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15.09.16 (수)
수 계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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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계시말씀
♥ 09월 16일 수요일 ♥
1. 나 성령이 함께하니 화목하라.
2. 네 발에 신을 벗어라.
작성일 : 2015. 8. 27. / 8. 29.
작성자 : 정성향
* 성령님의 말씀 *
사랑하는 자야.
내가 너에게 왔으니 내 말을 받아 적어라.
나는 성령이니라.
너의 사랑하는 선생이 조건을 세우니
내가 너에게 올 수 있음을 인정하라.
내가 오늘 너에게 하고자 하는 말은
전체에게 이르는 것이니
그것을 잘 받아 적어 전체에게 전하라.
나의 사랑하는 섭리사 나의 신부들.
내가 너희와 함께함이 얼마나 기쁜 일이냐.
내가 너희와 함께함을 실감하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냐.
내가 너희와 함께하니 오늘 내가 너희
모두를 보고 이야기하마.
내가 보니 너희끼리
더욱 화평하지 못하여 내가 말한다.
나의 생각을 받아 행하여라.
내 생각이 곧 답이니
내 생각을 하며 살아라.
너희끼리의 생각에는 한계가 있다.
너희가 휴거는 되었지만
아직 더 차원을 높여야 하기에
너희 생각에는 한계가 있다.
너희끼리 서로 힘을 주고 가야 하는 이
역사에 너희는 왜 서로 힘을 빼며 가느냐.
아직도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자기
입장만을 내세우며 가는 자들이 있기로
내가 말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들이라면 너희는 나의 향기를 풍기어야
하건만 어찌 아직도 사탄의 냄새를 풍기려
하느냐.
너희의 마음이 그러하지 않더라도
그 순간 행하는 것들을 통해 너희의 깊은
곳에 남아 있는 혈기와 모순들이 드러난다.
너희는 그 모든 것을 다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휴거 700선은 그냥 되지 않는다.
정확히 철저하게 모든 것을 다 잘라 버린
상태가 바로 700선이다.
너희가 나의 말을 듣고 행하는 대로
그 수준이 결정된다. 내 말을 생명시하고
지키는 자는 그 속도가 빠를 것이나
그렇지 않는 자는 그 속도가 너무나 더디
이루어질 것이니 너희는 속히 그 모순을
버리고 나아오라.
내가 보니 너무 민망하구나.
너희를 이제껏 가르친 선생이 보고
민망하다 하는구나.
너희를 나에게 소개시켜 주는
선생이 민망하지 않게 하자.
너희는 하늘 신부들이지 않느냐.
하늘하늘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고
어찌 욱하는 성격들을 가지고 남을 상처
주고 판단하며 가느냐.
너희가 하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를 보고 이야기한다.
아직도 많이 고쳐지지 않은
오염된 것들이 있기로 지적한다.
나는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말하니 내 말을 생명시하고 지키어라.
너희가 어찌 너희끼리 정죄하느냐.
너희끼리 어찌 감히 심판하느냐.
내가 너희와 함께함을 잊지 말아라.
내 앞에서 너희가
서로 험담하는 모습이 보기 안 좋구나.
어른 앞에서는 싸우는 것이 아닌 것을
알지 않느냐. 그건 기본이다.
너희가 서로 싸울 때 너희 앞에
누가 있는지 알고 싸우느냐?
내가 있다. 삼위와 선생이 있다.
그 앞에서 너희의 보기 흉한 행동들이
너무 많구나. 내가 너희 옆에 있다 한
말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너희와
함께한다는 말을 알지 못하느냐.
내 앞에서 그러니 어찌하느냐.
너희, 모두 모순된 행동과 성격을 다
버리고 나아오라. 너희가 행하는 만큼이다.
그만큼만 이루어지는 세계이니
너희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행하자.
나이가 어리든 많든,
지도자든 아니든 다 마찬가지다.
너희는 무엇도 핑계 댈 것이 없으니
모두 내 앞에 그렇게 행하는
모순들을 다 없애 나가자.
내가 만들자고 할 때 해야지.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하는 것을
내가 어찌 보고 있겠느냐.
내가 하자고 할 때 고치고
하나님의 노하심을 면하자.
내가 너희를 가르칠 때 하자.
너희를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
너희 가운데 함께한다. 그러니 감사함으로
이 기회에 정확하게 고치자. 너희는 얼마나
혹독하게 하늘 교육을 받고 가는지 모른다.
내가 기른 자들은 다 그리 혹독한 교육을
받은 자들이다. 그렇게 해서 전체 앞에
내어 놓는 것이다. 나의 사랑 선생이
그러하며 그의 온전한 작품, 상대체의
역사를 이룬 부흥강사가 그러하다.
너희는 나의 사랑하는 자들이기에
너희 앞에 표상자를 세워 보여 주었으니
그와 하나 되어 그를 따라 행하여라.
너희끼리 이제 더
화평하며 화목하며 관용으로 대하라.
내가 다시 지켜볼 터이니
너희는 그것을 반드시 지키어라.
너희가 어찌 세상 사람들이 하듯이 하느냐.
아직도 그런 자들이 있다고 놀라느냐?
그런 너 자신도 다시 돌아보아라.
내가 무엇을 두고 말하는지
깊이 기도하여 깨달아라.
내가 너희 모든 마음속을
깊이 보고 말하였다. 내가 오늘 이를 통해
말하니 그 말을 깊이 새기고 가자.
선생이 더 이상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너희는 이제 이것은 기본으로
지키며 가도록 하자.
내가 이제 너희를 더욱 세밀히
가르치겠다고 한 약속대로
오늘도 자세하게 말하고 가는 성령이다.
사랑으로 한 말이니 깊이 새기어라.
너희의 사랑하는 성령이니라.
사랑한다.
성령.
(성령님. 더 해 주실 말씀이 없으신지요?)
더 해 주고픈 말이 많지.
그러나 하나 행하고 또 하나 듣고 하자.
그리도 행하자 하여도 듣는 자들만 많고
행하는 자들은 적으니 이것이 문제다.
시간이 얼마 없다 하여도 그것을 보통으로
여기니 더 이상 말할 시간도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하나하나 새기며
행하자. 나 성령이 너희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을 하고 간다.
사랑해.
(이틀 후 새벽기도 중에
이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감사하는 가운데 내가 역사한다. 네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니 말하고 간다.
나 성령이다.
내가 너에게 이른 교육을 두고
더욱 깊이 말해 주려고 하니 받아 적어라.
너희 모두에게 주는 교육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니
너희는 모두 너희 마음을 더 내려놓아라.
내가 너희 가운데 역사하니 내려놓아라.
내가 보니 너희 마음을 내려놓지 못해
생기는 것들이 너무 많다.
내가 너희에게 준 계명들은
어디로 가고 너희만이 남아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준 생명의 말씀들이
어디에 있고 어떻게 사용하고 있느냐.
내가 너희를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으니
너희는 너희 마음의 신을 벗고 나에게
와라. 네 발의 신을 벗으라 하였다.
나의 사랑 선생이 만든 귀한 자연성전
월명동에도 보아라. ‘네 발의 신을 벗어라’
하는 상징의 돌이 있지 않느냐.
내 사랑하는 자들이 어찌 성전 안에서
너희 신을 신고 들어와서 나를 무렴케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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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발에 신을 신고 들어오는 자는
도둑이 아니냐.
주인은 신을 벗지 않느냐.
네 발의 신을 벗고 나와라.
내가 너희의 모든 것을 주관하니
너희는 내게 맡기어라.
너희가 서로 그런 마음에
하는 일들이 어찌 잘될 수 있느냐.
무엇을 하든지 먼저는
서로 마음이 일체 되어야 하거늘
너희가 무엇을 하려고 하거든
먼저는 마음을 맞춰라.
나를 향해 나를 생각하며
선생을 중심해서 가야지.
나와 함께하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느냐.
내 눈치를 보면서 해야지.
너희 선생은 그렇게 하는 자이지 않느냐.
내 눈치를 보고 행하자.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행하자.
너희 마음의 신을 벗으라고 했다.
마음의 신을 벗는 것,
그것은 바로 너의 마음을 비우고
나의 마음으로 하는 것이니
너희는 나의 마음을 가지고 행하자.
사랑으로 교육했다.
성령이다.
♥ 09월 16일 수요일 ♥
같이해야 표적이 일어난다
작성일 : 2015. 9. 1. AM 1:30
작성자 : 이찬
(지역회의 1박 2일 선교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저녁 선교 모임이 끝나고
새벽기도 때 성삼위와 선생님을 모실
장소를 찾았습니다. 베란다가 딱 좋아서
의자와 테이블을 배치하고 청소도 하고
예쁜 꽃과 편지를 써서 성삼위와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기뻐하시면서
오셨습니다.
“내게 빠지니 표적이 일어난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나를 모시고자 하는
마음으로 행하여 이곳에 내가 왔다.
내가 온 것이 표적이고 나를 향한
네 행동이 표적인 것이다.” 하시며
오늘 주실 계시의 주제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같이해야 표적이 일어난다.’
이때 갑자기 장수하늘소가 위에서
제 앞에 딱 떨어졌는데 뒤집혀서 발버둥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계시인지
생각을 골똘히 하다가 몰라서 그냥 기도를
했습니다. 약 20-30분이 지났는데
장수하늘소는 일어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지만 아직도 못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일으켜 줘라.” 하셔서
일으켜 줬습니다.
이때 선생님께서 “혼자선 아무리 발버둥
쳐도 못 일어난다. 그러다 결국 힘이
빠져서 그 자리에서 죽는다.”고 말씀하시며
계시를 주셨습니다. 계시를 받으면서
엄청난 표적이 일어났는데 장수하늘소가
계시받는 내내 글을 쓰는 펜 끝을
따라다니기도 하면서 떠나지 않고 노트
위에 계속 있었습니다.)
* 선생님의 말씀 *
인생들은 쉽게 착각한다.
자신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 혼자 힘으로 살아간다.
자신을 도와주는 하나님도 모르고
그 도우심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결국 자기 차원, 자기 생각만큼만
표적을 일으키며 살아간다.
그러니 자신이 행하는 표적이 전부라고
생각하면서 살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답답하고 무지한 인생이다.
하늘과 함께하면 하늘의 표적이 일어나고
기적 같은 역사가 일어난다.
하늘과 함께하니 기적의 삶을 맛본다.
하늘과 같이해야 한다.
이 장수하늘소도 혼자선
끙끙대면서 절대 못 일어나다가
네가 도와주니 금세 일어나지 않았느냐.
이와 같이 하늘이 도우면 표적이 일어난다.
혼자선 할 수 없는 일도 이루어지고
자신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완성되어 이루어진다.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늘의 도움을 받으면 죽음도 피하고
기적 같은 하늘의 역사도 일어나는데
이를 잘 모른다. 모르니 하늘을 뒤로하고
자기 혼자 행해 버린다.
그러니 자기 수준, 자기 표적이다.
사랑들아.
하늘과 같이한다고는 하지만
정말 같이하는지 깊이 생각해 봐라.
대부분이 자주 자기 혼자 행하고 있다.
그러니 표적이 안 일어나고 넘어지고
낙심되고 힘이 드는 것이다.
혼자 하는 자는 넘어지면
혼자 일어나려고 발버둥 친다.
자기 차원에서 행하니
일어나기도 어렵고 몇 배로 힘들다.
그러나 하늘과 함께하는 자는 넘어져도
하늘을 잡고 금방 일어난다.
항상 같이해야 한다.
하늘의 모든 일을 할 때
절대 같이해야 표적이 일어난다.
하늘과 같이하여 정말 표적을
일으켜 본 자는 그 맛을 안다.
그다음부턴 자신이 아무리 좋은 것이
있을지라도 혼자 하지 않고 오직 하늘만
붙잡으며 같이한다.
인생의 차원이 아무리 높아 봐야
하늘을 따라갈 수 있겠느냐.
너희도 한번 맛보아라.
그 무한한 하늘의 표적을 맛보아라.
나를 보아라.
이곳에서 얼마나 표적을 일으키며
살아가는지 아느냐.
나의 행함에서 오는 놀라운 표적,
환경 가운데 일어나는 기적 같은 표적,
만물로 일어나는 신비한 표적,
나의 생각으로 오는 생각 축복의 표적 등
수많은 표적들이 매일 내 삶에 일어난다.
이는 다른 게 아니다.
오직 하늘과 같이하는 삶에서 오는
표적이다. 이 삶이 반복되다 보면
하늘의 표적이 나의 표적이 되고
하늘의 차원이 나의 차원이 된다.
기적과 표적은 오직 하늘에서 오는 것이다.
내가 다 말을 못 한다.
너희들이 기적과 표적을 맛보며 살아야
내가 말해도 공감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나와 같이 행하는
자에게만 말할 수 있고 그런 자만
나의 표적을 깨달을 수 있다.
정말 하늘과 함께해 보아라.
얼마나 기적 같은 일들과 표적이
일어나는지 자신이 실감해 보아라.
그리고 나를 깨달아 보아라.
(이때 노트 위에서 떠나지 않는
장수하늘소를 보며 정말 너무 신기해서
선생님께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표적은 다른 것이 아니다.
하늘과 함께하는 것이 표적이다.
선생이 함께하는 것이 표적이다.
물론 이적과 기적도 표적이다.
하지만 이 시대 최고의 표적은
내가 살아 있고 너희와 함께한다는 것이다.
네가 오늘 어려운 환경에서도 새벽부터
나를 모시고자 자리도 마련하고 꽃도
선물하고 편지도 쓰니 내가 기뻐서 이와
같이 표적을 보이며 계시하고 있다.
나도 이곳 환경에서 성삼위를
매일 기적처럼 모시고 있다.
성삼위를 모실 수 있는
그 자체가 표적이다.
이 환경에서 성삼위와 같이한다는 것이
표적이다. 이 표적이 어떻게 인간의
수준에서 일어날 수 있겠느냐.
오직 하늘로부터 오는 기적 같은 표적이다.
그 가운데 정말 이적과 기적도 일어난다.
난 매일 하늘 앞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늘이 같이하지 않았다면
난 벌써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러니 너희도 제발이나
하늘과 함께하는 표적의 삶을 살아라.
부족해도 좋다.
잘 못 해도 좋다.
못생겨도 좋다.
단, 오직 나와 같이하여라.
난 예쁘고 잘생기고 능력 있는 자가
자기 혼자 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도 나와 같이하는 자를 원한다.
아무리 자기가 잘났어도 나와 함께하지
않으면 결국 땅의 수준을 면치 못한다.
그에겐 표적이 없고 자기 영광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하늘은 하늘의 영광이
되게 하는 자에게 하늘의 표적을 보인다.
같이하면 표적이 일어난다.
2015_0916수 계시말씀.hwp3
(“아멘! 선생님! 저도 선생님과
같이한다고 하지만 차원이 많이 낮고 혼자
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정말 선생님과
같이함으로 항상 표적을 일으키며 살게요.
선생님~ 이것 봐요. 아직도 장수하늘소가
노트 위에 있어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좀 더 잘 찍고 싶어서 장수하늘소를
볼펜으로 밀어서 노트 중앙에 데려다
놓았습니다. 근데 장수하늘소가 놀라서
노트를 벗어나 도망쳤습니다. 전 다시
잡으려고 일어나려 했는데 선생님께서
“잡지 마. 잡아놔 봤자 또 도망가” 하시며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은 항상 순리다. 이치다.
절대 순리를 거스르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왜 전지전능하신지 아느냐.
순리와 법칙을 벗어나지 않으시고
모든 일을 행하시기 때문이다. 너희도
세상의 순리와 이치를 깨닫고 그 가운데
하늘과 같이함으로 표적의 삶을 살아라.
너희들이 항상 실수하는 부분이 있어.
너희는 너희 생각대로 행해.
너희 생각엔 그것이 더 좋은 것 같아도
내가 볼 땐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난 자기 생각, 자기 주관,
자기 스타일이 있는 자에겐
자기 수준만큼만 역사해 주고 간다.
더 역사해 주다간 나도 답답하여
심정 상하고 상대도 힘들어서
포기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랑들아.
내 앞엔 너희 주관과 생각을
모두 버려야 한다.
매일매일 버려야 해.
마치 죄가 생기듯 인생들은
언제나 자신의 경험이나 습관에서
자신의 근성들이 튀어나온다.
하늘과 완전히 같이하는 자는
완전함에 머무르지 않는다.
백조가 다리를 계속 발버둥 쳐서
물 위에 우아하게 떠 있듯
매초, 매 순간마다 하늘과
함께하려고 발버둥 친다.
자기가 부족해도 자기 주관, 자기 생각을
버리고 나와 함께 행하는 자에겐
하늘의 표적을 보여 주리라.
기도도 전도도 강의도 모두
나와 같이하면 표적이 일어나리라.
(이때 놀랍게도 장수하늘소가 노트 위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테이블을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올라온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이것 봐요! 정말 표적이에요!
이건 선생님이 안 하시면 아예 불가능한
일이에요!”)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나의 뜻대로 하는 자에겐 내가 간다.
내가 가는 것 자체가 표적이며 역사다.
자기를 비우고 나와 함께하는 자는
반드시 뜻이 이루어진다.
내게 푹 빠져 살아라.
내게 빠지면 표적이 일어난다.
어떤 표적?
사탄 불가침의 표적, 사랑의 표적,
생명 전도의 표적, 강의의 표적,
관리의 표적, 기도의 표적,
행함의 표적, 말씀의 표적,
성령의 표적, 휴거의 표적,
생각의 표적, 만물의 표적 등
수많은 하늘의 표적이 일어난다.
모든 것을 나에게 빠져서 해라.
빠져서 해야 힘도 안 들고 재밌다.
내게 빠져서 행하면 어떤 표적이
일어나는지 오늘 하루 살아 보아라.
표적들을 노트에 적어 놓고 내게 대화해.
다른 게 표적이 아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던 너희가 인생 가운데
하나님을 찾게 된 것이 표적이다.
나를 모르던 자가 나를 아는 것이
표적이다. 하늘을 위해 살지 않던 자가
하늘을 위해 살게 된 것이 표적이다.
하늘이 너희를 137억 년 동안 창조한
것이 표적이다.
하늘과의 사랑이
137억 년 만에 이루어진 것이 표적이다.
너희 생각 속에 어떤 것도 틈타지 않고
하늘 사랑 생각만 하는 것이 표적이다.
전도하는 것이 표적이다.
강의하는 것이 표적이다.
관리하는 것이 표적이다.
주 사랑이 표적이다.
너희가 휴거된 것이 표적이다.
이 모든 것이 하늘의 표적이다.
이 모든 것은 나와 함께할 때만이
일어나는 표적이다.
나와 함께 하는 너희의 삶
자체가 표적의 삶이다. 알겠느냐?
매일 표적을 일으키며 살아라.
표적의 삶이다.
표적의 주인, 선생.
(감사합니다!
계시가 끝나자마자 장수하늘소는
테이블을 내려가더니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이를 보고 다시 너무 신기해서
“선생님, 정말 기적이에요.
너무너무 신기해요!” 말씀드렸습니다.)
내가 함께하니 기적이지.
표적이지. 안 그러냐?
(“맞아요! 너무 신기해요.”)
또 장수하늘소도 네가 살려 줬으니
고마워서 안 떠난 거지.
이와 같이 생명도 전도해서 살려 놓으면
평생 우리 편이 되어 행한다.
너희도 내가 모두 살려 주고 휴거시켜
줬으니 내게 평생 고마워하면서
나를 절대 떠나지 마라.
나는 떠나는 자들을 보면 너무 힘들어.
마음이 찢어진다.
나와 같이 영원히 알콩달콩 살자.
(“아멘! 오늘 이 만물 계시를 보면서
선생님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고
선생님과 같이하는 것 자체가
표적임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맞다.
나 자체가 표적이다.
내가 살아 있는 것이 표적이다.
너희는 깊이 깨달아야 해.
내가 지금 살아 있을 때가
최고의 표적의 때다.
내가 살아 있는 당세의 때,
함께하는 너희 자체가 표적이다.
(“아멘! 열심히 할게요!”)
특히 올해는 선교의 표적을 일으켜야 한다.
난 지금 선교를 얘기하는 곳,
선교하는 곳에 집중하고 그곳에 간다.
나와 함께하는 곳엔 생명의 표적이
일어나리라.
오늘 나도 너무 기분이 좋아서
이와 같이 역사하고 간다.
모두 항상 나를 모시고 나와 같이
나의 뜻을 위해 모으고 헤치며 행하여라.
항상 나와 같이다.
항상 나와 의논이다.
항상 나와 연구다.
또 형제와도 하나 되어 같이해야 해.
그래야 표적이 일어나.
(마태복음 18장 19-20절)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두세 사람이 기도하면 그곳에 하늘은
반드시 함께한다고 나와 있지?
나도 그래. 많은 자들이 모여서
하나 되어 나의 발판을 만들면
더 큰 표적을 보이며
더 큰 역사를 이룰 수 있다.
개인도 전체도 하나 되어
나와 같이 행하자.
나와 같이하는 자에게
표적을 보이는 선생이다. 안녕.
♥ 09월 16일 수요일 ♥
‘행함’으로 하늘 앞에 너
스스로에 대해서 증명해 보여라!
행한 것만이 남아진다!
작성일: 2015. 8. 11. PM 6:53-7:38
작성자: 주수신
(1박 2일 여름휴가 기간을 보내는 동안
기도와 말씀 정리에 소홀해졌습니다.
1박 2일 동안 일들을 제때 안 해서
해야 하는 일들이 쌓여 가니
‘나는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과 갑갑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후 7시 기도 시간에 주신 말씀입니다.)
* 성령님의 말씀 *
사랑아, 성삼위가 너를 신부로 택했지?
2015_0916수 계시말씀.hwp4
네가 택함을 받았는데, 그 택함을 감당할
자라는 것을 하늘 앞에 증명해 보여라!
나 성령이 옳은 선택을 한 것임을
증명해 보여라! 나 성령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 아님을 증명해 보여라! 성삼위가
‘너’를 창조한 것이 잘한 일임을 증명해
보여라!
하늘이 ‘다른 자’가 아니라 바로 ‘너’를
택한 것이 성삼위가 지금껏 해 온 일
중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임을
증명해 보여라!
너의 가능성을 하늘 앞에 증명해 보여라!
성삼위와 선생이 너에게 투자하는 것이
헛된 일이 아님을 증명해 보여라!
네가 바로 ‘하나님의 꿈’을 이룰 자임을
증명해 보여라! 내가 너를 두고 그저
‘헛투자’를 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해
보여라!
네가 ‘하나님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해 보이고 성삼위가 너를 그리도
사랑하듯 너 또한 삼위를 사랑함을 증명해
보여라!
네가 바로, ‘너 개인의 뜻’을 넘어서
<성삼위의 뜻>을 이 시대 구원자와 함께
펴 나갈 자임을 증명해 보여라!
네 생각이 삼위와 같음을 증명해 보여라!
네 마음이 성삼위와 선생에게로 향함을
증명하여라!
네가 사탄의 편이 아니라,
바로 전능자 여호와 하나님의 편이요,
나 성령과 성자의 편이요, 이 시대
보낸 자의 편임을 증명해 보여라!
증거의 신인 나 성령이 진실로 말하노니,
‘행실’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증명해
보일 수 없는 것이다.
‘행실’이 없는 생각은 <죽은 생각>이다!
‘행실’ 없는 결심은 <죽은 결심>이다!
‘행실’ 없는 고백은 <죽은 고백>이다!
‘행실’ 없는 마음은 <죽은 마음>이다!
‘행실’ 없이 그저 다 해 주겠다고 하는
말은 <죽은 말>이다!
‘행실’ 없는 사랑은 <죽은 사랑>이다!
‘행실’ 없는 뜻은 <죽은 뜻>이다!
‘행실이 없는 자’는 <생각, 결심, 고백,
마음, 말, 사랑, 뜻도 모두 없는 자>이다!
행실 없이 그저 생각만 하고,
결심만 하고, 고백만 하고, 마음만 갖고,
말만 하고, 뜻만 지닌 자는 결실을 맺지
못함으로 그 모든 것들을 ‘헛것’으로
만드는 자이다!
생각이 없는 자, 결심이 없는 자,
고백이 없는 자, 마음이 없는 자,
말조차도 없는 자, 사랑이 없는 자,
뜻이 없는 자. ‘행실’이 없는 자는
이러한 자들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노라!
성삼위도 선생도 ‘보이는 것’
즉, 행한 것을 보고 ‘너’를 믿어 준다!
너희의 행함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내가 너를 택한 일이 그릇된 일이
아니었음을 확신한다!
이 역사는 ‘실체’를 남기는 역사이다!
사랑아,
‘실체’로 역사를 펴는 성삼위와 선생에게는
‘실체’를 가지고 나아와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말이 통한다!
네 믿음대로 되리라!
네 행함대로 되리라!
너는 네 믿음대로 행할 것이고, 네가 행한
대로 ‘너의 미래’를 만들어 가리라!
네 행함대로 성삼위도 선생도
너에게 ‘더’ 손을 댈 것이고,
너의 행함대로, 너와 함께
그 행한 차원의 뜻을 이루어 가리라!
너는 무엇으로 너의 ‘가능성’을
하늘 앞에 증명할 것이냐?
무엇으로 네 ‘사랑’을 증명할 것이며,
무엇으로 너의 ‘마음’과 ‘생각’을 증명할
것이냐? 무엇으로 너의 ‘일편단심’을
증명할 것이냐?
도대체 무엇으로!
성삼위가 그리도 애타게 찾고 있는 자가
바로 ‘너’임을 증명할 것이냐는 말이다.
사랑아, 오직 ‘실천’이다!
행한 것만 남는다!
아무리 네 마음과 생각이 뜨겁고
네 사랑이 불타도 그때, 그 뜨거운 마음과
생각 그리고 불타는 그 사랑으로 그에
해당되는 행실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그 순간 너의 마음도, 생각도, 그 불타는
사랑도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즉, ‘행실’로 남기지 못한 것은 ‘무(無)’다.
없는 것이다.
네 마음과 생각의 실체를 내보이며
“이러합니다!” 하고 주장해야
그제야 말이 통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왜? 성삼위도, 선생도 ‘실천자’다.
그러므로 실천자,
행한 자와 말이 통하는 것이다!
고로 나 성령이 오직 ‘사랑’으로
너에게 말하니, 내 말을 들어라!
네 마음을, 생각을, 사랑을,
뜻을 날마다 하늘 앞에 증명해 보여라!
바로 실천으로, 행함으로, 그 실체를
육, 혼, 영으로 남김으로 증명해
보이라는 말이다!
네 마음, 생각, 결심 그 모든 것들을
네가 한순간이라도 정말 행했다면,
네가 그리했었다고, 네가 그리한 것이
맞다고 하늘 앞에 증명해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 즉, 네가 옳다는 것을
하늘 앞에 증명해 보여라!
하늘의 뜻을 함께 펼 적임자가 바로
‘너’임을 증명해 보여라! 바로 네가
이 시대를 맞이하고 이 시대 성삼위의
뜻을 삼위 앞의 두 증인과 하나 되어서
이루어 나갈 자임을 증명해 보여라!
절대 ‘실천’이다!
육의 행함으로 그 모든 것들이 결정 난다!
그저 뇌에 ‘생각’으로만 담아 두느냐,
그 생각이 실천화되는 버튼을 눌러서
생각의 실체가 바로 네가 되도록
만드느냐에 따라서 네 꿈이 이루어질지,
이루어지지 않을지가 결정 난다!
네 사랑을 영원토록 삼위와 이룰지,
그저 순간 뜨거운 마음으로
남고 사라지게 만들지가 결정 난다.
네가 이 ‘역사에 남는 자’가 될지
아니면 그저 마음, 생각,
결심만 순간순간 하고,
그에 맞게 행치는 않음으로
결국 ‘역사를 등지는 역천자’가
될지가 결정 난다!
‘행함’으로 너의 <가능성>을 증명해
보여라!
너를 택한 성삼위와 선생 앞에 이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음을 증명해 보여라!
육으로만 보아도 그러하지 않느냐.
행한 것만 남는다. 행해야 다른 자들에게도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네 방을 제때 안 치우면
어머니가 방을 치우라고 말하지 않느냐.
아무리 네가 치울 ‘마음’이 있었고,
‘생각’이 있었고, ‘결심’이 있었고,
깨끗이 하고자 하는 ‘뜻’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 순간 행치 않으면
마음도 생각도 결심도 뜻도 ‘순간’
뜨거웠을지라도, 모두 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어머니가 어찌 받아들이겠느냐.
마음도, 생각도, 결심도, 뜻도 없었기에
치우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느냐.
하늘 앞에도 그와 같다.
행한 것만 남는다. 사랑아, 하늘 앞에
‘너’에 대해 증명해 보여라!
나 성령이 너를 정말 사랑해!
성삼위는 늘 너를 향한 마음, 생각, 사랑,
뜻을 증명해 보이지 않느냐.
사랑의 실체를 보여 주니
‘아, 나를 사랑하는구나!’ 알지 않느냐.
너희는 모르겠다고 하며 안 느껴진다고
하며 그 실체를 보여 달라고 하고
실체를 보여 줘야 믿고 따르면서,
왜 성삼위와 선생 앞에는
네 실체를 안 보여 주는 것이냐?
실체를 만들어 놓지도 않고
그저 “마음이 있고 생각이 있어요.
사랑해요! 삼위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어요!” 하는 것은 허황된 것이다.
허황된 말과 허황된 고백만을 하는 자가
되지 말아라!
삼위가 느낄 수 있고, ‘인정’할 수 있도록
절대 너의 <마음, 생각, 결심, 사랑, 뜻의
실체>를 남겨라!
하늘 앞에 네가 행한 것을 떳떳이 보여
주며 인정받고 더 높은 차원을 바라보며
사는 자가 되어라!
2015_0916수 계시말씀.hwp5
실체를 만들지 않으면,
네 스스로 말하고도 부끄럽지 않느냐?
왜 사랑하는 애인 앞에 부끄러운 고백만
하고 네 말대로 못 지키는 부끄러운
행실만을 하는 것이냐?
성삼위가 실체를 보여 주지 않으면
삼위를 믿고 따를 자가 ‘단 한 사람’도
없다! 내가 너희에게 보여 준 실체란,
이 시대 구원자, 그리고 시대 말씀이다!
너희가 실체를 보여 주지 않으면
너희를 믿고 인정할 자가 단 한 명도
없다. 육을 지닌 자들 중에도 없고,
성삼위 중에도 없다.
그저 속아 주기는 하나, 믿고, 인정하고,
네 ‘가능성’을 보지는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 앞에도 하늘 앞에도 떳떳해지는
방법이 있다! 그 방법인즉,
<행하는 것>이다! 행함으로
‘실체’를 남긴 것을 가지고 이야기하여라!
이미 행해 남긴 것이 있으니 그것을
가지고는 ‘네 마음이 없다. 생각이 없다.
사랑이 없다. 뜻이 없다. 결심이 없다.
네 말이 허황되다. 희망이 없다.
가능성이 없다.’하지 않으리라!
나 성령이 오늘은 너에게
‘행함의 중요성’에 대해 말해 주었다.
행함이란 즉,
<네 자신에 대해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네가 행한 것을 가지고 나 성령과
이야기하자. 네가 행한 것을 가지고
하늘 앞에 나와라.
성삼위와도, 삼위 앞에 두 증인과도
‘행한 것’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늘 앞에 실체를 요구하며
그 실체를 보아야만 그제야 너희가 믿듯,
하늘도 그러하다. 행하지는 않고
말만 하는 자, 속이는 자이다.
하늘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고
반드시 제때 행함으로 네 자신에 대해
증명하고 하늘 앞에 인정받고 살아라.
행한 것만이 남아진다.
행한 것만을 가지고 하늘과 통할 수 있다.
사랑아,
너를 사랑하니 어찌 인정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세세히 알려 주었다!
날마다 증명하는 삶을 살아라!
사랑해! 안녕!
♥ 09월 16일 수요일 ♥
시간을 창조하라
작성일 : 2015. 8. 27. / 9. 2.
작성자 : 주사랑빛
(자기 전에 신나게 선생님과 대화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자고 일어나서
새벽기도를 하러 교회에 왔는데,
잠이 덜 깨서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 동안
선생님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차! 선생님을 놓쳤네.’라고
생각하니, 그때 성령님께서 옆에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선생을 이제 부르느냐.”
“분명 어제 수요예배 때 명설교를 들으며
불을 받고 너무 기뻐하며 자기 전까지
생각에서 선생님을 놓치지 않았는데,
자고 일어나서 새벽예배를 드리러 오는
시간까지 성령님과 선생님을 까맣게 잊고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어요.”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음을 안다.”
“네, 죄송해요. 선생님의 삶처럼
앞으로 더욱 생각으로 붙잡고 놓치지
않을게요.”라고 말씀드리며 갖은 애교를
부렸습니다. 그때 성령님께서는 웃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 성령님의 말씀 *
나도 선생도 너를 매 순간 놓치지 않고
사랑하니, 너는 사랑의 가치를 알고 귀히
여기고 더욱 나를 사랑하여라.
신과 인간의 사랑의 강도는 다르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신이 되는 과정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네가 ‘이 정도면 되었겠지.’ 한다고 해서
네가 생각하는 수준이 된 것이 아니다.
고로, 네가 생각하는 수준보다 더 행하는
것이 낫다.
비유컨대,
포클레인으로 땅을 한 번 파는 것이
삽으로 몇 날 며칠을 파는 것보다 더
낫지. 삽으로 몇 번 파다가
‘이 정도면 되었겠지.’ 해도
스스로의 만족이지, 주인의 만족을
채워 줄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선생은 항상 이를 명심하고 자신이
행하고자 결심하고 노력하는 정도보다
더 행하여 삼위를 만족하게 하였다.
더 행할 수 있는 방법 중 한 가지가
<미리 행하는 것>이다.
한정된 시간에 많은 일을 하려면
미리 행하여 시간을 <창조>하는 것이다.
<시간을 창조한다>는 말은 이러하다.
누구에게나 하루에 주어진 시간은
24시간으로 동일하다.
그러나 어떠한 자는 불필요한 일을 함으로
시간의 일부를 써 버리고 혹은 시간의
전부를 써 버린다.
처음부터 완벽히 시간을 쓰는 자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불필요한 일을 하는
<불필요한 시간>을 줄이며 부지런히
시간을 잘 활용하며 행하는 자는
한정된 시간 중에 <불필요한 시간>이
줄어듦으로 ‘자신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니
<시간을 창조한 것>이다.
또한, 네가 삼위와 선생을 생각하고
부름으로 신의 정신과 생각을 받아 행하니,
일정 시간에 하나를 이룰 것을
두 개, 세 개, 열 개, 백 개, 수십 개,
수백 개를 이루게 된다.
그러니 ‘시간을 창조하였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네가 나와 선생을 생각하지 않고
부르지 않는다면 모두 죽은 시간이니,
시간을 <소멸>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참으로 아깝다. 시간은 돈과 같으니
네 돈을 한 시간 안에 수천 만원을
날린 것보다 더 아까운 일이다.
왜냐하면 시간은 육의 삶뿐 아니라
영의 삶까지 좌우하기 때문이다.
육의 행위로 인해 천국에서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로, 절대 나와 선생을 잃지 말고
매일 매 순간 생각하고 부르고 대화하여
시간을 뺏기지 말라.
그리함으로 최고로 유용하게 시간을
사용하는 자가 되어라.
24시간 중 24시간을 죽은 시간이 아닌,
산 시간으로 사용하여
시간을 창조하는 자가 되어라.
사탄은 <시간 뺏기> 공격을 한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자라도
시간이 없으면 못 한다고 했지?
휴거의 시계가 쉼 없이 달리고 있는
이때에 시간을 빼앗으면 아무리
능력자라도 휴거를 뺏길 것이 아니냐.
섭리사 많은 자들이 휴거를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고 있으니
사탄은 <시간>을 뺏고자 한다.
24시간 안에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하는 일이 있는데
24시간 안에 끝내지 못하고 25시간이
걸렸다면 실패한 것이 아니냐.
선생이 아무리 완벽한 말씀을
기록하여도 1초만 늦으면 보낼 수 없다.
사탄은 이것을 정확히 알기 때문에 시간을
뺏고자 한다.
사탄이 시간을 뺏기 위해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 있다.
‘생각의 축복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하게 만드는 것’이다.
‘삼위와 선생을 부르고 찾고 간구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인간 스스로
<자체 만족함>을 느끼며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사탄은 이렇게 행하여
자신의 소유가 되는 자들을 마음껏
비웃으며 기뻐한다.
매 순간 선생을 생각하지 않고
구원과 휴거를 이루려 하니 헛된 욕심이다.
실패다. 사탄이 비웃는 행위다. 고로 과정
없이 결과를 이루려 하지 말고 과정
가운데 최선을 다하여 결과를 이루어라.
특히, <자기 생각, 자기 주관>으로 사는
자는 가장 시간을 많이 뺏기는 자다.
옳은 길을 놔두고 잘못된 길로 최대
속력을 내서 달리다가 먼 길을 가서
그제야 깨닫고 다시 돌아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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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은 이미 다른 신부와
옳은 길로 떠난 후이다.
자기 주관, 자기 생각으로 행한 것은
후에 돌이킨다고 해도 늦다는 것이다.
<자기 주관, 자기 생각>으로 행하는 자는
자신의 생각을 신과 같이 여기고
신의 생각을 받으려 하지 않는 자다.
안테나를 세우는데
나무 기둥을 대신 세우는 격이다.
아무리 나무 기둥이 안테나보다
더 튼튼하고 크다 해도 나무가 안테나
역할을 할 수 없다. 자기 생각이 아무리
뛰어날지라도 삼위의 생각에 비하겠느냐.
<자기 주관, 자기 생각>을 버리고
오직 ‘삼위의 생각’을 받고 행하는 것이
시간의 승리를 하는 비법이다.
자기 생각으로 한 가지 얻을 것을
신의 생각으로 백 가지, 천 가지를 얻는다.
고로 얻은 자는 얻지 못한 자에 비해
시간을 창조한 자다.
고로 너는 매 순간 절대 삼위와 선생을
생각하고 부르고 찾아야 한다. 이것이
<차원을 엄청나게 높이는 일>이다.
깊은 나의 말의 가치를 알고 행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다.
사랑한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손가락이
왜 다섯 개인 줄 아니?
하나님, 성령님, 성자, 구원자, 너!
연결된 것은 하나다.
(“와! 그럼 손은 왜 두 개인가요?”)
휴거된 자, 즉 삼위일체와 구원자와
일체 된 자는 영계에서도, 육계에서도
(손이 두 개인 것처럼, 두 개의 세계에서)
한 몸, 한 뜻으로 행하며 기쁨과 행복의
삶을 살라 함이다.
손을 볼 때마다 매일 생각해라.
<삼위와 구원자를 생각하는 시간>은
‘창조의 시간’이다.
성령이 깊이 이르고 간다.
♥ 09월 16일 수요일 ♥
생각의 길을 바꾸어라
2015년 9월 16일 수요일 새벽 계시말씀
작성일 : 2015. 9. 1.
작성자 : 정빛별
(꿈에 성령님께서 생각을 끊지 못하는
자들은 생각이 그쪽으로 길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하시면서
여러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성령님의 말씀*
말씀을 들어서 생각을 끊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실제로 생각을 끊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
왜 그럴까?
생각이 길들여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인식하는 대로 행하기 좋아하는
체질로 생각이 길이 들었다.
생각을 끊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쪽으로 계속 생각의 길이
나 있으니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이 그쪽으로 흘러가 있다. 생각이
굳어 있고 뇌가 굳어 있으니 그러하다.
(그럼 굳어지고 길이 든 체질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나요?)
본인이 계속 그쪽에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써서 바꾸려고
노력해야 바꿀 수 있다.
한 번 잘못 길이 든 생각은
한 번 길이 난 것과 같아서
계속 그쪽으로 가려는 습성이 있고
자신도 모르게 바로 그렇게 생각이
인식되어 그쪽으로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치 길이 나 있는 곳으로 물이
흘러가듯이 그와 같은 이치이다.
이것을 바꾸려면 본인이
자꾸 잘못 길이 든 생각을 고치고
다른 길로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고
몸부림쳐야 한다. 자꾸 반복해서
행하면 생각을 고칠 수 있게 된다.
(성령님, 이것을 왜 말씀해 주시나요?)
실제로 이렇게 노력하고 행하는 자가 적다.
거의 없다. 생각이 중요하고, 생각을
잘해야 하고, 생각으로 사탄이 틈타고,
생각으로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이 적다.
잘못 길이 든 생각을 고치기 위해
몸부림치는 자가 적다. 생각의 비밀은
본인이 행하지 않는 대로 바로 그 길이
바뀌는 데 있다. 본인이 행하지 않으면
행하지 않는 대로 바로 길이 바뀌는
것이다.
어떤 사람을 볼 때 한쪽 면을 바라보는
것이 체질이 된 사람은 계속 그 사람을 볼
때 그쪽 면을 볼 것이다.
그 생각의 길을 바꾸고 다른 쪽을 봐야
처음 시작부터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생각의 길을 바꾸어라.
생각의 길이 잘못 나 있는 자들이 많다.
나는 안 돼, 섭리는 재미없다 등등
각자 자기 나름대로 생각의 길이 나 있는
면이 있다.
그 부분이 맞지 않는 길이라면
먼저는 그 길을 바꾸어야 한다.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계속 그쪽으로
생각하고 행하니 달라지는 것이 없는
것이다.
잘못된 생각의 길이 나 있는데
계속 그 생각을 끊으려 노력한다고 해서
생각이 아예 잘라지겠느냐.
아예 생각의 길을 바꿔야 한다.
(생각을 끊는 것과 생각의 길을 바꾸는
것은 어떤 차이인가요?)
생각을 끊는 것은 길이 나 있는 길에서
가다가 길을 멈추고 안 가고 다시
돌아오고 왔다 갔다를 반복하는 것이라면
생각의 길을 바꾸는 것은 생각의 길
자체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다.
생각을 끊는 것은
‘그것은 하면 안 돼. 하지 말자.’라고
억제시키는 것이다.
생각의 길을 바꾸는 것은
아예 처음부터 그 길을 바꾸는 것이다.
즉 나쁘게, 잘못된 인식이 된 것부터
제대로 인식하고 그 길로 애초부터
들어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성이 보고 싶고
너무 좋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이성의 생각을 끊는 것만 계속 반복한다면
이성의 생각이 계속 들 것이다.
그것을 자르는 것은 임시방편적인 것이다.
이성이 잘못된 길이라는 것을 먼저
인식하여 그 길로 들어가지 않도록
자신의 생각의 길이 잘못 난 것을 먼저
바꿔야 한다.
(생각의 길을 바꾸는 것은 어떻게 해야
근본적으로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
굳어진 생각, 그 길이 잘못된 길이라는
것을 먼저 깊이 깨달아야 한다.
말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한다.
말씀에 빗대어서 판단해라.
말씀으로 너의 생각 하나하나를 쪼개어
생각해 보고 자로 재 보고 저울로
재 보고 판단해 보아라.
말씀, 진리가
모든 선과 악의 기준이다. 잣대이다.
생각의 길이 자꾸 잘못된 쪽으로
가려 할 때마다 말씀으로
계속 분별하고 쪼개어 버려라.
처음에는 너의 생각이 길이 든 길로
자동적으로 가게 되지만 그 길에서 다른
길을 내서 생각하려 노력한다면
조금씩 생각의 길이 바뀌게 될 것이다.
길이 아니었던 곳도 사람이 계속 가면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이 되듯이
생각의 길을 다른 곳으로 자꾸 내면
그쪽으로 생각이 갈 수 있다.
생각의 길을 바꾸어야 하는 자들이 많다.
차원을 높이려면 계속 같은 생각,
너의 차원의 생각, 네가 인식하기에 편한
생각의 길에서 벗어나야 한다.
생각을 자르고 끊어 버리는 것에서
한 단계 더 깊은 방법을 일러 준
성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