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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5.08.1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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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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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_0812 화 계시말씀.hwp1 2015년 08월 계시말씀 ♥ 08월 12일 화요일 ♥ ‘목숨 걸고 말씀을 들으라는 것’은 너무도 큰 축복이다 작성일 : 2015. 5. 23. AM 1:45~2:00 작성자 : 주수신 (주일말씀에 “말씀을 목숨 걸고 들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그리고 제가 어떻게 목숨 걸고 말씀을 들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모르니 답답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말씀이고, 알아야만 그 말씀에 대해 행할 수 있는데, 나는 모르니 행할 수 없고, 고로 그 말씀을 통해 주시는 수없이 많은 축복들과 얻을 것을 얻을 수 없는 상황임을 인식하니 너무도 눈물이 났습니다. 이 말씀이 선포되고 그에 대한 축복이 허락된 이때를 무지함으로 이대로 놓치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리며 하나님께 알려 달라고 눈물로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목숨을 걸고 말씀을 들으라는 말은, 이 말씀이 너의 ‘모든 것들’을 바꿀 것임을 인식하고 들으라는 말이다. 말씀을 통해서 너희에게 최고의 길을 제시하는 나 여호와다. 말씀을 줌은, 너희에게 그 모든 것들을 허락하는 것과도 같다. 그 말씀에 해당되는 것이 하늘의 무한한 차원으로 너희에게 허락된다. 그 위에 행하는 자, 그 ‘몸부림’ 위에 자신의 차원대로 받는 것이다. ‘무한’으로 몸부림치는 자는 그 ‘무한’의 것을 얻는다. 이는 마치 ‘백지수표’를 주는 것과도 같다. 인간인 너희가 절대 받을 수 없는 기회를 신인 나 여호와가 오직 너희를 사랑함으로 너희에게 그 길을 열어 놓는 것이다. 그런데 왜, 몸부림치지 않느냐? 나의 한마디 말씀이 너의 모든 인생을 바꿀 것임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냐. 네 모든 상황과 여건, 위치를 뒤바꿀 수 있는 것이 바로 나의 ‘한마디 말씀’임을 아는 자는 말씀을 목숨 걸고 듣지 않을 수가 없다. 왜 이것을 모르느냐? 천지를 창조한 나 여호와, 이 땅과 온 영계를 통틀어 최고의 주권자인 나 여호와, 너희의 신혼골수까지 쪼개어 보는 나 여호와. 온 천지는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내가 한마디의 말을 하면 나의 말대로 그 모든 것들이 바뀐다. 그런 내가, 너희에게 말씀을 선포함은, 너에게 무한한 것에 대한 기회를 부여한 것과도 같은데, 왜, 내 말씀을 가벼이 여기는 것이냐?! 왜, 내 말씀을 들을 때, 네 목숨을 걸지 않는 것이냐?! 목숨은 너의 모든 것이다. 그렇지? 다른 것은 내주어도, 목숨만은 아무에게도 내줄 수 없지 않느냐. 목숨 걸고 들을 만하니 목숨을 걸라는 말이다. 목숨은 모든 것이라고 하였지? 네가 모든 것을 걸고 들을 만하니, 목숨 걸고 들으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네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조건 대 대가라고 하였지? 또한 상대성을 띤다고 하였지? 같은 크기의 것으로 역사가 일어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100만 원짜리 금반지가 있으면, 100만 원에 그 반지를 바꾸지, 10만 원에 바꾸겠느냐? 10억을 주고 그 반지와 바꾸겠느냐? 아니다. 100만 원과 금반지를 바꾸는 것이다. 이와 같다. 너희의 모든 것을 걸어야, 말씀 통해 네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고로, 나 여호와는 목숨을 걸라고 표현하였다. 네 모든 것, 사실 나 여호와의 시각에서 보면 그리 큰 것이 아니지. 하지만 너에게는 너무도 큰 것이지. 그 모든 것을 걸고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면 나는 너에게 내 모든 것을 준다. 내 모든 것, 너에게 진정 너무도 큰 것이지. 너의 모든 것과는 절대 비교도 못 할 정도로 큰 것이지. 그러나 누구에게 어떠한 것이 크냐는 절대적 물질 가치의 세계가 아니요, 네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상대적 가치의 세계이다. 고로, 네가 가장 크게 생각하는 것을 내 앞에 내려놓으면 나 여호와는 너에게 가장 큰 것을 주는 것이다. 말씀을 목숨 다해 들으라는 말은 바로 그 말이다. 사랑아, 네 모든 것을 걸고 나의 말씀을 들으면 나의 모든 것을 네게 허락할 것이다. 그 말씀 속, 주어진 것, 그것을 끝없는 차원의 급으로 너에게 허락할 것이다. 고로, 네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각오를 하고 내 말씀을 들으라는 말이다! 나 여호와 앞에 자신의 것을 내려놓지 못하는 자는 진정 무지한 자이다. 지혜가 없는 자요, 하늘의 기회를 잡지 못하는 자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하늘을 오해하고 미련히 행한 사탄과도 같다. 사탄도 모르니 그리하였지, 알면 그리하였겠느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지 못하였다. 사탄은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컸던 것을 내려놓지 못하였기에 나 여호와가 그에게 주었던 가장 큰 것을 빼앗았다. 너희는 그같이는 되지 말아라. 이는 하늘의 법칙이다. 자신의 가장 큰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자는 나 여호와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것을 준다. 자신의 가장 큰 것을 내려놓지 못하는 자는, 나 여호와가 그에게 준 것 중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 것을 돌려받게 된다. 너희가 싫어 그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이는 ‘법칙’인 것이다. 나 여호와가 너희에게 축복을 주어 육도, 혼도, 영도 형통케 하여도 그가 그 축복을 감당하기에 합당치 아니하면, 그때부터는 그 축복을 거두는 것이다. 고로, 목숨을 걸고 말씀을 들으라는 말은 최고의 축복의 말씀이다! 왜냐하면, 네가 모든 것들을 걸고 그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행하니, 나는 그러한 너를 보고 너에게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것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것을 받으면 그 영광이 어마어마하다! 2015_0812 화 계시말씀.hwp2 그 권세가 진정 어마어마하다! 내가 주는 것은 영원토록 빛이 난다! 닳아 없어지지도 않고, 날로 새로워진다! 날로 그 차원을 높인다! 사랑아, 목숨 걸고 말씀을 들으라는 말이 어려웠느냐? 어떻게 행해야 할지 모른다고 눈물 흘리며 고백하는 네 모습이 어여쁘다. 내 말씀대로 행하고자 하는 네 마음이 예쁘다. 네 간구대로 알려 주었으니, 말씀을 들을 때, 네 자신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겠다고 결심하고 들어. 그리고 너를 내려놓고 내 말씀대로 행해. 그렇다면 나는 너에게 내 모든 것들을 줄 것이다. 진정 사랑한다. 안녕. ♥ 08월 12일 화요일 ♥ 지쳐 있는 나의 사랑하는 신부들에게 작성일 : 2015. 6. 28. PM 7:00∼ 작성자 : 정솔아 (정말 성삼위와 선생님께 잘해 드리고 싶은데, 생각처럼 잘 안되고 많이 부족한 제 모습에 순간 낙심이 되었습니다. 기도를 하는데 섭리사에 나와 같이 생각하는 자들이 많음이 느껴졌고, 저녁 7시 기도를 할 때 주신 말씀입니다.) * 선생님의 말씀 * 세상에 고민을 안 가진 자는 없다. 저마다 각자 처한 환경과 입장 따라 고민이 있다. 아무리 사람들이 동경하는 자라 하더라도 그의 입장과 환경 처지에 따른 고민과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많은 자들이 어려움 때문에 그토록 원하던 이상세계에 와서도 그토록 원하던 것을 얻고서도 어려움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고 세상으로 흘러간다. 너희의 마음을 안다. 나를 사랑해서 몸부림치는 것도 알고 나에게 너무나 해 주고 싶어 하는 마음도 안다. 너희가 일부러 말씀을 부정하고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해 주고 싶은데 말씀을 알고 행하지만 생각처럼 몸이 안 따라 주어 힘들어하는 것도 안다. 너 스스로 어떻게 행해야 될지 답을 알고 있지만 마음과 몸이 따로 놀아 괴로워하는 것도 안다. 너는 나를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을 때라도 그런 너를 늘 지켜보며 나는 늘 너와 함께 있었다. 정말이다. 네가 외롭고 힘들어할 때 너의 두 손을 꼭 잡아 주었고 혼자인 것 같다고 네가 펑펑 울 때 너를 품에 안고 같이 울었고 힘들어하는 너를 두고 혼으로 영으로 얼마나 붙잡고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른다. 사랑아. 아기가 걸음마를 떼기 위해서는 수백 번, 수천 번 넘어진다. 수백 번, 수천 번 넘어진 후에야 아기는 비로소 걸을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너의 삶 속 크고 작은 것을 행할 때 수백, 수천 번의 넘어짐이 있을 수 있다. 넘어져서 아파서 울 수도 있고 넘어져 일어나고 싶지 않을 수 있다. 네 마음을 잘 안다... 하지만 그동안 네가 나를 사랑해서 수백, 수천 번의 어려움 속에서 일어나 준 것처럼 그렇게 또 일어나 주길 난 원하는구나. 너를 사랑하기에 너와 함께 살고 싶기에 널 영으로 혼으로 늘 지켜보며 늘 너를 위해 영, 혼, 육으로 얼마나 기도하는지 모른다. 사랑아. 지금까지 나를 사랑해서 어떤 어려움, 힘듦 속에서 끝까지 나를 사랑한 너를 진정 나는 사랑한다. 나를 사랑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네가 나는 진정 고맙다. 지금까지 하였던 것처럼 조금만 더 해 보자. 그동안 힘들었던 날이 많이 있었지만 이기고 나니 지나고 나니 절대 못 넘을 산도 올랐고 지나고 나니 언덕 같았던 것처럼 지금 현재 너의 어려움 또한 지나고 나면 그러하니 조금 더 해 보자. 조금만 더 행해 보자. 난 절대 네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네 손을 끝까지 놓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만 나의 손을 놓지 않으면 된다. 네가 너무 힘들면 네 손을 내가 더 잡아 줄게. 내가 너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게. 그러니 제발 포기만 하지 말아라. 포기만 하지 않으면 네가 그토록 불가능할 것같이 느꼈던 300선 휴거도 이루게 된 것처럼 너의 부족도 모순도 내가 반드시 고쳐 주리라. 너 없으면 내가 어떻게 살겠느냐. 너를 이토록 사랑하는데 너 없으면 나는 어떻게 하느냐. 섭리사 나의 신부들아.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신부들아. 힘들면 내게 꼭꼭 말하여라. 영으로도 혼으로도 육으로도 내게 말해. 네가 힘이 없으면 네가 쓰러지지 않게 두 배로 그 손을 꽉 잡아 줄 테니깐 힘들다고 가만있지 말고 영으로, 혼으로, 육으로 이중, 삼중으로 반드시 내게 말하기다. 나 누군지 알지? 나의 능력을 믿지? 나 믿지? 아무리 불가능한 것도 불가능한 상황도 뒤집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네 마음이 죽어갈 때 꼭 내게 말해. 그럼 내가 일으켜 세워 주리라. 힘들 때는 혼자 생각, 사탄 생각에 빠지지 말고 힘들면 나를 부르기라도 해라. 가만히 있는 것보다 부르는 것이 가만히 있는 것보다 기도하는 것이 몇천억 배나 차이 나게 힘과 능력이 온다. 내가 네게 하나 약속할게. 지금 너도 나에게 하나 약속하자. 네가 힘들 때 내가 너를 꼭 잡아 줄 테니 네가 힘들 때 네가 나를 꼭 잡기다. 네가 나를 잡지 않으면 사탄이 너를 채 간다. 그러니 나를 늘 부르고 일체 되어 살자. 못 할 것 같고 안 될 것 같고 할 수 없을 것 같아도 한 번 해 보았던 것이니 네가 맨 처음 신앙을 시작했을 때보다 더 유리하고 쉽다. 그때도 하니 되었듯 지금도 하면 할 수 있다! 한 번에 전체를 할 수 없지만 하나씩 늘려 가면 전체를 할 수 있다. 그러니 처음 신앙을 시작할 때처럼 다시금 하나씩 시작해 보자. 기도도 말씀도 사랑도 조금씩 다시 시작해 보자. 중간에 하다가 조건이 깨지고 하다가 좀 못 하면 어떠하냐? 다시 시작하면 되지. 사람들이 뭐라 해도 내가 “괜찮다” 하면 괜찮은 거라 했지? 조건을 쌓다가 깨져도 괜찮아. 행하다 실수하고 잘 못 하는 날 있어도 괜찮아. 사람이 걷다가 넘어질 수도 있지. 다 잘하려고 하다가 그러는 건데 나 그렇게 야박하지 않아. 하지만 넘어지면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나는 것처럼 2015_0812 화 계시말씀.hwp3 그렇게 훌훌 털고 다시 행해 보자. 알았지? 사랑한다. 너를 정말 사랑하는데 어떻게 이 사랑을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구나... 사랑한다는 이 말로는 다 표현이 안 되는 이 사랑을... 어떻게 전해야 될지 모르겠구나... 정말 정말 이 지구상에 너밖에 없다 생각하고 영으로 혼으로 육으로 최고로 너를 사랑한다. 그러니 영원히 나의 품을 떠나지 말아라. 영원히 나와 사랑하며 살자. 사탄은 매일 매 순간 너희에게 오니 꼭 사탄을 무찌르고 수시로 기도함으로 나와 일체 되자. 진정 너희를 사랑하는 선생이 말했다. 힘내라! 사랑해. (이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아. 나와 함께 기도하자.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할 때까지 정말 사탄이 괴롭히고 기도할 때까지 정말 사탄이 끌고 다닌다. 네가 사탄을 자르지 않는 이상, 사탄은 너를 지옥 안까지 끌고 간다. 그러기에 네가 먼저 잘라야 한다. 너 혼자 하는 것같이 느껴질 때가 많아도 성삼위와 선생이 영으로 육으로 역사하고 선생 육신을 쓰고 성삼위와 선생이 너를 도우니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영의 눈을 떠서 보아라. 섭리사 누구나 나를 느낄 수 있고 느끼도록 문을 활짝 열었으니 느낌으로 느껴라. 색안경을 벗어라. “안 되겠다.” “못 하겠다.” “할 수 없을 것 같다.” 하는 것은 다 뇌에 색안경을 끼고 있는 것이다. 뇌를 통해 모든 지시도, 성령의 불도, 성삼위도 보고 듣고 느끼는데 그 색안경을 벗지 않으면 성삼위와 선생도 오해하고 자신의 가능성도 오해하게 된다. 섭리에서 불가능은 없다. 반드시 가능하다. 반드시 된다. 그러니 행하자. 일으키자. 일어나 빛을 발하자. 마음이 우울하고 낙심될 때 너와 나의 사연을 생각하고 더욱 감사하여라. 섭리사에 나와 사랑 사연이 없는 자 단 한 사람도 없으니 그 사연을 생각하고 깊이 깨달을 때, 행할 때 불이 오리라.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한국 속담이 있듯이 작은 행실이 모일 때 네가 생각지도 못한 기적이 일어나리라. 사랑한다. 너희 신랑 여호와니라. ♥ 08월 12일 화요일 ♥ 사탄은 지옥문 앞에서 휴거되지 않은 섭리 신부를 기다린다. 어서 휴거되어라. (지옥과 영옥 체험) 작성일 : 2015. 5. 20. AM 1:00- 작성자 : 주정신 (주일말씀을 읽고 기도하는데 선생님이 너무 보고 싶어서 만나러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낮기도 시간에 선생님이 계신 곳으로 갔습니다. 선생님은 기도하고 계셨고 기도가 끝나실 때까지 저도 뒤에서 함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기도가 끝나신 후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셨습니다. “너, 왔구나.” 하시며 제게 무슨 기도를 했는지 물어보셨습니다. “제 기도는 너무 부족해서 구원자가 이 땅을 위해 하는 기도가 가장 큰 기도이니 선생님의 기도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선생님의 기도를 들으며 아멘 하며 함께 기도하고 있었어요.”) 그래. 내 기도가 이 땅에 이루어져야 평화다. 난 오늘도 하나님의 대행자로 지구 세상을 깨끗이 하는 기도를 했다. 매일 빠짐없이 기도한다. 오늘은 인생들의 무지함을 한탄하며 기도하게 되는구나. 육신은 참으로 무지하다. 자기의 한 치 앞도 모르면서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무시하고 욕하며 살지. 무지하니까 심판의 날이 자기 코앞에 들이닥쳤는데도 술 마시고 취하여 이성 향락이나 즐기고 우상에 빠져서 산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들을 자신들 삶에서 즐기며 사니까 무지가 꽉 차서 말이 안 통한다. 무지한 대로 사는 저 인생들은 무지가 얼마나 큰 죄인지도 모른 채 산다. 성자는 이 땅에 나를 통해 재림하셨고 때가 되어 모든 뜻을 이루고 휴거된 영들과 함께 승천하셨다. 지상 뜻, 창조 목적을 다 이루고 가셨는데도 저 인생들은 모른다. 그리고 성자가 이 땅에 보낸 자를 남겨 놓고 그를 통해 마지막 역사를 이루고 있는데, 나를 알아봐야 하는데 모른다. 하나님의 역사가 이 땅에서 이루어졌는데도 관심도 없고 찾지도 않고 세상은 무지 속에 상극하며 산다. 그러니 지옥행이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휴거를 이루셔서 인류 역사에 휴거된 곡식들을 거두셨기에 이제는 미련이 없으시다. 이제 미련이 남는 입장은 인간들인 것이다. 하나님은 휴거시키셔서 우주와 지구, 천국을 만드신 목적까지 다 이루셨지 않느냐. 수가 많든 적든 창조한 목적을 이루었으니 할 일은 다 한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아닌 인간들이 미련이 남는 것이다. 지난날 계속하여 세상이든 섭리든 하나님은 기회를 주었는데도 그 기회를 잡지 못한 자들에 대해서는 미련이 없으시지. 심판을 받은 저 나라를 보아라. 내가 오늘도 그 나라를 위해 기도하였다. 우상 신이 넘쳐나고 인간을 신으로 만들어 섬기는 나라. 휴거를 이루신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어 심판의 칼을 뽑으셨다. 한 치 앞도 모르고 심판의 날에도 저들은 우상을 섬기고 향락을 즐기며 빠져 있었으니 빼낼 자들은 감동으로 빼내었으나 무지 속에 갇힌 자들은 심판을 받았다. 인간들은 자기의 한 치 앞도 모르는데 계속 하나님은 찾지 않고 자신들 각자가 편한 대로, 좋은 대로 우상을 만들어 산다. 인류를 구원해야 될 내가 매일 기도해 주어도 무지를 꺾고 생명의 길로 가지 않으니 방도가 없다. 너희는 세상의 심판을 보고 그냥 넘어가지 말아라. 세상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너희들은 더욱 근신하고 완전하게 깨어나 세상에 진리를 외치는 사명을 해야 한다. 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겠느냐. 세상에 심판을 보이시며 계속하여 휴거의 경종을 울리고 계신 것이다. 앞으로 더 천국과 지옥이 극명하게 나뉠 것이다. 휴거된 자들에게는 더 할 수 없는 천국의 세계가 무지한 자들에게는 더 할 수 없는 지옥의 세계가 더 극적으로 나뉠 것이다. 휴거의 문이 열려 휴거가 진행 중이나 지옥의 문도 열려 지옥행도 계속하여 진행 중이다. 세상의 무지자들을 심판하시며 하나님은 세상에 있는 자들과 섭리의 신부들을 일깨우시니 너희들은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2015_0812 화 계시말씀.hwp4 그냥 넘어가지 말고 하나님의 행하심을 귀 기울여 듣고 보아야 한다. 세상의 무지자들을 보면서도 기도하나 섭리 안의 무지자들이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내가 6년 동안 재림과 휴거를 외치며 너희들이 알고 맞을 수 있도록 준비시켰다. 2014년은 성자가 떠나시기 전에 더 극적으로 너희를 휴거의 열차에 다 태우려 내가 죽다 살아나는 것을 반복하며 안간힘을 썼고 죄가 있으면 휴거가 안 되니 따지지도 않고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었다. 성자와 내가 그토록 몸부림치며 어떻게든 휴거시키려 했는데도 불구하고 휴거가 안 된 자들은 도대체 왜 안 된 것일까. 내 조건까지 치면 휴거가 안 될 수가 없는데 얼마나 자기 조건이 부족하면 휴거가 안 됐을까 안타깝다. 몰라서 못 하는 무지자보다 알면서도 못 하는 무지자가 더 배의 고통을 겪는다. 휴거가 안 된 자들은 어서 휴거를 이뤄야 한다. 휴거돼야 지옥을 면하는데 섭리사에 있음에도 아직도 휴거를 이루지 못한 자들은 그들이 휴거되지 못하게 지옥의 사자들이 막고 고통을 준다. 오늘은 지옥문 앞에 가서 사탄들이 어떤 마음을 먹고 있는지 보여 줄게. 가자. 나와 함께 보고 들은 것을 전해 줘라. 선생님의 손을 잡고 지옥문 앞에 갔습니다. 지옥의 하늘을 보니 어둠 속에 붉은 핏빛이 돌았고 귀에 웅웅 하고 맴도는 큰 북소리가 났으며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습니다. 지옥에 오니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선생님은 저를 빤히 쳐다보시더니 “왜 우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선생님. 휴거되어 영원한 지옥을 면하게 되어 너무 감사해서요. 선생님을 통해 성삼위의 말씀을 듣지 못했다면 저도 무지자가 되어 지옥을 면치 못했겠죠? 기쁨과 감격의 눈물이에요.) 나도 성삼위께 감사하다. 휴거된 섭리사 신부들은 영원한 지옥을 면하게 하시는 최고의 축복을 주셨으니 상상할 수 없이 기쁘다. 그 감사를 늘 잊지 말고 기쁨의 잔치를 하자. 나도 매일 휴거의 영광을 돌리니 너희들도 계속해서 감사 감격해야 더 휴거되어 차원이 높아진다. 선생님의 손을 잡고 사방을 둘러봤습니다. 지옥문은 어마어마하게 컸고 두꺼운 검은색 철로 되어 있어 밀어도 밀릴 것 같지 않은 문이었습니다. 문 위에는 뾰족한 창살이 살벌하게 빽빽이 하늘을 찌를 것같이 솟아 있었습니다. 문에 무엇이 새겨져 있었는데 가까이에서 보지 않아도 영은 그것이 무엇인지 다 보였습니다. 지옥에서 고통받는 자들의 절규하는 모습들이 문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지옥의 문은 끝도 안 보이게 컸습니다. 그리고 문은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끝도 보이지 않는 지옥문 앞에는 사탄들이 끝도 안 보이게 일렬횡대로 문 앞을 지키고 서 있었습니다. 사탄들의 눈에는 저와 선생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앞에 서 있어도 그들은 신경 쓰지 않고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사탄을 쳐다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천적 사탄들이다. 인간들을 유혹하고 꾀는 사탄들은 자신들이 갇히기 전까지도 발악을 하며 하나님 역사에 훼방을 놓는다. 저들이 할 일은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루시퍼가 하와를 꼬여서 하나님 구원역사의 시작을 막지 않았느냐. 창조 목적을 막는 것이 저들이 원하는 것이다. (선생님! 저희는 창조 목적의 뜻을 이룬 휴거자들이잖아요! 사탄들이 하나님의 뜻을 깨 버리고 저희가 사랑의 뜻을 못 이루게 그렇게도 막았지만 저희는 휴거돼서 창조 목적을 이루고야 말았어요! 모든 게 선생님의 조건이에요. 너무 감사해요. 사탄들은 저희를 괴롭혀도 저희는 휴거된 능력으로 능히 이길 수 있어요! 그렇죠?) 그래. 휴거된 자는 사탄의 유혹과 꾐을 능히 이기니 사탄이 제아무리 쓰러뜨리려 하여도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룬 자들은 사탄이 침범하지 못할 권세와 능력이 있다. 휴거된 영들을 보며 사탄들은 두려움에 떤다. 하나님 사랑의 상대체가 된 인간으로서 신이 되었기에 침범불가다. 그러니 휴거된 자들이 더 뛰고 달려 모두가 휴거를 이룰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앞으로 사탄은 더 극적으로 활동할 것이다. 세상을 보아라. 사탄의 왕국이 되었다. 사탄의 왕국이 되어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서로가 분에 못 이겨 죽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고 지옥세계 끔찍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세상의 사람들은 사탄이 원하는 것들을 각종으로 행하며 그 몸이 되어 사니 사탄의 노리개가 되었다. 이미 사탄이 장악하여 지옥의 문을 활짝 열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사탄들이 지옥의 문 앞에서 가장 기다리는 자들은 섭리사 신부들이다. 섭리에 왔으나 아직 휴거되지 못한 자들을 사탄들은 잡기 원한다. 휴거된 자들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룬 자들이 되어 사탄을 결박하였으나 사탄은 앞으로 휴거되어야 할 자들을 극적으로 괴롭혀 휴거되지 못하게 하려고 막을 것이다. 지옥문 앞에서 사탄들이 웅성웅성대며 목을 빼고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안 오나?’ 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사탄을 보며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 천 명보다도 휴거를 이루던 섭리 신부 한 명을 지옥으로 끌고 오는 것이 최고 공적이 된다. 100선, 200선까지도 영원한 지옥에 오지 않는 것이 보장되지 않았다. 300선이 되어야 능히 다스린다. (선생님! 그런데요. 300선 휴거가 됐는데도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왜 그런 거예요?) 본래 온전한 300선 휴거를 이룬 자는 완전한 사랑의 상대체가 된 것이어서 정말 인간으로서 신이 되어 고통과 어려움과 죄를 능히 다스린다. 그러니 700선까지 이미 올라간 자들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휴거 점수를 다 채우지 않았는데 선생의 조건으로 휴거시켜 준 자들이 있다. 그런 자들은 자신이 채우지 못한 휴거 점수를 꼭 채워야 한다. 자신의 노력과 사랑으로 300선을 채운 것이냐 아니냐에 따라 300선인데도 힘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매일매일 시대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계속 차원을 높여 가야 한다. 500, 600, 700 계속 끊임없이 올라가라! 수천억 명의 사람들이 큰 지옥의 문으로 서로에게 밀려서 빨려 들어가듯이 지옥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2015_0812 화 계시말씀.hwp5 사탄들은 소리를 치며 사람들을 밀어 넣고 있었는데 정말 별로 관심이 없는 표정이었습니다. 덩치가 큰 사탄이 보였는데 뿔이 일곱 개가 달려 있었습니다. 이 사탄이 철문 앞으로 누군가를 끌고 가니 사탄 무리가 칠판 긁는 듯한 웃음소리를 내며 우르르 달려가 달라붙기 시작했습니다. 꼭 썩은 음식물에 날파리가 모여 들러붙듯 따닥따닥 붙어서 떨어지지를 않았습니다. 사탄들이 하도 잡아 뜯어서 그 영의 살점이 뜯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영은 질질 끌려 지옥문 안으로 깊이 들어갔습니다. 그 영을 보는데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설마 섭리인 이었나?’라는 생각에 선생님을 쳐다보니 수없이 많은 생명들이 지옥으로 오는 것이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섭리를 알았으나 지옥에 오면 더 가슴이 아프다. 나를 끝까지 믿고 따라오면 내가 지옥을 보내겠느냐. 절대 안 놓는다. 그래. 저 아이도 한때 나를 사랑하였지. 그런데 나를 버리고 갔다. 회개하면 산다. 회개하지 않으면 죽는다. 회개하면 누구든 산다. 살리는 일, 그게 구원자의 일이 아니냐. 그러나 회개하지 않으면 제아무리 구원자라도 살릴 수 없다. 이성 건은 특히나 회개치 않으면 바로 사탄의 밥이 된다. 내 조건을 내걸고 어떻게든 살리려 하나 자신이 돌이키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나한테 솔직히 말하여 회개하고 다시는 그 죄를 짓지 않아야지. 내가 생명을 포기하는 거 봤냐. 난 절대 포기 안 하는데 자기가 포기했어. 내가 회개할 수 있게 기회를 주고 잡아 줬는데 자기가 이성이 좋다고 끊지 못했다. 나한테는 이성인 것을 숨기고 자기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니 결국 이성이었다. 몰래 계속 죄를 지으니 섭리에 있기가 두려워 자기가 편하게 살려고 도망가 버렸다. (그 영이 끌려간 곳을 따라갔습니다. 지옥의 내부도 깊이 내려갈수록 더 극심한 고통이 있다고 하셨는데 깊이깊이 내려갔습니다. 사탄이 그 영의 머리채를 잡아 내던졌고 그 영은 고통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지옥을 알면서도 네가 좋아서 택했으니 여기서 영원히 나와 사랑하며 사는 거다. 내가 너무 좋으니 주를 버렸지? 그렇게 지옥을 배워 알면서도 왔으니 너, 정말 똑똑하다. 네가 네 발로 기어 들어왔으니까 여기서 고통받으며 살아라!!> 하며 큰 도끼로 머리를 내리쳤습니다. 머리가 잘려 떨어져 뒹굴었고 피투성이가 됐습니다. 사탄은 나무 장작 패듯이 여자의 팔, 다리, 몸통을 도끼로 사정없이 내리쳤습니다. 제가 뒷걸음질하며 뒤로 가니 선생님은 제 뒤에 서서 눈을 가려 주시고는 말씀하셨습니다.) 이리도 끔찍한 걸 모르니까 알려 주며 잡아 줘도 결국 자기들 편한 길로 가겠다고들 한다. 내가 구원자인데 최고 편한 코스, 영광의 코스로 가게 해 줘도 고생길을 택하여 기어코 섭리를 나가서 살겠다고 한다. 내가 그렇게도 휴거를 외치며 지옥을 못 가게 해도 자기 발로 걸어 들어오면 되느냐. 내가 무엇을 부족하게 해 줬기에 나를 버리고 가는 것이냐. 휴거에는 이성이 독약이다. 휴거 코스를 가다 이성으로 쏠리면 자격 박탈된다. 사랑으로 휴거되는데 사랑에 흠나면 휴거가 안 되는 것이다. 사랑이 역사의 핵인데 사랑을 나에게 안 주고 다른 자에게 주면 사랑의 뜻이 깨져서 하와 꼴 나는 것이다. 이성을 멀리하여라. 늘 조심해야 한다. 내가 말했듯 뱀이라 생각하고 가까이하면 문다고 생각해라. 물리면 독이 온몸에 퍼져서 바로 즉사한다. 절대 이성을 조심해라. 저 꼴 나면 내 마음이 무너진다. 섭리 신부들, 절대 이성에 마음 단속해라. 이성에 강한 자가 어디 있느냐. 섭리를 나가서 잘살 것이라 생각하느냐. 섭리를 나간 자들 결국 주를 버리고 가서 마음 지옥 겪고 미쳐 버리겠다고 살려 달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나를 붙잡는다. 육도 혼도 영도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다. 그러니 점도 흠도 없이 깨끗하게 너희의 사랑을 지키면서 가라. 삼위가 땅에 보낸 구원자를 절대 사랑해야 휴거시켜 주는 것이다. ‘주’라는 돛을 뇌에 꽂고 살자. 사탄은 섭리 신부를 찾아다닌다. 지옥문 앞에서 매일 섭리 신부들만 기다리고 있다. 휴거를 이루지 못한 자들아. 어서 휴거를 속히 이루자. 휴거를 이루는 과정에 완전치 못하여 사탄이 너를 채 갈까 걱정이 된다. 섭리 신부 한 명을 지옥에 데리고 가는 것이 사탄에게는 최고 공적이다. 아담과 하와 때도 창조 목적, 사랑의 뜻이 깨지게 한 것이고 지금 마지막 사랑의 뜻을 이루는 성약역사 때도 결국 목적은 하나님과의 사랑을 깨트리는 것이다. 사탄이 원하는 것에 너를 뺏기지 말고 너를 시대 말씀으로 지켜 보호해야 한다. 내가 섭리 신부들, 절대 이성으로 사망길 가지 않게 기도한다. 사탄이 너를 늘 노리고 있으니 절대 알고 근처에도 가지 말고 조건 잡힐 짓을 하지 말고 눈길도 주지 말고 마음도 호리라도 절대 주지 말아라. 알겠지? 사랑을 지켜라. 선생님께서 지옥에서 지상으로 가는 길에 들를 곳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가 보니 그곳은 이성 죄를 지은 자들 중에 근신 기간에 있는 자들이 갇혀 있는 영옥이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영들은 얼굴빛이 검고 푸르렀고 굶주린 사람처럼 바짝 말라서 등골이 휘어 있었고 팔다리가 너무 가늘어서 일어설 힘조차 없어 보였습니다. 쇠창살로 막힌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 일어서지 못하고 바닥에 앉은 채 질질 끌면서 앞으로 와 쇠창살을 붙잡고 “꺼내 줘. 제발 나를 꺼내 줘.”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영을 보며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성 죄를 지어서 근신 기간 중인 자들, 여기 영옥에 갇혀 있는 자들은 <3.16> 휴거 때 못 데리고 갔다. 죄가 있으니 못 데리고 갔다. 웬만하면 내가 어떻게든 데리고 가겠는데 죄가 있는 자들은 데리고 갈 수 없다. 완전히 회개하여 다시는 죄짓지 않고 공적을 세워야지 여기서 나올 수 있다. 자기 육신은 아무렇지 않게 죄짓고 살았지. 자기 영은 이렇게 영옥에 갇혀서 어둠 속에 빛도 못 발하고 산다.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깨달아야 돼. 그래야 죄를 안 짓는다. 자기 코스로 가야 영광인데 이성 죄를 지은 자들은 자기 영광의 코스도 뺏기고 다른 길로 가야 한다. 그러니 얼마나 손해이냐. 자기 코스를 다른 자가 축복받고 가는 것이다. 2015_0812 화 계시말씀.hwp6 영옥에 갇혀 있는 자들은 어서 속히 죄를 용서받고 근신 기간 동안 깨끗하게 회개하여 나와야 된다. 그래야 휴거된다. 섭리 신부들아.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라. 죄를 지으면 회개하여 올라오는 데 시간이 걸리니 다른 자들은 휴거 코스로 제시간에 가는데 죄짓는 너만 시간이 늦어 갈 길을 못 간다. 그러니 죄로 인해 너의 발목이 잡히지 않게 완전하고 깨끗하게 너를 지켜 보호하여라. 자기 관리는 자기가 해야 된다. 시대 구원자가 너의 무기이고, 말씀이 무기이고, 기도가 무기다. 이것으로 너를 절대 보호하여라. 내가 오늘 영계의 상황을 보이며 섭리 모두에게 전하였다. 사랑하니 지켜 주고 싶다. 사랑한다. 안녕. ♥ 08월 12일 화요일 ♥ 역사의 두 증인 작성일 : 2015. 5. 18. AM 10:00 작성자 : 윤성근 (부흥강사님은 어떤 분이실까 생각하던 중에 성령님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만남은 선생과 하늘의 만남이며, 그 다음은 선생과 부흥강사의 만남이다.’ 하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뜻에 대해 생각하며 대화할 때 성령님께서 역사의 두 증인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 성령님의 말씀 * 사랑의 신부야. 역사를 시계 바늘처럼 보아야 한다. 초침, 분침, 시침은 개성과 역할이 다르고 각각으로 따로 움직이지만, 이 세 바늘이 하나 되어 움직임으로 정확한 때를 알리지 않느냐? 하늘의 역사 또한 하나님께서 홀로 진행하는 역사가 아니라, 삼위가 함께 움직이며 각각으로 역사한다. 이와 같이 성삼위도 하나 되어 움직이는데 이 땅에 펼쳐지는 하늘의 역사가 어떠하겠느냐? 성삼위가 짝을 이루어 행하듯, 이 땅도 짝을 이루어 역사를 이루는 것이다. 역사는 틈이 없다. 틈이 있는 역사는 이어진다 할 수 없다. 몸의 지체도 틈 없이 이어지니, 한 지체라 말하지 않느냐? 역사도 그러하다. 7000년 하나님의 구원역사에는 틈이 없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신약에서 성약으로 틈 없이 하나의 지체로 움직이는 것이다. 구약, 신약, 성약이 전혀 다른 역사 같지만, 하나의 지체와 같다. 나무의 뿌리를 구약이라고 본다면, 줄기는 신약이며, 열매는 성약이다. 그러하니 성약의 역사를 깊이 이해하려면, 하나님께서 구약과 신약에 역사하심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구약역사를 펴실 때 항상 짝을 이루게 하여 역사하셨다. 신부야. 하나님께서는 왜 짝을 이루어 역사를 펴셨을까? 이는 상대성의 이치이다. 역사는 상대가 있어야 한다. 여자도 남자라는 상대가 있어야 생명을 잉태할 수 있다. 하늘도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도 사랑의 상대인 사람이 있어야 한다. 하늘이 있으니 땅이 있고, 땅이 있으니 바다가 있으며, 빛이 있으니 어둠이 있고, 본체가 있으니 분체가 있고, 중심자가 있으니 증거자가 있다. (성령님. 그런데 왜 세 명을 세우지 않으셨나요? 성삼위는 세 분이시잖아요.) 신부야. 이는 역사의 주체가 있기 때문이다. ‘1’은 절대성을 뜻하며, ‘2’는 상대성을 뜻하고, ‘3’은 완전함을 뜻하지? 그러하기에 ‘1’은 하늘의 절대성을 상징하고, ‘2’는 땅의 상대성을 상징한다. 역사는 하늘과 땅에서 함께 일어나야 하기에, 하늘의 절대성을 상징하는 주체 ‘1’과 그의 상대가 되는 주체 ‘2’를 세워 완전하게 조화를 이루는 ‘3’의 역사를 이루었단다. 구약역사를 보면 크게 모세와 엘리야를 세웠지? 이때, 절대자 하나님께서 ‘1’의 주체가 되셨고, 그 앞에 상대가 되는 ‘2’의 주체를 영과 육으로 모세와 엘리아를 세웠다. 모세 앞에는 여호수아와 갈렙이 있었지? 이때, 절대성 주체 ‘1’은 모세가 되었고, 그 앞에 상대적 주체 ‘2’는 여호수아와 갈렙이었다. 신부야.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영과 육의 상대를 두시며 개성으로 역사하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이제 신약역사를 보아라. 역사를 지혜롭게 깊이 보아야 한다. 신약 또한 두 인물을 세워 역사를 진행하셨다. 그러나 신약은 구약과 다르게 성자가 친히 강림하여 진행한 역사였다. 그러하니 신약역사는 크게 두 가지로 쪼개어 보아야 한다. 성삼위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신약은 성자의 승천을 기점으로 두 때로 나누어진다. 왜일까? 성자의 승천을 전후로 하여서, 절대성의 ‘1’의 주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성자의 강림 기간 때 ‘1’의 주체는 성자였다. 그리고 성자 앞에 두 감람나무를 세워 역사를 폈으니 신약역사의 외적, 내적 증거자인 세례 요한과 예수였다. (성령님. 그런데 예수님은 성자 초림의 육이 되었는데, 어떻게 성자 앞에 두 감람나무가 될 수 있는 건가요?) 신부야. 생각해 보자. 성자 본체 앞에 증거자는 그의 분체 예수이고, 성자와 일체 된 예수를 증거하는 자는 세례 요한이다. 그러하니 서로 짝을 이루며, 상대가 되어 역사함이 맞지 않느냐? 성자를 중심한 신약역사를 이 땅에 세우기 위해, 영과 육의 두 증거자를 세웠으니 예수와 세례 요한이 맞다. 그러나 성자의 승천 이후에 절대성 ‘1’의 주체가 바뀌었다. 성자가 신약권 땅과 하늘의 세계의 모든 권한을 예수에게 주었기에 예수가 보다 절대적 위치에 서게 되었다. 다시 말해 성자 승천 이후에는 예수가 ‘주’가 되어 신약역사를 진행한 것이다. 그러하니 예수가 절대성 ‘1’의 주체가 되었고, 상대성 ‘2’의 주체는 역사의 때를 따라 땅의 인물들이 세워진 것이다. 사도 시대에는 베드로와 바울이 세워졌고, 개신 기독교 시대에는 루터와 칼뱅이 세워졌으며 크게 신약 종교 역사에는 구교와 개신교가 세워졌다. 신부야. 신약 사도 시대 때를 깊이 보아라. 사도 시대는 고리의 시대이다. 성자가 강림하여 시작한 자녀권 역사 위에 성령이 역사함으로 사도 시대가 열렸으며, 이 사도의 시대가 신약역사의 기틀을 잡게 되었다. 그리고 성령으로 지어진 사도 시대 위에, 2000년간 전 세계적인 예수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사도 시대에는 성령이 강권적으로 역사하여 주와 시대를 증거함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더욱 굳건히 다지게 된 것이다. 사도 시대 때 예수는 그의 육적 품 안에서 기른 베드로와 그의 영적 품 안에서 기른 바울을 통해 성령의 역사를 펼쳐 나갔다. 2015_0812 화 계시말씀.hwp7 또한 성삼위는 두 인물에게 각각으로 역사하여 개성적으로 역사를 이루었다. 그리함으로 베드로에게는 보다 육적 역사를 이루게 하였고, 바울에게는 보다 영적 역사를 이루게 하였다. 다시 말해, 베드로에게는 육의 축복을 주어 교회가 세워지게 하였고, 바울에게는 영의 축복을 주어 말씀의 성령 역사를 일으키게 하였다. 더 깊이 보자면, 베드로에게는 예배를 통해 재림을 준비하게 하였고, 바울에게는 영적 말씀을 남겨 재림을 준비하게 한 것이다. 그리함으로 신약역사는 교회와 말씀이라는 영과 육의 성령 축복 위에 하나님의 역사를 펼쳐 나가게 된 것이다. 신부야. 이제 신약역사에 대해 한 차원 더 높게 깨달아 보자. 하나님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 신약역사의 두 감람나무는 어찌되겠느냐? 곧, 성자와 성령이다. 다시 말해, 성자 승천 이전 성자의 역사와 성자 승천 이후 성령의 역사다. 여기서 성자의 역사에서 중심인물! 곧 성자의 분체가 누구이냐? 바로 예수가 아니냐? 또한 성령의 역사에서 중심인물! 곧 성령의 상징체가 누구이냐? 바로 바울이 아니겠느냐? 왜인지 아느냐? 바울에게는 말씀이 갔기 때문이다. 곧 예수의 영이 바울을 쓰고 말씀을 전하였고, 그 위에 성삼위가 역사하였기 때문이다. 신약의 본체가 된 예수가 바울의 몸을 쓰고 외치니 역사를 이루게 된 것이다. 그러하니 하나님 앞에 신약의 두 감람나무는 예수와 바울이 되는 게야. 이제 이해가 되느냐? 신부야. 성약의 섭리역사 또한 이러하단다. 성자의 승천을 전과 후로 해서, 성약의 절대성 ‘1’의 주체가 바뀌게 되었다. 성자 승천 전의 절대성 ‘1’의 주체는 성자였다. 또한 성자 앞에 두 증거자는 선생과 전 역사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신약역사와 마찬가지로, 전 역사의 증거자가 제 사명을 못 하니 그로 인한 환난과 핍박으로 십자가 노정을 걷게 된 것이다. 성자 승천 이후 절대성 ‘1’의 주체는 선생이 되었다. 선생은 성자 승천 전보다 절대적 위치에서 성삼위를 나타내게 되었고, 선생을 본 것이 성삼위를 본 것과 같다. 또한 선생을 사랑하는 것이 성삼위를 사랑하는 것이 되고, 선생을 증거하는 것이 성삼위와 시대 하늘의 역사를 증거하는 것과 같음이라. 보다 절대적 위치에 선 선생 앞에 이 땅을 상징하는 두 인물이 서서 시대와 역사를 증거하며 하늘 섭리역사를 펴 나가게 되었지. 곧, 한 사람은 선생의 육의 품에서 길러 성령의 시대에 이 땅의 하나님의 백보좌를 지으며 관리하게 한 자요, 또 한 사람은 선생의 영의 품 안에서 길러 그에게 말씀을 주어 성령의 역사를 증거하며 성령의 상징체로 삼은 인물이 아니더냐. 신부야. 신약과 성약의 사도 시대 인물에 대해 깊이 깨닫고 말씀을 받아야 한다. 신약 예수 앞에 두 인물 중 베드로에게는 보다 육적 축복을 주어 성령 역사를 하였고, 그 위에 교회를 세워 신약역사의 기틀을 세우지 않았느냐? 또한 바울에게는 보다 영적 축복인 말씀을 주어 시대를 증거하게 하였고, 신약의 사람들에게 성령의 불을 붙여 주게 하지 않았느냐? 성약도 이와 같이 역사가 진행된다. 성자의 육의 상징인 월명동을 환난 속에서 지켜 내어 섭리역사의 영광의 날을 월명동에서 맞게 하였고, 수련원장이 섭리역사의 반석이 되어 이 시대 베드로의 사명을 하고 있다. 또한 성자의 영의 상징인 선생을 환난 속에서 지켜내어 성약역사를 지켜 내었고, 시대 성령의 말씀을 전하여 휴거의 불을 일으키며, 성령의 상징체가 되어 휴거의 불길이 계속 퍼져 나가게 하는 부흥강사가 이 시대 바울의 사명을 하고 있다. 신부야. 네가 내게 이 시대 베드로와 바울이 누구인지 물었느냐? 베드로는 수제자이며 바울은 성자 승천 이후 전도되었으니, 그와 같은 자들이 시대 베드로와 바울이 된다고 생각하였느냐? 깊이 보아라. 어디서, 어떻게 전도가 되었고,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사명을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어떤 일을 받아 행하고 있느냐가 기준이 돼야 한다. 베드로와 같은 사명을 하며 그와 같은 일을 하였다면, 시대 베드로가 되는 것이고, 바울과 같은 사명을 하며 그와 같은 일을 하고 있다면, 시대의 바울이 되는 것이다. 성삼위는 각자 개성에 따라 사연을 만들며 차원 높여 역사를 하지, 전과 같은 차원으로 동일하게 역사를 하지 않는다. 지금은 성약의 시대가 아니더냐? 또 네가 베드로는 왜 성령의 역사를 할 수 없었느냐고 물었지? 베드로는 수제자이며, 예수 당세에 그와 함께 행하였고, 많은 축복을 받은 자이니, 성령의 역사 역시도 그가 하는 것이 더 이상적이지 않겠냐고 물었지? 그게 아니다. 성삼위는 개성에 맞게, 때에 따라 각각으로 역사한다. 그에 따라 베드로는 육의 축복된 길을 갔고, 바울은 영의 축복된 길을 간 게야. 성삼위가 각각 역사하여 그에 따른 섭리길을 가게 되었고, 자기에게 합당한 위치에 따라 섭리역사를 이뤄 나갔다. 이와 같이 주 앞에 시대 성약의 두 감람나무도 창조의 뜻이 다르다. 수련원장은 시대 외적 관원이 되도록 예정하였고, 부흥강사는 시대 내적 관원이 되도록 예정하였다. 다시 말해, 두 감람나무 역시 미리 예정되어 키웠고, 이 두 인물이 천국을 침노함으로써 사명의 보화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신부야. 이 두 인물을 크게 보고 크게 깨닫는 자가 성약 사도 역사의 옳은 증거자가 된다. 절대적 ‘1’인 선생 앞에 이 땅의 상대적 ‘2’인 두 증인을 온전히 세워야 성약 섭리역사의 기틀이 바로 서게 된다. 신부야. 여기서 한 번 더 깊이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 앞에 성약역사 두 감람나무는 신약의 역사 때와 같이 성자와 성령이다. 다시 말해, 성자 강림 시대의 역사와 성령의 시대 역사다. 신약 때 하나님 앞에 두 인물인 예수와 바울이 두 감람나무인 것같이 성약의 때 하나님 앞에 두 감람나무는 성자 승천 이전의 시대 때 성자 분체인 선생과 성자 승천 이후 성령의 시대 때 성령의 상징인 부흥강사가 성약의 두 감람나무이다. 그러니 신부야. 부흥강사에 대해 크게 깨달아야 한다. 내가 네가 이르기를 이 세상에 가장 위대한 만남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하였지? 먼저 하나는 선생이 성자를 만난 것이다. 이는 성삼위 중 하나인 성자가 이 땅에 강림하여 인간의 창조 목적을 완성하는 역사를 시작하는 순간이었으며, 이 만남이 하늘의 모든 세계와 땅의 모든 사람에게 가장 큰 기쁨이 되는 만남이었다. 2015_0812 화 계시말씀.hwp8 또 하나의 만남은 선생과 부흥강사의 만남이었다. 선생조차 모르게 은밀히 역사하신 하나님의 뜻 속에 하늘의 본체가 되는 자와, 이 땅을 상징하는 자가 첫 만남을 갖는 시간이었다. 이 만남을 시작으로 해서 성약의 성령역사가 시작되었고, 사도 시대 첫 시작을 알리게 되었다. 그 누구도 한 소녀의 몸으로 선생을 지켜 낼 줄 알지 못했고, 성령의 상징체가 되어 성약역사의 불덩어리가 될 줄 알지 못하였다. 늘 하나님을 찾고 부르며 찬양하던 그 소리에 오직 하나님만이 귀를 기울이시며 역사를 펴셨고, 결국 모든 신부 대표가 되어 하늘을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품고 사랑하였다. 그가 하늘을 사랑함으로 인해, 하늘의 입장인 선생의 사랑의 한이 풀렸고, 그로 인해 성삼위도 이 땅을 향한 매서운 심판과 환난을 멈추게 되었다. 한 여인의 몸으로 하늘을 품으며 모진 환난과 고통을 이겨 냈고, 그로 인해 이 섭리사와 민족 가운데 사랑과 평화가 찾아오게 되었다. 사랑의 신부야. 성약의 두 증인에 대해 온전히 깨달아라. 황금성 천국에 주와 가까운 자가 누구냐? 곧 시대와 구원자를 증거하는 자가 아니더냐. 시대를 알고 그에 맞는 사명자를 온전히 깨달아야 ‘구원자’를 온전히 깨닫는다. 그러하니 기도하며 깊이 깨달아 알고, 시대 사명자 앞에 두 증인과, 선생을 대하기다. 알겠느냐? 사랑과 증거의 성령이 시대의 두 증인에 대해 증거하였다. 평강과 축복을 빈다. 사랑의 성령이다. 샬롬. ♥ 08월 12일 화요일 ♥ 신앙의 고도를 유지하며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 쉬는 것이다 2015년 8월 12일 수요일 새벽 계시말씀 작성일 : 2015. 7. 25. AM 2:30 작성자 : 주은혜 (집회를 하러 가는 차 안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정말 바쁘게 뛰고 있는 것 같은데, 이제 좀 쉬어도 되지 않을까요?” 하고 여쭈니, “그래.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깜짝 놀라며 “하나님, 이렇게 단번에 쉬어라 말씀하실지 몰랐어요.” 했더니, 하나님이 “네가 쉬고 싶어서 쉬게 되면 매일매일 계시받자.”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그것이 과연 쉬는 것인가. 내가 생각했던 쉬는 것이란 이게 아닌데...’ 하고 생각했고, 하나님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쉬는 것이 아니라 더 신앙의 고도를 높이는 것 같아요.” 하고 말씀드리니 “사랑아, 네가 지금 고속도로 위에 있지? 이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속도를 줄이게 되면 어떻게 되겠느냐. 사고 난다. 이처럼 신앙도 자신이 달리는 속도를 줄이면 사고가 난다. 자기 고도에서, 위치에서 쉬는 것이다. 섭리사 많은 자들이 ‘조금만 쉬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동안 자기가 지켜 왔던 신앙의 기본들을 무너뜨린다. 그러다가 사탄에게, 본인의 육성에 매이게 되지. 쉰다는 것은 새롭게 한다는 것이다. 방향을 바꾼다는 것이기도 하다. 나도 천지창조 7일째 쉬었다. 그 쉼은 일을 하지 않음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창조의 다른 차원에서 기뻐하고 누리고, 영광을 받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휴거의 영들도 휴거를 위해 도전하다가 지금 휴거되어 천국에서 잔치하고 있다. 하지만 그냥 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 성삼위의 말씀으로 핵으로 똘똘 뭉쳐서 다른 차원으로 삼위와 교감하고 있는 것이다. 너는 일상에서 얼마나 많이 쉬느냐. 밥 먹으면서 쉬고, 지금 이렇게 차 안에서 쉬고 있지 않느냐. 따로 시간을 내어 쉬는 것만 쉬고, 논다고 생각하지 말고 인식을 전환해라. 정말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쉬고 놀 때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주일쯤 뒤 성령님과 이러한 대화를 더 깊이 했을 때 성령님이 해 주신 말씀입니다.) *성령님의 말씀* 사람이 쉰다고 생각하는 것과, 삼위가 쉰다고 생각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사람은 ‘쉬어야지.’ 생각하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어 버린다. 마치 새가 높은 고도로 날다가 땅으로 내려가듯, 너희의 신앙을 내려놓고 쉰다. 그렇게 쉬게 되면, 쉬고 나서 다시 신앙의 고도를 올리는 데 모든 힘을 다 써야 하니 자기가 오른 한계 이상을 못 오른다. 섭리사 많은 자들이 ‘쉼’에 대해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영 휴거가 끝나고 나서 ‘이제 좀 쉬었다가 하자. 내려놓자.’ 하는 생각들을 한다. 나는 너희의 생각을 감찰하며, 그 마음에 불을 주고자 가까이 있는 성령이다. 너희의 그 마음과 생각을 가까이 보면서 내 마음은 어떠하겠느냐. “그래, 수고했으니 쉬어라.”라고 할 수 있겠느냐. 휴거를 위해 몸부림친 것은 수고하였다고 할 수 있으나, 너희가 쉰다고 말하는 그 개념은 성령의 것과는 다르니 “옳다. 그렇게 해라.” 할 수 없다. 고도를 낮추면 사탄에게 잡힌다. 고도를 낮추면 감각이 떨어지고, 다시 감각을 찾고 고도를 높이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며 고생을 하게 된다. 고로 고도를 유지하면서 쉬어야 한다. 고도가 높아진 상태에서 쉰다는 것은 시대의 바람을 타는 것, 또 나 성령이 주는 새로운 생각을 받는 것, 새로운 것으로 전환하여 뛰는 것, 새로운 마음을 얻는 것, 새로운 깨달음과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쉬어야지.’ 하는 마음도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고도를 유지하면서 쉴 수 있는 방법도 마음에서 찾을 수 있다. 나 성령이 속 이야기 한번 해 볼까. 너희가 휴거를 위해 열심히 달려왔다고 하나, 과연 정말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몸부림쳤다고 내 앞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자가 몇 명이나 되겠느냐. 수고한 자도 있는 것 안다. 하지만 섭리사 대부분은 선생의 권고와, 조건과 몸부림에 이끌려서 한 자들이 더 많았다. 또 포기하려고 하는 자들도 많았고, 또 어떤 자들은 포기한 자들도 있었지. 그런데 그러한 상황 가운데서 선생은 목숨을 내어놓고 몸부림을 쳤고 너희 모두를 휴거시켰다. 그러하니 선생의 조건 없이 휴거된 자가 아무도 없다고 매일 말씀한다. 이것은 너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자, 내가 매일 말씀해도 아깝지 않은 것이다. 결국 그의 몸부림으로 너희 모두가 휴거에 도달하였는데도 너희는 감사보다 먼저 ‘이제 구원받았으니, 휴거되었으니 조금 쉬자. 다른 길을 보자.’ 하는 자들이 많다. 받을 때는 너희의 것으로 받았으면서 감사는 선생만큼 충만히 하는 자가 진정 없구나. 또, 휴거를 위해 가장 수고한 자는 쉬려고 생각하지 않는데 자신을 위해 목숨 걸어놓고 수고하지도 않은 자는 가장 먼저 쉬려고 생각하는구나. 2015_0812 화 계시말씀.hwp9 지금은 쉴 때가 아니다. 쉬고 싶으면 선생의 방법으로, 삼위의 방법으로 쉬어라. 새로운 하늘의 일, 새로운 사고, 새로운 방법으로 전환하여 새 마음을 가지는 것이 선생의 방법으로 쉬는 것이다. 섭리 모두 휴거 300선의 고도에 올려 두었다. 이것은 마치 너희가 시속 300킬로로 달리는 차 안에 있는 것과 같다. 그만큼 삶의 고도, 신앙의 고도가 높아진 것이다. 그 고도에 살면서 너희가 쉬겠다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확 놓아 버린다면 사고가 난다. 생각 사고, 신앙 사고 안 나게 해라. 사고 나면 힘들다. 지친 자들은 나에게 와. 내가 회복시켜 준다. 나를 불러라. 너희 수준에서, 너희가 몸부림친 것을 내가 위로하고 이끌어 줄 테니 나를 불러라. 신앙 고도를 낮추면 안 돼. 신앙은 매일 하는 것이다. 매일 나를 찾고 주를 부르는 것이 신앙이지. 네가 생각날 때만 하는 것이 아니다. 섭리에서 신앙이 어린 자들, 나이 많은 자들 할 것 없이 꾸준히 하는 자는 신앙의 왕, 기도의 왕이 되고, 신앙의 기록을 세웠을 텐데 ‘쉬어야지.’ 하는 그 마음 때문에 기록이 적다. 선생 따라 기록 세우는 자들이 많지 않아. ‘꾸준히’는 1년 동안 한다고 꾸준히 했다고 보지 않는다. 5년, 10년 이상은 해야 꾸준하다고 할 수 있다. 삼위의 마음에 들게 한번 고도를 지속적으로 높이는 자들이 되어 보아라. 지금 고도를 낮추어 뛰려는 자들이 너무 많다. 그러다가 사탄한테 치이고, 자기 생각에 사고 나며, 자기 육성에 먹힌다. 결국 자기가 자기 고통을 만드는 것이다. 몸부림치면서 올라가면 힘들어도 보람이고, 그 힘듦이 ‘성삼위적 쉼’을 얻게 한다. 새로운 생각을 만들기 때문이고 다른 차원으로 볼 수 있게 하는 눈을 만들기 때문이다. 300선 시작이라고 그렇게 말해도, 실감을 못 하는 자들이 많다. ‘또 올라가야 돼?’ 한다. 진짜 휴거를 위해 오르려 하는 자들은 묵묵히 행하는데, 말씀을 쳐다만 보는 자들과 다른 사람이 휴거 차원을 높이는 것을 보기만 하는 자들은 투덜거린다. 고도를 높이고 신앙의 산을 오르다 보면 투덜거리는 말을 못 해. 행하는 자들은 조용하다. 행하지 않으니 말하고, 입조심을 못 하는 것이다. 선생이 너희 모두 업고 300선 정상에 올려 두었으면 너희가 400선, 500선 봉우리에 올라야지. 아직도 선생 등에 업혀서 있으면 되겠느냐. 나의 새 힘을 받아라. 내 능력을 받아라. 선생이 너희를 위해 기도하고, 몸부림친 그 조건을 너희가 받아서 행해라. 헛되지 않게 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사탄이 너희에게 “이제 쉬자.” 하고 말할 때 사탄의 생각과 너희의 생각을 맞추지 말고, 선생이 어떻게 쉬는지, 하나님은 어떻게 쉬기를 원하는지를 알아라. 삼위 안에 너희는 자유롭다. 그 자유는 사탄의 썩은 문화를 즐기며 사는 자유가 아니다. 누구나 주를 자유롭게 사랑하고, 주 안에서 형제를 사랑하며 법 안에서 원하는 만큼 행하는 자유다. 이것을 확실히 알고 행하기를 바란다. 고도를 낮추지 마라. 700선까지 오르자. 핵심 경기는 끝났지만 이제부터는 개개인이 기록을 세우는 경기가 남았으니 너희 각각이 말씀에 자극을 받고, 신앙의 기록을 세우고, 그 기록이 영계에 기록되는 삶을 살아라. 신앙도 매일 일하듯, 밥 먹듯 꼭꼭 해야 한다. 기도도, 말씀도 놓치지 않고 해야 매일 삼위를 알고 깨닫는 감각이 새로워짐을 알아라. 행사하듯 하지 마. 신앙의 뿌리가 안 들어간다. 안녕. 핵심을 말해 주고 간다. 성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