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5.10.0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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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계시말씀
♥ 10월 07일 수요일 ♥
성령님의 지도자 교육
- 지금 섭리사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것
작성일 : 2015. 8. 22.
작성자 : 정빛별
(어떤 목사님이 지금 선생님께서 이
시대의 목회자, 지도자는
어떤 것을 갖추길 바라시는지 더 깊이
깨닫고 싶다고 물어보셔서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후 성령님께 이것에 대하여 더 자세히
교육해 달라고 했을 때
성령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령님의 말씀*
지금 선생이 바라는
지도자, 목회자는 어떤 자이냐.
선생이 지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흐름을 영과 혼으로 깨닫고
그 감각으로 뛰고 달리는 자이다.
목회자, 지도자는
선생의 몸이 되어 뛰고 달리는 자이지.
선생의 감각으로 지금 선생이 원하는 것을
선생의 육신이 되어 해 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많은 자들이 지금 선생이 무엇을 바라는지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수준, 자신의
차원으로 목회하고 지도하며 생명들을
대하고 관리하고 있다.
그러니 선생과 소통하지 못하는 것이다.
선생이 그를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선생과 가깝고 친하며 육으로 선생을 많이
본 자라고 해서 선생의 감각이 뛰어난
것이 아니다.
섭리사 전체의 모든 지도자가
지금 선생이 뛰고 달리는 현재 선생의
감각으로 뛰고 달린다면 선생과 발맞추어
멋있게 뛰고 달릴 수 있지 않겠느냐.
선생은 매일 차원을 높이며
매일 부활하고 있다.
선생의 감각은 매일 변화되고 있다.
너희들은 매일 변화되고 있는
선생의 감각을 매일 따라가야 한다.
매일 연구하고 노력해야 한다.
나이가 어리고 많고 연륜이 오래되고
선생 곁에 있었고 없었고는 이제 더 이상
섭리사에서 중요하지 않다.
지금 현재 선생과 얼마나 소통하고
선생의 감각을 얼마나 잘 깨닫고
그 감각을 따라가는지 아닌지가
현재 섭리사 목회자뿐만 아니라
섭리사의 모든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최고의 감각이다.
지금의 선생이 있는데
왜 예전의 선생만 생각하느냐.
‘예전에 가까웠다’는 것은 과거다.
현재가 중요하다.
과거에 머물러 있는 자들이 참으로 많구나.
(성령님, 그럼 현재 선생님의 감각을
배우고 익히고 차원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를 포함한 많은 자들이
현재 선생님의 감각을 너무 배우고 싶어
합니다.)
선생의 차원은 1년 전과도 완전하게
다르며 한 달 전과도 완전하게 다르다.
어제와 오늘의 선생의 모습은 또 다르다.
선생은 매일 부활한다.
현재의 선생을 어떻게 보고 만나고 느낄
수 있느냐? 그런 선생의 삶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선생을 통해 선포되는
주일, 수요, 새벽잠언 말씀이다.
그 말씀 속에 선생이 지금 무엇을
바라는지 선생이 무엇을 중요하게 보는지
세밀하게 다 나와 있다. 그 안에
지도자들에 대한 교육도 매일매일
해 주고 있다.
그러나 그 말씀을 생명시하면서
그 말씀으로 자신의 굳어진 뇌를 고치며
풀고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지도자들이
너무 적다.
선생은 말씀을 매일 받으면서 매일 차원을
높이고 새로운 것을 깨닫고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매일 고치고 변화한다.
차원을 높이는 것이 무엇이냐?
자신의 지금 현재의 것을 버리는 것이다.
못해서 잘못해서 버리는 것이 아니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현재 차원의 것을 버리는 것이다.
지금 너의 위치에서
네가 부족한 것을 깨닫는 것이다.
못하기에 부족한 것이 아니다.
더 잘하는 단계로 올라가려면
지금 차원의 것은 부족한 것이 아니겠느냐.
그것을 매일매일 깨닫고
매일 변화되고 모순을 고치는 자들이
매일 선생의 감각을 받고
매일 선생의 감각대로 행하는 자들이다.
세상에서는 연륜이 오래된 것,
경력이 오래된 것은 노련하고 그 면에서
숙달되어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섭리에서도 똑같이 적용될까?
섭리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날마다 재창조된다.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 차원을 높여
발전한다고 했지.
섭리사에서 그 분야의 전문가는
연륜이 오래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주의 정신으로 무장되어
주의 방법으로 행하느냐 이것이다.
그리하여 하늘의 뜻을 얼마나 주의
방법으로 이루느냐 이것이다.
말을 유능하게 잘하는 자가 있고
선생이 지금 무엇을 외치고 싶어 하는지
그 심정을 아는 자가 있다. 선생은 말은
유능하게 잘하지 못해도 지금 선생의
심정을 정확하게 아는 자를 쓴다.
말을 유능하게 잘하는 자는
선생의 방향을 모르니 자신의 말을 한다.
그리되면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때그때 합당하게 하늘의 방향에 맞추어
빠른 구름이 되어 자신을 만들고
하늘의 방향에 맞추어 감각을 만들고
행하는 자를 쓴다.
그동안 내가 이렇게 해 왔을지라도
하늘이 지금은 그것이 아니라고 하면
바로 과감하게 버리고 변화시킬 줄 아는
자를 쓴다.
이것을 꾸준하게 차원 높여 행하는 자가
선생의 감각을 가지고 뛰는 자이다.
‘선생이 예전에는 이렇게 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지금은 달라졌다. 그렇다면 지금 달라진
선생의 모습을 바로 깨닫고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선생이 너희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
그러나 선생의 감각은 늘 항상 최상급이다.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
왜 그런 줄 아느냐?
선생은 매일매일
바로 전환시키고 바로 흡수한다.
바로 고치고 바로 받아들인다.
매일 깨닫고 매일 변화시킨다.
너희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바로 수정하고 차원을 높인다.
그러니 선생이 나이가 가장 많음에도
어린 10대들과도 다 통하고 매일매일
가장 최신의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생의 감각이다.
그러니 섭리사는 나이가 많다고 해서
감각이 뒤처지는 것이 아니다.
선생처럼 행한다면 어느 누가
감각이 뒤처질 수 있겠느냐.
선생이 행하는 것을 그대로
가장 빨리 행하는 자가 하와의 표상이다.
2015_1007 수 계시말씀.hwp2
그러니 치타가 아니겠느냐.
가장 빨리 선생의 방향을 깨닫고
선생의 감각을 깨닫고 그대로 순종하며
전환시킨다.
단순하게 빨리 행하기에 치타인 것이
아니다. 선생의 감각을 가장 빨리 깨닫고
이해하고 행한다. 그러니 치타인 것이다.
치타는 늘 항상 빨리 뛰는 것이 아니다.
사냥할 때 가장 빨리 뛴다.
즉 선생의 방향을 맞추어 뛰는 감각이
가장 빠른 자를 치타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 섭리사 지도자들은
전체가 한 차원을 높여야 한다.
휴거 이후 안주하는 자들이 많다.
자기 자리에 머물러 있는 자가 많다.
사탄은 그 틈을 절대 노린다.
아무리 지도자라도 자기가 자기 차원에
머물러 있기에 답답한 것이다.
선생처럼 하와의 표상처럼
매일 주의 감각으로 차원을 높이자.
선생은 지금 선생의 감각을 가지고
선생과 함께 뛸 자를 찾고 있다.
그러니 어린 자라도 선생의 감각을 맞추고
차원을 높여 뛰고 달리는 합당한 자가
있다면 바로 쓰고 있다.
당세 때 역사를 이루어야 하니
성삼위는 너희들이 만들어진 만큼
바로바로 쓴다. 그러니 어서 만들어라.
사랑하는 섭리의 나의 기둥들아,
지도자들아, 어서 너 자신을 만들어라.
계속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하지만
너와 함께 역사를 이룰 수 없다.
나는 그곳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이제는 네가
내가 매일 올라가는 그곳으로
올라와야 하지 않겠느냐.
휴거 이후 달라진 것은 이제 더 이상
선생이 애원하지 않는 것이다. 이제는
스스로 올라온 자와 함께 누리며 먹고
마신다. 스스로 너희가 먼저 행해야 하는
때이다.
차원 높여 올라가는 것은 힘들지만
올라가면 그곳은 다른 세계이기에
네가 누리는 기쁨은 수천, 수만 배
더 크다.
사랑하는 나의 신부들아,
사랑으로 사랑하는 자를 만나기 위해
올라오렴. 너와 나의 사랑을 매일 완성하기
위해 몸부림치거라.
선생은 매일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다.
선생과 함께 먹고 마시며 누리자.
승리가 너희들의 것이다.
사랑한다. 성령이다.
♥ 10월 07일 수요일 ♥
선생님의 인성과 신성
- 코끼리바위의 근본 형상
작성일 : 2015. 8. 20. AM 1:08
작성자 : 이수지
(계시를 받으면서 ‘비움이란 무엇일까,
어디까지 나를 버려야 비우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고민을 하던 도중
“선생의 인성과 신성, 근본을 깨달아라.”
하는 생각의 음성이 들렸고 무슨 뜻인지
삶 가운데 성령님께 여쭸습니다.
그 후 수요예배 때
코끼리바위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운동장 쪽에서 바라본
코끼리바위가 또렷이 독수리 형상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어? 너무 확실히
독수리네’ 하고 신기해하다가 말씀이
끝나고 새벽기도를 준비하기 전에
수요말씀을 상고했습니다.
코끼리바위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근본 형상’이 있다는 것을 읽는데
낮에 성령님께서 선생님의 인성과 신성을
깨달으라는 말씀과 연결되어
엄청난 것들이 깨달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충격적이고 심장이 두근거려서
기도를 시작할 때 계속 저의 생각을
비우고 오직 구원자의 조건으로
말씀해 주시길 간구했습니다.
그때 성령님께서
“오늘 깊은 것을 말할 것이니
주변의 소리는 생각으로 다 끄고
오직 내게만 집중해라.” 하시며
준비됐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한 후에 받은 말씀입니다.)
*성령님의 말씀*
사랑아.
오늘 깊은 것에 대해 교육하러 온
증거의 신 성령이다.
오직 이 시대의 구원자를 증거하러 왔으니
너의 생각 속 깊은 것까지 다 비워 내고
오늘 함께 깨달으며 말씀을 잘 적자.
너의 의식, 생각, 모든 것을 내게 맡겨라.
사랑아.
너에게 비움의 근본에 대해 말하고자
볼 것을 보게 하였고
깨달을 것을 깨닫게 하였으며
행할 것을 행하게 하였다.
늘 근본은 이 땅을 창조하고
태초부터 존재하던 삼위께 있으니
근본을 보고 깨달으려면
삼위의 생각을 가지고
삼위가 보는 것, 듣는 것, 말하고자 하는
것, 그 의향을 깨달아야 한다.
삼위의 생각을 받아 ‘근본의 것’을 보자.
비움이란
너의 육성, 생각, 주관을
버리는 것을 말한다.
더 깊게 말하면 본래 삼위의 창조의
뜻대로 인간이 가져야 할 근본의 마음,
정신, 생각을 가지고 있는 상태가
비움이다. 즉, 삼위와 같은 마음, 정신,
생각을 가진 것이 ‘비움’의 근본이다.
이 땅에서 이러한 비움의 근본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 누구인지 아느냐?
바로 선생이다.
‘100% 삼위 앞에 비운 자’
즉, ‘100% 삼위의 마음, 정신, 생각을
가진 자’는 이 땅에 오직 한 사람,
선생이다.
선생,
성자 승천 후 모든 주권을 가졌다 했지.
때를 아는 자는 삼위의 역사의 흐름에
따라 근본을 보는 자이다.
선생에게 주권이 있는 이때,
선생을 진정 제대로 알고 보려면
선생의 인성과 신성을 제대로,
근본대로 깨달아야 한다.
삼위는 때마다, 역사마다
삼위의 육을 세워 뜻을 펴 나갔다.
사랑의 구원역사, 즉, 100% 복직의 역사,
삼위의 마음에 딱 맞는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는 100% 삼위와 같은 자,
육을 가졌지만 신이 되는 자가 필요했다.
구원역사에서 딱 한 사람,
그가 바로 선생이다.
사랑하는 섭리사야,
너희는 선생을 얼마나 제대로 알고
보느냐?
얼마나 선생을 ‘근본’대로 보느냐?
얼마나 선생을 ‘삼위의 눈’으로 보느냐?
선생을 아는 것에 있어서
스스로 만족하고 차원을 높이지 않는
자들이 많으니 오늘 제대로 선생에 대해
눈을 뜨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선생, 너의 곁에서 늘 말씀을 주고
함께 섭리를 뛰니 육으로, 자기 주관으로
판단하는 자들이 많구나.
심정이 타서 말한다.
휴거를 이룬 자들이
영원한 삼위와 구원자의 상대가 된 자들이
상대를 제대로 모르고 있으니 심정이 탄다.
예전과 너희는 다르다.
휴거를 이뤘으니 너희 모두는
‘삼위의 눈’, ‘근본의 눈’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선생과 함께 힘 있게 역사를
이끄는 인물들이 되지 않겠느냐.
선생은 100% 비운 자, 삼위의 근본을
받은 자로서 그 안에 100% 삼위가 담겨
있다. 그러니 그는 이 땅의 구원자이기도
하며 삼위이기도 하다. 이것이
선생의 ‘인성’과 ‘신성’이다.
내가 너에게 근본의
눈을 뜨게 함으로 깨닫고 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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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온전히 비우지 않으면
근본이 보이지 않는다.
흙을 파지 않는 이상 땅속에 숨겨진
나무의 뿌리가 보이지 않듯이 말이다.
비워야, 육의 것을 버려야 영의 근본의
것이 보이니 그 눈을 가진 자라야
역사에 동참하여 지금 삼위와 구원자와
함께 뛸 수 있는 것이다.
너희가 차원을 높이려면
이 비움의 근본을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차원을 높이려는 근본의 이유는
더 높은 사랑을 하기 위함이다.
사랑이 핵인데, 더 차원이 높고 깊은
사랑을 하게 하는 근본은 바로 비움이다.
사랑의 차원이 더디게
머물러 있는 자가 있느냐?
사랑의 차원을 새롭게
하고자 하는 자가 있느냐?
뜨거운 첫사랑을 회복하여
뜨거운 불을 받고자 하는 자가 있느냐?
너 자신을 비워라!
삼위의 눈을 가져라!
근본을 깨달아라!
선생을 제대로 알아라!
그러면 너희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되리라.
아는 만큼 보이고 얻고 누리는 역사이다.
잘 깨달았느냐.
(성령님, 오늘 진정 깊은 것을 깨닫게 해
주시어 정말 감사합니다. 오직 구원자의
조건임을 고백하며 비우게 함도 구원자의
이끄심임을 고백합니다.
성령님, 코끼리바위에서 제가 본 독수리
형상도 의미가 있는 것인가요?
제가 깨달은 것이 맞나요?
정말 비울 테니 가르쳐 주세요.)
다시 확인해 보아라.
독수리 형상이 맞느냐.
(네, 성령님, 다시 봐도 확실히
독수리예요. 정말 맞아요.)
그래. 네가 확고하니 말해 준다.
코끼리바위(옛 두꺼비바위)는 인식을 벗은
대표적인 ‘비움’의 근본을 알린 바위로서,
비움을 실천한 선생을 상징하고
비움으로써 제대로 인식하라는
삼위의 말씀이 새겨진 귀한 보화 바위이다.
때가 되어
선생의 인성, 코끼리 형상과
선생의 신성, 독수리 형상을
나타내고 알리니 이는 때에 맞춰 나
성령이 강림하여 이 땅에 구원자를
증거하고자 함이다.
온 세상에 구원자를 시인하지 않는 자가
없게 때를 알리고 ‘구원자’를 알리는
증거의 역사이다! 이 시대 만물들도
그를 증거하니 깊은 뜻을 깨닫고
그를 삼위의 눈으로 보는 자들이 되어라.
코끼리는 땅의 왕,
독수리는 하늘의 왕이다.
이 두 형상은 짝을 이루어
하늘의 완전함을 땅에 담아냄을 의미하고,
땅의 완성된 표상으로 인한 하늘의 기쁨을
나타낸다.
이로써 하늘과 땅은 일체니라.
선생의 행함, 조건,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 진정 깨닫고
그를 붙잡고 역사를 끝까지 감으로
그 끝에서 온전한 삼위, 근본의 삼위를
보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사랑의 섭리여,
너희가 깊이 깨닫고 구원자와
이 역사를 증거하는 보화들이 되어라.
진정 사랑해서 깊은 말씀을 했다.
증거의 신 성령이다.
♥ 10월 07일 수요일 ♥
휴거 후에 왜 낙심하느냐,
선생의 심정을 알고 기뻐
감사하여라.
작성일 : 2015. 8. 22. AM 2:30
작성자 : 임만길
(최근 휴거 이후에 오히려 낙심하거나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왜 그런지 성령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때 성령님께서 “이것은 모세와 예수
때와 같다”라고 하셨고 출애굽기를 읽어
봐야겠다는 감동이 들어 빠르게 한 번
읽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사랑하는 자야,
지금도 이 섭리에 불평불만 하고
선생을 온전히 믿지 못하며,
말씀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
있으니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불만 하듯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들이 있구나.
종이었던 너희들을 이 섭리에 불러옴은,
애굽에 있던 너희들을 데리고 나옴과
같아서 이미 사망권의 세계에서 나왔으니
그 자체가 구원이요, 생명이다.
사실상 그 주관권에서 나온 것만으로도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구원자의
사명으로만 가능했던 일을 해 주었으니
너희는 기뻐하고 감사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 광야에서 혼자 개척하며 살게 두지
아니하고 가나안까지 이끌고 감은,
구원에 그치지 않고 너희를 휴거시켜
성약성 천국, 황금성에 데리고 가고자 하는
선생의 사랑과 같으나 그 사랑을 깨달아
감사하는 자가 적구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데리고 나와
광야에 풀어놓고 알아서 살게 했어야
했느냐? 너희를 자유케 했으니
이제 가고 싶은 곳에 가서
개척하며 살라고 했어야 했느냐?
너희를 그곳에서 데리고 나와 자유케
했으니 이로써 내가 손을 놓았어야
했느냐?
가나안에 데리고 가려니 광야의 길을
걸어야 했고, 비바람과 환난이 있지
않았겠느냐?
구원자의 사명으로 너희를
사탄, 사망의 주관권에서 풀어 주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할 수 있었으나 너희
선생은 너희를 그 광야에 두지 않고
휴거까지 시키기 위해 그 많은 몸부림을
쳤다.
너희를 가나안에 이끌어 가기 위해
아무것도 없는 그 광야에서 물을 내고,
메추라기와 만나를 내었으며,
아픈 자를 위로하고 너희 형제간의
송사까지 맡아 해결하며 이끌어 갔듯,
너희를 섭리에 불러 휴거를 이루게 하기
위해 그 몸부림으로 말씀을 받아 아침,
저녁으로 너희를 먹이고,
아픈 자를 위해 기도해서 낫게 해 주며,
못 먹고 지내는 자들은 먹이고,
너희 형제간에 시험 들고 힘들어하는
모든 일까지 너희 선생이 십자가를 지며
다 해결해 주었다.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으로
역사했듯, 때에 따라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나 또한 섭리와 동행함을 쉬지 않았다.
그 모든 불평불만을 다 받아 내며
너희를 가나안에 이끌어 오듯,
그 모든 몸부림과 조건으로 너희를
휴거시켰을 때 선생은 마치 온 세상을
다 얻은 듯 그 누구보다 기뻐하고
감사하며 나에게 모든 영광을 돌렸다.
그러나 자신과 같이 기뻐하고
감사하며 영광을 돌릴 것이라 생각하며
너희를 바라본 선생은 무어라 말을
못 할 정도로 큰 충격과 아픔에 빠졌다.
가나안에 들어오면 젖과 꿀이 흐르고
천국과 같을 것이라 생각했던 너희들이
허무함에 빠져 감사는커녕 오히려 더
불평불만 하고 수군거리며 심지어 광야로
되돌아 나가는 사람들까지 생긴 것이다.
오히려 ‘내가 이곳에 오기 위해 그
몸부림을 쳤던가, 이곳이 과연 가나안이고,
이것이 과연 휴거인 것인가? 이 휴거를
위해 그 고통과 몸부림 가운데 섭리를
왔는데 이제 온 자들도 똑같이
휴거되었다면 나는 무엇 하러 그 고생을
했는가.
내가 차라리 애굽에 있었다면
더 좋은 고기도 먹었을 텐데
이제는 돌아가지도 못하는구나...’
하는 자들이 있다.
2015_1007 수 계시말씀.hwp4
제일 앞에 서 있는 자가 이 가나안에
들어오기 위해 광야와 가나안 접경에서
어떤 전쟁을 했으며 어떻게 이 길을
열었는지, 그 큰 이스라엘 무리 가운데
섞여 있던 자들이 다 보았겠느냐.
끝없이 밀려오는 적과 어려움을 이겨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과 조건이 있었는지
그것을 다 보았겠느냐.
그저 앞 사람만 보고 걸으며 가나안에
따라 들어온 자들이 그 가치를 어떻게
다 알꼬.
아무 조건 없이, 이제 온 신입생이
똑같이 휴거를 이룬 것이 허무하냐?
그러면 너희 선생이 광야에서 이제 막
태어난 아이들은 다 버려두고 어른들만
데리고 가나안에 들어왔어야 했느냐?
너희가 이룬 휴거가 아니니
그 가치를 어떻게 다 알겠느냐?
너희가 싸워 얻은 가나안이 아니니
그 귀함을 어떻게 다 알겠느냐?
하지만 그럼에도 너희 선생은
너희에게 이 가나안 땅을 주었다.
아무 값 없이 너희에게 주었다.
이제 이 주인이 된 땅에서, 기뻐 감사하며
씨를 뿌리고 거둬야 이 땅을 얻은 가치는
모를지언정, 그 열매와 결실의 기쁨은
누릴 수 있지 않겠느냐?
너희가 가꾼 땅이 아닌데
아무리 가나안일지언정
열매를 얻을 수 있겠느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일지언정
뿌리고 가꾸는 자가 없는데 얻을 수
있겠느냐? 그러면 모세가 거짓으로
백성들을 이끈 것이냐?
말이 바뀌고, 말씀이 바뀐 것이냐?
휴거가 되면 걱정, 근심 없고
천국이라 했던 말이 거짓이었느냐?
아무리 휴거가 되었어도 너희가 행하지
않는데 어찌 기쁨과 감사의 열매를 얻을
수 있겠느냐?
이제 가나안에 들여놓았으니,
500선으로 씨를 뿌리고 행한 자는
500선의 기쁨과 감사와 천국의 삶을 살
것이고 700선의 행실을 하는 자는
700선의 천국에 살지 않겠느냐?
그럼 700선이 끝이겠느냐?
7은 완전수가 아니냐.
귀 있는 자는 깨달을지니라.
왜 홍해의 기적을 잊었느냐?
너희를 그 기성과 이방, 세상에서
꺼내 오기 위해 너희에게 보여 주었던
그 기적을 왜 잊었느냐?
너희를 휴거시키기 위해 너희 선생이
너희와 함께했던 섭리사의 그 모든
역사를 왜 기억하지 못하느냐.
이제 가나안은 너희 것이 되었다.
이제 이 휴거는 너희 것이며,
애굽의 병사가 따라오지 못하듯
이제는 그 어떤 사탄도 너희를
건드리지 못하게 휴거의 주관권 안에
들여다 놓았다.
그런데 이 가나안에 들어와서도
종이 되어 살겠느냐?
이제 이곳은 밟는 대로
너희 땅이 되는 곳이다.
이 땅을 선생의 조건으로
너희에게 거저 주었는데
그 밟는 수고, 씨 뿌리고 거두는
노력도 하지 않고 받기만 하려느냐?
차라리 광야가, 애굽이 낫겠다며
돌아가려느냐?
기성에서 하늘 구름을 쳐다보며 휴거를
기다리듯, 섭리에도 자기 주관과 생각의
차원으로 휴거를 바라본 자들이 많다.
말씀은 바뀐 것도 없고 틀린 것도 없다.
휴거에 대한 모든 말씀을 다 이루었다.
이 섭리에 와서도 섭리 안의 기성화되어
가는 자들이 있으니 스스로를 조심해라.
모세가 40일간 시내 산에서 말씀을 받는
동안 그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며 우상을
섬기듯, 선생이 보이지 않는 이 한 때 두
때 반 때의 기간을 견디지 못하고
무리를 짓고 수군거리는 자들이 있으니
그들을 따르면 사망의 길임을 잊지 말아라.
잊으면 죽는다.
너희가 애굽에서 종이었던 것과 그곳에서
어떻게 나와 이 길을 걸어왔으며
이제 휴거를 이루어 가나안에 들어와
있음을 잊지 말아라.
이 성약 휴거의 가치와 기쁨을
구약시대 애굽, 신광야, 가나안으로
어찌 다 비유하며 표현하겠느냐.
천국의 기쁨과 행복을 어찌 이 땅의
언어로 다 표현해 알게 하겠느냐.
끝이 없는 기쁨과 행복의 섭리세계다.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무한한 축복과 희망의 역사다.
생각을 바꿔라. 생각이 신이다.
너를 신으로 만들어라.
이제는 이 휴거의 섭리사에서
신이 되어 그 기쁨과 행복으로 살아라.
밟는 대로 네 땅이 되리니,
행한 대로 휴거의 기쁨과 감사가
흘러넘치리라.
애굽에서 이 휴거까지,
너의 모든 인생 가운데 함께했고
앞으로도 동행할 전능자 여호와니라.
♥ 10월 07일 수요일 ♥
하나님의 성산,
대둔산과 나의 수도생활
작성일 : 2015. 9. 13. AM 12:00
작성자 : 정수현
(대둔산에 다녀왔습니다.
선생님과 성삼위의 너무도 깊은 사연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인류의 죄를 위해,
우리를 위해 조건을 세우신 선생님의
사랑에 보답해 드리고 싶다고
기도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선생님께서
대둔산에 대해 더 말씀하고 싶으신 것이
있다면 받고 싶다고 기도했습니다.
이후, 집에 돌아오니
너무 늦은 시간이었고 몸이 피곤했습니다.
그래서 잠깐만 누웠다가 기도하자는
생각에 등을 붙이고 누웠는데, 바로 그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고 싶다고 하셔서
‘선생님, 조금만 쉬었다 받을게요.’
하고 모른 척하며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이나 더 계속 말씀하시니
제가 낮에 기도했던 것이 생각나 벌떡
일어나 받은 말씀입니다.)
* 선생님의 말씀 *
사랑아, 적어라.
오늘 나의 귀한 성산에 다녀왔지?
그곳에 대해 내가 할 말이 많노라.
나의 사랑의 사연이 가장 많은 곳,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하나님을
찾아다니며 이곳저곳 안 가 본 데 없이
다니며 어릴 적 나의 시간을 보낸 곳이다.
우리 집이 너무나 산골짝에 갇혀 있어
나의 인생도 그렇게 갇혀 있을 것만
같았다. 게다가 나는 다른 어떤 문화도
없었기에 답답하여 찾아나선 나의 숨통과
같았던 곳이 이곳 대둔산이다.
하나님을 느끼고 싶어서
산으로, 산으로
또 하늘과 가까운 정상으로
미친 사람처럼 찾아다니며
낮엔 개울물을 마시고
밤이 되면 아무 곳에서나
잠을 청하며 그렇게 다니던 곳이다.
나의 눈물이 어린 곳이며
사연이 어린 곳이다.
이곳에서 난 하나님을 만나고
성자를 만나 이 역사의 뜻을 펼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내가 여기서 그렇게
긴 수도생활을 할 줄 몰랐다.
그냥 너무 답답한 마음에
뒷산에 놀러가듯 가던 곳이었는데
다니다 보니 가장 많이 머물게 되었고,
그땐 뭐에 그렇게 홀렸는지 그렇게 그곳에
가고 싶었고 그곳에서 기도하고 싶은
감동이 들었다.
2015_1007 수 계시말씀.hwp5
그래서 장소를 잡고
기도하기 시작한 곳이 독수리봉이었다.
하나님은 내가 세상의 어떤 문화도 접하지
않게, 하나님께서 만나고 싶어하는
성산으로 나를 어릴 때부터 가도록
역사하셨다.
그곳이 어찌 그리도 정겹고 집에 있으면
얼마나 그곳에 가고 싶었는지...
내가 맘껏 하늘을 찾고 부르며 기도할 수
있었던 곳이기에,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이기에 난 그곳이 그렇게 좋았다.
나의 성산, 사랑하는 하나님을 만난 곳,
그 산을 너희에게 보여 주니 너무 기쁘다.
거기서 내가 어떻게 연단받고
기도하였는지 얘기하려 한다.
너무나 많은 얘기가 있지만,
이렇게 남기지 않으면 안 되니
너희에게 내 심정을 얘기하려 한다.
15살 때부터 그곳을 오르며
기도할 곳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엔 집의 뒷산, 감람산 7봉을 가다가
더 높은 곳을 가고 싶어 대둔산에 가기
시작했는데 산이 너무 멋있고 바위가
아름다워서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거기서 기도하기 시작할 때쯤
성자께서 내게 온 인류를 위해 기도하게
하셨다. 지옥에 있는 많은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들을 위한 조건기도, 즉 회개기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이 죄로 인해 지옥에 가니
내가 그 죄를 대신 회개해 주어야만 했다.
그때 ‘내가 왜 이렇게 다 해 줘야 하나?’
하면서 마음 한쪽 육신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안 가기도 했다.
그래도 성령의 감동으로 그 기도를 하면서
눈물로 인류의 죄를 회개했다.
그때 그 조건이 없었다면
지금의 사명도 없었을 것이다.
연단을 받는 기간이었다.
나를 만들어야 성자께서 쓰시기 때문에
빨리 세상에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자는 늘 ‘먼저 너를 빨리
만들어라’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나를 안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너희도 너희가 하늘 앞에 쓰이기만 바라지
말고 너희를 먼저 만들어 놓아라.
그래야 하늘이 쓴다.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외로움이 나를 가장
힘들게 했으나 ‘내가 이걸 하지 않으면
성자께서 너무 불쌍해서 어쩌나’
‘내가 꼭 기도해서 하늘의 한을 풀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그것을 이기게
만들었다. 또 너무 사랑해서 드리고
싶었다. 이 세상에서 상처가 제일 많은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힘들어서 눈물도 나오고,
슬프고 기구절창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도, 성자도, 나도 기구한
운명이 한스러워 그 한을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직 그 생각밖에 없었다.
나의 눈물이 하나님이 흘렸던 눈물이라
생각하고 대신 기도했다.
나의 기도로 이들을 용서해 달라고...
온 지구 세상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믿고
천국에 가게 구원해 달라고...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기도를 할 수
있었는지, 정말 성령의 감동으로 나도 놀랄
만한 기도를 하고 그 고통을 이길 수
있었다.
그곳에서의 연단 기간은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던 조건이었다.
그 과정이 없었더라면 난 지금의 이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너희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너희도 이러한 연단 기간을 꼭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연단 없이는 하늘이 쓸 수가 없다.
그러니 지금의 상황과 과정이 힘든 가운데
있더라도 꼭 끝까지 견뎌라.
그것을 견뎌야 좋은 날을 보고
하늘이 너를 쓸 수 있다.
왜 내게 이런 일들을
겪게 하실까 하지 말아라.
어려운 일들은 이기고 나면
네게 아주 좋은 경험으로 남고
그것이 너의 자산이 된다.
그러니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감사하며 즐겨라. 그리고 힘들면
내가 있고, 앞서간 선배들이 있으니
물어보고 기도하여라.
꼭 이길 수 있다. 내가 그 모든 연단을
다 이겼으니 너희도 이길 수 있지.
금을 제련하는 데도 연단이 필요하고,
나무를 멋지게 키우는 데는
가지를 자르는 과정이 필요하듯
너희에게 이 연단이 꼭 필수적이다.
너희들은 너무 쉽게만 커 와서
조금만 어려운 일이 있으면 넘어지지.
그래서 약한 것이다.
강하게 연단받은 자는 어떤 상황에서든
쓸 수 있다. 강하니 잘 견디며 하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너희들의 정신과
육신을 강하게 연단시켜라.
내가 스스로 나에게 연단시킨 것처럼
너희 스스로,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계속 훈련하며
강하게 잘할 때까지 만들어라.
네 자신이 시키는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기도할 때
매순간 내려오고 싶을 때마다
견디는 연습을 했다. 내가 나를 참고
견디고 끝까지 해내는 연습을 했다.
매섭고 혹독한 추위 가운데,
땀이 흘러내리는 뜨거운 더위 가운데에서
나는 피하지 않았다.
오직 성자를 부르고 성령이
함께하심으로 기적같이 이겨 냈다.
그리고 그것을 이기고 나니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다.
그 산의 정기를 모두 받은 것 같았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며 주신 기운,
아름답고 웅장한 그 스케일의 사랑과 힘을
다 받았다.
내가 내 그릇을 만들고 연단시키며
주실 때까지 간구하고 기다리니
모든 것을 주셨다.
지혜도, 능력도, 사랑도, 말씀도,
사명도 하늘이 나의 노력에 감동하여
모든 것을 주셨다.
너희도 나와 같이 하여라.
그곳을 보여 주는 것은 내가 어떻게
하였는지 배우고 그와 같이 너의 정신과
철학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제자라면
스승이 어떻게 했는지를 배우고 그의
정신과 사상을 배우는 것이 맞지 않느냐.
나는 너희에게 그것을 물려주고 싶다.
내가 너희에게 돈을 주고,
눈에 보이는 그 어떤 것을 주는 것보다
너희에게 나의 정신을 주는 것이 가장
좋지 않으냐.
사랑하니 나의 정신을 알려 주고
사랑하니 나의 심정을 알려 주어
함께하고자 함이다.
그것이 곧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정신이기
때문에 내가 유산으로 물려줄 것이 있다면
나의 정신이다.
후손 대대로 나의 정신이 살아야
역사를 이루며 창대케 되는 것이다.
나의 말씀과 사랑, 그리고 정신을 가져라.
말씀은 실천하여 영혼으로 익히고,
사랑은 먼저 하여 하늘을 위로하며,
나와 같이하여 심정을 받고
나의 정신을 받아라.
너희들에게 나의 사연을 알려 주니
잘 듣고 나와 같이 가자.
지금도 나는 또다시 너희의
죄 때문에 십자가의 길을 간다.
이놈의 죄 때문에 무슨 일을 못 하겠다.
그래도 내가 회개해야지, 죄를 모르는 자는
회개도 못 하고 죽어 가니 아는 자가 할
수밖에 없다.
너희도 나와 같이 인류의 죄,
너희들의 죄를 위해 기도하자.
그것이 나의 십자가를
같이 지어 주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해
그토록 희생하고 기도해 준 것을 안다면
나를 위해 조금이라도 기도할 것이다.
나의 사연을 듣고 나의 심정을 깨달아라.
너희도 나와 같이 함께 기도하자.
2015_1007 수 계시말씀.hwp6
나만 혼자 기도하게 두지 말고,
이제 알았으면 신부니까, 사랑하는
애인이니까 나 혼자 이렇게 외롭게 두지
말고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같이
기도하자.
언제까지 나 혼자 기도하게 둘 셈이냐.
오늘도 너희에게 나의 심정을 전하고자
이렇게 얘기한다.
나를 위해 기도해 보아라.
심정을 받을 것이다.
나를 위해 하나님의 성산에 오르듯
역사의 봉우리에 같이 올라
두 무릎을 함께 꿇고 내 옆에서 기도하자.
사랑한다.
너를 위해 기도한 선생이.
♥ 10월 07일 수요일 ♥
영으로 혼으로 깨닫는 것
2015년 10월 7일 수요일 새벽 계시말씀
작성일 : 2015. 9. 18. PM 09:00
작성자 : 정랑금
(금요기도회 때 찬양을 하는데
‘혼과 영으로 깨달으려면 뇌에 먼저 새겨야
한다’는 감동이 왔습니다.
금요기도회 후 이어서 기도를 하는데
너무 배가 고팠고, 집중이 안 되었습니다.
기도로 저의 상황을 말씀드리며
어떻게 혼으로 영으로 깨달아야 하는지
여쭐 때 감동으로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말씀*
집중이 안 되지?
너의 뇌가 배고픈 데
더 쏠려 있기 때문이다.
혼과 영으로 깨닫는 데에
뇌가 중한 이유는
뇌에서 처음 시작하기 때문이다.
뇌에서 처음의 시작을 결정짓는다.
뇌에서 처음 길을 어디로 내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서 너무 집중이 안
되었고, 장소를 옮겨 다시 말씀을
받았습니다.)
계시받을 때는 주위를 신경 쓰면 안 된다.
이 모든 것이 네가 집중하지 못하여
뇌의 길이 온전하게 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길을 내다 말고 옮기고 또 옮기면
길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난도질되는 것이다.
되다 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모든 길은
잡생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집중이 답이라 하지 않았느냐.
모든 것은 하나가 되지 않으면
다 잡생각으로 바뀌는 것이다.
하나에 집중하여라.
하나에 집중해야 완전한 길이 된다.
길을 내다 말지 마라.
길을 내기 시작했으면
끝까지 완전하게 내는 것이다.
그러나 중한 것은 어디로
길을 내느냐에 있다.
네가 배가 고파서 집중을 못 했고
기도가 안 된다고 하였지?
그것은 네가 무언가 먹고 싶다고
너의 뇌에 길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고픈 것은 본능이다. 그러나 본능을 이겨
낼 수 있는 것은 더욱 강력한 생각으로
옳은 길을 내는 것이다.
뇌에서 온전히 시작해야
혼과 영으로도 깨닫는다.
뇌가 중한 이유는 뇌가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생각을 할 수 없는 뇌는
가치가 없는 것이다.
밭에 보화가 없는 것과 같으며
생각을 못 하는 자는
뇌사 상태가 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 더욱 집중이다.
진짜 옳은 방향으로 집중이다.
뇌에서 온전히 시작하여라.
뇌에서 생각으로 온전히 시작이다.
뇌에서 하는 생각을 하늘의 생각으로
하여라.
진정 뇌에서 제대로 시작해야
그 영향이 혼과 영에게 간다.
육의 생각이 혼과 영에게 간다.
그래서 혼과 영을 신과 같이 만들려면
생각이 신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장소를 옮긴 곳에 자꾸 사람들이
들어오니 집중이 더 안 되었습니다.
계시받기를 포기하려 할 때
다시 말씀해 주셨습니다.)
끝까지 하여라.
집중이다.
늘 훈련이다.
끝까지 집중하는 것이다.
나는 늘 이러한 상황 속에 있다.
그러나 늘 집중이다.
집중하는 법은 오직 강한 생각이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하늘로 향한 생각이다.
끝까지 해서 하늘의 생각에 닿는 것이다.
그것이 집중이다.
집중해서 뇌가 하늘의 생각에 닿았느냐.
그것이 혼과 영의 핵을 만난 것이다.
혼과 영의 핵은 오직 하늘의 생각이다.
혼과 영의 핵을 만났다면 삼위께 더욱
다가가기 위해 한 번 더 하는 것이다.
더 할 수 없을 만큼의 정도가 되어야
신을 만난다.
정말 깊이 기도했다고 느끼는 것은
혼과 영의 핵을 만난 것이다.
그러나 삼위에게까지 가는 자가 거의
드물다. 이때 한 번 더 하는 것이다.
한 번 더 하는 것이 끝에 도달하는
힘이다. 달리기를 해도 결승점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 달려 나가듯 한 번
더 하는 것이다. 그것이 혼과 영으로
깨닫는 것이다.
알았다고 생각하나 실제 알지 못하는 것은
결승점이 보이니 속도를 줄였기 때문이다.
결승점을 보았다면 끝까지 달려 골인해야
진정 승리하는 것처럼 진정 깨닫게 된다.
이것이 혼과 영으로 깨닫는 것이다.
‘늘 끝까지’라는 말은
이 역사를 끝까지 따르는 것만이 아니라
매 순간 기도도 끝까지, 행함도 끝까지다.
그리고 이 역사를 끝까지 따라야 하는
이유는 이 역사는 멈춤이 없고,
결승점은 나날이 차원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늘 끝까지 해서 그 끝에서 이루는 것이다.
그러니 영과 혼으로 깨달으려면
매 순간 끝까지다.
그리고 이 역사 끝까지다.
순간순간 매일 끝까지 해야
영과 혼으로 그 순간순간을 깨닫고,
이 역사를 끝까지 따르게 되어
비로소 자신을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 역사는 깨닫는 힘으로 가는 것이다.
이 역사를 계속 따를 수 있음은
진정 살아 있는 역사이기에 늘 차원 높여
영과 혼으로 깨닫기 때문이다.
영과 혼으로 깨닫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도달한 자는 늘 더 차원을 높여
깨닫고 도전을 재미있게 할 수 있다.
반면 순간순간 영과 혼으로 깨닫지
못하는 자는 뒤처져서 힘든 것이다.
매일 나의 조건으로 겨우 따라오는 자들은
이곳을 힘들어하기도 하고 견디지 못한다.
본인이 영과 혼으로 깨닫는 맛을
아직 못 느낀 자이다.
한 번이라도 느낀 자는
절대 등을 돌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힘들어도 이곳이 옳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고, 깨달음의 기쁨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러니 늘
영과 혼으로 깨닫기 위해 몸부림친다.
아는 자만 느끼고 행한다.
아는 자가 되어 어서 따라야 한다.
뒤처지는 자들이 있어 영과 혼으로
깨닫도록 말씀했으니 모두 도전하여라.
도전해서 맛을 느끼면 계속 도전한다.
힘들어도 나를 깨달은 원동력으로
또 도전한다.
이 역사를 깨달은 원동력으로 도전한다.
끝까지 이 역사 속에서 도전의 재미를
느끼며 함께하자. 차원 높은 역사이다.
차원을 높이는 것은 영과 혼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니 늘 더 영적으로 되도록
기도하고 한계를 넘어라.
이것이 영과 혼으로 깨달으며
이 역사를 따르는 것이다.
사랑한다. 꼭 끝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