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5.10.14 (수)
151014 수요말씀(행해야 빛난다)
- 선포일
- 2015.10.14 (수)
- 성경 본문
- 야고보서 2장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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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4일 수요말씀>
행해야 빛난다
본 문 야고보서 2장 14절, 17절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이번 주 주일에는 두 가지를 말씀했습니다.
첫째, 사진을 찍을 때도 <여러 방향과 각도>가 있는데
<최고 좋은 방향과 각도>를 잡아서 찍어야
찍는 사물이나 인물이 최고로 아름답게 나오듯이,
모든 말과 행동에도 <여러 방향과 각도>가 있는데
<최고 좋은 방향과 각도>를 택하여 말하고 행하라고 했습니다.
둘째, ‘안 하면 잊는다.’라는 주제에 따라서
<행하는 것>에 대해서 깊게 말씀해 주었습니다.
▸<잘하던 것>도 안 하면 잊어버려서 못 하고,
<외웠던 것>도 안 하면 잊어버려서 생각이 안 나고,
<못하는 것>도 자꾸 하면 잘하게 됩니다.
안 하다가 다시 하려면 잘되지 않고,
하다가 안 하면 잘하다가도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매일 생각하고 매일 행하는 자>가 강하고,
잘하고, 많이 하고, 승리하게 됩니다.
삼위와 주와의 교통도, 기도도, 감사도, 사랑도,
말씀도, 관리도, 강의도, 전도도, 회개도
<매일 행하는 자>가 강하고, 잘하고, 많이 하여
많이 얻고 많이 누리고 승리하게 됩니다.
▸<생각>도 <행실>도 매일 행할수록 더 이상적으로 발전합니다.
행한 데서 ‘다음 위치, 다음 차원’으로 발전합니다.
1단계에서 생각하고 행하면
그 단계에서 ‘더 차원 높은 것’을 깨닫고 얻게 되고,
거기서 또 생각하고 행하면
‘그보다 더 차원 높은 것’을 얻게 됩니다.
행함으로 발전하여 차원을 높이면 그때부터는 쉬워집니다.
◎ 주일말씀은 어느 것 하나를 핵심으로 추릴 수 없이
전체가 한 맥으로 이어지면서 이해시켜 주는 말씀이니,
말씀을 잊지 말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생활 속에서 매일 생각하고 행하면서 쓰기 바랍니다.
<말씀>은 매일 생각하고 행하면서 써야
‘아! 말씀대로 하니까 정말 되는구나!’ 확신하게 되고
‘말씀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됩니다.
◎ 오늘도 ‘실천, 행실’에 대해서 말씀하겠습니다.
주제는 ‘행해야 빛난다.’입니다.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어느 날 수도꼭지에서
물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 물방울이 빛에 반사되어 빛났습니다.
이때 성령님은 한 가지를 깊이 깨닫게 하시며 계시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움직여야 빛난다.”
100가지, 1000가지 만사의 모든 것이 동일합니다.
움직여야 빛납니다. 실천해야 빛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치타의 특징과 특기>는 ‘빠른 것’입니다.
<치타>는 가만히 있어도 얼굴이 예쁘게 생겨서 예쁘지만,
역시 뛰어야 가장 아름답고 빛이 납니다.
30초 안에 시속 130km의 속도를 내면서 빨리 뛰는데
그 뛰는 모습이 빛이 나고, 뛸 때 몸매가 빛이 납니다.
그 속도로 가장 맛있고 싱싱한 먹이를 잡습니다.
움직이니, <특기>가 빛이 나서
역시 ‘지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왕’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끝>
역시! 움직여야 빛납니다. 실천해야 빛납니다. 행해야 빛납니다.
(* 다시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물>을 보세요.
<갇힌 물>과 <흐르는 물> 중 어느 것이 더 빛이 나겠습니까?
당연히 <흐르는 물>입니다.
흐르는 물의 움직임에 따라서 빛이 반사되어 더 빛나고,
물이 흐르며 움직이니 썩지도 않습니다. <끝>
바닷물도 그냥 눈으로 보기에는 갇혀서
제자리에서 출렁거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바닷물은 움직입니다. 아주 빨리 흘러갑니다.
흐르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물체를 바닷물 위에 던져 보면 그 물체도 빠르게 흘러갑니다.
고로 <엔진이 없는 배>는 바닷물에 떠내려가 버립니다.
움직여야 빛이 납니다. 행해야 빛이 납니다.
<철>을 가지고도 행하여 ‘필요한 것’을 만들어야 빛이 납니다.
<철>을 가지고 행하여 ‘냉장고’를 만들었으면,
이것을 써야 빛이 납니다.
이렇게 <행해야 될 것>을 행하면서 만들어야 빛이 납니다.
<만든 것>을 써야 빛이 나고 또 얻게 됩니다.
고로 ‘행하여 만들기, 만든 것을 보람되게 쓰기’입니다.
<자기 육> 쓰기. <자기 생각> 쓰기.
<자기 혼> 쓰기. <휴거된 자기 영> 쓰기입니다.
행하면서 써 봐야 얻게 되고,
행하여 얻어 봐야 얼마나 얻게 되는지 알게 됩니다.
자기 생각도, 자기 혼도, 휴거된 자기 영도 자꾸 써야 빛이 나고,
그 능력과 위력이 어떠한지 알게 됩니다.
<시대 말씀>을 들었으면 행하면서 쓰기.
<주>를 확실히 믿고 인정하고 쓰기.
<하나님, 성령님, 성자>를 확실히 믿고 사랑하며 쓰기입니다.
매일 쓰고 행해 봐야
그 능력과 위력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고,
그로 인해 얼마나 얻는지 알게 됩니다.
<휴거된 영>과 <휴거되지 못한 영>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신>과 <인간>의 차이와 같습니다.
<휴거된 영>은 황금성에서 매일 혼인 잔치를 하고 있지만,
하나라도 더 <자기 육>을 도와 행하기 위해
수시로 이 세상에 와서 <자기 육>을 돕습니다.
그러나 <휴거된 영>을 써야 빛이 납니다.
써야 능력을 알게 됩니다.
원자폭탄도 터지기 전에는 그 위력을 모릅니다.
이와 같이 <시대 말씀>도 <휴거된 영>도
쓰기 전에는 그 위력을 모릅니다.
일본 순회 때 조은 목사의 증거를 들었지요?
<주의 말씀>대로 행하면서, <휴거된 자기 영>을 쓰면서 행하니
자신 있게 시대와 주를 증거하지 않습니까?
<말씀>을 행하는 자, <휴거된 영>을 쓰면서 행하는 자,
<삼위와 주와 일체 되어 함께 행하는 자>만이
‘아! 말씀대로 하면 되는구나. 안 되는 것이 없구나.
휴거된 영의 위력이 엄청나구나.
성삼위와 주와 함께 행하니 못 할 것이 없구나.’ 확실히 알고,
담대하게, 지혜롭게, 크게, 웅장하게, 신비하게 행하여
섭리사에 많은 업적과 공적을 남기게 되고,
자신이 행한 것을 자신 있게 증거하며 빛을 발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시대 말씀>을 배웠지요? 왜 배웁니까?
알기 위해 배웁니다. 무엇을요?
삼위일체를 알기 위해, 자기를 구원할 자를 알기 위해,
왜 인생이 태어났는지 알기 위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말씀>을 배웁니다.
배웠으면, 행해야 됩니다.
행해 봐야 <말씀의 위력과 권세>를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역사>도 <삼위>도 <주>도
더욱 찾고 확실히 인정하게 됩니다.
그 차원에서 행하니 흔들림이 없고, 사랑이 충만하고,
힘들어도 다시 일어나 행하게 됩니다.
인생 몰라서 못 살고, 몰라서 그 위치에서 살다 죽습니다.
알면 행합니다.
대충 알면 못 행합니다.
확실히 알면 행합니다.
행하니 얻습니다.
행한 데서 ‘더 차원 높은 것’을 얻고,
거기서 ‘더 차원 높은 것’을 찾아서 행하여 또 얻습니다.
<흐르는 물>을 보세요. 매일 계속 흐릅니다.
<흐르는 물>같이 매일 계속 행하기입니다.
<물>이 내에서 강으로, 강에서 바다로 쉬지 않고 흐르듯이
차원을 높여서 계속 행하기입니다.
계단을 오를수록 다음 단계로 가듯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계속 생각하고 행할수록
더 깊은 것을 깨닫고, 더 높은 것을 행하며 발전하게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산에서 풀을 베고 나무의 가지를 쳐 주지요?
이렇게 계속 행할수록 <산길>이 더욱 넓어지며 변화되어 가고,
<나무의 모양>이 더 아름답고 보기 좋게 변화되어 갑니다.
행할수록 이같이 표가 납니다.
행하면 표가 나게 좋아지고,
행하지 않으면 표가 나게 손해가 갑니다. <끝>
<잠시 쉬었다가>
움직이면 빛이 납니다. 행하면 빛이 납니다.
행할수록 표가 나고, 행할수록 얻게 되고,
행할수록 차원이 높아지고, 행할수록 발전됩니다.
고로 어떤 상황이든지 꼭 행해야 됩니다.
늦었다고 포기하고, 실패했다고 다 포기하면
그 센터에서는 완전히 패자가 됩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시기를
“늦으면 늦은 대로 행하고,
실패했으면 나머지를 가지고 행하여라.
늦었다고 포기하고, 실패했다고 다 포기하면
그로 인한 해가 크고,
그것이 자기에게 죄를 짓는 것이 된다.” 하셨습니다.
자기가 책임을 못 하여 패한 것도 있습니다.
사탄의 꾐을 받고 패한 것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낙심하고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나머지 것까지 다 포기한 채로 막 죄나 짓고 산다면,
완전히 패한 것이 됩니다.
<일부 패한 것>과 <다 패한 것>은 상황과 판도가 완전히 다릅니다.
늦었다고 다 포기해 버리고,
몇 가지 못 했다고 다 포기해 버리고,
그때부터 막 죄나 지으면 안 됩니다.
늦었어도 나머지 시간을 가지고 하고,
못 했어도 나머지 것을 가지고 하면 됩니다.
자기가 자기를 패하게 만듭니다.
늦었다고, 못 했다고, 안 된다고 포기하고 굴복하면
그때부터는 완전히 사탄의 것이 됩니다.
여름에 덥다고 다 포기하고 가만히 있으면 다 패합니다.
더워도 그때 행할 것을 행해야 됩니다.
요즘 한국의 여름이 너무 덥지요?
아침 8시부터 30도 이상을 웃돌고,
한낮에는 최고 36도까지도 온도가 오릅니다.
여름이 되면,
섭리사는 최고의 행사 중 하나인 수련회를 해야 되는데
요즘에는 한국 여름이 너무 더우니
수련회를 할 때마다 걱정이 됩니다.
또 여름에는 기후상 비가 많이 오니,
자연성전에서 수련회를 하는 우리들은 또 걱정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다가
“여름에는 너무 더우니 9월에 수련회를 할까요?” 하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물었습니다.
이에 답을 주셨는데, 역시 전능자의 답은 ‘현답(賢答)’이었습니다!
“여름에는 여름대로 행하고,
가을에는 가을대로 행하는 것이다.
좋은 날만 기다리고 있다가
좋은 날에만 행하면 언제 이상세계를 이루느냐.
시련 중에, 환난 중에도 행하며 이상세계를 이루는 것이다.
그래야 더 좋고 더 크고 더 웅장하게 이상세계를 이룬다.”
하셨습니다.
<잔칫날>만 기다렸다가 잔치하고
<가을같이 청명한 날>만 기다렸다가 인생 잔치, 섭리 잔치 하면
이상세계를 이루지 못하고, 이상세계를 이루더라도 작게 이룹니다.
비가 오고 햇볕이 쨍쨍한 더운 여름이면
그때에 맞게 비 맞고 햇볕 받으며 행하고,
추운 겨울에는 추위 속에 눈 맞으며 행해야
환난도 이기고 힘을 받고 살게 됩니다.
섭리사 지난날을 생각해 봐요.
어려운 환난 때라고 해서 멈추고 안 했습니까?
성자는 그 육과 함께 쉬지 않고 행하셨습니다.
그리함으로 환난 때라도 얻었고, 힘을 받고 행했습니다.
<부활 역사>도 <휴거 역사>도 환난 중에도 행하여 이루었고,
결국 2015년 3월 16일 <성자 승천일, 휴거 날>을 맞아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고 말았습니다.
지난날은 다시 안 옵니다.
힘들었어도 좋았어도 행한 대로 끝납니다.
힘들었어도 행했으면 얻었고,
좋았어도 안 행했으면 얻지 못하고 끝났습니다.
후에는 ‘그 사연’만 들려줄 뿐입니다.
지금도 그렇게 해야 됩니다.
매일 행하며 매일 잔치입니다.
휴거된 자라면 매일 잔치합니다.
힘들다고 안 하고, 어렵다고 안 하고,
무슨 일 있다고 안 하면 ‘휴거된 자로서의 삶’이 아닙니다.
<천국 황금성>에서는 매일 쉬지 않고 잔치하고 있습니다.
먹기만 하지 않고, 먹고 이야기하고, 성삼위께 영광 돌리며
<휴거의 삶>을 살고, <사랑의 생활>을 합니다.
육도 말씀만 먹고 즐기지 말고,
이 시대에 해당되는
<휴거의 삶>을 매일 살고, <사랑의 생활>을 매일 하면서
매일 행하고 매일 잔치하며 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1년에 섭리 전체의 행사와 잔치는 몇 번뿐입니다.
각 교회·각 부서의 행사와 잔치도 몇 번뿐입니다.
나머지는 ‘개인 잔치’입니다.
늘 매일 ‘주와 잔치, 삼위일체를 모시고 잔치’입니다.
모르면 못 합니다.
<영>이 휴거됐는데도 <육>이 모르고 살면, 자기만 손해입니다.
선생은 매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모시고
생활 속에서 ‘말씀 잔치, 기도 대화 잔치’를 하며 삽니다.
식사할 때도 ‘식(食)기도 차원’이 아니라
‘감사와 사랑의 대화’를 하고 식사를 합니다.
좁은 공간에서도 매일 삼위일체를 모시고 행하면서
매일 ‘신혼 집 사랑 잔치’를 하며 삽니다.
지금은 ‘삼위일체를 모시고 사랑하며 같이 사는 시대’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울적하여 생각날 때만 찾고, 특별한 날에만 찾고,
그냥 믿고 섬기기만 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성삼위를 모시고 생활 속에서 찾고 대화하면서 늘 교통하고,
성삼위와 늘 일체 되어 사랑하며 같이 사는 시대입니다.
이런 삶을 살아야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알아주시고,
이런 삶을 살아야 진정한 ‘신부 시대’를 사는 자로서
날마다 삼위를 느끼고, 보람을 누리며, 많이 얻고 살게 됩니다.
이것을 모르고 <같이 사는 삶>을 살지 않으면 기성인과 같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2004년에 선생 옆에는 선생을 도울 자 딱 한 명밖에 없었고,
그와 함께 극한 환난의 때를 보냈습니다.
웃을 만한 일이 없었고, 매일 악인들에게 쫓겼고,
‘희망의 날이 올까?’ 하는 상황에 처해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깊은 말씀과 잠언을 엄청나게 받았고,
말씀을 녹화하여 전 세계로 내보냈습니다.
그때 선생은 한 가지 꿈을 자주 꿨는데,
엄청난 밥과 국을 만들어서 따뜻할 때 비행기에 실어
전 세계로 보내는 꿈이었습니다.
극한 환난의 때였지만,
멈추지 않고 <밥과 국과 같은 영적 양식>을 매일 받아서
따끈할 때 전 세계에 바로 전해 주며
모두 <부활의 역사>로 이끌었습니다.
아주 척박한 환경 속에 있었지만,
주일 아침마다 ‘단상에 올릴 꽃’을 사다가
단상을 정성껏 꾸미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한 것이 2005년, 2006년까지 이어져서
계속 그와 같이 행하며
성자와 함께 섭리사의 차원을 높이며 온 것입니다.
또 그때는 먹을 것도 부족하고 먹을 시간도 없어서
선생도 조은이도 몸이 비쩍 말라 있었습니다.
그때 성자께서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곳은 포도 한 박스에 한화 2000원밖에 안 하니,
포도를 사다가 먹으면서 피로를 풀기도 했습니다.
포도를 그냥 먹으면 한 송이도 못 먹으니,
즙을 짜서 먹었습니다.
그리고 콩을 사다가 죽을 쒀 먹으면서 했습니다.
그리고 방에서라도 매일 뛰고 움직이면서
건강을 붙잡고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행했습니다.
힘들다고 안 먹고 안 행하고
환경이 열악하고 먹을 것이 없다고
안 먹고 안 행하고 쓰러져 있었다면
선생도 조은이도 몸이 쇠약해져서 병이 났을 것이고,
선생은 영적 양식인 말씀도 못 받아서
섭리사 전체가 기갈에 시달렸을 것이고,
그만큼 섭리사도 힘 있게 이끌지 못했을 것입니다.
◎ 포도즙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 핵심만 이야기해 줄게요.
포도를 <그냥> 먹으면 ‘한 송이’도 못 먹습니다.
그러나 <즙>을 짜서 먹으면 ‘네다섯 송이’도 먹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육>으로만 사랑하면 한계가 옵니다.
그 사랑이 아무리 뜨거워도
계속 <육>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육 사랑>은 한계가 있어서 더 못 하고 지칩니다.
그러나 <뇌 사랑, 생각 사랑, 혼 사랑, 영 사랑>은
무한하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포도즙을 짜서 먹는 것처럼,
육 사랑의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육적인 자>는 ‘육체’만 따집니다.
인본주의자입니다. 그러니 ‘육’만 생각합니다.
<영적인 자>는 ‘생각·혼·영’까지 다 쓰고 삽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서
<하나님께 속한 영적인 것>까지 보고 쓰면서 삽니다.
고로 두 배, 세 배, 열 배 이상 행하며
많이 얻고 많이 누리며 삽니다.
<육>으로 만나든, <육>으로 못 만나든
<마음·생각·혼·영>이 흥분되어 사랑해야 됩니다.
그래야 사랑이 늘 지속됩니다.
<잠깐 사랑>은 언젠가는 끝이 납니다.
<한때의 사랑>은 한때뿐입니다.
섭리의 삶도, 휴거의 삶도, 사랑의 생활도
매일 계속 지속돼야 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 한 가지만 핵심을 더 말씀하고, 말씀 마치겠습니다.
<인간의 육>은 왜 창조했을까요?
<영> 때문에 창조했습니다.
<모태>에 ‘생명’이 잉태되면
<탯줄>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하고 ‘생명’을 성장시키듯,
<자기 육>이 태어날 때 ‘영’도 같이 태어나서
<육>이 구원자를 믿고 시대 말씀을 듣고 행하며
성삼위를 사랑하고 삶으로 <자기 영>을 변화시킵니다.
이렇게 변하된 영만이 ‘영원히 사는 영’이 됩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영>은 왜 창조했을까요?
<하나님> 때문에 창조했습니다.
비유를 들어서 쉽게 설명해 줄게요.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가 있습니다.
<여자의 몸>은 ‘자기 것’이나, 실상은 ‘남자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영>도 그러합니다.
자기 영이니까 ‘자기 것’이지요?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확대해서 보면, <모든 인생들>은 ‘여자 입장’이고,
<하나님>은 ‘남자 입장’입니다.
고로 <자기 영>이 ‘자기 것’이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육신>을 가지고 <그 영>을
하나님의 성품으로, 하늘나라 형체로 변화시켜서
휴거시켜 천국에 데려와
영원히 사랑하며 같이 살려고 창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혼>은 왜 창조했겠습니까?
<육>을 통해 <영>을 변화시키는데
<영>은 <육>보다 차원이 너무 높고,
<육>이 <영>을 보는 것이 쉽지 않으니
<육과 영의 매개 역할>을 하라고 ‘혼’을 창조하셨습니다.
<여자의 사랑>은 ‘주인 된 남자’에게 줘야 최고로 기쁘듯이,
<우리의 사랑>은 ‘주인 되신 하나님’께 드려야 최고로 기쁩니다.
여자가 주인 된 남자에게 ‘자기 생각·마음·몸’을 안 주고
자기를 중심하면서 살면 독수공방 신세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을 절대 믿고 사랑하면서
하나님께 ‘자기 마음·생각·몸’을 드리며
자기 인생을 맡기고 같이 사는 자는
오직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지도하시고 인도하시며,
그 육도 혼도 영도 100% 책임져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