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말씀2015.09.2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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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계시말씀
♥ 09월 28일 월요일 ♥
너의 생각의 강도가 나 선생과의
거리를 좌우한다
작성일 : 2015. 7. 22. AM 1:00
작성자 : 주랑솔
(117 기도를 할 때 저는 늘 선생님께
가서 선생님을 만나며 기도한다고
생각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계속 행하니
선생님과 가까워진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한동안 그리 행하지 않으니 잘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리 기도한 것이
영과 혼으로 선생님과 가까워진 것이
맞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선생님과 완전히 가까워질 수 있는지
궁금해하니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답은 생각이다.
생각이 답이다.
너는 나와 혼체로 만나는 방법도 알고,
황금성에서 만나기도 하고,
계시도 받으니 더 가까운 건 사실이다.
그러니 나와 더 친해질 수 있게 기도하고,
내 심정의 계시를 많이 받아 놔.
그러면서 영적으로
계속 연결되는 단계로 가는 거야.
지금 너희 모두는 나를 볼 수가 없다.
나를 직접 만나고 간 자도 있고,
아닌 자도 있다.
나를 단 한 번도 못 본 자가 있고,
전반기 때 나와 함께했던 자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동일하게
나를 보지 못하는 때다.
간혹 전반기 때 나와 함께했던 자들이
“나는 선생을 봤었다”라고 말하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너희들이 내가 나중에 육신이 자유로워져
뛸 때 전반기같이 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후가 같았냐?
완전히 달랐다.
그와 같이 다를 것이다.
고로 섭리사 모두는 동일하게
나를 모른다고 생각하면 되고,
나를 보지 못했다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 과거에
‘나를 보았고, 보지 못했고’는
중요하지 않은 때가 된 것이다.
그럼 내 육이 매여 있는 이때,
가장 중한 것이 무엇일까?
그것이 바로 생각이다.
두고 봐라. 어떤 자가 나와 친해져 있을지.
나를 생각하는 강도가 얼마나 강했느냐
이것이 너의 운명을 좌우하게 된다.
지금은 과정중이니 결과가 보이지 않아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될 때가 많다.
하지만 나중에 결과를 보면
판도가 달라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올림픽을 나가기 전에 선수들끼리
서로 견제를 하면서 연습을 한다.
그래서 그때 잘하는 사람을 보며
누가 일등 할 것 같다고 점치기도 하고,
판단되기도 한다.
연습할 때 보면
승자를 파악할 수 있으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올림픽 결전의 순간이 되었을 때,
그때 이기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가 되는데,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와 같다.
지금도 영적으로 혼적으로 나를 더 찾고
부르는 자, 나를 많이 생각하는 자가
점점 두드러지는 것을 느낄 수는 있지만
이는 경기 전이기에 그 결과를 다 알 수
없는 것이다.
‘저 사람이 승리하려나?’ 하고 점치듯
‘저리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 중한
것인가?’ 하고 생각될 뿐이다. 그러니
너희는 지금 눈에 보이는 것들만 믿지
마라. 너와 상대의 척도를 판단하지 마라.
그가 지금 나와 엄청 친한 것으로 네가
느낄 수 있어도, 영계에선 상황이 다를 수
있다.
어떤 자는 편지 한 장 잘 못 받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영계에서 보면 나의 곁에 딱
붙어 떨어지지 않는 자도 있다. 어떤 자는
나에게 편지를 그리 받지만 영계에서
나와 거리가 먼 자도 있다. 이 결과는
‘네가 나를 얼마나 생각했느냐’에서
나오는 것이다.
핵이 뭔지 알았느냐?
네가 나를 생각하는 척도라는 것이다.
나는 구원자로서 힘든 자를 더 챙길
수밖에 없고, 키워야 할 자들을 챙길
수밖에 없다.
또한 편지로 이를 다 감당하지 못하니
기도해 줄 수밖에 없다. 나는 너희
모두에게 주는 사랑이 공평하니 내가 주는
사랑으로 척도를 다 따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핵은 네가 나를 생각하는 정도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
(순간 어떤 모습이 보였습니다.
어떤 중고등부 여자아이가 계속
구원자의 이름을 부르며 등하교를 하고,
학교생활을 하고, 공부를 했습니다.
또한 늘 주님을 생각하며 기뻐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때론 주님을 부르며
기도하면서 울기도 했습니다. 그의 영을
보니 선생님 곁에 붙어 있었습니다.
저는 누구인지 너무 궁금해서
“선생님, 이 사람은 누군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알려고 하지 마라.
누군지가 중한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이
이러함을 알려 주는 것이지.”
“네. 부러워서 문득 누구인지
궁금해져서 여쭤봤습니다. 알겠습니다.”)
생각의 강도를 높여라.
이는 생각을 할 때 그냥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생각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설명해 줄게.
네가 피자가 먹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약한 강도의 생각은
‘아, 피자가 먹고 싶다.’ 정도이다.
피자는 생각했지만 정확히 어떤 피자,
어떤 맛 등 자세히 인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네가 생각의 강도를 높인다면
‘어떤 토핑이 들어가고 어떤 맛이 나며
어떤 소스가 들어간, 어디서 파는 피자를
얼마만큼 먹고 싶다.’ 하면서 머릿속에
피자가 이미 그려져 마치 네 눈앞에
피자가 있어 지금 당장이라도 손을 뻗으면
실제로 만질 수 있듯 그리 생각하는 것이
생각의 강도를 높인 것이다.
이리 생각하는 것이다.
육적으로 비유하니 아주 쉽지?
마음에 확 와 닿지?
(네. 완전 와 닿습니다.)
사랑하는 섭리사야. 나의 신부들아.
나를 볼 시간이 지금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리 행하지 못했지?
알고 있다.
생각으로 나를 놓지 않은 자가 몇 없다.
나는 다 안다.
그런데 나는 너희에게 책망하지 않는다.
다만 이리 교육한다.
내 육신과 멀리 떨어져 보지 못하니
영과 혼이 발전하는 시대가 온 것이었다.
내가 너희 육으로 못 보니
‘선생이 나를 모를까, 나를 기억할까?
나는 선생님과 친하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자가 있느냐.
아니다.
절대 다시 말하노니
편지만이 선생과 가까운 척도가 아니요,
나를 만나러 많이 왔다 하여
나와 가까이 있는 척도가 아님을 알아라.
나와 친해져 내 혼과 영과 가까이 있는
자는 나를 늘 생각하고, 강력히 생각하고,
늘 나를 부르는 자다.
지금 내 옆에 가까이 있는 혼들의 이름도
다 확인했고, 어찌 지내는지도 늘 보고받고
있다. 나중에 두고 봐라.
진정 말한다.
나중에 내 육과 만났을 때
이는 명백히 다 드러나게 된다.
혼과 영으로 긴밀히 친한 자는
나를 만났을 때 육으로는 처음 보지만
이름을 말하고 인사를 하는 순간
그 육 또한 전혀 낯설지 않고,
어제 봤던 사람처럼, 함께 살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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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처럼 느껴지게 된다.
또한 그런 자들을 옆에 두려고 할 것이다.
왜? 이미 영과 혼으로 함께 지내고 있으니
육도 그래야지.
나의 사랑들아.
나를 생각하는 강도를 높여라.
‘선생님, 선생님’ 하며 부르는 자들은 많다.
그런데 이들의 머릿속에 나는 없고
그냥 기성인들이 의미 없이
‘주여, 주여’를 외치듯 외치는 자들이 많다.
이런 자는 생각의 차원을 높여야 한다.
이렇게 부른다 하여
나와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고 늘 말한다.
부르기만 하지 말고, 생각하며 부르기다.
내가 너희에게 나를 부르라 함은
말하기 전에 “음...” 이런 의미 없는
말처럼 나를 부르라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많이 부른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그것이 아니라 진정 나를
생각하면서 나를 부르라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생각의 강도를 높여서
나를 생각하고 나를 불러라.
이것이 너희의 운명을 좌우하게 된다.
기필코 그런 날이 온다. 당장은 아닌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날이 온다. 또한 그런
자는 영으로는 이미 나와 딱 붙어 있고
혼도 함께 다닌다. 그러니 이것을 잊지
말고 나를 생각하여라.
과거에 나를 봤고,
나와 친했던 자들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아.
너희도 지금 생각의 강도를 높여 나를
생각하지 않으면,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너희 육의 모습이 변했기에 나는 너를
기억할 수가 없다.
변하기 전의 모습을 내가 알고 있잖아.
그러나 벌써 10년이 훌쩍 넘은 시간 동안
너희도 늙고 변해서 나는 알 수가 없다.
또한 섭리사 모든 자들이 나에게 사진을
보낸다 하나 내가 그 사진으로 너희들을
알아볼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과학 기술들을 점점
최첨단으로 발달시키시면서
사진과 실물이 많이 다른 경우들이 많다.
너희도 인정하지?
그래서 실물을 봐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 고로 생각의 강도다.
이를 알아라.
그러니 너희가 도전할 것은
생각의 강도를 높여 나를 생각하기다.
높은 강도로 자주 생각하기다.
이것이 나와 너의 영과 혼의 거리를
좌우하고 있으며, 이것이 결국 육의 거리도
좌우하게 될 것임을 너희에게 일렀다.
나는 너희에게 답을 말하였으니
행하는 자가 얻을 것이다.
제발 영으로 보아라. 네가 나와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말이다.
내 손을 붙잡고 있는지,
나와 저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은지.
피자 비유를 잊지 말고,
그렇게 생각의 강도를 높여 나를
생각하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못 했다.
하지만 남은 기간은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너희를 사랑해서
오늘도 또 말하는 선생이다.
책망보다 교육을 택하는 것이
내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나타내는 증표니라.
사랑한다.
너희를 사랑하는 강도가
태양의 표면열보다 뜨거운 선생이다.
♥ 09월 28일 월요일 ♥
네 자신에게 갇힌 생각을 하지
말아라! <인식의 폭>을 넓혀라!
작성일: 2015. 8. 29. AM 3:57-4:30
작성자: 주수신
(새벽에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너에게는 어떠한 일이
있었느냐?” 여쭈어 보셨고, 순간 한 가지
일이 떠올랐습니다.
누가 저에게 먹을 것을 주었는데,
그것들은 모두 제가 먹지 않는
것들이었습니다. 마음이 고마웠고 식사를
못 해 너무 배가 고파서 먹었는데 역시나
속이 불편했고 몸에 탈이 났습니다. 먹은
것들을 모두 게워 내야 할 지경이었습니다.
이것을 두고 삼위와 대화를 했습니다.)
* 성령님의 말씀 *
네 마음을 실체로 만들어 표현할 때에는
상대에게 맞춰서 그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을 주어야 한다.
상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네가 좋아하는 것, 너에게 맞는 것만을
생각하며 그에 해당되는 것을 준비해
상대에게 주면 너의 ‘마음’만이 전달되고
그 ‘실체’는 사용하지 못해 안타까운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줄게.
기린과 호랑이가 사랑해 결혼하게 되었다.
기린은 호랑이를 사랑하여서
늘 호랑이에게 맛있는 풀 요리를 해
주었다. 기린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요리였다.
호랑이는 초식동물이 아닌데,
풀을 자신에게 주니 처음에는 기린의
마음을 보고는 그 풀을 먹어 주었다.
그런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자꾸만 풀을
주니 기린의 요리가 꺼려지기 시작하였다.
호랑이는 풀을 먹으니 힘을 쓸 수 없었다.
풀은 맛도 없고, 호랑이에게는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음식이었다.
기린은 호랑이가 자신의 요리를 먹지
않으니 마음이 상했다.
‘이렇게 맛있는 풀을 왜 안 먹지?
나를 사랑하지 않나?’ 생각했다.
자, 이같이 상대에 대해서 잘 모르고
너의 입장에서 최상의 것을 준들
그것이 상대에게도 ‘최상의 것’이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사랑은 ‘상대를 헤아려 주는 것’이다.
사랑하면, 먼저 상대에 대해서 알아보고,
그에 맞게 대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너에게는
‘사랑의 표현’인 것이 상대에게는
‘꺼려지는 것’이 될 수 있다.
너에게는 ‘최고의 것’인 것이
상대에게는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랑을 표현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상대에게 네가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 아니냐.
감사를 표현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상대에게 네가 감사하게 된 부분을
알리기 위함이 아니냐.
너 자신에게 갇힌 생각을 하지 말아라.
나 성령이 너를 가르치는 목적은 딱
하나다. 네가 가진 <인식의 한계>를 보여
주며 네가 ‘무지하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함이다.
무지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배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지 않느냐.
그 발판 위에 너보다 더 넓은 시야를 가진
나 성령의 생각을 가르쳐 줌으로
네 사고의 폭을 넓혀 주기 위함이다!
네가 나 성령과 함께 행하려면,
반드시 너의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더 넓은 것들을 볼 줄 알아야 하며,
더 넓은 것들에 대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너의 것’만이 아니라 다른 것들까지
헤아리며 보다 전체에 해당되는 판단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전체를 보고 행할 줄 알아야 한다.
만일 네가
그 차원의 사고를 하지 못한다면,
너는 늘 네 차원의 생각이나 하고,
말이나 하고, 행실이나 할 것이니
나 성령이 너와 함께 있다고 한들
하늘의 큰 뜻을 펼치지 못한다.
그저 네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역사,
네가 더 잘 살도록 이끄는 역사밖에는
펼 수 없지 않느냐.
개인 차원의 역사가 아니냐.
나 성령은 ‘네 개인의 뜻’만을 위해서
너와 같이 살고자 하는 자가 아니다.
너 또한, ‘네 개인의 발전’만을 위해 사는
자가 아니다.
네 자신을 그리 만들지 말아라!
너의 ‘생각’이, ‘인식’이 무섭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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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생각’대로,
네 ‘인식’대로 너는 만들어진다.
그 만들어진 ‘한계’ 안에서만
사고하고 행할 수 있다!
고로, 성삼위가 선생을 통해
너에게 어떠한 말씀을 해 주더라도
나 성령이 네 옆에 가더라도,
너는 ‘개인의 차원’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어떤 말씀을 해 주어도
‘네가 더 잘 살도록 만들기 위해’ 주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나 성령이 네 옆에
가는 것도, ‘너와 오순도순 살기
위해서’라고 받아들이고, 만물계시를 보여
주어도 ‘너와의 사연’으로만 생각한다.
선생이 너에게 성삼위의 육으로서 가르칠
것을 가르쳐 주어도 역시, ‘너를 사랑하니,
너에게만 영향을 미치기 위해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즉, ‘1:1의 사랑’으로 생각하는
단계에서 끝이 난다는 말이다!
휴거되지 못한 상태에서
너희의 사고의 한계가 바로 그 선이었다.
‘너’를 휴거시키기 위해서,
‘너’와 개인적 사랑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도, 나 성령도, 성자도, 그리고
선생도 너와의 개인적 뜻을 두고 그리
행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때가 바뀌었다!
고로, 너도 네 시야를 넓혀야 한다.
‘개인’에게만 적용시켜 보던 단계에서
이제는 ‘네가 속한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하고, 그곳을 벗어나서 ‘다른 자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보다 더 나아가서는,
‘너의 나라’를 볼 수 있어야 하고,
‘섭리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하며,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인식의 확장’을 이루어야 한다!
생각도, 기도도, 행실도, 인식이
확장된 만큼 그 수준이 결정 난다!
성삼위의 수준, 즉 <신의 수준>에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너와 함께 행할 수 있다!
그래야 네가 휴거된 자로서, 하늘의 뜻을
이루며 가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너희의 인식의 한계대로
나 성령은 네게 ‘뜻’을 둘 것이다!
네 자신만을 뒤집고자 하는 자와는
그 차원의 뜻을 펼 것이고, 섭리사를
뒤집고자 하는 자와는 그를 통해
섭리 전체를 뒤집는 뜻을 펼 것이다!
이 세계를 하나님의 생각으로 뒤집고자
하는 자와는, 그 차원의 뜻을 펼 것이다!
그저 나 성령과 함께 뜻을 펴고 싶다고
해서 <하늘의 가장 큰 규모의 뜻>을 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아, 지혜로워라!
‘너’라는 육을 통해서 이 세상에 역사를
펴야 하니 너의 생각의 한계만큼,
네 마음의 한계만큼,
네 행함의 한계만큼 딱 그만큼만
나 성령이 역사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너를 쓰고
행할 수 있는 것의 한계이다.
생각, 마음, 행함을 결정짓는 것은
바로 ‘인식의 폭’이요,
그로부터 나오는 ‘사고의 폭’이니
나 성령이 날마다 네게 말씀을 주며
너의 인식을 확장시켜 주는 것이다!
날마다 생각해라! 생각의 한계를
뛰어넘도록 나 성령의 코치를 받아라!
그 한계를 뛰어넘는 것의 가장 기본은
‘너’에서 ‘상대’를 헤아리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성삼위와 선생’을 헤아리는
것이다. 그리하면 네 생각의 폭이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된다.
‘너’만을 보다가 ‘남’을 보게 되고,
‘교회 전체’를 보게 되고, ‘섭리 전체’를
보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지구 세계’를
보게 된다!
사랑해!
네가 속한 ‘사회’를 놓고 기도한 것들을
다 받았다. ‘개인’에서 ‘사회’로
네 인식의 폭이 확장되었다.
다음 단계는 ‘지구촌’이다!
안녕!
♥ 09월 28일 월요일 ♥
하늘의 핵과 땅의 핵을
빠뜨리지 마라(예배)
작성일 : 2015. 7. 1 PM 7:07
작성자 : 오은미
(7시 저녁기도 시간에 정확히 맞추어
기도했습니다. 수요예배를 앞두고 기도할
때 ‘이 땅에 거룩한 예배가
실현되었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제 마음에 울리듯 들렸습니다.
“거룩한 예배가 어떠한 것입니까?”
하나님께 여쭈었고, 잠시 시간이 흐른 후
마음으로 들려온 음성을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거룩한 예배는 완전한 예배이다.
거룩한 예배는 성삼위가
진정 받기 원하는 예배이며,
회복된 자들이 드리는 예배이다.
삼위의 신성이 가득하며,
그 신성 앞에 시대 구원자의 완전한
사랑이 만나 하나 된 예배이다.
거룩한 예배는 오직 이 지구 땅
섭리사 교회에서만 이루어지며,
거룩한 이곳에 온 자는
성삼위의 거룩함 앞에 흠이 없어야 한다.
성삼위는 그 신혼골수를 감찰하시며
영혼 속, 생각 속, 깊은 근본까지
살피시기에 온전함을 입어라.
이 땅의 온전한 자를 부르며,
그와 일체 됨으로 온전하여져라.
사랑의 첫 열매, 첫 신부가 남으로
사랑의 복직된 하와가
이 땅 가운데 나타나게 되었듯이,
완전한 자 가운데 더욱 가까이 나아가
완전한 그를 생각함으로 네 뇌 속을 채워
네 뇌는 온전함을 입고 세상의 인식과
땅의 인식과 주관을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성삼위를 완전히 아는 자가 드리는 예배
가운데 성삼위는 좌정하니 섭리사 이곳에
성삼위가 좌정하여 신부가 오직 사랑으로
드리는 예배에 만족하며 기뻐하신다.
사랑아.
이 땅에 온전한 예배가 드려지니 기쁘구나.
사랑아.
이 땅을 통해 온전한 예배를 받으니
나 여호와가 기쁘니라.
(벅찬 기쁨에 목이 메는 하나님의 심정이
전해졌고 기쁨의 눈물이 하나님의 눈에
가득했습니다.)
거룩한 예배는
거룩한 성삼위의 말씀으로 완성된다.
거룩한 예배는 말씀으로 완성된다.
진리 말씀이 있는 곳에 삼위가 좌정한다.
진리 말씀이 곧
하나님이요, 성령이요, 성자이기 때문이다.
(예배를 마치고 사람들이 본당을 빠져나간
후 주님께 감사기도를 했습니다.
"하늘 앞에 인생을 몽땅 드리고 살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해요. 오직 주의 소리만
듣고 오직 주님이라는 목적만 두고
살아가는 자가 될게요." 하고 고백할 때
“하나님이 교육시켜 주시는 것이니
예배교육 끝까지 받아라.” 하셔서
다시 하나님의 마음에 영으로 혼으로
집중하고 기도했습니다.)
사랑아.
예배를 아무리 웅장하고 거룩하게
드린다고 한들 그 영광을 받는 존재가
없으면 그 예배는 결국은 땅의 영광으로
끝나고 만다. 땅의 영광이 하늘 앞에
성삼위 앞에 드려져야 완전하나
영광을 받는 성삼위가 없으면
주인이 없는 예배와 같다.
마치 먹기 좋은 음식을 정성을 들이고
돈을 들이고 시간을 들여서 식탁에 가득
차려 놓아도 그 음식을 먹을 자가 없다면
그 음식은 주인이 없는 음식이 되니 결국
부패하고 썩어 파리와 벌레가 생기게 된다.
2015_0928 월 계시말씀.hwp4
구시대에서 아무리 거룩하고 웅장하게
예배를 드린다고 교회를 세워 올리고
빛깔 나는 영광을 드린다고 하지만
성삼위가 그곳 가운데 좌정하지 않으니,
마치 우상 앞에 제사상을 차려 놓고
절을 하고 경배하고 의식행사를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있겠느냐?
비진리를 가르치고 자기들의 의지대로
풀어낸 말씀을 진리라고 전하니
사탄이 좋아하며 그 영광을 받고 산다.
그러니 섭리사의 예배가 거룩한 것은
그 영광을 받으시는 주인,
주체가 있는 예배이기 때문이다.
비유를 들어 줄게.
아무리 수많은 음식을 차려도
결국 그 음식을 먹는 자가 거지라면
그것은 거지상이나, 사과 한 조각만 올린
상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먹을 자가
성삼위라면 그것은 성삼위를 위한 상이
된다. 너희들의 찬양도 너희들의 기도도
너희들의 사랑과 감사의 고백도 성삼위가
받기에 너희들의 기도에 너희들의 찬양과
고백에 거룩함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핵은 작아도
핵의 역할을 하기에 중하다고 했다.
선생, 이 지구 땅에 작고 작은 자였으나
선생의 기도를 삼위가 듣고,
선생의 행함에 성삼위가 함께하며,
선생이 가는 모든 곳에 성삼위가 동행하니
그 핵이 핵으로 빛이 나고 의미가 있는
것이다.
성삼위 핵! 그 핵이 쓰는 자는 핵이다.
성삼위 핵! 성삼위가 하는 말씀은
이 시대 핵의 말씀이다.
선생을 이 시대 구원의 핵이며
휴거의 핵이라 함은 선생에게
우주영계 핵인 성삼위가 함께하기에
선생을 핵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지구 땅의 핵이라고 칭할 수 있는,
육신을 가진 자는 오직 선생뿐이다.
선생을 통해 지구 땅의 모든 보고도 듣고,
선생을 통해 지구 땅을 대표한
기도와 조건을 받는다.
핵으로 통하는 문은 핵인 선생뿐이다.
성삼위 핵을 만나기 위해
성삼위 핵을 깨닫기 위해
성삼위 핵을 알기 위해서 순서가 있으니
먼저 이 땅의 핵을 만나기,
이 땅의 핵을 제대로 깨닫기,
이 시대 핵을 제대로 알기다.
성삼위의 사랑과 신성을 나타내는 자가
이 땅의 핵 선생이다.
절대 그를 통해 나아오기다.
(아멘. 진정 이 땅의 핵과 완전한 일체요,
그 핵과 연결된 성삼위와 완전한 일체의
삶을 도전하고 이루어 나가겠습니다.
아무런 조건 없는 제가 이 땅의 핵을 알고
살아가는 것이 진정 축복입니다.
너무 감사해요)
왜 거룩한 예배에 대해 교육하는지
알겠느냐? 거룩한 예배 가운데 핵이
빠지면 안 된다. 핵 빠진 예배의
그 영광을 삼위가 안 받는다.
자체 기쁨과 자체 만족으로 드리는
찬양, 기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절대 예배 시간 동안 네 뇌 속, 마음속,
네 영혼 속에 핵을 잊지 말아라.
네가 듣는 이 시대 말씀을 준 자를 잊지
마라. 네 생각 속에 핵이 있어야
말씀의 은혜도 깨달음도 핵폭발하듯
일어난다. 너희들이 하늘 앞에 드리는
주일예배, 수요예배, 새벽예배 가운데
하늘의 핵과 땅의 핵을 빠뜨리지 마라.
네 인생 가운데도
네 신앙에도 핵을 빠뜨리지 마라.
핵이 빠지면 힘이 없다.
핵이 있어야 뜨거움이 있고 힘이 있다.
사랑아.
핵 속의 휴거 보화를 차지하며,
핵 속의 사랑 보화를 찾고,
핵 속의 생명의 보화를 찾아라.
핵을 차지한 자는 지구도 우주도
천국도 다 차지한 자다.
핵 속에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구원역사는 오직 핵으로 완성하기다.
6천 년에 걸려 핵을 찾아
마지막 1000년을 찬란하게 완성할 것이다.
이 역사 속에 핵이 있기에
이 역사는 무한히 창대하게 펼쳐질 것이며,
빛을 발할 것이다.
핵이 있음으로 승리한 이 역사,
휴거의 확신 속에 시대 핵을 알고
핵을 차지한 그 감사를 잊지 말고
그의 노력을 잊지 말며 핵을 지키며,
핵과 일체 되어 완전함을 입자.
핵을 꽂아라.
네 뇌 속에 핵을 꽂고
네 인생에 핵을 꽂아라.
그럼 승리다. 완성이다.
핵을 차지하고 축복된 인생을 살아라.
사랑한다.
성령과 함께
시대 핵을 잡고 살 것을 교육한다.
여호와 천주 네 신랑이 말한다.
♥ 09월 28일 월요일 ♥
9-10월, 섭리사 전도하는 달
작성일 : 2015. 9. 15. 새벽
작성자 : 주달해
(새벽에 전도하고 있는 생명들을 두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불현듯 잊고
있었던 생명과의 약속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그 약속을 잊고 이미 다른 일정을 짜
놓아서 일정이 겹치게 되었는데,
그 생명은 그날 바로 강의를
듣지 않으면 안 되는 생명이었습니다.
전도하는 자들을 두고 기도하니
잊은 것을 생각나게 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너무 놀라고 당황해하고 있는 저에게
선생님께서 “잊으면 죽는다. 잊으면
그 일도 죽고 네 생명도 죽는다.
내가 잊으면 죽는다고 했지.
예사로 듣고 끝내면 안 된다.
네 평생을 두고 함께해야 할 한마디
말씀이다. 지금 바로 연락해서 처리해라.
네가 잊으면 그 아이를 놓친다.”
하셨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해 주셔서 즉시 기도를
멈추고 일정을 조정해서, 그 생명에게
말씀을 무리 없이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선생님께서 전도에 관련해
교육해 주신 말씀입니다.)
* 선생님의 말씀 *
잊으면 죽는다.
잊으면 생명이 죽고 그 일이 죽는다.
이를 아는 말씀, 배워 들은 말씀으로
생각하지 말아라.
너희 평생에 답이 되는 말씀이다.
떠나신 성자를 무엇으로 붙잡겠느냐.
떠나신 성자를 어떤 연고로
돌아오게 하겠느냐.
오직 생각이다.
생각에서 잊지 않는 것이다.
생명들도 이와 같다.
이는 영적인 세계라 생각에서 놓치고
소홀해지면 육계도 그와 같이 동일하게
영향을 받고 흘러간다.
현재 섭리사에 연결되어 있는 자들은
많으나 그만큼 유실도 많기에 생명을
남기기가 너무나 어렵다.
이제부터의 핵심은 유실하지 않는 것이다.
무조건 잡은 자가 책임지고 관리하는
것이다.
올해 선교하는 해로 정하였고
그중에서도 9, 10월은 핵심으로 전도하는
달로 선포하였다. 상반기에 1차 거둬들인
자들을 악착같이 관리하지 않으면
열매가 열 때인 가을을 맞고도
열매가 없는 나무와 같이 되어 유실이다.
한 번 생명길에서 돌아서면
다시금 그 방향을 틀어 돌아오게 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고, 차원 높은 주관권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진 것과 같아서
복직이 거의 불가능하다.
올해 전도가 핵이듯 관리가 핵이다.
전도하는 것은 봄에 씨를 뿌리듯 말씀을
전하는 것이고, 관리하는 것은 싹틔우고
성장하는 것을 농부가 관리하듯 하는
것이다. 그 긴 과정이 무색하게 열매는
순간 열리고 익는다. 주관권을 옮겨
넘어오는 것이 이와 같다.
옮기는 것은 순식간, 한순간이다.
2015_0928 월 계시말씀.hwp5
나무가 성장해서 흠 없이 열매만 열면
그것을 농부가 따 가듯이, 말씀으로 흠
없이 성장한 자들은 삼위와 선생이
영으로도 육으로도 데려온다. 그것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이고
구시대에서 새 시대로 주관권을
옮기는 것이다.
9-10월은 농사지은 것을 가을 맞아
거둬들이듯이 그간 전도하고 기른 자들을
완전히 성약으로 데려오는 기간이라
생각해라.
소수는 이때 만나서 수료도 하지만
거의 겨울을 맞아 어렵고,
일부는 내년으로 넘어가게 된다.
선교하는 해로 선포하신 때에 행하는
조건이 다르고, 이듬해에 때 지나고 지난
것을 행하는 것이 또 다르다. 만사에 때가
있듯 하늘 일도 때를 맞았을 때에 해야
한다.
봄에 씨를 뿌린 자, 가을에 거둘 것이
있듯이 올해 초에 생명 씨를 뿌린 자는
거둘 것이 있다. 늦어도 여름에라도 행한
자는 내놓을 것이 있다.
어떤 씨가 싹을 틔울지 모르고
어떤 나무에서 열매가 열지 모른다.
그러니 올해 오는 자들, 삼위와 내가
선교하는 해로 선포하고 작정하고
불러오는 자들이니 끝까지 붙잡고 길러라.
교육을 철저히 하기다.
퇴비하는 만큼 열매의 속이 꽉 차고
익듯이 말씀으로 교육하는 만큼 속이 꽉
찬 신부들이 된다.
어린 나무일수록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니
어린 자일수록 자꾸 관리해 주고 신경 써
주고 바람에 견딜 수 있는 지지대를 세워
주기다.
가지가 흔들릴 때, 곧 가지가 연할 때
어릴 때부터 키우면 보다 만드는 자가
원하는 대로 기를 수가 있다.
이미 멋있게 만들어져 내 마음에 맞게
완성된 나무는 거의 없고, 있더라도
데려와 옮겨심기도 힘들다.
뭘 몰라도 마음, 생각이 어린아이 같아서
순수하고 가르치는 대로 성장이 빠른
자들을 데려와서 이곳에서 길러 완전한
하늘 사람으로 만들자. 내가 그와 같이
너희들을 다 만들었으니 내 정신으로 해라.
이제 곧 그 때다.
미련 없이 행해서 후회 없이 보내자.
우리 서로 기쁨으로 만나자. 나는 너희들을
만나기 부끄럽지 않을 만큼 다 해 놨다.
앞으로도 나는 계속한다.
고로 더 크고 창대케 된다.
나를 감당할 만한 청중을 만들어라.
생명을 전도하고 관리하고 강의하며
기르는 자들, 수고한다. 앞으로도 나와
함께 쉬지 말고 멈추지 않고 생명
농사짓기다. 영계에서 가슴에 별을 단 자는
나와 함께 행한 자들이다.
하나님의 최고 보람과 기쁨은
인생들을 사랑의 대상체로 만들어
휴거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역시 휴거된
너희들의 보람이기도 하다. 휴거를
이룸으로 이제는 너희가 삼위와 함께
휴거시키는 권세를 가졌으니
놀리지 말고 사용하기다.
하늘까지 닿는 큰 권세와 권한을 가졌어도
사용치 않으면 무용지물이고
행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휴거 간판은 위력이 없고 휴거된 자가
행하는 삶, 행동, 인생만이 보람이다.
간판은 소용이 없다. 하늘 신부, 휴거된
자의 간판을 달았으면 그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이 최고 권세자의 삶이다.
휴거된 자, 너희의 삶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 세계의 것이다.
인간으로서 살 수 있는 최고의 인생이다.
구시대 사람들이 행하면 구시대급
구원이고, 또 그마저도 받기 어렵지만
너희들이 행하면 똑같은 강도로 행해도
휴거를 이루게 된다.
모든 자들의 소망과 소원은 구원이고
휴거다. 이는 각종 종교세계에 있는
자들이나,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나 모두 동일하다.
결국 미래의 보장과 행복을 위하여,
곧 현재 삶으로부터의 구원을 위해서 사는
것이다.
삼위께서는 인간을 보다 차원 높은 곳을
바라고 찾아오게끔, 그리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끔 창조하셨으니
고로 인간으로서 구원을 바라고 원하는 것,
이는 순리이다.
많은 자들이 구원과 휴거를 이루고자 하나
이 모든 것을 보장받고 사는 자는
너희밖에 없다. 구시대 종교인들도 구원을
위하여 살아가나 휴거는 고사하고 인생의
영과 육의 구원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누가 너희에게 영원한 황금성 천국을
보장받게 했느냐. 누가 너희를 영원한 지옥
고통의 세계에 가지 않게 빼 왔느냐.
그를 증거하라.
내가 성자의 몸이 되어 이룬 역사,
재림과 휴거를 증거하라. 그리고 이제는
모든 것을 이루고 떠나신 성자를 증거하라.
구원, 휴거, 성자 승천을 증거하지 않으면
시대 말씀의 핵이 빠진 것이기에 불이
붙지 않는다. 이 시대 섭리와 저 시대가
다른 것이 무엇이냐. 그 유일하고도 영원한
진리를 증거해야 놀라서 새 시대로 온다.
이 시대 말씀을 듣고도 놀라지 못하고
이곳으로 오지 않으면 잘못 가르친 것이다.
1차는 가르친 자의 책임이고
가르친 자의 책망거리다.
제대로 했는데도 못 받아들이고
깨닫지 못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신부 칭함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다.
그런 자는 미련 없이 버리기다.
그러나 뜻있는 자들은 끝까지 가르쳐라.
어려운 자일수록 데리고 오면 보람이고
뭘 잘 모르는 자일수록 가르치면 보람이다.
뜻을 가지고 행하기다.
장점을 보고 기르기다.
내가 너희에게 했듯 하는 것이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