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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5.11.13 (금)

금 계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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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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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_1113 금 계시말씀.hwp1 2015년 11월 계시말씀 ♥ 11월 13일 금요일 1. ‘같이 산다는 것’에 대한 하늘의 개념 2. ‘사랑’은 서로 다른 둘을 같은 것 하나로 만든다. 작성일 : 2015. 8. 31. PM 01:09~01:53 작성자 : 주수신 (주일말씀을 연구하는 과정 가운데에 ‘같이 산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새로이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늘 ‘같이 살자’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주일말씀을 통해서 이에 대한 개념 정리를 새로이, 확실히 하게 되었습니다. 깨닫고 나니, 지금껏 제 생각이 참으로 차원이 낮았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낮 1시 기도 시간에 성령님께 더 세세히 알려 주시길 구했습니다.) *성령님의 말씀* 사랑아, ‘같이 산다’라는 말을 육에 묶인 개념으로만 생각하지 말아라! 살결이 닿도록 육으로 가까이 있어야만 ‘같이 있는 것’이 아니듯, 육으로 같은 주거지 내에 속해야만 ‘같이 사는 것’이 아니다. ‘같이 사는 것’에 대한 너희의 개념과 하늘의 개념은 다르다. 너희의 개념대로 ‘같이 사는 것’에 대해서 하늘과는 다른 인식을 지닌다면, 너희는 절대로, 성삼위와 하나님이 보낸 자와는 같이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은 너에게 ‘같이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세세하게 알려 줄 테니까, 하늘의 입장에서 너희에게 ‘같이 살자!’고 한 말이 어떠한 것을 행하라는 말인지를 배우길 바란다. 고로, 어떻게 행하는 것을 보고 ‘같이 사는 자’라고 칭하는지 또한 제대로 알길 바란다. ‘알아야만’ 행할 수 있다! 먼저는 ‘개념’을 확실히 알아야 하고, 확실히 알게 된 개념을 가지고 어떠한 것을 행해야 ‘개념의 실체화’를 이루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 ‘이론’으로 두는 것과 ‘실상’으로 만드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이론상으로만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것도 실천함으로 실체를 만들려고 한다면, 그 과정 가운데에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즉, ‘현실화하는 과정 가운데의 문제’인 것이다. 이 문제는 너희의 상황과 여건대로, 개성대로, 제각각으로 발생할 것이다. 고로, 문제 해결책은 수십, 수백, 수천 갈래의 길과도 같다! 문제의 가짓수도 많고 해결책의 수도 많으니 복잡한 문제요, 복잡한 해결책이라고 하지만, ‘개념’이라는 <핵>이 같으니, 개념을 온전히 하고 이성적으로 사고하면 누구든지 자신의 문제에 적용시켜서 답을 찾을 수 있다! 하늘의 ‘기본 개념’은 ‘핵’이요, <하늘의 진리>이다. 자, 사랑하면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을 나타내야 한다. 하나하나의 행동들이 모여서 ‘사랑의 삶’을 낳게 된다. ‘삶’이란, 말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의 삶’이란, 말 그대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너와 공식적으로 애인 관계에 있는 자가 있다. 그에게 말로는 늘 “내가 너를 정말 사랑해!” 한다. 그러나 너는 그 말고도 다른 자들을 여럿 만나러 다닌다. 그 때문에 너와 애인 관계에 있는 자에게는 실상 만날 시간도 내주지 않는다. 한 가지에 전적으로 행치 않으니, 애인 관계에 있는 자로부터는 기쁨도, 재미도 없다. 그리하면 그 남자는, 네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겠느냐. 네가 말로만 사랑하지, 사랑의 행동을 보이지 않고, 사랑의 삶을 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행동’은 ‘생각’의 전개체이다. ‘생각’은 ‘마음’과 ‘정신’의 전개체이다. 네 행동을 보고 남자는 네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에 확신을 가질 것이다. 확신을 가진 순간부터 ‘유익과 해’를 따질 것이다. 이후, ‘판단’을 내리고, 판단에 근거한 ‘선택’을 통해서 자신의 길을 찾아갈 것이다. 그같이 서서히 멀어져서는 ‘공식적인 애인 관계’도 끝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예를 또 들어 줄게. ‘운동의 삶’이란, 운동을 하며 살아가는 삶이다. 네가 운동을 좋아해서 매일매일 해 왔다고 한들, 그 행함을 지속시키지 못한다면 그때부터 운동의 삶은 끊어지게 되는 것이다! 즉, ‘지금껏 해 온 운동을 통해 쌓은 것들’이 그 순간부터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열심히 운동해 우락부락한 근육을 키워 놓은 자를 보아라. 지금껏 열심히 행해 왔다고 해서 앞으로 행치 않더라도 그 근육들이 영원토록 지속되겠느냐? 근육을 키우는 운동을 하지 않는 순간부터 그 근육들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조금씩 줄어드는 상황을 접하고도 운동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운동을 처음 시작한 때와 같이 운동으로 키운 근육들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같이 어떠한 것을 ‘존재’시키기 위해서는 ‘존재의 삶’을 살아 주어야 한다. ‘존재의 삶’을 살지 않는 그 순간부터 ‘존재’는 ‘존재하지 않음’의 길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사랑아, 지구상 73억 명의 사람들을 보아라. 모두가 ‘개성’으로 존재하는 자들이다.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정신도 다르다. 지금껏 행해 온 것도 다르고, 지금 하고 있는 것도 다르다. 고로, 앞으로 형성될 생각, 행실, 삶 또한 다른 것이다! 너와 다른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너와 같은 마음과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끄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것이 하나 있다! 서로 다른 두 마음을 하나로 만들고, 너무도 다른 두 생각을 하나로 만드는 길이 있다.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두 마음과 두 생각을 하나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사랑>은 너무도 다른 두 존재들을 두고 그들이 같은 것을 원하고 바라며 같은 것을 행해 가도록 만든다. ‘사랑’은 둘을 하나로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묘약이다! 두 생각을 ‘한 가지의 생각’으로 만들고, 두 마음을 ‘한 마음’으로 만든다. 2015_1113 금 계시말씀.hwp2 두 행동을 ‘한 행동’으로 만들고, 두 삶을 ‘한 가지의 삶’으로 만든다. 서로 다른 두 가지를 바라보고 있는 자들이 ‘공통된 것’을 바라보도록 만든다. 같은 것을 바라고, 같은 것을 원하도록 만든다. 고로, 같은 것을 행해서 같이 특정한 것을 두고 성취하도록 이끈다. ‘사랑’의 힘이 이리도 크다! <하늘과 같이 사는 것>에 대해서 알려면, 이러한 ‘사랑’의 개념과 성질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나 성령과 너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너와 나는 한 개의 뇌를 가진 두 몸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뇌를 가지고 있고, 너는 너의 뇌를 가지고 있다. 나 성령과 너는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다. 너와 내가 다른 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너와 내가 다른 상황 속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보낸 자와 너를 놓고 보아도 동일하다. 너는 선생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고,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와 너는 살아 온 배경이 전혀 다르다. 그와 너는 사물들을 보는 시선이 전혀 다르다. 지금껏 겪어 온 것이 다르니 사람, 사물, 상황에 대한 ‘접근법과 판단법’ 또한 전혀 다른 것이다. 그와 너를 비교해 본다면, 그는 모든 것에 있어서 월등히 뛰어나다. 네가 따라올 수도 없도록 말이다. 선생은 70년간 성삼위를 사랑으로 극진히 모시며 온 자이다. 너와의 수준 차이도 하늘과 땅이요, 도를 깨닫는 것에 있어서도 하늘과 땅의 차이인 것이다. 선생과 네가 그러할진대, 하물며 너와 전능자 성삼위의 사이는 어떠하겠느냐. 그런데 이와 같은 ‘수준의 차이’를 극복해서 하나 될 수 있는 길이 딱 한 길이 있다. 바로, ‘사랑의 길’이다!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이 너와 내가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고,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 어떠한 것들을 놓고서는 절대 불가능하나, ‘사랑’에 대해서는 그리될 수 있다! ‘사랑’이 최고다! 차이를 극복하고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다! <사랑의 작용>이 있다면, 너와 내가, 그리고 너와 선생이 서로 같은 것을 원하고 바랄 수 있다. 바라는 것을 놓고 같이 행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같이 사는 것’이다! 구원과 휴거를 놓고도 그러하다. 성삼위와 구원자는 너의 ‘구원’과 ‘휴거’를 지극히도 원하고 바란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고로, 너의 구원과 휴거를 위해 행한다. 그러나 ‘사랑’은 홀로는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상대가 되는 자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랑의 뜻’을 이룬다. 한쪽만 애타게 사랑하며 사랑의 뜻을 이루고자 100% 행하는 것은 아무런 결실도 낳지 못한다. 그 무엇을 행하더라도 그저 ‘무’로 끝나고 만다. ‘뜻’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말이다. 너 또한, 너의 구원과 휴거를 바라고 원해야 한다! 즉, 구원과 휴거가 너의 소망이 되고, 희망이 되어야 한다. ‘사랑’의 기반 위에 소원해야 한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이론’으로만 접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만들어 네 손에 넣기 위해서 행해야 한다. 남녀가 사랑의 결과체인 아이를 얻기 위해서는 ‘사랑의 작동’을 해야 하듯, 성삼위와의 사랑의 열매인 ‘구원과 휴거’를 거두기 위해서는 ‘구원과 휴거의 작동’을 해야 한다! 즉, 서로 다른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있던 하늘과 땅이 ‘사랑’으로 마음과 생각을 같게 만들어서 ‘사랑의 결실’인 ‘구원과 휴거’를 서로 원하고 원하는 뜻을 이루기 위해서 같은 행실을 하는 것이 바로 하늘과의 ‘사랑의 작동’이요, ‘구원과 휴거의 작동’이요, ‘하늘과 같이 사는 것’이라는 말이다! ‘생각과 마음’을 같게 하는 것이 곧, <‘심정’을 맞추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만 하는 자는 심정이 맞지 않다. ‘사랑’함으로 하늘과는 다른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잘라 내고 성삼위와 같은 생각과 마음을 가짐으로 마음 일체, 생각 일체시켜라! 마음이 같고 생각이 같으면 바라는 것도, 원하는 것도 같아지게 된다. 바라는 것과 원하는 것이 같아지면 ‘같은 뜻’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즉, ‘바람과 원함이 이루어지도록 행하는 뜻’이다. 뜻이 같으니, 같은 뜻을 이루기 위해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 행동이 쌓여서 삶이 되니, ‘같은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 삶인즉, ‘사랑’으로부터 출발한 삶이니, ‘사랑의 삶’인 것이다! 성삼위와의 사랑의 결실체는 ‘구원과 휴거’이니, 곧, ‘구원과 휴거의 삶’인 것이다. 하늘과 같은 마음, 생각, 뜻을 가지고 행하니, 즉, ‘하늘과 같이 사는 삶’인 것이다. 사랑아, 성삼위와 같이 살아라! 시대 구원자와 같이 살아라! 나 성령과 같이 살자! 더 ‘가까이’ 같이 살자. 더 ‘딱 붙어서’ 같이 살자. 나와 일체 된 삶을 살자! 하늘이 말하는 ‘같이 사는 것’은 땅에서 말하는 것과는 비교조차도 안 된다. 육의 살결이 붙은 것이 더 가까우냐, 아니면 마음과 생각, 뜻, 바람과 원하는 것, 그리고 행함이 같은 것이 더 가까우냐. 차원이 낮은 개념에 갇혀서 그것만을 바라보지 말아라. 육으로 같이 살듯 네 눈에 성삼위와 선생의 육이 보이며 한 공간에 같이 있는 것만을 꿈꾸지 말아라. ‘같이 사는 것’에 대해서 차원 높은 개념을 알려 주었으니, 하늘의 입장에서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아라. 하늘의 뜻을 알고, 두 육신이 붙어 있는 것보다 더 가까이 붙어서 살자! 붙는 단계를 넘어서 <연결되어 사는 단계>이다. 즉, ‘겉’뿐만 아니라, <‘속’까지도 일체 된 단계>이다! 사랑해. 나와 같이 사니, 네가 너무도 귀하다. 나와 같은 마음, 생각을 가지고 같은 것을 바라니 네가 너무도 귀하다. 같은 뜻을 가지고 나 성령과 같은 행실을 하니 네가 진정으로 귀하다! 오늘도 너에게 내 생각을 쏟아부었다! 한 부분에 있어서 나 성령의 생각에 대해서 알게 되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와 같은 뇌를 가진 것과도 같은 것이다. 네가 나와는 다른 뇌를 가지고 있으니 마음도, 생각도 다르지만, 너와 같은 마음, 생각을 가지고 싶어서 내 생각과 마음을 전했다. 안녕. 2015_1113 금 계시말씀.hwp3 ♥ 11월 13일 금요일 구원자의 돛을 뇌 속에 강하게 꽂아라. 세밀하게 보고 깊이 생각하여 생각의 배를 흠이 없게 무장하여 강한 성령의 바람이 불면 너라는 인생의 배가 힘껏 전진할 수 있게 해라. 작성일 : 2015. 9. 16. PM 4:00~ 작성자 : 강명지 (설교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선생님께서 주신 말씀의 분량이 엄청나고 이 많은 말씀을 주신 선생님의 수고를 생각하며 나는 왜 날고 기는 삶을 살지 못하는지 한심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성령님께 “성령님, 선생님께서 주신 말씀들이 정말 엄청납니다. 그런데 왜 저는 더 날고 기며 위대하게 살지 못하는 걸까요. 생각이 깊어집니다.” 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정말 날고 기길 원하느냐?” 물으셨고 저는 진심으로 “네.”라고 답했습니다. 이어 말씀해 주신 것을 기록했습니다.) *성령님의 말씀* 삼위일체와 주께 생각을 맞춰 집중해라. 먼저는 말씀에 집중해야 한다. 집중하면, 즉시로 내가 너희에게 행할 일을 가르칠 것이다. 사람에게 같은 시간이 주어져도 무엇을 우선하여 행하느냐에 따라 일의 결과, 승패가 좌우된다. 고로, 네가 매 순간마다 삼위일체를 중심하고 주의 말씀을 중심하여 무엇을 행할지 잘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너라는 배에 주의 돛을 ‘강하게’ 꽂아 줄 방법이다. 너라는 배가 전진할 수 있도록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도 너라는 배에 주의 돛, 곧, <말씀을 중심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정확한 목적이 꽂혀 있지 않으면 돛이 헐거워져서 전진하기가 어렵고 그나마 꽂은 돛이 이리저리 흔들리게 된다. 고로 우선적으로 주의 돛을 꽂되 <무엇을 우선적으로 행해야 하는가>라는 행함의 정확한 방향과 목적을 말씀 속에서 찾아 매 순간마다 나 성령에게 묻고 네게 해당되는 행할 것을 찾는 것이다. 너라는 인생의 배가 나아가야 할 전체적인 방향, 곧 나침반이 되는 인생 목적의 방향을 잡고 있어도 매 순간마다 풍랑을 헤쳐 나갈 때에 주의 돛을 강하게 꽂는 것, 즉,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가, 무엇을 우선적으로 할 것인가, 얼마나 제때 하는가에 따라 일의 결과, 승패, 전진하는 속도가 달라진다. 더 세밀하게 생각해 보자. 세밀하게 생각해 봐야 정확하게 알게 된다. 확인하여 깨닫게 된다. 세밀하게 생각해 보려면 집중해야 한다. 한 가지 목적, 한 가지 생각에 너의 생각을 꽂고 집중하여 자세히 보기다. 곧 자세히 세밀하게 생각하기다. 그래야 실수가 없다. 완전하게 할 수 있다. 생각을 깊이 하는 과정은 더디 행하는 듯 보여도 결국엔 나 성령과 일체 되어 가는 과정이니 일체 된 후에는 남들보다 더 빠르고 완전하게 행할 수 있다. 이것이 너의 주관을 버리고 나의 뜻대로 하는 것이다. 말씀을 대충 어설프게 깨닫고 아는 것은 언젠가는 파선하는 배와 같이 불안하다. 배의 틀을 짜고 만들 때에, 어설프게 만드니 조금만 강한 풍랑이 와서 배에 부딪히면 배는 금세 파선되고 깨지고 배 안으로 물이 새어 들어와 표류하거나 가라앉게 된다. 곧 목숨, 생명을 잃는 일이 생기게 된다. 그러니 세밀하게 깊이 말씀을 보고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느냐. <자기의 혼, 영>으로 주를 깨달아야 성삼위가 인정한다고 하였다. 기억하지? (아멘. 네, 정확히 기억합니다.) 너도 계시를 받을 때에 받아야 한다. 깊이 생각하고 확실히 받아야 정확하게 남긴 글이 되어 증거의 사명을 하게 된다. 주를 증거함이요, 역사를 증거함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말씀을 세밀히 봐야 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주의 말씀을 깊이 보고, 깊이 생각하기! 더디 갈지라도, 더디 행하는 듯 보일지라도 나 성령과 생각으로 일체 되는 방법이다. 너희가 위대한 삼위일체의 말씀을 들어 놓고도 위대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바로, 너희 생각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생각>이라는 배에 주의 돛, 즉 주의 말씀을 깊이 꽂지 못하였기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도 돛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며 마음만 뜨겁다 끝나는 것이다. <실천>이라는 강한 행위를 통해 주의 돛을 뇌 속에 깊이 꽂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성령의 바람이 강하게 불어올 때 배는 정확한 중심을 잡고 강한 바람으로 힘차게 전진하게 된다. 바로 목적지를 향해서 말이다. 말씀을 왜 깊이 봐야 하는지 알겠느냐? 말씀을 어설프게 읽으면 안 된다. 너희 선생이 직접 말씀을 전하고 몸으로 보여 주지 못하기에 글로써 삼위일체와 주의 심정과 뜻을 담아 정확히 전달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고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니 혼과 영으로 섭리 신부들 모두를 만나 주며 대화하며 깨우쳐 주고 감동을 주고자 그 혼과 영이 부지런히 너희를 찾아다니도록 매일 기도하고 있다. 구원자는 이 같은 몸부림과 노력으로 너희들을 최고의 휴거 차원에 이르도록 이끌고 있는데 너희의 노력과 행함은 그에 비해 작고 미약하다. 사랑하는 신부들아, 너희는 구원자의 심정을 알고 그의 몸부림을 알고 그를 사랑하니 그가 삼위일체께 받은 말씀을 귀하게 여기며 땅에 떨어져 헛되이 밟히지 않도록 너희의 뇌 속에, 가슴속에 받아 꼭 실천하여라. 행해야, 구원자의 권세와 능력도 더욱 크게 깨닫게 된다. 그의 사랑을 더욱 크게 느끼며 깊이 깨닫게 된다. 오늘도 감동을 주며 깨우치는 나 성령이다. 사랑한다. 2015_1113 금 계시말씀.hwp4 ♥ 11월 13일 금요일 세상 문화를 통해 들어오는 사탄 작성일 : 2015. 9. 5. PM 01:30~03:30 작성자 : 김상미 (지난주에 해야 할 일이 하기 싫어서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검색하고 영어 토크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잠깐 쉬려고 했지만 더 보게 되었고, 이후 극심한 두통이 찾아왔습니다. 할 일을 못 할 정도로 아팠습니다. 그래서 눈물로 찬양을 하니 잊고 있었던 주님이 강하게 생각나며 나았습니다. 또 하루는 예전에 들었던 세상 노래 한 곡이 듣고 싶었습니다. 선정적인 가사가 아니니 괜찮을 것 같아서 다운받아 들으면서 교회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그랬더니 극심한 두통이 와서 너무 괴로웠습니다. 다음 날 새벽기도 때까지 아파서 기도도 깊이 못 했습니다. 더위를 먹어서 그런가? 했는데 “세상 문화를 통해 악신이 들어와 아픈 것이다. 네가 전에는 못 느꼈지만 이제는 뇌가 예민하게 반응해서 아프게 된 것이다” 하셨습니다. 이를 두고 기도했을 때 주신 말씀입니다.) *성령님과 주님의 말씀* 세상 문화는 사탄이 쓰는 핵폭탄 같은 무기이다. 세상 문화를 이용하면 길을 걷던 수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뺏을 수 있고, 결국 생각도 뺏을 수 있다. 세상 문화를 보는 게 지옥에 갈 정도로 큰일인가 하고 생각하느냐. 그것은 마치 이성과 마주 보고 있다고 타락할 것인가? 그것과 같은 이야기다. 보고 있으면 생각이 섞이고 결국 마음이 가고 몸도 간다. 죽는 길이다. 사망길이다. 네 뇌가 몇 시간 세상 문화에 노출되었을 때 고통받았던 것이 이제는 몇 분만 세상 문화가 들어와도 상당히 긴 시간 두통이 올 정도로 영향을 주었다. 육신이 아픈 것 같지만 실상은 사탄이 영적으로 영향을 주어서 육이 아프게 되었다. 사탄에게 영과 혼이 당하면 영체와 혼체가 연결된 육도 영향받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얼마나 영적으로 예민하느냐에 따라 반응속도가 다르다. 그래서 세상 문화에 찌들어 있어도 육이 문제의식도 없고, 느끼지 못하는 것은 영향을 안 받아서가 아니라 영적 변화에 둔하여 못 느끼는 것이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영적 실상은 사탄들에게 지옥 고통을 받고 있음을 알아라. 사랑아, 네 영은 순수한 존재다. 육적으로 보기에는 괜찮을 것 같지만 한 곡의 세상 음악도 네 영에게는 고통이다. 그 노래를 통해 사탄이 생각을 뺏기 때문이다. 음악을 통해 잠재의식에 사탄의 생각을 넣고 가사의 반복으로 사탄의 사상을 인식시킨다. 육이 죄지으면 영은 당해야 한다. 그러니 세상 문화에 대한 거부반응으로 두통이 온 것이다. 휴거된 자들의 영은 천국 황금성에 있지만 아직 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역시 육의 생각을 틈타는 사탄의 생각과 사상은 치명적이다. 생각이 흐리면 절대 안 된다. 말씀을 통해 부어 주시는 총명과 지혜의 신을 받아 사탄과 인사탄들의 말을 불신하고 쪼개 내야 한다. 휴거되었어도 사탄에게 당하고 악평자들의 말을 듣고 믿음이 흔들려 결국 나무가 뽑혀 나가듯 한다. 고로 정말 생각을 잘해야 한다. 사탄의 것은 겉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숨겨진 것들이 더 많으며 아닌 것 같지만 끝에는 지옥으로 연결되어 있다. 네 생각으로 판단하면 속기 쉽다. 신부들아, 정확히 생각해라. 외설적인 장면이 나오지 않아도 다 세상의 것이다. 네 생각을 침범하려는 사탄의 덫이다. 휴거된 이후에도 섭리사 사람들이 가장 많이 노출되는 것이 세상 문화이다. 또 이성으로 흐르게 만드는 도구도 세상 문화다. 의식적으로 경계해야 한다. 주와 교통하고 하늘의 생각으로 온전히 만들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왜 사탄에게 너희는 가볍게 쥐어 주는 것이냐. 이제는 생각의 전쟁이다. 짧은 시간도 사탄에게 내어 줘서는 안 된다. 그 짧은 순간에도 사탄이 생각을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사탄의 생각을 박멸해라. 네 뇌를 정금같이 단단하게 하여서 절대 악한 생각이 들어오지 않게 하여라. 육의 눈으로 들어오는 것에 생각이 휘둘리게 하지 말고 육신의 세상을 주의 말씀으로 다스려야 한다. 말씀으로 무장한 강한 생각은 육신의 세계를 오히려 주관하게 된다. 육적으로 예민한 자가 아니라 생각의 감각, 혼적 감각, 영적 감각이 아주 예리하고 칼날 같은 자가 되어라. 그 예리한 칼날로 사탄을 무찌르고 자기 주관, 자기 생각도 자르고 오직 주의 생각을 지킬 수 있다. 하늘 역사가 차원을 높여 온 만큼 사탄들의 전략도 이제 치밀하고 교묘해져서 일순간이라도 사탄의 생각이 네 생각 속에 들어오면 강렬하게 각인되고 그 영향이 길게 간다. 평범한 세상 음악 한 곡을 몇 분 들었는데 새벽기도도 제대로 못 하고 다음 날도 고통에 시달렸다. 그런데 수시로 무시로 보고 듣고 즐겨서 하고 찾아서 한다면 그 영향에서 벗어나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겠느냐. 뇌의 기억장치는 반복되면 단기 기억이 장기 기억으로 전환되어 쉽게 잊혀지지 않게 된다. 네가 계속 세상 문화를 반복해서 접하여 사탄이 입력시키는 생각이 단기 기억이 아니라 장기 기억이 되어 네 뇌에서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냐. 그 생각이 곧 실체이니 뇌 속에서, 기억 속에서 살아 있는 사탄의 생각은 결국 네 뇌에 사탄이 살게 하는 것과 똑같다. 그 생각이 끊임없이 너를 괴롭힌다. 세상 문화는 각종 미디어, 드라마, 웹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통해 선전하는 모든 사탄의 사상을 말한다. 하나님의 생각으로 살지 못하게 방해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사탄이 지구 세계의 경제, 문화, 정치를 붙들고 반복해서 주입시키는 썩은 생각을 받아들이지 말아라. 외모 지상주의, 자살, 부정부패, 폭력과 살인, 자본주의, 동성 합법화, 이성 문란 등 이 세상에 너희가 받아들여도 될 정신이 있는 것 같으냐. 어떤 것이 너희의 육을 변화시켜 영을 만들고 성삼위의 사랑의 상대체가 되게 하는 사상이냐. 2015_1113 금 계시말씀.hwp5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너희가 머리 삼을 사상은 없다. 위인들의 선한 말과 지혜의 말들, 각종 인류의 업적에서 깨닫는 것도 인간 차원이다. 학문과 각종 분야도 먼저는 주의 돛을 꽂은 후에 하늘의 뜻대로 개발하는 것이지 그 지식들이 너의 영을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 가장 위대한 하늘 문화인 말씀을 주었으니 세상에서 헤매지 말아라. 쇼핑, 노방을 핑계 삼아 중심 없이 세상의 것들로 넘쳐 나는 거리를 걸어 다니며 간접적으로 즐기지 말아라. SNS에서 무의미한 대화로 시간을 허비하고, 이성의 사진을 보고 소식을 듣고, 뒤에서 하는 네 모든 행위와 생각을 다 알고 있다. 이 밖에도 셀 수 없이 많지만 자기의 죄를 스스로 알 것이니 진정 회개하여라. 세상 문화가 가벼운 죄라는 인식부터 버려라. 생각으로 짓는 죄가 어찌 가벼운 죄일 수 있겠느냐. 사탄이 쓰는 이 세상 문화는 오직 타락을 위한 것으로 이성 사탄과 목적은 하나이다. 세상 문화 속에 온통 이성 이야기뿐인데 어떻게 세상 문화가 이성보다 덜하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또 이성이 드러나 있지 않은 것들도 세상 문화를 통해서 이성으로 흐르게 되는 것이 너무 많다. 세상 문화는 자꾸 생각을 그쪽으로 가게끔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러니 애초에 덫인 것을 알고 아예 가지 말아라. 썩은 물에 네 뇌를 담그고 있는데 왜 그것이 먼지 털듯 가벼운 일이냐. 가볍지 않다. 세상 문화 때문에 너무나 많은 더럽고 추악한 행위까지도 보게 되고 본인도 저지르게 되니 무섭게 알고 속히 끊어라. 네가 허락하지 말아라. 그로 인해 네가 죽을까 하노라. 각 부서는 세상 문화에 관한 교육을 반복해서 해 줘라. 세상 문화를 쓰고 들어오는 사탄에 대해 깨우쳐 주고 실제로 삶 속에서 끊을 수 있게도 도와주자. 역사와 보낸 자의 가치, 말씀의 가치를 알려 주어 스스로 이겨 낼 수 있는 힘도 길러 주기다. 세상 문화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한 계속 접하게 된다. 그러니 못하게 억지로 막는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고 본인들도 참아서 견디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근본을 깨달아야 스스로 안 하게 된다. 세상 문화는 은하수부터 장년부, 지도자들까지 모두가 걸려 있다. 왜 철저하게 경계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아야 한다. 확실히 모르니 적당히 행한다. 세상 문화에 젖어 있으면 말씀도 깊이 안 들어간다. 마치 밭에 잡초가 올라오면 작물이 크지 못하듯 잡생각들이 계속 방해하니 말씀을 약하게 받아들이고 흐릿하게 본다. 세상 문화는 이성 타락만큼 치명타를 입히지는 않아도 좀먹듯이 뇌를 파먹어 어차피 끝에는 생각을 죽게 만들고 돌아가게 만드니 세상 문화를 사탄으로 보고 정신을 바짝 차려라. 사랑아, 너를 정말 사랑하는 내 마음을 알겠니? 한순간도 저들에게 너를 뺏기고 싶지 않구나. 성삼위께서 나를 통해 주는 매주 말씀이 너를 지켜 주는 무기이니 늘 붙들고 살아라. 옳은 생각으로 제발 그릇된 생각을 깨부숴라. 별것도 아닌 것에 빠져 웃고 가까이할 때 곁에서 너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생각하고 그 시간에 나와 대화하고 사랑하자. 세상 문화의 재미는 순간의 것이다. 롤러코스터를 타면 정상에서 순간 스릴을 느끼고 눈 깜짝할 새에 내려와 있듯이 세상 문화에서 희열을 느끼다 사망에 가 있지 마라. 휴거된 나의 신부들, 바람이 불어도 주 사랑 절대 흔들리지 말고 생각을 지키기다. 잘 익은 과일은 모두가 먹으려고 탐내니 더 조심하고 지켜야 한다. 휴거되었으니 더욱 다른 곳에 한눈팔지 말고 나만 바라봐야 해. 내가 사랑하여 주는 생각을 지키는 말씀으로 사탄을 무찔러라. 생각이 신이다. 말씀을 생각하면 그 생각이 신이 되어 너를 지킬 것이니 늘 내 생각, 말씀 생각이다. 내 사랑이 영원하다. 안녕. ♥ 11월 13일 금요일 구원자의 사랑 2015년 11월 13일 금요일 새벽 계시말씀 작성일 : 2015. 10. 8. AM 01:52 작성자 : 장정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월명동 잔디밭에서 기도하였습니다. 최근 선생님을 향한 제 사랑이 뜨겁지 못해 죄송한 맘으로 회개하며 사랑의 불을 지피려 애썼습니다. 선생님은 항상 우리에게 최고의 사랑을 주시는데 정말 그 최고의 사랑에 발맞추고 싶다고 간절히 기도드릴 때, 사랑의 여신, 불의 여신 성령님께서 오셔서 성령님께 간절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령님, 사랑에 대해 배우고 싶습니다. 영원한 선생님의 사랑, 한없는 선생님의 사랑, 최고로 뜨겁고 최고로 깊은 선생님의 사랑에 대해서 배우고 싶습니다.”그랬더니 성령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령님의 말씀* 이 시대 구원자를 증거하기 위해 너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으니 구원자의 사랑이다. 구원자의 사랑은 성삼위다. 구원자가 갖고 있는 사랑은 성삼위의 사랑이라는 말이다. 구원자가 삼위와 일체 된 것은 사랑이 일체 된 것이다. 구원자의 사랑에 대해 가르쳐 주겠다. 누가복음 10장 30절에서 37절을 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2015_1113 금 계시말씀.hwp6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여기에서 강도는 사탄 곧 지옥을 상징한다. 그리고 강도를 만난 자는 너희들 곧 구원자를 알지 못해 영혼의 양식이 갈하여 방황하며 지옥과 같은 고통 속에 살고 있었던 너희들이다. 제사장은 바로 권력과 물질의 근본인 사탄의 몸이 되어 섭리사와 구원자를 핍박하는 자들이다. 레위인은 너희들의 인생 지식으로 삼는 너희 주관, 습관, 체질이다. 곧 너희의 육성이다. 이 시대 레위인과 같은 너희 주관과 습관, 체질인 육성은 너희를 구원하지 못한다. 육은 영을 구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이 영을 구원하니 육은 물질이요, 영은 진리와 사랑이요, 육은 형이하학이요, 영은 형이상학이기 때문이다. 차원이 높은 것이 차원이 낮은 것을 구원하니 구원자가 인류를 구원하는 것처럼 차원 높은 자가 차원 낮은 자를 구원한다. 그러면 사마리아인은 누구이냐. 바로 구원자이니 강도를 만난 자에게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부어 치유해 주듯 구원자는 너희 인류에게 진리와 사랑을 가르쳐 너희를 구원한다. 곧 휴거시킨다. 기름은 진리요, 포도주는 희생의 사랑이다. 그리하여 구원자의 진리와 희생의 사랑의 혜택인 곧 구원과 휴거를 이루지 못하고 가는 인생이 가장 비참하고 불쌍한 인생이다. 이는 마치 강도를 만나 자신의 소유를 다 뺏기고 길바닥에 버려진 채 뒹굴고 있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지나가는 사람들과 짐승들의 발길에 차이듯 인사탄과 영사탄에 채여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너희는 구원자가 가지고 있는 기름과 포도주, 곧 진리와 사랑을 항상 기억하며 진실로 증거하라. 강도를 만난 너희를, 세상 파도를 만난 너희를, 죽을 수밖에 없었던 너희를, 지옥길을 갈 수밖에 없었던 너희를 구원자의 진리와 희생의 사랑이 살리었다고 증거하여라. 그러면 강도와 같은 세상 풍파와 사탄의 간계에 시름하던 자들이 그 구원자를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느냐고 너희에게 간청할 것이다. 그러면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자를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는 말은 무엇이냐. 이는 이와 같다. 여행을 다니는 이가 타고 다니는 짐승은 그의 분신과도 같다. 그리하여 이 말은 구원자의 분신과도 같은 표상자와 또 구원자의 몸으로 쓰이는 자들을 통해 너희를 영적, 육적 성전으로 데려갔다는 말이다. 영적, 육적 성전은 무엇이냐. 섭리사와 월명동 자연성전을 의미하지 않느냐. 월명동은 섭리사다. 성삼위가 거하는 곳이며 휴거역사의 원천인 시대 말씀, 신부 말씀이 선포되고 완성된 곳이다. 고로 구원자는 진리와 사랑으로 인류를 섭리사와 월명동 자연성전으로 데려온다. 거기에서 섭리사와 자연성전의 주인이신 성삼위께 너희를 꼭 구원시켜 달라고 꼭 휴거시켜 달라고 간청하며 삼위의 이름으로 구원과 휴거를 책임지며 이룬다. 고로 너희가 구원받았고 휴거되었다. 그리고 사마리아인이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 갚으리라 하였다. 이것이 무엇이냐. 바로 구원자의 조건으로 너희를 휴거시킨 것을 말함이 아니냐. 고로 너희는 깨달아라. 너희의 진정한 구원자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깨달아라. 그리고 거기에서 한 차원을 높여라. 그것은 구원자가 너희에게 해 준 사랑이다. 그 사랑을 깨달아라. 그 사랑을 깨달으면 누가 진정한 너희의 사랑인지, 아군인지 벗인지 알게 되어 그와 하나 되고 그와 일체 되어 영원히 그를 믿고 따르며 사랑하게 되니 어서 그 사랑을 깨닫고 온 인류가 구원자의 사랑을 받아 인류도 삼위가 보낸 구원자가 누구인지 확실히 깨닫게 하라. 제사장과 레위인이 왜 강도를 만난 자를 피해 간 줄 아느냐. 사마리아인같이 강도 만난 자를 불쌍히 여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구걸하는 사람에게 베푸는 동정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마음, 삼위의 마음을 말한다. 인간을 창조하여 인간을 향해 절대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지고지순한 사랑, 영원한 사랑, 곧 영의 사랑이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이 영적인 사랑이 없었다. 영적인 사랑은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을 모르고선 영적인 사랑을 할 수 없다. 오직 온전한 진리를 받아 오고 온전한 사랑을 하는 자만 완전한 삼위의 영적인 사랑을 할 수 있으니 그가 바로 시대 구원자인 것이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 시대 구원자 예수를 따르지 않고 예수를 사랑하지 않았기에 그 시대 말씀을 몰라 영적인 사랑을 할 수 없었고 결국 하나님의 마음을 받을 수 없어 강도를 만난 자와 같은 그 시대 사람들을 구할 수 없었다. 이는 이 시대도 마찬가지다. 이 시대 온전한 성약 신부 휴거말씀을 모르는 기성인들과 육적 무지자들은 절대 온전한 영적 사랑을 할 수가 없다. 고로 인류가 영혼의 양식이 갈하여 쓰러져도 인류를 구할 수 없고, 그저 인류를 피해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피한다는 것은 종교 본연의 구원역사를 이루지 못하고 육을 따르는 것이니 곧 교회의 물질화, 세속화인 것이다. 고로 섭리사야, 너희는 이 시대 구원자의 깊은 사랑을 깨닫고 어서 이 시대 강도를 만나 쓰러져 있는 자를 구하라. 그들에게 구원자를 가르쳐 주어라. 그리하면 그들이 이 시대 구원자의 말씀과 사랑으로 치유받고 섭리사와 자연성전에서 뛰게 되니 핵은 휴거이다. 강도를 만난 자에게 진정한 이웃이 되어 주고 이웃을 넘어 사랑이 되어 주는 이 시대 구원자를 증거하는 것이 섭리사 너희들이 구원자에게 베푸는 가장 큰 사랑이다. 절대 이것을 깨달아라. 사랑하여 구원자의 사랑을 교육시키고 가는 성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