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15.09.19 (토)
토 계시말씀
- 선포일
- 2015.09.19 (토)
첨부 파일
- PDF
20150919 토 계시말씀.pdf
368.4 KB
2015_0919 토 계시말씀.hwp1
2015년 09월 계시말씀
♥ 09월 19일 토요일 ♥
인격을 갖추어라
작성일 : 2015. 8. 29. AM 3:00
작성자 : 주여미마
(고속버스를 타고 가는 중에
버스 기사가 운전을 계속 험하게 하면서
승객들에게 그리고 지나가는 차들에게
화를 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저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인격에
대해서 계속 대화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저 버스 기사 인격이 너와 같다.”
하셨습니다.
너무 충격이었지만 반성하게 되면서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니 깨달음이 있어서
새벽에 성령님께 고백했습니다.
“성령님, 어제 그 버스 기사는
지도자요, 따르는 자들은 승객인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지도자들이 그 버스
기사의 인격처럼 하면 따르는 자들이
불안해하고 또 인격 하나로 신앙의 사고가
난다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라고
고백하니 이후 성령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
*성령님의 말씀*
잘 깨달았다.
인격으로 흥망성쇠가 결정된다.
네가 탄 버스는 작게 보면 개인이요,
크게 보면 부서와 나라와 섭리역사다.
버스 기사는 작게 보면 너의 육이요,
크게 보면 생명을 이끄는 지도자들이다.
버스 안의 승객들은 작게 보면
너의 영과 혼이요,
크게 보면 역사를 따르는 자들이다.
기사가 운전을 잘해야
버스 사고가 나지 않는다.
이같이 네 인격을 잘 다스려야
개인의 사고, 민족, 세계 섭리의
사고가 나지 않는다.
너, 버스 타고 갈 때 불안했지?
(네. 버스가 자꾸 급정거하고 아저씨가
화내면서 운전하니 ‘이러다 사고 나겠다’
하면서 너무 불안했습니다.)
이와 같이 네 인격도 그러하다.
화내고 불같이 하면 네 영과 혼이 또한
따르는 자들이 불안해한다.
선생을 봐라.
그를 따르며 가는 길이 불안하냐?
(아니요, 너무 평온하고 편안합니다.)
선생처럼 해야지.
선생의 정신, 선생 것을 닮는다고
이것저것 따라 하면서
왜 이런 건 못 따라 하느냐.
가장 기본이다.
기본이 없으면 기분이 상한다 했지?
인격이 모든 신부들의 기본이다.
생명을 이끄는 지도자는 물론이거니와
따르는 자들도 명심하고 들어야 한다.
따르는 자들 너희도 언젠가는
이끄는 자가 될 것이며 지금은
사명이 없다 해도 너희의 영혼을
이끄는 사명은 가지고 있으니
명심하고 꼭 인격을 잘 다스려야 한다.
만물에 냄새가 있듯이
인격에도 냄새가 있다.
너희는 고기 냄새가 나면
‘어디서 고기를 굽지?’
하면서 두리번거리며 찾게 되지?
하지만 하수구 냄새나
쓰레기 냄새가 나면 어떻게 하느냐?
얼른 그 자리를 피하게 되지 않느냐.
인격도 그러하다. 인격을 갖춘 자,
성품이 좋은 자는 생명들이 찾아온다.
인격이 닦이지 않은 자는 생명들이 피하게
된다. 인격의 냄새가 나서 그러하다.
너희는 어떤 자가 되겠느냐? 당연히
인격을 갖춘 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아멘, 성령님. 제 친구 중에
정말 인격이 좋은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는 전도도 참 잘해요!
그 아이의 인격이 좋다 보니
생명들이 신뢰를 가지고 많이 붙어요.
이것도 인격의 냄새 때문이죠?)
맞아. 한 가지를 통해 여러 가지를
깨달아라. 인격을 갖추면 생명이 찾아오니
전도도 잘할 수 있다. 생명을 찾아다니기만
하지 말고 생명이 찾아오게 만들어라.
그것이 선생의 전도 방법이다.
선생이 그 안에서도 전도할 수 있는 방법,
생명들이 찾아오게 한다. 육의 환경의
한계가 있기에 찾아다니는 것이 힘들지만
선생 그 천상의 인격을 보이며 생명들이
따라오고 찾아오게 만든다.
너희도 그렇게 해라. 생명을 전도하여
데려와도 금세 놓치는 생명들이 많지?
네가 한 번 당겼으면 이제는
따라오도록 해야지. 그것도 능력이다.
그 능력 중의 하나가 인격인 것이다.
너를 보고 인성적으로 따라오게 하라는
말이 아니다. 너를 보고 그 위에 역사하는
선생과 그 위의 삼위를 보고 따라오게
하라 함이다.
인격이 삼위와 선생을
나타내기에 좋은 방법 중의 하나다.
인격을 갖추어라.
말씀으로 기도로 너희를 다스리며 갖춰라.
상황마다 생활 속에서 늘
‘선생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해라.
인격 위의 신앙, 인격 위의 역사다.
인격을 잘 다스려 따르는 자들을
불안하게 하지 말고 사고 나지 않게
하여라. 삼위와 선생의 성품을 닮아라.
인격을 갖춤으로 얻을 것이 참 많고
또한 반대로 갖추지 못함으로 잃을 것이
참 많아 이리 전하였다.
인격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오는 만큼
중요하다 생각하고 더욱 신경 써라.
너희를 늘 지켜보며 함께하는 성령이다.
안녕.
♥ 09월 19일 토요일 ♥
<돛단배> : 행함의 과정도 끝도
사랑의 기쁨과 희망으로 만드는
비밀
작성일 : 2015. 8. 17. PM 2:06~2:36
작성자 : 주수신
(한국에 온 해외 회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그들을 너무도
사랑하시며 귀하게 보시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이날 밤을 새워서 육이 조금 피곤하기는
했지만, 선생님께서 너무도 사랑하는
신부들과 만나니 마치 제가 너무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난 것처럼
마음이 너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육신이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그 피곤함이 안 느껴질 정도로
기쁘게 행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니, 수련회 말씀에 ‘주의 돛을
달면 쉬이 항해할 수 있다.’라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만남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성령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성령님의 말씀*
돛을 달면 네 스스로 하게 된다!
하늘이 너에게 ‘기도해라!’ 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가까이해라!’ 해서
말씀을 가까이하는 것이 아니다.
‘전도해라!’ 해서 전도하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전해라!’ 해서 마지못해 전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늘 생각하고 불러라!’
하니 그리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을 관리해라!’ 하니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주의 돛을 단 자, 즉, 삼위와 같은 정신을
가짐으로 같은 생각을 가진 자, 시대
복음을 통해 모두가 이 시대에 역사하시는
2015_0919 토 계시말씀.hwp2
하나님에 대해 알기를 원하는 자,
하나님의 뜻과 ‘같은 뜻’을 지닌 자는
스스로 행한다!
누가 옆에서 하라고 쿡쿡 찌르니
찌르는 것이 마음에 안 들어서 행하는
것이 아니다. 하기 싫은데 마지못해서
행하는 것이 아니다.
하늘과 지닌 ‘뜻’이 같다.
그로 인해 ‘사고의 원리’와
‘사고의 방향성’이 성삼위와 같고,
시대 구원자와 같다!
주의 돛을 달지 않은 자들은 주의 돛을
단 자를 보고 뭐 저렇게 힘들게 행하나,
인생 참 힘들게 산다 생각하고 고된 일을
하고 수고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돛을 단
자에게 있어서는 그리 행치 않는 것이
힘든 것이요, 고된 일인 것이다!
너희는 선생을 보고 도대체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행하시나 생각한다.
선생은 <이 시대 성삼위의 돛>을 가장
깊숙이 꽂은 자다. 절대 빠지지 않도록
돛을 아예 박아 버렸다. 고로, 그가 지닌
뜻은 성삼위의 뜻과 같다. 뜻이 같으니,
‘정신’도 같다! 정신이 같으니,
‘생각의 방향성’ 또한 같다!
선생은 이리 행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고 힘이 든다. <성삼위의 돛>을 달고
‘가장 멋진 인생의 항해’를 하고 있는 자가
누구이냐? 바로 선생이 아니냐!
너희는 돛을 단 자가 바삐 행하면
그의 육신의 힘든 것만을 보고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지? 대단하다!’
하지만, 돛을 단 자에게 있어서는 그리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리 살지
않고는 못 배긴다!
일을 안 하면 잠깐은 육이 편할지라도
아주 조금의 시간만 지나면 해야 할
일들을 안 하니 마치 돛을 단 배가 항해를
하지 않는 것과 같아지니 마음이
천근만근이 된다.
<돛을 단 자>에게는 ‘목적지’만을 바라보고
열을 내며 항해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최고의 희망이요, 소망이요, 기쁨이다!
행함의 하나하나가 자신이라는 배를
목적지에 닿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돛을 단 배>는 ‘근해’만을 다니지 않는다.
한 대양을 넘어 다른 바다로 간다.
<돛을 단 배>와 ‘노를 젓는 배’는 다르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의 거리도 다르고
목적지까지 가는 평균 시속도 다르다.
배의 안전성도 다르다.
속도도 비교가 안 되게 다르다!
너희가 행하는 일 하나하나가
바다의 파도와 같고 바람과도 같다.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노력 없이
쉬이 되는 일은 없다.
심지어는 화장실에 가 세수를 하는 것에도
한 단계, 한 단계의 행함이 필요하지
않느냐. 화장실로 가는 노력이 필요하고
네 얼굴을 씻는 노력이 필요하다.
<돛을 단 배>가 ‘노를 젓는 배’보다
더 먼 거리를 항해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돛을 달았기에 같은 시간 내에
일을 더 빨리, 그리고 많이 처리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그리 행치 못한다면,
돛을 단 배가 ‘돛단배’로 불릴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느냐?
<돛>을 다니, ‘파도’를 능히 넘는다!
즉, ‘일들’을 능히 처리해 낸다 함이다!
돛단배에게는 파도를 넘는 것이
‘희망’이고 바람을 받고 앞으로 빨리
전진함이 ‘희망’이다!
즉, <주의 돛을 단 자>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능히’ 해낸다!
하나하나 일을 해냄은 곧,
‘목적지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함이니,
그 자체로도 ‘희망’이고, 하나하나의
일들이 ‘보람’이다!
(아멘! 저도 하나하나 행할 때,
선생님과 더 가까워지고 성삼위와 더
가까워지는 것을 생각해요. 먼저는 제가
주의 돛을 저라는 배에 꽂는 행위이고,
사람들이 돛을 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 먼저 정신을 무장하고, 다른 사람들도
무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니 그리하는 것이
제가 선생님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고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해서
모두가 이 시대 하나님을 알고, 구원자를
알게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육이 힘들더라도 회원들을 만났을
때 그리 기쁘고 행복했나 봐요! 그
하나하나가 희망이고, 보람이에요,
성령님!)
고로, <주의 돛을 단 자>는 목적지에 닿기
전, 항해를 하는 과정 중에도 기쁨인
것이다! 곧, 파도와 바람은 뜻의 완성으로
이어지는 항로인 것이다!
<돛을 단 자>에게는 아무런 풍랑 없이,
그저 순탄한 바다에 둥둥 떠 있는 것은
절대로 ‘기쁨’이 되지 못한다.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돛을 단 자>에게 일이 없어서 가만히
쉬게 된다면, 돛을 단 자로서의 참기쁨을
얻을 수가 없다는 뜻이다.
왜?
잔잔한 바다에서는 돛단배가 나룻배와는
다른 점을 보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돛단배의 진가를 보일 수가 없다.
바로 ‘너희가’ 자신이 맡은 일을 어떻게
대하고 어찌 행하는가를 보면 과연 너희가
주의 돛을 달았는지, 달았다면 얼마나
깊이 달았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돛을 단 자는 ‘스스로’ 행한다!
기쁨으로 행하고, 감사함으로 행한다!
전심다해 행하고, 보람으로 행한다!
그리 행한 하나하나가 하나의 파도와
바람이 되니, 뛰어넘은 하나하나를
<자신과 하늘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남긴다!
어찌 기쁨과 감사로 행할까?
<돛을 단 자>는 몸이 지치지도 않고,
마음이 상하지도 않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 ‘행함’이 자신을 목적지까지
더 빠르게 이끌어 줄 것임을 확실하게
알기 때문이다! 고로, <돛을 단 자>에게
있어서 ‘행함의 몸부림’은 그저 ‘고통’이
아니다. 행하니 ‘육’이 힘들 수 있다.
그러나 <돛>을 달았다! 즉, 자신의
‘행함의 목적’이 무엇인지 뚜렷이 안다!
그로부터 그 육의 힘듦까지도 모두
이겨 낼 수 있는 힘을 받는다!
그 힘이 무엇인가 하니,
<목적지에 도달해 간다는 ‘희망’>이요,
<하나하나의 파도와 풍랑을 넘은
‘성취감’>이요, <목적지까지 가도록
이끌어 줄 다음 일에 대한 ‘기대’>이다!
너는 <성삼위의 돛>을 달았느냐?
<성삼위가 보낸 자의 돛>을 달았느냐?
(성령님! 오늘 해외 회원들을 만났는데,
너무 기뻤어요! 그들이 저를 기쁘게 했기
때문이 아니라, 주의 돛을 달고 이뤄야 할
그 천주적인 뜻을 제가 그 순간에도 이뤄
가고 있음에 너무도 기뻤어요!
회원들에게 선생님에 대해 가르쳐 주고
성령님에 대해 알려 주어 그들 또한 주의
돛을 달고 인생을 하늘의 뜻 안에서 가장
멋있게 항해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너무도 기뻤어요! 제가 선생님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그 방법임을 깨달았는데,
그것을 행하니 너무도 좋았어요.
육이 잠을 못 자서 피곤해 조금
힘들었지만, 마음이 기쁘니 피곤함도
안 느껴졌어요!)
그래, 그 순간 너는
<주의 돛>을 달고 행하였다!
주의 돛을 달라는 말씀은 너희가
한시, 한철, 은혜만, 감동만 받고
그냥 지나칠 말씀이 아니다!
섭리사야, 너희 모두 <주의 돛>을 달아라!
이 돛을 달면 풍랑을 능히 이긴다!
“별거 아니네!” 하고 가벼이 넘고
지나간다!
다른 자들에게는 ‘어려운 일’, 많은 노력이
필요한 ‘힘든 일’로 여겨지는 것이
<돛을 단 자>에게는 ‘쉬운 일’로,
‘기쁨’으로, ‘보람’으로, ‘희망’으로 와
닿는다.
그러니 <돛을 단 자>는 바람을
‘능히’ 이기고, 파도를 ‘가벼이’ 넘고
지나가는 격이 아니냐!
2015_0919 토 계시말씀.hwp3
2015년, <주의 돛을 단 자>는
모든 행함의 차원을 훌쩍 높이게 될
것이다! ‘스스로 행함’의 비밀은,
바로 ‘주의 돛을 다는 것’이다!
‘성삼위와 기쁨으로 하늘의 뜻을 펴는
것’의 비밀은, 바로 ‘주의 돛을 다는
것’이다!
늘 차원을 높이고 싶어 하는 너희에게
‘네 차원을 껑충 뛰어넘는 비밀’을 알려
주었다! 너희가 하늘의 일을 ‘진심으로,
전심 다해 행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비밀’이다! ‘사랑으로 모든 일들을
행할 수 있는 비밀’이다!
네가 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더라도
기쁨으로 하늘과 사연을 만들며
‘모두 능히 할 수 있는 비밀’이다!
그 비밀이 바로, ‘주의 돛을 다는 것’이다!
‘주의 돛을 달고 항해하는 것’이다!
사랑하니 비밀을 일렀다. 성삼위의 돛,
주의 돛을 네 뇌에서 절대 빼지 말고
오늘도 네가 해야 할 일들을 나와 함께
행하자. 그리 행하면, 일을 하는 과정
가운데에 기쁨을 누리고 일의 끝에도
삼위와 주와 사랑으로 잔치하게 될
것이다!
사랑하니 오늘도
네게 와 깊이 말해 주었다!
안녕!
♥ 09월 19일 토요일 ♥
1. 구원자와 시대 진리가
모든 것의 절대적인 척도이며
기준이다.
2. 네 마음에 조그만 틈까지
허용하지 않도록 완전하여라.
작성일 : 2015. 8. 26. AM 02:00
작성자 : 정수현
(생활 가운데 나도 모르게 조금씩 틈을
주며 허용한 것이 결국 나를 무너뜨리며
사탄이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조건이
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이 너무
무지하니 하늘 앞에 귀한 신의 한 수,
한 가르침을 주시면 좋겠다고 간구하였을
때 주신 말씀입니다.)
*선생님의 말씀*
사랑아, 적어라.
신의 한 수 알려 줄게. 너희의 생활에서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해 줄게.
너의 모든 것의 잣대를
절대적인 것으로 두어야 한다.
네가 무엇을 하든지
그것이 하늘의 잣대에 비추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행해야
완전하게 되고 실수가 없는 법이다.
그것을 확인하지 않고 행한다면
결국엔 틈이 생기고 그것을 통해
실패하게 되니 정말 처음부터 잘해야 한다.
그렇다면 변하지 않는
잣대를 무엇으로 삼을 것이냐?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내가 너희에게 준 진리로 삼아야 한다.
하늘에 비추어 보아 양심에 한 치의
거리낌도 없이 너의 생각과 주관,
욕심을 버리고 순종하는 것이다.
너의 것이 들어가는 순간 불순물이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그것으로
오염이 시작되고 결국 실패하게 된다.
그것으로 사탄이 틈을 탄다는 얘기다.
네가 모든 것을 행할 때
이것을 꼭 명심하여라.
진리로 잣대를 삼고 하늘의 마음에 비추어
온전한 결정을 하고 판단을 해야 한다.
이것이 너의 철칙이 되고 너의 정신이
되어야 한다.
네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네 안에서 바라보면 기준이 없으므로
알아볼 수 없다. 네 입장에서 보면 맞는
것 같아도 그곳에서 나와서 객관적으로
보면 틀린 경우가 많다. 너희들이 무엇을
하든 섭리를 뛰고 생명을 관리하며 역사를
뜀에 있어 모든 판단이 정확하고
공의로우며 완전해야 고생을 하지 않고
시간을 벌 수 있다.
공의로우려면 공의로운 하나님께 비추어
봐야 하는데 그 하나님은 말씀으로 나타나
있으니 모든 척도를 말씀으로 그리고
구원자의 정신과 구원자의 마음으로 해야
한다.
너의 사상과 생각을 나의 정신과 사상으로
만들어 놓으면 언제든지 내 생각대로
판단하고 결정하게 되어 내가 하게 된다.
내가 한 것같이 실수가 없이 완전하게
일을 해낸다 함이다.
너는 무엇을 하다가 힘들어지면
뭐가 잘못되었지 하며 돌아보지?
힘이 들고 뭔가 일이 안되면
그제야 나를 부르며 생각이 깊어진다.
그러면 한참을 벌써 잘못 가서 고치기가
어렵고 일을 다시 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처음부터 나에게 묻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잘하고 있는지
늘 나에게 점검하고 시작하여라.
그것이 지혜다.
자신의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이다. 그것은 객관적으로 자신을
볼 줄 안다는 것이고 자기의 뇌가 자기를
위해 합리화하는 머리로 굳어 있지 않다는
것이야. 그런 사람은 자신의 모순을 고칠
가능성이 있다. 항상 말씀에 비추어
주의 생각과 심정에 맞을까 생각하는 자다.
주가 잘잘못을 판가름하는 척도이다.
그러나 반면 자신만의 잣대로 자기를
판단하며 합리화하며 아무리 주가
말하여도 고치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자들이 있다.
이런 자는 정말 위험한 자요,
그러다 지옥에 갈 확률이 높은 자다.
그러니 너희들이 무엇에 기준을 두고
사는지 꼭 잘 보아야 한다.
네가 성공하려면 판단을 잘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 기준을 늘 잘 잡고
그 잣대로 재고 모든 것을 시작해라.
그 기준은 나의 말씀과 정신이라 하였다.
다른 말로 더 풀면 양심과 심정이다.
너희의 생각은 항상 불완전하니
너희의 생각과 판단을 믿지 말고
꼭 나의 생각에 접붙여라.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할까?”
“말씀에 어떻게 나왔지?”
생각하며 그것이 아닐 땐 과감히
선로를 바꾸듯 바꾸어야 한다.
처음엔 조그마한 잘못이라 괜찮을 것
같아도 그 조금이 나중엔 어마어마한
차이를 이루게 되고 걷잡을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맞아요, 선생님. 제가 오늘 기도하며
생각해 보니 처음엔 괜찮겠지 하며
조금씩 마음을 주며 허용했던 것이
결국엔 많은 영향을 주며 나에게 너무나
안 좋은 역할을 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런데 제 안에서 아무 생각 없이 진행될
때는 전혀 몰랐는데 뭔가 너무 힘들어서
멈추어 서고 월명동에 와서 생각하고
기도해 보니 무엇이 문제인지 깨닫게
되었어요.
그 문제에서 나와서 생각하니
무엇이 문제인지 알게 되었죠.
그리고 주님의 말씀과 정신에 비추어
생각해 보니 깨닫게 되었어요.
정말 나의 조그만 생각이
너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무지한 인생입니다.)
그래.
무엇이든 처음부터 완전하지 않으면
결국엔 그 부족함으로
완성품이 나오지 않는다.
물건 하나를 만들 때도 어떤 부분이
미흡하면 그 물건이 100% 온전한
물건으로 만들어지더냐?
만들어질 수 없지?
모든 것이 만사에 그러하다.
전도를 할 때나,
관리를 할 때,
인생을 살 때,
돈을 벌 때도
옷을 입을 때,
화장을 할 때도
처음부터 완전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부분으로 해를 받거나 실패하게 되어
처음부터 다시 해야 되지 않느냐.
사탄이 이렇게 작은 틈을 만들어 들어오니
너희는 이 사탄의 속성을 뼈저리게 알고
깨달아야 당하지 않는다.
그래서 너희에게 완전을 선포하였다.
완전하지 않으면 역사를 이룰 수도
천국에 올 수도 없다.
2015_0919 토 계시말씀.hwp4
너희가 완전하지 않은 채
어떻게 천국을 누릴 수 있느냐.
음식을 만들 때도 정말 맛있게,
재료, 시간, 맛과 간 등 모든 것이
완벽하고 완전할 때 천국 같은 맛을 내지.
완전하지 않을 때는 맛이 있는 것 같으나
부족한 만큼 맛이 없는 법이다.
너희 인생을 살 때도 이와 같이 하고
신앙을 할 때도 이와 같이 하여라.
신의 한 수를 깊이 새기고 실천하는 자,
성공할 것이다.
휴거되어 천국에 오도록 너희 모두를
축복해 놓았으나 완전을 이루는 자가
그 축복을 받을 것이다.
내가 그동안 너희에게 보여 준 것이
하늘나라의 완전함과 온전함이다.
그 어떤 것에도 100% 깨끗하고
완전한 조건을 세웠다.
어느 정도 해서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
100% 완전한 조건들을 세워
인정받은 것이다.
하늘을 사랑한 조건,
이성에 넘어가지 않고 이긴 조건,
물질과 명예에 넘어가지 않은 조건,
진리의 말씀을 받은 조건 등
그 어떤 사탄의 시험에도 모두 이겼기에
천국의 입성이 허락되는 문이 열려
천국이 너희에게 허락된 것이다.
하늘은 완전한 자에게
하늘의 완전함을 보인다 했다. 완전함을
이루기란 너무 어렵지만 처음엔 나도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으나 나도 이렇게
이루었으니 너희들도 할 수 있다.
보낸 자는 이 조건을 세워 사탄을 이기고
오니 사탄을 물리치고 천국을 이룬다.
너희도 이와 같이 해야 한다. 앞에서
이기었으니 이긴 자만 따라오면 된다.
이긴 자의 도움으로 같이 하기만 하면
된다.
보낸 자가 너희의 잣대이며 구원의
척도이다. 너희 마음에 조금이면 괜찮겠지
이런 마음을 절대 허용하지 말아라.
그 생각 자체가 사탄이 주는 덫이니
그로 인해 모든 것을 틈타 들어오려는
계략이다.
이번 북한과 협상할 때 보았지?
남한 쪽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양보하지 않았을 때 협상하여 평화를 얻은
것처럼 네가 사탄에게 한 발자국도
허용하면 안 된다.
버티는 것이 힘들고 괜찮을까 하지만
그것이 진리에 의거하여 선을 행하고 의를
행하는 것이라면 하나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 맞다.
조금의 틈을 준 것부터가 벌써 진 것이다.
그때부터 넌 무너질 것이고 처음엔 티가
안 나 잘 모르겠지만 결국엔 파멸의 길로
간다. 죄를 우습게 보지 말아라.
틈을 별거 아니겠지 하지 말아라.
틈을 주는 것으로 벌써 죄는 시작된다.
사탄이 우위라는 것이다.
벌써 사탄이 이길 조건을 잡은 것이니까.
네 의식 속에 ‘이건 괜찮을 거야.
이 정도는 괜찮지. 다스릴 수 있어.’
하며 허용하다가는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주의 돛을 단다는 것은
완전히 내 생각을 단다는 것이다.
반은 네 돛, 반은 내 돛을 다느냐?
그것은 내 돛을 단 것이 아니지.
처음부터 완전하게
네 머릿속에 나의 정신이,
나의 돛이 100% 세워져야 한다.
그러니 몇 퍼센트만 세우고
돛을 세운 것으로 착각하지 말아라.
완전히 돛을 바꿔라. 사탄의 돛,
네 정신의 돛을 세우지 말고.
이제 휴거 700선을 이루려면
완전을 이루어 완성해야 하기에 일렀다.
귀하게 듣고 귀하게 실천하길 바란다.
사랑하는 너희 구원자 선생이.
♥ 09월 19일 토요일 ♥
1. 한계는 곧 차원이다.
일체 됨으로 이것을 넘어야
더 이상세계를 이룬다.
2. 너 자신의 가치를 잃지
말아라.
작성일 : 2015. 8. 27. 작성자 : 정천아
( 최근 육적으로 힘이 조금 빠져 피곤함이
느껴지고 심적으로도 한계가 느껴지려고
할 때, 성령님께서 성경 구절로 깨우쳐
주시며 말씀해 주셨습니다.)
* 성령님의 말씀 *
(이사야 40:28-31)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사람이 육을 육으로만 쓰면 그와 같이
된다. 육은 날로 닳고 낡아지며, 소모되는
하나의 유한세계에 속한 물질일 뿐이다.
그러니 육이 닳는 대로, 소모되는 대로
쓰면 네가 느끼는 육신의 피곤함과
곤비함은 당연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영이 있지 않느냐.
영은 썩어 없어지며 닳는 존재가 아니라,
날로 새로워지며 그 능력이 무한한 것은
영원한 하늘세계에 속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너의 영을 써먹어라.
너희는 휴거된 영이 아니냐.
그러하니 휴거되지 않은 자보다
그 능력의 차원이 더 어마어마하다.
왜 휴거된 영을 두고
휴거되지 않은 자와 같아지려 하느냐.
육을 육으로만 쓰지 말고
영과 일체시켜 차원 높이 써라.
육이 육을 다스리게 하지 말고
영이 너의 육을 다스리게 하여라.
네가 더 너의 영을 부르며
휴거된 영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
휴거된 영은 황금성을 오고 가며
하늘의 정기를 받아 너의 육신에게 전해
주니 어찌 육만이 행하는 것과 영이 주는
능력으로 행하는 것을 비교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휴거된 네 영이 너를 도ᄐ주려
해도 네가 네 영을 부르고 그에 대해 깨어
있어야 함을 잊지 말고 그리 행하여라.
사랑아.
네가 힘들다고 느낄 때
그곳에 있는 선생을 한번 떠올려 보아라.
선생도 육신을 가진 자인데 어찌 그 육이
피곤치 아니하며 지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나 선생도 끊임없이 성삼위를 부르며
매달리기에 하늘의 능력이 임하여
신의 힘과 능력으로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더냐.
그러하니 그와 같이 너희도 끊임없이
삼위와 선생을 부르며 또한 휴거된 너의
영도 불러 네 육이 영의 무한한 힘을 받게
하여라.
모든 것의 근본의 힘은
바로 삼위일체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너희가 여호와를 앙망하며 하늘을 찾으면
삼위는 너희에게 날마다
새 힘을 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는 삼위가 직접 역사하여
주는 그 새 힘을 얻을 것이며
그 힘을 받고 육신의 피곤과 곤비함이
사라지며 독수리가 자신의 날개를 활짝
펴고 강한 에너지로 하늘을 향해 비상하듯,
너희에게 그런 역사가 일어날 것이니라.
그리고 무엇보다
너 자신의 가치를 잃지 말아라.
삼위와 선생이 너의 무엇을 보고
택하였는지를 한번 생각해 봐.
삼위와 선생이 너를
직접 택하였고 불렀고 휴거시켰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느냐.
그런데 자기 자신의 가치를 모르고
생각하지 못하고 사니 자신 없어 하고
낙심하고 포기하기도 한다.
삼위와 선생이 너를 포기하지 않았는데
네가 너를 버리느냐.
내 것인데 네가 버리느냐.
가치 회복이다.
휴거된 영을 가진 육,
그것이 최고의 영화다.
부귀다. 축복이다. 다 가진 것이다.
네가 스스로 너의 한계선을 정하며
힘들어하고 있진 않느냐.
2015_0919 토 계시말씀.hwp5
어떤 일을 두고 자신이 없어질 때
이것이 나의 한계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며 낙심하는 자들이 많다.
그러나 진짜 한계는
자신이 차원을 높여야 할 때에 온다.
한계가 왔다고 느낄 때는 곧 네가
차원을 높일 때가 왔다고 생각하여라.
네가 열심히 해 오다가
어느 순간 힘들 때가 있지? 그때가
네가 그다음의 차원으로 넘어설 때다.
한계는 곧 차원이다!
이것을 넘어야 더 이상세계를 이룬다.
그것만 뛰어넘으면 한 단계씩 차원을
높여 가는 것인데 힘들어 하느냐.
그 순간에 포기하면 그 차원에
머물고 끝난다.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는데 동시에 사람의
키보다 큰 계단 모양이 보였고, 한 사람이
걸어가다 앞의 높은 벽에서 그다음
계단으로 오르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높은 벽을 앞에 두고
뛰어넘는 것이 쉬우냐.
그런데 갖은 방법을 써서라도 그 벽을
넘으면 더 차원 높은 이상세계로 갈 수
있다. 그러니 그 막다른 길 끝에서 네가
몸부림치며 극적으로 삼위와 선생을
찾으며 매달릴 때 삼위와 선생이
너를 이끌어 주며 끌어올려 준다.
그러니 또 다른 차원의 높은 벽도
쉽게 오를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정답은, 삼위와 선생이다.
그것이 제일 쉬운 방법이고,
유일한 하나의 답이다.
어차피 인생은 끊임없이 차원 오르기인데
거기에 부딪혔다고 그때마다 넘어지고
발버둥 치고만 있을 것이냐.
넘어져도 일어나고
스스로 몸부림을 쳐야 한다.
그 한순간, 그 한 날만
견디고 조금만 더 행하면 되는데
견디기 힘들다고 그냥 쉽게 포기하는구나.
신부들이 너무 약하다.
네 안에 끓고 있는
열정과 심정이 있는 거 안다.
너는 그것들을 폭발시키며
불같이 뛰고 싶지 않느냐.
환경을 보지 말고,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삼위와 선생에게 집중해서
네 능력의 빛을 발하여라.
하늘의 뜻을 이루는데 누가 막겠느냐.
사람들이 비웃고 제아무리 막으려 해도
결국은 하늘이 손을 대니 그 뜻대로
이루어지고, 그 뜻대로 행하는 자는
공적대로 빛이 나게 되는 것이다.
그 의 값을 누리며 영원히 산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는 네 스스로
연단하고 단련시켜야 한다.
아무 훈련이 없이는 전쟁터에 나갈 수가
없듯이 네 약한 마음을 강하게 다지고
약한 정신을 강하게 무장해야 실전에서도
후퇴하지 않고 담대하게 나갈 수 있다.
휴거된 신부들아.
지금은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과 같이
마음, 정신, 생각 완전 무장이다.
말씀으로, 하늘 정신으로 너를 강하게
연단시키고 만들어 더 일체 되어야 한다.
네가 삼위와 선생과 벌어진 만큼
그 간격으로, 그 틈으로 정신이 무장해제
된다. 그 격차가 벌어지면 네 생각,
사탄 생각이 들어온다.
부흥강사를 통해
일체에 대해 비유를 들어 설명하였지?
나무와 가지를 그냥 본드로 붙여 놓는다고
해서 그것이 일체이겠느냐.
완전히 접붙여져 진액이 서로 통하여
하나 된 단계가 완전 일체다.
네 손의 손가락이 딱 달라붙어 있어서
떨어지면 고통스럽고 아픔이 그대로
느껴지듯이, 네가 삼위와 선생과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그에 따른 고통이
오고 아프다는 것이다.
손가락에 조그마한 상처만 나도
쓰라리고 그 고통이 연속되는데
그것이 떨어진다고 생각해 보아라.
일체는 그러하다.
딱 붙어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떨어졌을 때의 고통,
그것도 생각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네 영의 고통이 더욱더
극심함을 깨달아야 해.
특히나 섭리를 등지고 나간 자들은
삼위와 선생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갔으니 그 고통은 살짝 베어서 아픈
고통과 잘려 나갔을 때의 고통의
차이보다도 몇천, 몇억 배의 고통이다.
그 고통은 영이 느끼니 육이 느끼는
것보다 몇백 배, 몇천 배 그 이상
더 민감하고 예민하다.
너도 고통, 삼위도 선생도 고통이다.
그런데 당장 자신이 섭리를 등져도
영의 고통이 직접적으로 느껴지지
않으니 육은 못 깨닫고 있구나.
또 하늘을 등지고 나갔으니 그 심장이
으스러지는 삼위와 선생의 심정을
어찌 느낄 수가 있겠느냐.
마치 잘린 손가락 자체에서
고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잘리고 남은 지체인 손을 통해
뇌에서 느끼는 고통이 더 극심하듯 하다.
잘려져 나간 손가락, 그것은 썩어
없어지지만 잘린 그 손을 보는 심정은 볼
때마다 생각할 때마다 가슴에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죽은 자식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부모의 심정의 고통, 사랑하는 애인의
죽음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그러한 고통이다.
사랑아.
핵심은 선생과 일체다!
그것이 너의 육의 한계를 뛰어넘게 하는
최고의 방법이며 네가 차원을 높이는
최고의 방법이다. 네게 이것을 깨우쳐
주려고 일체에 대해 설명하였다.
오직 선생이 답인데
네가 일체 되지 않고 떨어져
네 생각대로, 네 마음에서
정한 길대로 이리저리로 돌아서 갔다
결국 ‘선생’만이 답이라는 것을 알고
먼 길을 되돌아오니 어찌 그 육신이,
그 마음이, 그 영이 피곤치 아니하며
지치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 한 번 일체
됐으면 끝까지 변함없이 쭉 가는 것이다.
완전 일체 되어 나무의 영양분을,
그 진액을 다 빨아들여라.
섭리 안에 있어도 선생과 일체 되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생이 많다.
그러면 시대 구원자 핵을 찾지 못해
신앙의 방황을 하고 있는
저 기성과 다를 것이 무엇이냐.
핵을 앞에 두고도 놓치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다.
핵 차지다! 핵과 일체다! 잊지 말아라.
오늘도 너의 한계를 넘게 하고
너의 차원을 높이게 하는
귀한 말씀을 주고 가는 성령이다.
♥ 09월 19일 토요일 ♥
삼위와 선생은 너와
<생각>으로 ‘사랑’이
연결되어 있다. 매 순간
생각하며 <사랑의 대화>를
하라!
2015년 9월 19일 토요일 새벽 계시말씀
작성일 : 2015. 8. 21. AM 0:00-01:37
작성자 : 주사랑빛
(선생님과 대화를 하면서 여쭸습니다.
“너무 사랑해요. 24시간 단 한순간도
떨어지기 싫어서 선생님과 매순간 대화를
하니 너무 행복해요. 그런데 만약 잠이
들면 꿈에서 혼으로 선생님을 만나면
되는데, 짧은 시간이지만 잠이 드는 순간의
그 시간 동안 선생님을 놓치면 어떻게
하지요? 그리고 저는 지금 잠이 안 와서
교회에 왔는데 선생님의 육은 무엇을
하시나요? 선생님은 주무시고 저는 깨어
있을 때 혹시나 순간이라도 마음, 생각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요?”선생님께서는
제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 선생님의 말씀 *
나와 너는 <시계>와 같다.
“시계요?”
그래, 시계를 생각해 봐라.
초침과 분침, 시침이 따로 움직이지만
하나로 연결되어 있지?
<초침>은 ‘너’이고 <분침>은 ‘나’다.
2015_0919 토 계시말씀.hwp6
같은 시간에 서로 다른 일을 한다고 해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이고
‘시간을 나타내는 목적’을 함께 이루고
있지 않으냐.
<시침>은 ‘삼위일체’이시다.
역시 초침, 분침, 시침이 다 하나로
연결되어 한 목적을 이루듯이,
너와 나, 삼위일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데 연결고리는 바로 <생각>이다.
그러니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나를 생각하고 삼위를 생각한다면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니 걱정 말아라.
하나로 연결되어
<하나의 목적>을 이루니 한 지체와 같다.
뇌도 좌뇌, 우뇌, 전두엽, 후두엽 등 모두
다른 역할을 하지만 결국은 하나의 지체를
움직이고 살아가게 하지 않느냐.
신경세포로 모두 연결되어 있지.
그러나 뇌의 부분들이 각자 다른 역할을
하지만 한 가지 목적이 아니라,
다른 목적을 향해 각자 움직인다면
그것은 치명적인 해를 줄 것이다.
신경세포가 고장이 나서 그렇다.
병이다. 장애다.
이와 같이 생각이 고장이 나면
네가 삼위와 선생의 목적대로 움직이지
못하기에 병에 걸린 인생, 장애 인생이
되는 것이다.
고로, 생각이 건강해야 한다.
고장 나지 않게 <생각 관리>다.
무엇으로 관리하느냐고?
<사랑>은 ‘최고의 생각 관리자’이다.
그렇다면 이 사랑은 어디서 만들어질까?
(사랑은 어디서 오는지,
삼위와 선생님의 사랑은
어떻게 느낄 수 있는지,
사랑이 늘 마음에 샘솟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아요.
깊이 가르쳐 주세요.
꼭 잘 전하여 모두 삼위와
선생님의 사랑에 푹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게 할게요!)
사랑은 <뇌>에서 온다.
삼위일체는 이렇게 창조해 주셨다.
그러나 뇌가 자체적으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컴퓨터도 자체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네가 키보드를 이용해서
문장이나 내용의 정보를
본체에 입력하면 모니터에 나타나듯이,
삼위께서 구원자를 통해서
네 뇌에 사랑을 입력하면
네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그 사랑이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아멘! 역시 사랑은
삼위일체로부터 오는 것이 맞습니다.
하체 사랑은 삼위일체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좋아하는 감정을 느낍니다. 이것은
삼위께서 뇌에 넣어 주신 것이 아닌데요.)
금방 네 컴퓨터에 무엇이 떴지?
(아! 컴퓨터를 켰는데 이제까지 한 번도
뜨지 않았던 자동 업그레이드 공지가
떴어요. 컴퓨터가 자체적으로 돌아가네요.)
그래, 내가 이 말을 전하고자 보여 주었다.
삼위일체께서 번성을 위한 사랑, 육적
사랑, 하체 사랑은 삼위일체가 말씀으로
뇌에 넣어 주지 않아도 스스로 생겨날 수
있게 창조해 두셨다.
‘번성을 위한 목적의 사랑’이다.
이것은 <뇌 사랑, 영 사랑>과는
하늘과 땅 차이의 사랑이다. 생존을 위해
뇌에서 발생하게 하는 사랑이다.
차원 높은 사랑은 오직 삼위가 뇌에 넣어
주는 사랑인데 <가장 차원 높은 사랑>은
구원자가 전하는 시대 말씀을 통해
넣어 주는 사랑이다. 곧 <진리>라 한다.
고로, 사랑이 늘 샘솟으려면 진리를
늘 네 뇌 속에 넣어야 한다.
<진리>라는 우물을 깊이 팔수록
사랑이 펑펑 샘솟는다.
삼위와 너는 <생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생각>이라는 통로로 네 사랑을
삼위께 보내면 삼위께서는 네게 사랑을
다시 보내 주신다. 그중에서도 구원자를
통해 보내는 말씀이 가장 강력한 최고의
사랑이다.
고로 시대 말씀을 깊이 보는 자는
사랑을 더 많이, 더 깊이, 더 뜨겁게
느낀다.
<생각>은 ‘주’다.
이 말의 뜻은 ‘너와 내가 생각으로
연결되듯 삼위와 네가 주로 인해 연결되고,
생각이 너를 움직이게 하듯 주가 너를
움직이게 하며, 네 육신의 주인은
생각이듯이 네 인생의 주인은 주이며,
생각이 생명의 근원이듯 주가 네 인생의
생명의 근원이다.’ 함이다.
(아멘, 선생님과 이렇게 대화하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요! 정말 기쁘고
행복해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생각하니
즉시 통하고 대화해요. 정말 놀라운
사랑의 역사예요!)
많은 자들이 이러한 사랑을 알지 못하고
영적 소경이 되어 외로워하며 산다.
섭리인들 중에서도 ‘뇌 사랑’을 모르니
나와 통하지 못해 곤고해하다가
사랑을 찾아 떠난다.
마치, 한평생 찾던 사람이 자기 집의 문을
두드리며 집 앞에 서 있는데 알지 못하니
빼꼼히 구멍으로 내다보다가 잡상인
대하듯 내친다.
한참 뒤에 외출하려고 문을 열어 보니
문 앞에 쪽지만 남아 있다.
‘네가 나를 그렇게도 찾기에
갖은 고생을 하며 너를 찾아왔건만
네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니
그 미련함에 가슴을 치며 떠난다.
평소에 나를 사랑함으로
나와 늘 통하는 자에게 간다.’
말로만 나를 찾는 자,
형식으로 나를 부르는 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를 찾는 자,
사랑 받기만을 원하면서
나를 부르는 자는 나와 통하지 않는다.
새벽에도 마찬가지다.
나와 대화하지 않고 나를 진실로 부르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기도하는 자,
졸기만 하는 자, 어찌 나와 통할 수
있겠느냐.
내 말이 무슨 말인지 깊이 깨달아야 한다.
하늘 역사를 만났어도 깨닫지 못하면 자기
발로 차 버린다. 사탄은 나와 통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최대 목적이다.
고로 말씀을 멀리하게 하고
말씀을 행하지 않게 하고
기도를 깊이 하지 못하게 만든다.
사탄의 방법은 나날이 교묘해지고 있다.
(맞아요! 선생님께서 제게 사탄을 만만히
보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정말 확실히 느끼고 있어요.
드러내며 방해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헷갈리게 해요.
그리고 그 생각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나오지를 못해요.
생각이 약해요.
<쳐다봐야 보이듯 생각해야 보인다>라는
말씀을 통해 생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말 놀라운 답을 가르쳐 주셔서
감사드려요.)
신랑과 신부의 관계에서
<사랑>을 잃으면 다 잃는다.
사탄은 오랜 세월 동안
하늘과 땅의 관계를 끊어 왔다.
사랑이 끊어지면 인간은
가장 빨리 타락한다.
이것을 알기에 사랑을 공격한다.
<사랑>은 삼위일체가 주는 생각에서
생기니 ‘생각’을 공격한다.
너와 내가 사랑의 대화를 이렇게 하면
강력한 사랑의 파장이 네게서 발생한다.
고로 사탄은 얼씬도 하지 못한다.
모기약을 켜 놓으면 모기가 물지 못하지?
그와 같다.
그러니 나를 늘 부르고 대화하며 사랑하는
것이 손도 대지 않고 사탄을 물리치는
방법인 것이다. 너무 쉽지 않으냐.
네가 나와 단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사랑한다면 너는 육계에서도 영계에서도
신랑을 차지한 가장 행복한 신부이다.
2015_0919 토 계시말씀.hwp7
나를 차지한 자는
삼위를 차지한 자이기 때문이다.
월명동은 지구 세상의 핵 지역이다.
지구가 창조될 때부터 삼위는 그리
정하시고 나를 태어나게 하시며
그곳에 역사를 펴셨다.
지형도 돌도 모두 한 사람을
증거하기 위해 창조하신 것이다.
이러한 핵, 월명동을 차지한 자가
바로 인류의 핵, 구원자다.
또한 구원자라는 핵을 차지한 자가
삼위의 핵인 사랑을 차지한 자다.
그러니 나를 본 자, 삼위를 본 것이요,
나를 만난 자, 삼위를 만난 것이요,
나를 차지한 자, 삼위를 차지한 것이다.
절대 이 사랑을 단 한순간도 뺏기지
말아라!
* 성령님의 말씀 *
사랑은 참으로 강력한 힘이다.
<월명동>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귀한
땅이지만 삼위와 구원자의 사연으로
만들어진 유일한 땅이므로
참으로 귀하다.
사연이 사랑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돌 하나, 나무 하나, 지형, 물 등
하나하나가 사랑의 표시다.
그러니 얼마나 귀하냐.
한 부부가 있다.
이 부부가 어떠한 사랑의 사연으로
부부가 되었는지 아무도 모르지?
뭐든지 알면 제대로 다시 보일 것이다.
월명동이 어떠한 사랑의 사연으로
만들어졌는지 모른다면
그 가치를 알지 못한다.
알면 달리 보일 것이다.
삼위와 구원자의 사연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삼위와 구원자의 사랑의 사연들로
이루어진 유일한 장소다.
너도 사랑의 사연으로
만들어진 인생이 아니냐.
그러니 참으로 귀하다.
그 사랑의 사연을 매일 만들어라.
그것이 휴거의 차원을
매일 높이는 방법이다.
매일 사랑의 사연 만들기다!
생각으로 매일 사랑을 연결하기다!
삼위와 구원자의 가치를 알기다!
매일 대화하기다!
더욱 사랑함으로 사탄을 물리치기다!
매 순간 생각 속에 삼위와 선생을 놓치지
않고 부르고 대화함으로
더 뜨겁게, 더 격렬히, 더 깊이 사랑하여
사탄을 모두 멸하고 날마다 사랑의 사연을
만드는 휴거 인생을 살기를 축복한다.
생각은 삼위께서
창조해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제발 이 생각을 다른 곳에 보내지 말고
삼위와 구원자에게 보내라고 전해 줘라.
많은 자들을 전도해서
나와 생각을 연결해 줘.
성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