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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말씀2015.08.25 (화)

화 계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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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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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_0825 화 계시말씀.hwp1 2015년 08월 계시말씀 ♥ 08월 25일 화요일 ♥ 사랑의 힘 작성일 : 2015. 6. 27. AM 5:50 작성자 : 정수현 ( 선생님을 위해 기도하면서, 선생님께 사랑으로 기도하며 고백하는 것이 힘이 되기는 할까, 너무 작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을 때 주신 말씀입니다. ) * 선생님의 말씀 * 사랑아, 적어라. 내가 힘 받는 원리를 알려 줄게. 네가 나에게 사랑한다 말하면 내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물었지? 사랑의 파장, 에너지는 어마어마한 힘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며, 흥분되게 하여 엔도르핀이 흘러나와 기분이 좋아지고, 신바람이 나게 하지. 그런 사랑의 에너지를 내가 너희들에게 받는다면, 당연히 힘이 나지 않겠느냐. 누가 너를 이유 없이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만 해도 그것 자체로 힘이 되지 않느냐. 너의 흠도, 점도 다 이해하고 그것과 상관없이 사랑해 준다면 그 사람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지. 무한한 사랑의 에너지, 그 사람에게서 흘러나온다면 엄청난 힘을 받고 그 사람과 같이 있고 싶을 게다. 네가 사랑받는다고 느낄 때, 마음이 흥분되고 설레어 미칠 것 같지? 날아갈 것 같지? 이렇게 마음의 사랑의 에너지로 폭발적인 힘이 나는 것이다. 세상 이성의 하체 사랑은 이렇게 뇌로, 마음으로 먼저 기쁨이 충만하기도 전에 육신의 성적 지체를 자극하여 흥분하는 것으로 사랑하는 힘을 받는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육신의 쾌락은 잠깐이고 그것은 마음이 느끼는 사랑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하체를 자극하고, 육신을 자극함으로 마음의 사랑을 이루려고 한다. 즉 육신의 이성관계를 하면 최고로 사랑한다고 생각이 되고 기쁘다고 생각이 되나, 그것이 수준 높은 사랑의 차원이 되지는 못하는 것이다. 근본 마음의 극치의 사랑을 하기도 전에 육신의 사랑을 느껴 버리니, 그 사랑에 묻혀 한계를 벗지 못한다. 잠깐의 쾌락에 정신과 마음을 파는 격이다. 육신의 사랑으로 더 차원 높은 마음의 사랑, 정신의 사랑을 자극하는 셈이나 근본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하고, 그 기쁨이 영원하지 못하고, 기쁨의 차원이 다르다. 세상에서는 극치의 뇌 사랑을 해 보지 않으니 이성의 사랑, 이성관계 하여 얻은 극치의 쾌감을 최고로 본다. 하체 사랑이 자기가 느껴 보고 해 본 최고의 사랑이니, 그것을 최고로 생각하여 그 사랑에만 몰두하지. 그러나 영혼의 사랑, 정신, 뇌 사랑을 하늘과 해 본 자는 그 사랑의 기쁨, 느낌이 차원을 높인 근본적인 사랑이라는 것을 알지. 마치 자기가 먹어 보지 못한 음식은 그런 음식이 존재한다고 생각도 못 하고, 맛도 모르는 것과 같다. 시골의 밥상에 놓인 음식만 먹으며 이 음식이 최고다 하는 격과 같다. 프랑스 요리나 뷔페처럼 최고의 요리가 있는데 먹어 보지 못했으니 모르는 것과 같다. 육신의 사랑은 영원하지 못하고, 금방 변하고, 그 기쁨이 잠깐이다. 마음으로 완전하게 사랑한 후에 하는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완전하게 신과 먼저 사랑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마치 기초목을 탄탄하게 하지 않은 채 집을 지은 것과 같아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고 무너지기 쉽다. 그래서 세상에서 사랑할 때 늘 불안하고, 의심하여 서로 싸우고 서운해하는 것이다. 완전히 성숙한 인격과 정신, 마음, 영을 충분히 만들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으로 충만히 사랑하지 않은 상태에서 육적 사랑에 빠지니, 육 차원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결국 곤고하게 되고 변하여 실패한다. 너희는 이 사랑에서 벗어나 영원한 영의 사랑, 뇌 사랑을 신과 먼저 하지 않느냐. 마음으로 충분히 먼저 사랑을 나누고, 그 사랑의 마음이 커질 때까지 오직 서로의 마음을 공유하며 사랑의 마음을 키우지 않느냐. 그 상대가 인간이 아니라 먼저 성삼위와 사랑하여 그 사랑을 배우고 그 마음과 마음이 만나면 사랑의 에너지가 폭발한다. 사랑의 극치의 기쁨을 누리는데 이것은 하체 사랑보다 더 엄청난 사랑의 기쁨이다. 너희가 말씀을 들을 때나, 성령을 받을 때, 나를 생각하며 기쁠 때 느끼는 그 기쁨을 잠시 생각해 보아도 어떤 것인지 느껴지지? 너희들의 그 사랑의 마음이 폭발할 때, 그 사랑의 파장을 하늘이 받을 때 하늘도 무한한 힘을 받는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신감과 기쁨이 충만하다. 그것이 영혼의 극치의 기쁨으로 이어지니, 너희는 이런 사랑을 하여라. 내가 힘들고 어려운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은 오직 이 극치의 영적 사랑, 뇌 사랑이다. 나에게 이 사랑의 파장을 주는 자가 있어서, 그 사랑의 힘으로 내가 육신의 극한 상황 속에서도 견디었다. 육신은 아무 낙이 없지... 내가 여기서 누리는 육신의 기쁨이 있겠느냐. 철저하게 육신이 편하고 기쁘고 좋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내가 견딜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이끄는 영적인 힘과 사랑, 그 에너지로 지금까지 왔다. 하늘 앞에 내가 드리는 사랑으로 인해 그 사랑의 힘이 하늘에서 오고, 너희들에게 주는 사랑으로 인해 그 사랑에 반응하는 자, 아니 내게 먼저 사랑을 주는 자의 에너지로 내가 지금까지 견뎌온 것이다. 그러니 너희 사랑의 힘, 고백, 기도가 내게 도움이 될까, 내가 받을까 의심치 말아라. 너희의 그 사랑의 기도와 그 에너지가 내겐 하늘의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그 사랑이 깊을수록, 그 충만한 힘을 받는다. 내게 사랑의 에너지를 주는 것은 사람마다 차원이 다 다르다. 어떤 자는 전도로, 어떤 자는 기도로, 어떤 자는 애교와 사랑으로, 어떤 자는 예술로 등등 내게 주는 사랑의 기쁨이 너무 다양하니 그 어떤 것이 더 귀하다 할 수 없다. 모두 다 사랑하는 나의 지체들, 몸의 한 부분과 같은 중요하고 귀한 나의 사랑들이니, 그 사랑을 내가 다 받는다. 반면 아픔도 받지. 너와 나는 연결되어 있어 사랑하면 사랑이 느껴지고, 2015_0825 화 계시말씀.hwp2 너희가 고통받으면 고통이 느껴진다. 그래서 사탄에게 공격당하고, 아파하고 있으면 내게 고스란히 그 고통, 아픔이 다 느껴진다. 영적으로 우리는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여 기도하고 나를 사랑한다 고백하는 자, 너무 고맙다. 기특하다. 내가 많은 힘을 받으니 너희 고백이 작다 생각지 말아라. 또한 사랑하여 실천한 모든 것들을 내가 받고, 그 마음의 중심에 나를 중심하여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받는다. 그러니 나에 대한 사랑, 마음을 가득히 충만하게 만들어서 나와 만나자. 뇌 사랑 하자. 사랑하는 마음과 마음이 만나면 에너지가 폭발한다. 나와 그 극치의 사랑을 느끼고 싶지 않느냐. 휴거된 자들은 결혼한 신부들과 같다 했는데 이 사랑의 극치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면 사랑이 부족한 신부와 같아서 불감증, 감각이 마비된 자다. 남편이 너무 사랑하여 신부를 데리고 와서 신부가 미처 사랑하지 않는데도 일단 결혼부터 한 것과 같다. 신부는 느껴지지 않으니 당연히 결혼한 것이 기쁘지 않지. 내가 왜 이 사람과 결혼했을까 한다. 어마어마한 황태자의 사랑을 받고 있어도 가치를 모르는 것이다.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너희가 이 뇌 사랑에 눈을 뜨도록 사랑에 집중해 보아라. 사랑하게 해 달라고 성령님께도 물어보고 간구해 보아라. 이 사랑에 성공해야 결혼한 새 신부가 최고 기쁘고 행복하듯 그렇게 사랑의 기쁨을 누리며 살지 않겠느냐. 지금 휴거시켜 놓은 자들은 이와 같다. 자기의 조건으로 된 것이 아니니 사랑이 완성도 안 되었는데 결혼하여 데려다 놓은 신부와 같으니 사랑에 더욱 불을 지펴라. 지금 나와 극치의 사랑을 하고 있는 자는 더욱 높은 사랑의 차원에 도전하여라. 영의 사랑, 뇌 사랑은 그 끝이 없어 도전할수록 새로운 세계이다. 나와 육은 떨어져 있어도 하늘과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 방법이 그 어떤 것보다 최고로 사랑을 느끼며 최고 극치의 사랑하는 길이다. 이 길을 너희에게 알려주어 열어 놓았다. 너희의 사랑이 부족하다 생각지 말고 날마다 나와 사랑을 나누며 극치의 사랑에 도전하며 이 길로 오너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달려올 때 나는 너무 기쁘다. 내 하루의 모든 피로가 날아간다. 고통과 아픔을 이겨 낼 수 있다. 사랑으로 만나자. 늘 생각으로 사랑하고 함께하자. 너와 내가 영원히 사랑하는 길이다. 극치의 기쁨으로 살 수 있는 길이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고 사랑하는 자들의 그 사랑을 다 받고 있다. 내가 그 사랑에 신바람이 나서 오늘도 또다시 일어난다. 그러니 너희들의 사랑을 충만히 내게 다오. 순수하고 깨끗하며 뜨겁고 설레는 그 사랑, 받고 싶구나. 나도 늘 너희에게 그 사랑이다. 사랑한다. ( 순간 이 모든 글을 적고 나서 집중을 해서 그런지 갑자기 피곤이 몰려와서 힘들어졌습니다. 더 깊이 기도하고 대화하고 싶은데 육신이 힘드니 바로 자고 싶어졌을 때 다시 말씀해 주셨습니다. ) 네 육신을 영혼에 접붙여라. 육신을 따라가면 멸망이다. 육신이 생각을 다스리게 하면 안 된다. 영혼이 다스리게 해야 해. 그래서 육적 생각은 버리고, 영이 원하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래야 그 생각이 육을 다스리게 되어 곤고하지 않게 돼. 생각에도 육적 생각, 보다 영적 생각이 있다고 했지? 말씀을 들으면 어떤 게 육적 생각인지, 어떤 게 영적 생각인지 알지. 보다 쉽게 말하면 육이 원하는 생각이 육적 생각, 영이 원하는 생각이 영적 생각이다. 그런데 그중 어떤 생각을 따르느냐이다. 그것에 따라 육신이 행동하는 것이다. 육신이 원하는 것에 다 따르다 보면 멸망이다. 허무함과 곤고함이다. 맞지? 남는 게 뭐가 있느냐. 기쁨도 잠깐, 네 마음을 항상 괴롭히고 힘들게 한다. 그러나 육은 조금 힘들어도 영의 생각, 보다 영적 생각을 하게 되면 결국엔 영원한 기쁨이 온다. 그러니 순간 육신의 생각에 따라 행해서 괴로워하고 후회하지 말고 그 순간을 참고, 영의 생각에 따라 기쁨을 누리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라. 내 이름을 부르면 그렇게 하도록 도와준다. 천군, 천사도 온다. 그러니 꼭 영의 생각에 접붙여라. 알겠지? 너희를 사랑하는 선생이. ♥ 08월 25일 화요일 ♥ ‘그릇됨’과 ‘억지’를 깨뜨리고 멸하는 <담대한 증거>다! 작성일: 2015. 6. 29. PM 2:28-2:56 작성자: 주수신 (주일말씀의 엘리야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엘리야와 세례 요한을 비교해 주시며 우리에게 하늘이 원하시는 증거의 방법을 제시해 주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 삼위와 선생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늘을 증거하길 원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성령님의 말씀* 사랑아, 네 말이 맞다. 네가 증거하는 대상이 너에게 원하는 것이 있지 않겠느냐? 어떤 것을 어떻게 증거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 시대 말씀’과 ‘이 시대 구원자’를 증거하라 하였지만, 너희 개성대로 그중에서도 어떠한 것을 더 <핵적>으로 증거할지는 다 다른 것이다. 네가 삼위와 구원자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 증거하든지 너희 모두가 공통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증거하는 자에게 삼위가 원하는 자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러한 것을 갖춘 후 나에게 나아와 ‘하늘의 마음’에 맞는 <증거>를 해 주기를 바란다! <증거하는 자의 자세>에 대해서 엘리야와 세례 요한의 예를 들어 설명해 줄게. 구약 때, ‘엘리야’가 있었다. 아합 왕이 악행을 저지르고 우상을 섬기니, 여호와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아합 왕에게 몇 해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극심한 가뭄에 시달릴 것이라고 하였다. 그 말을 함으로, 엘리야는 아합 왕의 미움을 받아 쫓기게 되어 머리를 둘 곳이 없었다. 그릿 시내에 숨어 지내며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우상들에게 절하며 바친 음식들을 먹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엘리야를 통해 예언한 대로, 몇 해 동안 비가 오지 않아 극심한 가뭄이 찾아왔다. 아합 왕은 이것이 엘리야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엘리야를 찾으러 나섰다. 아합을 만난 뒤, 엘리야는 갈멜 산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믿는 예언자들과 대결하게 되었다. 2015_0825 화 계시말씀.hwp3 아합 왕은 비가 오길 바라며 바알과 아세라를 믿는 자들에게 산에 올라가 제단을 쌓으라고 하였고, 엘리야는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 비가 오게 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엘리야가 워낙 담대히 이야기하니, 왕은 비가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엘리야는 비가 오지 않으면 자신을 죽이라고 하였고, 비가 오면 반대로, 우상 종교를 믿는 자들을 모두 죽이라고 하였다. 엘리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역사하심을 제대로 알았기에 목숨까지 걸고 하나님을 담대히 증거하였고, 결국, 바알과 아세라를 믿는 자들이 제단을 쌓고 기도하여도 그에 대한 응답이 없었으나, 엘리야가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이 응답해 그 제단에 불이 붙었고, 우상종교 예언자들을 모두 멸한 뒤, 비가 옴으로 민족적 가뭄의 문제를 해결하였고, 그릇되고 억지로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과 ‘우상종교’를 다 멸하였다! 사랑아. 선생이 너희에게 원하는 증거의 모습 또한, <엘리야와 같은 증거>다! 누군가를 증거하기 위해서는, 네가 그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제대로 알면 제대로 알수록, 네가 아는 것에 확신이 있으니 강하게, 담대하게 증거할 수 있다! 모르면 모르는 만큼 확신이 없으니 그만큼 흐지부지하게 행하는 것이다. ‘증거’는 너희와 나 성령이 함께하는 것이다! 나 성령이 너희를 쓰고 증거하기 위해서는, 너희가 먼저 <절대 앎의 조건>과 <절대 믿음의 조건>을 쌓아야 한다. 그 믿음의 제단 위에 나 성령이 불을 붙이고, 너와 함께 증거함을 알아라! ‘영원토록’ 변함없는 삼위와 구원자의 말씀이다! 육의 죽음을 좌지우지하는 차원을 넘어서 ‘영’의 고통과 죽음을 좌지우지하는 말씀이다! 이때를 놓고 말하자면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대상체가 될지, 안 될지가 결정 나는 말씀이다! ‘육’만을 위해 살아가 <땅의 차원>을 면치 못하고 살지, 아니면 ‘영’을 위해 살아가 <하늘 차원>으로 살아서 진정 네가 상상도 하지 못할 영원한 것까지 얻으며 살아갈지가 결정 나는 말씀이다! 너희가 거짓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고, 참을 참이라 증거하는데, 왜 ‘담대히’ 행치 못하는 것이냐? 말씀을 ‘이론’으로만 배워서 그러하다! 행하면서 그 말씀이 실체가 되어 존재하는 것을 본 자들은 이 시대에도, 시대 구원자에게도, 삼위의 존재에도 확신을 가지니 불같이 증거할 수 있는 것이다! 섭리에서 존재하기만 한다고 해서, 삼위와 구원자와 말씀에 대해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진실로 말하건대, 너희에게 준 말씀 하나하나를 행하여 그 <행함의 결실>을 맺어 보았다면 그 한 가지의 말씀으로도 삼위에도, 이 시대에도, 너희 선생에게도 <확신>이 생기는 것이다! ‘말’만으로는 힘이 없으나, 그 말이 ‘실체’를 이룰 때에는 그 ‘힘’이 엄청나게 큰 것이다! 이번에는 세례 요한에 대해서 보자. 세례 요한은 자신이 증거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알았다. 예수가 그에게 물로 세례를 받으러 갔을 때, 성령의 비둘기가 임하는 것을 보았고, 하늘의 음성 또한 들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확신이 없었다! 시원찮게 증거해 새 시대를 맞이하지 못함으로 스스로 멸망케 되었다. 사랑아, 너희도 너희가 증거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안다! 또한 그를 보았고, 그의 말씀을 들었고, 삼위가 그를 통해 역사하는 것들을 보았고, 그를 통하여 하늘의 음성 또한 들었다! 그러나 너희 또한 확신이 없으면 시원찮게 증거한다. 그리하면 너희는 이미 이 섭리 안에 있으나, 그다음의 때, 그다음의 차원을 맞이하지 못하여 네 스스로 너의 차원에서만 존재하게 되니, 그다음에는 존재하지 못함이니라. 섭리에서 존재하지 못함이 아니요, 섭리 내 네 차원을 넘은 그다음 차원에서 존재하지 못함이다. 증거를 하기 위해서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너희가 구원자에 대해서 더 알고 말씀이 이루어짐에 대해서 더 알면 확신을 안 가지려야 안 가질 수가 없다.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고,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일들이 ‘너희의 선’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네 주관권 안에서도 그 같은 일들이 일어나야 너희가 더욱 ‘확신’을 가질 수 있고, 나 성령을 너의 성령으로 삼고, 너희 선생을 너의 선생으로 삼고, 말씀을 너의 말씀으로 삼고 행할 수 있는 것이다! 너의 것이 되지 않으면, 자신 있게 남들에게 ‘증거’할 수 없다. 네 것이 아니니, 너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나 성령은 ‘절대’ 역사한다! ‘엘리야’가 하나님께서 절대 역사해 주실 것임을 믿고 저 그릇되고 억지로 우상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가르쳐 주기로 마음먹고 그 얼마나 독하게 행한 줄 아느냐?! 섭리 내에서 증거를 하면, 다른 자들의 그릇되고 억지스러운 생각과 마음, 그 인식들을 모두 멸할 각오로 행해야 한다! ‘강력하게’ 증거해 주어야 한다!! <강력한 증거>는 삼위와 구원자에 대한 너의 ‘확신’과 삼위와 구원자와 말씀이 너의 것이기 때문에 ‘증거’하고 싶은 마음과 증거하지 않음으로 인해 사람들이 하늘을 그 얼마나 ‘오해’하고 있는지를 보고 그러한 것들을 바라보고 있을 하늘의 그 심정을 받는 데서 나온다! 증거의 기본은 ‘말씀’과 ‘기도’이다! ‘말씀’은, <삼위의 말>이요, ‘기도’는, <삼위와 만나는 시간>이 아니냐! ‘말씀’과 ‘기도’가 한 짝이 되어서, 삼위의 말을 듣고, 그 말을 알아듣고 네 ‘뇌’에 담은 후 삼위 앞에 나와 ‘기도’로 만나는 것이다! ‘말씀’과 ‘기도’로 <증거의 방향>을 잡고, 행해 주는 것이다! 그래야만 엘리야처럼 담대하게, 강력하게 증거할 수 있고, 그 증거 위에 그릇된 것들과 억지스러운 것들이 모두 깨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마음, 생각, 인식 모두는 <강력한 증거> 없이는 ‘절대’ 깨지지 않는다! 선생이 삼위의 말씀을 받아 너희에게 전해 주는 것도 <이 시대에 대한 증거>요, <삼위에 대한 증거>이다! 그 ‘말씀의 강력함’으로 너희의 ‘그릇됨’이 깨지고 ‘억지’가 깨지지 않느냐! 그같이 행하는 것이다! 2015_0825 화 계시말씀.hwp4 선생이 그리도 깊이 기도함으로 말씀 속에 불같은 ‘마음’과 ‘생각’ 그리고 ‘정신’을 담으니, 그것이 너희에게 “쾅! 쾅!” 와 닿게 되는 것이다! 사랑아, 늘 하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행하자! ‘증거’도 나 성령이 너희에게 이같이 하자 한 것이니, 그 말을 한 나의 입장을 먼저 헤아리고 행해 주는 너희가 되길 바란다. 사랑해! ‘절대 믿음’으로 쌓은 <확신의 제단> 위에 ‘성령의 불’로써 응답하며 함께 하늘을 증거하는 신, 나 성령이다. 안녕! ♥ 08월 25일 화요일 ♥ <천국 황금성> 증거의 성, 사랑하는 자가 증거한다 작성일 : 2015. 7. 19. AM 1:00 작성자 : 정은조 (새벽기도를 시작하자, 제 영은 백보좌 앞에서 춤을 추면서 선생님을 통해 삼위께 하트를 마구 보내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저를 성령님과 선생님께서 동시에 반겨 주셨습니다. 저는 최근 받은 계시말씀들을 정리하지 못해 선생님께 보내지 못하고 밀려 있는 상태였기에 요즘 잘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렇게 반겨 주셔서 의아했습니다. 성령님께서 “네가 잘 못해도 나와 선생이 너를 이끌면 돼. 다시 네가 마음먹으면 돼. 할 거지?”라고 말씀하셔서 저는 “네. 제대로 하지 못해 죄송해요. 요즘 제가 천국을 보고 싶은 이유는 선생님께서 이루신 것을 증거하고 싶기 때문이에요.”라고 고백했습니다. 제 고백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선생님께서 “그럼 갈까? <증거의 성> 보여 줄게.”라고 하시며 너무 급속도로 보여 주셔서 놀랐습니다. 손 모양의 성이 보였는데, 주먹을 쥔 상태에서 엄지손가락만 위로 올린 모양, 즉 ‘최고’를 뜻하는 손 모양이었습니다.) * 선생님의 말씀 * 이 성은 증거의 성이다. 증거를 통해 하늘의 역사를 빛낸 자들이 하늘 앞에 ‘최고’의 칭함을 받게 되는 곳이다. 삼위는 그런 자들을 최고로 보신다. (사랑이 최고가 아닌가요?) 사랑하는 것만으로 끝이 아니라 사랑함으로 증거하는 자들이 인정받는 성이야. 사랑의 힘으로가 아닌 분위기 때문에 증거하는 자들은 오지 못해. 증거는 사랑하는 마음과 역사에 대한 확신이 더해져 삼위와 선생의 뜻과 마음을 품고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삼위 앞에 최고의 칭함을 받는 것이다. (그럼 이 성의 1번 주인은 선생님이겠어요? 선생님이 삼위를 증거하는 최고이시니까요.) 그렇지. 그럼 그다음은 누굴까? (부흥강사님이요. 선생님을 제일 잘 증거하고, 선생님께 온전하게 행하도록 저희들의 심령을 모아 인도하니까요.) 맞아. 부흥강사가 2등이다. 그다음은 비밀이다. 그런데 그 뒤는 아직 다 정해지지 않았어. 왜? 아직 역사가 끝난 것이 아니라서 결산이 안 되었거든. 이 성이 너무 멋지지 않냐? (네. 너무 멋있어요. 증거의 성은 엄지를 든 손 모양인데, 수정으로 되어 있으면서도 성자바위같이 거대한 바위 느낌이었습니다.) 수정으로 되어 있는 이 성이 바위로 느껴지는 것은 굳건함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굳건한 믿음으로 세상의 그 어떤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우직하게 갈 길을 가며 삼위와 시대와 선생을 증거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우리를 주시하고 있어. 내가 이곳에 올 때 세상은 ‘이제 다 끝날 거다.’라고 생각들을 했겠지. 그런데 내가 이곳에 있어도 너희들이 흔들리지 않으니 ‘그래도 오래가네.’라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내가 이곳에 있는데도 섭리에 휴거가 일어났다고 하니 기성은 긴장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나갈 때가 다 되어 가니 그들은 집중해서 나와 섭리를 주시하고 있다. 여전히 이단으로 생각하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휴거가 일어난 건지, 정말 섭리가 맞는 건지...’ 생각하고 있다. 왜? 벌써 2000년을 훌쩍 지나 2015년이나 되었는데 그들이 기다리는 대로 구름 타고, 불심판을 하며 육신으로 예수님이 다시 오지 않아 그들은 이제 휴거에 대해 말하기도 멋쩍어 말도 못 꺼내고 있는데 섭리에서는 휴거를 이루었다고 말하니 말이다. 그러니 옥에 갇힌 세례 요한이 제자들을 예수에게 보내 정말 예수 당신이 주시냐고 물어본 것처럼 기성도 지금 그런 마음이다. ‘정말 그런 걸까?’ 인정하기 싫으면서도 ‘정말 그런 거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다. 그들이 제대로 내게 무릎 꿇고 물어오지 않아도 그들은 그렇게 이미 마음의 무릎을 꿇어 가고 있다. 그것을 확실히 인정하며 자기에게 딸린 자들에게까지 제대로 섭리역사를 증거하며 인도하기까지는 몇백 년이 걸릴지 모르나 그렇게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기성의 마음의 벽은 이미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혹시 섭리가 맞는 걸까? 정말 맞으면 어떡하지?’ 하고 말이다. 그러니 나와 섭리를 주시하고 있다. 내가 나오면 어찌 될지를 주시하고 있다. 마치 예수를 죽였는데도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는 말에 유대인들이 겉으로는 인정하지 않으려 해도 두려운 마음이 들었듯, 지금 기성도 나를 가두면 끝날 줄 알았던 섭리역사가 오히려 휴거를 이루었다고 난리이니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옥에 갇혀 죽은 줄 알았던 내가, 아무 기능을 못 할 것 같았던 내가 이렇게 이 안에서도 모든 것을 하며 휴거를 이루었다 하니 죽여도 죽지 않는 자처럼 여겨지며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러니 나와 섭리를 주시하며 내가 나올 때 또한 주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랑아, 기성이 이렇게 주시하는데 내가 나왔을 때 생명의 발판이 별로 없으면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에이, 아니네.’ 하고 확신을 해 버릴 것이다. 그들은 말씀의 근본을 깨닫지 못한 채 돌아가는 상황만을 보며 ‘혹시?’ 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너희들은 무엇을 해야겠느냐? (온전히 선생님을 증거하고, 생명의 군중 발판을 마련해 놓아야 합니다.) 2015_0825 화 계시말씀.hwp5 맞다. 아무 기능을 못 하고 죽을 줄 알았던 내가 오히려 더 많은 생명으로 그들이 무시하지 못할 만큼의 생명으로 나올 때 그들은 ‘혹시’에서 ‘정말’로, ‘부인’에서 보다 ‘믿음’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 너희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이다. 휴거된 너희들의 증거하는 힘이 그래서 크다. 섭리사가 휴거를 이루었다는데 그것을 자신 있게 말해 주는 자가 없으면 나 혼자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밖에 안 보이지 않겠느냐. 너희들의 육신이 제대로 확신하지 못해 증거의 힘이 나오지 않아 증거하지 못하면 세상과 기성은 ‘에이, 아니네.’ 이렇게 보게 될 것이다. ‘저 교주, 혼자 저리 말하고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네.’라고 할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답답하냐. 그러니 네가 다시 천국을 보고 증거하겠다는 마음을 먹기만 해도 성령님과 내가 그렇게 반기는 것이다. 이제 알겠느냐? 휴거되어 천국을 보고 천국을 오가는 너희들이 나의 증거자들이다. 증인들이다. 그러니 그 사명을 소홀히 하면 안 돼. (성자께서 2009년부터 천국을 보고 증거하라고 하실 때 사실 그렇게 중요한 건지 몰랐어요. 그냥 사람들이 천국을 안 믿으니까 증거하라고 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3.16> 이후 확실히 깨달았어요. 천국에서 새로 생겨나는 모든 것들이 선생님의 행하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걸요. 저희가 증거해야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임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이제는 천국을 통해 선생님을 증거하고 싶어요.) 잘 깨달았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선생 예수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그는 그 한을 가지고 예수를 영으로 만나며 천국을 오가며 보다 영으로 깨어 예수를 증거했다. 그리함으로 온 땅에 말씀을 전해 증거하였다. 너희도 마찬가지야. 나를 볼 수 없는 때에 전도되어 섭리에 와서 그 한을 가지고 나를 편지로, 혼으로, 영으로 만나며 휴거되어 천국까지 오가며 보다 영으로 깨어 나를 증거하는 것이지 않느냐. 결국 나의 말씀을 증거하고 그 말씀이 실체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휴거된 너희가 눈으로 보이는 증거물이 되어 세상 앞에, 기성 앞에 증거하는 것이다. 보이는 증거물이 살아서 얘기하니 ‘혹시? 정말?’ 하고 서서히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그 기간이 몇백 년이 걸리더라도 이미 기성의 벽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제 너희가 무너뜨리는 만큼이다. 내가 나가서 수많은 생명들을 데리고 군중집회를 하는 것만 봐도 기성의 벽은 또 한 번 확 무너질 것이다. 죽여도 죽지 않는 자를 그들의 눈으로 직접 보며 그 또한 살아 있는 증거물이 되어 ‘이 섭리가 정말 하나님의 역사이면 어떡하나?’ 하고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한 번, 한 번 생각할 때마다 기성의 벽이 하나씩 무너져 섭리로 넘어오는 자들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것의 기간이 육의 눈에는 오래 보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니 너희가 증거해라. 그러면 재림을 기다리던 자들 중에, 정말 순수하게 하나님을 믿던 자들 중에는 이 말씀을 들어 보고 싶어 하는 자들이 있다. 왜? 재림을 기다렸는데 그곳에서는 안 일어나니 말이다. 재림의 잠을 자는 신앙의 할머니 같은 자들은 그냥 계속 자겠지만 재림의 잠을 자지 않는 첫날밤을 기다리는 신부 같은 자들은 ‘보라. 신랑이다. 깨어 맞으라.’ 하는 소리에 ‘정말 나의 신랑일까?’ 하는 생각에 그 얼굴을 보고, 그 하는 말을 들어 보고 확인하려 할 것이다. 그러니 너희가 이제 증거해라. 증거하면 소문이 나서 재림의 잠을 자지 않는 첫날밤을 기다리는 신부 같은 자들의 귀에도 그 소식이 들어가서 마음이 요동칠 것이다. 사랑아, 증거해라. 그렇게 증거하는 자가 한두 명이 아니면 저들도 무시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증거해. 우리 그간의 한을 증거함으로 다 풀어 버리자. 그 한을 못 풀고 우리끼리만 휴거되었다고 잔치하면 뭐하냐. 이제 그 한을 풀자. 나와 함께 풀자. 그것이 자신의 한이었던 자는 풀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만의 한이었던 자에게는 그 한을 풀려는 마음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진정으로 나와 같은 마음, 같은 목적인 자들이 증거하게 된다. 그러니 ‘사랑하므로 증거하게 된다.’ 하는 말이 이 말인 것이다. (최고를 나타내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모양의 증거의 성이 더 찬란히 빛났습니다.) (수정인데 바위 느낌을 풍기며 무지갯빛이 감돌아요.) 이 성의 비밀 중 하나는 너희들이 증거의 필요성을 깨닫는 만큼 빛나고 각자 개성대로 증거할수록 무지갯빛이 감돌게 될 것이다. 내부가 궁금하지? (내부를 보여 주시며 선생님께서 직접 설명해 주셨습니다.) 상장이 걸려 있다. 언제, 어떻게 시대와 선생을 증거했는지 하나하나 상장이 다 발급되어 걸려 있다. (우와, 그럼 세상에서 받은 상장보다 훨씬 많은 거 같아요.) 그렇지. 세상에서 받았던 상장은 하늘나라에서 못 써먹지. 그러니 이 증거의 성에 있는 너희들의 상장은 너희들이 세상에서 받았던 것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상장들을 보유하게 되는 것이다. (상장에는 글과 사진 또는 동영상이 있었습니다. 언제, 어떻게 시대와 선생님을 증거했는지가 글, 사진, 동영상으로 기록되어 있고 상장의 마지막은 선생님의 사인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세상의 상장은 천국에서 쓸모가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천국의 증거의 성에 있는 상장들은 천국에서 어떤 쓸모가 있나요?) 너희의 면류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너희의 면류관이 모이면 뭐가 되지? (선생님의 면류관이 됩니다.) 맞다. 그러하니 어떤 자들이 증거하겠느냐? 진짜 사랑하는 자가 증거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개성으로 증거해 다오. 너에게도 나에게도 그것이 면류관이다. 증거하는 모든 자들을 귀히 보는 선생이다. 2015_0825 화 계시말씀.hwp6 ♥ 08월 25일 화요일 ♥ 지도자 교육 작성일 : 2015. 7. 3. AM 1:10 작성자 : 윤성근 ( 생명 관리에 어려움을 느끼고 기도하며 성령님께 간구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분별해라. 너는 그 생명이 지도자라고 생각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아, 생명을 관리한다고 해서 다 지도자가 아니구나.’라고 스스로 답이 왔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과연 지도자일까? 선생님이 원하시는 지도자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라고 생각할 때 성령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 * 성령님의 말씀 * 사랑아. 지도자가 무엇이냐? ( 지도자는 선생님과 같은 정신으로 행하는 자를 말함이 아닐까요? ) 그래. 맞다. 그러나 정확하고 세밀하게 쪼개어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섭리에 많은 신부들이 선생과 일체 되어 뛰기를 바라고, 선생의 정신을 받아 행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정작 온전히 행하는 자는 많지 않지. 이는 선생을 잘 모르기 때문이며, 알아도 자기 생각으로 판단하여 행하기 때문이며, 온전히 알아도 아직 체질이 안 되어 행하기 어렵기 때문이지. 그러니 성령이 네게 하는 말씀을 듣고 깨달아라. 먼저는 알고, 다음은 체질을 만들고, 그다음에는 온전히 행하기를 바란다. 말씀을 땅에 떨어뜨리는 자가 되지 말아라. 이는 말씀의 가치를 몰라 듣지 않는다는 뜻이며, 들어도 깊이 듣지 않아 행치 않는다는 말이다. 선생은 항상 말보다 실천이다. 행함이다. 지도자는 말씀의 가치를 알고 귀히 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말씀의 가치를 알아야 깊이 듣고 행하여 깨닫는 자가 된다. 사랑아. 행함은 지식 속에서 나오지 않는다. 깨달음 속에서 참된 행함이 나오는 게야. 그러하니 깨닫기 위해 배우며, 깨닫기 위해 기도하며, 깨닫기 위해 행하며 몸부림을 쳐라. 깨달아야 통회 자복하며 무지를 시인하고 자기 생각을 비우고 행하는 게야. 그러니 깨달음의 깊이를 온전히 알아라. 깨닫는 것이 무엇이냐? ( 전에 선생님이 ‘깨닫는 것은 스스로 아는 것이다.’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 옳다. 그러나 이 말의 의미를 온전히 알아라. 어찌 스스로 모르는 것을 알 수 있겠느냐? 무엇이든 가르쳐 주는 자가 있어야 배울 수 있는 것이 이치가 아니더냐? 그러니 사랑아. 너는 ‘주’를 통해 깨닫는 자가 되어라. 삼위에게 배우는 자가 되어라. 자기 스스로 감동되어 스스로 배운다면 자기 차원의 깨달음일 것이요, 네 마음과 생각을 비우고 주를 만나 배운다면 주 차원의 깨달음일 것이요, 네 정신을 비우고 주에게 집중하여 삼위를 만나 배운다면 삼위 차원의 깨달음일 것이다. 그러니 지도자는 신령해야 한다. 사랑아. 신령과 진정이 무엇이냐? 이는 곧 네 생각과 마음과 정신을 비우고, 주를 만나기를 간절히 사모함으로 주를 만나 사랑하는 것이 아니냐? 신령하다는 것은 환상을 보고, 계시를 받고,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신령함이란, 주의 마음을 알고 행함을 말하는 게다. 진정으로 주를 사랑하며, 주를 통해 깊은 말씀을 배움을 말한다. 생각해 보아라. 계시를 받는 자들이 어떻게 선생을 만나 배우느냐? 곧 선생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냐? 간절히 사랑하니 결국 만나 사랑하는 것이 아니냐? 사랑하니 주가 환상을 열어 주어 눈을 뜨게 하며, 귀가 열리게 하여 말씀을 받게 하고, 그의 혼과 영을 천국에 데려가 보여 주며, 가르치고 깨우쳐 주는 것이 아니냐? 그러니 섭리의 지도자라면, 주를 간절히 사랑함으로 주와 소통하는 자가 되어야 하며, 주를 통해 깨닫고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또한 말씀을 통해 깨달아 주가 항상 함께하며 지키고 보호함을 깨닫고, 주의 사랑을 깨닫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또한 신령함으로 주의 마음을 깨닫고, 그를 위로하며 그의 마음을 받아 그의 몸이 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지도자가 신령하지 않으니 주의 심정을 모르며 자기 생각으로 행하고, 그것이 옳은 것인 줄 안다. 또한 사탄이 틈타 생명을 꾀어도 깨닫지 못해 생명을 놓치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아. 신령하여라. 신령하여야 참과 거짓을 구분하고 행하며,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며, 사탄과도 싸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신령함을 기르자. 지도자 중 영적, 혼적 소통이 안 된다고 하며 낙심한 자가 많구나. 그러나 너희가 진정으로 깨달아야 할 것은 너희 영이 황금성에 있으며, 항상 성삼위의 축복 속에서 살고 있음이라. 그러니 신부들아. 낙심치 말고 행하여라. 신령함이 무엇이냐? 곧 영적 축복을 말함이 아니더냐? 네 생각을 비우고, 주를 향한 간절함과 사모함으로 깊이 집중하여 기도하여라. 선생이 너희를 위해 기도할 때, 너희도 선생과 같은 시간에 선생을 위해 기도하며 교통하는 게다. 신랑이 사랑을 하고자 준비하고 있는데, 신부가 그 뜻을 모르고 무지로 대하다가 결국 신랑이 무렴함을 입어 떠나가게 하지 말아라. 기도를 통한 깊은 사랑이 곧 신령이며, 영적 사랑이지 않겠느냐? 또한 사랑아. 성령의 역사함을 입어라. 성령이 주는 은혜의 축복을 받아라. 사도 시대의 핵은 곧 ‘주’요, ‘성령’이다. 주를 통한 성령이요, 주를 통한 은혜요, 주를 증거하기 위한 뜨거운 불이니라. 오직 주로 인한 성령임을 온전히 깨달아라. 성령의 분체를 보아라. 섭리사 신부들의 표상이 아니더냐? 그를 깊이 보아라. 부흥강사를 통해 성령만을 느끼는 자는 그를 온전히 깨달았다 할 수 없다. 사도 시대의 핵은 성령이요, 성령의 핵은 주를 증거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라. 부흥강사가 빛나는 것은, 성령이 그를 통해 나타나 역사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주가 그를 덧입고 나타나 역사하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부흥강사의 말이 힘이 있는 것은, 그 말씀이 주의 말씀이요, 주의 정신에서 비롯된 말씀이기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랑아. 섭리의 지도자라면 이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고 타오르며, 항상 은혜가 넘쳐야 하는 게야. 섭리사 신부들이 지도자를 보고, ‘성령의 불이 뜨겁고, 마치 선생님이 오셔서 말씀하시는 것과 같이 느껴진다. 진정 선생님이 오셨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게 하여야 한다. 그러하니 사랑아. 어찌 행하여야 하겠느냐? 오직 주 앞에 성령 받기를 간구하며, 2015_0825 화 계시말씀.hwp7 자신의 생각과 뜻을 주 앞에 낮추고 주의 생각을 받들며, 생명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지 말며, 오직 주의 사랑과 그 정신을 나타내야 하는 게다. 지도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바로 자기 자신을 나타냄이니라. 주의 생각보다 자신의 생각이 앞서며, 주보다 자신을 나타내 성령의 감동을 주려 한다. 그러하니 그 입술에서 능력이 나가지 않고, 그 행함에 주가 역사하지 않으니 위력이 없는 게다. 섭리를 뛰는 최고의 기술이 무엇인줄 아느냐? 바로 ‘내려놓음’이다. 자기를 내려놓고 오직 주를 받들고 섬기며 사랑할 때, 차원이 올라가고 주의 생각이 오며, 주가 역사하여 위력이 있게 된다. 그러하니 영으로 행하는 자들이 되어라. 육으로 행함은 자기의 생각과 뜻으로 행함을 말함이요, 영으로 행함은 주의 생각과 뜻으로 행함이다. 이를 잊지 말아라. 그리할 때, 화평과 화목의 역사가 일어나는 게다. 대개 지도자들을 보면 혼자 잘하는 지도자가 많다. 이 지도자는 50점짜리 지도자이다. ‘지도자’라는 말에는 ‘희생’이라는 말이 내포되어 있는 게다. 지도자들을 보면 따르는 자들을 보고 한숨을 푹푹 쉬고 있다. 주는 그런 지도자들을 보며, 다시 한숨을 쉬고 있다. 지도자들이 항상 하는 생각 중 하나는, ‘왜 저것밖에 못 하지?’이다. 그러면서 따르는 자들의 개성을 보지 못한다. 사랑아. 주도 네 장점을 보고 너를 그 위치에 세워 쓰는 것이지, 단점을 보고 쓰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장점과 단점이 있다. 섭리사는 말씀이 있으니, 자기의 단점을 찾고 파악하며 고쳐 나가고, 장점은 더욱 살려 사랑세계를 이루는 것이다. 이때 지도자가 할 일은 따르는 자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여, 장점은 살려 주어 일을 맡기고 단점은 지도자가 희생하여 메꿔 주는 것이다. 이때 지도자가 따르는 자의 단점을 보며, ‘그 사람은 이것이 있기 때문에 못해! 안 돼!’ 하며 일을 맡기지 않고 스스로 다 해 버리면, 따르는 자는 ‘내가 할 일이 없구나.’ 하며 낙심하는 게다. 결국 지도자 혼자 고군분투하며 뛰다가 지쳐 쓰러지고, ‘왜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지?’ 하며 시험에 들게 되는 게야. 결국에는 따르는 자도 낙심, 지도자도 낙심하여 일이 진행되지 않고 끝나 버리게 되는 게야. 일은 일대로 열심히 하고, 고생은 고생대로 다 하다가 결국 실패해 버리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더냐? 이때 주는 그 지도자를 연단시켜 교육하여 다시 쓰거나, 혹은 다른 자를 세워 역사하게 하여 계속 뜻을 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충성도 기술이 있어야 충성이며, 사랑도 기술이 있어야 사랑이니라.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바로 ‘사랑’이다. 일은 배우면 되고 신령과 진정은 갖추면 되나, 사랑이 깨지면 뜻이 깨지는 것이다. 지도자는 사랑에 깨끗해야 한다. 주와 사랑에 이상이 있으면, 다른 모든 것에도 이상이 생기는 것이다. 사랑으로 중심을 세워야 흔들리지 않으며, 사탄의 매서운 공격에도 버티며, 생명을 돌볼 수 있게 된다. 사랑에 이상이 생기면, 즉시 중단이다. 그러니 지도자들은 수시로 사랑을 점검하여야 한다. ‘내가 오직 주를 바라보고 있나? 주만 의식하고 뛰고 있나? 거리낌이 없나?’ 깊이 생각하고, 문제가 있으면 해결해야 하는 게야. 사랑의 맥이 끊기면 마치 몸에 혈관이 막혀 터져 버리듯이 혼도, 영도 그러하다. 섭리사 신부들에게는 사랑의 혈이 원활하게 소통돼야 그 육도, 영도, 혼도 건강하고 빛나는 게야. 알겠느냐? 그 외에도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것이 많이 있지. 지도자는 끝없이 배우고 행하는 게야. 배우는 자는 반드시 지도자가 된다. 잊지 말아라. 부디 ‘주’를 나타내는 신부가 되어라. 사랑의 성령이 교육했다. 축복을 빈다. 샬롬. ♥ 08월 25일 화요일 ♥ ‘주’는 <힘>이다. (휴거 300선과 700선의 차이) 2015년 8월 25일 화요일 새벽 계시말씀 작성일 : 2015. 8. 11. / 8. 12. 작성자 : 주사랑빛 (새벽기도를 하면서 뜨거운 마음에 울면서 고백드렸습니다. “주님은 저의 힘이십니다. 영원히 주님만을 사랑하며 세상 끝날까지 주님만을 증거하겠습니다. 정말 행복합니다. 주님은 분명 이 땅에 살아 계십니다. 부흥강사님이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시는지 그의 외침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도 꼭 온전한 사도가 되겠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선생님의 말씀* 사랑아, 네 눈물이 내 가슴을 다 적시는구나. 그리 되어라, 내가 축복하노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만이 걸어온 길은 성자께서 함께 걸어오신 길이다. 우리의 길은 발자국이 두 개가 아니라, 네 개다. 초림 때, 성자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신약역사의 길을 밟았고 승천 날, ‘다 이루었노라.’ 하셨다. 재림 때, 성자께서는 나를 통해 성약역사의 휴거의 길을 밟고 승천 날, ‘다 이루었노라.’ 하셨다. ‘네가 밟는 땅은 모두 네 땅이 되리라.’ 해 주신 약속을 이루어 주셨고 창조 목적을 완벽히 이루어 주시며 휴거시켜 주셨다. <3.16 성자 승천 날, 휴거 날> 그 당일까지 성자께서 나와 함께 밟으셨던 그 땅을 내게 선물로 주신 것이다. 그리고 약속대로 준비된 신부들을 모두 휴거시켜 주셨다. 성자께서는 정녕코 다 이루셨다. 이것은 참으로 크고 놀라운 사랑이다. 이제 성자 승천 후 역사가 진행 중이다. 지난날의 사연을 잃지 말라. 성자는 누구와 함께 성지 땅을 밟으셨는가. 성자는 누구와 함께 휴거의 땅을 밟으셨는가. 성자는 누구와 함께 창조 목적을 이루셨는가. 성자께서는 이제 무엇을 원하시는가? 수련회를 통해 깊이 깨닫고 주의 돛을 단 자, 가슴에 불이 떨어져 참을 수 없어 외칠 것이다. 애타는 나의 심정이 가슴 깊이 새겨질 것이다. 주 돛을 확실히 달고 이제 전진하자. (다음 날 새벽, 다시 대화 중에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네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네가 내 생각을 하니 통하여 사랑의 에너지가 폭발하니 잠을 못 자고 달려온 것이다. 2015_0825 화 계시말씀.hwp8 (그 순간, 다릿골 길을 걸어가는 선생님의 어린 시절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는 선생님을 뒤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힘차게 걷고 계셨고 선생님 곁에는 눈부신 빛에 둘러싸인 성자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키가 매우 컸습니다. 성자께서는 사랑의 눈빛으로 어린 선생님을 보며 함께 걷고 계셨습니다. 어린 선생님은 열매를 따 먹고 오른팔 소매로 이마에 땀을 닦으셨습니다. 여름의 태양빛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선생님 사연 숲 쪽에서 먼 산을 바라보시다가 일을 하러 산을 내려가셨습니다. 매 순간 성자께서는 선생님과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성자께서는 나와 매 순간 함께하셨다. 나와 함께 걸으셨고 나와 함께 일하셨고 나와 함께 걸터앉고 어디든지 나와 함께 계셨다. 그러한 주를 진정 사랑하여 그 사랑을 못 잊어서 나는 지난날을 늘 생각한다. 나의 걸음은 성자의 걸음이었다. 인대산부터 대둔산까지 내가 밟는 땅은 모두 내게 주신다고 하신 약속을 다 이루어 주셨다. 신약의 예수님의 발걸음은 성자의 발걸음이셨듯이 이 시대도 그러하다. 사도가 누구냐? 이와 같이 너의 발걸음이 나의 발걸음이 되게 하는 자다. 나는 이곳에 갇혀 있는 자가 아니다. 너의 육을 쓰고 행한다. 성자께서 나를 쓰시고 함께 행하셔서 내가 성자의 분체가 되었듯이, 너도 내가 쓰고 함께 행하여 나의 분체가 되기를 원한다. 이를 가르쳐 주려고 다릿골과 인대산에 가 보라 한 것이다. 나의 행보가 누구의 행보인지 정확히 아는 자가 주 돛을 확실히 다는 자이다. 그리고 이제 돛을 단 자는 나의 몸인 사도가 되어 외치라 함이다. (이번 여름 수련회를 통해서 너무나 큰 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의 돛이 뇌뿐만 아니라, 영까지 꽂힌 느낌입니다. 이 불을 가지고 오늘도 외치겠습니다! 저와 함께해 주세요!) 내가 너와 항상 함께하며 외치는 것은 이미 예정된 일이나, 네가 나를 얼마나 붙들고 행하느냐에 따라 모든 판국은 달라진다. 성자 승천 후, 월명동은 재조명되며 내가 행했던 모든 곳을 다 드러내고 계신다. 성자께서 나와 함께 모든 것을 함께하셨음을 증거하기 위함이다. 네가 내게 물었지? 새벽잠언 말이다. (아멘, <300선과 500선, 600선, 700선의 차이가 어떠한지 깨달아라. 기도를 깊이 하고 깨달으려 해야 깨닫는다.>라는 잠언에 대해 가르쳐 달라고 간구드렸어요. 실가닥과 같은 깨달음이 오기를 주의 돛을 다는 정도, 주님과 함께하는 정도, 사랑의 정도에 따라 휴거선의 차이가 나는데 이는 마치 다릿골과 인대산의 소유 전과 후의 차이와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 맞다. 월명동 땅이 나의 땅이 되지 않았을 때는 내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사용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의 땅이 되니 마음껏 사용한다. 휴거 300선은 황금성에 살고 있으나, 그 땅이 자신의 완전한 소유가 되지 못한다. 500선, 600선, 700선으로 갈수록 자신의 완전한 소유가 되는 것이다. 내가 남의 땅일 때에도 나의 몸이 된 자들을 시켜 그 땅의 나무를 다 가꾸게 하였다. 조건을 세워야 내 땅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너희도 사랑의 조건을 세워야 황금성이 너희 소유의 땅이 되는 것이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도 수고와 노력을 하지 않아 자신의 소유로 얻지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냐. 삼위와 주의 조건으로 300선 휴거를 이루었으나, 수고와 노력을 하지 않아 700선 휴거를 이루지 못한다면, 다 얻은 보화의 땅을 소유하지 못하는 자와 같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냐. 그러니 모두 남은 한때를 게을리 살지 말고 자신의 휴거 차원에 만족하지 말고 부지런히 행하여 700선 휴거를 이루어 황금성 천국 땅을 차지하는 자가 되어라! 이 모두는 <주의 돛>을 확실히 꽂고 행할 때 가능하다. 성자께서 나와 함께하셨듯이 나 역시 너희와 함께하고 있으니, 나를 더욱 부르고 찾아 나와 함께 살며 너희 각자가 원하는 소원을 이루고 휴거의 최종 목적을 다 이루는 자들이 되길 축복한다. 힘이 무엇이냐? 에너지다. 휴거 700선까지 가려면 <사랑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너는 내가 너의 힘이라고 했지? 그래, 맞다.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이 <구원자>다. 구원자가 네 힘이라면 너는 최고 힘의 엔진을 소유한 자와 같아서 네가 원하는 곳까지 날아갈 수 있다. 부흥강사의 힘은 <주>다. 고로 그녀는 가장 큰 힘을 가진 자이기에 그리 외칠 수 있는 것이다. 사도가 되고 싶으냐? 힘을 절대 뺏기면 안 된다. 사탄들은 힘이 빠지게 만들어. 이를 위해 어떠한 방법과 수단도 가리지 않아. 그러니 절대 사탄을 이겨라. 너의 근본의 힘이 나라면 너는 네 꿈을 이룰 수 있다. (순간 앞쪽 선풍기가 보였습니다. 하늘 언어를 읽어 보니, “한낱 선풍기도 에너지가 있어야 돌아간다. 에너지가 있으면 바람을 일으킨다. 너는 선풍기와 같다. ‘주’라는 에너지가 있어야 <성령의 바람>을 일으킨다.” 라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잘 깨달았다. 선풍기는 에너지가 없으면 선풍기의 창조 목적인 시원한 바람을 제공하지 못한다. 인간은 모두 ‘주’라는 에너지를 공급받게 창조하였다. ‘주’라는 에너지가 있으면 창조 목적을 이룬 휴거된 자로서 성령의 바람을 일으켜 더위(사탄)를 물러가게 한다. ‘주’라는 에너지, 힘을 가진 자가 주의 돛을 단 자요, 주의 사도다. 한마디 더 하자. 휴거의 차원을 높이고 싶다면 진정 행하여라. 행함의 꽃은 <전도>다. <전도>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기에 그 공적이 매우 크며 하늘의 상이 크다. 전도는 ‘휴거의 차원을 높이는 비법’이다. 올해 남은 기간, 더욱 전도에 박차를 가하여라. 휴거 700선에 도달하라. 주와 함께하면 무조건 된다. 섭리에서 사용하는 말 중에, ‘안 된다. 불가능하다.’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드시 주 돛을 달고 행하여 700선 휴거를 이루어라. 사랑한다. 선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