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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말씀2015.08.11 (화)

화 계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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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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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계시말씀 ♥ 08월 11일 화요일 ♥ 생각의 법칙 작성일 : 2015. 7. 24. 작성자 : 정온성 ( 제게 힘든 일이 있었는데 그때 물고기를 통해 계시를 주셨습니다. 어항이 두 개 있는데, 작은 어항에는 새끼 물고기들을 키우고 있었고, 큰 어항에는 성장한 물고기들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물을 갈아 주려고 물고기들을 잠시 같은 물속에 넣어 놨는데, 이후 새끼 물고기 4마리 정도가 없어졌습니다. 큰 물고기들이 새끼 물고기들을 잡아먹었던 것입니다. 계시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이 없었는데, 주께서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걸까? 나에게 무엇을 바라시나?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시나?’ 너무 궁금했지만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힘들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제가 생각하면, 제 생각대로 계시를 풀까 봐 염려되어 지인 몇 사람에게 계시를 풀어 달라 물어봤지만 못 풀었습니다. 주님께 “제가 요즘 기도를 깊이 못 하니 제게 말씀을 못 하시고 만물계시를 주신 건가요?” 하니, 주님께서는 “아니다. 그 계시를 준 이유는 네가 깨달으라고 함이다. 직접 본 것이니 네가 직접 깨달으면 내가 말해 준 것보다 더 충격적으로 깨닫는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혼자 깨닫게 두지 않으시고 그때부터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키우는 큰 물고기가 새끼 물고기들을 잡아먹었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듣게 했습니다. 그 후 기도하며 주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깨달았어요.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것은 물고기 세계에서 끔찍한 일이 아니고 법칙이에요. 맞죠? 그와 같이 주님과 생각 하나가 다르면 다른 길로 가니 딴 세상에서 사는 것이 법칙이죠? 주님 생각을 알고 주님 생각대로 하라고 물고기 계시를 주셨네요.” 하니 주님께서 “맞다.”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정리했습니다. ) * 주님의 말씀 * 나와 생각 하나 다르면, 다른 길로 가서 나와 딴 세상에서 산다. 생각이 이리도 중하다. 생각이 신이다. 생각이 네 운명을 좌우한다. 생각 잘해라. 생각에도 법칙이 있다. 법칙을 알아야 한다. 아는 자가 신이다. 성삼위께서는 목적을 두고 인간을 창조했다. 고로 내가 이를 알고 창조역사 137억 년 만에, 구원역사 6000년 만에, 성약역사 크게는 70년 만에, 작게는 36년 만에, 오직 창조 목적만 두고 조건을 세우고 행했고, 극적으로 몸부림쳐서 창조 목적을 이뤘기에 성삼위께서는 “다 했다. 기쁘다. 만족하다. 미련 없다.” 하시는 것이다. 성삼위가 목적을 두고 인간을 창조했기에 인간도 목적을 두고 살아간다. 목적은 어디서부터 발생하느냐! 바로 생각이다. 생각으로 목적을 확립한다. 이것이 생각의 법칙이다. 인간의 생각이 뇌에서 그냥 흘러가는 법이 없다. 강하든 약하든 목적을 가지고 있기에 그에 해당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의미 있는 목적이든 의미 없는 목적이든, 목적이 작든지 크든지, 생각하는 체계와는 상관없다. 목적이 커야만 생각이 돌아가고 목적이 작으면 생각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목적만 있으면 생각은 작동된다. 인간은 창조주의 창조하심을 따라 목적을 두고 살아가게 만들어졌기에 생각은 늘 작동된다. 늘 작동되는 생각에 대해 잘 알고 목적을 정확히 두어라. ‘내 생각이 왜 이렇지?’ 하는 생각이 들면 ‘내 목적이 무엇인가?’ 생각해라. 목적이 정확해야 그에 따라 생각한다. 목적이 흐리멍덩하면 생각도 흐리멍덩하다. 휴거의 삶인 결혼생활은 연애시절과 법이 또 다르다. 생각의 골수까지 꿰뚫어 나에게 합당한지 본다. 부부이기에 더 세밀하게 대한다. 고로 너희의 목적을 더 바로 세워라! 굳건히 세워라! 300선 휴거를 나의 조건으로 이룬 지금, 너희가 700선을 향해 오르려면 그만큼의 목적을 정비해야 한다. 신부의 목적은 오직 신랑이어야 합당하다. 신랑이 신부의 유일한 목적이니 신랑 생각으로 뇌가 가득 차야 정상이다. 항상 주의 돛을 달고 주를 중심함이다. 목적이 확실하면 생각이 흔들리지 않는다. 생각이 꺾이지 않는다. 사탄도, 나도, 성령도 너희 생각을 차지하려 한다. 생각 뺏기 싸움이다. 육을 가진 자들에게는 생각이 핵 중의 핵이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생각 따라 행하고, 그에 따라 가야 할 영원한 세계가 결정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너희도 알지 않느냐. 생각은 육의 삶도, 영의 삶도 좌우한다. 내가 너의 생각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네가 나의 목적을 가져야 한다. 곧 성삼위의 목적이 너의 목적이 돼야만 목적 따라 생각하고 행해 700선 휴거를 이룬다. 가령, 어떤 사람이 사과를 살 것을 목적하고 집에서 시장으로 출발했다. 가다가 뜻밖에 친구를 만나 처음 목적을 잊고 친구와 차 마시며 이야기하는 것을 목적으로 정했다면 사과를 사러 가지 않고 친구와 차를 마시러 간다. ‘사과를 목적’으로 뒀을 때는 ‘사과’를 생각하다가 ‘친구와 차 마시는 것을 목적’으로 하면 ‘어디 가서 어떤 차를 마실까?’를 생각한다. 사람이 이와 같이 즉흥적이다. 충동적이다. 네가 이러하다는 것을 알아라. 알고 주관하기다. 예방하기다. 고로 늘 변하지 않도록 빼앗기지 않도록 주를 늘 생각해라. 주를 인생의 목적으로 두고 주를 늘 생각하기다. 사랑으로 700선 휴거를 이뤄 육계에서나 영계에서나 주와 딱 붙어사는 것을 목적으로 두었으면 목적을 잊지 말아라. 목적과 생각은 서로 상호작용한다. 목적을 세우면 목적에 따라 생각이 작동하기도 하지만 생각을 달리해 목적을 다시 세우기도 하고 더 완벽하게 하기도 한다. 나와 같은 목적, 나와 같은 생각이다! 나와 생각 하나 다르면 다른 길로 가서 딴 세상에서 사는 것을 잊지 말아라. 나와 생각 하나 달라서 딴 세상에서 사는 자들이 너무나 많다. 성경에도 많고, 지금 기성에서도 많다. 고로 신부들에게 생각의 축복을 주노라. 사랑하여 말했다. 안녕. ♥ 08월 11일 화요일 ♥ 어떤 사람이 사도가 될 수 있을까? 작성일 : 2015. 5. 29.~ 6. 5. 작성자 : 주랑솔 최근 금요기도회 때 계시자를 통한 귀한 말씀을 듣고 알면 알수록 위대한 섭리역사임을 고백했습니다. 말씀 후 목사님은 “그를 본 것이 하나님을 본 것이고, 그를 본 것이 성자를 본 것이고, 그를 본 것이 성령님을 본 것입니다. 이것을 시인해야 합니다.”라고 기도 인도를 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시인했습니다. “선생님이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이십니다. 성자이십니다. 선생님을 보는 것이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보는 것입니다. 성자를 보는 것입니다.” 그때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을 자세히 보니 하나님이었습니다. 그토록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의 모습이었는데, 선생님이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니 이렇게 바로 볼 수 있다니 놀라웠습니다. 하나님은 천하 모든 만물을 완벽하게 세우셨듯, 완벽하게 잘 생기셨고 완전했습니다. 성자와는 느낌이 달랐습니다. 하지만 정말 세상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완벽 미남이었습니다. 또 눈을 감았다 뜨니 선생님이 성령님의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성령님의 속눈썹은 엄청 길고 위로 싹싹 올라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쁜 입술을 앵두같이 예쁘다고 말하는 것처럼 입술색이 정말 아름다웠고,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입술이 아니라 보석 같았습니다. 왜 사람이 보석보다 아름답다고 했는지 성령님을 통해서 진정 알 수 있었습니다. 성령님의 어깨 라인과 쇄골부터 몸의 라인까지 다 보았습니다. 몸의 선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습니다. 다시 눈을 감았다 뜨니 선생님의 모습이 성자로 보였습니다. 성자 승천 이후 보기 어려웠던 성자를 이렇게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보면서도 충격이었고, 온몸에 전율이 흘러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지구만 한 돌에 머리를 맞은 것처럼 깊은 깨달음에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왜 그토록 몰랐던가. 정말 나는 왜 이리 무지한가.’ 고백했습니다. 그때 성령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도들에게 참람하다고 말하며 돌을 던지고 그들을 죽이려고 했던 이유가 이것이다. 유대인들은 조상 때부터 대대로 하나님만 기다리며 살았는데, 사도들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라고 하니 그들에게는 미칠 말이었다. 그들이 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니, 본인들의 가슴을 찢으며 참람하다며 사도들을 미친 사람으로 여기고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말씀을 받아들였던 자들에게는 불이 떨어졌고, 뇌가 완전히 새로워졌다. 대대손손 기다렸던 하나님을, 그를 통해 만난 것이 되니 그들의 소원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기도 시간이 끝나서 더 이상 성령의 말씀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매일 새벽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제 고백이 완전하지 못한 것인지 성령의 말씀을 완전히 받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새벽에도 고백했습니다. “저희는 육이니 영이신 하나님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을 봄으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삼위를 직접 보고 가는 저는 진정 행복한 인생입니다.” 이렇게 고백하니 성령님께서 “정말 믿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믿습니다.”라고 또 고백했습니다. 순간 제가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성령님께서 “너, 나를 앞에 놓고 다른 생각 하면 나는 떠난다. 나와 함께 살 수 있는 기회를 지금 섭리사 모두에게 주었다. 기회를 주었을 때가 할 때다. 마치 놀이공원에 들어갔을 때에 놀이기구를 신나게 탈 수 있지, 놀이공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는 절대 놀이기구를 탈 수 없듯 말이다. 지금이 기회다. 지금 기회를 잡으면 나와 함께 사는 자가 되는데, 이것은 마치 로열패밀리로 승급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자는 그냥 평범한 인생을 살면 된다. 또한 나와 함께 사는 자는 청와대 핵심지에서 사는 격이고, 그렇지 않은 자는 그냥 일반 지역에 사는 격이다. 그 정도로 차이가 있다. 섭리사에 성령의 시대가 왔다. 고로 나는 성령을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성령의 감동을 주고, 불도 주고, 깨닫게 해 준다. 주의 일을 하거나, 주를 증거할 때 도와준다. 그러나 명심하라!! 나와 함께 사는 자와 아닌 자는 완전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그 가치를 모르면 이 기회를 또 놓치는 것으로, 스스로를 평범한 인생으로 만드는 것이다. 사도가 될 자들에게 필수 항목이 바로 ‘성령과 함께 사는 자인가, 아닌가.’이다. 전에 너에게 말했지?” 며칠 전 성령님께서 “사도가 되고 싶으냐?”라고 물으셨고 저는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성령님께서 “어떤 사람이 사도가 될 수 있을까?”라고 또 물으셨습니다. 저는 “주를 깨닫고 성령을 받고, 주를 증거하는 자가 아닐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너의 대답에는 핵이 빠져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깊이 고민하자 성령님께서 “사도는 자기가 사도가 되고 싶다고 하여 사도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해서 사도가 되는 것이 아니다. 주를 증거한다고만 해서 사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도란 삼위가 주는 사명이다. 삼위께서 ‘너는 사도다.’라고 인정하는 기준이 있다는 것이다.”라고 답을 주셨습니다. 저는 ‘열심히 하면서 주를 증거하면 사도가 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사람은 자칭 사도란 말인가? 그럼 어떻게 해야 사도가 될 수 있을까? 그럼 왜 사도 시대의 때라고 말씀하신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성령님께서 하신 말씀에 궁금증을 안고 있으니 말씀해 주셨습니다. * 성령님의 말씀 * 그 기준은 먼저는 휴거된 자이다. 자기가 휴거되지 않았는데 누구를 휴거시킬 수 있겠느냐. 자기 문제 먼저 해결하고 오는 것이다. 의사 본인이 아프면 남을 치료할 수 없다. 자기 먼저 치료하고 오는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는 구원자를 깨닫는 수준이다. 너희들 모두는 구원자를 깨달았다고 하나 각자 깨달은 바가 참 다르다. 그래서 그 수준의 차이도 다 다르다. 삼위가 만족할 정도로 구원자를 깨달은 수준은 오늘 네가 내게 고백했던 그것을 깨달아야 한다. 머리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완전하게 고백하는 것이다. 나는 네게 물었다. “진정이냐? 정말 그렇게 믿느냐?”라고. 이 물음을 스스로 계속해 보아라. 그래서 스스로 자신이 완전히 깨달았다고 하는 자는 내게 말해라. 그런 자에게 삼위와 주가 가서 하늘의 공의로우시고 일점일획까지도 명확하신 잣대로 재 볼 것이다. 그 마음이 합당하다 인정받아야 한다. 주를 그리 완전히 깨닫지 못하면 주를 증거할 수가 없다. 전한다 하나 온전하지 못한 것이요, 능력을 나타내며 전할 수 없는 것이다. 사도들은 아픈 자들을 고쳤고, 죽은 자를 살리기까지 기적을 일으키며 다녔다. 어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먼저 그들은 주를 그와 같이 온전히 깨달았기에 주의 이름에서 나오는 능력을 온전히 믿을 수 있었다. 그가 삼위인데 삼위는 기적을 능히 베풀 수 있으니, 주의 이름으로 기적을 보이는 것은 삼위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다. 기필코 기적은 일어난다고 하는 절대 믿음에서 나온 기적이었다. 또한 삼위가 주신 사도라는 사명의 능력으로 살린 것이다. 사도에게 삼위께서는 사명에 합당한 능력을 주시기 때문이다. 부흥강사가 사도로서 이 역사에 등장했을 때 보였던 첫 번째 표적이 병든 자들을 낳게 하는 것이었다. 이 표적으로 먼저는 삼위의 역사하심과 주의 권능을 보였고, 그가 사도였음을 보인 것이다. 너희들은 주를 그렇게 온전히 깨달아야 한다. 너희 스스로 물어라. 너희의 깨달음이 온전한지 물어라. 주를 온전히 깨닫는 자가 사도가 될 수 있는 자임을 잊지 마라. 너희가 만족하는 정도의 주를 깨달음이 아니다. 삼위는 그 잣대가 아니다. 알아라. 세 번째 기준은 지금은 성령의 시대다. 성령을 가끔 받고 사는 자는 사도가 될 수 없다. 나와 온전히 함께 사는 자라야 사도가 될 수 있다. 나를 온전히 모시고 언제나 나의 일을 완전히 행하는 자가 나의 몸이 ‘사도다.’ 할 수 있다. 왜 나와 계속 함께 사는 자라야 사도가 될 수 있는 줄 아느냐. 나와 계속 하나여야 순간순간 내가 감동을 주고, 내가 시키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자는 순간 감동을 주면 행하는 시동이 걸리는 데 시간이 걸린다. 마치 아직 시동이 걸리지 않은 차에 빨리 저 앞에까지 오라 하면, 그 차는 시동부터 걸고 달려와야 한다. 그러니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이미 달리고 있는 차는 바로 액셀러레이터만 밟으면 되니 바로 오게 된다. 이와 같은 것이다. 또 하나 예를 들어 줄게. 바울은 사도지. 만약 사도인 바울이 나와 일체 되어 나와 함께 살지 않는다면 길을 걸어가다 앉은뱅이 한 사람이 “바울 선생님, 당신은 사도이니 내가 걸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소서.”라고 말했다. 그때 바울이 나와 계속 함께이지 않으면, 그 자리에 자신을 뜨겁게 만들고 성령이 충만하도록 기도해서 기적이 일어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럼 시간이 걸리겠지? 앉은뱅이는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을 접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나와 일체 되어 있었기에 그 자리에서 기도하여 바로 일어나 걷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사도로 사명을 받기 위해서는 나와 완전 일체 되어 살아야 한다. 너는 지금 어느 정도 나와 일체 되어 사느냐. ( 저는 머뭇거렸습니다. ) 완전하게 100%가 아니면 0%인 것이다. 50%, 60%란 없다. 지금 선생이 너희에게 40일 기도로 나와 함께 사는 자가 되게 하라고 말했다. 선생은 그리 말하고 그냥 두는 것이 아니라, 기도해 주고 영적으로 너희를 돕고 있다. 그러니 지금이 너희가 나와 완전히 일체 되어, 나와 함께 살 기회의 때라는 것이다. 내가 누누이 말했다. ‘기회를 놓치지 말라!! 기회를 잡아라!!’ 하라고 할 때 하는 자가 지혜자다. 때를 잡는 자가 지혜자다. 이 세 가지는 삼위께 사도로 인정받기 위해 아주 핵적인 조건이다. 그 외 각 사람의 개성에 맞게 각자의 기준이 있다. 이것은 각자에게 해당된다. 모두에게 해당되지 않으니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세 가지는 아주 큰 조건이다. 이 세 가지가 안 되면 사도는 될 수 없다. 주를 깨닫지 않은 자가 어찌 주를 증거할 것이며, 나와 함께 살지 않는 자가 어찌 성령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겠느냐. 너희들도 나의 말이 진정 이해가 되고, 인정이 되지 않느냐. 그렇지? 너희를 온전히 이해시키는 성령이다. 사도가 되기를 원하느냐? 원하지만 말고 그런 자가 되어라. ‘나는 사도다.’라며 자칭 사도가 되지 말고, 삼위가 주는 사명을 받은 사도가 되어라. ( 성령님, 감사합니다. 진정 그리 행해서 삼위가 임명하는 사도가 되겠습니다. 정말 사랑합니다. ) 그래. 너희는 잊지 마라. 나와 함께 사는 것!! 이것을 잊으면 다 잃는 것이라고 생각해라. 모두에게 삼위가 인정하는 수준으로 주를 깨닫기를 축복하는 성령이다. ♥ 08월 11일 화요일 ♥ ‘주’라는 실체를 생각하여라 작성일 : 2015. 7. 19. AM 4:00 작성자 : 오영수 ( 수련회를 앞두고 수련회 광고영상을 편집하게 됐습니다. 제가 부서 단장이라 강의나 관리할 일이 많아 처음에는 영상을 만들어 달라고 해도 거절했지만 거듭되는 요청에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내심 “이번이 마지막이야.” 하며 마음먹었지만, 영상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수련회가 너무 중요하고 “선생님께서 얼마나 신경 쓰시고 준비하실까? 이 영상을 통해 사람들이 수련회를 더 잘 인식하고 준비할 수 있어서 선생님께 도움을 드릴 수 있다면 내가 해야지.” 라는 마음으로 작업했습니다. 감사한 것은 영상편집을 하면서 수련회가 얼마나 중요하고 이때를 맞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를 생각하니 불이 왔습니다. 또한 성지 땅을 만들어 놓으니 이같이 내놓을 것이 있고, 시대 구원자가 있으니 시대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어떻게 매해 매번 이 같은 기적이 반복될 수 있을까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짧은 시간에 영상을 만들어야 했기에 밤새 작업하고 중간에 새벽기도를 다녀와서 또 작업했습니다. 오전까지 편집을 마치고 부서 중앙 목사님의 검토를 기다리는 동안 잠깐 잠이 들었습니다. 꿈을 꿨는데 꿈에서 많은 섭리 사람들이 보였고 보는 사람마다 저에게 선물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내가 생일도 아닌데 왜 선물을 받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누가 옆에서 축하 선물이라 했습니다. “무엇을 축하하지?” 하고 물었더니 차원을 높인 것에 대한 축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장면이 바뀌어 섭리 사람들과 다 같이 배를 탔는데 배가 크게 흔들릴 때마다 서로 잡아 주니 아무도 다치는 자, 배 밖으로 튕겨 나가는 자 없이 안전했습니다. 그리고 잠에서 깼습니다. 다음 날 새벽기도 할 때, 이 꿈이 생각나 이를 두고 성령님께 여쭈었을 때 말씀해 주셨습니다. ) 사랑아. 너에게 생각의 축복을 주는 나 성령이다. 일을 준 것도, 꿈꾸게 한 것도 나 성령이다. 섭리에 수고하는 많은 지도자들의 생각이 굳을까 염려하여 너를 통해 깨우쳐 주고자 하니 잘 들어라. 섭리를 뛰는 지도자들은 많은 일을 감당해야 하는 가운데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 어떻게 쪼개야 할 것인가 분별해야 할 일이 많다. 하늘의 방향, 현실적인 상황을 끊임없이 분별하고 판단해야 되기에 때로는 일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업무 처리하듯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론적으로는 하늘의 일이고 주의 일이니까 하지만, 마음으로는 그렇게 뜨겁게 감동을 받으며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생각에 따라 운명이 좌우된다 했다. 마음의 불은 생각에 따라 오는 것인데 생각 자체가 불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이 나의 생각과 일치할 때 불이 오는 것이다. 또한 내가 생각에 불을 줘야 불이 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생명을 관리할 때 주의 몸이 되어 관리해 주어야지 생각하며 생명 관리를 한다. 그런데 관리할 때마다 늘 마음에 불이 오느냐? 아니다. ‘주의 몸이 되어야지.’ 하는 그 이론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주’라는 실체를 생각해야 한다. 주님은 어떻게 하길 원하실까, 주님은 이 생명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의 파장을 쏘니 주가 그 파장을 딱 붙잡고 순간 함께하면 마음의 감동이 확 오는 것이다. 그때 주의 생각으로 생명을 관리해 보아라. 생명을 살리는 관리가 되고 주가 행할 수 있게 몸을 내어 주는 것이 된다. ( 아멘, 진정 그러합니다. 때로는 분명 말씀을 생각하며 행하는데도 불이 오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건 이론만 생각하고, 그것을 전하는 주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군요. 아, 이래서 관념이 생기는 것이구나. 다시 한 번 깨우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령님은 깨닫게 하는 것이 사랑해 주는 것이죠. 성령님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 그래. 또 하나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 내가 생각에 불을 줘야 불이 온다고 했지? 그것은 내가 너희들에게 약속한 불로서 증거의 불이다. 증거란 한 대상을 두고 너희 나름대로의 생각과 이론을 펼치는 것이 아니다. 주의 생각, 나의 생각을 전하는 것이다. 왜 성령을 받아야겠느냐? 마음만 뜨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삼위의 생각을 받는 것이다. 고로 나 성령은 막연한 감동이 아니라 정확한 진리로 역사한다. 증거할 때 불을 준다 했다. 나의 생각을 받아 전할 때 불을 준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런데 분명 말씀을 외쳤는데 불이 안 올 때가 있지? 왜 그런 것일까? 말씀은 나의 생각이지 않느냐. 반대로 생각해 보자. 말씀을 들을 때도 잘 들릴 때가 있고 안 들릴 때가 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생각의 차이다. 왜 그런지 무슨 의미인지 생각하면서 들으면 말씀을 적극적으로 집중하며 듣게 되니 말씀이 잘 들릴 것이다. 그렇다면 말씀을 전할 때 생각해 보자. 진정 깊이 생각하며 전하였느냐? 주의 입장을 절실히 생각해 보고 전하였느냐? 주를 생각하며 전하였느냐? 말씀도 생각하지 않고 이론을 잘 전달하는 것에만 치우치면 큰 불은 오지 않는다. 이론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주’라는 실체가 아닌 이론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이론을 잘 전하면 나름대로의 감동은 있다. 깨닫는 것도 있다. 그러나 차원이 다름을 알아라. 이 차이는 주가 직접 손대느냐, 한 지도자가 손대느냐의 차이다. 주가 손을 댄다 함은 물리적으로 닿는 것이 아니라 주의 생각과 정신이 닿는 것이다. 즉, 주의 혼이 손댄다 함이다. 사랑아, 혼으로 하여라. 생각이 일체 되라는 것이다. 네가 일을 할 때 주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니 마음의 불이 오는 것이다. 마음의 불을 가지고 행하니 일이 잘 해결될 뿐만 아니라 너의 영혼의 차원까지 높아진다. 그것이 휴거의 차원을 높이는 길이다. ( 아멘! 그래서 꿈에서 선물을 받은 것이군요! 감사합니다.) 사랑아. 꿈에서처럼 서로 붙잡아 주어라. 바다에는 파도가 있고 아무리 튼튼한 배도 파도에 흔들리게 되어 있다. 배는 파도를 타고 목적지까지 가지만 배를 타고 있는 사람은 순간 파도치니 배에서 떨어질 수도 있고 다칠 수도 있다. 그 사람이 큰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라 순간 대비하지 못해서 넘어질 수도 있으니 주의 마음으로 잡아 주어라. 주의 마음이다. 너희 스스로의 마음으로 하나 되고자 하면 한계가 있다. 완전한 하나는 안 된다는 것이다. 주의 입장, 주의 마음으로 하여라. 너희는 세상 바다에 섭리사라는 큰 배를 타고 있다. 형제가 바다로 떨어지는데 “약하다, 잘못됐다.” 하며 쳐다만 볼 것이냐? 얼른 주의 생각을 받고 구해야지. “난 하고 싶지 않아. 할 만큼 했어.” 하며 물러서느냐? 혼으로 영으로 실감하지 못하니 그렇다. 너의 의지와 생각으로 하지 말고 형제를 보며 주를 생각하여라. 주의 입장으로 하여라. 그러면 주가 너를 쓰니 너도 살고 형제도 산다. 부흥강사를 보아라. 오직 주를 돕겠다는 마음, 주의 입장을 생각하는 마음이 하늘을 찌른다. 그녀의 능력이 타고남보다 주를 향한 노력이 진정 타고났다. 고로 내가 쓴다. 너희도 그녀를 본받아 주를 위해 살아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이른 말은 이미 그녀가 다 행하며 살고 있다. 진정 신부의 기준이고 표상이다. 상대로서 기준자, 상대로서의 길을 낸 것이니 그 길은 다른 길이 아니라 주 앞에 더 온전히 가는 길로서 주 앞에 가는 길이 곧 삼위 앞에 가는 길이다. 생각을 잘하여라. 똑같이 행해도 생각에 따라 불이 오고 결과도 다르다. 겉으로 봐선 모른다. 주를 위한다는 이론에 갇혀 있지 말고 주라는 실체를 생각하며 그 입장이 되어 주기다. 그것이 살아 있는 생각, 신이 되는 생각, 불을 주는 생각이다. 생각의 근원자 성령이 말했다. ♥ 08월 11일 화요일 ♥ 생각이 신이다 작성일 : 2015. 7. 11. AM 1:38 작성자 : 장정희 ( 월명동에 가서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늘 월명동에 가서 기도하게 해 달라고 했는데 그 소원을 주께서 이뤄 주셔서 감사하며 기뻐 찬양했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황금 왕관을 쓰시고 황금 망토를 걸치신 너무나도 멋진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제 영이 너무 기뻐하며 선생님께 ‘나는 행복하다’ 노래로 찬양드렸는데 찬양하다가 선생님께선 정말 위대한 생각, 신의 생각을 하셨다는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그 깨달음을 말씀드리며 혹시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해 달라고 부탁드리니 말씀하셨습니다. ) *선생님의 말씀* 내가 내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조건은 첫째, 생각이다. 나는 인간의 저차원의 생각을 하지 않고 신의 고차원의 생각을 하였다. 무엇을 먹을까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했고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까보다 하나님께 무엇을 해 드릴까 하고 생각을 했다. 삼위께 어떻게 하면 더 사랑받을 수 있을까보다 어떻게 하면 삼위를 더 사랑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너희들이 어떻게 하면 나를 더 사랑할 수 있을까보다 어떻게 하면 이들을 더 사랑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사랑의 시작은 똑같으나 목적이 달랐다. 나는 받는 사랑이 목적이 아니라 영원토록 주는 사랑이 목적이다. 그리하여 주는 사랑을 실천해 오면서 신은 하염없이 우리 인간에게 주는 사랑을 해 왔다는 것과 주는 사랑이 신의 고차원의 사랑이며 받는 사랑은 인간의 저차원의 사랑임을 깨달았다. 이 사랑의 근본을 깨닫고 내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차원이 달라진 것이다. 인간 차원이 아니라 하늘 차원에서 삼위와 인류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나 되게 한 가장 큰 조건이다. 생각의 차원을 달리한 것, 생각을 육에서 영으로 바꾼 것, 인간 생각 차원에서 신의 생각 차원으로 바꾼 것, 그리하여 내 인생은 끝없이 주는 신의 사랑을 하는 인생이 되었다. 이것이 구원자의 삶이다. 호세아 3장을 읽었느냐. 나 선생은 이와 같은 심정으로 너희 인류를 사랑한다. 나의 이 사랑은 삼위의 사랑이다. 호세아 3장 1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 사탄을 사랑하는 이 시대 음녀가 된 인류를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였다. 사랑 중 가장 고통스러운 사랑이 짝사랑이다. 사생애 때 3년간의 극심한 짝사랑의 고통을 통해, 음녀와도 같이 세상 사탄을 사랑하는 너희를, 하나님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너희를 지독히도 짝사랑, 외사랑하는 하나님의 그 쓰리고 아픈 마음을 완벽히 깨달았다. 음녀가 무엇이냐. 사랑과는 상관없이 쾌락에 몸과 마음을 던지고 뒹구는 자들이 아니냐. 지금 이 시대는 육적 음녀뿐 아니라 생각의 음녀, 사상의 음녀, 사랑의 음녀들이 너무나 많다. 섭리 또한 영적, 혼적, 정신적 음녀들이 너무나 많다. 다 나를 사랑하지 않아 내 속에 있는 삼위를 보지 못하고 세상 사탄에 한눈팔아 그런 것이다. 나는 그런 자들이라 할지라도 사랑한다. 신의 사랑이기에 사랑하는 것이다. 음녀가 성녀로 돌아오기까지 끝까지 사랑한다. 사랑하는 섭리인들아, 자기는 아니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진정 휴거된 자는 이 말이 나에게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어찌 육적 음녀를 내가 말함이겠느냐. 생각의 음녀들, 진리의 음녀들, 사랑의 음녀들을 말하는 것이다. 어서 이 말을 듣고 회개하라. 성삼위와 나를 진실로 사랑하여 성녀, 온전한 신부가 되어라. 생각의 타락, 생각의 음란함이 가장 크다. 사탄은 지금 생각의 타락을 하는 자, 생각의 조건을 잡히는 자들을 친다. 육으로 타락한 자, 육적인 조건을 잡힌 자들은 이미 자신의 노예이기에 그러한 자들을 통하여 그리고 세상 인사탄을 통하여 섭리사 생각의 음녀들을 찾아다닌다. 생각에서 선과 악이 갈려 나가기 때문이다. 선한 것에서 선이 나오고 악한 것에서 악이 나온다는 말은 선한 생각에서 의가, 악한 생각에서 불의가 나온다는 말이다. 지금 이 시대는 생각 싸움, 생각 전쟁 시대다. 뇌 전쟁 시대다. 너희 생각을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영의 운명인 천국과 지옥이 갈려 나간다. 그리하여 아마겟돈 전쟁의 근본은 생각 전쟁이다. 나 선생이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가장 큰 조건은 생각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각으로 산 것이 아니라 신의 생각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육의 생각으로 산 것이 아니라 영의 생각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신의 생각, 주의 생각이 너희를 구원하고 휴거시킨다. 사탄에게서 승리하게 한다. 고로 ‘생각이 신이다.’라고 한 것이다. 신의 생각이 나의 생각이다. 신의 생각은 완성된 신부인 700선 휴거된 자의 생각이기에 생각 자체가 신이 되지 않으면 주 증거의 사도의 시대, 성령의 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그리하여 섭리인들의 생각이 온전한 나 선생 생각, 성령 생각, 하나님 생각, 성자 생각이 되게 하려고 ‘생각이 신이다’라는 사인을 너희에게 준 것이다. 선교의 역사가 일어나는 지금 이때, 너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신의 생각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신의 생각으로 너희 생각을 정립할 때이며 방향을 설정해야 할 때이다. 너희 생각을 신의 생각으로 확고하게 만들어 놔야 할 때이다. 진리 말씀을 듣고 성령받아 너희는 모두 신의 생각을 하는 자, 생각 자체가 신이 된 자들이 되어라. 생각이 신이 되면 700선 휴거는 쉽게 이룰 수 있다. 생각이 신이 되어 사는 자가 바로 부흥강사이지 않느냐. 생각이 신이 된 자, 부흥강사는 나의 몸이 되어 세계를 누비고 있다. 700선 휴거의 표상자다. 고로 너희도 생각이 신이 되어 표상자 시대 하와 따라 나의 몸이 되어 세계를 누비어라. 700선 휴거의 지름길은 오직 생각이다. 생각이 신이 되는 것이다. 나의 생각으로 사는 것이다. 나의 생각은 말씀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 말씀을 실천하면 나의 생각대로 사는 것이다. 신의 생각으로 사는 자는 말씀을 실천하며 사는 자다. 또한 생각이 신이 되어 사는 자는 기도하는 자요, 전도하는 자다. 기도는 영적인 일이다. 기도는 인간이 신이 되는 통로이다. 기도해야 너희 영과 혼이 움직인다. 그리고 삼위와 나를 느낀다. 기도하지 않으면 절대 영적인 것을 못 느낀다. 기도하지 않기에 휴거도 천국도 나도 실감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하면 생각이 신이 되어 신의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 사탄의 육적 생각을 하지 않고 신의 생각을 하니 신처럼 행동하게 되어 신이 되는 것이다. 고로 ‘생각이 신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생각이 신이 되게 하는 것은 첫째, 기도이고 둘째, 전도이니 전도는 생명을 사랑하는 삼위의 생각이 임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도는 주는 사랑의 대표적인 표본이다. 신의 사랑이 너희 생각에 임했기에 전도하는 것이며 너희도 그 사랑으로 전도되어 온 것이다. 인간을 사랑으로 창조하여 하염없이 사랑을 주는 가장 순수하고 가장 차원 높은 생각이 내가 전하는 말씀과 나의 삶을 통해 너희에게 전해질 때 너희도 전도하는 것이다. 신의 생각으로 신의 일인 신의 사랑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기도와 전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기도와 전도로 너희 생각을 신으로 만들어 너희가 신의 삶을 살게 하여 신이 되도록 하여라. 이렇게 700선 휴거를 너희가 이루는 것이다. 그리하여 ‘생각이 신이다’라는 사인은 나 선생이 너희에게 하염없는 사랑의 마음으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직접 준 것이다. 근본은 너희를 700선 휴거시키고자 함이요, 부흥강사처럼 시대 하와로 만들고자 함이다. 호세아 3장 3절에서 5절로 마무리 짓겠다.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사랑하는 섭리인들아, 절대 음행하지 마라. 나 외에 그 어떤 것도 사랑하지 마라. 700선 휴거를 완성하기에 시간이 많지 않다. 그리고 음행한 자들아, 돌아오고 돌아오라. 나는 너희를 끝까지 사랑하니 세상 사탄을 끊고 회개하고 돌아오면 나의 것이 되리라. 지금은 정녕 마지막 날이다. 사탄과 마지막 전쟁을 벌이는 때다. 그 전쟁은 생각 전쟁이다. 생각을 뺏기지 마라. 나 외에 그 어떤 것에도 너의 생각을 주지 마라. 마지막 때는 신부의 시대이기에 신부는 오직 신랑에게만 모든 것을 주는 것이다. 모든 행위의 시작인 생각을 주는 것이다. 생각을 주는 것이 사랑을 얻는 것이다. 나를 얻고 천국을 얻고 황금성을 얻는 것이다. 너희 생각을 나에게 주는 것은 너희 생각과 내 생각이 일체 되었기에 주는 것이다. 너희 생각이 신이 되었기에 주는 것이다. 생각해라. 나를 생각해라. 삼위를 생각해라. 신의 사랑을 생각해라. 휴거를 생각해라. 천국 황금성을 생각해라. 기도와 전도를 생각해라. 말씀을 생각해라. 그것이 신의 생각을 하는 것이며, 700선 휴거를 이루는 것이다. 생각의 신이 되어 너희만 생각하는 선생이다. 샬롬. ( 말씀을 마치신 후, 월명동 잔디밭에서 기도하는 제게 뒤를 돌아보라고 하셔서 돌아보니 조명이 켜진 멋진 성자 사랑의 집이 보였습니다. 이어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왜 성자 사랑의 집에 조명을 켜 두는지 아느냐. 항상 나를 생각하라 함이다. 어두운 밤을 파랑, 빨강, 초록, 노랑 조명들이 환히 밝히듯 사탄이 항상 노리는 너희 인생에 나를 항상 생각하여 생각의 불을 밝혀 사탄을 이기라 함이다. 그리하여 나를 항상 생각하라고 성자 사랑의 집에 조명을 켜 놓았다. 알겠지? 나를 항상 생각해. 사랑해. ♥ 08월 11일 화요일 ♥ 자기 생각의 한계선에 매이지 말아라 (생각의 차원, 생각의 한계선) 2015년 8월 11일 화요일 새벽 계시말씀 작성일 : 2015. 8. 1. PM 8:00 작성자 : 주빛이나 ( 청캠 수련회 후 버스를 타고 가는데 차가 많이 흔들려서 잠에서 깼습니다. 빨리 달리고 흔들리는 느낌이 드니 사고가 날까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그때 또 앰뷸런스가 옆을 지나갔고 계속 앰뷸런스 사이렌이 울렸습니다. 요새 만물 계시 읽는 연습을 하는데, ‘이게 무슨 계시일까?’ 생각했습니다. 혹시 사고 나는 건 아니겠지 하며 계속 선생님을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신부들이 탔으니 꼭 지켜 달라고 계속 선생님을 붙잡았습니다. 이후 성자님이 너무 보고 싶어서 성자님을 생각하며 지난날의 성자님과의 사연을 생각할 때, 선생님의 음성이 들렸고 선생님께서 오셔서 생각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한 다음 날 만물계시의 깨달음이 왔습니다. ‘전날에 왜 앰뷸런스가 울렸을까?’ 하며 만물의 글을 읽어 보니 제가 계시를 그 즉시 적지 않고 머뭇거리며 듣고만 있었고 대화만 하고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계시는 성삼위와 선생님이 주시는 말씀인데, 즉시 적지 않고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즉시 적는다면 신앙이 힘든 자, 아픈 자 한 사람이라도 살릴 수 있다. 주의 계시는 힘든 자에게는 힘을 주고, 멈춘 자에게는 행하게 하고, 아픈 자에게는 치유하게도 하신다. 이와 같이 주의 계시는 급한 자에게 앰뷸런스가 가서 아픈 자를 태우고 병원까지 인도해 주듯 주의 만물계시도 음성계시도 앰뷸런스와 같은 역할을 하는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하니 계시가 올 때는 머뭇거리지 말고 즉시 적어야겠다.’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 인간은 흔히 자기가 얻고자 하면 얻는다. 바로 생각을 통한 한계선이며 생각의 작용이다. 자기가 자기의 한계를 만들고 자기가 자기 생각의 활동 범위와 행함의 범위를 만든다. 사람은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자기 한계선이 있다. 바로 자기가 생각으로 할 수 있는 선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차원을 높여 생각한다면 자기 생각대로 몸이 행하게 된다. 차원을 높이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생각에서 먼저 차원을 높여야 행함으로 인해 자기가 생각했던 선을 뛰어넘을 수 있다. 누구나 가능하지만 자기 생각, 자기가 생각하는 차원, 자기가 정해 놓은 한계선에 묶여 차원을 높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생각에 묶이지 말고 자기 생각에 매인 한계선을 풀어라. 그래야 한 차원 높이고 새로운 한 단계 높은 선에 도전할 수 있다. 인생 삶의 성공의 차이가 무엇이냐? 바로 생각의 차이다. 너희는 내가 휴거될까? 300선이 가능할까? 황금성에 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성삼위와 선생이 너희에게 말씀으로 계속해서 너희 생각의 차원과 한계선을 바꿔 주니 결국 너희 생각이 뒤바뀌었다.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휴거가, 황금성이 너희의 것이 되었다. 이처럼 너희 삶에 어떤 생각, 어떤 마음, 어떤 한계선을 갖고 사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공도, 영원한 황금성도 차지할 수 있다. 인간이 한계를 뛰어넘는 방법, 바로 생각의 차이다! 너희 생각의 인식의 차이다! 하고자 한다면! 목표 설정이 확고하고 그 목표대로 행한다면! 가능하다! 생각의 무기를 강철같이 하고 사용해라. 그럼 영원한 휴거 700선 황금성이 보장된다. 먼저는 생각으로 너희의 행함이 좌우되고 시작되니 생각 잘하기다. 성삼위가 주신 목표를 설정하고 생각의 한계선을 뛰어넘고 살아라. 하면 된다! 하면 된다! 가능하다! 너희가 시대 구원자를 만나고 위대한 인생 성공의 말씀을 만났는데, 그 말씀을 매주 듣는데 못 할 것이 무엇이냐? 자기 생각의 한계선을 버려라. 자기 생각의 한계선은 돛 없는 자와 같다. 성삼위와 나의 한계선을 가진 자는 돛을 단 자와 같아서 인생의 항해, 신앙의 항해에서 성공하여 영육 모두 축복된 삶을 살게 된다. 인생 최고의 축복 길을 가는 자들아. 생각에 성삼위와 나의 돛을 달고 자기 한계선에 매이지 말고 한계선을 높여 행하자! 생각의 한계를 높였다면, 그다음으로 꼭 할 일은 행하기다! 생각은 무기와 같고 행하는 것은 그 무기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행하니 사탄이 무서워 침범을 못 한다. 늘 생각의 차원을 높이기다. 그러하면 어려움도, 자기 한계에 매여 힘들어 할 일도 없다. 성공하게 하는 말씀이다. 생각의 차원을 높인다면 그다음부터는 삼위와 나의 생각으로 삼위와 나와 일체 되어 하니 쉽다. 늘 기도로 자기의 한계선을 높여라. 기도는 너희가 못 하는 차원의 것에 도전하게 하고 다짐하게 한다. 기도해 봐라. “나는 할 수 있다! 선생님, 함께해 주세요!” 하며 입으로 시인하며 말해 보아라. 그럼 자기가 자기 뇌에 명령한 것도 되어 한계선 차원을 높일 수 있다. 매인 것을 풀고 700선까지 끝까지 도전이다. 자기 생각이 악이 되고 불의가 되고 사탄에게 틈을 주는 생각이 되지 않게 늘 점검이다. 지금 이때는 자기 생각 차원의 한계를 성삼위와 나의 차원으로 높여 최대로 행하는 때다. 자기 한계선에 매인 바 된 자들이 많아 내가 너를 통해 계시했다. 너 또한 너의 생각의 한계에 빠지지 말며 늘 성삼위와 나의 생각을 받아 행하는 자가 되어라. 사랑하여 선생이 말하고 간다. 안녕. (이후 창밖을 보았습니다. 여려 겹으로 연결된 고속도로를 보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한 말씀 더 해 주셨습니다.) 이 세계를 보아라. 삼위가 사람에게 구상을 주어 만든 것이다. 도로 하나하나 다 삼위가 구상한 것이다. 인간의 차원으로 이 같은 도로가 가능할 것 같으냐? 뛰어넘는 생각을 주어 늘 세계를 변화시키기에 지구 세상도 발전되어 사는 것이다. 시대가 가면 만물도 사람도 변하듯 시대가 가니 차원이 높아져 창조 목적인 휴거가 이루어진 것이다. 선생도 삼위가 주신 신의 한계선을 가지고 행하니 이 같은 휴거역사의 주인이 된 것이다. 누구를 만나느냐가 진정 중하다. 인생 성공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