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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말씀2015.09.24 (목)

목 계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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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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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_0924 목 계시말씀.hwp1 2015년 09월 계시말씀 ♥ 09월 24일 목요일 ♥ 천국의 동굴 (아는 것에 따라 보이고 깨닫는다.) 작성일 : 2015. 9. 7. PM 3:00 작성자 : 주금빛 (환선굴을 가게 되었습니다. 동굴 안을 둘러보면서 성령님의 얼굴 형상을 한 돌도 보게 되었는데 성령님께 “성령님, 제가 무엇을 깨닫길 원하십니까?”기도하며 성령님께 여쭤 보았고 동굴의 이곳저곳을 유심히 자세히 보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작은 동굴밖에 못 가 봐서 이렇게 안이 큰 동굴은 처음이었고 동굴에 있는 여러 종유석들을 보면서 동굴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동굴을 보니 여러 특징들이 있었습니다. 동굴에서 물이 떨어져서 밑에 있는 돌이 깎여 여러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둘러보고 있을 때 성령님께서 오셔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령님의 말씀* 돌이 깎이고 깎이듯 이처럼 너희도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모순을 깎고 더 깎아서 자신을 더 온전히 더 웅장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야 된다. 섭리 안에서 너희가 많이 깎이고 깎였지? 깎이고 깎일수록 너희가 온전해지고 있다는 증거이고 너희 자신을 만들고 있다는 증거이고 작품 인생이 된다는 증거이다. 깎여야지 사람이 된다. 자신을 만드는 자만이 다음 단계에 도전할 수 있다. 너의 모순을 고치고 너의 정신을 고치고 너의 생활을 고치고 너의 사상을 고쳐라! (동굴의 계단을 오르면서 밑을 보니 물이 이곳저곳으로 세차게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성령님께서 감동을 주시길 “이 큰 동굴은 전 세계이다. 그리고 이 물줄기들은 복음이고 말씀이다.”라고 감동을 주시며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물줄기들이 세차게 이곳저곳으로 안 흘러가는 곳이 없으니 이 세계에도 성약 복음이 땅끝까지 퍼지며 잡으려야 잡을 수 없도록 걷잡을 수 없이 계속 퍼져 나가게 될 것이다. 넘어가는 저 태양을 잡을 수 없듯이 새 역사는 잡을 수가 없다. (돌들이 하트 모양 등 여러 다양한 모양대로 있었는데 다 각기 모양대로 있었습니다. 이렇듯 ‘이 장엄한 섭리역사 속에서 우리는 각자 개성대로 성삼위와 선생님과 딱 붙어 살아가야 된다.’ 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개성대로 뜻을 펴는 역사이다. 개성 없이 만든 자는 한 명도 없다. 그런 개성도 이 동굴 전체를 섭리역사로 본다면 종유석 하나하나 너무나도 귀하게 만들어졌듯이 그리고 하나하나가 동굴 전체를 아름답고 신비하게 만들듯이 너희 하나가 못생기거나 잘생기거나 키가 크거나 작거나 절대 상관없고 사랑을 보고 택한다 하였으니 너희 한 명, 한 명 사랑의 개성들이 섭리역사를 창대하게 하며 위대하게 하고 빛나게 한다. 사랑이 최고의 목적이다. 동굴에 딱 붙어 있듯, 섭리역사에 딱 붙어 뿌리를 깊이 내리며 자신을 닦고 계속, 계속해서 만들며 더 멋있게 더 차원 높게 만드는 것이다. 알겠느냐? (종유석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천장의 종유석과 바닥에 붙어 있는 석순의 거리가 한 뼘 정도 됐는데 그 둘이 붙어 석주가 되려면 200~300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렇듯 휴거도 저런 간절함으로 하는 것이다. 이 역사가 끝나면 200년, 300년이 지나도 절대 휴거를 못 이룬다. 휴거될 수 있을 때 태어난 너희가 휴거돼야 하며 휴거되려고 노력해야 하며 휴거로 인한 변화를 이뤄야 하고 선생의 조건이 아니라 너의 조건을 온전히 세워야 한다. 지금 이 시대를 만남에 진정 감사하며 온전한 사랑을 드려야 한다. 이 시대가, 사명자가 너의 시대에 있다는 귀함을 알아라. 사명자가 있기에 이 시대가 있고, 사명자가 있기에 때가 있으며, 사명자가 있기에 이 역사에 성삼위께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사명자가 있음으로 지금 이때가 이 시대가 중요하다 하는 것이다. (동굴 안에 들어온 후 둘러보니 “야~ 정말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정말 세심하시고 웅장하시다.” 이런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여러 작품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 하나님의 작품에 인위적으로 만들거나 떼서 붙인 것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만든 것이니 한계가 있어 신이 만든 것과는 너무나 차이가 많이 났습니다. 느낌도 너무 인공적이었습니다.) 신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는 차원이 다르다. 생각의 차원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듯 성약역사는 성삼위의 역사이기 때문에 차원이 다르고 역사가 다르며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하다. (“아멘. 성령님, 진정 맞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너무나 인공적이고 하나님의 역사는 너무나 깊이 와 닿으며 너무나 사랑이 깊고 차원이 다르며 사연이 다르고 행함과 표적과 구원이 완전히 다릅니다. 진정 시대 사명자가 있기 때문에 있는 하나뿐인 이 역사에 제가 살게 하심에 진정 감사해요.” 그러고서 성령님께 여쭈었습니다. “성령님, 천국에도 동굴이 있을까요?” 하고 여쭤 보니 성령님께서 “있어. 차원이 다르지. 더 오묘하고 웅장하게 느낄 수 있다. 또 선생의 사연이 있는 동굴이 아니겠느냐.” 성령님과 천국의 동굴을 함께 갔습니다. 동굴에 도착해 보니 차원이 높은 영계였고 영력이 너무나도 엄청났으며 신비스러웠고 안개도 아름답게 껴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환상적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동굴 입구에서 황금 배 같은 것을 타고 성령님은 앞쪽에, 저는 성령님을 마주 보고 앉았습니다. 황금 배가 동굴을 환하게 밝혔고 황금빛이 찬란히 빛났습니다. 동굴 안으로 배가 천천히, 앞으로 오묘하게 빛나는 동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제가 움직이지 않아도 배가 스스로 제가 원하는 속도로 아주 천천히 흘러갔습니다. 코스가 쭉 펼쳐져 있고 배로 지나갈 수 있게 되어서 배를 타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너무나도 재미있었고 제 영이 아주 행복해하며 기뻐했습니다. 천국의 동굴의 모습에 푹 빠져서 계속 바라만 보았고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아름다웠습니다. 이런 아늑하고 신비하며 조용하고 환상적이며 너무나도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이런 느낌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동굴은 정말 높기도 하고 낮기도 했는데 천장에는 밤하늘에 별이 박힌 것처럼 돌 사이사이에 천국 동굴에서만 나는 형형색색의 천국의 보석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고, 보석들이 반사되어 빛의 모양이 하트인 것도 있었고 별도 있었고 선생님의 얼굴도 있었고 부흥강사님의 얼굴도 있었습니다. 길이가 20미터가 넘는 거대하고 웅장하며 긴 종유석도 있었는데 끝에 물이 떨어지면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내었습니다. 2015_0924 목 계시말씀.hwp2 별 모양 같은 보석들이 둥둥 떠다니면서 무리를 만들어 이곳저곳을 지나가고 오로라도 지나가고 너무나도 아름다웠습니다. 깜깜했지만 물도 깨끗했고 보석 가루들이 엄청나게 뿌려져 있어서 너무나도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어느 코스는 물에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는 곳도 있었는데 너무나도 신비스러웠고 지상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이었습니다. 성령님과 단둘이 배를 타고 천국의 동굴을 구경하는데 주변이 아주 고요하고 평화로워서 이런 분위기가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령님과 단둘이 타니까 너무나도 기분이 최고였습니다. 성령님의 외모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동굴 속에서도 자체 발광을 하시니 그 후광이 엄청났고 황금빛을 뿜어내셨습니다. 정말 성령님의 눈은 바다보다 더 깊었고 천국의 보석처럼 너무나 아름답고 빛이 나며 계속 보면 볼수록 행복해지고 빠져 들어갈 것 같았습니다. 코도 매끄럽고 입술도 앵두보다 더 붉었습니다. 머리카락은 약간 웨이브로 되어 있어서 허리를 넘었고 하트 모양 안이 비어서 테두리만 되어 있는 보석 알갱이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어서 반짝반짝 빛이 났습니다. 옷은 차분한 드레스를 입으셨는데 약간 연보랏빛 드레스를 입으셨고 실크보다 더 부드러운 천국의 천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위에는 감싸는 모양처럼 되어서 허리 부분에는 보석들이 일렬로 붙어 있었고 치마는 안개처럼 희미하고 오묘하며 구름 느낌도 났습니다. 저를 보니 저도 성령님과 같은 머리를 하고 있었고 오늘 저의 속눈썹에는 성령님의 머리에 있었던 그 하트 모양이 아주 작게 만들어져 붙어 있었고, 저의 눈동자는 짙은 푸른색도 나고 황금빛도 났습니다. 너무나도 오묘한 색이었습니다. 볼도 분홍빛으로 빛나고 입술은 진한 붉은색이었습니다. 저도 차분한, 실크보다 더 부드러운 느낌의 천으로 만든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위에는 진주 같은 천국 보석이 단추처럼 중간에 일렬로 붙어 있고 밑으로는 보랏빛 치마가 주름이 선명히 잡혀서 쭉 퍼져 있었습니다.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동굴은 춥지 않고 적당한 온도였습니다. 천국의 동굴은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 중간마다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통로가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고요하고 평화로웠습니다. 지상으로 내려와 깊이 감사기도를 하였습니다. 돌아와서도 천국의 동굴 풍경이 잊히지가 않았습니다. 그다음 날 백룡동굴을 가게 되었는데, 동굴 안에서 너무나도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고 웅장하고 너무나도 신비했습니다. 설명을 들으면서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같이 어떠한 인식을 갖고 보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생각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고 깨달았고, 아는 것에 따라 그것을 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작품을 보고 있을 때 성령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정말 미치도록 해야 된다. 미치도록 안 하면 끝내지 못하고 성과를 못 본다. 동굴을 발견한 사람은 동굴을 발견하고 미치도록 팠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선생은 다르다. 미치도록 성삼위를 사랑하고 말씀을 미치도록 파고 팠더니 헛수고가 아니었고, 온 인류 중에 지구 역사상 제일 성공한 사람, 영원히 성공한 사람이 되었다. 선생이 최고로 성공하였다. 무엇을 미치도록 행하느냐에 따라서도 다르다. 사랑해야 된다. 사랑해야 해. 동굴 안에도 여러 하트 모양이 있었잖아. 사랑하지 않으면 정말 안 된다. 기도는 왜 하느냐. 사랑해서 하잖아. 기도는 한마디로 삼위와 대화하는 길이다. 종유석과 석순이 서로 만나 석주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겠느냐. 수많은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만났더니 정말로 멋진 작품이 되었고 근엄한 자태를 뽐내고 있지 않느냐. 이렇듯 지금 성약역사는 드디어 만난 시대이고 드디어 창조 목적을 이룬 시대이다. 이것을 보기 위해서 얼마나 성삼위가 기다렸는지 알겠느냐. 드디어 만났으니 지금 이때가 얼마나 기다려 왔던 때인지 깊이 깨달아야 한다. (정말로 여러 종유석들이 거의 붙을락 말락 하는 것도 있었는데 서로 붙어 이어지기 위해서는 몇백 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또 종유석에 불순물이, 다른 이물질이 들어가면 깨끗하지가 않았고 투명하지 않았고 그렇게 아름답지도 않았습니다.) 2세들아. 2세들은 처음부터 때를 안 탔기에 깨끗하다. 처음부터 깨끗하다. 그러니 정말 성삼위께서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다. 멋있고 위대한 작품 인생들이기 때문에 그렇게나 아끼는 것이다. 2세들은 한 명, 한 명 크게 될 자이고 섭리에 있어서 중요한 기둥들이 될 것이다. 너, 동굴 안에서 껌껌하고 아무것도 안 보였을 때 어떠하였느냐. (성령님. 마지막에 엄청나게 큰 공간이 있는 광장에 갔었는데요. 빛이 새어 나올 수도 없는 동굴에서 불을 다 끄고 보니 정말 아무것도,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이것을 보고 조금 무섭기도 하였고 지옥이 너무나도 끔찍하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그 깊고도 깊은 곳에서 껌껌한 곳에서 불구덩이로 던져지고 죗값을 치르는 모습을 생각하니 너무나도 끔찍했습니다. 그리고 시대를 보지 못하는 영적 소경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고 얼마나 진실을 못 보는지에 대한 안타까움이 너무나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 지옥이 그렇다.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보다 시대를 못 보는, 성삼위와 선생을 못 보는 저 영적 소경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너무나도 불쌍하다. 너희가 정말 그들의 흐릿한 눈을 씻어 줘야 된다. 불을 켜 줘야 한다. 말씀으로 기도로 성삼위와 선생과 일체 되어 씻어 줘라. 불을 켜 줘라. 이 천국을, 이 시대를, 이 시대 보낸 자를 보게 해 주어라. 처음에는 이제 처음 보는 세계이니 어리바리하고 내가 진짜를 보고 있나 갸우뚱하겠지만, 점차 자신이 보는 세계가, 시대가 정말 맞는다는 것을 깨닫고 깊이 감사 감격할 것이다. 알겠지? 불같이 깨달아야 한다. 성삼위도 선생도 부흥강사도 깊이깊이 깨달아야 한다. 내가 말해 줄 때 그때 깨달아야 해. 안 그러면 때를 놓치고 지나면 답이 다르고 행하는 방식이 다르다. 알겠느냐. 사랑해. 천국에도 동굴이 있다고 증거하고 보게 해 주며 깊이 말씀한 나 성령이다. 깊이 보아라. 깊이 말해 주었다. 사랑한다. 안녕. 천년만년 같이 살자. 진정 사랑한다. ♥ 09월 24일 목요일 ♥ 구원자의 고통의 대가 작성일 : 2015. 9. 2. AM 3:00 작성자 : 정수현 (섭리사의 많은 일들을 두고 선생님께서 그곳에서 혼자 겪으시는 상황이 너무나 고통스러우실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보낸 자가 받는 이 고통이 실로 큰데 이 고통의 대가는 무엇인지 여쭤 보고 싶었습니다. 그것에 대해 계속 생각하며 월명동에서 새벽기도를 할 때였습니다. 밤하늘에 달이 크게 보이고 그 주변에 많은 먹구름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달 주변에 먹구름이 오는 듯하더니 달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먹구름이 계속 물러나며 달을 가리지 못하고 훤히 달이 보였습니다.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 받는 내내 이 광경을 보이시며 ‘이와 같이 하늘 2015_0924 목 계시말씀.hwp3 역사를 사탄이 막지 못한다.’는 깨달음을 주셨고 이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말씀* 사랑아, 적어라. 내가 깊은 심정을 말해 줄게. 나의 고통을 누가 알랴. 그러나 알고자 하는 자에게 사랑하는 자에게 말하니 나의 심정을 나누고 싶음이다. 이 땅 가운데 온 보낸 자가 고통과 슬픔 가운데 지내며 그 대가를 치르면 그것을 어디서 보상받느냐 기도하였지? 나의 고통은 실로 사랑하기에 견딜 수 있는 고통이다. 사람으로 태어나서는 가장 큰 고통을 받으나 그 대가는 실로 크기 때문이다. 시대 보낸 자는 항상 무지 가운데 핍박을 받으며 역사를 펴게 되었다. 그렇게 된 상황이 먼저는 고통의 시작이다. 인간들이 무지하고 그 수준을 못 벗어나니 하늘은 그들을 너무 사랑하여 그 시대 수준을 벗어나도록 시대 구원자를 보내었다. 특히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자인 구원자를 보내었으나 무지하고 교만한 인간은 그를 영광이 아닌 고난으로 맞이하였지. 그것이 가장 큰 보낸 자의 고통이 되었다. 그것을 알고도 하늘은 인간에게 역사하여 나타났으니 이것이 정말로 큰 사랑이 아니냐. 사랑하는 자들에게 나타나도 외면당하고 죽임을 당할 것을 알고,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고도 가는 자가 누가 있겠느냐. 하늘이 100% 그리될 것을 알고도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너희를 그토록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늘은 사랑하는 자들이 영광으로 맞아 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왔으나 역사는 참혹하였다. 하늘이 보낸 자를 무지막지하게 핍박하고 심지어 죽인 역사까지 일어났으니 하늘이 보낸 자의 그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노라. 단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는 고통뿐 아니라 심정의 고통을 받으니 그것은 이 세상 인간으로서는 이겨 낼 수가 없노라. 오직 하늘이 함께함으로 그 고통을 이길 수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만 그 고통이 있었겠느냐? 육의 고통은 잠시이고 말씀을 전할 때, 핍박받을 때 답답해서 심장이 터지는 듯한, 화를 내고 싶고 어이가 없어 억울한 모든 심정을 2000년을 겪고 또 영계에서 겪고 있다. 이 시대 보낸 자 또한 2천 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 땅에 성약의 문을 여는 엄청난 조건을 세우며 나타났지만 그 어느 누구 하나 기다렸다는 듯이 환영하며 영광으로 맞아 준 자가 없구나. 그 말은 처음부터 흡족하게 보낸 자를 알아보고 모시고 섬긴 자가 없다는 말이다. 말씀을 받기 위해 몸부림치며 눈물로 받은 시간들, 아무도 인정하지 않고 무시당하며 아무리 외쳐도 받아들이지 않던 기간, 발판이 없어 육신이 건강치 못해 받았던 병의 고통, 말씀을 전해도 오히려 미움과 핍박을 받으며 죽음 가운데 도망 다녀야 하는 입장과 말씀을 전해야 하는데 전하지 못하게 가두며, 말씀으로 애지중지 키운 사랑하는 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배신하며 나갈 때, 그리고 거기다 그 사랑하던 자들이 악한 말까지 할 때... 실로 시대 보낸 자의 고통은 상상할 수가 없고 표현할 수가 없다 하겠다. 그러나 이 모든 고통의 대가는 오직 휴거된 너희들이다. 너희들을 얻었다면 이 고통은 아무렇지 않은 것이 된다. 견딜 수 있는 고통이 된다. 성삼위가 원하는 열매를 얻었으니 고통일지라도 가치가 있는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랑하는 자를 얻었다면 그것은 승리한 일이 아니냐. 그러니 나의 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고통이 제발 열매를 맺도록,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너희들이 행해 주어라. 내가 이 모든 것을 한 번도 힘들다 하지 않으며 아프다, 고통스럽다 하지 않으며 이겨 내는 것을 알아 다오. 이 심정을 말하지 않아도 얼마나 큰 사랑의 힘으로 이기고 있는지 알고 제발이나 너희도 나처럼 사랑으로 이겨내 다오. 나의 고통은 말로 다 표현 못 해. 어찌 다 말하느냐. 말하면 사랑하는 자들이 마음 아파할 텐데 내가 그 꼴을 보느니 견디고 말지. 난 얼마든지 견딜 수 있고 이겨 낼 수 있다. 나에겐 성삼위가 계시고 사랑하는 너희들이 있으니 희망으로 이겨 낸다. 사람이 희망이 없으면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겨나지 않는다. 그러니 나에게 너희들이 희망인 것처럼 너희는 나를 희망으로 삼고 힘을 내서 이겨 내라. 너희들이 포기하고 그만두면 내가 이렇게 고통을 감내한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 늘 말씀을 그리 목숨 걸고 받아 주는데 너희는 그걸 듣고도 행치 않아 구원과 휴거를 못 이루면 어찌하느냐. 재료를 다 주고 하는 방법까지 목숨 걸고 싸워서 찾아, 눈앞에 놔주었는데도 안 하고 죽으면 어찌하느냐. 행하지 않으면 죽는다. 육이 죽는 게 아니라 영이 결국엔 죽음으로 가게 된다. 행하는 자만 가치와 위력을 알고 끝까지 행하여 가져간다. 아까 구름이 달 주위를 가리지 못하는 것을 보았지? 하늘이 고통받고, 악한 자들이 가려 그 빛을 막으려 해도 성삼위께서 나를 지키시고, 진실은 변하지 않으니 승리는 하늘 편이라서 결국엔 이긴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먹구름이 빛을 막고 어둡게 하여도 해와 달은 빛을 잃지 않는다. 아무리 진한 먹구름이 가리는 듯하여도 그 뒤에 햇빛은 변함없이 빛나고 있었으며 결국엔 해가 나지 않느냐. 먹구름이 영원히 해를 가리지 못하듯 악한 것들이 하늘의 진실과 사랑의 역사를 영원히 막지 못한다. 나도 이 안에서 해를 받는 듯하나 성삼위가 지켜 주시니 결국엔 이겨 승리한다. 내 고통을 삼위가 지켜 주시고 막아 주신다. 먹구름이 달을 가리지 못하고 계속 빗겨 나가는 걸 보았지? 성삼위의 능력을 무엇으로 아느냐. 나를 이 고통 가운데 지키며 이기게 하시는 분이다. 악을 무렴케 하며 물러가게 하시며 결국엔 승리하는 분이다. 악이 순간 발악하여 이기는 것 같으나 한 번도 그런 역사는 없었다. 결국엔 승리하였고 승리할 것이다. 나의 고통의 대가를 묻지 말아라. 나의 고통이 고통이 아니고 열매를 맺기 위한 거름과도 같으니 좋은 것을 얻으려면 희생이 따르듯 좋은 선의 역사를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져야 큰 나무가 되듯 그 썩어지는 조건, 그 한 사람이 필요하다. 나를 위해 기도해. 내가 너희들이 기도하지 않아도 이 길을 갈 것이나 나의 고통을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들을 위해서 내가 더욱 견디고 승리하길 기도하여라. 내가 더욱 잘되어야 너희들이 잘되지. 나의 능력으로 구원받는데 내가 더 잘되면 혜택이 크지 않느냐. 물론 사랑해서 기도하지만 결국 다 너희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구원자의 고통을 알고 그 심정을 알아 함께하는 자에게, 그 쓴잔을 같이 마시는 자에게 영원한 축복이 임하기를 축원한다. 사랑한다. 너희 선생이. (계시를 받는 내내 먹구름이 달을 가리지 못하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어서 성령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2015_0924 목 계시말씀.hwp4 *성령님의 말씀* 그의 조건이 하늘나라에 얼마나 상달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그것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야. 그것을 어찌 말로 설명하랴. 실로 어마어마한 사랑의 조건이 하늘나라에 의로 쌓일 것은 너희도 알지 않느냐. 그걸 얘기한다고 그가 위로받을 사람이 아니다. 단지 너희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그가 그렇게 고통을 감내하며 너희를 위해 목숨을 걸고 하니 너희도 제발 그 마음을 알고 같이 행해 주어라. 그가 고통이 고통이 아니라고 하지만 정말 고통이 아니겠느냐.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다 하지만 정말 그러하겠느냐. 그와 같이 똑같이는 못 하더라도 그의 사랑하는 자이고 제자라면, 그가 그렇게 하고 있는데 최대한 할 수 있는 대로 몸부림쳐 그 뜻을 같이 이루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가 누굴 위해 이렇게 하느냐? 그 자신의 구원을 위해 하고 있느냐? 그는 벌써 자신의 것은 다 이루었다. 그러니 너희를 위해 하라는 것이야. 그를 외롭게 홀로 내버려 두지 말아라. 그를 외롭게 둔다는 것은 선생 혼자 외치고 실천하게 두는 것이다. 따르는 너희들이 같이해 주지 않을 때 외로운 거야. 옆에 같이 있지 못해서가 아니고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같이 그 뜻을 행해 주지 않을 때 가장 외로운 것이다. 삼위와 선생과 같이 모으고 헤치라 하였으니 그가 이 세상에 있어 육신이 살아 있을 때 그와 함께 역사를 이루어 놓아라. 그와 함께 동행하고 일체 되어 행하여라. 이때 행한 것을 두고두고 자랑하며 기뻐할 테니 나의 말을 듣고 순종하며 한 귀로 듣지 말아라. 성령의 조언이다. ♥ 09월 24일 목요일 ♥ 역사는 아는 자만 안다 (악평자들의 영계 실상) 작성일 : 2015. 9. 15. AM 1:00~2:00 작성자 : 주사랑빛 (새벽기도 시간이 기다려져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정한 기도 시간 30분 전에 와서 선생님을 위해 뜨겁게 기도드리니 어느새 선생님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전날 한 생명에게 강의를 하다가 선생님께서 그 생명에게 주신 ‘역사는 아는 자만 안다. 역사를 펴는 곳에 가야 안다.’는 편지 내용에 대해 들었는데 선생님께서는 그 내용이 생각나게 하시며 말씀해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말씀* 이 말은 매우 깊은 말이다. 자, 깊이 얘기해 줄게. 네가 일찍 나를 부르니 내가 네게 일찍 왔단다. 네가 나를 늦게 불렀으면 나는 네게 늦게 왔다.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린 것이다. 이와 같이, 역사를 만나는 자도 역사를 펴는 곳에 온 책임분담을 했기에 만난 것이다. 역사를 아는 자도 역사를 알고자 노력을 했기에 안 것이다. 노력하지 않았다면 알지 못하지. 삼위일체는 인생들 모두를 옳은 길로 인도하지만 알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역사로 오지 못한다. 고로 노력해야 한다. 평소에 잘 살고자 노력하는 자는 보다 쉽게 이 역사로 올 수 있다. 역사도 <아는 자>만 알지 <모르는 자>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른다. 고로 섭리 신부들은 생명들에게 역사를 알 수 있게 가르쳐 주고 노력할 수 있게 잘 지도해 주고 정확하고 확실히 외쳐 주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리 세상에서 아는 것이 많다 해도 다 개똥철학이다. 나 선생은 세상에서 배우지 않고 오직 성삼위께 배웠기에 <천주의 지식>을 배웠다. 역사를 일으키는 주인이 되었다. 아는 것이 많은 자라 해도 <주를 모르는 자>는 ‘모르는 것이 많은 자’요, 아는 것이 적다 해도 <주를 아는 자>는 ‘아는 것이 많은 자’다. 세상의 많은 자들이 자신이 아는 지식에 묻혀 주를 아는 지식을 머리에 넣을 틈조차 없이 산다. 참으로 불행한 자가 아니냐. 자신이 아는 지식을 가지고는 천국에 갈 수 없음을 죽은 후에 깨닫고 이를 간다. 역사를 펴는 곳에 와야 알 수 있는 것이다. 궁 밖에서 어떻게 궁궐 안의 삶을 알 수 있겠느냐. 물 밖에서 어떻게 물속의 광경을 알 수 있겠느냐. 섭리역사에 들어오지 않고 안다는 자는 헛된 소리만 하는 거짓된 자다. 들어와야 알지. 역사 속에 들어오지 않고 악평만 하는 자의 소리는 아예 듣지 말아라. 이 역사 속에 있다가 나가서 악평하는 자의 소리는 어떠하냐? 그들은 왜 악평을 하겠느냐? 신부는 신랑의 삶을 따라가는 자들이다. <부부 일체>란 말이 있지. ‘부부는 닮는다’는 말도 있다. 신부가 신랑을 닮으려면 <신랑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이 시대 최고 신랑의 삶은 그리 쉽지 않다. 좁은 문이다. 어려운 길이다. 험난한 길이다. 하지만 고생길을 가도 그 길만이 ‘영원한 생명길’이다. 천국 황금성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모든 것을 다 얻는 ‘행복의 길’이다. 신랑이 손을 잡고 품에 안고 가는 ‘사랑의 길’이다. 그런데 이 역사에 온 자들 중, 주의 삶을 살고 싶지 않고 생명길을 가고 싶지 않은 자들은 모두 <넓은 길, 사망길>로 갔다. 그러고는 악평을 하며 더 많은 자들을 유혹한다. 사탄은 <부부 불일체>를 원하는 자들을 정확히 알고 공격한다. 사탄에게 선택받은 자들이다. 삼위일체의 역사와 주를 제대로 모르는 자들은 역사에 오지 않는다. 왔다 해도 다시 역사를 부인하고 나간다. 악평으로만 넘어지는 자들은 없다. 주와 같은 길을 가고 싶지 않은 자들이 악평을 핑계 삼아 넘어진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자들, 주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무지자들, 삼위일체를 배신하는 자들이 악평을 계기로 돌아선다. 진정 시대와 주를 제대로 깨달았다면 역사에 묻혀 열심을 다해 뛰고 달렸을 것이다. 주가 가지 말라고 하는 길을 가다가 사탄의 올무에 매이는 것이다. <주가 가는 길을 함께 가는 자>는 절대 사탄에게 당하지 않는다. 역사를 펴는 곳에 가야 역사를 아는데 역사를 펴는 곳에서 나가니 역사를 모르고 악평하는 것이다. 최근에 악평하는 자의 예전 삶을 보여 줄게. (최근에 악평을 하는 두 사람의 삶을 보여 주셨습니다. 근래에 섭리를 나간 자 1 그 영이 보였는데 머리가 보통 사람의 세 배는 되어 보였습니다. 몸체가 매우 왜소하고 바짝 말라 있었고 다리가 금세 부러질 것 같았습니다. 퀭한 두 눈 위의 이마부터 머리 전체가 탄 것처럼 새까맣게 변해 있었는데 머릿속이 순간 다 보였습니다. 수많은 전선이 복잡하게 얽혀서 꼬여 있고 전선들이 다 낡아서 끊어지기 직전 같았습니다. 2015_0924 목 계시말씀.hwp5 전선들은 계속 꼬이고 있었는데 저러다가 전기 사고가 나겠다 싶을 정도로 위험해 보였습니다.) 섭리를 나가기 석 달 전 영의 모습이다. (저는 기가 막혔습니다. 이자는 분명 악평자들에게 끌려가기 전까지 멀쩡하게 섭리 일을 하던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머릿속이 생각들로 꼬여서 풀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내가 계속 손을 대어 풀어 주면 자신이 또 얽히게 만들어 놓는 것을 반복했다. <진리>로 끝까지 손을 대어 주었으나, 제대로 정리가 안 되었다. <진리>에 약했던 자이기에 영 주관을 받았다. 섭리를 안다고 하지만 제대로 모르던 자이다. 악평을 듣기 전부터 나와 접붙이지 못하였다. 기회는 있었다. 휴거된 자였고 사랑하던 자였기에 계속 손을 대어 고치려 했다. 그러나 내가 가르쳐 준 방법대로 순종하지 않았기에 겉으로는 표가 나지 않았지만, 머리만 커지고 자기 생각들이 자라나 꼬여만 갔다. 그러다 악평을 듣게 되었고 그 핑계로 삼위와 주를 배신하였으며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악평을 하는 것이다. 주를 향한 곡조가 사탄을 향한 곡조가 되었구나. 황금성에서도 쫓겨났다. (다른 자를 보여 주셨습니다. 근래에 섭리를 나간 자 2 이자는 육신은 키가 크고 마른 자인데 그 영은 배불뚝이에다가 다리를 절었습니다. 이자도 나가기 3개월 전의 상황이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손을 대어 다리를 고쳐 주려 해도 이자가 선생님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을 다녔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계속 이자를 쫓아다니셨습니다. 이 장면을 보는데 오랜만에 화가 날 뻔했습니다. ‘아니, 선생님이 누군지 알고 저러는 거야?’라고 소리를 지를 뻔했습니다. 이자는 다리를 계속 저는데 자세히 보니 왼쪽 다리가 썩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끔찍하여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섭리에서 들은 것은 많으나 뛰지 않던 자다. 그래서 그 영이 다리를 절고 썩은 다리를 끌고 다니는 거야. 서운함이 많았다. 사랑만 받고 주는 사랑을 하지 않으니 배불뚝이가 되었다. 사랑을 받아먹기만 한 것이다. 사랑을 실컷 받아먹고도 또 달라고만 했다. 소화를 못 해서 주지 않는데 왜 또 안 주느냐고 했다. 살리려고 별짓을 다 했는데도 결국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고 악평을 핑계 삼아 사탄을 따라가더니 악평을 해댄다. 이러한 악평을 듣고 넘어가는 자는 정말 무지자다. 그들도 하루아침에 악평을 듣고 넘어간 것이 아니다. ‘왜 섭리에 있던 자가 넘어갔지?’ 하지 말아라. 그들도 배불뚝이에 다리를 저는 자였다. 빨리 내 말을 듣고 생각도 고치고 행실도 고쳐야 한다. 이자도 휴거를 박탈당했다. 이자와 함께 악평을 믿고 섭리를 나가는 자들은 모두 휴거가 박탈된다. 평소 자신의 삶이 <주를 위한 삶>인지 보아라. 이 역사에 와서 함께 역사를 이루고 있는지 보아라. 역사를 펴는 곳에 와야 아는 것이다. 그들은 섭리에 있었지만 역사를 펴는 곳에 오지 않았다. <역사를 펴는 곳>이란, ‘역사를 함께 이루어 나가는 곳’을 말한다.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되어 역사를 펴는 곳을 말한다. 섭리의 구경꾼들은 역사를 펴는 곳에 온 것이 아니다. 12명의 정탐꾼은 가나안을 정탐하기 위해 다녀왔다. 그러나 그들 중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에 가서 정착하였다. 12명이 다 역사를 펴는 곳에 간 것이 아니다. 혹여 정탐만 하고 온 자들이 “나는 역사를 편다는 곳에 갔다 왔는데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역사가 펼쳐지는 곳이 아니었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가나안 땅을 가지 않는다면, 혹은 가는 길에 발길을 멈추어 돌아선다면 악평을 들은 자이다. 그들은 역사를 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정탐만 했을 뿐이다. 땅만 밟았다고 가나안 땅에 대해 다 안다고 할 수 있느냐. 가나안 땅은 분명 하나님의 역사가 펼쳐지는 땅이었다. 그곳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역사를 이루어 나간 자들은 분명 알았다. 그들은 어떠한 악평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섭리에 있다가 나가서 악평하는 자들의 말을 듣지 말아라. 그들은 진정 섭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섭리의 땅을 밟았을 뿐이다. 섭리에서 함께 역사를 폈다면 악평하지 않는다. 함께 역사를 펴지 않았기에 진정 모르는 것이다. 모르니 악평을 해대며 섭리가 거짓이길 원한다. 그러나 그들은 지옥에서 고통받으면서 분명 결국 알게 된다. 그때가 되면 죽을힘을 다해 후회하지만 절대 회복의 희망이 없다. 역사를 펴는 곳에서 함께 역사를 펴는 자들은 모두 알고 있다. 그들의 영에게는 <휴거 박탈>이 일어나지 못한다. 매일 ‘차원’을 높일 뿐이다. (이어서 열심히 뛰고 달리는 자의 영이 보였는데 늘씬하고 키가 3미터는 되어 보였습니다. 그는 화려한 옷을 바꿔 입어 가며 주의 팔짱을 끼고 있었고 자신의 육신을 부지런히 도우며 차원을 높여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역사를 펴는 섭리 속에서 나와 함께 열심히 뛰고 달리는 자다. 오늘도 그의 황금성 천국 집이 커졌고 넓어졌다. 전도와 관리를 열심히 하니 공적도 나날이 쌓여 원하는 소원이 지상에서 영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살아라. 이는 진정 아는 자다. 무지와 악평으로 아는 척하고 살지 말고 진정 <아는 자>가 되어 매일 휴거의 차원을 높이며 천국의 삶을 살아라. <가나안>을 차지한 자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가꾸며 누릴 것을 다 누리며 행복하게 살지 않았느냐. <천국 황금성>을 차지한 자는 역사 속에서 매일 행복에 겨워 사는 것이다. 부부 일체 되어 사니 기쁨과 행복의 연속이다. 부부 싸움하고 이혼한 자의 말을 듣지 말아라. 귀를 닫고 눈을 신랑에게만 돌려라. 진리를 정확히 알고 깊이 사랑하며 살자. <아는 자>의 ‘주’이며 ‘역사’다. <함께 행하는 자>의 ‘주’이며 ‘역사’다. 진실로 사랑한다. 사랑의 선생. ♥ 09월 24일 목요일 ♥ 큰 자’를 증거하려면, 너 자신도 크게 만들어야 한다! 보통으로 행하지 말고, 다른 자들에게 인정받도록 행하여 <육적 관원, 영적 관원>이 되어라! 오직 ‘증거함’으로 선생을 지킬 수 있다! 작성일 : 2015. 7. 21. AM 1:27~2:21 작성자 : 주수신 (캠퍼스 회원들과의 모임을 위해서 해외의 한 대학교에 방문하였습니다. 그곳은 선생님께서 과거에 순회하신 적이 있었는데 이후 선생님께서 또 육으로 순회를 오실 때에 대학 총장을 만나게 하기 위해서 회원들이 총장과 교류하며 그 길을 닦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2015_0924 목 계시말씀.hwp6 한국에서는 그같이 방문하실 선생님의 위신을 세워 드리기 위한 세상 발판까지 마련한 상황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무척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대학의 회원들은 선생님을 단지 우리만 알아드리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세상이 선생님을 알고, 인정하게 만듦으로 그들 앞에서 선생님을 세워 드리기 위해서 행하며 실제적인 육적 발판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대학의 학생들과 제가 아는 회원들을 비교해 보았을 때, 그저 스스로만 만족하는 수준으로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성령님의 말씀* ‘삼위를 아는 자’는 ‘보통’으로 살지 않는다! ‘선생을 아는 자’는 ‘보통’으로 행하지 않는다! 무슨 말인고 하니, 네가 누구로 인해 지금같이 살게 되었는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네가 가고 있는 인생길이 그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네가 그 가치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그저 네 차원에서만 살고자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네가 섬기며 가는 성삼위와 선생, 그리고 네가 증거해야 하는 성삼위와 선생이 너무도 큰 자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하늘과 살아가야 함을 인식한 뒤, 너 자신을 바라보면 네가 너무도 부족함을 느끼게 되고, 너 자신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고로, 그저 자신의 위치에서 만족하고 그 상태로 살아가고자 하는 자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하늘이 그 얼마나 높고 넓은지 모르는 자이며, 너를 통해서 다른 자들에게 하늘을 나타내고, 삼위와 주의 말씀을 전하며 드러내야 할 것인데, 그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진정 모르는 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너는 성삼위와 삼위가 보낸 자, 선생을 어떻게 증거할 것이냐? 그저 네 차원에서 증거할 것이냐? 세상에서는 ‘세상 엘리트’가 증거해야 하고, 섭리에서는 ‘신앙 엘리트’가 증거해야 한다! 최고의 존재자를 증거하려면, 너 또한 네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늘 증거’는 나 성령과 함께 다른 자들에게 이 ‘때’와 ‘선생’에 대해 강하게 알려 주는 것이다! 너 자신이 다른 자들에게 아무것도 보여 줄 것이 없고, 심지어는 다른 자들이 너를 별것도 아닌 것으로 보는 상태에서 그들에게 삼위와 선생을 ‘증거’한다면, 삼위와 선생이 바로 그런 ‘너’를 통해 나타나야 하기에 그들에게 있어서는 바로 ‘너 자신’이, 성삼위와 선생을 증거하는 것에 있어서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너의 ‘삶’으로 성삼위와 선생을 증거하는 것이 무엇이냐? ‘너를 말씀으로 만들어 증거하는 것’이다! 섭리에서 말씀을 듣고 ‘자신을 만든 자’들을 보아라! 육적으로만 보아도 술도 안 하고, 담배도 안 하고, 이성도 멀리하고, 시대 구원자를 따르며, 하나님께 충성하며 살아가는 자들이다! 이것 또한 너무도 크지. 너희가 진정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 네가 얼마나 만들어졌는지에 따라서 다른 자들에게 비치는 너의 ‘이미지’가 있지? 네가 그들에게 삼위와 선생을 증거할 때, 그 이미지가 너의 ‘증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진정 알아야 한다! ‘육적인 간판’도 중요하다! 세상에서 내로라하는 간판이 있는 사람들에게 삼위와 선생을 증거할 때, 너의 그 어떠한 것을 보여 주며 증거할 것이냐? 섭리에 있는 너희 모두가 ‘육적 간판’이 없다면, 그 분야에 있는 자들은 데려올 수 없는 것이다. ‘영적인 간판’ 또한 중요하다! 어중이떠중이로 어떠한 것에도 특출나게 잘하는 것 없이 그저 세상에서 잘 안 되니, 섭리에 있겠다는 생각으로 스스로가 보기에도 만족스럽지 않게 그저 그렇게 섭리에서 있는 자들이 많다. ‘성삼위의 신부’라는 타이틀, ‘이때 삼위, 선생을 증거할 수 있는 자’라는 타이틀, 사도 시대에 맞게 ‘삼위와 보낸 자를 불같이 증거하는 자’라는 타이틀, 이 타이틀들이 과연 네게 걸맞으냐? 나 성령은 네가 그만큼 만들어졌는지를 묻는 것이다. 과연 네가 다른 자들로 하여금 너를 보고 감동을 받고, 성삼위와 선생에 대한 강한 감동을 전해 줄 수 있는 자이냐는 말이다. ‘너’ 자신을 만들어야 한다! 다른 자들에게 보일 것이 하나도 없고, 내세울 것도 하나도 없고, 네가 다른 자들에 비해 고만고만하거나, 더 낮은 차원으로 너 하나도 간수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다른 자들에게 ‘성삼위와 선생’ 이야기를 해 보아라! ‘이 시대와 시대 말씀’ 이야기를 해 보아라! 네가 만들어지지 못해서 너를 별 볼일 없게 보듯, 네가 증거하는 이 시대 말씀도, 보낸 자도, 삼위도 모두 별것 아닌 양 보게 될 것이다. ‘너 자신을 만드는 것’이 왜 중요한지 알겠느냐? 왜 네가 ‘육적 엘리트’ 혹은 ‘영적인 엘리트’가 되어야만 하는지 알겠느냐? 네가 나타내야 하는 자는 다른 자도 아니고, 이 세상 최고의 권세를 지닌 자 성삼위 하나님, 나 성령, 성자 그리고 성삼위가 성약역사에 보낸 자, 유일무이한 자, 바로, 너희 선생이다! 너희는 왜 그리도 자신을 만듦에 있어서 더디냐? 왜 너 자신을 만들어야 한다는 그 생각도 못 하는 것이냐? 왜 그저 네 차원에서 삼위와 선생을 나타내고자만 하는 그 ‘미련한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냐? 다른 자들이 ‘너’를 통해, ‘삼위와 선생’을 보아야 한다! 즉, 너 자신이 ‘말씀의 실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며, 너 스스로가 ‘삼위와 선생을 증거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단지 ‘심정’을 지니라는 말이 아니다! 네가 아무리 ‘심정’을 지녔어도, 너 자신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별 볼 것이 없으면, 다른 자들이 볼 때 너의 그 뜨거운 심정 또한, 너의 만들어지지 않은 모습에 푹 파묻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육도, 혼도, 영도 진정 만들어야 한다! 너희는 모두 너 자신이 잘하는 분야를 반드시 찾아라! 육적으로 엘리트가 될 분야이든, 영적으로 엘리트가 될 분야이든, 하늘도 인정하고, 땅에 있는 사람들도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 반드시 ‘한 부분 이상’은 있어야 한다! 네가 인정받지 못하면, 너를 통해 나타나는 성삼위도, 선생도 인정받을 수가 없다! ‘너’를 통해 나타나기 때문이다! 너를 통하여 삼위도 선생도 비춰 보여야 하니, 네가 그리도 중요하다! 이는 마치 ‘창문’을 통해서 사물을 보는 것과도 같다. 창문이 얼룩덜룩하면 안에 있는 사물도 얼룩덜룩하게 보이고, 창문이 깨끗하면 안에 있는 사물도 뚜렷하게 보인다! 너희는 ‘창문’과도 같다! 너희 육적 지위도 창문과 같고, 네가 영적으로 열을 내어 행해서 얻은 것, 고로, 다른 자들이 인정할 부분 또한 삼위와 선생을 드러낼 창문과도 같다! 너희 모두, 자신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모름으로 자신을 만드는 것에 게을리하는 그 미련한 생각에 그저 갇혀 있지 말아라! 2015_0924 목 계시말씀.hwp7 성삼위와 선생은 너희에게 수없이 많은 말씀들을 주며 너희를 만들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 도와주고 있는데 말씀대로 만들지 않고 그저 어중이떠중이처럼, 육적으로도, 영적으로도 갖춰 놓은 것 없이 무턱대고 삼위와 선생을 증거하겠다고 하는 것은 네 ‘정성’이 부족한 것이며, 삼위와 선생을 그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저 그런 너를 통해서 성삼위와 선생을 드러내고, 증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생이 언제 너희에게 대학에 가서 공부도 하지 말고, 육적으로 뛰어난 자가 절대 되지 말고, 그저 섭리 내에서 어정쩡하게 뛰라고 하였느냐? 너희 중에도 ‘육적 관원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의사도 나오고, 변호사도 나오고, 회계사도 나오고, 대기업 임원들도 나오고, 그 외에도 세상에서도 알아주는 육적 관원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영적 관원들’ 또한 많이 나와야 한다! 부흥강사도 나오고, 목사도 나오고, 전도 공적자도 나오고, 사도들도 나오고 그 외에도 영적으로, 섭리 내에서 아주 잘 알아주는 ‘영적 관원들’도 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너희 모두 반드시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증거를 하더라도, 그 증거에 ‘힘’이 없는 것이다! 너 자신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정쩡하게 행해서는 어정쩡한 증거만 할 수 있다. 육적으로도, 영적으로도 그러하다! 육적 엘리트, 영적 엘리트의 발판 위에 네 ‘삶’ 속에서 증거이다! 모두가 있을 수 있는 위치에서 모두가 할 수 있는 증거로는 안 돼. 너희 모두가 개성체로서 각각 ‘다른 달란트’를 지니고 있고, 그 달란트를 개발했을 때, 모두가 <각 위치에서 엘리트>로서 영육으로 ‘말씀 위’에서 빛을 내며 살아가고 그러한 발판 위에, 너와 같은 분야에 있는 사람들 또한 섭리로 오게 되고, 더욱 삼위와 선생의 사랑을 깨닫게 도와줄 수 있는 것이다! 전에는 그들이 가 본 적 없는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증거’도, ‘달란트’대로, ‘개성’대로다! 네 달란트대로 증거하라고 한다고 해서, ‘증거의 방법의 다양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는 ‘행함’으로 <달란트 계발>이다! 다른 자들까지도 알아주고 인정할 정도로 계발이다! 그리하려면 정말 그 하나에 전념하며 행해야 한다! 만들어진 네 모습을 보여 주며 너의 행함을 일차적으로 증거하고, 그 위에 그러한 행함과 만듦의 근본, 즉, 성삼위와 선생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리되어야 네 증거가 온전해진다! ‘만들어진 실체’를 보여 주지 않고 하는 증거는 모르는 자들이 들었을 때에는 그저 아주 막연하기만 할 뿐이다. 성삼위도, 이 시대도, 선생도 알지 못하는 자에게 아무런 연결 고리도 없이 갑작스럽게 증거를 한다면, 그자의 인식은 굳어 있는 고로, 그저 뜬구름 잡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특히, 그자가 볼 때에 네가 ‘아무것도’ 가진 것도 없고 행해서 이루어 놓은 것도 없는 자라면, 그에게 있어서 너의 말은 더욱 신빙성도 없고, 들으나 마나 한 말로만 닿게 된다는 말이다. 아직 섭리에 오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섭리 안에 있더라도 너보다 잘 모르는 자에게 성삼위, 선생 그리고 이 시대를 증거할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 그들이 볼 때, 네가 ‘멋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남들로 하여금 <되고 싶은 자>가 되어야 한다! 육적으로도, 혼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다른 자들보다 ‘뛰어난 자’가 되어야 다른 자들로 하여금, 너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심어 줄 수 있는 것이다! 삼위가 너희에게 아무리 <개성>에 대한 말씀을 해도 너희는 단순하게, 그저 ‘개성’이라는 말만을 생각하니 그 ‘개성’을 ‘증거’와는 접목시켜 생각하지를 못한다. <육적 관원, 영적 관원>이라는 말을 해도 ‘관원’이 되기 위해서 네가 무엇을 갖춰야 하고 어떠한 것을 행해야 하는지를 현실적으로 보지를 못한다. ‘관원’이란, 벼슬을 하는 자이다! 나랏일을 맡아서 보는 자라는 말이다. 나 성령의 눈에 현실적으로 육적 혹은 영적 관원의 길을 택하고 어떤 관원이 될지 생각하며 그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하는 너희가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 말해 줄게. 육적 혹은 영적으로 ‘관원’이 되고자 하는 자들이 아니라, 그저 ‘소시민’ 혹은 ‘평민’이 되고자 하는 자들과 같다. 벼슬을 하기 위해서는 너 스스로를 만들어야 한다! 나랏일을 보아야 하는데 연구하지 않고, 발전하고자 하지 않고, 그저 늘 네 차원에 머무르고, 아무리 왕이 네게 말해 주어도, 그 말대로도 너 자신을 만들려고 하지 않고, 그저 집에 있는 강아지처럼 사랑만 받길 원하면 되겠느냐? 너희 모두가 ‘선생’을 지키고 싶다고 하지 않았느냐! 네가 무엇으로 선생을 지킬 수 있느냐? 선생을 지키기 위해 기도할 것이냐? 그렇다면 기도라도 확실히 해라! 어정쩡하게 기도함으로 너 자신조차도 지키지 못하는 너희가 어떻게 기도로 선생을 지킨다는 말이냐? 너 자신을 만들어야 선생을 지킨다! 이 말을 명심해라! 세상에서 알아주는 자가 되든지, 영적으로 알아주는 자가 되든지, 너 자신을 무섭게 만들어야 네 입을 통해서 선생을 증거해도 그 말에 힘이 있는 것이다! 그 말이 다른 자들의 뇌리에 꽂히게 되는 것이다! 가정에서 선생을 증거하는 것도 그러하다! 늘 늦잠이나 자고, 청소도 안 하고, 대학에 가서는 공부도 안 하고, 늘 성적도 낮고, 부모에게는 늘 교회에 간다고나 하는데, 네가 아무리 하나님의 6000년 종교역사 이래 최고의 말씀을 듣고 있고, 이 시대 보낸 자를 만났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네 육적 본분을 잊고 해야 할 일조차도 소홀히 하는데 네가 부모에게 증거를 한다고 해서, 그 말이 얼마나 빛을 발하겠느냐는 말이다. 부모님이 볼 때에는, 네 일도 안 하고 교회에만 빠진 모습이지 않겠느냐. 이 섭리에 대한 자부심, 이 역사와 삼위 그리고 선생을 증거하고자 네 마음이 불탄다고 할지라도, 그 ‘심정’만으로는 부족하다! 네가 만들어져야 한다! 네가 만들어져서 보여 줄 것이 있어야 한다! 고로, ‘자신을 만드는 것’ 또한 증거의 일부분인 것이다! 증거를 위해 ‘가장 중요한 발판’을 만드는 것이다! 고로 너를 만드는 것이 곧, ‘선생을 지키기 위한 과정’이다! 이를 제대로 인식하고 너희의 썩은 행실, 썩은 생각을 싹 내다 버려라! 사탄은 늘 너희를 안일하게 만든다. 육적인 것을 멀리하고 영적으로 섭리를 뛸 것이면, 제대로 해야지, 네 차원에서 안주하고 있지 않느냐. 불같이 화끈하게 섭리에서 뛰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그리 뜨뜻미지근하게, 이도저도 아니게, 그저 섭리에서 걸어가는 것도 아니고 엉금엉금 기어가듯 하며 네 시간을 보내느니, 차라리 세상에서 열심히 해서 인정받는 자가 되어 그 타이틀 위에 선생을 강력히 증거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삼위와 선생을 사랑만 하는 것으로는 너 자신 한 명만을 서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너 자신에게만 ‘삼위와 선생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네가 ‘육적 관원’ 혹은 ‘영적 관원’이 되어서 다른 자들이 ‘너’만을 보고도 인정하게 된다면, 그 ‘발판’ 위에 <삼위와 선생>을 뜨겁게 2015_0924 목 계시말씀.hwp8 증거할 수 있고, 그 ‘증거’로 인하여, ‘너 자신’만을 넘어서 다른 자들에게도 ‘성삼위와 선생’에 대한 증거가 먹힌다는 말이다! 이로써 너 하나만이 아니라, 그들도 이 역사 위에 설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캠퍼스들아! 너희 모두 <하늘 관원>이 되어야 한다! 육적 관원이 되든지, 영적 관원이 되든지 너희가 만드는 발판 위에서만이 삼위와 선생을 나타내고 ‘증거’할 수 있는 것이니, 이를 제대로 인식하고 너 자신을 무섭게 만들어라! 내가 지금 너희를 만들라고 하는 말은, 그저 ‘체질을 고치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역시 ‘개인적인 차원’이다. 그것은 ‘아주 기본적인 차원’이다. 너희의 말이 위력을 발할 수 있게 다른 자들이 인정할 자로 너 자신을 만들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너’를 보고 남들이 깜짝 놀라도록 만들어야 한다! ‘너’같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되려면 ‘다른 자들’보다 <뛰어난 자>가 되어야 한다! 네 주변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리해야 나 성령이 너를 쓰고 증거할 때 그 말에 ‘불’이 나가는 것이다! 만들어야 ‘희망’이다! 너희 모두가 육적 혹은 영적 관원이 되어야만 희망이 넘치게 되는 것이다! 그저 ‘소시민’으로 머물러서는 다른 자들로부터 삼위도, 선생도 지킬 수 없는 것이다! 그 차원으로는 ‘증거’를 해도 말의 힘이 약하다. 왜? 성삼위와 선생이 낮은 자이기 때문에 그 증거에 힘이 약한 것이 아니라, 최고 존재자의 증거를 바로 ‘너’를 통해 하기 때문이다! 고로 ‘네’가 그리도 중요함을 다시 인식하길 바란다! 육적으로도, 혼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너 자신을 만듦을 소홀히 하지 말아라! 그저 너 좋으라고 너를 만들라는 말이 아니다. 그저 섭리 내에서 다른 자들과 부딪히지 말라고 너를 만들라는 말이 아니다. 그저 나와 너 사이에 문제가 없게만 하려고 너를 만들라는 것이 아니다! 이 역시 개인적인 차원, 보다 하차원의 생각이다! 너희 모두 생각의 차원을 높여라! 내 진실로 너에게 말하건대, 너를 만들어야만 ‘너’를 통해서 수없이 많은 생명들이 섭리사로 오게 된다! 너를 통해 수없이 많은 자들, 육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멋있는 자들이 섭리사에 세워져서 이 역사가 더 빨리 퍼져 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해서 성삼위의 육, 너희 선생을 지켜야지. 너희가 ‘어린 자들’도 아니고, 그저 ‘기도’로만 선생을 지킬 것이냐? 너희가 선생을 위해 기도하면 그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도할 수 있느냐? 그 얼마나 깊이 기도할 수 있느냐? 너의 한계를 인정하고, 너 자신을 만듦에 소홀히 하지 말아라! ‘만든 것’을 보여 주며 말해야 증거가 되고, ‘행한 것’을 보여 주며 증거해야 증거가 되는 것이고, 네가 ‘삼위와 주와 함께하며 이룬 것들’에 대한 증거를 해야 위력이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한다! ‘너’를 통한 증거이다! 육적으로든, 영적으로든, 또한 육적인 것 혹은 영적인 것 안의 ‘세세한 분야’ 중 단 한 가지에 있어서는 반드시 다른 자들도 너를 인정하고 알아줄 단계까지 올라라! 그렇지 않고서는 네가 그 무슨 말을 해도, 다른 자들이 너를 얕잡아 볼 수 있지 않느냐. 너를 만들지 않음으로 그러한 상황이 왔기에, 전도할 수 없다고 하늘 앞에 변명만을 하는 자가 되지 말아라! 나 성령도, 선생도, 지금껏 너희에게 해 온 말이 바로, ‘너를 만들라’는 말일진대, 너희는 도대체 너 자신을 그 얼마나 만들었느냐? 모두가 하는 일반적인 노력 말고, 그 이상으로, 특별나게 행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다른 자들에게 있어서 너 하나만이 ‘우스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증거하는 성삼위와 선생도, 만들어지지 않은 너 때문에 그 증거를 듣는 자들이 이 상천하지를 통틀어 최고의 가치의 존재자로서 ‘성삼위와 선생’을 보지 못하고, ‘너’라는 창문에 비춰지는 그 우스운 모습으로만 본다는 말이다! 너를 만드는 것에 절대 소홀하지 말아라! 다른 자들에게 보이는 네 모습이 곧, 성삼위와 주를 나타냄을 잊지 말아라! 네가 너 자신을 만듦에 따라서 너를 통해 나타나는 하늘의 모습이 결정 남을 잊지 말아라! 이를 다른 말로 하자면, 네가 만들어짐에 따라서 하늘의 권위를 저 하늘에 닿도록 세워 줄 수도 있고, 반대로 어정쩡하고, 너 자신 간수조차도 하지 못하는 너의 모습으로 인해 성삼위 하나님, 나 성령, 성자 그리고 선생이 다른 자들에게 아주 우스운 모습으로만 비칠 수도 있음을 명심해라! ‘증거’의 기본은 <너 자신을 만드는 것>이다! 남들이 볼 때 네가 그저 우스운 자이면, 그런 너로 인해서 네가 증거하는 삼위와 선생도 그리만 보일 것이다. 남들이 볼 때 네가 내세울 것이 있고, 확실한 자이면, 너로 인하여 삼위와 선생도 확실하고, 내세울 것이 있게 보일 것이다. 남들이 볼 때, 네가 늘 이리저리 흔들리고, 지저분한 자이면 그런 너로 인하여 삼위와 선생도 그저 그 차원으로만 보일 수 있다는 말이다. 너를 가르친 자가 바로 나 ‘성령’이고 ‘선생’이라고 다른 자들에게 말하기 전에, 내가 가르친 대로, 네 모습을 온전히 만들어라! 그리해 다른 자들로 하여금, 너처럼 되고 싶도록 만들어라! 다른 자들도 나 성령과 선생에게 가르침을 너무도 받고 싶도록 만들라는 말이다! 엉망 인생, 어정쩡한 인생이 되지 말아라! 귀한 말씀을 듣고 엉터리로 행하여 어정쩡하게 만들어져서 어쭙잖게 삼위와 선생을 나타내지 말고, 제대로, 확실히 다른 자들보다 더 행하여서 삼위와 선생을 모르는 자들한테도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자가 되고 그러한 발판 위에 멋있고, 영광스럽게, ‘성삼위와 삼위가 보낸 자’를 드러내는 자가 되어라! 그것이 바로 <진정한 증거>이다! <온전한 증거>이다! ‘행해 만들어진 모습’과 ‘그 모습의 근본’을 함께 나타내는 증거이다! 그것이 바로 이 <‘하늘 역사와 선생’을 지키는 것>이며, <섭리를 이어 가는 길>이며, 성삼위와 선생이 ‘너희’에게 원하는 증거이다! 네가 육적 관원이 되고자 하든, 영적 관원이 되고자 하든, 제대로, 확실히, 무서운 정신으로 행해 너를 만듦에 소홀히 하지 말아라! 너희 모두가 각각 개성체이거늘, 그 개성을 묻어 두고, 그저 ‘보통’으로만 행한다면, 네가 삼위와 선생을 증거하여도, ‘보통’인 너로 인해서 다른 자들의 귀에 성삼위와 선생이 그저 ‘보통’ 수준으로만 들린다는 것이다. 네 ‘개성’을 찾고, 그 ‘달란트’를 계발시켜 ‘다른 자들이 행치 못하는 것’을 행한 자가 되어 다른 자들에게 인정을 받으면, 네가 삼위와 선생을 증거할 때, 네가 만들어져서 ‘빛’이 나는 그 부분을 통해 다른 자들이 보다 쉽게 삼위와 선생을 접한다! 2015_0924 목 계시말씀.hwp9 더 나아가서 네 입을 통한 ‘증거’가 별 시답잖고, 하찮은 말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에도 ‘감동’을 주어서 그들도 삼위와 선생에 대해 알고 싶게 된다는 말이다! 사랑해! 너를 만듦에 소홀히 하지 말아라! 땀을 흘리며 행하며 만들어 놓은 것은 절대, 다른 곳에 가지 않는다! 너도 누리고, 삼위도 누리고, 다른 자들도 누리고 더 나아가, 하늘을 모르는 자들까지도 네가 수고하며 만든 그 모습을 보고 근본적으로 가야 할 길을 찾게 되니, ‘너’ 하나를 만들면, 모두가 그 혜택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시대와 성삼위와 선생을 증거하는 ‘나의 몸’이 되고자 하는 너희가 수없이 많은 생명들을 이끌어 오는 ‘돌풍 치는 역사’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나 성령과 함께 ‘증거’할 때, 너 스스로가 전능자를 나타내는 몸이 되기에 반드시 육적으로도, 영적으로도 갖춰야 한다고 일렀다! 너희를 나의 ‘몸’으로 쓰고 ‘증거’하는 증거의 신, 나 성령이다. 안녕! ♥ 09월 24일 목요일 ♥ 연결된 것을 하나로 보아야 주의 돛을 달 수 있다 2015년 9월 24일 목요일 새벽 계시말씀 작성일 : 2015. 7. 10. AM 5:00~05:30 작성자 : 정랑금 (새벽에 기도할 때 선생님 옆에 바짝 붙어 있다고 상상하며 기도를 하는데 집중이 안 되어 꼭 선생님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말씀* 생각이 붙어야 몸으로 안다. 너, 내 곁에 붙어 있는 모습을 상상했잖아. 근데 왜 만나지 않았다고 느끼느냐. 네가 내게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엎드려서 기도하니 저도 모르게 입이 멈추게 되고 집중이 안 되었어요. 죄송해요.) 집중하려고 몸을 움츠렸는데 움츠리니 집중이 안 되지? 그리고 입이 멈추었다고 했지. 그게 무슨 의미이겠느냐. 네가 의도한 것과 다르게 흘러가서 엎드리면 뇌가 자게 되고 뇌가 잠들려 하니 그 입이 멈추는 것이다. 뇌와 몸은 연결되어 있으니 하나라고 하였다. 뇌가 기능을 하지 않으면 육신은 절대 기능을 할 수가 없다. 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핵과 배경이 있는 것과 같다. 핵인 뇌와 배경인 입은 연결되어 있다. 지구상의 핵은 인간이라고 하고 배경은 만물이라고 하지. 만물 속 깊은 곳에 있는 것이 핵이다. 그래서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 않느냐. 배경으로 핵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럼 아까 배경인 입이 멈추는 것을 통해 뇌가 잠든 것을 보이는 것이다. 배경 중 핵을 보이게 되면 그 배경은 상징이 되고 상징을 통해 주인인 핵을 나타낸다. 뇌는 꺼내어 볼 수 없다. 그러나 그 순간 육신의 행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러하다. 입이 멈춰진 것은 뇌가 멈춰진 것이다. 이걸 네가 직접 느꼈으니 왜 연결된 것이 하나라고 하는지 알겠지? (네. 직접 경험하니 더 깨닫게 돼요.) 이걸 확대해서 보자. 뇌의 상징인 입이 멈추어 뇌가 멈춘 걸 확인했다면 연결된 모든 지체가 잠듦과 같다는 것이다. 뇌는 무엇이냐. 뇌는 핵심 성삼위이다. 입은 무엇이냐. 구원자다. 뇌를 통해 입을 움직이듯 성삼위의 역사하심으로 구원자를 통해 구원자의 말과 행위를 보이며 성삼위의 말과 행위를 보이는 것과 같다. 이렇게 보니 확실히 깨달아지지 않느냐? (네. 더 확실히 느껴져요.) 구원자가 말이 없음은 삼위의 역사하심이 없다는 소리이다. 구원자의 말과 행위를 보아 삼위의 역사하심을 보라는 것은 입의 행위를 통해 뇌가 작용하고 있는지를 보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것이다. 나의 말은 영육 간에 통달하는 말씀이며 엄청난 말씀이다. 축소, 확대로 깨달으며 더욱 대입해 보는 것이다. 말씀 가운데 나온 많은 비유들을 겪으며 더 실감 나게 느끼기도 하고 행할 것을 행하여 얻기도 한다. 이것이 말씀이 살아 있음을 증거하기도 하는 것이다. 아까의 것을 한 단계 축소해서 보면 뇌는 구원자이고 입은 부흥강사다. 입이 멈춘다는 것은 뇌가 멈춘다는 것이라고 했지? 부흥강사의 입을 통해 말씀이 새로이 나오지 못한다면 그것은 구원자가 말씀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원자가 살아 있는 기간이 휴거 기간이라고 했지? 이와 같다. 연결된 것을 하나로 보라는 말씀이 엄청난 이유는 모든 말씀을 하나로 묶어 줄 말씀이고, 이해시킬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 하나를 핵으로 깨달으면 모든 것은 그와 같이 그러하다고 또 연결시켜 깨닫는 것이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깨닫는 것이 중하다. 연결된 것을 알아야 핵심을 볼 수 있다. 육으로 모든 것을 보인다. 육은 배경이며 상징이다. 쉽게 눈으로 보이니 그 배경이 전부인 줄 알고 산다. 그러나 그 속에 연결된 것을 보는 자는 보이지 않고 쉽게 통하지 않아도 그것을 위해 살아가니 차원을 높이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것은 삶 속에서도 많이 느낀다. 여느 기사를 보아도 겉에 드러난 내용과 그 속의 의미가 다를 때가 있지 않느냐. 배경을 통해 그 속을 깨달아야 진실을 아는 자이듯 연결된 것을 하나로 보는 자는 진리를 아는 자이다. 진리가 엄청난 이유는 모든 것의 근본이기에 어디에 갖다 놓아도 틀림이 없다는 것이다. 어느 배경에 두어도 맞다 함이다. 핵 중의 핵이라는 것이다. 구원자도 이와 같다. 어느 나라든 어떤 사람이든 모두 구원자와 연결되어 있다. 모든 자가 하나님의 생명이니 그러하다. 그러니 이 말씀은 모두가 들어야 할 말씀이지 않겠느냐. 핵심을 차지하는 자가 배경도 차지한다. 근본을 아는 자가 그 모든 것을 차지한다. 영이 잘되어야 육이 잘되는 것과도 같다. 이 말씀이 운명을 좌우하는 이유는 근본 중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구원자가 삼위와 연결된 것을 깨달아야 구원자를 믿고 시인할 수 있고 이 말씀도 따를 수 있다. 이 말씀을 따른 자는 근본을 잡은 것이다. 근본을 잡게 해 주는 핵심의 말씀이다. 상징을 통해 주인을 보라고 하였다. 상징을 보이는 것이 그 주인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도 연결된 것을 하나로 보아야 알게 되는 것이다. 왜 이 말씀이 모든 것의 근본이 되며 돛을 다는 말씀인지 알겠느냐? (네. 완전히 모든 것에 적용돼요.) 배의 돛이 유연하고 배에 확실히 꽂혀 있어야 바람을 타고 쑥 전진한다. 이 말씀은 근본의 말씀으로 모든 방향에 적용되는 말씀이기에, 이 돛을 확실히 꽂으면 앞으로 나올 말씀의 방향대로 갈 수 있다. 엄청난 말씀이다. 연결된 것을 하나로 보는 것이 차원을 높이는 길이다. 차원이 높은 자는 높은 것을 보는 자가 아니라 깊은 것을 보는 자다. 깊이 있는 것을 깨닫는 자가 차원이 높은 자이다. 2015_0924 목 계시말씀.hwp10 눈에 보이는 쉬운 것, 다 아는 것을 아는 것은 똑같은 차원이지 않느냐. 깊이 보아라. 깊을수록 운명이 갈리고 깊을수록 깨달음의 강도가 다르고 깊을수록 삼위와 주와의 거리가 다르고 깊을수록 모든 인생에도 변화가 온다. 깊은 것을 보는 자는 눈에 보이는 것도 차원 높게 깨닫는다. (정말 엄청난 말씀이에요.) 이렇게 말씀이 엄청나다는 것을 깨달으며 삼위의 권능과 위력을 다시 깨닫는 자가 연결된 것을 하나로 보는 자이다. 꼭 연결된 것을 보는 자가 되어라. 사랑한다. (말씀을 적고 나서 다시 읽어 보니 처음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아 다시 여쭈었습니다. “처음에 생각이 붙으라고 말씀해 주신 것도 ‘연결된 것은 하나’라는 말씀과 연관되나요?”) 생각이 붙으라 함은 집중하라는 것이다. 집중하고 관심으로 바짝 붙어야 같이 있는 것을 알지. 이와 같이 연결되어 하나가 되려면 생각이 붙어야 한다. 몸이 붙어 있다고, 보이는 게 붙어 있다고 연결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핵이 맞아야 연결된 것이다. 핵은 더 영적인 것을 말한다. 나에게 육신이 아니라 생각이 붙어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연결된 것의 의미를 말해 줬다. 핵심이 붙어야 연결된 것이며 연결된 것을 하나로 보는 자가 핵심을 잡는 자이다. 꼭 깨달아라. 안녕. (너무너무 감사해요.) 이제 깊이 기도하여라. 더욱 집중력을 길러 기도해야 말씀을 더 길게 받는다. (네. 정말 정말 엄청난 말씀이에요.) 엄청난 말씀임을 시인하며 행하여라. 너의 행위가 엄청난 말씀임을 깨달았다는 표이다. (정말 경험하니 진짜 깨달아져요.) 그래서 사연이 귀하다는 것이다. 사연을 소중히 여겨라. 네가 깨달을 때마다 내가 함께했음을 잊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