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15.12.04 (금)
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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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_1204 금요(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남은 한때 목적을 두고 작품으로 만들어라).hwp1
2015년 12월 04일 금요일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남은 한때,
<목적>을 두고
‘작품’으로 만들어라!
작성일 : 2015. 11. 19. AM 01:00
작성자 : 주사랑빛
(전날 수요예배를 통해 하늘의 귀한
말씀을 대언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가슴 깊이
깨달아졌습니다. 그리고 단상에서
말씀을 전할 때, 특히 성령님 말씀
부분에서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너무나 느껴졌는데, 성령님께서 직접
제 몸을 쓰고 말씀하신 것인지
여쭈었습니다.)
*성령님의 말씀*
나의 말을 하니 내가 너를 쓰고
말씀을 전하였다. 말씀을 전하는 자가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전하면,
나 성령이 언제나 임하여 역사한다.
(성령님께서 얼마나 아름다우신지 저는
보지 못했지만 그 온화함과 아름다움,
따뜻함과 사랑이 깊이 느껴집니다.
성령님이 참 좋아요. 정말 사랑해요.
성령님이 계셔서 너무 행복해요.)
나 성령이 네게 와서
너와 대화하니 나도 참 좋구나.
내 마음이 네 마음에 전해지는 것이
참 기쁘구나. 나 성령은 오랜 세월
역사에 묻혀 드러나지 않았지만
선생이 조건을 세움으로 완벽한
성령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나 성령은 부흥강사를 통해서
먼저 너희 앞에 나타났지.
그 이후로 부흥강사와 같이 준비된
자가 있다면 순간순간 그를 통해
나타나 역사한다.
부흥강사는 성령의 몸으로 쓰이는
가장 합당한 조건을 다 세웠다.
결국 선생이 그녀를 그리 만들었다.
선생은 정말 ‘신부 만들기 선수’야.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고 했다.
선생을 직접 본 자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자도 많다.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 출발선에서
준비된 자들이 신호와 함께 경주를
시작한다. 준비되지 않은 자는 신호가
울림과 동시에 출발할 수가 없다.
이와 같이 남은 한때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달라진다고 하였다.
‘2년의 시간’ 동안 자신을 만들어서
선생과 함께 출발선에 서 있는 자는
그 때가 되었을 때 함께 출발할 수
있지만 준비되지 못한 자는 함께
출발하지 못하니 결국 함께 달릴 수
없게 된다. 어떻게 보낼 것이냐?
무엇을 목적으로 두고 살 것이냐?
누구를 위한 삶을 살 것이냐?
이제까지 살아온 대로 살면 실패한다.
‘차원을 높여’ 준비해야 한다.
그릇이 없는데 음식을 담을 수 없고
신발이 없는데 발을 보호할 수 없다.
(아멘, 성령님! 꼭 차원을 높여 행하고
남은 한때를 목적을 두고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은혜의 살만 찌우고
행하지 않은 죄를 회개합니다.
얼마나 답답하셨어요?)
‘행하지 않는 자’는
‘나와 체질이 맞지 않는 자’다.
삼위는 본래부터 행하여
모든 것을 창조해 왔다.
6천 년 종교 역사 동안
끊임없이 단 한순간도 쉬지 않았다.
선생도 평생 쉬지 않고 행하며
살아왔다. 삼위로부터 말씀만 받고
끝내지 않았다. 그리하였다면 이
역사가 어떻게 이렇게 찬란히
이루어졌겠느냐.
선생은 삼위와 체질이 딱 맞다.
삼위의 말이라면 목숨을 걸고 행하기
때문이다.
(행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자들이
있어요. 작은 것조차 행하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그릇이 작아서 그래.
마음 그릇, 생각 그릇 자체가 작다.
그릇이 작으니까 삼위와 선생의
마음, 생각을 다 받지 못한다.
너, 샤브샤브 음식점에 가면 어때?
그릇이 작으면 요리할 재료를
많이 못 담지? 그릇이 크면 어떠냐?
많이 담아서 푸짐하게 요리해서
먹는다.
조금 담으니
조금 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많이 담으면 많이 행하지.
마음 그릇, 생각 그릇을 ‘크게’
만들어야 한다. 지도자들은 그릇
자체가 작은 자인데 답답하다고 하며
많은 것을 담으려 하지 말아라.
그러면 그릇이 깨진다.
그릇을 크게 만들도록
도와주기는 하지만, 자체가
그릇이 작은데 많은 것들을 담으려
하지 말아라. 그러니 어린 자들이
힘들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놔두면 될까요?
아니면 그릇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밥그릇은 국그릇에 비해 작지?
작아도 밥을 담기에 적당하다.
‘개성대로’ 다른 것이다.
그러니 인정해 주면서 작으면
작은 대로 담을 수 있게 해 주어라.
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막 밀어붙이지
말고 그 차원에서 행할 수 있는 것을
함께 기도하며 찾아 주고 함께 행해
주어라. 도자기 그릇을 만드는 과정을
보면 서서히 끊임없이 물레를 돌려
그릇을 만들지.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조금씩 조금씩 행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 그릇, 생각 그릇이 커져서 잘
행하는 자가 된다. 내가 너희 각자를
조금씩 행할 수 있게 직접 만들어
주고 있지 않느냐. 선생이 늘 기다려
주며 작품으로 만들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 봐라, 남은 한때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조금씩이라도 만들기
시작해야지. 시작조차도 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시간이 부족해서 결국 다
완성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시작’이 그만큼 중요하다.
시작은 성공의 문에 일단 들어간
것이다. 조금씩 행한다 해도 일단
시작해야 된다. 뭐든 시작하기까지가
힘들지, 막상 시작하면 가속도가 붙어
잘하게 된다.
고로 사탄은 시작도 하지 못하게
여러 가지로 막는다. 또한 시작을 했다
해도 끝까지 하지 못하게 막는다.
2015_1204 금요(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남은 한때 목적을 두고 작품으로 만들어라).hwp2
‘끝까지 해라!’ 끝까지 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끝까지 할 수 있게
‘목적을 세우는 것’이다.
<목적>은 ‘끊임없이 행할 수 있게 하는
에너지’가 된다. 목적을 세우고 행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남은 한때도
어떻게 행할 것인가 목적을 세워라.
기도하며 나와 함께 세우자!
선생과 육으로 만날 때
어떠한 모습으로 만날 것이냐?
만들어진 작품이 되어 만나야 한다.
성지 땅을 개발하는 자들은
선생의 손에 흙을 묻히지 않게 하려고
목숨을 걸고 쉼 없이 작업한다는 것을
들었지? 미완성된 작품은 결국 또
선생이 만들어야 되지 않느냐.
만들어라! <행함>으로 자신을 대체
불가한 작품으로 만들어라! 그리하면
선생이 그 작품을 가지고 세계를
누비며 작품을 자랑하며 작품을 만든
보람을 느끼며 영원히 품에 넣고 살
것이다.
이제는 선생과 함께 세상을 향해
외칠 작품들이 얼마나 세워지느냐에
따라 섭리의 미래는 결정된다.
나 성령이 임하여 마음껏 외쳐
생명을 구하는 자가 되어라.
선생과 함께
세상을 구하는 자가 되어라.
선생과 함께
목숨을 걸고 외치는 자가 되어라.
선생과 함께
끝까지 행하는 자가 되어라.
나이가 어려도 연륜이 적어도
다 상관없다.
얼마만큼 자신을 만들어
작품을 만드느냐가 내게 중요하다.
나 성령은 눈이 빠져라 그러한 자를
찾고 있다. 매 순간 임하여
나의 몸으로 쓸 자를 찾는다.
나 성령을 부르고 애원하는 자를
찾는다. 목숨을 걸고 자신을 만들어서
선생의 완벽한 발판이 되어 줄 자를
찾는다.
나 성령은 이러한 자에게
모든 것을 투자할 것이고
영원한 미래를 책임질 것이다.
황금성의 주인이 되어 영원토록
누리며 살게 해 줄 것이다.
남은 2년은 ‘생명’이다!
생명으로 선생이 네게 해 준 것을
보답하여라. 빚을 갚아.
마지막으로 이른다.
한 달란트를 맡긴 자는 땅에 묻어
두어 주인이 돌아왔을 때 한
달란트마저 뺏겼다. 다섯 달란트를
맡긴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겨
축복을 받았다. 2년의 세월을 멍하게
허송세월하지 말아라. 자기 하나
존재시켰다고 자랑하지 말아라.
달란트를 땅에 묻어 놓은 격이다.
자기 달란트를 가지고 달란트를 더욱
남기는 자가 되어라. 그러한 자에게
상이 클 것이다. 정말 사랑한다.
(사랑의 여신 성령님, 정말
감사드려요. 성령님의 말씀을 들으니
마음에 더욱 불이 활활 타오르고
큰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쁨이 더욱
샘솟아요.)
네 마음에 감동 감화를 주는 것이
나의 일이지 않니. 간절히 원하는
자에게서는 나를 부르는 향기가
난단다. 그래서 내가 항상 와서
도와주고 함께해 준다.
‘나를 원하여라.’
‘선생을 원하여라.’
이것이 영원한 성공의 비법이다.
안녕.
(선생님을 위한 합심기도
시간이 되어 다 같이 기도를 하는데
새벽기도를 하러 나와야 하는 자들이
나오지 않은 것을 보면서 너무나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수요예배 말씀에 분명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바로 행하지 않는 자들이
많으니 어찌하면 좋을까요?”라고
여쭈며 기도했습니다.)
행하지 않는 자들은 행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손해인지 알지
못해서 그러하다. 기도하지 않음으로
휴거의 차원을 높이지 못하고 마음과
생각의 그릇을 키우지 못해 축복을
충분히 받지 못해서 그러하다.
끊임없이 가르쳐라!
행하지 않으면 주지 않고 지나간다.
때가 급하고 더 이상 시간이 없다.
받든지 받지 않든지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선생의 심정을 제대로 못
받아서 그러하다.
<행하지 않는 자>는
‘모르는 자, 무지한 자, 그냥 그렇게
살 자’다. 나 성령도 그냥 그렇게
지나간다.
<행하는 자>는 ‘행복한 자’이고
<불이행하는 자>는 ‘불행한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