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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기도회2015.09.18 (금)

금 계시말씀

선포일
2015.09.1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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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_0918 금 계시말씀.hwp1 2015년 09월 계시말씀 ♥ 09월 18일 금요일 ♥ 1. ‘불만 불평’은 사망의 대화법이요, ‘감사’는 생명의 대화법이다. 2. 나 성령이 언제든 너를 쓸 수 있도록 네 육, 혼, 영을 관리하여라! 작성일 : 2015. 8. 17. AM 6:30~7:12 작성자 : 주수신 (며칠간 무리한 일정을 소화한 후, 1년에 한두 번도 안 걸리는 감기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감기에 안 걸리다가 한여름에 몸이 춥고, 콧물도 나니 굉장히 불편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몸이 며칠 전과는 다른 상황에 처하니 짜증스러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아니, 왜 이렇게 추운 거야! 왜 콧물이 나는 거야!” 하며 불만 불평을 했습니다. ‘나는 왜 감기에 걸렸지? 감기에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 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내가 주어진 환경에서 육의 관리를 못 했기 때문인가? 내가 감기에 걸리지 않을 방법이 있었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 상황 가운데에서 한두 가지를 달리 행함으로 감기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는 판단이 서니, 마음이 좀 평온해졌습니다. 이후 ‘이 상황에서도 감사해야 한다. 더 극심한 감기에 걸릴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도 아프고, 열도 나고, 온몸을 흠씬 맞은 듯 아플 수도 있었을 텐데 춥고, 콧물만 나는 상황 가운데에 있음을 감사했습니다. 감사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짜증스러운 마음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성령님의 말씀* 사랑아, 너는 범사에 감사하여라! 감사하지 않고서는 성삼위께로 나아갈, 하늘의 문을 열 자가 없느니라! <감사>는 성삼위의 마음에 닿거니와, ‘불만과 불평’은 성삼위에게 ‘절대로’ 닿을 수 없느니라! 자신이 처한 상황 가운데에서 불만 불평하는 자마다 ‘감사’로 인해 얻게 될 복을 실족하게 될 것이요, 자기 자신의 마음도, 생각도, 육신의 행위도 생명을 벗어나 실족하게 될 것이니라. 불만과 불평으로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네 자신이 힘든 상황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 환경에서 감사한 것을 찾고 하늘 앞에 고백하면 그 감사가 성삼위의 마음을 움직이게 되니, 네가 처한 상황을 나 성령이 틀어 줄 것이니라! ‘감사’는 생명의 대화법이요, ‘불만 불평’은 사망의 대화법이니라. 네가 잃은 것이 있어서 그로 인해 불편함을 겪고 있다면, 그것에 대해 불만 불평하며 네 스스로를 고통으로 밀어 넣지 말고, 네가 잃지 않은 것들을 보아라. 네가 잃은 것보다 ‘잃지 않은 것들’이 더 큼이라! 너는 네가 지금보다도 더 나쁜 상황 가운데에 처할 수도 있었음을 늘 생각하여라! 가령 네가 감기에 걸렸다. 감기로 인해 목이 아프다면, 네가 목만 아픈 것이 아니라 콧물도 나고 몸살이 걸려 온몸이 욱신거리고 열이 나서 지금보다 더 불편할 수도 있었음을 생각하여라. 그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감기에 걸리는 것보다는 목만 아픈 것이 몇십, 몇백 배는 더 편한 것이 아니냐. 항상 네 자신이 처한 상황보다 더 열악한 환경을 생각하며 하늘 앞에 감사와 감격으로 나아감을 쉬지 말아라! 사랑아, 사람들 사이에도 ‘대화법’이 있는 것이다. 성삼위와 너 사이에도 ‘대화법’이 있다. 어떠한 자에게 네 상황을 개선해 주길 바라며 이야기한다면, 그에게 네가 겪은 불편함을 불만 불평으로 호소하며 그 상황이 너에게 얼마나 큰 짜증을 불러일으키는지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나 있을 것 같으냐? 모든 상황에는 장단점이 있고, 너 자신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처한 자들도 많이 있을진대, 자신이 겪고 있는 것이 전부인 양 이야기하며 그 상황이 조성되는 데에 원인 제공을 하지도 않은 자에게 불만 불평과 짜증을 쏟아 놓는다면 듣는 자는 네가 ‘과민 반응’을 한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네가 너의 상황을 돌아보며 감사할 것이 무엇인지 찾고 나에게 감사하니 그 감사가 나의 마음에 닿아서 이같이 내가 너에게 말씀해 주지 않느냐. ‘감사’는 <하늘과의 대화법>이다! ‘감사’함으로 성삼위 하나님과 통하고, 나 성령과 통하고, 성자와 통한다. 나 성령이 너의 상황을 어련히 알고 도와주지 않겠느냐. 도와주려고 준비해 놓고 상황과 여건을 틀어 주고 있는데, 그것을 모르고 네 불편함만 호소하며 불만 불평을 한다면, 너를 위해 준비해 둔 것도 안 주고 싶은 것이다. 사랑아, 지혜롭자! 네가 불편함을 느끼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네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성삼위 앞에 예의를 갖추라는 말이다! 네 말 하나하나, 네 생각 하나하나, 네 행위 하나하나를 너의 하늘 신랑이 보고 있음을 명심하고 행하여라. 네 고통의 신음 소리 하나도 삼위의 귀에는 쩌렁쩌렁하게 들려온다. 사람들과의 대화법, 그리고 신과의 대화법에 대해 말한다. 먼저는 ‘감사’다. 그 후에 네 상황에 대해서 조곤조곤 설명하고, 불편한 점을 이야기하고 너를 어떻게 도와주면 될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랑아, 네 자신의 컨디션 조절에 절대 소홀하지 말아라. 네 육이 아프면 내가 그만큼 너를 쓸 수가 없다. 감기에 안 걸리게 잘 관리해. 잘 먹고, 잘 쉬고, 운동 잘하고, 무리하게 행하지 말고. 네 자신이 무리하고 있는지, 안 하고 있는지 네가 제일 잘 알지 않느냐. 몸이 아프게 되면 낫는 기간 동안은 나 성령이 너를 쓰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잘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시간을 잡아야 해! 쉴 시간에 쉬고, 먹을 시간에 먹고, 기도할 시간에 기도하고, 말씀 공부할 시간에 말씀 공부하는 것이다. 쉴 시간에 놀고, 먹을 시간에 자면 ‘건강’을 두고 네 책임분담을 안 하고 있는 격이다. 나 성령이 가르치니, 네 육의 관리를 확실히 하자! 육의 관리는 비단 ‘건강관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육의 관리는 절대 <시간 관리>로부터 시작된다! 네가 행해야 할 것들을 제때 행함으로 시간을 잡으면 육의 건강도 잡히고, 혼도 잡히고, 영도 잡힌다. 육ᆞ혼ᆞ영이 나 성령의 계획대로 잡힌다. 너의 육ᆞ혼ᆞ영은 네가 시간을 칼같이 관리함으로부터 잡히게 되는 것이다! 제때, 할 일을 하기다! 단, 육을 무리해서 썼다면 무리한 만큼 쉬어 주기다! 그리하지 않으면 무리에 무리를 더하니, 육신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육이 아프게 되면 네 시간도 정해진 대로 쓰지 못하니, 2015_0918 금 계시말씀.hwp2 육도, 혼도, 영도 느슨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면 나 성령도 손해고, 너에게도 큰 손해다. 큰 손실이 나. 육신이 아픈 곳 없어 불편하지 않다가 아파서 불편해지니 왜 속상하지 않겠느냐. 속상하지. 나도 속상해. 너도 속상하고 나도 속상하다. 그런데 너와 내가 어떤 점이 다른지 아느냐? 너는 속상해서 육이 아픈 것을 두고 불만 불평하지만, 나 성령은 불만 불평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최대한 빨리 낫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리고 너에게 가르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을 돕는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느냐? 육이 아파 속상하니, 너와 나는 그에 반응하였다. 너는 그 상황을 바꿀 수 없는 방법으로 반응하였고, 나는 그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반응을 보였다. 너는 감정적으로 대응하였고, 나는 이성적으로 그 일을 처리하고 있다. 불만 불평은 네 스스로에게도, 성삼위에게도 긍정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 못한다. 육이 아프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지금 이 시점에서 육이 빨리 낫게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찾아보고 그것을 행하며 육이 빨리 호전되기를 바라는 것이 더 합당하다는 말이다. 과거에 네가 감기에 걸리도록 내어 준 조건이 있으니, 이리된 것이 아니냐. 그 원인을 파악해서 다음에는 그리 행치 않도록 해. 이리되면 너도 속상하고, 나도 속상해지지 않느냐. ‘불만 불평’이 불러오는 변화들이 있다. 바로, 네 자신을 낙심시킨다는 것이다. 상황의 맥락을 꿰어 보지 못하고 현실의 ‘불편함’만 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한곳에 매어 있게 만든다. 무기력한 마음과 생각을 준다. 사랑아, 마치 네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자인 것처럼 불만 불평하지 말아라.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자’도 ‘불만 불평’을 하는 것이 그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되지는 못하느니라. 그러한 자까지도, 오직 ‘하늘 앞에 감사함’만이 성삼위의 마음의 문을 열고 그의 환경과 여건을 틀어 도와주고 싶게 만드느니라. 역으로, ‘불만 불평’은 네 자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자’로 만든다. 왜? 성삼위가 너를 전적으로 도와 네 상황을 뒤엎을 기회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너희 인생을 근본적으로, 그리고 아주 강력하게 도울 자는 삼위밖에는 없거늘, 성삼위의 마음이 너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니 가장 불행한 자가 되는 것이 맞지 않느냐. 네 자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자’로 만들지 말아라! ‘감사’함으로 하늘 앞에 나아와라! ‘감사’함은 네 자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로 만드느니라. 또한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얻는 자’로 만드느니라. 더 나아가서는 ‘이 천지를 움직일 수 있는 자’로 만드느니라. ‘감사’로 네가 가진 것들이 무엇인지 돌이켜보고 네가 잃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지 않느냐. 네가 그 어떠한 것을 잃었을지라도, ‘네 육이 존재함’으로 호전될 가능성이 있고, 영원한 영을 잡을 수 있으니 그 얼마나 행복한 자이냐! ‘감사함’으로 네가 성삼위의 마음에 꼭 들어맞으니 네 고백으로 삼위를 움직이게 되지 않느냐. 고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얻게 된다. 즉, 성삼위의 마음을 얻게 되고, 삼위가 천지를 다스리니 네 상황과 여건을 틀어 주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네가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얻은 자요, ‘이 천지를 움직일 수 있는 자’가 됨이 맞지 않느냐. ‘천 마디의 불평’은 그 어떤 것도 긍정적으로 바꾸지를 못하나, 단 한 마디일지라도, <진심이 담긴 감사>는 일순간에 상황을 긍정적으로 뒤바꿔 버리느니라! 사랑아, 지혜롭게 행하자. 이것이 바로 ‘하늘의 교양’이다. 나 성령이 너를 그리도 귀하게 보는데 불편하다고 불만 불평이나 하고 있으면 되겠느냐. 그런 너를 바라보는 나 성령이 깜짝 놀라지 않겠느냐. 나 성령이 너를 귀히 보고 가르치니, 하늘 신부로서 세련되게 생각하고, 세련되게 행하는 자가 되어라. 사랑해! ‘불만 불평’은 네 자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자’로 만드니 ‘감사 감격’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얻는 자, 더 나아가서는 이 천지를 움직이는 자’가 되라고 가르친 나 성령이니라. 안녕. ♥ 09월 18일 금요일 ♥ 주와 함께 끝까지 작성일 : 2015. 8. 23. PM 09:21 작성자 : 주금빛 (생활 속에서 ‘주와 함께 끝까지!’라는 문장을 늘 잊지 않으며 살아왔습니다. 성령님께 “제가 성삼위와 주와 함께 끝까지 갈 수 있게 하심에 진정 감사드립니다. 끝까지 가는 자만 영원한 것, 최고의 것을 얻을 수 있기에 주와 함께 끝까지 가는 자만이 자신의 인생길에서 헤매지 않습니다.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시대의 한 중심에 서 있는 제가 무엇을, 누구를 나의 중심에 꽂고 어느 길로 가야 하며 무엇을 해야 하며 누구를 위해 살아가야 하는가는 바로 ‘주와 함께 끝까지’라는 말에 답이 들어 있습니다. 성령님, 저는 주와 함께 끝까지 갈 것입니다.”라고 고백드렸습니다. 그때 성령님께서 오셔서 “그래 맞다!” 하시며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령님의 말씀* 주와 함께 길을 가는 것이 즐거운 일이 아니냐? 주와 함께 길을 가는 것이 천운을 타고난 것이 아니냐? 주와 함께 길을 가는 것이 너의 목적이고 소원이 아니냐? 주와 함께 길을 가는 것이 축복이 아니냐? 주와 함께 길을 가는 것이 영원한 천국이 아니냐? 주와 함께 길을 가는 것을 끝까지 해야 하지 않겠느냐? 뭐든지 주와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주와 함께 끝까지 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문제는 끝까지 하느냐다. 주와 함께 끝까지 가는 것이다. 주와 함께 끝까지 가는 자만이 영원히 누릴 수가 있다. 영원한 것을 누릴 수가 있다. 가다가 말면 정말 안 된다.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되며 휴거에서 박탈된다. 선생이 누구를 위해 기도하며 누구를 위해 말씀을 써 주고 누구를 위해 편지를 해 주며 누구를 위해 용서를 해 주고 누구를 위해 황금성을 열어 주며 누구를 위해 그곳에 가 있는 것이냐. 바로 너지! 너 아니면 누구이겠느냐. 너희 한 사람, 한 사람 때문에 선생이 있는 것이고 그와 같이 끝까지 천국을 향해 가는 것이다. 너희는 정말 끝까지만 가면 된다. 봐라. 초창기 섭리인들이 끝까지 믿고 따라가니 오늘날 선생의 조건으로 휴거도 되지 않았느냐. 죄도 용서받지 아니하였느냐. 많은 혜택을 보지 아니하였느냐. 천국의 세계를 자세히 알게 되지 아니하였느냐. 끝까지 오다 보니 과정 중에 휴거도 되지 않았느냐. 도중에 나간 사람들은 가라지가 되어 다시는 못 돌아올 길을 간다. 절대 섭리를 나가지 마라. 2015_0918 금 계시말씀.hwp3 나가면 사탄이 너희를 덮어쓰므로 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이 사탄이 너희를 쏙 완전히 흡수해 버린다. 결코 다시는 못 돌아온다. 휴거도 박탈당한다. 선생이 얼마나 애가 타겠느냐. 얼마나 나에게 하소연하며 눈물을 흘리며 제발 살려 달라고 하겠느냐. 선생이 아니까 그러하다. 그 영혼이 섭리를 등지면 성삼위를 등지면 어떻게 될지 너무나도 뻔하기 때문이다. 너희의 흔들리는 마음을 말씀으로 기도로 즉시 잡아라. 흔들리면 기도해 봐. 기도하면 삼위가 너의 마음을 잡아 줄 것이다. 기도해 보면 네가 왜 섭리에 있어야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너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천국을 증거자를 통해서도 이렇게나 명백히 확실하게 증거해 주고 있는데도 왜 모르느냐. 지금 잠깐의 소망을 향해 달려갈 것이냐. 죽음의 문턱을 향해 달려갈 것이냐. 다시 돌아올 것 같지? 정신이 완전히 돌아가 버려 못 돌아온다. 고로 끝까지 하라는 것이다. 끝까지 하다 보면 천국에 다다른다. 힘들어도 ‘나는 끝까지 해야 한다.’ 다짐하며 뛰고 달리는 것이다. 수능에서도 수능 날을 위해서 그토록 공부를 하지 않느냐. 그날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통스러워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는 것이다. 결과를 생각해 보아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진다. 과정 중에 행복이 오는 것이다. 끝까지 믿으면 끝에 엄청난 축복이 너희 눈앞에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끝까지 가는 자에게 가는 길에서 역사가 일어난다. 천국을 향해 가는 길에서 끝까지 가는 자만이 엄청난 축복을 얻는다. 끝까지 가면서 내가 어떻게 사랑의 차원, 기도의 차원, 전도의 차원, 깨달음의 차원 등을 높이고 얼마나 간절히 성삼위와 주와 함께하며 얼마나 깊이 깨닫느냐에 따라 차원이 달라지고 거하는 곳이 달라진다. 끝까지 가면 기본 혜택은 얻을 수 있는데 네가 그 발판 위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혜택이 배가 되면서 특별한 혜택을 얻게 되며 천국의 집도 달라지고 옷도 달라지고 거리도 달라지는 것이다. 너희에게 나 성령이 말한다. 주와 함께 끝까지다!! 가다 보면 낙심하고 슬럼프가 오며 권태가 오는데 그 순간, 나가려고 하는 그 생각을 가위로 종이를 자르듯이 싹둑 완전히 잘라 버리기다. 지금의 것을 보고 투자하느냐? 자신의 미래의 것을 보고 투자하는 것이다. 한 번 나가면 다시는 들어오지 못한다. 너의 정신을 온전히 하늘을 향해 꽂고 달려가기다. 다른 곳에 꽂지 말기다. 삶 속에서 어떤 것에 필(feel)이 꽂혀서 한다고 말하지 않느냐? 너희의 필이 하늘에 꽂혀서 열정적으로 희망적으로 끝까지 가는 것이다. 성삼위와 주께 필이 꽂혀서 늘 열광적으로 정열적으로 다른 데 보지 말고 끝까지 따라가기다. 알겠지? 주와 함께 끝까지 가면 가는 길에 네가 얻고 싶어 했던 것도 얻게 된다. 깊이 생각해라. 늘 깊이 생각해라. 이 말씀을 너희의 뇌에 완벽히 꽂고 방향으로 삼고 가야 된다. 주와 같이 끝까지 가는 삶이 가장 복되고 행복한 삶이고 길이다. 이 길이 참길이고 영생의 길이며 누구나 찾고자 했던 희망, 소원의 길이다. 이 길을 힘들다고 포기할 테냐. 성삼위와 주를 포기할 테냐. 절대 안 된다! 당연하지. 너희가 마음을 올바르게 잡고 정신을 한 방향으로 딱 꽂고 살아가야 한다. 알겠느냐. 배를 타고 가면서 자신이 왜 이 배를 타고 가는지 알아야 한다. 또 누구의 돛을 배에 꽂고 가며 어느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모르면 잘못된 배를 탔어도 목적지까지 가 버린다. 그러면 되겠느냐. 안 되지. 배의 목적지를 알려 줄 사람은 바로 선생이다. 그가 받아 적는 그 말씀이다! 배를 타고 가면서 이 배가 어디로 향해 가는지 모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바다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세상의 파도가 밀려와 배를 흔들더라도 네가 그 파도에 연연하지 않고 목적지까지 주가 꽂힌 배로 성령의 순풍으로 목적지를 향해 항해한다면 너의 인생은 완벽히 성공한 것이고 하나님과 나 성령과 성자와 주의 소원을 이룬 것이고 진정한 행운아이며 영원토록 기뻐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알겠지? 주와 같이 끝까지 가는 삶을 사는 것이다. 가다가 멈추면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된다. 가다가 모르고 가다가 힘들면 기도로 성삼위와 선생에게 물어봐라. 만물로나 말씀으로나 영감으로나 여러 면을 통해 말씀해 줄 것이다. 늘 성삼위와 선생에게 귀 기울이는 삶을 살아라. 내가 잘 가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더 채워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라. 너를 진정 사랑하는 삼위와 주가 너의 물음에 대답을 안 해 줄 것 같으냐. 말해 주는데 너희가 깨닫지 못하여서 그러하다. 깊이 깨달아 보아라. 가랑잎이 스쳐도 하늘이 너에게 말해 준 것이라고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사랑한다. 너를 사랑해. 주와 함께 끝까지 가는 것이 천국에 오는 길이고 너희가 영원토록 만사형통하는 길이고 모든 것에 답이며 진리요, 생명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끝까지 가는 자만이 최후의 축복을 얻게 되는 것이다. 너희를 항상 지켜본다. 선생이 너희가 수고한 것을 다 안다. 사랑해. 너희를 영원히 또 너희가 걸어가고 있는 길에서도 늘 사랑한다. 주와 함께 끝까지 가는 것이 바로 길이고 생명이고 진리인 답을 전한 나 성령이다. 안녕. ♥ 09월 18일 금요일 ♥ 뇌에 이상이 있는 자들은 영원한 것에 대한 소망도, 희망도 가지지 않는다 작성일 : 2015. 8. 27. AM 01:40 작성자 : 김형순 (기도 중에 먹을 것 걱정 않고 돈 걱정 않고 온갖 걱정 없는 천 국에 가고 싶다고 혼잣말처럼 말했는데 “나도!” 하는 선생님의 소리가 들려서 조금은 의아했습니다. “나도 천국 가고 싶다. 그런데 육신 있는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일을 해 드리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해 사는 보람과 축복 또한 크다. 한평생 남을 위해 살아도 그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뜻이 있어 한 일이라면 그 복이 크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어서 성령님께서 해 주신 말씀입니다.) *성령님의 말씀* 마음의 길, 생각의 길, 정신의 길이 다 한 길로 통해 있다. 뇌라는 연결 고리 안에 엄청나게 세분화되어 생각과 마음과 정신들이 흘러간다. 뇌에 각 기관으로 연결된 시냅스 (뇌의 구성 요소)들이 각 기관을 움직이게 하고 뇌와 연결된 모든 것은 지시와 통제를 받고 있다. 이 뇌를 열어 분석해 보면 모든 것을 정확히 다 알 것 같지만, 인간이 평생 영원히 연구해도 다 모르는 것이 또한 뇌이다. 이는 뇌란 육의 기능, 영의 기능, 혼의 기능을 다 관장하고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의 차원의 깊은 것은 인간이 다 알 수가 없듯이 뇌 또한 인간이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신비하고 오묘한 창조물이다. 2015_0918 금 계시말씀.hwp4 인간의 뇌를 파낸다면 인간은 살아 있으나 죽은 자다. 뇌가 인간의 육의 몸을 움직이게 하고 육의 기능을 다스리고 통제하고 행하기 때문이다. 인간 뇌의 각 기관을 딱 잡고 다스리고 주관하는 것이 집중이다. 집중이란 한 가지를 깊이 보고 듣고 파악하기 위해 한다. 뇌가 집중하는 단계는 아주 높은 단계이며 집중하지 못하는 뇌는 약하고 아직 여물지 않은 뇌이다. 집중의 강도에 따라 뇌는 계속 발전해 왔으며, 어떤 것을 파악하기를 목적하고 그 뇌를 집중했을 때 뇌의 기능과 움직임 또한 신비롭다. 만일 마음, 심령이 죽은 자의 뇌는 뇌의 기능이 비정상적으로 작동하여 자기의 뇌가 자기를 주관하고 다스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기능이 죽어 다른 것에 영향을 받게 된다. 뇌란 참으로 신비해서 영원한 것을 동경하고 영원한 것을 찾아가려 한다. 이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뇌의 지적 수준과 차원이 낮아지는 것이다. 내가 왜 너에게 뇌에 대해 말하느냐 하면 인간은 뇌로부터 정신과 마음과 생각이 창출되는데 뇌가 고장 나고 뇌에 이상이 있는 자들은 영원한 것에 대한 소망도 희망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뇌는 육신에 속한 것이기도 하고 영에 속한 것이기도 하다. 뇌가 무엇을 보고 느끼고 연관되느냐에 따라 완전히 육에 속한 뇌가 되기도 하고 영에 속한 뇌가 되기도 한다. 영적인 자란 이 뇌를 영에 속한 뇌로 자극하고 집중시키며 영적인 뇌를 중심해 움직이게 하고 생각하려 하고 작동시키려고 한다. 영적인 뇌를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떻게 개발하느냐 하면 영적인 생각을 하고 영적인 것의 근본이 되는 삼위와 선생의 말씀을 들음으로 개발이 된다. 영에 속한 자는 육에 속한 자보다 더 삼위와 선생을 찾고 부르며 느끼려 한다. 영적인 세계, 영계의 근본이 되는 삼위를 찾고 부르는 과정이 1단계이고 삼위의 말씀을 듣고 삼위와 소통하고 삼위를 사랑하며 사는 삶인 2단계를 통해 영적인 자로 더욱 차원이 높아져 간다. 영적인 자가 되기 위해 하는 행위 중에 최고의 행위는 바로 기도이다. 기도는 자신을 더욱 집중하게 하고, 집중하여 삼위와 소통하게 해 주는 매개체임으로 영적인 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도가 필수과목이다. 기도하여 깊은 영계를 뚫고 끊임없이 말씀을 받는 선생의 뇌는 시공간을 초월한 첨단의 뇌로 이미 인간이 뇌를 가지고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활용하며 가고 있다. 선생의 뇌와 보통 인간의 뇌는 이미 큰 차이가 났다. 그것이 노력에 의한 것이었든 개발에 의한 것이었든 선생의 뇌는 이미 인간이 가진 최고 차원의 것을 활용하고 사용하는 완벽한 뇌가 되었다. 인간으로서 신의 경지를 넘나들며 말씀을 받고 행하고 있으니 그의 뇌의 차원은 놀라울 정도이다. 많은 자들이 영계를 보고 삼위의 말씀을 받는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다 차원이 있다. 최고의 차원, 최고의 경지에 올라 받은 말씀은 수백 개 중에 하나나 둘이다. 선생은 떨어지지 않는 영적인 힘으로 매일 최고 차원에 올라 말씀을 받는다. 선생 일생에 남긴 책과 사연과 말씀과 영상들이 앞으로 후대에 널리 전파되며 알려지므로 지금 이때 선생은 모든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말씀을 기록하고 남기고 있다. 제아무리 뛰어난 사도라 하더라도 구원자가 쓴 글과 책과 사연을 어찌 따라가겠느냐? 사도는 사도의 차원이 있고, 구원자는 구원자의 차원이 있다. 구원자가 주는 핵적인 하늘의 말씀들은 이미 살아 생생히 움직이는 생명력 있는 글이 되어 많은 죽어 가는 자들을 살릴 것이다. 선생의 글에도, 말에도 힘이 있고 권세와 권능이 들어 있다. 선생과 한 시대를 살며 뜻을 이룸에 감사하라. 너희의 잠자던 뇌를 깨우고 시대 말씀으로 너희의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따끈따끈한 진리로 너희의 영을 기쁘게 해 줌에 감사하라. 나 성령은 선생의 모든 것을 증거하러 왔노라. 선생의 하루 24시간이 얼마나 바삐 움직이는지 나 성령은 보았고 나 성령은 알고 함께한다. 내가 오늘도 선생을 다그쳐 더 행하도록 재촉함은 선생 육신의 생이 너무나 소중하고 아쉽고 귀하기 때문이다. 선생은 하루 24시간 그냥저냥 보내지 않는다. 선생과 함께해 본 자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선생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온 정신과 생각을 집중하여 말씀을 받고 삼위를 모시고 살며 조금의 남은 틈 시간을 이용해 밥을 먹는다. 왜 섭리사 누구라도 선생을 좋아하고 따르는지 아느냐? 그가 단지 그 구원의 사명자이기 때문에 그를 따르는지 아느냐? 아니다. 그에게 흐르는 그 사랑의 힘, 에너지에 이끌리고 그가 너희를 변치 않고 사랑하는 사랑의 에너지를 너희가 말씀으로 영으로 혼으로 느끼고 알기 때문이다. 사랑은 보내지 않는데 사랑하지 않는데 불꽃이 튀지는 않는다. 진짜 서로 사랑해야 불꽃이 튀는 것이다. 삼위가 너희를 사랑하듯 너희를 향한 선생의 사랑 또한 핵폭탄보다 강한 힘으로 에너지로 너희들을 돕고 함께하고 참아 주고 사랑해 주니 너희가 그를 보면 기쁘고 좋고 사랑이 폭발하는 거야. 그렇게 한평생 사랑을 실천하며 살았다. 누구도 하지 못했던 사랑을 하였다. 세상에서 불행하고 불쌍한 자를 도와주며 희생했던 자들도 노벨상을 타고 그 일이 남겨진다. 이것은 인간의 관점에서 인간 이상의 것을 행했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을 했다고 인정하여 상을 준다. 그러나 삼위는 그 이상의 것을 한 자에게 구원의 사명을 맡겼다. 인간으로 태어나 삼위를 가장 열렬히, 뜨겁게, 애타게, 눈물겹도록, 온몸이 다 타들어 가도록 사랑하고, 삼위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몸부림치고 애쓰고 희생하였고, 그 사랑은 마음으로만이 아닌 몸으로 실천하는 사랑이었으며 그로 인해 가장 밑바닥부터 기어 올라와 최고의 자리, 최고의 위치까지 올라온 것이다. 먼저 삼위를 사랑하는 기준을 쌓고 형제를 사랑함의 기본을 다 쌓았다. 말로만이 아닌 생각으로만이 아닌 몸으로 행함으로 실천함으로 형제 사랑을 하였고, 형제 사랑의 도를 넘어 마치 신랑이 신부를 사랑해 자신의 몸을 불살라 신부를 극한 상황에서 살려 내듯 신랑의 마음으로 신부들을 살피듯 생명들을 사랑으로 살피고 사랑해 주었다.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세운 조건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해 온 희생은 이 세상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다. 극적인 조건이었고 희생이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사랑하는 너희들을 생각하며 애태우며 행하는 선생의 심정을 깨달아라. 두 손이 짓무르고 아파서 퉁퉁 붓고 터져도 다시 힘을 내, 펜을 잡고 신부들의 안부를 묻고 문제를 해결해 주며 써 내려가는 글들은 너희를 향한 사랑의 폭만큼이나 깊고 높고 넓다. 미련한 자는 육 인생 살다 허무히 사라지나 지혜로운 자는 그 영도 육도 살리며 인생길을 간다. 한평생 자신만 위해 살다 허무한 인생을 살 자들을 불러 신부의 역사를 선물로 주었으니 너희도 삼위와 선생을 뜨겁게 사랑하며 그 한을 풀어 주자. 2015_0918 금 계시말씀.hwp5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사랑함이란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절대 그 사랑을 지켰을 때 이룬다. 사랑을 잃고 밤낮 허우적대며 살지 말고 사랑을 철통같이 변치 않고 지키며 생각과 마음과 정신을 다른 곳에 빼앗기지 않고 지켜 삼위와 선생의 기쁨의 대상, 사랑의 대상체들이 되어 영원히 사랑하며 살자. 나 성령이 오늘 이 새벽, 마음에 감동되어 너를 통해 귀한 말을 전하고 간다. 사랑한다. 사랑해. ♥ 09월 18일 금요일 ♥ 육의 생각이 아닌 휴거된 영의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 작성일 : 2015. 8. 28. 작성자 : 정빛별 (면담을 할 때 성령님께 지금 저에게도 깨닫게 해 주실 것이 있으시면 저를 통해 이야기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도 이 시간 성령님께 더 배우고 싶고, 저의 문제도 해결받고 더욱더 깨닫고 싶다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동안 힘들었던 이유는 결국 휴거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육의 생각이 아닌 휴거된 영의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 저도 모르게 나왔습니다. 그때 이것은 성령님께서 해 주신 말씀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말씀으로 받아야겠다는 감동을 받아 말씀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의 말씀* 사랑아, 많은 자들이 휴거되었지만 휴거된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감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휴거된 영의 생각으로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휴거된 것은 너의 육신이 아니라 너의 영이기 때문에 육신은 휴거를 실감하지 못한다. 생각은 육에 속해 있기에 보다 육신의 영향을 받아 육신의 생각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런 너의 육신이 휴거를 실감하려면 휴거된 영의 생각을 받아서 휴거된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 그랬을 때 휴거된 것에 감사 감격하며 휴거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휴거된 영이 매일 감사 감격하고 기뻐하며 잔치할 수 있는 이유는 휴거된 영이 휴거된 것을 매일 생각하고 누리고 실감하기에 감사 감격하며 기뻐하는 것이다. 너희가 휴거되었지만 진정으로 휴거된 것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육의 생각으로 휴거를 느끼고 깨달으려 하니 그런 것이다. 생각해 보자. 만약 네가 지금 육으로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돈도 없고 명예도 없고 학벌도 없고 직장도 없고 몸도 아프고 육적인 간판은 하나도 없다. 좋은 직장, 좋은 대학교, 좋은 가정, 좋은 집, 그 어떤 것도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육적으로는 내세울 것이 전혀 없고 가진 것이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육신의 생각으로 생각했을 때 휴거의 기쁨에 감사 감격할 수 있겠느냐? 육의 생각으로만 바라본다면 현실의 답답함, 현실의 막막함, 여러 가지 생각들이 계속 들 것이다. 여러 가지 생각들로 너의 마음이 더 괴로워지고 낙심이 될 것이다. 그러니 많은 자들이 휴거가 되었지만 육의 여러 가지 상황과 환경과 여건, 육의 생각으로 인하여 휴거의 기쁨에 감사 감격하지 못하고 휴거를 실체로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영이 실제로 휴거가 되었지만 육신은 힘들어하고 답답해하고 낙심하고 좌절하는 것이다. 육신은 육의 환경을 직접적으로 느끼고 환경 속에서 겪는 어려움을 실체로 느끼기 때문이다. 이때 휴거된 너의 영의 생각으로 너의 지금의 상황을 생각해 보자. 지금 현재 돈이 전혀 없고 명예, 학벌, 집, 간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도 나는 휴거되어 천국 황금성에 엄청난 보석들과 큰 집과 값을 매길 수 없는 영원한 것들이 있어! 평생을 내가 수고하고 벌어도 벌 수 없는 것들이 다 내 것이니 얼마나 감사한지! 너무 감사해! 나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자야. 육신으로 모든 것을 얻어 봤자 결국 100년밖에는 못 쓰지만 휴거되었으니 영원히 누릴 수가 있어! 영원한 보증수표를 얻게 되었어! 휴거되었으니 지구상에서 나는 최고로 성공한 자야! 나는 아무것도 없는 자가 아니야! 모든 것을 다 가진 최고로 성공한 자야! 이 엄청난 축복을 주신 성삼위와 선생님, 진정 감사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휴거된 영의 생각이다. 이제는 휴거되었으니 휴거된 영의 생각으로 너의 육신의 상황과 현실을 생각하고 바라보아라. 휴거되었어도 휴거된 영의 생각이 아닌 너의 육신의 생각만 계속하면 결국 사탄이 그 생각의 틈을 타고 들어가 사탄의 생각을 넣어 준다. 결국 육의 생각은 사탄의 생각이 된다. 지금 휴거가 되었지만 네가 육의 생각으로만 생각하니 사탄에게 생각을 뺏겨서 힘들어지고 답답해지는 것이다. 어떤 상황,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진정으로 육신이 괴롭고 힘들 때,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휴거된 영의 생각으로 바라보고 생각하고 판단해 보고 따져 보아라. 휴거되었으니 진정으로 너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자이다. 그것을 실체로 깨닫게 되면 즉시 사탄이 물러가며 기쁨과 감사와 감격이 몰려올 것이다. 그러니 휴거된 영을 불러라. 휴거된 영과 대화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너희 휴거된 영은 이 상황 속에서 어떻게 생각할지 생각해 보며 그 생각과 대화해 보아라. 그것이 휴거된 영과 대화하는 것이다. 휴거된 영의 생각과 네 육의 생각과 대화해 보아라. 네가 다 아는 대답인 것 같고, 네 스스로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계속 네가 스스로 대화를 해 보아라. 실제 너의 휴거된 영이 너와 대화하게 되는 것이니 그 생각을 너의 혼이 받게 되어 네 생각이 전환되고 변화될 것이다. 또한 말씀을 생각하며 말씀으로 대화해 보아라. 그것 또한 휴거된 영과 대화하는 것이다. 말씀의 차원은 성삼위의 차원이고 휴거된 영의 생각도 신의 차원으로 거듭났으니 말씀으로 대화하는 것은 휴거된 영과 신과 대화하는 것과 같다. 휴거되었으니 이제는 주어진 모든 일, 모든 상황, 여건을 육의 생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고 휴거된 너의 영의 관점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생각으로 모든 것이 좌우되고 결정된다. 생각으로 감사와 기쁨과 행복과 불행이 좌우되는 것이다. 환경이 문제가 아니다. 육의 환경이 엄청나게 좋거나, 심각하게 나쁠지라도 결국은 허무함과 곤고함, 허상이다. 환경을 바꾸려 노력하여 환경이 바뀌었다 해도 지구상에서 그 차원, 그 수준이다. 두 가지 길은 동시에 갈 수 없다. 육의 것을 버려야 천국을 네 것으로 삼을 수 있다. 그래서 너는 네 소유를 다 팔아 황금성 천국을 얻었다. 네 것이 된 것이다. 이제는 황금성 천국이 네 것이 되었으니 지상에서도 천국의 삶을 살아야 한다. 2015_0918 금 계시말씀.hwp6 어떻게? 휴거되었다고 하여, 네 육의 환경이 황금성 천국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네 육신이 ‘뿅’ 하고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갑자기 새로운 능력이 생기고 모든 것이 새롭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육의 환경과 여건은 그대로이다. 존재하기 위해 너는 돈을 벌어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하며, 가사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은 육신의 삶을 다하는 날까지 지속된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이 땅에서 지상천국을 누릴 수 있겠느냐? 휴거된 네 영의 생각으로 살면서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는 것이다. 휴거되었으니 휴거된 영의 생각을 받아 네 생각이 휴거된 영의 생각으로 변화되어라. 강해져라. 이제는 휴거된 영의 생각으로 천국을 이루고 영의 생각으로 이 땅에서 지상천국을 이루는 것이다. 변화된 생각으로 살면 육신으로도 잔치하며 감사 감격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그리 행하다 보면 육신으로도 얻고 누릴 것이다. 환경은 그대로일지라도 너의 마음과 생각이 천국이면 그곳이 천국이지 않느냐. 진정한 천국을 느껴 보아라. 환경이 천국일지라도 마음이 지옥이면 그곳이 지옥인 것이다. 휴거된 영의 생각으로 마음 천국이 되어 살았을 때 모든 육의 삶 또한 진정으로 감사과 감격의 삶이 되어 지상천국을 누리며 휴거 잔치를 하는 것이다. 육신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낙심하고 힘들어하느냐? 육이 지구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누린다 해도 영이 실제로 천국 황금성에서 누리고 얻는 것과 비교가 되겠느냐. 육으로만 누리려 하지 말아라. 육으로만 받으려 하지 말아라. 천국의 것은 육으로 누릴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다. 천국의 것이 너무 커서 육의 세계에서는 다 담을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다. 표현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러한 엄청나고 어마어마한 천국을 너의 소유로 얻었으니 이제 휴거된 영의 생각으로 누리고 휴거된 영의 생각으로 잔치하며 생각으로 더욱더 네 것으로 삼아라. ♥ 09월 18일 금요일 ♥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추되, 즐거움과 기쁨으로 하고자 하여라 2015년 9월 18일 금요일 새벽 계시말씀 작성일 : 2015. 8. 26. AM 1:00 작성자 : 주달해 (새벽에, 정말로 주와 함께하는 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이날은 기도가 잘되지 않아 한마디 한마디 진정으로 고백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기도가 잘 안 풀리니 정말 하기가 싫었고, 그 좋은 기도가 하기 싫으니 마음이 정말 괴로웠습니다. 오늘은 새벽기도를 정말 잘하고 싶어서 먼저는 하고자 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했는데, 과거에 함께 섭리사에 있었지만 마음이 변질되어 섭리사를 나간 사람들이 생각났습니다.) *선생님의 말씀* 구원도 휴거도 자기 선택, 자기 자유의지다. 삼위는 그 좋은 천국도 싫다고 하는 자에게 억지로, 강제로 역사하지 않는다. 생명길도 원해야 가는 것이지, 주도 자기가 좋아 사랑하는 것이지 억지로 하는 것은 억지다. 사람은 각자 자기에게 좋은 것이 최고다. 모두가 좋다 하여도 자기가 싫으면 스스로 그 마음을 돌이켜 좋아하기까지 싫어하는 것이 아니냐. 자기 세계에서의 가치는 절대 자기가 정한다. 삼위가 보는 절대적 가치, 사람이 보는 상대적 가치, 자기 스스로 정하는 자의적 가치다. 이는 자기 취향, 자기 결정이다. 그러나 네가 나와 같이하고 싶다고 하였느냐? 후반기 섭리역사의 핵심이 무엇이냐. ‘먼저 사랑’이며 ‘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삼위도 주도 하고자 하는 자에게 모든 축복과 운세권을 돌려놓았다. 하고자 하되, 삼위의 뜻과 같이하고자 하는 마음이지. 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어도 삼위와 핵심 방향이 다르면 틀렸다 할 수밖에 없다. 삼위는 삼위의 뜻을 이루는 데에 그 뜻과 방향이 다른 자를 쓰지 않으신다. 오늘 너를 가르칠 것은 이 두 가지이니 첫째, 즐거움과 기뻐함으로 하고자 하여라. 둘째, 생각ᆞ행실ᆞ삶의 방향을 맞춰라. 자기가 가치를 모르고 싫어하면 삼위가 그 좋은 사명을 주며 맡겨도 싫다 하고, 최고 환경에 갖다 놓고 살라고 하여도 그곳이 싫어 도망간다. 이상하다. 절대적으로 좋은 것인데, 왜 자의로는 싫다고 하느냐? 이는 첫째, 미련해서이고 둘째, 가치를 몰라서이다. 하늘의 것을 자의로, 자기 취향으로 결정하는 자는 참으로 미련한 자다. 너는 삼위의 절대적인 것을 자신의 것으로, 자신의 가치로 삼을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늘과 마음이 같고, 생각을 같이하는 자가 되라는 말이다. 삼위와 같은 생각을 하고 삼위와 같은 판단으로 결정을 내리고 삼위와 같이 행하는 것이다. 하고자 하는 마음 위에 이러한 것을 갖춘 자라야 하늘과 함께 살기에 합당한 자다. 속력보다 방향이라 하였지? 방향을 같이하면 네가 걷는 걸음걸음마다 하늘을 만나는 접점이 되고, 출발할 때의 방향이 아주 미세하게라도 다르다면 앞으로 전진할수록 삼위와는 멀어지게 된다. 고로 처음부터 잘하기다. 삼위의 일을 하는 데에 있어 다리가 무거운 자, 하기 싫어하는 그에게는 삼위가 미안해서라도 일을 못 맡긴다. 주가 기쁨으로 하듯이 그와 같이 할 자에게 맡기고, 스스로 좋아서 하기에 마음 편히 맡길 수 있는 자에게 하늘의 눈길이 간다. 이는 순리이고 이치이지. 고로 내가 너를 늘 가르치기를 “몸부림과 노력과 수고를 즐거이 하라.” 하지 않았느냐. 이는 마음의 중심에서 결정된다. 휴거된 인생을 사는 자로서 늘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는 신부와 종의 차이를 진정 깨달아라. 하기 싫어도 주인의 뜻을 위하여 억지로 참고 행하는 자는 종이다. 그는 신부 세계에 있더라도 스스로 종적인 차원의 인생을 사는 자다. 고로 너는 네가 진정 신부의 삶을 살고 있는지 늘 확인하여라. 스스로 확인하고 깨달아야 현재 차원을 벗어난다. (“맞아요, 선생님. 그런데 사람이 늘 즐거울 수는 없고, 마음은 그렇지 않더라도 상황과 환경에 따라 행하는 것이 마냥 쉽지만은 않을 때도 있잖아요? 가령 기도도 정말 하고 싶을 때가 있는 반면, 오늘처럼 힘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제 마음을 살려 놓을 수 있을까요?”하고 여쭤 보았습니다.) 2015_0918 금 계시말씀.hwp7 그래. 맞다. 네 말대로 상황과 환경이 늘 즐거울 수만은 없다. 그러나 참신부라면 사랑의 원동력, 신랑인 주의 원동력을 가지고 행하겠지. 행하는 것이 늘 쉽지만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렵기 때문에’ 하기 싫은 것이 아니다. 힘들어도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 있다. 신부의 원동력, 기본 힘을 잊으면 만사가 하기 싫어지고, 신부의 원동력, 곧 <주의 힘>을 가졌을 때는 어렵고 힘들지라도, 고통이 따를지라도 참고 인내로 행하는 것이 근본으로는 기쁨이 될지니 이와 같은 신부의 정신을 가지라 함이다. 스스로 자기의 마음을 감찰하여라. 이제는 보다 더 완전함으로 나아오기를 원하노라. 겉도 속도 완전한 신부가 되어 행하자. ‘삼위와 주와 마음과 생각을 같이하는 것’은 <방향을 같이하는 것>이고, ‘네 하고자 하는 마음의 강도’는 그 속력을 좌우한다. 두 가지를 다 갖추어라. 두 가지를 다 보아라. 사랑한다. 선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