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15.09.30 (수)
수 계시말씀
- 선포일
- 2015.09.30 (수)
첨부 파일
- PDF
20150930 수 계시말씀.pdf
365.2 KB
2015_0930 수 계시말씀.hwp1
2015년 09월 계시말씀
♥ 09월 30일 수요일 ♥
‘이성(理性)’은 ‘신’의
존재 탐구를 위한 도구이다.
- 가치를 아느냐 모르느냐,
깨닫느냐 깨닫지 못하느냐가
‘이성적 생각’에 달려 있다!
작성일: 2015. 8. 31. AM 1:40-2:44
작성자: 주수신
(새벽 1시 기도 중에 말씀 노트를
보았습니다. 선생님의 말씀 중에
‘이성적으로’라는 단어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이성(理性)’을 놓고
기도했습니다.)
* 성령님의 말씀 *
사랑아,
전능한 성삼위는 너희를 창조할 때,
‘이성(理性)’이라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
나 성령이 너희에게 부여한
<이성(理性)>이란 즉,
‘이치를 밝히고자 하는 성질’이다.
‘근본을 찾고자 하는 성질’이다.
‘하나하나를 낱낱이 따지는 성질’이다.
‘논리적으로 쪼개어 보며 이상(理想)을
찾도록 만드는 성질’이다.
‘날카롭게 꿰뚫어 보며 기준에 따라서
나누고자 하는 성질’이다.
‘이성(理性)’이 있어야만
질서가 유지될 수 있다.
개인을 보아도 그러하고,
개인이 속한 사회를 보아도 그러하다.
이성이란, 보통의 생각보다
‘더 높은 사고 능력’이다.
이성적 사고의 끝은
‘신(神)’과 연결되어 있다! 고로 너의
‘이성적 면모’는
<신의 형상을 닮은 면모>요,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길’은 네가
<신에게까지 닿을 수 있는 길>이다.
그 어떤 생각을 하든
그 사고의 끝이 신에게 닿기 위해서는
절대자를 ‘인식’해야 한다.
늘 나 성령을 부르라고 했지?
늘 대화하려고 하고,
말씀을 가까이하라고 했지?
그것이 바로 너희가 직관적으로
나 성령을 떠올릴 수 있도록
만드는 훈련의 과정이다.
훈련을 거치게 되면,
‘기도’ 혹은 ‘말씀’이라는 연결고리 없이도
늘 나를 떠올릴 수 있게 된다.
고로 어떤 생각을 하든지
나와 연관 지어서 ‘뇌’가 작동하게 되니,
그 어떤 생각을 하든지
나 성령에게로 나아오는 길이 되는 것이다.
그것인즉,
직관적으로 전능자를 인식하는 것이다.
곧 ‘너의 이성이 근본의 뜻대로
사용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성적인 자>는 상황을 잘 파악한다.
상황의 ‘원인’과 ‘과정’ 그리고 그로 인해
초래된 ‘결과’를 잘 파악해 낸다.
어떤 것이 문제가 되었고, 그것과 이어진
결과가 무엇인지를 단번에 알아차린다.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난 자>인 것이다.
이성적으로 사고하면,
보다 실수를 덜하게 된다.
‘충동적인 것’, ‘감정에 치우치는 것’에
반하는 것이 바로 ‘이성적인 것’이다.
(성령님, 천지를 통틀어 최고의 전능자
성령님께서 이 새벽에, 73억 명의 사람들
중 하나인 바로 저에게 오셔서 이렇게
말씀해 주신다는 것이 기적이에요.)
맞다. 내가 너에게 말씀해 주어도,
이 역시도 이성적으로 따져보지 않으면
‘가치’를 모른다. 한 상황이 어떻게
펼쳐지게 된 것인지를 살피지 않으면
그저 ‘당연한 상황’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내가 너를 도와주어도,
너를 위해 무언가를 해 주어도,
축복을 주어도,
너와 함께하는 표를 내어도,
내 사랑을 네 육이 알아볼 수 있도록
표현해 주어도 너의 ‘이성’이 죽어 있으면,
그 모든 것들의 속, 근본을 보지 못하고
‘겉’만을 보게 된다.
그리되면 ‘가치’를 모른다.
‘이성’이란, <겉을 꿰뚫어 봄으로
속을 통찰해 내는 시각>이다.
사건의 결과가
그 순간 네 눈에 보이는 것이니,
사물의 ‘겉’과 같은 것이 아니냐.
사건의 발생 요인들과 과정들은
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사물의 ‘속’과 같지 않으냐.
이성적으로 사고함으로
이것저것 잘 따져보고, 어떠한 것이
더 큰지 잘 재어 보는 자는
그에 대한 달란트가 있는 자이다.
그 달란트 위에 ‘직관적으로 성삼위를
인식하는 것’이 더해진다면, 삼위와
보낸 자가 자신을 위해서 행해 준 것을
더 빨리 알아차릴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그리 행해 주게 된
‘요인’과 ‘과정들’을 살핌으로 해 준 것의
‘가치’를 더 깊게 깨닫게도 된다.
사랑아,
‘이성(理性)’은 진정 너무도 귀한 것이다!
이성적 사고 없이는 그 어떤 지식도,
‘진정으로 아는 것’이 되지 못한다.
특정한 것을 두고 ‘지식’의 단계를 넘어서
‘깨달음’이 되지 못한다!
이성적 사고 없이는
‘유일무이한 귀한 것’을
‘흔해 빠진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무지한 판단을 내린 고로,
무지하게만 행하게 된다.
성삼위와 선생이 너희에게
‘생각을 좀 해라’, ‘연구해라’,
‘생각이 없다’, ‘가치를 모른다’
그리고 ‘깨달음이 없다’라는 말을
하지 않느냐?
너희가 ‘뇌’를 가지고 있으니
온종일 생각을 하는데,
왜 너희 보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며
생각을 좀 하라고 하는 것이겠느냐?
위와 같은 하늘의 말에서 ‘생각’이 무엇을
뜻하는가 하니, 바로, ‘이성적인 생각’을
뜻하는 것이다! 이성적인 생각은
‘합리적인 가치 판단’을 내리는 생각이다.
‘이성적인 생각의 회로’상에 있어서
이유 없이 ‘당연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모든 것들은 ‘원인’에 대한
‘결과’인 것이다.
‘이성’은 신에게 닿는 길이라고 하였다.
모든 결과의 원인을 ‘육’에서만 찾
을 수도 있을 것이나, ‘이성적 사고’와
‘직관적으로 전능자를 인식하는 것’이
만난다면 ‘육’의 것이 결과를 낳는 데에
가장 근본적인 것이 아님을 인식하게 된다.
고로, 그 모든 것들의 원인은
‘신’에게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는 것이다!
왜 말씀을 듣고
어떠한 자는 깨닫고,
어떠한 자는 깨닫지 못하는 것이겠느냐?
왜 어떤 자는 가치를 알고,
어떤 자는 가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겠느냐?
‘이성적인 자’는 한 가지의 말도
그저 넘기지 않고 그 말이 맞는지,
자신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를 두고
낱낱이 따져 가며 ‘연구’한다!
하늘의 말씀을 들을 때에도 그러하다.
‘맞음’의 근거들을 찾아가며,
‘옳음’이라는 답을 낸다.
2015_0930 수 계시말씀.hwp2
그 말씀대로 행했을 때,
자기 자신에게 ‘유익’이 될지,
‘해’가 될지를 생각한다.
‘유익’과 ‘해’가 될 것들을
분석하며 그 가치를 계산해 낸다.
‘유익한 점’이 많을수록 그 가치가 높은
것이요, ‘해’가 있을수록 그 가치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같이 이성적으로 하나하나 따져 가며
생각하면, 한 가지 말에 대한 가치가
산정되니 그에 대해 두루뭉술한 생각이
아니라 강한 확신이 들게 된다!
그 확신으로 인해서 자신의 행실을
고쳐서 나아갈 방향을 잡는 것이다!
이리 이성적으로 살펴서 얻게 된
‘강한 확신과 생각’이 바로 <깨달음>이다!
고로, 깨닫는 자는
‘생각하는 자’요,
깨닫지 못하는 자는
‘생각하지 않는 자’이다.
깨닫는 자는
‘하늘의 지혜’를 받은 자요,
깨닫지 못한 자는
‘인간의 지능’에 갇혀 있는 자이다.
‘이성적인 사고’는 갑자기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너희들은 모두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
세상을 살아가며 육적으로는 이성적으로
따지지 않던 자가 하늘의 말씀만을 두고,
자연스럽게, 이성적으로 따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이성’은 ‘성삼위의 본성’이다!
삼위는 전체를 두고 단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쪼개어 보니, 확실한 길이
어디인지를 ‘정확히’ 알고 갈 수 있는
것이다!
‘확신’은 ‘확실히 아는 것’으로부터 온다.
어정쩡하게 알 때에는 ‘확신’이 들 수 없는
것이다!
말씀과 이 역사에 대해서 확신이 없는 자,
깨달음이 없는 자, 가치를 모르는 자,
이들을 다른 말로 하자면 <이성적으로
하나하나 따져서 생각지 않는 자>이다.
‘뇌’를 가지고 ‘생각’하지 않으니,
뇌가 아둔해져서 사고가 불가해진
자들이다.
‘뇌’가 자체적으로 정보들을 수집해
그 정보의 옳음과 그릇됨, 그리고 유익과
해악의 가치판단을 위해서 낱낱이
따져보는 일을 해야 할진대 그 일을 하지
못하니 ‘육’이 이것 혹은 저것으로 확실히
행치 못하고 이리저리 갈대처럼
흔들흔들하기만 하는 것이다.
나 성령은 ‘이성적인 자들’과 잘 통한다.
여호와 하나님도, 성자도 그러하고,
선생도 그러하다.
‘주관이 확실한 자들’과 잘 통한다!
생각이 없고, 흐리멍덩한 자가 아니라,
‘주관이 확실한 자들’은
하늘과 말이 잘 통한다!
이성적이고, 더 나아가 직관적으로
성삼위를 인식하는 자는 그 어떠한 것을
보더라도 ‘근본자인 삼위’를 떠올린다!
또한 자신이 본 상황을
‘결과’로 두고 그
‘원인’이 되는 것과 그
‘과정’까지도 잘 살피니
<성삼위가 자신에게 해 준 것의 가치>와
<성삼위의 사랑>을 예리하게 알아낸다.
또한, 성삼위가 자신에게
‘결과’가 되는 것들을 보여 줄 때
‘성삼위가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일지 또한 생각하니 그때 나 성령이
‘하늘의 지혜’를 줌으로 삼위의 마음과
생각을 깨닫게 한다!
고로 다른 자들보다 더욱 감사하며
하늘의 심정에 합당한 행위를 하며 살게
되는 것이다!
너 또한
<주관이 뚜렷한 자>가 되어야 한다!
네 주관이 뚜렷하게 되어야 한다는 말은,
‘자기 주관’을 내세우라는 말이 아니다.
‘이성적 판단’을 벗어난 채로 하늘 앞에
네 고집을 피우라는 말이 아니다.
하늘과 함께
이성적으로 사고함으로
옳고 그른 것을 즉시 쪼개내고
너에게 ‘유익’을 주는 것과 ‘해’를 주는
것을 나누고 옳은 것, 유익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다른 자들이 아니라고 해도
그것을 고집해 나가는 것이 바로
‘주관’이다!
주관이 뚜렷한 자가 되어야지,
생각 없이 흐리멍덩한 자가 되면 안 된다.
성삼위와 선생은
생각이 없는 자,
정신이 흐리멍덩한 자,
행실이 화끈하지 못한 자를
제일 싫어한다.
세 종류의 사람의 공통점은,
‘이성적 사고를 하지 않는 자’라는 것이다.
너의 ‘이성’인즉,
<성삼위로부터 난 본성>이다. <‘신’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진리’의 근원이 되는 핵 중의 핵>이다.
<인간을 ‘신’과 같이 살도록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엔진>이다!
‘너의 뇌를 놀리지 말아라!’라는 말 또한,
‘이성적 사고를 하여라!’라는 뜻인 것이다!
이성적인 자들이
자신의 잘못도 잘 인정한다.
아닌 것을 아닌 것이라고 잘 말한다.
이성적인 자들이 회개도 잘한다.
이성적인 자들이란 즉,
계산에 빠른 자들이다.
두뇌 회전이 빠른 자들이다.
이치와 사리분별을 잘하는 자들이다.
눈치가 빠른 자들이다.
이러한 성질 위에
‘직관적으로 성삼위를 인식하는 것’이
더해지면 그 누구보다도
<영적인 자>가 된다!
사랑아, ‘이성’을 통해서 <신>을 찾아라!
네가 전능자의 존재에 대해서 배울 길은
오직 한 길이다.
<‘이성’을 통한 탐구>이다!
‘겉’을 보고 ‘속’을 통찰해 내는 것이다.
이성적인 자들이 심정도 잘 헤아린다.
삼위가 말씀을 통해 ‘심정’을 전하면
그 말을 하게 된 상황을 재빨리 파악하고,
상황의 원인을 하나하나를 따져봄으로써,
그 원인이 어떠한 것을 어느 정도로
뜻하는지를 측정하려 하기 때문이다!
사랑아, 네 뇌에서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부분을
날로 개발시켜라!
하나하나 따져보아야 확실하게 안다!
확실하게 느낀다.
확실하게 깨닫는다.
고로, ‘확신’이 든다!
강하게 ‘실천’하게 된다!
‘이성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네 모든 것을 좌우한다!
‘이성’으로 사탄도 이긴다!
사탄은
‘생각이 흐리멍덩한 자’에게 틈탄다.
뚜렷한 주관이 없어서 그저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괜찮다고
하는 자에게 틈탄다.
자신에게 생각이 없으니까,
사탄이 무슨 생각을 넣어도
그 생각의 옳음과 그릇됨을 따지지 않고,
자신에게 유익을 줄 것인지 해악을
줄 것인지도 따지지 않는다.
고로, 사탄에게 속아 넘어간다!
하나하나 따져보고, 계산해 가며 행하여라!
그래야 속지 않는다. 그래야 사탄도
이기고, 네 갈 길을 빠르게 간다!
휴거 700선까지 가려면 너희 모두,
<이성적 사고>를 잘해야 한다!
이성적 사고의 발판 위에 나 성령이
‘하늘의 지혜’를 부어 준다!
너, 뇌 관리를 잘해.
뇌를 개발시켜라!
‘사고의 폭’을 넓히고,
‘사고의 한계’를 뛰어넘어라!
2015_0930 수 계시말씀.hwp3
사랑해!
더욱 이성적인 자가 되어라.
그러면 나랑 더 잘 통한다.
사랑아,
어떻게 하면 예리하게 성삼위의 심정을
맞추며 같이 살아갈 수 있는지 물었지?
너, 따져 가며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느냐?
내가 한 가지 알려 줄게.
“이 세상에는
‘우연’은 없고, ‘필연’만이 있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다. 보이는
‘원인’ 말고, 그 근본 원인은 <신>이다.”
이것을 통해서 이성적으로 사고하면,
하늘의 심정도 더 예리하게
깨달을 수 있다.
오늘부터 훈련이다!
<근본자>를 생각하고, 근본자를 움직이게
한 그 <근본의 요소들>을 생각해라!
그리하면 상황에 합당하게, 성삼위와
선생의 심정을 더 잘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한다!
사랑하니, 너와 더욱 일체 되고 싶다.
그리해 오늘은 ‘이성(理性)’에 대해
가르쳤다.
안녕!
♥ 09월 30일 수요일 ♥
성령 교육 - 회개
작성일 : 2015. 7. 6.
작성자 : 오은미
(죄를 짓고도 심각성을 느끼지 않고
이전과 동일하게 세상과 이성의 호기심을
버리지 못하는 한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신앙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그의 모습에서 휴거된 자의
기쁨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 줘야 다시금 첫 마음을
회복할지 시간이 지날수록 저의 마음이
애가 탔습니다. 새벽예배를 마치고 기도할
때 큰 귀에 진녹색의 주름지고 늘어진
피부와 눈을 가진 사탄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사탄은 누렇게 색이 바랜 사발에 담긴
액체를 마시다가 저와 눈이 마주치고는
행동을 멈추었는데 혓바닥이 소의
혓바닥같이 아주 크고 두껍고
징그러웠습니다.
마치 작은 거머리가 동물이나 사람의 피를
빨아먹은 후 그 몸이 팽창하듯,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을수록 더 먹고 싶은
욕망이 생기듯 혀는 그 액체를 더 먹고
싶어서 요동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무서운 생각보다는 답답한 마음이 들었고
성령께서 해 주실 말씀이 있으면
해 달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의 말씀*
사랑아.
이 시대에 와서 최고의 축복을
누렸던 자라 하더라도 한 번 죄의 맛을
느끼고 죄의 행위를 하면 더 하고 싶고 더
느끼고 싶어 죄에 중독된 혀가 요동치듯
그 영도 혼도 육도 요동을 치니 어찌하랴.
시작은 호기심이지.
시작은 작은 호기심으로
틈이 벌어진 것이다. 처음에는
‘이래도 될까. 안 되는데’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호기심이 증폭될수록
그것이 그 사람의 뇌 속에 인식으로
길들어져 죄의 행위에 대한 길이 나
버리니 열린 문으로 미친개가 오가듯
사탄이 그 영혼의 손을 잡고
들락날락하게 된다.
죄의 청산이 어찌 쉽고 수월하겠느냐?
편지 한 통으로 한두 번 통회자복해서
울며 기도한다고 죄가 씻어지겠냐?
울고 나서 한순간 마음에 짐을 내려놓은
듯 마음이 편해지니 자기 죄가
청산되었다는 착각을 하고
죄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는구나.
죄의 심각성을 모르니 목숨 걸고
회개하지도 않고 조건을 쌓지도 않는구나.
마치 스스로 더럽혀진 자기 몸을
씻기보다는 꿉꿉하게 냄새나는 몸에
새 옷을 다시 걸쳐 입고 살아가니
겉모습은 온전한가 생각이 들지만
죄의 냄새가 나는 것을 어찌하겠느냐?
나 성령도 성자도 하나님도 선생에게도
그 죄의 냄새가 전해지는구나.
죄의 냄새가 나는 자에게는
절대 성삼위가 가까이 가지 않아.
아무리 신부 말씀을 들은 자라 할지라도
죄의 냄새가 나는 자를 그저 좋아
끌어안고 사랑할 자가 있겠느냐?
너희 한 명, 한 명의
크고 작은 죄를 놓고
네 선생은 어떤 마음으로
삼위 앞에 나아오는지 아느냐?
가슴 조아리며 삼위께 고한다.
죄를 사할 권세를 가진 자가 최종으로
삼위께 고함으로 죄가 사해지기에
호기심으로 시작하여 크고 작은 죄를 지은
자의 죄의 명부를 가지고 온다.
용서의 선물로 섭리사의 죄뿐 아니라
민족과 인류의 죄까지도 용서를 허락한다
하니 그 순간 무서워하며 놀라서
짓던 죄를 멈추었다가 다시 죄를 짓는
자도 있고, 잘하다가 호기심과 유혹에
넘어지는 자도 있으니 아직도
죄 처리 편지가 선생에게 가고 있구나.
구원자가 견디기 힘들 정도의 고통을
대신 받으며 용서의 선물을 주었건만,
이 용서의 선물을 주면
다시는 죄로 인한 보고는 없을 줄 알았지.
그러나 줄어들긴 했으나 아직도 전체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니 이를 지켜보는 나
성령이 제대로 알라고 교육을 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무책임하게 죄를 짓고
그 죄를 마치 다른 자에게 짐 보따리를
맡기듯 선생에게 떠안길 것이냐?
스스로 진정 깨끗함을 받고
회개하려는 마음을 가진 것이냐?
아니면 지도자가, 관리자가 회개하라고
하니 네 마음속 간절함 없이
형식적인 회개를 하는 것이냐?
호기심은 자기가 시작했기에
호기심을 끊고 죄를 끊는 것은
본인이 해야 가장 확실한 답이다.
그 생각과 마음까지
다른 자가 해 줄 수 없는 것이다.
칼로 무를 자르듯이 가위로
불필요한 부분을 싹둑 자르듯이 해라.
본인 스스로
뇌 청소, 마음 청소를 해야 한다.
제아무리 깨끗이 사함을 받았다 하더라도
씻고 난 돼지가 다시 오물이 좋아 그
속으로 뛰어들듯 죄 사함이라는 씻김을
받고 갈증 나는 목을 축이기 위해 물을
마시듯, 다시 죄 속에 네 영과 혼과 육을
내던지며 죄를 마시고 죄를 입고
죄를 취하고 사는구나.
무엇이 그리 좋아
보고 싶고, 하고 싶고, 만지고 싶고,
듣고 싶고, 갖고 싶고, 취하고 싶으냐.
영원한 영광, 영원한 축복인 휴거와
맞바꿀 것이냐? 진정 미련하구나.
무지한 자의 그 끝은
결국 사망임을 기억하여라.
역사 속 무지자들,
세상 속 무지자들이 배우지 못해서
배울 기회가 없어서 무지해졌겠느냐?
자기의 굳은 인식대로
좋은 것을 듣고 배웠으나
그 굳었던 인식이 사망을 낳은 것이다.
모든 것은 때가 있고 기한이 있다.
때가 되니 성자가 승천하였듯,
휴거도 정해진 하늘의 기한이 되면
1초도 지체함 없이
휴거의 문은 닫힐 것이다.
이리 교육하는 것은 살리기 위함이요,
진정 기회가 주어졌을 때
돌이키게 하기 위함임을 알고 해라.
‘마지막이다. 마지막이다’고 거듭 외치니
영원한 기회가 허락될 것이라는 인식 속에
행할 것을 행치 못하니 가슴속 씻지 못할
영원한 후회와 미련을 남길 것이며
희망도 소망도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착각 속에 살아가나
그것은 거짓된 허상이지 진실이 아니다.
2015_0930 수 계시말씀.hwp4
허상 속에 길을 못 찾아 헤매지 말고
실체 역사 속 실제 축복을 분별하고 살길
당부한다.
지금은 네가 흘리는 눈물을
가슴 아파하며 네 눈물을 닦아주는
구원자가 있고, 신앙의 형제들이 있지만
때가 되어 어둠에 갇히게 되면 네
한스러운 고통의 눈물을 사탄이 기뻐
즐거워하며 네 흘러내리는 눈물을
갈증으로 타들어 가는 목을 축이기 위해
물을 마시듯 사탄이 혀를 내밀어 핥아
먹을 것이다.
(성령님, 사탄이 마시던 그릇에 담긴
액체가 더러운 오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죄의 행실을 돌이키지 않는 자들이
지옥에서 영원토록 흘리는 눈물이라고
생각하니 더 끔찍할 따름입니다.)
살려야 하기에
죄에 묶인 자, 죄를 지은 자들을 사랑으로
이끄니 그 죄의 심각성을 모르고 가벼이
느끼는구나. 묻은 먼지를 털어내듯 가벼이
해결될 일이 아니고 살기 위해 스스로도
목숨을 걸고 청산할 것을 청산해야 살 수
있기에 보일 것을 보이고 교육한다.
사랑이 없는 곳, 용서와 복직이 없는
영원한 흑암에 갇히기 전에
진정 돌이킬 것을 권고한다.
시대 사명자의 조건으로 최고의 사랑과
축복을 그저 받다 보니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못된 근성을 뜯어고치고 작은 것에
감사 감격하며 매일 자신을 정결하고
흠이 생기지 않도록 점검하고
네 영, 혼, 육을 단속하기다.
네 눈과 네 귀와 네 입을 단속해라.
죄에 대한 호기심,
세상에 대한 호기심,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절대 잘라 내어라.
그 호기심을 품고 잠시 잠깐 즐기며
기뻐하는 순간 네 뇌는 썩고 병이 든다는
것 알고 온전하기다.
절대 문단속, 마음 단속, 사랑 단속이다.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영원한 축복의 것을
받고도 강도에게 다 뺏기게 된다.
하늘은 주는 책임을 다 했으니
그 축복을 받은 너희는
100% 지켜 내는 책임을 하여라.
정확히 교육하니
정확히 알고 행하기다.
성령 교육이다.
안녕.
♥ 09월 30일 수요일 ♥
미디어의 무서움
작성일 : 2015. 7. 13. 새벽
작성자 : 정가영
(전에 미디어의 실체를 꿈에
보여 달라고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밤에 기도하고 꿈에서 미디어에 대한
각종 끔찍한 영상들을 보게 되었고
잠시 동안 심하게 가위에 눌렸습니다.
하나님과 선생님을 강하게 불렀고,
그 후에 가위에서 풀려 기도하다가
강한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 선생님의 말씀 *
너희에게 이른다.
미디어의 실체, 너희가 알든 모르든
일어나는 미디어의 실상세계를
내 오늘 너의 꿈을 통해 보여 주었다.
네가 보았던 그 장면들은 혼과 영의
실상세계이다. 너희가 미디어를 접하는
순간 너희 혼이, 영이 끌려가는 실상세계를
보아라. 정확히 보아라. 미디어를 보는
자들, 그들의 뇌가 좀먹고 썩고 있다.
그러나 미디어의 실체를 모르니 그 혼과
영의 실상체가 얼마나 끔찍한지 모른다.
모두 미디어를 끊어라.
내 오늘 강력히 이를 통해 말하는
그 실체를 깨닫고 알아라.
(꿈에 제 혼체가 미디어를 켰습니다.
그 미디어의 채널이 바뀌면서
끔찍한 영상들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한 여자가 정신병동 같은 곳에서
침대에 벗은 채로 있었습니다.
채널이 또 바뀌면서 그곳에 다른 여자가
침대에 벗은 채로 누워 있었는데,
한쪽 다리가 잘려 있었습니다.
채널이 계속해서 바뀌면서
청소년, 성인, 할머니 할 것 없이
그 침대에 팔다리가 잘려 있거나 등이
찢겨서 피가 나고 있었고 그들의 얼굴은
몸은 살아 있으나 죽은 시체 같은 표정을
한 채 몸의 일부가 잘려 있거나 끔찍하고
처참한 상태로 있었습니다.
채널이 한 채널씩 올라갈 때마다 끔찍하고
잔인한 상태의 수위가 더 올라갔습니다.)
보았느냐?
이것이 미디어의 실체다.
저들은 미디어에 잠식된 영들이다.
그들의 표정을 보았느냐. 몸은 살아 있지만
정신, 생각이 미디어에 빠져 마치 죽은
시체같이 아무런 표정이 없는 채로 있었지.
이들은 미디어에 중독되어서 자기들의
영들이 저런 끔찍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정신과 생각이
미디어에 빨려 들어가 있다.
사탄에게 찢기고
고통을 당해서 몸은 성한 곳 없이
팔이 잘리고 다리가 잘려 나가고
등이 찢어져 끔찍한 형상을 하고 있어도
그들의 뇌는 이미 사탄들이 주입한
그 썩은 것들에 잡혀서
그 고통도 모른 채 당하고 있구나.
모두 미디어의 실체에 깨어나라.
너희 뇌를 잠식하고 좀먹어
사탄이 그 같은 고통을 주어도 모르는구나.
내가 그리 미디어를 보지 말라,
미디어를 접하지 말라는 이유를 알겠느냐.
(네. 선생님, 너무 충격적이고 무섭습니다.
제발 섭리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이것을
알고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해 주세요.)
미디어의 무서움을 알아라.
너희가 알게 모르게 빠져 있는 것들을
점검해라. 미디어에 빠져서 너희가
나에게로 나와야 할 뇌 사랑문이
닫혀 있는지 점검하여라.
나와 사랑만 하기에도 모자란 시간,
너희가 나와 함께할 그 시간도 부족한데,
그것에 빠져 있을 것이냐?
너희 뇌가 사랑 과일이라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왜 그것을 사탄에 주고
너의 영혼은 갖은 고통을 당하며 있느냐.
모두 미디어를 절대 끊어라.
하지 말라는 것은
네 생명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할 것이냐.
내가 이같이 말하는데도
너희는 미디어를 볼 것이야?
진정 실체를 보아야 충격받고 안 하겠느냐.
미디어를 못 끊는 자들은 기도해라.
그 실체를 보여 달라고 기도라도 해서
미디어를 끊게 된다면 너희가 기도해서
그 끔찍한 실체를 한번 보아라.
너희가 놀라 까무러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애타게 말할 때
내 말을 들어라.
썩은 뇌, 썩은 정신이 되게 하는 미디어,
나와의 사랑이 멀어지게 하는 미디어,
사탄과 관계하는 미디어, 끊어라!
뇌가 사랑 핵심 과일이라고 했는데,
그곳에 사탄의 정신, 생각, 문화를
넣었으니 사탄과 관계한 것이다.
하늘 말씀과 사랑해야지.
너희들이 미디어를 아무렇지 않게 보고
듣고 행하는 그 모든 것을 회개하고
돌이켜라.
너희를 사랑하기에 이같이 말한다.
너희를 너무나 아끼기에 이같이
이야기하는 것이야.
내 말을 듣고 제발, 제발 이제는
미디어와 연을 완전히 끊자.
그 시간에 나와 더 사랑하자.
나, 네 곁에 있는데 네가 미디어를 하는
모습을 보면 속이 터진다.
2015_0930 수 계시말씀.hwp5
나와 사랑하면 그 시간에 나와 더 사랑
소통할 텐데 제발이나 이제는 그만하자.
이 이야기, 내 입에서 그만 나오게 하자.
휴거된 신부들인데 너희 정조와 절개와
권세를 지켜야지. 그깟 미디어를 못 끊어서
되겠느냐? 회개하면 용서하니 미디어를
끊는 조건을 세워라. 너희를 사랑하기에
살리기 위해 하는 말이다.
진정 사랑하여 이른 선생이다.
(더 기도한 후에 주신
성령님의 말씀입니다.)
나 성령이다.
지금 미디어를 볼 때가 아니다.
정신 차리고 말씀으로 시대와 구원자를
외칠 때인데, 그렇게 외칠 자들이 세상
것에 빠져 성령을 부어 준 것을
잊어버리고 나 성령이 준 감동과
성령들을 까먹고 있구나.
너희 선생의 조건으로 준 귀한 성령인데,
그렇게 성령을 까먹는다면 미디어를 보는
자들, 내 너희에게 성령을 끊을 것이다.
정신 차려라. 회개하여라.
내가 준 능력이 땅에서
처참히 밟히게 할 것이냐.
성령으로 받은 은혜를
그런 미디어 따위에 흘려보낼 것이야?
진정 회개해.
어떤 조건으로 받은 성령인데
그렇게 대하느냐.
성령을 거역하는 자,
용서하지 않는다 했다.
미디어를 완전히 끊자.
성령의 능력을 받고 뛰어야 하는 이 귀한
이때를 미디어에 빠지지 말고 제발
선생의 심정을 알고 뛰길 바란다.
나 성령이.
♥ 09월 30일 수요일 ♥
버릴 때
더 이상적인 것으로 채우신다
작성일 : 2015. 6. 25. AM 2:50
작성자 : 이아라
(제 안에, 주님이 바라시지 않는
마음이 있진 않은지 점검하며 기도할 때
주신 감동입니다.)
* 주님의 말씀 *
주를 지키길 원하는 순수한 사랑의 마음,
그 마음 하나 남겨 놓고 다른 잡스러운
마음들은 다 불태우거라.
사람이 다른 마음들을 다 비우면,
내가 나의 것으로 더 채워 주는데
그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부족을 남과 비교하기도 하고,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낙심하기도 한다.
서운함을 타기도 하고,
시기질투 하기도 한다.
바나나를 잡은 손을 놓으면 덫을 빠져나올
수 있는데도 끝까지 바나나를 잡고 놓지
않는 원숭이와 같이 인생들도 그러하다.
각자 자기 앞에
그러한 것이 없는지 생각해 보아라.
차마 자기를 다 버리지 못해 내가 주고자
하는 복을 다 받아 가지 못하는 것이
없는지 말이다.
각자에게 원하는 것이 있는데
‘자신의 것’을 놓지 못해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자신의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자신의 자존심이 될 수도 있고,
자기에 대한 자기애가 될 수도 있고,
어떤 환경일 수도 있으며, 자신의 꿈,
자신의 기대치일 수도 있다. 자기가 잡고
있으려 하는 바나나가 무엇이냐.
그것을 놓고자 아니 하니 내가 뜻한
더 큰 것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왜 놓지 못할까?
이것을 놓으면 더 이상적인 것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확실히 모르기 때문이다. 곧
나와 성삼위를 온전히 믿지 않기 때문이다.
내 사랑을 의심하며 100퍼센트 사랑하지
못하였기에 자기가 가진 것에 집착하며
자신의 것을 챙기는 것이다.
(저도 그러한 것이 있습니다.
완전히 다 버리고 싶습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 자기에 대한
보호본능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권위, 자존심, 자신의 명예를
지키고자 하는 성향이 있다.
그것이 위협을 받으면
자기 속에 버리지 못할
보호기제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위협의 자기인식, 자기주관이고,
그리함으로 생기는 보호기제는
너와 나 사이에 걸림돌일 뿐이다.
진정 하늘의 사랑을 깨닫는다면
자기를 버리는 게 쉬울 뿐 아니라
더 버릴 것이 없는지 찾게 된다.
정말 하늘 사랑에 빠지고, 눈이 멀면
터질 듯한 행복과 감사함으로 주가 원하는
것이 곧 자기가 원하는 것이 되어 마음,
뜻, 목숨을 다해 행하게 되는 것이다.
완전한 마음일체, 생각일체가 되는 것이다.
자기는 주를 위해 자기 것을 다 버린다고
말하고, 주를 진정 사랑한다고 하나 마음
속 깊은 곳에 티끌만 한 자기 보호,
자기 생각이 남아 있지는 않은지
나와 같이 살피자.
‘저 아이는 키가 큰데, 나는 키가 작아.
저 사람은 기질이 대단한데, 나는 이런
기질이야. 저 아이는 정말 소통을
잘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아.
생명을 위해 관리를 그리해도, 내게
남아지는 게 없다. 뜨겁게 사랑받고
싶은데, 사랑을 뺏기면 어쩌지.’ 그 마음
자체가 너희가 가지고 있는 자기 보호이다.
자기주관의 바나나인 셈이다.
그 생각, 그 마음 자체를 다 버려야 한다.
오직 사랑이 가득 차 넘쳐야 한다.
사탄은 대놓고 괴로운 마음이 아니더라도
굉장히 미묘하고, 은밀하게 틈을 타
그런 마음들을 집어넣으니 분별의 눈을 떠
실가닥 같은 그러한 생각들을 뽑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것들을 완전히 없앨 때
너희가 원하는 것들을 다 받을 수가 있어.
하늘의 사랑은 버릴수록 타오르는 것이다.
자신을 다 버리고 비울수록 타오르는 거야.
희생하고 버리면, 아예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적인 것으로 분명코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 천모 성령님, 사랑의
성자이시기 때문이다.
(코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의 코치를 들으니 정말 제 속에
버릴 것이 무엇인지 더 찾게 돼요.)
주와 너 사이에 심정이 안 맞아
걸림돌이 되는 것을 다 없애라.
자기가 영광 받으려는 마음,
사랑만 받으려는 마음,
인정받으려는 마음,
나아가 서운함, 섭섭함의 마음,
명예욕, 권력욕, 시기와 질투 등
네가 은밀히 쥐고 있는
너의 욕심들을 다 내려놓아라.
내가 정녕코 말하니 내려놓을 때
내가 뜨겁게 너를 안을 것이다.
너를 정녕 끝까지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를 지키고자, 너를 보호하고자
너의 여러 가지 보호 장비로 감쌀 것
없다. 그 보호 장비는 너와 내가 뜨겁게
서로를 안는 데 있어 방해물이며 걸림돌일
뿐이니, 다 버리고 다 비울 때, 너와 나는
사랑의 뜨거운 일체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만유의 주,
천주의 주,
땅과 하늘의 왕이다.
그런 내가 말하니,
너를 다 버려 나를 사랑한다 하여도
평생에 후회가 없으리라. 그러니
아무 계산도, 망설임도 없이
내게 뛰어들어 사랑하라.
네 모든 것을 다해 사랑하라.
이 아이, 저 아이와 비교하지 말고,
네 속에 모든 불씨와 모든 정성과 모든
마음을 다 끌어 모아 사랑하자.
뜨겁게 뜨겁게 불태워라.
육의 눈으로만 보지 말고,
영의 눈, 혼의 눈으로 보아야 정확하다.
2015_0930 수 계시말씀.hwp6
혼과 영의 눈을 떠 보지 못한다면
생각으로 유추하고 말씀을 깊이 봄으로
알아라. 인식을 잘못하면 주의 사랑을
의심하고, 스스로 고통 중에 빠지나
주의 인식, 하늘의 인식으로 전환하면
차원이 높아지고 새 사람이 된다.
자기 마음, 자기 생각, 주의 뜻이 아닌
모든 것을 비우면 사랑할 힘이 나게 되고,
새로운 신부로 다시 거듭나 휴거부활,
더 높은 차원의 휴거로 거듭나는 것이다.
지금은 휴거부활의 때이다.
너희가 휴거의 삶을 살면 이제는 그냥
부활이 아니라 휴거부활이 된다.
휴거의 문이 열려 있는 때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가치를
알아라. 가치를 알고 내 말에 순종하여라.
순종함으로 더 일체 되고 더 얻고
더 이루자.
물론 정말 자신을 버리기는 어렵다.
네 맘속의 미묘하게 그릇된 생각을
버리기는 어렵다. 그 생각은 인간의
본성에서 올라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를 버릴 방법은 너를 사랑함보다
주를 훨씬 더 사랑해 버리는 것이다.
너를 의식하지 않고 주를 온전히 뜨겁게
사랑하면 정말 버리기 힘든 인간의
본성까지도 고쳐 뒤바꿀 수 있다.
그것이 인간 복직, 인간 회복이 아니냐.
새롭게 된다 함이다.
하늘을 사랑함으로써 타락으로 떨어진
인간 차원의 삶이 아닌, 오직 신과 일체
된 신의 대상체의 삶으로 회복, 부활되는
것이다, 세상의 이론이 아닌 오직 하늘의
이론, 하늘의 법이니라.
네가 완전히 회복될 때 나는 넘치는
뜨거운 사랑으로 네 그릇에 차고 넘칠
만큼 주고 또 줄 수 있다.
자기 자존심, 자기애, 나에게 완전히
순종치 못하게 만드는 네 마음의 모든
고정관념을 깨라. 하늘 사랑은 기존의
고정관념으로는 도무지 할 수가 없다.
(감사합니다. 주님, 제가 저를 완전히
다 버려 온전히 주와 일체 되고
더 사랑이 불타는 삶을 살게요.)
그래, 사람들은 답을 알고 있으면서
가슴 뜨끔하게 확실히 알지 못하니
고통 속에, 문제 속에 산다.
답을 가르쳐 주면
이제 답 속에 살아야 한다.
아는 것이 빛이라 하지 않았느냐.
자기를 다 버리고 행하면 결국 사랑일체로
완전히 정녕코 채우신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 버릴 것을 찾아 버려라.
속속들이 찾아 버리는 것에 맛을 들여라.
버리는 과정 가운데 네게 사연이 쌓이고,
생각과 마음의 차원이 깊어지고, 더 높은
차원으로 변화되니 참으로 기쁨의 삶,
공의의 삶이 아닐 수가 없다.
사랑하고 사랑해.
너희 신랑 주다.
♥ 09월 30일 수요일 ♥
휴거된 영의 권세
2015년 9월 30일 수요일 새벽 계시말씀
작성일 : 2015. 9. 7. AM 1:00
작성자 : 주달해
(새벽에 휴거된 영들이 하는
천년 혼인잔치에 대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계시록 20장을 보면서 제가
그리스도와 더불어 1000년 동안 왕 노릇
하는 자가 되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했습니다. 또 선생님께 더 배우고
싶다고 기도했을 때 주신 말씀입니다.)
* 선생님의 말씀 *
[요한계시록 20장 4절 :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요한계시록 20장 6절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요한계시록 20장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와 더불어 1000년 동안
왕 노릇 할 자는 휴거된 너희들이다.
또한 심판하는 권세가 있다 하였다.
이 또한 근본으로는 시대 사명자인
나 선생의 권세이고, 그다음으로
각 위치대로 휴거된 너희들이다.
휴거된 영의 권세와 권한을
기억해야 한다. 휴거된 영의
첫 번째 권세는 삼위와 구원자와 함께
뜻하신 생명들을 휴거시키는 권세다.
둘째로는 악인과 악평자들과
사탄들을 심판하는 권세다.
너희 모두는 휴거된 자,
하나님의 최고 소원을 이룬 자들로서
전에도 후에도 없을 이 시대 최고
의인들이다. 하나님은 의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행하신다 하였다.
심판의 근본자는 삼위이시지만
그 심판을 거행하게 하는 자도,
그리고 그 심판에서 뜻을
돌리게 하는 자도 나와 너희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 행하시되
사랑하는 자들의 간구를 들으신다.
이 시대 최고 의인들, 곧 신부들이 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방향을 틀어
잡아 나가신다.
고로 각종 사건들을 두고
알고 기도하는 의인 한 사람의 기도가
그리도 크다. 그래서 선생은 밤낮 쉬지
않고 전 세계의 각 개인, 민족, 국가를
위해 기도한다.
선생은 구원자로서 책임을 지고 기도한다.
실상 휴거를 이룬 너희 모두도 그리해야
한다. 너희가 나와 함께 이 지구의
주인이라 생각하고 기도해야 위력이 있다.
모기들 심판은 에프킬라로 하듯
사탄과 악인들 심판은
너희들의 강력한 말, 곧 기도로 하고
강력한 말씀으로 한다. 나와 너희의
기도를 듣고 삼위께서 행하신다.
고로 너희가 삼위의 심판의 손을 올릴
수도 있고, 삼위의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을 수도 있는 권세자로서 땅의
심판자이기도 한 것이다.
의인의 기도가 위력이 있기에 진실로
지혜롭게, 그리고 사랑으로 해야 한다.
(선생님의 말씀이 너무 엄청나서
“너무 놀라워요! 그 엄청난 권세가
저희에게 있음이 믿겨지지 않아요.
제 평생 이렇게 엄청난 명예와 권세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정말 엄청난 축복이에요!
알고 행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휴거가 그리도 큰 것이다.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룬 것이 그리도 큰일이다.
네 말이 맞다.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명예,
최고의 부,
최고의 권세,
최고의 축복은 오직 휴거다.
신부는 신랑과 동등격 사랑의 대상이지?
자녀는 아버지가 하는 일에
함께하지 못하지만,
신부는 함께 참여할 수 있고
또 함께해야만 한다.
신부의 권한이고 사명이다.
너, 어릴 때 내가 사명을 줬지?
‘배우는 것이 네 사명이다’ 하며 네게
줬다. 하늘이 준 사명은 목숨과 같이 귀히
여기고 숙명적으로 꼭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와 같이 휴거된 모든 자들에게 사명이
있다. 휴거된 영과 육에게 맡기는 하늘의
일이니 목숨과도 같이 귀한 일이다.
삼위가 너희를 휴거시킴은
나와 같이하자 함이다.
2015_0930 수 계시말씀.hwp7
곧 삼위와 같이 다스리자 함이다.
신부는 신랑이 원하는 일을
해 드리는 것이라 했지.
신랑 신부의 동등격 사랑을 하듯,
신랑이 행하시는 일을 그와 같은 마음으로
뜻으로 행해 드리는 것이다.
이는 신과 인간이 동등하다는 것이 아니라
주체 앞에 대상으로서 함께 행한다는
것이다.
너의 영이 삼위와
함께 행하며 기뻐하고 잔치하듯,
육도 기뻐하고 감사하고 잔치하는 것이다.
잔치는 삼위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 최고 잔치이니 휴거된 육의 잔치는
육으로 그 뜻을 함께 이루는 것이다.
각 사람별로, 개성대로 뜻을 이루는 것이
다 다르지만 핵심은 같다.
곧 그리스도와 더불어 1000년 동안
왕 노릇 하는 자로서의 사명이며,
심판하는 권세가 있는 자로서의 숙명이다.
이는 나와 삼위와 함께 시대 택한 자들을
휴거시키는 일이며 지구촌을 네 몸같이
살펴 돌보는 일이다.
휴거된 너희는
개인의 차원을 벗어나 온 인류를 향한
인생을 살아야 함을 정말 기억해야 한다.
휴거된 자로서 그 엄청난 권세를 갖고도,
그 엄청난 사명을 받고도 몰라서 행하지
못한다. 몰라서 나와 같이하는 잔치에
참여하지 않으니 본래 뜻한 바와는 전혀
딴 세상이다.
너희의 권한과 권세를 알아라.
이것을 제대로 알면
진정 이룰 수 있는 때다.
무슨 권세로, 어떤 권한으로 하려느냐.
오직 휴거된 권세다.
영원한 자랑이며 기쁨이다.
육으로 땅에서 시대 사명자인
나 선생과 함께 잔치할 때, 곧 나와 함께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때에
휴거 700선에 도달하게 된다.
700에 오르려면
너희가 나와 함께해야 한다.
개인의 차원을 벗어난 천국의 뜻을 이룰
때에 휴거의 완성인 700선에 도달이다.
이제는 진짜 삼위의 신부로서 행하는
것이다.
차원을 높여야 한다.
육 생각하듯 영 생각하지 말고,
영의 특성을 알고 근본을 생각하기다.
육으로 하는 혼인잔치는 구원자인 선생과
함께 삼위의 뜻을 이루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라.
이것이 너희 근본의 기쁨이며 숙명이다.
운명이니 목숨과 같은 것이다.
노는 것은 곤고해.
뜻을 이뤄야 희망 천국이다.
근본을 가르치고 간다. 선생이다.
안녕.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