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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 말씀2015.10.3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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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3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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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_1031 토 계시말씀.hwp1 2015년 10월 계시말씀 ♥ 10월 31일 토요일 ♥ 섭리사여 하나 되어라! 작성일 : 2015. 9. 4. AM 2:00 작성자 : 최은디 ( 최근 사명을 맡고 있는 부서원들이 ‘선생님을 위한 뜻’ 하나로 완전히 하나 되어 뛰니, 섭리 뛰는 맛이 났고 생명의 역사도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 됨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아직도 개인이나 부서, 교회의 입장 때문에 하나 되지 못하는 섭리의 현실을 듣게 되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모두 선생님을 위해 해 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것을 이루기에는 부족한 부분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안타까운 마음에 왜 섭리 전체가 하나 되지 못하는지를 두고 눈물로 기도드렸습니다. 그때 문득 성삼위와 선생님은 어떻게 하나 되어 천국과 지상의 역사를 이루셨는지 너무나 궁금해졌습니다. 분명 각자의 위치, 입장, 처지가 다를 것인데 어떻게 조율을 해 나가시는지, 또한 선생님은 인간으로서 어찌 삼위의 뜻을 그대로 행하며 맞춰 나가시는지를 두고 간절히 기도드릴 때 성령님께서 또렷한 음성이 들리느냐고 물으셨고, 그 말씀을 시인했을 때 적으라고 하셔서 받아 적었습니다.) *성령님의 말씀* 사랑아, 내 말을 받을 준비가 되었느냐. 네가 나와 선생의 마음에 합한 기도를 하여 왔노라. 질문 잘하였다. 그래, 성삼위와 선생은 어찌 하나 되어 역사를 펼까? 그리도 궁금하냐. (“네. 궁금합니다. 섭리역사는 절대 혼자 이룰 수가 없는 역사입니다. 먼저는 성삼위와 구원자와 일체, 형제들과 일체 되어 주의 완전한 지체가 되어 행할 때 역사가 일어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요.”) 그래. 선생이 섭리사를 이룬 것을 두고 우리 생각해 볼까? (“아멘!”) 선생, 월명동을 만들 때 오직 내 의중만을 살피며 성삼위의 뜻대로 하고자 몸부림치고 거기에 오직 귀를 기울였다. 먼저는 성삼위를 최우선으로 사랑했다. 사랑아, 사랑의 강도는 어찌 알 수 있는지 아느냐. 그의 뜻대로 사느냐, 자신의 뜻대로 사느냐를 보면 안다. 각자의 입장, 위치, 처지가 있지만 결국 뜻을 두고 하나로 뭉쳐 일하는 거야. 뜻을 두고 뭉쳐 일할 때 결국 서로가 이해되고 하나 될 수 있다. 성삼위도 강력한 뜻, 지구촌 창조 목적의 뜻을 두고 온 우주와 지구를 창조했다. 물론 각자의 입장과 처지가 있지. 그럴 때는 대의를 바라보고 소의를 버렸다. 큰 것을 보고 지혜롭게 가장 유익이 되는 쪽으로 방향키를 틀었다. 선생도 하늘 천주의 입장을 보고 때로는 육적으로 봤을 때는 손해 보는 상황이어도 방향키를 틀었다. 선생이 원래 월명동 운동장에 콘크리트 스탠드를 만들려 했던 것 기억하지? 그때 그것을 뒤엎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늘 뜻 하나 보고 모두 틀어 결국 아름답고 웅장하고 신비한 야심작을 만들지 않았느냐. 그때 만일 선생이 선생의 입장을 먼저 생각했더라면 지금의 야심작은 없었을 것이다. 또한 제자들도 선생의 말에 오직 순종하며 따랐기에 역사를 이루었다. 거기서 만일 각자의 수고와 어려움을 따지고 개인의 입장을 운운했다면 역사는 더디 가고 야심작의 아름답고 웅장하고 신비한 뜻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섭리사 나의 신부들아! 요즘은 개성의 시대지? 각자의 입장과 처지를 매우 존중하는 시대다. 그러하지? (“아멘. 그렇습니다. 성령님!”) 개성대로 귀한 자들이지. 섭리사에 귀하지 않은 자가 어디 있느냐. 각자의 입장, 처지를 모두 바라보면 내가 손을 안 댈 곳이 어디 있겠으며 모두의 기도를 이루어 주고 싶지 않을 때가 어디 있겠느냐. 그러나 기도한다고 모두 바로 이루어 주는 것이 아니라 때에 맞게, 상황에 맞게 합당하게 이루어 주지? 그와 같다. 항상 선생이 강조하듯, 융통성 있게 해야 한다. 일하는 방법이다. 너희 모두 자기 입장만 보지 말고 각자의 입장과 처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해. 왜냐하면 각자의 마음에 선생이 있어서, 선생을 사랑해서 하니 그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것에는 모두 뜻이 있다. 그런데 거기서 그 자기 뜻 안에 선생의 뜻, 성삼위의 뜻이 얼마나 더 많이 들어 있느냐를 살피는 거야. 100% 선생의 뜻만을 가진 자도 있을 것이요, 때로는 90%, 때로는 80%... 모두 다르다. 상황, 환경, 여건에 따라 다 다르며 각자 마음 밭에 따라 다 다르다. 그것을 살펴야 해. 모두 지도자의 심정으로 들어라. 자기 입장만 보지 말고 상대를 바라보고 그 입장을 생각하되, 각자의 입장에서 선생의 입장이 몇 퍼센트나 있느냐를 살피라는 것이다. 나 성령과 성자, 하나님도 각자의 입장에서 가장 큰 뜻을 이루기 위해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지를 먼저 따져서 역사를 진행해 왔다. 그러니 큰 뜻을 위해서 작은 뜻은 잠시 접어 두기도 했지. 그러나 사랑아, 작은 뜻은 큰 뜻을 이루면 이루어진다는 비밀을 알고 있니? (“아멘! 깨달아집니다. 선생님 말씀에도 휴거라는 큰 뜻을 이루면 나머지 작은 뜻은 그 안에 다 들어 있다고 하셨어요. 월명동을 3만 명 앉을 수 있게 개발했더니 생명의 역사도, 그 외의 여러 환경의 발전도 결국 월명동 개발 안에 다 들어 있었습니다. 큰 뜻을 이루면 작은 뜻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이시죠?”) 그래. 이미 나와 선생이 다 가르쳐 주었지. 그것을 응용하여 각자에게 그리고 각 부서를 뛸 때 적용해 보면 돼. 섭리사 응용의 능력을 길러라. 각자 위치, 처지가 다를 때는 선생을 위해 무엇이 유익인지를 따지고 큰 뜻을 이루기 위해 일단 각자의 작은 뜻은 접어 둬라. 여기서 버리라는 말이 아닌 접어 두라는 표현을 썼지? 그래. 결국 큰 뜻을 이루면 각자의 애로사항, 어려움들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멘. 성령님! 이해가 잘 됩니다. 그런데 비유로 설명해 주시면 어떨까요? 개념은 잡히지만, 각자의 상황에 맞게 응용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세요!”라고 말씀드리자 성령님께서 웃으시며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 사랑아. 이번에 하계 수련회가 있었지? 하나님께서 날씨로 역사하셨다. 너는 어떠했느냐. (“은혜로웠습니다.”) 햇볕이 내리쪼이면 더위와 햇볕을 싫어하는 자들은 불만 불평이다. 반면에 맑은 날을 좋아하는 자들은 비 오는 것보다는 낫다고 한다. 또,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꿉꿉한 것을 싫어하는 자는 불만 불평이다. 반면에 비 오는 것이 시원하다며 오히려 그것이 낫다고 선호하는 자들도 있지? 추우면 춥다고 더우면 덥다고 그때 각자의 입장과 처지에 따라 의견이 다르다.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비를 내려 줘야 하고 저 사람의 입장을 보면 2015_1031 토 계시말씀.hwp2 바람을 불게 해 줘야하고 또, 다른 이의 입장을 보면 적당한 햇빛을 비추어 주어야 하기도 하지.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마다 큰 뜻을 보고 날씨를 주관하며 역사한다. 수련회 전체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때, 그때에 맞는 사연을 만들기 위해 가장 합당한 날씨를 선택해 보여 주시지? 또 때로는 세상을 운행하는 데에 있어 자연스럽게 날씨를 운행해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영적인 뜻을 위해 날씨를 확 잡고 주관하여 새로운 날씨를 창조하기도 하신다. 결국 하나님은 그때마다 가장 큰 뜻에 초점을 맞추어 날씨를 선택해 운행하신다는 말이다. 결국 결과적으로 보면 큰 뜻이 이루어짐으로 우리는 각자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을 느끼고, 더 깊은 사연을 만들지 않느냐. 그때마다 ‘큰 뜻이 있겠지. 하나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냐.’ 하며 순종하며 따라가면 기쁨과 사랑이 넘쳐 각자 입장에서 이루려던 기쁨 이상의 것을 얻어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성삼위도 유익, 주도 유익, 너희 각자도 유익이 아니냐. 사랑아, 이와 같아. 너희는 섭리의 일을 할 때 ‘선생의 입장’ 하나만 보고 해 나가야 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선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보는 눈’이다. 섭리사에 ‘어떻게 하면 선생님께 유익일까?’ 이것을 먼저 생각하는 자가 적구나. 부서의 입장, 개인의 입장이 다 있지.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다 지켜보고 있어. 그런데 나를 사랑하는 자는 그 개인의 작은 뜻을 접고 선생을 위해 희생한다. 자기 뜻을 버린다 함이다. 선생을 닮은 자로다. 선생을 닮아라! 선생은 창조 목적과 휴거라는 큰 뜻을 이루고자 저 차디찬 곳에 자신의 몸을 두고 육신의 고통과 아픔도 희생하며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해 주었는데 너희는 조금의 어려움과 힘든 것, 시험거리들로 선생을 또 괴롭게 하는구나. 사랑들아, 기가 막힐 노릇이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제는 ‘먼저 사랑’의 시대, ‘행한 대로 느끼는 시대’이다. 선생이 한 것처럼 해 본 자만이 선생 뜻대로 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지. 선생을 사랑해야 선생의 뜻대로 할 수 있고 선생의 뜻대로 하는 자가 결국 선생을 위해 하나라도 해 주는 자가 되어 선생과 더 일체 될 수 있느니라. 너희 안에 선생이 있느냐, 너희가 있느냐? 각 센터에 내가 세운 자들을 믿어 주되 선생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가장 하늘 일이 잘되는 방향으로 의논하여 하늘 뜻을 이루도록 하자. 그럴 때 결국 각 개인, 각 부서가 원하던 소원도, 뜻도 이루어질 것이다. 인본주의가 아직도 가득하구나. 제발이나 신성을 가져라. 신성은 비우는 데에서부터 출발하나니, 너희 안에 가득 찬 욕심, 아집, 고집을 버리고 그 안에 오직 ‘성삼위와 주의 뜻’만 담기를 원한다. 그러할 때 어느 것이 성삼위와 주가 원하는 것인지 분별하는 판단력도 생길 것이다. 그러한 자가 지도자를 할 때 섭리가 발전되고 하나님의 뜻을 빠르게 이룰 수 있다. 섭리 안에서 서로를 불신하지 마. 누구 하나 틀린 자가 없다. 다만 각자의 입장이 다를 뿐이지. 그때는 다름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선생의 뜻을 가장 크게 이루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 방향대로 하나로 뭉쳐. 각 부서, 각 교회, 각 개인 각각 하지 말고 뜻 하나로 뭉쳐서 해. 알았지? 군대가 하나 되어 하듯 하되 지금 달리해야 할 것은 억지로가 아니라 순리로 하라는 것이야. 그것은 각자를 알아주고 조율하는 지도자의 몫이니라. 각 교회 목회자, 지도자들은 명심해서 듣고 늘 선생의 입장과 처지를 먼저 생각해 조직을 이끌고 일을 처리하기를 원한다. 선생의 입장과 처지를 살피면 선생의 뜻을 이루게 되고 선생의 뜻을 이루는 것이 곧 성심위의 뜻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령이다. (이후 기도하며 결국 섭리의 문제 하나를 해결하면 가정 문제, 개인 문제가 저절로 해결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안에 다 들어 있으니 선물세트와도 같다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그것을 두고 기도드릴 때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 군말하지 말고 따라와. 내가 월명동 만들 때도 군말하고 뒤에서 구시렁대던 자들 다 나갔다. 그들은 자기 가정, 자기 교회, 자기 부서의 입장과 처지만 생각했던 자들이다. 나의 입장을 생각했던 자들은 그리하지 않았다. 결국 진정 구원자를 사랑한 자들만 성자가 남긴 것이다. 너희도 휴거라는 큰 뜻을 이루어 주셨는데 자꾸 뒤에서 군말하면 하나님이 손대신다. 섭리사야. 내가 휴거시켜 준 값을 하는 자들이 되길 원한다. 내 뜻을 이루어 주면 너희 뜻도 이루어지기에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다 연결돼요. 개인 전도만 신경 쓰지 말고 교회, 지역, 섭리 전체를 생각하며 기도하고 뛰어. 그럼 개인 전도가 절로 되지 않느냐. 내 가정, 내 부서만 잘 되는 거 신경 쓰지 말고 먼저 섭리 전체를 위해 기도하면 각자를 아껴 주고 신경 써 주게 되고 부서가 하나 되고 그럼 개인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터전이 생겨 결국에는 각 가정과 개인이 잘되는 것 아니냐. 자기 부서만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교회 전체를 생각하며 뛰면 교회가 잘되니 결국 자기 부서가 잘되는 것이 아니냐. 또한 자기 교회만 생각하지 말고 섭리 전체 교회를 바라보며 나라를 위해, 나아가 천주를 위해 기도하면 결국 섭리가 잘되어 내 교회는 저절로 잘되는 것이 아니냐. 모든 이치가 이와 같이 이러하다. 자기만 생각하는 자, 망하는 지름길이다. 전체를 생각하는 자, 의로운 자이니라. 독립운동가들을 봐라. 자기 개인의 입장, 처지를 안 따지고 큰일을 하니 결국 나라가 잘됐고 후손대대로 존경받고 후대가 혜택을 누리며 살지 않느냐. 그 순간 개인의 안위를 바랐던 자들을 봐라. 국가가 손해 본 것뿐 아니라 결국 개인도 망하는 사망길로 갔다. 확실히 깨달아라. 섭리사여, 하나 되어라! 너희를 지극히 사랑해 너희의 모든 뜻을 이루어 주고픈 선생이다. ♥ 10월 31일 토요일 ♥ 나 여호와가 지구를 내려다볼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바로 인간의 뇌다 작성일 : 2015. 9. 8. AM 03:00 작성자 : 채은영 (자기 위해서 누웠습니다. 평소처럼 옆으로 누웠는데 그날따라 바로 누워 자고 싶어서 똑바로 누웠습니다. 문득 똑바로 누우면 하늘 전체가 보이는 것이 마치 하늘과 내가 서로 눈을 마주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가 서 있을 때, 생활할 때는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땅을 보실 때 오직 우리의 머리, 곧 뇌가 가장 먼저 보이겠다고 깨달아졌습니다. 이를 기억해 두고 있다가 새벽기도 때 이에 대해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 여쭈었을 때 들린 음성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사랑아, 그래. 할 말이 있으니 적어라. 하늘은 땅의 입장인 너희를 볼 때 오직 뇌만 본다. 너희가 어떠한 생각으로 내가 만든 지구에서 살고 있는지 그것을 본다. 나는 이 지구를 너희를 사랑해서 만들었기에 너희 또한 이 지구에서 살아갈 때 온전한 생각으로 즉 삼위를 알고 싶어 하고 영원한 사랑에 대해 눈을 떠서 하늘이 보기에 합당한 뇌를 가진 2015_1031 토 계시말씀.hwp3 자들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루시퍼로 인해 인간이 타락하게 되었고 내가 보기에 합당한 뇌의 색으로 변화되고 있는, 조금만 더 성장하면 되는 그 뇌에 먹칠을 하였다. 나는 정말 진실로 슬펐도다. 진정 내가 흘린 눈물을 너희가 본다면 진실로 그런 뇌의 색깔로 돌아다니진 않을 것이지. 나 여호와가 흘린 눈물. 천국은 기쁨, 환희, 행복만 넘치는 세계에서 슬프고 애절한 그 모든 감정이 복합적으로 생겨 나 여호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천국의 모든 천인들, 천사들 또 성령, 성자 모두 아무 말을 못 한 채 나의 눈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국이 침묵했다. 사랑들아, 생각해 보자. 그 눈물을 너희가 본다면 어찌할까? 이 지구 세상에서는 딱 한 사람, 그만이 나의 눈물을 정확히 보았고 깨달았다. 바로 선생이다. 나를 사랑하니 나의 모든 것을 깨달았다. 너희는 나와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느냐? 너희 선생은 나와 어떤 사랑을 하고 있을까? 각자마다 자신의 사랑 앞에 수식어를 붙여 보아라. 순수한 사랑, 아름다운 사랑, 아이 같은 사랑, 성숙한 사랑 등등 많지? 선생은 늘 나에게 신기한 사랑을 주었다. 나 여호와가 신기하여 쳐다본 유일한, 단 한 사람이 너희 선생이었다. 하늘에서 내려보니 그 뇌의 빛이 어마어마하여 눈이 부셨다. 세상에 빛을 창조한 나 여호와가, 빛밖에 없는 이 천국에서 사는 나 여호와가, 천국의 빛을 너희 육의 시력으로 본다면 실명돼 버릴 정도로 눈부신 곳에서 살고 있는 내가 눈이 부실 정도로 그렇게 빛이 났다. 그러니 내가 신기해서 지구를, 신기해서 한국을, 신기해서 너희 선생을 안 쳐다볼 수 없었지. 신기한 사랑, 바로 먼저 하는 사랑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을 너무 사랑해 주면 신기해하지. ‘내가 도대체 뭐가 좋아서 저리 사랑해 주나?’ 하며 말이다. 나 여호와가 너희 선생이 신기해서 쳐다봤다. 너무나도 총명하고 깨끗한 빛을 내는, 내가 본디 인간을 창조할 때 본연의 사랑의 색보다 더 찬란한 색과 빛을 내기에 쳐다보고 그 빛을 통해 말씀을 주었다. 내 말씀은 빛과 같다. 그러니 내 말씀을 받기 위해선 그 말씀과 같은 빛을 내야 그 빛이 하늘에 닿아 말씀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이다. (순간 환상이 보였습니다. 선생님께서 기도하고 계셨고 그의 뇌에서 엄청난 빛이 하늘로 향해 있었고 하늘을 통과하여 지구를 뚫고 천국에 계신 하나님까지 닿았습니다. 그 빛이 마치 길이 되어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오직 그 빛의 길로만 말씀이 내려가서 바로 선생님 머리에 꽂혔습니다.) 집중해서 잘 보았다. 그래서 내 말씀은 오직 뇌, 생각, 정신으로 오는 것이다. 나의 말씀을 받을 수 있고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지체, 바로 뇌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뇌의 색이 온전하고 빛이 온전해야 내 말씀도 온전히 들을 수 있고 받을 수 있다. 계시자들은 뇌의 한 부분이 발달하여 한 주제를 두고 나 여호와와 대화할 수 있는 한 부분의 빛이 발달되어 그 길로 말씀을 받는 것이다. 말씀을 받을 땐 그 빛이 정말 총명해져서 나의 뜻, 심정, 모든 것을 다 선명하게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기도가 끝나고 생활이 되지 않기에 그 빛이 희미해지고 흐릿해져서 24시간 나와 못 통하는 경우가 많지. 사랑아. 너희 선생은 말이다. 그 뇌의 한 부분만 발달하여 한 부분의 말씀만 받지 않아. 그 뇌의 100퍼센트 전체가 빛이 난다. 고로 나의 모든 말씀을 각 분야별로 다 받고 다 느끼는 선생이다. 그리고 그 빛이 선생의 하루 24시간, 1년 365일, 70년 평생 그 빛이 사그라진 적이 없다. 그 빛이 더더욱 정점에 달하니 점점 더 세져서 한 사람의 뇌의 빛이 온 지구를 덮어 버렸다. 바로 2014년 연말, 이 지구촌에서 숨 쉬고 있는 인간이라면 그 찬란한 빛의 용서로 인해 어둠에서 나오게 되었다. 그날 그 빛이 어둠을 삼켰다. 어떤 작은 점도 남기지 않고 말이다. 신기한 사랑을 내게 주는 선생이 느껴지느냐? 나 여호와가 너희를 볼 때 뇌가 가장 먼저 보이나니 너희의 외모, 명예, 돈 등등 이런 육의 것에 투자하지 말고 그 시간에 너희의 뇌, 생각을 더 만들어서 나에게 닿을 수 있는 빛을 발하라! (아멘. 하나님. 진정 빛을 발하는 자, 24시간 빛을 내는 자가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언제 하나님을 바로 쳐다볼 수 있을까요? 마치 제가 바로 누웠을 때 하늘 전체가 보이는 것과 연결되어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사랑아, 네가 똑바로 눕지 않고 옆으로 혹은 반쯤 엎드린 채 누웠을 때 하늘이 보이더냐? 보여도 전체가 보이지 않고 반만 조금 보이겠지. 이와 같이 네가 100퍼센트 하늘을 보게끔 만들어 주는 말씀을 듣고도 그 생각을 바로 하는 행실을 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어느 한 부분만 보는 것이다. 고로 네가 보이지 않는 하늘에 대해 얘기하면 너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고 감흥이 없고 심정을 못 받는 것이지. 그러나 계속해서 노력한다면 점점 자세가 바르게 되어 하늘 전체를 보는 수준이 될 수 있다. 즉, 700선을 의미한다. 모든 말씀을 감당할 수 있는 자, 모든 말씀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네가 섭리사에 오기 전, 기성의 골수였든, 아예 타 종교였든, 무신론자였든 너희는 하늘을 보기는커녕 아예 엎드려 있어 땅만 보고 있었지. 그러나 섭리사에 와서 그 자세가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 옆으로 누운 자세가 되었고 이제 조금씩, 조금씩 더 바뀌어 완전히 하늘을 바라보는 자들도 생겼구나. 정말 기쁘다. 네가 바로 누웠을 때 하늘과 눈이 마주치는 느낌이 들었다 했지? 맞다. 인간이 이 시대 구원자가 전하는 나의 말씀을 듣고 나를 바로 알고 그 말씀대로 바로 즉시 행했을 때 비로소 나 여호와와 눈이 마주치는 시대 의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육적으로 바로 눕는 마지막 시간이 언제이냐? 육의 생을 마감할 때다. 즉, 이 지구 세상의 모든 자들은 죽을 때 자신의 영뿐만 아니라 육 또한 하늘을 쳐다보며 마감하게 된다는 것이지. 육은 하늘을 보며 끝나고 영은 그 순간 하늘을 보며 천국으로 올라가게 됨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나 여호와를 느끼려면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결국 지구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이라면 하늘을 찾을 수밖에 없다. 찾지 않던 자라도 마지막 순간은 찾을 수밖에 없게 창조해 놓은 것이다. 그러니 섭리사 신부들아. 너희는 다 소용없는 마지막 순간에 하늘을 쳐다본 것이 아니요, 너희의 육신이 살아 있을 때! 그 뇌의 빛을 충분히 삼위께 닿게 할 수 있을 때! 그리고 네 인생에서 가장 큰 축복인 때, 바로 사명자가 살아 있을 때! 하늘을 쳐다보게 되었으니 이때를 놓치지 말고 나의 말씀으로 하늘을 보는 너의 자세를 바로 하여 전체가 보이는 수준까지 높이자! 사랑한다. 너의 눈과 마주 보길 원하는 사랑의 근본, 여호와다. 2015_1031 토 계시말씀.hwp4 ♥ 10월 31일 토요일 ♥ 내가 너의 머리가 되니, 너는 나의 몸이 되어라 작성일 : 2015. 7. 3. 작성자 : 고은애 (선생님과 대화하며 사랑 고백을 드릴 때 성령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 성령님의 말씀 * 나와 함께하겠느냐? (진실로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제가 체질이 안 돼서 성령님께서 답답하실까 걱정돼요.) 그렇다면 나와 같이 살면 되지 않겠느냐. 나와 함께하고 싶다면, 생활 속에서도 나와 같이 산다면 나와 함께하는 것이지. (어떻게 하면 성령님과 함께하고 같이 살 수 있을까요?) 네가 나의 지체 중에서 하나가 되면 되지. 나의 지체 중에서 너만이 딱 맞는 지체가 있다. 그 지체는, 네가 아니면 안 된다. 네가 그 지체가 되어라. 개성의 왕이라 하였다. 모든 인생들에게는 태초, 태어날 때부터 한 사람, 딱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하늘의 지체가 있다. 모든 것을 다 예정해 주고 창조한다. 만물도 너희의 육을 존재시키려는 뜻을 예정하고 창조하였지. 나무는 나무대로, 땅은 땅대로, 물은 물대로 말이다. 개성의 왕인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시인하고 인정해야 서운함, 시기 질투, 비교를 하지 않는다. 누구의 행함은 크고, 누구의 행함은 작지 않다. 왜 그러한 사탄의 생각이 오는지 아느냐? 비유를 들어서 말해 줄게. 토끼와 호랑이가 있다. 토끼는 몸집이 작지만, 마음이 순수하며 심정을 잘 느끼고 사랑에 대해 민감하다. 반면에, 호랑이는 행함이 화끈하고 빠르고 용기가 있다. 그런데 이 호랑이가 토끼를 부러워하고 자신과 비교하니 낙심했다. 왜 그런가 보니 토끼는 자신의 장점, 개성을 정확히 알고 자신이 가진 것, 잘하는 것, 즉 재능을 가지고 늘 감사하며 영광 돌렸다. 자신의 최고의 것을 드리고 행하였다. 최고의 것도 받았지. 그런데 이 호랑이는 토끼처럼 자신의 최고의 것을 드리지 않고 그저 토끼를 부러워하며, 비교하여서 낙심하였다. 토끼는 심정의 지체, 내적 지체가 되어 손이 되어 드렸다면. 호랑이는 외적 지체, 즉 행함의 지체가 되어 드리는 것이 하늘이 예정하고 창조한 뜻이었다. 이처럼 너희 각 한 명, 한 명에게 하늘이 예정하고 창조하였다 함이다. 어떤 자는 하늘의 목이 되고, 손이 되고, 팔이 되고, 발이 되고, 귀가 되고, 눈이 되어 자신에게 예정된 뜻을 이룬다는 말이다. 토끼와 호랑이가 서로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아느냐? 노력과 행함의 차이다. 즉, 생각의 차이이다. 토끼는 자신이 맡은 센터에서 최선을 다하니 그 센터의 왕이 되고 호랑이는 자신이 맡은 센터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으니 토끼의 것이 더 커 보이며, 비교하게 되는 것이다. 몸집이 작아도, 커도 생각이 강하면 왕이 되어 신같이 산다. 그러나 생각이 약하면 그저 개미 같은 인생을 사는 것이다. 일만 하다가 수명이 다 되면, 죽는 개미처럼 말이다. 알았느냐. (아멘! 성령님, 알았습니다. 자신에게 개성이 있어도 그 개성을 왕같이 만들지 않으면 하늘이 저에게 예정하신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휴거도 개성이다. 어떤 자는 자신의 개성을 왕같이 만들어서 보다 쉽고 빠르게 휴거되는 반면, 다른 곳을 보며 아직도 휴거를 어려워하는 자가 있구나. 생각을 전환해라. 생각이 신이다. (그렇다면 성령님. 어떻게 하면 하늘이 각 신부들에게 예정하신 뜻을 온전히 이룰 수 있을까요?) 표상을 보아야지. 표상을 그냥 표상이라고 하겠느냐. 표상 따라 해 보아야지. 부흥강사를 보아라. 부흥강사를 치타로 표현하지 않느냐. 그것 아느냐? 같은 치타라도 각 재능과 개성이 다르다는 것을. 아무리 새끼 치타가 장성한 치타에게 배운다고 해서 장성한 치타와 똑같은 개성을 가진 치타가 되겠느냐? 쌍둥이를 보아도, 자세히 보면 다르게 생겼다. 이같이 동물이 아닌 창조 목적의 뜻을 가진 사람이랴. 하늘의 지체에서도 네가 반드시 채워야 할 지체가 있다는 것이다. 손으로도 어떤 것을 쓰느냐에 따라 다르듯, 발로도 어디를 가느냐에 따라 다르듯이 모든 것이 다 나뉘어서 존재한다. 같은 것은 단 한 개도 없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 비밀이다. 부흥강사는 자신의 개성을 하늘 앞에 왕으로 만들었다. 개성에서 경쟁은 없다. 사랑에서도 없다. 부흥강사처럼 하는 것이다. 네가 가진 재능, 개성을 하늘이 보기에 왕같이 만들라 함이다. 왕은 왕과 통하고, 신은 신과 통하듯이 너는 하늘의 지체가 되어 하늘이 너를 예정한 그 뜻을 이루어 살아라. (학교에서 말씀을 받고 있는데 갑자기 제가 해야 할 일들이 한꺼번에 생각났습니다. “성령님. 제가 해야 할 일들이 정말 많아요. 제 몸이 하나여서 제시간에 할 일을 다 하려면 정말 벅차요.”) 네 스스로 한다고 생각하니 그러하지. 몸이 따로 노니까. 하늘이 너의 입장과 같다. 머리는 있는데, 몸을 이루는 지체가 너무나도 부족하다. 선생이 살아 있는 기간에 1000년 역사를 찬란히 남겨야 하는데 몸이 없다. 그러하니 나 성령에게 붙어라! 인간은 신에게 일체 되어야 인간으로서 신이 되어 살 수 있다. 따로 존재하면, 서로 척척 맞지 않으니 일이 풀리지 않는다. 이는 마치 왼쪽 다리는 앞으로 가려는데 오른쪽 다리는 뒤로 가려는 것과 같다. 이같이 휴거된 영과도 일체 되어라. 그래야 더욱더 휴거 차원을 높이며 신과 함께하는 인생을 산다. 모든 것은 일체 되어야 뜻이 이루어진다. 일체 되지 않고, 각각으로 존재하면 답이 두 개가 된다. 답은 하나다. 딱 하나다. 선생에게 붙기다. 선생과 100% 일체 되는 것이다. 만일 선생이 성삼위와 일체 되지 않고 행한다면 뜻은 당연히 이루어지지 않을뿐더러 그 수많은 일들을 절대 감당해 내지 못한다. 일 처리도,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생각에서 하는 것이다. 선생이 삼위와 일체 되어 행하니 뜻을 이루고, 1000년 역사를 펜끝으로 남기고 있는 것이다. 선생이 머리다! 머리 따로, 몸 따로 존재하면 죽은 것이다. 너희는 선생의 지체가 되어서 몸을 이루어라. 각자 너희를 향한 온전한 뜻을 이루어, 선생의 완전한 몸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성령이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