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주일말씀2015.08.24 (월)

월 새벽말씀 25a4bcb1

선포일
2015.08.24 (월)

첨부 파일

2015년 8월 24일 월요일 새벽말씀(편집본) 네 할렐루야~~ 그러면 다시 오늘 말씀을 하겠습니다. 시편 107편에 보면 “여호와께 감사하라.”했습니다. “왜 감사해야 되는가는 각자가 알지, 옆의 사람이 아느냐. 각자 자기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 에 감사하라” 하나님께 폐를 끼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폐라고 표현할까요? 하나님께 은혜를 받지 않은 사람이 있겠느냐. ‘하나님은 당연히 인생에게 해 줘야지.’ 하지만, ‘당연히 부모가 자식에게 해 줘야지.’ 그렇 게 생각하면 못 된 생각들입니다. 불효자식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효자들은 그렇게 생각하 지 않습니다. 너무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본인이 으레 행할 수 있는 것을 해 준 것이 아니고, 전혀 불가능한 것을 해 줬기 때문에 감사하라.” 감사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지금부터 내게 말씀을 하시고, 성령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모르니까. 천천히 하겠습니다. 감사에 대해서 감동을 시키겠습니다. 하나님은 언젠가 말씀했습니다. 나를 보고. 너무 깊이 나가면 본문 말씀을 잊어버릴까봐 (잠깐만 합니다.) “쓰레기통도 하나님 것이다.” 그랬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내가 1주일 동안 금식했습니다. 그런데 약 40일 금식한 만큼 배고팠습니다. 왜? 배고픈 고 통을 깨우쳐 준 것이 아니라, 감사하라고 깨우쳐 주었습니다. 감사하라고! 그때가 약 20대가 넘었을 것입니다. 아니 10대가 넘었고 20대였습니다. 그때에 감사하라는 것을 깨우쳐주기 위해서, 음식에 대한 감사를 깨우치기 위해서 1주일 금 식을 했습니다. 겨울철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하니까 너무너무 괴로웠습니다. 나는 보통 3 일 같은 것은 해도 꿈쩍도 안 하는데, 하루가 열흘  만큼이나 너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 렇게 해서 배고픈 고통을 아주 처절하게 더욱 깨닫게 되었습니다. 음식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못 견디고 ‘이러다가 죽겠구나. 이럴 필요가 없 구나.’ 했습니다. 겨울철이었습니다. ‘에이, 구경이라도 하자. 김치쪽 구경이라도 하자.’ 하고 김치쪽 구경을 하니까 훨씬 덜하더라고요. 그러고 나서는 김치를 먹지는 않고 혓바닥으로 핥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는 어떻게 했는지 압니까? 결국 끝까지 견디기는 했는 데, 마지막에는 하나를 먹어버렸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맛있는 김치가 없었습니다. 평소에는 쉬어서 못 먹는 음식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 무엇을 깨우쳐 주었는가 하니, “쓰레기통에서 무쪽을 먹어도 하나님께 감사하 라.” 했습니다. 그런 음성이 날아왔습니다. 쓰레기통의 무쪽을 먹어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 무를 누가 길러서 버렸는가 하니, 쓰고 버렸는가 하니, 그 버린 것도 하나님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농사짓게 만들어서 무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쓰고 나머지 잘라서 꽁지를 버렸던 것입니다. 그것을 먹어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먹어도 감사하라. 하나님께.” 감사를 배울 때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렇게 무섭게 배웠습니다. “주워 먹을지라도, 무엇을 따먹을지라도 감사하라. 감격하라. 음식에 대해서 감사하라. 사람이 음식을 안 먹으면 죽으 니까 음식에 대해서 감사하라. 쓰레기통도 하나님 것이다.” 그랬습니다. 이래서 감사에 대해서 그 진저리나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그 얘기를 가끔 합니다. 여러분들도 감사할 때 늘 먹고 입는 것, 감사하고 감사해야 됩니다. 감사해야 자꾸 감사할 일이 생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감사의 철학이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주와 같이 먹고, 같이 즐기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먹고 즐기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을 안 준 사람들은 “하나님, 앞으로 집을 줄 것을 생각할 때 감사합니다.” 계속 그러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러잖아요. 얘들이 나보고 감사하다고 하면 “너는 무엇이 그렇게 감사하냐?” 하면 “이래서 감사합니 다.” 합니다. 나는 별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응당히 해 줄 것입니다. 그것은 일반적인 것으로, 아직 줄 것을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할 때에 다시 기억하게 됩니다. ‘아, 얘는 앞으로 큰 것을 주면 되게 좋아하겠다. 너무 좋아하겠다.’ 합니다. 감사를 받을 때 그 기쁨이 큽니다. 내가 겪어보니까 감사를 받을 때 너무나 좋더라는 것입 니다. 그런데 그것을 안 해 버릇해서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덜 되어서 그렇습니다. 사람이 운동을 많이 해 보면 별 지체의 움직임을 다 할 수 있습니다. “너, 한번 뒤로 젖혀 봐.” 하면 뒤로 젖히고, “앞으로 구부려봐.”하면 그렇게 하고, “너, 하체만 흔들어봐.” 하면 하체를 흔들고, “너 목만 돌려봐.” 하면 부엉이처럼 목만 싹싹 돌린다는 것입니다. 운동을 많이 한 사람은 지체를 마음대로 하듯이, 자기 정신을 그만큼 개발하고 그만큼 정신 력의 자유를 얻은 사람은 모든 것을 잘 할 줄 아는데,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것도 어색해서 못하고, 버릇이 안 돼서 못하고, 행동적인 것은 했는데도 말로 못 하고, 또 말은 하는데 행동은 못하고. 이런 것들을 너무 지나치게 우리들이 못한다는 것입 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에게 기본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도운 것을 감사하라. 이 지구상의 누구든지 하나님께 생명의 도움을 받 지 않은 사람은 없다.” 왜? 하나님이 안 도와주었으면 여러분 중에 지구상에 지금까지 살아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답니다. 한 명도 없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월남전에서 썼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안 했으면 지구상에 산 사람이 하나도 없다.” 왜 그런가 하니, 살아서 죽을 때까지 최하 10번 죽을 고비가 있었다고 합니다. 최하가 그렇 습니다. 선생님 것을 내가 따져봤는데, 64번인가 나왔습니다. 내가 기억난 것이 그래서 그렇게 해놓 고 “많이 썼지요?” 했더니 나를 보고 “뭐가 많아? 무엇이 많이 썼느냐?” 그랬습니다. “64번 이니 그래도 많이 썼지 않습니까?” 했더니 “맞다. 그러나 내가 아예 죽지 않게 한 것을 너 는 아느냐? 모르지.” 했습니다. “아예 죽지 않게 한 것이, 아예 100 분의 1도 그것 겪지 않고 도와줘서 살은 것이 있다. 100% 도와줘서 살은 것이 있다. 그런 것이 그렇게 많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것 좀 이야기해 달라고 하니까, “그런 것은 이야기해 줘도 네가 느끼지를 못한다. 어느 날 언제 적들이 총을 쏘려고 했다가 그냥 지나간 것이 있는데, 그것을 내가 막아 주었 는데 그것을 어떻게 네가 실감 있게 느끼냐? 어느 날 언제 병들어 꼭 죽는데 내가 미리 막 았어. 그런데 그것을 네가 어떻게 실감하냐? 다만 네가 실감하는 것은 그런 허공에 빠졌을 때, 건져 줬을 때 이것만 실감하잖아.” 사람들이 그런 것까지 하면 굉장히 많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도 우리는 왜 해야 되는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이런 것도 따질 줄 알 아야 감사할 줄 압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가 하니, “천년역사, 미래, 앞날을 하나님은 다 아신다.” 했습니다. 뻔한 사실입니다. 내가 월명동에 있을 때 “석막교회가 앞으로 어떻게 됩니까? 한 20년 후에 어떻게 될까요?” 했더니 똑같다고 하셨습니다. 20년 후에 와서 보니까 똑같이 그냥 있었습니다. “내가 나온 모교회가 앞으로 20년 후에 어떻게 될까? 나는 20년 후에 어떻게 될까?” 했는 데, 나는 20년 후에 세계로 돌아다니고 교회가 수백 개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석막교회 는 어떻게 됩니까? 석막교회, 교회 만듭니까?”하니까, 그냥 그대로라고 했습니다. 나 나올 때보다 더 줄고, 사람도 없고, 고대로 라고 하더니 지금 그냥 그대로 있습니다. 내가 나왔을 때하고, 지금 25년도 되었는데 똑같습니다. 내가 다녔던 석막리 석막 장로교회, 모교회가 그렇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감사하라. 성령님께 감사하라.” 알겠습니까? 집에서 “아버지께 감사하라. 어머니께 감사하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님께 잘하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아무리 극단적으로 할지라도 잘하라는 것입니다. 잘해 주면 녹아집니다. 그런데 잘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잘하기가 고시에 합격하는 만큼이나 힘듭니다.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잘하면 잘된다.” 합니다. 선생님은 요즘도 나이가 90이 넘는 어머니께 늘 전화하면서 “어머니.”하며 이야기도 하고, 보고도 해 주고, 대화도 하고 그럽니다. 그냥 부 모니까 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좋아서 하는 것입니다. 좋아서 합니다. 엄마가 좋아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늘 그래야 됩니다. 부모는 자식 잘되는 것을 좋아하니까 늘 그렇게 해야 됩니다. 보이는 부모도 잘 공경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도 잘 공경하고, 또 보이지 않는 선생님도 잘 공경하고! 믿습니까? 그런 것을 꼭 해야 됩니다. “잘될 때 잘하라. 잘될 때 놀지 말고. 농사철에 잠자지 마라.” 믿습니까? 잘 알아듣겠습니 까? “우리 섭리사가 잘 될 때가 왔으니까 잘하라. 뛰고 달리면서 잘 하라.” 자기의 능력이 어디까지인가 한번 뛰어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뛰어 보았습니다. ‘내 능력이 어디까지인가?’ 수영장에 가서도 한번 해 봅니다. ‘내 능력이 어디까지인가 해 보자.’ 그런데 처음에는 너무 힘듭니다. 100미터까지는 괜찮습니다. 2백 미터도 괜찮고, 300미터 도 괜찮습니다. 400미터부터 힘들기 시작합니다. ‘한 바퀴만 하고 끝날까? 어른 식으로 한 바퀴만 하고 끝날까? 아, 내가 한 바퀴 더 돌면 한 생명을 더 살린다. 한 바퀴 더 돌면 한 생명을 더 살린다.’ 그런 마음을 갖고 계속 의식 가운데 하니까 나중에 가서는 700미터까지 가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꾸 선수가 되고, 그렇게 해서 전문자가 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어제 말씀에 그랬습니다. “우리는 감사할 것이 많다.” 나는 감사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지구상의 뛰어난 말씀을 하나님께서 내게만 준 것이 아니 라, 내가 수고함으로 애씀으로 몸부림침으로 그 단계에 올라가서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러 니까 내가 말씀을 하면 다르지 않습니까? 지금은 여러분들에게 일반적인 말씀을 합니다. 극적인 말씀을 하면 따라올 사람이 없습니 다. “하나님께 감사하라.” 금주에는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말씀을 극적으로 깨우쳐줄 것입니다. 어제 그랬습니다. “우리 민족은 다른 것으로 주름 잡을 것이 없다. 말씀이다. 하나님의 시대의 성약 말씀이 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개인들도 다른 것으로 주름 잡으려면 힘들 것이다. 날고기는 사람은 다 있다. 다 날고 긴다. 말씀을 갖고서 넣고, 다른 것도 계속 날고기면 되겠다. 그러면 너희들을 더 크게 본다.” 모든 것을 이것 저것을 조금씩 갖추었지만, 말씀을 갖고서 있을 때는 그가 최고입니다. 하 나님께서 사도로 보기 때문입니다. 일단 하나님 말씀을 가진 자를 하나님이 최고로 보십니 다. 알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해서 말씀을 꼭 전할 수 있어야 됩니다. 타락론도 강의할 수 있어야 되고, 재림론도 강의할 수 있어야 되고, 부활론도 강의할 수 있 어야 되고, 심판론도 강의할 수 있어야 됩니다. 핵심적인 것은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정론도 강의할 수 있어야 됩니다. “예정은 없다. 우리가 하기에 달렸다.” 그러면 예정론 강의 다 끝난 것입니다. 예정해 놓았다고 하면 너무 불만이 많습니다. “왜 나는 못 살게 예정해 놓았지?” 하는데, 그것을 핑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가 못살게 예정해 놓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못 살 수밖에 없다.” 그러면 안 됩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네가 하기에 달렸다. 하나님께서 너를 못살게 해놓았겠느냐? 절 대 그런 것은 없다.” 그러면서 예정론을 풀어서 가르쳐주어야 됩니다. 그냥 전도만 하려고 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십시오. “내가 5분 동안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강의를 하려 하는데 들어보겠느냐? 좋으면 따라 오라.” 그렇게 강의를 즉석에서 해 주라는 것입니다. 교회로 끌고 올 것도 없습니다. 시범을 보이 십시오. 그래서 말씀의 위력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왜 이제 온 사람은 전도 잘하 는데, 오래된 사람은 전도 못합니까? “나는 과거에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과거에 했기 때문에 지금 쉽니까? 지금도 계속 전도하는데요. 지금도 계속 합니다. 믿습니까?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말씀을 위력 있게 외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 증거’ 잘하는 사람이 최고입니다. 증거할 때 선생님의 이것 저것만 얘기하면 안 됩 니다. 말씀을 가지고서 “이런 말씀을 가지고 오셨다. 지구상에 아무도 없었다. 지금까지 이런 말 씀을 가진 사람이 현재까지 6000년 동안 없었다.” 그러면 사람들이 어떤 말씀인가 들어 볼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이 그런 말씀의 위력을 깔아 놓으면 나는 그 말씀에 대해서 더 힘나게 하나님께 달 라고 해서 줍니다. 선생님도 하나님을 증거하잖아요. 계속 하나님 이야기하잖아요. 연속적으로, 시작부터 끝까 지! 어떤 종교의 총책임 지도자들은 말하면 땅 얘기만 하고, 말하면 사업 얘기만 합니다. 그러나 나는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 하나님 얘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해 줘야 됩니다. 그래야 안 보이는 하나님을 실감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라! 우리는 내 놓을 것이 말씀이다! 우리는 말씀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감사해야 됩니다. 우리는 성약의 말씀을 가지고 있습 니다. 사도들이 왜 말씀을 못 전하느냐는 것입니다. 적어도 한 일곱개론은 전해야 됩니다. 타락의 근본 문제로부터 시작해서 한 일곱개만 하면 됩니다. 그것을 전하면 나머지 30개론은 다 전할 수 있습니다. 재림에 대해서도 전하고. 그 것은 한 5분씩만 전하면 핵심적인 것을 다 전하지 않습니까? 말이 많이 필요 없습니다. 현대인들은 버뜩 버뜩 핵심만 전해 주면 됩니다. 10대들은 호기심만 주면 다 따라옵니다. 왜냐하면 호기심이 최고이기 때문입니다. “저기 있잖아. 저기 가보면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 있다.” 하면 얘들은 가보고 싶어합니다. 무엇을 봐도 감각이 없으면 안 됩니다. 아까 말씀하다가 말았는데, 아까 그 말씀을 잊어버 렸는데 이제 찾았습니다. 무엇을 봐도 하나님께 감격할 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이미 감사의 감각을 잊어버렸습니다. 이는 마치 화인 맞은 인생들입니다. 감각이 없으니까. 감탄이 없는 사람, 감격이 없는 사람, 스릴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감각이 없 는 사람들입니다. 결혼했을 때도 이성의 감각이 없는 사람들은 둘치들입니다. 그런 자들은 마치 새끼도 못 낳 는 소가 먹기만 잔뜩 먹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섭리사에도 전도도 못 하는 사람들이 말씀만 잔뜩 먹습니다. 그것이 둘치들입니다. 어제 누가 섭리사에서 말씀을 통과하고 언니가 왔다고 해서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를 했더 니 전화를 받았습니다. 기독교를 다닌다고 하는데, 자기 동생 때문에 왔다고 하면서 말씀을 배우는 중인데 의심이 너무 많았습니다. “너는.” 그랬습니다. 내가 ‘너’라고 그랬습니다. “너는 말씀도 안 배우고, 왜 의심부터 하느냐?” 하니까 “저 그렇습니다.” 그랬습니다. “너, 기독교 다녔느냐?” “기독교 다녔습니다.” “언제부터 다녔느냐?” “어렸을 때부터 다녔습니다.”고 했습니다. 자랑을 잘 했습니다. “그러느냐? 나도 기독교 다녔어. 그러면 전도 몇 명했느냐?” 그랬습니다. 지금 나이가 30이 가까운데 전도 몇 명했느냐고 하니까 두 명했다고 했습니다. “에라. 너 진짜 뭐 했느냐? 그것을 가지고 무슨 큰 소리 치고 돌아다녀? 예수님 믿는다고 할 수 있어? 예수님 먹칠하지마. 나, 있잖아. 젊었을 때 1년에 1만 명씩 했어. 지금도 그렇 게 하고 세상을 끌고 다녀. 그러면 너 성경 몇 번 읽었어? 양심적으로 지금 대화하니까 말 잘못 하면 큰일 난다. 양심적으로 몇 번 읽었어?” 하니까 한 번도 못 읽었다고 했습니다. 열 살까지면 10년, 스무 살까지면 20년이지 않습니까? 서른 살 되었으면 30년인데, 30년 동안 한 번도 못 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렸을 때는 못 읽었다고 하면, 열 살 까지는 빼 줄게. 20년 동안 성경 한 번도 못 읽었으면서 어떻게 예수님 믿는다는 소리를 하느냐?” 그래놓고 내가 성경을 읽고서 온 지구상에 사명 가지고 와서 인류를 구원하러 왔는데 나를 보고, 내 말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난절하게 그랬습니다. 나를 보고 물었습니다. 선생님이 누구냐고, 뭐라고 하느냐고 그랬습니다. “나? 온 인류를 구원하러 왔다.” 그랬습니다. “너도 구원받아야 된다. 내가 구원 안 시키면 너는 사망으로 갈 수밖에 없어. 어떻게 할 거 야?” 그랬습니다. 아까 월명동에 와서 구경을 다 했는데, 구름이 독수리가 정확하게 되어서 자기를 내려다 쳐 다보더라고 했습니다. 독수리가 뭐냐고 하기에 동방에 독수리를 보내서 구원한다는 말을 내 가 깨닫게 했습니다. “왜 나를 새삼 그렇게 묻느냐? 내가 바쁜데. 일생 동안 다시 너에게 전화하기 어렵다. 그렇 게 바쁜 사람이다. 이것으로 일생동안의 전화가 끝나는 것이다.” 그랬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시대의 말씀을 받았고, 시대로 구원받아서 감사할 일이 아니냐! 믿습니까. 그렇지 않겠습니까? 감사해야 됩니다. 할 일을 못 한 사람들은 할 일을 한 사람에게 맨날 심판 거리가 되고, 지탄 거리가 되는 것 입니다. 내가 그렇게 눈을 비벼가면서 성경을 읽고, 전도도 했는데 그래서 큰 소리 치는 것입니다. 내가 안 했어 보십시오. 사명만 갖고 큰 소리 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거리에 가 보 면 사람들이 간판만 가지고 큰 소리 치는 것이 아닙니다. 간판만 크게 만들어 놓고 큰 소리 치면 되겠습니까? 얼마만큼 그 안에 차린 것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슈퍼마켓이라고 해 놓았으면 안에 슈퍼마켓만큼 있어야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조그만 구멍 가게 만들어 놓고 슈퍼마켓이라고 해 놓습니다. 그러나 손님이 찾는 것이 있어야지요. 선생님께 와서 찾아봐요. 이지가지 영계를 찾고, 육계를 찾고 다 찾아봐요. 내가 다 내어놓 는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감사하라. 하나님께 감격하고, 성령께 감사하고, 예수님께 감사하라.” 했습니다. 사람들이 감사를 잊어버렸습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마치 감각 없는 인생들이다.”   왜? 느끼지를 못하니까. 하나님께 받은 것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것은 바 보입니다. 미련한 자입니다. 알겠습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무식한 자라는 것입니다. 왜 받 았는데 그것을 못 느끼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형제고, 자매고, 교인이고, 백성이고, 누구에게든지 말합니다. 감사하지 아니하면 안 됩 니다. 내가 감사를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준 것이다.” 늘 그럽니다. “나는 없어서 못 준다. 왜냐하면 내가 가진 것이 하나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사, 감사하는 것입니다. 내가 거지들에게도 무엇을 주면 굽신굽신합니다. 습관이 되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면 앉아서 초근히 얘기합니다. “나, 교회 간다. 나는 그냥 간다. 내가 당신 도와 줄 사람이 아니다. 그럼. 이 놈을 가지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데.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감동시켰어. 도와주느냐고 물어보니까 도 와주라고 해서 도와줬어. 그러니 그냥 갈 수 있어? 하나님께 도와줬다는 소리를 해야 할 것 이 아니야? 교회 다니느냐, 안 다니느냐?”고 물어보니까 안 다녔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안 다니면 맨날 이 거지꼴로 살 거야. 그러니까 앞으로 신앙생활 꼭 하라. 하나님에 대해서 믿 고, 감격하고, 감사하라. 그리고 내일 봐라. 그러면 열 사람이 줄 것, 스무 사람이 동냥을 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 가보면 더 받았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이와 같이 늘 습관적으로 감사하지 말고, 진실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됩니다. 감사치 않는 사람들은, 감사를 모르는 사람들은 마치 감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매너가 없 는 사람들입니다. 에티켓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무식한 사람들입니다. 벙어리가 감각이 없어서 말을 못 합니다. 귀머거리가 감각이 없어서 말을 못 듣습니다. 다 고장 났습니다. 그와 같이 감사를 못하면 감사의 기계가 고장 났다고 보는 것입니다. 믿습 니까? 감격하고, 감사하고, 고마워해야 됩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 더 주고, 더 줍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형식적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조은이를 보십시오. 맨날 전화하면 “감사합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내가 작게 요만치 조건 세웠는데 크게 이만큼 줘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합니다. “하나님이 너를 통해서 하시는 거야. 네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너의 육신을 가지고 이렇게 하는 것이다. 병도 고쳐 주고 아픈 것도 낫게 해 주는 것이다. 네가 조건 세운 것은 네가 했지. 하나님이 조건 세운 것은 아니니까. 네가 나에게 조건을 세우고, 하늘 앞에 조건 을 세우니까 하나님이 너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성령이 역사하는 것이다. 그것을 꼭 잊어서는 안 돼.” 그랬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랬습니다. 항상 “감사하다. 감사하다.” 해야 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도 애들에게 그러지 않습니까? 제자들에게, 저 밑의 제자들에게 “고맙다. 감사하다. 너무 좋다. 고마워.” 늘 그럽니다. 그렇게 할 때 그것을 잊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 물 컵을 감격하고 고마워할 때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항상 살아가야 됩니다. 감사를 해야 됩니다. 아무리 해도 끝이 없습니 다.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아까 얘기했습니다. 늘 우리와 함께 해주셔서 우리의 생명을 그 동안 살려줘서 지금 살고 있다는 것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죽을 고비도 없었는데, 언제 하나님이 손잡고 구해 주었습니까?” 하나님이 손잡고 잡아 당겨도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 섭리사 전체 가운데 직접 하나님이, 신의 손을 손잡고 딱 잡아당겨서 산 사람이 30%라고 합니다. 그 나머지는 천사들을 시킨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감사를 안 하겠습 니까? 누군지는 모릅니다. 본인들이 찾아내십시오. 나는 압니다. 내 자신을 언제 손잡고 잡아당기는 것을 내가 압니다. 왜냐하면 감각이 예리 하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많이 해서 그것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월남전을 썼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30개론을 썼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전도 했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나는 남들에게 잘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의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너무 하나님께 감사해서! 어느 때는 선생님이 쳐다보면 하나님께서 동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지금 어디에 계십니 까?” 했더니 “지금 너희들과 동행하고 있노라.” 그랬습니다. 그것을 깨닫는 자가 최고 도인입니다. 최고 영급이 높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와 동행 하는 것을 믿어주고, 아는 사람은 최고 급이 높습니다. 주님이 자기와 함께 있다는 것을 믿 을 때 너무 좋습니다. 선생님도 내가 이 나라에 와 있어도 너희들 옆에 있다고 믿어 줄 때 내가 제일 좋습니다. 그러면 나를 안 버리고 너무 좋아할 것이 아닙니까? “선생님이 옆에 같이 다닌다. 먹을 때 같이 있다. 잘 때 같이 있다.” 하는 사람이 나는 제일 좋습니다. 하나님도 그러합니다. 함께 있다고 생각할 때 제일 좋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내 집에 와서 살아도 생각이 다른 데 있으면 천리에서 내게다 마음을 두는 사람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옆에 있어도 싸이클이 안 맞으면 무전기가 안 나오는 것입니다. 무전기 두 대가 있 는데, 이 두 대가 싸이클이 맞아야 됩니다. 안 맞으면 소리가 안 나옵니다. 그러나 아무리 멀리 있어도, 천리 길에 있어도 전화번호가 딱 맞습니다. 전화번호가 맞으면 소리가 나고, 서로 대화하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멀리 있는 것과 가까운 것은 상관이 없다. 멀리 있어도 맞으면 가까이 있는 사 람이 안 맞는 것보다 낫다.” 알겠습니까? “감격하라.” 이제는 여러분들 마음에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요. 나는 돈 내라는 그런 추접스러운 소리는 안 합니다. “돈 내놔라. 감사하라.” 그것이 전혀 아닙니다. 지금 그 얘기가 아닙니다. 뭐 하러 그럽니까? 내어놓으라는 소리 안 해도 자기가 다 알아서 하는데요. 그것이 아니고, “감사하라.”하는 것은 “너희들 정신 적인 것, 지체 가지고, 입 가지고, 행동 가지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물질 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돈 빼놓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얘기 안 해도 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어디를 제자들과 같이 가는데 “나, 밥 사 줘. 나, 옷 사줘.” 그것 안 해도 여러분들이 다 해주잖아요. 그와 같이 그것 안 해도 여러분 들이 헌금할 때 십일조, 십이조, 십의 오조, 십의 팔조, 십의 구조를 하지 않습니까? “제발 헌금 그만 하라. 그렇게 하는 것 아니다. 하는 법이 있다.”고 내가 말립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내가 좋은데요.” “그래도 안 돼.” 그래서 돈 내어놓은 것을 찾아다 줍니다. “200만원은 네가 가지고 있어. 다 해.” “선생님,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내가 책임질게. 내가 회계이니까 내가 책임져. 내가 하나 님을 아는데.”합니다. 알겠습니까? 그런 헌금을 가지고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안 시켜도 너무 잘하기 때문입니다. 애인 사이니까 잘 하지 않습니까? 문제는 생활의 감사, 행실 감사, 입의 감사! 입술의 열매를 열고, 감사의 열매들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감사하면 하나님께 죄를 지었어도 그냥 용서해 줘 버립니다. 그것은 내일 아침에 나올 말씀 인데, 내가 조금 얘기합니다. 나부터도 얘들이 너무 감사하고 좋아하니까 좋습니다. 헌금을 해서가 아닙니다. 돈 얘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헌금을 해서가 아니고, “주님, 너무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과거 에 너무 죄를 많이 지었어요. 이런 죄도 저런 죄도 많이 지었어요.” “알았어. 얘기도 하지마. 다 용서가 벌써 끝났어.” 그럽니다. 하나님도 그런다는 것입니다. 감사의 생활이 그렇게 큽니다. 감사도 않고, “나, 죄 용서해 주세요. 나, 너무 잘못했어요. 나의 죄를 용서해주세요.” 하면 안 됩니다. 불만, 불평을 가지면 가나안 복지에 못 들어갑니다. 감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 리 선조들이,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복지에 못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애굽에 서 나왔을 때 “가나안 복지는 너희 땅이다.” 하고 하나님께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 감격하고 감사하며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해야 됩니다. 내가 옛날에 불만자였습니다. 정불만이라고 압니까? “왜 순복음 교회는 크게 주고, 나는 온 인류를 구원하러 와서 말씀만 전하면 사람들이 주여 주여 하는데, 나는 주지도 않습니까? 종들은 크게 주고요. 뭡니까?” 그때 당시 하나님께서 월명동 줄 것을 나는 전혀 몰랐습니다. 거기가 그렇게 될 줄을 전혀 몰랐습니다. 어떻게 압니까? 기독교 돌아다닐 때마다 보면 다 대궐이었습니다. 지금은 지구촌의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곳을 주었습니다. 애인이니까 얼마나 좋은 것을 주 겠습니까? 형제에게 주는 것보다 애인에게 주는 것을 더 큰 것을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인 역사 때는 성전을 주었습니다. 성지 땅 성전을 주었습니다. 성지 땅 성 전 그것을 작은 것으로 생각합니까? 그것이 얼마나 크다고요. 어마 어마하게 큽니다. 해가 뜨는 곳에서 지는 곳까지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인대산부터 대둔산까지 우리가 마음 대로 돌아다닙니다. 해가 뜨는 곳에서 지는 데까지입니다. 여호수아에게 “내가 너에게 말하는데 해가 뜨는 데서 지는 데까지 너희에게 주었노라. 너희 들이 밟는 땅은 너희들 것이다.” 그랬습니다. 세금은 다른 사람이 내고, 길만 내서 왔다갔다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해가 뜨는 곳에서부 터 지는 데까지 너희들 땅이다.” 합니다. 믿습니까? 깨닫겠습니까? “늘 자기에게 감사하라.” 자기가 불구된 자는 불구된 대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왜? 내가 다 챙긴다는 것입니다. 내 자식이고, 내 애인이니까 불구라도 다 귀히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을 안 들을 때는 안 됩니다. 어제도 누구를 보니까 내가 하지 말라고 하는데 자꾸 돌아다니면서 연애나 하고 돌아다니더라고요. 그러면 내가 싫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딱 “너, 내가 다 용서해 주겠다. 무슨 죄를 지었어도 다 용서해줄 테니 여기 섭리사에서 열심히 하라.” 하니까 “싫습니다. 나는 나가겠습니다.” 했습니다. “그러느냐? 그러면 할 수 없다. 그러면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가 딱 손을 들면 너는 하나님께서 심판에 들어간다. 놔두지를 않는다. 알지? 병과 죽음과 고통의 지옥으로 간다. 너는 사랑이고 무엇이고 다 버릴 것이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그 명단 갖다가 찢었습니다. 기록을 찢었습니다. 그래서 생명록에서 없 애 버렸습니다. 어쩔 것입니까? 말 듣고 해야 됩니다. “죄는 지었어도 다 용서해 줄 테니까 앞으로 섭리사에서 살아라. 하나님 섬기면서. 그것 밖 에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지옥에는 안 보내니까.” 그렇지요? 기도하겠습니다. <기 도> 사랑하는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도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의와 사랑과 공의와 진리에 충만함을 주시옵소서. 어디까지나 하늘을 사랑하며 존귀히 여기며 귀히 여기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감사 합니다. 그리고 주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성령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립니다. 이들이 모두 오게 한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을 잘 키우겠습니다. 세계 섭리는 동에서 서까지, 해가 뜨는 곳에서 지는 곳까지 우리 땅이니 지구촌을 짓밟고 당세에 영광을 나타내며 천년 역사에 기 반을 딱 놓고 가겠사오니 능력과 권능과 지혜와 총명을 주시고, 오늘도 은혜와 사랑으로 채 워 주시옵소서. 모든 사고 없는 섭리사가 되도록 축복해 주시고 은총을 주시옵소서. 삼위의 능력과 권능이 이들에게 함께하고 영원할지어다. 아멘. 빠이빠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