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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5.11.1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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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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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_1112 목 계시말씀.hwp1 2015년 11월 계시말씀 ♥ 11월 12일 목요일 1.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의 차이 2. ‘휴거의 가치’를 깨닫기 위해 연구해야 하는 것 작성일 : 2015. 9. 3. PM 01:57~02:41 작성자 : 주수신 (성령님, 어느 때에는 알라고 하시고, 어느 때에는 깨달으라고 하시니 그 두 표현에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알고 싶어요. 어느 때에는 ‘알라!’는 말씀에 ‘아는 것과 깨달은 것’을 포함하기도 하시고, 어떤 때에는 그 두 개를 쪼개어 말씀하기도 하시잖아요. 예를 들자면, “아는 자는 많으나, 깨달은 자는 얼마 없다!”고 하셨잖아요. 안다는 것과 깨달았다는 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볼 때에 이 둘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또, 어떤 말씀은 특히 ‘깊다’고 말씀하시잖아요. 어떤 말씀을 두고 깊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인가요?) *성령님의 말씀* ‘아는 것’은 그 누구든지 할 수 있다! 알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 즉, 누군가가 가르치고,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이 ‘지식’ 차원으로 뇌에 들어가게 되지 않느냐? 아는 것은 ‘지식’이다. 자신에게 어떻게 적용시킬지는 모르는 ‘이론’과도 같은 차원이다. 즉, 누군가의 가르침으로 인해서 알게 되는 것이다. 그 지식을 전파해 준 자의 것을 그대로 머리에 담는 것이다. ‘깨닫는 것’은 ‘아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둘 다 특정한 개념에 대해서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그 차원이 다른 것이다. ‘깨달음’은 ‘지식’을 넘어서 ‘지혜’가 된 차원이다. 즉, 아는 것 위에 ‘하늘의 생각’이 더해진 것이다. ‘아는 것’은 ‘가르쳐 줌과 배움의 과정’에서 오나, ‘깨달음’은 반드시 ‘생각하는 과정’ 가운데에서 오는 것이다. 모르면 ‘그에 해당되는 삶’을 살 수가 없다. 그에 해당되는 삶을 살려면 ‘알아야’ 한다! 알려면 ‘배워야’ 한다! 그러나 배우는 것에서 끝나서는 그리 살 수가 없다.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아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대로 행함으로, ‘삶’이 되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배워서 아는 것>에는 두 단계가 있다. 첫째, 아는 단계 둘째, 깨닫는 단계이다. <배움>에도 역시 두 단계가 있다. 첫째, 누군가가 가르쳐 줘서 아는 것 둘째, 자신이 알고자 연구해서 아는 것이다. 첫 번째의 것은 ‘남의 지식’을 그대로, 뇌에 넣는 것이라고 볼 수 있고, 두 번째의 것은 자신의 뇌에 든 것들을 두고 연구함으로써 얻은 ‘자신의 지식’이다. 즉, ‘자신의 것’이다! 고로, 두 번째의 것이 되어야만 ‘배워서, 자신의 것’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것이 되니, 그제야 그에 해당되는 삶을 살 수가 있다. 첫 번째는 두 번째의 과정에 스스로 도달할 수 없는 자에게 ‘이같이 해 보자’라는 대략적인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은 되나, 그 자체가 ‘깨달음’이 되지는 못한다. 즉, 그에 해당되는 삶을 사는 것에 있어서 근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고로, 너희 모두는 ‘알기 위해서’, <연구>해야 한다! ‘아는 것’에는 다른 자가 주는 지식을 받아들이는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보다 <수동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깨닫는 것’에는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고, 깨닫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보다 <능동적인 입장>이다. 어떠한 것이 더 많은 수고를 요하겠느냐? 두 번째의 것이지. ‘행한 대로 얻는다!’고 하였다. 수고한 자만이 얻는다! 행하고자 하는 자가 행하게 되고, 그 행함대로 얻게 된다! 수고를 하고자 하는 자만이 얻는다. ‘깨달음’도 그러하다. (성령님, 말씀 가운데에 ‘깊이 말씀해 주셨습니다.’라는 부분을 보았어요. 주일말씀을 통해서 ‘심정’이 들어가면 더욱 깊다는 것은 확실히 알게 되었어요. 또, 어떠한 것을 두고 깊다고 말씀하신 것이죠? 심정이 들어가면 깊은가요? 깊은 비밀은 사랑하는 자들에게만 밝힌다고 하셨는데, 모르는 것이 밝혀지면 깊은 말씀인 건가요?)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을 놓고 보자. 아는 것이 깊으냐? 깨닫는 것이 깊으냐? (깨닫는 것이요!) 왜 깨닫는 것이 더 깊으냐? (‘아는 것’과 ‘깨달은 것’ 중에서 후자를 얻는 데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니까요. 또, ‘깨달은 것’이 ‘아는 것’보다 더욱 실체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니까요!) 그래, ‘아는 것’은 표면적이라고 한다면, ‘깨닫는 것’은 깊은 내면의 것이라고 하겠다. 이 이치로 한 번 따져 보자. ‘육’보다 ‘영’이 깊다. ‘구원’보다 ‘휴거’가 깊다. 같은 맥의 말씀도 ‘차원’이 높아진 발판 위에 선포되니, ‘과거 말씀’보다 ‘현재의 말씀’이 깊다. 내가 ‘깊은 말씀이다’ 하는 것은, ‘아는 차원’에서 끝나서는 안 되고, 반드시 ‘깨닫는 차원’으로 받아야 할 말씀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느냐? 특히나, ‘이론’으로 네 머릿속에 묵혀 둘 ‘말씀’이 아니라, ‘실천’으로 그 실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네 육도 영도 섭리에 속해 가는 데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니 특히, ‘깊은 말씀이다!’ 하는 것이다. 고로, 내가 그리 말하는 것들을 두고는 네 스스로 깨닫고자 하는 노력을 반드시 해야 한다! 2015_1112 목 계시말씀.hwp2 이 말인즉, 나 성령과 선생이 너희 모두에게 말씀으로 ‘가르쳐’ 주니, ‘지식’ 차원으로 네 뇌에 담아 둠으로 ‘아는 단계’에 머무르지 말라는 말이요, ‘아는 것’을 발판으로 삼아서 그 위에 ‘연구’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선생이 성경 한 절, 한 절을 보며 따져 보고 재어 보듯 그 ‘말씀’을 두고 ‘연구’하라는 말이다! 그리해 생각의 축복을 받으면, 그것은 네가 행한 것 위에 얻은 ‘깨달음’이니, ‘너의 것’이 되는 것이다! 즉, ‘죽은 지식’으로만 머무르지 아니하고, ‘산 지혜’로 존재함으로 네 삶 가운데에 그리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깊은 말씀이다!’ 함은, ‘네 스스로도 이것에 대해 생각해 보며 연구해서 깨달아야 할 말씀이다!’라는 뜻인 것이다! ‘가치’를 깨닫기 위해서도 연구해야 한다. 특정한 것의 ‘가치’를 어찌 알 수 있느냐? ‘특정한 것’은 네가 접하는 ‘결과물’이다. 그렇지? ‘결과’가 나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이 결과의 모습을 형성해 가는 ‘과정’들이 있는 것이다. 고로, ‘원인’과 ‘과정’을 살피는 것이다. 가령, “<휴거의 가치>를 알아야 ‘휴거의 삶’을 산다”는 말씀이 있지 않느냐. 이를 다른 말로 하자면, “<휴거의 가치>를 모르니, ‘휴거의 삶’을 못 산다”는 말이다. 또 다른 말로 하자면, “‘휴거의 삶’을 살려면, <휴거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인 것이다. 알려면 배워야 하고, 배운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배운 대로, 그리 살 수 있다. 그렇다면 ‘휴거의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무엇을 연구해야 하겠느냐? ‘휴거를 이룸’은 결과이다! 그 결과를 낳은 ‘원인’과 그 ‘과정’들을 보아야 한다! ‘원인’과 ‘과정’들을 두고 연구하는 것이다. 원인은 성삼위와 선생이요, 휴거를 이루는 과정은 천지창조부터 2015년 3월 16일까지다. 너희 스스로 연구해 보고, 가치를 깨달아라! 어떠한 것이 커다란 일인가 하니, 큰 자가 할수록 큰일이요, 어려운 일을 해낼수록 큰일이다. ‘휴거’를 두고도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했는지를 하나하나 따져 가며 연구하여라. ‘원인’을 알고, ‘과정’을 알아야, 그 <‘결과’의 가치>를 확실히 안다! 일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이 복잡할수록, 어려울수록, 큰 자가 그 일을 했을수록, ‘큰 가치’를 지니지 않느냐. 너희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말씀’만 보고 자신이 잘 안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다. 알기는 아나, 얕게 아는 것이다. ‘지식’으로는 아나, ‘지혜’로 깨닫지는 못한 것이다. 고로, 그 귀한 휴거를 줘도 가치를 몰라 휴거 자격을 상실하려 한다. 이성 범죄를 하는 것만이 휴거를 상실하는 것이 아니요, 휴거의 가치를 몰라서 <휴거된 자의 삶>을 살지 못함으로도 휴거를 상실한다. 이 기회를 잡고, ‘아는 차원’을 벗어나서 ‘깨닫는 차원’으로 오르길 바란다! 고로, 섭리사의 신부들 너희 모두가 ‘휴거된 자의 삶’, ‘사랑의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차원에서 머물지 말고 네 스스로 생각하고 따져 가며 연구해서 ‘깨닫는 자’가 되길 축복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자가 ‘깨닫는 자’가 되고, 깨닫는 자만이 ‘실천자’가 되니, 성삼위도 선생도 ‘실천자’에게로 하늘의 운세권을 돌린다. 왜? 행치 않는 자에게는 운을 줘도 못 써먹는다. 또한, 행한 대로 대해 주는 공의의 법이 있기에, 행하지 않은 자에게 주는 것이 합당치 않음이니라. 사랑해! 너는 세세히 따지며 정확한 것을 좋아하니 내 마음에 든다. 구체화시킨 만큼 행할 수 있는 것이다. 따져 보지 않으면 추상적이다.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다. 또 너 스스로 연구할 것을 찾고, 그에 대해 생각하며 연구하면서 나 성령을 불러. 내가 하늘의 생각을 부어 줄게. 안녕! ♥ 11월 12일 목요일 전체가 하나 되어 선생을 위해 기도하여라 작성일 : 2015. 8. 21. AM 01:00 작성자 : 박민지 (저의 수준의 기도가 아닌 하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한마디라도 선생님께 힘이 되어 드리는 기도를 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때 선생님 어머니의 기도가 얼마나 선생님께 큰 힘이 되었는지 깨닫게 되었고 어머니께서 어떠한 심정으로 기도하셨는지 깨닫고 싶다고 간구하였을 때 성령님과 함께 어머니께서 오셔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선생님 어머니의 말씀* 선생은 나의 아들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기도했어요. 오늘이, 지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극적으로 기도했어요. 오늘밖에는 지금 이 시간밖에는 기도할 수가 없는데 기도하지 못하고 끝나 버린다면 미련과 후회가 남아진다는 것을 알기에, 영영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알기에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극적으로 기도했어요. 사랑하는 사람인데 지금 이 순간밖에는 기회가 없는데 오늘 단 하루밖에 그를 위해 기도할 시간이 없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그냥 잠깐 하고 끝낼 수 있겠어요. 사랑하니까 하나라도 더 기도하고 싶은 것이잖아요. 오늘이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그러한 마음으로 매일매일 기도했어요. 사랑해서 절대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 그렇게 기도했어요. 1 대 1의 사랑이잖아요. 내가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해 줄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는 자신을 위한 기도는 하지 않고 오직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데 내가 그를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이와 같아요. 이제는 여러분이 아니면 그를 위해 기도해 줄 사람이 없는 거예요. 나는 지금도 영으로 선생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있어요. 2015_1112 목 계시말씀.hwp3 하지만 육으로 함께 뛰고 달리는 여러분의 기도가 지금은 더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잊지 말아요. 여러분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니면 선생을 위해 기도해 주는 자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 전체가 함께 선생을 위해 기도해 줘요. 마지막,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고 선생을 위해 꼭 기도해 줘요. (이후 성령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령님의 말씀* 사랑아. 이와 같이 기도해야 된다. 네 기도가 합당하여 선생 어미와 대화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기도는 숨 쉬는 호흡과도 같고, 먹는 음식과도 같다. 숨을 쉬지 않으면 얼마 못 가 살 수가 없고, 음식을 먹지 않음으로 그 한계선을 넘어 버리면 존재할 수 없다. 기도는 이와 같은 것이다. 기도는 서로 대화이며 소통의 문이다. 사랑하는 자와의 대화가 끊긴다면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멀어지다 보면 생각에서 잊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남이 되어 버린다. 그러니 항상 부르고 찾으며 대화해야 되는 것이다. 기도는 사랑이고 힘이다. 사랑하는 자와의 핵은 당연히 사랑이다. 사랑이 빠지면 핵이 빠진 것과도 같아 그 사랑은 이어 갈 수가 없고, 서로 사랑으로 힘을 주며 함께 살아가는 것인데 사랑이 빠지면 서로에게 힘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짐이 된다. 그러다 보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기도는 생명이다. 기도는 너를 살리고, 생명을 살리고, 선생을 살리고, 역사를 살린다. 섭리야. 기도하여라. 기도가 너무나 중요하다. 선생을 위해 기도하는 자가 몇이나 되느냐? 자기 자신은 기도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기준으로 수준으로 만족하고 끝내 버리는구나. 영적으로 삼위가 보았을 때 선생을 위해 극적으로 마음, 뜻, 목숨 다해 진실로, 간절함으로 기도하는 자는 극히 소수이다. 선생을 위한 기도가 너무 부족하다. 선생을 지켜 다오. 선생의 힘이 되어 다오. 선생을 위해 기도하여라. 극적으로다! 지금은 긴장을 풀고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선생을 위해 더 극적으로 기도해야 될 때이다. 때가 그렇고 역사가 그러하다. 그 어느 때보다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도가 너무나도 필요한 때이다. 소수로는 안 돼. 전체가 기도해야 된다. 섭리 전체 조건기도를 하지 않느냐. 언제나 그랬듯이 조건기도는 그냥 너희의 기도를 살리기 위한 맹목적인 목적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다. 전체가 다 같이 기도하는 조건의 기도는 그만한 뜻이 있기에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니 토 달지 말고 기도해. 생각에서 잊지 말고 기도해. 절대 하늘 뜻을 두고 기도해. 주를 잊지 말고 기도해. 너 한 사람의 기도만을 기다리는 선생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너 한 사람의 기도를... 를 위해 매일 극적으로 쉬지 않고 기도하는 선생을 그래도 너는 외면할 것이냐. 선생을 위한 기도는 섭리사 신부들 너희가 아니면 기도해 줄 자가 없다. 그 그릇을 채워 줄 자가 없다. 선생을 위한 기도의 그릇을 가득 채워야 될 터인데 부족하다. 사탄이 그것을 노린다. 너희가 지켜야 돼. 너희 아니면 선생을 지킬 자가 없다. 너희가 해야 된다. 기도의 그릇을 매일 가득가득 채워야 된다. 기도의 그릇은 너희 전체가 진실로 간절히 기도할 때 채워질 것이다. 사랑의 기도를 하여라. 그냥 매일 형식과 외식으로 의무적으로 하는 기도로는 채워질 수가 없고 하늘 앞에 상달되지도 않는다. 하나하나 세밀하게 기도해. 섬세하게 기도해. 나 성령이 도와줄 터이니 나에게 간구하며 기도해. 내가 알려 줄게. 내가 도와줄게. 너희 혼자서는 힘들다. 사랑아. 선생을 위한 기도가 ‘핵’임을 잊지 말아라. 너희의 기도로 모든 운명이 좌우됨을 잊지 말아라. 실상 선생을 위한 기도가 너를 위한 기도임을 잊지 말아라. 연결된 것은 하나이다. 기억해. 너희가 만족하는 기도가 아닌 하늘이 만족하는 기도다. 너희의 수준이 아닌 하늘의 수준으로 하는 기도다. 육적인 기도가 아닌 영적인 기도다. 형식적으로 주문을 외우듯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닌 진실함과 간절함으로 깊이 극적으로 그를 생각하며 하는 기도이다. 사랑하는 자와의 마지막 대화, 사랑하는 자에게 해 주는 마지막 기도라고 생각해. 마지막은 무서운 것이다. 정말 무서워. 때가 지나면 다시는 오지 않는다. 때를 놓치면 후에는 후회해도 소용없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지금 이때를 절대 놓치지 않길 바란다. 사랑한다. 사랑해서 말씀한 천모 성령이다. ♥ 11월 12일 목요일 오직 사랑으로 700선 휴거를 이루자 작성일 : 2015. 9. 15. 작성자 : 정빛별 (지금 하나님께서 가장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말씀을 해 주시고 싶으신지 여쭤 보았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 지금은 휴거된 신부들이 탈락하지 않고 각자의 차원을 높이며 휴거 700선이 되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700선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사도의 역사는 전체가 다 일으키는 것이다. 몇 명만 일으켜서 되겠느냐. 휴거된 섭리사 신부 모두가 700선으로 올라와 역사를 불같이 이루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섭리사는 모두 한 지체이니 각 지체 마디마디 하나하나가 모두 다 각자의 위치에서 빛을 발하며 700선으로 오르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 2015_1112 목 계시말씀.hwp4 지금 휴거 700선으로 온전하게 자신을 끌어올려라. 사랑하여 창조했으니 사랑하여 나와 영원히 같이 살자. 육으로는 같이 오랫동안 함께하지 못하니 영으로 나와 영원히 함께하자. 너를 사랑하여 너와 천년만년 영원토록 함께 살고 싶어 너를 창조한 나 여호와니라. 많은 자들을 휴거시키는 것도 너무 중요하고 사랑하는 섭리사 신부들이 700선으로 온전하게 휴거 차원을 높이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구나. 진정으로 내가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이 너희들의 700선 휴거이다. 그래야 너희가 온전하게 나의 몸이 되어 많은 자들을 휴거시킬 수 있다. 그 첫 번째 단계가 700선 휴거이다. 변함없이 영원하게 사랑하는 단계가 700선이다. 오직 사랑으로 완성된다.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맡은 사명, 임무를 행하면서 주와 같이 호흡하고 주와 함께 행하면서 이루는 것이다. 차원을 계속 높이면서 행하는 것이다. 휴거의 차원을 높이며 행함의 차원을 높이며 삶의 차원을 높이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사탄들의 계략을 이길 수 있는 무기가 바로 생각에 대한 말씀이다. 이것이 답이 되는 말씀이니 잡생각을 무찌르고 혼과 영을 사용하여 휴거의 차원을 높이자. 700선으로 창조 목적의 완성을 이루자. 휴거의 삶을 같이 살면서 누리고 이루며 차원을 높이는 것이다. 그것을 행하며 차원을 높이는 자들이 적다. (같이 사는 시대가 무엇인가요?) 생각으로 같이 사는 것이다. 생각과 행함으로 같이 사는 것이다. 진실로 생각으로 혼과 영으로 같이 사는 것이다. 아직 그것이 실제가 아닌 이론이 되어 있다. 맛있는 음식이라도 눈앞에 그림의 떡처럼 보기만 한다면 그 음식의 맛을 느낄 수가 있겠느냐. 아무리 맛있다고 들어도 음식의 맛을 못 느끼니 실감을 하겠느냐. 실제로 본인이 느끼고 먹어 봐야 한다. 그래서 깨닫고 체험해야 휴거를 실감하며 같이 살게 되고 변화되고 좋아하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 사도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제 휴거 700선이 된 자들이 생겨나고 있으며 그들과 함께 700선의 역사를 계속 이룰 것이다. 너희 단 한 명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내 사랑은 변함이 없으며 영원하다. 차원을 더 높여라. 아무도 범접할 수 없고 사탄이 건드리지 못하는 단계로 올라가라. 지금의 차원으로는 안 된다. 700선이 된 자들이 더 많아져서 계속 잡아 주고 이끌어 주며 서로서로 협력하여 역사를 이루자. 선생을 얼마나 깨닫고 얼마나 사랑하느냐가 핵심이다 조건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선생에게 줄 수 있느냐.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오직 사랑 하나 보고 선생을 끝까지 따를 수 있느냐. 사탄들이 아무리 공격하더라도 결국은 선생을 깨닫지 못하고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했기에 섭리사를 등지고 떠난 것이 아니겠느냐. 대가 없는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 변함없는 사랑, 오직 주가 바라고 원하는 것만 주는 사랑, 말이 아닌 실제 행동 사랑이다. 진정 기도하여 네가 없고 오직 주만 보이는 사랑, 주의 사랑을 절대 의심치 않으며 100% 믿고 따르는 사랑, 사탄들이 계속 방해하고 의심케 만들고 유혹하더라도 절대 넘어가지 않으며 끝까지 주만 따르는 사랑, 사랑하니 오직 주가 원하는 것만 하고 네가 해 주고 싶고 네가 하고 싶은 사랑의 방식을 버리는 사랑이다. 너의 식대로 주를 사랑한다 하며 주를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주는 그런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 아니다. 주의 사랑을 절대 믿고 먼저 사랑을 주고 먼저 사랑하는 먼저 사랑이다. 주의 사랑은 언제나 변함없으며 늘 한결같고 영원하다. 이것을 네가 절대 믿고 흔들리지 말아라. 사랑의 차원이 더욱 높아져야 한다. 그래야 완전한 휴거 700선에 오르게 된다. 말씀은 곧 사랑이니 절대 말씀을 믿고 지키며 행하고 기도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작은 것일지라도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진정으로 주를 사랑하는 자이다. 주를 진정 보고 싶어 혼으로 영으로 주를 만나 주와 대화하는 것이 진정한 주 사랑이다. 주를 진정 사랑하여 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진정한 주 사랑이다. 진정 너는 지금 주를 사랑하여 이 모든 것을 행하고 있느냐? 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생각으로 행해야 한다. 사랑이 식었구나. 주를 향한 사랑이 식으니 모든 것을 의무감으로 느끼고 형식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진정으로 주를 사랑하여 주 사랑으로 행하자. 주를 사랑하여 주를 만나고자 간절히 기도하며 행하는 섭리사가 되자. 완벽한 주 사랑으로 700선으로 휴거되자. ♥ 11월 12일 목요일 만물 계시 - 신부 대표의 길을 따라 올라가라. 목적을 두고 흔들리지 마라. 2015년 11월 12일 목요일 새벽 계시말씀 작성일 : 2015. 10. 11. PM 01:00, 07:00 작성자 : 정랑금 (교회에서 월명동 나들이를 갔습니다. 잔디밭에서 영광을 돌리고, 치타솔로 기도하러 갔습니다. 가는 길에 하늘에 있는 숫자 ‘2’ 모양의 구름을 보았습니다. 치타솔에 도착해서 기도하는데 매미가 제 손등에 올랐고, 너무 놀란 나머지 그 매미를 바닥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매미는 치타솔을 타고 계속 올라갔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계시임이 틀림없다고 느껴졌으나 바로 월명동을 떠나야 해서 바로 여쭈지 못했고, 돌아와서 여쭈니 성령님께서 감동으로 깨우쳐 주셨습니다.) *성령님의 말씀* 올라라. 나는 것이 아니라 나무라는 발판을 밟고 올라갔다. 길을 만들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시대 표상, 신부 표상의 길을 따라 올라가는 것이다. 목적지까지의 길이 있으니 거침없이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오르는 것이다. 목적을 두고 흔들리지 마라. 깊이 생각하는 것이 깨달음의 첫 단계이다. 깊이 생각하며 알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자기 머리로는 못 깨닫는다. 2015_1112 목 계시말씀.hwp5 그냥 짜증 내고 끝낼 일일 수도 있었다. 왜 다시 물어보았느냐? 만물로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알아야 다음 것도 구한다. 더 차원을 높이는 것, 아는 것에서 다음 것 알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깨달으려니 너무 어려웠어요.) 즉각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즉시 알아들어야 되는데 나중에 다시 물었기 때문이다. 그때 물어야 바로 알려 준다. 네가 다음에 물어봐야지 하고 미뤘기 때문이다. 만사의 모든 일이 그러하다. 미루지 마라. 미루면 미뤄진 만큼 힘들다. 제때 하는 것이 제일 쉽다. (그때 사람들 때문에 너무 집중이 안 되어 나중에 여쭐까 하다가 미루는 것이 될까 봐 고민하고 있으니 성령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핵심을 말했으니 다음에 더 파서 물어라. (다른 때는 어떤 상황 속에도 집중하라고 하시는데, 핵의 중함을 알려 주시는 건가요?) 핵을 차지하면 다 차지한 것이다. 깨달음의 핵을 차지했으면 연결 지어 깨닫는 것은 쉽다. 알리려는 것의 핵을 알았으니 연결 지으면 쭉 깨달아진다. (오후 7시 기도 때 다시 여쭈었습니다.) 잘 적어라. 처음 숫자 ‘2’ 모양의 구름은 두 가지를 깨닫게 하려는 계시였다. 그리고 네가 기도할 때 시원한 바람으로 내가 왔음을 알렸다. 만물로 깨달아야 할 것을 보인 것이다. 아까 오르라고 했고 흔들리지 말라고 했지? (네. 매미가 제 손등에 올라와서 바닥에 던졌는데 곧장 치타솔을 올랐어요.) 치타솔 오르는 모습을 통해 계속 올라가라고 보였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일이 있어도 오르는 목적 하나를 두고 멈추지 말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매미가 치타솔을 올랐지? 아까 얘기한 것과 같이 시대 표상과 신부 표상이 간 길을 오르는 것이다. 시대 표상이 기르고 키운 신부 표상이고, 그 상징이 치타솔 아니더냐? 신부 표상을 따라 올라가라는 것이다. 치타솔에는 신부 표상의 사연, 행함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 사연, 행함을 따라가는 것이다. 시대 대표는 하나님을 모시는 길을 닦은 자이고, 신부 대표는 그 길을 따르며 시대 대표를 모시는 길을 또 닦은 것이다. 네가 가야 할 길은 이미 다 닦여 있다. 너만 걸어 올라가면 된다는 것이다. 날갯짓하며 없는 길을 날아오를 필요 없이 걸으면 된다. 누군가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오르기 힘드냐. 길이 있는데 그것 조금 견디면 되는데 왜 그리 힘들어하느냐. 끝도 알고 가지 않느냐. 보고 따라 하면 되는데 왜 어려워하느냐. 계속 보고 따라 해 보아라. 그 길을 따라 올라가 보아라. 보이지 않는 것은 힘이 든다. 그래서 지금 보이는 성자의 육도 있고, 그를 제대로 모신 자도 있다. 보여 주고 있고, 보고 있다. 그대로 하면 되는데 왜 어려워만 하느냐. 제일 쉬운 길이다. 자기 것을 버리면 그 길대로만 가니 쉽다. 그런데 자기 것을 안 버리면 자기가 길을 만들려고 한다. 자기 길을 만드는 것이 훨씬 힘들다. 자기 마음대로이니 편하다 느낄지 몰라도, 만족할지 몰라도 끝이 보이지 않아서 결국 절망이다. 끝이 확실한 길을 걸어라. 계속 올라라. 끝은 위에 있다. 완전한 끝을 보아라. 끝을 알고 가는 축복, 그 길을 따라가면 되는 축복이 너에게 주어졌다. 걷기 힘들지. 그렇다고 계속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어디론가 가야 한다. 그렇다면 오르기 힘들어도 확실한 끝이 있는 곳을 오르는 게 낫지 않겠느냐. 꼭 정상에 올라라. 정상이 정상이라는 것, 너무나 맞지. 하늘이 봤을 때 정상이 정상인 것이다. 정상에 있어야 정상적인 것을 얻는다. 우리의 목적은 네가 우리와 함께 사는 것이니 그게 정상이라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정상에 올라야 정상대로 산다는 것이다. 그러니 거침없이 올라라. 길은 있고 오르기만 하면 된다. 오르는 도중에 힘이 들면 쉬기도 하겠지만 벗어나지 마라. 이 길이 정상이고 온전하며 완전하다. 쭉 일직선으로 올라가고 있던 매미와 같이 쭉 올라라. 매미가 나무를 오르는 것이 당연하듯, 택함 받은 네가 치타의 길을 가는 것은 당연하다. 정상의 길을 포기하지 말고 쭉 올라라. (엄청나요. 그러면 포기하지 말고 목적대로 행하라고 말씀해 주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르려는 목적 하나가 있으니 바닥에 내팽개쳐져도 결단코 오르는 매미를 보았지? 바닥에 있지 않고 계속 걸어간다. 목적이 있으니 그러하다. 목적을 두고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목적이 있으면 어떤 상황이 와도 포기하지 않는다. 내던져져도 한다는 것이다. 이룰 것이 있으니 그런 것이다. 네가 이룰 것이 무엇이냐. 완성이고 또 다른 완성을 낳는 것이다. 완성에, 완성에, 완성을 낳는 것이다. 네가 완성되면 다른 이도 완성시키는 것이다. 완성의 목적이 있지 않느냐. 목적을 뚜렷이 해라. 흐릿하게 하지 마라. 흐릿하면 내던져지고 다른 것을 찾는다. 목적을 두고 흔들리지 않으려면 목적을 뚜렷하게 하기다. 뚜렷해야 뚜렷하게 행한다. 목적이 확실해야 이룰 이유가 확실하니 어떤 상황이든 포기할 수가 없다. 목적을 뚜렷이 하려면 가치를 알아라. 귀하게 생각해야 그 목적을 굽히지 않는다. 목적이 강해서 절대 어떠한 것에도 흔들리지 않게 해라. 완성의 목적을 강하게 잡아라. 그 목적을 함께 누릴 자를 강하게 잡아라. 돛의 기둥을 확실히 세우고 돛을 달아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방향이 목적이다. 그 방향키를 확실히 움켜쥐고 가라. 돛을 달면 돛이 그 방향을 다 맞추어 준다. 그래서 돛을 달면 해결된다는 것이다. 목적을 확실히 하는 것, 같이 누릴 자와 일체 되는 것이다. 절대 하나 되면, 목적도 강해지니 뚜렷해진다. 또렷하게 그 목적만이 보이니 환경이 대수롭지 않게 된다. 2015_1112 목 계시말씀.hwp6 진짜 모든 근본의 답은 삼위와 선생이다. 모든 문제의 답이라고 그리 말해도 관념으로 안다. 그러니 문제가 생기고 힘든 것이다. 진정 강해지려면, 또 쉽게 가려면 이것을 정말 깨달아야 한다. 또 일체가 답인가 하지 마라. 일체 된 자는 이게 답임을 확실히 안다. 관념적으로 일체 된 자는 그 길을 벗어날 수 있고, 흐린 목적에 포기할 수 있다. 절대 길에서 벗어나지도 말고 목적이 흔들리지도 마라. 가장 쉽고 완벽하고 안전한 길이다. 진짜 깨닫는 자는 이 말의 의미를 알 것이다. 선생을 지키고 싶다면 다른 이를 지키고, 다른 이를 지키려면 너를 지키고, 너를 지키려면 깨닫기다. 만물이 너무 중하다. 자연성전이 그리 위대한 이유 중 하나는 만물로 이루어져 있으니 모든 공간이 삼위와의 소통 공간이다. 더욱 만물로 역사한다. 늘 묻고 다음부턴 즉시 물어라. 사랑한다. 하늘에 너의 생각을 꽂아 계시를 놓치지 마라. 늘 물어라. 묻는 것이 관심이다. 관심은 사랑이다. 물어보는 것은 “사랑해요.”라는 말이다. 왜? 내게 답을 묻고 내게 의지하기 때문이다. 늘 대화, 의논이 사랑이다. 사랑하니 너의 물음을 늘 기다린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