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15.09.22 (화)
화 계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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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계시말씀
♥ 09월 22일 화요일 ♥
끝을 잘 맺어라.
마무리를 잘하여라.
작성일 : 2015. 9. 11. AM 1:00~
작성자 : 주여미마
(새벽에 깊은 계시 받기를 간구할 때 받은
말씀입니다.)
* 성령님의 말씀 *
마무리를 잘하여라.
오늘은 끝을 맺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여러 가지를 이야기할 것이니
잘 연관 지어 들어라.
네 생활 속에 잘된 일과 안된 일을 보자.
차이가 무엇이냐?
잘된 일은 끝을 잘 맺었고 안된 일은
끝을 잘 맺지 못한 것이 차이이다.
끝을 맺어야 잘된 일이요, 완성된 일이다.
너희는 마지막 역사 성약의 때에 살고
있다. 이때에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
곧 끝을 잘 맺어야 한다.
사람은 늘 끝을 맺을 때,
마무리를 할 때가 온다.
그때 끝을 잘 맺어야, 마무리를 잘해야
무슨 일이든지 성공한 일이 된다.
처음에 잘해도 끝을
잘 맺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도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휴거로
끝을 잘 맺으니 승리한 역사가 되었다.
시작도 중요하나 끝이 매우 중요하다.
너희가 맺어야 할 끝에 대해 말해 줄게.
첫째, 당장 너희 앞에 있는
선교하는 해의 끝을 잘 맺어야 한다.
선교하겠다는 너희들의 결심은 무성하지만
결실인 생명이 없으면 끝을 잘 맺지 못한
것이요, 마무리를 잘 못 한 것이다.
선교하는 해의 끝, 생명을 남겨라.
둘째, 휴거의 끝을 잘 맺어라.
휴거의 차원은
700선에서 끝이 아니요, 천층만층이다.
한 번에 10층을 올라가는 것이
불가능하듯 휴거의 차원도 그러하다.
너희가 바로 300선으로 올라온 것이
아니라 100선, 200선을 거쳐 올라왔듯
700선도, 그 이상의 휴거 차원도
그렇게 올라가는 것이다.
지금의 휴거 차원이 끝이 아니니
부지런히 노력해서 계속해서 차원을 높여
마지막 때에 끝을 잘 맺어야 한다.
도중에 죄를 짓고 포기하므로
끝을 보지 못하면 안 된다.
끝까지 해야 끝을 맺게 된다.
셋째, 당세의 끝을 잘 맺어라.
당세는 선생이 살아 있는 기간을 의미한다.
당세에 이 땅에 구원자가 왔는지도 모르게
흐지부지 끝나서야 되겠느냐?
너희가 하기에 달려 있다.
이 땅에 구원자에 대한 이야기로
들썩들썩하고 수억의 생명들이
밀려오는 끝을 봐야 하지 않겠느냐?
당세의 끝을 아쉽게 맺지 말아라.
기억해라. 너희가 하는 만큼 된다.
넷째, 너희 사명의 끝을 잘 맺어라.
너희의 최종 사명은
시대 복음을 외치는 사도이다. 사명을 잊고
첫 마음을 잊어 사명의 끝을 제대로 맺지
못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섭리사 너희 사명은 시대 사도이니
사도로서 삶을 살면서 사명의 끝을 잘
맺어라. 행하는 자는 끝을 잘 맺을 것이요,
행하지 않는 자는 끝을 보지 못하게
되리라.
다섯째, 생각의 끝을 잘 맺어라.
네 생각의 시작은 말씀으로 시작하였으나
끝이 세상의 타락된 문화로 끝난다면 무슨
소용이냐? 생각의 시작도 잘 시작해야
하지만 끝도 잘 맺어야 한다.
생각은 금방 흐른다. 옳은 생각을 하다가도
금세 옳지 못한 생각으로 흘러간다.
고로 생각의 끝을 잘 맺어라.
생각의 마무리를 잘하여라.
여섯째, 사랑의 끝을 잘 맺어라.
사랑의 끝이 세상 사랑이 되지 않게
조심하여라. 하늘 사랑으로 사랑의 눈을
뜨게 하니 세상의 사랑, 곧 사망의
사랑으로 끝을 맺는 미련한 자들이 많다.
네 사랑의 끝이 사망이 되지 않게
더욱 관리하고 신경 써라.
특히 사랑에는 안심하고
넋 놓고 있을 자가 하나도 없다.
끝까지 긴장하며 하늘 앞에
집중하여 사랑의 끝을 잘 맺어라.
끝을 잘 맺어야
너의 시작이 보람이 있고 의미가 있다.
마무리를 잘하여라. 끝까지 꾸준히 해야
끝을 잘 맺을 수 있으며 마무리를
잘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라.
선생도 끝까지 하니
섭리역사 휴거라는 끝을 보았다.
선생의 정신으로 끝까지 행하여
끝을 잘 맺고 마무리를 잘해 영원한 것을
얻기를 진심으로 축원한다.
사랑한다.
사랑으로 말씀의 끝을 맺은 성령이다.
♥ 09월 22일 화요일 ♥
최고의 사연! 사연은 말씀이다
작성일 : 2015. 8. 27. AM 01:40
작성자 : 장정희
(낙타바위 옆에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데, 지난날 기도하며 하나님과
사연을 나눴던 기억이 떠올라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월명동은 정말 사연의 보석 같은 곳이며
삼위와의 사연이 있으니 너무너무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도 그러한데 하물며 선생님은
어떠하시랴 하는 생각이 들었고
성삼위와 선생님과의 사연이 월명동을
넘어 세계까지 천주까지 뻗어 가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계신 선생님께 너무 죄송했습니다.
그래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 오신 삼위일체
성령님께 부족하지만 저를 통해 이 시간
선생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사랑의 사연 말씀을 부탁드리니,
눈부시도록 순백의 빛이 나는
다이아몬드 드레스를 입고
순백의 다이아몬드 왕관을 쓰시고
이슬을 머금은 청초한 백합화
한 송이를 들고 오신 성령님께서
그 백합화를 저에게 주시며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령님의 말씀*
사랑아,
네 사랑의 향기를 맡고 나 성령이 왔다.
그 향기는 신부의 향기가 아니더냐.
백합화는 신부 곧 휴거된 신부를 상징한다.
사랑의 신부다. 그리고 백합화는 선생이다.
온 세상에 네 선생처럼 신부의 향기를
아름답게 풍기는 자가 없구나.
월명동은 선생의 사랑의 향기가 천국
삼위가 계신 곳까지 끊임없이 풍겨 온단다.
2015_0922 화 계시말씀.hwp2
지금 선생이 있는 그곳은
육으로 볼 땐 낮고도 낮은 곳이지만
영과 혼으로 볼 땐 절대 그렇지 않아.
그곳은 성지야.
신부가 거한 궁궐 중의 최고의 궁궐,
백합화 향내 진한 삼위가 머물 수밖에
없는 사랑의 성전이야.
이 시대 진정한 백합화, 최고의 신부,
선생에 대해 오늘도 증거하기 위해
네게 왔으니 단단히 기록하여라.
(아멘!)
사연에 대해 물었지?
사연은 사랑이라 배웠지.
사연에 대해 오늘 깊이 얘기하마.
성삼위와의 사연, 곧
성삼위와 사랑의 사연이 있는 자,
이는 성삼위의 사랑의
인침을 받은 자로서 말씀을 받은 자다.
사연은 사랑이며 말씀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1장의 사연을 보아라.
(요한복음 11장을 읽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은 나사로를 살린 예수의
사연이다. 신약은 예수의 사연 이야기다.
11장에서 핵심 구절은 25절에서
26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가 나사로를 살린 가장 큰 목적이다.
바로 예수를 신약의 메시아로 믿으면
산다는 것이다. 근본은 영이요,
육과 영의 구원까지 이룬다는 것이니
고로 예수는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라 말하였다.
육이 구원받으면 영도 구원받는다.
육이 구원받는다고 하여 육이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육의 구원은 영이 원하는
대로 육이 말씀을 행하여 구원자를 믿고
사랑하면 영의 구원을 이루게 한다는
것이다. 이를 보고 육이 구원받았다 하는
것이다.
사연은 말씀이다.
삼위는 항상 말씀으로 역사한다.
그래서 삼위의 말씀을 전할 자가 필요하니
그가 시대 구원자이지 않느냐.
신약 때는 예수였으니
신약은 그의 사연, 삼위의 사연이다.
예수를 통해 삼위께서 나사로뿐만 아니라
수많은 자들의 영을 살리고 때로는 육도
살리는 기적을 보였으니
이는 모두 예수가 신약의 메시아,
그리스도임을 증거함이었다.
곧 사람은 시대 구원자와의 사연을 통해
삼위와의 사연을 이루기 때문이다.
구원자와의 사연은 삼위와의 사연이다.
나사로의 동생들인 마르다와 마리아는
모두 예수와의 사랑과 말씀의 사연이 있는
여인들이었다. 나사로도 마찬가지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다.
성약 구원자와 삼위와의 사랑의 사연,
성약 구원자와 너희가 맺은 수많은 사연,
그것이 바로 너희가 들었던
그리고 지금도 듣고 있는 성약말씀이다.
예수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 하였지만
선생은 나는 휴거요, 생명이라 한다.
이는 신약 구원자와 성약 구원자의 차원
때문이다.
예수는 종급에서 아들급으로
구원을 이루는 사명자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 하였다. 그러나 선생은 부활의
할아버지 격인 휴거를 이루는 사명자다.
1차 부활-종에서 아들(부활),
2차 부활-아들에서 신부(부활의 아버지),
3차 부활-신부에서 휴거된 신부
(부활의 할아버지)
선생은 삼위의 창조 목적인
영 휴거의 역사를 완성시킨
사명자이기에 휴거 자체가 된다.
고로 선생 당세 기간,
선생을 믿고 사랑하면 영원히
죽지 않는 영의 휴거를 이룬다.
이러한 창조 목적의 온전한 결실체인
영 휴거를 너희가 얻었으니 휴거를
얻게 한 선생에게 너희는 무어라
고백해야겠느냐.
(요한복음 11장 27절을 보았습니다.)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요한복음 11장 27절의 마르다의 대답은
신약의 메시아 예수를 온전히 깨달은
자들의 대답이다. 예수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서 듣고자 했던 답이다.
마르다의 고백과 마리아의 사랑의 사연을
듣고 예수는 나사로를 살려 주었다.
그리하여 예수는 나사로의 영도 육도
부활시켰다. 이는 이 시대도 마찬가지다.
휴거된 자들은 선생을
이 시대 구원자로 절대 믿는 자들이다.
곧 너희들은 요한복음 11장 27절의
고백을 진심으로 영과 혼과 육으로
이 시대 선생에게 고백하였기에
휴거된 것이다. 이 고백을 드리지 못한
자는 절대 휴거되지 못하며 시대 구원도
이루지 못한다.
“나는 휴거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는 선생이 선생이 되기까지의
성삼위와 선생과의 최고의 사연이며
하늘의 최고의 사연이다. 또한 짝으로
사연이 존재하니 땅의 최고의 사연이다.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이 땅의 최고의 사연은
바로 너희가 구원자에게
구원자의 사명을 고백한 사연이다.
시대 하와도 선생에게
이 땅의 최고의 사연의 고백을,
삶으로 선생에게 드렸기에
시대 하와가 되었다.
너희도 그 최고의 고백을 하였기에
휴거되었고 복직된 하와가 되어
700선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최고의 사연, 최고의 고백, 최고의 말씀,
최고의 사랑이 바로 시대 구원자를 깨닫는
사연이다. 이는 시대 구원자도 그러하고
시대 구원자의 짝인 너희도 그러한 것이다.
선생은 월명동 자연성전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 모든 곳에서
삼위와의 사랑의 사연, 진리의 사연을 통해
자신의 사명을 깨달았다.
그래서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휴거의 역사를 시작했고 휴거를 완성했다.
그리하여 월명동은 알파와 오메가,
성삼위와 구원자를 상징하는 사연의 성전,
사랑의 성전, 진리의 성전이다.
고로 곳곳에 사연이 있다.
모두 하늘 최고의 사연이 있는 곳이니
육계의 에덴동산,
지상의 에덴동산,
성약의 에덴동산이다.
또한 지금 선생이 거한 그곳에서
너희의 휴거를 이룬 말씀이 쏟아져
나왔으니 그곳도 최고의 사연 성전이다.
선생이 밟는, 선생이 거하는
모든 곳이 사연 성전이다.
선생이 밟는, 선생이 거하는 곳에선
삼위의 말씀이 선포되기 때문이니
그리하여 말씀이 사연인 것이다.
특별히 나 성령이
요한복음 11장 나사로와 예수의 사연을
통해 사연에 대해 얘기한 목적이 있으니
이것이다.
(요한복음 11장 45~53절)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으나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알리니라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그 중의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2015_0922 화 계시말씀.hwp3
이는 선생이 그곳에 있는 것이
이 시대 최고의 사연임을 말해 준다.
이 최고의 사연이 펼쳐지고 있는
지금의 선생을 너희는 절대 잊어선 안
된다. 그곳에 선생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선생이 그곳에 있는
근본을 알라는 말이다.
나사로를 살린 예수의 사연을 통해 많은
자들이 그 당시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들은 예수를 단순히 나사로를 살린
기적을 일으킨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예수를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
그리스도로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자들이 많아져 그 좁은 유대 땅에
그의 이름이 널리 퍼졌다는 것이다.
이 사연을 접한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그리고 사탄의 하수인이 되었으니
시대 메시아를 죽이기로 한 것이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다.
선생을 그곳에 있게 만든 자들은
바로 땅의 최고의 사연인
선생의 사명을 깨닫고 고백한 너희들의
사연이 이 좁은 한국 땅에 널리 퍼지니
그들이 겁을 먹고 그렇게 모의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끝내 십자가 구원을
이루었듯 선생도 끝내 이 시대 휴거
구원을 이루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가 구원을 이루었듯
그곳에서 선생이 휴거를 이룬 것이다.
이것이 땅과 하늘의 최고의 사연이다.
고로 너희는 이것을 잊어선 절대 안 된다.
선생은 지금도 최고의 사연을 이루고 있다.
그의 인생 자체가 최고의 사연들이다.
왜냐하면 그는 구원과 휴거의 사명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신부들아,
나 성령이 엄명하니 어서
선생을 증거하여 시대가 땅의
최고의 사연을 고백하게 하여라.
최고의 사연들이 땅에 넘치게 하여라.
이것만이 휴거란 최고의 사연을 이룬
너희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니 너희는 지금 새롭게 차원을 높여
이 시대 구원자께 고백하라.
최고의 사연을 고백하는 자와 이루는
자에게 폭포수 같은 성령이 떨어지리라.
아멘!
샬롬.
♥ 09월 22일 화요일 ♥
상대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의 행함을 알아줌으로
마음을 세세하게 헤아리고,
‘말’로 그의 행함을 ‘인정’해
주는 자가 되어라!
작성일: 2015. 7. 15. AM 01:03-01:35
작성자: 주수신
(하늘의 일을 한 후 그 일에 대해서
수고했다고 말해 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말이 성령님과 선생님의 말로 느껴져
마음이 스르르 녹았습니다. 일을 한 것에
대한 기쁨과 보람이 느껴졌고, 앞으로
더 행할 힘을 받게 되었으며,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 한마디가 왜 그리도 제 마음에
와 닿았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또한 이같이, 하늘 앞에 반응이
왜 중요한지가 깨달아졌습니다.
이 같은 경험을 하고 나니, 저도 삼위와
선생님께 더욱 관심을 가지고 저를 위해
행해 주신 것을 세세히 알아드리며
말로 인정해 드림으로 힘을 드려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성령님의 말씀*
‘행함’을 알아줌으로 그 ‘마음’까지도
알아주는 것이 그리도 크다! 육을 가진
너희들 사이에도 말 한마디로 마음을
알아줄 수 있지 않느냐.
상대가 네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네 심정에 맞는 말을 하지 않을 때
그리도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다.
너희들이 행한 것을 두고도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로 마음이
녹아지는데, 너희를 위해 늘 관심을 쏟고
사랑을 담아 대해 주는 삼위와 선생은
오죽하겠느냐.
조그마한 일을 행하고
알아주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너희에게 있어서 이 지구덩이만큼 무겁고
큰 일들을 한쪽 어깨에 둘러메고 전적으로
마음도, 생각도, 몸도 너희에게 쏟는
성삼위와 선생이다.
사랑아,
상대를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상대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해 주었는지
알아야 한다.
너를 위해서 행해 준 것이 시간적으로
보았을 때에나 금전적으로 보았을 때에나
그리 크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그 귀한 시간을 너에게 내어 주고
마음과 생각을 쏟아 너와 있어 준 것이
그리도 큰 것이다!
아무것도 해 주지 않고
함께 있어 주기만 해도
생애 단 한 번밖에는 없는
그때 그 시간을 너에게 준 것이니
그리도 귀한 일일진대, 너와 함께하고
너에게 ‘무언가’를 해 주었다면
그 얼마나 귀한 것이냐!
네가 보았을 때,
너를 위해 큰 것을 해 주었든,
작은 것을 해 주었든, 늘 너는 사람들과
삼위의 수고를 알아주는 자가 되어라!
너를 헤아려 주고, 다른 자들이
너에게 준 것이 그 얼마나 큰 것인지를
날마다 되새기며 그에 대해서
<‘감사’를 표하는 자>가 되어라!
삼위가 너에게 어떠한 것을 해 주었는지를
날마다 헤아리면 하늘을 향한 너의
‘감사의 고백’이 끝없이 나올 것이며,
‘감사’를 표함으로써 네가 받은 것들이
무엇인지 늘 다시 인식함으로 네가 너무도
풍족히 받은 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너를 향한 삼위와 구원자의 사랑도
날마다 생각해 보아라!
네가 접할 수 있는 그 모든 것들이
‘너를 향한 하늘의 사랑’이 ‘실체’를 이룬
것이니, 그 하나하나를 헤아릴 때마다
너를 향한 성삼위와 구원자의 사랑을
새로이 느끼고, 끝없이 하늘의 사랑을
느끼며 그 사랑에 푹 빠져 살게 될
것이다.
네가 그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서 네가 삼위와
구원자 앞에 있어서 그 얼마나 큰
자인지를 충격적으로 깨닫고 삼위와
구원자가 너와의 사랑을 너무도 크게 보고
그 사랑을 지키고자 날로 몸부림치듯
‘너’ 또한 그런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남이 너에게 무엇을 해 주었는지
헤아리는 것은 결국, ‘너의 가치’를
재인식하게 되는 길이다!
남을 헤아리고,
그의 수고를 ‘인정’하고,
그에 대한 ‘감사의 표현’을 함은
결국, ‘네 가치’를 날로 높이는 길이다!
네 스스로를 보았을 때에도 그러하고,
다른 자들을 통해 너를 보았을 때에도
그러하다!
사람에게 그러하듯,
하늘 앞에도 그러한 것이다!
‘삼위와 구원자를 헤아림’으로
하늘 앞에 너의 가치가 커져 가고,
네 앞에 삼위와 구원자의 가치가
커져 간다!
형제들끼리도 ‘수고’를 알아주어라.
내가 너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도록 해 주어라.
수고를 헤아리고 알아주는 말 한마디로
죽어가는 자도 살리고, 힘이 빠진
자에게도 큰 힘이 솟아나게 한다!
2015_0922 화 계시말씀.hwp4
상대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를 ‘알아주는 말 한마디’로
‘시험에 든 자’도 구하고
‘섭리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된 자’도
그 마음을 돌리게 만들 수 있다!
너희가 행한 대로 하늘은 늘 갚아 주나,
너희 모두가 육을 지녔기 때문에
육으로도 알아주기를 원하는 마음은
누구나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사람이 아니라
삼위와 구원자가 자신을 알아주길
원하는 마음이 더 큰 자는
사람이 알아주건, 알아주지 않건
삼위와 구원자만 알아주면 된다.
그렇지 못한 자는 사람이 몰라주니 힘이
빠지고, 자신의 수고를 몰라 인정해 주지
않는다며 시험에 들고, 반감을 가지기도
한다.
사랑아,
너의 수고를 나 성령이 알면 되지 않느냐.
너는 ‘사람’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말고,
<삼위와 구원자> 앞에 인정받으려고
하여라! 그런 관을 가진다면,
네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행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나 성령을 ‘사랑함’으로 행하고,
나와 ‘같은 뜻’을 가지고 행하니,
내 어찌 너를 몰라볼 수 있겠느냐!
내가 인정하니, 이같이 너와 같이
살아 주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늘 신부들아!
너희 모두는, 너희의 행함을 사람이
알아주길 바라지 말고 오직 삼위와
구원자를 보고 행하여라!
네 자신을 놓고는 그리 행하되,
다른 자들은 먼저 헤아리며,
그들의 수고를 알아주고,
그의 행함을 인정하는 말을 단 한마디라도
건넴으로 그들의 마음을 알아주어라!
행한 자의 ‘행함’을 ‘인정’해 주어라!
나 성령이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을
네 입을 통해서 전할 수 있도록 해 다오.
네가 행치 못한 것을 수고해 행함으로
삼위와 구원자의 일을 해 주었으니,
그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그가 삼위와 구원자의 마음을 알아주고
심정에 맞게 행함으로 하늘의 속을
시원하게 풀어 주니 같은 편인 네
입장에서 보았을 때 너무도 좋은 일이
아니냐.
고마운 상황에서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수고한 상황에서 수고했다고 이야기하고,
좋은 상황에서 좋다고 말로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사람 사이에는 ‘표현’이 그리도 중하다!
하늘과 인간 사이에도 ‘표현’이
그리도 중하다!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
상대도 모르고, 너도 상대를 잘 모른다.
‘표현함’으로 ‘상대를 알아주는 것’이다!
‘표현함’으로 ‘행함을 알아주는 것’이다.
‘표현함’으로 ‘삼위와 주의 행함을
알아주는 것’이다!
나 성령이 너를 알아주면 그리도 좋지
않으냐. 선생이 네 행함을 알고 인정해
주면 그리도 좋지 않으냐.
너희가 알아줌을 받고 인정을 받고자
열심히 행한 것은 아니더라도
네가 잘한 것을 잘했다고 이야기해 주고
네가 행한 것을 네가 행했다 인정해 주면
그리도 좋은 것이다!
‘행함’을 알아줌으로써
그 마음까지도 알아주었기 때문이다.
알아주는 그 말 한마디가
‘앞으로 더욱 전진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더 차원 높여 행할 수 있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새 힘을 받고 새로이 행할
발판’이 되기도 한다!
바로,
<말의 힘>이다!
<헤아림의 힘>이다!
<인정의 힘>이다!
네 말로 삼위도, 구원자도,
하늘의 육이 된 자들도,
형제들도, 생명들도 ‘행할 수 있도록’
이끌 수 있으니 그 <말의 힘>을 알고,
<말의 빛>을 발하여라!
네 입으로 ‘죄’를 짓지 말고,
그 입으로 ‘의’를 쌓아 가라!
하늘 신랑과 형제들의 행함을 알아주어서
그 마음을 헤아려 줌으로 더욱 가까워지고,
더욱 새로이 행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자가
되어라!
사랑해! 이것이 바로
하나님도, 나 성령도, 성자도 그리고 주도
‘말의 힘’으로 너희를 움직이는 방법이다!
너희가 더욱 앞으로 전진하도록 만드는
방법이다!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생명을 향한 ‘사랑’에서 시작되니,
삼위와 구원자는 ‘사랑’으로 말을 하고
그 말로 너희를 움직인다 함이다!
사랑한다!
너희의 행함을 알아줌으로
네 마음까지도 세세하게 헤아림으로
‘말’로 너희에게 ‘힘’을 주고
너희를 새로운 곳으로 향하게
이끄는 사랑의 신, 나 성령이다.
안녕!
♥ 09월 22일 화요일 ♥
신의 삶이란
작성일 : 2015. 9. 4. PM 09:00
작성자 : 주금빛
(금요기도회 때 생각을 깊이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왜 선생님을 깨닫지 못할까?
왜 사람들이 또 낙심하고 느슨해질까?’
하고 생각했을 때 성령님께서
‘섭리인들이 깨달았다고 하나
진정 깊이 깨닫지 못하였다.’라고
감동을 주셨고 그때 성령님께서
오셔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령님의 말씀*
하루만 신같이 살면 되겠느냐.
휴거 300선이 되었다고 해서 나태해져
있다가 300선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내려가는 것도 모르는 채
‘내가 왜 전보다 신같이 행하지 않지?
내가 왜 예전보다 더 힘들지?
내가 왜 보낸 자를 깨닫지 못하지?’ 한다.
그것은 바로 네가 예전의 점수보다 더
내려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당연히 본인이 휴거되지 않은 것
같고 이것이 바로 신같이 사는 삶인가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멘. 정말 맞습니다!
제가 보니 정말 300선에 올라갔으나
나태해져서 예전으로 돌아가다가 휴거선이
점점 내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니 내가 왜 이러지 하며 깨닫지
못하고 차원을 높이지 못합니다.)
하루만 신같이 행하지 말고
하루만 사랑하지 말고
하루만 생각하지 말고
하루만 기도하지 말고
하루만 깨달으려 하지 말고
하루만 하늘과 대화하려 하지 말아라.
하루 아니면 며칠만
신같이 살려고 하였느냐.
매일같이 그러해야 한다.
하루만 신같이 안 행하면
휴거선이 뚝뚝 떨어진다.
하루만 신같이 안 행하면
성삼위와 선생과의 거리가 멀어진다.
네가 왜 힘이 드느냐.
너의 예전의 생활과 수준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예전의 차원으로 갔으니
다시 올라가야 되는 것이다.
다시 300선에 올라와야 하니 힘들고,
300선 전이니 다시 힘들어진 것이다.
또 다시 올라가야 하니 300선 후의
삶처럼 살지 않는 것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네가 300선이 되었다 해서 휴거의 끈을
잠시 놓고 있었더니 점점 밑으로 떨어진
것이다.
2015_0922 화 계시말씀.hwp5
빨리 신같이 살던 너의 삶으로,
다시 신의 삶으로 돌이켜라.
속히 차원을 높여라.
왜 다시 구시대 삶으로 돌아가려 하느냐.
늘 신 같은 삶을 살아야 해.
왜 생각을 신같이 하라고 하였느냐.
바로 너의 생각이 점점 세상적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신 같은 생각을 늘 하고 살아야
다시는 휴거선이 내려가지 않고
계속해서 휴거선이 높아져
700선이 가능케 되기 때문이다.
왜 주의 돛을 달라고 하였느냐.
바로 생각에 주의 돛을 꽂지 않으면
다시 세상의 생각으로 돌아가 버려.
다시는 못 돌아올 수도 있기에
휴거를 박탈당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내가 오늘 ‘휴거 실천성’에 데려가 줄게.
(제 영에게 파장을 맞췄고
성령님과 함께 ‘휴거 실천성’에 갔습니다.
저의 옷을 보니 아주 연한 황금색으로
되어 차분하게 퍼져서 황금 보석으로
꾸며져 있었고 실크 느낌의 아주 부드러운
천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습니다.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 있었는데
왕관 밑으로 다이아몬드 줄이 늘어져
이어져 있었고 끝에는 물방울 모양의
다이아몬드가 붙어 있었습니다.
아주 예뻤습니다. 성령님께서도
저와 비슷한 드레스를 입고 계셨고
오늘은 머리가 차분하지 않고 풍성하였고
오렌지 빛이 나는 금발을 하고 계셨습니다.
정말 따스하고 온화했습니다.)
저의 눈앞에 있는 성을 보니
신발 모양과 같은 성이었습니다.
약간 장화 같은 모양도 났습니다.
성은 갸우뚱하게 세워져 있었고
신발이 앞으로 디딜 때 모습 같기도
하였습니다.
크기가 엄청 컸고 빛도 엄청나게
뿜어냈으며 색색의 빛들이 여기저기로
반사되어 빛났습니다.
자세히 보니 휴거된 사람들의 얼굴들이
성에서 입체적으로 화면으로 나와서
계속 성을 빙빙 돌면서 나왔습니다.
신발에는 무지갯빛으로
빨, 주, 노, 초, 파, 남, 보에 해당되는
천국의 보석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단단하게 압축되어 있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신발은 무얼 위해 쓰느냐.
네가 걷기 위해, 뛰기 위해 쓰지 않느냐.
너희가 행해야 하기에 신발이 필요하다.
신발 없이는 밖에 못 나간다.
집 안에서는 괜찮은데
밖에 나가려면 신발이 필요하지 않느냐.
신발은 말씀이고 기도이고
성삼위이며 주다. 신발은 너희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서 꼭 써야 한다.
옳은 방향으로 가기 위한, 휴거의 길로
가기 위한 도구이고 무기이다.
신발은 육계에 있어서 말씀으로 기도로
성삼위와 선생을 쓰고 이 시대를 뛰고
달리는 것에 대한 합당한 비유이다.
(아멘. 성령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정말 합당한 성입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자.
너희는 선생의 신발을 쓰고 살아야지
옳은 길로 걸어갈 수 있다.
신의 삶을 살 수가 있다.
안에 들어가니 정말 엄청났습니다.
안에는 천국의 최첨단 기계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기계 위에 여러 투명한
화면들이 띄워져 있었습니다.
각 사람마다 하나의 기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여러 버튼들이 다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전에는 어땠고 지금은
어떤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지금은 어떤 파장을 맞추고 있는지
이날은 무엇을 깨달았는지
이날은 무엇을 행했는지
지금 어떠한 상황인지
사탄이 몇 마리가 따라다니는지
그런 것이 버튼을 터치하면 화면에
정말 세세하게 나왔습니다.
휴거선도 레벨별로 나와 있었습니다.
사람 한 명, 한 명마다 성삼위께서 훤히
보시고 한눈에 보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사탄에게 끌려가
그 사람의 기계가 아예 사라졌습니다.
휴거를 박탈당하여 그러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런 기계들이 모두 모여서
국회 회의장같이 둥근 형태를 이루고
있었고 중간에 있는 여러 가지 색이
동시에 나오는 엄청 큰 동그란
보석이 박힌 것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빙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이 보석은 성삼위의 파장과 영력이
들어오는 곳이었고 이 보석으로 인하여
이 기계들이 움직였습니다.
홀은 둥근 형태인데 벽들은
전부 다 투명했습니다.
천국의 풍경들이 보였는데
아름다운 풍경들이 너무나도
멋있었고 아름다웠으며 황홀했습니다.
천장에는 긴 보석들이 죽 늘어져서
끝에는 마름모 모양으로 된 여러 보석들로
만들어진 전등들이 띄엄띄엄 달려
있었습니다. 높이도 다 달랐습니다.
천사들이 이 기계들을 다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이 성은 휴거에 대한 전문적인 회의
공간이고 휴거의 모든 것에 대해 관리하는
기관이다. 깨달았느냐.
늘 신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300선에서 자진 탈퇴를 하여서
황금성에서 나와야 한다는 그런 처참한
삶이 영에게도 육에게도 얼마나
치명적이겠느냐.
그러니 ‘어, 나는 300선이 되었는데
왜 신같이 살지 못하지?
왜 힘들지?’ 한다.
늘 신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매일 차원을
높여야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나는 왜 선생님을 깨닫지 못할까 하며
깨달아 보려고 노력해야 바로 선생의
심정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차원을 계속 높여라. 꾸준히 높여라.
절대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생각을
버리고 생각에서 깨부숴라.
늘 신 같은 생각을 하면서
행하면서 열심히 하는 것이다.
고로 700선 외에도 더 높은 차원까지
계속해서 높여 나가는 것이다.
말하면 바로바로 깨닫고 행하는 것이
바로 지혜이고 차원을 높이는 길이다.
알겠지?
오늘 너희에게 신의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씀한 나 성령이다.
깊이 깨달아야 되는 말씀이니
깊이 깨닫고 기도하고 보아라.
사랑한다. 안녕.
♥ 09월 22일 화요일 ♥
인생 찰나를 잡아라
2015년 9월 22일 화요일 새벽 계시말씀
작성일 : 2015. 9. 6. AM 01:30
작성자 : 주은혜
(최근에 성령님께서 순간 깊이 있는
말씀을 하실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적어야지.’ 하고 준비하면
이미 불이 식듯 식고, 깊은 물에 있다가
얕은 물로 빠져나와 버린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성자도 그렇게 감동을 주실 때가 있었는데
제가 그 순간 적지 못하였어도 이후
성자께 간구하면 다시 계시를 받을 때가
종종 있었는데 이번에는 다시 받기가
어려웠습니다.
약속이 있어서 지하철을 타러 뛰어갈 때나,
머리를 감고 있을 때나, 누구를 만나고
있을 때 깊이 있는 깨달음은 바람처럼
왔습니다. 그런데 적어 두지 않으면
바람처럼 사라졌습니다.
오늘도 기도를 준비하며
성령님과 대화했습니다.
“성령님, 성령님께서 말씀해 주셔도
적지 못할 때가 많아요. 그런데 제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실 순 없나요?
성령님의 말씀은 너무 바람 같아서
제가 그 바람을 타지 않으면 잡지 못하고
끝납니다.”하고 말씀드렸더니,
성령님께서
“네가 내 말씀을 받길 원한다면
언제든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2015_0922 화 계시말씀.hwp6
인생 찰나의 순간 내가 주는 것을 받아야
성공하지.” 하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때
재빨리 말씀을 받아쓸 준비를 했습니다.
성령님은 웃으시며
“오늘은 성공했네.” 하시면서
잠언을 주셨습니다.)
*성령님의 말씀*
1. 인생 찰나의 순간을 잡아라.
2. 사람은 ‘순간’ 자기 생각을 잡고
온전히 하고 사느냐에 따라 하루가
좌우된다. 그 하루가 그다음 날을 좌우하게
된다. 고로 찰나의 시간도 허투루 쓰지
말아라.
3. 찰나의 결정이 인생의 큰 결정이
되기도 한다. 성령의 감동을 순간 받았다면
그 순간 행하여라. 받는 순간 행해야
뜨겁고, 온전히 행하게 되고,
제대로 알게 된다.
4. 순간 감동받았는데 행하지 않으면
손해를 보게 된다. 그 손해가 영원의
손해가 되기도 하고, 생명의 손해가 되기도
하며, 물질의 손해, 시간의 손해가 되기도
한다. 찰나의 순간 빛과 같이 주는
나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행해야 신과
같이 산다.
5. 나 성령은 순간 감동을 주고 간다.
신의 말은 마음의 감동이기도 하고,
순간의 생각이기도 하다.
성령의 방향으로 서 있는 자만
그 찰나를 잡고 인생을 산다.
순간순간을 잡고 사는 자가 매일을 잡고,
매일을 잡는 자가 인생을 잡는다.
6. 인생도 찰나라고 표현한다.
눈 깜짝할 새 빠른 인생을 어떻게 신의
생각을 잡고 사느냐에 따라서 이 찰나의
인생에서 영원을 결정짓는다.
7. 주의 말씀도, 성령의 감동 감화도,
하나님의 역사도 자세히 보고 세밀히 보지
않으면 그냥 육으로 끝나고 만다.
육으로 끝나면 영까지 남지 않아서
영원한 손해가 된다.
8. 나 성령이 옆구리를 찌르며
감동을 줄 때 해라. 그때가 너의 때이고
네가 받을 때이고 조건을 쌓을 때다.
그때 해야 뜨겁다.
9. 줄 때 받아라. 줄 때 받으면
밥이 바로 되었을 때 먹는 것처럼
주는 자도 먹는 자도 기쁘다.
식은 밥을 먹으면 처량해진다.
고로 준다고 할 때 받고,
하라고 할 때 행해라.
때 지나면 처량해진다.
10. 찰나를 잡는 자가 인생을 성공한다.
11. 순간 역사하고 떠나는 나 성령을 잡는
자가 인생을 성공하는 자다.
12. 내가 순간 역사하는
그 때를 잡으려면 매일 기다려야 한다.
매일 성령의 역사를 기다려야 하고,
매일 주의 말씀으로 답을 받기를 기다려야
한다. 매일 기다리고 투자해야
찰나를 잡아서 방향을 잡을 수 있다.
13. 기회를 잡는 것은 순간이지만
기다리는 것은 하루가 걸리기도 하고,
일주일, 한 달, 1년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기회를 잡으면 기다린
그 시간의 갑절을 보상받는다.
고로 기회를 오매불망 기다려라.
간절히 기다려라. 그래야
기회가 올 때 눈치를 챈다.
14. 나 성령의 감동은 순간적이고
은밀하다.
하지만 기다리는 자는 안다.
기다리는 자만 맞이한다.
15. 주도 주가 오는 방향에서
기다리는 자만 맞이한다. 주가 올 때
맞이하려면 깨어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 순간 만나고 소원을 이루며 산다.
16. 기회를 매번 맞이하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찰나의 시간을 잡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 시간이 다른 시간을
좌우하며 산다.
17. 핵의 시간이 있다.
인생의 핵 시간도 있고,
하루의 핵 시간도 있고,
1년의 핵 시간도 있다.
그 시간을 잡아야 성공한다.
하루의 핵 시간은 새벽기도 시간으로
성령이 하루의 방향을 주는 시간이며,
1년의 핵 시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 시간이고 인생의 핵 시간은 주가
자신과 사연을 쌓으며 함께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잡아야 인생을 성공한다.
18. 선생이 매일 간절히 나 성령을
붙잡으며 한시도 나를 놓지 않으려 하는
것은 결국 순간의 시간이 결과를 좌우하게
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19. 멍하게 살지 말아라.
주의 방향에 서서 주를 기다리고,
성령의 방향에 서서 성령의 바람으로
성령을 깨달아라.
그래야 인생 성공이다.
20. 맞이했다는 것은 방향이 같았고,
시간이 같았다는 것이다.
고로 보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내 사랑아.
오늘 나는 내가 언제 어디든
너의 시간이 아니라 내 시간에 맞춰
온다는 것을 교육했다. 고로 깨달아라.
나를 기다리고 주를 기다리는 삶을 살아라.
그래야 맞는다.
그냥 멍하게 기다리는
기다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기다림은 나와 발맞추어
내가 오는 길목에 서 있도록 하라는
것이고, 나를 생각함으로 나를 마주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주를 마냥 기다리지 말아라.
주는 너희가 생각하지 못하는 때에 온다.
하지만 준비하며 기다리는 자는 맞이하고,
주의 방향에 서서 기다리는 자는 주를
만난다.
고로 주의 방향이 어디인지
또 주라는 인생의 기회를 어떻게 잡을지
매일 매 순간 주의 말씀으로
찰나의 순간을 잡아라.
그래야 도적같이 오는 주를 맞는다.
주를 맞는 자는,
인생 모든 것을 실패했어도 영원한 성공을
한 자다.
주를 맞이한 자는 영원히 기쁨과 영광을
누릴 자이니
주라는 희망을 희망 있게 기다리며
주를 맞이하고, 시간을 이기고, 주를
사랑하며
매일 너희를 찾아가는 주를 매 순간
맞아라.
찰나의 순간에 주가 올 때 맞아야
인생이라는 찰나도 주를 맞는다.
오늘도 찰나의 순간
네게 감동으로 온 성령이
깊이 있는 말씀을 전해 주고 간다.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지만
그 기다림 속에서
지속적으로 주를 맞이하는 자가
실제 주를 만나서
소망을 이룸을 알기를 바란다.
안녕. 나 성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