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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5.11.25 (수)

151125 수요말씀

선포일
2015.11.25 (수)
성경 본문
고린도전서 13장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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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5일 수요말씀> 그 순간 거쳐 가는 사람이 되지 말아라 절대자 하나님은 절대 행하신다 본 문 고린도전서 13장 10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이번 주 주일에는 지난날 잘하던 자들이 섭리사를 나가서 안타깝다고 기도할 때 하나님과 성령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 주일말씀에 이어서 오늘도 같은 주제로 말씀하겠습니다. 먼저 ‘주일말씀의 핵심’을 전해 주면서, 이어서 못다 한 말씀을 전해 주겠습니다. <말씀 시작>  섭리사를 보면, 열심히 하던 자들이라고 해서 끝까지 남아 있지 않는 모습을 많이 봤을 것입니다. 섭리사를 맛있게 뛰면서 열심히 살던 사람들인데 어쩌다 그렇게 <이성>으로 쓰러지고 <환난>으로 쓰러지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면서 쓰러졌는지, 그들을 생각하면 참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 그들을 생각하며 안타깝다고 기도할 때, 하나님과 성령님은 확실한 답을 주며 말씀하셨습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배가 고프면 ‘거지 밥’도 ‘진수성찬’으로 보이는 것이다. 배가 고프면 ‘질긴 물소 고기’도 그리 맛있는 것이다. 목이 타면 ‘구정물’도 “좋다!” 하면서 먹는 것이다. <젓가락>이 없으면 ‘나무’라도 꺾어서 임시로 먹는다. <살 집>이 없으면 <초가집>도 “좋다!” 하면서 산다. 그러나 언제까지 ‘나무’를 꺾어서 음식을 집어 먹고, 언제까지 ‘무너지는 초가집’에서 살겠느냐. <온전한 것>이 오면 <임시로 하던 것들>을 폐하게 된다. 섭리사는 <환난기>를 겪으면서 ‘사막 같은 처지’에 있었다. 그때는 <참된 자들, 큰 자들>이 없어서 그런 자들을 썼다. <그때 열심히 하다가 나간 자들>을 생각해 보고, <지금 잘하는 자들>과 비교해 보아라. 그들은 잘해 주면 ‘잘하는 자’가 되어서 잘했고, 잘 안 해 주면 ‘속 썩이는 자’가 되어 속을 썩였다. <지금 잘하는 자들>은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주인 의식, 책임 의식’을 가지고 오직 뜻을 위해 행하지 않느냐. 어릴 때부터 다르지 않느냐. 진정 삼위가, 네가 ‘몸’으로 쓸 자들이 있지 않느냐. 그들과 지금 잘하는 자들을 비교해 보니 <초가집>과 <궁궐> 같이 차이가 나지 않느냐. 그때는 ‘참된 자’가 없었다. 찾는 중이었다. <참된 자>가 없으니 그런 자들이 잘하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하셨습니다.)  <큰 돌>이 없었을 때에는 <잘 깨지는 석회석>도 귀히 여기고 “좋다! 멋있다!” 하며 쌓았습니다. <석회석>이 무너지고 깨진 후에야 <더 좋은 무늬석, 애석, 오석, 자연석>을 사 오게 되어, <석회석>을 모두 버리고 <귀한 돌>로 쌓았습니다.  이와 같이 섭리사에 온 사람들도 그러합니다. <큰 자>가 없을 때는 이 사람 저 사람 모두 귀히 썼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잘해 줄 때>만 열심히 하고 <환난과 핍박의 바람>이 부니 나갔고, <이성>으로 나갔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서 나갔습니다. 주인 의식, 책임 의식 없이 그저 섭리사를 ‘하나의 일터, 쉼터’로만 삼았기 때문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없을 때는 다 씁니다.  하나님도 <없을 때>는 ‘작은 것’으로 주셨고, <있을 때>는 ‘큰 것’으로 주셨습니다. <환난 때>는 ‘피난처’를 주셨고, <좋을 때>는 ‘환경 좋은 궁’을 주셨습니다. <환난 때>는 ‘피난처’를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임시로 쓰라고 준 것을 궁궐로 생각하지 말아라. 지금 이때 잠시 ‘임시로 쓸 집’이다.” 하셨습니다.  <사람>도 ‘그 순간 거쳐 가며 임시로 쓰는 사람’이 있고, ‘때가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 <하나님이 그 시대에 보낸 자>가 따로 있고, <하나님이 보낸 자가 오기 전에 쓸 자>가 따로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시대에 보낸 자>가 ‘구원자’이고, <그가 오기 전에 쓰는 자>는 ‘세례 요한의 사명자’입니다. 항상 역사는 <세례 요한 격 사명자>가 와서 먼저 외치고, 그다음에 그 첩경을 따라 ‘하나님이 보낸 자’가 나타납니다.  성경의 역사를 보면 <구약역사>도 ‘기다리는 역사’였고, <신약역사>도 ‘기다리는 역사’입니다. 두 역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전초 역사’입니다. 그 터전 위에 <휴거>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완성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됩니다.  <주>가 없으면 ‘기다리는 역사’입니다. <주>가 있으면 ‘새 역사’입니다. <옛 역사>는 ‘새 역사로 인도하는 길 역할’을 합니다. <새 역사의 새 주인>이 ‘맞을 자’입니다. 꼭 구분하고 분별해야 됩니다. <길 인도자>도 ‘사람’이고, <맞을 자>도 ‘사람’입니다. <겉>만 보지 말고 <속>을 보고 분별해야 됩니다. <속>이 무엇입니까? ‘하는 말, 행실, 해 놓은 것들’입니다.  실상은 ‘진수성찬’은 아닌데, 배고플 때 먹으니 그리도 맛있는 것입니다.  실상은 ‘거지 밥’인데, 너무 굶주릴 때 먹으니 맛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구시대 말씀>도 그러합니다. 영이 너무 굶주릴 때 그 말씀을 들으니, 그리도 차원 높게 들리고 좋았던 것입니다. <그보다 차원 높은 새 말씀>을 전하면, <구시대 말씀>은 ‘빛’도 ‘맛’도 잃게 됩니다.  배가 고프면 ‘그 질기고 질긴 물소 고기’도 맛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영혼의 양식>이 없어 허덕이는 자들은 어떤 말씀이든 가릴 것 없이 다 맛있다고 하며 받아먹습니다.  <꿀물>과 <설탕물>은 엄연히 다릅니다. <꿀물을 먹어 본 사람>만 ‘꿀물’을 분별합니다. <시대 말씀>도 그러합니다. <시대 말씀을 듣고 확실히 아는 자들>만 분별하고 따릅니다.  구시대 사람들은 ‘구시대 체질’이 되어서 <구시대 영혼의 음식>인 ‘구시대 말씀’이 그리도 맛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새 시대에 온 사람들은 ‘새 시대 체질’이 되어서 <구시대 말씀>은 맛없고 영양가가 없어서 못 먹습니다. 새 시대에 왔더라도 ‘새 시대 체질’이 안 된 사람들은 아직도 ‘세상의 말들, 악평의 말들, 기성의 말들’이 그리도 맛있다고 하며 따라갑니다.  그러나 <구시대 말씀>을 듣고서는 절대 ‘휴거’될 수 없습니다! <자동차>가 ‘비행기’처럼 날아가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이와 같이 <구시대 말씀>으로는 ‘휴거’는 불가능합니다. <구시대>는 ‘구시대 구원’입니다.  휴거되려면 <휴거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이것이 ‘절대자 하나님의 법’입니다. <비행기 부속품>으로만 ‘비행기’를 만들 수 있지, <자동차 부속품>으로는 비행기를 만들 수 없고 ‘자동차’만 만들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새 시대 말씀, 휴거 말씀>으로만 ‘휴거’됩니다. <구시대 말씀>으로는 ‘그 차원의 구원’만 됩니다.  <새 시대 말씀>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이 시대에 보낸 자를 통해 주신 말씀’입니다. 오직 ‘그 말씀’을 듣고 인정하며 ‘그’와 일체 되어 행함으로 <삼위의 사랑의 대상체>가 되어야만 <휴거의 영>으로 변화되어 휴거됩니다.  오직 <신랑과 일체 된 자>만 ‘신부’입니다. 이 시대도 <이 시대 말씀>으로 <삼위와 삼위가 보낸 자와 일체 된 자>만 ‘신부’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하나님은 ‘절대신’이십니다. <절대자>는 ‘절대’로 행하십니다. 그래서 ‘절대신, 절대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무엇을 어떻게 절대로 행하시는지 압니까? <구약>에서 ‘보낸 자’ 없이는 절대! <새 역사 신약역사>를 펴지 않으십니다. <신약>에서도 ‘보낸 자’ 없이는 절대! <새 역사 마지막 성약역사>를 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절대! ‘예수님’을 보내신 후에 <신약 자녀급 역사>를 펴 나가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절대! ‘이 시대 보낸 자’를 보내신 후에 <마지막 성약 신부급 역사, 휴거 역사>를 펴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시니, 절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십니다.  <구시대>가 아무리 ‘인원수’가 많고 ‘환경’이 좋아도 절대자 하나님은 절대! ‘구시대급 역사’만 펴십니다. <새 시대>가 아무리 ‘나이’가 어리고 ‘인원수’가 적어도 절대자 하나님은 절대! <새 역사>에서 ‘성약역사’를 펴십니다. <절대자>는 ‘절대적’으로 행하십니다. 그래서 ‘절대자’입니다.  <하나님>이 ‘절대자라는 근거’는 ‘절대적으로 행하시는 것’입니다.  <남자>는 평생 ‘남자’이고, <여자>는 평생 ‘여자’입니다. 이것이 ‘절대적’입니다.  <새 시대>는 새로 시작하는 역사이니, 처음에는 아기같이 미약하게 시작합니다. <구시대>는 그동안 커 왔기에 창대합니다. <구시대>가 아무리 지구 세상을 덮었어도 ‘구시대’일 뿐입니다. 고로 <구시대>에서는 ‘새 시대의 일’을 못 합니다. <새 시대>는 아이같이 미약해도 하나님은 ‘그 아이’를 길러서 절대적으로 뜻을 이루십니다. 이것이 ‘절대적’입니다.  가령 온 인류가 <남자>가 오기를 기다린다 합시다. 그런데 <남자>는 한 명도 없고, <여자>만 ‘만 명’이 있다고 합시다. 이때 ‘갓난아기’가 태어났는데 <남자>라고 합시다. 그가 ‘갓난아기’라도 결국 ‘그’가 커서 사명을 합니다. <여자>는 ‘만 명’이 있어도 ‘남자의 사명’을 못 합니다. 세월이 가서 <여자>들이 기다리다 늙어 죽어도 <그 남자>가 커서 ‘새 역사의 아기’를 낳고 역사를 폅니다. 이것이 절대적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그러합니다.  <사명자 다윗>이 아니면, 절대적으로 ‘골리앗’을 물리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절대적입니다! 그렇게 ‘군사들’이 많았어도 어느 누구도 ‘블레셋 군대’를 물리치지 못했습니다. 오직 <다윗>만이 ‘하나님의 절대적 계획’에 따라서 블레셋 군대의 골리앗 장군을 물리쳤습니다. 오직 <다윗>만이 ‘민족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것이 절대적입니다.  <휴거 역사>도 그러합니다. 지구 세상에 73억 명이 살고 있어도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이 시대에 보낸 자’를 통해서만 <휴거 역사>를 행하십니다. 절대! ‘다른 자’를 통해서는 <휴거 역사>를 행하지 않으십니다.  시간이 정말 빨리 갑니다. 이 짧은 시간을 가지고, <시대 구원자>가 태어나서 성장하고 연단받고, <시대 말씀>을 받은 후에 나타나서 <하나님의 새 역사>를 시작하고, 그때부터 ‘시대 말씀’을 전하여 모든 인생들을 구원하고 휴거시키기에는 정말 시간이 부족합니다. <마지막 성약역사의 휴거의 이때>에 <신구약 6000년 동안 기다렸던 휴거>를 이뤄야 됩니다. 흘러가는 ‘1분 1초’가 너무나 아깝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이 시대의 구원자>를 10명, 20명씩 세워서 역사를 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구원자 한 명>만 해도 <삼위일체>가 절대적으로 함께하고, <시대를 따르는 자들>까지 같이 하니, 나 여호와가 계획한 만큼 절대 행한다.” 하셨습니다.  <이 시대 성약역사>는 ‘1000년’동안 진행됩니다. 지금은 ‘구원자가 살아 있는 당세’입니다. <지금 이때 당세>는 ‘성약역사 1000년의 기간’에 비하면, ‘하루’와 같습니다. 이 ‘하루와 같은 때’에 다 행하지 않아도 후손들이 ‘성약 1000년 동안’ 행합니다. 고로 <구원자 한 명>을 가지고도 <삼위일체>가 절대적으로 함께하시고 <당세와 후대에 시대를 따르는 자들>이 함께하니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 뜻을 이루고야 맙니다! <잠시 쉬었다가> 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지구 세상의 그 많은 자들이 다 <새 역사>로 올 수도 없고, 올 필요도 없고, 올 자격도 없다. 각자 ‘자기 행위’대로다. <자기 행위>대로 ‘자기가 처한 세계’에서 살아간다. <구시대>에서는 구시대 나름대로 살아간다. 없으면, 거지같이 먹고 사는 것이 아니냐. <택함 받은 자>가 돼야 한다. 너희는 ‘시대 복음’을 듣고 택함을 받아 <새 역사>로 왔으니, 너희가 충성으로 <휴거 역사>를 이뤄야 된다. 이미 <구시대 체질이 밴 자들>은 거기서 그 체질대로 살아야지 ‘새 역사로 옮길 시간’이 없다. <새 시대>는 ‘어린 자들’이 뛰지만, 배우고 커 가면서 ‘새 역사를 뛰고 살 수 있는 시간’이 있다. 어서 너희가 <휴거 역사>를 이루어라! 너희가 해야 된다! 오직 ‘내가 택한 새 시대의 너희들’만이 <새 시대>로 와서 <휴거 역사>를 펴는 것이 나 여호와의 합당한 뜻이다. 그러니 ‘너희’가 하고, ‘택한 자들’을 찾아라.” 하셨습니다.  절대 <새 역사>를 알고, <새 시대 보낸 자>를 알고, 진실로 <새 역사의 가치를 알고 행하는 자>만 휴거되어 삽니다. <새 역사의 가치를 모르고 세상으로 마음을 돌리는 자들>은 새 역사에서 쫓겨나 ‘자기 스스로 가는 길’로 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을 모르니, ‘스스로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사막’과 같습니다. 사막은 보기와는 다릅니다. 거기서 농사를 짓고 살아 봐야 그곳에서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게 됩니다. 그때 깨달아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입니다.  여러분은 이 역사가 <하나님의 마지막 역사>,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성경을 이루는 역사>임을 인정합니까? 이 역사는 ‘삼위일체의 사랑의 대상체’로 변화되는 <신부 역사>라는 것을 압니까? <신부 역사>가 무엇인지는 압니까? (제대로 모르면, 이것부터 확실히 배우고 알아야지요!) <신부 역사>에서는 헤어지면 ‘남’이 됩니다. 우리는 ‘삼위일체’와 헤어지지 않기로 맹세하고 ‘1000년 가약’을 맺고 삽니다. 그런데 살다가 헤어지면 <1000년 역사>가 깨지고, <운명>이 ‘사망’으로 기울어집니다. 헤어진다는 것은, 단순히 ‘섭리역사’만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헤어짐, 하나님과의 이별’입니다.  <새 역사 섭리역사>를 떠나 <기성>으로 가면, 하나님과 이별한 것이 아니라고요? 아닙니다. <시대 보낸 자의 품>을 벗어나면, 그것이 <하나님의 품>을 벗어난 것입니다. <절대자의 법>은 ‘절대적’입니다.  지금 하는 말을 잘 들어요. <새 역사를 떠난 자들>은 ‘이 시대의 혜택’을 못 받고, ‘다른 종교’나 ‘구시대’에 가서도 존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새 역사>로 불러왔는데, 자기가 책임을 못 하여 ‘이성’으로 쓰러지고 ‘환난’으로 쓰러지고 ‘자기중심’으로 쓰러져 나갔기에 하나님은 그를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들을 인정하신다면 예수님을 불신하고 유대 종교로 가도 구원하며 축복을 주시고, 이 시대 보낸 자를 불신하고 기성으로 가도 구원하며 축복을 주신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게 아무 데서나 ‘휴거’를 이룬다면, 누가 힘겹게 <새 역사>에서 ‘엄격한 법’을 지키면서 삼위일체를 최우선으로 섬기고 사랑하면서 뜻을 이룹니까? 누구는 <새 역사>에서 ‘책임 분담’을 하면서 휴거를 이루는데, 누구는 자기 좋은 대로 하나님을 믿거나 악평하고 불평하고 자기중심대로 살면서 휴거를 이룬다면, 하나님이 <새 역사>를 왜 시작하시고, 왜 <시대 보낸 자>를 보내어 <시대 말씀>을 주시겠습니까?  모세의 인도를 받아 <신광야>로 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책임을 못 하고 악평하고 불평하다가 <가나안 복지>에 못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나안의 축복’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악평하고 책임을 못 한 형벌로 평생 ‘신광야’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가인 족속’이 되었습니다. 오직 ‘선평하며 책임을 한 여호수아와 2세들’만 <가나안 복지로 가는 축복>을 받고 ‘아벨 족속’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 <휴거>도 그러합니다. 오직 ‘이 시대 말씀’을 듣고 행하며 끝까지 ‘주’를 따라 책임을 다한 자들만 <휴거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싫다고 여기서 벗어나면, <섭리역사>만 벗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을 벗어난 것이 되어 하나님은 그에게 축복해 주지 않습니다.  하나님이 ‘그냥 놔둔 자’와 ‘축복해 준 자’는 다릅니다. 가는 길도, 운명도, 육적 축복도, 영적 구원도 완전히 다릅니다.  <왕과 결혼해서 사는 자>와 <궁에서 쫓겨난 자>가 비교가 되겠습니까? <궁에서 쫓겨난 자>가 다른 데서는 제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섭리역사의 궁에서 쫓겨난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말씀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 <하나님의 역사>라도 구(舊)역사인 ‘구약역사와 신약역사’는 거쳐 가는 역사입니다. <구역사>에서는 ‘휴거 역사’를 이루지 못합니다.  <하나님의 뜻이 아닌 역사>도 있습니다. 곧 ‘이단’입니다. 이단은 ‘하나님의 절대 법’에 의해 모두 다 사라집니다. 그곳에서는 절대!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 <이단>은 자기들이 이단이라는 것을 확인하지도 못합니다. 그들은 빗나간 세계에 가 있으니, 빗나간 사고대로 자기들이 ‘참’인 줄 알고 삽니다. <진짜>를 보지도 못한 자가 어떻게 ‘진짜’를 분별합니까? <가짜>만 보고 살았기에 ‘가짜’가 ‘진짜’인 줄 알고 삽니다. <꿀>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지도 못한 자가 ‘꿀’이 무엇인지 어떻게 분별하겠습니까? <진리>를 알지도 못하는 자가 어떻게 ‘진리’를 알고 분별하겠습니까? 오직 ‘참’이 ‘참’을 압니다. 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자기 구원’을 확인하지 못하고 삽니다. <참종교>에서만 “이것이 구원이다!” 하고 압니다.  <휴거된 자>만이 “이것이 휴거다!” 하고 압니다.  <신부가 된 자>만이 어떤 삶이 ‘신부의 삶’인지 압니다.  <사도가 된 자>만이 어떤 삶이 ‘사도의 삶’인지 압니다.  <성령을 받은 자>만이 어떤 것이 ‘성령의 역사’인지 압니다.  <새 역사에 온 자>만이 무엇이 ‘새 역사’인지 압니다.  <절대자 삼위일체의 뜻>을 따라서 <새 역사>에서 절대 <시대 말씀>을 행하며 살아 봐야 이 역사가 ‘참역사’인 것을 알게 됩니다. 나머지는 ‘거쳐 가는 전초 역사’임을 알게 되고, 다른 자들은 ‘거쳐 가는 전초 사명자’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진리를 벗어난 이단’을 분별하고, ‘구시대의 한계’를 정확히 알고 행합니다. <말씀 마무리>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절대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절대 항상 ‘하나’로 시작하십니다. <참역사, 새 시대>도 ‘하나’입니다. <시대 보낸 자>, 곧 <구원자>도 ‘하나’입니다. <그 하나>가 세상에서 최고로 귀합니다. <그 하나>가 ‘씨앗’이 되어 ‘황금벌판’을 만듭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그 하나’를 가지고 역사를 펴셨습니다.  하나님은 <귀한 것>은 항상 ‘하나’로 정하셨습니다. <그 하나를 세워 최고로 귀하게 여기시고, <그 하나>를 ‘씨앗’으로 삼아 창대하게 하십니다.  <시대 보낸 자>가 ‘하나’이듯, <복직된 하와>도 하나님의 역사를 통틀어, 성약 1000년 역사를 통틀어 ‘근본적으로는 절대 하나’입니다. 하나이니, 귀하고도 귀합니다.  <지구>도 ‘절대 하나’입니다.  월명동에서도 <표상 나무와 돌>은 ‘사연별로 하나씩’입니다.  <이 시대 에덴동산>도 ‘지구 세상에서 하나뿐’입니다. 곧 ‘섭리역사’입니다. 이 역사에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룹니다!  <머리>도 ‘하나’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지체’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도 ‘하나’, <주>도 ‘하나’입니다.  <핵>은 작아도 ‘하나’로서 ‘핵’이 됩니다. 그러나 <핵>은 ‘뇌, 머리’와 같아서 <전체>를 느끼고, <전체>를 다스립니다.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 인류 역사를 통틀어 하나뿐인 <새 역사 섭리역사>에서 하나뿐인 <시대 구원자>를 믿고, 하나뿐인 <시대 휴거의 말씀>을 듣고 행하고, 하나뿐인 <절대자 하나님, 성령님, 성자>를 사랑하며, 자기를 개발하고 ‘신부’로 만들고 변화시켜야 됩니다. 그래야 ‘그 순간 거쳐 가는 자’가 되지 않습니다. <월명동>도 ‘하나님의 구상’대로 개발하여 ‘삼위가 거하시는 시대의 궁’이 됐습니다. 여러분 모두도 택함 받아 ‘새 역사’로 왔으니,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삼위의 뜻’대로 열심히 행함으로 쑥쑥 성장하고 변화되어 <삼위가 거하시는 육과 영의 궁>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