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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2015.09.28 (월)

월 새벽말씀

선포일
2015.09.2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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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28일 월요일 새벽말씀(편집본) 이번 주는 <죄>에 대해서 강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가르쳐 줬습니다. 죄를 모르면 죄를 지을 수밖에 없고, 죄에 대해서 모르면 죄를 짓고도 회개할 줄을 모르고, 죄를 짓고도 회개할 줄 모르면 하나님께 형벌을 받게 되고, 형벌 받게 되면 복 받을 것도 못 받게 되고 고생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하늘과 멀어지게 되고, 자기 분복을 받을 수 없 다고 이런 식으로 말씀이 계속 돌아갔습니다. 지금까지 설교 준비하다가 왔습니다. 나는 설교준비를 어떻게 하는가 하면, 사람들과 더불어 만남으로 합니다. 실제 백성을 파악 하면서, 심리를 파악하면서 합니다. 방금 전화를 한 50분 동안 하고 왔습니다. 한 사람에게. 생명 하나를 살리는 것이 그렇게 힘이 듭니다. “너 그만둬. 나는 너를 심판하겠다.” 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깊은 얘기인데, 죄인들이 예수님을 저주하고 심판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데, 만약 그것을 회피하 고 그들을 위해서 조건을 세워 주지 않았으면 우리가 구원을 못 받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이 사건으로 인해서 우리가 구원받은 것입니다. 이 십자가 때문이 아닙니다. 이 십자가 때문이라고 하면 해석이 잘못된 것입니다. 이상합니다. 십자가는 저주의 틀입니다. 누구에게든지 저주스러운 틀입니다. 사형의 틀입니다. 사형의 틀 때문에 우리가 산 것이 아니고, 그런 여건 때문에! 우리를 그 시대 살고 있던 유 대인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모르고 예수님을 저주하고 죽였다고 할 때, 예수님이 “저들이 모르고 하는 짓이니 용서해 주시고, 나를 믿거들랑 용서해 주세요.” 했습니다. “저 들이 나를 믿거들랑 다 용서해 주세요. 나 죽인 죄를 다 용서해 주세요.”했습니다. 그리고 또 “나를 믿고 내 말을 순종하면 평소에 지은 죄도 용서해 주세요.” 이렇게 했기 때 문에 그 계약대로 된 것입니다. 나도, 참아 주고, 참고 견디고, 위해 주고, 섬겨 주고 그렇게 하면 그로 인해서 여러분이 구 원을 받습니다. 참아주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나로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내가 만일 메시아라면 그게 메시아로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심정의 십자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참아 주는데, 그냥은 못 참습니다. 딱 하나, 예수님처럼 “저가 모르고 하는 일 이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참는 것을 통해서.” 그러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참아주지 못하고 “나 모르겠다.” 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인자(人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다른 한문으로 풀 때 뭡니까? 어질 인(仁)자! 그런데 그것을 한 문으로 풀어도 해석이 다 안 됩니다. 어질다는 말은 좀 어려운 말입니다. 정말로 인자하게 행한다! 그것은 행해 본 사람은 압니다. 너그럽고, 위해 주고, 섬겨 주고, 정말로 사랑해 주며, 정말로 이런 것을 ‘인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자>가 아무나 될 수가 없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습니다. ‘인자는 진짜 줘도 못 하겠구나.’ 깨달았습니다. 줘도 못 하는 것입니다. 아무나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보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 모든 사람을 어떻게 살렸냐? 이것이(인자가) 없으면 못 살립니다. 많이 죽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팔방미인도 이것이(인자가) 없으면 죽습니다. 범처럼 잘빠진 미인도, 아무리 껴안고 사는 미인일지라도 인자가 없으면 죽습니다. 이것을 나는 깨달았습니다. 53년 만에 깨달은 것입니다. 엊그제 깨달았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왜 인자라고 했을까? 인자가 왜 구름 타고 온다고 할까? 인자..’ 사람의 아들이 구름 타고 온다? 그것이 아닙니다. 인자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너그러운 사람이어야 합니다! 가장 너그럽지 않으면 다 죽입니 다. 왜? 이것이 있어서! <칼>이 있어서! 다 칼이 없는데, 이 사람은 <칼>과 <총>이 있습니다. 칼과 총이 있어서 다 죽입니다. 다른 사람은 칼과 총이 없어서 못 죽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있기 때문에 다 죽인다는 것입니다. 인자(仁慈)가 없으면. 예수님을 왜 인자라고 했느냐면, 십자가 위에 올라가도 차마 너그러운 마음으로 가셨습니 다. 그게 ‘인자’입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자기가 인자스럽게 행한 일이 얼마나 있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인자스러운 것이 없으면 안 됩니다. 대통령도 정말 인자스러워야 됩니다. ‘인자한 마음’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 이상, 애인이 자기 애인을 사랑하는 것 이상! 그것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자가 없었으면 지금 여기에 몇 명이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이와 같이 서로 인자하게 하 며 불쌍히 여기며! ‘인자’는, 서로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긍휼이 없으면 심판받는다 했습니다. 인자가 없으 면 심판받고! 인자한 마음이 없으면. 이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여러분들에게도 다 있어야 됩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인자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저 사람은 꼭 심판해야 될 사람인데, 꼭 심판을 안 하는 마음으로서 돌아오려면 참 힘듭니 다. 저놈 하는 짓을 보면 100% 심판을 꼭 해야 됩니다. 하나님도하라고 합니다. 그 정도가 돼 도 인자는 살립니다. 그것을 돌이켜서 살립니다. 그것을 인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나 인자가 못됩니다. ‘<인자>가 구름 타고 온다.’고 했습니다. 그가 오면 사람을 다 살립니다. 인자(仁慈)가 없으 면 못 살립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선생님도 마음이 많이 거칠어졌지만, 옛날에는 참 그 마음이... 지금은 왜 그런가 하면, 쓰린 꼴을 많이 봐서 그렇습니다. 애들로 인해서, 나로 속 쓰리게 하는 꼴을 많이 보여 줘서, 나에게 치명적인 것을 많이 줘 서 성격이 무서워지고 까다로워졌지 그전에는 그런 속 썩이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이 없 었습니다. 지금은 너무 사람들이 나에게 상처를 많이 줬습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고 발을 찍어놨기 때문에 도끼를 늘 의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놈의 도끼가 또 내 발을 찍지 않을까?’ ‘자기가 놓쳤으니까 발을 찍히지.’ 그런 식의 비유가 아닙니다. ‘자기가 놓쳤으니까 자기 발을 자기가 찍었지.’ 하지만, 내 발을 내가 찍었으면 부끄러워서 얘기를 않습니다. 그 사람이 나를 찍었기 때문에 ‘아, 조 심해야겠구나.’ 이것을 의식할 뿐이지, 그래도 인자한 마음이 없으면 섭리를 못 갑니다. 어떻게 이 많은 사람을 그렇게 하느냐 하지만 ‘인자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나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일을 하러 왔습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사랑을 받으러 오지 말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러 와야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계속 인간을 사랑해 준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 랑해 줘야 됩니다. 우리의 소원을 풀려고만 하지 말고, 우리가 하나님의 소원을 풀어 줘야 됩니다. 그래야 크 게 봅니다. 이와 같이 선생님은 그렇게 인생을 출발했습니다. “나는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까, 도와줘봤자 그 모양 그 꼴이니까 이제는 하나님의 일을 열 심히 하면서 하나님의 소원을 풀겠다.” 하나님도 한이 있고, 소원도 있고 원하는 것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풀어주는 사람이 될 때 큰 것입니다. 이것을 내가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한다.” 이게 굉장히 크지요? 그런데 실속적인 것은, 흑자인 것은 뭐가 흑자인가 하면, 이것은(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 흑자가 안 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한다! 이게 하나님에게 흑자가 되는 사랑입니다. 이것을 더 크게 봅니 다. 실속은. 그 사랑을 선생님이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 “하나님, 나 좀 사랑해 주세 요. 하나님, 나 좀 사랑해 주세요. 하나님, 나 좀 사랑해 주세요.” 하고 혓바닥이 돌아가도록 해서 방언이 나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더 크다는 것입니 다. 그것을 사람들이 이해를 못합니다. 어떤 남자가 있는데, 여자를 그렇게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랑의 ‘흑자’가 아니라 ‘투자’입니다. 이 남자가 사랑에 투자한 것입니다. 그 런데 이 여자가 남자를 사랑할 때, 투자가 아니라 완전히 흑자가 나는 것입니다. 사랑의 흑 자가 생기는 것입니다. 남자만 사랑하면, 이게 짝사랑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도(하나님만 인간을 사랑하는 것) 짝 사랑입니다. 그러나 여자도 같이 사랑하면 짝사랑이 아니고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같이 사랑하면 지구에 사랑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는 자의 말을 듣습니다. 그래서 사랑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늘은 신랑, 인간은 신부가 됩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를 보내서 하십니다. 선생님이 오기 전에는 감히 이렇게 못했습니다. 내가 와서, 만들어서 여러분이 이제 신부입 장이 돼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영계에서 오는 것은 금방 잊어버립니다. 영계는 순간에 지나가 버립니다. 잊어버리면 3년 만에 다시 올 때도 있고 10년 만에 올 때도 있습니다. 그것이 영계입니다. 그래서 계시나 말씀이 오면 항상 적으라는 것입니다. 백묵을 깔 때 잊어 버렸습니다. 지울 때 잊어버렸습 니다. 두 단어인데. 도표가 나오는데.. 평소에 내가 사용했던 것인데... 이만큼만 배워도 큰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유대 민족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유대민족을 사랑했는데, 유대 민족이 하 나님을 사랑하면 역사가 끝날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안 됐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랑은 반드시, 여기서 하나님이 보낸 자가 아니고는 ‘이 사랑’을 못합니다. 하 나님이 보낸 자가 이 사랑을 합니다. 그러면 이게(보낸 자와 기다리는 자가) 붙게 되어 있 습니다. 그렇게 될 때 하늘역사에서 짝사랑의 세계를 없애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에는 이 사랑을 한 일이 없었습니다. (이 도표가 찾은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하기 전에 하는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다리를 놓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보낸 자를 모르면 그 시대는 다리를 놓는 사 람이 없는 것입니다. 이 시대도 내가 다리를 놨습니다. 내가 먼저 그 주인이 돼서 했습니다. ‘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구나. 나도 하나님을 사랑해야겠다.’ 이래서 내가 먼저 알아서 모든 사람에게 이 다리를 놔 줬습니다. 유대민족은 여기서 끝났습니다. 그래서 이방사람에게 이 다리가 놔진 것입니다. 원래 진짜 사랑했던 사람에게는 안 되고, 사랑은 여기에다(유대민족에) 투자했는데, 받기는 여기서(이 방에서)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투자>를 ‘유대민족’에게 했는데, 받기는 투자도 안 한 이방사람들이 받았습 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보낸 사람을 이방사람이 먼저 맞이하게 되니까 그들이 하나님께로 연결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거기서 기독교가 나온 것입니다. 그때는 기독교는 이름도 없었습니다. 그것이 세계를 덮어 버렸습니다. 기독교, 천주교. 이것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절대적인 사랑이. 선생님이 이 사랑에 성공한 것입니다. 이 시대에 그 사랑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시대에 하나님의 신부로서, 짝사랑의 입장이 아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그렇게 살려면 첫째는 시대의 ‘온전한 진리’, ‘절대적인 진리’가 있어야 됩니다. <온전한 진리>를 받다보면 하나님이 보내신 온전한 사람을 깨닫게 되고, 온전한 진리를 받 은 자가 사랑할 때에 좋아하지 온전치 못한 자가 사랑할 때는 별로 안 좋아합니다. 여러분들, 미친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면 좋아합니까? 약간 똘아이 같은 남자가 여자를 사랑 한다면 좋아합니까? 진리가 온전치 못한 사람은 똘아이입니다. 돌았다는 것입니다. 온전치 못한 진리를 가진 사 람은 약간 돌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세계에서 돌아갔습니다. 유대인들이 온전치 못한 진리로 돌아가서 똘아이였습니다. 온전한 진리말씀을 깨달은 주님 이 와서 그들을 가르쳐 줬을 때 그것을 믿고 따라왔다면 그대로 연결이 되는데, 못했기 때 문에 안 된 것입니다. 이 도표 쉽지요? 이해가 빨리 되지요? 그래서 그 가르치심이 권세 있는 사람보다 더 잘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르치면 이해가 쏙쏙 되고, 오던 길로 탁 첫마디부터 말할 때부터 적을 것이 생깁니 다. 안 적는 사람들은 이해가 돼서 머리에 새기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안 적는 버릇해 서 안 적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은 잘 이해하지만 영계라서 금방 잊어버립니다. 그게 영계입니다. 영적인 설교이기 때 문에 바로 잊어버립니다. 형이상학적인 세계라 가면 바로 잊어버립니다. 여러분들은 선생님을 통해서 <신부>가 된 것입니다. 모든 자는 신부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신부라면, 나는 신랑입니다. <신랑>이기 때문에 신부에게 인자한 마음을 당연히 가져야 합니다. ‘하이고, 내가 저를 버리면 구원시킬 사람이 없는데..’ 그 마음이 나한테 마지막으로 옵니다. ‘내가 저를 긍휼히 안 보면 긍휼히 볼 사람이 없고, 그냥 끝나는데...’ 그런 생각을 합니다. 마지막에. ‘아이고 이 밤중에 내 차에서 내리면 딴 차가 없는데... 마지막 차인데... 이 허허벌판, 황막 한 눈보라치는 벌판에 내려놓고 가면 곧 얼어 죽는데...’ 그러면서 말을 안 들어도 태우는 것입니다. 가다보면 “아! 선생님, 너무 감사해요. 아까 내려놨으면, 내가 성질낸다고 내려놨으면 거기 서 죽었을 텐데 아우 너무 감사해요.” 이런 때가 가다보면 옵니다. 어떤 미친놈을 데려다 놔도 오랫동안 참고가면 그 얘기를 합니다. 고맙다, 감사하다고 합니 다. 그래서 인자는 영광을 미리 안 받고 그 후에 받습니다. 부모들은 자식을 기른 다음에 그 보 람을 오래 있다가, 수십 년 후에 받는 것입니다. 온전한 투자는 온전한 흑자다! 온전한 투자를 하면 온전한 흑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인간이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섬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옆의 형제를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섬기라고 했습니다. 형제가운데 하나님이 보낸 자 가 있으니까! 유대인들이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겼는데,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형 제를 사랑치 못했기 때문에, 형제가운데 난 메시아를 모른 것입니다. 그래서 당한 것입니다.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형제를 사랑했는데, 형제가운데 메시아가 나왔는데 그것을 몰랐 습니다. 하나님만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사랑했습니다. 예수님은 “너는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형제를 사랑하라.” 하셨는데, 거기도 자기도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를 미워하더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진 것입니다. 이것을 잘못하면 안 됩니다! <회개>는 자기성격도 회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격 때문에 늦게 발효가 됩니다. 늦게 발 효되면 손해 갑니다. <회개>를 안 하면 지옥에 갑니다. 회개를 안 하면 그 죄 때문에 지옥에 갑니다. 회개는 꼭 해야 합니다. 내 앞에 회개를 하면 탕감을 주든지, 용서를 하든지 합니다. 그런데 회개를 안 하면 본인들 이 그것으로 인해서 결국 신앙이 죽더라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은 것 때문에, 그것이 꺼 림이 돼서. 어느 사람은 회개하러 왔는데, 위로하고 그냥 끝냅니다. 그런 것이 있습니다. 자기는 큰 죄라고 하는데, 그 큰 죄를 위로합니다. 왜? 들어보니 밤에 길을 가다가 강간을 당했는데 그것을 심판할 수 있습니까? 위로해 줘야지.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내가 기도 해 줄게” 합니다. 이와 같이 회개를 꼭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거운 죄 짐을 짊어지고 가면 안 됩니다. 내가 그전에 한 꿈을 꾸었는데, 전부 죄 짐을 짊어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좁은 길을 가는데, 걸려서 못 가더라는 것입니다. 그 죄 보따리 때문에! 반듯하게 거기로 가야 되는데. 그 반듯한 길로 빛이 비취는데. 그런데 죄 짐을 짊어지고 전 부 돌아갔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반듯하게 양쪽 벽으로 뚫고 나가는데. 양쪽 벽이 있 고, 사람이 딱 몸만 빠져나가더라는 것입니다. 죄 보따리를 있는 사람들은 돌아가다가 중간에 늙어서 죽었습니다. 가다 죽고, 가다 죽고. 가끔 하나씩만 좁은 길로 오더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 길로 오는데, 가끔 하나씩 그 가운데 길을 타더라는 것입니다. 짐 보따리가 있는 자는 걸려서 못 갔습니다. 그 보따리가 떨어지지 않으니까. 짐 보따리가 딱 들러붙어서, 거머리가 들어붙듯이 딱 들어붙어 있었습니다. 짐 보따리에 써져 있었습니다. 미움, 다툼, 혈기, 의심, 불신 이런 것이 써져 있었습니다. 그 런 것이 죄 보따리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20개씩 짊어진 사람도 있고, 살인의 짐을 지고 짊어지고 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회개하면 되는데 회개치 않으니까 계속 그 길로 가는 것입니다. 돌아가는 길을. 가 다가 인생의 날이 새고, 가다가 시간이 돼서 끝나고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도하다가 환상으로 본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는데 여러분이 하나님을 안 사랑하면, 내가 여러분을 사랑하는데 여러분이 나를 안 사랑하면 <짝사랑>의 세계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지면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랑이 이루어졌을 때는 그냥 그대로 살면 됩니다. 하나님의 6000년 역사가 바로 그런 역사입니다. 뜻을 이루는 것이 힘듭니다. 감이 있는데 그렇게 먹고 싶은데 안 주고 다 먹고 나서 씨 하나를 준 것입니다. “너도 이것을 갖다가 씨를 얹혀서 농사를 지어 봐라.”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 “ 싫다고 하면 이 씨 버리고 간다.” “맛이 어떠냐?” “말도 못 해. 미친다니까.” “조금만이라도, 한번만 먹어보자.” “싫어. 너 이 씨가 싫으냐? 너 씨 주는 것만이라도 감사하라. 싫으면 불태워 버린다.” “씨를 어떻게 하느냐?” “갖다가 일단은 심어라. 심으면 올라올 것이다. 바로 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요만큼 올라올 것이다. 크면 참감나무를 갖다가 접을 붙여라.” 씨를 뿌리면 이런 감이 열지 않습니다. 반 감나무밖에 안 됩니다. 돌감나무밖에 안 됩니다. 접을 붙어야 됩니다. 포도나무도 산 포도나무를 갖다 심으면 산포도밖에 안 됩니다. 그것을 자르고 집 포도를 갖 다가 접을 붙여야 됩니다. 접붙이고 3년 있으면 그때서야 하나씩 두개씩 엽니다. 그렇게 힘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말씀을 준 것도 씨를 준 것입니다. 본인들이 역사를 일으키면서 맛을 봐 야 됩니다. 이만큼 여기까지 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 도>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깨우쳐 주었습니다. 전국과 온 지구촌에 있는 사람에 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깨닫게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쳤습니다. 예수 그리 스도에 대해서 가르쳤습니다. 물론 나에 대해서 이들은 깨닫고 알 것입니다. 의로 채워주시 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시고, 우리 민족을 기억해 주시옵소서. 내가 이들을 축복하오니 모두 잘되고 형통되기를 원합니다. 금주는 죄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죄를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다. 죄의 대가로 형벌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어떤 자는 회개함으로 형벌을 면하고, 어떤 자는 회개했어도 탕감을 받는데 이 모든 것이 순리로 이뤄지도록 함께해 주시고, 주관해 주시옵소서. 이 지구촌 한구석에서 성지땅에서 말했지만, 이 말씀은 세계 각 나라, 각 지역, 온 지구촌 두고두고 후손에게까지 전해야 될 말씀인 것을 믿습니다. 의로 채워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