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5.09.20 (일)
주일
- 선포일
- 2015.09.20 (일)
- 성경 본문
- 디모데전서 6장 17-19
첨부 파일
- PDF
20150920 주일.pdf
262.9 KB
2015_0920 주일(현재가 결국을 결정한다).hwp1
2015년 09월 20일 주일
<현재>가 <결국>을 결정한다
[ 디모데전서 6장 17-19절 ]
[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제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17 Command those who are rich in this
present world not to be arrogant nor to
put their hope in wealth, which is so
uncertain, but to put their hope in God,
who richly provides us with everything
for our enjoyment. 18 Command them
to do good, to be rich in good deeds,
and to be generous and willing to share.
19 In this way they will lay up treasure
for themselves as a firm foundation for
the coming age, so that they may take
hold of the life that is truly life.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 말씀의 주제는
‘<현재>가 <결국>을 결정한다.’입니다.
힘이 되고, 능력이 되고, 희망이 되는
말씀입니다.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현재>에 좋아도
<결국>에 안 좋으면,
앞날에 희망이 없습니다.
<현재의 삶>이 <결국>을 결정하고,
<결국>을 가지고 ‘영원한 삶’이
결정되어 그 삶이 영원히 지속됩니다.
고로 아무리 <현재>가 좋아도
<결국>이 안 좋으면 안 하는 것입니다.
인생들은 각자 자기가 살아온 대로,
자기가 행한 대로 <삶의 결국>이
결정됩니다. 하나님은
<그 삶의 결국>을 가지고
‘영혼의 결국’을 결정하십니다.
<현재> 고생돼도 <결국>이 좋아야
앞날에 희망이 있어서 기쁨으로 살게
됩니다. 아무리 <현재>가 좋아도
<결국>이 안 좋은데, 왜 거기에
자기 인생을 투자하며 삽니까?
<현재>만 생각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현재>만 생각하고 살면,
희망이 무엇입니까?
<현재>로 인해 <결국>이 결정되는데,
<현재> 편하다고 해서 그것에
자기 인생 허비하려 합니까?
사람들은 <현재>만 생각하고 사니,
이미 ‘희망 없는 삶’을 결정짓고
사는 꼴입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시기를
“<오늘>을 살되, <내일>을 생각하며
살아야 된다. <현재>를 살되,
<미래, 결국>을 생각하며 살아야 된다.
<현재>에도 네가 다 받고,
<결국>에도 네가 다 받아야 된다.
오늘의 삶, 현재의 삶도 네 것이고,
내일의 삶, 결국의 삶도 네 것이다.”
하셨습니다.
<현재>에 일단 편하고 좋다고 해서
편한 대로 좋은 대로만 살면,
<결국>에는 고통 속에서 허덕이며
살아야 됩니다. <현재>에 힘들어도
‘온전한 삶, 미래를 향한 삶’을 살면
<현재>에 힘들기는 하겠지만
그로 인해 <현재>에도 얻고 누리며
살고, 그 삶으로 인해 <결국>에도
얻고 누리며 기쁨으로 살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현재>에 참고 견디며 의롭게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결국>에 ‘희망의 삶,
기쁨의 삶’이 찾아옵니다!
<현재>에 자기중심의 삶, 자기에게
만족스런 삶, 자기 흥분의 삶을
살면서, 이성·물질·오락 등 세상 각종
썩은 문화를 보고 듣고 행하며
<현실주의의 삶>만 사는 자는 정녕코!
<미래>에 ‘희망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은 <삶의 법, 생활의 법>입니다.
<현재>에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고생되더라도 자기를 고치며
‘온전한 삶’을 지속하면, 그 삶이
‘앞날의 첩경’이 되어 모두 <자기>에게
‘축복’으로 돌아옵니다.
그리하여 <앞날>에는 반드시!
‘축복의 삶’을 살게 됩니다.
고생돼도 ‘생명길’로 가라.
- 했습니다.
이 말씀은 선생이 2007년도에
민족적으로 극심한 핍박을 받으면서,
섭리사의 어느 누구와도 통하지
못하고 갖은 고통을 겪었던 때에
<성령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그 극심한 환난과 핍박을
이길 힘이었으며, <휴거 역사의 문>을
활짝 열게 할 힘이었으며, 아무도 못
보는 때에 오직 성삼위를 생각하며
이길 수 있는 힘이었습니다.
<현재>에는 고생돼도 땅을 개간하고,
씨를 뿌리고, 계속 가꿔야 됩니다.
지속적으로 하면, 나무가 큽니다.
계속 가꾸면 꽃이 피고, 열매가 열려
점점 크게 됩니다. 그때, 열매가
완전히 크도록 가꾸기입니다.
열매가 완전히 크면,
그때는 거두어 먹으면서 <결국>
‘이상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만사가 이와 같이 이러합니다.
영생의 삶도 그러합니다.
<현실>에 육적으로 먹고 즐기기나
하면서 육의 것만 생각하며 육만을
위해 살고, 힘든 것은 피하고 편하게만
사는 삶은
<미래>를 위해 씨도 안 뿌리고,
개발도 안 하는 삶입니다.
그렇게 계속 가다가는
<결국>에는 ‘아수라장 삶’이 찾아오고
자기 앞에 ‘광야 사막으로 가서
사는 삶’이 닥치게 됩니다.
<현재>에
‘자기를 개발하여 만들기’입니다.
‘자기를 온전하게 고치는 삶’입니다.
<현재의 삶>으로 <결국>이 결정되고,
<결국>을 가지고 <영혼의 삶>이
결정되어 <영>이 ‘지옥’으로 가느냐
‘천국’으로 가느냐가 결정되고,
그 삶을 지속적으로 영원히 살게
됩니다. 그러니 <결국>을 위해서
<현실>에서 의를 쌓고, <현실>에
고생돼도 생명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하루를 살아도 새벽부터 뿌리고
가꾼 날은 거둘 것이 많습니다.
그렇지 않은 날은 거둘 것 없이
끝납니다. 고로 고생된다고만 하지
말고 일하면서 일 속에서 쉬고,
누리고, 기뻐하며 사는 것입니다.
2015_0920 주일(현재가 결국을 결정한다).hwp2
<현실주의>로만 살면서
먹고 즐기며 자기 좋은 대로 살고,
육적인 것에만 투자하며 사는 자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즐기면서 편하게
살고 싶다.’ 하게 됩니다. 사람은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더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요동하거나 흔들리지
말아요! 그때는 <주의 돛>을 달고
생각해야 됩니다. <주의 돛>을 달지
않은 자들은 그 파도에 밀려가서
세상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결국
육으로 끝나고 맙니다. <현재>에
힘들어도 100%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정녕코!! <미래의 삶>이
<영원한 삶, 기쁨의 삶, 거두는
삶>으로 결정되어 영원히 누리면서
기쁨으로 살게 됩니다. 이는 거짓이
없고 진실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령님과 성자가 보장하는 말씀입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현재 육의 기쁨과 만족>만
계산하고 사는 자는 <미래>가 없다.
왜 너는 계산하지 못하여
<미래>를 포기하고 <현실>만을 위해
사는 자를 따라가려고 하느냐.
무지하여 <미래의 삶>을 포기하고
<현재 육의 기쁨과 만족>만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을 절대 따라가지
말아라. 전능자 하나님이 너에게
지혜와 명철을 주시어 네가 올바른
것을 보도록 눈을 뜨게 하시니,
분별하고 제대로 판단하여라.”
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누구에게나 <미래>는 닥칩니다.
이 <미래>는 ‘현실의 삶’에서
결정됩니다. <주의 돛>을 자기 뇌와
영혼에 확실히 꽂아야 세상 파도에
휩쓸려 가지 않고 선과 악을 잘
분별하여 <현실의 삶>을 온전히
살게 됩니다. <현실>이 아무리
화려해도 <미래>가 없으니, 가다가
<미래>가 닥치면 허무하게 됩니다.
선생이 10~20대 때, 우리 마을에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었지만 <현실>에 속해
살았습니다. 먹고, 즐기고, 연애하고,
시집가고 장가가며 <현실의 자기
생활>에만 집중하며 살았습니다.
그들을 쳐다보니 삶이
참 편해 보였고 화려해 보였습니다.
그때 나는 그런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고생돼도 산속에 가서 기도하고
전적으로 ‘하나님과 성자의 뜻’을
위해서 내 몸을 하나님과 성자께
맡기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그때는
‘현실의 일’을 거의 하지 못했고,
내 삶을 거의 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말하기를
“왜 그렇게 사냐?젊은 시절 한때인데
그때 먹고 즐기고 연애해야지, 좋은 때
다 가면 무슨 소용이냐.” 했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습니다.
‘젊은 시절 한때이고 최고로 좋은
때이니, 이때 내 삶을 하나님과 성자께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내 몸을
맡기고 살아야 된다.’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20년 넘게
살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먹고 마시며, 화려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금식해서 굶은
사람이 밥 먹는 사람들을 보면 더
먹고 싶듯이, 그들의 삶이 돋보이고
화려해 보였습니다. 그들을 만나서
나와 비교하면 나는 그들과 비교가
안 되었고, 그들보다 표가 나게
잘난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현실의 것’이 있었고,
나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현실>을 보면서 내게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하며
한마디씩 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해
놓고 말하니, 그 말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있었습니다.
“나는 <미래>를 위해서 사니,
때가 되면 ‘화려한 세계’가 펼쳐진다.”
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현실의 것’이 안 보이니, 그들은
오히려 나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면서
“신앙이 잘못됐다. 성경 해석이
잘못됐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 하며
내게 훈수했습니다.
결국 세월은 흘렀습니다!
<현실>은 가고 <미래>가 찾아왔습니다!
선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국 ‘나의 세상’이 왔습니다!
‘화려한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과거에 현실만을 위해 살았던 자들의
결국의 삶과, 과거에 미래를 위해
살았던 나의 결국의 삶을 비교해
보세요.
<과거 당시의 현재의 삶>으로
‘결국’이 결정되었고, 그 <결국>을
가지고 ‘영혼의 삶’이 영원히
결정되었습니다! 육의 것도, 환경도,
육의 삶도, 영의 삶도, 모든 면에서 볼
때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은 비교가 안
됩니다.
<현실의 육의 삶>만 살았던 그들은
‘한 가정의 삶’을 살고 있고,
<미래>를 위해 살았던 나는 ‘민족과
세계와 천주를 위한 삶’을 살면서
그 차원의 비전과 역사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인생은 ‘두 번’ 살지 못합니다.
과거에 잘못 살았다고 해서
다시 살지 못합니다.
<과거의 자기 삶>으로
<현재의 삶>이 결정되고,
<현재의 자기 삶>으로
<미래의 삶>이 결정되어
결정된 대로 끝납니다.
되돌릴 수 없는 인생입니다.
내 삶은
‘하늘의 뜻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고로 <현재> 고생돼도 오직
‘생명길’로만 갔습니다.
나의 삶은 뼈저린 연단의
연속이었습니다. 무지한 자들로 인해
핍박과 환난을 받는 삶이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나를 손가락질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두고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잘못됐다 하며 내게
손가락질해도 하나님과 성자가
내게 주신 <시대 말씀>을 외치며
<휴거의 역사>를 위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로 인해 내 인생은
결정되었습니다. 어떻게요?
<육>은 인생 일생 동안 누리고,
<영혼>은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성삼위 앞에 최고 영광의
자리’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2015_0920 주일(현재가 결국을 결정한다).hwp3
<잠시 쉬었다가>
조은이도 그랬습니다. 어릴 때부터
기어이 선생을 따라다니며 진심으로
나를 도왔습니다.
<진정한 하늘의 역사>를 만났고
<주>를 만났으니, 지금 어릴 때 자기
인생을 아낌없이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를 따르고 주의
사랑을 받으며 미래에 섭리사에서
크게 되고 영원히 잘되도록 가르쳐
주는데도 자기 신세를 한탄했습니다.
“어리고 젊을 때는 한때인데, 이때
‘육의 것들’을 많이 얻고 즐기며
살아야지. 세상에 나가서 활동도 못
하고, 마음껏 놀지도 못하고, 연애도
못 해 보고, 하라는 대로, 말씀대로만
살아야 하니 답답하다. 어리고
젊을 때 꾸미고, 즐기고, 놀고 싶다.
원하는 것 다 해 보고 싶다. 그리고
30대가 되면 하늘 일 열심히 하면
되지.”하며,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같이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조은이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어릴 때 주를 만났으니 이 좋은 때에
미련 없이 후회 없이 주를 좇고
가장 좋은 젊은 날에 주를 위해서
살아야지, 나이 들고 나서 주를 위해
살면 무슨 소용이냐. 지금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을 때 이때 즉시 따라야
된다. 지금이 ‘나의 때’다. 지금 배우고
따라야 된다. 지금 주를 위해서 살아야
된다.” 했습니다.
<현실에 만족하는 길>을 가지 않고,
<미래를 위한 삶>을 결정하고 미련
없이 주를 따르며 행했습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선생도
처음에는 어떻게 하는지 그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성삼위와 보낸 자를 진정 사랑하니,
그 ‘사랑의 힘’이 머리가 되어 자신을
주관했고, 그 ‘사랑의 힘’이 손과 발이
되어 행했고, 그 ‘사랑의 힘’이 날개가
되어 날아다녔습니다. 그 하는 행위를
보니 조은이가 어떤 사람인지 판단할
수 있었고, 양인지 염소인지 분별할 수
있었고, 정말 하나님이 택한 자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성삼위가 이 시대에 줄 구원의
마패>는 ‘하나’입니다. 그것은 이미
선생이 조건을 세우고 받았습니다.
이제 <따르는 자들의 표상으로
성삼위가 섭리역사에 줄 표상의
마패>는 ‘하나’입니다.
결국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때에
따라 예정하고 택하시어, 절대 주를
따르며 그 말씀대로 행하며 살아온
‘치타’가 그 마패를 받게 되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월명동의 치타솔>은 조은이가
전도된 사연이 얽힌 ‘상징
소나무’입니다.
◎ 조은이에게 해당되는 ‘상징 돌’도
있습니다. <치타 돌>입니다. <사진>
원래 선생은 돌을 찾으면
‘주먹만 한 작은 돌’이라도
아무에게도 안 줍니다. 그런데
조은이에게 <치타 돌>을 주면서
“이 돌은 너를 상징하는 돌이다.”
했습니다. 그때 이 돌을 조은이에게 줄
때, 이 돌이 ‘마패’인 줄은 선생도,
조은이도, 아무도 몰랐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만
아셨습니다. 현재 이 돌은
<월명동 구상박물관>에 있습니다.
◎ 이 돌은 ‘독일’에서 주웠는데,
그 돌을 줍게 된 사연을 잠깐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이 돌을 주운 날은 조은이가 한국에서
온다고 하는 날이었습니다. 이날
선생은 제자들 몇 명과 함께 한
계곡에 갔습니다. 그리고 해가 지기
전까지 ‘형상이 있는 돌’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도 못
주웠습니다.
잠시 저녁 식사를 하고, 해가 져서
어두워지기 전에 계곡 물을 따라서
300m를 내려가면서 계속 수석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강한 물살에
돌들이 뒤덮여서 돌이 안 보였습니다.
이곳까지 오기 위해 경비도 쓰고,
밥도 사 먹었는데 하루 종일 일곱
명이 돌 하나를 못 주우니, 그때 같이
있었던 범석 목사는 밥 먹기가
미안하다고 하며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왜 하루 종일 수석을 찾았는데도 못
찾았을까 후에 알고 보니, 성자께서
하루 종일 못 줍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감동을 주어
<성자께서 인도하신 곳>으로 가도록
여건을 트신 것입니다.
300m보다 조금 더 내려가서 약
400m 지점까지 가니, 계곡이
넓어져서 물이 넓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선생 혼자서 돌을
찾으러 가니,그때 독일 남자 제자
한 명이 선생을 따라왔습니다.
‘아니, 일곱 명이 하루 종일 찾았는데
수석 하나를 못 줍다니 너무
억울하다.’ 하고 수석을 찾았습니다.
이곳은 물이 넓게 흘러가니 돌이
물 위로 반쯤 나와 있었습니다.
거기서 수석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곳은 거친 물살이 흘러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두 개의 돌을 찾았는데
만졌다가 도로 내려놨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에 발견한 돌을 만지다가
주웠습니다. 성자께서 이놈저놈 만지게
하다가 그중의 하나를 들게 하신
것입니다.
하루 종일 그 계곡의 골짜기를
돌아보면서 이곳저곳 다 찾아봤는데도
그 돌 ‘딱 하나’를 찾은 것입니다.
들어서 보니, 흐릿하게 ‘동물 형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돌이 물을 먹어서
흰색이 어둡게 보였습니다.
그 돌을 줍고 나니,
날이 어두워져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들어 보니, 돌이 너무 무거웠습니다.
500m 이상은 들고 계곡을 빠져
나가야 되는데, 무거워서 들고 가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때 선생 옆을
따라왔던 독일 남자 제자가
“제가 배낭에 넣고 짊어지고 갈게요.”
했습니다.
그때 늘 배낭을 가지고 다녔는데,
돌이 커서 배낭에 큰 돌이 꽉
찼습니다. 만일 그때 독일 제자가
“너무 무거워서 저도 못 들겠네요.”
했으면, 그냥 두고 왔을 것입니다.
성삼위는
‘그때마다 합당한 자’를 쓰고
역사하시듯, 그날은 ‘독일 제자’를
쓰고 그 돌을 들고 오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못 하는 것인데
다른 사람이 한다고 하면, 성삼위가
‘그 사람’을 쓰고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고 즉시 “해라!” 해야 됩니다.
선생에게 “그 돌이 꼭 필요하다.”라는
음성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감동도 없었습니다. 그 돌이
‘마패’가 될 줄은 정말로 몰랐습니다.
2015_0920 주일(현재가 결국을 결정한다).hwp4
그런데, 선생과 같이 있던 제자들이
선생과 함께 하루 종일 돌을 줍다가
그날 저녁에 조은이가 온다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독일 공항에 도착하는 시간이 밤이고,
여자 혼자라서 위험했습니다. 또
주소도, 전화번호도 아무것도
안 가르쳐 줘서 조은이는 선생만 믿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큰일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저녁 9시가 넘어서야
부랴부랴 움직였습니다.
그 독일 제자가
“그 돌을 제가 짊어지고 갈게요.” 하고
가지고 왔던 것처럼, 그날 조은이를
마중 나갈 때도 “제가 차를 몰고 가서
얼른 데리고 올게요.” 하며 데리고
왔습니다. 조은이가 곧 도착한다는
소식을 듣고 돌을 보니, 물이 말라서
‘형상’이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치타 두 마리 형상>이 보였는데,
하나는 ‘치타 새끼’ 같고, 하나는
‘치타가 뛰는 모습’이었습니다.
<치타>는
생긴 것이 예쁘고 귀엽고 늘씬합니다.
그리고 지상에서 최고로 빠른 강한
동물입니다.
<호랑이>는
귀엽지 않고 늘씬하지도 않습니다.
지상의 동물 중에서 <치타>가 가장
늘씬하고 가장 빠릅니다. 많은 돌들
중에서 이 <치타 돌>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물에 젖어서
‘형상’도 흐릿했습니다.
조은이도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마치 ‘물에 젖은 치타 형상 돌’
같았습니다.
그러다 그 성품과 행위가 점점
드러나면서 마치 돌이 마르니
‘치타 형상’이 뚜렷해지듯, 조은이의
성품과 행위를 보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예쁘게 잘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치타처럼 빠르게 행하는
것이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그 돌을 조은이에게 주면서
“너를 상징하는 돌이다.” 했는데,
정말 조은이를 상징하는 돌이
맞았습니다.
<수석>도 물에 젖으면 형상이
흐릿하게 보입니다. 말려야
형상이 또렷하게 보입니다.
<사람>도 처음에는
‘물에 젖은 수석’같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릅니다.
돌을 말리듯 그 사람의 성품과 행위가
드러나면, 그제야 그 사람을 제대로
알게 됩니다. 고로 각 교회의 모든
사람들을 귀히 봐야 됩니다.
선생이 기도해서 성삼위가 선물로
보내 준 생명이고, 목회자나
섭리인들이 기도해서 성삼위가
선물로 보내 준 생명입니다. 그러니
목회자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귀히 대해야 됩니다.
조은이는 주를 만나고 깨달았을 때,
그때를 <자기 때>로 삼고 귀히 여기며
<현실만을 위한 삶>을 택하지 않고
<미래를 위한 삶>을 택하여
일편단심으로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따르며 행했습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시기를
“<시간과 때>는 ‘자기에게 주어졌을 때
뺏기’다.” 하셨습니다. 주를 만났을
때가 ‘자기 때’입니다. 주를 만나고
깨달았을 때가 ‘자기가 클
시간’입니다. 그때 <미래>를 생각하고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행해야 됩니다.
<그때 현실의 삶>에 따라
‘결국’이 결정되고, 그 <결국>으로
인해 ‘영혼의 영원한 삶과 위치’가
결정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현실만을 위한 삶>은
‘꽃 같은 삶’입니다.
<미래를 위한 삶>은
‘열매 같은 삶’입니다.
이 두 삶이 비교가 되겠습니까?
비교하는 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꽃>은 결국 지게 되고 <열매>는
남아 거두어 먹게 됩니다. 인생이라면
누구든지 맞게 되는 <미래>입니다.
<현재>가 아무리 편하고 화려해도
<미래>가 없으면, 인생을 실패한
것이며 잘못 산 것입니다.
<육의 삶>이 아무리 편하고 화려해도
<미래 영의 삶>을 보장받지 못하면,
인생 잘못 산 것입니다.
한 번 결정하고 살면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인생 삶’입니다.
<현실>에서 ‘시대 말씀’을 듣고 믿고
‘구원자’를 따라 행하여 <결국>을
위해서 살기를 축원합니다!
그 삶이 조금 힘들고 고돼도,
더 행할 것은 많지만 당장은 내세울
것이 없어도, 그 <결국>은 기쁨과
희망이며 영원합니다.
후에 만인 앞에
‘자기 삶’을 내세우며,
모두 우러러보게 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 <결국>으로
‘영원한 삶’이 결정되어
영원히 누리며 살게 됩니다.
이 말은 여러분을 이 역사로
불러오신 하나님의 말씀이며,
여러분을 휴거시켜 영원한 사랑을
주신 성자의 말씀이며, 영원히
진실하셔서 거역할 수 없는
성령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성령님, 성자의 이름으로
축원하니, 모두 <현실의 섭리 인생,
현재의 신부 인생, 현재의 휴거
인생>을 그 어떤 것에도 뺏기지 말고,
<육의 것>만 누리며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저들의 말을 따라가지
말고, “네가 가는 길은 잘못됐다.”
하며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말하는
저 악평자들의 말에 요동하지 말고,
절대 하나님이 세우시고 창조 목적을
이루신 <성약 신부 역사, 휴거 역사>를
벗어나지 말고, 섭리의 시대가 왔고,
우리의 시대가 왔고, 성삼위는 우리
편이며 우리의 영원한 희망과
사랑이시니,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1000년사 하나님의 위대한 뜻을
이루는 자들이 되기 바랍니다.
<미래의 소망과 희망>을 위해서 살기
바랍니다. 그 노력과 수고는 정녕코
얻는 노력과 수고입니다.
<미래의 소망과 희망>을 위해서
땀 흘리고 수고하는 자신에게 스스로
박수를 쳐 주며, 형제들끼리 서로
격려하며 즐겁게 섭리 길을 가기
바랍니다.
<미래의 소망과 희망>을 위해서
살아가니, 그로 인해 힘과 능력과
기쁨이 솟아납니다.
2015_0920 주일(현재가 결국을 결정한다).hwp5
그 힘으로 앞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돛’을 달고,
핵심인 ‘사랑’을 뺏기지 말고,
휴거 700선으로 도전하면서
주와 같이 끝까지입니다.
<말씀 마무리>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섭리사는 <과거>에 ‘미래’를 위해
살았기에 결국 얻었습니다.
(위대한 <자연성전>을 얻었다.
자연스럽게 성삼위의 사연을 들을 수
있는 곳 하늘과의 사연이 쌓이는 곳
만물을 통해 성삼위와 교통할 수 있는
곳 마음껏 먹고, 놀고, 산행하고,
수영하고, 마음 놓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말씀을 듣고 은혜와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곳 1000년사에 빛날
위대한 자연성전이다.
인류의 소망이며,
하나님 최고의 소원인
<휴거>를 얻었다. 그로 인해
<인간으로 태어난 창조 목적>을
이루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가치>를 얻었다. 그로 인해
<최고 영광의 자리인 천국 황금성>을
얻었다. 영원히 <삼위의 사랑의
대상체로서 사는 사랑의 삶>을 얻었다.
육적인 것, 영적인 것 모두 얻었다.)
과정 중에 언제 환난·핍박·어려움이
없었던 적이 있었습니까?
좋을 때는 누구나 다 잘할 수 있지요.
힘들 때도, 환난 때도, 어려울 때도
행해서 얻은 섭리역사이며,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지켜 온
섭리역사이며, 정녕코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룬 섭리역사입니다.
이제 구원자가 행한 것으로,
그동안 우리가 행한 것으로 더 창대한
역사를 기대해 보기 바랍니다.
구경만 하는 구경꾼이 되지 말고,
신부로서 주와 함께 역사를 뛰고
달리는 섭리의 사명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섭리사는 <과거>에 ‘미래’를 위해
살았기에 결국 얻었습니다 지금
<현재>에 또 ‘미래의 더 큰 것’을
위해서 살아가기 바랍니다.
유일하시고 절대자이신 하나님,
성령님, 성자께서 섭리사를
축복하시고,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환난 풍파 오고 가도 영원한
섭리역사이며, 믿었던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섭리역사이며,
하나님의 뜻인 것은 뭐든지
이루어지는 섭리역사이며,
창조 목적을 이루어 승리한
섭리역사이며, 시대를 다스리며
1000년사를 힘 있게 펼칠 수 있는
시대 말씀이 있기에 갈수록
불타오르는 섭리역사이며,
우리의 영원한 희망이신 성삼위가
우리 편이며 우리의 돛이니
어떤 세상 파도에도 밀리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는 힘을 가진
섭리역사입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