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5.11.15 (일)
151115 주일말씀 교정본
- 선포일
- 2015.11.15 (일)
- 성경 본문
- 에베소서 5장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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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5일 주일말씀>
시간이 빨리 간다는 것을 깨닫고, 영적으로 써라
본 문 에베소서 5장 16절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11월 셋째 주 주일입니다.
이제 2주만 더 가면, 2015년의 마지막 달을 보내게 됩니다.
10월과 11월은 ‘한 해의 운명을 좌우하는 때’라고 했지요?
그래서 10월부터 11월은 <때에 합당한 말씀>을 받아서
즉시 보내 주고 있습니다.
음식도 만들었을 때 즉시 먹어야 ‘제맛’이 나듯이,
말씀도 받았을 때 즉시 전해 줘야 ‘제맛’이 나서 행합니다.
◎ 이 말씀을 듣고 행할 때에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같이 움직이게 되고,
바로 행하니 문제가 해결되고,
얻을 것을 얻고, 차원을 높이게 됩니다.
◎ 오늘은 <시간>에 대해 깨우쳐 주면서,
시간을 어떻게 써야 최첨단으로 쓰는지,
시간을 어떻게 써야 같은 시간을 5배, 10배 더 쓸 수 있는지
말씀해 주겠습니다.
◎ 오늘 말씀도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분야별로 깨우쳐 주시고 알게 해 주셨습니다.
◎ 말씀의 주제는
‘시간이 빨리 간다는 것을 깨닫고, 영적으로 써라.’입니다.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려고 시계를 봤습니다.
그때!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하는데 얼마나 빨리 가는지,
5분이 어느 정도나 빨리 가는지 시계를 쳐다보며 숫자를 셌습니다.
<5분>은 ‘360을 셀 수 있는 정도의 시간’이었습니다.
<사람의 말>이 얼마나 빠른지 그 속도를 보면,
1초에 몇 마디씩 합니다.
이같이 빨리 말해도 <5분>에 ‘360’밖에 못 세니,
5분이 일순간에 지나갑니다.
한 시간은 60분이지만,
어떤 일을 하든지 ‘한 시간’ 동안 해 놓고 보면 얼마 안 됩니다.
하루는 24시간이지만,
실상 어떤 목적을 놓고 쓰다 보면
그 목적을 향해 일을 하는 데는 10시간 정도밖에 못 씁니다.
24시간 안에 잠도 자야 되고, 식사도 해야 되고,
어떤 목적을 두고 행하는 데 준비도 해야 하는 등
과정의 시간이 절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루 24시간을 가지고 실제로 일을 하다 보면 얼마 못 하고,
그 일을 하는 데 시간이 많이 들어가니 시간이 부족하고,
시간을 별로 쓰지도 않았는데 빨리 지나갑니다.
그래서 기도하며 하나님께 묻기를
“일을 하나, 안 하나 별로 한 것도 없이
<하루 24시간>이 이렇게도 빨리 갑니까?” 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육>을 가지고 행하니,
쓰다 보면 별로 한 것도 없이 시간이 빨리 간다.
<육신>은 느려서 조금 움직이다 보면, 금방 한 시간이 간다.
말이 24시간이고 숫자만 많지,
실상 하루의 시간은 얼마 안 된다.” 하셨습니다.
<육신>이라 느려서 그러하다.
- 라고 하신 말씀이 정말 이해가 갔습니다.
하루에 ‘어떤 목적한 일’을 놓고 조금 여유 있게 하다 보면
시간이 빨리 가고, 시간도 엄청나게 들어가고,
하루해가 빨리 지나가 버립니다.
서두르고 급하게 빨리하면
시간이 충분하고, 하루해도 길고, 할 일도 하고 끝냅니다.
그러나 매일 서두르면서 빨리하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생각보다 그렇게 <생각>이 빨리 돌아가지도 않고,
<몸>이 빨리 움직여지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영>이 <육>을 끌고 하면, 빨리한다.” 하셨습니다.
<영>이 <육>을 끌고 하면, ‘생각의 차원’이 높아져서
계속 ‘지름길’로 가게 됩니다.
고로 3배, 5배 빠르게 합니다.
그러면 하루해가 그만큼 깁니다.
같은 24시간이라도 그 시간에 많은 일을 합니다.
고로 <영>이 <육>을 끌고서
<영>이 <육>을 쓰고서 ‘영적’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영>이 <육>을 쓰고 ‘영적’으로 하려면,
늘 기도하고 신령해야 됩니다.
<시간>은 쉬지 않고 꾸준히 갑니다.
그런데 <육>은 느려서 <꾸준히 가는 시간>을 잘 못 따라갑니다.
순간! 5분이 지나가고,
잠깐! 뭘 하면 1시간이 지나가고,
조금 느슨하게 하다 보면 몇 시간이 후딱! 지나갑니다.
잠을 자고 나면 3~4시간이 가 버리고,
많이 자는 사람은 5~8시간이 순간! 지나가 버립니다.
한 시간을 주면서 “저 산을 넘어갔다 와라.” 하면
<육>은 ‘갈 때’ 1시간을 다 써 버리고,
‘올 때’는 또 1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그런데 <빠른 영>은 산을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와도
1시간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영의 빠르기>를 가장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눈 깜빡할 사이’같이 빠릅니다.
여러분 모두 눈을 깜빡해 보세요. 정말 빠르지요?
지구에서 태양까지 가려면, <빛>으로도 ‘약 8분’이 걸립니다.
그런데 <눈빛>으로 태양을 보면, ‘순간 1초’도 안 걸리고 봅니다.
이렇게 ‘눈빛’, 곧 ‘눈 깜빡할 사이’가 그리도 빠릅니다.
<영>이 이와 같이 빠릅니다.
또 <영의 빠르기>를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마음과 생각’같이 빠릅니다.
지구에서 천국까지 가려면, <빛>으로 가도 ‘150억 년 이상’이 걸
립니다.
그 먼 곳을 <생각>으로 가면, ‘눈 깜빡할 사이’에 갑니다.
<생각>이 천국에 갔으면,
<영>도 <혼>도 천국까지 간 것임을 알기 바랍니다.
또한 <영>이나 <혼>이 천국에 가면,
<생각>도 ‘자기 혼과 영’을 따라서 천국에 가기도 합니다.
<생각>은 ‘자기 육’도 따라다니지만,
‘자기 혼과 영’도 따라다닙니다.
고로 <육>만 가지고 ‘육적’으로만 행하지 말고,
<영>을 가지고 <영>이 <육>을 쓰면서 ‘영적’으로 행하면
그만큼 <생각>도 빨리 돌아가고 <행실>도 빨리하게 되어
시간도 세월도 빨리 가지 않습니다.
<몸>만 빨리 움직이려니 잘 안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빨라야 됩니다.
<생각>이 날렵하고 <생각>이 날아다녀야 됩니다.
그래야 <몸>도 날렵하고 날아다니면서 행하게 됩니다.
그러려면 꼭 기도하여
<영>이 <자기 육>을 쓰고 ‘영적’으로 행하게 해야 됩니다.
<시간>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입니다.
지구 세상 73억 명이 힘을 모아서 잡아도
<시간>은 못 잡습니다.
<시간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곧 ‘<생각>을 빨리하여 <육>을 빠르게 움직이기.’입니다.
그러려면 ‘<영>이 <육>을 끌고서 영적으로 하기.’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천국>은 ‘영으로 다니며 사는 곳’입니다.
고로 <천국의 시간>은 ‘이 세상의 시간 개념’과는 다릅니다.
<세상의 1000년>은 ‘천국의 하루’입니다.
<육의 인생 100년>을 ‘천국의 시간’으로 계산하면,
약 2시간밖에 안 됩니다.
<육신>은 ‘천국의 시간으로 약 2시간’을 살고 죽는 것입니다.
그 짧은 시간에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를 만나,
그를 통해 ‘하나님이 이 시대에 하시는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목적 중에서 최고의 목적인 ‘창조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그 말씀을 실천함으로
<영>을 휴거시켜 ‘황금성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해야 됩니다.
인생을 살아 본 사람들은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알 것입니다.
80~90년 살았어도
‘세월이 금방 지나갔네. 언제 80년이 지났지?’ 합니다.
중고등부와 대학부 때 섭리사에 와서 큰 사람들은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어 희끗해진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며
‘어느새 이렇게 시간이 지나갔지?’ 할 것입니다.
고로 ‘해 놓은 것’이 없으면, 인생 허무합니다.
<육신>도 해 놓고,
<영>은 100% 완벽하게 구원해 놓고 휴거시켜 놔야 됩니다.
<육신 성공>은 못 하고 겨우 먹고 사는 정도여도
<영>이 완벽하게 휴거됐으면 ‘최고’입니다.
왜요? 휴거되면 ‘영원한 지옥의 고통’을 벗어나고,
영원히 ‘천국 황금성’에서 누리며 사니,
<육신>이 죽더라도 걱정이 없습니다.
<휴거의 영광, 휴거의 보람>은 영원합니다.
<영>은 <빛>보다 ‘수백조 배’ 빨리 활동합니다.
고로 <영>이 ‘천국’에서 ‘하루’만 살아도
실상은 <육>이 ‘세상’에서 ‘수백조 배’ 더 산 격이 됩니다.
<육>이 인생 100년을 살면서
<자기 영>을 100% 완벽하게 구원하고 휴거시켜 놨다면,
실상 <육>이 ‘세상’에서 100년의 수백조 배를 더 산 것이 되니
세상에서 ‘육의 성공’은 못 했어도 ‘최고의 성공’을 한 것입니다.
이해했습니까?
알고 이해를 해야 <은혜>를 받고, 깨달아야 <감동>을 받습니다.
<월명동 지역의 형상>도 ‘아는 자’만
“신비하다.” 하고 은혜를 받고 감탄하며,
하나님과 통하여 더욱 감사, 감격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 또 말씀해 주겠습니다.
성자는 말씀하셨습니다.
“그 짧은 시간을 가지고,
<영원히 존재하게 하는 생명의 말씀>을 배우고 써라.
그러면 인간으로서 최고 가치 있게 시간을 쓰게 된다.”
성령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잘 들으세요.
“<시간>을 ‘음식’에 비유하여 말할 테니, 잘 들어 봐라.
불고기가 막 구워졌을 때는 보암직하고 먹음직하지?
그때 먹으면, 제맛이 나지 않느냐.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불고기는 식어서 제맛이 가 버린다.
과일도 싱싱할 때는 보암직하고 먹음직하다.
그때 먹으면, 제맛이 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제맛이 변해 버린다.
<음식의 제맛>이 변하면,
뇌에서 ‘보암직하고 먹음직하다고 여겼던 마음’이
사라져서 먹고 싶지 않고,
먹어도 깨작거리며 먹게 된다.
시간도 그러하다.
<행할 시간, 쓸 시간>이 지나면 ‘제맛’이 변한다.
<시간의 제맛>이 변하면,
뇌에서 ‘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져서 하고 싶지 않고,
하더라도 깨작거리며 행하게 된다.
고로 불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졌을 때
뜨거울 때 맛있게 씹어 먹듯이,
<일>도 나 성령이 감동을 줄 때,
뇌에서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고 흥분되어
그 일이 보암직하고 먹음직해 보일 때, 제때, 제시간에 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시간>이 지나서 ‘제맛’이 변했다면,
처음보다 못하지만 ‘맛’을 찾아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고기가 식으면 ‘제맛’이 변하지만,
다시 데워서 뜨겁게 하면 어느 정도 ‘맛’이 돌아온다.
이와 같이 <할 시간>이 지나서 ‘제맛’이 변했더라도
일하기 전에 다시 ‘마음과 생각’을 뜨겁게 하고 열을 내어
흥분되게 만든 후에 행해라!
<마음과 생각>을 뜨겁게 데우지 않은 상태에서
설교를 하든지, 강의를 하든지, 전초를 하든지,
말씀을 전하든지, 관리를 하든지,
공부를 하든지, 어떤 일을 하면,
마치 ‘식은 음식을 먹는 것’과 같아서
그것은 ‘맛없는 예배, 맛없는 모임, 맛없는 행실’이 된다.
고로 어떤 일을 하든지
제때, 제시간에, 감동됐을 때, 마음이 흥분됐을 때 하고,
제시간을 놓쳐서 맛이 변했다면
다시 마음과 생각을 뜨겁게 하고 열을 낸 후에 해라.”
(하셨습니다.)
손님에게도 ‘식은 음식, 찬 음식’은 대접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사랑하는 자에게는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우리 신부들을 대하실 때는
<시간이 지나서 제맛이 변한 말씀>을 주지 않으십니다.
하늘에서 생방송으로 중계하면서 ‘가장 따끈따끈한 말씀’을 주시며,
우리를 <생명 길, 휴거 길, 천국 길>로 인도하십니다.
<사랑>도 그러합니다.
어제 사랑을 주었으면,
오늘은 오늘의 따끈한 사랑을 또 주십니다.
그렇게 우리를 대해 주시고 사랑해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대할 때,
<식은 음식>을 주듯 <식은 시간>을 드리면 되겠습니까?
성령님이 감동을 주실 때,
성령님이 하자고 할 때 안 하는 것은
음식이 뜨끈뜨끈할 때 “같이 먹어요.” 하지 않고,
음식이 다 식어서 맛이 변한 후에 “같이 먹어요.” 하는 격입니다.
그러니까 성령님도 “판이 식고 할 맘이 없어진다.”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같이 하자!” 하지 않으시고,
“너나 해라!” 하십니다.
실제로 성령님은 그리하십니다.
실제로 성령님이 새벽에 깨워 주실 때 안 일어나고
또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서 “성령님, 저와 같이 해요!” 하니,
성령님은 “식은 음식 너나 먹어. 식은 시간 너나 써.
너는 내게 찬밥과 찬 시간을 대접하느냐.
나 바빠.” 하고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네가 시간을 지키면 다시 올 거야. 명심해.”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제맛이 변하면, 떠나십니다.
제맛이 변했는데 다시 뜨겁게 하지 않으면, 떠나십니다.
시간도 그러하고, 약속도 그러합니다.
또한 죄를 지어서 제맛이 변해도 떠나십니다.
회개하여 깨끗하게 해야 다시 오십니다.
모두 성령님에 대해 알고서, 성령님을 모시고 대해야 됩니다.
저마다 ‘새벽 정한 시간’에 꼭 기도하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원하시는 시간’에 기도하면,
소고기 안심을 구워서 뜨끈뜨끈할 때, 제때 먹는 것과 같아서
잘 깨닫고, 삼위와 주와 대화도 잘되고,
기도도 잘되고, 계시도 받고, 응답도 잘 받고,
새벽의 제맛, 하루의 제맛이 나게 해 주십니다.
그러나 제시간이 지난 후에 하면 ‘혼자’ 해야 되니 힘들고,
하더라도 ‘맛 변한 음식’을 먹듯이 맛도 없고 힘도 없습니다.
기도도, 할 일도, 하늘과의 약속도
제때 제맛이 날 때 하기입니다.
제시간이 지나서 맛이 변했다면
마음과 생각을 다시 뜨겁게 해서 맛을 찾고 하기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성령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도, 성자도, 나 성령도, 구원자도
너와 통하려고 그렇게도 기다린다.
하루 24시간은 1440분인데
그중에서 ‘1분’만이라도 시간을 내어
삼위와 구원자와 통하려고 하면,
짧은 시간이라도 연결하여 그때 급한 것을 말해 주며 돕는다.
그런데 1440분을 몽땅 다른 데 쓰고,
단 1분도 삼위와 구원자를 찾지 않고 하루를 마친다.
그래 놓고 어떻게 나 성령을 부르며
천모요, 영혼의 어머니라 말하느냐.
그렇게 해 놓고 어떻게
하나님이, 성자가, 나 성령이 ‘너의 왕’이 될 수 있겠느냐.”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기쁘고 희망 있게 하기 위해서는 별짓을 다 하고,
자기를 기쁘고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좋다고 하는 것을 찾아 골라서 수시로 보고,
인터넷 화면과 TV 채널을 바꿔 가며 다 보면서 살고 있구나.
그러다 새로운 영화가 나오면 영화를 보면서 즐기고,
하루 종일 자기를 위해서 돈을 벌고, 쓰고, 입고, 먹고,
할 일을 다 하며 사는구나.
그러면서도 하루 1440분의 시간 중에서
단 ‘1분’도 삼위와 대화하지 않고,
삼위를 기쁘게 하지도 않고,
어떻게 하면 삼위가 좋아하실까 연구하지도 않느냐.
너는 삼위와 주를 ‘산 너머’에 놓고 멀리 떨어져 사는구나.
삼위와 주가 찾으면 오히려 바쁘다 하고,
자기 행위가 드러날까 봐 피하는구나.
그렇게 살면서 어떻게 <영원한 지옥>에 안 간다 장담하고,
휴거되어 <천국 황금성>에 간다 장담하고,
<휴거 700선>까지 간다 장담하겠느냐.
그러고는 힘들 때, 문제가 생겼을 때, 일을 당했을 때
그제야 하나님과 나 성령과 성자와 구원자를 찾는구나.
삼위일체와 구원자를 ‘힘들 때 쓰는 지팡이’로 생각하고,
‘어려움을 돕는 심부름꾼’으로 생각하며,
네 마음대로 부리며 살고 있구나.
이런 자들이 많으니,
설교를 내보내서 ‘신앙의 경고’를 주어
각자 ‘자기 양심’으로 깨닫게 해 주어라.” 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시간은 빨리 갑니다. 세월은 빨리 갑니다.
어린아이나 청소년은 자기에게 시간이 많은 것으로 생각되지만,
‘해 놓은 것’ 없이 시간을 그냥 보내 버리면 ‘허무’만 남습니다.
어린아이에게도, 청년에게도, 중년에게도, 노인에게도
<시간과 세월>은 봐주지 않고
하루도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갑니다.
지구 세상 73억 명이 힘을 합쳐서 잡아도
<시간>은 못 잡습니다.
<시간>은 ‘지구의 공전과 자전’이기 때문입니다.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누가 붙잡을 수 있겠습니까?
인생아~ 늙지 마라. - 하며 잡아도 인생은 늙어 가고,
시간아~ 가지 마라. - 하며 잡아도 시간은 흘러갑니다.
고로 보다 빨리 생각하고, 빨리 뛰면서 살아야
<시간을 잡은 자>가 되어
자기 육에게도 ‘많은 것’을 남기고,
자기 영에게는 ‘영원한 것’을 남겨 성공한 자가 됩니다.
<생각>이 빨리 돌아가야 됩니다.
<생각>이 날렵해야 됩니다.
그래야 <몸>도 날렵해져서 <실천>도 빨라집니다.
그러려면, <육>만 가지고 행하면 안 됩니다.
<육>은 느려서 <빠른 시간>을 못 따라갑니다.
꼭꼭 기도하면서 ‘영적’으로 행해야 됩니다.
영적으로 행하는 것이란, 이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꼭 <성령>을 부르고 <주>를 부르면서,
성령과 함께, 주와 함께 해야 됩니다.
그러면 ‘2시간’에 할 일을 ‘1시간’만에 하여
<1시간을 잡은 격>이 됩니다.
<시간을 잡는 방법>은 ‘빨리하는 것’이며,
<빨리하는 방법>은 ‘영적·신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육>으로 뛰어서는 시간을 ‘두 배’도 잡기 힘듭니다.
<육>으로 뛰면,
뛰어도 남보다 조금 더, 한 뼘 더, 한 발자국 더 앞서갈 뿐입니다.
<영적>으로 해야 됩니다. <신적>으로 해야 됩니다.
그래야 ‘10~20배의 시간’을 잡고서 쓰게 됩니다.
<신적으로 하는 것>이란, 신의 머리를 사용하기입니다.
곧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생각대로 행하기입니다.
그리고 생각의 차원을 높여서
‘돌아갈 길’을 질러가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안 하기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시키시는 대로 그 방법대로 행할 때,
그것이 ‘신의 머리를 사용하는 것’이 되고
자기 생각이 ‘하늘같이 높은 생각’이 되어
10배, 100배 시간을 잡고 쓰는 자가 되어 행하게 됩니다.
<신의 머리>를 써서 시간을 10배, 100배 잡아서 쓰고,
그리함으로 육에게도 많은 것을 남기고
영에게는 영원한 것을 남겨 최고의 성공을 하라고,
성삼위는 구원자를 통해 항상 ‘따끈한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함으로 <신의 머리를 써서 한 자>가
<시간을 멈추게 한 자>가 되어
여호수아같이 ‘표적의 승리’를 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일찍 안 자’는
50년 전에 이미 알고, 30여 년 전부터 그 뜻을 세상에 전하면서
그로 인해 ‘하나님이 주시는 혜택’을 받고 살고 있습니다.
곧 <재림과 휴거의 뜻>입니다.
그러나 30~50년을 먼저 태어나서 먼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으며
이미 30~50년 전부터 <재림과 휴거>를 준비한 자들인데,
<새 시대 하나님의 뜻, 신의 생각>을 몰라서
<생각>도 느리고 <행실>도 느린 자들이 있습니다.
고로 그들은 <새 시대>에 대해서 꿈도 못 꾸고,
40~50년 이상 뒤처져 갑갑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을 보고 “인생 헛살았다.” 합니다.
그렇게 일찍부터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고 살았어도
몰라서 못 하니, 준비하면서 시간만 보내다가
인생 황혼을 맞았고 더러는 죽기도 했습니다.
그 영이 영계에 가서 알고, 한탄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보다 50년 늦게 태어났어도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 신의 생각>을 알고 즉시 행하니,
그들보다 ‘40~50년의 시간’을 앞질러 가게 되었고
인생 100년을 앞질러 가게 됐습니다.
지혜자, 아는 자는 ‘지름길’로 갑니다.
고로 ‘시간을 잡은 자’가 되어, 늦게 출발했어도 빨리 갑니다.
선생은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줍니다.
오직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뜻>만을 가르쳐 줍니다.
이것이 <시대 말씀>입니다.
섭리사에 와서 이 말씀을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알고, 믿고 행하며 사는 자들은
50~70년 먼저 태어나서 먼저 믿은 자들보다 앞질러 가고 있습니다.
또한 100년, 200년, 300년, 500년, 700년 있다가 할 일을
지금 행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떤 것은 700년, 800년, 900년이 가도 못 할 일인데
현재! 행하고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휴거>입니다.
<휴거>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고,
<휴거>로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고,
<휴거>로 ‘성경의 예언’을 이루고,
<휴거>로 ‘천국 황금성의 문’이 열리고,
<휴거>로 ‘하나님의 한’이 풀립니다.
이 귀한 <휴거>는 ‘구원자가 살아 있는 당세’에만 하고 끝납니다.
구원자가 죽은 후에 새 역사로 오는 자들은
<휴거>가 아닌, <성약 신부급 구원>을 이룹니다.
<구원자가 살아 있는 당세>에 새 역사로 와서
<휴거>를 이룬 자들은
마치 나이가 어려도 임금 아들의 혼인 잔치에 참여한 격입니다.
<임금 아들의 혼인 잔치>는
그 후 50년, 70년이 흘러가도 다시는 못 봅니다.
‘당세에 딱 한 번뿐’이기 때문입니다.
<휴거>도 이와 같습니다.
‘구원자가 살아 있는 당세’만 <휴거 역사>를 폅니다.
후대에는 500년, 700년이 흘러가도 <휴거>는 못 봅니다.
고로 지금 섭리사에 와서 <시대 말씀>을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알고, 믿고 행하며 사는 자들은
50~70년 먼저 태어나서 먼저 믿은 자들보다
앞질러 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700년, 800년, 900년이 가도 못 할 일을
현재! 행하고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지금 이 귀한 때,
인류 역사상 한 번도 맞지 못했던 이때,
구원역사 6000년 동안 한 번도 맞지 못했던 이때,
성약 1000년 역사 기간 중에서 단 한 번뿐인 이때,
<하나님의 새 역사, 마지막 역사>를 만나서 살고 있는데
하루 24시간, 곧 1440분의 시간 중에서
1분도, 10분도, 1시간도 삼위와 대화하는 데 쓰지 않으렵니까?
저마다 자기를 즐겁고 기쁘게 하기 위해서
하루 24시간을 다 써 버립니다.
잠자고, 먹고, 입고, 씻고, 운동하고, 놀고,
돈을 벌고, TV를 보고, 영화를 보고, 만화를 보고,
소설을 보고, 인터넷을 하고, 게임을 하면서
생각나는 대로 못 참고 하루 1440분을 다 써 버립니다.
<황금성 천국>에 가기를 원하고
<휴거>되기를 바라는 신부들이
하루 1440분의 시간 중에서 ‘1분’도 삼위께 안 주고
단 ‘1분’도 삼위와 대화도 안 합니다.
이런 자들을 보고,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맛있는 소고기 안심 1440점을 구워서 먹고 있기에
‘한 점 주려나?’ 하고 계속 서서 기다렸다.
그러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앉아서
‘1440점 중에서 설마 한 점은 주겠지.’ 하며 계속 기다렸다.
그런데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터지겠네!” 하면서도
나 성령에게 ‘고기 한 점’을 안 주고,
‘마지막 한 점’까지 자기 입에 털어 넣는 격이다.” 하셨습니다.
<하루 1440분>은 ‘1440점의 고기’와 같습니다.
이 <시간의 고기>를 가지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주와 ‘함께’ 먹으며 잔치해야 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여러분이 월명동에 오면 “뭐라도 해 주자!” 하고,
부침개라도 꼭 부쳐 먹게 해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선생이 늘 말해도 월명동에서 안 해 줘서 못 먹지,
선생은 이렇게 안 시키는 날이 없습니다.
하나님도 이같이 해 주시는데,
여러분이 ‘하루 1440분’을 가지고 살면서,
하나님께 ‘1440분의 1’도 안 드리면
<휴거>고 <신부>고 자격이 없습니다.
하루에 ‘1분’이라도 삼위와 통하면,
실 한 가닥만큼이라도 삼위와 연결되어 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도 “하자! 같이 하자!” 하는데도 안 하는 자가 있습니다.
해도 해도 너무 하니 더 이상 ‘그 사람’에게 신경 안 쓰고
그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투자하니,
그 사람은 바로 알고 늘 하늘과 교통하며 대화하고,
말씀에 더욱 확실히 서서 외치고,
일도 도와주고, 전도도 하면서 멋지게 크고 있습니다.
어느 면에서 봐도 ‘먼저 온 자’보다 낫습니다.
<사람을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특히 만들기 너무 힘든 자가 있습니다.
말을 너무 안 듣고 자기 좋은 대로 하는 자가 있습니다.
<세월>은 자꾸 흘러가고 <하나님의 역사>도 계속 흘러가니,
그런 자는 뒤로 제쳐 놓고 ‘다른 사람’을 키우고 만들어야
성령님의 심정 타는 마음도 없어지고 속이 시원합니다.
성품이 해 같고, 달 같고, 기치를 벌인 군인 같아야 됩니다.
그래야 ‘하늘의 신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하늘이 손을 댈 때, 그만큼 변화되고 만들어집니다.
<시간>을 잡아서 ‘하늘’을 위해 써야
영적으로도 육적으로도 성공합니다.
<시간의 십일조, 물질의 십일조>는 기본입니다.
하루는 1440분이니,
10분의 1인 144분, 곧 2시간 24분이
‘하루 시간의 십일조’입니다.
<시간의 십일조>를 하늘 앞에 드리면,
하나님께서 ‘시간의 축복’과 ‘지혜’를 주시어
10시간에 할 것을 7시간, 5시간 만에 하게 해 주십니다.
그리함으로 ‘시간의 창고’가 차고 넘치게 해 주십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시간>이 없으면 실패합니다.
하늘 앞에 <시간의 십일조>를 척척 드림으로
‘시간의 축복’을 받아서 일도 빨리하고
‘시간의 창고’가 차고 넘치게 되면,
<시간>이 많으니 쫓기지 않고 그만큼 성공하게 됩니다.
쪼들린다고 안 하면, 계속 더 쪼들리게 됩니다.
매일 <시간의 십일조, 물질의 십일조>를 하늘 앞에 드리는 자는
2배, 10배, 100배까지 축복을 받아서 쪼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주(主)도 심지 않고는 거두지 못한다.” 말씀했습니다.
(마 25:26, 눅 19:22)
하나님이 받으시고, 그냥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땅에서 육이 하나님께 드린 것>은
<육>은 천국에 못 오니 <육>에게 주어
<육>이 땅에서 먹고 즐기게 해 주십니다!
그러니 절대 믿고 행하기 바랍니다.
하늘 앞에 말로 감사하고, 행실로 감사하는 것도
<십일조 생활>입니다.
<물질의 십일조>는 기본입니다.
특히 <하늘의 신부들>에게는
‘하나님의 것’을 ‘각자 자기 것’같이 쓰게 해 주십니다.
선생은 월명동의 30평도 안 되는 작은 청기와집도
개인 것으로 쓰지 않고
월명동 왔다가 잘 곳 없으면 거기서 자고 가라고 내주었습니다.
또, 기도 방이 되기도 하여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만나는 데 쓰이는 방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은 <시간>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황금 시간>이 되기도 하고,
<철 같은 시간>이 되기도 하고,
<오물 같은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삼위일체와 함께 써야 그때마다 <황금 시간>으로 씁니다.
사람들이 사는 것을 보면 10대, 20대, 30대, 40대에
인생을 ‘썩는 데’ 쓰고 있습니다.
혼계에서만 봐도 다 보입니다.
선생은 <앞으로 내게 남은 시간>을 가지고도
지금 10대들보다 더 많이 쓸 수 있습니다.
왜요? 선생은 ‘쓸데없는 일, 필요 없는 일’을 안 하고,
매일 쉬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생각을 가지고 말씀을 실천하며
삼위와 함께 하나님의 뜻을 위해 행하기 때문입니다.
10대들은 시간도 많은데
그 시간을 미디어나 보고 게임이나 하는 데 쓰니까
그 많은 귀한 시간을 헛되게 보냅니다.
하루를 계산해 봐요.
자기가 얼마나 ‘필요 없는 것’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지,
자기의 하루를 되돌아보며 계산해 보면 압니다.
그러나 어려도 ‘말씀’을 실천하면서
‘하나님의 생각’으로 사는 자들은
아직 어리니 시간도 많고, 그만큼 행하니까 엄청나게 됩니다.
그런 자가 <시대>를 잡고 <시대>를 앞질러 가면서 살게 됩니다.
<말씀 마무리>
◎ 오늘 말씀의 핵심을 다시 한 번 짚어 주고,
아주 짧은 시 한 편 전해 주고, 말씀 마치겠습니다.
기도도, 할 일도, 하늘과의 약속도
제때 제맛이 날 때 하기입니다.
제시간이 지나서 맛이 변했다면
마음과 생각을 다시 뜨겁게 해서 맛을 찾고 하기입니다.
<시간>은 지구 세상 73억 명이 잡아도 못 잡습니다.
<시간을 잡는 방법>은 ‘빨리하는 것’이며,
<빨리하는 방법>은 ‘영적·신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육>으로 뛰어서는
아무리 뛰어도 남보다 조금 더, 한 뼘 더, 한 발자국 더 앞서갈 뿐입
니다.
<영적>으로 해야 됩니다. <신적>으로 해야 됩니다.
그래야 ‘10~20배의 시간’을 잡고서 쓰게 됩니다.
<신적으로 하는 것>이란, 신의 머리를 사용하기입니다.
곧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생각대로 행하기입니다.
그리고 생각의 차원을 높여서
‘돌아갈 길’을 질러가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안 하기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시키시는 대로 그 방법대로 행할 때,
그것이 ‘신의 머리를 사용하는 것’이 되고
자기 생각이 ‘하늘같이 높은 생각’이 되어
10배, 100배 시간을 잡고 쓰는 자가 되어 행하게 됩니다.
<시 – 제때>
때 지나면
음식같이
만사가
제맛이 간다
제때
제시간에
생각하고
행하기다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