 고치도록 하십시오. 이곳은 내가 자라고 큰 곳이고, 이곳에서 계속 뜀박질하며 진대기를 친 장소입니다. 이곳을 개발해서 여러분들이 쓰게 되니까 감사하지 않습니까. 잔디밭도 범석이가 계속 비료 주고, 20포대를 한 번에 줘서 당세에, 작년에 심고 올해 심고서 그냥 앉혀 버리잖아요. 늦기 전에 써먹자는 것입니다. 오늘 천국은 오늘 끝나고 맙니다. 내일 천국은 내일 또 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오늘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나이 먹기 전에 해야 됩니다. 내가 나이 먹으면 축구장을 만들겠습니까? 다른 것을 만들지요. 정원을 만들고 다른 것을 만듭니다. 조경을 해 버립니다. 지도자가 젊었을 때 만난 것을 좋아해야 됩니다. 내가 나이 먹으면 축구를 할 수 있겠습니까? 골병드는데 하겠습니까. 안 하지요. 내가 나이를 먹게 되면 벌써 프로그램이 달라집니다. 그러니 이때에 확 밀어붙이고 하라는 것입니다. 제일 좋을 때가, 여자가 제일 좋은 때가 19살에서 23살까지로 A급입니다. 23살에서 26살까지는 B급, 30살까지는 C급, 그 다음에는 시간이 없어서 칠 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확실합니다. 틀림없습니다. 상식입니다. ‘인생에 대해서는 C급이 됐지만, 이제는 신앙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지 않겠냐..’ 하지만, 육신을 쓰고 하기 때문에 열심히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25살 먹었다고 ‘나는 너무 늦었다.’ 하는데 그때부터 또 해야 35살 먹었을 때 “10년 전이 젊었을 때다.” 합니다. 그래서 “나는 늦었다.” 하면 안 됩니다. 14) 지도자는 감사의 본을 보여 줘야 됩니다. 밑의 사람들이 나에게 다 보고를 합니다. “우리 지도자는 맨날 뭐가 심통인지, 연애하다 실연당한 여자 같고, 연애에 실연한 남자 같아요. 뭐가 짜증나는지 짜증을 부리고 뭐하는지 모르겠어요. 도대체 말씀듣기도 싫습니다.” 이런 보고가 들어오면 안 됩니다. “우리 지도자는 벙실벙실 홍실홍실 여우가 들어앉아서, 제가 찌륵소 같은데 어떻게 하는지 나중에 기어이 돌이켜 놓고 가요. 지도자가 참 훌륭해요. 별로 잘 생기지도 않았는데, 두루뭉술하게 생겼는데 그렇게 잘해요.” “너희 지도자는 바꿔야 된다.” “왜요?”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39 “두루뭉술해서 사람이 안 따를 것 같다.” “아니에요! 절대 안 됩니다.” 이와 같이 증인만 하나 나타나도 안 바꿉니다. 그때는 바꾸면 절대 안 됩니다. 농촌에서는 일만 많이 하면 최고입니다. 미남 얻어다가 일합니까? 미인 데려다 일합니까? 일만 많이 하면 최고라는 것입니다. 사과나무는 잘생겼든 못생겼든 사과를 많이 열면 되고, 감나무는 키가 작든 크든 감만 많이 열면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나님도 그렇게 치니까 열심히 하십시오. 나를 사랑한다면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것을 뭘로 보겠습니까? 계명을 지키나 안 지키나 그것으로 봅니다. 기성인들이 불쌍합니다. 새로운 역사를 따라가야 됩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내지 않았다면 이 골짜기에서 소쩍새들과 밤을 새우며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을 쳤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똑같습니다. 불러내지 않았으면 그렇지 않겠습니까. 유대민족과 같은 짝이 나지 않도록 하고, 시대의 때를 놓치지 마십시오. 분명코 이야기를 하지만 급한 사람들은 급하게 가르쳐 버리십시오. 뭘 순서를 짭니까. 한번 놓치면 또다시 못 만나는데. 그래서 내가 어느 때는 3분에 끝내고, 4분에 끝냅니다. 유대 민족은 그런 데서 큰 실패를 한 것입니다. 가장 좋은 ‘때’를 빼앗긴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니까 하나님이 구름타고 꼭 올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땅에서 나타났습니다. 오늘날 모든 지도자들도 땅에서 오지 하늘에서 옵니까? 나 같은 지도자도 땅에서 왔습니다. 15) 무엇보다도 지도자들은 세심하게 애들을 좀 다뤄 주도록 하십시오. 오늘날 기독교가 예수님을 믿으니까 예수님이 올 것으로 철통같이 믿고 있습니다. 나는 ‘땅에서 온다’는 것으로 받아 가지고 왔습니다. 땅에서 온다! 하늘에서 온다는 것은 법칙에 벗어난 것으로 100만분의 일도 근거가 없습니다. 성경을 제대로 못 보고 ‘으악새’를 ‘새’로 푼 것과 같은 입장입니다. 붕어빵에 붕어가 들어있는 줄 알고, 풀빵에 풀이 들어있는 줄 알고, 칼국수에 칼이 들어있는 줄 아는 입장과 똑같습니다. 문자대로 해석하면 가래떡에 가래가 들었게요? 불 가지고 심판한다고 알고 있는데, 불 가지고 심판할 리가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다. 상징적인 얘기다. 불같은 말씀! 불같은 교육! 불같은 사랑! 불같은 심정! 불같이 일한다!” 이것이 바로 불같은 말씀이잖아요. 우리는 때를 알고 그런 이치를 깨닫고 하지 않습니까. 나도 책임이 크다 그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해서 과감하게 해 나가십시오. 몇 년 만 가면 부러워 할 것입니다. 왜 반대했냐고 자기들끼리 욕을 할 것입니다. “왜 알지도 못하고 반대했냐? 가보니까 그것이 아닌데....” 그런 소리가 이제 나올 것입니다. 지금 누가 이단 소리 한다고 못합니까? 솔직히 말해서. 기분만 약간 나쁘지요. 사실상은 그렇게 기분 나쁜 것도 아닙니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데 그 여자의 부모가 “저 개 같은 놈, 돼지 같이 생긴 놈, 저 도둑놈 같이 생긴 저놈의 새끼!” 하며 욕을 한다고 합시다. 그랬다고 해서 장모될 사람한테 “이년, 저년” 하면서 싸우면 되겠습니까? 그러면 정말 목숨을 걸어놓고 안 줍니다. 딸에게 독약을 먹여서 죽일망정 안 줍니다. 알겠습니까?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못생겼지만, 앞으로 잘 해 줄 수 있어요. 나, 이래봬도 말이에요, 쟤만 일편단심 사랑할거예요. 정말 죽음을 내걸고 사랑할 거예요.” “아이구, 내 딸의 뭘 보고 달라고 해?” “그래도 한 가지는 잘 생긴 게 있어요.” “뭐가 잘생겼냐?” “마음 하나는 잘 생겼어요.” 그러면 장모될 사람이 딸에게, “아이구, 야 정말 미치겠네. 야! 어떻게 하면 좋겠냐?” “나도 그것보고 저 사람 좇아다니는데, 어떻게 해.” “야, 마음이 끌린다. 너는 어떠냐?” “나도 마음이 끌려서 좇아다닌다니까.” “아이고, 나도 모르겠다. 대들지도 않고, 욕도 않고” “성인군자라니까요. 그래서 내가 좋아한다니까. 어머니도 아버지를 왜 쫓아다녔어?” “니 애비 마음 좋아서 쫓아다녔는데, 나도 니 애비 같은 사람 얻어 줄려고 그러는 거여.” “아버지이상, 뺨치게 성격을 닮았어요.” 이와 똑같습니다. 그런 것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지, 그냥 데리고 간다고 하면 누구나 다 욕을 합니다. “이 새끼야, 왜 데리고 가냐? 신앙생활 잘 하는데 왜 데리고 가냐? 왜 이 새끼야 데리고 가냐?” 합니다. 무신론자를 데리고 와도 그 무신론의 패거리들이 얘기하고, 불교에서 데리고 와도 얘기하고, 기독교인을 데리고 와도 얘기하고, 지 형제를 데리고 가도 얘기합니다. “야, 이놈아 이년아 너나 가지 왜 걔까지 데리고 가?” 그럽니다. 그래도 “엄마, 걔가 좋으면 듣고 안 좋으면 올 것 아니에요?”그러면 “저것 미치겠네. 죽이지도 못하고. 어떻게 하지. 잡것. 지가 가는 것도 반대하는데 또 데리고 가? 세상에?” 그래도 잘 나가야지 싸우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16) 지도자는 느긋한 것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성격이 느긋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서 꾸물꾸물한 가을하늘같이 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직장부들, 그렇지 않겠습니까. 직장 지도자들! 캠퍼스지도자들! 기타 지도자들! 그렇게 해서 열심히 해 나가야 됩니다. 과감해야 될 것이 아닙니까. 저희 선생은 그렇게 똑똑한데 왜 여러분은 똑똑치 않게 해 나가는 것입니까? 내가 돌아다녀도 옷만 입고 소리를 지를 때는 “야, 대단하다. 대단해. 지휘할 때 보면 대단해.”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40 합니다. 나는 지휘를 사람한테 배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배웠습니다. 같은 노래도 1절과 2절 지휘가 다릅니다. 한번 지휘하면 평생 그 지휘는 안 써먹습니다. 다르게 지휘합니다. 그러니까 무한정의 지휘를 할 수 있습니다. 왜 또 써먹습니까? 또 써먹을 것이 없어서 재탕한단 말입니까? 자기 집에 사슴을 기르는데 녹용을 재탕, 삼탕 해서 먹습니까? 한 번 삶아 먹고 집어던져 버리는 것입니다. 자기 집이 약국인데 재탕할 필요가 있습니까? 계속 새 것을 삶아 먹지. 이와 같이 하나님은 풍부하신 존재자입니다. 17) 지도자들은 애들을 재미있게 해 주세요. 제발 좀~ 재미없어서 못 다닌다고 하면 안 됩니다. 나도 제일 처음 교회 다닐 때 재미로 다녔습니다. 재미가 없으면 못 다닙니다. 재미있어야 될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들, 섭리사 따라올 때 재미있습니까, 없습니까? (재미있습니다.) 재미있으니까 좋습니까, 안 좋습니까?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재미없게 해 준다면 나 역시 그 양반이 정말 싫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석가를 좋아하고, 소크라테스를 좋아하고, 니체를 좋아했을 것입니다. 재미있게 해 주는 사람을 좋아하게 됩니다. 애인이 있어도 자기를 재미있게 해 줘야지, 재미없게 해 주면 싫다는 것입니다. 재미있게 해 주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재미란 것은 무엇인고 하니, 기쁨입니다. 기뻐하라 했는데, 재미있어야 기뻐할 것이 아닙니까. 기쁨을 줘야 될 것이 아닙니까? 샘이 있는데 물이 나야 될 것이 아닙니까. 꽹과리가 울려야 될 것이 아닙니까. 마이크가 소리가 나야 될 것이 아닙니까. 여자는 여자 냄새를 풍겨야 되고, 남자는 남자 냄새를 풍겨야 됩니다. 남자에게서 여자냄새가 풍기면 그 남자는 여자하고 자고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자가 남자 냄새를 풍긴다면 남자한테 가서 자고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18) 이와 같이 반드시 그 개체의 냄새를 풍겨야 됩니다. 지도자는 지도자의 냄새를 풍겨야 됩니다. CL은 CL, 간사는 간사, 지도자는 지도자, 모두 각종각색의 목사는 목사, 교역자는 교역자 냄새를 풍기라는 것입니다. 각 부장들이! 왜 그걸 못합니까? 냄새를 풍기면 왜 안 따라 가겠습니까? 개도 주인냄새 맡고 따라다닙니다. 주인냄새 안 나는데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자기 집의 개라도 주인냄새 안 나면 안 따라갑니다. 꼭 냄새를 풍길 수 있도록! 알겠습니까? 도리의 냄새를 풍길 수 있는 자들이 되고 향기를 풍길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됩니다. 과감하고 대범하고! 지도자들이 모이니까 저 밑의 마을, 삼거리까지 차가 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아, 거기 또 용이 내려왔구먼! 그 양반 또 내려왔구먼.” 그럴 것입니다. “그 주먹만 한 사람이 어떻게 끌고 다니지? 뭘 보고 쫓아다니지?” 하는데 얼굴보고 쫓아다닐 리는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이 내 얼굴보고 쫓아다니는 사람이 있습니까? 사명보고 쫓아다니지요! 안 쫓아오면 안 될 사람입니다! 이익이 있는데 안 쫓아다닙니까? 한 번만 부딪혀도 운이 돌아가 버리는데! 나를 쫓아다녀서 모두 팔자가 펴고 달라졌지 않습니까. 부모도 못 해 주고, 학교에서 공부를 해도 안 되고, 여러분들이 몸부림쳤어도 안 됐는데 여기 와서는 그냥 끝나버렸지 않습니까. 어제같이 괴롭고 지겨운 밤에도 내가 나타나서 몇 마디만 하면 거뜬히 날이 새버립니다. “참 이상하고 요상한 존재자다.” 합니다.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 “도대체 그분만 따라다니면 홱 뒤집어진다.” 그럽니다. 뒤집어지지요. 사람을 만들어 놓습니다. 왜 그럴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해서 그렇습니다. 배고픈데, 먹을 것이 없는데 지가 감나무에 안 올라가고 배깁니까? 하나님께서 함께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를 믿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보낸 하나님을 제대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냈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을 제대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항상 재미있게 애들에게 해 주도록 하십시오. 내가 여러분들 재미있게 해 주잖아요. 오늘도 예배 끝나고 바로 운동을 할 것입니다. 재미있게 해 줍니다. 어제 여러분이 잔디를 막 밟아놔서 “잔디밭에 들어가게 하나 봐라.” 했지만, 내가 깔짝거리면서 하나님을 재미있게 해 드렸습니다. 그랬더니만, “저기 윗머리에 가서 앉으라.” 하셨습니다. 잔디 상단부에 앉게 하셨습니다. 야, 어떤 분이 그렇게 진대기를 쳐놨는데 또 가서 앉으라고 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도 하나님은 마음이 좋으시잖아요.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진대기를 쳐놔도 다 씻어내고 다시 또 윗머리에 앉혀 놓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은 “아이고, 오늘 잔디밭에 못 들어가겠다. 끝났다.” 그랬지요? “잔디밭에 들어가라.” 하니까 마음을 보려고 그러는 줄 알았지요? 단상을 갖다 놓으니까 ‘아! 여기 앉겠구나.’ 했을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는 고려대학교의 노천강당을 최고로 쳤는데, 이런 것이 있습니까? 그리고 거기는 여러분의 것이 아니잖아요. 여러분 개인 것이 아니잖아요. 그러나 여기에 있는 것은 전부 다 여러분들 개인 것입니다. 내가 양심상 여러분 개인 것으로 해 놨습니다. 너희들 것으로! 그래서 여러분들의 부모님들이 여기에 왔다가는 것도 다 허락해 줍니다. 그 대신 특별히 제공할 것이 없습니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41 못 해 줍니다. 특별히 낼 것도 없고, 제공할 것도 없습니다. 환경만 제공해 줍니다. 하나님 것이기 때문에, 부모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들 마음대로 쓰는 것입니다. 좋지 않습니까! 마음 놓고 소리 지르고, 마음 놓고 기도하고,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오염을 시켜서는 절대 안 됩니다. 휴지쪽 오염은 100분의 1입니다. 인간이 골치 아프게 말 듣는 것이 오염입니다. 그런 것을 없애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그것만 없다면 그만입니다. 휴지쪽 버리지 않는 것은 상식입니다. “줍기 싫으면 버리지 말라!” 이런 말이 있는데 아니 주울 사람이 버리겠습니까? 그러니 그 잠언이 잘못 되었습니다. 그 잠언은 자만해서 쓴 것입니다. 세상 잠언은. 재미있게 해야지 재미없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리고, 어려움이 있어도 참으십시오. 지도자들 중에 나를 한 번씩 만나고 싶은 사람은 손들어 보십시오. (모두 다 손을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만납니까? 전혀 불가능! 나폴레옹이 불가능이 없다고 했지만, 나중에 죽을 때는 불가능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나를 만나는 것은 불가능! 그러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면 가능!! 어젯밤 4시간 동안 서 있었더니 다리가 아픕니다. 돌아다니면서 말씀해도 되겠지요? (무선 마이크를 들고 잔디밭의 MS들 사이를 다니시며 말씀하시다.) 여러분, 화장실 때문에 고통스럽지요? 내가 저 밑에다 동시에 200명씩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완전히 도시의 수세식으로! 파이프만 다른 데로 빼내고 정화조를 묻어서 정식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애로사항은 다 해결해 주겠습니다. 겨울이 되면 저 위의 산은 스키장이 됩니다. 다른 데 가서 돈 내고 놀 것 없습니다. 돈을 안 받을 것입니다. 스키 장비를 사려고 돈 벌지 마십시오. 그냥 고무신 신고 타도 다 됩니다. 사람이 그렇게 순수하게 놀아야 좋지, 너무 지나치게 스키 선수가 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지나칠 필요가 없습니다. 왜 지나치게 합니까? 비닐 가지고 타면 됩니다. 여러분이 오늘 새벽에 뒤집어썼던 비닐을 여기에 놔 둘 테니까 겨울에 와서 그것으로 타면 될 것 아닙니까? 포대도 준비하고. 120만 원 짜리를 스키 장비를 세일해서 30만원까지 한다고 하는데 살 필요가 하나도 없습니다. 1코스, 2코스, 3코스, 코스가 다 있습니다. 최첨단 코스는 앞산에서 마당으로 내려 뛰는 것입니다. 그렇게 내리뛸 수 있는 사람은 손들어 보십시오. (손을 많이 들었다.) 스키를 탈 수 있는 사람이 많군요. 다치는 것은 본인 책임입니다. 리프트 카(lift car)는 안 만듭니다. 그것을 만들면 관광지가 되어 버립니다. 내가 어렸을 때 산에서 고무신 신고 타던 것을 확대시킨 세계로 조금 더 다듬어 놓은 것입니다. 이렇게 돌아다니면 여러분도 좋고 나도 좋고 다 좋을 것입니다. 또 물 문제가 있는데 왜 물을 함부로 씁니까? 물도 아껴 써야 됩니다. 앞섶골에 ‘어머니 샘’이 있습니다. 왜 ‘어머니 샘 ’이라고 했는고 하니 내가 가는골에서 일할 때마다 어머니가 항상 그곳에서 물을 떠다줬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분명히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항의해도 나는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샘’이 있다면, 아버지가 “앞산을 파면 물이 나올 거다.” 하고 한마디 해서 샘을 팠기에 아버지 샘이라고 하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이미 ‘월명 오아시스’라고 이름을 지어서 할 수 없습니다. 앞산의 샘은 깨끗한데 앞섶골의 샘은 구정물을 얼마나 많이 일으켰는지 모릅니다. 물을 살살 푸면 충분한데 왜 북적거리면서 한꺼번에 풉니까? 그래서 지도자들이 교육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야 쓰겠습니까? 다음에 일반 엠에스가 와서 구정물을 안 일으키면 여러분이 혼납니다. 일반 엠에스들이 보는 앞에서 “너 배워.” 하고 무릎을 꿇게 할 것입니다. 배우라고 하면 배워야지 별 것이 있습니까? 샘이 가는골에 2개 있고, 앞섶골에 2개 있고, 불당골에 하나 있고, 마당에 3개 있습니다. 이렇게 샘이 많이 있으니 충분히 다 사용할 수 있는데 왜 한쪽 샘만 사용해서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듭니까? 여러분이 지나간 곳을 다 검사해 봤습니다. 어떻게 되었나. 휴지쪽도 더러 있는데 다 줍고 가야 됩니다. 내가 설교로 교육한 것을 잘 듣고 있다가, 가서 오늘 오지 못한 지도자에게 전부 전해 줘요. 그 교육을 받지 않고서는 여기에 올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뭐가 있는고 하니, 여기에 올 때 사이다, 환타 이런 것 사오지 마십시오. 병류를 사와서 적발되면 즉결(卽決)로 넘겨서 섭리의 재판을 받게 됩니다. 사이다나 콜라를 갖고 온 사람은 손들어 보십시오. 먹고 난 병들을 어디다 버렸습니까? (*가방에서 넣었습니다.*) 앞으로 가방에다 넣어서라도 갖고 오지 마십시오. 물 먹어요. 약수물 먹어요. 약수물이 있으니까 약수물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조금씩 하기 때문에 내가 *이 물을 먹고 병이 낫게 해 달라.*하고 기도를 계속 해 놨습니다. 약수물을 먹고 지금까지 병이 나은 사람은 손들어 보십시오. (모두 손을 들었다.) 그러니까 약수물이잖아요. 세계에서 제일 좋은 샘을 만들려고 합니다. 안 팝니다. 약수물은 안 팝니다. 팔면 약효가 없어져 버립니다. 그렇게 만들어 놨으니까 그렇게 하도록 하십시오. 내가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것들이 약수물을 안 먹고 죽은 꼴을 진짜 만들어 놓을까?” 할 정도로 하나님이 그렇게 해 놨습니다. 항상 옛날부터 사람나면, 좋은 물이 나지 않습니까! 순서 있게 먹고, 기도하고 먹고, 정성을 들여야 할 것이 아닙니까.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42 그런 것을 여러분이 꼭 지켜나가도록 하고, 또 통솔을 받지 않고 와서는 안 됩니다. 교역자들한테 반드시 말하고 갈 수 있도록 하기 바랍니다. 19) 지도자들에게 특권이 없으면 안 됩니다. 석막리에 가고 싶다고 하면 반드시 여러분에게 얘기하고 가게 해야 됩니다. 지도자들이 따르는 자와 친하지 않으면 애들이 보고를 안 하고 돌아다닙니다. 내가 여러분과 친하기 때문에 나한테 와서 이야기를 합니다. 나를 만나기는 어렵지만, 여러분은 만나기 쉽지 않습니까? 몇 명씩, 백 몇 명씩이지만 나는 만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지도자에게 보고를 하고 다니게 하라는 것입니다. 보고하고 다니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햇빛 나고 비 오는 날은 무슨 날입니까? 호랑이가 장가 가는 날~ 사실상 호랑이가 장가가지 않는데 그렇게 말을 만들어 놓았잖아요. 이것을 문자대로 알아들으면 호랑이가 장가가는 것으로 알아듣습니다. 앞으로는 여기에 비디오(video)를 설치하고 선생님이 어렸을 때 자란 모습을 10분, 20분짜리 영화로 만들어서 그것을 보게 하고 출발을 시킬 것입니다. 슬라이드도 보여 주고. 정범석 목사가 이곳의 모든 일을 총 관장(管掌)하고 있습니다. 정범석 목사는 15년 동안 토목공사 수련을 받은 다음에 하나님께서 보내 주셨습니다. 그전에 전도하려고 했는데, 전도가 안 되더라구요. 그래서 ‘이 새끼, 진짜 말 안 듣네.’ 하고 늘 그랬는데, 수련이 아직 안 끝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안 보낸 것입니다. 누구를 전도했는데 말 안 들어오면 “정말 더럽게 말 안 듣네.” 하면 안 됩니다. 반드시 때가 되면 옵니다. 안 오면 못 배깁니다. 그래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자기가 먹을 빵을 꼭 가지고 다녀야 됩니다. 자기 몫은 자기가! 지도자가 다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 마당의 웅덩이에 있는 물을 보십시오. 자기 위치의 물은 자기가 흡수를 하는데, 옆의 물이 오니까 감당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옆의 사람의 것은 감당을 못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여러분 것을 감당하려면 반드시 각자 책임을 해야 됩니다. 각자 자기가 빵을 가지고 다니든지, 밥을 가지고 가지든지 각자 책임을 하고, 각자 쓰레기는 자기가 치워야 됩니다. 꼭 그래야 됩니다. 여기에다 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나그네가 주인을 도와줄 것이 없다고 하는데, 여러분은 나그네가 아니지 않습니까. 식구가 식구를 도와주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쓰레기만 놓고 가면 되겠습니까? 쓰레기를 안 묻습니다. 다 갖다 버립니다. 묻으면 동네에 사람들이 사는 데 오염 된다 그것입니다. 그래서 쓰레기는 아예 가지고 가야 합니다. 불 질러서 소각해서 거름으로 나무가 클 수 있는 것 외에는 무조건 가지고 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을 전부 갖다놓으면 어마어마합니다. 차를 몇 번 실어 나르면 간단한데, 이 방법은 구시대의 방법입니다. 신시대 방법은 그것이 아닙니다. 각자 책임분담! 여러분이 절대 책임분담을 진행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꼭 책임분담을 하도록 하십시오. 책임분담을 안 하는 사람은 지도자가 아닙니다. 20) 지도자는 골고루 손대 주어야 됩니다. 얼굴 빤빤한 놈만 손대고, 미운 놈은 그것도 슬퍼 죽겠는데 안 만나 주면 안 됩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도록 해요. 여러분이 앞으로 지도자가 된다면 모두가 그렇게 하십시오. 사람을 끌고 갈 때 그냥 끌고 가면 안 됩니다. 맨 뒤의, 항상 지도자는 곱쳐서 끌고 가야 됩니다. 맨 뒷사람이 어떻게 됐나, 맨 앞에는 어떻게 됐나 봐야 됩니다. 월남에서 전쟁할 때 일렬로 행군을 하게 되었는데, 맨 뒷사람이 안 따라 왔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잡혀가 버렸습니다. 맨 뒤에서 앉아서 졸다가 잡혀간 것입니다. 앞의 사람이 졸면 뒷사람이 따라오다가 건드리니까 괜찮은데 뒷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는 항상 끝과 앞을 함께 봐야 합니다. 나 같은 사람도 교회에서는 쓸모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회에서도 별 쓸모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계적인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가운데도 별 쓸모없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도 관심을 가져 주십시오. 어느 조개 속에 진주가 들어있는지 어떻게 압니까? 그 속에 흑진주가 들어있다고 거죽에 표시해 놓은 조개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어느 조개에 진주가 들어있는지 모르니까 다 까봐야 압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어떤 놈이 훌륭한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쑤시개같이 생겨서 ‘저거 전도해서 큰 이익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그래도 끝까지 잘 대해 주니까 다른 사람을 전도해 놓고 딱 나가버리더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누군지 압니까? 표승현 장로님을 전도한 사람입니다. 성신여대 학장을 전도했다는 말입니다. 표 장로님을 연결시킬 사람이 그 사람밖에 없으니까, 그 애가 와서 표 장로님을 전도 해다 놓고 자기는 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표 장로님은 신앙의 부모가 없습니다. 신앙의 부모가 나가고 죽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표 장로님께, “그 애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니까 자기 밑의 제자인데 가자고 해도 안 나온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자기에게 “아이구, 거기서 계속 미치고 있을 것입니까? 이제 그만 나오시지요.” 그러더랍니다. 그와 같이 전도는 누가 해다 줄지 모르니까 꼭 전체를 끝까지 잘 대해주십시오. 그래야 모두가 잘되고 형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도뿐만 아니라 모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시간이 됐습니다. 멀리서 눈으로 보는 것을 만난 것으로 생각하고, 또 보는 것을 만남으로 해야지, 내가 어떻게 일일이 어떻게 만날 수 있습니까? 만날 수 없습니다. 나도 지도자들과 같이 앉아서 얘기도 하고 싶고, 또 밤이 깊도록 말을 하고 싶고 그렇습니다. 달밤에 달이 가고 다시 해가 뜰 때까지 말하고 싶고, 또 봄 구름이 가고 여름구름이 올 때까지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43 말하고 싶지만 역시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보는 것이 인사이고, 멀리서 나의 손짓 발짓을 통해서 만남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까 이야기한대로 여기 보낼 때는 단단히 주의를 시켜서 보내십시오. 여기에 올 때는 반드시 여기에는 잘 데가 없으니 천막을 꼭 준비해서 보내도록 하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복지를 갈 때 천막을 다 준비해 가지고 갔습니다. 이와 같이 천막 준비를 꼭 해야 됩니다. 내가 있을 때는 밤새도록 능력을 부리든지 이적 기적을 부려서라도 밤새도록 뜨겁게 해 줄 수 있습니다. 어젯밤에 추웠습니까? 안 추웠습니까? 훈훈했지요? 그래서 어젯밤에 내가 여러분들을 비닐로 씌워서 마치 유령처럼 만들어 놨습니다. 서로 보고 이상했지요? 나는 사랑하는 마음에서 해 준 것입니다. 애들이 춥다고 하길래 나는 그렇게 해 주었는데, “야 그것, 그렇게 해서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내게 맡겨라. 그 방법으로는 안 된다. 비를 멈추라고 하든지 해야지 비닐만 씌워놓으면 뭐하냐? 병신같이 돌아다니는데.” 했습니다. 나중에는 비닐도 다 떨어지고 하는 데까지 다 했는데도 안 돼서 하나님께 “나, 모르겠습니다. 다 비 맞게 둬 버리겠습니다.” 그랬더니만 그때부터 비가 갰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들도 하늘방법으로 해야지 인간방법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늘방법으로 하면 됩니다. 이렇게 청명한 날이 옵니다. “비가 개면 청명한 날이 올 것이다.” 하고 믿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계속 비가 오겠습니까? 계속 비가 오면 댐에 물 막지요. 여름철에 가뭄에 쓰게요. 걱정할 것이 뭐 있냐는 것입니다. 시험이 있으면 시험을 통해서 연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일평생 가운데 감사를 빼면 할 일이 뭐가 있습니까. 무슨 어려움이 있습니까? 맨날 지도자가 “힘들다.” 하는데, 힘들다고 하는 사람은 내가 안 만나줍니다. 뭐가 힘듭니까? 자기가 밥을 굶었습니까? 뭐가 힘들다는 것입니까? 덜 뛰어서 힘이 드는 것입니다. 축구할 때 보십시오. 더 뛰면 뛰는 대로 땀이 흐르고 더 잘 뛴다는 것입니다. 더 뛰니까 힘이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교육을 시키면 잘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열심히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제 신나게 뜻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감격 감사해야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범사에 감사하라! 여러분들 정말로 하나님께, “Thank you very much!” 해야 됩니다. 구호>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할 일이지요. 여러분들을 그냥 놔뒀으면 술이나 처먹고 거리를 헤매고 돌아다녔을 것이 아닙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제는 나한테 감사해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말이 그렇지, 내가 여러분들 전도하려고 진짜 몸부림을 쳤습니다. 20-30년 동안 너무너무 고통을 겪었습니다. 너무 몸부림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21) 남한테 존경을 받으려면 몸부림이 필요합니다. 잘하다가 좀 잘 못한다고 금방 삐죽 빼죽 하면 지도자가 못 됩니다. 10년 동안 계속 잘해 줘 보십시오. 한달동안 내내 잘해 줘 보십시오. 1년 동안 내내 잘해 줘 보십시오. 그들을 위해서 한번 잘해 줘 보십시오. 그러면 자기도 그를 위해 살아준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지도자가 나에게 너무 잘합니다. 나는 갚을 길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한번 만나 주세요.” 그러면 “당장 같이 데리고 와라!” 그럽니다. 그를 위해 살아 줄 때 여러분을 위해 살아준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알고 해 나갈 수 있는 은총을 원합니다. 내가 이곳에서 연단을 다 받고 서울로 상경하지 않았습니까. 성경만 갖고! 성경만 갖고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돈 없어도 다 성공할 수 있습니다. 정신만 건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천운>만 따면 됩니다. 천운을 어떻게 딸 수 있느냐? 여러분들, 천운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천운의 사나이>를 만났잖아요! 여러분들이 원한다면 내가 천운을 다 주잖아요. 그리고 도와주잖아요. 나는 돈을 줄 수는 없지만, 돈보다 더 귀하게 생명을 보호해 주고 또 축복해 주면 돈이 생기지 않습니까. 꼭 나를 거쳐서 하나님이 줘야 되겠습니까. 내게 그럴 시간이 없으니까 그냥 여러분들에게 준다는 것입니다. 나를 꼭 만지고 붙잡고 껴 앉고 해야 사랑이 아닙니다. 시간이 없어서 그렇게 못합니다. 사랑해서 안아 주고 업어 주고 좋아해 주고 싶지만, 만날 시간이 없습니다. 이렇게 가까이 만나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지역에 전설이 흐르고 말았습니다. 이 지역에 대한 것을 몇 마디만 해 주고 끝나겠습니다. 선생님이 태어난 이곳을 중심으로 해서 서쪽으로는 대둔산, 우측으로는 한둔산, 또 우측으로 가면 계룡산, 또 조금 가면 보은 속리산을 중심해서 그 다음에는 서대산, 충청도에서 제일 높은 서대산, 그리고 백마산, 그 다음에 인대산, 금산에 있는 진악산, 그쪽으로 가면 인대산, 조금 더 가면 무주에 있는 덕유산, 마이산, 천등산, 이런 산들이 쫙 둘러섰습니다. 여기서 보면 산들이 둘려서 쳐다보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누가 나려는가?’ 했는데 내가 나려고 한 것입니다. 누구에게든지 자기에게 하라고 하면 못 할 것입니다. 내가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억지로 못 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중계할 수 있는 사람이 났다는 것입니다. 정치의 지도자는 임기(任期)가 끝나버립니다. 그러나 나는 영원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비가 오니까 좋지요? 감사하지요? 비 오는데 왜 감사합니까? 시원해서 감사하다구요? 그것이 아닙니다. 더 많이 안 와서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44 감사하다는 것이 그게 정답입니다. 시원해서 감사하다고 하면 계속 더 쏟아집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기 도 > 거룩하시고 은혜로우신 우리 아버지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들을 신나게 인도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내가 이 백성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리라.” 하고 하나님께서 나섰습니다. 하나님, 이들에게 정말로 기쁘게 해 주시옵소서. 역시 나도 못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입을 통해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렇게 살게 축복해 주시옵소서. 이런 새로운 역사는 우리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을 중심으로 해서 가정, 민족, 세계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까지 해야 되기 때문에 여기서 우리끼리 올목졸목할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인자와 사랑과 공의를 더 해 주시고 은총을 주시옵소서. 이제 전하는 복음으로 인해서 이들이 불붙게 해 주시고 지도자들이 열심을 다해서 새로운 복음의 불이 붙게 해 주시옵소서. 지도자들이 이번에 월명동으로 교육을 받으러 왔습니다. 따르는 사람들이 “지도자가 많은 교육을 받고 새롭게 각성했으면 좋겠다.” 하고 기다리는데 그들을 만났을 때 “아, 지도자가 변했네. 말소리가 틀려졌네. 행동이 틀려졌어. 열심을 내내.” 할 정도로 달라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함을 받게 축복해 주시옵소서. 자기가 기대한 것이 안 될 때 얼마나 섭섭하고 얼마나 화가 나는지 깨닫게 해 주시옵소서. 이들을 따르는 무리들이 기대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이 나에게 기대를 했는데 내가 그것을 못해 준다면, 자기 인격이 있는데 말은 못하고 욕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쳐다보고 기대하고 있는데 그것을 못한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나는 그것을 깨닫고 온 사람입니다! 만군의 하나님 아버지! 이들이 그리하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그리스도인 것을 우리는 확실히 믿습니다. 그러나 신약 때는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요번만큼은 반드시 이들이 하게 만들고 뜻을 깨닫고 나가게 하겠습니다. 정치에서도 천국을 못 만듭니다. 과학자도 천국을 못 만듭니다. 공산주의도 못 만듭니다. 민주주의에서도 천국을 못 만듭니다. 오직 여호와께서 사람을 통해서 한다면 꼭 만들 수 있습니다!! 역시 그들은 방법론이 틀렸습니다. 방법 자체가 틀렸습니다. “내가 지은 자들은 나를 통해서 해야 되지 않겠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 가정천국도 여호와께서 함께함으로, 하나님을 믿음으로! 아무리 매를 가지고 해도 안 되고, 돈 가지고도 안 됩니다. 애인을 돈으로 삶는다고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안 만들었습니다. 먹는 것 가지고 삶으면 되겠습니까? 부페(buffet) 사 준다고 되겠습니까? 돼지 한 마리 사 준다고 되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을 잘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감동시킴으로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방법을, 우리에게 먼저 꿀맛을 보여 줬는데 우리만 할 것이 아니라 모든 만민이 그렇게 해야만 됩니다. 우리 안에서는 천국이 되는데, 바깥에 나가면 안 됩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게 축복해 주시옵소서. 사람이 한번 살려고 나왔는데, 모든 사람이 다 잘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두 번도 아닌데! 시골에 가보면 무덤을 만들어 놨습니다. 집들이 하나씩 없어집니다. 왜? 그만큼 죽어서 무덤을 만든 것입니다. 옛날에 옥토밭으로 쓰여지던 곳이지금은 무덤으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집 근처의 옥토밭에 묻히고 가고. 이와 같이 그러기 전에 역시 우리가 그리함을 받게 해 주시옵소서. 인생이 더 늙기 전에, 젊었을 때 여호와를 찾고 배우게 해 주시옵소서.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자에게 성령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과 하나님 아버지의 인자가 이들에게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께서 인자와 사랑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골짝, 저 골짝뿐만 아니라 온 대한민국에 십자가가 있는 곳마다, 아직 믿지 않는 자들마다, 민족 전체가 그리함을 받기를 원합니다. 김일성이 원자폭탄을 가지고 전쟁을 일으키든지 화합을 하는 두 길 중에 꼭 하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간첩을 남파시켰습니다. 그들이 원자폭탄을 안 내놓은 것은 반드시 전쟁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우리를 봐서라도 안 됩니다. 반드시 우리가 잘해 줄 테니까, 그들은 무릎을 꿇고 할 필요는 없지만, 반드시 뉘우치고 좋은 꼴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야 될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그것을 책임을 지고 해 줘야 됩니다. 그 원자폭탄을 어떻게 쏘게 할 수 있습니까. 미국도 그것을 잘 할 수 없습니다. 만군의 하나님께서 친히 인자와 사랑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칼 기가 떨어졌을 때 미국이 막아 줬습니까? 일본이 막아 줬습니까? 못 막았습니다. 쏴 버리는데 어떻게 막습니까? 만군의 하나님! 하나님이 막아 주지 않으면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피를 토하면서 기도를 해 버렸습니다. “될 수 없는 문제라고. 하나님이여! 이 생명을 해하는 자들을 생명으로 갚아 주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만군의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하나님의 애인권의 민족이 되게 해 주시고, 뜻에 합당키를 원합니다. 평강과 의와 공의가 함께하고 은총을 주시옵소서. 어젯밤 우리들이 민족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이들이 지도자로서 기도했습니다. 모두 앞으로 기도의 시동이 걸려서 계속 기도할 수 있게 해 주시고, 집에서 기도만 하고 앉아있다는 소리 듣지 않게 지혜롭게 하게 해 주시옵소서. 무시로 성령 안에서 감사하고 감격하게 해 주시옵소서. 기쁨이 이들에게 충만할지어다.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45 2015년 08월 31일 주일 서로 사랑해야 휴거다. 구원이다 [ 마태복음 24장 13절 ]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but he who stands firm to the end will be saved. [ 로마서 10장 13-15절 ]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3 for, 'Everyone who calls on the name of the Lord will be saved.' 14 How, then, can they call on the one they have not believed in? And how can they believe in the one of whom they have not heard? And how can they hear without someone preaching to them? 15 And how can they preach unless they are sent? As it is written, 'How beautiful are the feet of those who bring good news!' [ 야고보서 2장 26절 ]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26 As the body without the spirit is dead, so faith without deeds is dead.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구원과 휴거>는 어떻게 이루는지 말씀해 주겠습니다. ◎ <핵심>은 이것입니다. 『하나님, 성령님, 성자와 하나님이 보낸 시대 구원자가 아무리 사랑해 주며 구원해 줘도 구원받을 본인이 원하고 바라고 사랑하고 행해야 <구원>도 받고 <휴거>도 이룬다.』입니다. ◎ 이 내용을 중심으로 <구원과 휴거>는 어떻게 이루는지 여러 가지로 말씀해 줄 테니, 말씀을 귀히 여기고 본인이 꼭 원하고 행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 휴거시켜 천국에 데리고 가도, 본인이 계속 원하지 않고 싫어하고 천국의 삶을 살지 않으면 결국 천국에서 못 살고 쫓겨나게 됩니다. 마치 처음에는 좋아서 결혼하여 같이 살다가, 살면서 한쪽이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니 멀어져서 결국에는 헤어지는 격입니다. 말로만 사랑이 아닌 <행동 사랑>을 하고, 실제로 매일 <휴거의 삶>을 살며 행하는 것이 그리 중합니다. 이 삶이 구원의 삶이며, 휴거의 삶입니다. 이 삶을 살아야 성삼위와 구원자와 영원히 헤어지지 않습니다. ◎ 오늘 말씀의 주제는 ‘서로 사랑해야 휴거다. 구원이다.’입니다.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만 구원해 주고 휴거시켜 준다고 해서 같이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만 구원해 주고 휴거시켜 준다고 해서 같이 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혹은 <구원받을 자 편>에서만 사랑하며 열심히 행한다고 해서 같이 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과 휴거>는 마치 ‘사랑’과 같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다고 해요. 남자만 여자를 사랑하고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지 않으면 같이 못 삽니다. 둘이 서로 좋아하고 사랑해야 같이 삽니다. 삶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성령님, 성자와 구원자>가 아무리 사랑해 주며 구원해 주고 휴거시켜 준다 해도 <본인>이 원치 않고 사랑하지 않으면, 땅에서 육으로도, 천국에서 영으로도 같이 못 삽니다. 만일 아무리 <성삼위와 구원자>가 사랑해 주며 구원해 줘도 <본인>이 원치 않으면 결국 섭리사를 떠나 ‘사망’으로 갑니다. <구원과 휴거>는 같이 해야 이룹니다. <구원하는 자>와 <구원받을 자>가 같이 해야 <구원과 휴거>를 이루어 같이 살게 됩니다. <성삼위와 구원자 쪽>에서만 구원해 주거나 <구원받는 자 쪽>에서만 구원을 이루려 하면, 100% 완전하게 해도 <구원>이 안 되고 같이 못 삽니다. <구원과 휴거>를 ‘사랑’으로 보면 쉽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서로 사랑하지 않고서는 같이 살 수가 없습니다. 마음과 삶이 다르니 같이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육의 세계>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100% 사랑하는데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지 않아도 남자가 좋다고만 하면 그 여자와 같이 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그렇게 못 하십니다. 왜요?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 편>만 인생들을 구원하고 사랑해서는 같이 살지 못합니다. <인간>도 구원받기 원하고, 성삼위를 사랑하며 구원받기 위해 행하고, 성삼위가 원하시는 선까지 행해야만 구원받고 휴거되어 지상에서 육으로도, 천국에서 영으로도 사랑하며 살게 됩니다. <구원>도 <휴거>도 <사랑>도 한쪽 편만 가지고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양쪽 편이 다 원하고 행해야 이루어집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의 삶’입니다. 사랑하면서 사랑의 삶을 살지 않으니,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자께서 그 육과 함께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구원하고 휴거시켜 그 영을 천국에 데려다 놨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사람이 성자와 그 육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기뻐하고 사랑하며 같이 살 수 있겠습니까?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46 본인은 원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으니, 휴거의 삶, 사랑의 삶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만 좋다고 해서 사랑할 수 없고 같이 살 수 없습니다. 구원과 휴거도 그러합니다. <구원하는 쪽>이 좋아서 구원해 줘도 <구원받는 쪽>이 원하지 않으니 같이 못 삽니다. <구원받을 자>도 ‘같이’ 구원받기 원하고, 구원받기 위해 행하고 좋아해야 구원받고 같이 살게 됩니다. <존재하는 것>이란, 본인이 원하고, 바라고, 사랑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고로 <성삼위와 구원자>도 인생들을 사랑하고 구원하며, <구원받을 본인>도 구원받기 원하고, 성삼위와 주를 사랑하고, 구원받기 위해 행하는 것이 ‘구원과 사랑의 작동’입니다. 양쪽이 같이 사랑하며 행하는 것이 ‘같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인생들을 구원하고 휴거시켜 사랑하며 같이 살려 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이 믿기를 원치 않고, 구원받기를 원치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니 지구 세상 수십억 명이 하나님을 안 믿고 삽니다. ‘믿기 싫다’ 함은 ‘구원받기 싫다’ 함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구원자를 믿으며 신앙생활을 하다가도 세상으로 가서 신앙이 파선되는 자들이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구원받고 같이 살다가도 ‘구원의 생활’을 안 하니, 거기서 ‘신앙의 삶, 구원의 삶’이 끊어지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 매일 <구원의 삶>을 살지 않고 행하지 않으면, <구원>은 사라지게 됩니다. <사랑>도 하다가 안 하면, 그날부터 ‘사랑의 삶’이 끊어집니다. 겨울철에 물을 뜨겁게 끓였어도 계속 끓이지 않으면, 그때부터 식어서 결국 ‘찬물’이 됩니다. <구원>도 <휴거>도 <사랑>도 계속해서 그 삶을 살지 않으면, 결국 식어서 찬물이 되듯 합니다. <구원과 휴거>는 ‘사랑’과 같아서 한쪽에서만 한다고 이루어지지도 않고 지속되지 않습니다. <마이너스극 한쪽>으로만은 전기의 불이 안 켜지고, 전기의 기능을 할 수 없고, <정자>만으로는 생명을 잉태할 수 없습니다. <구원과 휴거>도 그러합니다. <하늘 편>과 <인생 개인 편> 양쪽에서 행하여 마치 플러스극과 마이너스극이 만나서 불이 켜지듯,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생명을 잉태하듯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구원자가 책임을 다해 주어 구원해 주고 휴거시켜 줘도 <구원받고 휴거된 자>가 ‘구원과 휴거의 삶’을 살지 않고, ‘사랑의 책임’을 안 하고 살면 어쩔 수 없이 <구원>도 <휴거>도 상실되어 그 영도 멸망으로 가고, 그 육도 사망의 삶을 살다가 끝납니다. 젊은 날 하나님이 원하실 때는 자기 뜻대로 살고, 때 지나고 늙어서 다시 돌아오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일 받아 주신다면, 받아 줬을 때부터 부끄러운 구원을 이루며 살게 됩니다. 한 남자가 있는데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가 등을 돌리면, 그때는 그 여자를 버리고 다른 여자를 택하여 사랑하고 삽니다. 그러니 그 여자가 후에 다시 돌아온다 해도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겠지요? 하나님이 원하시고 주가 원할 때 따르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사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자가 되어 이 같은 꼴이 됩니다. 하나님은 인생들을 그 품으로 불러오시고 저마다 ‘자기 때’를 주십니다. 그런데 가치를 모르고, 불신하고, 따르지 않으면 - 어떤 자는 뿌리 뽑힌 나무같이 그때 바로 사망으로 가기도 하고, - 어떤 자는 자기가 몸부림쳐서 다시 돌아와 남은 인생을 가지고 아쉽게 행하며 부끄러운 구원을 이루기도 합니다. <사랑>도 <구원>도 <휴거>도 ‘생활’입니다. ‘삶’입니다. 고로 사랑의 삶, 구원의 삶, 휴거의 삶을 살지 않으면 그때부터는 마치 ‘밥을 안 먹는 것, 숨을 안 쉬는 것’과 같아서 <잠자는 삶, 죽은 삶>이 되어 더 이상 ‘사랑과 구원과 휴거의 기능’을 못 하게 됩니다. <하늘 편>이 구원해 주고, 사랑해 주고, 휴거시켜 줘도 <본인>이 그 삶을 살지 않으면 구원도, 사랑도, 휴거도 ‘상실’합니다. 매일 행하며 그 삶을 사는 자만 구원도, 사랑도, 휴거도 ‘보장’입니다. <나무뿌리>가 자체적으로 물과 퇴비를 빨아들이듯이, <본인>이 ‘구원과 휴거와 사랑의 삶’을 살면서 날마다 행해야 됩니다. <휴거된 영>이 천국에 가서도 매일 누워서 가만히 있다면, 그 영은 그런 삶을 살다가 결국 돌덩이같이 한 장소에 들러붙어 있는 영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육신>이 ‘구원과 휴거와 사랑의 삶’을 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잠자는 신앙’이 되어 결국 구원도 휴거도 사랑도 상실하고 ‘세상 사랑’으로 빠져 섭리사를 나가게 됩니다. 인생 누구나 <육신>은 ‘하나’입니다. 그 육신을 가지고 ‘하나의 삶’을 선택하여 살게 됩니다. <세상의 삶> 아니면 <하늘에 속한 삶>, 둘 중의 하나입니다. <육신>이 ‘세상에 속한 삶’을 살면서 <마음>만 ‘하늘에 속한 삶’을 산다면, 구원도 휴거도 이루어지지 않고 하나의 마음 위로에서 끝나게 됩니다. 세상만사 모든 것이 행하지 않고 생각만 하면, 생각에서 끝나고 맙니다. 건물을 짓기 전에 ‘설계’를 하지요? <마음과 생각>은 ‘행하기 위한 설계도’입니다. 행해야 이루어집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도 둘이 실제로 사랑을 행하지 않고 매일 쳐다만 보고 있다면, 결국은 돌덩이나 나무로 보이고 그렇게 대하게 될 것입니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47 30년 전에 잡목과 잡초가 무성한 ‘두 지역’이 있었습니다. 30년 후에 다시 보니, 한 지역은 여전히 잡목과 잡초만 무성했습니다. 다른 한 지역은 차로도 만들고 집도 지어서 천국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차이는 무엇일까요? 행하지 않은 것, 행한 것의 차이입니다. <천국>은 이 세상에서 ‘육’이 ‘육적’으로만 살다가 때가 되면 ‘영’이 가는 곳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육’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주를 모시고 사랑하며 그 뜻대로 살다가 ‘자기 영’을 변화시켜서 가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지구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회, 휴거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런데 몰라서 안 믿고,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자기 육의 행위대로 <그 영혼>이 ‘무(無)’가 됩니다. <무(無)가 된 혼과 영>에게는 ‘구원과 휴거’가 없고, ‘지옥·무저갱·음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최고의 공의로 정하신 바’입니다. 고집·교만·무지·자기 주관·자기 입지·육적인 생각으로 많은 자들이 <생명권>에서 살다가도 <흑암>으로 갑니다. 고집·교만·무지·자기 주관·자기 입지·육적인 생각으로 <구원의 가치>와 <휴거의 가치>를 모르니, 종일 거기에 신경 쓰지 않고 삽니다. 고로 <구원과 휴거>를 상실하고 ‘사망’으로 가는 것입니다. <지옥의 고통>은 하루만 받아도 ‘이 세상에서 살 때 평생 받은 고통’보다 더 큽니다. <영>으로 받으니 ‘1초’만 고통을 받아도 ‘육으로 1년 동안 받는 고통’보다 고통이 더 큽니다. <황금성 천국의 삶>은 하루만 누려도 ‘이 세상에서 육신이 평생 누려도 못 누리는 삶’입니다. <영>은 하루만 활동해도 <육>보다 1조 배 더 활동합니다. <영>은 빛보다 수백조 배 더 빠르게 천국을 다니면서 사니, <천국>에서 하루만 살아도 ‘육신이 평생 누리는 기쁨’보다 더합니다. 어떤 사람은 지옥에 가지 말라고 성자가 지옥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성자께 등을 돌리고, 세상 사랑을 향해 떠났습니다. 결국 <육신>이 ‘지옥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후회해도 돌아오지 못합니다. 왜요? 스스로는 그 깊은 사망권을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다시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오지 못합니다. 또 하나님과 구원자가 준 기회를 경히 여김으로 인해 기회를 놓치고 그대로 끝났기 때문에 다시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오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울’이 하나님을 떠나니, 사울 대신 ‘다윗’을 불러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왕비 ‘와스디’가 자기 뜻대로 행하니 와스디 대신 ‘에스더’를 불러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먼저 부른 자>가 못 하고 하늘을 등지니, 하나님은 <다른 자>를 불러서 이미 뜻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니 ‘전에 못 한 사람’을 다시 부를 필요도 없고, 그 사람이 다시 와도 ‘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고 끝났습니다. 고로 <성삼위와 주 앞에서 등을 돌리고 간 자>는 육신도 영혼도 시간이 갈수록 지금 처해 살고 있는 곳에서 자꾸만 더 ‘고통 속’으로 가기만 할 뿐입니다. <구원받은 가치, 휴거된 가치>가 얼마나 큰지 깨닫고 알고 살아야 됩니다. 그리고 휴거된 자로서 매일 성삼위와 주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지키며 ‘구원의 삶, 휴거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휴거되고도 <육>이 이성 타락을 하면, <휴거된 영>은 슬피 울면서 천국 황금성에서 땅으로 내려옵니다. 이는 마치 <마음과 생각>은 정말 싫은데, <육>은 이성 관계를 한 격입니다. 육이 살아 있는 한 ‘육과 영은 한 존재, 한 운명’입니다. <자기 육>이 이성 타락을 했으니, <휴거된 영>이 책임을 지고 ‘자기 육신’을 살리려고 천국 황금성에서 땅으로 내려옵니다. 이로써 <휴거된 영의 자격>을 스스로 박탈한 것입니다. 휴거되고도 <육>이 최고 죄인 ‘이성 죄, 사랑 죄’를 지으면, <사랑>으로 휴거됐는데 <사랑>으로 죄를 지었으니 치명적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깨끗한 존재자’로서 ‘깨끗한 대상’과 함께 사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꺼려하십니다. 또한 <창조의 법>이 있으니, 사랑이 깨지면 같이 못 삽니다. 또한 본이 안 되니, 천국의 만민들에게 이야기를 못 하십니다. <왕비>가 타인과 이성 관계를 했다면, 온 백성들 앞에 본이 안 되기 때문에 왕은 ‘왕비의 자격’을 박탈시킵니다. 아하수에로 왕 때, ‘왕비 와스디’는 이성의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왕의 말을 듣지 않고 왕에게 무렴을 주었습니다. 이에 왕은 왕비가 온 백성들 앞에 본이 안 되니, 자신과 온 백성들을 위해서 ‘왕비 자격’을 박탈시키고, 후에 ‘에스더’를 다시 왕비로 세웠습니다. 휴거되고도 ‘이성 타락’을 하면, <영의 위치>가 바뀝니다. <육신의 위치>도 바뀝니다. 이는 천륜의 법칙입니다. 삼위일체는 ‘깨끗한 신’이십니다. 고로 ‘깨끗한 자’를 쓰십니다. 하늘과 땅에 소개가 되어 늘 보이기 때문입니다. <깨진 그릇>은 ‘잔칫집’이나 ‘좋은 곳’에는 못 쓰지요? 땅도 하늘도 동일합니다. 성경 말씀대로 <깨끗한 자>는 ‘깨끗한 것’으로 대하고, <완전한 자>는 ‘완전한 것’으로 대하고, <더러운 자>는 ‘썩는 것’으로 대합니다.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48 영의 세계가 그렇게 돌아갑니다. <육>이 생시에 ‘더러운 행위’를 하면 그날 밤 꿈에 <혼>도 ‘더러운 영계’에 다닙니다. 이와 같이 <육의 행위>대로 <영>이 다 받게 됩니다. 휴거됐다 하나, ‘본인의 조건’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성자와 구원자>가 사랑해서 휴거시켜 준 것입니다. 자기가 몸부림쳐 행하지 않고 휴거됐으니 휴거됐다는 실감도 안 나고, 휴거의 가치도 모르는 것입니다. 고로 ‘이성 타락’이 아니어도 자기가 매일 ‘휴거의 삶’을 살지 않으면 <휴거>를 서서히 상실하기도 합니다. 매일! ‘휴거의 삶’을 살면서 계속! ‘휴거의 차원’을 높이며 살아야 됩니다. 차원을 높이지 않는 현재 위치는 ‘휴거의 최하로서 죽음을 피하는 정도’입니다. 매일 행하며 차원을 높여야 매일 얻고 매일 변화됩니다. 성자는 <휴거의 가치, 자신의 가치>를 모르고 자기 맘대로 행하는 자들과 사탄의 꾐을 받고 행하는 자들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애타게 해서 휴거시켜 놨는데, 자기가 몸부림쳐 행하지 않으니 끝까지 가치를 모르고 자기 마음대로 행하며 자기 갈 길을 가는구나. 이제 그 운명이 ‘동’에서 ‘서’로 바뀌었고, ‘사랑하는 마음’도 ‘정’도 없어졌다. 회개하고 다시 행하여 구원받는 길 외에는 살 길이 없다. 더 늦으면, 스스로 돌아와야 하는데 혼자의 힘으로는 어렵다. 다시 돌아오더라도 ‘이전 같은 사랑’은 안 해 준다. 때를 놓쳤기 때문이다. 네 생각과 다르다.” 하셨습니다. <생명책>은 ‘천국’에도 있고 ‘땅의 구원자’에게도 있습니다. 구원자는 ‘각 사람의 행위’대로 <생명책>에 기록합니다. 고로 ‘의로운 행위’가 없으면,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없어집니다. 그러면 육도 영도 끝납니다. <천국의 생명책>에서 이름이 없어졌어도 <땅의 구원자가 가지고 있는 생명책>에 이름이 있으면, ‘육의 행실’로 인해 <천국의 생명책>에 다시 이름이 새겨집니다. 그러나 <땅의 생명책>에서 이름이 없어지면, <천국의 생명책>에 새겨진 이름도 사라져 무(無)로 끝납니다. 육신이 살아 있는 한, <육의 행위>대로 ‘영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구원의 삶, 휴거의 삶>은 ‘망상의 삶’도 아니고 ‘관념의 삶’도 아닙니다. 행하지 않으면 10년, 50년 가도 안 됩니다. 하는 자만 이룹니다. 정녕코 <육의 행위>대로 <육>도 <영>도 생명권으로, 혹은 사망권으로 가면서 존재합니다. 하나님도, 성자도, 성령님도, 주도 ‘영’을 보고 결정합니다. 어느 날 선생이 어떤 사람의 영을 봤는데, 다시는 그 얼굴을 못 보게 기도했습니다. 여름철의 썩은 과일 같았고, 시체가 오래되어 부패된 것 같았습니다. 그 흉한 얼굴이 계속 생각나는데, 정말 끔찍했습니다. 자꾸 그 얼굴이 떠올라서 더 이상 안 보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육신>은 아무 이상이 없어 보여도 역시 <영>은 ‘육신’과 달랐습니다. 그래서 ‘영’을 보고 결정합니다. <자기 혼>은 거의 ‘자기 육신이 하는 행위’를 합니다. 고로 <자기 혼>을 매일 봐야 됩니다. 기도하면 보입니다. <자기 혼>을 못 보는 자는 ‘혼의 급’이 낮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여 <자기 혼>이 무엇을 하는지 보세요. <혼>은 꼭 ‘육신의 행실’을 반영하여 보입니다. 고로 <자기 혼의 상태>를 보고 온전하게 하기입니다. 얼마든지 하면 되는데 안 합니다. <자기 혼>과도 <자기 휴거된 영>과도 얼마든지 대화할 수 있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도 얼마든지 대화할 수 있고, <구원자>와도 얼마든지 대화할 수 있습니다. 하세요! 하는 자가 느끼고, 하는 자가 얻습니다. 힘들다고 안 하고 게을러서 안 하면 골짜기에 물이 마르듯 ‘신앙’이 마르게 됩니다. <은혜의 비>는 ‘자기’가 오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삼위일체를 사랑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자기>가 ‘은혜의 비’를 내리게 하는 것입니다. 영이 천국에 갔어도 눈을 감고 가만히 있으면, 그곳이 <천국>인지 <땅>인지 모릅니다. <땅>에서 ‘육’도, <천국>에서 ‘휴거된 영’도 ‘활동하기, 대화하기’입니다. 이 시대는 <신부 시대>라서 ‘교통’이 없으면 끝납니다. <교통>이 없으면 ‘끊어졌다. 죽었다.’ 합니다. <말씀>만 가지고는 못 삽니다. ‘서로 대화, 교통’입니다. 성삼위를 부르며 대화, 주를 부르며 대화, 자기 혼을 부르며 대화, 휴거된 자기 영을 부르며 대화입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행하며 활동하기입니다. (믿습니까?) <전환> ◎ 오늘은 어떻게 해야 <구원과 휴거>가 이루어지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하는 하늘 편>만 구원해 주기를 원하고 사랑해 준다고 해서 구원받고 휴거되어 같이 사는 것이 아니다. <구원받는 자 본인>도 구원받고 휴거되기를 원하고, 성삼위와 주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행하고, 늘 기도하고 교통하면서 그와 같은 삶을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49 살아야 구원받고 휴거되어 같이 살 수 있다. <구원과 휴거>는 ‘사랑’과 같다. 서로 사랑해야 사랑이 이루어지듯, 서로 사랑하고 서로 원하고 행해야 구원도 휴거도 이루어진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 조금만 더 말씀하고 말씀 마칩니다. 지금부터 전하는 말씀은 한 단계 더 깊이 심정으로 말씀하니, 잘 듣기 바랍니다. 구원받고 휴거되기 원하여 하고자 하는 자는 성자와 구원자가 해 줘도 힘이 안 듭니다. 그런데 하고자 하지 않는 자는 성자와 구원자가 다른 사람들보다 3~4배 더 해 줘도 안 됩니다. 성자와 구원자가 해 줘도 본인이 원하지 않고 하고자 하지 않으니, 아무리 해 줘도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고로 시간 뺏기지 말고, 다른 사람을 찾아야 됩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구원받지 못하고 휴거되지 못하면 ‘큰 자’는 못 된다. 그저 ‘땅에 속한 보통 사람’이다. <휴거된 자>는 ‘개발한 월명동 같은 자’요, <휴거되지 못한 자>는 ‘개발하기 전 월명동 같은 자’다. 고로 휴거되면 귀히 쓰이고, 휴거되지 못하면 그대로 끝난다. <구원자>나 ‘구원과 휴거의 목적’ 때문에 모든 인생들을 그리 크게 보고 귀히 여기지, 실상 인생은 ‘구원과 휴거’ 빼면, 쳐다볼 시간이 없다. <구원과 휴거>를 뺀다면, 지구 세상 73억 명 중에 속한 한 생명에 불과하다. 지구 세상 73억 명 중에서 구원받고 휴거되기를 원하는 자, 하나님을 찾고 주를 찾는 자들을 찾아야 된다. ‘아무리 해 줘도 되지 않는 자’에게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어서 올바로 판단하여 새로운 자를 찾아라. 사울 대신 ‘다윗’을 준비하고, 와스디 대신 ‘에스더’를 준비했으니, 찾아서 세워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성자의 사랑을 배신하고 구원자를 등지고 떠난 자들도 그러합니다. 그들은 <자기>가 계속 ‘험한 길’로 가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붙잡아 줘도 더욱 강하게 뿌리치며 ‘그 길’로 갑니다. 고로 그들을 보고 아쉬워하며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어서 빨리 ‘새로운 자들’을 찾아서 세워야 됩니다. 아무리 잡아 줘도 뿌리치며 자기 길로 가는 자 한 명을 붙잡는 힘으로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새로운 자 수십 명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자기 길로 가는 자들을 계속 붙들고 있으면서, 새로운 자들을 찾아 구원하지 않는 것은 ‘공의’가 아닙니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생각하고, 어서 빨리 ‘새로운 자들’을 찾아서 세워야 됩니다. 하나님이 준비해 두셨습니다. 성삼위의 사랑을 배신한 자, 구원자를 등진 자들에게도 하나님은 이미 ‘기회’를 여러 번 주셨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자기 길’로 갔습니다. 결국 <자기>가 ‘사망의 길’로 가기로 결정하고 간 것입니다. 성삼위와 구원자가 그렇게 해 줬는데도 끝까지 고집하며 ‘자기 길’로 갔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구원자’를 보내지 않으십니다. 고로 <그 영>은 영원히 ‘가련한 영’이 되어서 삽니다. 처음에는 그동안 정성 들여 대했으니 안쓰럽지만 결국 본인이 원치 않아 뿌리치고 갔으니 ‘뇌’에서 지우고, 그 대신 ‘더 나은 자’를 세워서 그를 통해 영광을 받으니 더 이상 ‘그 사람’은 생각이 안 납니다. 그 사람에게 쏟은 정성은 ‘새롭게 세운 자’를 통해 열매를 맺고, 영광이 빛나게 합니다. 비유를 들어서 말해 줄까요? 한 사람이 <어떤 물건>을 사려고 그리도 애간장을 태웠습니다. 그런데 물건을 파는 자가 끝까지 안 팔아서 못 샀습니다. 그 물건을 못 산 것을 생각하니 너무 미련이 남았습니다. 그 충격으로 ‘그 물건보다 훨씬 좋은 새 물건’을 찾기로 했습니다. 찾다가 결국 ‘그 물건보다 훨씬 좋은 새 물건’을 사게 됐습니다! <새 물건>을 찾고 나니, 그때 ‘먼저 사려던 물건’을 주인이 안 팔아서 안 산 것을 천만다행으로 알고 기뻐했습니다. <먼저 사려던 물건>을 주인이 팔아서 샀다면, <그보다 훨씬 좋은 새 물건>을 사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물건>을 안 팔아서 <더 좋은 이 물건>을 찾게 된 것입니다. 마치 ‘밭에 숨겨진 보화’를 찾듯, <세상에서 최고로 좋은 것>을 사게 됐습니다. <처음에 사려던 것>은 ‘2가지 형태’를 갖췄는데, <새로 찾은 것>은 ‘10가지 형태’를 갖췄으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인생도 그러합니다. <사울>이 못 하니 하나님은 <다윗>을 세우셨고, <와스디>가 못 하니 하나님은 <에스더>를 세우셨습니다. <다윗>은 <사울>보다 100배나 더 잘했고, <에스더>는 <와스디>보다 1000배나 더 잘했습니다. 성자와 구원자가 그리도 생명을 챙기며 구원해 줬는데도 자기가 ‘구원의 삶, 휴거의 삶, 사랑의 삶’을 살지 않고, 하고자 하지 않고, 책임을 못 해 나갔으니 스스로 다시 찾아오든지 안 오든지 그냥 놔두고, 다른 사람을 찾아야 됩니다. 선생은 처음에 <섭리사 전체의 성전>과 <수련원으로 쓸 곳>을 그리도 찾아다녔습니다. 마땅한 곳을 찾으면 개발해서 쓰려고, 한국 여기저기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런데 마땅한 곳이 없었습니다. 후에 <월명동>이 ‘하나님이 예정하신 곳’임을 알고 월명동을 자연성전으로 개발하고 나니, 만 배나 좋았습니다. 최근에 <전에 자연성전으로 개발하려 했던 곳>을 가 보니, 20년이 넘었는데도 개발이 안 되어 그때보다 더 2015_08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50 가시덤불과 잡초가 무성했습니다. 자기 책임을 하지 못하여 섭리사를 등진 자들도 결국 가시덤불과 잡초가 무성한 곳처럼 그렇게 인생이 끝났습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임시로 만든 길>을 <늘 사용하는 길>로 삼지 마라. <순간 쓴 자>를 <하늘 궁궐의 기둥>으로 세우려고 생각하지 마라. 그러면 궁궐을 짓고 나서 쓰러진다. 너희는 ‘순간 쓰이는 자’가 되지 말아라. 하나님이 ‘생활 속에서 수시로 쓰는 자’는 다르다. 생각·정신·행위의 모양이 다르다. <사울>은 자세히 보면 미련하고, 교만하고, 거짓되고, 야비했다. <다윗>은 하나님이 기른 자로서 지혜롭고, 담대하고, 오직 하나님 뜻대로 행했다. 너희는 ‘사울 같은 자’냐. ‘다윗 같은 자’냐. <다윗 같은 자>로 뽑아 왔으니, 스스로 구원받고 휴거되기를 바라고 원하며 매일 성삼위와 주와 교통하며 구원의 삶, 휴거의 삶, 사랑의 삶을 살아라.” 하셨습니다. ◎ 말씀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지구 세상의 모든 자들이 구원받고 천국에 오기를 예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자를 보내 주시어 가르쳐 주시고, 자기 양심으로도, 자기 스스로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때 믿고 따르면 구원받고 <하나님의 예정>을 이루고, 그때 안 믿으면 구원을 상실하고 <하나님의 예정>을 못 이룹니다. 고로 하나님이 지구 세상 모든 자들을 향해 <구원과 휴거>를 ‘예정’하셨어도 결국을 보면 <본인>이 믿느냐, 안 믿느냐를 결정하여 수십억은 안 믿고 살고, 약 20억 명은 우상을 섬기고 삽니다. 고로 하나님께서 지구 세상 모든 자들이 구원받고 천국에 오기를 예정해 놓으셨어도 ‘천국에 오는 자’는 많지 않은 것입니다. 자기 행위대로입니다. 세상에 <귀한 물건>도 많지 않고, <귀한 사람>도 많지 않고, <미인>도 많지 않고, <성공한 사람>도 많지 않고, <좋은 지역>도 많지 않습니다. 또한 <휴거된 자>도 많지 않고, <구원받은 자>도 많지 않고, <성삼위의 사랑의 대상체가 된 자>도 많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불가능한 것’이 있습니다. 곧 지구 세상 모든 자들이 구원받는 것도 불가능하고, 지구 세상 모든 자들이 멸망받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사람들은 <구원>, 아니면 <멸망> 이 두 가지 길 중의 하나에서 존재합니다. 자기가 구원받고 휴거되기 원하고, 믿고, 그 삶을 살면서 행하면 <구원과 휴거의 길>로 가고, 자기가 구원과 휴거에 신경 쓰지 않고 안 믿고, 믿어도 그와 같은 삶을 살지 않고 행하지 않으면 <사망과 멸망의 길>로 갑니다. 자기 행위대로입니다. 세상을 보면, ‘자기가 사는 세계’만 알고 살아갑니다. 이와 같이 ‘구원받고 휴거되어 사는 자들’만 <구원과 휴거의 세계>를 알고 누리며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들은 <육의 세상>만 알고, <육적인 것>에 모든 것을 쏟으며 살아갑니다. ◎ 오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누가 ‘관리’해 준다고 해서 살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관리해 줘도 ‘관리’만으로는 못 삽니다. 나무를 보세요. <뿌리>는 누가 관리하여 물을 빨아들이게 할 수 없습니다. <자체 뿌리의 작용>으로 물을 빨아들여야 삽니다. 그 터전 위에 ‘관리’입니다. 신앙도 그러합니다. 스스로 말씀을 듣고 흡수하고, 행하는 능력이 있어야 삽니다. 그 터전 위에 관리입니다. 아름다운 나무가 죽었다 합시다. 죽은 나무를 보고 아까워하면서 계속 놓고 보겠습니까? 빨리 돌아다니면서 ‘산 나무’를 찾아서 갖다 심어야 됩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큰 나무라도 <죽은 나무>라면, <살아 있는 작은 나무>만도 못합니다. 아무리 멋있고 큰 호랑이라도 <죽은 호랑이>라면, <살아 있는 새끼 호랑이>만도 못합니다. <죽은 시체>는 갈수록 부패됩니다. 고로 빨리 땅에 묻어야 ‘살아 있는 자들’에게 유익입니다. <신앙이 죽어서 다시는 못 살아나는 자>도 그러합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숨 쉬는 자는 아무리 기능을 못 해도 땅에 묻지 못하듯이, <신앙>도 기능은 못 하는데 숨은 쉬고 있으니, ‘사망’에 묻을 수 없어서 그동안 지켜봤다. 그러다가 ‘신앙의 숨’을 멈추니, ‘사망’에 장사 지내게 된 것이다. <육>이 한 번 죽으면 못 살아나듯이, <영>도 한 번 사망으로 끝나면 다시는 못 살아난다. <영>이 죽지 않게 하여라. <육>이 죽지 않게 하여라. 스스로 구원받고 휴거되기를 원해라. 그리고 스스로 말씀을 듣기를 원하여 듣고 행해라. 자체적으로 말씀을 흡수하고 행하는 능력을 가져라. 그리고 관리다. 그러면 죽지 않고 산다.”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