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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2015.10.26 (월)

월 새벽말씀

선포일
2015.10.2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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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6일 새벽말씀(편집본) 네, 또 새벽이 왔습니다. 모두 기도 끝났지요? 그러면 이제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첫째 사람들이 새벽을 어떻게 시작하는가 하니, 기도를 하게 됩니다. “기도는 생활에서 오는 것이다.” 자기 생활한 데서, 생활을 통해서 기도가 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생활을 통해서 기도가 깊어질 수도 있고, 낮아질 수도 있고. “생활을 통해서 기도가 온다.” 기도를 통해서 말씀이 옵니다. 기도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말씀이 옵니다. 그래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잠언을, 거기서 자문하신 말씀을 뺍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이런 인생의 자문을 뺍니다. 하나님이 자문하신 것 을. 그리고 잠언을 통해서, 거기서 시도 구상하고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노래도 찾아낼 수 있고. 그렇게 나가는 것입니다. 말씀 통해서 여러 가지로, 그날 할 일도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훈하시 고. 이를 통해서 이렇게 되고, 그것을 통해서 이렇게 되고. 그래서 항상 우리가 생활하는 가운 데 보면 그 일을 함으로, 사명 준 일을 함으로 거기서 또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 니다. 다른 것을 발견한 것을 통해서, 또 우리의 할 일을 또 깨닫게 됩니다. 첫 번째 ‘생활’이 미끄러져 나가면 기도가 제대로 안 되고, 기도가 미끄러져 나가면 말씀을 받을 수가 없고, 말씀을 제대로 못 받으면 잠언을 제대로 쓸 수가 없고, 잠언을 제대로 못 만들어 놓으면 시를 못 씁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먼저 알고, 오늘 말씀에 하나하나 들어가겠습니다. 말씀할 때도 원 줄기로 쑥 들어가기보다는, 어느 좋은 배경이 있는데 그 환경 좋고 물 좋고 산 좋은 데에 가려면 집에서부터 가야 되지 않습니까? 걸어 올라가야 됩니다. 해 뜨는 것을 보려면 산꼭대기로 올라가야 됩니다. 그 올 라가는 과정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거쳐 갑니다. 기도할 때도 그렇습니다. 처음 기도할 때는 이런 일 저런 일을 기도하다가 중간을 넘어가 서, 마지막에 가서는 말씀이 옵니다. 그럼 오늘 말씀을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지식이 있어야 지혜롭게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은 어패가 없다. 굽은 것도 없고, 꼬부라진 것도 없다. 다 진리니라.” 그렇게 말씀했 습니다. “모두 나의 교훈을 받으며, 은을 구하지 말고 금을 구하지 말고 나의 교훈을 구하라. 이게 크고도 큰 것이다.” 선생은 옛날에도 그랬지만, 훌륭한 사람의 말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훌륭한 사람들, 아주 유 명한 사람들. 보면 학자들은 학문을 가르칩니다. 수학자는 수학을 가르치고, 과학자는 과학을 가르치고, 그리고 예술인들은 예술을 가르쳐 주고 각자의 그런 것을 가르쳐 주더라는 것입니다. 그것 말고 정말로 인생이 훌륭하게 되는 일, 그런 말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부흥강사들에게 가면 그래도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아, 이렇게 살아야 된다. 저렇게 살아야 된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살줄을 모릅니다. 그게 중요한 것입니다. 거기에 신경 을 써야 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전도사님이나 목사님들이 와서 설교할 때는 가만히 들었습니다. 무슨 이야 기를 하는지 계속 들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하고, 그리고 뜻있는 이야기를 하기는 하는데 나에게 확 와 닿고 ‘이렇 게 살아야 하겠다.’ 하는 그런 것이 생각보다 그렇게 많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게 되었고, 기도할 때에 기도를 열심히 하면 깨달음이 왔습니다. 산에서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기도를 하면. 어렸을 때 그렇게 했습니다. 열심히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에, 깨달아졌을 때에 설교 들은 것에 비교가 안 되고, 어느 부흥 강사가 한 말에 비교가 안 되게 너무 너무 충격적으로 나 에게 필요했습니다. 기도해서 깨달아진 것이. 선생님이 어떻게 큰 것을 여러분들이 잘 알고 싶어 하지만, 내가 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 은 잘 모릅니다. 내가 했기 때문입니다. 해가 뜰 때까지, 새벽기도에 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응답을 받을 때까지! 말이 올 때까지! 그때도 응답을 받았던 것입니다. 음성은 안 났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거나 예수님이 말씀 하셨을 때에 나에게 깨달음으로 왔습니다. 한 번 걸러서 깨달음으로 옵니다. 내 영혼에게 전달하기 때문에. 영혼은 음성을 들려도 육신은 안 들립니다. 영혼이 들어야 됩니다. 그것을 육신에게 다시 전달할 때, 영혼이 음성을 듣고, 영혼의 깨달음이 나에게 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냈습니 다. 그러다가 그것도 시원찮아서 더 실컷 하기 위해서 산에 가서 밤새도록 기도하고, 해가 떠서 질 때까지 기도하고, 성경도 실컷 보기 위해서 산으로 갔습니다. 집에서는 제재를 받으니까. 일 안하고. 일 안 하면 배고프니까 그것도 곤란했습니다. 그래도 산에서 열매를 따먹으면서 실컷 성경 보고, ‘아, 이런 말씀이구나. 그런데 그렇게 가르치네. 여기 있는데!’ 이러면서 성서를 또 본 것입니다. 예수님도 성경을, 구약에 있는 성서를 세밀하게 본 것입니다. 안 보고는 못 합니다. 많이 보고 잘못 그릇되게 깨달은 것, 그리고 누가 날 것, 앞으로 누가 세상에 올 것, 믿는 사람이 누구를 기다리는가 이런 것을 잘 본 것입니다.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구나. 하나님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구나. 이들이 종들이구나.’ 이것을 모두 알았습니다. 성서를 많이 보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 그런데 왜 학자들이 이렇게 가르칠까?’ 했습니다. 그런데 본인들이 연구해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에 전도사님들이 그렇게 설교하고,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 에 그렇게 가르치더라는 것입니다. 대개 기독교는 신학에서 배운 것을 그대로 가르칩니다. 그런데 신학을 가르치는 사람을 보 면 그렇게 기도를 많이 하지 않았고, 선지자도 아니고, 어떤 사사들도 아닙니다. 신학에서 공부를 가르치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냥 학문이니까 학문적인 것을 해서 종교 세 계에 들어와서 학자 소리 들으려고 쓰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엉터리로 가르치고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누구 것인가 하면, 하나님 것이다. 예수님 것이다. 선지자들 것이다. 그들이 죽었으 니 못 물어보니까 기도를 해서 계속 깨달음을 받자.” 하고서 기도를 하게 되어서 예수님이 가르쳐 줬습니다. 성경을. 확실히 성경에 다 써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주장하는가 보니까, 그들이 그런 식으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명예적으로 학자를 따고, 명예적으로 신학을 하고, 명예적으로 무엇을 해서 그렇게 가르친다는 것입니 다. 마음에 들지 않게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들이 그 나름대로 가르쳐서 모두 모 여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역사를 펴려면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구역사지요. 그러면서 성서를 배웠던 것이 기억에 납니다. 내가 하나님의 몸이 되고 주님의 몸이 돼서 살 테니까 나에게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확실 하게! 그러면 오랫동안 배워야 된다고 했습니다. 오랫동안 배운다고 너무 힘들었습니다. 산에서 배울 때 눈물겹게, 추운 데서, 밤잠 못 자가면서, 잘 곳이 없고, 방도 아닌 굴속에서 산에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몸부림치면서 거기에 빠져서 배웠던지 해가 지는 줄 모르고, 날이 새는 줄 모르고, 청춘이 가는 줄 모르게 했습니다. 그냥 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말씀을 깨닫고 배 워 온 것이 30개론입니다. 그래서 첫째 성경에 있는 인물들을 배웠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살았는가? 과연 시대를 어떻게 울면서 살았는가?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사 람들이 되었는가?’ 하나님께 자기를 만들고, 쓰여지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보통 몸부림친 것이 아닙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보통 몸부림치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을 못하는 사람을 보면 못 할만 치 하고 있습니다. 이제 오늘 아침의 말씀에 들어갑니다. 새벽에 하늘과 대화한 내용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돼. 그래야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신다. 하나님의 것이 되 어야 돼.”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투자하시고, 지혜를 주시고, 지식을 주시고 하나님께 쓰 여지는 사람이 되어서 잘 되는 것입니다. 그냥 하나님이 축복해서 지가 혼자 잘 되고 먹고살고, 이것으로 끝나려고 하면 잘 주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의 것’이 될 때 제일 좋아하십니다. 자기 것이 될 때. 여러분들도 내가 여러분들 것이 될 때 좋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이 내 것이 될 때 내가 좋아 하고. 그런데 말만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고 그렇게 생활들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 되었으면 하나님의 몸이 되어서 바치고 하나님을 위해서 쓰여져야 하는데, 복만 받으려고 하고 축복만 받고 잘 되면 자기로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이게 오늘 아침에 하늘과 대화한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축복 주면 자기의 생활로 돌아가서 먹고 마시고 자기 생활 속에 산다는 것입니다. 보통 그대로. 그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아시는고 하니, 내가 마음만 먹었을 때도 하나님은 알아 버립니다. 아무도 모르고 마음만 먹었는데. 마음을 먹기 전부터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십니다. 어떻게 그렇게 아시느냐고 하니까 “나는 머리고 너희는 지체다.” 영은 정신이 마음을 먹으면 벌써 아는 것입니다. 머리, 뇌는 이미 압니다. 뇌에서 전달한 다 음에 그때서 늦게서 깨닫습니다. 뇌에서, 이 손이 가기 전에 알았다는 것입니다. 뇌에서 미리 내가 꽃을 이렇게 하려고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먼저 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아, 그렇게 알기에 100% 다 아는구나. 하나님은 100% 다 아네. 하나님은 뇌이시니까.’ 그러니까 100% 다 알아 버립니다. 우리의 뇌가 육신이 하는 것을 미리 아는 것입니다. 해 놓은 다음에 “다쳤네!” 하지 않습니다. 뇌는 그렇게 하면 다칠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왜 안 막았을까요? 육적인 자가 돼서 손이 가기를 먼저 합니다. 생각을 먼저 안 하고, 가기를 먼저 합니다. ‘이것이 가면 안 다칠까? 저 무거운 돌을 내가 들으면 오다가 안 놓칠까?’ 이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들고 오다가 놓쳐서 발등 깨고 손 다치고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래서 깨달아 보라는 것입니다. 미리 ‘저것을 잡으면 괜찮을까?’ 하고 뇌에서 물 어봐야지요. 머리한테 감당할 수 있는가 물어보아야지요. 계산해 보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미리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 아시는구나. 어떻게 아시는가? 어떻게 이렇게 신이 되어서 아시는가?’ 했더니, 하나님은 머리입니다. 하나님은 머리이고, 우리는 지체들입니다. 전부, 온 인류는. 그래서 하는 것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깨닫고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알고 ‘하나님은 다 아신다.’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머리요,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지체들이다.” 그래서 머리가 압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죄를 짓고 이야기를 안 합니다. 이미 벌써 머리가 알았는데. 머리가 알아 버렸는데 고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죄를 지었을 때 별 것도 아닌 것 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면 탕감을 한번 받아봐라. 별 것도 아닌가. 그것이 별 것이 아닌가 한번 탕감을 받아 봐. 형벌을 받아봐.” 그때는 몸부림치고, 죄인 것을 인정하고 회개하고 근본적으로 나갈 때까지 계속 받는 것입 니다. 알겠습니까. 그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회개가 그렇게 좋은 것입니다. 용서가 그렇게 크고, 사함 받은 것이 큰 것입니다. 사 함 받았으면 또 열심히 해야 됩니다. 오늘 아침에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우리 섭리의 죄와, 나와 모든 하나님께 심 기 상하게 한 것...” 하고 기도했습니다. 이런 심기 상하게 한 것들이 전부 무서운 죄들입니다. 그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대답을 안 하시고, 주님도 대답을 안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늘 우리가 잘 하겠다.”고 회개하고 열심히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러면 너희들이 행동하는 만큼 용서를 해 주마.” 하셨습니다. “의로운 일을 하는 만큼 용서가 되는 줄을 알아라. 빨래를 하는 만큼 더러운 것이 지워진 다. 물은 줄 테니 빨래를 하라.”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됩니다. 그리고 약삭빠르게 은혜 받고 뭐 받고 복 받으면 자 기 나름대로 빠져서 살지 말고 하나님과 같이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것이니까. 하나님의 신부이니까. 하나님의 것이니까. 알겠습니까? 모시고 섬기고 수발하고 공경하고 우러러보고! 하나님과 사는데! 지체가 머리를 우러러보지 않으면 지체에게 생각을 안 줍니다. 일거리를 안 줍니다. 우러러 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우러러볼 줄 알아야 됩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우러러보고, 예수님이 하나님을 공 경하고 우러러보았습니다. 우러러보지 않으면 공경심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볼 때도 그렇습니다. 나를 웃 기게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러러볼 줄을 모릅니다. 그렇게 머리를 우러러보지 않으면 일을 안 맡기고 그냥 그렇게 대해 준다는 것입니다. 우러러볼 줄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 공경할 줄도 아는 것입니다. 그냥 ‘그런가 보다.’ 그러면 안 됩니다. 구원의 문제가 좌우되니까. 우러러보고 공경하고 섬기며 즐거워할 줄을 알아지, 우러러볼 줄을 모르더라는 것입니다. 머리가 되기가 그렇게 쉬운 것입니까? 여러분이 한번 해 봐요. 한번 한 민족을 이끌고 나가 봐요. 몇 십 명? 자기 아내도, 자기 자식들도 못 거느립니다. 자기도 못 거느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거느려 나가보라는 것입니다. 대개 사람이 무식하거나 무지해서 우러러볼 줄을 모릅니다. 모르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깨우쳐 줘라.” 했습니다. 성서에 있는 모든 자들이 하나님의 것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 취급을 하고,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완벽하게 하나님 것이 되어야 됩니다. 아담 하와를 보세요. 성경으로 들어갑니다. 근거를 보는 것입니다. 아담 하와가 하나님의 것이 처음에 되었을 때는 하나님께서 동산을 주시고 살게 해 주셨습 니다. 그러나 그들이 사랑으로 빠졌을 때는 동산을 안 줬습니다. 뺏어 버렸습니다. “나가라. 나가 살아라. 너희들끼리 실컷 사랑하며 살아 버려라.” 하며 다 내어 쫓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것이 안 되니까 하나님이 안 길렀습니다. 투자하고, 열심히 하던 것을 안 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것이 안 되었니까. 완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좋아하고 섬겼으면 성장된 다음에 둘이 충분히 살라고 했다는 것 입니다. 하와들이 문제입니다. 항상 여자들이. 여자들, 조심해야 됩니다. 지금도 에덴동산 역사가 진 행되고 있으니까. 자기 몸뚱이 하나 갖고 성공하는 것입니다. 시대의 하와요, 시대의 아담들입니다. 그래서 하 나님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것! 그런 좋은 동산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저희들끼리 사랑하라고 준 것이 아닙니다. 이 섭리 의 동산에 와서 저희들끼리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쫓아내어 버립니다. 안된다고 세 상에 쫓아내어 버립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됩니다. 안 쫓아냈어도 죗값을 받고, 다시 복직하고, 섭리 안에서 살게 해 준 사람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것이 되어서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회개했으면 그냥 용서를 100% 해 줘 버립니다. 선생님도 무엇을 회개하면 용서 100% 해 줍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그렇게 하면 그에게 섭리하는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 것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죽음에서 살려 주고, 앞으로 심판한다고 미리 가르쳐 주었습니다. “심판한다. 방주 만들어서 살아라. 너와 네 말 듣는 사람은 다 살려 줄 테니까.” 그래서 방주 만들어서 살게 되었습니다. 다 죽었는데 노아는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할 때는 시대를 다 심판을 해 버립니다. 노아만 심판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 물을 내리신 것입니다. 노아만 물 없는 곳으로 이동시키신 것이 아닙니다. 다 심판 받게 만듭니다. 전체가. “심판할 때 실력대로 살아봐라.” 하십니다. 실력대로 살아보라고 심판을 다 해 버립니다. 그러니까 미리 가르쳐 줘서 “이렇게 하면 산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선생님이 누구를 생각할 때 그 사람만 딱 빼놓고 기합을 줍니까? 다 같이 기합을 주면서도 “앞으로 며칠 있다가 기합이 있다. 산을 오르는 기합이 있어. 그러니까 너, 미리부터 산 오 르는 연습을 계속 하라. 열흘 스무날 연습을 해 봐라. 그러다가 그날 타면 힘들지 않다. 그 러나 갑자기 타면 아마도 힘들 것이다.” 이렇게 미리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의인에게는 미리부터 피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고서, 그 때에 팍 누릅니다. 그러나 악인 들이나 하나님의 말을 안 듣던 사람들은 그냥 죽는 것입니다. 안 했기 때문에. 이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것이 된 사람은 이렇게 살려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미 리 영감을 주고, 미리 가르쳐 주고! 미리 “빨리 회개하라. 앞으로 의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심판한다. 미리 빨리 회개해 버려 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회개의 말씀이 와도 괜찮은데, 회개 안 했으면 그날 닥치는 것입니다. ‘나보고 이야 기했구나. 나보고 이야기했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빨리 미리 회개해야 됩니다. 얼른 빨리 해야 됩니다. 그런데 노아의 아들들이 말을 안 들어서 섭리가 늦어지고, 제대로 안 되었습니다. 1차 구원 은 받았는데 2차 구원을 받으려 하니까 아들들이 말을 안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안 되 었습니다. 아들들이 말을 안 들었습니다. 그런 말 안 듣는 아들만 저주하고, 말을 잘 들은 사람들을 갖고서만 섭리한 것입니다. 말 안들은 사람은 빼내어 버렸습니다. 함은 빼내어 버려서 종이 되게 하고, 말 잘 들은 셈이나 야벳 같은 아들 데리고 섭리했습니다. 말 안 들은 사람들을 2차 때는 빼낸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말을 잘 듣고 하나님 것이 되니까 하나님이 투자를 하신 것입니다. 사랑 하시며, 사랑 투자! 약삭빠르게 그 기회를 자기 것으로 안 삼고 오직 하나님만 위해서 계속 사니까, 그래서 모 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니까 사랑의 축복 주었지, 다 준 것입니다. 다 줘 버렸습니다. 그래서 축복을 받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잘 되는 것입니다. 크게 되는 것입니다. 엄청나게.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인생살이 갈 데까지 갔다는 것입니다. 갈대아 우르가 어디인지 압니까? 갈대나 나고, 두견새나 슬피 우는 그런 곳입니다. 모기 등쌀에 썩은 물이나 모여 있는 그런 곳입니다. 그곳이 갈대아 우르입니다. 거기에 살던 사람이, 우상이나 섬기며 아주 찌꺼분하게 최하 수준급 이하의 인생을 살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불러내서 저 위 에 덴동산, 물이 시작하는 곳에다 데려다 놨습니다. “너희 조상들이 여기서 실패한 곳이다. 이 제 네가 하라.” 앞의 사람이 실패하면 다른 사람이 합니다. 거기 올라가서 조건 세우고 열심히 하는 것입니 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해서 잘 되었습니다. 거기에 그냥 있어봤자 잘 될 것이 없었습니다. 백배, 2백배, 3백배 잘 되었습니다. 성경의 그 인물 아브라함만 알지 나머지 사람을 우리 는 모릅니다. 그 시대에 아브라함밖에 모릅니다. 그렇게 훌륭하게 되었습니다. 그를 따른 사 람들이 그렇게 잘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 이삭, 손자인 야곱, 그리고 그 증손자 요셉 모두 잘되지 않았습니까? 야곱도 잘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 것이다.” “너 이제는 야곱이라고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고 하라. 이스라엘 나라의 이름을 네가 아주 가지고 가라. 너를 이스라엘이라고 하리라.” 처음에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결국 아들 12명 낳아서 이스라엘 나라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야곱의 12아들을 갖고 이스라엘 나라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스 라엘이 또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수 백 배, 수 천 배 잘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랑 축복도 주셨습니다. 야곱에게 ‘사랑 축복’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물질 축복’ 을 주었습니다. 원수들이 모두 가서 굴복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다 준 것입니다. 수고하고 열심히 하니까. 야곱이 잘한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잘 했습니까? 양 잘 쳤다구? 그리고 나아가서 연애 잘 한다구? 그것이 아닙니다. 무조건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하나님을 좋아하고 “하나님이 여기도 계십니까. 나는 혼자 있는 줄 알았습니다.” 막 그러면 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좋아하니까 그래서 잘 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좋아해야 되고, 그 몸을 하나님 것이 되어버리게 해야 됩니다. 아예 하 나님 것이 되게 해야 됩니다. 약삭빠르게 잘 되면 자기 것으로 넘어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 것입니다. 매일 나는 하나님 것이니까 하나님이 알아서 하세요. 하나님이 투자 좀 하세요. 하나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못 믿으니 못하는 것입니다. 믿을 수가 없으니 안 하는 것입니다. “너는 하나님을 인정하라. 하나님을 믿어라.” 선생님 같은 입장도 내 뜻대로 했을 때는 때려 부수고 깨지게 만들고 고통당하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두려워하게 만들고 무섭게 만들고 공경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됩니다. 완벽하게! 여러분들, 나이 50먹고, 40먹고서야 그렇게 하겠습니까? 아예 하나님의 것이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10대 때에 “나는 하나님 것이요, 선생님 것이다.” 하고 그대로 왔습니다. 그것이 대단히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그가 인생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나는 하나님 것이야.” 그래놓고 다시 밖으로 왔다 갔다 하고 그럭저럭 살고 태만하게 살면 그것은 후회할 일입니다. 그대로 밀어 붙여야 됩니다. 이 섭리사가 그랬습니다. ‘이것 한 교파 되고 끝나는 것 아니 야? 이것 아닌가?’ 모두 생각들 하고, 많이 그랬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성약의 역사가 가는 줄을 사람들이 확신을 못했기 때문에 젊었을 때 더 투 자를 못한 것입니다. “한 교파나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아니다.” 교파나 하나 만들어? 교회 하나 만든다고 했습니다. 석막교회 사람들이 나에게 “저러다 신학도 못하고 교회 하나 어떻게 만든다.” 그랬습니다. 교회 하나가 무엇입니까? 석막교회 보다 여러 수 백 배, 수 천 배, 수 만 배, 수십 억만 배 더 나은 세계를 만들었는데. 어떻게 비교를 합니까? 비교가 안 됩니다. 그나마도 나를 감동시켜서 안 지었으면 그 석막 교회를 짓지도 못했습니다. 주님의 것이 되어야 축복해 줍니다. 월명동 성지땅도 그렇게 주고, 집도 때려 부수게 만들 었습니다. 계속 주님을 위해서 사니까 모두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새로운 역사가 되게 해 준 것입니 다.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되고, 주님의 것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다가 또 자기 생각대로 하면 혼납니다. 맞습니다. 그렇게 되면 맞아야지요. 모르니까 맞고 혼나야지요. 주님 것이 되어야,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계속 축복해 준다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하나 님과 그런 의논을 했습니다. 그래야 된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되지 않았느냐? 요셉도 모두.” 다윗을 봐요. 하나님의 것이 되어서 “나는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 전에 살기를 원합니다. 문지기가 되 어도 좋습니다. 왕도 싫습니다. 오직 하나님 것이 되고 싶습니다.” 그랬을 때 다윗을 축복하 사 왕도 되게 만들고, 길이길이 평화롭게 만들고, 솔로몬이 하나님 것이 되었을 때 지혜를 줘서 모든 부귀영화를 다 누리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것이 되어야 됩니다. 약삭빠르게 했다가는 안 됩니다. 아주 약빠른 사람이 있습니다. 속 다르고 겉 다르고. 속 다르고 겉 다르게 하는 기회주의자 들. 자기 기회에만 딱 하고 나머지는 딱 버리고, 이렇게 하는 기회주의자가 되면 안 됩니다. 완전히 하나님 것이 되어야 됩니다. 잘 만들고, 멋있게 만들고, 아름답게 만들고, 건강하게 만들고, 그래서 멋있게 만들어야 됩 니다. 하나님 것은! 표가 확확 나게 만들고. 그래서 누가 쫓아와도 “나는 하나님 것이여. 건들지 마.” “아, 너무 멋있고 아름답다.” 해도 “나는 하나님 것이여. 건들지 마.” 그렇게 해야 됩니다. 월명동도 하나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것으로 만들어 놓으 니까 구상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것으로 만들어 놓고, 우리가 또 거기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곳에 서 영광 돌리고. 그곳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어느 교회보다 최고로 멋있습니다. 종들에게 준 교회보다. 구약시대 때 일반 교회들 봤지요? 그리고 아들들에게 준 교회보다 멋있습니다. 시멘트 벽돌 콘크리트를 쳐서 그 속에 있으면 답답합니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흙냄새는 코를 팍팍 찌르고 코피가 나도록 찌르고, 눈은 맑아지고 좋 고, 그리고 공기 좋고 산 좋고 경치 좋고 우아하고 아름답고 그런 곳을 주셨습니다. 볼도 차고 운동도 하고 마음대로 합니다. 그런 아름다운 곳을 주었는데 왜 거기를 잘 안 오려고 합니까? 왜? 왜 안 오려고 하지요? 잘 안 오려고 하는 사람들은 버릇이 되어서 그렇습니다. 그곳도 내가 불러야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상 궁이니까. 시대의 에덴동산입니다. 하나 님의 이 시대의 에덴동산. 아담 하와가 살았던 에덴동산은 거기는 풀도 안 쳐서 풀이 수북했고, 불도저로 밀지 않아서 너무 웃겼습니다. 자연 그대로 있었습니다. 개발해야 됩니다. 신약시대 때도 그렇지 않습니까? 언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당세에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러니까 수시로 거기 가서 기뻐 하고 노래하며 즐거워하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하나님 집에 불림 받고. 나도 이 장소, 이곳을 하나님의 전으로 생각하면서 지금 늘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와 서 기도하고 말씀 받고 그리고 대화하고 의논합니다. 이곳을 하나님의 전으로 사용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전을 멋있게 만들까 생각하다가 이런 것 저런 것도 사다놓고 그랬습 니다. 오목 조목 사다놓고 멋있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 사람 집 같지 않구나. 내가 사는 집 같지 않구나. 하나님의 집같이 만들어 놨구나.’ 웅장하게 만들어 놓고, 하늘에 있는 것들 하늘의 모형들을 사다놓고 멋있게 만들어 놨습니 다. 하나님을 그렇게 모셔야 됩니다. 산 사람같이. 그래서 “하나님!” 하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항상 대답하십니다. 하늘에 계시나 땅에 계 시나 옆에 계시나 항상 대답하십니다. 안 부르면 대답을 안 합니다. 신은 불러야 됩니다. 대화를 해야 됩니다. 요셉 때도 그렇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것이 되니까 그렇게 축복을 해 주고 잘 되게 만드셨 습니다. 아브라함, 다 그렇게 하고. 예수님은 하나님 것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하나님께서 다 투자해 버린 것입니다. 막 역 사하시고 함께하고. 그러니 시기 질투들을 했습니다. 욥도 하나님 것이 되어서 사니까 축복해 주었습니다. “성경에 이런 근거들이 있다. 신약시대 때를 봐라. 하나님 것이 되어서 사니까 막 투자하고 역사하시고 시대를 끌고 나가게 만들지 않았느냐?” 여러분들, 하나님 것이 되어야 됩니다. 하나님 것이 되어 놓고 자기 중요한 것은, 사랑 문제 는 다른 데 마음먹고, 나아가서 물질주의는 다르게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것으로 모든 물질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것이니까. 자기가 하는 것이. 그러니까 막 되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 것으로 쓰면 안 됩니다. 하나님 것으로 써야 됩니다. “너희 몸을, 너희 집을 하나님 것으로 쓰면, 하나님 것으로 같이 쓰면 하나님께서 늘 돌아 봐 준다.” 여러분은 여러분 집을 하나님 것으로 씁니까? 선생님 것으로 쓰면서 같이 쓴다는 일이 많은 데, 정말로 그래야 됩니다. 그냥 인사치레로 하지 말구. 내가 다 압니다. 정말로. 내 것으로 해놓고 쓴다고 해 놓고, 지가 다 쓰면서 생각도 잘 안 합니다. 그러면 안 됩니 다. 가끔 집에 가보면 아주 쓸쓸하게 만들어 놓고. 지가 다 써놓고 그러면 안 됩니다. 정말로 선생님이 같이 쓰게, 하나님이 같이 쓰게 만들어야 됩니다. 지가 쓰면 안 된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 바쳤다고 해놓고 지가 다 써버리면 안 됩니다. 하나님 것으로만 쓰고 영광 돌리며 쓰고 그렇게 귀하게 써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그 집에 역사 하시고 왔다 갔다 해 주시고 “아, 편하다. 앉을 장소가 있 다. 내 것이니까.” 하신다는 것입니다. 자기(하나님) 것이니까 역시 손님같이 안 쓰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가 쓰는 것은 손님 같이 쓰여집니다. 그것을 나는 일찍부터 알았습니다. “하나님 것이다.” 그래서 우리 집도 옛날에 산 밑에다 새 집을 지었을 때, 하나님 집이라고 예수님 집이라고 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구상도 주고 뭣도 하십시오. 마음대로 와서 사세요. 하나님 것이니까. 나 는 시집 온 사람이니까. 주님께 시집 왔으니까. 주님이 가장이니까. 나는 주님께 드렸습니 다. 바쳤습니다.”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기 양떼로 생각하고 자기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뺏어 가버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것입니다. “하나님 것입니다. 하나님 잡수십시오. 하나님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해 주세요. 하나님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것을 오늘 아침에 의논하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 것! 그래야 투자하고 역사하신다.” 집도 그렇고, 자기도 하나님 것으로 생각해야 하나님께서 그 성전에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하 십니다. 지 것으로 생각하면 못 들어갑니다. 엄청나게 큽니다 자기 것으로 생각하는 것과, 하나님 것으로 생각하는 것 하고. 하나님 것 이라야 마음대로 역사 하시고 기도를 해 주는 것입니다. 누가 그랬습니다. 내 것이라고 내 이름을 팔아놓고 자기들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선생님, 선생님 이름으로 내놓고 지가 벌어서 지가 다 씁니다. 그러면 쓰겠습니까? 조공도 안 바치고.” 합니다. 그러면 쓰겠습니까? 그러면 안 되지요. 그러면 내 가 안 되게 역사를 돌려버리지요. 반드시 매달매달, 하나하나 세밀하게 나에게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합니다. 인사치레로만 하면 안 됩니다. 열에 하나를 바치면 하나만큼만 축복해 주고, 둘을 바치면 두개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 것으로 생각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그런 철학, 그런 것을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가 “나는 선생님 것입니다. 선생님 사랑하고 나는 선생님과 삽니다.” 그래놓고서 자기 마 음대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됩니까? 돈 벌어서 지 마음대로 쓰고, 어떻게 사는가도 모릅 니다. 그러니까 내가 모르니까 그냥 놔둡니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씁니다. “저는 이렇게 합니다.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합니다.” 하고 전부 가르쳐주고 그래야지요. 지 몸뚱이라고 지 마음대로 가서 놀면 안 됩니다. 하나님 것이라면, 지가 내 애인이라면, 하늘 애인이라면 지 시간을 마음대로 못 쓰는 것입 니다. “나 이렇게 씁니다. 뭐 합니다.” 하고 꼭꼭 그렇게 써야 됩니다. 허락 받고 하고. 얼마나 하나님 것이 되었는지, 선생님을 보세요. 하루 종일 이 시간은 이렇게, 이 시간은 이 렇게 물어보고 씁니다. 꼭 물어보고 씁니다. “이렇게 써야 됩니까? 이렇게 씁니까?” 하고 꼭 물어보고 씁니다. 이제는 오늘 말씀 가운데, 오늘 말씀 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것이 되라는 것입니다. 주의 성전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면서 늘 왔다 갔다 하고, 의논하고 상의하고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는 정직하게 하고, 매일 못한 것을 회개하고 그래서 진지하게 하나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일들은 바로 돌이켜서 자기 사명을 하고. 특히 사명을 한다는 사람 중에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꼭 해야 됩니다. 못하면 사명이 갈리는 것입니다. 왜? 답답하니까 다른 사람을 시켜서 자꾸 일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로만 한다고 해놓고 잘 안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잘 생각해야 됩니다. 그 러면 “너희들이 하는 만큼 용서해주겠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으로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모든 말씀을 마칩니다. 감격하며 열심히 살아요. 빠이빠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