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5.11.22 (일)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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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1.22 (일)
- 성경 본문
- 고린도전서 13장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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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_1122 주일(그 순간 거쳐 가는 사람들).hwp1
2015년 11월 22일 주일
그 순간 거쳐 가는 사람들
[ 고린도전서 13장 10절 ]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0 but when perfection comes,
the imperfect disappears.
* (모든 말씀이 그렇지만)
이 말씀은 특히 대언하는 자가
정말 잘 전해야 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는
권위 있게 전하되, 오늘 말씀은
가르치는 말씀이니
잘 설명해 주듯 전한다. 그리고
성령님의 말씀을 전할 때는
가르치듯 잘 설명해 주면서 온화하고
부드럽게 웃으면서 전해 주고, 강하게
찌를 부분은 확 찔러 주면서 전한다.
전체적으로 성령님은 온화하고
부드럽지만 강렬한 분위기다.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말씀 속에 역사하시며
함께하십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성령님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11월 넷째 주 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그 순간 거쳐 가는 사람들’입니다.
◎ 이 말씀은 선생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안타까운 것을 놓고
하나님과 성령님께 고하며 대화하면서
받은 말씀입니다.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짧지만,
‘핵을 치는 말씀’입니다. 고로
듣는 대로 쑥쑥 이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만큼 집중하고 잘 들어야
말씀이 ‘뇌’에 확 꽂혀서 충격적으로
깨닫게 됩니다.
정~말 잘 전하고,
정~말 잘 듣기 바랍니다.
<말씀 시작>
선생이 모든 사람들을 놓고 기도할 때
안타까운 사람들이 생각나, 하나님과
성령님께 고했습니다.
“예전에는 그리도 열심히 하던
사람들인데 <이성>으로 쓰러지고
<환난>으로 쓰러지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려다 섭리사를 떠났습니다.
예전에는 정말 맛있게 섭리 인생을
살면서 뛰었는데, 어쩌다가
그리되었을까요?” 했습니다.
나의 기도를 듣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는 <섭리사 환난기>라서
‘사막과 같은 처지’에 있었으니,
목이 타면 ‘구정물과 흙탕물’도
‘약수’라 하면서 먹듯이,
<참된 자들, 큰 자들>이 없어서
그런 자들을 썼다. 배고프면 ‘거지 밥’
도 ‘진수성찬’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때 열심히 하다가 나간 자들>을
생각해 보고, <지금 잘하는 자들>과
비교해 보아라. 비교해 보니,
‘거지 밥’과 ‘진수성찬’이지 않느냐.
영계로 보아라. ‘그 행함’을 생각해
보아라.
잘해 주면 ‘잘하는 자’가 되어서
잘했고, 잘 안 해 주면 ‘속 썩이는
자’가 되어 속을 썩였다. 그때는
‘참된 자’가 없었다. 찾는 중이었다.
<참된 자>가 없으니 그런 자들이
잘하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잘 들어요.
월명동을 개발하기 전에는 집이
없으니 ‘초가집’도 ‘궁궐’같이 쓰지
않았느냐. 그렇다고 늘 ‘초가집’에서
살 수 있느냐. 어서 개발하여
‘새 집’에서 살아야 된다.
<자기를 개발하지 않고 변화시키지
않은 자들>은 섭리사에 있어도
‘초가집 신앙인’으로서,
삼위 앞에 합당하지 않다.
<월명동>도 시대에 따라서
‘나 여호와의 뜻’대로
개발하여 뜯어고쳤다.
이와 같이 <너희 자신>도
‘나 여호와의 뜻’대로 개발하고
변화시켜야 된다. <월명동>을 개발하지
않았다면, 하늘 역사의 ‘하늘 궁’으로
삼지 못했다.
<사람>도 그러하다.
나 여호와의 뜻대로 개발해야
‘하늘 신부’로 삼는다.
어떤 일을 할 때도 <연습>이 있다.
<연습>은 ‘시험 보는 것’도 아니고
‘금메달을 놓고 겨루는 것’도 아니다.
<연습>은 ‘연습’이다. 이와 같이
‘그 순간 거쳐 가는 자들’은
그때 그 순간뿐이다.
<참된 자, 큰 자>가 없을 때이니,
그리도 귀히 쓴 것이다.
젓가락도 없을 때는 그때의 환경에
맞춰서 ‘나무’를 꺾어서 젓가락으로
쓰지만, 때가 되면 ‘금 젓가락’으로
먹는다. - 사람도 그러하다.
지난날 <섭리역사>를
‘하나의 자기 쉼터’로 여기며
잘해 주면 잘하고 잘 안 해 주면
안 하면서 주인 의식을 갖지 못하고
행했던 자들은 <차원 높여 변화된 새
역사의 휴거 역사>에서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뛰는 자들>과 같이 살 수
없다.
결혼한 부부라도 ‘성격’이 안 맞고
‘생활’이 안 맞으면, 같이 못 사는
것이다.
<영계>에서도 ‘자기 급, 자기 수준,
자기 차원’대로 살아간다.
<자기 성격>대로 살고
<자기 생활>에 빠져 사는 자가
어떻게 ‘전능자’를 모시고 살겠느냐.
혹여 그런 자들이 온전히 행한 자들
사이에 끼어서 천국까지 따라와도,
천국 문 앞에서 돌려보낸다.
(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성령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잘 들어 봐요.
지난날 그리도 잘했는데, 어떻게
<이성, 환난, 자기중심>으로 쓰러져
섭리사를 나가게 됐냐고?
섭리역사가 ‘환난기’라 ‘사막 같은
처지’여서 <참된 자, 큰 자>가 없을
때이니, 그런 자들을 썼다.
2015_1122 주일(그 순간 거쳐 가는 사람들).hwp2
처음 월명동에 돌을 쌓았을 때를
생각해 보아라. <큰 돌>이 없을 때는
‘금방 깨지는 석회석’을 보고,겉보기에
하얗고 좋으니 그 돌을 쌓지 않았느냐.
그러고는 모두 구경하라고 하며 보여
주었지?
<석회석으로 쌓은 돌 조경>이
무너지고 깨진 후에야 그제야 알고
‘희귀 돌인 무늬석, 애석, 오석,
자연석’을 값비싸게 주고 사 와서
값있게 쌓았다.
지난날에 잘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이성, 환난, 자기중심>으로
쓰러져 나간 사람들도 그러하다.
그때는 <연단된 자, 만든 자, 큰 자>가
없으니, 그때의 처지에 따라서 그들을
쓴 것이다. 그러니
<겉>을 보지 말고 <질>을 보아라.
<양>도 보지 말고 <질>이 좋은지
보아라. <생각의 질>이 좋은지 보아라.
<생각의 질>이 철인지, 돌인지,
흙인지, 금인지 보아라.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사람이 <겉모습>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생각의 질>이 나쁘면, 결국
<그 생각>으로 인해 스스로
무너집니다. <생각의 질>이 좋아야
<행실의 질>이 좋고, 그로 인해
<영혼의 질>도 좋아져서 빛나고
아름답게 변화됩니다.
<임시로 지은 집>은
그리 튼튼하지 않습니다.
순간만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바람이 불면 쓰러지고,
태풍이 불면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섭리역사에 왔지만,
열심히 하기도 했지만, 끝까지
삼위와 구원자와 함께하지 못하여
<휴거 역사>에 동참하지 못하고
<그 순간 거쳐 가는 사람>으로
끝난 이유는 자기가 자기를 개발하지
않고, 자기가 자기를 변화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저 잘해 줄 때만 잘하고,
잘해 주지 않으면 안 했습니다.
좋은 날에는 잘했지만 섭리사에
환난이 오니 저들이 하는 말을 듣고
쓰러졌습니다.
주가 보일 때는 잘했지요.
주가 보이지 않으니 실감하지 못하고,
의심하고, 오해했습니다.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좋을 때만 잘하고,
잘해 줄 때만 잘하고,
보일 때만 잘하고, 자기가 좋을 때만
잘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혹은 “선생님이 나오시면 그때 열심히
하겠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자기만
손해입니다.
지금!! 선생이 성삼위를 모시고
삶 속에서 여러분과 함께 뛰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며 매일 주와 함께 뛰고
달리는 자들만 앞날이 창창합니다!
그래서 <생각의 질>을 봐야 된다고
성령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생각의 질이 좋은 사람>은
<질 좋은 시대 생명의 말씀>을
알아보고 확신하고 행합니다!
고로 <영혼>도 쑥쑥 성장하고 변화를
이루어 순간 거쳐 가는 자가 아닌
‘주의 몸’이 되어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주의 뜻’대로 살아갑니다.
그리함으로 ‘주의 짐’을 덜어 주고,
주와 함께 ‘혼인 잔치 휴거의 삶’을
살면서, 주와 함께 ‘희망의
섭리역사’를 창대하게 펼쳐 나갑니다.
<잠시 쉬었다가>
<얼굴>은 금방 늙습니다.
고로 나이가 들면 <얼굴>만 보고서는
누가 ‘과거에 미인’이었는지,
누가 ‘과거에 못난이’였는지
구별하지 못합니다. 한번 나이 든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 놓고 ‘과거에
미인’이 누구였는지 찾아보세요!
<성령님>도 찾기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 모두 다 ‘가을’을 맞아서 ‘낙엽’이
되었으니, 어떤 풀이 ‘여름 한철에
그리 싱싱했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래서 <생각의 질>을 보고,
<행실>을 보고, <혼>을 보고,
<영>을 봐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 성령같이 ‘영’을 보아라.
<영>을 봐야, 누가 ‘진짜 미인’인지
다 구별한다. <육>은 변화무쌍하다.
과거에 ‘섭리사에서 미로 휘날렸던
자들’을 보아라. 이제 옛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서로 쳐다보아라.
(충격이지?)
<육>을 보고 너무 충격 받지 말고,
<영>을 봐라. 과거에 미인이었더라도
그 <육>은 이제 아줌마, 아저씨가
되었고 중년이 되었다.
모두 <영>을 위해 살아야 돼.
<영들>은 ‘미’로 휘날린다.
<육>은 세월 가면 쭈글이가 된다.
어서 <육>이 다 늙기 전에
빨리 <육>을 ‘씨’로 뿌려서 <영>을
미인으로 변화시켜 <영의 열매>를
거둬라! 이것이 첨단의 지혜다!
(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성령님의 말씀을 더 들어 볼까요?
깊은 속 이야기를 하시니, 잘 듣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전하면서,
말씀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영계>에서는
‘미(美)’를 중히 본다. 왜냐고?
영계에서는
<삼위를 향한 사랑의 공적>이
‘영의 미와 빛’으로 나타나고
<삼위의 뜻대로 의를 행한 공적>이
‘영의 미와 빛’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영의 미(美)’를 중히 본다. 알겠지?
삼위를 진실로 사랑하고,
삼위의 뜻대로 행한 공적이 크면,
영의 키도 크고, 영이 반짝반짝
빛나고 아름답다. 사랑도, 공적도
별로인 영의 키는 120~150cm다.
조은이 영의 키는 2m다.
그의 <사랑의 공적>과 <의의 공적>이
크기 때문이지.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오직 주 뜻대로만 살지 않느냐.
누구든지 삼위일체를 모시고 사랑하며
그 뜻대로 살면, 모두 합당하니
<영체>가 아름답게 갖춰지고 빛나고
발달된다. <영>은 <육>과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고,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다.
나 성령을 상상해 보아라. 그 대신
최고로 아름다운 여인으로 상상해라.
그렇게 상상하면 80%는 맞다. 그리고
상상한 대로 나를 그려 보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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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화정 목사와 미술부 화가들이
다 모여서 나를 그려도 나의
아름다움은 100% 표현을 못 한다.
그 정도로 아름답다. 세계의 화가들이
다 모여서 나를 그려도 그 미를 다
표현하지 못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성령 본체’를 상상해 보아라.
나의 아름다움을 상상해 보면서 내게
가까이 오는 자에게 내가 더 역사할게.
나를 본 자들의 이야기도 들어 봐라.
그들의 영 급대로 봤으니, 제각각이다.
선생은 나를 아주 깊이 봤다.
그러니까 그리도 나를 가까이하며
놓지 않고 산다. 내가 어떤지,
선생에게 이야기를 들어 봐.
그런데 이야기를 안 해 준다.
<육의 말>로 표현하면, 가치가
떨어질까 봐 말을 안 한다.
나 성령은 상천하지에서 최고로
예쁘니 그 아름다움이 어떠하겠느냐.
상상해 보아라.
<빛나는 다이아몬드>와
<일반 돌>만 비교해도 표가 나는데,
<나 성령>과 <세상 육적인 미인>은
얼마나 다르겠느냐.
나 성령은 태양과 같이 빛난다.
나를 보통으로 보지 말고,
우습게 보지 말아요. 엄마에
비유한다고 해서 너희 엄마의
모습처럼 생각하지 말아요. 깐깐하게
말한다고 깐깐하다고 하지 말아요.
나를 한 번 보기만 한다면 매일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같이 살고
싶고, 매일 자기가 고칠 것이 뭐냐고
물어보면서 어서 다 고치고 깨끗하게
되어서 성령님과 함께 살고 싶다고
하며 안달이 날 것이다.
나 성령은 정말 예뻐서 ‘예쁜 너희’를
쓰고 나타난다. 서로 쳐다보아라.
그런데 ‘남자’는 좀 그래. (^^)
나 성령은 <여성>이니, <남자>를
쳐다보며 나를 느끼기는 좀 그렇다는
말이야. 그러니까
‘얼굴’을 보고 나를 느끼지 말고,
‘행실’을 보고 나를 느껴라.
남자든 여자든 ‘성령과 같은 행위’를
하면, 그 사람을 쓰고 내가 나타난다.
나 성령이
‘너희 예쁜 행실’ 쓰고 나타나니,
특히 가정국들은 잘 좀 해.
자녀들도 귀히 보고,
외적으로 내적으로 관리해라.
자녀 관리를 못 한
‘엘리 제사장’이 어찌 되었느냐.
너희 자녀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해라.
< 말씀 마무리 >
오늘 말씀 마무리합니다.
나 성령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섭리인 모두
<시대 말씀>을 잘 듣고 행하여
<육>도 ‘생각 미인, 행실 미인’이 되고,
<영>은 ‘영체 미인’이 되어서
하나님과 성자와 나 성령과
구원자 앞에 가까이 와라.
<논과 밭은> 집 가까이에 있어야
‘문전옥답(門前沃畓)’이지?
너희도 삼위와 주를 가까이해.
그래야 ‘귀한 육과 영’이 된다.
나 성령은
너희가 싸움을 할 때도 가고,
화평할 때도 가고,
환난 때도 가고,
핍박 때도 가고,
공적인 일을 할 때도 가고,
너희가 부를 때 가서 역사한다.
늘 삼위일체와 구원자를 모시고
늘 <신혼 생활>,
늘 <사랑의 휴거의 삶>을 살아라.
나의 말을 듣고 행하자!
◎ 말씀 마쳤습니다.
오늘 못다 한 말씀을
수요일에 이어서 전해 주겠습니다.
(* 선생님 명설교는
12월 첫째 주에 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