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15.11.08 (일)
+ 2015년 11월 주일수요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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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복음 13장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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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_1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
2015년 11월 08일 주일
마지막 가르침과 만남
[ 요한복음 13장 12-20절 ]
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18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19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12 When he had finished washing their
feet, he put on his clothes and returned
to his place. 'Do you understand what I
have done for you?' he asked them.
13 "You call me 'Teacher' and 'Lord,'
and rightly so, for that is what I am.
14 Now that I, your Lord and Teacher,
have washed your feet, you also should
wash one another's feet.
15 I have set you an example that you
should do as I have done for you.
16 I tell you the truth, no servant is
greater than his master, nor is a
messenger greater than the one who
sent him. 17 Now that you know these
things, you will be blessed if you do
them. 18 "I am not referring to all of
you; I know those I have chosen. But
this is to fulfill the scripture: 'He who
shares my bread has lifted up his heel
against me.' 19 'I am telling you now
before it happens, so that when it does
happen you will believe that I am He.
20 I tell you the truth, whoever accepts
anyone I send accepts me; and whoever
accepts me accepts the one who sent
me.'
[ 사도행전 1장 8절 ]
8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8 But you will receive power when the
Holy Spirit comes on you; and you will
be my witnesses in Jerusalem, and in all
Judea and Samaria, and to the ends of
the earth.'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더불어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성찬 예식 주일예배>를 드립니다.
◎ 섭리사 성찬식은 2009년부터
시작했습니다. 매년 성찬식이 있을
때마다 ‘성찬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했고, 2013년에는 ‘이 시대
성찬의 의미’에 대해서 아주 깊이
자세히 말씀해 주었습니다.
◎ <이 시대 성찬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성찬식>에 참여해야 됩니다.
한국의 고유 명절 중의 <설날>이
있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어른에게
‘세배’를 합니다. 그런데 왜 ‘세배’를
하는지 모르고 절하면, 나중에는
허리가 아프다고 하며 왜 하느냐고
합니다.
설날 어른에게 ‘세배’를 하면,
어른들이 ‘세뱃돈’을 주지요?
설날 어른에게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받는 것도 기본 의미는
알고 하고, 알고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설날 어른에게
‘세배’를 하고, 절을 받은 어른들은
왜 ‘세뱃돈’을 줄까요?
<설날>은 ‘한 해의 처음’이며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아랫사람은 웃어른에게
“만수무강하세요. 사업 번창하세요.”
등 좋은 말씀을 올리며 인사를 합니다.
그러면 어른은 아랫사람에게
“좋은 대학 붙어라. 좋은 직장 가라.
건강해라.” 등 말로 화답을 하며
‘덕담’을 해 줍니다.
그리고 ‘복(福)돈’을 줍니다.
이렇게 한 해의 처음이며 시작의 날인
<설날>에 인사를 하고, 덕담을 해
주고, 복 돈을 주며 한 해의 ‘행운’과
‘복’을 빌어 주는 것입니다.
◎ 이 정도는 알고 <설날>을 맞고
<세배>를 하듯이, <성찬식>도 어느
정도는 알고 참여하고 기념해야
됩니다.
◎ 모두 <성찬의 의미>를 알고
<성찬식>을 맞도록 지난 수요일에 각
교회 교역자들이 2013년, 2014년
성찬식 때 선생님이 해 주신 말씀을
가지고 다시 요약하여 전해 줬지요?
모두 들어서 알고 있으니, 그 터전
위에 <올해 성찬 말씀>을 핵심만
전해 주고 이어서 <성찬식>을
진행하겠습니다.
◎ <당세의 것>을 잘 모르겠으면
<지나간 과거의 것>을 보면서
‘이와 같이 이러하다.’ 알면 됩니다.
<과거의 것>을 통해 <현재의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고로 먼저 ‘과거 예수님
시대의 성찬의 핵심’을 말씀해 주고,
이어서 ‘이 시대 성찬의 핵심’을
말씀해 주겠습니다.
<말씀 시작>
하나님은 <메시아 예수님>을 땅에서
태어나게 하시고, 모든 사람들이 겪는
삶의 법칙을 다 겪으면서 성장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예수님을 깨우쳐 주사
<시대를 구원할 복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세상’에
전하게 하면서 구약 때 예언한 역사,
<신약 구원역사>를 펴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주신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녀 차원의 구원’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 복음을 세상에 전할
때, 제일 먼저 ‘하나님이 택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부터
하나님을 믿던 자들로서 하나님이
택한 자들이었고, 선조 때부터
하나님이 오셔서 구원하겠다고 약속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율법’을 중심하여 4000년 동안
하나님을 믿고 섬기던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메시아 예수님>을 보내었고,
그를 통해 그들을 구원할 <새 말씀>을
알려 주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지도자들과 구약 율법을 믿던
자들은 예수님이 전하는 말씀과
자신들의 교리와 이론이 다르고,
예수님이 말하는 생활과 자신들의
생활이 다르다며, 잘못됐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반대하고 불신하고
핍박했습니다. 구약인들, 곧 <유대
종교인들의 핵심 교리와 가르침>은
‘하나님이 하늘에서 불과 칼을 들고
오신다. 우리는 <하늘에서 오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다린다. <사람>이
아닌 <신>을 기다린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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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약 예수님의 가르침>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
땅에 보내서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주신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와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구원받는다.”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구약인들은
“그게 무슨 말이냐? 하나님이
하늘에서 오신다는 성경의 약속이
있다. 그런데 네가 성경을 부인하느냐.
율법을 폐하느냐?”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하나님’을 믿어라. 그래야 구원받고
천국에 간다. 하나님이 ‘나’를 세상에
보내셨다.” 하고 가르쳤습니다.
<구약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니, <하늘>에서 ‘하나님’이 안
오시고 <땅>에서 ‘사람’이 인생들을
구원한다고?” 하며 놀랐습니다.
선조 때부터 4000동안 자기들이
믿어 온 바로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오셔서 구원하신다고 했는데, 자기들이
믿던 식과 너무 다르니 성경을 우습게
해석한다 생각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자신들이 알던 율법의 이론>과는
너무나 달랐고,
<자신들이 인식하고 있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기에 그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과 <구약인들>은
완전히 ‘극과 극’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유대 종교인들의 가르침>은
서로 하나 될 수 없는 주장과
이론이었고, 사상과 행위였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유대 종교인들의 가르침>은
서로 조금도 비슷하지 않았고,
높은 산과 평지같이, 바다와 육지같이
너무도 달랐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형상이 다르듯 너무도 달랐습니다.
<구약의 약속>은 ‘신약’에서 이루고,
<신약의 약속>은 ‘성약’에서 이룹니다.
고로 같은 하나님의 역사라도
<말씀의 차원>이 다르고,
<밝히는 것>도 다르고,
<대하는 차원>도 다르고,
<제도>도 다릅니다. 고로
<구(舊)역사>와 <하나님이 새로
시작하시는 새 역사>는 극과 극으로
다릅니다.
<구약역사>와 <신약역사>가 극과
극이듯, <신약역사>와 <성약역사>도
극과 극입니다.
고로 <하나님의 새 역사>는
‘아는 자’만 알고 따르고,
‘모르는 자’는 못 따릅니다. 알았어도
‘자기 주관을 못 버린 자’는 못
따릅니다. <새 역사>를 따르는 자들은
왜 따르게 되었을까요? 배우고, 알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시대 구원자를 통해
선포하신 새 말씀>을 배우고, 오랫동안
또 배우고 이해하면서 시간이 갈수록
<새 역사>는 ‘다른 차원’임을
깨달았기에 믿고 따르게 된 것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지금은 ‘예수님 때의 상황’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과거 역사>를 통해 <현재 역사>를
깨달아라 함입니다.
<구역사>와 <새 역사>는 시대마다
차원은 다르지만 역사적 상황은
‘동시성’으로 그와 같이 그러합니다.
이것을 생각하면서 ‘예수님 때의
상황’을 듣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구약에서 약속한 것>을 이루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때가
되어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내어
<그 시대를 구원할 새 말씀>을 주시고,
가장 먼저 ‘하나님을 믿던 유대
종교인들’에게 전하게 하셨습니다.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여
구원받으라고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말씀하셨지만, 유대 종교인들은
‘기존 신앙관, 기존 인식관,
기존 교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기 사고와 가르침’을 고집하면서
아예 안 믿고 안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자신들의
가르침>과 다르다며, 예수님을
배척하고 불신하고 이단시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아예 들어 보지도
않고 무조건 잘못됐다고 하니,
예수님이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아예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다 <새 시대 교리>를 들었어도
싫어하며 안 믿었고, 자기가 믿던
식대로 믿겠다고 하며 절대 안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두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로 믿고
따르며, 종에서 아들로 부활하여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와
구원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구약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아예 안 듣고 안 따르니, 하나님은
성령과 성자와 함께 각종으로 깨우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모두 깨닫도록 할 일을 다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구약인들은 <예수님>을
끝까지 안 믿고 안 따랐으며,
오히려 핍박하고, 때리고, 이단시하고,
죽이려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
‘이방 땅’에 가서 복음을 전하며
은밀하게 역사를 펴 나갔습니다.
그러나 유대 종교인들의 핍박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그대로 두면 믿고 구원받을 자들까지
구원받지 못하고 해를 당하게 될
정도로 판국이 기울었습니다.
그들이 행한 대로라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자들을 멸할 수
없으니 하나님은 악인들과 죄인들을
멸하는 길을 택하지 않으시고,
구세주가 악인들과 죄인들의 죗값을
대신 받고 죽어 주어 모든 자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는 길을
택하셨습니다.
시대 죗값, 개인과 민족의 죗값을
청산하지 않으면, 회개하고 돌이켜
구원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모두 심판을 받고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모르는 자, 안 믿는
자는 회개하지 않습니다. 몰라서
못 하고, 안 믿어서 못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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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회개하지 못하여 멸망을
받으니, 누가 대신 회개하여 죗값을
받고 ‘구원의 길’을 열어 놔야
멸망을 피하고 ‘구원의 기회’를
얻게 됩니다.
시대의 죄, 개인의 죄, 민족의 죄를
대신 회개하고 대신 죗값을 받고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 자는
오직 ‘그 시대에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뿐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예수님은 거센 핍박으로 인해
‘이방 땅’으로 가셨다가 다시 핍박의
땅인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유대 종교인들은 ‘극한 불신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향해 온갖 살인적 행위를 했고,
유대 종교의 법, 국가의 법, 여론의
법으로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생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놓기 위해 그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중에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은 구원하여 새 시대 구원
‘자녀급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자신의 죽음’을
아시고, 잡히시던 날 저녁에 제자들을
다 모아 놓고 “이제 만민을 위해
하나님이 정하신 길로 가야 될 때가
왔다.” 하고, 마지막으로 ‘만찬’을
가지셨습니다.
그 만찬은 ‘이별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자신들의 선생이
그 길로 즉시 ‘죽는 길’로 간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가지시고, 바로
죄인들의 손에 넘어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제자들은 그제야 ‘주와의
마지막 만찬이었구나!’ 알았습니다.
<성만찬>은 예수님의 육신이 살아
있을 때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자들은 이때를 기억하며 구세주
예수님의 몸이 되어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뜻을 펴라고 <성만찬>을
해마다 기념하게 했습니다.
<구세주와의 마지막 만찬>이니
얼마나 귀하고 소중합니까? 본인은
‘그때 그 당세’에 참여하지 못했더라도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를 믿고 따르는
자들이라면 그때를 기억하며
‘주의 몸’이 되어 복음을 전하겠노라
다짐하고 기념해야 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그 시대가 믿지
못하고 죽인 것이니 ‘고난의 길’
이었습니다. 그러나 온 인류를 위해
대신 죽어 주어 모두를 살리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었으니
‘영광의 길,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주>는 이리 가나 저리 가나
‘구원’을 이루게 합니다.
예수님은 결국 십자가를 지고
만민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고,
모든 인생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구원받을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구교인, 곧 <유대 종교인들>은
계속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옛날 자기
식’대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따른 자들,
곧 <천주교인, 개신기독교인>들만
<새 시대 신약역사>를 2000년 동안
화려하게 펴 나갔고, 땅에서도
천국에서도 <자녀 차원의 구원>을
이루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면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자들의 죄도
용서받아 깨끗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여
<사도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면서
<성자>도 승천하시고 <성령>이 오셔서
‘그 시대 차원의 성령 역사’가
일어났고, <성령>이 ‘따르는 자들의
육’을 가지고 역사를 펴셨고,
성자와 예수님은 ‘영’으로
<2000년 자녀급 신약역사>를
펴 오셨습니다.
<신약역사>는 구역사인 <유대
종교>와는 비교도 안 되게 컸습니다.
해와 별같이 차이가 나게 됐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이와 같이 이 시대도 ‘동시성 역사’를
보냈습니다. 어떤 동시성 역사요?
<구시대 기성>이 ‘시대 보낸 자’를
믿어 주지 않고 반대하고 불신하고
핍박한 것입니다. 그로 인해 <세상>도
불신하고 핍박했습니다. 이로써
<섭리역사>는 ‘무덤 기간’을 보내게
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행하시는 역사>는 온
인류가 틀어도 틀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역사>는 온
인류가 막아도 막아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막으면,
하나님은 ‘다른 길’로 행하시어
정녕코!! 뜻을 이루십니다.
선생은 제자들과 ‘해외’로 나가서
시대 복음을 전하며 행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끝까지
불신했습니다. 알고 회개하기는커녕
계속 <시대 구원자>를 악평하고
욕하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막기만 했습니다.
그대로 두면 ‘모두 멸망’이고,
앞으로 ‘시대 말씀을 듣고 구원받을
자들’까지 새 시대 섭리역사로 오지
못하고, 당세에 ‘믿고 따르며 구원을
이루고 가는 자들’까지 해를 당하고
고통을 받게 됐습니다.
고로 하나님은 <시대 구원자>가
‘시대 죄’를 대신하게 하고, 그때 같이
있었던 제자들을 마지막으로 만나게
하시고,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십자가를 지셨듯 시대 예루살렘과
같은 한국 수도권에서 ‘시대 십자가’를
졌습니다.
<이 시대 보낸 자> 역시 예수님 때와
같이 구시대 기성의 법, 국가의 법,
여론의 법으로 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모두에게
‘시대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또한 시대 구원자가 시대 십자가를
지는 기간에 성자는 <휴거 역사>를
펴고 승천하셨고, 그로써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었고,
<찾을 것>을 찾았고,
<할 일>을 다 했습니다!
역시 시대가 막고 틀어도 하나님은
정녕코 행하여 뜻을 이루고 맙니다!
<신약>은 ‘성자가 처음 오신 역사’
이며, <성약>은 ‘성자의 재림 역사’
입니다. 신약에서 못다 편 뜻은
‘성약’에서 완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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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육신이 죽어 ‘영’으로 했지만
이 시대는 ‘시대 구원자의 육신’이
살아서 합니다. 그 몸이 갇힌 바
되었으니 얼굴은 못 봐도 육이
살았으니 시대의 깊은 인봉의 말씀
하나하나를 다 풀어내어 혼의 비밀도
알리고, 성자 본체도 알리고, 휴거도
알리면서 영으로도, 혼으로도,
육으로도 역사를 펴 나가고 있습니다.
모진 핍박, 억울함, 환난을 견뎌 냈고,
이제 육으로도 만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번 성찬식은 휴거 역사를 이루고
맞는 첫 번째 성찬식입니다.
고로 지난 성찬식 때와는 다릅니다.
진정한 하늘의 신부가 되어 휴거되어
성찬 예식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선생이 시대 십자가를 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찬을 했을 때는
‘소수’였습니다. 이제는 27개국의
수백 개 교회가 다 같이 하게
됐습니다.
섭리역사, 하나님의 마지막 역사,
마지막 열매를 맺고 거두는 역사!
시작은 미약했지만 성삼위의 역사이니
성삼위가 함께하시어 매일 시간이
가면 갈수록 찬란하게 빛나고
창대하게 되는 역사입니다.
앞으로 계속 그러합니다.
1000년 동안 매일 성장합니다.
매일 앞으로 전진하는 역사이며,
차원이 높아지는 역사입니다.
성자께서 그 육과 함께
<휴거 역사>를 이루고 승천하시기
전부터 성령의 역사가 이 시대 급으로
더욱 찬란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제 <섭리사>는 예전보다 컸고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아직 핍박과
악평이 있어도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이제 ‘우리의 시대’가 왔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니, 삼위일체가
절대적으로 함께하며 도우십니다!
모두 <성찬식>에 참여하면서
이 시대와 구원자에 대해 더욱 깨닫고,
성령과 함께하며 ‘성령의 육’이 되고
‘주의 육’이 되어 부지런히 뛰고
달리며 어서 ‘시대 복음’을
온 세계에 널리 전해야 되겠습니다.
그동안 수도 없이 엄청난 말씀을
줬습니다. 인류 역사상, 구원역사상
그 정도 양의 말씀은 없었습니다.
모두 그 말씀을 확실히 깨닫고,
그 말씀을 행하고, 그 말씀을 가지고
나가서 전하면서 살기 바랍니다!
모두 하나 되어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시대 구원자를 통해 이
시대에 선포하신 말씀을 전하면서
자꾸 뜻을 펴 나가며 창대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100년 가면 1000개 교회,
200년 가면 10000개 교회,
300년 가면 10만 개 교회,
1000년 가면 100만 개 교회가
됩니다.
유일하시고 영원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령님이 함께
행하시는 일입니다. 고로 행하는 대로
잘됩니다!
모두 <성찬식>에 참여하고
주인 의식, 책임 의식을 가지고
행하기를 축원합니다!
◎ 내년부터는 이 시대의 때에 맞게
<성자 승천일 기념식>을 하고,
4월에 <성찬식>을 하겠습니다.
◎ 이제 <성찬식>을 시작하겠습니다.
2015_1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5
2015년 11월 15일 주일
시간이 빨리 간다는 것을
깨닫고, 영적으로 써라
[ 에베소서 5장 16절 ]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6 making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because the days are evil.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11월 셋째 주 주일입니다. 이제
2주만 더 가면, 2015년의 마지막
달을 보내게 됩니다. 10월과 11월은
‘한 해의 운명을 좌우하는 때’라고
했지요? 그래서 10월부터 11월은
<때에 합당한 말씀>을 받아서
즉시 보내 주고 있습니다. 음식도
만들었을 때 즉시 먹어야 ‘제맛’이
나듯이, 말씀도 받았을 때 즉시 전해
줘야 ‘제맛’이 나서 행합니다.
◎ 이 말씀을 듣고 행할 때에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같이
움직이게 되고, 바로 행하니 문제가
해결되고, 얻을 것을 얻고, 차원을
높이게 됩니다.
◎ 오늘은 <시간>에 대해 깨우쳐
주면서, 시간을 어떻게 써야
최첨단으로 쓰는지, 시간을 어떻게
써야 같은 시간을 5배, 10배 더 쓸 수
있는지 말씀해 주겠습니다.
◎ 오늘 말씀도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분야별로 깨우쳐 주시고
알게 해 주셨습니다.
◎ 말씀의 주제는 ‘시간이 빨리 간다는
것을 깨닫고, 영적으로 써라.’입니다.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려고
시계를 봤습니다. 그때!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하는데 얼마나
빨리 가는지, 5분이 어느 정도나
빨리 가는지 시계를 쳐다보며
숫자를 셌습니다.
<5분>은 ‘360을 셀 수 있는 정도의
시간’이었습니다. <사람의 말>이
얼마나 빠른지 그 속도를 보면,
1초에 몇 마디씩 합니다. 이같이 빨리
말해도 <5분>에 ‘360’밖에 못 세니,
5분이 일순간에 지나갑니다.
한 시간은 60분이지만, 어떤 일을
하든지 ‘한 시간’ 동안 해 놓고 보면
얼마 안 됩니다.
하루는 24시간이지만, 실상 어떤
목적을 놓고 쓰다 보면 그 목적을
향해 일을 하는 데는 10시간 정도밖에
못 씁니다. 24시간 안에 잠도 자야
되고, 식사도 해야 되고, 어떤 목적을
두고 행하는 데 준비도 해야 하는 등
과정의 시간이 절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루 24시간을 가지고 실제로 일을
하다 보면 얼마 못 하고, 그 일을
하는 데 시간이 많이 들어가니 시간이
부족하고, 시간을 별로 쓰지도
않았는데 빨리 지나갑니다. 그래서
기도하며 하나님께 묻기를
“일을 하나, 안 하나 별로 한 것도
없이 <하루 24시간>이 이렇게도
빨리 갑니까?” 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육>을 가지고 행하니,
쓰다 보면 별로 한 것도 없이 시간이
빨리 간다. <육신>은 느려서 조금
움직이다 보면, 금방 한 시간이 간다.
말이 24시간이고 숫자만 많지,
실상 하루의 시간은 얼마 안 된다.”
하셨습니다. <육신>이라 느려서
그러하다. - 라고 하신 말씀이
정말 이해가 갔습니다.
하루에 ‘어떤 목적한 일’을 놓고
조금 여유 있게 하다 보면 시간이
빨리 가고, 시간도 엄청나게 들어가고,
하루해가 빨리 지나가 버립니다.
서두르고 급하게 빨리하면 시간이
충분하고, 하루해도 길고, 할 일도
하고 끝냅니다. 그러나 매일
서두르면서 빨리하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생각보다 그렇게 <생각>이
빨리 돌아가지도 않고, <몸>이 빨리
움직여지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영>이 <육>을 끌고 하면, 빨리한다.”
하셨습니다. <영>이 <육>을 끌고 하면,
‘생각의 차원’이 높아져서 계속
‘지름길’로 가게 됩니다.
고로 3배, 5배 빠르게 합니다.
그러면 하루해가 그만큼 깁니다.
같은 24시간이라도 그 시간에
많은 일을 합니다. 고로 <영>이
<육>을 끌고서 <영>이 <육>을 쓰고서
‘영적’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영>이 <육>을 쓰고 ‘영적’으로
하려면, 늘 기도하고 신령해야 됩니다.
<시간>은 쉬지 않고 꾸준히 갑니다.
그런데 <육>은 느려서
<꾸준히 가는 시간>을 잘 못
따라갑니다. 순간! 5분이 지나가고,
잠깐! 뭘 하면 1시간이 지나가고,
조금 느슨하게 하다 보면 몇 시간이
후딱! 지나갑니다. 잠을 자고 나면
3~4시간이 가 버리고, 많이 자는
사람은 5~8시간이 순간! 지나가
버립니다.
한 시간을 주면서
“저 산을 넘어갔다 와라.” 하면
<육>은 ‘갈 때’ 1시간을 다 써 버리고,
‘올 때’는 또 1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그런데 <빠른 영>은 산을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와도 1시간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영의 빠르기>를 가장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눈 깜빡할 사이’같이 빠릅니다.
여러분 모두 눈을 깜빡해 보세요.
정말 빠르지요? 지구에서 태양까지
가려면, <빛>으로도 ‘약 8분’이
걸립니다. 그런데 <눈빛>으로 태양을
보면, ‘순간 1초’도 안 걸리고 봅니다.
이렇게 ‘눈빛’, 곧 ‘눈 깜빡할 사이’가
그리도 빠릅니다. <영>이 이와 같이
빠릅니다. 또 <영의 빠르기>를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마음과 생각’같이 빠릅니다.
지구에서 천국까지 가려면,
<빛>으로 가도 ‘150억 년 이상’이
걸립니다. 그 먼 곳을 <생각>으로
가면, ‘눈 깜빡할 사이’에 갑니다.
<생각>이 천국에 갔으면,
<영>도 <혼>도 천국까지
간 것임을 알기 바랍니다. 또한
<영>이나 <혼>이 천국에 가면,
<생각>도 ‘자기 혼과 영’을 따라서
천국에 가기도 합니다.
<생각>은 ‘자기 육’도 따라다니지만,
‘자기 혼과 영’도 따라다닙니다.
고로 <육>만 가지고 ‘육적’으로만
행하지 말고, <영>을 가지고 <영>이
<육>을 쓰면서 ‘영적’으로 행하면
그만큼 <생각>도 빨리 돌아가고
2015_1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6
<행실>도 빨리하게 되어
시간도 세월도 빨리 가지 않습니다.
<몸>만 빨리 움직이려니 잘 안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빨라야 됩니다.
<생각>이 날렵하고 <생각>이
날아다녀야 됩니다. 그래야 <몸>도
날렵하고 날아다니면서 행하게 됩니다.
그러려면 꼭 기도하여 <영>이
<자기 육>을 쓰고 ‘영적’으로
행하게 해야 됩니다.
<시간>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입니다.
지구 세상 73억 명이 힘을 모아서
잡아도 <시간>은 못 잡습니다.
<시간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곧
‘<생각>을 빨리하여 <육>을 빠르게
움직이기.’입니다. 그러려면 ‘<영>이
<육>을 끌고서 영적으로 하기.’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천국>은 ‘영으로 다니며 사는
곳’입니다. 고로 <천국의 시간>은
‘이 세상의 시간 개념’과는 다릅니다.
<세상의 1000년>은
‘천국의 하루’입니다.
<육의 인생 100년>을
‘천국의 시간’으로 계산하면,
약 2시간밖에 안 됩니다. <육신>은
‘천국의 시간으로 약 시간’을 살고
죽는 것입니다.
그 짧은 시간에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를 만나,
그를 통해 ‘하나님이 이 시대에 하시는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목적 중에서
최고의 목적인 ‘창조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그 말씀을
실천함으로 <영>을 휴거시켜 ‘황금성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해야 됩니다.
인생을 살아 본 사람들은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알 것입니다.
80~90년 살았어도
‘세월이 금방 지나갔네.
언제 80년이 지났지?’ 합니다.
중고등부와 대학부 때 섭리사에 와서
큰 사람들은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어
희끗해진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며
‘어느새 이렇게 시간이 지나갔지?’ 할
것입니다. 고로 ‘해 놓은 것’이 없으면,
인생 허무합니다.
<육신>도 해 놓고, <영>은 100%
완벽하게 구원해 놓고 휴거시켜 놔야
됩니다.
<육신 성공>은 못 하고 겨우 먹고
사는 정도여도 <영>이 완벽하게
휴거됐으면 ‘최고’입니다. 왜요?
휴거되면 ‘영원한 지옥의 고통’을
벗어나고, 영원히 ‘천국 황금성’에서
누리며 사니, <육신>이 죽더라도
걱정이 없습니다.
<휴거의 영광, 휴거의 보람>은
영원합니다. <영>은 <빛>보다
‘수백조 배’ 빨리 활동합니다.
고로 <영>이 ‘천국’에서 ‘하루’만
살아도 실상은 <육>이 ‘세상’에서
‘수백조 배’ 더 산 격이 됩니다.
<육>이 인생 100년을 살면서
<자기 영>을 100% 완벽하게
구원하고 휴거시켜 놨다면, 실상
<육>이 ‘세상’에서 100년의 수백조
배를 더 산 것이 되니 세상에서
‘육의 성공’은 못 했어도
‘최고의 성공’을 한 것입니다.
이해했습니까? 알고 이해를 해야
<은혜>를 받고, 깨달아야 <감동>을
받습니다.
<월명동 지역의 형상>도
‘아는 자’만 “신비하다.” 하고 은혜를
받고 감탄하며, 하나님과 통하여 더욱
감사, 감격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 또 말씀해 주겠습니다.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그 짧은 시간을 가지고,
<영원히 존재하게 하는 생명의
말씀>을 배우고 써라. 그러면
인간으로서 최고 가치 있게 시간을
쓰게 된다.” 성령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잘 들으세요.
“<시간>을 ‘음식’에 비유하여
말할 테니, 잘 들어 봐라.
불고기가 막 구워졌을 때는
보암직하고 먹음직하지?
그때 먹으면, 제맛이 나지 않느냐.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불고기는
식어서 제맛이 가 버린다.
과일도 싱싱할 때는 보암직하고
먹음직하다. 그때 먹으면, 제맛이
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제맛이 변해 버린다.
<음식의 제맛>이 변하면, 뇌에서
‘보암직하고 먹음직하다고 여겼던
마음’이 사라져서 먹고 싶지 않고,
먹어도 깨작거리며 먹게 된다.
시간도 그러하다.
<행할 시간, 쓸 시간>이 지나면
‘제맛’이 변한다.
<시간의 제맛>이 변하면, 뇌에서
‘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져서 하고
싶지 않고, 하더라도 깨작거리며
행하게 된다. 고로 불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졌을 때 뜨거울 때 맛있게 씹어
먹듯이, <일>도 나 성령이 감동을
줄 때, 뇌에서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고 흥분되어 그 일이 보암직하고
먹음직해 보일 때, 제때, 제시간에
해라!”(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시간>이 지나서 ‘제맛’이
변했다면, 처음보다 못하지만 ‘맛’을
찾아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고기가 식으면 ‘제맛’이 변하지만,
다시 데워서 뜨겁게 하면 어느 정도
‘맛’이 돌아온다. 이와 같이
<할 시간>이 지나서 ‘제맛’이
변했더라도 일하기 전에 다시
‘마음과 생각’을 뜨겁게 하고 열을
내어 흥분되게 만든 후에 행해라!
<마음과 생각>을 뜨겁게 데우지 않은
상태에서 설교를 하든지,
강의를 하든지, 전초를 하든지,
말씀을 전하든지, 관리를 하든지,
공부를 하든지, 어떤 일을 하면,
마치 ‘식은 음식을 먹는 것’과 같아서
그것은 ‘맛없는 예배, 맛없는 모임,
맛없는 행실’이 된다.
고로 어떤 일을 하든지 제때,
제시간에, 감동됐을 때, 마음이
흥분됐을 때 하고, 제시간을 놓쳐서
맛이 변했다면 다시 마음과 생각을
뜨겁게 하고 열을 낸 후에 해라.”
(하셨습니다.)
손님에게도 ‘식은 음식, 찬 음식’은
대접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사랑하는 자에게는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우리 신부들을 대하실 때는
<시간이 지나서 제맛이 변한 말씀>을
주지 않으십니다.
하늘에서 생방송으로 중계하면서
‘가장 따끈따끈한 말씀’을 주시며,
우리를 <생명 길, 휴거 길, 천국 길>로
인도하십니다. <사랑>도 그러합니다.
2015_1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7
어제 사랑을 주었으면, 오늘은 오늘의
따끈한 사랑을 또 주십니다. 그렇게
우리를 대해 주시고 사랑해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대할 때, <식은 음식>을 주듯
<식은 시간>을 드리면 되겠습니까?
성령님이 감동을 주실 때,
성령님이 하자고 할 때 안 하는 것은
음식이 뜨끈뜨끈할 때 “같이 먹어요.”
하지 않고, 음식이 다 식어서 맛이
변한 후에 “같이 먹어요.” 하는
격입니다. 그러니까 성령님도 “판이
식고 할 맘이 없어진다.”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같이 하자!” 하지
않으시고, “너나 해라!” 하십니다.
실제로 성령님은 그리하십니다.
실제로 성령님이 새벽에 깨워 주실 때
안 일어나고 또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서 “성령님, 저와 같이 해요!”
하니, 성령님은 “식은 음식 너나 먹어.
식은 시간 너나 써. 너는 내게 찬밥과
찬 시간을 대접하느냐. 나 바빠.” 하고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네가 시간을
지키면 다시 올 거야. 명심해.”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제맛이 변하면, 떠나십니다.
제맛이 변했는데 다시 뜨겁게 하지
않으면, 떠나십니다. 시간도 그러하고,
약속도 그러합니다. 또한 죄를 지어서
제맛이 변해도 떠나십니다. 회개하여
깨끗하게 해야 다시 오십니다.
모두 성령님에 대해 알고서,
성령님을 모시고 대해야 됩니다.
저마다 ‘새벽 정한 시간’에 꼭
기도하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원하시는 시간’에 기도하면, 소고기
안심을 구워서 뜨끈뜨끈할 때, 제때
먹는 것과 같아서 잘 깨닫고, 삼위와
주와 대화도 잘되고, 기도도 잘되고,
계시도 받고, 응답도 잘 받고,
새벽의 제맛, 하루의 제맛이 나게
해 주십니다. 그러나 제시간이 지난
후에 하면 ‘혼자’ 해야 되니 힘들고,
하더라도 ‘맛 변한 음식’을 먹듯이
맛도 없고 힘도 없습니다.
기도도, 할 일도, 하늘과의 약속도
제때 제맛이 날 때 하기입니다.
제시간이 지나서 맛이 변했다면
마음과 생각을 다시 뜨겁게 해서
맛을 찾고 하기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성령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도, 성자도, 나 성령도,
구원자도 너와 통하려고 그렇게도
기다린다. 하루 24시간은 1440분인데
그중에서 ‘1분’만이라도 시간을 내어
삼위와 구원자와 통하려고 하면, 짧은
시간이라도 연결하여 그때 급한 것을
말해 주며 돕는다. 그런데 1440분을
몽땅 다른 데 쓰고, 단 1분도 삼위와
구원자를 찾지 않고 하루를 마친다.
그래 놓고 어떻게 나 성령을 부르며
천모요, 영혼의 어머니라 말하느냐.
그렇게 해 놓고 어떻게
하나님이, 성자가, 나 성령이
‘너의 왕’이 될 수 있겠느냐.”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기쁘고 희망 있게 하기
위해서는 별짓을 다 하고,
자기를 기쁘고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좋다고 하는 것을 찾아
골라서 수시로 보고, 인터넷 화면과
TV 채널을 바꿔 가며 다 보면서 살고
있구나. 그러다 새로운 영화가 나오면
영화를 보면서 즐기고, 하루 종일
자기를 위해서 돈을 벌고, 쓰고, 입고,
먹고, 할 일을 다 하며 사는구나.
그러면서도 하루 1440분의 시간
중에서 단 ‘1분’도 삼위와 대화하지
않고, 삼위를 기쁘게 하지도 않고,
어떻게 하면 삼위가 좋아하실까
연구하지도 않느냐.
너는 삼위와 주를 ‘산 너머’에 놓고
멀리 떨어져 사는구나. 삼위와 주가
찾으면 오히려 바쁘다 하고, 자기
행위가 드러날까 봐 피하는구나.
그렇게 살면서 어떻게
<영원한 지옥>에 안 간다 장담하고,
휴거되어 <천국 황금성>에 간다
장담하고, <휴거 700선>까지 간다
장담하겠느냐.
그러고는 힘들 때, 문제가 생겼을 때,
일을 당했을 때 그제야 하나님과 나
성령과 성자와 구원자를 찾는구나.
삼위일체와 구원자를
‘힘들 때 쓰는 지팡이’로 생각하고,
‘어려움을 돕는 심부름꾼’으로
생각하며, 네 마음대로 부리며 살고
있구나. 이런 자들이 많으니, 설교를
내보내서 ‘신앙의 경고’를 주어 각자
‘자기 양심’으로 깨닫게 해 주어라.”
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시간은 빨리 갑니다.
세월은 빨리 갑니다.
어린아이나 청소년은 자기에게
시간이 많은 것으로 생각되지만,
‘해 놓은 것’ 없이 시간을 그냥
보내 버리면 ‘허무’만 남습니다.
어린아이에게도, 청년에게도,
중년에게도, 노인에게도
<시간과 세월>은 봐주지 않고
하루도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갑니다.
지구 세상 73억 명이 힘을 합쳐서
잡아도 <시간>은 못 잡습니다.
<시간>은 ‘지구의 공전과 자전’이기
때문입니다.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누가 붙잡을 수 있겠습니까?
인생아~ 늙지 마라.
- 하며 잡아도 인생은 늙어 가고,
시간아~ 가지 마라.
- 하며 잡아도 시간은 흘러갑니다.
고로 보다 빨리 생각하고,
빨리 뛰면서 살아야
<시간을 잡은 자>가 되어
자기 육에게도 ‘많은 것’을 남기고,
자기 영에게는 ‘영원한 것’을 남겨
성공한 자가 됩니다.
<생각>이 빨리 돌아가야 됩니다.
<생각>이 날렵해야 됩니다.
그래야 <몸>도 날렵해져서
<실천>도 빨라집니다. 그러려면,
<육>만 가지고 행하면 안 됩니다.
<육>은 느려서 <빠른 시간>을 못
따라갑니다. 꼭꼭 기도하면서
‘영적’으로 행해야 됩니다.
영적으로 행하는 것이란, 이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꼭 <성령>을 부르고
<주>를 부르면서, 성령과 함께,
주와 함께 해야 됩니다. 그러면
‘2시간’에 할 일을 ‘1시간’만에 하여
<1시간을 잡은 격>이 됩니다.
<시간을 잡는 방법>은
‘빨리하는 것’이며, <빨리하는 방법>은
‘영적·신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육>으로 뛰어서는 시간을
‘두 배’도 잡기 힘듭니다.
<육>으로 뛰면, 뛰어도 남보다
조금 더, 한 뼘 더, 한 발자국
더 앞서갈 뿐입니다.
2015_1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8
<영적>으로 해야 됩니다. <신적>으로
해야 됩니다. 그래야 ‘10~20배의
시간’을 잡고서 쓰게 됩니다.
<신적으로 하는 것>이란,
신의 머리를 사용하기입니다.
곧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생각대로 행하기입니다. 그리고 생각의
차원을 높여서 ‘돌아갈 길’을 질러가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안 하기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시키시는 대로 그 방법대로 행할 때,
그것이 ‘신의 머리를 사용하는 것’이
되고 자기 생각이 ‘하늘같이 높은
생각’이 되어 10배, 100배 시간을
잡고 쓰는 자가 되어 행하게 됩니다.
<신의 머리>를 써서 시간을 10배,
100배 잡아서 쓰고, 그리함으로
육에게도 많은 것을 남기고 영에게는
영원한 것을 남겨 최고의 성공을
하라고, 성삼위는 구원자를 통해 항상
‘따끈한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함으로
<신의 머리를 써서 한 자>가
<시간을 멈추게 한 자>가 되어
여호수아같이 ‘표적의 승리’를 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일찍 안 자’는 50년 전에 이미 알고,
30여 년 전부터 그 뜻을 세상에
전하면서 그로 인해 ‘하나님이 주시는
혜택’을 받고 살고 있습니다. 곧
<재림과 휴거의 뜻>입니다.
그러나 30~50년을 먼저 태어나서
먼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으며
이미 30~50년 전부터
<재림과 휴거>를 준비한 자들인데,
<새 시대 하나님의 뜻, 신의 생각>을
몰라서 <생각>도 느리고 <행실>도
느린 자들이 있습니다.
고로 그들은 <새 시대>에 대해서 꿈도
못 꾸고, 40~50년 이상 뒤처져
갑갑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을
보고 “인생 헛살았다.” 합니다.
그렇게 일찍부터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고 살았어도 몰라서 못
하니, 준비하면서 시간만 보내다가
인생 황혼을 맞았고 더러는 죽기도
했습니다.
그 영이 영계에 가서 알고, 한탄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보다 50년 늦게
태어났어도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 신의 생각>을 알고 즉시 행하니,
그들보다 ‘40~50년의 시간’을 앞질러
가게 되었고 인생 100년을 앞질러
가게 됐습니다.
지혜자, 아는 자는 ‘지름길’로 갑니다.
고로 ‘시간을 잡은 자’가 되어,
늦게 출발했어도 빨리 갑니다.
선생은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줍니다. 오직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뜻>만을 가르쳐
줍니다. 이것이 <시대 말씀>입니다.
섭리사에 와서 이 말씀을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알고, 믿고 행하며
사는 자들은 50~70년 먼저 태어나서
먼저 믿은 자들보다 앞질러 가고
있습니다.
또한 100년, 200년, 300년, 500년,
700년 있다가 할 일을 지금 행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떤 것은 700년,
800년, 900년이 가도 못 할 일인데
현재! 행하고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휴거>입니다.
<휴거>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고,
<휴거>로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고,
<휴거>로 ‘성경의 예언’을 이루고,
<휴거>로 ‘천국 황금성의 문’이
열리고, <휴거>로 ‘하나님의 한’이
풀립니다. 이 귀한 <휴거>는 ‘구원자가
살아 있는 당세’에만 하고 끝납니다.
구원자가 죽은 후에 새 역사로
오는 자들은 <휴거>가 아닌,
<성약 신부급 구원>을 이룹니다.
<구원자가 살아 있는 당세>에 새
역사로 와서 <휴거>를 이룬 자들은
마치 나이가 어려도 임금 아들의
혼인 잔치에 참여한 격입니다.
<임금 아들의 혼인 잔치>는
그 후 50년, 70년이 흘러가도
다시는 못 봅니다.
‘당세에 딱 한 번뿐’이기 때문입니다.
<휴거>도 이와 같습니다. ‘구원자가
살아 있는 당세’만 <휴거 역사>를
폅니다. 후대에는 500년, 700년이
흘러가도 <휴거>는 못 봅니다.
고로 지금 섭리사에 와서
<시대 말씀>을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알고, 믿고 행하며 사는 자들은
50~70년 먼저 태어나서 먼저 믿은
자들보다 앞질러 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700년, 800년, 900년이 가도
못 할 일을 현재! 행하고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지금 이 귀한 때, 인류 역사상 한
번도 맞지 못했던 이때, 구원역사
6000년 동안 한 번도 맞지 못했던
이때, 성약 1000년 역사 기간 중에서
단 한 번뿐인 이때,
<하나님의 새 역사, 마지막 역사>를
만나서 살고 있는데 하루 24시간,
곧 1440분의 시간 중에서 1분도,
10분도, 1시간도 삼위와 대화하는 데
쓰지 않으렵니까? 저마다 자기를
즐겁고 기쁘게 하기 위해서
하루 24시간을 다 써 버립니다.
잠자고, 먹고, 입고, 씻고, 운동하고,
놀고, 돈을 벌고, TV를 보고, 영화를
보고, 만화를 보고, 소설을 보고,
인터넷을 하고, 게임을 하면서
생각나는 대로 못 참고 하루
1440분을 다 써 버립니다.
<황금성 천국>에 가기를 원하고
<휴거>되기를 바라는 신부들이
하루 1440분의 시간 중에서
‘1분’도 삼위께 안 주고 단 ‘1분’도
삼위와 대화도 안 합니다.
이런 자들을 보고,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맛있는 소고기 안심 1440점을
구워서 먹고 있기에 ‘한 점 주려나?’
하고 계속 서서 기다렸다. 그러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앉아서
‘1440점 중에서 설마 한 점은
주겠지.’ 하며 계속 기다렸다.
그런데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터지겠네!” 하면서도 나
성령에게 ‘고기 한 점’을 안 주고,
‘마지막 한 점’까지 자기 입에 털어
넣는 격이다.” 하셨습니다.
<하루 1440분>은
‘1440점의 고기’와 같습니다.
이 <시간의 고기>를 가지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주와
‘함께’ 먹으며 잔치해야 됩니다!
2015_1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9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여러분이 월명동에 오면
“뭐라도 해 주자!” 하고, 부침개라도
꼭 부쳐 먹게 해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선생이 늘 말해도 월명동에서
안 해 줘서 못 먹지, 선생은
이렇게 안 시키는 날이 없습니다.
하나님도 이같이 해 주시는데,
여러분이 ‘하루 1440분’을 가지고
살면서, 하나님께 ‘1440분의 1’도
안 드리면 <휴거>고 <신부>고 자격이
없습니다.
하루에 ‘1분’이라도 삼위와 통하면,
실 한 가닥만큼이라도 삼위와
연결되어 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도 “하자! 같이 하자!” 하는데도
안 하는 자가 있습니다. 해도 해도
너무 하니 더 이상 ‘그 사람’에게 신경
안 쓰고 그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투자하니, 그 사람은 바로 알고 늘
하늘과 교통하며 대화하고,
말씀에 더욱 확실히 서서 외치고,
일도 도와주고, 전도도 하면서
멋지게 크고 있습니다. 어느 면에서
봐도 ‘먼저 온 자’보다 낫습니다.
<사람을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특히 만들기
너무 힘든 자가 있습니다.
말을 너무 안 듣고 자기 좋은 대로
하는 자가 있습니다.
<세월>은 자꾸 흘러가고
<하나님의 역사>도 계속 흘러가니,
그런 자는 뒤로 제쳐 놓고
‘다른 사람’을 키우고 만들어야
성령님의 심정 타는 마음도 없어지고
속이 시원합니다.
성품이 해 같고, 달 같고, 기치를 벌인
군인 같아야 됩니다. 그래야 ‘하늘의
신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하늘이 손을 댈 때, 그만큼 변화되고
만들어집니다. <시간>을 잡아서
‘하늘’을 위해 써야 영적으로도
육적으로도 성공합니다.
<시간의 십일조, 물질의 십일조>는
기본입니다. 하루는 1440분이니,
10분의 1인 144분, 곧 2시간 24분이
‘하루 시간의 십일조’입니다.
<시간의 십일조>를 하늘 앞에 드리면,
하나님께서 ‘시간의 축복’과 ‘지혜’를
주시어 10시간에 할 것을 7시간,
5시간 만에 하게 해 주십니다.
그리함으로 ‘시간의 창고’가 차고
넘치게 해 주십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시간>이 없으면 실패합니다.
하늘 앞에 <시간의 십일조>를 척척
드림으로 ‘시간의 축복’을 받아서 일도
빨리하고 ‘시간의 창고’가 차고 넘치게
되면, <시간>이 많으니 쫓기지 않고
그만큼 성공하게 됩니다. 쪼들린다고
안 하면, 계속 더 쪼들리게 됩니다.
매일 <시간의 십일조, 물질의
십일조>를 하늘 앞에 드리는 자는
2배, 10배, 100배까지 축복을 받아서
쪼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주(主)도 심지 않고는
거두지 못한다.” 말씀했습니다.
(마 25:26, 눅 19:22) 하나님이
받으시고, 그냥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땅에서 육이 하나님께 드린 것>은
<육>은 천국에 못 오니 <육>에게 주어
<육>이 땅에서 먹고 즐기게 해
주십니다! 그러니 절대 믿고 행하기
바랍니다. 하늘 앞에 말로 감사하고,
행실로 감사하는 것도
<십일조 생활>입니다.
<물질의 십일조>는 기본입니다.
특히 <하늘의 신부들>에게는
‘하나님의 것’을 ‘각자 자기 것’같이
쓰게 해 주십니다. 선생은 월명동의
30평도 안 되는 작은 청기와집도
개인 것으로 쓰지 않고 월명동 왔다가
잘 곳 없으면 거기서 자고 가라고
내주었습니다. 또, 기도 방이 되기도
하여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만나는 데 쓰이는 방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은 <시간>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황금 시간>이 되기도 하고,
<철 같은 시간>이 되기도 하고,
<오물 같은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삼위일체와 함께 써야 그때마다
<황금 시간>으로 씁니다. 사람들이
사는 것을 보면 10대, 20대, 30대,
40대에 인생을 ‘썩는 데’ 쓰고
있습니다.
혼계에서만 봐도 다 보입니다.
선생은 <앞으로 내게 남은 시간>을
가지고도 지금 10대들보다 더 많이
쓸 수 있습니다.
왜요? 선생은 ‘쓸데없는 일,
필요 없는 일’을 안 하고, 매일 쉬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생각을 가지고
말씀을 실천하며 삼위와 함께
하나님의 뜻을 위해 행하기
때문입니다.
10대들은 시간도 많은데 그 시간을
미디어나 보고 게임이나 하는 데
쓰니까 그 많은 귀한 시간을 헛되게
보냅니다. 하루를 계산해 봐요.
자기가 얼마나 ‘필요 없는 것’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지, 자기의
하루를 되돌아보며 계산해 보면
압니다. 그러나 어려도 ‘말씀’을
실천하면서 ‘하나님의 생각’으로 사는
자들은 아직 어리니 시간도 많고,
그만큼 행하니까 엄청나게 됩니다.
그런 자가 <시대>를 잡고 <시대>를
앞질러 가면서 살게 됩니다.
<말씀 마무리>
◎ 오늘 말씀의 핵심을 다시 한 번
짚어 주고, 아주 짧은 시 한 편 전해
주고, 말씀 마치겠습니다.
기도도, 할 일도, 하늘과의 약속도
제때 제맛이 날 때 하기입니다.
제시간이 지나서 맛이 변했다면
마음과 생각을 다시 뜨겁게 해서 맛을
찾고 하기입니다.
<시간>은 지구 세상 73억 명이 잡아도
못 잡습니다. <시간을 잡는 방법>은
‘빨리하는 것’이며, <빨리하는 방법>은
‘영적·신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육>으로 뛰어서는 아무리 뛰어도
남보다 조금 더, 한 뼘 더, 한 발자국
더 앞서갈 뿐입니다. <영적>으로 해야
됩니다. <신적>으로 해야 됩니다.
그래야 ‘10~20배의 시간’을 잡고서
쓰게 됩니다.
<신적으로 하는 것>이란, 신의 머리를
사용하기입니다. 곧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생각대로 행하기입니다. 그리고
생각의 차원을 높여서 ‘돌아갈 길’을
질러가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안
하기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시키시는 대로 그 방법대로 행할 때,
그것이 ‘신의 머리를 사용하는 것’이
되고 자기 생각이 ‘하늘같이 높은
생각’이 되어 10배, 100배 시간을
잡고 쓰는 자가 되어 행하게 됩니다.
2015_1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0
<시 제때>
때 지나면
음식같이
만사가
제맛이 간다
제때
제시간에
생각하고
행하기다
◎ 말씀 마쳤습니다.
2015_1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1
2015년 11월 18일 수요
시간이 빨리 간다는 것을
깨닫고, 영적으로 써라
[ 에베소서 5장 16절 ]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6 making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because the days are evil.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이번 주 주일에는 <시간>에 대해
깨우쳐 주면서, 시간을 어떻게 써야
최첨단으로 쓰는지, 시간을 어떻게
써야 같은 시간을 10배, 100배
더 쓸 수 있는지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분야별로 깨우쳐 주시고 알게 해
주셨습니다. 생방송으로 화끈하게
깨닫도록 말씀해 줬습니다.
◎ 이 말씀은
<이때에 딱 맞는 말씀>으로 마치
맛있는 소고기 안심을 구워서 따끈할
때 바로 먹는 격으로 제맛이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 오늘은 주일말씀의 핵심을
<잠언>으로 한 동작씩 전해 줄
것입니다.
◎ 그리고 이어서 한 가지를
더 말씀해 줄 것입니다. 어려도
‘성삼위와 주의 생각’으로 사니
그 생각과 행실이 어른을 앞질러서
살고, 똑같은 시간을 <황금 시간>으로
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열다섯 살 학생인데,
영계의 희귀종이 되어 영계를 봅니다.
또 한 사람은 조금 큰 스무 살
학생인데, 끊임없이 하늘과 통하고
수신하며 삽니다. 오늘은 열다섯 살
학생이 본 <천국의 모습>을 전해
주겠습니다.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주일말씀의 핵심’을 전해
줍니다.
< 말씀 시작 >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가는지
‘그 빠르기’를 확인하려면,
<시계>를 보아라. 시간이 가는 것만큼
빠르게 행해야 제시간에 거기에
해당되는 것을 할 수 있다.
말이 <하루 24시간>이지,
실제로 쓰는 시간은 ‘10시간 정도’다.
잠자는 시간, 식사하는 시간,
걷고 차 타고 이동하는 시간,
사람들과 대화하는 시간, 어떤 것을
하는 데 필요한 준비 시간 등
<소모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말이 <한 시간은 60분>이지, 피곤할
때 앉아서 쉬다 보면 순간 지나간다.
시간은 너무 빨리 간다. 쓸 것이 별로
없다. - 하고 하나님께 물으니 말씀해
주셨다.
<육>은
‘시간의 제약’을 받는다. 느리다.
고로 빨리하지 않으면 시간이 다 간다.
<영>은 ‘빛’보다 수백 조 빠르다.
고로 시간을 초월해서 하니,
<1시간>이면 엄청난 일을 한다. 고로
‘영적’으로 사로잡혀서 해야 시간을
배 이상으로 쓰고, 많이 하고,
빨리하고, 일사천리로 한다.
영적으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먼저 ‘정신일도, 생각 집중’ 해라.
그리고 기도해라. 그리고 ‘신의
머리’로 해라. 신의 머리로 하는
것이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말씀대로, 그 방법대로 하는 것이다.
지구에서 천국까지 <빛>으로 가는
데도 ‘150억 년’이 훨씬 더 걸린다.
지구에서 천국까지 <생각>으로 가면
‘순간’ 간다. 고로 <정신일도> 하고
<생각 집중> 해서 시간을 쓰면,
시간을 초월해서 행하니 시간에
쫓기지 않고 할 수 있다.
<영>은 더 빠르다.
지구에서 태양까지 <빛>으로 가도
‘약 8분’ 걸린다. <영>으로 가면
‘1초’도 안 걸린다. 고로
<영의 생각>으로 하고, <영>이
‘육신’을 쓰고서 하게 해라.
<기도>하며 <신의 생각>을 받아서
<영>으로 해라.
그러면 육이 잊어버려서 못 하는
것들까지 생각나서 해 버리고,
서둘러서 빨리해 버린다.
오히려 시간이 남는다.
어떤 목적지까지 가는 데
‘10시간’을 줬다 하자.
그 길은 걸어가려면
<10일> 걸리는 거리인데,
차로 가면 <4시간>이면 간다.
차로 가니 빨리 가서,
오히려 시간이 남는다.
차로 가듯 <영>으로 해라. 그러면
‘육’과 같이 하고도 시간이 남는다.
모르면 ‘100년의 시간’을 줘도
못 한다. <영>은 알고, <주>도 알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도 아시니
물으면서 해라.
<영>은 계속 ‘지름길’로 가고,
‘날아서’ 간다. <육>도 그리하게 한다.
기도하면서 신령하게 시간을 써라.
꾸준히 하기다. 꾸준히 하면
‘헛시간, 공백’이 없으니,
많이 하게 된다. <자는 시간>은
무심하게 너무 빨리 지나간다. 고로
<자는 시간>을 조절하지 않고 대책
없이 자면, 결국 <인생>을 허비하게
된다. <잠>으로 충전했으면,
어서 일어나라!
무엇을 결정할 때 얼마나 빨리
올바로 결정하느냐가 문제이며,
쓰러지고 넘어졌을 때 얼마나 빨리
일어나느냐가 문제이며, 어떤 일을 할
때 얼마나 최첨단으로 빨리하느냐가
문제다.
이것이 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육>만 가지고는 한계이며,
<자기 생각>으로는 한계다.
<생각 집중, 정신일도> 하여,
<영과 혼>으로 하기다. 그리고
<신의 머리>를 써서
<신의 방법>대로 하기다.
그러면 빨리 올바로 결정하게 되고,
빨리 일어나게 되고, 빨리하되
최첨단으로 행하게 된다.
<몸>만 빨라도 안 된다.
<생각>이 따라가지 않으면 못 한다.
<생각>이 빠르고 날렵해야 된다.
<시간>은 ‘지구의 공전과 자전’이다.
고로 지구 세상 73억 명이 잡아도
<시간>은 못 잡는다.
2015_1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2
그러나 <시간을 잡는 자>가 있으니,
곧 ‘행하는 자’다. 시간을 잡는
단 하나의 방법은 생각을 빨리하면서
행하기다. <잠시 쉬었다가>
<천국>은 ‘시간의 개념’이 다르다.
<이 세상의 1000년>이
<천국의 하루>다. 고로
<인생 100년>은 천국의 시간으로
계산하면 ‘약 2시간’이다. 고로
하나님이 보실 때 인간은 천국의
시간으로 ‘약 2시간’을 살다가 죽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늘 재촉하고 서두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그 짧은 시간을 가지고 어서 자기
영혼을 구원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너에게 ‘2시간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겠느냐.
돈을 벌러 가겠느냐.
사랑에 빠지겠느냐.
게임을 하겠느냐.
놀러 가겠느냐.
TV를 보겠느냐.
불의를 행하겠느냐.
어서 전능자와 보낸 자를 믿고
네 영혼을 구원해야 되지 않겠느냐.
이런 입장에서 말씀하시는
삼위의 심정, 주의 심정을 깨달아라.
<인생 100년> 길다 하지만
<천국의 시간으로는 2시간>밖에
안 된다. 그 시간은 겨우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를 만나 그가 하는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계신 천국을 찾아가는
데 쓰는 시간밖에 안 된다.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길을 물으니,
아는 자가 가르쳐 주었다. 나그네는
그 즉시 ‘기차역’에 가서 ‘기차’를 타고
갈 길을 떠났다.
<인생 일생 시간>도 그러하다.
<인생 100년>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을
배우고 깨닫고, 그 목적대로 행하며
살면서 겨우 <자기 영혼>을 구원하며
하늘나라 형체로 만드는 시간이다.
<영>이 천국에 가면,
거기서 영원히 누리며 사는 것이다.
<영>이 ‘천국 황금성’에서
‘하루’만 살아도, <육>이 ‘땅’에서
‘수백만 년’ 산 것보다 낫다.
<천국의 하루>는
<세상의 1000년>인데, <영>으로
‘영원한 세계’를 누리며 살았기
때문이다. 말이 <인생 100년>이지,
실상 조금 살아 보면 금방
‘100년의 해’가 진다. 그 기간에
‘자기 영혼’을 꼭 구원해야 된다!
<자기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면,
영원한 고통의 세계 ‘사망 지옥’으로
가서 거기서 영원히 고통받으며
살아야 된다.
<영>이 하나님께 잘못했다고 하며
<1000일 금식 기도>를 해도
하나님은 한 마디도 안 하신다.
이미 <육신>이 세상에서 살 때,
하나님은 전능자로서 책임을 다해
주시며 기회를 줬기 때문이다.
고로 <영>이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가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뇌’에서 아예 지워 버리신다.
고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서
<영>이 ‘영계’에서 울면서 1억 년 동안
하나님을 불러도 하나님은 못
들으신다.
고로 <육신 인생 100년>이
그리도 중하다. 그 짧은 시간이
‘영원한 운명’을 좌우한다.
<육신>이 ‘세상’에서 살 때 복음을
전하는 자를 통해서, 구원자를 통해서
부를 때 그때 와서 하나님을 부르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야 된다.
<육신>이 ‘세상’에서 살 때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사람을 통해
그리도 불렀는데 안 왔으니, 그에게는
‘구원 기간’이 끝나서 ‘무(無)’가 된
것이다. 하나님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으신다. - 함은 이미 ‘때’가 지나서
끝났기 때문이다.
<육>이 ‘영적’으로 알고 살아야
수만 배 더 보람 있게 산다.
TV에 빠져 살고, 세상 문화,
세상 것만 즐기며 살면서
그것을 대단한 것으로 알고 산다.
<육에 속한 것>은 아무리 높고 높아도
다 ‘땅바닥’을 면치 못하고 끝난다.
당세 임시 삶이다. <육>은 매일 늙고,
<살아온 과거>는 이미 죽어 없어졌다.
<육>은 아무리 즐겨도 음식이
소모되듯 소모된다. <육>에서 끝난다.
그 <육>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영적으로 살면, <육이 행한 것들>을
‘영’이 다 받고 변화되어 <영원함>을
얻게 된다. 사명자만이
‘영의 세계’를 알고 말하니,
듣고 행해라.
짧은 인생, 짧은 시간을 가지고
<영원히 존재하는 생명의 말씀>을
배우고 빨리 실천하여
<육>을 구원하고
<영>을 구원해 놓고 살아라.
그러면 ‘세상 성공’은 못 했어도
‘영원한 성공’을 한 것이다.
<잠시 쉬었다가>
지구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 인생을 처음 사는 것이다.
모두 처음 인생을 살아 보니,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른다.
<뇌세포, 뇌신경>은
실상 매일 죽어 간다.
100에서 20% 살면 20% 죽어 가고,
50% 살면 50% 죽어 간다.
고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지만,
결국은 <본인>만
‘그 삶의 길로 홀로 가는 격’이다.
<인생 가는 길들>을 보면
어떤 사람은 사람들과 뭉쳐서 가고,
어떤 사람은 짝을 지어서 같이 간다.
그러나 실상은 인생을 홀로 살아가는
것이다. <태어난 길>도 홀로이고,
<가는 길>도 홀로다. 고로 ‘삼위와
동행’하며 ‘삼위와 일체’ 되어 살아라.
<바다>에서 <배>를 타고 가다 보면,
<바닷물>도 흘러가고 <배>도 흘러간다.
망망대해는 끝이 없다.
하지만 계속 가다 보면
어느새 <육지>가 가깝게 보인다.
<인생의 날>도 그러하다.
<인생 100년> 길고도 긴 여정 같지만,
계속 가다 보면 어느새
<인생의 황혼>이다.
고로 서둘러서 빨리하여라.
<주>는 겪어서 알고, 하나님께서
어렸을 때부터 택하여 재촉하면서
살게 하셨기에 안다. 고로 일찍부터
‘이 시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여
기성과는 비교도 안 되게 ‘시간’을
많이 쓰면서 빨리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다.
<영혼 구원>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해당되는 것들을 모두 다 ‘구원’으로
이끌어야 된다. <빠른 자>도 모르면
못 하고, 마음만 급하다.
2015_1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3
<느린 자>도 배우고 알면,
행하고 떠난다. 그러므로 배워라!
왜 놀기만 하느냐.
왜 썩는 문화에 빠져 있느냐.
왜 별것도 아닌 것에 시간을 쓰면서
허송세월하느냐.
실컷 놀고서 뛰려느냐?
시작부터 하려고 벼르고 하기다.
<성공자>가 말하니, 그대로 하면 된다.
<치타>는 그리 빨라도,
더 뛰면서 산다. 자기를 위해서만
그리 뛰느냐. 새끼들을 위해서
빨리 뛰면서 먹여 살린다.
너희도 어서 먹고, 먹었으면
‘뛰는 연습’도 하고 ‘사냥 연습’도
해라. <목적>을 두고 뛰어야 한다.
이제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지금부터 ‘2년의 시간’은
각자의 운명을 좌우하는 시간이다.
정말 <목적>을 두고, 2년 동안
무엇을 할지 결정하고 뛰어라.
이 말의 의미를 아느냐. 모르면,
빠르게 뛰는 치타에게 배워라. <전환>
◎ 계속해서 <잠언>을
한 동작씩 전해 줄 테니, 각자
뇌에 새기고 깨닫기 바랍니다.
<음식>은 때 지나면
식어서 맛이 변한다.
<시간>도 제시간이 지나면 그러하다.
<과일>도 때 지나면 향기도 사라지고,
물기도 빠지고, 맛도 변해서 입맛이
안 당긴다.
<시간>도 제시간이 지나면 그러하다.
<음식>은 김이 모락모락 날 때,
보암직하고 먹음직할 때 먹어야
제맛이 난다.
<시간>도 제때 제시간에 맞춰
일을 해야 제맛이 나서 잘된다.
<행하는 것>도 ‘제시간’이 있다.
이때 행하지 않으면 ‘제맛’이
변해서 하기 싫어진다.
<시간>과 <하고 싶은 마음>이
맞아야 하게 된다. 불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질 때 입맛이 당긴다.
그때 먹어야 맛있게 먹는다. 이와 같이
<성령이 감동을 주실 때, 뇌에 시동이
걸렸을 때> 그때가 뜨거울 때이니,
그때 해야 된다.
제때, 제시간에 하여라!
이것이 <성공 비법>이다.
<잘하는 비법>이다. 음식이 식어서
맛이 변했으면, 다시 데워서 먹는다.
이와 같이 시간이 지나서 할 마음이
없어졌으면, 다시 <마음과 생각>을
뜨겁게 하여 열 내서 하기다.
<마음과 생각>을
뜨겁게 데우지 않은 상태에서
설교·강의·찬양·예술·전도·관리를 하면
이는 ‘찬 음식, 찬밥’을 먹는 것같이
맛이 없어서 <본인>도 힘들고
<상대>도 힘들다.
예배를 드릴 때도
<마음과 생각>을 뜨겁게 데우고
드려라. 그렇지 않으면, 성삼위께
‘찬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다. 고로
‘맛없는 예배’가 되어 서로 힘들다.
마음이 감동됐을 때,
마음이 흥분됐을 때,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을 때,
그때 해라!
<하늘 양식>을 제때 뜨겁게 받아
지글지글하고 김이 모락모락 날 때
주는데, 왜 마음의 준비를 안 하고
잠자다 일어나서 먹듯 깨작깨작
먹느냐.
<마음과 생각>을 뜨겁게 데우고 열을
내는 자는 하늘 양식도 맛있게 잘
먹고, 일도 잘한다. 어떤 사람은
먹기는 잘 먹는데 일은 안 한다.
고로 ‘은혜의 살’만 쪄서 힘들어 한다.
운동하여 아름답게 만들 듯,
말씀을 들었으면 행하여
‘행위의 살’을 찌워라!
성령님은 제시간을 지킬 때, 주
와 같이 오셔서 같이 행하신다.
성령님은 ‘같이 행하는 것’을
그리도 좋아하신다.
<제시간>이 지나 썩어서 냄새 나는데
그제야 빨리 재촉하면서 하느냐.
이는 마치 썩은 음식 냄새 없애려고
향수를 뿌리면서 일하는 격이다.
<시간>에 뒤처지니,
<너와 겨루는 자와의 싸움>에서도
지는 것이다.
죄를 지었으면,
썩기 전에 빨리 회개해라.
그렇지 않으면, ‘그 썩는 냄새’에
사람들이 코를 막고 마스크를 쓰며
피하고, 더러는 쓰러지기도 한다.
차가 오기 전에 건널목을 건너가듯,
번개같이 행하여라!
<자기>가 ‘말’로 <자기>를 재촉해라.
이는 빨리 행하는 데 있어서 좋은
방법이다. 어서 행하고 나서 쉬어라.
먼저 쉬고서 하려면, 시간이 없으니
자신이 없다. 시간이 부족한데,
꼭 식당에 가서 퍼질러 앉아서
이야기하며 식사를 하느냐.
음식을 사서, 가면서 먹으면서 뛰자!
천 리 길을 떠나려는데
‘막차가 떠날 시간’이다.
그런데 소고기 안심을 구워 놓고
찌개 끓여 놨다고 먹고 가려느냐.
어서 보자기에 싸 가지고,
차에 가서 먹어라.
<지혜>는 ‘판단’이다.
<시간의 승리자, 시간의 성공자>는
재촉한다! <전환>
◎ 이제 <한 막의 잠언>을
더 전해 주겠습니다.
<자기 좋은 때>만
성령을 찾지 말고, 늘 찾고 대화해라.
<새벽 제시간>에 기도하면,
진수성찬을 제시간에 먹는 격과 같다.
고로 잘 깨닫고, 삼위와 대화도
잘되고, 응답도 즉시 받고,
제맛이 나는 하루가 된다.
<새벽 기도 시간>에 누워 있으니,
꿈에 청중이 모였다가 선생이
안 온다고 하며 다른 자가 대신
말씀을 전하고 일순간에 사라졌다.
청중은 하늘 구름같이 일순간에
모였다가 순간 사라진다.
고로 제때 하기다.
<하늘과의 약속 시간>에 맞춰서
제때 하는 것이 성삼위와
‘겸상’을 하는 격이다.
<하루 24시간>은 ‘1440분’이다.
<1440분>은 ‘소고기 안심
1440점’과 같다. 그 많은 고기를
배를 두들겨 가면서 쓰러져 못
일어나기까지 다 먹듯이, 그 많은
시간을 다 자기를 위해서 써 놓고는
“또 주세요! 나 좀 도와줘요.
2015_1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4
왜 대답이 없어요? 서운해요.
누구는 도와주고 왜 나는
안 도와줘요?” 하며 원망한다.
기도도 집에서 하고,
말씀을 듣다가 졸거나 잠을 자고,
찬양 대신 세상 문화에 빠져 살면서
자기를 구원하는 데는
<찌꺼기 시간>만 쓴다. 그리고
성삼위께도 <찌꺼기 시간>만 준다.
어떤 사람은 <찌꺼기 시간>도 안 준다.
이래 놓고 ‘구원 길, 휴거 길’을
제대로 가겠느냐.
<자기를 위한 시간>은 기뻐하며
희망에 불타 흥분되어 잘 쓴다.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에는
‘자기 시간과 돈’을 다 투자하면서,
하늘 앞에는 ‘감사 생활’도 안 한다.
그러니 <시간의 축복, 물질의 축복,
휴거의 축복>을 제대로 받겠느냐.
<하루 24시간>을 ‘자기 시간’으로
다 보내면서, 성령과 주가 옆에 가서
“시간 좀 내줘라. 너를 위해 할 것이
있다.” 해도 ‘마음의 귀’를 막고
‘생각’을 돌린다. 그래 놓고
‘천국 황금성에 간다. 영원한 지옥을
면한다.’ 장담하느냐.
<사정할 자>가 도리어 ‘주권자’가
되고, <주권자>가 도리어 ‘애원하고
사정’한다. 그래 놓고 ‘하늘 신부’가
되겠느냐.
어떤 사람은 자기를 관리해 주는
자에게 “나는 신앙을 포기했어. 안 돼.
세상 길로 갈 거야.” 하며 으름장이나
놓고, 관리자의 심정을 태운다.
어떤 사람은 그리도 귀히 대하며
관리해 주고 하늘 무대에 세우고
크게 영광 돌리게 해 줬다.
그런데 감사하지 않고 서운해하다가
이성에 눈을 팔고 끌려갔다.
돌아오라고 <팔>이 빠지도록
끌어당겨도, <팔>이 빠지도록 이성을
향해 갔다. 계속 끌어당기면 서로의
팔이 빠지니, 결국 놔 버렸다.
자기가 원해서 그 삶을 사니,
자기 스스로 ‘지옥’을 선택하여
그 길로 가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지 않으면, 그 길로 가지 않는다.
<지옥의 삶>은 쾌락·방탕함·술
취함·죄를 즐겨 행하며 사는 삶이다.
그러나 <그 길로 가는 자들>은
그것을 ‘죄’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즐거운 삶’으로 생각하며
행한다. <지옥 길>은 ‘즐기는 길’이다.
고로 가기 쉽다.
<천국 길>은 세상 것과 불의를 끊고
전능하신 하나님 안에서 의로운 일을
하면서 가는 길이다. 고로 고생되기도
하고, 의를 행하며 받는 고통도 있다.
<제 갈 길>을 가면서 살다가 어려움이
생기면, 그때만 하나님을 찾으면서
도와달라고 한다.
<전능하신 삼위일체>를
‘심부름꾼’으로 생각하고 산다. (쯧쯧)
<똑같은 하루 24시간, 똑같은 육의
인생>을 가지고, 시간을 어떻게 잡고
쓰면서 사느냐에 따라서 육의 삶이
좌우되고, 그로 인해 영의 운명이
좌우된다.
<지혜>는 ‘판단’입니다. ‘분별’이다.
<지혜>는 ‘오직 성삼위’께로부터 온다.
누가 지혜를 받아서
<짧은 시간, 짧은 인생>을 지혜롭게
최첨단으로 써서 승리하는 삶을
살려느냐? <전환>
◎ 이제 <똑같은 시간>을 가지고
하늘과 통하면서 <영계>를 보고
성삼위의 말씀을 수신하는 자들이
받은 계시를 전해 주겠습니다.
이들은 나이가 어려도
‘성삼위와 주의 생각’으로 사니
똑같은 시간을 <황금 시간>으로
보내며 살고, 그 생각과 행실이 어른을
앞질러서 오히려 어른들을 가르치며
살고 있습니다.
<계시의 말씀1>
◎ 오늘은 영계의 희귀종,
열다섯 살 학생이 본 천국의 모습
중에서 두 가지만 말씀해 주겠습니다.
이 계시는 모두 한 번씩은 들었을
것입니다. 오늘 이 계시를 다시 한 번
더 들으면서, 그 어린 학생이 똑같은
시간을 가지고 어떤 일을 행하여
어떤 것을 남겼는지 깊이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교역자들이 영상을 보면서 전해 준다.
- 천국 영상 나간 것 있음)
천국의 삶
작성일 : 2015. 3. 14. PM 10:25
작성자 : 주금빛
기도하면서 성자께 천국에서는
긴 치마나 바지만 입는지,
짧은 치마나 바지도 입는지,
천국의 옷 스타일에 대해서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때 성자께서 오셔서
“보여 줄게. 가자.” 하셨습니다.
성자와 저는 천국에 와 있었습니다.
성자와 함께 천국 중에서도 ‘도시
느낌이 나는 지역’에 있었습니다.
지상의 건물과 비슷한 건물들도
있었는데, 천국에서는 그것보다
더 차원 높게 지어져 있었습니다.
정말 지상의 도시와는 다르게 최첨단
성약 도시였습니다. 여러 가지 빛이
나며 깨끗했고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매끈한 재질에 푸른색을 띠는,
무릎 위까지 오는 캉캉드레스
느낌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습니다.
위에는 어깨가 드러나는
탑 형식에 치마는 풍성하고 폭이 넓은
천들이 여러 단으로 겹겹이 레이스와
같이 박혀 있었는데 레이스는 진한
푸른색이었다가 중간으로 가면서
밝은 하늘빛으로 바뀌어 색깔이
그러데이션이 되어 있었습니다.
색이 너무나도 신비스럽고 푸른
바다를 상상케 하였으며 너무나도
생동감이 있어 보였습니다.
레이스 위에는 오색 빛깔의 조그맣고
동그란 다이아몬드들이 군데군데 박혀
있었는데 푸른 색깔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드레스는
허리까지 딱 붙었다가 밑으로 가면서
퍼진 형태였는데 레이스 밑부터는
매끈한 하늘색으로 약간 청록색과
비슷했습니다.
허리 쪽에는 다이아몬드 알갱이들이
일자로 4~5줄 물결무늬로 박혀
있었습니다. 허리 아랫부분부터는
꽃잎 모양처럼 생겼는데 날개처럼
쭉 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각각
꽃잎처럼 생긴 치마 끝자락에는
다이아몬드가 수없이 박혀 있었고,
맨 끝부분은 다이아몬드가 잔뜩 붙어
있다가 위로 갈수록 잦아들었습니다.
너무나도 빛이 나고 예뻤습니다.
2015_1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5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니
짧은 치마, 짧은 바지, 미니스커트도
입고 다녔으며, 남자들은 7부,
5부 바지도 입고 다녔습니다.
옷들을 자세히 보다가 반팔 상의와
짧은 바지를 입고 다니는 사람을
보았는데, 상의가 파란색이었고 갖가지
보석과 금은가루가 뿌려져 있었습니다.
바지는 흰색인데 딱 붙어 있었고
다리를 더 길어 보이게 해 주었습니다.
다리들도 다 길고 빛났습니다.
모든 천인들의 몸매는
완벽 그 자체였습니다.
키도 각각 달랐는데
자신이 얼마큼 성장했는가에 따라
키가 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옷들은 다 최첨단이었습니다.
지상보다 훨씬 차원이 높았고
아름다웠습니다.
사람들은 원색 옷들도 많이 입고
있었고, 입체적인 빨간색과 핑크색이
섞인 하트들이 빨간 상의에 듬뿍 박혀
있는 것도 있었고, 연한 초록색인데
아예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져서
약간 투명한 느낌이 나는 상의도
있었습니다. 옷들이 정말 편하고
예뻐 보였습니다.
헤어스타일도 최첨단이었습니다.
헤어 액세서리를 여기저기에 달았으며
머리를 묶는 방법도 차원이
달랐습니다. 꽃 모양으로 묶은
헤어스타일도 있었고, 빛나는
다이아몬드 천으로 머리를 돌돌
말기도 했습니다.
머리색이 그러데이션이 되어 있는
영인도 있었고 노란색, 핑크색이
반반인 영인도 있었습니다.
머리에 자신이 받은 왕관을 쓰고
다니는 영인들도 있었습니다.
목걸이도 걸고 있었는데
각자 모양과 크기와 색이 다른
목걸이들을 매고 있었습니다.
어느 천인의 목걸이는 투명한
하늘색 다이아몬드 관 같은 것 안에
물이 계속 흘렀습니다.
신발도 보았는데 굽이 있는 것도
있었고, 굽이 없는 샌들도 있었으며,
디자인이 엄청나게 특이하고 다
예뻤습니다.
핑크색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굽이 높은 신발을 보았는데
다리를 더 예쁘게 만들어 주었고,
걸을 때마다 빛이 났으며, 디자인이
지그재그로 되어 있어서 발목을 감싸
주었습니다.
레인 부츠를 신고 있는 영인도
있었는데 투명해서 안이 보였고
부츠 길이가 무릎까지 왔습니다.
부츠에는 무지갯빛이
계속 감돌았습니다.
순백의 다이아몬드로 만든 부츠를
신고 다니는 영인들도 있었습니다.
다이아몬드 가루를 눈두덩에 바른
영인도 있었고 입술에 바른 영인들도
있었습니다. 각자가 다 개성대로
예쁘고 아름다우며 빛이 나고
멋있었습니다.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옷 입는 것>도 천국의 지역마다
스타일이 다 다르다. 또한 <환경>도
천국의 지역마다 다 다르다.
<천인의 구조>는 인간의 기본 구조와
같다. 하지만 더 완성되어 흠이 없다.
<천국>은 지상과는 달리 더 정밀하고
세세하게 창조되었으며 더 빛이 나고
엄청나게 창조되었다.
<같은 단계의 천국>이라 해도
‘자신의 취향’에 따라 ‘사는 곳’이
달라진다.
<천국>은 ‘지상에 있는 기본 구조’는
다 있고, 그보다 훨씬 더 차원이 높다.
지상에서 유행하는 옷들과 액세서리
등이 천국에는 이미 있었다.
지상에서는 천국의 옷과
액세서리를 그저 일부만 본뜬 것이다.
그러니까 차원이 엄청 다르지.
내가 천국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
줄게. 가자.” 하셨습니다.
성자와 함께 드넓은 언덕 위로
올라갔습니다. 하늘을 보니, 아름다운
밤하늘에 아름다운 별들이 수를
셀 수 없이 빼곡히 박혀 있었고,
빛이 반짝반짝 났습니다.
오로라가 멋지게 끝없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신비스러웠고
온화하며 아름다웠습니다.
(성자여. 정말 감사해요.
너무 아름다워요.)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지상>은 ‘천국의 축소판’으로도
비유할 수 있다. 천국의 느낌과 감정은
지상의 몇백 배, 몇천 배이고
지금 네가 보고 있는 이 밤하늘도
지상에서보다 더 아름답다.
내가 천국의 삶을 비유로 들어 볼게.
네가 해외에 있을 때 한국에 가면
뭐 할지 생각하며 준비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한국에 가기를 기다렸지?
그리고 한국에 왔을 때, 해외에 있을
때보다 한국이 더 좋으니 마치 해외에
있었던 것들은 다 꿈인 것처럼 사라져
버리고 한국의 생활에 바로 적응하며
기뻐하며 살았지?
천국도 이와 같다.
오직 기쁨과 환희만 있는 천국의 삶을
살게 되면, 지상에서의 삶은 하나의
꿈처럼 변한다. 자신의 의 값으로,
자신의 행실 값으로, 사랑 값으로,
감사 값으로 천국의 자기 집, 자기
왕관, 옷, 액세서리 등이 좌우된다.
그러니 각자 자신을 만들어라.
만드는 것은 기쁨이다. 행복이다.
자기 자신을 만들 수 있음에 감사해라.
사랑한다. 또 와라. 안녕.”
<계시의 말씀2>
◎ 한 가지 더 말씀해 주겠습니다.
늘 감사하라
작성일 : 2015. 4. 24. PM 8:40
작성자 : 주금빛
제가 천국을 자주 보지만,
금요예배를 드리면서 이날은 더욱더
<천국>은 ‘실체의 세계’라는 것이
뼛속 깊이 느껴졌습니다.
지금까지 봐 왔던 웅장하고
빛을 뿜어내는 성들을 보기만 해도
너무나도 황홀하고 기뻐서 미칠 것
같은데, ‘이곳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니!’하고 생각하니 정말
행복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천국을 생각하면서,
휴거되어 얼마나 얼마나 행복한지
너무나도 간절히 느껴졌습니다.
2015_1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6
내가 ‘이 실존의 세계’에서
영원히 살 수 있고, 이 세계를
뚜렷하게 보며 만질 수 있고,
갖가지 보석의 성을 다니고,
빛나는 옷을 입으면서 날아다니며,
천국의 것을 다 가질 수 있고,
무엇보다 가장 사랑하는 성삼위와
선생님을 영원히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눈물 나게 미치도록 영원히 감사한
일인지 제 육이 너무 기뻐서 안달이
날 정도였고, 미칠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영원한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조건을 세우시며 휴거시켜 주신
선생님께 진정 감사했습니다.
우리 모두 지옥을 완전히 면하게 해
주시고, 꿈꾸던 세계인 천국이 우리의
것이 되게 해 주시고, 실존하는 영원한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보장해 주심에
황홀하도록 미치도록 감사했고 눈물이
흘렀습니다.
진정 너무나도 감사했고 다시 한 번
선생님의 삶이 얼마나 위대한지,
그가 성삼위께 어떤 사명을 받고
왔는지, 가슴에 불꽃이 딱 꽂히도록
깊이 깨달았습니다.
기도 시간에 찬양을 드리면서 계속
선생님을 불렀고, 진정 행복하다고
성령님께 고백했습니다. 성령님은
“내가 휴거되어 감사하는 영들을 보여
줄게.” 하셨고, 바로 ‘휴거되어 천국에
간 한 영’을 보여 주셨습니다.
<한 여자 영>이 오직 선생님의 조건과
사랑으로 황금성에 온 기쁨을
온몸으로 행복해하고 있었습니다.
주위에는 기쁨이 넘치는 천국의
풍경들이 펼쳐져 있었고, 그 영은
두 팔을 하늘을 향해 쭉 펼치고
있었고, 얼굴은 입이 찢어지도록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머리는 특이한 모양이었는데
황금색이었고, 길이는 어깨를 약간
넘었는데 윤기가 빛나게 흘렀으며,
윗부분은 차분하다가 귀 부분부터
볼륨감 있게 둥근 모양이었습니다.
얼굴을 자세히 보니
한국 회원이 아니고 해외 회원이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 여자 영이
입고 있는 드레스는 온통 흰색이었고
풍성했습니다. 그 여자 영은 연신
웃으며 성삼위와 주께 계속 감사와
사랑의 고백을 했습니다.
하늘을 쳐다보며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빙빙 돌면서 기쁨에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옥색 다이아몬드로
된 기다란 왕관을 쓰고 있는
‘한 남자의 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영은 온통 하얀색의 빛나는
다이아몬드 정장을 입고 있었고,
양손을 하늘을 향해 뻗으면서 입이
찢어지도록 웃었고, 기쁨이 흘러넘쳐서
기쁨의 노래를 계속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 영들을 보면서 저도 너무 기뻤고,
기쁨의 에너지가 공유되었습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휴거된 영들의 모습이다. 그토록 살고
싶었던 곳에서 영원히 살 수 있음이
얼마나 기쁘냐. 늘 감사 감격하니
얼마나 얼굴이 빛나는지 사랑의 빛,
감사의 빛이 감돈다. 정말 아름답구나.
기쁨의 정도가 극치에 다다른다.
너무나도 기뻐서 어쩔 줄 모르고
늘 감사 감격하니, 감사가 영원토록
식지 않고 그 행복이 지속된다.
그래서 지상에서도 늘 기뻐하고
잔치하며 감사하라는 것이다.
너희 선생에게 진정 감사해라.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온 일생을 다 바쳐 휴거시키고,
성삼위가 지구를 창조한 이래 그토록
원했던 소원을 이룬 자이니 위대한
자다. 늘 감사를 몸에 달고 다니는
선생은 정말 자기 자신을 온전하게
만든 자다.
늘 감사해라! 감사의 맛을 들여라.
감사의 맛을 알아라. 알아야 한다.
알아야 산다. 늘 감사해라!
감사는 끝이 없다. 네가 감사할수록
너희 영은 감사의 엄청난 힘을 받고
더욱더 빛난다. 영은 육보다 훨씬
더 민감하기 때문에 지상에서보다
몇백 배 더 감사 감격한다.
성삼위는 그 사랑스러운 모습들을
보면서 너희에게 감사의 보석들을
퍼부어 준다.
감사하지 않으면 기쁨이 없다.
고로 늘 너희의 생활 속에서
성삼위와 주를 부르고 찾으며
감사한다면, 너희 각자가 감사함의
뜻을 뼛속 깊이, 더 간절히 깨닫게 될
것이다. 해 보아라. 하는 즉시
알게 된다.” 하셨습니다.
성령님과 저는
꽃밭으로 장소를 옮겼습니다.
꽃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는데
꽃들마다 다이아몬드 가루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이 꽃들은 지상에는 없는
꽃들이었는데 핑크색과 노란색 튤립
같은 모양이었고, 크기가 엄지만 했고,
줄기는 아주 가늘고, 길이는
제 허벅지까지 와 있었습니다.
이 꽃들이 촘촘히 잔잔하게 안개꽃과
같이 피어 있었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행복했습니다.
막혀 있던 가슴이 뚫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깊은 산속에서 나는
냄새와 꽃에서 나는 향기로운 향기가
함께 났는데 정말 상쾌했습니다.
저는 꽃들을 꺾어서 제 머리에
꽂았는데 성령님께서도 머리에
꽂으셨습니다.
풍경이 정말 평화로웠습니다.
저는 꽃밭에 누워 보기도 했습니다.
저의 옷을 보니 온통 노란 색이었는데
정말 예쁜 원색의 노란색이었습니다.
위는 하트 모양으로 되어 있고,
얇고 투명한 실크가 양팔을 감싸고
있었으며, 밑으로 갈수록
풍성했습니다. 얇은 다이아몬드로
만든 투명한 천이 덮여 있었는데
잔잔한 핑크색, 노란색의 자잘한
꽃들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성령님의 옷을 보았습니다.
위는 핑크색 바탕에 꽃잎 모양을
포개어 놓은 듯했고, 밑은 핑크색,
보라색의 얇고 부드러운 실크가
여러 겹으로 겹쳐 있었으며 차분한
모양이었는데, 실크가 너무 부드러워서
걸으실 때마다 우유가 떨어지는 듯이
부드럽게 하늘거렸습니다.
조그마한 동그란 다이아몬드들이
군데군데 박혀 있었습니다.
그렇게 성령님과 함께 꽃밭을 거닐며
데이트하는데, 성령님께서 반지를
보이시더니 저에게 그 반지를 끼워
주셨습니다.
반지 가운데에는 루비로 만든
장미 모양이 박혀 있었고 양옆으로
다이아몬드로 만든 나뭇잎 모양이
있었습니다.
2015_1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7
그리고 링은 백금 같은 느낌의
천국 보석이었습니다.
너무도 맑고 깨끗했으며,
아름다웠고 빛이 엄청났습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주고 싶어서 주는
‘나의 사랑의 반지’이다.
진정 사랑한다. 널 정말 사랑해.
늘 끼고 다녀라. 사랑의 빛이다.
사랑은 정말 강력한 힘의 에너지다.
안녕.” <잠시 쉬었다가>
◎ 늘 하늘과 통하면서
수신하고 사는 스무 살 학생이
<하나님의 말씀을 수신하며 받은
깊은 계시 중 한 가지>도 매우
깊은 내용입니다.
그런 내용은 아무나 못 받습니다.
현재 집회를 다니면서 전해 주고
있지만, 아직 못 들은 사람들이 많으니
기도회를 할 때 ‘집회 녹화 영상’을
통해서 보기 바랍니다.
<말씀 마무리>
어려도 ‘성삼위와 주의 생각’으로 사니
똑같은 시간을 가지고 성삼위와
통하여 영계를 보고 하늘의 것을
수신하며 살아갑니다. 그 생각과
행실이 어른을 앞질러서 사니,
삼위와 주의 몸이 되어 외치면서
아이도 어른도 가르치는 자가
되었습니다.
조은 목사도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살았기에 현재 시대를
앞지르고 사람들의 생각과 행실을
앞질러서 성삼위와 주의 심정과 뜻을
외치고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며
시간을 최첨단으로 쓰면서
<최첨단의 휴거>를 이루고
<최첨단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역시 <신적>으로 해야 됩니다.
<신의 머리>를 써서 해야 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생각>대로
해야 됩니다. <하늘같이 높은 생각>을
가지고 해야 됩니다.
돌아갈 길은 질러가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안 하고, 오직 성삼위가 시키시는
대로 그 방법대로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똑같은 시간이라도
최첨단으로 쓰고, 똑같은 시간을
5배, 10배, 20배, 100배나 잡아서
쓰는 자가 되어 시대를 앞지르고,
사람들의 생각과 행실을 앞질러서
<휴거>도 최첨단으로 이루고,
<육적 성공, 영적 성공>도
최첨단으로 이룹니다.
모두 이와 같이 되도록 축복합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
2015_1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8
2015년 11월 21일 금요
너희 민족과 이 지구촌을 두고
회개함으로 나 여호와와 함께
이상세계를 이루자! 사랑하기에
너희에게 ‘사망’을 벗어나
‘생명’으로 나아올 ‘방법’을 가르쳐
준다. 반드시 ‘회개함’으로
‘죄의 값’을 청산해야 한다!
작성일 : 2015. 10. 1. PM 1:21-2:11
작성자 : 주수신
(주일말씀을 듣고 하나님은 참으로
확실하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모든 것들을
다 해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너무도 많은 사연이 있는 이 한국
땅에도 죄의 값들이 쌓이고 또 쌓이니,
‘전쟁’으로 판결을 내리심이
충격적이었습니다.
보낸 자가 이를 알고 회개함으로
죗값을 청산하니, 하나님께서 상황을
트시고 전쟁을 막아 주신 것 역시도
충격이었습니다.
사랑하니까 죄도, 그 무엇도
신경 쓰지 않고 무조건 좋은 길로
이끌어 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부모님의 사랑’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사랑하니 너희에게 ‘천법’을 가르친다.
법을 알고 행하여 해를 피하고 복을
받으라고 가르친다. 진정으로,
내가 너를 사랑하니 가르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가 가르친 대로
행한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법을
지킨다.
사랑아,
한국 땅에 전쟁의 위험이 있었던 적이
이번뿐이더냐? 나 여호와가 보낸 자와
함께 이 민족의 운명을 튼 적이 한두
번이더냐?
너희는 진정 알아야 한다!
‘그냥’ 해 주는 것은 없다. 아무리
사랑해도, ‘그냥’ 주지는 않는다.
사랑하니 ‘방법’을 알려 준다.
문제의 근본을 해결할 길을 제시해
준다. 그 길대로 행하면 나 여호와와
함께 일을 해결하는 것이고, 그 길대로
행하지 않으면 기울어진 판국대로
가는 것이다.
너희를 지키는 자가 누구이냐?
대한민국의 국가 원수냐?
대한민국의 군인들이냐?
아니면, 저 미국이냐?
너희는 누구에게 기대를 걸고,
너희를 구해 주길 구할 것이냐?
너희의 군인들에게 기대를 걸 것이냐,
아니면 저 미국이라는 국가에게
기대를 걸 것이냐?
육적으로만 보지 말아라.
이 지구 땅의 모든 국가도,
모든 국방도,
각 나라별로 얽힌 모든 일들도,
나 여호와로 인해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 여호와가
전쟁도 일으키는 것이냐?
아니다.
근본은 ‘무지로 인해 지은 죄’다.
<심판>은 ‘무지’가 일으킨다.
‘신’에 대해 무지하고,
‘죄’에 대해 무지하고,
‘안일주의’로 살아가고,
‘현실’만을 보며 살아가는
그 무지가 ‘죄’를 만들고, 그 죄들이
쌓여 <심판>을 불러일으킨다.
전쟁도 그와 같은 맥락이다.
무지한 자는 과정 중에는 알지 못하고,
모든 일이 끝난 뒤에야 안다.
전능자가 심정에 맞는 자들과 함께
행해 놓은 결과를 보고서야
어떠한 일이 있었고, 그 일을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일을 행할 때, 함께하지
않았기에 ‘정말 그러할까?’ 의심도
한다.
함께하지 않았기에 모르는 것이다.
죄가 있으면 그에 해당되는 심판을
받는다. 의가 있으면 그에 해당되는
축복을 받는다. 죄의 값을 청산치
않으면 육과 영의 운명은 ‘사망’으로
기울어진다. 이것은 <천법>이다!
나 여호와는 죄의 그릇이 차는 것을
매일 본다. 내 마음이 찢어진다.
그릇이 차는 것을 바라보며 너희에게
이러한 죄를 회개해야 함을 애타게
알린다.
육의 세계에 존재하는 너희가
알 수 있도록 알린다.
어찌 너희에게 알리는가 하니,
나 여호와는 ‘죄가 차올라 감을
경고하며 내가 행하는 것들과
너희가 회개하기를 원하는 나의
애타는 마음’을 지구 세상 73억 명의
사람들 모두에게 보이며 말해 준다.
그러나 나의 행함을 보는 자는 얼마
없다. 나의 말을 듣는 자는 얼마 없다.
나의 심정을 헤아리는 자는 얼마 없다.
오직 나와 사랑으로 일체 된 자만이
나의 행함을 안다! 각자의 ‘양심’을
통해서 알려 주기도 하고, 합당한 자를
통해서 ‘말씀’을 선포하며 알리기도
하고, ‘자연현상’을 보이며 죄가 도를
넘고 있음을 알리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이
나 여호와의 사랑이다!
그 죄가 극에 달하지 않도록
막기 위한 나 여호와의 사랑이다!
네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음을 알리는
나 여호와의 사랑이다!
지구 세상을 내려다볼 때,
죄의 그릇은 참으로 빨리 찬다.
나를 향한 감사와 사랑의 그릇이 차는
것보다도 몇 배는 더 빨리,
훨씬 빠르게 그릇이 차오른다.
내가 사랑의 세계를 이루고자 창조한
이 지구 세상은 ‘죄’가 관영하는
세상이 되었다.
‘죄’를 짓고는 특정 기한까지
청산하지 않아서 죗값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 누구도,
그저 ‘말’만으로는 나의 행함을 막을
수가 없다.
‘죄’에 해당되는 형을 집행할 때,
그저 ‘말’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심판을 받을
운명으로 이끈 그 근본을 알고
그 죄를 회개함으로 청산해 죄 문제를
해결한다면, 그에 해당하는 심판은
받지 않는 것이다.
나의 심정을 제일 잘 아는 자,
나와 일체 된 너희 선생만이
이같이 심각한 상황임을 알았다.
너희 중 몇이나 ‘정말 전쟁이 일어날
정도로 심각하게 위험한 상황’임을
인식하였느냐? 육으로는 너희의
머리가 된 자, 너희 선생이요,
영으로는 오직 나 여호와뿐이다.
2015_1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9
‘위험한 상황’을 아는 자가 없고,
이 일을 어찌 해결해야 하는지 아는
자가 없다. 그러니 누가 너희의 운명을
뒤집겠느냐? 누가 너희에게 나아갈
길을 제시해 줄 수 있겠느냐?
‘육’만을 보지 말아라. ‘영’을 보아라!
근본을 보아야만, 육적으로는 풀지
못하는 문제까지도 풀 수 있는
것이다!
지구 세상의 73억 명이
“못 한다.”고 해도, 시대 보낸 자는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방법으로는 길이 없으나,
신의 방법으로는 길이 있다. 모든 것의
근본은 ‘영적인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았느냐. 나 여호와와 너도,
심정이 맞아야 같이 산다!
내가 무엇을 행하고 있는지를
알아야만 같이 살 수 있다.
너희는 정치, 경제, 사회, 국방 면에서
각 민족들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를 뉴스를 통해서
접하면서도 모른다.
역시, 감각이 무디다.
나 여호와가 다시 한 번 말한다.
모든 현상들의 근본 문제는 ‘영’에
있다. 내가 그러한 것들을 너희에게
보여 주는 이유는, ‘그것들을 놓고
네가 회개하라’ 함이다. 천법에 대해서
너희에게 먼저 가르친 이유도 역시,
너와 함께 이 지구촌을 지상천국으로
만들고자 함이다.
지상천국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이상세계는 어찌 이루어지느냐?
일개의 사람은 이룰 수 없다.
사람으로부터 나온 이론으로는 그
어떤 것도 ‘절대적으로 이상적으로’
만들 수 없다.
자연재해도 막을 수 없고,
전쟁도, 질병도 막을 수가 없다.
그 모든 것들을 막을 수 있는 자만이
이상세계를 이룰 수 있지 않겠느냐.
그것들을 막을 수 있는 자가
누구이냐? 영으로는 나 여호와요,
육으로는 내가 보낸 자이다. 그리고
이 땅에서는 나의 심정을 알고
보낸 자와 하나 되어 함께 행하는
자들뿐이다.
나 여호와가 전쟁을 막았다!
그러나 내가 막기 전에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 자는
내가 보낸 자, 선생이다.
너는 생각하기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데,
왜 전쟁이 일어나게 그냥 두시지?
왜 선생님께서 회개하신 후에서야
전쟁의 운명이 뒤바뀌게 되었지?
그리도 사랑한다고 하셨는데,
왜 그 이전에 상황을 틀어 주지
않으셨지?’ 한다.
나는 ‘전쟁’이 일어날 운명에
처하기까지 너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러한 판국에 치닫기 전,
수백, 수천 가지의 징조를 보이며
나를 아는 자인 너희가 기도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기도 중에서도
‘회개’를 하도록 이끌었다.
오직 회개로만 청산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저 내버려 두지
아니하고, 이러한 과정으로 이끄는
것이 바로, 나의 사랑이다.
사랑하기에, 이치와 순리를 거슬러
행하지 않는다. 사랑하기에, 너희에게
이치와 순리를 가르치고, 너희 또한
나를 사랑함으로 그 방향대로 행해서
나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지를 심정
태우며 지켜본다.
나 여호와 혼자만으로는
이 세상을 이상세계로 만들 수 없다.
왜? ‘죄’ 문제를 해결할 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죄’ 문제를
해결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서
심판과 축복이 결정 난다. 그런데
이것을 몰라서 이에 해당되는 것을
행치 않는데, 어찌 이 지구가
이상세계가 되겠느냐.
전쟁이 난무하고, 자연재해가 난무하는
세계가 될 뿐이다. 육도 사망, 영도
사망할 뿐이다. 나는 휴거된 너희들과
함께 이 땅을 <이상세계>로 만들고
싶다! 지상도, 천상도 너희와 함께
만들어 가고 싶다. 그리하려면 이제는
진정, 너희가 ‘회개’에 대해서 더욱
깨달아야만 한다!
선생을 보아라! 자신의 죄가 아닌
것까지도 자신의 죄처럼 여기며
그리도 기도하는 것을 보아라.
너희가 그를 닮아야만 한다!
그와 같이 행하는 자가 바로,
<성삼위의 상대체>가 된 자이다!
이 지구촌이 나 여호와의 것이고,
그는 나의 상대체이니, 이 지구를
자신의 것으로 보는 자이다.
나 여호와가 지구에 계획한
그 사랑의 뜻을 알고,
자신의 뜻으로 삼으니,
그 뜻을 이루고 싶어서 그리도 자신의
죄로 보며 기도하는 것이 아니냐.
한국아, 너희는 이 시대,
나에게 선택받은 민족이다.
나 여호와의 나라요,
나 여호와의 것이다!
한국 민족아,
성약역사를 맞이하게 된 축복된
민족아. 성약역사의 기준 민족이 된
너희가 잘해야 하는데 기준자들이
참으로 무지하다.
한국 섭리야,
진정 너희는 너희 민족을 책임지고
나 여호와의 사랑의 대상체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만 한다.
너희 민족을 향한 뜻이 어찌
이루어질지는 지금 이때, 휴거됨으로
나의 신부들이 된 너희의 행함에 달려
있다.
선생이 다 해 줄 것이라고 믿고,
맡겨 놓기만 하고 남의 일을 보듯,
쳐다보고만 있지 말아라. 그것은 함께
행하는 신부의 모습이 아니다. 너희를
나 여호와의 <상대체>로 대해 주는
것이 그 얼마나 큰 것인지 아느냐?
너의 입을 통해 나오는 회개 기도로
너의 운명도, 민족의 운명도,
지구촌의 운명도 뒤바뀐다!
너의 애타고 간절한 구함으로
네 개인뿐만이 아니라
이 지상의 문제가 풀어진다!
너의 간구와 애원으로 ‘영적 문제’가
풀어지고 육계에서도 그 문제가
풀어진다.
왜 이것을 모르느냐. 왜 이에 해당되는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이냐.
큰 권한을 부여받았어도,
그 권한에 대해서 무지하고,
그에 해당되는 것을 행하지 않으면
권한을 지니지 못한 자와 별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2015_1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20
나 여호와는 휴거된 너희에게,
나와 함께 행하며 하늘의 뜻을 펴
나가자고 하였다! 이같이 말하는
나의 심정을 좀 깨달아라!
심판 직전에도, 심판할 때에도,
나 여호와는 너희들만을 쳐다보고
있다. 내 심정을 모르고,
회개해 주지 않는 너희가 야속하다.
모르는 자들이 회개를 하겠느냐?
숨 쉬듯 죄를 지으면서도 자신이
죄를 짓는지를 모르는 자들이
회개를 하겠느냐?
죄로 인해 채찍을 맞아도 죄 때문인
줄 모르고, ‘이상기후가 나타났다’,
‘이해관계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저들이 뭘 알고 회개하겠느냐?
아는 자들이 모르는 자들의 죄까지도
회개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역사를 펴
나가는 것이다.
나 여호와는
선생의 입만을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너희의 입만을 쳐다보고 있다.
너희가 회개함으로 너희 민족을,
그리고 이 세계를 나 여호와의 뜻에
따라서 지상천국으로 만들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저들은 모르니 어쩔 수 없다지만,
어찌 너희들까지도 그리 무지한
것이냐. 참으로 답답한 신부들이다.
나 여호와에게 자기와 함께
행해 달라고 말은 하되,
나와 함께하지는 않는 신부들이다.
참으로 무지한 신부들이다.
너희가 무지하면, 너희 민족도,
세계도 그 ‘운명’이 뒤바뀌게 된다!
너희가 행하지 않으면, 사망의 판결이
‘생명’으로 뒤바뀌지 못하게 된다!
너희의 기도로 사탄의 뜻이 부서지며
<하늘의 뜻>이 이뤄진다!
선생처럼 예리한 감각을 지녀야 한다!
이것을 보고, 저것을 보며 나 여호와가
뜻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차려야
한다. 나 여호와는 징조를 보이지
않고, 갑작스럽게 심판을 하는 일은
‘절대’ 없다!
<회개함>으로
‘네 자신’을 구하여라!
‘너희 가정’을 구하여라!
‘너희 민족’을 구하여라!
‘너희 나라’를 구하여라!
‘이 지구촌’을 구하여라!
그 운명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라!
너를 통해서 내가 환경과 여건을
틀 수 있도록 해 다오.
오직 선생과 하나 되어 행하여라!
이제는 나 여호와와 같이 행하자.
성삼위와 함께 하늘의 뜻을 펴자.
너의 죄가 아닌 것도 너의 죄로
여기고 간절히 회개하여라. 너에게
죄가 있어서 회개하라 함이 아니요,
너를 통해 다른 자들까지도 구하고자
함이다. 뜻을 아는 자를 통해서 다른
자들도 뜻을 알도록, 그리고 그 뜻을
이루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
선생을 보기만 하지 말고, 배워라.
선생을 통해 말씀만 들으려고 하지
말고, 배워라. 나의 상대체가 되어
하늘의 뜻을 어찌 펴는지 배워.
사랑한다. 오늘도 죄의 그릇은
빠른 속도로 채워지고 있다.
나 홀로는 지상천국을 못 이룬다.
반드시 나의 대상이 되는 육이 있어야
하고, 육의 신부들과 함께 행해야만
한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 또한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
고로, 나 여호와는 오늘도
너희의 입만을 쳐다보고 있다.
이 민족과 지구촌을 두고
나 여호와와 함께 행하자.
선생과 함께 행하자.
안녕.
2015_1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21
2015년 11월 22일 주일
그 순간 거쳐 가는 사람들
[ 고린도전서 13장 10절 ]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0 but when perfection comes,
the imperfect disappears.
* (모든 말씀이 그렇지만)
이 말씀은 특히 대언하는 자가
정말 잘 전해야 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는
권위 있게 전하되, 오늘 말씀은
가르치는 말씀이니
잘 설명해 주듯 전한다. 그리고
성령님의 말씀을 전할 때는
가르치듯 잘 설명해 주면서 온화하고
부드럽게 웃으면서 전해 주고, 강하게
찌를 부분은 확 찔러 주면서 전한다.
전체적으로 성령님은 온화하고
부드럽지만 강렬한 분위기다.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말씀 속에 역사하시며
함께하십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성령님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11월 넷째 주 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그 순간 거쳐 가는 사람들’입니다.
◎ 이 말씀은 선생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안타까운 것을 놓고
하나님과 성령님께 고하며 대화하면서
받은 말씀입니다.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짧지만,
‘핵을 치는 말씀’입니다. 고로
듣는 대로 쑥쑥 이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만큼 집중하고 잘 들어야
말씀이 ‘뇌’에 확 꽂혀서 충격적으로
깨닫게 됩니다.
정~말 잘 전하고,
정~말 잘 듣기 바랍니다.
<말씀 시작>
선생이 모든 사람들을 놓고 기도할 때
안타까운 사람들이 생각나, 하나님과
성령님께 고했습니다.
“예전에는 그리도 열심히 하던
사람들인데 <이성>으로 쓰러지고
<환난>으로 쓰러지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려다 섭리사를 떠났습니다.
예전에는 정말 맛있게 섭리 인생을
살면서 뛰었는데, 어쩌다가
그리되었을까요?” 했습니다.
나의 기도를 듣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는 <섭리사 환난기>라서
‘사막과 같은 처지’에 있었으니,
목이 타면 ‘구정물과 흙탕물’도
‘약수’라 하면서 먹듯이,
<참된 자들, 큰 자들>이 없어서
그런 자들을 썼다. 배고프면 ‘거지 밥’
도 ‘진수성찬’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때 열심히 하다가 나간 자들>을
생각해 보고, <지금 잘하는 자들>과
비교해 보아라. 비교해 보니,
‘거지 밥’과 ‘진수성찬’이지 않느냐.
영계로 보아라. ‘그 행함’을 생각해
보아라.
잘해 주면 ‘잘하는 자’가 되어서
잘했고, 잘 안 해 주면 ‘속 썩이는
자’가 되어 속을 썩였다. 그때는
‘참된 자’가 없었다. 찾는 중이었다.
<참된 자>가 없으니 그런 자들이
잘하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잘 들어요.
월명동을 개발하기 전에는 집이
없으니 ‘초가집’도 ‘궁궐’같이 쓰지
않았느냐. 그렇다고 늘 ‘초가집’에서
살 수 있느냐. 어서 개발하여
‘새 집’에서 살아야 된다.
<자기를 개발하지 않고 변화시키지
않은 자들>은 섭리사에 있어도
‘초가집 신앙인’으로서,
삼위 앞에 합당하지 않다.
<월명동>도 시대에 따라서
‘나 여호와의 뜻’대로
개발하여 뜯어고쳤다.
이와 같이 <너희 자신>도
‘나 여호와의 뜻’대로 개발하고
변화시켜야 된다. <월명동>을 개발하지
않았다면, 하늘 역사의 ‘하늘 궁’으로
삼지 못했다.
<사람>도 그러하다.
나 여호와의 뜻대로 개발해야
‘하늘 신부’로 삼는다.
어떤 일을 할 때도 <연습>이 있다.
<연습>은 ‘시험 보는 것’도 아니고
‘금메달을 놓고 겨루는 것’도 아니다.
<연습>은 ‘연습’이다. 이와 같이
‘그 순간 거쳐 가는 자들’은
그때 그 순간뿐이다.
<참된 자, 큰 자>가 없을 때이니,
그리도 귀히 쓴 것이다.
젓가락도 없을 때는 그때의 환경에
맞춰서 ‘나무’를 꺾어서 젓가락으로
쓰지만, 때가 되면 ‘금 젓가락’으로
먹는다. - 사람도 그러하다.
지난날 <섭리역사>를
‘하나의 자기 쉼터’로 여기며
잘해 주면 잘하고 잘 안 해 주면
안 하면서 주인 의식을 갖지 못하고
행했던 자들은 <차원 높여 변화된 새
역사의 휴거 역사>에서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뛰는 자들>과 같이 살 수
없다.
결혼한 부부라도 ‘성격’이 안 맞고
‘생활’이 안 맞으면, 같이 못 사는
것이다.
<영계>에서도 ‘자기 급, 자기 수준,
자기 차원’대로 살아간다.
<자기 성격>대로 살고
<자기 생활>에 빠져 사는 자가
어떻게 ‘전능자’를 모시고 살겠느냐.
혹여 그런 자들이 온전히 행한 자들
사이에 끼어서 천국까지 따라와도,
천국 문 앞에서 돌려보낸다.
(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성령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잘 들어 봐요.
지난날 그리도 잘했는데, 어떻게
<이성, 환난, 자기중심>으로 쓰러져
섭리사를 나가게 됐냐고?
섭리역사가 ‘환난기’라 ‘사막 같은
처지’여서 <참된 자, 큰 자>가 없을
때이니, 그런 자들을 썼다.
2015_1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22
처음 월명동에 돌을 쌓았을 때를
생각해 보아라. <큰 돌>이 없을 때는
‘금방 깨지는 석회석’을 보고,겉보기에
하얗고 좋으니 그 돌을 쌓지 않았느냐.
그러고는 모두 구경하라고 하며 보여
주었지?
<석회석으로 쌓은 돌 조경>이
무너지고 깨진 후에야 그제야 알고
‘희귀 돌인 무늬석, 애석, 오석,
자연석’을 값비싸게 주고 사 와서
값있게 쌓았다.
지난날에 잘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이성, 환난, 자기중심>으로
쓰러져 나간 사람들도 그러하다.
그때는 <연단된 자, 만든 자, 큰 자>가
없으니, 그때의 처지에 따라서 그들을
쓴 것이다. 그러니
<겉>을 보지 말고 <질>을 보아라.
<양>도 보지 말고 <질>이 좋은지
보아라. <생각의 질>이 좋은지 보아라.
<생각의 질>이 철인지, 돌인지,
흙인지, 금인지 보아라.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사람이 <겉모습>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생각의 질>이 나쁘면, 결국
<그 생각>으로 인해 스스로
무너집니다. <생각의 질>이 좋아야
<행실의 질>이 좋고, 그로 인해
<영혼의 질>도 좋아져서 빛나고
아름답게 변화됩니다.
<임시로 지은 집>은
그리 튼튼하지 않습니다.
순간만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바람이 불면 쓰러지고,
태풍이 불면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섭리역사에 왔지만,
열심히 하기도 했지만, 끝까지
삼위와 구원자와 함께하지 못하여
<휴거 역사>에 동참하지 못하고
<그 순간 거쳐 가는 사람>으로
끝난 이유는 자기가 자기를 개발하지
않고, 자기가 자기를 변화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저 잘해 줄 때만 잘하고,
잘해 주지 않으면 안 했습니다.
좋은 날에는 잘했지만 섭리사에
환난이 오니 저들이 하는 말을 듣고
쓰러졌습니다.
주가 보일 때는 잘했지요.
주가 보이지 않으니 실감하지 못하고,
의심하고, 오해했습니다.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좋을 때만 잘하고,
잘해 줄 때만 잘하고,
보일 때만 잘하고, 자기가 좋을 때만
잘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혹은 “선생님이 나오시면 그때 열심히
하겠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자기만
손해입니다.
지금!! 선생이 성삼위를 모시고
삶 속에서 여러분과 함께 뛰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며 매일 주와 함께 뛰고
달리는 자들만 앞날이 창창합니다!
그래서 <생각의 질>을 봐야 된다고
성령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생각의 질이 좋은 사람>은
<질 좋은 시대 생명의 말씀>을
알아보고 확신하고 행합니다!
고로 <영혼>도 쑥쑥 성장하고 변화를
이루어 순간 거쳐 가는 자가 아닌
‘주의 몸’이 되어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주의 뜻’대로 살아갑니다.
그리함으로 ‘주의 짐’을 덜어 주고,
주와 함께 ‘혼인 잔치 휴거의 삶’을
살면서, 주와 함께 ‘희망의
섭리역사’를 창대하게 펼쳐 나갑니다.
<잠시 쉬었다가>
<얼굴>은 금방 늙습니다.
고로 나이가 들면 <얼굴>만 보고서는
누가 ‘과거에 미인’이었는지,
누가 ‘과거에 못난이’였는지
구별하지 못합니다. 한번 나이 든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 놓고 ‘과거에
미인’이 누구였는지 찾아보세요!
<성령님>도 찾기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 모두 다 ‘가을’을 맞아서 ‘낙엽’이
되었으니, 어떤 풀이 ‘여름 한철에
그리 싱싱했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래서 <생각의 질>을 보고,
<행실>을 보고, <혼>을 보고,
<영>을 봐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 성령같이 ‘영’을 보아라.
<영>을 봐야, 누가 ‘진짜 미인’인지
다 구별한다. <육>은 변화무쌍하다.
과거에 ‘섭리사에서 미로 휘날렸던
자들’을 보아라. 이제 옛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서로 쳐다보아라.
(충격이지?)
<육>을 보고 너무 충격 받지 말고,
<영>을 봐라. 과거에 미인이었더라도
그 <육>은 이제 아줌마, 아저씨가
되었고 중년이 되었다.
모두 <영>을 위해 살아야 돼.
<영들>은 ‘미’로 휘날린다.
<육>은 세월 가면 쭈글이가 된다.
어서 <육>이 다 늙기 전에
빨리 <육>을 ‘씨’로 뿌려서 <영>을
미인으로 변화시켜 <영의 열매>를
거둬라! 이것이 첨단의 지혜다!
(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성령님의 말씀을 더 들어 볼까요?
깊은 속 이야기를 하시니, 잘 듣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전하면서,
말씀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영계>에서는
‘미(美)’를 중히 본다. 왜냐고?
영계에서는
<삼위를 향한 사랑의 공적>이
‘영의 미와 빛’으로 나타나고
<삼위의 뜻대로 의를 행한 공적>이
‘영의 미와 빛’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영의 미(美)’를 중히 본다. 알겠지?
삼위를 진실로 사랑하고,
삼위의 뜻대로 행한 공적이 크면,
영의 키도 크고, 영이 반짝반짝
빛나고 아름답다. 사랑도, 공적도
별로인 영의 키는 120~150cm다.
조은이 영의 키는 2m다.
그의 <사랑의 공적>과 <의의 공적>이
크기 때문이지.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오직 주 뜻대로만 살지 않느냐.
누구든지 삼위일체를 모시고 사랑하며
그 뜻대로 살면, 모두 합당하니
<영체>가 아름답게 갖춰지고 빛나고
발달된다. <영>은 <육>과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고,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다.
나 성령을 상상해 보아라. 그 대신
최고로 아름다운 여인으로 상상해라.
그렇게 상상하면 80%는 맞다. 그리고
상상한 대로 나를 그려 보기도 해.
2015_1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23
화가 화정 목사와 미술부 화가들이
다 모여서 나를 그려도 나의
아름다움은 100% 표현을 못 한다.
그 정도로 아름답다. 세계의 화가들이
다 모여서 나를 그려도 그 미를 다
표현하지 못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성령 본체’를 상상해 보아라.
나의 아름다움을 상상해 보면서 내게
가까이 오는 자에게 내가 더 역사할게.
나를 본 자들의 이야기도 들어 봐라.
그들의 영 급대로 봤으니, 제각각이다.
선생은 나를 아주 깊이 봤다.
그러니까 그리도 나를 가까이하며
놓지 않고 산다. 내가 어떤지,
선생에게 이야기를 들어 봐.
그런데 이야기를 안 해 준다.
<육의 말>로 표현하면, 가치가
떨어질까 봐 말을 안 한다.
나 성령은 상천하지에서 최고로
예쁘니 그 아름다움이 어떠하겠느냐.
상상해 보아라.
<빛나는 다이아몬드>와
<일반 돌>만 비교해도 표가 나는데,
<나 성령>과 <세상 육적인 미인>은
얼마나 다르겠느냐.
나 성령은 태양과 같이 빛난다.
나를 보통으로 보지 말고,
우습게 보지 말아요. 엄마에
비유한다고 해서 너희 엄마의
모습처럼 생각하지 말아요. 깐깐하게
말한다고 깐깐하다고 하지 말아요.
나를 한 번 보기만 한다면 매일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같이 살고
싶고, 매일 자기가 고칠 것이 뭐냐고
물어보면서 어서 다 고치고 깨끗하게
되어서 성령님과 함께 살고 싶다고
하며 안달이 날 것이다.
나 성령은 정말 예뻐서 ‘예쁜 너희’를
쓰고 나타난다. 서로 쳐다보아라.
그런데 ‘남자’는 좀 그래. (^^)
나 성령은 <여성>이니, <남자>를
쳐다보며 나를 느끼기는 좀 그렇다는
말이야. 그러니까
‘얼굴’을 보고 나를 느끼지 말고,
‘행실’을 보고 나를 느껴라.
남자든 여자든 ‘성령과 같은 행위’를
하면, 그 사람을 쓰고 내가 나타난다.
나 성령이
‘너희 예쁜 행실’ 쓰고 나타나니,
특히 가정국들은 잘 좀 해.
자녀들도 귀히 보고,
외적으로 내적으로 관리해라.
자녀 관리를 못 한
‘엘리 제사장’이 어찌 되었느냐.
너희 자녀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해라.
< 말씀 마무리 >
오늘 말씀 마무리합니다.
나 성령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섭리인 모두
<시대 말씀>을 잘 듣고 행하여
<육>도 ‘생각 미인, 행실 미인’이 되고,
<영>은 ‘영체 미인’이 되어서
하나님과 성자와 나 성령과
구원자 앞에 가까이 와라.
<논과 밭은> 집 가까이에 있어야
‘문전옥답(門前沃畓)’이지?
너희도 삼위와 주를 가까이해.
그래야 ‘귀한 육과 영’이 된다.
나 성령은
너희가 싸움을 할 때도 가고,
화평할 때도 가고,
환난 때도 가고,
핍박 때도 가고,
공적인 일을 할 때도 가고,
너희가 부를 때 가서 역사한다.
늘 삼위일체와 구원자를 모시고
늘 <신혼 생활>,
늘 <사랑의 휴거의 삶>을 살아라.
나의 말을 듣고 행하자!
◎ 말씀 마쳤습니다.
오늘 못다 한 말씀을
수요일에 이어서 전해 주겠습니다.
(* 선생님 명설교는
12월 첫째 주에 나갑니다.)
2015_1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24
2015년 11월 29일 주일
참지만 말고 거기서 나와라
[ 고린도후서 5장 1절 ]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1 Now we know that if the earthly tent
we live in is destroyed, we have a
building from God, an eternal house in
heaven, not built by human hands.
[ 골로새서 1장 5절 ]
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5 the faith and love that spring from the
hope that is stored up for you in heaven
and that you have already heard about
in the word of truth, the gospel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 말씀은 ‘특강’입니다.
핵심 내용은 <죄를 안 짓고 불의를
행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어느 정도 교육을 해 준 다음에는
<휴거 700선>에 대해서, <휴거의
집>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시켜 주는
말씀을 해 주겠습니다.
◎ 말씀의 주제는
‘참지만 말고 거기서 나와라.’입니다.
<말씀 시작>
사람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대로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아무리
어른이라도, 자기를 만든 사람이라도
사람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 영향을 받게 됩니다.
가령, 자기 눈앞에
‘이성의 행위’가 보인다고 합시다.
그러면 자기 마음은 그렇지 않아도
눈에 보이는 것의 영향을 받아서
순간 <생각>이 그쪽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때 눈에 계속 보이는데
참으라고만 하면, 잘 참아지지
않습니다. 이때는 생각도 몸도
‘그 주관권’에서 즉시 나와야 됩니다.
그 주관권에 있게 하면서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 눈을 뜨고서 세상을
보지 말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저마다 죄를 안 지으려면
‘참고 견디자!’ 하며 자신을
꾸짖고 책망하지만 말고, 그 환경,
그 주관권에서 나와라! 그러면
참고 견딜 필요가 없다.
<죄짓는 생각>에서 나와라.
<네가 처한 환경>에서 나와라.
<죄의 주관권>에서 나와라. 그러면
‘마음’도 ‘몸’도 죄를 안 짓게 된다.
형제들에게도 참으라고만 하지 말고,
꺼내 주어라. 해결해 주어라.
구해 주어라.” (하셨습니다.)
그 환경과 처지, 그 주관권에서
나와라. - 하는 말은 어떤 의미인지
성령님께서 비유를 들어 말씀해
주셨습니다.
가령 <이성>을 생각하게 됐다면,
<생각>이 ‘이성의 환경’에 들어간
것이다. 이때 자기에게 참으라고만
하지 말고, <생각>을 돌려 ‘그 환경,
그 주관권’에서 즉시 나와라.
<생각>도 ‘한 존재’다.
만일 <몸>이 ‘이성의 환경’에 처해
‘이성의 행위’를 한다면, 즉시 자르고
즉각 거기서 나와라. 그럼 ‘참아서
안 되는 문제’가 해결된다.
가령 혼자서 <형제들과 다투는
생각>을 하든지, 실제로 <형제들과
다툼>이 시작되면 참는다고 다툼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참지 말고,
즉시 ‘그 환경, 그 주관권’에서
몸도 마음도 빠져나와라. 그럼
‘참아서 안 되는 문제’가 해결된다.
또 한 가지를 설명해 줄게요.
잘 들어 봐요.
수류탄 알지요?
수류탄은 ‘안전핀’을 뽑고 던지면
터집니다. 안전핀을 뽑기 전에는
절대 안 터집니다. 그런데요!
‘안전핀’과 상관없이 수류탄이
터질 때가 있습니다. 수류탄을
뜨거운 난로 옆에 놓고 열을 가하면,
안전핀과 상관없이 터집니다.
<마음과 생각>은
‘수류탄의 안전핀’입니다.
안전핀을 꽂아 놓듯
<마음과 생각>으로 안 한다 해도
자꾸 <육>이나 <생각>에 열을 가하면,
결국 수류탄이 터지듯 터지게 됩니다.
자꾸 지체를 만지며 성적으로
흥분시켜 열을 가하는데, 그때
참으라고 해서 참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누구나 자꾸 만지면 흥분되니,
아예 ‘그 환경’에서 몸도 마음도
나오라는 것입니다. 흔히
“하루에 세 번 참아라! 모두 참아라!”
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참아서 될 것>이
따로 있습니다.
<참아서 해결하는 방법>은
거의 실패합니다. 고로
성령님은 말씀하시기를
“거기서 나와라!
그러면 완벽하게 해결된다.
<참는 방법>보다
<그 환경에서 나오는 방법>이
훨씬 좋은 방법이고, 문제를 해결하는
절대적 방법이다.” 하셨습니다.
남녀가 한 방에 있는데
“이성의 행위를 참아라.” 하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마치 수류탄에 ‘안전핀’을 꽂아 놓고서
수류탄을 난로 위의 뜨거운 물에 넣고
열을 가하면서 “터지지 마! 참아라~”
하는 격입니다. 그때는 수류탄을
다른 곳으로 옮겨 줘야 안 터집니다.
이와 같이 남녀가 한 방에 있을 때는
“이성의 행위를 참아라.” 하지 말고,
어서 한 명을 밖으로 나오게 해야
됩니다. 그러면 안 참아도 문제가
해결됩니다.
<수류탄>은 ‘자기 몸’이라면,
<안전핀>은 ‘자기 생각과 마음’입니다.
<자기 생각과 마음>에서
아무리 안 하겠다고 맹세해도
<자기 생각과 몸>을 ‘그런 환경’에
넣고 열을 가하면 결국 ‘죄’를 짓고
‘불의’를 행하게 됩니다. 이성의 행위,
음란한 행위, 미움, 다툼, 게으름,
태만함 등입니다.
사람은 ‘눈’으로 보면 ‘뇌’에 시동이
걸려서‘육신’이 아무리 참아도 자꾸
2015_1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25
느껴져서 마치 가열되어 폭탄이
터지듯 ‘육’으로 행하게 됩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왜 자기가 ‘눈’으로 보면서 ‘귀’로
들으면서 자기에게 참으라고 하느냐.
자동차에 아예 ‘키’를 안 꽂으면,
평생 시동이 안 걸린다.
<불의>를 보고 듣고 참으려 하지 말고,
<불의>는 아예 눈으로 보지도 말고
귀로 듣지도 말아라. 그러면 자동차에
아예 키를 안 꽂는 격이라서 평생
‘그쪽’으로는 시동이 안 걸리니
안전하다. 하지만 <눈>으로 안 봐도
스스로 <생각>하면 뇌에 시동이 걸려
‘그쪽’으로 흥분이 된다. 고로
그 환경에서 나오라는 것이다!
<생각>으로 하지 말라고 ‘명령’해도
<생각>이 그쪽으로 흥분되면 그 말이
안 들리니, 어서 그 환경에서 나오라는
것이다. 어서 ‘썩는 물’에서 나와라!
100% 완벽하게 하는 것이
그냥 되느냐. 안 한다고 하나님께
큰소리치고도 한다. 마음, 몸, 귀,
눈에게 참으라고 하지 말고, 아예
마음도, 생각도, 몸도 거기서 나와라!”
(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의인>은
‘세상에서 참으로 크고도 큰 자’
입니다. <의인>이 되면, 전능하신
하나님은 ‘의인의 간구’도 잘
들어주시고, ‘의인의 이야기’도
잘 들어주십니다. 또한 <의인>이
만물을 향해 명하면, 만물도
순종합니다.
왜 그럴까요?
<의인>은
‘하나님의 생각과 행위와 일체’ 되었기
때문에 그가 말하면 들어주시고
만물도 순종하도록 인간과 만물을
순리로 창조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의인>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과 생각의 불의한 것들>을
다스리고, 하나님의 생각과 일체
되어서 <그때마다 할 일>을 하면서
되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과 생각의 불의한 것들>을
다스리고, <그때마다 할 일>을
‘한 달’만 해 보세요!
그러면 한 달 동안 걷고, 뛰고, 달린
만큼 표가 나게 목적지 쪽에 가 있게
됩니다.
선생은 산속에서 수도 생활을 할 때,
<불의한 것들>은 아예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전적으로 <목적>만을
위해 행했습니다. 그랬더니, 내가 행한
만큼 ‘목적지 쪽’에 가깝게 가 있었고,
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게
됐습니다. 내가 원하는 만큼, 하나님이
원하시는 만큼 나를 만들게 됐습니다.
여러분들 모두 ‘산속’으로 가서
만들려고 합니까? 현실에서
<불의한 것들> 앞에서는 눈을 감고
눈을 막고, 현실에서 <기도>하고
<말씀>을 실천하면서 삼위 앞에
더 가까이 가도록 자기를 합당히
만들기 바랍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게 하면서는
수도 생활을 해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남녀를 서로 껴안고 있게
하면서 “이성을 참아라! 참는 조건을
세워라.”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면,
어느 누구도 참지 못하고 죄를
범합니다.
이는 수류탄을 안전핀만 꽂아 놓고
난로 옆 뜨거운 물에서 가열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못 참고 터집니다.
하나님은 이런 방법으로 조건을
세우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환경에서 나와 아예 혼자 있게
하면서 조건을 세우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휴거>에 욕심이 없습니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그 욕심은 잘못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잘되고 더 잘하고자 하는
욕심입니다. 그런데 ‘영원히 받고 쓸
것, 휴거’를 위해서 자기를 만들고
행하는데 더 잘되고 더 잘하고자 하는
욕심이 없습니까?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700선 휴거의 욕심>을 부리고
해 보세요!!! <의의 욕심>을 내고,
하기를 축원합니다!
<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고 행하면,
못 할 자가 없습니다.
<죽음>보다 쉬운 것이 <휴거>입니다.
이 말은 <죽음>을 앞에 놓고서
“휴거되지 못하면 죽는다!” 하고,
하라는 말입니다.
푸념하고 불평하는 데 힘쓰지 말고,
그 힘을 가지고 ‘의의 욕심’을 내고
행해 보세요!
포기하고 죽으려 하는 데 힘쓰지 말고,
차라리 그 힘을 가지고 ‘살려는
욕심’을 내고 행해 보세요!
행한 만큼 잘됩니다!
각종 물질을 사랑하고, 이성을
사랑하는 데는 ‘기질’이 있어서
세계 대회에 나가도 1등을 하고
금메달을 딸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 기질’을 가지고
영원한 것을 주시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사랑하지 못하고,
자기를 구원하고 휴거시키며 돕고
이끄는 구원자를 사랑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까?
왜 <자기의 사랑>을 음란물 보는 데
쓰고, 이성 사랑에 쓰고, 물질 사랑에
쓰고, 자기 욕망에 쓰고, 게으름과
태만함에 쓰면서 그때마다 그것에
미쳐서 그것을 사랑합니까?
그 사랑을 ‘삼위일체’와 ‘주’를
사랑하는 데 못 쓰니, <휴거의 차원>이
오르지 않고 계속 그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어떤 자는 아직도 <휴거 300선>에
머물러 있고, 어떤 자는 그마나
<휴거>를 뺏겨 ‘영’이 슬피 울며 땅에
내려와 자기 육을 붙잡고 뛰는 자도
있습니다.
<휴거>를 ‘휴가’로 잘못 인식하고,
휴거를 이루려 하지 말아요.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말씀하시기를 “<휴거>에 성공하면,
더 이상 어떤 영광도 없다.” 하십니다.
올해 12월이 넘어도
그 차원에 머물러 <휴거 300선>으로
내년 2016년을 맞으려 합니까?
어떤 사람은 <700선>까지 갔는데도,
계속 더 빛나게 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까요? 하고자 하면서
결심하고 행하기 때문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2015_1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26
◎ 어느 정도 교육했으니, 이제
<휴거 700선>에 대해 인식시켜
줄게요. 매우 중요한 말씀이니,
잘 전하고 잘 듣기 바랍니다.
<휴거 700선에 오르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요.
<최고 사명자와 같은 급으로
휴거 700선>을 이루려 합니까?
그렇다면 그와 같이 조건을 세우며
행해야 됩니다. 그러려면 정말 어렵고
불가능합니다. 각자 <휴거 700선>을
이뤄도 ‘자기 차원’대로 이룹니다.
<자기 급에서 700선>입니다.
마치 똑같이 ‘집’을 지어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의 액수’만큼 짓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가 1억을
가지고 있으면 ‘1억짜리 집’을 짓고,
자기가 10억을 가지고 있으면
‘10억짜리 집’을 짓고, 자기가
100억을 가지고 있으면
‘100억짜리 집’을 짓습니다.
이와 같이 ‘자기 급’에서
<휴거 700선>을 이루니,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요. 쉽습니다.
다만 <휴거 700선>을 크게 이뤘느냐,
작게 이뤘느냐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휴거 700선>을
이뤄?” 하지 말아요. <휴거 700선>에
대해 이같이 인식하고, ‘저 사람이
700선이 됐다면 나는 안 믿어.’ 하지
말아요. <700선>을 이룬 사람들도
많습니다. 다만 ‘자기 급’대로 크게,
혹은 작게 이룹니다.
“저 사람은 돈이 1억밖에 없는데 집을
지었다니, 나는 10억이 있어도 아직
집을 못 지었는데... 안 믿겨.” 하지
말아요.
<금>으로 집을 지으려면 10억을
가지고 있어도 집 짓기 힘들고,
<지방의 작은 아파트>를 사려면
1억을 가져도 집을 삽니다.
저마다 ‘자기 공적’대로 <휴거>를
이루고, ‘자기 공적’대로 천국에
<휴거의 집>을 짓게 됩니다.
<영계에서 돈>은 ‘의’입니다.
자기 육이 의를 많이 행했으면,
돈이 많은 것과 같아서 <휴거>를 크게
이루고 <천국 휴거의 집>도 각종
보석으로 꾸며 크게 짓게 됩니다.
고로 <신약시대 자녀급의 사람들>도
‘자녀급’으로 천국에 집을 짓습니다.
<이 시대 신부급의 사람들>도
<휴거 700선>을 놓고 ‘신부급’으로
천국에 집을 짓는데, 저마다
자기 공적대로, 자기가 행한 대로
‘휴거의 집’을 짓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정원>도 ‘개인 정원’을 완성하려면,
몇 달이면 합니다.
그러나 월명동같이
<세계적으로 크고 웅장하고
아름답고 신비한 정원>을 만들려면,
- 그만큼 힘도 더 많이 들어가고,
- 돈도 더 많이 들어가고,
- 공적도 더 많이 필요하고,
- 하나님의 구상대로 해야 하니
그만큼 시간도 더 많이 들어가서
다 만들려면 ‘한 세월’이 갑니다.
<휴거>도 그러합니다.
모두 <휴거 700선>까지 이뤄야
하는데, <휴거 700선>을 놓고
크게 이루느냐, 작게 이루느냐가
문제입니다.
천국에 작은 집 하나를 짓고 휴거를
완성하느냐, 천국에 각종 보석으로 된
큰 집과 정원을 만들고 휴거를
완성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끝>
자기 육도 혼도 영도 크고 멋지게
휴거되려면, 복직된 하와같이 각자
개성대로 선생을 따라서 하기
바랍니다. 모두 영의 눈이 있으니,
모두 영의 눈을 뜨고 봐요!
각자 <자기 생각과 행위>로 저마다
황금성에 ‘휴거의 집, 휴거의 정원’을
짓는 것입니다. 전심으로 기도하여
<황금성 천국의 자기 휴거의 집>을
보세요! <영의 세계의 것>을 못 보면,
축소하여 <혼의 세계의 차원>으로
보면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휴거 700선>에 대해 인식시켜
주면서, <천국 황금성의 휴거의 집>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제
<휴거의 집>에 대해서 인식시켜
주겠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구원자가 기본으로 해 준 것>에다가
<자기 수고와 노력과 행위>로
‘휴거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천국의 건물>을 생각할 때,
세상 건물을 생각하지 말아요.
<세상 건물>을 말하면서
<천국 건물>을 설명해 주는 것은
하나의 ‘비유’에 불과합니다.
비유를 들어 말하면
더 잘 이해하니 비유를 들 뿐이지,
<세상 건물>과 <황금성 천국의
휴거의 집>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천국>은 ‘이 세상’보다 천 배, 만 배,
10만 배, 100만 배, 1000만 배,
1억만 배 더 크게 봐야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천국>은 ‘영의 세계’라서 다릅니다.
이것도 굳이 비교하여 이해시키자면,
<자기가 사는 집의 정원>과
<월명동 하나님의 성전>이 다르듯,
<세상의 건물>과 <천국의 휴거의
집>은 비교할 수 없이 다릅니다.
또한 <자기 교회 건물>과
<월명동 자연성전>이 다르듯,
<세상의 건물>과 <천국의 휴거의
집>은 비교할 수 없이 다릅니다.
<월명동 자연성전>에는 물, 나무,
잔디밭, 팔각정, 산책로, 운동장,
돌 조경 등 각종 환경이 있지만,
<교회 건물>은 아무리 커도
건물 수준입니다.
이와 같이 <천국>도
‘자기 집 환경’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저 ‘하나의 비유’로 이해시키며
설명하는 것입니다. <끝>
<천국 황금성의 개인 정원의 실제
크기>는 <육>으로는 평생 가도
못 가는 거리입니다.
<개인 정원>인데도 그렇게 큽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심으로 행한 자는 <영>이 엄청나게
변화되고 <휴거 700선>를 크게 이루어
우주의 별 하나씩을 ‘정원’으로
삼으라고 주는 격입니다.
<휴거의 집>을 이렇게 크게 인식하고,
자기 육신을 가지고 부지런히 공적을
쌓고 행하며 <천국 환경>을 만들어
가기 바랍니다.
2015_1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27
<천국>을 ‘육적’으로 생각하면,
“세상 집보다 크다.”라는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영>은 ‘빛’보다 빠릅니다.
빛보다 빠른 영이 활동하려면,
<천국의 개인 정원>이 적어도
‘지구 크기 정도’는 돼야 영이
다니기에 겨우 알맞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동물들도 종류마다
‘사용하는 땅의 면적’이 다릅니다.
토끼가 사용하는 면적,
치타가 사용하는 면적,
코끼리가 사용하는 면적,
말이 사용하는 면적,
물소가 사용하는 면적이
각각 다 다릅니다.
특히 아프리카 물소같이 이동을
많이 하는 동물은 그 사용하는
땅의 면적이 넓습니다. 한 달에
‘1000리(400km)’도 넘게
이동하기 때문입니다.
바다의 돌고래를 보세요.
태평양에서 인도양까지 사용하며
삽니다. 하물며 <영들>은 ‘빛’보다
빨리 움직이는데, 정원도 집도 그만큼
커야 되지 않겠습니까?이것을
인식하고 계산하고 행해야 됩니다.
<끝><잠시 쉬었다가>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과 마음’을
‘신’과 맞추어 살도록 창조해
놓으셨습니다. 고로
<하나님의 마음>도, <천국>도, <영>도,
<인생>에 대해서도 자기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을 배우고 알고,
그 생각에 따라서 생각해야
계산이 맞습니다.
우주에는
‘여러 가지의 성운’이 있습니다.
(성운 사진 보여 주기)
<큰 성운>은
‘빛’으로 ‘4년’을 가야 끝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성운 하나’도 이렇게 크게
창조하셨습니다. 그에 비해 지구는
작아서 <지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빛’으로 가면, ‘1초’에 지구 일곱 바퀴
하고도 반 바퀴를 더 돕니다.
<우주 안에 있는 성운>도
‘빛’으로 ‘4년’을 가야 끝이 나오는데,
<우주보다 더 큰 천국>은 얼마나 더
크겠습니까?
<빛>으로 ‘1년 동안’ 가는 거리가
약 9조 4천억 킬로미터입니다.
그런데 <빛>으로 가도 ‘수백조 년’을
가야 나오는 ‘천국’은 얼마나 얼마나
크다는 것입니까?
<천국>이 <지구>보다 엄청나게
크다고만 하며 막연하게 알지 말고,
한 번 계산하고 비교해 보세요.
하나라도 똑똑히 제대로 알면 그것을
통해서 다른 것들도 잘 알게 됩니다.
(* <천국>이 얼마나 큰지, 핵심을
이야기해 줄게요. 이해를 잘하도록
쭉~ 화면을 보면서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영상4>
우주에는 인간이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별들이 있습니다.
우주의 크기는 정말 엄청납니다.
그러나 <우주>가
‘천국의 정원’이 아닙니다.
<우주>는 ‘육의 세계’에 속해
있습니다. <천국의 정원>은
‘영의 세계’에 따로 있습니다.
<보이는 육의 세계>는
‘보이는 대로 한 덩어리’입니다.
<지구>는
‘인생들이 사는 육의 집’이고,
<우주>는 ‘지구의 정원’입니다.
<지구>에도 ‘자기 집’이 있고
‘자기 집 정원’이 있지요? 그 크기는
백 평, 천 평, 만 평, 10만 평 등
각각입니다. 이와 같이
<영의 세계 천국>에도 ‘각 영들의
자기 집’이 있고 ‘정원’이 있습니다.
그 크기는 천차만별입니다.
자기 육신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한 대로,
자기 공적대로 ‘천국에 자기 영의
집과 정원’이 지어집니다.
<육의 세계>에도 ‘사람들이 사는
생명의 주관권인 <지구>’가 있고,
‘그 배경으로 <우주>’가 있지요?
<영의 세계 천국>에도
‘영들이 사는 <생명의 주관권>’이
있고, ‘그 배경으로 <천주의 우주>가
따로 있습니다. 그 안에 저마다
‘자기 개인 집’이 있고,
‘거기에 딸린 정원’이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우주와 지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상상도 못 하게 큽니다.
<천국에 있는 개인 집과 정원>은
‘각자의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육신’이 세상에서
삼위와 주와 함께 행하여 ‘자기 영’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자기 육>이 실제로 행했으니
<영>도 실제로 변화되고,
<천국 휴거의 집과 정원>도
‘실체’가 되어 있습니다. 고로
‘자기 영’이 휴거되어 <천국>에서
실제로 영원히 쓰고 누리게 됩니다.
<개인 집과 정원> 외에
<공동으로 쓰고 활동하는 거리와
환경>이 있는데, 이것도 휴거되어
천국을 차지한 영들이 자기 것처럼
씁니다. <끝>
(* 그렇다면 <천국의 자기 휴거의
집과 정원>은 어떻게 꾸며질까요?
모두 하나같이 똑같은 집과
배경일까요? 핵심만 가르쳐
주겠습니다.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세상에서 <자기 육신>이 삼위일체와
시대 구원자를 믿고 시대 말씀을 듣고
행하면서 죄와 불의를 멀리하고
회개하며 살면, 그만큼 <자기 영>이
‘하늘나라 형체’로 변화됩니다. 더불어
천국에 <자기 휴거의 집과 정원>이
지어지게 됩니다. 자기 육신이 행한
만큼, 자기 육의 공적만큼 지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휴거됐으니,
하나님은 ‘휴거된 영들’에게
각 사람의 공적대로 ‘집과 정원’을
지어 주어 <영>이 영원히 쓰며 누리게
하십니다.
이때 <휴거의 집과 정원과 배경>은
‘자기가 좋아하는 모습과 환경’으로
지어 주십니다. <산>을 좋아하면
‘산’을 배경으로 집을 지어 주시고,
<바다>를 좋아하면 ‘바다’를 배경으로
집을 지어 주시고, <도시>를 좋아하면
‘도시풍’으로 집을 지어 주십니다.
<끝>
<천국 황금성의 휴거의 집들>을
<세상의 집들>과 비교하지 말아요.
2015_11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28
세상에는 ‘천국 황금성에 있는 집’과
같은 집이 하나도 없습니다.
<육의 것>은 ‘육의 것’일 뿐입니다.
<천국의 것들>을 보면
‘세상과 같은 형상과 모양의 것’은
있습니다. 그러나 ‘질’이
아예 다릅니다. 세상에는
‘천국의 것과 같은 질’이 하나도
없습니다. (보석, 피부, 옷감 등 : 예를
들어 간단히 설명해 주기)
<육>과 <영>도
‘모양과 기본 구조’는 같습니다.
그러나 <육의 몸>과
<영의 몸>은 ‘질’이 다릅니다.
<말씀 마무리>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 오늘의 마지막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도 각자 자기가
사는 차원대로 ‘크게’, 혹은 ‘작게’
이루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아파트의 응접실을
정원으로 삼고 만족하며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땅에 운동장같이 정원을
만들어 만족하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농사를 지어
개인이 먹고 사는 것에 만족하고,
어떤 사람은 한 지역 전체에 농사를
지어서 그 나라와 전 세계에 농산물을
판매하고 사는 것에 만족하고 삽니다.
어떤 사람은 호수에서
물고기 잡는 것에 만족하고,
어떤 사람은 강에서
물고기 잡는 것에 만족하고,
어떤 사람은 바다에서
물고기 잡는 것에 만족하고 삽니다.
이같이 이 세상에서도
저마다 사는 차원이 다 다릅니다.
그 차이는 수십 배, 수백 배, 수천 배,
수만 배입니다. <끝>
모두 ‘시대 말씀’을 듣고
‘시대 구원자’를 따라서
<휴거 700선>을 놓고
도전하며 달려야 됩니다.
그래야 휴거가 완성됩니다.
단! <휴거 700선>을
크게 이루느냐,
작게 이루느냐가 문제입니다.
작게 이뤄도 <휴거 700선>을 이루고,
크게 이뤄도 <휴거 700선>을 이뤄야
됩니다.
각자 자기 차원대로, 개성대로 이루니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고로 <휴거 700선>을 놓고
포기하지 말아요. 뺏기지 말아요!
그러나 이왕이면
의의 욕심, 휴거의 욕심을 내고
조금 더 행하여 시대의 주를 확실히
알고 따르고, 그와 심정 일체, 행실
일체 되어 하늘 신부로서 사랑의 삶을
살면서 <크고 웅장한 휴거 700선>을
완성하기를 축원합니다!
<시대 주>를 만나 <시대 말씀>을 듣고
행하며 <성삼위>를 사랑하며
‘휴거의 삶’을 살면서 육도 혼도 영도
‘이상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십니다.
“망설이지 말고,
<하나님의 주관권 안>에
들어와 행해라!
그 환경, 그 주관권에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
참기만 하지 말고
<죄의 주관권, 불의의 환경>에서
나와라!
하나님은 너희를
<죄의 주관권, 불의의 환경>에 넣어
놓고 ‘참아라!’ 하며 조건을 세우게
하지 않으시고, 거기서 나오게 하여
안 보고 안 들으며 조건을 세우게
하신다.”
하나님은 ‘휴거’로
<하나님의 마지막 최고의 창조
목적>을 이루시고,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를
1000년 동안 이루어 나가십니다.
이보다 ‘더 이상적인 역사’는
없습니다. 최고의 역사입니다.
이는 마치 결혼한 후에는
‘더 이상의 사랑’은 없는 격입니다.
다만 ‘더 이상적인 삶,
더 이상적인 사랑’이 있다면,
<영>이 휴거되어
하나님과 결혼하듯 했으니,
<천국 황금성>에서 ‘영원히
사랑하며 같이 사는 삶’입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