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2015.11.20 (금)
금 계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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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_1120 금 계시말씀.hwp1
2015년 11월 계시말씀
♥ 11월 20일 금요일
승리의 기쁨을 폭발시켜라!
작성일 : 2015. 10. 30. 작성자 : 이찬
(수업을 마치고 학교에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저희 학교는 산 위에
있어서 학교 위에서 시 전체가 훤히
내다보입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경치도
보면서 주님과 대화도 하고 기도도
자주 하곤 했는데 요즘은 시험
기간이라 많이 피곤해서 땅을 보며
그냥 빨리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성령님께서
“고개를 들어 경치를 보아라.”
말씀하셔서 고개를 들어 경치를
봤습니다. 그때 눈앞에 보인 것은
일곱 마리의 새들이었는데 정확하게
V자 모양으로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너무 신기해서
“우와~ 저거 뭐에요?”라고 물으니
“승리의 기쁨을 폭발시켜라!” 하시며
강한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이 메시지를 듣고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요즘 전도한 생명도 많고,
매일 강의도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제가 조금 지쳐 있었기 때문입니다.
휴거된 자로서 휴거의 삶을 사는 것이
진정 기뻐야 하고 진정 감사가 넘쳐야
하는데 자꾸 생각에서 잊어버리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주님을
사랑해서 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내가 정말 좋아서 미쳐 버릴
만큼인가?’ ‘내가 정말 기쁘고
행복하고 매일 감사가 넘치나?’
생각해 보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만물 계시를 놓고 기도하였을 때
성령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령님의 말씀*
사랑아!
승리의 기쁨을 폭발시켜라!
승리한 이 역사를 보아라.
승리했어도 승리한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니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지 못하는구나. 선생은
그 어려운 환경 속에 있어도
휴거로 승리를 거두고 미쳐 버릴 만큼
감사했고 기뻐했다.
내가 전체에게 계시할 것이 있어서
네게 만물로 승리의 증표인 V자를
보여 준 것이다. 오늘 나의 계시를
듣고 승리한 이 섭리역사를 진정
깨닫고 승리의 기쁨을 폭발시키길
바란다.
사랑들아.
승리의 기쁨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 줄 아느냐? 자신이
주인이 되어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간절히 바라고 원했다면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승리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섭리역사에서 목적인 휴거를
놓고 그만큼 간절한 자가 없었고
선생과 함께한 자가 없었다.
휴거되었고 휴거의 삶도 허락해
주었다. 모든 것을 축복해 주고 허락해
줬어도 역시 깨달은 만큼인 것이다.
휴거는 진정 너희가 간절히 소망했던
것이냐? 너희가 진정 원하고도 원했던
반드시 이루고 싶었던 목적이었느냐?
(저는 찔리는 마음과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성령님께 확실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아멘! 저희가
진정 부족했지만 진정으로 휴거를
원했습니다.”)
진정으로 원했다면
그 원하던 것이 이루어졌으니
행실로 보여 줘라. 먹고 싶던 음식도
어느 날 먹게 되면 그렇게 행복해하지
않느냐. 정말로 원하고도 원했는데 그
원하던 것이 이루어졌다면 미쳐 버릴
것같이 기뻐서 뛰어다녀야 하지
않겠느냐.
휴거도 휴거의 삶도 너희가
원한 것이고 그런 너희에게
성삼위가 축복하고 허락해 준 것이다.
그런데 누리지 못하면 되겠느냐.
난 원하고도 원했던 이 휴거를
137억 년 만에 이뤘고 너희는
그 주인공이 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기뻐하는 자가 많지 않아.
하나님을 믿는 많은 자들이 그렇게도
‘휴거, 휴거’ 하며 외쳤고 간절히
소망했다.
그 휴거를 이 섭리역사에서 이뤘다.
삶 자체가 기쁨이 되어야 한다.
휴거는 사랑이니 주의 일을 하는 것
자체가 기뻐야 한다. 휴거의 삶이라는
것은 너희에게만 허락된 특권이다.
휴거되지 않은 자가 휴거의 삶을
살 수 있겠느냐. 못 살지.
휴거를 진정 깨달았다면
기도하는 것 자체가 행복하고
전도하고 강의하는 것 자체가
기쁨이어야 한다.
주의 일을 하는 것 자체에서
기쁨의 폭발이 일어나야 한다.
휴거를 이루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느냐.
선생을 보아라. 얼마나 많은 조건을
세우고 희생했느냐. 그 고생 끝에
휴거라는 승리를 거머쥐게 되었다.
너희는 이 승리에 대해 얼마나 깨닫고
실감하고 있느냐. 나 성령이 보기에
이 승리를 실감하는 자가 거의 없고,
휴거되기 전이나 휴거된 후나 비슷한
자들이 많다. 생각하는 것이나 마음의
것들도 비슷하고 삶도 비슷하다.
이것은 마치 무엇과 비슷하냐면
비행기를 완성해 놓고 날지 않는 것과
같다. 비행기를 자동차처럼 쓰고 있다.
왜 만물 계시를 하늘의 새로 보여 준
줄 아느냐. 승리의 기쁨을 폭발시켜서
하늘을 훨훨 날라고 보여 줬다.
왜 다 해 놓고 누리질 못하느냐.
깨달은 만큼 누리게 돼 있는 것이다.
자신을 만든 만큼 누리게 돼 있는
것이다.
성자 승천일을 온전히 맞지 못한 것이
아쉬운 것이 아니라 이 휴거의 승리를
온전히 깨닫지 못하는 지금 너희의
모습이 아쉬운 것이고, 휴거의 삶의
가치를 모르고 있는 너희의 삶이
아쉬운 것이다. 이것이 지금
섭리역사의 수준이며 너희의 모습이며
너희의 모습은 성약 1000년 역사의
모습이 된다. 정신 차려야지!
나 성령이 함께하는데 나 성령은
이런 모습을 계속은 못 지켜본다.
나 성령이 불같은 성령으로
너희의 심령을 깨울 것이다.
매일 깨워야 한다.
사람 하나 변화되는 것도 보아라.
입이 닳도록 얘기해야 겨우겨우
변화된다. 차원 높은 휴거의 승리를
깨닫고 그 삶의 가치를 안다는 것은
참으로 인간으로서 신이 되는 경지다.
나 성령은 깨닫게 해 줄 수 있다.
내게 간구해라.
휴거의 승리를 깨닫게 해 달라고
간구하고 그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해 달라고 간구해라.
2015_1120 금 계시말씀.hwp2
깨달은 자는 기쁨의
폭발적인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선생을 보아라.
그곳에서도 얼마나
감사하며 기뻐하며 행하고 있느냐.
목숨을 내놓고 이뤄 낸 휴거다.
그 모진 싸움 속에서 결국 승리했다.
성삼위의 승리이며 인류의 승리이며
섭리의 승리며 너의 승리다.
정말 실감 나게 깨달아야 한다.
승리 다음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느냐.
영광과 기쁨이 기다리고 있다.
섭리는 이제 누릴 일이 남았다.
환난이 올까 두려우냐?
그 환난의 고통보다
기쁨의 환희가 더 크다.
사랑이 넘치고 기쁨이 넘치기에
어떤 환경 속에서도 승리의 잔치는
시작된다. 천국에서도 이미 잔치와
축제의 도가니다. 선생이 너희를 위해
그곳에 매이고 목숨을 걸면서 행했다.
그리고 결국 승리했다.
이를 깊이 깨달아라.
바로 너를 위해서 행한 것이다.
선생은 너희를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왜? 이제 다 이뤘으니까.
모든 것을 다 이겼으니
너희를 만나는 일만 남은 것이다.
그러니 기쁨이다.
너희도 기쁨으로 선생의 일을 행하며
선생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개인의 차원에 갇히고
환경에 갇힌 자가 있느냐.
승리의 기쁨을 폭발시켜라!
그럴 힘이 없다고?
승리를 깨닫지 못한 자이며 선생을
제대로 모르는 자다.
선생이라는 이름은 이긴 자가
되었으며 승리의 표상이 되었다.
너희는 선생을 생각하면 승리와
기쁨이 즉시 생각나야 한다.
선생이 이뤄 낸 승리는 결국
너 자신의 영원한 승리이기 때문이다.
사랑들아.
휴거되고도 승리의 기쁨에 차서
휴거의 삶을 사는 자가 많지 않다.
아직 온전히 깨닫지 못했고 자신을
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속히 더 깨닫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을 완전히 만들길 바라노라.
승리와 기쁨의 역사는
이미 시작되었고 깨닫는 자만
동참하고 있다. 그리고 선생이 너희
곁으로 돌아오는 날을 생각해 보아라.
얼마나 설레느냐.
그러니 미리부터
승리의 기쁨으로 행하면서 준비해라.
그 터전 위에 선생을 맞이하자.
섭리야.
너희의 삶 가운데 승리의 기쁨이
폭발되길 원한다.
매일 머리에 인식하여라.
선생! 휴거! 승리! 기쁨! 매일 외쳐라.
선생의 이름을 부르면 휴거, 승리,
기쁨은 자동으로 따라붙어야 한다.
승리한 이 역사 속에 기쁨이
부족하기에 성령이 말했다. 기쁨으로
행하면 모든 일이 잘되고 안될 것도
잘된다. 사람이 기분이 좋으면 짜증도
안 나고 화도 안 내게 된다.
죄도 왜 짓는 줄 아느냐.
기쁨의 방향이 자꾸 죄 쪽으로
흘러가서 그러하다. 승리를 깨닫고
승리의 기쁨을 폭발시키면 죄를
지으라고 해도 안 짓지.
왜 지치고 힘이 드느냐.
승리의 기쁨을 폭발시키지 못해서
그렇다. 기쁜데 힘이 들겠느냐.
선교하는 자가 적다고?
기도하는 자가 적다고?
기쁨이 없어서 그래. 그것에 기쁨을
폭발시키지 못해서 그렇다.
승리의 기쁨을 폭발시키면
선교해야지만 기쁘고
기도해야지만 기쁘다.
주의 일을 해야지만 기쁘다.
섭리역사의 승리를 깨닫고 기뻐
감사하는 자들은 하지 말라고 해도
주의 일을 하고야 만다.
인간의 본능이 그래.
재밌고 기쁘면 하지 말라고 해도 한다.
너희 신부들은 본능을 넘어서
한 차원 더 높은 기쁨을 깨달아야
한다. 바로 승리한 곳에서 기쁨을
폭발시키는 것이다.
승리는 무엇이냐, 휴거다.
휴거의 중심은 무엇이냐, 선생이다.
바로 선생을 향한 기쁨만을
폭발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핵이다.
지금 섭리역사에 있어서
승리의 기쁨을 폭발시킨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너희가 휴거되었고, 휴거의 삶을 살면
역사의 판도가 바뀐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한 차원 뛰어오르게 된다는 말이다.
하늘은 차원을 높일 때 항상 너희에게
축복을 부어 주며 올라오게 한다.
지금 너희 가운데 승리의 기쁨이
폭발하면 이 역사도 승리의 기쁨으로
폭발하게 된다.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이를 보고
지나가는 자들도 의아해서 이곳에
몰리게 되는 것이다. 잔치하니
잔칫집에 한번 들르는 것이다.
섭리야!
기도의 차원도 생명의 역사도 강의,
관리의 역사도 모두 차원을 달리해야
하지 않겠느냐. 휴거된 자로서
성삼위의 사랑의 대상체로서 차원을
완전히 달리해야 하지 않겠느냐.
(아멘!!)
승리의 기쁨을 폭발시켜라!
매일 자신의 생각과 마음속에
승리의 기쁨을 폭발시켜라.
그리고 주의 일을 기쁨으로 행하여라.
그럼 모든 것에 차원이 달라진다.
휴거의 차원도 금방 700선으로 간다.
승리한 이 섭리역사에선 환난과
고통도 기쁨 속에 맞이하는 것이다.
승리한 이 역사에서 기쁨을 깨우는
성령이다. 나의 말을 실천하고 행하면
즉시 기쁨이 올 것이다. 너희 마음
가운데 언제나 승리의 기쁨이
폭발하길 바란다. 안녕.
너무너무 사랑한다.
성령이다.
♥ 11월 20일 금요일
1. 확신에 찬 선생 증거
2. 700선 휴거란 하늘의
뜻을 이루는 것에 최우선의
목적을 두는 삶을 사는 단계
작성일 : 2015. 10. 30. / 11. 4.
작성자 : 이주인
(성령님께 생활 속에서 몇 가지를
여쭌 적이 있습니다. 그중에 700선
휴거의 삶에 대해서도 여쭈었습니다.
그때마다 깨닫게 해 주신 내용들을
토대로, 지금의 때에 가장 중요하고
합당한 말씀 중 하나를 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새벽에 모든 마음을
비우고 집중함으로 받은 말씀입니다. )
*성령님의 말씀*
지금의 때에 가장 중요하고
합당한 말씀 중 하나가,
시대와 선생을 증거하는
너희의 자세에 대한 말씀이다.
2015_1120 금 계시말씀.hwp3
이는 사도의 시대에 가장 합당한 말씀
중 하나이다. 고로 오늘 이 말씀에
대해 이르겠다.
증거자에게 가장 필수적이며
또한 핵으로 가져 할 것이
무엇이겠느냐? 확신이다!
곧 증거해야 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에 대한 확신이다.
다시 말해 증거해야 할 자나
증거할 사연이나 증거할 장소 등,
증거해야 할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확신으로 증거자에게서
능력이 나가는 것이다.
너희는 이 시대와 선생을 얼마만큼
확신하느냐? 대답해 봐라. 가식이
아닌 너희 자신을 깊이 보면서
대답해 봐라.
(섭리인들마다 모두 각양각색의 답을
할 것 같습니다. 저 자신은 100%라고
말할 수 있지만, 성삼위와 선생님께서
보실 때는 ‘100%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니 살짝 걱정이
됩니다. 또한 100%라면 저 자신에게
‘내가 왜 이렇게 살까?’라는
자문(自問)도 하게 되니, 부끄럽지만
답을 쉽게 못 하겠습니다.)
그래. 솔직하구나.
너희 대부분도 쉬이 답을 못 할
것이다. 이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아직은 700선 휴거의 단계에 오르지
못한 연고이다.
고로 먼저는 ‘알아야 한다.’라고
연속으로 성삼위가 말하는 것이다.
곧 알아야 그 바탕 위에 깨달음이
있고, 그 깨달음의 바탕 위에 확신이
생기기에 그러한 것이다. 또한 그로
인해 홀연히 700선 휴거의 단계에
올라 있기에 더욱 ‘알아야 한다.’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섭리의 많은 자들 중 특히나 오래된
자들은, 시대와 선생을 알고 깨닫고
확신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 성령이 보기에 그것은 착각이다.
제대로 아는 자들이 적다.
이는 새로운 자들도 매한가지이다.
이것이 섭리의 가장 취약점이다.
너희 중 많은 자들이 휴거만 이루면,
확신에 차서 선생을 증거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의
너희의 모습을 보아라.
진정 그러하느냐?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자가 많을 것이다.
이는 앞에서 이른 것처럼, 아직
700선 휴거라는 완성급에 이르지
못한 연고이다.
그렇다면 700선 휴거는
어떤 수준의 단계이겠느냐?
(성령님의 말씀을 들으니 많이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700선 휴거란
선생님과 같은 생각을 하며, 선생님이
원하고 바라는 것을, 저 또한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행하는
단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 너의 말도 옳다. 그렇지만
나 성령이 더 세밀히 일러 줄게.
너희가 <3.16> 성자 승천과 휴거를
이루기 전에, 휴거에 대해 환상적으로
생각했던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휴거를 이루고도 처음에
스스로에게 낙심하고, 또한 형제에게도
시험에 든 자들이 꽤 있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선생님과 성자의 조건으로
휴거를 이루어 이러한 모습이구나.’
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거나, 형제를
이해하려 했을 것이다. 그것이 옳다.
그런데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러하다.
너희는 휴거를 영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육적 생활을 기준으로
보았기에 그러했던 것이다.
(성령님, 조금 어렵습니다.)
차근차근 일러 줄 것이니
잘 들어 보아라.
너희가 휴거는
영이 하는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실상은 스스로나 형제의 육의 모습만
쳐다보았던 것이다. 이는 영은
보지 않고 육만, 그것도 너희가 가진
육성으로 쳐다보고서 판단했기에
그러한 것이다.
곧 너희는 휴거만 되면,
육이 드라마틱하게 변화할 것이라는
환상적인 기대를 했었다. 그렇지만
영이 휴거를 하는 것이니, 영만이
드라마틱하게 변화를 이룬 것이다.
육은 육성을 가진 채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고, 또한 300선의 휴거는
기본선과 같으니 그리 크게 육이
변화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드라마틱한 환상적인
기대로 휴거된 모습을, 그것도
육에게서만 찾으니 스스로나 형제를
보며 힘이 빠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휴거 전 육의
모습보다는, 분명 더 나아진 너희의
모습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드라마틱한 환상적인 기대가
눈을 가린 것이다.
이에 대해 더 세밀히 이르겠다.
영이 300선의 기본적인 휴거를 이뤘다
하여도, 너희는 스스로를 휴거된 자로
연속해서 자각시켜야 한다. 그래야
육에 속한 생각이 이를 확실히 알고,
육성을 통제하는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곧 자각을 통한 생각으로
육성을 통제하는 것이다.
거기다 자각이 더욱 휴거의
확신을 주기에, 더 영을 찾게 된다.
그로 인해 도움을 많이 받게 되니,
마침내 육이 더 이상적으로 변화를
이루는 것이다. 고로 영과 육이
더 이상적으로 되는 것이다.
또한 형제인 상대도 휴거를
이룬 자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그의 육의 단점보다 장점이
더 보여, 크게 시험에 드는 것이
없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영이 휴거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늘
자각하고, 형제인 상대는
인정해 줘야 한다.
그리고 선생이 휴거된 영을
자주 부르라고 일렀다.
이는 자신의 영을 부를 때마다
스스로가 휴거된 것을 더욱
자각하기에, 육이 더욱 이상적으로
휴거의 삶을 제대로 이 땅에서 살 수
있게 한다.
또한 스스로가 더욱 휴거를 확신하니
육의 행실이 더 이상적으로 된다.
고로 이를 통해 더 차원 높은
휴거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휴거를 영이 이루었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서 또한 확실히
자각함으로, 생각을 연속해서
휴거되었다는 확신을 해야
낙심 없이 더 차원을 높일 수 있다.
또한 형제인 상대도 그리 봐야
모순 없이 장점을 먼저 볼 수 있기에,
시험에 드는 일이 줄어드는 것이다.
고로 다시 분명 말하겠다.
영이 휴거를 이룬 것이니, 육만 보며
거기에 휴거의 기준을 두지 말아라.
(죄송스럽지만 육의 변화로
영이 휴거된다고 배웠으니,
육을 안 쳐다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 좋은 질문이다.
분명 육의 변화로 영이 휴거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이른 것이
생각나느냐? 너희는 휴거 전의
모습보다는 분명 더 나아져 있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더 이상적인
모습의 육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2015_1120 금 계시말씀.hwp4
성삼위와 주에 대한 사랑과 믿음,
그리고 말씀에 대한 가치와 절대성
그리고 순종 등 여러 방면으로 더
나아져 있다. 이 부분들이 육성으로
가려질 때도 있지만, 분명 휴거를 이룬
자들이라면 300선까지 견고해져 있다.
300선이 휴거의 기본선이니,
기본만큼만 육이 변화를 이룬 것이다.
그런데 너희는 스스로에게도
형제에게도 완전한 기준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그것이 모순이다.
그 모순된 사고(思考)가 사고를
일으켜, 더러는 스스로에게나 형제에게
시험이 들어 섭리사를 등진 자들도
있다.
곧 300선 휴거를 이룬 자들은
육이 휴거의 기본선만큼만,
변화를 이루었다는 것을 기억하여라.
또한 휴거선이 낮아, 성자와 선생의
조건이 크게 작용하여 휴거를 이룬
자들은, 더 영과 육의 간격이 크다.
곧 육이 덜 변화된 모습이었다.
고로 사랑과 감사를 핵으로,
빠르게 그 간격을 좁혀야
곤고함이 덜하다. 또한 그로 인해
육도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니 더 나은
모습을 보인다. 그래야 스스로에게나
형제에게도, 육의 모습으로도
휴거되었음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700선 휴거에 대하여 이르겠다.
지금의 너희에게 700선 휴거가
목표가 되어야 하는데, 이것에 목적을
두며 소망을 두며 뛰는 자들이
생각보다 많지가 않아 걱정이다.
‘그냥 어떻게 되겠지.’라는
안일주의에 빠진 자들도 있고,
이미 휴거는 되었으니 더 이상
몸부림치며 올라가는 것이 귀찮게
여겨지는 자들도 있다. 고로 이 생각이
발목을 잡아, 더 이상적 휴거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말씀을 받는데 육신이 너무
피곤하기도 하고, 말씀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중도에 끝을 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며칠을 더
기도해서 이후의 말씀을 받아
정리하였습니다.)
*성령님의 말씀*
700선 휴거는 인간으로서 신이 된
단계이다. 이는 너희가 자주 접한
말씀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700선 휴거를 이룬
자들의 면면을 보아라. 그들의 핵인
생각이 어떠한지를,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통해 느껴 봤을 것이다.
(성삼위와 선생님의 뜻을 이루는 것에,
최고의 목적을 두고 사는 것
같습니다.)
옳다. 그들은 한결같이 하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것을 최우선의 목적에
두는 삶을 산다. 선생이 그러한
것처럼... 이를 쉽게 얘기해 줄게.
예전에 성자가 지상에 있을 때,
너에게 한 말이 있지?
네가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기록을 안 했지?
(예. 죄송스럽고 민망한 마음입니다.
성자께서 승천하시기 한 달쯤 전에,
휴거에 대한 말씀을 제게
이르셨습니다. 그때 승천일이 휴거
날이라는 것을 일러 주시면서,
저희가 착각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성자께서는
“선생이 너희를 휴거시키는 이유가
너희를 향한 사랑 때문이기보다는,
성삼위를 사랑하기에 하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 크고 더 우선이다.
그런데 너희는 너희를 사랑하는 것이
너무도 크고 우선이기에, 선생이 모든
희생을 감수하고서 나와 같이 휴거를
시킨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분명 말하지만 그것이 아니다.
선생은 성삼위를 향한 사랑이 너무도
크고 더 우선적이기에, 그 사랑을 위해
성삼위의 뜻을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휴거를 시키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선생은
성삼위에 대한 사랑이 최우선이고,
너희의 대한 사랑은 그다음이다.
고로 성삼위를 사랑하니 하늘의 뜻을
이루려고 그리도 몸부림치며
희생함으로, 나와 같이 휴거를
시키려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는 너무도 생소한 말씀이라서
듣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성자께서
승천하신 후에, 이 말씀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특히나 이 말씀이
‘700선 휴거의 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 옳다.
성자가 그때 네게 말한 것이
700선 휴거의 핵이다. 곧 선생은
성삼위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으로,
하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삶을 산다.
선생의 그 단계가
700선 휴거로의 핵이다.
이에 대해 깊이 이르면 이러하다.
선생은 하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서 택함을 받은 자이다.
곧 성삼위는 이 땅을 창조한 목적을
이루는 데 뜻을 두었다. 고로 지상
역사의 시발점이 사랑의 뜻이다.
이 뜻으로 지금도 역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므로 이를 명확히 아는
선생은, 항상 최우선을 성삼위의
의향에 맞춰서 늘 행한다. 이는
시대 구원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큰 덕목이다.
고로 성삼위에 대한 사랑이 핵이 되어,
하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출현한 사명자가 선생이다. 이런즉
항상 최우선으로 하늘의 뜻을 이루는
것에 목적을 두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는 성삼위의 진정한 신부이니,
신랑을 극히 사랑하여 그 의중대로
움직이는 것과 같다. 이런 삶이
진정한 사랑의 삶이요, 휴거의 삶이요,
하늘의 뜻을 이루는 삶이다.
(이 말씀을 들으니 선생님께서
하늘만 의식하셔서 하시는 일들이
가끔씩은 이해가 안 되었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에서야 모두 수긍이
됩니다.)
그래. 알겠다.
그러면 또 이것에 대해 이르겠다.
마치 이와 같다.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자의 말을 듣고,
그가 시키는 일을 기뻐하며 하는
것이다. 곧 사랑하기에 사랑하는 자의
말에 순종하며, 그가 시키는 일을
감사히 하는 것이다.
시대 하와 표상인 부흥강사가
대표적이다. 늘 그녀는 사랑하니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 그가
시키는 일을 힘들어도 감사하다고,
입버릇처럼 너희에게 얘기하지 않느냐.
고로 700선 휴거의 핵이 이러하다.
곧 진정 사랑하니 사랑하는 성삼위와
선생의 소원인, 하늘의 뜻을 이루는
것에 최우선의 목적을 두는 것,
바로 이것이다. 그래야 너희가
개인만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성삼위와 선생과 함께 섭리인으로서의
온전한 삶을 사는 격이 된다. 또한
복직된 하와로서 이상적인 삶을 살게
된다.
이런즉 성삼위와 선생과 부흥강사가,
속히 700선 휴거가 되라고
목청을 높이는 것이다.
2015_1120 금 계시말씀.hwp5
예를 들어 볼게.
결혼한 신부라면 신랑을 사랑해서
모든 것을 해야 합당하다. 곧
사랑함으로 신랑을 위한 삶을 살아야
가장 합당한 신부의 삶이 아니겠느냐.
즉 신랑을 사랑하는 것이 핵이 되어
가정의 일을 하고, 사랑하니 신랑이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부는 신랑에 대한 사랑으로,
그 의중대로 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성경적으로 풀면
성삼위와 주를 사랑함으로
그 의중대로 움직이는 것, 또한
이것이 목적이 되어 하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이런즉 휴거의 차원이 사랑으로
높아진다고 이른 것이다.
더 차원 높은 사랑일수록 휴거의
차원도 높아지는 것이다. 그로 인해
사랑만 보여 사랑하는 성삼위의 뜻을
이루려는 단계로 가는 것이다.
이것이 700선 휴거이다.
여기서 또 각자 의를 행하는 대로,
그 값으로 처소의 크기와 외양이
결정되는 것이다.
고로 더 성삼위와 선생에 대한 사랑에
불타올라라. 그로 인해 하늘의 뜻을
이루는 자들이 되도록 하여라.
이것이 700선 휴거의 단계이다.
진정 이런 자들이야말로 확신을
가지고 시대와 선생을 증거하는
자들이다. 이들에게는 물불이 두렵지
않은 담대함과 극히 큰 능력이 임하니,
땅끝까지 시대의 복음을 전할 수 있다.
고로 마침내는 온 나라와 민족과
열방이 섭리의 것이 될 것이다.
나 성령은 이 모든 것이 너희를 통해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며
또한 확신한다.
고로 확신을 가진 증거자가 많이
나타나길 기대한다. 곧 속히 더 많은
자들이 700선 휴거에 올라, 시대와
선생을 증거하는 데 확신을 가지며
온전히 외치길 기대하고 또 기대한다.
성삼위와 선생을 위한 삶, 곧 뜻을
이루는 삶이 너희 중에 많은 자에게서
온전히 일어나길 기대하며 또한 많은
증거자들의 확신으로 인해 온 열방이
섭리의 것이 되길 기대한다.
성령이 전하였다.
♥ 11월 20일 금요일
신부들아,
생각의 수준을 높이자
작성일 : 2015. 9. 29 AM 06:35
작성자 : 오은미
(최근 한 회원과 심정적으로 풀리지
않은 것이니 있으니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 자체가 불편했고 서로
마음의 문을 완전히 열고 대화하지
않는 한 서로 더 오해만 쌓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그 혼체를 불러 대화를 해 보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생각은 보이고 들리지 않지만
실제 그 사람을 마주한다고 생각하고
대화를 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회원의 모습 속에서 저의 부족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고, 서로 닮은
부분이 많구나 하는 것이 깨달아지니
풀리지 않았던 마음이 마치 겨울에
눈이 녹듯 녹아내렸습니다.
월명동을 가기 위해 기차를 타고
감사기도를 할 때 ‘왜 이렇게 부족한
인간끼리 부러워하고 비교하느냐?’는
성령님의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섭리사 서로 부러워하고 비교하는
병을 고치자고 하시며 마음에
성령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기록했습니다.)
* 성령님의 말씀*
사랑 보고 택하고 뽑았다고 해도
은연중에 서로를 부러워하고
비교하고 질투를 하는구나.
자신보다 차원의 단계가 높은 자라면
부러워하지 않을 것인데, 나이대가
비슷하거나 혹은 뛰는 부서가 같거나
행함과 수준 또한 비슷하니 더욱
조건을 견주고 행함을 견주고
비교하고 부러워하고 한다.
완전히 차원급이 다르다면
비교도 질투도 하지 않을 것이다.
괜한 비교과 부러움으로 생각에 힘을
빼고 정신에도 힘을 빼 버리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제대로 집중하고
행할 것에 100% 올인하지 못하고
자기의 개성의 빛은 더욱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비교하면 영적으로
그 사람의 가슴이 녹아내린다고 하며
가인의 성격을 강의할 때 고칠 것만
말하지,
정작 가르치는 자들이 그것을
완전히 고치지 못한 채 가르치니
말씀의 위력이 없고, 강의를 듣는
자들도 ‘고쳐야지’ 결심하고 돌아가지
못하고 하나의 지식으로만 듣고
가 버리는구나.
왜 부족한 인간을 끼리 서로를
부러워하고 비교를 하고 질투를
하느냐? 제대로 닮고 싶은 자,
제대로 도전의 목표로 삼을 자를
쳐다보고 그를 좇아 닮아 행하는 것이
너에게도 유익이고 상대에게도
유익이지 않겠느냐?
이 지구 땅에서 가장 온전한 자,
삼위께서 완전한 자라고 칭하는
선생을 닮는 것에 열을 내고
그의 정신을 받기 위해 연구하고
말씀 속 심정 보화를 캐내는 것에
네 에너지도 시간도 쏟는 자가 되어라.
선생을 닮고 싶어 행하면 하나님도
도우시고 나 성령과 성자도 도우며
선생 또한 영으로 혼으로
돕고 이끌어 주지 않겠느냐?
온전하지 못한 땅의 사람을 크게 보고
닮으려다가 그의 보이는 사람의
부족함에 실족하고 정죄하려 하지
말고 온전함을 입은 선생의 몸부림을
따라 너도 몸부림의 삶을 쳐다보고
온전함을 입은 선생의 성삼위를 향한
그 사랑을 따라 너도 휴거 시대,
신부시대를 살아가며 사랑의 기록을
남기듯 사랑의 삶, 그 사랑을 전하고
그 사랑을 증거하는 자가 되어 살아라.
옆 사람을 닮고 그 사람을 따라
평생을 살아갈 것이냐?
영원한 휴거의 삶을 허락하고
너를 사랑으로 산 선생을 닮아
평생을 그를 따라 살아라.
(아멘. 성령님. 선생님을 너무
완전하시기에 보고 배울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우선으로 지금
이 시점에 보고 배울 것을 확실히
가르쳐 주세요)
선생은 늘 언제나
성삼위의 눈치를 살피고 모든 것의
기준은 성삼위의 말씀이었다.
사람의 만족을 채우려고 살지 않았고
오직 성삼위께서 기뻐하시고
만족하시는 그 뜻을 위해서만
지금 이순간도 살아가고 있다.
그것을 위해서 육이 고단하고 힘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을 견뎌야 한다
할지라도 오직 성삼위를 기쁘게
만족스럽게 하는 것에 모든 것을
집중했다.
2015_1120 금 계시말씀.hwp6
전능자를 너무 사랑하니
선생은 육신을 가진 인간으로서
신적 차원까지 몸부림의 조건,
행함의 조건을 쌓는 것도 망설이지
않고 행했다. 사람을 보지 않고
성삼위를 본 것이었다.
그와 일체 되기 위한 삶이었다.
사람을 보고 살면 실망이다.
그 사람이 너를 구원시켜 주지도
휴거 차원을 높여 주지도 않아.
너를 구원시킬 자, 너를 휴거를
이끌어 줄 자만 보는 것이 지혜다.
물에 빠진 자가 자기를 살려 주려고
온 자를 보지 않고 다른 것을 보고
있다가는 더욱 깊은 물속에 빠져
버린다.
자신을 구조하러 온 자를 쳐다보고
그가 시키는 대로 호흡을 하고
동작을 해야 물속에 허우적대는
자에게도 구조를 하려고 하는
자에게도 유익이지 않겠느냐?
사람을 보고 섭리길을 가는 자들은
결국 힘들거나 한계가 왔을 때
사람을 찾게 되고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리 습관이 든 자는
신앙생활을 끝까지 하지 못하니
그 인생을 창조하고 기른 성삼위도
그 인생들을 보며 실망하시고 목숨을
걸고 말씀을 주는 선생도 실망한다.
사랑의 만족을 위한 너희들이
창조주께 만족이 아닌 실망을 줘서
되겠느냐?
말씀 듣고 은혜를 받았을 때,
사랑이 뜨거울 때 열렬히 성삼위와
주를 향한 사랑의 고백을 하다가도
어느새 곁에 있는 성삼위와 주를 보지
못하고 사람을 쳐다보고 시험 들고
힘들어하는 자들을 보면 ‘아직 주의
마음을 받지 못한 어린 자구나’ 하는
생각한다.
어린아이들을 생각해 보아라.
그들의 생각과 행동 속에서 원숙함이
깊은 인내가 배려가 느껴지느냐?
아니지? 눈앞에 있는 것을 갖기 위해
칭얼대고 어리광을 부리는 그 모습을
생각해 보아라.
휴거된 너희들은 더 이상 어린아이의
사고와 행실을 벗어나 성삼위의
사랑의 대상체다운 원숙하고 깊은
인격을 지닌 자들이 되어라.
상대와 마음의 신경전을 하며
줄다리기를 할 때이냐?
선생은 너희들의 허다한 죄를
지옥 고통을 받으면서도 다 덮어 주고
휴거의 조건까지 세워 주었는데
고작 육은 사소한 문제에 신부의
위신을 떨어뜨리지 말기 바란다.
선생의 육신이 되어 뛰겠다는 고백을
하며 마음속 어린아이 사고를 버리지
못하니 어찌 그를 사랑의 상대체로
삼고 6000년 사랑의 뜻을 이루며
창조 목적, 휴거의 역사를 이끌어
가겠느냐?
5살짜리 어린아이를 앞에 앉혀 놓고
사랑의 뜻을 설명하고 심정을 전한들
지극히 높으신 창조주의 뜻을
어린아이의 사고로 얼마나 깨닫고
행하겠느냐? 생각의 수준대로 행함의
수준이 결정이 되는 것인데 말이다.
사랑하는 섭리사 신부들아.
행실의 수준을 높여서
주의 몸이 되어 진정 뛰길 원하느냐?
행실의 수준을 결정짓는 네 생각의
수준을 정확히 보고 그 어린 생각에서
벗어나라.
(아멘. 사사로운 감정과 성숙하지 못한
생각을 갖는 것이 마치 어린아이
비유를 들어 말씀해 주시니 민망하고
부끄러워요.)
어린 생각을 가진 자들
비단 소수들에게만 해당되겠느냐?
행실의 수준이 낮은 자들은 어린아이
사고를 갖고 살기에 그런 것이 행실의
차원이 머물러 있는 자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때때마다 행할 것을 알려
준다. 그러나 어린 자식은 부모의
생각을 읽지 못하고 투덜거리고
부모가 한 말은 안중에 없고
자기가 좋아하는 행동을 해 버린다.
말씀을 대하는 너희들의 모습이다.
삼위와 주는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너희들의 영과 혼과 육을 보고
때때마다 행할 것을 알려 주나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행하는 자보다는
피곤하다 어렵다며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붙이며 결국 자신이 계획한 일을
자신이 하고 싶은 차원의 것을 행하고
만다.
사랑들아. 말씀 앞에 그 말씀을 주는
선생 앞에 너 스스로 어떤 모습이냐?
진정 자신을 알고 삼위 앞에 주 앞에
온전한 원숙한 사랑의 상대체가
되어라.
생각도 그 마음도 원숙한 자만이
선생의 말귀를 알아듣고 제대로
행할 수 있는 것이다.
휴거 차원을 높이기 위해 급급함을
보이기 전에 선생을 만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기 전에 스스로 모습을
온전함으로 만들기에 열을 내는
이때를 보내자.
입술 고백만의 사랑이 아니라
주가 원하는 것을 행함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사랑을 하는 자 되기다.
생각의 수준을 높이지 않으면
행함의 수준도 높일 수 없으니
매 순간 생각을 점검하기, 자기 생각을
비우기 성삼위와 주의 생각을 담기다.
생각의 실체를 네 말과 네 행동으로
보여 주게 되는 것이니 네 말과
네 행동을 자세히 보면 생각의 수준이
어딘지 알 수 있다.
신부들아. 생각 수준을 높이자.
그 생각이 주의 생각에 닿도록
성삼위의 생각이 닿도록 도전이다.
생각으로 그를 찾고 부르기다.
생각에서 삼위와 주를 놓지 않기다.
생각에서 불의한 것 끊어 버리기다.
생각에서 잡념을 끊어 버리기다.
관념으로 듣지 말고 실천해.
그럼 네 생각이 주께 닿게 된다.
네 행함도 주께 닿게 된다.
알겠지?
(성령님, 감사해요. 가정의 어머니가
자식을 낳아 그 어린 시절부터 장성할
때까지 끊임없이 사랑으로 가르치고
품어 주듯이 성령 어머니께서는
인류를 그리 사랑으로 키우시고
인도하신다는 생각이 드니 그
사랑이 너무 크고 감사함이 들어요.
성령 어머니는 진정 근본 사랑의
주인이십니다.)
사랑으로 하면 쉽다.
네 힘으로 하면 어렵지만
사랑으로 하면 쉬워. 네 생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높은 산도 사랑으로
하면 단숨에 그 산을 넘는다.
휴거의 삶도 사명의 일도
선생을 맞을 준비도 사랑으로 해.
나 성령이 계속 코치하고
이끌어 줄 것이다.
그것이 나 성령의 역할이다.
오늘도 사랑으로 교육한
천모 성령이다.
2015_1120 금 계시말씀.hwp7
♥ 11월 20일 금요일
세상의 음란한 것에서
100% 벗어나기다
2015년 11월 20일 금요일 새벽 계시말씀
작성일 : 2015. 11. 2. PM 03:00
작성자 : 정하빛
(저의 작은 모순, 1%의 틈으로
큰 죄를 짓게 된다는 것을 무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은근히 자기
합리화하며 지은 죄들과 스스로
이것은 죄다, 아니다 규정하면서
삼위와 선생님 앞에 적당히 사랑한
것이 너무 죄송하여 회개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다.
완전하신 하나님과 영원히 같이
살려면 완전한 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자신의 사명에 가려서
또 섭리 연륜에 의해서 자신의 살아온
생활 습관에 의해서 죄인데도 그냥
쉽게 넘기는 자들이 있다.
죄에 대해 일렀지? 죄는
하나님과 반대되는 것이 모두 죄이다.
왜?
하나님의 반대 세력은
모두 사탄 주관권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영적인 눈을 떠서 보지
못하니 작은 죄, 하찮은 죄인 것
같아도 하늘 심정을 상하게 하고
그로 인해 사탄에게 매여 있는 너희
모습을 보면 나는 너무나 애가 탄다.
그러니 너희는 구원받을 자요,
나는 구원할 자인 것이다.
모르면 아는 자에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겠느냐.
사람의 생각으로는 성삼위가
이행하시는 일을 단 하나도 이해할 수
없다. 그러하니 더욱 성삼위의 생각을
받고자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여라!
더욱 하늘의 심정을 맞추는 자,
그와 심정과 일체 되어 그의 몸이
되어 뛰는 자들이 되어라.
더 이상 강요는 안 한다.
그때 해야 할 일을 말해 줄 뿐이다.
이미 택할 자는 택했고, 내가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너희의 행함으로
우열이 나뉘고 있구나.
하늘의 것과 맞지 않고 맞추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 자, 힘들다고 불만
불평만 내뱉는 자는 스스로 ‘열’로
가게 되고, 하늘의 행하심에 반응하며
믿고 그대로 순종하며 행한 자는
‘우’의 편으로 오게 된다.
하늘은 옳은 기준을 세워 줄 뿐
자신의 행함으로 자신이 ‘우’인지,
‘열’인지 갈라지게 되는 것이다.
해야 되기에 하는 게 아니라 진실로
이 모든 것이 너의 것이 되어야 한다.
네 개성이지만 그 근본과 생각의
중심이 모두 나와 일체 되어야 한다.
<네 체질을 선생 체질로 바꾸라!>
함이다. 해야 되니 그 순간만 하는
것은 다 들통나게 되고, 잘하다가
죄짓고, 잘하다가 죄짓고 이것을
반복하게 된다.
진정 이 섭리역사를 깨달았다면
내가 누군지, 어떤 일을 하러 왔는지
지금 이 순간 행하는 모든 것의
근본을 깨달았다면 반드시 나와 아주
일체 되어라. 말씀을 해 줘도 굳은
뇌로 듣고, 자신의 수준대로 들으니
변화가 안 일어난다.
섭리는 변화의 세계다.
날로 차원을 높이며 새롭게 하는
역사다. 내가 날로 새롭게 하는 것은
‘새롭게 해야지.’생각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런 영계를 보고 매일
그러하신 성삼위를 대면하며 살기
때문이다.
너희는 너희 스스로 규정한 죄의
범위를 없애야 할 것이며 나의 말에
100% 순종해야 진정한 하늘의 축복을
받게 된다.
전도나 새벽기도 등 공적만 쌓고
생활에서 나를 진정 사랑치 않고
적당히 미디어를 보며
‘나는 공적이 있으니까 괜찮아.’ 하는
이런 낮은 차원의 생각은 용납을 안
한다.
너의 사명, 명예로 인해
‘나는 목사니까. 권사니까 장로니까.’
하는 핑계도 내게 용납이 안 된다.
그러면 더 잘해야지.
더 휴거된 삶의 본을 보여야지.
이렇다 저렇다 하는 핑계로
TV를 보고, 미디어를 보고, 생명을
관리한다는 핑계로 놀러나 다니고,
죄를 죄로 여기지 못하고 무덤덤해진
자들이 있다.
섭리 안의 기성인이 무엇이겠느냐.
이렇게 선생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고
죄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 자가
섭리 안의 기성인이다.
죄를 짓는 것보다
이렇게 무감각해져서 세상 것이나
바라보고 일반 세상 삶을 살 듯이
사는 자들이 많구나.
그 삶을 벗어나라.
휴거된 자라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며 육의 삶도 운세권의 축복이
다 너에게로 온다.
이 말을 듣고 자신을 완전히
깨부수어라! 완전한, 그리고 완벽한
신부가 되도록 너를 만들어 보아라.
성자 승천 후,
성령의 역사, 사도의 역사,
선교의 불같은 역사가 왜
일어나지 못하는가!
각자의 죄 문제,
자신이라는 틀에 박혀 있기 때문이다.
아직 수준이 자신의 차원에 머물러
있구나.
나를 믿어라.
그리고 그 근본인 성삼위를 믿어라.
너의 삶을 진실로 변화시켜라.
죄의 근성은 아예 싹 뽑아 버리기다.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
‘세상 사람들은 이 정도는 기본인데’
하면서 세상 법으로 규정짓지 말고
오직 성삼위의 뜻을 정확히
절대적으로 지켜라.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네가 스스로
망하게 된다.
자신의 죄는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다시는 하지 않기다. 이것을
못 하면 지도자도, 나의 몸이 될 수도
없다.
네가 은근히 짓는 그 죄의 근성이
너를 사망의 길로 인도하고 있으니
또 사탄이 너의 발목을 잡고
너의 축복의 길을 막고 있으니
더욱 기도와 말씀 무장!
더욱 근신함으로 하루하루를
깨끗한 신부로 살아야 한다.
깨진 그릇은 절대 쓸 수가 없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가 순간 죄짓고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저버리는 자가
되지 말아라.
기회는 다 주었다.
이제는 죄를 다스릴 수 있다.
용서의 선물과 올해 연말 마지막
기회를 줬는데도 죄를 짓는 자는
그 사상에 문제가 있는 자이다.
수술을 받자.
스스로 더욱 근신하여라.
2015_1120 금 계시말씀.hwp8
앞으로 자신의 죄 문제는
자신에게 묻겠다. 자신이
조건을 쌓고 오는 만큼 용서해 준다.
그러니 더욱 용서받기 힘들다.
그렇다고 포기하지 말고
죄를 아예 짓지 말라고 하는 말이니
무섭게 듣고 너의 영혼을 살리어라.
1%의 틈으로 사탄이 들어와
너의 뇌를 다 갉아먹으니
1%도 생각의 틈을 주지 말아라.
성삼위, 선생 외에는 모두 틈이다.
매일 선생을 붙잡고 살고
말씀과 기도를 사모하여라.
너의 입에서 말씀의 은혜가 풍겨
나오고 너의 행실에서 성령의 향기를
풍기어라.
하늘의 법을 지키는 것이
너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는 것이니
법을 적당히 안 지키면서
육만 편하게 살려 하지 말고,
완전한 법을 지켜 세상 앞에도
하나님 앞에도 자신 있게
자유를 누리며 살아라.
죄가 있는 자는
사탄이 자꾸 힐문하고
그런 자를 쓰면
섭리사에 사탄이 틈타게 되니
더욱 완전하고 깨끗한 조건을 세우는
자들이 되어라.
절대 선생 사랑이다!
사랑이 튼튼한 자는
어떤 유혹과 어려움에도
죄를 짓지 않는다. 성삼위와 선생을
강하게 붙잡는 자는 튼튼한 자요,
나에게 힘이 되는 자이다.
죄에 매여서 고통 속에 살지 말아라.
죄짓지 말고 죄의 요소는 100%
없애서 죄와 완전히 상관없는 자들이
되자.
너의 작은 생각, 마음에서부터 죄가
시작됨을 알고 절대 선생 최우선의
삶이다. 알겠느냐. 모두 어린아이처럼
이 말씀을 100% 받아들이고 하나님
앞에 사랑이 떳떳한 자들이 되어라.
그리함으로 6000년의 한을 풀고
선조들이 받지 못한 엄청난
사랑의 축복을 다 받고 살아라.
너희를 축복한다.
죄를 다스리며 승리의 삶을 살아라.
사랑한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