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5.11.29 (일)
151129 주일말씀 최종
- 선포일
- 2015.11.29 (일)
- 성경 본문
- 고린도후서 5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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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9일 주일말씀> 특강, 생방 예정
참지만 말고 거기서 나와라
본 문 고린도후서 5장 1절
골로새서 1장 5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 말씀은 ‘특강’입니다.
핵심 내용은 <죄를 안 짓고 불의를 행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어느 정도 교육을 해 준 다음에는
<휴거 700선>에 대해서, <휴거의 집>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시켜 주는 말씀을 해 주겠습니다.
◎ 말씀의 주제는 ‘참지만 말고 거기서 나와라.’입니다.
<말씀 시작>
사람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대로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아무리 어른이라도, 자기를 만든 사람이라도
사람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
영향을 받게 됩니다.
가령, 자기 눈앞에 ‘이성의 행위’가 보인다고 합시다.
그러면 자기 마음은 그렇지 않아도
눈에 보이는 것의 영향을 받아서
순간 <생각>이 그쪽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때 눈에 계속 보이는데 참으라고만 하면, 잘 참아지지 않습니다.
이때는 생각도 몸도 ‘그 주관권’에서 즉시 나와야 됩니다.
그 주관권에 있게 하면서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 눈을 뜨고서 세상을 보지 말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저마다 죄를 안 지으려면
‘참고 견디자!’ 하며 자신을 꾸짖고 책망하지만 말고,
그 환경, 그 주관권에서 나와라!
그러면 참고 견딜 필요가 없다.
<죄짓는 생각>에서 나와라.
<네가 처한 환경>에서 나와라.
<죄의 주관권>에서 나와라.
그러면 ‘마음’도 ‘몸’도 죄를 안 짓게 된다.
형제들에게도 참으라고만 하지 말고, 꺼내 주어라.
해결해 주어라. 구해 주어라.” (하셨습니다.)
그 환경과 처지, 그 주관권에서 나와라. - 하는 말은 어떤 의미인지
성령님께서 비유를 들어 말씀해 주셨습니다.
▸ 가령 <이성>을 생각하게 됐다면,
<생각>이 ‘이성의 환경’에 들어간 것이다.
이때 자기에게 참으라고만 하지 말고,
<생각>을 돌려 ‘그 환경, 그 주관권’에서 즉시 나와라.
<생각>도 ‘한 존재’다.
만일 <몸>이 ‘이성의 환경’에 처해 ‘이성의 행위’를 한다면,
즉시 자르고 즉각 거기서 나와라.
그럼 ‘참아서 안 되는 문제’가 해결된다.
▸ 가령 혼자서 <형제들과 다투는 생각>을 하든지,
실제로 <형제들과 다툼>이 시작되면
참는다고 다툼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참지 말고, 즉시 ‘그 환경, 그 주관권’에서
몸도 마음도 빠져나와라.
그럼 ‘참아서 안 되는 문제’가 해결된다.
또 한 가지를 설명해 줄게요. 잘 들어 봐요.
▸ 수류탄 알지요?
수류탄은 ‘안전핀’을 뽑고 던지면 터집니다.
안전핀을 뽑기 전에는 절대 안 터집니다.
그런데요! ‘안전핀’과 상관없이 수류탄이 터질 때가 있습니다.
수류탄을 뜨거운 난로 옆에 놓고 열을 가하면,
안전핀과 상관없이 터집니다.
▸ <마음과 생각>은 ‘수류탄의 안전핀’입니다.
안전핀을 꽂아 놓듯 <마음과 생각>으로 안 한다 해도
자꾸 <육>이나 <생각>에 열을 가하면,
결국 수류탄이 터지듯 터지게 됩니다.
자꾸 지체를 만지며 성적으로 흥분시켜 열을 가하는데,
그때 참으라고 해서 참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누구나 자꾸 만지면 흥분되니,
아예 ‘그 환경’에서 몸도 마음도 나오라는 것입니다.
흔히 “하루에 세 번 참아라! 모두 참아라!” 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참아서 될 것>이 따로 있습니다.
<참아서 해결하는 방법>은 거의 실패합니다.
▸ 고로 성령님은 말씀하시기를
“거기서 나와라! 그러면 완벽하게 해결된다.
<참는 방법>보다
<그 환경에서 나오는 방법>이 훨씬 좋은 방법이고,
문제를 해결하는 절대적 방법이다.” 하셨습니다.
▸ 남녀가 한 방에 있는데
“이성의 행위를 참아라.” 하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마치 수류탄에 ‘안전핀’을 꽂아 놓고서
수류탄을 난로 위의 뜨거운 물에 넣고 열을 가하면서
“터지지 마! 참아라~” 하는 격입니다.
그때는 수류탄을 다른 곳으로 옮겨 줘야 안 터집니다.
이와 같이 남녀가 한 방에 있을 때는
“이성의 행위를 참아라.” 하지 말고,
어서 한 명을 밖으로 나오게 해야 됩니다.
그러면 안 참아도 문제가 해결됩니다.
<수류탄>은 ‘자기 몸’이라면,
<안전핀>은 ‘자기 생각과 마음’입니다.
<자기 생각과 마음>에서 아무리 안 하겠다고 맹세해도
<자기 생각과 몸>을 ‘그런 환경’에 넣고 열을 가하면
결국 ‘죄’를 짓고 ‘불의’를 행하게 됩니다.
이성의 행위, 음란한 행위, 미움, 다툼, 게으름, 태만함 등입니다.
사람은 ‘눈’으로 보면 ‘뇌’에 시동이 걸려서
‘육신’이 아무리 참아도 자꾸 느껴져서
마치 가열되어 폭탄이 터지듯 ‘육’으로 행하게 됩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왜 자기가 ‘눈’으로 보면서 ‘귀’로 들으면서
자기에게 참으라고 하느냐.
자동차에 아예 ‘키’를 안 꽂으면, 평생 시동이 안 걸린다.
<불의>를 보고 듣고 참으려 하지 말고,
<불의>는 아예 눈으로 보지도 말고 귀로 듣지도 말아라.
그러면 자동차에 아예 키를 안 꽂는 격이라서
평생 ‘그쪽’으로는 시동이 안 걸리니 안전하다.
하지만 <눈>으로 안 봐도 스스로 <생각>하면
뇌에 시동이 걸려 ‘그쪽’으로 흥분이 된다.
고로 그 환경에서 나오라는 것이다!
<생각>으로 하지 말라고 ‘명령’해도
<생각>이 그쪽으로 흥분되면 그 말이 안 들리니,
어서 그 환경에서 나오라는 것이다.
어서 ‘썩는 물’에서 나와라!
100% 완벽하게 하는 것이 그냥 되느냐.
안 한다고 하나님께 큰소리치고도 한다.
마음, 몸, 귀, 눈에게 참으라고 하지 말고,
아예 마음도, 생각도, 몸도 거기서 나와라!” (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의인>은 ‘세상에서 참으로 크고도 큰 자’입니다.
<의인>이 되면, 전능하신 하나님은
‘의인의 간구’도 잘 들어주시고,
‘의인의 이야기’도 잘 들어주십니다.
또한 <의인>이 만물을 향해 명하면, 만물도 순종합니다.
왜 그럴까요?
<의인>은 ‘하나님의 생각과 행위와 일체’ 되었기 때문에
그가 말하면 들어주시고 만물도 순종하도록
인간과 만물을 순리로 창조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의인>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과 생각의 불의한 것들>을 다스리고,
하나님의 생각과 일체 되어서
<그때마다 할 일>을 하면서 되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과 생각의 불의한 것들>을 다스리고,
<그때마다 할 일>을 ‘한 달’만 해 보세요!
그러면 한 달 동안 걷고, 뛰고, 달린 만큼
표가 나게 목적지 쪽에 가 있게 됩니다.
선생은 산속에서 수도 생활을 할 때,
<불의한 것들>은 아예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전적으로 <목적>만을 위해 행했습니다.
그랬더니, 내가 행한 만큼 ‘목적지 쪽’에 가깝게 가 있었고,
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게 됐습니다.
내가 원하는 만큼, 하나님이 원하시는 만큼 나를 만들게 됐습니다.
여러분들 모두 ‘산속’으로 가서 만들려고 합니까?
현실에서 <불의한 것들> 앞에서는 눈을 감고 눈을 막고,
현실에서 <기도>하고 <말씀>을 실천하면서
삼위 앞에 더 가까이 가도록 자기를 합당히 만들기 바랍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게 하면서는 수도 생활을 해도 안 됩니다.
▸ 하나님은 남녀를 서로 껴안고 있게 하면서
“이성을 참아라! 참는 조건을 세워라.”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면, 어느 누구도 참지 못하고 죄를 범합니다.
이는 수류탄을 안전핀만 꽂아 놓고
난로 옆 뜨거운 물에서 가열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못 참고 터집니다.
▸ 하나님은 이런 방법으로 조건을 세우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환경에서 나와 아예 혼자 있게 하면서
조건을 세우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휴거>에 욕심이 없습니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그 욕심은 잘못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잘되고 더 잘하고자 하는 욕심입니다.
그런데 ‘영원히 받고 쓸 것, 휴거’를 위해서
자기를 만들고 행하는데
더 잘되고 더 잘하고자 하는 욕심이 없습니까?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700선 휴거의 욕심>을 부리고 해 보세요!!!
<의의 욕심>을 내고, 하기를 축원합니다!
<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고 행하면, 못 할 자가 없습니다.
<죽음>보다 쉬운 것이 <휴거>입니다.
이 말은 <죽음>을 앞에 놓고서
“휴거되지 못하면 죽는다!” 하고, 하라는 말입니다.
푸념하고 불평하는 데 힘쓰지 말고,
그 힘을 가지고 ‘의의 욕심’을 내고 행해 보세요!
포기하고 죽으려 하는 데 힘쓰지 말고,
차라리 그 힘을 가지고 ‘살려는 욕심’을 내고 행해 보세요!
행한 만큼 잘됩니다!
각종 물질을 사랑하고, 이성을 사랑하는 데는 ‘기질’이 있어서
세계 대회에 나가도 1등을 하고 금메달을 딸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 기질’을 가지고
영원한 것을 주시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사랑하지 못하고,
자기를 구원하고 휴거시키며 돕고 이끄는 구원자를 사랑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까?
왜 <자기의 사랑>을 음란물 보는 데 쓰고,
이성 사랑에 쓰고, 물질 사랑에 쓰고, 자기 욕망에 쓰고,
게으름과 태만함에 쓰면서
그때마다 그것에 미쳐서 그것을 사랑합니까?
그 사랑을 ‘삼위일체’와 ‘주’를 사랑하는 데 못 쓰니,
<휴거의 차원>이 오르지 않고 계속 그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어떤 자는 아직도 <휴거 300선>에 머물러 있고,
어떤 자는 그마나 <휴거>를 뺏겨 ‘영’이 슬피 울며 땅에 내려와
자기 육을 붙잡고 뛰는 자도 있습니다.
<휴거>를 ‘휴가’로 잘못 인식하고, 휴거를 이루려 하지 말아요.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말씀하시기를
“<휴거>에 성공하면, 더 이상 어떤 영광도 없다.” 하십니다.
올해 12월이 넘어도 그 차원에 머물러
<휴거 300선>으로 내년 2016년을 맞으려 합니까?
어떤 사람은 <700선>까지 갔는데도,
계속 더 빛나게 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까요?
하고자 하면서 결심하고 행하기 때문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어느 정도 교육했으니,
이제 <휴거 700선>에 대해 인식시켜 줄게요.
매우 중요한 말씀이니, 잘 전하고 잘 듣기 바랍니다.
<휴거 700선에 오르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요.
<최고 사명자와 같은 급으로 휴거 700선>을 이루려 합니까?
그렇다면 그와 같이 조건을 세우며 행해야 됩니다.
그러려면 정말 어렵고 불가능합니다.
각자 <휴거 700선>을 이뤄도 ‘자기 차원’대로 이룹니다.
<자기 급에서 700선>입니다.
마치 똑같이 ‘집’을 지어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의 액수’만큼 짓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가 1억을 가지고 있으면 ‘1억짜리 집’을 짓고,
자기가 10억을 가지고 있으면 ‘10억짜리 집’을 짓고,
자기가 100억을 가지고 있으면 ‘100억짜리 집’을 짓습니다.
이와 같이 ‘자기 급’에서 <휴거 700선>을 이루니,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요. 쉽습니다.
다만 <휴거 700선>을
크게 이뤘느냐, 작게 이뤘느냐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휴거 700선>을 이뤄?” 하지 말아요.
<휴거 700선>에 대해 이같이 인식하고,
‘저 사람이 700선이 됐다면 나는 안 믿어.’ 하지 말아요.
<700선>을 이룬 사람들도 많습니다.
다만 ‘자기 급’대로 크게, 혹은 작게 이룹니다.
“저 사람은 돈이 1억밖에 없는데 집을 지었다니,
나는 10억이 있어도 아직 집을 못 지었는데...
안 믿겨.” 하지 말아요.
<금>으로 집을 지으려면 10억을 가지고 있어도 집 짓기 힘들고,
<지방의 작은 아파트>를 사려면 1억을 가져도 집을 삽니다.
저마다 ‘자기 공적’대로 <휴거>를 이루고,
‘자기 공적’대로 천국에 <휴거의 집>을 짓게 됩니다.
<영계에서 돈>은 ‘의’입니다.
자기 육이 의를 많이 행했으면,
돈이 많은 것과 같아서 <휴거>를 크게 이루고
<천국 휴거의 집>도 각종 보석으로 꾸며 크게 짓게 됩니다.
고로 <신약시대 자녀급의 사람들>도
‘자녀급’으로 천국에 집을 짓습니다.
<이 시대 신부급의 사람들>도
<휴거 700선>을 놓고 ‘신부급’으로 천국에 집을 짓는데,
저마다 자기 공적대로, 자기가 행한 대로 ‘휴거의 집’을 짓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정원>도 ‘개인 정원’을 완성하려면, 몇 달이면 합니다.
그러나 월명동같이
<세계적으로 크고 웅장하고 아름답고 신비한 정원>을 만들려면,
- 그만큼 힘도 더 많이 들어가고,
- 돈도 더 많이 들어가고,
- 공적도 더 많이 필요하고,
- 하나님의 구상대로 해야 하니 그만큼 시간도 더 많이 들어가서
다 만들려면 ‘한 세월’이 갑니다.
<휴거>도 그러합니다.
모두 <휴거 700선>까지 이뤄야 하는데,
<휴거 700선>을 놓고 크게 이루느냐, 작게 이루느냐가 문제입니다.
천국에 작은 집 하나를 짓고 휴거를 완성하느냐,
천국에 각종 보석으로 된 큰 집과 정원을 만들고 휴거를 완성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끝>
자기 육도 혼도 영도 크고 멋지게 휴거되려면,
복직된 하와같이 각자 개성대로 선생을 따라서 하기 바랍니다.
모두 영의 눈이 있으니, 모두 영의 눈을 뜨고 봐요!
각자 <자기 생각과 행위>로
저마다 황금성에 ‘휴거의 집, 휴거의 정원’을 짓는 것입니다.
전심으로 기도하여 <황금성 천국의 자기 휴거의 집>을 보세요!
<영의 세계의 것>을 못 보면,
축소하여 <혼의 세계의 차원>으로 보면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휴거 700선>에 대해 인식시켜 주면서,
<천국 황금성의 휴거의 집>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제 <휴거의 집>에 대해서 인식시켜 주겠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구원자가 기본으로 해 준 것>에다가
<자기 수고와 노력과 행위>로 ‘휴거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천국의 건물>을 생각할 때, 세상 건물을 생각하지 말아요.
<세상 건물>을 말하면서 <천국 건물>을 설명해 주는 것은
하나의 ‘비유’에 불과합니다.
비유를 들어 말하면 더 잘 이해하니 비유를 들 뿐이지,
<세상 건물>과 <황금성 천국의 휴거의 집>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천국>은 ‘이 세상’보다 천 배, 만 배, 10만 배, 100만 배,
1000만 배, 1억만 배 더 크게 봐야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천국>은 ‘영의 세계’라서 다릅니다.
이것도 굳이 비교하여 이해시키자면,
<자기가 사는 집의 정원>과 <월명동 하나님의 성전>이 다르듯,
<세상의 건물>과 <천국의 휴거의 집>은 비교할 수 없이 다릅니다.
또한 <자기 교회 건물>과 <월명동 자연성전>이 다르듯,
<세상의 건물>과 <천국의 휴거의 집>은 비교할 수 없이 다릅니다.
<월명동 자연성전>에는
물, 나무, 잔디밭, 팔각정, 산책로, 운동장, 돌 조경 등
각종 환경이 있지만,
<교회 건물>은 아무리 커도 건물 수준입니다.
이와 같이 <천국>도 ‘자기 집 환경’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저 ‘하나의 비유’로 이해시키며 설명하는 것입니다. <끝>
<천국 황금성의 개인 정원의 실제 크기>는
<육>으로는 평생 가도 못 가는 거리입니다.
<개인 정원>인데도 그렇게 큽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심으로 행한 자는
<영>이 엄청나게 변화되고 <휴거 700선>를 크게 이루어
우주의 별 하나씩을 ‘정원’으로 삼으라고 주는 격입니다.
<휴거의 집>을 이렇게 크게 인식하고,
자기 육신을 가지고 부지런히 공적을 쌓고 행하며
<천국 환경>을 만들어 가기 바랍니다.
<천국>을 ‘육적’으로 생각하면,
“세상 집보다 크다.”라는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영>은 ‘빛’보다 빠릅니다.
빛보다 빠른 영이 활동하려면,
<천국의 개인 정원>이 적어도 ‘지구 크기 정도’는 돼야
영이 다니기에 겨우 알맞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동물들도 종류마다 ‘사용하는 땅의 면적’이 다릅니다.
토끼가 사용하는 면적, 치타가 사용하는 면적,
코끼리가 사용하는 면적, 말이 사용하는 면적,
물소가 사용하는 면적이 각각 다 다릅니다.
특히 아프리카 물소같이 이동을 많이 하는 동물은
그 사용하는 땅의 면적이 넓습니다.
한 달에 ‘1000리(400km)’도 넘게 이동하기 때문입니다.
바다의 돌고래를 보세요.
태평양에서 인도양까지 사용하며 삽니다.
하물며 <영들>은 ‘빛’보다 빨리 움직이는데,
정원도 집도 그만큼 커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을 인식하고 계산하고 행해야 됩니다. <끝>
<잠시 쉬었다가>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과 마음’을
‘신’과 맞추어 살도록 창조해 놓으셨습니다.
고로 <하나님의 마음>도, <천국>도, <영>도, <인생>에 대해서도
자기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을 배우고 알고,
그 생각에 따라서 생각해야 계산이 맞습니다.
우주에는 ‘여러 가지의 성운’이 있습니다. (성운 사진 보여 주기)
<큰 성운>은 ‘빛’으로 ‘수백 년’을 가야 끝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성운 하나’도 이렇게 크게 창조하셨습니다.
그에 비해 지구는 작아서
<지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빛’으로 가면,
‘1초’에 지구 일곱 바퀴 하고도 반 바퀴를 더 돕니다.
<우주 안에 있는 성운>도
‘빛’으로 ‘수백 년’을 가야 끝이 나오는데,
<우주보다 더 큰 천국>은 얼마나 더 크겠습니까?
<빛>으로 ‘1년 동안’ 가는 거리가 약 9조 4천억 킬로미터입니다.
그런데 <빛>으로 가도 ‘수백조 년’을 가야 나오는 ‘천국’은
얼마나 얼마나 크다는 것입니까?
<천국>이 <지구>보다 엄청나게 크다고만 하며 막연하게 알지 말고,
한 번 계산하고 비교해 보세요.
하나라도 똑똑히 제대로 알면
그것을 통해서 다른 것들도 잘 알게 됩니다.
(* <천국>이 얼마나 큰지, 핵심을 이야기해 줄게요.
이해를 잘하도록 쭉~ 화면을 보면서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영상4>
우주에는 인간이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별들이 있습니다.
우주의 크기는 정말 엄청납니다.
그러나 <우주>가 ‘천국의 정원’이 아닙니다.
<우주>는 ‘육의 세계’에 속해 있습니다.
<천국의 정원>은 ‘영의 세계’에 따로 있습니다.
<보이는 육의 세계>는 ‘보이는 대로 한 덩어리’입니다.
<지구>는 ‘인생들이 사는 육의 집’이고,
<우주>는 ‘지구의 정원’입니다.
<지구>에도 ‘자기 집’이 있고 ‘자기 집 정원’이 있지요?
그 크기는 백 평, 천 평, 만 평, 10만 평 등 각각입니다.
이와 같이 <영의 세계 천국>에도
‘각 영들의 자기 집’이 있고 ‘정원’이 있습니다.
그 크기는 천차만별입니다.
자기 육신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한 대로,
자기 공적대로 ‘천국에 자기 영의 집과 정원’이 지어집니다.
<육의 세계>에도
‘사람들이 사는 생명의 주관권인 <지구>’가 있고,
‘그 배경으로 <우주>’가 있지요?
<영의 세계 천국>에도
‘영들이 사는 <생명의 주관권>’이 있고,
‘그 배경으로 <천주의 우주>가 따로 있습니다.
그 안에 저마다 ‘자기 개인 집’이 있고,
‘거기에 딸린 정원’이 있습니다.
그러니 <천국>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우주와 지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상상도 못 하게 큽니다.
<천국에 있는 개인 집과 정원>은 ‘각자의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육신’이 세상에서
삼위와 주와 함께 행하여 ‘자기 영’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자기 육>이 실제로 행했으니 <영>도 실제로 변화되고,
<천국 휴거의 집과 정원>도 ‘실체’가 되어 있습니다.
고로 ‘자기 영’이 휴거되어
<천국>에서 실제로 영원히 쓰고 누리게 됩니다.
<개인 집과 정원> 외에
<공동으로 쓰고 활동하는 거리와 환경>이 있는데,
이것도 휴거되어 천국을 차지한 영들이 자기 것처럼 씁니다. <끝>
(* 그렇다면 <천국의 자기 휴거의 집과 정원>은 어떻게 꾸며질까요?
모두 하나같이 똑같은 집과 배경일까요?
핵심만 가르쳐 주겠습니다.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세상에서 <자기 육신>이
삼위일체와 시대 구원자를 믿고 시대 말씀을 듣고 행하면서
죄와 불의를 멀리하고 회개하며 살면,
그만큼 <자기 영>이 ‘하늘나라 형체’로 변화됩니다.
더불어 천국에 <자기 휴거의 집과 정원>이 지어지게 됩니다.
자기 육신이 행한 만큼, 자기 육의 공적만큼 지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휴거됐으니,
하나님은 ‘휴거된 영들’에게
각 사람의 공적대로 ‘집과 정원’을 지어 주어
<영>이 영원히 쓰며 누리게 하십니다.
이때 <휴거의 집과 정원과 배경>은
‘자기가 좋아하는 모습과 환경’으로 지어 주십니다.
<산>을 좋아하면 ‘산’을 배경으로 집을 지어 주시고,
<바다>를 좋아하면 ‘바다’를 배경으로 집을 지어 주시고,
<도시>를 좋아하면 ‘도시풍’으로 집을 지어 주십니다. <끝>
<천국 황금성의 휴거의 집들>을 <세상의 집들>과 비교하지 말아요.
세상에는 ‘천국 황금성에 있는 집’과 같은 집이 하나도 없습니다.
<육의 것>은 ‘육의 것’일 뿐입니다.
▸ <천국의 것들>을 보면
‘세상과 같은 형상과 모양의 것’은 있습니다.
그러나 ‘질’이 아예 다릅니다.
세상에는 ‘천국의 것과 같은 질’이 하나도 없습니다.
(보석, 피부, 옷감 등 : 예를 들어 간단히 설명해 주기)
▸ <육>과 <영>도 ‘모양과 기본 구조’는 같습니다.
그러나 <육의 몸>과 <영의 몸>은 ‘질’이 다릅니다.
<말씀 마무리>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 오늘의 마지막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도 각자 자기가 사는 차원대로
‘크게’, 혹은 ‘작게’ 이루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아파트의 응접실을 정원으로 삼고 만족하며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땅에 운동장같이 정원을 만들어 만족하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농사를 지어 개인이 먹고 사는 것에 만족하고,
어떤 사람은 한 지역 전체에 농사를 지어서
그 나라와 전 세계에 농산물을 판매하고 사는 것에 만족하고 삽니다.
어떤 사람은 호수에서 물고기 잡는 것에 만족하고,
어떤 사람은 강에서 물고기 잡는 것에 만족하고,
어떤 사람은 바다에서 물고기 잡는 것에 만족하고 삽니다.
이같이 이 세상에서도 저마다 사는 차원이 다 다릅니다.
그 차이는 수십 배, 수백 배, 수천 배, 수만 배입니다. <끝>
모두 ‘시대 말씀’을 듣고 ‘시대 구원자’를 따라서
<휴거 700선>을 놓고 도전하며 달려야 됩니다.
그래야 휴거가 완성됩니다.
단! <휴거 700선>을
크게 이루느냐, 작게 이루느냐가 문제입니다.
작게 이뤄도 <휴거 700선>을 이루고,
크게 이뤄도 <휴거 700선>을 이뤄야 됩니다.
각자 자기 차원대로, 개성대로 이루니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고로 <휴거 700선>을 놓고 포기하지 말아요. 뺏기지 말아요!
그러나 이왕이면 의의 욕심, 휴거의 욕심을 내고 조금 더 행하여
시대의 주를 확실히 알고 따르고,
그와 심정 일체, 행실 일체 되어
하늘 신부로서 사랑의 삶을 살면서
<크고 웅장한 휴거 700선>을 완성하기를 축원합니다!
<시대 주>를 만나 <시대 말씀>을 듣고 행하며
<성삼위>를 사랑하며 ‘휴거의 삶’을 살면서
육도 혼도 영도 ‘이상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망설이지 말고, <하나님 주관권 안>에 들어와 행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휴거’로
<하나님의 마지막 최고의 창조 목적>을 이루시고,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를 1000년 동안 이루어 나가십니다.
이보다 ‘더 이상적인 역사’는 없습니다. 최고의 역사입니다.
이는 마치 결혼한 후에는 ‘더 이상의 사랑’은 없는 격입니다.
다만 ‘더 이상적인 삶, 더 이상적인 사랑’이 있다면,
<영>이 휴거되어 하나님과 결혼하듯 했으니,
<천국 황금성>에서 ‘영원히 사랑하며 같이 사는 삶’입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