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5.09.02 (수)
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
- 선포일
- 2015.09.02 (수)
- 성경 본문
- 로마서 10장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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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02일 수요
같이 안 해 봐서 모른다
[ 로마서 10장 13-15절 ]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13 for, 'Everyone who calls on the name
of the Lord will be saved.' 14 How,
then, can they call on the one they have
not believed in? And how can they
believe in the one of whom they have
not heard? And how can they hear
without someone preaching to them?
15 And how can they preach unless they
are sent? As it is written, 'How beautiful
are the feet of those who bring good
news!'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이번 주 주일에는
‘서로 사랑해야 휴거다. 구원이다.’라는
주제로 깊이 말씀해 주었습니다.
◎ 핵심은 이것입니다.
『<구원하는 하늘 편> 하나님, 성령님,
성자와 하나님이 보낸 시대 구원자가
아무리 구원해 주기를 원하고 사랑해
줘도 구원받고 휴거되어 같이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구원받는 자 본인>이 원하고 바라며
성삼위와 주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행하고, 늘 기도하고 교통하면서
그와 같은 삶을 살아야 구원받고
휴거되어 같이 살 수 있다.
<구원과 휴거>는 ‘사랑’과 같다.
서로 사랑해야 사랑이 이루어지듯,
서로 사랑하고 서로 원하고 행해야
구원도 휴거도 이루어진다.
또한 구원의 삶, 휴거의 삶,
사랑의 삶을 살아야만
같이 살 수 있다.
구원받았어도, 휴거시켜 천국에 데리고
가도 본인이 구원의 삶, 휴거의 삶,
천국의 삶을 살지 않으면 구원과
휴거를 상실하고, 천국에서도
못 살고 쫓겨나게 된다.
마치 처음에는 좋아서 결혼하여
같이 살다가, 살면서 한쪽이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니 멀어져서
결국에는 헤어지는 격이다.
말로만 하는 사랑이 아닌
<행동 사랑>을 하고, 실제로 매일
<휴거의 삶>을 살며 행하는 것이
그리 중하다.
이 삶이 구원의 삶이며, 휴거의
삶이다. 이 삶을 살아야 성삼위와
구원자와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다.』
◎ 이번 주 주일에는 이같이
말씀하면서 구원과 휴거를 이루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들을 깊이
말씀했습니다. 거듭 읽어 보고
잊지 말고 행하기 바랍니다.
◎ 오늘은 주일에 말씀했던 몇 가지
말씀들 중에서 한 가지를 뽑아서
그것을 핵심으로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지난번 생방송 주일말씀 중에
‘왜 휴거의 가치를 모르는가?’에
대해서 말씀해 준다고 했지요?
오늘은 왜 휴거의 가치를
모르는지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 오늘 말씀의 주제는
‘같이 안 해 봐서 모른다.’입니다.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2015년 3월 16일은 역사적인
<성자 승천일, 휴거 날>이었습니다.
이날, 섭리역사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고 승리했습니다.
이날까지 <시대 구원자>를 믿고
따르며, <성자께서 그를 통해 하신
시대 말씀>을 믿고 따르며, 그를 통해
<삼위일체>를 믿고 섬겼던 자들은
거의 모두 다 휴거됐습니다!
<죄>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고
휴거되지 못하니, 2014년 12월
31일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두의 죄를 다 용서해 주었습니다.
고로 특별한 것이 없는 한,
<성자와 분체의 조건>으로
다 휴거시켜 주었습니다.
<자기 조건>은 부족하니,
<성자와 분체의 조건>으로
휴거된 것입니다.
<성자와 분체의 조건>으로
‘휴거 300선’에 올랐으니 이때부터는
이성의 범죄로 휴거를 상실하거나
휴거의 가치를 몰라서 휴거를
상실하지 말고, 부지런히 휴거의 삶을
살고 성삼위와 구원자를 더욱
사랑하면서 사랑의 삶을 살고,
부지런히 이 시대 사람들을 구원하고
휴거시키며 <휴거 700선>까지
올라야 되겠습니다!
2015년 3월 16일 이후에 온 사람들
역시 <성자와 분체의 조건>으로
‘휴거 300선’까지 휴거될까?
이것이 궁금하지요?
이것에 대해 잠깐 말씀하고,
오늘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성자가 지상에 계셨을 때는
차를 타고 가는 격이라서
휴거되기 쉽다고 했지요?
그러나 성자가 떠나신 후에는
걸어가는 격이라서 그만큼 휴거를
이루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고로 성자가 지상에 계실 때
믿고 따르며 행한 자들은
<성자와 분체의 조건>으로
보다 쉽게 휴거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성자 승천일, 휴거 날>
이후에 섭리사에 온 자들은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성자는 뜻을 이루고
떠나셨고, 분체는 이미 조건을 다
세웠습니다. 고로 성자가 지상에
계실 때와는 다릅니다. 이제부터는
본인이 믿고 행하는 대로 좌우됩니다.
그러나 성자와 분체가 세운 조건으로
휴거를 이루어 섭리역사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완성했지요?
그 터전 위에 섭리역사에 왔으니,
승리한 섭리역사의 혜택을 받아서
본인이 믿고 따르는 만큼, 행하는 만큼
휴거되고, <휴거 700선>까지
오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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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 이전에 섭리사에 온 사람들도,
3.16 이후에 섭리사에 온 사람들도,
<자기 조건>만으로는
휴거되지 못합니다.
3.16 이전에 섭리사에 온 자들은
<성자와 분체의 조건>으로 휴거되었고,
3.16 이후에 섭리사에 온 자들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어
승리한 섭리역사의 혜택>으로
보다 쉽게 휴거를 이룰 수 있습니다.
섭리사에 와서 3.16을 맞고
휴거된 자들은 잘 생각해 보세요.
“휴거됐다 하나, 본인의 조건으로 된
것이 아니다. 성자와 구원자가
사랑해서 휴거시켜 준 것이다.
그러니까 더욱 감사하고 기뻐해라.
이제부터 휴거의 가치를 알고 휴거의
삶을 살면서, <휴거 700선>까지
올라가라.” 했지요?
그러나 많은 자들이 <휴거>를
실감하지 못하고 그만큼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가 몸부림쳐 행하지 않고도
<성자와 분체의 조건>으로 휴거됐으니,
휴거됐다는 실감도 안 나고, 휴거의
가치도 모르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같이 행해 봐야 압니다.
음식을 만드는 것도, 건물을 짓는
것도, 어떤 일을 하는 것도
같이 해 봐야 얼마나 수고했는지 알고,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도
깨닫게 됩니다.
어떤 일이든지 같이 수고하고
노력하며 한 만큼 가치를 알고,
보람을 느끼고,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만 원이라도 자기가 직접 안 벌어
보면, 그 가치를 잘 모릅니다.
자기가 수고하고 노력하여 만원이라도
벌어 봐야 <만 원의 가치>를 느끼고
감사하게 됩니다.
<휴거>도 그러합니다.
자기가 ‘성자와 분체의 심정’을
가지고, 성자와 분체와 같이 몸부림쳐
수고하고 노력하고 행한 만큼
그 ‘가치’를 느끼고 ‘보람’을 느끼고
감사하고 기뻐하게 됩니다.
<자기>가 같이 행하며 몸부림쳐
수고하지 않고 <성자와 분체의
조건>으로 휴거됐으니, 그만큼 ‘가치’도
‘보람’도 ‘기쁨’도 못 느끼는 것입니다.
같이 안 하면, 모르고 못 느낍니다.
같이 하면, 알고 느끼고 감사하며
기뻐합니다.
◎ 같이 안 해 봐서 모른다. 이것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겠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해 주신 것’을 모르고 잘 믿지
않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해 주셨는데도 모르고
안 믿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그 일을
행하실 때, 인간이 1%도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성령님과 성자와 함께 <우주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것을 전혀 모릅니다.
그리고 믿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우주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은 1%도 함께
창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낳았는데도
자녀는 잉태 과정을 모릅니다.
왜 그럴까요?
잉태 과정에서 자녀는 함께하지
않았기에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주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실 때도 인간은 천만 분의 1도
함께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고로
인간은 하나님이 <우주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모르고
믿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도 ‘자기가 100분의 1이라도
함께 만든 것’은 의심 없이 믿고
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함께 만들지
않은 것’은 믿지 않습니다.
<함께 만들지 않은 것>은 의심합니다.
<우주 만물>과 <인간>도 하나님이
창조하고 만드셨으나, 인간이 함께
만들지 않았으니 못 봐서 못 믿는
것입니다.
<천국과 영의 세계>는 우주
만물보다도 더 상상도 못 하게
크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지구>는 천국에 비하면
‘하나의 별장’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이를 모르고 못 믿는
것은 하나님이 만드실 때 함께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겠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사람들은 하나님이 <나무>를
만들었다고 하면 안 믿습니다.
왜요? 인간이 함께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나무>로
‘책상’이나 ‘집’을 만들었다고 하면
믿습니다.
왜요? 이것은 인간이 만들었기
때문이며, 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나무>는
‘제1창조물’이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나무를 가지고 인간이 만든 <집>은
‘제2창조물’입니다.
우주, 지구, 땅의 만물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제1창조물’이니
인간이 함께 만들지 않았기에
모르고 안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지구>에서 살면서
<땅의 만물들>을 가지고 만든 것은
‘제2창조물’이니, 인간이 함께
만들었기에 믿는 것입니다. <끝>
부모가 자녀를 만들 때,
그 자녀와 함께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러다가 자녀들이 성장하면
자기도 결혼해서 자녀를 낳게 되지요?
그제야 자기 부모님이 이와 같이
자기를 낳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 자녀들이 성장하니, 부모는
자녀들과 함께 다른 것들을 만들어
나갑니다. 이에 자녀들은 부모가 만든
것도 자기가 만든 것도 확신하고
자랑하게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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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하나님이 <우주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실 때도 인간과 함께
만들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먼저 <우주 만물과
인간>을 창조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다가 인간이 성장함에 따라서
‘제1창조물’을 가지고 필요한 대로
‘제2창조’를 하게 하십니다.그리함으로
‘제1창조’를 깨닫게 하십니다. <끝>
◎ 한 차원 더 올려서 말씀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자가 없을 때는 혼자서
‘사랑하는 자와 같이 살 집과 환경’을
만듭니다. 그 후에 사랑하는 자가
생겨서 집에 초대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혼자서 집과 환경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실감 나게
확실히 믿지 못했습니다. 왜요?
함께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믿게 만들어 주려면,
함께 만들면 됩니다. 그러면 그제야
‘집도 환경도 이같이 만들었구나.’
하고 믿게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중요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제1창조’를 해 놓으셨습니다.
곧 <천국과 영의 세계>를 창조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우주와 지구와 만물>을 창조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최초의 인간>을
창조하여 점진적으로 성장하게
하셨습니다.
★ 이제 삼위일체는 인간과 함께
‘제2창조’를 하십니다.
첫째, 생명의 잉태 법칙에 따라서
남녀가 결혼하여 잉태함으로
‘제2창조’를 하게 하십니다.
둘째, <제1창조물인 땅의 만물>을
가지고 때에 따라 필요한 대로
만들어 ‘제2창조’를 하게 하십니다.
셋째, <인간의 육신>을 가지고
구원자의 말씀을 듣고 삼위일체의
뜻에 따라 행함으로 <인간의 영혼>을
‘하늘나라 형체’로 변화시키는
‘제2창조’ <휴거>를 이루게 하십니다.
자기 영혼을 변화시킨 차원대로
그에 해당되는 <영의 세계>를
차지하게 하십니다.
넷째, 휴거된 자들은 휴거의 가치를
알고 더욱 성삼위와 구원자를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휴거의
삶을 살면서 더 높은 차원의 재창조인
<휴거 700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여러분은 이 땅에 태어났고,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뽑혀서
섭리역사로 왔고, 성자와 분체의
조건으로 휴거되었고, 승리한
섭리역사의 혜택으로 휴거를
이루며 가고 있습니다.
이제 자기도 같이 행함으로 각자
자기 위치에서 ‘제2창조’를
해 나가야 됩니다.
어서 <휴거 300선>에 오르는 것이며,
휴거된 자들은 어서 자기도 같이
행하여 <휴거 700선>에 오르는
것입니다. <끝>
같이 행하지 않으면, ‘가치’도 모르고
‘보람’도 모르고 ‘기쁨’도 모릅니다.
그러니 섭리사의 가치, 구원자의 가치,
시대 말씀의 가치, 휴거의 가치,
구원의 가치를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섭리사에서 그럭저럭
살아가기도 하고, 더러는
<섭리사>도 등지도, <주>도 등지고,
<구원과 휴거>도 등지고
나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같이 해야 됩니다.
삼위일체와 주와 같이 끝까지 행하며
<더 높은 차원>으로 오르며
<더 큰 역사>를 일으켜야 됩니다.
<월명동>도
‘제1창조와 같은 개발’은 끝냈습니다.
삼위일체의 구상에 따라서 선생이
삼위와 함께 만든 성지 땅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잘 모르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는 개발할 때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월명동>도
‘제2창조’를 해 나갑니다.
이제는 함께 만들어 나갑시다!
그러면 선생이 삼위일체와 함께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고 알게 되고,
<성지 땅의 가치>를 더욱 깨닫고
귀히 사용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없던 것’을 만들고,
누구든지 ‘할 수 없는 것’을 해야
<만든 자, 해 준 자의 능력>을
믿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지상>에서도 <천국>에서도
행하신 만큼 능력이 있습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천국과 영의 세계>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육·혼·영>을
창조하시고, <육>을 통해서
<영>을 구원하고 휴거시켜
천국까지 가게 하십니다.
만드신 만큼,
행하신 만큼 능력이 있습니다.
고로 “삼위일체는 전지전능하시다.”
하는 것입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여
운행하시는 존재자>가 못 할 것이
있겠습니까?
<전지전능하신 삼위일체의 능력>을
믿고 감사하며 <삼위일체>를
사랑하면서 살면, 자기 능력껏
‘삼위의 능력’을 행하게 됩니다.
그 사람이 약하여
‘삼위의 능력’을 행하지 못하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그 사람을
키워서 ‘삼위의 능력’을 발휘하게
하십니다. 고로 자기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들을 능히 하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 힘으로 불가능한 일이 있느냐.
<하나님의 뜻>을 두고 행해 보아라.
<전지전능하신 삼위일체의 능력>을
믿고 감사해라. 그리고 <삼위일체>를
사랑하며 <그 말씀>을 받아들여라.
그리하면 ‘신의 능력’을 받아서
<네 육>도 무한대의 능력을 얻게 되고,
<네 영>도 무한대의 능력을 얻게
된다.” 하셨습니다.
<신의 능력>과 <구원자의 조건>으로
여러분은 그 어려운 ‘휴거’를 이루어
가장 높은 ‘천국 황금성’을
차지했습니다.
이제부터는 ‘같이’ 행하여
<휴거 700선>까지 오르고, 이 시대에
하나님이 택하신 생명들을 섭리역사
<휴거의 길>로 인도하여 휴거시켜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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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을 두고 행하고,
삼위일체를 사랑하며 행하고,
시대 말씀을 듣고 행할 때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두고 행할 때
‘신의 능력’을 받게 되고,
삼위일체를 사랑하며 행할 때
‘신의 능력’을 받게 되고,
시대 말씀을 듣고 행할 때
‘신의 능력’을 받기 때문입니다.
◎ 더 깊이 말씀을 전해 주면서,
말씀 서서히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은 <휴거>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십니다.
이것은 ‘지구 세상에서 최고로
큰일’입니다. 이것은 ‘빌딩 만 채를
짓기보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이것은
‘수억만의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인간이 그 목적을 이루어 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불가능했겠습니까?
그 목적을 이루는 데 우주 만물이
창조된 이후 137억 년이 걸렸고,
그 목적을 이루는 데 구원역사가
시작된 이후 6000년이 걸렸고,
그 목적을 이루는 데 섭리역사가
시작된 이후 37년이 걸렸습니다.
선생은 <하나님이 최고로 원하시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지금까지 70년
동안 오직 이 한 가지 일만 했습니다.
그만큼 어렵고 불가능한 일이지만
하나님이 최고로 원하시는 일이니
하나님은 성령님과 성자와 함께
그만큼 도우시고 역사하시며
그만큼 능력을 주시며 같이 행해
주셨습니다.
그리함으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 최고의 소원>을
이루고야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두고 행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것이 아무리
어렵고 불가능한 일이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고
<하나님의 뜻>이니 하나님은
성령님과 성자와 함께 절대적으로
도우시고 그 일을 할 때 같이 해
주십니다.
3.16 이후,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
그 한 가지 일을 하다 보니,
인생 70년이 갔습니다. 다른 일을 더
해 드리고 싶어도 이제는 시간이
없어서 할 수가 없습니다.” 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천지 만물과 인간을 창조한 목적>
그 속에 나 여호와가 하고 싶은
일들과 다른 목적들이 다 들어 있다.
<가장 큰 목적> 속에
‘작은 목적들’까지 다 들어 있는
것이다.”하고 말씀하시며, 월명동을
예로 들어 깨우쳐 주셨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1980년대 후반에 처음
<월명동 자연성전>을 개발하려 할 때,
하나님은 그곳에 ‘3만 명이 앉을
자리’를 구상해 주셨습니다.
그 좁디좁은 골짜기에
‘3만 명이 앉을 자리’를 만들다니...
이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또 그 당시에는 ‘3만 명이 앉을
자리’가 필요 없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선생은
“월명동에 3만 명이 앉을 자리를
만들고, 3만 명을 꼭 전도하여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하고,
불가능한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상황으로는 정말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3만 명이
전도되어 3만 명이 앉고 쓰며
성삼위께 영광 돌릴 자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상에 따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니,
하나님은 ‘나와 같이, 우리와 같이’
행해 주시며 절대적으로 돕고
함께하며 역사해 주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목적>대로
‘3만 명이 앉을 장소’를 만드니,
그 목적 속에 ‘다른 목적’까지
이루었습니다.
호수, 폭포수, 집, 건물,
삼림욕장, 산책로, 휴식처,
피서지까지 만들어졌고, 배구장,
농구장, 테니스장, 축구장까지
만들어졌습니다. <끝>
하나님은
이것을 깨우쳐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와 같이 <가장 큰 목적> 속에
<다른 목적>이 다 들어 있으니,
평생 ‘삼위가 가장 원하는 목적,
그 일 한 가지’만 해도 된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사람>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차>도 들어 있고, <비행기>도 들어
있다. 걸어가면 ‘차’고, 뛰어가면
‘비행기’다.
<손>은 ‘만 가지 기구’이며,
<눈>은 ‘레이더망’이며,
<입>은 ‘제분기’다.
이같이 ‘삼위일체를 사랑’하면,
그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사랑하니 ‘구원’을 이루고 ‘휴거’를
이루고, 그로 인해 ‘천국 황금성’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삼위일체와 구원자를 사랑하니
‘말씀’을 지켜 행하고 그 사랑으로
‘휴거’되어 ‘창조 목적’을 이루었으면,
<삼위일체가 원하는 소원과 목적>을
다 이루어 준 것이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창조 목적>을
깨뜨리면, <삼위일체의 다른 목적>도
다 깨뜨린 것이다.
고로 <휴거된 자>는
‘삼위의 최고 목적’을 이룬 자로서
만 가지를 다 성공한 자다.”
하셨습니다.
<하나님, 성령님, 성자의 최고 목적>을
이루어 준 자가 지구 역사 이후 제일
큰 자입니다. 축소시켜서 한 개인도
<그가 원하는 최고 목적>을 이루어 준
자가 그의 일생에 있어서 최고로
큰일을 했다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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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도 <창조 이후 최고로 큰일>을
해 준 자는 ‘휴거’되어 <창조 목적>을
이룬 자로 보십니다.
사람이 ‘때’를 잘 타고나야 됩니다.
이왕이면 ‘가장 큰 때, 가장 큰 축복의
때’를 타고나야겠지요? 그 때는 곧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룰
때’입니다. 바로 ‘이때’를 타고나야
됩니다.
이때는 바로 구약, 신약역사 위에
세워진 <성약역사의 때>이며,
그중에서도 <구원자가 살아 있는
기간의 때>입니다.
<때> 전에는 마치 어린아이를 데리고
결혼하는 것과 같아서 뜻을 못 이루고,
그때는 하나님도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가정>에서 ‘형제’는 많지만 ‘신부’는
하나이듯, <하나님 앞>에 ‘자녀
교파들’은 많지만 ‘신부 역사’는
오직 ‘성약역사 한 세계’뿐입니다.
<때>는 자기가, 인간이 못 만듭니다.
<전능자가 정하신 때>가 와야 됩니다.
그때 태어나고, 그때 삼위일체와
구원자를 믿고 따르며, 그때에 맞춰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때’와 ‘뜻’입니다.
<때>에 따라 <뜻>을 두고 <같이>
행하면 가장 어렵고 불가능한
하나님의 최고의 소원이며 목적인
<휴거>를 이루어 만 가지를 다
성공하게 됩니다.
첫째,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만나고
둘째,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고
‘하나님의 뜻’을 두고 행하며
셋째, ‘삼위일체와 구원자와 같이
행하기’입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목적>인
‘휴거로 창조 목적을 이루어 준 자’가
<천국 최고의 목적지>인
‘황금성’에 가고,
<최고 사랑의 위치>인
‘신부의 위치’에 갑니다.
<성자와 분체의 조건>으로
이 어렵고 불가능한 일을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자기가 몸부림쳐 같이
행하지 않았기에 그 가치를 잘 모르고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한쪽만 원하고 바라고 행하면,
같이 못 삽니다.
이제부터는 삼위와 같이,
구원자와 같이 하기입니다.
같이 하면서
휴거의 삶, 사랑의 삶을 살아야
<구원, 휴거, 사랑, 황금성>을
상실하지 않고, <휴거의 차원>을
높이며 <생명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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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06일 주일
사랑 보고 택하고 뽑으신다
[ 마태복음 22장 37-40절 ]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37 Jesus replied: "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38 This is the first and greatest
commandment.
39 And the second is like it: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40 All the Law and the Prophets hang
on these two commandments.'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딱 한 가지 계시의 말씀만
전해 주겠습니다. 그 계시의 말씀은
‘<사랑> 보고 택하고 뽑으신다.’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앞의 온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며, 이 시대 섭리인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고로 잘 듣고, 이해하고 깨달아
행하기를 바랍니다.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어느 날 새벽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한 가지를 물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사람>을 뽑을 때 ‘어떤 것을 핵’으로
보고 뽑으십니까?
만일 ‘세상 지식’을 중심하여 시험을
보고 뽑는다면,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만일 ‘인물’을 보고 뽑는다 해도
그 역시 저는 자신이 없을 뿐 아니라
아예 포기합니다. 만일 ‘키’를 보고
뽑는다면, 아예 성삼위께 뽑힐 생각도
안 합니다.
만일 ‘어떤 명예나 권세나 재물’을
보고 뽑는다면, 저는 빈 몸이니까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뽑혀서 가도 시기도
질투도 없습니다.” 하고 물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세상의 것,
육의 것’을 중심하여 그것을 보고
사람을 뽑으신다면, 선생은
거기에 뽑힐 자신이 없었습니다.
<삼위일체가 핵으로 보시는 것>이
‘세상의 것, 육의 것’이라면, 선생은
합격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와 섭리사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성삼위는 ‘무엇’을 보고 사람을
뽑느냐고 대화하며 물어봤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세상 지식’을 보고
사람을 뽑으신다면, 못 배운 사람이
볼 때 억울하고 공의롭지 못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인물’을 보고 사람을
뽑으신다면, 예쁘고 잘생기게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볼 때 공의롭지
못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키’를 보고 사람을
뽑으신다면, 아예 작게 태어난
사람들이 볼 때 공의롭지 못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가진 재물’을 보고
사람을 뽑으신다면, 세상에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많으니 전체가
볼 때 공의롭지 못하고 억울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시대 누구든지 ‘사랑’을 보고
뽑는다.”
<성삼위를 정말 사랑하는 것>을 보고
뽑으신다면, 인물, 키, 세상 지식,
명예, 재물에 상관없이 누구든지
‘사랑’은 할 수 있으니 공의롭습니다.
<사랑의 자본과 자료>는
‘마음과 생각’에서 나옵니다.
<마음과 생각>에서
‘사랑’이 무한하게 나옵니다.
누구든지 ‘사랑을 일으키는 마음과
생각’이 있으니, 하나님 앞에 누구나
공평합니다.
또 누구든지 ‘사랑을 일으키는
마음과 생각’이 있으니,
“나는 못 배워서 못 한다.
나는 못생겨서 못 한다.
나는 키가 작아서 못 한다.
나는 돈이 없어서 못 한다.” 하며
하나님 앞에 어느 누구도
핑계 대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지식>을 보고 뽑으면,
머리가 나쁜 사람은 배워도 안 되니
온 인류에게 공의롭지 못하다.
또한 사람은 ‘개성’으로 창조하여
태어날 때부터 남자와 여자로
태어나고 또 ‘본 인물’을 가지고
태어나니, 타고난 인물은 가꿔도
한계가 있으니 <인물>을 보고
뽑아도 공의롭지 못하다.
<키>를 보고 뽑으면, 키는 노력해도
한계 이상은 키울 수 없으니 키 작은
사람들에게 공의롭지 못하다.
<명예, 재물>을 보고 뽑아도 그렇다.
배웠으나 못 배웠으나, 잘생겼으나
못생겼으나, 키가 크나 작으나,
돈과 명예가 있으나 없으나 사람이
<마음과 생각>, 그리고 <몸>만 있으면
나 여호와와 성령과 성자를 사랑할 수
있다.
고로 <삼위를 정말 사랑하는 것>을
보고 뽑는다.”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선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고백하며 말했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정말
공의로우십니다. 역시 ‘사랑의
본체’이시며 ‘전능자’이십니다.
<사랑>으로 ‘우주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시어 <창조 목적>을 이루심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사랑’을 보고 뽑으시니 저도
불만이 없고 모든 사람들도
불만 없이 자신 있게 할 수 있습니다.
정말 좋아요!
2015_09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7
저부터 더욱더 성삼위를 사랑하며,
이 말씀을 모두에게 전해 주어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고
삼위를 더 사랑하게 해 주겠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이 뽑은 자’라면,
목숨 다해 성삼위를 사랑해서
뽑혔으니 절대 시기하거나 질투하면
안 되겠어요.” 했습니다.
선생도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그
위치에 세우실 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과 성자는 왜 저 사람을
뽑아 저기에 세우셨지? 무엇을 보고
뽑으셨을까?’ 했습니다.
결국 알고 보면, 변치 않고 <성삼위>를
사랑하고 <보낸 자>를 사랑하며
믿음과 사랑을 지킨 자들이었습니다.
또 조은이를 ‘복직된 하와’로
세우실 때도 생각했습니다.
‘조은이보다 먼저 온 자들이 많은데,
왜 조은이를 ‘복직된 하와’로
뽑으셨을까?’
역시 오늘 성경 본문 말씀대로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고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사랑하고, <보낸 자>도
그렇게 사랑해서 뽑혔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었기에 뽑혔습니다.
그뿐 아니라, <복직된 하와>로
예정되어 있어도 본인이 그만큼
행했기에 뽑혔습니다.
<사랑의 조건, 행실의 조건>을 볼 때
성삼위께 합당하여 뽑혔으니 어느
누구도 시기하거나 질투하면 안
됩니다. 선생도 그러합니다.
어떻게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몸이 되어 지상에
‘이 시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며
하나님의 최고 목적인 ‘창조 목적’을
실현하는 자가 됐을까요?
역시 ‘사랑’ 보고 뽑혔습니다.
예정되어 있어도,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성삼위를 지극히 사랑하는 것,
그만큼 행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보셨습니다.
선생도 지금까지 사람을 뽑을 때는
<변함없이 진정 사랑하는 것>을
보고 뽑아 왔는데, 그것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방법>
이었다는 것을 더욱 깨닫고 감사
감격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러합니다.
<신부 시대 성약역사,
휴거 역사>에서는 <사랑>을 핵으로
보고 뽑으신다는 것을 명심하고,
누구나 자신감을 가지고 ‘삼위의
사랑의 대상체’에 도전하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지식, 인물, 키, 학벌, 돈,
명예를 보고 뽑지 않으십니다.
<사랑>을 ‘핵’으로 보시고,
사랑 한 가지를 보고 택하십니다.
그런데 자기가 “나는 이것이 부족하다.
저것이 부족하다.” 하며 필요 없는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와 보낸 자를 100% 사랑하고
그 마음이 변치 않으면 그것 한
가지를 보고 택하시어 귀히 여겨
주시며 그 영혼을 휴거시켜 영원히
사랑하며 같이 살아 주십니다.
<사랑>이 ‘핵’이고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목적하신 것은 ‘삼위와 사랑
일체’입니다. 삼위와 사랑 일체 되면
‘만사가 다 성공’입니다.
하지만 ‘사랑’이 깨지면,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같이 ‘다른 것들’도
다 내던져 버리십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한 가지’를
잘해서 그로 인해 하나님께 잘 보이게
되어 ‘다른 것들’도 잘되고 성공하게
됩니다.
<사랑>을 깨뜨리는 자는
<삼위와 사랑할 자기 생명>을 깨뜨린
자가 되므로 <사랑>이 끝나게 됩니다.
핵심인 <사랑>이 끝나니,
모든 것이 다 끝납니다.
성삼위가 ‘사랑 때문에 택한 자’가
성삼위와 주를 사랑하지 않고
보통으로 살면, 인생 맛도, 가치도,
보람도, 기쁨도 별로입니다.
결국 ‘남남’이 되어 살게 됩니다.
<밭에 감춰진 보화>를 보고 ‘밭’을
사듯이, 하나님은 <사랑>을 보고
‘그 사람이라는 인생 땅’을 사십니다.
<보화>가 묻혀 있지 않으면 ‘밭’은
별 가치가 없듯이, <사랑> 빼면
‘그 인생’은 별 가치가 없습니다.
변함없는 사랑, 거짓되지 않은 진실한
사랑, 영적인 사랑, 속이지 않는 사랑,
배신하지 않는 사랑, 어떤 상황에서도
등 돌리지 않는 사랑, 첫 마음
그대로의 사랑... 하나님은 이런
사랑을 보시고 사람을 뽑아 쓰시니
모두 이 말씀을 깨닫고 그와 같은
사랑을 하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에서는 1등, 2등, 3등까지만
뽑아서 상을 주잖아요?
그렇다면 <사랑>에도
‘순위’를 매겨서 1등, 2등, 3등만
뽑으실까요? (잠시 쉬었다가)
하나님은 <사랑>을 보고 사람을
뽑으실 때, 1등, 2등, 3등만
뽑지 않으십니다.
누구든지 마음에 들게 성삼위를
사랑한다면 인원수에 제한 없이
다 뽑으십니다.
남자든 여자든, 키가 크든 작든,
예쁘든 안 예쁘든, 나이 먹었든 젊든,
나이가 너무 들어 쪼글쪼글하든
팽팽하든, 힘이 없든 있든,
돈이 많든 없든, 건강하든 병이 들었든
돼지가 “너 웃기게 생겼다!” 하는
사람까지 누구든지 마음에 들게
성삼위를 사랑한다면 인원수에 제한
없이 다 뽑으십니다.
<육신>은 아무리 예쁘고 잘생겨도
시간이 가는 대로 매일 늙습니다.
그러나 <영혼>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육신>이 전능하신 삼위일체를
사랑하고 그 보낸 자를 사랑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대로
매일 아름답게 변화됩니다.
선생의 어머니도 돌아가시기 전에
사진을 보니, <육>은 무서울 정도로
늙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그 영을 보니, <영>은 아름다움을
휘날렸습니다.
2015_09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8
20대에서 30대 초반의
최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역시 하나님은 ‘사랑’을 보고
‘영’을 뽑으십니다.
정말 하나님은 지식, 인물, 키, 돈,
명예를 안 보시냐고요?
그것은 선생이 입증할 수 있습니다.
그 표상으로 ‘선생’을 보면 압니다.
선생은 매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내가 사는 월명동도
사람 살 곳이 못 되는 환경이었습니다.
게다가 벽을 살짝만 밀어도 쓰러져
버릴 150년 된 토담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난하니 못 배웠습니다.
인물도 뛰어나지 못했습니다.
50년 전에 시골에서는
‘거울’을 보석같이 여겼습니다.
그런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니
‘내 얼굴이지만 정말 못생겼다!’ 하며
화를 냈습니다. 그러다 화를 참지
못하고, 그 귀한 거울을 깨
버렸습니다.
또 선생은 키도 작았습니다. 키가
크게 해 달라고 기도하다가 안 돼서
신발 굽을 높여 신기도 했습니다.
<육의 것>을 보면, 100가지를 봐도
좋은 것이 하나도 없었고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 성령님, 성자를 쳐다보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세상에서는 누구도 나를
받아 주며 좋아할 자 하나 없어요.
지금도 동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미쳤다고 하고, 식구들도 나를 보면
미쳤다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말하니
집에 가기도 싫고 얼굴 보이기도
민망해요. 오직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만 사랑하고 살겠으니 그렇게
살게 해 주세요.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성경 말씀을
제대로 알아야 하나님도 예수님도
제대로 알고 사랑하니, 가르쳐 주세요.
가르쳐 주시면 제대로 배우고
노력하겠습니다. 성경을 가르쳐
주세요.” 했습니다.
이때부터 선생은 더욱 깊이 기도했고,
성자는 예수님의 모습으로 내게
오셔서 ‘나의 신랑, 나의 선생’이 되어
나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더욱 깊이 바로 알게
되었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알게 되었고
깊은 <사랑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알았으니, 하나님의 최고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인생 70년을 바치고,
50년 가까이 말씀을 외치고, 삼위가
시작하신 <성약의 섭리역사>를
37년 동안 이끌어 오면서 결국
<창조 목적, 사랑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왜 ‘사랑’을 보고 뽑으시는지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룰 자료>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삼위를 최고로 사랑하는 자’를 뽑아서
그 육과 영을 구원하시고
‘사랑의 대상체’로 삼아 주시고,
결국 그 영을 휴거시켜
‘천국 황금성’을 주십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예정된 자로 뽑혔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잘하다가 끝까지 그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결국 사탄의 유혹을 받아서
‘사랑’을 사탄에게 뺏겼습니다.
그로 인해 ‘사랑의 뜻’이 깨졌고,
핵심인 ‘사랑’이 깨지니 ‘뜻과 목적’도
깨지고, 아담과 하와는 육도 영도
‘실패의 길’로 갔습니다.
<인간의 사랑, 육적 사랑>은
남은 인생 동안 변하지 않고 충만히
사랑하며 산다 해도 일순간 끝나고,
사랑하고 난 후에는 기억도 안 납니다.
<육적 사랑>은 사랑할 때만 느낍니다.
<영의 세계>에서는 ‘영’이 계속 살아서
사랑하니, 계속해서 변하지 않고
끊임없이 사랑하며 그 사랑을 영원히
느끼며 기뻐합니다.
그러나 <육신>은 죽으면 ‘사랑’도
‘모든 것’도 다 끝납니다. 고로 ‘영원히
죽지 않는 영’을 중심하라는 것입니다.
그 <영>을 위해 ‘육’을 귀히 여기며
살고, <영의 영원한 삶>을 위해
‘사랑’을 뺏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섭리사에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10년 전에 ‘세상 사랑’ 때문에
섭리사를 떠났습니다.
10년 후에 확인해 보니,
‘육의 화려한 꽃과 같은 때’는 끝나고
‘인생 광야 길’을 가느라 딴 생각
할 겨를 없이 먹고 사는 데 정신 팔려
살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과 같이 뛰던 친구는
계속 섭리사에서 살면서, 지금도
‘님 사랑’에 불타서 ‘사명’을 받고
뛰고 달리며 육도 영도 보람차게
살고 있습니다.
<세상 사랑, 육의 사랑>은
사랑해도 일순간입니다.
그 사랑이 오래갈 줄 알고
호기심에 <세상 육의 사랑 꽃밭>에
뛰어들었으나, 꽃은 짧으면 일주일,
길면 한 달 정도만 푸른 들판에서
살다가 그때가 지나면 져 버리듯
세상 육의 사랑은 잠깐 자고 깨는
‘꿈같은 삶’을 살고 끝나는 것입니다.
인생, 몰라서 <생각과 판단>을
잘못하면 너무 억울합니다.
겨울철 스키장은 한때이듯,
세상 사랑도, 세상만사 모든 것도 육에
속한 것은 다 한때입니다.
<육신>이야 못 배우고, 못생기고,
키가 작고, 돈과 명예가 없어도
어느 누구라도! 가다 보면!
늙어서 죽고 끝납니다.
인생은 가다 보면
‘예쁘고 잘생긴 외모’도 끝이 나고,
엄청난 ‘돈’도 ‘명예’도 더 이상
사용할 수도 없고, 죽어서
가져갈 수도 없습니다. 돈이 많고
명예가 하늘 높이 치솟은 재벌이라도
죽음을 앞두면 피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를 몇년만 더 살게 해 주면
자기가 가진 재산의 반을 떼어 준다
해도 안 됩니다. 인물, 지식, 돈,
명예... 모든 것이 다 끝이 납니다.
결국 <영과 혼>이 천국에 가고
영원히 삽니다. 고로 하나님은
<영>을 중심하십니다.
<육신>이 귀함은 <육의 행위>가
‘영의 운명’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2015_09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9
지식이 많은 사람이 구원받고
휴거되는 것도 아니고,
인물 좋은 사람이 구원받고
휴거되는 것도 아니고,
돈이 많거나 명예가 높은 사람이라고
해서 구원받고 휴거되는 것도
아닙니다.
누구든지 <자기 육>을 가지고
삼위일체를 사랑하며, 그가 보낸
구원자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구원받고 휴거되어
‘영원한 천국’을 상속받게 됩니다.
고로 하나님은 지식, 인물, 키, 돈,
명예를 안 보고 창조 목적을 이룰
자료인 <사랑>을 보시고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사랑하며 살 <영>을
중심하십니다.
<영>은 성삼위와 구원자를
사랑하기에 따라서
- 키도 2~3m까지 커지고,
- 얼굴도 몸매도 아주 아름답게
변화되고,
- 권세도 얻게 됩니다.
<성삼위와 구원자를 사랑하는
강도>대로 영의 얼굴과 몸매의
아름다움이 좌우되고, 영의 키가
좌우되고, 영의 권세와 명예가
좌우되고, 영의 빛이 좌우됩니다.
<육>은 한계가 있으나
<영>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사랑하는 것에 따라서 지혜와 총명과
명철함이 ‘신’같이 됩니다.
고로 하나님은 <영>을 보고
<사랑>을 보고 사람을 뽑아서
하나님의 뜻을 펴시고 목적을
이루십니다.
모두 오늘 말씀을 들으니 불만이
없지요? 그러니 이제부터는 누가
뽑혀서 귀히 쓰여도 시기 질투하며
흠 잡지 말고, 칭찬해 줘야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것’을 저울에
달아서 확인하고 뽑으십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사랑>이 변함없는 자는
<이 시대 휴거의 뜻>을 이루어
성삼위의 육이 되어 주와 함께
천 년사 하나님의 뜻을 이룹니다.
◎ 말씀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섭리인 모두는 아담과 하와가
못 한 것을 하여 복직돼야 합니다.
<복직>은 ‘사랑’과 ‘자기 행위’로
됩니다.
절대 삼위일체와 보낸 자를 사랑하기.
삼위의 말씀을 행하기입니다.
누구든지 이와 같이 살아야 됩니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니 부정도 없고,
속임수도 없고, 백도 없습니다.
<복직된 하와>도
-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성삼위를 사랑하고,
- 그와 같이 주를 사랑하고,
- 자기 위치에서 그만큼 행했기에
‘하와 복직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축복>도 ‘사랑’ 보고 주시고,
<사명>도 ‘사랑’ 보고 주십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목적>도
‘사랑’으로 이루고,
<인간 최고 영광의 자리인 휴거>도
‘사랑’으로 변화되어 이룹니다.
가르쳐 주었으니, 이 말씀을 자기
것으로 삼고
밤낮 <삼위일체>를 사랑하고,
<삼위가 보낸 자>를 진정 사랑하기
바랍니다.
변함없는 사랑, 진실한 사랑,
영적인 사랑, 속이지 않는 사랑,
배신하지 않는 사랑, 어떤 상황에서도
등 돌리지 않는 사랑, 첫 마음
그대로의 사랑입니다.
가다가 등을 돌리면 변질됩니다.
<처음 사랑을 보고 뽑힌 자>도 가다가
등을 돌리면 <사랑 배신자>가 되어
‘사명’도 ‘위치’도 뒤바뀌게 됩니다.
<사랑>이 변함없어야 ‘삼위의 사랑체,
신부’로 변화되고 휴거되어
<천국 황금성>에 들어가게 됩니다.
또한 <주의 돛>을 완전히 꽂고
<사랑>이 변함없어야 휴거 400, 500,
600선으로 올라가 완전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사랑’을 보고 뽑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는 내 사랑하는
자다.” 하셨습니다.
그리함으로 예수님은
‘아들의 자격자’가 되었고,
아들의 말씀을 전하여 ‘아들로
구원하는 구세주’가 되었습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펼치시는 <성약역사>입니다.
<신약의 예언>을 이루며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완성하는 역사입니다.
아들보다 한 차원 높인
<신부 역사>입니다.
고로 이 시대는
<신부 시대, 사랑 시대>입니다.
삼위일체를 사랑하는데
‘자녀로서의 사랑’이 아닌
‘신부로서의 사랑’으로
구원을 이루고 휴거를 이룹니다.
그리함으로
<아담과 하와의 복직 역사>를 이루며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룹니다.
고로 하나님은 ‘지구상에서
삼위를 최고로 사랑하는 자’를 뽑아
그를 가장 먼저 ‘하늘의 신부’로
삼으시고, 인생들 앞에는 그를
‘신랑 격’으로 세워 <휴거 역사>를
펴고 <천년왕국 혼인 잔치 역사>를
펴십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사랑>으로 우주 만물과
인생을 창조하셨고, 이 땅에
<사랑의 구원역사>를 진행하시며,
<사랑의 성약 신부 역사>로 마지막을
매듭짓고 끝장내십니다.
◎ 오늘 말씀 매듭짓겠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사랑’을 보고 뽑으시는데,
사랑을 ‘두 가지’ 면에서 보고
뽑으십니다.
첫째, <대상 격>인 ‘인간’이 사랑하는
것을 보십니다.
둘째, <주체 격>인 ‘삼위일체’가
사랑하는 것을 보십니다.
이 두 가지의 사랑의
아름다움을 보고 사람을 뽑으십니다.
곧 우리 인간도 삼위를 사랑해야
되지만, 성삼위도 그 사람을 좋아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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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무력으로 끌어오면
‘사랑’이 아니니,
체질이 맞고, 취향이 맞고, 뜻이 맞고,
생각이 맞는 자를 택하십니다.
주체와 대상, 곧
삼위일체와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 <사랑의 뜻>이 이루어지고,
- <휴거>로 창조 목적을 이루고,
- <휴거의 차원>을 높여
완성된 단계에 가고,
- <돌풍 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모두 말씀을 듣고
하나님은 ‘무엇을 중심’하시고
‘무엇을 보고 뽑으시는지’ 핵심을
알았으니, 이제부터는 부지런히
열심히 행하면 됩니다. (아멘!)
<진수성찬>도 ‘행하여 먹는 자’가
주인이듯이, <위대한 생명의 말씀>도
‘깨닫고 행하는 자’가 주인입니다.
사랑하면 예뻐 보입니다.
멋있게 보입니다. 그로 인해 자꾸
아름답게 신비하게 변화됩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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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09일 수요일
오직 참사랑
[ 마태복음 22장 36-40절 ]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36 'Teacher, which is the greatest
commandment in the Law?'
37 Jesus replied: "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38 This is the first and greatest
commandment.
39 And the second is like it: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40 All the Law and the Prophets hang
on these two commandments.'
선생님 명설교(편집본)
1993.10.31. 부산동명대
어제 이어서 여러분들도 갑자기
내려왔기 때문에 좀 바빴을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우리의 삶은 생활 속에
준비되고 예비 된 삶을 항상 가지라는
말씀이 여러분들의 철학이 되었기
때문에 전에 왔을 때보다 많이
달라졌어요.
척척, 갑자기 전달하고
갑자기 무슨 일을 시켜도.
그만큼 여러분들의 수준이
높아졌다고나 할까요?
세계 각 나라에 있는 섭리의 여러분,
나는 오늘 대한민국의 두 번째
대도시인 부산에 왔습니다.
부산 동명대학 캠퍼스의 운동장에서,
스탠드에 자리 잡고 주일말씀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바람이 많이 불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가 오다가 갠 날이라
아주 청명합니다. 이 부산지역은
상당히 따뜻한 지역인데도 오늘은
싸늘하네요. 싸늘한 것도 설교할 때는
좋습니다. 왜 그런가하면 혹시
여러분들이 졸까봐.
나는 조는 데 대해서 아주 질색입니다.
집에 있는 것보다 여기 와서 조는
것이 낫다고 하는데,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여기 와서도
졸지 말고 잘 들으라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의미 있는 얘기인
줄 압니다. 먼저 번에 선생님 고향에서
만여 명이 모여서, 그때도 새벽에
꼬박꼬박 졸고 있는데 비가 쏟아져
가지고 잠이 싹 달아나게 만들고,
말씀을 푹 집어넣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각 나라에서 말씀을 들으면서
나의 모습을 볼 것인데,
다시 또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러분들이 늘 나를 접하고 있지만,
나는 여러분들을 비디오 찍어서
보내는 나라는 보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는 편지나 소식으로만
전해 듣고, 또 가끔 전화로 모든
소식을 듣게 됩니다.
오늘 부산까지 왜 이렇게 왔는고 하니,
어제 말씀 수료식이 있었고,
오늘 주일 예배를 드리고, 또 오후에는
운동을 하고 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늘 외국에서 봐서,
선생님 모습을 보아서
아주 여러 가지로 평가를 하겠지요.
모두 여러분들, 이 나라에 한번 와
보면 작은 나라이지만 꼭 와 볼만한,
이런 섭리가 아니어도 와 볼만한
나라이고, 그 중에서도 와 볼만한
도시가 이 부산 도시입니다.
부산은 항구 도시로서 유명한
곳입니다. 나는 이곳을, 이 부산 땅을
여기 있는 사람들이 거의 태반이 나기
전에 부산 땅을 월남 가면서 몇 번
지나갔습니다. 첫 번에 갈 때도
여기 부산으로 가고, 두 번째 갈 때도
부산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그 노래 가운데,
“또 다시 돌아오마 부산 항구야”
그 노래가 있습니다.
“미스 리도 안녕히, 미스 김도 안녕히”
그 노래가 귀에 쟁쟁한데,
24년 전에(1993년 기점) 내가 이곳을
거쳐 갔으니까 24살 안에 끼어 있는
사람들은 전부 내가 왔다 가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렇게 왔다 간 것이
두 번 왔다 가고, 그리고 섭리를
뛰면서 오게 되었습니다. 섭리 덕분에.
여러분들의 나라에도 꼭 와 보라고
하는데, 참 그게 가기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부산도 몇 명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여러분같이 몇 명씩 전도될 때가
있었는데, 이와 같이 수천 명씩
모이는 오늘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각 나라가 부지런히 많은 생명들을
복음의 하나님의 말씀 앞에 돌아오게
한다면 내가 갈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입니다. 비행기를 타면 부산에
내려오는 시간보다 더 빨리 갈 수
있습니다.
일본 같은 나라는 2시간이면 가니까.
2시간만 타고 가면 “내려” 하면
나리타공항에 벌써 도착합니다.
여기는 부산입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말씀을 듣다가
이 한국에 와 보면,
“아, 부산! 맞아 저기.” 하고
본 기억이 난다고 할 것입니다.
전국에 있는 각 120개의 교회들,
오늘 나는 동명대학에서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동명대학교에 대해서
많이 몰라도, 참 마음씨 고운
학교라고 보면 됩니다.
비디오를 한 바퀴 돌려서 보여
주겠습니다. 각 학교마다 자랑할 것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비디오를 돌려 줄
테니까 한번 학교가 대개 어떻게
생겼으며, 여기도 다 찍을 수 없지만
아주 멋있습니다.
각 학교 캠퍼스마다 자랑하고 싶은 게
있지만, 이곳을 거쳐 나온 여러분들은
자랑스러울 것입니다. 여러분의 학교가
세계 방송에 나가게 되니까 좋을
것입니다.
전국 각 캠퍼스, 200여개의 캠퍼스들!
대개 내가 강연을 하게 되면, 말씀을
주게 되면 각 대학교에 가서 하는데,
안 다닌 학교가 없습니다.
어느 학교는 두 번씩 세 번씩
다니기도 했는데, 여대에는
내가 잘 못 갑니다.
이화여대라든가, 숙명여대라든가,
부산여대라든가 이런 데 가서는
이렇게 못 모입니다.
남자들이 노는 장소는 잘 빌려 주지만,
여자들이 노는 장소는 잘 안
빌려줍니다.
오늘 말씀은 마태복음 22장
36-40절의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이 말씀을 많이 들어도
그 <핵>을 모르면 안 됩니다.
<핵>을 알아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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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중요한 말씀이,
어디가 제일 중요하냐?
어느 구절이 중요한 말씀이냐?
많이 이야기 하지만,
오늘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2장
36절부터 40절까지가 중요한
말씀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데, 목숨을
다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고,
목숨을 다한 ‘하나님 섬김의 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람을 대할 때에도 하나님을 대할
때에도 그렇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많은 이야기가 많이 있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여러 교훈과 여러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그 핵은
무엇이냐? 결국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그 말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너 그렇게 되면 괜찮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살면 괜찮다. 팔자가 편다.
신세가 편하다. 그리고 영원히 잘
된다.”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내가 30개론의
그 깊고 심오한 말씀을 지구가 생기고
처음으로 종교의 깊은 감동적인
말씀을 여러분이 들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맞는 말입니다.
내가 성경을 2000독 이상이나
읽으면서 깨달은 말씀을 여러분에게
줬는데, 그렇게 많은 말씀을 주고,
그리고 또 늘 체육 운동도 하고, 뛰고
달리면서 여러분들과 웃고 지냈습니다.
그렇게 여러분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 주고, 가르쳐 주고, 많은 말씀을
할 때는 한 40여 시간까지 했습니다.
일찍 온 사람들한테는. 한 자리에서
10시간 설교할 때도 있었고.
그렇게 많이 해 준 것은,
결국은 뭔고 하니, 내가 누구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했습니까?
누구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여러분에 대해서?
국가에 대해서?
누구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까?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위대하고,
가장 크신 분이시고, 필요한
존재자인데 여러분들이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그래서 내가 하나님에 대해서
그래도 고상하게, 그래도 깊이 깨닫고
와서 여러분들에게 가르쳤는데, 그렇게
가르쳐 주고 나니까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사랑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지요! 특히
믿고 싶다는 이야기보다는 사랑하고
싶다는 자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왜 그런가하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그렇게 사랑한다고 얘기해 주었거든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그만큼 역사하고
함께해 주었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에 ‘아! 나를 그렇게
사랑해 준다면, 나를 그만큼 하나님이
아껴주고 위해 주셨다면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하고서,
그 설득력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실질적인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여러분들이 그것을 믿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게 많이 내가 말씀하고 이야기를
했어도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사랑치
않는다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여기 와서 준비하고
예비하고 마이크도 준비하고 그랬지만,
내가 와서 설교를 안 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설교도 안 하고
왔다가 그냥 쳐다만 보고 간다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모든 것은 오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와 같이 내가 이렇게
모든 것을 했을지라도, 내 젊음을
바쳐서 여러분에게 말씀을 전해 주고,
진리를 가르쳐 주고, 대둔산 산
용문골 골짜기에서 30년의 기나긴
역사동안 눈보라를 맞고 찬바람을
맞으면서 바람을 헤치면서 깨달은
말씀을 갖다 줬어도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사랑치 않는다면 나는
헛 공사를 한 것이라 그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래요, 안 그래요? 여러분들이
지금도 하나님을 사랑치 않는다면
나는 헛일을 한 것이라 그것입니다.
사랑하고 있습니까?
소리 지르지 말고
손만 흔들어 보십시오.
“하나님, 정말 이제 깨달았습니다.”
내가 한 일이 정말 보람된 일을 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와 같이,
그 전에는 형제들끼리 별로 의가
안 좋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종교를
볼 때에 서로 박멸시하고 박대시하고
원수시하고 서로 이단시하고 서로
싸우고 그랬습니다.
“윗사람, 앞의 사람, 전후좌우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내가 많이
이야기를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많이
달라졌습니까?
아무리 내가 깊은 진리의 심오한
말씀을 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지금도 옛날같이 지낸다면 내가 말한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지금은 많이
변화되었습니까?
많이 변화되었어요?
인간이 100%는 다 변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어렵습니다.
50%만 변했어도 “악!” 하고 “야!”
하고 정말 기절초풍을 하겠습니다.
80% 변했으면 더 놀라지요.
“나는 적어도 50% 이상은 변했다.”
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80% 이상 변했다.” 하는 사람이
있다면 손들어 보세요.
옆 사람을 쳐다보세요.
괜히 “너, 그것이 아니잖아?” 그러면
안 됩니다. 말씀 듣고 80% 이상
변했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사람에게 하는 일들은
여러분들이 희박하군요.
그래도 80% 이상 변한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 내가 볼 때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그렇게 안 변했습니까?
오늘 말씀 듣고
또 변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80%이상
변했다.” 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형제에 대해서 확인할 때보다 많은
인원이 손을 들었다)
이게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늘을 향한 것은,
예수님 당세 때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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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있어서는 굉장했습니다.
그런데 형제를 사랑하는 데에
미약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점수를 줄 때 어떻게 주는가
하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 50점’,
‘인간 사랑 50점’ 해서 100점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 거기 문제가,
내신 성적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거기가 문제입니다.
그것이 상당히 크게 참고가 됩니다.
내신 성적! 과거에 살던 것!
과거에 공부했던 것이 크게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평소 신앙!
오늘 설교 듣고서
앞으로 형제를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내가 30개론을 가르치고, 심오한
말씀을 가르치고, 여러분들과 같이
뛰고 달리며 밥을 먹고, 같이 운동도
하고, 그저 체면과 위신을 세우지 않고
했습니다.
내가 체면 세우면 이렇습니다.
나를 좀 봐요. 옷 좀 쳐다봐요.
완전히 원앙새같이 입고
돌아다니잖아요.
이것 벗고 운동복을 입을 때는,
수만 명이 따르는 지도자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안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그런데 운동복 입고, 같이 사우나
가고, 사우나에 같이 가면 사람들이
얼마나 욕을 하는 줄 압니까?
“보니까 지도자 같은데, 따르는
제자들과 같이 목욕을 다닙니까.
창피하지도 않습니까?
교수만 돼도 밑의 학생들과 같이
목욕을 안 다니는데...” 그럽니다.
그래도 여러분들에게 사랑을 심어주기
위해서, 그리고 형제끼리 사랑하고,
서로 우애 있게 지내라고 하기 위해서
그렇게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같이 운동도 하고, 같이 밥도 먹고
그러는데, 하여튼 타령입니다.
새타령처럼 타령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형제들을 서로 사랑하는
<본>을 보인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충분히 했는데도
여기서 더 본을 보여 달라고 하면
“아이고, 그러다가 나 죽는다.” 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오늘 더 본을
보여 달라는 소리를 하지 말고
‘아, 이거 안 되겠다. 우리가 더
자각하고 해야 되겠다’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깨닫고 해야 됩니다.
오늘부터 하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이것은 내가 서약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서약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설교를 깊이 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늘은 바로 그것을 깨우쳐 주고
오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것을 깨우쳐
주려고 하나님께서 나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많은 말씀이 있는데, 그 말씀을
핵적으로만 가르쳐 주겠습니다.
“너희들이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이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13장에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가 됩니다.
진리가 없으면 멸망의 세계로 가지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 같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길 원하는데,
사실상 가르쳐 주었으니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왜 그런가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면 우리는 모릅니다.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잘 모릅니다.
알겠어요? 모른다는 것입니다.
절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바로 체험하게 됩니다. 그동안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해 왔나.
깨달았어요?
무슨 얘기인고 하니,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계속
사랑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를.
어떻게 해야 얼마나 사랑하는가
나오는고 하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 봐야 그동안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했나 그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꼭 사랑해 봐야
됩니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사랑을
받았나에 대해서 알려면.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보면 하나님은
은근히가 아니라 실상적으로 까놓고
볼 때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해 왔습니다.
그것이 정수(正手)로 되어 있습니다.
바둑 둘 때 정수가 있듯이 정수입니다.
욥도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이
욥을 사랑하기 전에 욥이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탈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탄이나
흑암의 탈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탈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먼저 사랑해야 됩니다!
나는 20-30년 동안 계속적으로 기도
생활을 하고 남달리 신앙생활을
했는데, 그것은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서, 진리에
대해서 깨닫고 ‘아 내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겠구나. 하나님이 나를
사랑치 않아도 내가 계속 평생 동안
하나님을 사랑해도 그동안 해 준 것을
못 다 갚는다.’ 고 깨달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사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 사랑이
식지를 않고 있습니다.
내가 점수가 많이 있지만, 아마 사랑
점수가 제일 많이 나올 것입니다.
지구촌 역사상 전체를 칠 때 나를
꼽을 정도로, 그 정도로 사랑했습니다.
지금도 열렬하지만, 그것 빼면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 모든 진리를 깨달은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깨달은
것입니다! 결국 남는 것은
사랑밖에 안 남았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끊어지면
내가 진리를 아무리 전하고
돌아다녀도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만다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내가 아무리 진리를 가지고 있고,
외치고 다녀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의 이 꺼진다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끝났다는
것입니다. 끝장났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런 본(本)을 보여 주시고,
말씀해 주시고, 그렇게 하시고
가셨습니다.
두 번째는 그렇다면 우리끼리도,
너희들이 나를 사랑해 보지 않고서는
내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왜? 너희들이
나기 전부터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이해가 잘 안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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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우쳐 주겠습니다.
너희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내가 감람산에서 기도를 했습니다.
이 진리를 가지고 나가서 외칠 때
젊은이들에게 외칠 텐데 이들을
사랑해 달라고, 온 인류의 젊은이를
사랑해 주시고, 온 인류를 사랑해
달라고 계속 뱅뱅 돌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보호해 달라고,
큰 사고(事故) 안 나게 해 달라고,
그리고 잘 되게 해 달라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여러분의 어머니도
부모님들도 그렇게 안 했다는
것입니다.
사망으로 가는 영혼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참고 견디면서
수년의 겨울을 났다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만일 사랑이 없었다면
내가 따뜻한 방에서 잠자지 뭐하러
거기에 들어가 있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항상 너희들이 나를 사랑해야
사탄이 방해하지 않는다!
잘 적어 놓으십시오. 욥이 하나님을
사랑하니 사탄이 방해를 못했습니다.
방해했으나 방해가 안 되었지요. 그
방해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이제 깨닫겠지요? 그와 같이 너희들이
나를 사랑해야 방해 안 한다.
하늘 편으로 오는 데에.
그것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믿습니까?
아무리 배웠다고 해도
‘사랑의 불덩어리’가 식는다면
30개론이 머릿속에 있어도 그것은
울리는 꽹과리! 30개론을 안
잊어버립니다. 진리가 철저하기
때문에.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깨닫고
“참, 진리는 좋은데...” 하면서 나가는
사람은 선생님과 사랑의 세계가
끊어졌기 때문에, 깨졌기 남자든
여자든 자꾸 나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무조건 믿습니다!
나를 사랑하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가 아니라,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습니다. 사랑하면 그렇습니다.
사랑하면 무조건 잘못했어도 그냥
좋다고 하고, 잘했다고 하고,
잘 한 것이라고 하고 그럽니다.
그래서 사랑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 의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낫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과거 사람보다는 나아야 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리고
너희 의가 현재 기독교인들이라는
종교인보다는 나아야 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더 좋은 말씀을 듣고, 더
지도자가 몸부림을 쳐서 말씀을
가지고 왔으니 더 나아야 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요, 안 그래요?
그리고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도 잘 지킨다!
사랑 안 하면 계명을 안 지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실천을 안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실천합니다!
그를 사랑하는데, 어떻게 다방에 가서
안 기다릴 수 있습니까.
그를 사랑하는데, 그가 다방에서
만나자고 하는데. 사랑하지 않으면
안 갑니다.
“안 오냐?”
“뭘 가냐?”
“아까 온다고 하지 않았냐?”
“가기가 싫어.”
사랑치 않기 때문에 안 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랑하면 계명을 지킨다고
하나님께서 평가를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사랑하면 계명을 지킬
것입니다. 이 두 계명은 율법이요,
선지자의 대 강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에 대한
성경 구절을 불러 주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참 사랑>은
투기도 시기도 하지 않고,
온유한 마음으로 대한다.
남을 사랑하는 것을
자기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한다.
이건 뭐, ‘신의 사랑’입니다.
사랑 앞에는 방언이고 예언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다. 마지막에는
사랑으로 모든 것이 폐함을 받게
된다! 오늘 말씀을 중심해서
고린도전서 13장을 읽고
자기 것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아가서 8장 6-7절,
“사랑은 불같다! 죽음도 이긴다.
죽는 길도 피해갈 수 있다. 사랑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신명기 7장 8절,
“내가 너희를 사랑했기 때문에
애굽에서 구원했지 그냥 구원했겠냐?”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7장 47절을 보면,
“죄 사함을 많이 받는 사람은
결국 사랑을 많이 받기 때문에
사함을 많이 받는다.” 했습니다.
미워하면 죄 사함도 안 해 준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죄를 얼른
용서해 줍니다. 죄 있는 상태에서
사랑할 수 없으니까.
요한복음 13장 1절,
예수님은 죽을 때까지, 끝까지 온
인류를 사랑하다 죽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도 기어코 사랑하다 죽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4절을 보면,
“첫사랑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이 끝난다.” 했습니다.
이사야 5장 31절,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 있게
돋음같이 빛나게 된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 46절,
너희는 사랑하는 자만 맨날 사랑하지
말고 사랑치 않는 사람도 골고루
사랑해 주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참된 사랑을 가진 자들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잠언 8장 36절,
미워하게 되면 사망을 사랑하는
사람과 똑같다고 했습니다.
미움은 금물이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2장 10절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나, 미워하는 자는 어둠가운데
거하는 자와 똑같다고 했습니다.
어둠으로 인해 눈이 먼 자라고
했습니다.
아가서 5장 1절을 보면,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내 동산에서
나와 같이 놀자고 했습니다.
아가서 6장 3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는 내 것이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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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자를
각종 좋은 것으로 비유를 들어서
말씀했으니 아가서 5장 10-16절을
보면, 사랑하면 무조건 눈이 멀어서
다르게 보인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그러하심을
받게끔 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무진장 사랑하면
하나님께서는 상상할 수 없이 대해
주십니다. 죄이고 뭐이고 묻지도
않습니다.
잠언서 7장 18절을 보면,
사랑이 있음으로 희락도 있는 것이지
사랑이 없을 때 희락이 있겠냐고
했습니다.
그런데 잠언서 10장 12절을 보면,
사랑은 모든 허물도 가려준다고
했습니다. 허물을 자꾸 끄집어내면
사랑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5장 14절을 보면,
그리스도가 너희를 사랑하심을 너희는
깨닫느냐? 그렇다면 그와 같이 그
사람의 종이라고 생각하면서 한번
그 사람을 사랑해 봐라! 그런 정신과
인식을 가지고 사랑해 보라고
했습니다. 사랑이 안 되면.
요한일서 4장 12절을 보면,
“너희가 사랑치 않으면 내가
너희 마음속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 정신이, 하늘 정신이
갈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13장 10절을 보면,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사도
바울도 말씀했습니다.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 하나님을
목숨 걸고 사랑한다면 거기에는 법도
필요 없다. 재판도 필요 없고 심판도
필요 없다” 는 것입니다. 사람을
미워하면 사람으로부터 심판 받게 될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치 못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심판 받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 17절을 보면,
베드로에게
“이제 내가 마지막으로 네게 묻는다.
너 나 진짜 사랑하느냐?”
“예, 사랑합니다.”
“정말 사랑하느냐?”
“네”
“진실로 사랑하느냐”
“네”
“진짜 사랑한다면 양들을 쳐 봐라.
양치는 것을 보면 내가 알겠다.
내 양들을 잘 좀 쳐라, 잘 보살펴
주도록 하라. 주의 사랑하는 자를
잘 좀 보살펴 주도록 하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믿습니까?
너희들이 진실로 사랑해요? 옆 사람이
얘기하니까 얘기하지 말고. 오늘
말씀이 상당히 저울질하는 말씀입니다.
정말로 사랑해?
그렇다면 부지런히 많은 생명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해요.
핵심의 말씀은 뭔고 하니,
우리는 모든 것을 다 투자해서,
젊음을 투자해서 결국 진리를 깨닫고
찾았습니다. 그리고 뛰고 달리면서,
엎어지면서, 일어나면서 땀을 흘리면서
그 엄청난 땡볕에 뛰고 달리면서
얼굴을 끄슬리면서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산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의
인연을 맺기 위해서, 하나님과 인연을
맺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땅의 형제들과 인연을
맺기 위해서! 그런데 그것을 못하고
깨진다면 이제껏 한 것이 헛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연속적으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내가 하나님을 사랑치 않는다면
말씀을 가지고 아무리 뛰고 달려도
필요 없는 것입니다. 인연이
끊어졌으면. 하늘과 사랑의 인연이.
하늘과 사랑하는 그 인연이
끊어졌다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말씀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그런 정신과
실천이 없으면 30개론을 배운 것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깨달은 것, 온 인류가 터득치
못한 진리를 가지고 왔어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깨닫고
하기 위해서 내가 몸부림쳤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하라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꼭 그렇게 해야 됩니다.
사랑이 식으면 죽습니다.
사랑을 주고받고 하는 섭리사에서
사랑이 식었으면. 여러분의 몸의
온도가 식으면 죽습니다.
37도에서 내려가면 죽습니다.
심장이 멈추면 죽듯이.
심장이 멈추니까 금방 죽더라는
것입니다. 엊그제 한 엠에스를 보니까
심장이 멈추니 금방 죽더라구요.
심장이 멈추고서 3-5초 사이에 다시
심장이 뛰지 않으면 그냥 죽는다고
합니다. 일어날 수가 없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의 ‘사랑의 심장’이
항상 뛰어야 됩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뜨거운 열정으로!
아까 보니까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거진 다 있는데,
그래도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내가 아까 얘기했지만, 하루에도
열댓 번씩 ‘헛손질’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헛손질이 뭔고 하니, 가다가 옆에
하나님이 따라오시나 안 따라오시나!
하나님이 항상 따라 다녀야 됩니다.
사랑하면 안 따라다닐 수가 없습니다.
나부터도 그렇습니다. 따라다닌다는
것입니다.
애인을 막 사랑하고 다니는 사람들은
가끔 헛손질을 합니다. 그 애인이 딴
데 있는데도 하던 습관이 있어서.
꿈에도 소원이.
사랑하면 하나님이 여러분과 동행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같이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완벽하게 해 놓아야 됩니다.
“사랑 없는 심판을 내린다 할 때
자신 있느냐?” 했을 때 자신 있다고
할 정도까지 되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날보고
“선생님, 난 정말 선생님 사랑해요.”
하길래 “난 잘 모르는데.” 그랬습니다.
“아니, 나 선생님을 얼마나 사랑하다고
그래요?” “나 몰라. 다시 생각해 봐.”
그랬습니다. 그래서 돌려보냈습니다.
평창동에 왔는데.
‘관념적인 사랑’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실질적인 뼈에 와 닿는
사랑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치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하나님을
미워하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들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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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실질적인 사랑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실적을
세우고 계명을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런 문제들이 현실에서 크나큰
것입니다.
오늘 설교 말씀을
가만히 일주일 동안 보십시오.
사랑이 있으면 전쟁도 필요 없습니다.
사랑했으면 국방문제가 다 해결되어
버립니다. 사랑하면 세상만사가
다 해결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왜 지옥에 가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를 왜 보내겠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이 식으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식지 않도록 해요.
사랑이 식으면 죽습니다.
열이 식으면 죽고 심장이 멈추면
죽듯이 사랑이 식으면 죽는다!
신앙이 식으면
벌써 사망권이 덮친 것입니다.
‘신앙이 식었다’ 하기 보다는
‘사랑이 식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식었다, 형제를 사랑하는
사랑이 식었다’ 이렇게 봐야 됩니다.
그것 없으면 다 필요 없습니다.
울리는 꽹과리입니다. 여러분이
사랑이 없으면 기성시대보다 나은
점이 없습니다. 왜? 더 엄청난 말씀
듣고서 못하면 더 못한 사람들이지요.
어제 통과식 때 그 엄청난 말씀을
한 것은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이야기입니다. 나를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너희를 그리스도와 중매했다”
했듯이 나는 여러분을 하늘과 중매한
사람입니다.(고후 11:2) 믿습니까?
그러니 이제 여러분들이 잘 지내고
잘 살아야 됩니다! 떨어뜨리면
안 됩니다. 내가 요번에도
불을 붙이고 갑니다.
그 동안 떨어진 사람들에게 다시 불을
붙이고 가니까 이제는 정말 잘 해
드려야 합니다. 모시고 섬기고 위하고,
하나님을 새벽마다 모시고, 저녁마다
모시고, 늘 생활 가운데 모시고 잘
해야지 잘못하면 또 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이거 살아야 되는가. 사람이
이렇게 없냐? 또 찾아 봐.” 그러면
할 수 없이 다른 사람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결혼해서 희망과 소망으로 불같이
살다가, 서로 이혼합니다.
왜? 사랑이 떨어져서 못 살겠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식어서.
사랑 문제 때문에 이혼하게 되는
것이지, 사랑 문제가 잘 조성되면
이혼을 됩니까?
어떤 사람이, 동네방네 사람이 다
말려도 결혼하지 말라고 해도 사랑이
불붙으면 결혼하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혼할 때는 어떻하는고
하니, 동네 람들이 이혼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인들이 서로 사랑 문제가 생겨서
서로 이혼해 버리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랑했는데 나중에는 왜
그랬을까? 그것은 다시 말하면 처음
사랑이 식은 것입니다. 가다 보니까
이 얘기 저 얘기 하고, 약점 흠점을
잡다 보니까 식은 것입니다.
사랑할 때는 눈이 먼다고 하는데,
눈이 멀 정도로 사랑해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저 사람은 도대체 저 사람과 살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사나?’ 하지만,
‘나는 저 사람하고는 못 살겠다.’
하지만 그 사람은 사랑 때문에 산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아무리 열심히 다녀도
하나님의 근원을 사랑치 못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한 회원이 나한테 와서
“선생님, 나.. 한 석 달, 넉 달 동안
교회에 못 다녔어요..” 했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하늘
사랑에 극진하게 살아왔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죄 지은 것이
아니여. 사랑이 신앙이여. 그러면 된
거여” 그랬습니다.
나도 어느 때는 한 일 년씩 교회에 못
나갔습니다. 산에서 기도 생활할 때.
하나님을 사랑하다 보니까 교회에 못
나간 것입니다. 그런데 내려와 보니까
교회에 안 나왔다고 신앙이 죽었다고
그랬습니다.
신앙이 뭐냐는 것입니다.
나는 신앙과 사랑이 다른 줄
알았더니만 모든 신앙을 다 불태워서
하나님과의 사랑의 불을 붙였으면
끝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다 보니까,
하나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1년 동안 교회에 못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나를 보고 1년 동안 교회에
안 나왔다고 그냥 땅이 꺼지게
걱정하고, 너무 안됐다고 하고,
꼴 좀 보라고 하고 막 그랬습니다.
그래서 몇 번 나왔는데,
이제부터 교회에 잘 다니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신앙이 열렬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이. 그리고 또 형제들을
사랑하느라고 전도하고 돌아다니고,
거지들을 데려다가 밥 먹여 보내고.
거지들이 있으면 주일 날 교회도
안 가고 얼른 집에 데려다가 밥 먹여
보내고, 같이 밥 먹으면서 얘기하고.
그게 바로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에만 가서 앉아 있으면 뭐합니까?
형제들은 얼어 죽고 배고파 죽고
있는데... 그래서 수요일 날도
예배드리러 안 가고, 동네 사람들이
거지를 때리길래 “내가 아는 사람인데
왜 때리냐? 어디 감히 손을 대냐?”
하니까 못 때렸습니다.
그 애들이 엊그제께 추석 명절 때
월명동에 와서 밥을 먹고 갔습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그랬습니다.
“거지와 친해서 뭐하냐?
참, 명석이 이해를 못 하겠다.”
나는 그때 교회 안 가고 거지를 집에
데리고 가서 밥을 먹이고, 불을 때서
목욕도 시켜 주고, 가위질을 해서
머리도 깎아주고 그랬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가위질을 해 봤습니다.
정말로 미친놈 머리 깎은 것처럼
머리를 깎아 놨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교회 갔다 와서,
교회에 안 왔다고 하며 “너는 왜 교회
안 나왔냐? 아니 교회를 왜 안
나왔냐? 너, 시험 들었냐?”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랬습니다. 안식일이고
뭐이고 사람이 병들었으면 고쳐 줘야
된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니다.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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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도 한 때는
유대인같이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여러분들이 그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그렇게 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어떻게 하늘을 사랑했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그동안
말씀가운데 많이 해 주었습니다.
“나는 한 시간도 하나님을 떠나면 못
사는데, 너희들은 어떻게 사느냐?”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말로만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는데,
실제적인 면에서는 기성 시대의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저렇게 해서는 망한다.” 했습니다.
아주 미쳐 버릴 정도로 하늘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래야 뭐이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공부도 공부에 미쳐 버려야 됩니다.
그래야 그 사람의 머릿속에 박힌 것이
있지, 책만 끼고 돌아 다닌다고
공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사랑, 사랑” 합니다. 사랑은 완전히
다~~ 사랑으로 해결해야 됩니다!
모든 문제들을 다 사랑으로 해결해야
사랑입니다! 씹을 때 씹어대 버리고,
때릴 때 때려 버리고, 밟을 때 밟아
버리고, 사랑할 때만 사랑하면 사랑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다 사랑으로
처리시키는 것이 사랑입니다!
모든 것을! 모든 것을 사랑으로
처리 시켜 버리는 것이 사랑입니다!
절대 하늘과 사랑이 멀어지면 안
됩니다! 심혈을 기울여서 내가 진실로
말하노니, 사랑이 식으면 죽는다!
하늘 사랑이 식으면 죽는다!
믿습니까?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사랑치 못하면 아무 힘아리가
없습니다.
오늘 여기 있는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사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사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다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꺼지면 30개론을 다 배웠어도,
아무리 열렬하게 해도 선생님께서
“난 너를 사랑치 않아!” 그러면 “예?
아이구.” 하고 기절초풍할 것입니다.
그러나 30개론을 안 배웠어도
“나, 너 사랑한다. 정신 바짝 차려.
알았어? 나, 너 사랑한다.”
그러면 어떻겠습니까. 좋겠습니까?
안 좋겠습니까? 좋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나님이 사랑을 주십니다!
절대로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기를
바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항상 열렬하게 사랑이 식지 않게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것이 없으면
절대 신앙의 본질을 찾지 못한
사람입니다.
내가 온 것은, 다시금 하나님과 땅을,
멀어진 사랑을 불붙이기 위해서
왔습니다!! 어제 말씀대로 불이
붙여진 것입니까?
내가 사랑을 불붙이러 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을.
다른 것을 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수료식도 불을 붙이러 온 것입니다.
특히 어제 통과한 사람들,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하던 사람인데
꼭 필요하다고 믿고서 다시금
불이 붙었으면 된 것입니다.
내가 온 보람이 있습니다.
어제 말씀을 들어보니까 그렇게
오해받을 하나님이 아니지요?
나쁜 하나님이 아니지요?
사랑의 하나님이지요?
아무 잘못이 없는 하나님이지요?
어제 말씀 들어보니까.
인간이 너무 멍청하고 제대로 못
깨달았고, 잘못 가르쳐서 하나님을
오해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성경을 잘 가르친다는
기성시대의 사람들이 성경을 잘못
가르쳐서 더 오해하게 만들고
더 안 믿게 만들어 놨는데, 내가 와서
가르쳐 주니까 싹 믿더라는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을 사랑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지요?
그것을 중심으로 해서 불이 붙고,
그 불을 꺼뜨리지 마십시오.
내가 성경을 가르쳐 주니까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 안 됩니다.
나는 말씀만 전해주고 떠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내 영광 받으려고
다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형제를 사랑해야
되겠구나! 이 두 계명은 율법의
대 강령입니다!
내가 가장 철학으로 삼는 성경구절이
마태복음 22장 36절로 40절입니다.
나는 옛날부터 그것을 좌우명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호가
<애천>이라는 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섭리의 호(號)가, 애천(愛天)!
하늘 천(天)에 사랑 애(愛)입니다.
변함없는 마음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기 바랍니다. 그래야 그것이야 말로
섭리사에서 누구보다도 다른 특정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런 마음이 식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각 교회를 돌아다녀다 보다가
그런 문제에 부딪혔을 때
크게 평가를 했습니다.
내가 통일교 모임에도 가 봤습니다.
저기 청평에도. 이런 큰일을 하기
위해서 각 교회를 다 돌아다녀 보고,
교파도 돌아봤는데, 거기 모임은
굉장하더라는 것입니다.
문선명 선생을 메시아로 보고
따라가고, 쫓아다니고 굉장했습니다.
내가 거기를 갔다 왔습니다. 한 2-3천
명이 모여 있었습니다. 산꼭대기에.
나를 구경시키기 위해서 데리고 간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그런데 내려올 때 전부 관광차를
대절했는데, 나는 그때 봉고차를 얻어
타고 갔었습니다. 올 때 보니까
차가 다 떠나 버렸습니다.
그런데 관광차가 죽 있는데,
나 좀 태워달라고 했습니다.
이만저만 이만저만, 이렇게 이렇게
왔다가 말씀 듣고 간다고 했는데
안 된다고 안 태워 줬습니다.
열다섯 대를 다 돌아다녔는데
안 태워 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야, 이 미친 놈들아!
너희가 구세주를 따라다니고
재림주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이냐?’
하고 속으로 욕을 하고서 ‘좋다.’
하고서 혼자 내려 왔습니다.
그때 내가 마음이 상해 버렸습니다.
그때 나만 받아줬어도 괜찮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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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차를 안 태워 줬다고,
그때 내가 그들을 평가했습니다.
“너희들이 재림주라 하며 사랑
이야기를 하는데, 도저히 못 믿겠다.”
하고 그때 내가 싹 돌아간 것입니다.
“아, 통일교도 그렇게 ‘사랑, 사랑’
해도 사랑이 없는 곳이구나.”
했습니다.
나 하나만 청평 산골짜기 떼어놓고,
내가 죽을 뻔 했습니다. 돌아오느라고.
뛰어도 뛰어도 끝이 안 나왔습니다.
얼마나 내가 무서움 탐을 많이
한다구요.
가만히 보니까 관광버스가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나 하나 태워줄 수도
있잖아요? 더군다나 자기 선생의
말씀을 듣고서 가는 사람인데 차를
안 태워 주더라구요. 하나만 태우면
되는데. 딱 하나만 태우면 되는데.
그래서 내가 지도자들을 모아놓고
그런 이야기를 수시로 해 줍니다.
“야, 내가 어디 갔다 오다가 이런
일이 있었다. 너희는 어디 갔다
올 때 차의 바퀴가 터져도 좋으니까
태워 갖고 와라.”
그래서 내가 어디 갈 때도 내 차에
애들을 태웁니다. 어제도 내가 여기에
오는데, 두 명인가 몇 명이 버스에 못
탄다고 하길래 버스를 한대 더 몰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버스가 또 왔습니다.
절대 여러분들끼리도 그런 데에서 큰
문제가 발생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쳐다보셨습니다.
너는 앞으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나만 태워줬어도 그 값을
엄청나게 해 줬을 것입니다.
이렇게 큰 영웅이 거기에 한 줄을
그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을 흔들고, 용(龍)이 되어서
흔들고 돌아다닐 사람인 줄을 몰랐던
것입니다.
못 본 것도 죄입니다!
세상을 내다본다고
“세계 신령협회”라고 간판을
붙였는데도 모르더라는 것입니다.
무슨 신령입니까? 산신령이면 모를까.
그때 내가 많이 깨닫고 깨달았습니다.
통일교인들이 그때 내가 그곳에 갔다
온 것을 알고서 “아 우리 교인이었다.
어쩌고..” 그러는데, 하이고 배 아프게
되었지요. 그때 나를 잡았으면
괜찮았을 텐데! 용이 간 것이었는데.
나는 항상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국의 루이스 황태자가
밤에 ‘거지처럼’ 돌아다녔다는
이야기를 항상 갖고 있습니다.
나도 그 짓을 잘 합니다. 어딜 가도.
그런 것을 가지고 각 교회를 돌아다녀
보고, 많이 돌아다녀 봤는데 그런 데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더라는 것입니다.
부산에 있는 교회들,
애들이 올 때 서운함 없이 잘 대해
주고 그래야 됩니다.
강대상에서는 막 외쳐놓고,
가서 딱 보면 그것이 안 이뤄질 때는
완전히 쇼크 중에 쇼크입니다.
생활 속에 이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꼭 그렇게 하기를
바랍니다. 지도자들은 그렇게 해
주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목사님 혼자서만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 전체가 다 그렇게
불이 붙어서 하라는 것입니다.
누구 하나만 갖고 할 수가 없습니다.
전체가 다 불이 붙어야 됩니다!
목회자들 120명이 불붙는다고
안 됩니다. 아까 이야기 한대로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서로 그렇게
하도록 하라! 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그렇게 해야 됩니다.
나는 사랑에 대해서 올(all) 백점을
맞는 사람입니다! 애들한테
“야, 나 사랑 되게 많지?” 그러면
“정말 많아요.” 합니다.
인정을 받습니다.
“맞다. 진짜! 너, 눈을 뜨고 다시
봐라. 내가 얼마나 사랑이 많은
사람인가!”
“그런데 그 사랑이 다 어디서
났어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준 사랑이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것 빼면 뭐 있습니까?
오늘 내가 말한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바람이 늘 불어서 머리카락이
날리고 옷자락이 날리듯이, ‘사랑의
바람’이 항상 살랑거리는 여러분의
심령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된 것입니다.
분명히 오늘 말씀으로 여러분이 어느
정도 깨달아졌을 것입니다. 두 시간
하나, 세 시간 하나 똑같을 것입니다.
여기 앉아 있을 때는 다
선인(善人)들입니다. 그러나 흩어 놓고
생활 속에 들어가 보면 압니다.
생활 속에 들어가서는 신발 좀
밟았다고 십팔 저팔 하고, 조금 뭐
했다고 십팔 저팔 하면 안 됩니다.
내가 기독교에서 그래서 학을 뗀
것입니다. 그 좋은 성경 말씀을
써먹으면서도 실천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잘 사랑하지요.
예수님은 잘 사랑하지요.
유대민족이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은 사랑했지만,
형제를 사랑하지 못했기에 형제
가운데 구세주가 왔는데 그걸
못 찾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형제가운데 왔는데. 형제 가운데
구세주가 있었는데 그것을 못 찾은
것입니다. 사랑하다보면 찾았지요.
사랑의 눈을 떠야 봅니다!
모든 사람들을 사랑으로 계속
대하다 보면 소돔 땅의 롯이 천사를
대접하듯이 그런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런 일들이 나의 역사 가운데 이야기
거리, 히스토리가 정말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를 잘 해 주고, 잘 사랑하고
다독거려 줘서 팔자가 폈습니다.
잘 사랑으로 다독거리고,
늘 그렇게 한 싸가지를 보고서
내가 ‘됐다.’ 하고서 하나님께
올린 것입니다.
여러분도 인정을 받아야 됩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누가 핍박을
하든, 나를 욕하고 무슨 짓을 해도
나를 사랑합니다. 그런 것을
내가 가만히 두고 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핍박을
다 이깁니다. 그러니까 핍박에서
지는 사람들은 나를 사랑치 않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치 않은
사람들입니다. 형제를 사랑치 않은
사람들입니다. 핍박을 못 이깁니다.
시험도 못 이기고, 어려움도
못 이기고. 그래서 내가 그러잖아요.
“야, 가만히 둬라. 쟤, 나를 사랑하면
다 이긴다.” 그럽니다.
2015_09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19
나를 사랑하면 다 이긴다!
왜? 목숨을 걸고 다 하거든요.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런 것을 가지고
앞으로 섭리역사를 뛰고!
요번에 내가 온 것은 다시금 하나님과
떨어진 사랑을 가깝게 하라고 왔고,
서로 상한 마음을 서로 하나 되게
만들어 주고, 그러려고 온 것입니다.
불을 붙여, 그 불이 꺼지면 안 됩니다.
불 꺼지면 어떻게 삽니까.
요새 겨울밤에 불 꺼지면 못살듯이
심령의 불이 꺼지면 못 사는 것입니다.
다시 불을 붙여 놓았으니, 다시
불 일듯 하는 사랑이, 처음 사랑이
불붙어서 열심히 뛰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소돔 땅은 형제들을 많이
사랑했습니다. 성으로 불타는
도시였으므로.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치 않았기 때문에 심판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했으나
형제를 사랑치 못했기 때문에 형제
가운데 보내 준 메시아를 못 찾아서
심판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에 완전히 눈을
떠서 불 붙은 사랑이 되어야겠습니다.
자, 노래 한번 불러봅시다.
(일편단심)
< 기 도 >
깊은 하늘의 도를 깨우쳐 주셨으니,
오직 온 인류의 모든 슬픔과 고통과
아픔과 뼈저림이 있는 것은 사랑이
식어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심장이
멈추면 인간이 죽고, 열이 식으면
죽듯이, 사랑이 식으면 가정이고
개인이고 민족이고 종교이고 어느
존재 세계든지 존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거기에는 미움이요 아픔이요
전쟁이요, 그리고 칼이요 검이요
무서운 것들이 도발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줬습니다.
다시금 우리에게 이렇게 온 것은,
내가 온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다시 하늘을 사랑하라는 인식을
시키고 사랑을 넣어 주기 위해
왔사오니 사랑이 불붙는 자들이
되라고 했습니다.
먼저 된 자도 그러하고,
나중 된 자도 그러하고 그러함을
받도록 하라고 했사오니 그 말씀의
실존의 존재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이들을 하늘 앞에 연관을
시켜놓고, 모든 관계를 맺어놓고
가오니 그 사랑이 떨어지지 않게
하시고, 열렬함 가운데 다시
내가 올 때까지 그 열렬함이
충만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내가 소개한 이들이 하늘 앞에
난처함을 받지 않도록 이들이
사명을 다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더해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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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13일 수요일
오직 참사랑
[ 마태복음 22장 36-40절 ]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36 'Teacher, which is the greatest
commandment in the Law?'
37 Jesus replied: "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38 This is the first and greatest
commandment.
39 And the second is like it: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40 All the Law and the Prophets hang
on these two commandments.'
선생님 명설교(편집본)
1993.10.31. 부산동명대
어제 이어서 여러분들도 갑자기
내려왔기 때문에 좀 바빴을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우리의 삶은 생활 속에
준비되고 예비 된 삶을 항상 가지라는
말씀이 여러분들의 철학이 되었기
때문에 전에 왔을 때보다 많이
달라졌어요.
척척, 갑자기 전달하고
갑자기 무슨 일을 시켜도.
그만큼 여러분들의 수준이
높아졌다고나 할까요?
세계 각 나라에 있는 섭리의 여러분,
나는 오늘 대한민국의 두 번째
대도시인 부산에 왔습니다.
부산 동명대학 캠퍼스의 운동장에서,
스탠드에 자리 잡고 주일말씀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바람이 많이 불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가 오다가 갠 날이라
아주 청명합니다. 이 부산지역은
상당히 따뜻한 지역인데도 오늘은
싸늘하네요. 싸늘한 것도 설교할 때는
좋습니다. 왜 그런가하면 혹시
여러분들이 졸까봐.
나는 조는 데 대해서 아주 질색입니다.
집에 있는 것보다 여기 와서 조는
것이 낫다고 하는데,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여기 와서도
졸지 말고 잘 들으라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의미 있는 얘기인
줄 압니다. 먼저 번에 선생님 고향에서
만여 명이 모여서, 그때도 새벽에
꼬박꼬박 졸고 있는데 비가 쏟아져
가지고 잠이 싹 달아나게 만들고,
말씀을 푹 집어넣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각 나라에서 말씀을 들으면서
나의 모습을 볼 것인데,
다시 또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러분들이 늘 나를 접하고 있지만,
나는 여러분들을 비디오 찍어서
보내는 나라는 보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는 편지나 소식으로만
전해 듣고, 또 가끔 전화로 모든
소식을 듣게 됩니다.
오늘 부산까지 왜 이렇게 왔는고 하니,
어제 말씀 수료식이 있었고,
오늘 주일 예배를 드리고, 또 오후에는
운동을 하고 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늘 외국에서 봐서,
선생님 모습을 보아서
아주 여러 가지로 평가를 하겠지요.
모두 여러분들, 이 나라에 한번 와
보면 작은 나라이지만 꼭 와 볼만한,
이런 섭리가 아니어도 와 볼만한
나라이고, 그 중에서도 와 볼만한
도시가 이 부산 도시입니다.
부산은 항구 도시로서 유명한
곳입니다. 나는 이곳을, 이 부산 땅을
여기 있는 사람들이 거의 태반이 나기
전에 부산 땅을 월남 가면서 몇 번
지나갔습니다. 첫 번에 갈 때도
여기 부산으로 가고, 두 번째 갈 때도
부산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그 노래 가운데,
“또 다시 돌아오마 부산 항구야”
그 노래가 있습니다.
“미스 리도 안녕히, 미스 김도 안녕히”
그 노래가 귀에 쟁쟁한데,
24년 전에(1993년 기점) 내가 이곳을
거쳐 갔으니까 24살 안에 끼어 있는
사람들은 전부 내가 왔다 가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렇게 왔다 간 것이
두 번 왔다 가고, 그리고 섭리를
뛰면서 오게 되었습니다. 섭리 덕분에.
여러분들의 나라에도 꼭 와 보라고
하는데, 참 그게 가기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부산도 몇 명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여러분같이 몇 명씩 전도될 때가
있었는데, 이와 같이 수천 명씩
모이는 오늘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각 나라가 부지런히 많은 생명들을
복음의 하나님의 말씀 앞에 돌아오게
한다면 내가 갈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입니다. 비행기를 타면 부산에
내려오는 시간보다 더 빨리 갈 수
있습니다.
일본 같은 나라는 2시간이면 가니까.
2시간만 타고 가면 “내려” 하면
나리타공항에 벌써 도착합니다.
여기는 부산입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말씀을 듣다가
이 한국에 와 보면,
“아, 부산! 맞아 저기.” 하고
본 기억이 난다고 할 것입니다.
전국에 있는 각 120개의 교회들,
오늘 나는 동명대학에서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동명대학교에 대해서
많이 몰라도, 참 마음씨 고운
학교라고 보면 됩니다.
비디오를 한 바퀴 돌려서 보여
주겠습니다. 각 학교마다 자랑할 것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비디오를 돌려 줄
테니까 한번 학교가 대개 어떻게
생겼으며, 여기도 다 찍을 수 없지만
아주 멋있습니다.
각 학교 캠퍼스마다 자랑하고 싶은 게
있지만, 이곳을 거쳐 나온 여러분들은
자랑스러울 것입니다. 여러분의 학교가
세계 방송에 나가게 되니까 좋을
것입니다.
전국 각 캠퍼스, 200여개의 캠퍼스들!
대개 내가 강연을 하게 되면, 말씀을
주게 되면 각 대학교에 가서 하는데,
안 다닌 학교가 없습니다.
어느 학교는 두 번씩 세 번씩
다니기도 했는데, 여대에는
내가 잘 못 갑니다.
이화여대라든가, 숙명여대라든가,
부산여대라든가 이런 데 가서는
이렇게 못 모입니다.
남자들이 노는 장소는 잘 빌려 주지만,
여자들이 노는 장소는 잘 안
빌려줍니다.
오늘 말씀은 마태복음 22장
36-40절의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이 말씀을 많이 들어도
그 <핵>을 모르면 안 됩니다.
<핵>을 알아야 됩니다!
2015_09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21
성경의 중요한 말씀이,
어디가 제일 중요하냐?
어느 구절이 중요한 말씀이냐?
많이 이야기 하지만,
오늘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2장
36절부터 40절까지가 중요한
말씀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데, 목숨을
다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고,
목숨을 다한 ‘하나님 섬김의 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람을 대할 때에도 하나님을 대할
때에도 그렇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많은 이야기가 많이 있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여러 교훈과 여러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그 핵은
무엇이냐? 결국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그 말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너 그렇게 되면 괜찮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살면 괜찮다. 팔자가 편다.
신세가 편하다. 그리고 영원히 잘
된다.”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내가 30개론의
그 깊고 심오한 말씀을 지구가 생기고
처음으로 종교의 깊은 감동적인
말씀을 여러분이 들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맞는 말입니다.
내가 성경을 2000독 이상이나
읽으면서 깨달은 말씀을 여러분에게
줬는데, 그렇게 많은 말씀을 주고,
그리고 또 늘 체육 운동도 하고, 뛰고
달리면서 여러분들과 웃고 지냈습니다.
그렇게 여러분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 주고, 가르쳐 주고, 많은 말씀을
할 때는 한 40여 시간까지 했습니다.
일찍 온 사람들한테는. 한 자리에서
10시간 설교할 때도 있었고.
그렇게 많이 해 준 것은,
결국은 뭔고 하니, 내가 누구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했습니까?
누구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여러분에 대해서?
국가에 대해서?
누구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까?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위대하고,
가장 크신 분이시고, 필요한
존재자인데 여러분들이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그래서 내가 하나님에 대해서
그래도 고상하게, 그래도 깊이 깨닫고
와서 여러분들에게 가르쳤는데, 그렇게
가르쳐 주고 나니까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사랑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지요! 특히
믿고 싶다는 이야기보다는 사랑하고
싶다는 자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왜 그런가하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그렇게 사랑한다고 얘기해 주었거든요.
하나님이 여러분을 그만큼 역사하고
함께해 주었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에 ‘아! 나를 그렇게
사랑해 준다면, 나를 그만큼 하나님이
아껴주고 위해 주셨다면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하고서,
그 설득력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실질적인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여러분들이 그것을 믿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게 많이 내가 말씀하고 이야기를
했어도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사랑치
않는다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여기 와서 준비하고
예비하고 마이크도 준비하고 그랬지만,
내가 와서 설교를 안 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설교도 안 하고
왔다가 그냥 쳐다만 보고 간다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모든 것은 오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와 같이 내가 이렇게
모든 것을 했을지라도, 내 젊음을
바쳐서 여러분에게 말씀을 전해 주고,
진리를 가르쳐 주고, 대둔산 산
용문골 골짜기에서 30년의 기나긴
역사동안 눈보라를 맞고 찬바람을
맞으면서 바람을 헤치면서 깨달은
말씀을 갖다 줬어도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사랑치 않는다면 나는
헛 공사를 한 것이라 그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래요, 안 그래요? 여러분들이
지금도 하나님을 사랑치 않는다면
나는 헛일을 한 것이라 그것입니다.
사랑하고 있습니까?
소리 지르지 말고
손만 흔들어 보십시오.
“하나님, 정말 이제 깨달았습니다.”
내가 한 일이 정말 보람된 일을 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와 같이,
그 전에는 형제들끼리 별로 의가
안 좋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종교를
볼 때에 서로 박멸시하고 박대시하고
원수시하고 서로 이단시하고 서로
싸우고 그랬습니다.
“윗사람, 앞의 사람, 전후좌우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내가 많이
이야기를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많이
달라졌습니까?
아무리 내가 깊은 진리의 심오한
말씀을 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지금도 옛날같이 지낸다면 내가 말한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지금은 많이
변화되었습니까?
많이 변화되었어요?
인간이 100%는 다 변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어렵습니다.
50%만 변했어도 “악!” 하고 “야!”
하고 정말 기절초풍을 하겠습니다.
80% 변했으면 더 놀라지요.
“나는 적어도 50% 이상은 변했다.”
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80% 이상 변했다.” 하는 사람이
있다면 손들어 보세요.
옆 사람을 쳐다보세요.
괜히 “너, 그것이 아니잖아?” 그러면
안 됩니다. 말씀 듣고 80% 이상
변했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사람에게 하는 일들은
여러분들이 희박하군요.
그래도 80% 이상 변한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 내가 볼 때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그렇게 안 변했습니까?
오늘 말씀 듣고
또 변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80%이상
변했다.” 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형제에 대해서 확인할 때보다 많은
인원이 손을 들었다)
이게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늘을 향한 것은,
예수님 당세 때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2015_09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22
데 있어서는 굉장했습니다.
그런데 형제를 사랑하는 데에
미약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점수를 줄 때 어떻게 주는가
하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 50점’,
‘인간 사랑 50점’ 해서 100점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 거기 문제가,
내신 성적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거기가 문제입니다.
그것이 상당히 크게 참고가 됩니다.
내신 성적! 과거에 살던 것!
과거에 공부했던 것이 크게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평소 신앙!
오늘 설교 듣고서
앞으로 형제를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내가 30개론을 가르치고, 심오한
말씀을 가르치고, 여러분들과 같이
뛰고 달리며 밥을 먹고, 같이 운동도
하고, 그저 체면과 위신을 세우지 않고
했습니다.
내가 체면 세우면 이렇습니다.
나를 좀 봐요. 옷 좀 쳐다봐요.
완전히 원앙새같이 입고
돌아다니잖아요.
이것 벗고 운동복을 입을 때는,
수만 명이 따르는 지도자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안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그런데 운동복 입고, 같이 사우나
가고, 사우나에 같이 가면 사람들이
얼마나 욕을 하는 줄 압니까?
“보니까 지도자 같은데, 따르는
제자들과 같이 목욕을 다닙니까.
창피하지도 않습니까?
교수만 돼도 밑의 학생들과 같이
목욕을 안 다니는데...” 그럽니다.
그래도 여러분들에게 사랑을 심어주기
위해서, 그리고 형제끼리 사랑하고,
서로 우애 있게 지내라고 하기 위해서
그렇게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같이 운동도 하고, 같이 밥도 먹고
그러는데, 하여튼 타령입니다.
새타령처럼 타령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형제들을 서로 사랑하는
<본>을 보인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충분히 했는데도
여기서 더 본을 보여 달라고 하면
“아이고, 그러다가 나 죽는다.” 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오늘 더 본을
보여 달라는 소리를 하지 말고
‘아, 이거 안 되겠다. 우리가 더
자각하고 해야 되겠다’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깨닫고 해야 됩니다.
오늘부터 하겠다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이것은 내가 서약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서약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설교를 깊이 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늘은 바로 그것을 깨우쳐 주고
오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것을 깨우쳐
주려고 하나님께서 나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많은 말씀이 있는데, 그 말씀을
핵적으로만 가르쳐 주겠습니다.
“너희들이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이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13장에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가 됩니다.
진리가 없으면 멸망의 세계로 가지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 같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길 원하는데,
사실상 가르쳐 주었으니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왜 그런가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면 우리는 모릅니다.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잘 모릅니다.
알겠어요? 모른다는 것입니다.
절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바로 체험하게 됩니다. 그동안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해 왔나.
깨달았어요?
무슨 얘기인고 하니,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계속
사랑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를.
어떻게 해야 얼마나 사랑하는가
나오는고 하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 봐야 그동안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했나 그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꼭 사랑해 봐야
됩니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사랑을
받았나에 대해서 알려면.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보면 하나님은
은근히가 아니라 실상적으로 까놓고
볼 때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해 왔습니다.
그것이 정수(正手)로 되어 있습니다.
바둑 둘 때 정수가 있듯이 정수입니다.
욥도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이
욥을 사랑하기 전에 욥이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탈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탄이나
흑암의 탈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탈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먼저 사랑해야 됩니다!
나는 20-30년 동안 계속적으로 기도
생활을 하고 남달리 신앙생활을
했는데, 그것은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서, 진리에
대해서 깨닫고 ‘아 내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겠구나. 하나님이 나를
사랑치 않아도 내가 계속 평생 동안
하나님을 사랑해도 그동안 해 준 것을
못 다 갚는다.’ 고 깨달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사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 사랑이
식지를 않고 있습니다.
내가 점수가 많이 있지만, 아마 사랑
점수가 제일 많이 나올 것입니다.
지구촌 역사상 전체를 칠 때 나를
꼽을 정도로, 그 정도로 사랑했습니다.
지금도 열렬하지만, 그것 빼면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 모든 진리를 깨달은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깨달은
것입니다! 결국 남는 것은
사랑밖에 안 남았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끊어지면
내가 진리를 아무리 전하고
돌아다녀도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만다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내가 아무리 진리를 가지고 있고,
외치고 다녀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의 이 꺼진다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끝났다는
것입니다. 끝장났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런 본(本)을 보여 주시고,
말씀해 주시고, 그렇게 하시고
가셨습니다.
두 번째는 그렇다면 우리끼리도,
너희들이 나를 사랑해 보지 않고서는
내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왜? 너희들이
나기 전부터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이해가 잘 안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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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우쳐 주겠습니다.
너희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내가 감람산에서 기도를 했습니다.
이 진리를 가지고 나가서 외칠 때
젊은이들에게 외칠 텐데 이들을
사랑해 달라고, 온 인류의 젊은이를
사랑해 주시고, 온 인류를 사랑해
달라고 계속 뱅뱅 돌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보호해 달라고,
큰 사고(事故) 안 나게 해 달라고,
그리고 잘 되게 해 달라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여러분의 어머니도
부모님들도 그렇게 안 했다는
것입니다.
사망으로 가는 영혼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참고 견디면서
수년의 겨울을 났다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만일 사랑이 없었다면
내가 따뜻한 방에서 잠자지 뭐하러
거기에 들어가 있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항상 너희들이 나를 사랑해야
사탄이 방해하지 않는다!
잘 적어 놓으십시오. 욥이 하나님을
사랑하니 사탄이 방해를 못했습니다.
방해했으나 방해가 안 되었지요. 그
방해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이제 깨닫겠지요? 그와 같이 너희들이
나를 사랑해야 방해 안 한다.
하늘 편으로 오는 데에.
그것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믿습니까?
아무리 배웠다고 해도
‘사랑의 불덩어리’가 식는다면
30개론이 머릿속에 있어도 그것은
울리는 꽹과리! 30개론을 안
잊어버립니다. 진리가 철저하기
때문에.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깨닫고
“참, 진리는 좋은데...” 하면서 나가는
사람은 선생님과 사랑의 세계가
끊어졌기 때문에, 깨졌기 남자든
여자든 자꾸 나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무조건 믿습니다!
나를 사랑하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가 아니라,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습니다. 사랑하면 그렇습니다.
사랑하면 무조건 잘못했어도 그냥
좋다고 하고, 잘했다고 하고,
잘 한 것이라고 하고 그럽니다.
그래서 사랑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 의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낫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과거 사람보다는 나아야 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리고
너희 의가 현재 기독교인들이라는
종교인보다는 나아야 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더 좋은 말씀을 듣고, 더
지도자가 몸부림을 쳐서 말씀을
가지고 왔으니 더 나아야 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요, 안 그래요?
그리고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도 잘 지킨다!
사랑 안 하면 계명을 안 지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실천을 안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실천합니다!
그를 사랑하는데, 어떻게 다방에 가서
안 기다릴 수 있습니까.
그를 사랑하는데, 그가 다방에서
만나자고 하는데. 사랑하지 않으면
안 갑니다.
“안 오냐?”
“뭘 가냐?”
“아까 온다고 하지 않았냐?”
“가기가 싫어.”
사랑치 않기 때문에 안 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랑하면 계명을 지킨다고
하나님께서 평가를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사랑하면 계명을 지킬
것입니다. 이 두 계명은 율법이요,
선지자의 대 강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에 대한
성경 구절을 불러 주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참 사랑>은
투기도 시기도 하지 않고,
온유한 마음으로 대한다.
남을 사랑하는 것을
자기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한다.
이건 뭐, ‘신의 사랑’입니다.
사랑 앞에는 방언이고 예언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다. 마지막에는
사랑으로 모든 것이 폐함을 받게
된다! 오늘 말씀을 중심해서
고린도전서 13장을 읽고
자기 것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아가서 8장 6-7절,
“사랑은 불같다! 죽음도 이긴다.
죽는 길도 피해갈 수 있다. 사랑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신명기 7장 8절,
“내가 너희를 사랑했기 때문에
애굽에서 구원했지 그냥 구원했겠냐?”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7장 47절을 보면,
“죄 사함을 많이 받는 사람은
결국 사랑을 많이 받기 때문에
사함을 많이 받는다.” 했습니다.
미워하면 죄 사함도 안 해 준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죄를 얼른
용서해 줍니다. 죄 있는 상태에서
사랑할 수 없으니까.
요한복음 13장 1절,
예수님은 죽을 때까지, 끝까지 온
인류를 사랑하다 죽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도 기어코 사랑하다 죽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4절을 보면,
“첫사랑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이 끝난다.” 했습니다.
이사야 5장 31절,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 있게
돋음같이 빛나게 된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 46절,
너희는 사랑하는 자만 맨날 사랑하지
말고 사랑치 않는 사람도 골고루
사랑해 주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참된 사랑을 가진 자들의 일이라고
했습니다.
잠언 8장 36절,
미워하게 되면 사망을 사랑하는
사람과 똑같다고 했습니다.
미움은 금물이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2장 10절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나, 미워하는 자는 어둠가운데
거하는 자와 똑같다고 했습니다.
어둠으로 인해 눈이 먼 자라고
했습니다.
아가서 5장 1절을 보면,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내 동산에서
나와 같이 놀자고 했습니다.
아가서 6장 3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는 내 것이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2015_09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24
사랑하는 자를
각종 좋은 것으로 비유를 들어서
말씀했으니 아가서 5장 10-16절을
보면, 사랑하면 무조건 눈이 멀어서
다르게 보인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그러하심을
받게끔 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무진장 사랑하면
하나님께서는 상상할 수 없이 대해
주십니다. 죄이고 뭐이고 묻지도
않습니다.
잠언서 7장 18절을 보면,
사랑이 있음으로 희락도 있는 것이지
사랑이 없을 때 희락이 있겠냐고
했습니다.
그런데 잠언서 10장 12절을 보면,
사랑은 모든 허물도 가려준다고
했습니다. 허물을 자꾸 끄집어내면
사랑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5장 14절을 보면,
그리스도가 너희를 사랑하심을 너희는
깨닫느냐? 그렇다면 그와 같이 그
사람의 종이라고 생각하면서 한번
그 사람을 사랑해 봐라! 그런 정신과
인식을 가지고 사랑해 보라고
했습니다. 사랑이 안 되면.
요한일서 4장 12절을 보면,
“너희가 사랑치 않으면 내가
너희 마음속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 정신이, 하늘 정신이
갈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13장 10절을 보면,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사도
바울도 말씀했습니다.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 하나님을
목숨 걸고 사랑한다면 거기에는 법도
필요 없다. 재판도 필요 없고 심판도
필요 없다” 는 것입니다. 사람을
미워하면 사람으로부터 심판 받게 될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치 못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심판 받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 17절을 보면,
베드로에게
“이제 내가 마지막으로 네게 묻는다.
너 나 진짜 사랑하느냐?”
“예, 사랑합니다.”
“정말 사랑하느냐?”
“네”
“진실로 사랑하느냐”
“네”
“진짜 사랑한다면 양들을 쳐 봐라.
양치는 것을 보면 내가 알겠다.
내 양들을 잘 좀 쳐라, 잘 보살펴
주도록 하라. 주의 사랑하는 자를
잘 좀 보살펴 주도록 하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믿습니까?
너희들이 진실로 사랑해요? 옆 사람이
얘기하니까 얘기하지 말고. 오늘
말씀이 상당히 저울질하는 말씀입니다.
정말로 사랑해?
그렇다면 부지런히 많은 생명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해요.
핵심의 말씀은 뭔고 하니,
우리는 모든 것을 다 투자해서,
젊음을 투자해서 결국 진리를 깨닫고
찾았습니다. 그리고 뛰고 달리면서,
엎어지면서, 일어나면서 땀을 흘리면서
그 엄청난 땡볕에 뛰고 달리면서
얼굴을 끄슬리면서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산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의
인연을 맺기 위해서, 하나님과 인연을
맺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땅의 형제들과 인연을
맺기 위해서! 그런데 그것을 못하고
깨진다면 이제껏 한 것이 헛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연속적으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내가 하나님을 사랑치 않는다면
말씀을 가지고 아무리 뛰고 달려도
필요 없는 것입니다. 인연이
끊어졌으면. 하늘과 사랑의 인연이.
하늘과 사랑하는 그 인연이
끊어졌다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말씀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그런 정신과
실천이 없으면 30개론을 배운 것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깨달은 것, 온 인류가 터득치
못한 진리를 가지고 왔어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깨닫고
하기 위해서 내가 몸부림쳤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하라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꼭 그렇게 해야 됩니다.
사랑이 식으면 죽습니다.
사랑을 주고받고 하는 섭리사에서
사랑이 식었으면. 여러분의 몸의
온도가 식으면 죽습니다.
37도에서 내려가면 죽습니다.
심장이 멈추면 죽듯이.
심장이 멈추니까 금방 죽더라는
것입니다. 엊그제 한 엠에스를 보니까
심장이 멈추니 금방 죽더라구요.
심장이 멈추고서 3-5초 사이에 다시
심장이 뛰지 않으면 그냥 죽는다고
합니다. 일어날 수가 없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의 ‘사랑의 심장’이
항상 뛰어야 됩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뜨거운 열정으로!
아까 보니까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거진 다 있는데,
그래도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내가 아까 얘기했지만, 하루에도
열댓 번씩 ‘헛손질’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헛손질이 뭔고 하니, 가다가 옆에
하나님이 따라오시나 안 따라오시나!
하나님이 항상 따라 다녀야 됩니다.
사랑하면 안 따라다닐 수가 없습니다.
나부터도 그렇습니다. 따라다닌다는
것입니다.
애인을 막 사랑하고 다니는 사람들은
가끔 헛손질을 합니다. 그 애인이 딴
데 있는데도 하던 습관이 있어서.
꿈에도 소원이.
사랑하면 하나님이 여러분과 동행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같이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완벽하게 해 놓아야 됩니다.
“사랑 없는 심판을 내린다 할 때
자신 있느냐?” 했을 때 자신 있다고
할 정도까지 되어야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날보고
“선생님, 난 정말 선생님 사랑해요.”
하길래 “난 잘 모르는데.” 그랬습니다.
“아니, 나 선생님을 얼마나 사랑하다고
그래요?” “나 몰라. 다시 생각해 봐.”
그랬습니다. 그래서 돌려보냈습니다.
평창동에 왔는데.
‘관념적인 사랑’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실질적인 뼈에 와 닿는
사랑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치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하나님을
미워하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들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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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실질적인 사랑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실적을
세우고 계명을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런 문제들이 현실에서 크나큰
것입니다.
오늘 설교 말씀을
가만히 일주일 동안 보십시오.
사랑이 있으면 전쟁도 필요 없습니다.
사랑했으면 국방문제가 다 해결되어
버립니다. 사랑하면 세상만사가
다 해결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왜 지옥에 가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를 왜 보내겠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이 식으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식지 않도록 해요.
사랑이 식으면 죽습니다.
열이 식으면 죽고 심장이 멈추면
죽듯이 사랑이 식으면 죽는다!
신앙이 식으면
벌써 사망권이 덮친 것입니다.
‘신앙이 식었다’ 하기 보다는
‘사랑이 식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식었다, 형제를 사랑하는
사랑이 식었다’ 이렇게 봐야 됩니다.
그것 없으면 다 필요 없습니다.
울리는 꽹과리입니다. 여러분이
사랑이 없으면 기성시대보다 나은
점이 없습니다. 왜? 더 엄청난 말씀
듣고서 못하면 더 못한 사람들이지요.
어제 통과식 때 그 엄청난 말씀을
한 것은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이야기입니다. 나를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너희를 그리스도와 중매했다”
했듯이 나는 여러분을 하늘과 중매한
사람입니다.(고후 11:2) 믿습니까?
그러니 이제 여러분들이 잘 지내고
잘 살아야 됩니다! 떨어뜨리면
안 됩니다. 내가 요번에도
불을 붙이고 갑니다.
그 동안 떨어진 사람들에게 다시 불을
붙이고 가니까 이제는 정말 잘 해
드려야 합니다. 모시고 섬기고 위하고,
하나님을 새벽마다 모시고, 저녁마다
모시고, 늘 생활 가운데 모시고 잘
해야지 잘못하면 또 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이거 살아야 되는가. 사람이
이렇게 없냐? 또 찾아 봐.” 그러면
할 수 없이 다른 사람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결혼해서 희망과 소망으로 불같이
살다가, 서로 이혼합니다.
왜? 사랑이 떨어져서 못 살겠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식어서.
사랑 문제 때문에 이혼하게 되는
것이지, 사랑 문제가 잘 조성되면
이혼을 됩니까?
어떤 사람이, 동네방네 사람이 다
말려도 결혼하지 말라고 해도 사랑이
불붙으면 결혼하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혼할 때는 어떻하는고
하니, 동네 람들이 이혼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인들이 서로 사랑 문제가 생겨서
서로 이혼해 버리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랑했는데 나중에는 왜
그랬을까? 그것은 다시 말하면 처음
사랑이 식은 것입니다. 가다 보니까
이 얘기 저 얘기 하고, 약점 흠점을
잡다 보니까 식은 것입니다.
사랑할 때는 눈이 먼다고 하는데,
눈이 멀 정도로 사랑해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저 사람은 도대체 저 사람과 살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사나?’ 하지만,
‘나는 저 사람하고는 못 살겠다.’
하지만 그 사람은 사랑 때문에 산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아무리 열심히 다녀도
하나님의 근원을 사랑치 못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한 회원이 나한테 와서
“선생님, 나.. 한 석 달, 넉 달 동안
교회에 못 다녔어요..” 했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하늘
사랑에 극진하게 살아왔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죄 지은 것이
아니여. 사랑이 신앙이여. 그러면 된
거여” 그랬습니다.
나도 어느 때는 한 일 년씩 교회에 못
나갔습니다. 산에서 기도 생활할 때.
하나님을 사랑하다 보니까 교회에 못
나간 것입니다. 그런데 내려와 보니까
교회에 안 나왔다고 신앙이 죽었다고
그랬습니다.
신앙이 뭐냐는 것입니다.
나는 신앙과 사랑이 다른 줄
알았더니만 모든 신앙을 다 불태워서
하나님과의 사랑의 불을 붙였으면
끝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다 보니까,
하나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1년 동안 교회에 못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나를 보고 1년 동안 교회에
안 나왔다고 그냥 땅이 꺼지게
걱정하고, 너무 안됐다고 하고,
꼴 좀 보라고 하고 막 그랬습니다.
그래서 몇 번 나왔는데,
이제부터 교회에 잘 다니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신앙이 열렬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이. 그리고 또 형제들을
사랑하느라고 전도하고 돌아다니고,
거지들을 데려다가 밥 먹여 보내고.
거지들이 있으면 주일 날 교회도
안 가고 얼른 집에 데려다가 밥 먹여
보내고, 같이 밥 먹으면서 얘기하고.
그게 바로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에만 가서 앉아 있으면 뭐합니까?
형제들은 얼어 죽고 배고파 죽고
있는데... 그래서 수요일 날도
예배드리러 안 가고, 동네 사람들이
거지를 때리길래 “내가 아는 사람인데
왜 때리냐? 어디 감히 손을 대냐?”
하니까 못 때렸습니다.
그 애들이 엊그제께 추석 명절 때
월명동에 와서 밥을 먹고 갔습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그랬습니다.
“거지와 친해서 뭐하냐?
참, 명석이 이해를 못 하겠다.”
나는 그때 교회 안 가고 거지를 집에
데리고 가서 밥을 먹이고, 불을 때서
목욕도 시켜 주고, 가위질을 해서
머리도 깎아주고 그랬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가위질을 해 봤습니다.
정말로 미친놈 머리 깎은 것처럼
머리를 깎아 놨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교회 갔다 와서,
교회에 안 왔다고 하며 “너는 왜 교회
안 나왔냐? 아니 교회를 왜 안
나왔냐? 너, 시험 들었냐?”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랬습니다. 안식일이고
뭐이고 사람이 병들었으면 고쳐 줘야
된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니다.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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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도 한 때는
유대인같이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여러분들이 그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그렇게 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어떻게 하늘을 사랑했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그동안
말씀가운데 많이 해 주었습니다.
“나는 한 시간도 하나님을 떠나면 못
사는데, 너희들은 어떻게 사느냐?”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말로만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는데,
실제적인 면에서는 기성 시대의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저렇게 해서는 망한다.” 했습니다.
아주 미쳐 버릴 정도로 하늘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래야 뭐이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공부도 공부에 미쳐 버려야 됩니다.
그래야 그 사람의 머릿속에 박힌 것이
있지, 책만 끼고 돌아 다닌다고
공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사랑, 사랑” 합니다. 사랑은 완전히
다~~ 사랑으로 해결해야 됩니다!
모든 문제들을 다 사랑으로 해결해야
사랑입니다! 씹을 때 씹어대 버리고,
때릴 때 때려 버리고, 밟을 때 밟아
버리고, 사랑할 때만 사랑하면 사랑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다 사랑으로
처리시키는 것이 사랑입니다!
모든 것을! 모든 것을 사랑으로
처리 시켜 버리는 것이 사랑입니다!
절대 하늘과 사랑이 멀어지면 안
됩니다! 심혈을 기울여서 내가 진실로
말하노니, 사랑이 식으면 죽는다!
하늘 사랑이 식으면 죽는다!
믿습니까?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사랑치 못하면 아무 힘아리가
없습니다.
오늘 여기 있는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사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사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다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꺼지면 30개론을 다 배웠어도,
아무리 열렬하게 해도 선생님께서
“난 너를 사랑치 않아!” 그러면 “예?
아이구.” 하고 기절초풍할 것입니다.
그러나 30개론을 안 배웠어도
“나, 너 사랑한다. 정신 바짝 차려.
알았어? 나, 너 사랑한다.”
그러면 어떻겠습니까. 좋겠습니까?
안 좋겠습니까? 좋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나님이 사랑을 주십니다!
절대로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기를
바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항상 열렬하게 사랑이 식지 않게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것이 없으면
절대 신앙의 본질을 찾지 못한
사람입니다.
내가 온 것은, 다시금 하나님과 땅을,
멀어진 사랑을 불붙이기 위해서
왔습니다!! 어제 말씀대로 불이
붙여진 것입니까?
내가 사랑을 불붙이러 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을.
다른 것을 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수료식도 불을 붙이러 온 것입니다.
특히 어제 통과한 사람들,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하던 사람인데
꼭 필요하다고 믿고서 다시금
불이 붙었으면 된 것입니다.
내가 온 보람이 있습니다.
어제 말씀을 들어보니까 그렇게
오해받을 하나님이 아니지요?
나쁜 하나님이 아니지요?
사랑의 하나님이지요?
아무 잘못이 없는 하나님이지요?
어제 말씀 들어보니까.
인간이 너무 멍청하고 제대로 못
깨달았고, 잘못 가르쳐서 하나님을
오해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성경을 잘 가르친다는
기성시대의 사람들이 성경을 잘못
가르쳐서 더 오해하게 만들고
더 안 믿게 만들어 놨는데, 내가 와서
가르쳐 주니까 싹 믿더라는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을 사랑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지요?
그것을 중심으로 해서 불이 붙고,
그 불을 꺼뜨리지 마십시오.
내가 성경을 가르쳐 주니까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 안 됩니다.
나는 말씀만 전해주고 떠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내 영광 받으려고
다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형제를 사랑해야
되겠구나! 이 두 계명은 율법의
대 강령입니다!
내가 가장 철학으로 삼는 성경구절이
마태복음 22장 36절로 40절입니다.
나는 옛날부터 그것을 좌우명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호가
<애천>이라는 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섭리의 호(號)가, 애천(愛天)!
하늘 천(天)에 사랑 애(愛)입니다.
변함없는 마음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기 바랍니다. 그래야 그것이야 말로
섭리사에서 누구보다도 다른 특정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런 마음이 식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각 교회를 돌아다녀다 보다가
그런 문제에 부딪혔을 때
크게 평가를 했습니다.
내가 통일교 모임에도 가 봤습니다.
저기 청평에도. 이런 큰일을 하기
위해서 각 교회를 다 돌아다녀 보고,
교파도 돌아봤는데, 거기 모임은
굉장하더라는 것입니다.
문선명 선생을 메시아로 보고
따라가고, 쫓아다니고 굉장했습니다.
내가 거기를 갔다 왔습니다. 한 2-3천
명이 모여 있었습니다. 산꼭대기에.
나를 구경시키기 위해서 데리고 간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그런데 내려올 때 전부 관광차를
대절했는데, 나는 그때 봉고차를 얻어
타고 갔었습니다. 올 때 보니까
차가 다 떠나 버렸습니다.
그런데 관광차가 죽 있는데,
나 좀 태워달라고 했습니다.
이만저만 이만저만, 이렇게 이렇게
왔다가 말씀 듣고 간다고 했는데
안 된다고 안 태워 줬습니다.
열다섯 대를 다 돌아다녔는데
안 태워 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야, 이 미친 놈들아!
너희가 구세주를 따라다니고
재림주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이냐?’
하고 속으로 욕을 하고서 ‘좋다.’
하고서 혼자 내려 왔습니다.
그때 내가 마음이 상해 버렸습니다.
그때 나만 받아줬어도 괜찮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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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차를 안 태워 줬다고,
그때 내가 그들을 평가했습니다.
“너희들이 재림주라 하며 사랑
이야기를 하는데, 도저히 못 믿겠다.”
하고 그때 내가 싹 돌아간 것입니다.
“아, 통일교도 그렇게 ‘사랑, 사랑’
해도 사랑이 없는 곳이구나.”
했습니다.
나 하나만 청평 산골짜기 떼어놓고,
내가 죽을 뻔 했습니다. 돌아오느라고.
뛰어도 뛰어도 끝이 안 나왔습니다.
얼마나 내가 무서움 탐을 많이
한다구요.
가만히 보니까 관광버스가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나 하나 태워줄 수도
있잖아요? 더군다나 자기 선생의
말씀을 듣고서 가는 사람인데 차를
안 태워 주더라구요. 하나만 태우면
되는데. 딱 하나만 태우면 되는데.
그래서 내가 지도자들을 모아놓고
그런 이야기를 수시로 해 줍니다.
“야, 내가 어디 갔다 오다가 이런
일이 있었다. 너희는 어디 갔다
올 때 차의 바퀴가 터져도 좋으니까
태워 갖고 와라.”
그래서 내가 어디 갈 때도 내 차에
애들을 태웁니다. 어제도 내가 여기에
오는데, 두 명인가 몇 명이 버스에 못
탄다고 하길래 버스를 한대 더 몰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버스가 또 왔습니다.
절대 여러분들끼리도 그런 데에서 큰
문제가 발생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쳐다보셨습니다.
너는 앞으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나만 태워줬어도 그 값을
엄청나게 해 줬을 것입니다.
이렇게 큰 영웅이 거기에 한 줄을
그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을 흔들고, 용(龍)이 되어서
흔들고 돌아다닐 사람인 줄을 몰랐던
것입니다.
못 본 것도 죄입니다!
세상을 내다본다고
“세계 신령협회”라고 간판을
붙였는데도 모르더라는 것입니다.
무슨 신령입니까? 산신령이면 모를까.
그때 내가 많이 깨닫고 깨달았습니다.
통일교인들이 그때 내가 그곳에 갔다
온 것을 알고서 “아 우리 교인이었다.
어쩌고..” 그러는데, 하이고 배 아프게
되었지요. 그때 나를 잡았으면
괜찮았을 텐데! 용이 간 것이었는데.
나는 항상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국의 루이스 황태자가
밤에 ‘거지처럼’ 돌아다녔다는
이야기를 항상 갖고 있습니다.
나도 그 짓을 잘 합니다. 어딜 가도.
그런 것을 가지고 각 교회를 돌아다녀
보고, 많이 돌아다녀 봤는데 그런 데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더라는 것입니다.
부산에 있는 교회들,
애들이 올 때 서운함 없이 잘 대해
주고 그래야 됩니다.
강대상에서는 막 외쳐놓고,
가서 딱 보면 그것이 안 이뤄질 때는
완전히 쇼크 중에 쇼크입니다.
생활 속에 이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꼭 그렇게 하기를
바랍니다. 지도자들은 그렇게 해
주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목사님 혼자서만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 전체가 다 그렇게
불이 붙어서 하라는 것입니다.
누구 하나만 갖고 할 수가 없습니다.
전체가 다 불이 붙어야 됩니다!
목회자들 120명이 불붙는다고
안 됩니다. 아까 이야기 한대로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서로 그렇게
하도록 하라! 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그렇게 해야 됩니다.
나는 사랑에 대해서 올(all) 백점을
맞는 사람입니다! 애들한테
“야, 나 사랑 되게 많지?” 그러면
“정말 많아요.” 합니다.
인정을 받습니다.
“맞다. 진짜! 너, 눈을 뜨고 다시
봐라. 내가 얼마나 사랑이 많은
사람인가!”
“그런데 그 사랑이 다 어디서
났어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준 사랑이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것 빼면 뭐 있습니까?
오늘 내가 말한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바람이 늘 불어서 머리카락이
날리고 옷자락이 날리듯이, ‘사랑의
바람’이 항상 살랑거리는 여러분의
심령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된 것입니다.
분명히 오늘 말씀으로 여러분이 어느
정도 깨달아졌을 것입니다. 두 시간
하나, 세 시간 하나 똑같을 것입니다.
여기 앉아 있을 때는 다
선인(善人)들입니다. 그러나 흩어 놓고
생활 속에 들어가 보면 압니다.
생활 속에 들어가서는 신발 좀
밟았다고 십팔 저팔 하고, 조금 뭐
했다고 십팔 저팔 하면 안 됩니다.
내가 기독교에서 그래서 학을 뗀
것입니다. 그 좋은 성경 말씀을
써먹으면서도 실천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잘 사랑하지요.
예수님은 잘 사랑하지요.
유대민족이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은 사랑했지만,
형제를 사랑하지 못했기에 형제
가운데 구세주가 왔는데 그걸
못 찾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형제가운데 왔는데. 형제 가운데
구세주가 있었는데 그것을 못 찾은
것입니다. 사랑하다보면 찾았지요.
사랑의 눈을 떠야 봅니다!
모든 사람들을 사랑으로 계속
대하다 보면 소돔 땅의 롯이 천사를
대접하듯이 그런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런 일들이 나의 역사 가운데 이야기
거리, 히스토리가 정말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를 잘 해 주고, 잘 사랑하고
다독거려 줘서 팔자가 폈습니다.
잘 사랑으로 다독거리고,
늘 그렇게 한 싸가지를 보고서
내가 ‘됐다.’ 하고서 하나님께
올린 것입니다.
여러분도 인정을 받아야 됩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누가 핍박을
하든, 나를 욕하고 무슨 짓을 해도
나를 사랑합니다. 그런 것을
내가 가만히 두고 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핍박을
다 이깁니다. 그러니까 핍박에서
지는 사람들은 나를 사랑치 않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치 않은
사람들입니다. 형제를 사랑치 않은
사람들입니다. 핍박을 못 이깁니다.
시험도 못 이기고, 어려움도
못 이기고. 그래서 내가 그러잖아요.
“야, 가만히 둬라. 쟤, 나를 사랑하면
다 이긴다.” 그럽니다.
2015_09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28
나를 사랑하면 다 이긴다!
왜? 목숨을 걸고 다 하거든요.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런 것을 가지고
앞으로 섭리역사를 뛰고!
요번에 내가 온 것은 다시금 하나님과
떨어진 사랑을 가깝게 하라고 왔고,
서로 상한 마음을 서로 하나 되게
만들어 주고, 그러려고 온 것입니다.
불을 붙여, 그 불이 꺼지면 안 됩니다.
불 꺼지면 어떻게 삽니까.
요새 겨울밤에 불 꺼지면 못살듯이
심령의 불이 꺼지면 못 사는 것입니다.
다시 불을 붙여 놓았으니, 다시
불 일듯 하는 사랑이, 처음 사랑이
불붙어서 열심히 뛰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소돔 땅은 형제들을 많이
사랑했습니다. 성으로 불타는
도시였으므로.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치 않았기 때문에 심판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했으나
형제를 사랑치 못했기 때문에 형제
가운데 보내 준 메시아를 못 찾아서
심판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에 완전히 눈을
떠서 불 붙은 사랑이 되어야겠습니다.
자, 노래 한번 불러봅시다.
(일편단심)
< 기 도 >
깊은 하늘의 도를 깨우쳐 주셨으니,
오직 온 인류의 모든 슬픔과 고통과
아픔과 뼈저림이 있는 것은 사랑이
식어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심장이
멈추면 인간이 죽고, 열이 식으면
죽듯이, 사랑이 식으면 가정이고
개인이고 민족이고 종교이고 어느
존재 세계든지 존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거기에는 미움이요 아픔이요
전쟁이요, 그리고 칼이요 검이요
무서운 것들이 도발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줬습니다.
다시금 우리에게 이렇게 온 것은,
내가 온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다시 하늘을 사랑하라는 인식을
시키고 사랑을 넣어 주기 위해
왔사오니 사랑이 불붙는 자들이
되라고 했습니다.
먼저 된 자도 그러하고,
나중 된 자도 그러하고 그러함을
받도록 하라고 했사오니 그 말씀의
실존의 존재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이들을 하늘 앞에 연관을
시켜놓고, 모든 관계를 맺어놓고
가오니 그 사랑이 떨어지지 않게
하시고, 열렬함 가운데 다시
내가 올 때까지 그 열렬함이
충만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내가 소개한 이들이 하늘 앞에
난처함을 받지 않도록 이들이
사명을 다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더해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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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20일 주일
<현재>가 <결국>을 결정한다
[ 디모데전서 6장 17-19절 ]
[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제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17 Command those who are rich in this
present world not to be arrogant nor to
put their hope in wealth, which is so
uncertain, but to put their hope in God,
who richly provides us with everything
for our enjoyment. 18 Command them
to do good, to be rich in good deeds,
and to be generous and willing to share.
19 In this way they will lay up treasure
for themselves as a firm foundation for
the coming age, so that they may take
hold of the life that is truly life.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 말씀의 주제는
‘<현재>가 <결국>을 결정한다.’입니다.
힘이 되고, 능력이 되고, 희망이 되는
말씀입니다.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현재>에 좋아도
<결국>에 안 좋으면,
앞날에 희망이 없습니다.
<현재의 삶>이 <결국>을 결정하고,
<결국>을 가지고 ‘영원한 삶’이
결정되어 그 삶이 영원히 지속됩니다.
고로 아무리 <현재>가 좋아도
<결국>이 안 좋으면 안 하는 것입니다.
인생들은 각자 자기가 살아온 대로,
자기가 행한 대로 <삶의 결국>이
결정됩니다. 하나님은
<그 삶의 결국>을 가지고
‘영혼의 결국’을 결정하십니다.
<현재> 고생돼도 <결국>이 좋아야
앞날에 희망이 있어서 기쁨으로 살게
됩니다. 아무리 <현재>가 좋아도
<결국>이 안 좋은데, 왜 거기에
자기 인생을 투자하며 삽니까?
<현재>만 생각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현재>만 생각하고 살면,
희망이 무엇입니까?
<현재>로 인해 <결국>이 결정되는데,
<현재> 편하다고 해서 그것에
자기 인생 허비하려 합니까?
사람들은 <현재>만 생각하고 사니,
이미 ‘희망 없는 삶’을 결정짓고
사는 꼴입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시기를
“<오늘>을 살되, <내일>을 생각하며
살아야 된다. <현재>를 살되,
<미래, 결국>을 생각하며 살아야 된다.
<현재>에도 네가 다 받고,
<결국>에도 네가 다 받아야 된다.
오늘의 삶, 현재의 삶도 네 것이고,
내일의 삶, 결국의 삶도 네 것이다.”
하셨습니다.
<현재>에 일단 편하고 좋다고 해서
편한 대로 좋은 대로만 살면,
<결국>에는 고통 속에서 허덕이며
살아야 됩니다. <현재>에 힘들어도
‘온전한 삶, 미래를 향한 삶’을 살면
<현재>에 힘들기는 하겠지만
그로 인해 <현재>에도 얻고 누리며
살고, 그 삶으로 인해 <결국>에도
얻고 누리며 기쁨으로 살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현재>에 참고 견디며 의롭게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결국>에 ‘희망의 삶,
기쁨의 삶’이 찾아옵니다!
<현재>에 자기중심의 삶, 자기에게
만족스런 삶, 자기 흥분의 삶을
살면서, 이성·물질·오락 등 세상 각종
썩은 문화를 보고 듣고 행하며
<현실주의의 삶>만 사는 자는 정녕코!
<미래>에 ‘희망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은 <삶의 법, 생활의 법>입니다.
<현재>에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고생되더라도 자기를 고치며
‘온전한 삶’을 지속하면, 그 삶이
‘앞날의 첩경’이 되어 모두 <자기>에게
‘축복’으로 돌아옵니다.
그리하여 <앞날>에는 반드시!
‘축복의 삶’을 살게 됩니다.
고생돼도 ‘생명길’로 가라.
- 했습니다.
이 말씀은 선생이 2007년도에
민족적으로 극심한 핍박을 받으면서,
섭리사의 어느 누구와도 통하지
못하고 갖은 고통을 겪었던 때에
<성령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그 극심한 환난과 핍박을
이길 힘이었으며, <휴거 역사의 문>을
활짝 열게 할 힘이었으며, 아무도 못
보는 때에 오직 성삼위를 생각하며
이길 수 있는 힘이었습니다.
<현재>에는 고생돼도 땅을 개간하고,
씨를 뿌리고, 계속 가꿔야 됩니다.
지속적으로 하면, 나무가 큽니다.
계속 가꾸면 꽃이 피고, 열매가 열려
점점 크게 됩니다. 그때, 열매가
완전히 크도록 가꾸기입니다.
열매가 완전히 크면,
그때는 거두어 먹으면서 <결국>
‘이상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만사가 이와 같이 이러합니다.
영생의 삶도 그러합니다.
<현실>에 육적으로 먹고 즐기기나
하면서 육의 것만 생각하며 육만을
위해 살고, 힘든 것은 피하고 편하게만
사는 삶은
<미래>를 위해 씨도 안 뿌리고,
개발도 안 하는 삶입니다.
그렇게 계속 가다가는
<결국>에는 ‘아수라장 삶’이 찾아오고
자기 앞에 ‘광야 사막으로 가서
사는 삶’이 닥치게 됩니다.
<현재>에
‘자기를 개발하여 만들기’입니다.
‘자기를 온전하게 고치는 삶’입니다.
<현재의 삶>으로 <결국>이 결정되고,
<결국>을 가지고 <영혼의 삶>이
결정되어 <영>이 ‘지옥’으로 가느냐
‘천국’으로 가느냐가 결정되고,
그 삶을 지속적으로 영원히 살게
됩니다. 그러니 <결국>을 위해서
<현실>에서 의를 쌓고, <현실>에
고생돼도 생명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하루를 살아도 새벽부터 뿌리고
가꾼 날은 거둘 것이 많습니다.
그렇지 않은 날은 거둘 것 없이
끝납니다. 고로 고생된다고만 하지
말고 일하면서 일 속에서 쉬고,
누리고, 기뻐하며 사는 것입니다.
2015_09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30
<현실주의>로만 살면서
먹고 즐기며 자기 좋은 대로 살고,
육적인 것에만 투자하며 사는 자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즐기면서 편하게
살고 싶다.’ 하게 됩니다. 사람은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더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요동하거나 흔들리지
말아요! 그때는 <주의 돛>을 달고
생각해야 됩니다. <주의 돛>을 달지
않은 자들은 그 파도에 밀려가서
세상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결국
육으로 끝나고 맙니다. <현재>에
힘들어도 100%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정녕코!! <미래의 삶>이
<영원한 삶, 기쁨의 삶, 거두는
삶>으로 결정되어 영원히 누리면서
기쁨으로 살게 됩니다. 이는 거짓이
없고 진실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령님과 성자가 보장하는 말씀입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현재 육의 기쁨과 만족>만
계산하고 사는 자는 <미래>가 없다.
왜 너는 계산하지 못하여
<미래>를 포기하고 <현실>만을 위해
사는 자를 따라가려고 하느냐.
무지하여 <미래의 삶>을 포기하고
<현재 육의 기쁨과 만족>만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을 절대 따라가지
말아라. 전능자 하나님이 너에게
지혜와 명철을 주시어 네가 올바른
것을 보도록 눈을 뜨게 하시니,
분별하고 제대로 판단하여라.”
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누구에게나 <미래>는 닥칩니다.
이 <미래>는 ‘현실의 삶’에서
결정됩니다. <주의 돛>을 자기 뇌와
영혼에 확실히 꽂아야 세상 파도에
휩쓸려 가지 않고 선과 악을 잘
분별하여 <현실의 삶>을 온전히
살게 됩니다. <현실>이 아무리
화려해도 <미래>가 없으니, 가다가
<미래>가 닥치면 허무하게 됩니다.
선생이 10~20대 때, 우리 마을에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었지만 <현실>에 속해
살았습니다. 먹고, 즐기고, 연애하고,
시집가고 장가가며 <현실의 자기
생활>에만 집중하며 살았습니다.
그들을 쳐다보니 삶이
참 편해 보였고 화려해 보였습니다.
그때 나는 그런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고생돼도 산속에 가서 기도하고
전적으로 ‘하나님과 성자의 뜻’을
위해서 내 몸을 하나님과 성자께
맡기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그때는
‘현실의 일’을 거의 하지 못했고,
내 삶을 거의 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말하기를
“왜 그렇게 사냐?젊은 시절 한때인데
그때 먹고 즐기고 연애해야지, 좋은 때
다 가면 무슨 소용이냐.” 했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습니다.
‘젊은 시절 한때이고 최고로 좋은
때이니, 이때 내 삶을 하나님과 성자께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내 몸을
맡기고 살아야 된다.’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20년 넘게
살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먹고 마시며, 화려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금식해서 굶은
사람이 밥 먹는 사람들을 보면 더
먹고 싶듯이, 그들의 삶이 돋보이고
화려해 보였습니다. 그들을 만나서
나와 비교하면 나는 그들과 비교가
안 되었고, 그들보다 표가 나게
잘난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현실의 것’이 있었고,
나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현실>을 보면서 내게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하며
한마디씩 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해
놓고 말하니, 그 말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있었습니다.
“나는 <미래>를 위해서 사니,
때가 되면 ‘화려한 세계’가 펼쳐진다.”
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현실의 것’이 안 보이니, 그들은
오히려 나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면서
“신앙이 잘못됐다. 성경 해석이
잘못됐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 하며
내게 훈수했습니다.
결국 세월은 흘렀습니다!
<현실>은 가고 <미래>가 찾아왔습니다!
선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국 ‘나의 세상’이 왔습니다!
‘화려한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과거에 현실만을 위해 살았던 자들의
결국의 삶과, 과거에 미래를 위해
살았던 나의 결국의 삶을 비교해
보세요.
<과거 당시의 현재의 삶>으로
‘결국’이 결정되었고, 그 <결국>을
가지고 ‘영혼의 삶’이 영원히
결정되었습니다! 육의 것도, 환경도,
육의 삶도, 영의 삶도, 모든 면에서 볼
때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은 비교가 안
됩니다.
<현실의 육의 삶>만 살았던 그들은
‘한 가정의 삶’을 살고 있고,
<미래>를 위해 살았던 나는 ‘민족과
세계와 천주를 위한 삶’을 살면서
그 차원의 비전과 역사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인생은 ‘두 번’ 살지 못합니다.
과거에 잘못 살았다고 해서
다시 살지 못합니다.
<과거의 자기 삶>으로
<현재의 삶>이 결정되고,
<현재의 자기 삶>으로
<미래의 삶>이 결정되어
결정된 대로 끝납니다.
되돌릴 수 없는 인생입니다.
내 삶은
‘하늘의 뜻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고로 <현재> 고생돼도 오직
‘생명길’로만 갔습니다.
나의 삶은 뼈저린 연단의
연속이었습니다. 무지한 자들로 인해
핍박과 환난을 받는 삶이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나를 손가락질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두고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잘못됐다 하며 내게
손가락질해도 하나님과 성자가
내게 주신 <시대 말씀>을 외치며
<휴거의 역사>를 위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로 인해 내 인생은
결정되었습니다. 어떻게요?
<육>은 인생 일생 동안 누리고,
<영혼>은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성삼위 앞에 최고 영광의
자리’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2015_09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31
<잠시 쉬었다가>
조은이도 그랬습니다. 어릴 때부터
기어이 선생을 따라다니며 진심으로
나를 도왔습니다.
<진정한 하늘의 역사>를 만났고
<주>를 만났으니, 지금 어릴 때 자기
인생을 아낌없이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를 따르고 주의
사랑을 받으며 미래에 섭리사에서
크게 되고 영원히 잘되도록 가르쳐
주는데도 자기 신세를 한탄했습니다.
“어리고 젊을 때는 한때인데, 이때
‘육의 것들’을 많이 얻고 즐기며
살아야지. 세상에 나가서 활동도 못
하고, 마음껏 놀지도 못하고, 연애도
못 해 보고, 하라는 대로, 말씀대로만
살아야 하니 답답하다. 어리고
젊을 때 꾸미고, 즐기고, 놀고 싶다.
원하는 것 다 해 보고 싶다. 그리고
30대가 되면 하늘 일 열심히 하면
되지.”하며,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같이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조은이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어릴 때 주를 만났으니 이 좋은 때에
미련 없이 후회 없이 주를 좇고
가장 좋은 젊은 날에 주를 위해서
살아야지, 나이 들고 나서 주를 위해
살면 무슨 소용이냐. 지금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을 때 이때 즉시 따라야
된다. 지금이 ‘나의 때’다. 지금 배우고
따라야 된다. 지금 주를 위해서 살아야
된다.” 했습니다.
<현실에 만족하는 길>을 가지 않고,
<미래를 위한 삶>을 결정하고 미련
없이 주를 따르며 행했습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선생도
처음에는 어떻게 하는지 그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성삼위와 보낸 자를 진정 사랑하니,
그 ‘사랑의 힘’이 머리가 되어 자신을
주관했고, 그 ‘사랑의 힘’이 손과 발이
되어 행했고, 그 ‘사랑의 힘’이 날개가
되어 날아다녔습니다. 그 하는 행위를
보니 조은이가 어떤 사람인지 판단할
수 있었고, 양인지 염소인지 분별할 수
있었고, 정말 하나님이 택한 자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성삼위가 이 시대에 줄 구원의
마패>는 ‘하나’입니다. 그것은 이미
선생이 조건을 세우고 받았습니다.
이제 <따르는 자들의 표상으로
성삼위가 섭리역사에 줄 표상의
마패>는 ‘하나’입니다.
결국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때에
따라 예정하고 택하시어, 절대 주를
따르며 그 말씀대로 행하며 살아온
‘치타’가 그 마패를 받게 되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월명동의 치타솔>은 조은이가
전도된 사연이 얽힌 ‘상징
소나무’입니다.
◎ 조은이에게 해당되는 ‘상징 돌’도
있습니다. <치타 돌>입니다. <사진>
원래 선생은 돌을 찾으면
‘주먹만 한 작은 돌’이라도
아무에게도 안 줍니다. 그런데
조은이에게 <치타 돌>을 주면서
“이 돌은 너를 상징하는 돌이다.”
했습니다. 그때 이 돌을 조은이에게 줄
때, 이 돌이 ‘마패’인 줄은 선생도,
조은이도, 아무도 몰랐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만
아셨습니다. 현재 이 돌은
<월명동 구상박물관>에 있습니다.
◎ 이 돌은 ‘독일’에서 주웠는데,
그 돌을 줍게 된 사연을 잠깐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이 돌을 주운 날은 조은이가 한국에서
온다고 하는 날이었습니다. 이날
선생은 제자들 몇 명과 함께 한
계곡에 갔습니다. 그리고 해가 지기
전까지 ‘형상이 있는 돌’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도 못
주웠습니다.
잠시 저녁 식사를 하고, 해가 져서
어두워지기 전에 계곡 물을 따라서
300m를 내려가면서 계속 수석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강한 물살에
돌들이 뒤덮여서 돌이 안 보였습니다.
이곳까지 오기 위해 경비도 쓰고,
밥도 사 먹었는데 하루 종일 일곱
명이 돌 하나를 못 주우니, 그때 같이
있었던 범석 목사는 밥 먹기가
미안하다고 하며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왜 하루 종일 수석을 찾았는데도 못
찾았을까 후에 알고 보니, 성자께서
하루 종일 못 줍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감동을 주어
<성자께서 인도하신 곳>으로 가도록
여건을 트신 것입니다.
300m보다 조금 더 내려가서 약
400m 지점까지 가니, 계곡이
넓어져서 물이 넓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선생 혼자서 돌을
찾으러 가니,그때 독일 남자 제자
한 명이 선생을 따라왔습니다.
‘아니, 일곱 명이 하루 종일 찾았는데
수석 하나를 못 줍다니 너무
억울하다.’ 하고 수석을 찾았습니다.
이곳은 물이 넓게 흘러가니 돌이
물 위로 반쯤 나와 있었습니다.
거기서 수석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곳은 거친 물살이 흘러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두 개의 돌을 찾았는데
만졌다가 도로 내려놨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에 발견한 돌을 만지다가
주웠습니다. 성자께서 이놈저놈 만지게
하다가 그중의 하나를 들게 하신
것입니다.
하루 종일 그 계곡의 골짜기를
돌아보면서 이곳저곳 다 찾아봤는데도
그 돌 ‘딱 하나’를 찾은 것입니다.
들어서 보니, 흐릿하게 ‘동물 형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돌이 물을 먹어서
흰색이 어둡게 보였습니다.
그 돌을 줍고 나니,
날이 어두워져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들어 보니, 돌이 너무 무거웠습니다.
500m 이상은 들고 계곡을 빠져
나가야 되는데, 무거워서 들고 가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때 선생 옆을
따라왔던 독일 남자 제자가
“제가 배낭에 넣고 짊어지고 갈게요.”
했습니다.
그때 늘 배낭을 가지고 다녔는데,
돌이 커서 배낭에 큰 돌이 꽉
찼습니다. 만일 그때 독일 제자가
“너무 무거워서 저도 못 들겠네요.”
했으면, 그냥 두고 왔을 것입니다.
성삼위는
‘그때마다 합당한 자’를 쓰고
역사하시듯, 그날은 ‘독일 제자’를
쓰고 그 돌을 들고 오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못 하는 것인데
다른 사람이 한다고 하면, 성삼위가
‘그 사람’을 쓰고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고 즉시 “해라!” 해야 됩니다.
선생에게 “그 돌이 꼭 필요하다.”라는
음성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감동도 없었습니다. 그 돌이
‘마패’가 될 줄은 정말로 몰랐습니다.
2015_09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32
그런데, 선생과 같이 있던 제자들이
선생과 함께 하루 종일 돌을 줍다가
그날 저녁에 조은이가 온다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독일 공항에 도착하는 시간이 밤이고,
여자 혼자라서 위험했습니다. 또
주소도, 전화번호도 아무것도
안 가르쳐 줘서 조은이는 선생만 믿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큰일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저녁 9시가 넘어서야
부랴부랴 움직였습니다.
그 독일 제자가
“그 돌을 제가 짊어지고 갈게요.” 하고
가지고 왔던 것처럼, 그날 조은이를
마중 나갈 때도 “제가 차를 몰고 가서
얼른 데리고 올게요.” 하며 데리고
왔습니다. 조은이가 곧 도착한다는
소식을 듣고 돌을 보니, 물이 말라서
‘형상’이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치타 두 마리 형상>이 보였는데,
하나는 ‘치타 새끼’ 같고, 하나는
‘치타가 뛰는 모습’이었습니다.
<치타>는
생긴 것이 예쁘고 귀엽고 늘씬합니다.
그리고 지상에서 최고로 빠른 강한
동물입니다.
<호랑이>는
귀엽지 않고 늘씬하지도 않습니다.
지상의 동물 중에서 <치타>가 가장
늘씬하고 가장 빠릅니다. 많은 돌들
중에서 이 <치타 돌>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물에 젖어서
‘형상’도 흐릿했습니다.
조은이도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마치 ‘물에 젖은 치타 형상 돌’
같았습니다.
그러다 그 성품과 행위가 점점
드러나면서 마치 돌이 마르니
‘치타 형상’이 뚜렷해지듯, 조은이의
성품과 행위를 보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예쁘게 잘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치타처럼 빠르게 행하는
것이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그 돌을 조은이에게 주면서
“너를 상징하는 돌이다.” 했는데,
정말 조은이를 상징하는 돌이
맞았습니다.
<수석>도 물에 젖으면 형상이
흐릿하게 보입니다. 말려야
형상이 또렷하게 보입니다.
<사람>도 처음에는
‘물에 젖은 수석’같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릅니다.
돌을 말리듯 그 사람의 성품과 행위가
드러나면, 그제야 그 사람을 제대로
알게 됩니다. 고로 각 교회의 모든
사람들을 귀히 봐야 됩니다.
선생이 기도해서 성삼위가 선물로
보내 준 생명이고, 목회자나
섭리인들이 기도해서 성삼위가
선물로 보내 준 생명입니다. 그러니
목회자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귀히 대해야 됩니다.
조은이는 주를 만나고 깨달았을 때,
그때를 <자기 때>로 삼고 귀히 여기며
<현실만을 위한 삶>을 택하지 않고
<미래를 위한 삶>을 택하여
일편단심으로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따르며 행했습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시기를
“<시간과 때>는 ‘자기에게 주어졌을 때
뺏기’다.” 하셨습니다. 주를 만났을
때가 ‘자기 때’입니다. 주를 만나고
깨달았을 때가 ‘자기가 클
시간’입니다. 그때 <미래>를 생각하고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행해야 됩니다.
<그때 현실의 삶>에 따라
‘결국’이 결정되고, 그 <결국>으로
인해 ‘영혼의 영원한 삶과 위치’가
결정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현실만을 위한 삶>은
‘꽃 같은 삶’입니다.
<미래를 위한 삶>은
‘열매 같은 삶’입니다.
이 두 삶이 비교가 되겠습니까?
비교하는 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꽃>은 결국 지게 되고 <열매>는
남아 거두어 먹게 됩니다. 인생이라면
누구든지 맞게 되는 <미래>입니다.
<현재>가 아무리 편하고 화려해도
<미래>가 없으면, 인생을 실패한
것이며 잘못 산 것입니다.
<육의 삶>이 아무리 편하고 화려해도
<미래 영의 삶>을 보장받지 못하면,
인생 잘못 산 것입니다.
한 번 결정하고 살면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인생 삶’입니다.
<현실>에서 ‘시대 말씀’을 듣고 믿고
‘구원자’를 따라 행하여 <결국>을
위해서 살기를 축원합니다!
그 삶이 조금 힘들고 고돼도,
더 행할 것은 많지만 당장은 내세울
것이 없어도, 그 <결국>은 기쁨과
희망이며 영원합니다.
후에 만인 앞에
‘자기 삶’을 내세우며,
모두 우러러보게 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 <결국>으로
‘영원한 삶’이 결정되어
영원히 누리며 살게 됩니다.
이 말은 여러분을 이 역사로
불러오신 하나님의 말씀이며,
여러분을 휴거시켜 영원한 사랑을
주신 성자의 말씀이며, 영원히
진실하셔서 거역할 수 없는
성령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성령님, 성자의 이름으로
축원하니, 모두 <현실의 섭리 인생,
현재의 신부 인생, 현재의 휴거
인생>을 그 어떤 것에도 뺏기지 말고,
<육의 것>만 누리며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저들의 말을 따라가지
말고, “네가 가는 길은 잘못됐다.”
하며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말하는
저 악평자들의 말에 요동하지 말고,
절대 하나님이 세우시고 창조 목적을
이루신 <성약 신부 역사, 휴거 역사>를
벗어나지 말고, 섭리의 시대가 왔고,
우리의 시대가 왔고, 성삼위는 우리
편이며 우리의 영원한 희망과
사랑이시니,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1000년사 하나님의 위대한 뜻을
이루는 자들이 되기 바랍니다.
<미래의 소망과 희망>을 위해서 살기
바랍니다. 그 노력과 수고는 정녕코
얻는 노력과 수고입니다.
<미래의 소망과 희망>을 위해서
땀 흘리고 수고하는 자신에게 스스로
박수를 쳐 주며, 형제들끼리 서로
격려하며 즐겁게 섭리 길을 가기
바랍니다.
<미래의 소망과 희망>을 위해서
살아가니, 그로 인해 힘과 능력과
기쁨이 솟아납니다.
2015_09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33
그 힘으로 앞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돛’을 달고,
핵심인 ‘사랑’을 뺏기지 말고,
휴거 700선으로 도전하면서
주와 같이 끝까지입니다.
<말씀 마무리>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섭리사는 <과거>에 ‘미래’를 위해
살았기에 결국 얻었습니다.
(위대한 <자연성전>을 얻었다.
자연스럽게 성삼위의 사연을 들을 수
있는 곳 하늘과의 사연이 쌓이는 곳
만물을 통해 성삼위와 교통할 수 있는
곳 마음껏 먹고, 놀고, 산행하고,
수영하고, 마음 놓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말씀을 듣고 은혜와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곳 1000년사에 빛날
위대한 자연성전이다.
인류의 소망이며,
하나님 최고의 소원인
<휴거>를 얻었다. 그로 인해
<인간으로 태어난 창조 목적>을
이루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가치>를 얻었다. 그로 인해
<최고 영광의 자리인 천국 황금성>을
얻었다. 영원히 <삼위의 사랑의
대상체로서 사는 사랑의 삶>을 얻었다.
육적인 것, 영적인 것 모두 얻었다.)
과정 중에 언제 환난·핍박·어려움이
없었던 적이 있었습니까?
좋을 때는 누구나 다 잘할 수 있지요.
힘들 때도, 환난 때도, 어려울 때도
행해서 얻은 섭리역사이며,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지켜 온
섭리역사이며, 정녕코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룬 섭리역사입니다.
이제 구원자가 행한 것으로,
그동안 우리가 행한 것으로 더 창대한
역사를 기대해 보기 바랍니다.
구경만 하는 구경꾼이 되지 말고,
신부로서 주와 함께 역사를 뛰고
달리는 섭리의 사명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섭리사는 <과거>에 ‘미래’를 위해
살았기에 결국 얻었습니다 지금
<현재>에 또 ‘미래의 더 큰 것’을
위해서 살아가기 바랍니다.
유일하시고 절대자이신 하나님,
성령님, 성자께서 섭리사를
축복하시고,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환난 풍파 오고 가도 영원한
섭리역사이며, 믿었던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섭리역사이며,
하나님의 뜻인 것은 뭐든지
이루어지는 섭리역사이며,
창조 목적을 이루어 승리한
섭리역사이며, 시대를 다스리며
1000년사를 힘 있게 펼칠 수 있는
시대 말씀이 있기에 갈수록
불타오르는 섭리역사이며,
우리의 영원한 희망이신 성삼위가
우리 편이며 우리의 돛이니
어떤 세상 파도에도 밀리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는 힘을 가진
섭리역사입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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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27일 주일
죄의 값은 사망이다
회개하게 하여 평화롭게
하신 하나님
[ 로마서 6장 23절 ]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23 For the wages of sin is death, but
the gift of God is eternal life in Christ
Jesus our Lord.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한국의 고유 명절이며
으뜸 명절인 ‘한가위’입니다.
<한가위>는 1년 동안 대(大)농사를
다 짓고, 추수한 것을 가지고 가족들과
함께 나누며 선조들에게 감사하는
날입니다.
최고로 좋은 이 계절에 맞는 한가위,
우리는 자연 만물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감사하고
영광 돌리는 명절로 보내야 됩니다.
그리고 땅으로는, 떨어져 살던
부모 형제들과 만나서 그동안의
사연을 나누고 화목하게 지내는
잔칫날로 보내기 바랍니다.
또 부모나 형제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서 홀로 있는 사람들은
하늘의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모시고 즐겁게 보내고, 외롭고
쓸쓸하다고 하는 섭리사 형제들과
함께 즐겁고 화평하게 지내기
바랍니다.
또 외국에서 온 형제들을 돕고,
함께 기쁨과 화평으로 명절을
잘 보내기를 축복합니다.
<말씀 시작>
특히 올해 한가위를 이같이
평화롭게 보내게 해 주신 하나님께
진실로 감사드리고 영광 돌려야
됩니다.
지난 8월
20일부터 25일까지 한국은 북한과
‘전쟁 직전의 상태’였습니다. 뉴스를
본 사람들은 그때의 상황을 보고 듣고
한국이 북한과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 알 것입니다.
8월 4일에 ‘북한군의 지뢰 매설’로
한국군 2명이 다리가 절단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한국은 강력하게 대응하여
북한을 향해 ‘대북 확성기 방송’을
하며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이는
북한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수단입니다.
이에 북한은 8월 20일, 경기도 연천군
일대에 ‘두 차례 포격’을 가했고,
이틀 내에 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곧
‘군사 행동을 개시’한다고 했습니다.
이에 한국은 다시 수십 배 이상의
화력으로 강력하게 대응하여 포탄
30여 발을 북한에 발사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도발’에 대해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이에 북한은 ‘준전시 상태’를
선포하고, 8월 22일 오후 5시까지
한국에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군사적 대응을 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아는 자들만 애간장
태우고 걱정하고 공포에 떨었습니다.
선생은 그때
<2차 70일 특별기도 기간>을 보내고
있었고, 지금도 계속 특별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선생은 해마다 달마다
날마다 세계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20여 가지를 두고
각종으로 기도합니다.
이는 책임자가 기도하지 않으면,
안 한 대가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섭리사에도 해가 됩니다.
또한 섭리사를 악평하고 핍박하는
자들과 불신자들을 놓고 기도하고,
섭리사를 위해 각종으로 기도합니다.
또 성자가 떠나시면서
“앞으로 각종 환난이 있다. 섭리사
자체의 환난과 정신적인 환난이 있고,
민족과 세계에도 환난이 있다.” 하고
미리 말씀해 주셔서 성자가 떠나신 후
4월부터는 특별기도를 해 왔습니다.
국가·국회·국방·국가
지도자들·판검사들을 놓고
기도해 왔고,
한국·북한·중국·일본·러시아·미국·유럽
의 국방들이 모두 똘똘 뭉쳐
평화롭게 되게 해 달라고
애원하며 기도했습니다.
섭리사에 사람들이 그리 많아도
그 기도를 믿을 수 없으니, 선생이
<책임을 지는 기도>를 해 왔습니다.
<형식 없는 진실한 기도>를 하면서,
어느 때는 낮 1시 기도를 시작하여
어두워지기까지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선생이 깊은 기도를 할 때는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게 깊이
길게 기도하며 성삼위와
일문일답을 주고받으면서 기도합니다.
그때마다 ‘응답’을 받아야 기도하고도
마음이 놓이고, 선생 스스로도
<형식 기도, 습관 기도>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때는 수련회로 인해 너무 바쁜
때였고, 특히 올해 한국은 엄청난
가뭄과 더위가 찾아와서 선생의
방 안도 찜통이라서 정말
기도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안 하면 큰일 난다고
성령께서 감동을 주고 깨닫게 하시니,
힘들어도 끝까지 했습니다.
올해 수련회는 다른 때보다 최고로
좋았다고, 섭리인들과 사역자들에게서
보고를 받았고 조은 목사에게서도
보고를 받았습니다.
특히 <청년부 대학부 수련회>를 해
보니, 아침 시간과 낮 시간이 너무
더워서 그 후 수련회부터는 <시간>을
조정하여 <말씀 시간>을 ‘오후’로
옮기니 정말 좋았습니다.
또 <가정국 수련회>를 8월 22일에
하려다가 8월 15일 광복절로 당기고,
<장년부 수련회>는 8월 15일에
하려다가 8월 14일로 당겨서
했습니다.
8월 14일은 날씨가 정말로 좋아서
‘천국’이 되었고, 8월 15일은
‘가정국 전체’가 모이면서 더불어
‘섭리인들’도 많이 모여서
<섭리 대행사>를 하며,
<민족의 광복, 영적인 광복>을
맞아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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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시간과 날짜>를 조정함으로
최고의 수련회를 보내게 됐습니다.
이렇게 <가정국 수련회 날짜>를
8월 22일에서 15일로 당긴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했던
날이 8월 22일이었습니다.
만일 날짜를 안 옮겼으면 청중들이
불안해서 제대로 못 모였을 것이고,
그날 혹여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 해도 수련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찜찜하고, 마음껏
즐기며 기쁨의 잔치를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고로 성령님은 미리 아시고,
<가정국, 장년부 수련회 날짜>를
조정하여 <가정국 수련회>를 8월
15일로 당기게 하시고 그날 마지막
수련회를 하면서 섭리의 대행사를
하며, 광복 70주년을 맞아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도 갖게 한
것이었습니다.
지나고 봐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어련히 알고 하시니,
투덜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때도 <날짜>를 옮긴다고 불만이
많았고, “교단에서 옮겼냐. 조은
목사가 옮겼냐. 선생님이 옮겼냐.”
하면서 각종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앞날을 모르는 자들이고, 하나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신다는 것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원래대로라면 8월 22일에 끝날
수련회인데 8월 15일로 앞당겨
수련회가 일찍 끝나게 하시고,
하나님은 선생이 더욱
기도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북한은 전방 지역에
‘준전시 상태’를 선포하고,
잠수함 50여 척을 기동하고,
최종 특수부대까지 전방에
배치했습니다.
북한 지도자가 한 마디만 하면
전쟁이 시작되는 상황이었고,
한국도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전쟁을 준비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선생은 “때가 왔구나!” 하고
밤낮으로 기도했습니다.
이런 상황이었지만, 섭리인들은
“선생님이 <전쟁> 대신 <핍박>을
받겠다고 했으니, <전쟁>은 없다.”
하는 것만 절대 믿고, 그때 특별기도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기도회 때, 민족을
위해 간단히 기도하는 정도였습니다.
섭리인들도, 대한민국의 국민들도
‘설마, 전쟁이 일어나겠어? 또 저러다
말겠지. 전쟁은 안 일어나.’ 하며
태연했고, 민족 국방의 심각성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선생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모두가 전쟁의 심각성을 생각하지
않고 태연하게 자기 할 일만 하고
있습니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태연하면, 전쟁이
일어나서 죽어 봐야 그제야 안다.”
하셨습니다. 모든 상황을 아는 한국
정부는 긴장하며 이리저리 뛰었습니다.
또 전능자의 심정과 상황을 아는
선생은 더욱 기도했습니다.
‘성자가 떠나시면서
“민족의 환난이 온다.” 하셨는데,
그때가 이때구나! 성자께서
“섭리인들 쳐다보지 말고 혼자서라도
해결해야 된다. 너라도 조건 세우고
진정 기도해라.” 하셨는데, 그때가
이때구나!’ 하고, 더욱 깨닫고
기도했습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입니다. 고로 항상
‘전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나라입니다. 고로 항상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민족의 운명>은
곧 <자기의 운명>입니다.
‘사명자가 <환난과 핍박>을 받으니,
민족에 <전쟁>은 없다.’ 하며
안일하게만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대로
해 달라고 절대 기도해야 됩니다.
만일 전쟁이 일어나서 민족이 손해를
입는다면, 세상에서 <섭리사>가
가장 큰 손해를 입게 됩니다.
지금은 생명들을 전도하여 <휴거>되게
하고, <휴거 300선>이 된 자들은
<휴거 700선>까지 완성하는 때입니다.
휴거를 완성하는 과정 중에 있는데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것이 다
중단되니, <섭리사>가 최고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결혼을 해야 하는데 전쟁이 일어나면,
결혼할 남녀가 최고 큰 손해를 봅니다.
다른 사람들은 ‘결혼’에 해당되지
않으니 다릅니다.
하나님께 택함 받은 자라도
자기가 그만큼 행하면서 끝까지
변질되지 않고 잘해야 휴거되고,
하나님께 약속을 받았어도 하나님이
그 약속대로 행하시도록 간구하고
행해야 하나님은 약속대로
이행하십니다. <잠시 쉬었다가>
시대 사명자가
<핍박>을 받으니 이 민족에
<전쟁>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 민족의 상황을 볼 때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은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여
피가 마르도록 전쟁의 고통을 겪어
봤기에 더욱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전쟁이 일어나면
‘핵무기, 화학무기’를 쓰니 공기로
인해 다 병들고 끝장납니다.
그러면 섭리인들도 흩어질 수밖에
없고, 하늘 신부로서의 삶을 살 수도
없고, 환경이 그러하니 그 환경에 처한
대로 되는 대로 인생을 삽니다.
참으로 비참한 삶이 됩니다.
전쟁이 끝나도 다시 모이기가 힘들고,
서로 약탈하며 범죄가 난무하는 범죄
소굴이 됩니다. 그 상황을 말로도
다 못 하고, 글로도 다 못 씁니다.
선생은 <전쟁>을 겪어 봐서
이런 상황을 잘 아니, 절대 절대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해 달라고
정말 간절히,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판국이 이미 기울어졌나?’
하고 8월 20일부터 더욱 깊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미 배치되어
있는 탱크들과 무기들을 보면서
더욱 기도했습니다.
이에 성령님은 말씀하시기를
“결론은... 전쟁은 없다.” 하셨습니다.
그래도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냐고 하며 더욱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으로부터
‘깨닫게 하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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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좋아서 전쟁을 하게 하겠느냐.
나도 원치 않는다. 그러나 개인도
민족도 <죄>가 있으면,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고로 <죄>가 있으면,
그 대가로 각종 기근과 전쟁과 고통을
당하게 되고, <죄>로 인해 피하지
못하는 심판을 받게 된다.”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먼저는 “맞습니다!”
하고 시인하고, 민족과 세계의 각종
죄를 고하며 회개했습니다.
“제가 시대 십자가를 지고 회개합니다.
민족 정치의 죄,
종교 부패의 죄,
백성들이 하나님께 지은 각종 죄,
소돔 땅 같은 이성과 향락의 죄,
젊은 남녀들의 죄, 하나님이
그리 사랑해 줘도 믿지 않는 죄,
우상을 섬기는 죄,
의인들을 핍박하는 죄,
정치인들이 서로 화목하지 못한 죄,
속이고, 사기 치고, 폭력을 가하는 죄,
시기 질투하는 죄,
하나님이 이 민족에 역사하시는데
모르고 막는 무지의 죄,
의인을 불의로 대하는 죄를
회개합니다.
북한을 대신하여 회개합니다.
미워함으로써 살인하는 죄,
무력과 거짓의 죄, 무신론의 죄,
전쟁으로 무차별하게 생명을
멸하려 하는 죄를 회개합니다.
중국·미국·일본·러시아 등
각 민족이 죄를 짓고도 어느 민족이
‘죄’로 여기고 회개합니까? 모두
‘자기 민족의 권한 내의 행위’라고만
합니다.
그러니 결국 <죄>를 무서워하고,
<죄의 대가>가 크다는 것을 알고,
<죄의 대가로 인한 앞날>을 아는 자가
애간장을 태우며 하나님을 부르짖고
간구하며 회개합니다.”
하고, 하나님께 모든 죄들을 낱낱이
고하고 회개했습니다. 전쟁을 겪어 본
자만, 전쟁의 공포를 뼈저리게 압니다.
<전쟁이 일어나려고 할 때>와
<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판국이 다릅니다.
<칼로 찌르려고 할 때>와
<칼로 찌른 후>에는 판국이
다르듯 다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그때는 100% 상황이 달라집니다.
정신이 뒤집어져서 그제야 두려움에
하나님을 찾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질서는 깨져 난장판이 되고,
전기와 수도가 끊어져 살 수가 없고,
서로 불신하며 자기만 살려고 하고,
순식간에 우범의 세계로 변하여
약탈하고 강간하고,
식량이 떨어져서 굶주림에 허덕이고,
모든 도로와 교통수단이 끊겨 발이
묶이고,
돈은 무용지물이 되어 쓸 수가 없고,
그저 목숨만이라도 건지기 위해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서
자기 몸을 숨기려 합니다.
한 번 전쟁이 일어나면,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왜요?
상대가 다 죽거나 굴복해야
끝나기 때문입니다.
선생은 이같이 처참하고
비참한 상황을 알기에
“전쟁이 일어나면 만 배 해를 받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만 배
편하다.” 하며, 작년부터 이 민족과
온 세계를 놓고 기도하며
<각 민족의 대표>가 되어서
각 나라의 죄까지 낱낱이 고했습니다.
이미 그동안
각 나라의 죄를 놓고 계속 회개해
왔기에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갑자기 한꺼번에 이 엄청난 죄들을
고할 수 없습니다. 당황하면,
고하지도 못합니다.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으시고
“그러하다.” 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내가 최고 손해다.
6000년 동안 기나긴 구원역사를 펴
오다가 이제 <휴거 열매>를 따서
<땅>에서 ‘육’을 가지고 ‘휴거 역사’를
펴고 그로 인해 ‘영’을 휴거시켜
<천국>에서 혼인 잔치 하고 있는데
지금 ‘전쟁’이 일어난다면,
나 여호와도, 성령도, 성자도,
구원자도 손해이고, 이 시대
뜻을 펴는 자들에게 최고 손해다.
늘 ‘자신의 죄, 민족의 죄’를
회개하여라.” 하셨습니다.
늘 더러운 것을 청소해야
질병 없이 살 수 있습니다.
집안에 쓰레기가 쌓여 있으면,
버려야 됩니다.
더러운 오물은
청소하여 깨끗하게 해야 됩니다.
사람의 몸속에 있는 배설물도
배설하여 버려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로 인해
자기만 고통을 받게 됩니다.
<죄>도 그러합니다.
<죄>는 ‘회개’로 없애야 됩니다.
항상 <죄> 때문에 그 대가로
심판도 받고, 전쟁도 일어나고,
재해가 일어납니다.
고로 매일 회개해야
‘죄로 인해 받는 고통’을
안 받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하나님도 성령님도
“결론은... 전쟁은 없다.” 하셨습니다.
그래도 선생이 더욱 기도하니,
하나님은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가
최고 손해다.” 하고 또 말씀하시며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러고도 더
완벽하게 ‘답’을 받기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과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며
‘꿈’을 통해 계시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말씀해 주고,
오늘 말씀 마치려 합니다.
선생이 8월 23일 낮에
전쟁을 놓고 극적으로 기도하며
각종 것을 놓고 하나님과 대화할 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실수하겠느냐. 알았다.”
하셨습니다. 이에 그다음 날,
선생이 궁금하여 성령님께 다시 기를
“하나님이 어떻게 결정하시겠습니까?”
하니, 성령님은 “성자가 ‘민족의 죄’를
회개하라고 했을 때 이미 회개했으니,
됐다.” 하셨습니다. 그때 ‘간밤의 꿈’이
생각났습니다. 두 형제가 있는데,
각각 따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큰형’이 갑자기 목을 매달아
죽었고, 그 시체가 관에 들어가서
알몸으로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성령님께 이 꿈에 대해서 말하니,
“가인 민족, 에서 민족인 <북한>의
문제가 해결되어 옛것을 장사
지냈다는 것을 보여 준 계시다.”
하셨습니다.
2015_09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hwp37
<가인>은
‘의인, 아벨의 형’으로서 종교 역사
최초의 살인자이며 ‘악인의
표상’입니다.
<에서>는 ‘의인, 야곱의 형’으로
하나님께 택함 받은 야곱을 미워하고
죽이려고 쫓았던 자로서 역시
‘악인의 표상’입니다.
하나님은 <꿈>에
‘각각 따로 사는 두 형제’를 보여
주시며, ‘분단되어 따로 사는 한국과
북한’을 보여 주셨고, ‘큰형’이 죽는
모습을 보여 주시며 ‘가인과 에서와
같은 북한’의 문제가 해결됐다는 것을
<꿈>을 통해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먼저 시대 보낸 자가 하나님과 함께
의논하니, 그다음에 땅에서 한국과
북한이 대화하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셔서 8월 22일 오후부터 남북 간에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는 시대 사명자가 밤새
하나님께 회개하며 기도하였고,
이에 하나님은 밤새 땅의 상황을
조정하시어, 그 이튿날에도 남북한이
다시 만나 협상을 계속했습니다.
8월 4일에 북한의 도발이 일어난 후,
딱 21일 만인 8월 25일에 남북한
간에 협상이 타결되어문제가
해결됐습니다.
<북한>은 최근에도
‘천안함 폭침’ 등 많은 도발을 했지만,
1996년 ‘강릉 무장 공비 침투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이후 처음으로
이번 ‘지뢰 도발 사건’에 대해
유감이라고 표현하며, 사실상 본인들의
잘못을 사과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한국과의 회담을 통해
북한이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게 하고,
그제야 문제를 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시대 사명자를 통해서
‘한국과 북한의 죄’ 즉
‘우리 민족의 죄’를 회개하게 하시고,
그제야 문제가 풀어지게 하셨습니다!
이에 선생은 다시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드리고 약속했습니다.
“이제 10배는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죽거나 다쳐서
못 하는데, 전쟁을 막아 주셨으니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설교로 삼위일체가
구원자와 함께 행한 일을
섭리인들에게 알려 주고, 섭리인들도
더 열심히 하게 하겠습니다.
설교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나와 함께 행하신 일을
증거하겠습니다.” 했습니다.
원래 9월 27일 설교로
다른 말씀 세 가지가 생각나서
준비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내가 성령과 성자와 너와 함께 행한
일을 증거하라.” 하시어 성령님과
함께 이 말씀을 써서 보냅니다.
모두 말씀을 듣고 알았으니,
올해 추석은 특히나 성삼위께
감사하며 성삼위를 사랑하며
보내기 바랍니다!
전쟁이 일어났으면, 지금까지 살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모두 말씀을 듣고 깨닫고
더 열심히 뛰고 달리기 바라며,
그와 같은 힘과 능력 받기를
축원합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