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15.12.04 (금)
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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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_12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
2015년 12월 04일 금요일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남은 한때,
<목적>을 두고
‘작품’으로 만들어라!
작성일 : 2015. 11. 19. AM 01:00
작성자 : 주사랑빛
(전날 수요예배를 통해 하늘의 귀한
말씀을 대언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가슴 깊이
깨달아졌습니다. 그리고 단상에서
말씀을 전할 때, 특히 성령님 말씀
부분에서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너무나 느껴졌는데, 성령님께서 직접
제 몸을 쓰고 말씀하신 것인지
여쭈었습니다.)
*성령님의 말씀*
나의 말을 하니 내가 너를 쓰고
말씀을 전하였다. 말씀을 전하는 자가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전하면,
나 성령이 언제나 임하여 역사한다.
(성령님께서 얼마나 아름다우신지 저는
보지 못했지만 그 온화함과 아름다움,
따뜻함과 사랑이 깊이 느껴집니다.
성령님이 참 좋아요. 정말 사랑해요.
성령님이 계셔서 너무 행복해요.)
나 성령이 네게 와서
너와 대화하니 나도 참 좋구나.
내 마음이 네 마음에 전해지는 것이
참 기쁘구나. 나 성령은 오랜 세월
역사에 묻혀 드러나지 않았지만
선생이 조건을 세움으로 완벽한
성령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나 성령은 부흥강사를 통해서
먼저 너희 앞에 나타났지.
그 이후로 부흥강사와 같이 준비된
자가 있다면 순간순간 그를 통해
나타나 역사한다.
부흥강사는 성령의 몸으로 쓰이는
가장 합당한 조건을 다 세웠다.
결국 선생이 그녀를 그리 만들었다.
선생은 정말 ‘신부 만들기 선수’야.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고 했다.
선생을 직접 본 자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자도 많다.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 출발선에서
준비된 자들이 신호와 함께 경주를
시작한다. 준비되지 않은 자는 신호가
울림과 동시에 출발할 수가 없다.
이와 같이 남은 한때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달라진다고 하였다.
‘2년의 시간’ 동안 자신을 만들어서
선생과 함께 출발선에 서 있는 자는
그 때가 되었을 때 함께 출발할 수
있지만 준비되지 못한 자는 함께
출발하지 못하니 결국 함께 달릴 수
없게 된다. 어떻게 보낼 것이냐?
무엇을 목적으로 두고 살 것이냐?
누구를 위한 삶을 살 것이냐?
이제까지 살아온 대로 살면 실패한다.
‘차원을 높여’ 준비해야 한다.
그릇이 없는데 음식을 담을 수 없고
신발이 없는데 발을 보호할 수 없다.
(아멘, 성령님! 꼭 차원을 높여 행하고
남은 한때를 목적을 두고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은혜의 살만 찌우고
행하지 않은 죄를 회개합니다.
얼마나 답답하셨어요?)
‘행하지 않는 자’는
‘나와 체질이 맞지 않는 자’다.
삼위는 본래부터 행하여
모든 것을 창조해 왔다.
6천 년 종교 역사 동안
끊임없이 단 한순간도 쉬지 않았다.
선생도 평생 쉬지 않고 행하며
살아왔다. 삼위로부터 말씀만 받고
끝내지 않았다. 그리하였다면 이
역사가 어떻게 이렇게 찬란히
이루어졌겠느냐.
선생은 삼위와 체질이 딱 맞다.
삼위의 말이라면 목숨을 걸고 행하기
때문이다.
(행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자들이
있어요. 작은 것조차 행하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그릇이 작아서 그래.
마음 그릇, 생각 그릇 자체가 작다.
그릇이 작으니까 삼위와 선생의
마음, 생각을 다 받지 못한다.
너, 샤브샤브 음식점에 가면 어때?
그릇이 작으면 요리할 재료를
많이 못 담지? 그릇이 크면 어떠냐?
많이 담아서 푸짐하게 요리해서
먹는다.
조금 담으니
조금 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많이 담으면 많이 행하지.
마음 그릇, 생각 그릇을 ‘크게’
만들어야 한다. 지도자들은 그릇
자체가 작은 자인데 답답하다고 하며
많은 것을 담으려 하지 말아라.
그러면 그릇이 깨진다.
그릇을 크게 만들도록
도와주기는 하지만, 자체가
그릇이 작은데 많은 것들을 담으려
하지 말아라. 그러니 어린 자들이
힘들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놔두면 될까요?
아니면 그릇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밥그릇은 국그릇에 비해 작지?
작아도 밥을 담기에 적당하다.
‘개성대로’ 다른 것이다.
그러니 인정해 주면서 작으면
작은 대로 담을 수 있게 해 주어라.
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막 밀어붙이지
말고 그 차원에서 행할 수 있는 것을
함께 기도하며 찾아 주고 함께 행해
주어라. 도자기 그릇을 만드는 과정을
보면 서서히 끊임없이 물레를 돌려
그릇을 만들지.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조금씩 조금씩 행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 그릇, 생각 그릇이 커져서 잘
행하는 자가 된다. 내가 너희 각자를
조금씩 행할 수 있게 직접 만들어
주고 있지 않느냐. 선생이 늘 기다려
주며 작품으로 만들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 봐라, 남은 한때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조금씩이라도 만들기
시작해야지. 시작조차도 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시간이 부족해서 결국 다
완성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시작’이 그만큼 중요하다.
시작은 성공의 문에 일단 들어간
것이다. 조금씩 행한다 해도 일단
시작해야 된다. 뭐든 시작하기까지가
힘들지, 막상 시작하면 가속도가 붙어
잘하게 된다.
고로 사탄은 시작도 하지 못하게
여러 가지로 막는다. 또한 시작을 했다
해도 끝까지 하지 못하게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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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해라!’ 끝까지 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끝까지 할 수 있게
‘목적을 세우는 것’이다.
<목적>은 ‘끊임없이 행할 수 있게 하는
에너지’가 된다. 목적을 세우고 행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남은 한때도
어떻게 행할 것인가 목적을 세워라.
기도하며 나와 함께 세우자!
선생과 육으로 만날 때
어떠한 모습으로 만날 것이냐?
만들어진 작품이 되어 만나야 한다.
성지 땅을 개발하는 자들은
선생의 손에 흙을 묻히지 않게 하려고
목숨을 걸고 쉼 없이 작업한다는 것을
들었지? 미완성된 작품은 결국 또
선생이 만들어야 되지 않느냐.
만들어라! <행함>으로 자신을 대체
불가한 작품으로 만들어라! 그리하면
선생이 그 작품을 가지고 세계를
누비며 작품을 자랑하며 작품을 만든
보람을 느끼며 영원히 품에 넣고 살
것이다.
이제는 선생과 함께 세상을 향해
외칠 작품들이 얼마나 세워지느냐에
따라 섭리의 미래는 결정된다.
나 성령이 임하여 마음껏 외쳐
생명을 구하는 자가 되어라.
선생과 함께
세상을 구하는 자가 되어라.
선생과 함께
목숨을 걸고 외치는 자가 되어라.
선생과 함께
끝까지 행하는 자가 되어라.
나이가 어려도 연륜이 적어도
다 상관없다.
얼마만큼 자신을 만들어
작품을 만드느냐가 내게 중요하다.
나 성령은 눈이 빠져라 그러한 자를
찾고 있다. 매 순간 임하여
나의 몸으로 쓸 자를 찾는다.
나 성령을 부르고 애원하는 자를
찾는다. 목숨을 걸고 자신을 만들어서
선생의 완벽한 발판이 되어 줄 자를
찾는다.
나 성령은 이러한 자에게
모든 것을 투자할 것이고
영원한 미래를 책임질 것이다.
황금성의 주인이 되어 영원토록
누리며 살게 해 줄 것이다.
남은 2년은 ‘생명’이다!
생명으로 선생이 네게 해 준 것을
보답하여라. 빚을 갚아.
마지막으로 이른다.
한 달란트를 맡긴 자는 땅에 묻어
두어 주인이 돌아왔을 때 한
달란트마저 뺏겼다. 다섯 달란트를
맡긴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겨
축복을 받았다. 2년의 세월을 멍하게
허송세월하지 말아라. 자기 하나
존재시켰다고 자랑하지 말아라.
달란트를 땅에 묻어 놓은 격이다.
자기 달란트를 가지고 달란트를 더욱
남기는 자가 되어라. 그러한 자에게
상이 클 것이다. 정말 사랑한다.
(사랑의 여신 성령님, 정말
감사드려요. 성령님의 말씀을 들으니
마음에 더욱 불이 활활 타오르고
큰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쁨이 더욱
샘솟아요.)
네 마음에 감동 감화를 주는 것이
나의 일이지 않니. 간절히 원하는
자에게서는 나를 부르는 향기가
난단다. 그래서 내가 항상 와서
도와주고 함께해 준다.
‘나를 원하여라.’
‘선생을 원하여라.’
이것이 영원한 성공의 비법이다.
안녕.
(선생님을 위한 합심기도
시간이 되어 다 같이 기도를 하는데
새벽기도를 하러 나와야 하는 자들이
나오지 않은 것을 보면서 너무나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수요예배 말씀에 분명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바로 행하지 않는 자들이
많으니 어찌하면 좋을까요?”라고
여쭈며 기도했습니다.)
행하지 않는 자들은 행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손해인지 알지
못해서 그러하다. 기도하지 않음으로
휴거의 차원을 높이지 못하고 마음과
생각의 그릇을 키우지 못해 축복을
충분히 받지 못해서 그러하다.
끊임없이 가르쳐라!
행하지 않으면 주지 않고 지나간다.
때가 급하고 더 이상 시간이 없다.
받든지 받지 않든지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선생의 심정을 제대로 못
받아서 그러하다.
<행하지 않는 자>는
‘모르는 자, 무지한 자, 그냥 그렇게
살 자’다. 나 성령도 그냥 그렇게
지나간다.
<행하는 자>는 ‘행복한 자’이고
<불이행하는 자>는 ‘불행한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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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06일 주일
갖추고 행하면서
차원을 높여라
[ 열왕기상 5장 18절 ]
솔로몬의 건축자와 히람의 건축자와 그발 사람이
그 돌을 다듬고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재목과
돌들을 갖추니라
The craftsmen of Solomon and Hiram
and the men of Gebal cut and prepared
the timber and stone for the building of
the temple.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이제 12월입니다.
어느덧 2015년이 다 지나갔습니다.
이번 주 말씀을 듣고, 다음 주
말레이시아 순회 말씀을 들으면,
이제 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 ‘2016년의 방향’이
나올 것입니다.
◎ 오늘은 ‘차원’에 대해서
말씀하겠습니다. 말씀의 주제는
‘갖추고 행하면서 차원을
높여라.’입니다. 그렇다면, 내년의
주제가 ‘차원을 높여라.’이냐고요?
그건 말씀을 들어 봐야 알겠지요?
◎ 갖추고 행하면서 차원을 높여라!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사람들은 죽어 가고 있는데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시간>도
‘흘러간 시간’은 죽은 것이듯,
<사람>도
‘지나간 삶’은 죽은 것입니다.
모두 살아서 돌아다니니,
‘과거가 죽었다는 것’을 모릅니다.
<육>이 살아서 돌아다니니,
‘영혼이 죽었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렇다면, 어떤 영이 ‘죽은 영’일까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주관권을
벗어난 영>은 ‘죽음의 선, 사선(死線)을
넘어서 사는 영들’입니다.
그러나 <육>은 살아 있으니,
<육>이 ‘주의 말씀’대로 행한다면,
<육>도 <영>도 ‘생명의 주관권’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육>이 살아
있는데도 다시는 ‘빛으로 소생할 수
없는 영’도 있습니다. 곧 그 사고와
생각과 행위가 아예 ‘사망권’에 처해서
자신의 행위를 ‘선’으로 여기면서
‘악’에 속해 사는 자들의 영입니다.
이런 자들의 <영>은 아예
‘사망에 속한 영’으로 죽어 버려
다시는 빛 가운데로 나와 소생하지
못하고 다시는 ‘생명권’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끝납니다.
이단에 속해 사는 자,
우상에 속해 사는 자,
악에 속해 사는 자,
하나님과 주를 믿지 않고 사는 자들은
그 <육>도 <영>도 거의 ‘사망’에
속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육>이
‘사망권’에 속해 살다가 죽으면, 그
<영>도 영원히 ‘사망권’에 묻힙니다.
더러는 <육>이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과 주를 믿음으로 그 <영>도
점점 소생하여 빛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더러는 <영>이 영계에서 다시
하나님을 믿고 주를 믿어 점점
소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인지하지 못하고 삽니다.
왜요?
<육의 삶>만 생각하면서 사니,
<영의 삶>은 아예 생각조차
안 하기 때문입니다.
<영의 세계의 것들>은 결국
‘육의 뇌’를 통해 ‘생각과 기억’으로
전달받습니다. 고로 <뇌>가 굳거나
늙거나 <생각>이 온전치 못하고
흐리멍덩하면 영의 세계의 것들을
전달받지 못하고, 혹여 전달을
받더라도 흐릿하게 받습니다.
자기 육이 잠을 잘 때 꿈에서도
<자기 혼>이 영의 세계를 보기도 하고,
자기 육이 활동하는 생시에서도
<자기 혼>이 영의 세계를 접해서
보기도 합니다. 많은 것을 봐도
생각이 나지 않고, 인지를 못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깊이
들어가면 ‘생각’이 총명해져서
<혼이 본 것들>을 ‘뇌’에서 거의
기억하고, 혹은, 육의 생각을 떠나서
<혼과 영>으로 직접 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차원의 것들’만 보고
느끼고 삽니다. 고로 ‘그다음 차원의
것들’은 모르고 삽니다.
◎ 지금부터 하는 말을 잘 들어요.
차원을 높여야 ‘상황’도 다르게
보이고, ‘답’도 다르게 받습니다.
여러분이 <자기 차원>에만 있으면,
그 차원에만 처하고,
그 차원의 답만 받게 됩니다.
차원이 같아야 ‘답’도 같습니다.
차원이 다르면 ‘답’도 다릅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차원이 같으면 ‘답’도 같지만,
차원이 다르면 ‘답’도 다르다.
먼저 이 말씀을 가지고,
알아듣도록 하나하나 설명해 주면서
<차원>에 대해서 말씀해 주겠습니다.
<갓난아기>가 배가 고픈데, 어른
식단으로 밥을 주면 안 맞겠지요?
<어른>이 배가 고픈데 갓난아기
식단으로 밥을 줘도 역시 안 맞습니다.
<각자의 차원>대로 ‘답’을 줘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고로 차원이
다르면, ‘답’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부자>가 <보통으로 사는 자>에게
“땅도 1000평을 사고, 집도
100평으로 지어라.” 하면서,
‘상(上)차원의 방식과 답’을 주면,
‘중간 차원에 사는 자’에게는
안 맞습니다. 그 방식대로
행하다가는 망합니다.
<각자의 차원>대로 ‘답’을 줘야
됩니다. 고로 차원이 다르면,
‘답’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가령 집을 사려 하는데, <아파트>를
산다 합시다. 그러면 아파트 차원대로
‘계산’이 나오고 ‘답’이 나옵니다.
<별장>을 사거나 <땅에다 지은 집>을
산다면, 아파트를 사려고 할 때와는
‘계산’도 달라지고 ‘상황’도 달라지고
‘답’도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구약, 신약,
성약>으로 한 단계씩 차원을
높여 펼쳐져 왔습니다.
2015_12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4
<구약 차원>에 따라서 법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고, 답도 다르고, 하나님이
대하시는 것도 다릅니다.
<구약>에서는 모든 법이
‘종의 법’이고, 모든 상황이
‘종의 입장’이고, 모든 말씀과 답이
‘종급’이고, 하나님이 대하시는 것도
‘종에게 주는 사랑 차원’입니다.
<신약 차원>에 따라서
법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고,
답도 다르고,
하나님이 대하시는 것도 다릅니다.
<신약>에서는
모든 법이 ‘자녀 법’이고,
모든 상황이 ‘자녀 입장’이고,
모든 말씀과 답이 ‘자녀급’이고,
하나님이 대하시는 것도
‘자녀에게 주는 사랑 차원’입니다.
<성약 차원>에 따라서
법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고,
답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고,
하나님이 대하시는 것도 다릅니다.
<성약>에서는
모든 법이 ‘신부 법’이고,
모든 상황이 ‘신부 입장’이고,
모든 말씀과 답이 ‘신부급’이고,
하나님이 대하시는 것도 ‘신부에게
주는 사랑 차원’입니다.
<구약에 속한 자>에게
‘신약 식 답’을 주면 안 맞습니다.
<신약에 속한 자>에게
‘성약 식 답’을 줘도 안 맞습니다.
이 시대 <성약 식 답>을 받으려면,
가장 먼저 ‘이 시대 말씀’을 배워야
됩니다. 그래야 <이 말씀>이
‘자신의 답’이 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상황’도 달라지고,
‘하나님이 대하시는 것’도 달라집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초등학교 학문>은 아무리 배우고
알아도, 아무리 큰소리치면서 자랑해도
‘그 차원’입니다. 거기서 나오는 답은
모두 ‘초등학교 차원’입니다. 그래서
<한 단계 차원>을 높여 ‘중학교
차원’에 가야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그러합니다.
<구시대 차원>은 아무리 많이 알아도,
아무리 천둥 번개 치듯 큰소리를 쳐도
‘구시대 차원’입니다. 그들이 하는
말은 모두 ‘구시대의 것’입니다.
<구시대 말씀>은 아무리 차원이
높아도 ‘역시 구시대’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차원 높게 행해도 ‘구시대
구원’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한 단계 차원>을 높여
‘새 역사’로 와야 됩니다. <끝>
◎ 지금은 왜 <한 단계 차원>을
높여야 하는지,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 또 설명해 주겠습니다.
다시 화면을 볼까요?) <영상2>
<초등학교 6학년>은
‘초등학교에서 최고 높은 차원’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은
‘고등학교에서 최고 낮은 차원’입니다.
아무리 ‘초등학교 고학년’이 안다고
큰소리쳐도 ‘고등학교 저학년’의
수준을 못 따라옵니다. 초등학교
수준을 못 벗어납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그러합니다.
<구시대의 말>은 아무리
차원이 높아도 ‘구시대’이고,
<새 시대의 말>은 아무리
차원이 낮아도 ‘새 시대’입니다.
아예 차원이 다릅니다.
<구시대>에서
큰소리치면서 ‘최고로 높은 자’라도
<새 시대>로 온 ‘아이’만 못합니다.
<새 시대>는 ‘아이’로 태어났어도
‘차원 높은 새 시대’입니다. 고로
<구시대 어른>이 <새 시대 아이>를
못 따라옵니다. 그래서 반드시
<한 단계 차원>을 높여 ‘새 역사’로
와야 됩니다. <끝>
(* 왜 <한 단계 차원>을 높여야
되는지, 또 설명해 주겠습니다.
다시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아무리 <100년 된 고욤나무>라도
열매는 ‘고욤 열매’입니다. 아무리
<3년 된 어린 참감나무>라도 열매는
‘참감’입니다. 100년 된 고욤나무에서
열린 ‘고욤 열매’가 아무리 커도
3년 된 참감나무에서 열린 ‘참감’의
크기를 못 따라옵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그러합니다.
<새 시대>는 3년 됐어도
‘참감 같은 큰 열매’가 열립니다.
<고욤나무>를 베고, <참감나무>를
접붙여서 그러합니다.
<고욤나무>는 무엇입니까?
‘구시대’입니다. ‘자기’입니다.
<참감나무>는 무엇입니까?
‘구원자’입니다.
모두 <시대 구원자>라는 참감나무를
접붙여야 ‘참신부 열매’가 열려
‘구원’받고 ‘휴거’됩니다. <끝>
<고욤나무>는 아무리 커도 ‘고욤나무,
고욤 열매’입니다. <고욤나무>에서는
절대 ‘참감’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참감나무>는 아무리 작아도
‘참감나무, 참감 열매’입니다.
이와 같이 <그 세계>에서는
‘그 차원 이상’은 못 보고 못
배웁니다. <차원>에 따라서
‘상황’도 다르고 ‘대함’도 다르고,
‘법’도 다르고 ‘답’도 다릅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그러합니다.
<구약>에서는
‘자녀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신약>에서는
‘신부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그 세계>에서는 ‘그 차원의 답,
그 차원의 상황, 그 차원의 대함’
뿐입니다.
<신부 열매>는
오직 ‘성약’에서 거둡니다.
<성약역사>가 무엇입니까?
성경의 모든 비밀을 밝히고,
<휴거>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는 역사입니다. <휴거>에 대해서
배우고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그 비밀을 밝힌
‘성자와 분체’를 알고, 어서
‘이 시대 성령의 역사, 휴거의 역사’에
동참해야 됩니다.
그래야 <자기 인생의 목적>도 이루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도 이룹니다!
똑같이 <성약 섭리역사>에 왔어도
각자 ‘차원’이 다릅니다.
<구원>도 <휴거>도 ‘자기 삶,
자기 행위의 차원’대로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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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이 <휴거 700선)을 이뤄도
‘자기 삶의 차원’대로 이룹니다.
모두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고욤나무>에서 한 단계 차원을
높이니, <참감나무>가 되어 평생
‘참감 열매’를 얻게 됩니다.
비교가 안 되지요.
하나님의 역사도
‘한 차원씩’ 높여 왔듯이,
마지막으로 최고로 차원 높인
섭리역사에서도 각자 ‘한 차원씩’
높여야 상상도 못 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 그렇다면 ‘차원’이란 무엇인지,
말씀해 주겠습니다.
<차원>은
‘군대의 계급’과 같고,
‘공무원의 급수’와 같고,
‘회사의 직급’과 같습니다.
자기 실력대로
‘차원’이 좌우됩니다. 그런데
이 세상뿐 아니라 <영계>에서도
‘차원’, 곧 ‘직급’이 있습니다.
(아니, 이 세상에도 ‘직급’이 있어서
서러운데, 영계에서까지 ‘직급’이
있으면 어쩌나?)
<영계>라도
‘직급’이 없으면 ‘무질서’합니다.
또한 <영>은 ‘육이 세상에서 행한
공력’으로 직급을 갖게 됩니다.
<육신>이 그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공력을 쌓았으니, <영>이
당연히 ‘직급’을 받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영의 직급’은
공의로운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성삼위와 주가 주신 사명>이
‘직급’이 됩니다.
하늘이 주신 사명을 충성으로 행하면,
세상의 직급과 명칭으로는 표현 못
하는 직위와 권위를 주십니다.
천사들도 각자
‘자기 직급’이 있습니다. 왜요?
각자 ‘사역’을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천사들도 ‘자기에게 맞는 직급’을
가지고 사역을 합니다.
사람도 그러합니다.
<영적 사명과 직급>을 받는데요,
이것은 ‘그 사람의 행위’에 따라서
주고, ‘그 사람에게 맞는 것’을 주어
개성대로 행하게 합니다.
사랑·믿음·행위·선·생명 구원 등
각 사람이 행한 행위의 결과로
<영적 사명과 직급>이 결정됩니다.
<육계>에서는 ‘직급’으로 다스리고
지시하고 주관하지만, <영계>에서는
‘직급’으로 누구를 다스리고
지시하기보다는 ‘자기 직급’대로
자기가 스스로 행합니다.
<영계의 직급>은 어떻게 구분할까요?
<영>을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왜요?
<영계의 직급>은 ‘자기 영체’가 가지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옷>으로 입고 다니고, <빛>에 싸여
다니고, <미>로 갖춰져 아름다움을
풍기며 다닙니다.
<영계>에서는 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영이 얼마나 빛이 나는지, 영이 어떤
옷을 입고 다니는지를 보면, 그 영이
‘어떤 급’인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것들도 ‘등급’이 있고,
영계에서도 ‘등급’이 있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자연 동굴>도 나라마다
형성된 대로 ‘등급’이 있습니다.
A급, B급, C급 등 개성대로
‘등급’을 매깁니다. A급은 최고
급이고, A급 중에서도 개성대로
또 나뉩니다.
<문화재>도 생긴 모양대로
‘각종 등급’이 있습니다.
<흐르는 물>도 ‘내, 하천, 강’이
있습니다. <강>도 얼마나 많은 물이
흘러서 얼마나 많은 자들에게
쓰이느냐에 따라서 ‘급’이 좌우됩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도 그러합니다.
구약 강, 신약 강, 성약 강입니다.
하나님은 <구약>보다 <신약>에서
더 차원 높여 행하셨고, <신약>보다
<성약>에서 더 차원 높여 행하십니다.
<구약>은 할아버지 -
<신약>은 자녀 -
<성약>은 손자와 같습니다.
무엇을 해도
‘세 번째’가 많이 하고,
과거에 한 것보다
더 낫게, 더 좋게 합니다.
농사를 지어 봐도, 집을 지어 봐도,
작품을 만들어 봐도 그러합니다.
월명동을 개발할 때도 그러했습니다.
돌을 쌓을수록 ‘과거에 쌓았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되게 더 낫게, 더 좋게
쌓았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쓰실 때도 그러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에 썼던
사람’과는 비교가 안 되게 더 큰 자,
더 나은 자를 뽑아서 쓰셨습니다. <끝>
<이 세상>에서는
‘실권’을 못 잡았으나,
<영원한 세계>에서는 부지런히
뛰고 달려 ‘권세’를 얻기 바랍니다.
누가 차원을 높여 계급을 달게 될지,
예정은 없습니다. 삼위가 원하시는
대로 행하여 자기 공력을 쌓은 자가
주인입니다. 어서 뛰고 달리며
차원 높이기를 축원합니다. <전환>
말씀이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간다.
◎ 지금까지 ‘차원’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모두에게 전할 메시지를 전하겠습니다.
인생도, 영도
‘차원과 급’이 있습니다. 모두
‘A급 인생, 최고 급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육의 생각과
행실의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육의 생각과 행실의 차원>을 높이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육의 생각과 행실의 차원>을 높이면
<영의 차원>을 높이게 됩니다.
<한 차원> 더 높이면, ‘현재 차원에서
원하는 것’을 받게 됩니다.
군대에서
<소대장>은
30여 명을 관리하고 다스립니다.
<중대장>은
100여 명을 관리하고 다스립니다.
<대대장>은
450~600명을 관리하고 다스립니다.
이렇게 ‘한 차원’은
차이가 많이 납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도 그러합니다.
2015_12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6
<한 차원>만 높아도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월명동 함석집에서 ‘한 차원’ 높이니,
지금의 ‘청기와집’이 되었습니다.
<한 차원> 높은데도 비교가 안 됩니다.
어서 옛것을 때려 부수고,
차원을 높이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구약, 신약, 성약’입니다. 하나님은
‘한 단계’씩 차원을 높여서 역사를
펴 오셨습니다. 그런데 <한 차원의
차이>는 ‘동, 은, 금’ 같은 차이입니다.
<수석>은 1차원이었습니다.
한 차원 높인 것이
<수석 바위, 형상 바위>였습니다.
한 차원 더 높이니
<월명동 지형>입니다.
월명동 지형을 보니
‘사람의 여러 가지 형상, 별 형상,
하나님의 백보좌 형상’ 등
아름답고 신비한 형상들이었습니다.
<한 차원> 더 높이니, 얼마나
엄청납니까? 그래서 때마다
<한 차원씩>만 높이라는 것입니다.
<끝>
<한 차원>은
‘조금만 더’ 하면 높일 수 있습니다.
모두 ‘조금만 더’해서 <한 차원>씩
높이기 바랍니다! 늦게 하면,
차원을 높여도 써먹고 즐기는
날이 적어집니다.
고로 억울하고 아깝습니다.
빨리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그래야
써먹고 즐기는 날이 많습니다.
차원을 높여야 최고로 얻고,
최고로 보고, 최고로 쓰고 갑니다.
조건을 세워 차원을 높인 자만 얻고
누리고 갑니다. 모두 차원 높여
휴거되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최고 황금성>을 얻었으니, 이제
거기서 이상적으로 살도록 ‘육’이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육>이 차원을 높이지 않으면,
<영>이 휴거됐어도 ‘휴거의 삶’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이는 마치 ‘좋은 차’를 줬어도
‘기름 넣을 돈’이 없어서 차를
운영하지 못하는 격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모시고 섬기고 사랑하며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주와 함께
행하며 <육>이 꼭!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그래야 ‘휴거의 삶’을
운영하면서 <영>도 차원을 높여
‘황금성’에서 영원히 쓰고 누리며
삽니다.
이 시대에 신앙의 잠을 자는 자들과
하나님의 역사를 악평하는 자들은
안 보니 모르고, 못 얻으니 모릅니다.
보고 따르는 자만 알고, 행하면서 얻는
자만 압니다. 고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고생돼도 ‘생명길’로 가는
자에게만 주십니다. <잠시 쉬었다가>
차원을 높이면 옛것을 벗어나
변화되고, 기뻐하고, 희망이 이루어져
이상세계입니다.
<월명동 호수>도 차원을 높이기
전에는 그곳을 ‘수영장’으로도
사용할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래서
운동장 한쪽에 ‘수영장’을 따로
만들려고 계획하고 그리도
노력했습니다. 운동장 밑에
‘지하 수영장’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리도 몸부림치고 구상하며
기도하다가 영계에서 구상을 받고
<이미 있는 호수>에서 차원을 높여
‘수영장’으로도 쓰게 됐습니다.
그래서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차원을 높이면 편하고, 문제가
해결되고, 희망이 생깁니다.
이 세상의 건물이나 전자 제품들도
보세요. 그리도 차원 높여 발달시키고
개발하니, 각 분야의 이상세계를
만들어서 편하게 즐기며 사는
것입니다.
<차원 높인 자>는
‘이미 아래 차원’에 처해 살아 봤기에
<아래 차원>이 어떠한지 너무나 잘
압니다.
고로 <아래 차원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리 큰소리치며 자기 것을
자랑해도 별것 아니다 생각하고
거저 줘도 마다합니다. 그러나
<차원을 높이지 못한 자>는
‘위 차원의 것’을 아예 못 봤고,
또 보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느끼지 못합니다. 비유를 들어서
설명해 줄게요.
한 사람이
‘아파트’에서 살다가 곤고하여
차원을 높여서 그 돈을 가지고
땅에 별장을 짓고, 넓은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차원을 높이는 것은
힘들었지만 하나하나 갖추고 행하면서
결국 별장과 넓은 정원을 만들어
부활되어 살았습니다.
그런데 주변의 어떤 사람이
자기는 ‘좋은 아파트’에서 산다고
그리도 자랑하면서, 한 턱 쏠 테니
모두 자기 집에 놀러오라고 했습니다.
그 아파트에 가 보니,
‘자기가 살던 옛집’이었습니다.
<그 아래 차원에 사는 자들>은
그 아파트를 보고 좋다고 하며
부러워했습니다. 그러나
<그 위 차원에 사는 자>만
그 아파트는 ‘아래 차원’이라는 것을
알고 아파트를 보고도 별로 안
좋아하고 시큰둥했습니다.
방을 구경시켜 준다고 해도
싫다고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상의 차원>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별장을 지어 놓고 사는 사람이
“다음에는 내 집에 놀러 와.
내가 한 턱 쏠게. 사실 나는 이
아파트에서 살다가 다른 데로 이사
갔어.”했습니다.
다음에 그 집에 가 보니,
코스도 길도 다르고, 집의
모양도 환경도 아예 달랐습니다.
그곳은 집도 좋고, 환경도 좋고,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좋은
만큼 하나하나 갖추면서 노력했기에
차원을 높여 부활되어 살 수
있었습니다.
<이 시대 섭리역사>와
<구시대 기성>이 이러합니다.
차원을 높인 섭리역사에 와서
부활되고 휴거되어 살아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섭리사 안에서도 저마다 때가 되면
<자기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전도사, 강도사, 목사 차원도 있지만,
<영적 신앙의 차원>을 높이라는
말입니다.
2015_12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7
주와 더 일체 되는 차원 높이기.
말씀 증거, 가르침의 차원 높이기.
성삼위와 주 사랑, 섬김의 차원 높이기.
행실 차원, 조건 세우기 차원 높이기.
전도 차원 높이기.
생각 차원 높이기.
기도 차원 높이기.
교육 차원 높이기.
말씀 차원 높이기.
계시 차원 높이기.
인격과 말과 행실의 차원 높이기.
방법의 차원 높이기.
경영 차원 높이기.
경제 차원 높이기. (입니다.)
2016년은 (잠시 쉬었다가) ‘차원을
높이는 해’입니다. (주제 따로 발표)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6>
<차원 높인 자>를 못 따라갑니다.
어떻게 ‘걷는 자’가 ‘뛰는 자’를
따라가며, ‘뛰는 자’가 ‘경주하는 자’를
따라가겠습니까?
<육>으로 하는 자는 1차원,
<혼>으로 하는 자는 2차원
<영>으로 하는 자는 3차원입니다.
<육>으로 하는 자가 어떻게
<혼과 영>으로 하는 자를
따라가겠습니까? <끝>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차원 높인 자>는 거기에 해당되는
것을 얻고, 자기만 알고 말하지
않는다. 말해 달라고만 하지 말고,
너도 차원을 높여서 받고 그 차원에서
살아라. 차원을 높이는 데 미쳐야,
차원을 높인다. 섭리인 모두에게
<최고 차원의 시대, 섭리역사>를
줬으니, 모두 최고 역사에서
최선을 다하기다.”
<말씀 마무리> 중요 부분
◎ 중요한 것을 한 가지 더 말씀하고,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모르면,
차원을 못 높입니다. 고로 배워야
됩니다. 그리고 가르쳐 주고 도와줘야
됩니다. <이 시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들>은 ‘최고로 차원을 높인
자’로서 ‘최고 급에 오른 자’입니다.
고로 세상 어떤 것도 부러워할 것이
없습니다.
<영원한 것>을 얻었으니,
더 좋게 차원을 높이기 바랍니다.
차원을 높이지 않으면, 그 세계에서는
‘더 이상적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차원을 높이는 때와 기회가 있습니다.
나무를 키울 때도
‘차원을 높일 때’가 있습니다.
나무가 한창 클 때 퇴비해 줘야
나무가 한 차원 더 큽니다.
그때가 지나면 퇴비를 줘도
효과가 20% 정도밖에 안 납니다.
제때 해야 됩니다. 인생들도
그러합니다. ‘차원을 높일 때’가
있습니다.
한창 클 때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나이가 더 들면, 힘들어서 차원을 못
높입니다. 늦기 전에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늦게 하면, 차원을 높였어도
그만큼 쓰고 누릴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하기. 빨리 차원 높이기입니다.
그래야 쓰고 누릴 시간이 많습니다.
서둘러서 쫓기면서 뛰듯 하면,
그 시간에 ‘불가능한 것’도 충분히
합니다.
한계가 왔을 때,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차원을 높이면, 한계를 벗어나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합니다.
걸어가서는 불가능하니,
사람들은 차원을 높여 자전거를
만들고, 차를 만들고,
비행기를 만들어서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휴거됐을 때 더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휴거의 삶’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걷기, 뛰기, 경주하기입니다.
자갈, 돌, 바위입니다. 자전거, 자동차,
비행기입니다. <한 차원> 높였지만,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니 어서 올라가야 됩니다.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어떻게 차원을 높이겠습니까?
행하면서 높이기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7>
차의 속력을 내려 할 때도
<마음>만으로는 안 됩니다.
실제로 <액셀러레이터>를 밟아서
속력을 내야 됩니다.
신앙도 그러합니다. 행해야 됩니다.
행하면서 차원을 높이기입니다. <끝>
올림픽경기 때도 자기가
겨루고 행한 대로 각 종목별로
‘금, 은, 동메달’을 줍니다.
자기가 행한 차원대로 메달을
받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할까요?
차원을 높일 때는 하나하나
행하면서 갖추면서 높여야 됩니다.
<월명동 자연성전>을
예로 들어서 말씀할게요.
과거에는
<섭리사 성전>이 없어서 서울에다
‘전세살이 집’을 얻어서 성전으로
썼고, 모든 사람들이 ‘공동으로 쓰는
곳’이나 ‘공터’를 찾아서 섭리인들이
모여 말씀도 듣고 운동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섭리사 핵심 성전’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곧 <월명동>입니다.
<월명동>은 ‘최고 차원의 지형’을
찾아서 ‘최고 차원의 구상’을 받아
개발하여 만든 <자연성전>입니다.
그러나 한 번에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하나 구하고, 하나하나 행하고,
하나하나 갖추면서 지금까지 단계별로
계속 ‘차원’을 높여 왔습니다.
<핵심 성전>이 갖춰지고, 섭리사도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갖춰지니 섭리사 각 지역과
각 나라도 전세살이를 벗어나
<성전 구입, 성전 건축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갖추지 않으면,
‘차원’을 높여도 감당하지 못합니다.
고로 하나하나 행하면서 갖추면서
‘차원’을 높이는 것입니다.
<큰 차>만 산다고 되겠습니까?
‘운영할 능력’이 있어야 됩니다.
2015_12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8
<큰 차>만 사 놓고 ‘운영’을 못 하면,
기름도 못 넣고 세금도 못 내서 결국
못 타게 됩니다. 고로 <차>를 사려면,
‘차를 운영할 능력’을 갖춰야 됩니다.
<만사의 모든 것>이 그러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 말씀에서도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돌과 재목’을 갖췄다고
했습니다. <신앙 세계>도 그러합니다.
하나하나 갖추면서 ‘차원’을 높이는
것입니다.
성자는 섭리사 신부들을 휴거시키고
떠나셨습니다. 이는 ‘최고 좋은 큰
차’를 사 주고 간 격입니다.
이제는 각자가
‘이 차’를 운영해야 됩니다.
그러나 갖추지 않으면,
운영하지 못합니다.
고로 부지런히 하여
갖추면서 때마다 ‘차원’을 높여
<성자가 선물로 주고 가신 휴거의
차>를 운영하면서 하나님과 성령님이
원하시는 <휴거 700선>까지 오르기를
축원합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가치성을 아는 것의 차원>을 높여라.
<가치>를 모르면, 주와 같이 천국에
못 간다. 같이 차원 높여
‘차원 높은 세계’로 가자고 하며,
네게 돈을 주고 ‘이 차’를 타고 같이
가자고 해도 오히려 그 돈으로 먹고
즐기느라 차를 못 타고 걸어오니,
어떻게 같이 갈 수 있겠느냐.
<시간>이 ‘돈’이다.
<귀한 시간>을 가지고
‘삼위의 뜻’대로 귀히 쓰면서,
제때 ‘그 차’를 타고 같이!! 가자.”
◎ 말씀 마쳤습니다.
2015_12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9
2015년 12월 11일 금요
천국 백화점 : 의 값 계산대
내 영과의 대화(천국 영의
키, 외모, 성격, 의식주)
작성일 : 2015. 11. 8. 작성자 : 주빛이나
(2015. 11. 8.
새벽에 기도할 때 받은 말씀입니다.
성찬식 당일 기도하며 성령님께
간구할 때 받은 계시입니다.
‘오늘 성찬식인데 내 영은 현재
뭘 할까? 천국에 가고 싶다.’하고
생각하다, “성령님, 선생님의 조건으로
구하니 천국의 제 영의 모습을 보여
주세요.” 하였을 때 천국의 제 영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 영은 화장대에 앉아 있었습니다.
제 영의 머리는 가는 금발 웨이브에
허리까지 왔고 머리 오른쪽에는
핑크빛 브리지가 들어간 헤어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 영이 브러시 빗으로
머리를 빗고 있었습니다. 옷은
노란색 파스텔 톤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습니다.
순간 저의 영이지만 저의 육과는
달리 너무 예뻐서 부러웠습니다.
영에게 물었습니다.
(뭐해?)
응, 선생님 만나러 가.
(우와, 부럽다.)
내가 넌데 뭐가 부러워.
(아, 그렇지, 뭐 하러 가는데?)
선생님이 성찬식 때 입을 옷을 사
주신다고 하셔서 천국 백화점에
가려고. 천국에 선생님이 갖고 계시는
백화점이 있거든.
(우와~)
제 영이 선생님을 만나려고 단장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제 영은
선생님을 만나러 화려하고 높으며
속이 비칠 듯한 크리스털 건물 앞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아이보리 빛의 정장을
입고 계셨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백화점에 들어가니
세상 백화점과 비슷한 풍경이었습니다.
옷, 신발, 액세서리, 가방 매장 등
다양했습니다.
신기한 건 화장품 매장도 있었습니다.
먼저 선생님과 함께 옷 매장을
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입고 싶은 것을 골라 봐!” 하시며
매장 소파에 멋진 모습으로 앉으셔서
저를 보고 계셨습니다.
저는 이리저리 드레스를 보다가
노란색과 금색이 섞인 화려한
드레스를 골랐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매장마다 계산대가 있었습니다.
“어! 천국도 계산을 하네.” 하니,
매장 관리자는 백화점이니 물건을
그냥 가져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육계에서도 특정 금액을 지불해야
가져갈 수 있듯이 옷마다 가격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육계처럼
돈으로 지불하는 것이 아닌
개인의 의 값으로 계산대에서
계산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좋은 것은 천국은
계산한다고 의 값이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리 계산해도 줄어들지
않는 각자의 의 값, 행실 값으로
지불되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화려하고 멋지고 예쁜
옷은 그만큼의 의가 있어야 입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제가 이 백화점에
선생님과 같이 왔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선생님과 함께 왔으니 제 의
값이 아닌, 선생님의 조건 값으로
선생님이 직접 계산해 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옷을 선물로 주시며,
“의의 기준대로 입을 수 있는 옷이
다르다. 마치 의 값대로 집의 위치와
크기가 다르듯이 지상에서 부자와
평민이 지불하여 입는 의상이
다르듯이 다르다.” 하셨습니다.
‘아, 의가 진짜 중하구나.’
생각했습니다. 내가 의 값이 안 되는데
좋은 것을 입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
있다고 했습니다. 바로 선생님이
사 주시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근본은 자기가 행하고 만든
만큼 더 좋은 것을 얻고 누릴 수 있는
세계라는 것입니다.
영계에서도 드레스뿐만 아니라
캐주얼을 좋아하는 영들을 위해
캐주얼 의류 매장도 있었고,
한 매장은 후드 티도 많았습니다.
청바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국 실로 짠 청바지였고
세상의 청 소재와는 느낌이 조금
달랐습니다. 거친 느낌의 소재가 아닌
보다 부드러운 소재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천국도 다양한 의류가 있고,
천국의 재료들로 다 만들 수 있고,
개성대로 입는다. 신부라고 드레스만
입는 것이 아니라 신부로서 최상급의
옷들을 입는다. 천국의 축소판이
세상이듯이 천국의 유행을 따라서
지상에서도 만든 것이다.” 하셨습니다.
다음은 화장품 매장에 가 보았습니다.
영들도 화장을 한다고 했습니다.
천사나 재능이 좋은 영들이 매장에서
물건도 팔고 화장도 해 주었습니다.
저도 여러 가지로 사용도 해 보고
립스틱도 발라 보았습니다.
매장 관리자가 홍보를 했습니다.
“천국의 천연 제품으로 만들었어요.
육계처럼 화장이 잘 안 되거나
얼굴이 건조하거나 입술이 틀일은
없어요. 영이니까요.” 했습니다.
화장품을 써 보니
입술이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어두운 색은 없고 화사한
파스텔 톤들이 많았습니다.
세상 화장품과는 빛이 달랐습니다.
반짝이는 펄이 아닌 다이아몬드
가루가 들어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영들은 피부가 워낙 좋아서
피부 화장을 할 필요는 없지만,
원하면 한다고 했습니다.
섀도, 립스틱, 볼 터치만 해도
아름다웠습니다.
천국 행사가 있을 때나,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영들이 많이
한다고 했습니다.
신기한 건 지상 육계에 매장마다 모델
사진이 걸려 있듯이 천국도 매장마다
모델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휴거된 영들이 모델이라고 했습니다.
2015_12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0
지상에서 모델을 하던 자들이
지상에서 갖고 있던 개성과 재능대로
천국에서도 한다고 했습니다.
썬스타들이 주로 많이 한다고
했습니다.
*영과의 대화*
(이후 저의 영이 제 육에게
말했습니다. 영이 제 육에게 말하기를)
놀랄 필요 없어. 난 많이 해 봤거든.
휴거되고 얼마나 기쁘게 살고 있다고.
그러니 넌 지상에서 잘해 줘. 네가
잘해야 나도 잘되니까.
천국에 좀 자주 와. 그동안 육이
바쁘다고 천국 견학도 안 왔는데
사명을 잊지 마. 섭리사 신부들이
영계가 얼마나 궁금하겠어?
(이후 제 육이 영에게 생각으로
말했습니다. “너의 모습과 나의 모습은
정말 다르다.” 새벽이라 꾸미지 않아
제 육이 더 초라해 보였습니다.
영이 말하기를)
넌 사명이 빛이고 결국 근본은 영이니
너의 본모습은 육이 아닌 영이야.
내가 진짜 너의 모습인 거야.
그러니 사명의 빛을 발하며 끝까지
열심히 해.
나도 좀 찾고 부르고 도움도 요청하고.
천국에서 영들끼리 만나서 대화도
많이 하는데 각자 본인의 육 이야기도
많이 나눠. 근데 섭리사 신부들이
생각보다 자기 영을 잘 안 찾는다는
얘기를 많이 해.
휴거된 영의 도움을 받아.
네 능력보다 내 능력이 훨씬
상차원이야. 그리고 너 모르게
내가 도와준 일도 얼마나 많은데...
성령님과 선생님이
능력을 주고 도와주시지만
너, 생명 만날 때 내가 도와주고,
집회 다닐 때 내가 함께 능력을 주고,
위험한 곳은 피하게 하고,
기도할 때 능력을 주고,
말씀을 들을 때 뇌에 저장시켜 주고,
찬양할 때 목소리의 능력을 주는데
확실히 몰랐지?
나를 자주 찾고 능력을 받아.
영은 휴거됐으니 다르다고.
앞으로 내가 함께 도와주고
능력을 준다는 거 생각하고 봐.
그럼 내가 어떻게 도와주고
능력을 주는지 보일 거야.
내가 함께한다니 힘 나지?
가끔 위험에 빠지거나 급한 일이
있으면 급히 천군 천사를 대동해서
지키거나 성령님과 선생님께 내가
먼저 보고해. 육이 중요하니까.
너에게 나의 모든 운명이 걸려
있으니까.
오늘 성찬식이니 육계에서도
영계에서도 잘 맞이하자.
나도 이제 기도해야겠다.
너도 기도해. 안녕.
(이후 선생님께서 천국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말씀*
오늘 보았지.
천국에서는 지상에서 육신의 의 값,
행실 값, 공력대로 모든 것을 얻고
누린다.
오늘은 모든 자들이 공감하고
좋아할 이야기를 해 줄게.
천국의 비밀 이야기다.
지상 육계에서도 각자의 삶에
계급이 있듯이 천국도 그러해.
그러나 육계와 영계가 다른 것은
육계는 조상과 부모로 인해
평민과 중, 상류층으로 나눠지거나,
자기가 수고하고 노력하며 평생
육의 것에 투자하며 열심히 일해야
자산가가 된다.
육의 것을 자기 육이 다 못 쓰고
결국 죽음이 닥치면 육신은 참
허무하다 하며 끝나고, 육의 것에만
투자한 육은 영에 투자한 것이 없어
영원한 고통 속에 육의 삶을 잊은
채로 살게 된다. 그러나 영계는 공의의
세계이다. 영은 태어나서 모두 같은
위치에서 성장한다.
조금 다른 영은 있다.
바로 부모나 집안 내력으로 기독교의
의가 크거나 태에서부터 부모의
기도의 의로 그 의를 받고 태어나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그 의를 받아도
조금의 차이다. 결국 본인이 육계에서
행한 의 값, 행위 값, 공력이 크다.
그러니 영은 공의롭게 동등한
위치에서 자기 육이 행한 만큼
천국에서 얻고 누리게 된다.
육이 육계에서
성장하고 행한 대로, 사명대로
천국의 위치와 거주지, 영의 키,
외모, 의식주, 성격이 결정된다.
이것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줄게.
육은 태어나면
부모의 키, 외모, 성격을 물려받지만
영은 다르다. 영은 육처럼 부모의
유전적인 외모, 키가 아닌 자기 육의
유전을 받는다. 바로 행함의 값,
공력의 값이다.
자기 영의 부모가 곧 자기 육이기에
육이 영에게 유전과 상속을 잘해 줘야
한다. 육의 행함과 공력대로 휴거를
이뤄 영에게 유전되어 영의 키, 외모,
성격과 의식주가 결정된다.
영의 성격은
영의 부모인 육에게서 유전된다.
자기 육이 육계에서 변화된 대로,
만드는 대로 영의 성격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영의 성격은 육계에서 육이
만든 성격으로 영에게 유전되어 선한
영은 천국으로, 악한 영은 악한 대로
지옥으로 가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성격이 악해서
지옥으로 결정이 난 자는 없지 않으냐.
이와 같은 이치이다.
천국은 공의의 세계이니 얼마나
감사하냐. 공의로우니 시기할 것도
불평할 것도 없다.
아까 천국에서 의복도
의 값대로 구매가 가능했지?
(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영이 천국 위치가 300선이고
주택 같은 집에 산다고 가정해 보자.
근데 이 영이 700선 휴거된 자가
치장하는 의복을 입으면
어떠하겠느냐? 안 맞아서 못 입고
어색해서 못 입는다.
너희가 잘 이해하도록 세상 비유를
들어 보자. 비유를 들면 어린아이가
20대의 옷을 못 입듯이, L 사이즈인
자가 S 사이즈 옷을 못 입듯이,
2015_12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1
300선인 자는 안 맞아서 못 입는다.
300선은 황금성에 갓 태어난 신부와
같고 700선은 완성된 신부와 같다.
300선과 700선은
급이 완전히 다르다.
점점 성장할수록
남자는 하나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를 이루며
여자는 성령님과 같은 모습으로
완벽한 영으로 성장한다.
700선도 어떻게 이루느냐에 따라
다르다 하였지. 그러니 더 좋게,
더 크게 행함으로 이루라는 것이다.
결정된 위치에서 더 행함으로
더 좋은 것을 누릴 수는 있다.
그러나 각자의 휴거선에 맞는
위치에서 더 좋은 것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완벽한 몸매, 완벽한 키,
완벽한 외모를 갖고 싶어 한다.
더 멋있어지고 싶어 하고,
더 예뻐지고 싶어 한다. 맞지?
잠깐 육의 아름다움이 아닌 근본
영에게 투자하여 영원히 만들자.
또 얘기해 줄게. 잘 들어 봐.
300선과 700선 휴거된 영은
옷맵시가 다르다. 키, 외모, 몸의
라인이 다르며 빛이 다르다.
비유를 들면 마치 아직 더 성장해야
하는 10대와 성장을 이룬 20대가
다르듯 다르다.
공의롭지 않으냐?
자기 영을 자기가 원하는 외모로
만들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세상에서는 멋있어지고 싶고,
예뻐지고 싶어서 몸에 칼을 대고
바늘을 꽂고 약을 먹지만 영계는
다르다.
육이 행한 대로 만들어지니
영은 육 자체가 성형외과다.
합당하지 않으냐.
영계의 비밀을 영의 삶이 되었을 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는 자가
미리 가르쳤으니 확실히 알아라.
자기가 자기 영을 부지런히 만들면
얼마든지 더 좋은 휴거,
더 좋은 천국을 만들 수 있다.
그러하니 행하면 행할수록 기쁨이며
높은 것을 보게 되고, 많이 얻고 많이
누린다.
더 높은 휴거, 더 큰 휴거를 이뤄라.
너희의 모든 의가 영에게 가니
차원을 높여 이뤄라.
내가 너희를 사랑하니 가까이 살고파
영계의 비밀을 말하는 선생이다.
사랑한다.
2015_12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2
2015년 12월 13일 주일
삼위가 걱정하시지 않게
하려면, 끝까지 해야 된다
끝까지 해야 의문도 오해도
풀리고 손해 간 것도 얻는다
[ 시편 23편 5절 ]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You prepare a table before me in the
presence of my enemies. You anoint my
head with oil; my cup overflows.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십니다.
말씀을 통해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여 <생각의 차원>을 높이고
<삼위와 주와 일체>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 말씀의 주제는
‘삼위가 걱정하시지 않게 하려면,
끝까지 해야 된다. 끝까지 해야
의문도 오해도 풀리고 손해 간 것도
얻는다.’입니다.
◎ 이 말씀은 <말레이시아 순회
말씀>이자, <2015년 12월 13일
주일말씀>입니다. <말씀 시작>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성령님께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걱정하시지 않게 해
드릴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도 성자도 나 성령도
걱정하지 않게 해 주려면, 누구나...
(잠시 쉬었다가) 끝까지 해야 된다!”
“끝까지 삼위일체를 믿고 사랑하며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야 그동안
역사의 의문도 풀리고, 하늘을 향한
무지도 풀리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의
의미도 풀리고, 오해도 풀리고,
그동안 손해 간 것들도 얻게 된다.”
(하셨습니다.) 아멘!!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
알파와 오메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안’에 모든 계획이 질서 있게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끝’을 벗어나서 주지 않으십니다.
<시작할 때> 조금 주시고,
<중간부터> 조금 더 주시고,
<끝나기 전>에 점점 많이 주시다가,
<끝장>에 ‘최고의 것’을 주십니다.
<다 하고 끝났을 때>, 끝까지
다 겪고 나면 ‘각종 것’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같이 섭리하십니다.
생각해 봐요.
직장에서도 일이 다 끝나야 ‘월급’을
줍니다. 일당을 받는 자라도 하루 일이
다 끝나야 ‘일당’을 줍니다. 건축을
할 때도 처음에는 ‘착수금’만 줍니다.
그러다 일이 다 끝나면 ‘일한 대가’를
줍니다.
그런데 어떤 일을 하든지
‘각종 고난·역경·문제들’은
<처음>에도 있고,
<과정 중>에도 있고,
<끝>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끝>에
고난·역경·문제들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의문과 오해’가 풀리고,
‘그동안 손해 간 것’을 얻고,
‘수고의 대가’를 받을 때는
<끝났을 때>입니다. 하나님도
<그동안 수고한 것의 대가>는
‘끝’에 주십니다.
고로 끝까지 해야 됩니다.
끝까지 해야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구원자도,
교역자도, 관리자도 걱정을 안 합니다.
물론 <중간>에 지쳐 쓰러지기도 하고,
각종 환난과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말 <끝>까지 하기만
한다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끝까지
갈 것이니, 근본적으로는 걱정이 안
됩니다.
<구원>도 ‘끝까지 행하며 견디는 자’가
받습니다. <처음>에는 주를 믿고
따랐어도 <끝>까지 안 믿고 떠난다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집>도 끝까지 건축한 집만
준공검사를 받고 사용 허가를 받아
쓸 수 있게 됩니다. (맞지요?)
<짓다가 만 집>은 쓸 수 없습니다.
올림픽 때 각종 경기에서도
‘끝까지 한 자’만 인정하고
그 안에서 메달을 줍니다. (맞지요?)
처음과 중간에 아무리
‘1등’을 했을지라도 ‘끝까지 못 하고
중도에 포기하고 그만둔 자’에게
어떻게 메달을 줍니까?
‘끝까지 하여 결국 승리한 자’가
메달을 얻게 됩니다.
<처음>에 다 주고 <과정 중>에
다 준다면 어떻게 ‘참된 자’를 찾고,
‘의인’을 찾고, ‘끝까지 변치 않는
자’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중간에 변한 자’를 <휴거>시킬 수
있으며, 어떻게 ‘중간에 변한 자’를
<천국 황금성>에 가게 할 수
있습니까?
섭리사 여러분 모두
<성삼위와 주>를 끝까지 믿고
사랑하며 여기까지 왔기에
<휴거>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게 되었고, <휴거 역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중간에 환난과 어려움을 당했어도,
지쳐 쓰러졌어도 결국 ‘끝까지’ 왔기에
현재 이 역사에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잘했어도 환난과 어려움으로
쓰러지고, 자기 본능·자기중심으로
행하며 산 자들은 끝까지 오지 못하고
오다가 말았습니다.
힘들어도 끝까지 해야
<자기 생명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성경의 인물들도 끝까지 했기에
모든 의문과 오해를 풀고, 축복을
받고, 해같이 빛나게 됐습니다.
<사무엘 선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직접
왕이 되어 통치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게 ‘왕’을 달라고 부르짖으니,
하나님이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게
했습니다.
2015_12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3
<사울>은 준비하지 않고 연단받지
않고 ‘왕위’에 올랐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정치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사울에게 기름을 부은
<사무엘 선지자>도 고통을 겪었고,
선지자 대접도 못 받았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행하여 다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하나님이 준비시킨
<다윗>을 택하게 되었고,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다윗’을 시기 질투하여 다윗을 죽이기
위해 온갖 추악한 짓을 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로부터 오는 괴로움과 고통’을
하나님 마음에 들게 잘하는 ‘다윗’을
보고 해소하며 다윗을 위해 끝까지
기도해 주었습니다.
결국 <사울 왕>은 전쟁에서 패하고,
자신도 자살하여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그 후 <다윗>이 ‘왕위’에 올라
하나님의 뜻대로 정치를 했고,
<사무엘 선지자>도 높임을 받게
됐습니다.
끝까지 하니 의문도 다 풀렸고,
사울로 인한 한도 다 풀렸고,
얻을 것도 얻게 되었습니다.
<다윗 왕>
<다윗 왕>도 사울로부터
온갖 환난·핍박·고통을 받았고,
이웃 나라로부터 전쟁의 고통을
받았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이
함께하시어 다 승리하여 나라를
평화롭게 다스리게 되었고,
왜 그동안 사울로부터 그렇게 고통을
받았는지 모든 의문도 풀게 되었고,
하늘과의 사이에 오해되는 문제도
다 풀렸고, 그동안 참고 견딘 것의
대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로 하나님께 고백했습니다.
<시편 23편 5절>에 그 고백이
나와 있지요?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원수의 목전>이 바로 ‘끝’이
아닙니까? 끝까지 했더니,
끝에 가서 다 갚아 주셨습니다.
다윗이 끝까지 연단받고 행하여
받았으니, 사탄도 힐문하지 못합니다.
<요셉>
<요셉>은 ‘꿈’ 때문에 형제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애굽에까지 팔려가
‘종살이’를 했습니다. 거기서 또
이성의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게 됐습니다. 옥에 가서 옥에
갇힌 자들의 ‘꿈’을 풀어 주었고,
결국 ‘왕의 꿈’까지 풀어 주어
애굽의 심각한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됐습니다.
어떤 환난과 어려움도 다 이기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랑하며
끝까지 갔더니,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고, 자신을 미워하여 애굽에
팔아넘겼던 형제들이 굴복했고,
하나님의 뜻도 풀고, 사연도 풀고,
소원도 성취하게 됐습니다.
<선생>
<선생>도 시대 말씀을 불신하고
악평하는 자들이 사랑과 진리와
이성의 누명을 씌우고 억울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어이
모두를 사랑하게 하시어, 이곳에서도
‘진리와 사랑’으로 변함없이 끝까지
행하여 결국 <하나님의 창조 목적,
휴거 역사>를 이루고 말았습니다!
그리함으로
하나님의 뜻도 풀고, 의문도 풀리고,
그동안 해를 당하고 손해 본 것들도
다 받았고, 악평자들로부터 오해를
받은 충성자들의 사연도 풀리고,
생명들을 살리는 영광의 길을 가게
됐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성경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보면,
<끝까지 한 자들>은 과거의 의문이
다 풀렸고, 하늘에 속한 것뿐 아니라
땅에 속한 것들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환난·핍박·억울함·힘든 일을
겪으며 <하나님의 역사>를 오해하고,
안 믿어진다고 하며 안 믿고,
각종 문제로 따라오다가 만 자들은
<역사의 광야 노정>에서 쓰러지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계획하신
엄청난 영원한 뜻>을 못 이뤘습니다.
정말 ‘억울한 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영원히 ‘의문’을
풀지 못하고, ‘오해와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각종 문제’로 번민하면서
삽니다.
그들은 끝까지 오지 못함으로 인해
‘의문·오해·문제·억울함·고통’으로
끝났습니다. 끝까지 하지 못했기에
‘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만나
<시대 말씀>을 들어도 자기가 행해야
문제가 해결되고, 답을 얻고,
인생의 의문을 파헤치게 됩니다.
고로 어떤 어려움도 이기고,
환난도 이기고, 형제끼리 부딪혀도,
힘든 일이 있어도 마음 변치 말고
끝까지 가야 됩니다.
끝까지 가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형제>끼리 부딪혔을 때는
‘주와 일체’ 되면 절대 해결됩니다.
그러나 <주>를 찾지 않고 일체 되지
않으니 힘든 일이 더 닥치어 죄를
범하고, 더 함정으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주와 일체 되지 못한 연고>로
그리도 힘든 것입니다. 그러니
형제와 부딪히거나 어려운 일을
당하면, 자기 영혼의 운명인
신앙까지 버리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당해도
‘주와 일체’ 돼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일’이든 다 이깁니다.
(* 철인3종 경기 금메달
선수 ‘아이린’을 알지요?
아이린도 주와 일체 되지 않았을 때는
신앙이 힘들었습니다. 주와 일체 되니,
이제 <신앙>도 힘들지 않고, 더욱
‘초인’이 되어 <경기>도 뛰고
있습니다.
힘들어도 끝까지 하니, 성령님이
관리하여 주와 하나 되게 해
주셨습니다. 모두 이와 같이
이러합니다.)
( * 이 부분의 문장은
말레이시아 순회 때만 전한다)
2015_12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4
혹시 <주>와 부딪혔다면, 그때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가면
해결됩니다. 꼭 자기 상황을 삼위께
고하고 간구해야 됩니다. 그런데
이때 외롭다고 하며 이성을 찾으면서,
지극히 ‘이성의 본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 함정에 더 깊이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안 하는 자>는
아침에 집에서 나와서 일을 보고,
저녁에 집에 돌아가다가 말고
길거리에서 자는 자와 같습니다.
<끝까지 안 하는 자>는
답을 얻지 못하고, 억울하게 의문을
품고 짐을 지고 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만 더 있었으면
하나님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데,
하루 전에 나간 자도 있습니다.
그 때가 돼야 해결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전환> 조금 쉬면서 전환
◎ 이제 <월명동> 이야기를 하면서,
왜 끝까지 해야 되는지 말해
주겠습니다.
(* 잠시 화면을 보면서 <자연성전의
모습>을 감상하겠습니다.) <영상1>
* 월명동 자연성전의 모습이
영상으로 잠깐 나간다. <끝>
<월명동>도 끝까지 하여 사야 할
땅들을 사서 <성약역사 하나님의
대(大)자연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처음부터 쉽게 땅을 산 것이 아닙니다.
땅을 사는 과정 중에 문제도 많았고,
정말 힘들기도 했고, 일이 잘 안
풀리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끝까지
하지 않았으면, 땅을 사면서 왜 그런
문제들이 있었는지 의문을 전혀 풀지
못했을 것이고, 안 되는 것이 뜻인 줄
알고 꼭 살 땅을 못 사고 끝났을
것입니다.
<하다가 마는 자>는 ‘중단한 데’서
‘현실’만 보고 판단하고 주장하고
끝납니다. 그리고 남에게도 그같이
말하고 가르칩니다.
<월명동 땅을 살 때>는 하나의
땅을 살 때마다 수십 번씩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냥 쉽게 산 땅이 하나도 없습니다.
어느 때는 ‘이 산은 사는 게 뜻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어려웠습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하고
중간에 그만뒀다면, 선생 역시
‘중단한 데’서 ‘현실’만 보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했더니,
결국 ‘핵심지’는 다 샀고 개발도
했습니다.
이렇게 과정 가운데 어려움들이
많았지만, 결국 끝까지 하여 개발하고
<자연성전>을 만들었기에 그동안 왜
안 됐는지 의문도 풀렸고, 시대 최고의
비밀도 풀렸고, 사연도 풀렸습니다.
하다가 말았으면
하나님의 시대 비밀을 못 풀고,
의문·오해·섭섭함으로 끝났을 것이고,
<하나님의 뜻이 아닌 다른 곳>에다
‘하나님의 구상’도 못 받고 지옥 같은
고생을 하면서 개발을 했을 것입니다.
원래 <월명동>은
처음에 ‘수련장’으로 개발했습니다.
오직 성삼위를 붙들고 힘들고
어렵지만 하나님의 구상대로 끝까지
하니, 이 시대 성삼위를 모실
‘자연성전 하늘의 궁’이 되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야심작 : 설교자
먼저 확실히 이해하고 전할 부분
◎ <자연성전의 최고 핵심>이 어디죠?
- 네! <야심작>입니다.
(* 잠시 화면을 보면서,
<야심작>을 감상하겠습니다.) <영상2>
* 야심작의 모습이
잠깐 영상으로 나간다. <끝> 그러나 이
<야심작>도 쌓기만 하면 무너졌습니다.
다섯 번이나 무너졌습니다.
(* 어떻게 무너졌는지, 잠깐 화면을
볼까요?) <영상3>
이곳에 쌓은 돌들은 ‘작은 돌들’이
아닙니다. 몇십 톤씩 되는 ‘큰
돌’입니다. 하나님의 구상대로
쌓는다고 쌓았는데, 쌓기만 하면
무너져서 돌이 다 깨졌습니다.
그러나 “돌은 무너졌어도 내 마음은
무너지지 않았다.” 하며, 하나님의
구상을 실현하고자 끝까지 쌓았습니다.
<끝>
만일 끝까지 안 했으면 <야심작>의
의문을 못 풀고, 왜 돌이 그렇게
무너졌는지 답을 못 얻고 육적으로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심작>은 왜 ‘다섯 번’이나
무너졌을까요? 이것은 ‘자연의 원리’로
하나님이 무너지게 한 것입니다.
왜요? 다시 쌓으라고요.
왜 ‘다섯 번’이나 무너졌을까요?
아는 사람은 손을 들고 ‘핵심’을
대답해 보기 바랍니다.
(전체 - 손을 든 사람
2명 정도만 발표하게 한다.)
(말레이시아만 해당 - 전 세계에서
이곳 현장에만 선물이 있습니다.)
(* 이제 답을 발표하겠습니다.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 <돌을 세워서 쌓은 위쪽>은
‘등받이’, <돌을 눕혀서 반반하게 쌓은
쪽>은 ‘의자 바닥’, <양쪽 맨 끝 돌>은
‘의자 손잡이 끝’
<야심작>은 성자가 떠나시면서
‘그 비밀’을 밝혀 주셨습니다.
“<야심작>은 ‘하나님의 백보좌
상징’이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보좌 상징>인데,
다섯 번째까지 ‘의자 형상’으로 만들지
않았기에 무너지게 한 것입니다. <끝>
<잠시 쉬었다가>
◎ 이제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해 주겠습니다.
(중요 부분 : 설교자들은 이해를
확실히 하고 설명해야 된다.)
<야심작>을 쌓을 때
‘다섯 번째’까지는 돌을 너무 경사지게
쌓아서 무너진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다섯 번째’에는 <야심작 중간 쪽>에도
많은 돌들을 ‘세워서’ 쌓았습니다.
최고 많은 돌을 ‘세워서’ 쌓았는데,
무너진 것입니다.
<설명 중요>
그래서 ‘여섯 번째’ 다시 쌓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야심작 중간 쪽>에 ‘돌을 세워서
쌓지 못하는 여건’이었습니다. 돌이
‘다섯 번’이나 무너지면서 그 기간
안에 ‘크고 좋은 돌들’이 많이
2015_12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5
들어왔습니다. 그 ‘큰 돌들’을
<야심작 위쪽>에 세우려고 했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추가 화면>
돌을 쌓을 때는
‘포클레인’을 사용하여 <아래 쪽>부터
쌓고 서서히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쌓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위로
올라가면, 포클레인이 돌을 들어서
놓을 수 없기 때문에 <돌을 쌓아 놓은
곳> ‘위’에 흙을 채워서 그 위에
‘포클레인’을 올려서 연속해서
돌을 쌓아 올라갑니다.
그래서 <야심작 아래 쪽>은 돌을
‘세워서’ 쌓지 않고, <좋은 호피석>을
‘눕혀서’ 반반한 면이 위로 올라오게
하여 앉기 좋게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흙을 채워
‘포클레인’이 올라가게 해서
연속해서 쌓아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포클레인’이
<야심작 위쪽>으로 올라가려면
<야심작 중간 쪽>에도 돌을 ‘세워서’
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섯 번째에는 밑에 쌓았던
것처럼 <야심작 중간 쪽>도 반반한
면이 위로 나오게 해서 의자같이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앉아서 사진 찍는 장소로 하자.
또 축구 할 때 관중석으로 하자.”
하고, <야심작 중간>까지 돌을
반반하게 의자처럼 쌓았습니다.
그런데 <야심작 위쪽>은
‘포클레인’으로 할 수 없어서 결국
‘크레인’을 사용하여 <야심작 위쪽
부분>만 돌을 부챗살같이, 병풍같이
‘세워서’ 쌓았습니다. 그렇게 하니
<야심작 상단부>가 아주 멋있었습니다.
<끝>
* 야심작 사진 한 장 준비
(씨티엔 준비)
설교자들은 사진을 보면서 그냥
설명하지 말고, 반드시 ‘야심작 위쪽,
아래쪽, 중간 쪽’을 각각 가리키며
설명. (중요) 그런데! 여섯 번째로
돌을 다 쌓은 후에 흙을 다 파내고
보니, <야심작 가운데>도 밑처럼
돌을 눕혀서 반반하게 의자처럼
쌓았기에 가운데가 휑하니 볼거리가
없었습니다.
다섯 번째 쌓았을 때는
<야심작 가운데>에 <사랑솔>같이
가지가 너울거리고 잘 뻗어 나간
큰 소나무들을 심었는데 병들어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야심작 가운데>에는 ‘소나무’도
없는데 ‘돌’까지 눕혀서 반반하게
쌓았으니 볼거리가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좋아서 웃고 박수 치며
“이제 됐다! 됐다!”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의자 형상’이
제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 여기까지 마지막으로 쌓은
<야심작> 사진 보여 주면서 계속 설명
<잠시 쉬었다가>
<야심작 중간 쪽>이 너무 휑해서
하루는 ‘중간에 눕혀서 반반하게 쌓은
돌 몇 개를 빼내고, 멋있게 다시 돌을
세워서 쌓을까? 어디 ‘뺄 만한 돌
없나?’ 하고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혹여 ‘돌 몇 개’를 빼면,
<야심작 위에 세운 돌들>이
곧 무너질 것만 같았습니다.
너무 두렵고 ‘이것은 하면 안 된다.’
하는 마음이 아주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고하기를
“사실 <가운데>에 ‘돌 일곱 개 정도’만
빼내서 다시 멋있게 세워서 쌓으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요.” 하니,
“됐다! 됐어!” 하는 느낌이
오면서 깨달아졌습니다.
그래도 운동장에서 <야심작>을 볼
때마다
‘보암직’ 하지 않고 ‘꺼림칙’하여
‘바위 몇 개만 <중간>에 갖다
놓을까?’ 또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중간 쪽> 말고,
<맨 하단부>에 바위를 놨습니다.
그리고 <야심작 좌우>에
‘최고로 큰 돌’을 세웠습니다.
(* 이 돌 사진 씨티엔에서 준비
- “바로 이 돌이죠” 설교자 멘트)
좌우에 이 돌을 세울 때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좋아! 멋있어!”
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결국 끝까지 하여
<야심작>을 완성했습니다.
<야심작 작업>은 시작부터
끝까지 ‘3년’이 걸렸습니다.
<야심작>을 쌓고 완성될 때까지도
몰랐는데, 18년 만에 ‘야심작 의문’이
다 풀렸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돌을 눕혀 반반한 면으로 쌓은
하단부와 가운데>는 의자 바닥이고,
<돌을 뾰족하게 세워서 쌓은 야심작
상단부>는 의자 등받이이고,
<좌우 아래에 세운 87톤 바위>는
의자 손잡이 끝부분입니다.
이것은 ‘상징’이니, 똑같지 않아도
됩니다. 초상화 같지 않아도 이미지와
형체만 나타내면 됩니다.
만일 <야심작 중간>에 돌을
‘뾰족하게 세워서’ 쌓았다면,
‘하나님의 백보좌 형상’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요?
의자 바닥이 되는 부분에 돌을
‘뾰족하게 세워서’ 쌓았다면,
<하나님의 백보좌 형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야심작 중간 쪽에 있는 <사랑솔>은
‘백보좌의 분재’와 같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보면 하나님 보좌 앞에
‘네 생물’이 있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백보좌 상징, 야심작>
앞에도 ‘네 생물’이 있습니다.
곧 ‘호랑이바위, 성자바위 안
치타 형상 바위, 낙타바위,
코끼리바위’입니다. <끝>
<하나님의 백보좌 형상>이 아니니
야심작 돌들이 ‘다섯 번’이나 확
무너지게 하셨고, 야심작 중간에
세운 ‘큰 소나무’가 죽게 하셨고,
야심작 중간 쪽에도 돌을 ‘세워서’
쌓지 못하도록 여건을 틀어 주신
것입니다.
<6수>는 ‘끝나는 수’입니다.
다섯 번이나 돌이 무너졌지만,
끝까지 하니 ‘여섯 번째’에
<하나님의 구상>대로 완성했고,
모든 의문도 풀고, 답도 받고,
사연도 알게 되었습니다.
2015_12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6
선생은 그것도 모르고 ‘야심작 중간에
세운 납작한 돌 몇 개’를 빼내고,
다시 세워서 쌓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의자의 앉는 자리>에다 돌을 세워서
쌓아 ‘바늘 보좌’를 만들려고 했으니,
하나님이 얼마나 애태우셨겠습니까?
아직 때가 안 되어 <야심작>이
‘백보좌 상징’임을 밝힐 수 없으니,
무조건 “됐다. 거기는 돌은 세워서
쌓지 않아도 된다. 좋다.”라고만
말씀하시며 감동을 주신 것입니다.
그전에는 <야심작>이 ‘의자’와
전혀 비슷하지도 않았고,
‘뾰족한 돌’만 세워서 삼위일체
신이라도 앉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 돌이 ‘다섯 번’이나 무너지면서,
그 안에 ‘크고 좋은 돌’들이 많이
들어와서 그 돌로 <하나님의 백보좌
상징, 야심작>을 쌓게 하신 것입니다.
그 전에는 ‘막돌’을 가져다 쌓았는데
그 돌로는 <야심작>을 쌓을 수 없으니,
돌이 다섯 번이나 무너지게 하시며
‘막돌’을 가지고서는 스스로 ‘돌 쌓는
기술’을 터득하게 하신 것입니다.
<기술과 자료>가 있으니, 하나님은
그때부터 ‘하나님의 백보좌 상징,
야심작’을 완성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땅에서 미련을 품고
아쉬워하며 찜찜하게 생각했는데,
전능하신 삼위일체는 <마지막으로
쌓은 작품>을 보시며 만족하여 웃고
잔치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성자는 승천하시기 전에,
매일 선생과 깊은 대화를 했습니다.
그때, 도대체 <야심작>은 왜 그렇게
만들었냐고 물었습니다.
성자는
<야심작의 인봉>을 떼 주셨습니다.
“이것은 ‘최고 깊은 비밀이야.
<하나님의 최고 야심작>인
‘백보좌’를 상징하여 만들었다.
걸작이다.”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으앗!” 소리를
질렀습니다! 너무 충격을 받아서
숨이 거의 끊어지려고 했습니다!
감격하며 “세상에 백보좌
상징이라니요!” 하며 놀랐습니다.
이런 나를 보고,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야심작 사진>을 보니,
선연히 ‘의자 형상’이 보였습니다.
<월명동 야심작>을 쌓기 시작하고
18년 만에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성자는 <성자바위의 비밀>도 다 풀어
주시어 ‘일곱 가지 형상’과 ‘그 의미’를
알려 주셨고, <섭리세계와 민족과
세계의 의문과 비밀>도 풀어 주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나는 성경에 예언한 그 약속을
다 이루고 간다.” 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끝까지 하니, 의문이 풀렸습니다.
끝까지 행하여 만들어 놓으니,
그때부터는 ‘눈’에 보이지요?
그래서 의문이 풀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하라는 것입니다.
모두 끝까지 행해야 ‘개인의 의문,
시대의 의문’이 다 풀어집니다.
<하는 도중>에는
‘하나님의 은밀한 비밀’이라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하여
다 완성하면, 그때는 ‘눈’에 보이게
되니 부인할 수 없습니다. 고로 행한
자가 보고 깨닫게 되고, 답이
보입니다.
그때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말씀하십니다.
<야심작>도 처음부터
‘하나님의 백보좌 상징’으로 만든다고
말씀하셨으면, 일부러 ‘의자 형상’으로
만들어 그 형상이 의미가 없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만든 것이
아닌 사람이 만든 것이 됐을 것입니다.
<야심작 구상>은 ‘만드는 선생’도
100분의 1도 몰랐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만 아시고
행하셨습니다. 선생이 마음을 비우고
행하니, 그 구상을 ‘나’를 통해
실행하셨습니다.
<인생>도 ‘자기중심’을 비우고 살아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뜻대로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한 삶을 살게
됩니다.
<야심작>은
‘하나님의 작품’이고
‘하나님의 구상’이고,
‘하나님의 실천’입니다.
<섭리역사의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작품,
하나님의 구상,
하나님의 실천입니다.
<휴거>도 그러합니다.
사람이 미리 알고 행하면
‘인성’으로 하게 되고, 일단
‘인간의 본능’으로 하게 됩니다.
그리고 ‘순리적’이지도 않고
‘질서’도 없습니다.
어떤 것은 미리 알리면,
아직 하지도 않았는데 사탄과
악한 자들이 알고 시기 질투하여
방해합니다.
사람을 키울 때도 미리 ‘크게 될 것’을
알리면, 연단받고 자신을 연마할 수
없습니다. 또 사탄과 악한 자들도
알고, 아직 크지도 않았는데 미리
막고 방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이 끝까지 행하게 하십니다.
끝까지 행하면,
눈으로 보이니 확실합니다.
고로 스스로 깨닫게 되고,
그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조은 목사의 사명>도
처음부터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저 순수하게 오직 주 뜻대로,
주 가르침대로 크게 했습니다.
조은이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계획하신 것들을 끝까지 다 행하고
나서야 ‘복직된 하와’라고 밝혔습니다.
해 놔야 하나님도 ‘답’을 주시고,
끝까지 행했기에 ‘눈’에 보이니
시인하게 되고, 행했으니 주가 말해도
‘자신’도 ‘청중’도 인정하면서
감격하고 기뻐합니다.
<큰일>은 미리 알면, 의식되고
신경이 쓰여서 부담되어 더 못 합니다.
그래서 <큰일>은 항상 은밀히 합니다.
<구원자>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큰
사명’이지요? 그는 최고로 숨겨서
은밀히 키우고, 수만 가지를 겪고
고통을 당하면서 연단받은 후에
나타나게 하십니다. 연단받고 나타나야
자신도 다스리고, 청중도 다스리고,
사탄도 이기고 다스립니다.
2015_12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7
그렇게 행하면서
<하나님의 최고 목적>을 이루는
‘대상의 몸’이 되어 삼위의 시중을
듭니다. 그리고 끝까지 행하여
<휴거>로 ‘창조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신구약 6000년 동안 세우지 못한
<아담과 하와의 조건>을 세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꿈과 이상과 목적>을
이뤄 드리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해 본 자>만 압니다.
<집 한 채>도 일일이 벽돌을
쌓으며 만들어야 완성되는데,
<과거 6000년 동안 못 한 것>을
하려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마지막 역사가 시작되어
하나님은 다시 기회를 주셨고,
‘시대 대표’도, ‘시대 하와’도
수만 번씩 참고 견디고 행하면서
힘든 조건을 세웠고, 고통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해서 된 것입니다.
그 뒤를 따라서 여러분도
‘제2의 복직된 하와들’이 되기까지
각종 어려움과 연단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 역사에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지만, 결국
<끝까지 한 자들>만 ‘하늘 뜻’을
이루며 가고 있습니다.
<말씀 마무리>
이 시대의 <휴거> 외에는 하나님이
이 세상에 베푸시는 사랑은
더 이상 없습니다. 최고의 역사,
하나님이 베푸시는 마지막 사랑은
‘휴거’입니다.
◎ 이것에 대해 오늘 마지막으로
<비유의 말씀>을 해 주면서 깨우쳐
줄 테니 잘 듣고, 이 말씀을 평생
간직하고 끝까지 행해야 됩니다.
그래야 더 차원 높여 변화됩니다.
한 나라에 어떤 왕이 있었습니다.
그 왕은 ‘한 여자’가 잘되게 늘
도와줬습니다.
그러다가 공부하도록 돈을 대
주었습니다. 그러다 땅도 사 주고,
집도 사 주면서 더 크게 해
주었습니다. 여자는
“내가 왕에게 최고의 은혜를 받고
삽니다.” 했습니다. 그런데 왕은
“내가 아직도 덜 해 주었다.” 하면서,
그 후에는 그 여자를 ‘왕의 궁’에
데려다가 왕을 돕게 했습니다. 전보다
더 차원 높이 대해 준 것입니다.
그보다 더 이상의 것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왕은 여자가 23세가
되었을 때 ‘왕비’로 삼았습니다.
그야말로 최고의 차원으로 대해
주었습니다.
왕이 여자에게 묻기를 “여기서 ‘더
이상의 것’이 또 있느냐?” 했습니다.
여자는 말하기를
“더 이상은 없습니다. 여자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니, 더는
없습니다. 있다면, 목숨 다해 왕을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고,
왕을 위해 목이 터져라 노래하고
매일 춤을 추며, 매일 왕과 대화하고
사랑하며 기쁘게 살았습니다.
<왕>은 왕으로서 더 이상 해 줄 수
없이 다 해 줬습니다. 그때부터는
<택함 받은 여자>가 해야 됩니다.
<왕의 사랑의 대상>이 되어 매일
대화하고 사랑하며 기쁘게 사랑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섭리인들은
<휴거>되어 ‘황금성’을 차지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더 이상 해 줄 것’이 없습니다.
<더 이상의 것>이 있다면,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삼위일체와 주를 사랑하며,
매일 감사하고 기뻐하며 사랑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또 그 힘으로 생명을
전도하는 것입니다.
왜 다 해 줬는데도 안 합니까?
왜 하다가 맙니까?
그러니 휴거되다가 맙니다. 그러니
휴거 700선까지 완성하지 못합니다.
시간이 다 지나고 늙어서 하려고
합니까? 지금은 ‘끝’이 아닙니다.
<끝까지 가는 길의 중간 단계>입니다.
모두 끝까지 행하며 가야 됩니다.
그래야 ‘눈’에 보이니 확실해집니다.
그래야 <황금성>이 확실하게
‘자기 것’이 됩니다.
끝까지 해야 ‘의문’도 다 풀리고,
자기 행위만큼 ‘황금성 휴거 집’을
더 크고 좋게 건설하고, 자기 행위만큼
‘휴거 700’선을 크게 이루게 됩니다.
(*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는 왜 이
나라에 하나님께서 ‘섭리의 기반’을
두셨는지 진정 알고 깨달아야 됩니다.
그러나 끝까지 가야 됩니다.
끝까지 가야 <하나님의 행함>도
<섭리인들의 행함>도 알게 됩니다.
그때는 ‘눈’에 확실히 보이니,
부인하지 못합니다. *)
( ‘*’ - 이 부분의 문장은
말레이시아에만 전한다)
어서 끝까지 행하면서
<휴거 700선>을 완성하고,
성자가 택해 놓고 가신 생명들을
부지런히 전도해야 됩니다.
천 명으로 올랐다가 주저앉고
다시 하면 안 됩니다.
(이 문장은 말레이시아에만 전한다)
<휴거에 있어서 최고 핵심>은
‘사랑’입니다.
성삼위와 주를 진정 사랑한다면,
그 사랑의 힘을 가지고 생명을
살피고 전도하게 됩니다.
신약 자녀 시대 때도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었을 때,
베드로는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며
고백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네가 나를 사랑하면 내 양을 먹여라.
내 양을 살펴라.” 했습니다.
하물며 신부 시대인 이때는
어떠하겠습니까?
생명을 전도한 자들은
<휴거 선>이 높습니다. 그리고
<휴거>를 ‘작게’ 이루지 않고 ‘크게’
이룹니다. 고로 <황금성의 자기 집>을
넓은 지역에다 멋있게 건설합니다.
또한 땅에서도 <그 육>이
‘공적자 위의 단계’에 있게 됩니다.
모두 하면 됩니다.
모두 <휴거 700선>을 놓고 ‘크게’
이뤄야
인생 100년이 아깝지 않고, 섭리
인생이 아깝지 않습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
2015_12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8
2015년 12월 18일 금요
사명의 의미
작성일 : 2015. 12. 1. 작성자 : 정초연
(새로운 사명을 받고 뛴 지
6개월에 접어들면서,
성령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성령님, 제게 새로운 사명이 주어지고
처음엔 낯설었어요. 제가 생각한 것과
너무 달랐거든요. 그런데 정말 궁금한
것이 있어요. 세상에서도 진로를 정할
때 자기가 하고 싶은 일과 자기에게
주어진 일이 다를 때 고민하고,
섭리에서도 진로를 생각할 때
사람들이 참 많은 고민을 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보다
뜻인가요? 아니면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보다 뜻인가요?”
성령님은
며칠간 대답이 아예 없으셨습니다.
기도해도 성령님이 느껴지지 않아
성령님께 제발 제게 와 달라고
계속 간구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집회 영상을 보다가,
과거 성령집회 때 부흥강사님이
간절하게 기도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나며,
‘내가 저렇게 나를 비우고 몸을 내어
드리지 못하니 성령님이 나에게 머물
수 없으셨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흥강사님께서 예전에
“저는 어떤 사명을 원해서 받은 게
아니라, 저의 마음이 사명이 됐어요.
정말 선생님을 증거하고 싶은 마음,
그거 하나밖에 없었어요.” 하신
말씀을 적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다시 한 번 그 말씀을 상고하며 깊은
감동을 받고 기도하며 성령님을
찾았습니다.
“성령님, 죄송해요. 성령님, 정말
죄송해요. 제가 근본이 잘못된 질문을
했습니다. ‘저희가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저희들이 비워지지
못한 거지요. 또 저는 오직 선생님을
위해 손발이 되어 뛰겠다고 했으니까
‘선생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
저의 존재 의미인데 그런 질문을 한
것을 정말 회개합니다. 이렇게
고백드리자 성령님께서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성령님의 말씀*
그 고백이 삼위의 마음에 합당하니
나 성령이 왔다. 사명에 대해 깊이
말해 주겠다. 난 먼저 선생의 마음을
증거하고 싶구나.
선생은 늘 하늘이 원하는 것을 한다고
고백했고, 정말 그와 같이 살았었지.
선생의 삶에 선생 자신은 없었고
오직 그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성자를 더 사랑할까? 어떻게 하면
성자를 더 기쁘게 해 드릴까?
그 마음밖에 없었다.
성자가 기뻐하시는 일,
성자가 지상에 온 뜻을 이루는 것,
즉 창조 목적을 이루는 것이
그의 머릿속에 있었던 한 가지
생각이다.
그 마음이 바로 그의 사명이 되었다.
어떻게 하면 성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최고 사랑의 차원인 신부가 되는
것이지.
그래서 그는 지상의 첫 신부가 되고
모두가 신부가 되는 길을 연 것이다.
또한 어떻게 하면 성자를 기쁘게 하고
그의 뜻을 이루겠느냐. 바로 창조
목적인 휴거를 이루는 것이지.
성자를 너무 사랑한 그 마음으로
뛰다 보니 하늘의 마지막 역사인
신부역사의 기준이 되었고
휴거도 이루었지.
바로 구원자의 일이 아니냐.
이제 그가 행한 것을 보니
그의 사명을 더욱 부인할 수 없지.
그가 바로 기다린 성자,
땅에 나타난 신이지.
그의 마음이 곧 그의 사명이 되었다.
그의 간절한 사랑의 마음이 사명의
시작이었다.
부흥강사 또한 그러했다.
오직 하늘을 사랑하니 땅에 보이는
성자의 육신인 선생을 절대 믿고
사랑하여 그를 위해
자신의 삶을 완전히 비웠다.
그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선생을 더 도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선생을
잘 증거할 수 있을까?
그 마음밖에 없었다.
그가 어떤 사명이나 영광을
바랐겠느냐. 오히려 그랬다면
더욱 이런 길을 오지 못했을 것이다.
선생의 심정의 십자가를 함께 지느라
수많은 오해와 악평을 이겨야 했지만,
오직 사랑으로 선생만 바라보면서
말씀의 중심을 절대 놓치지 않았기에
바람에도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상대체로서의 완벽한 사랑을 했고
먼저 주는 사랑을 했다.
그가 행한 것을 보니,
바로 그가 하늘이 6천 년간 찾았던
시대의 복직된 하와인 것을 부인할
자가 누가 있느냐. 그런데 그 행함을
만든 것은 바로 간절한 사랑의
마음이었다.
그의 마음이 그 사명을 이룬 것이다.
사명에 대해 묻기 전에
너희의 마음을 보아라.
“이것이 나의 사명인가?”
“나는 어떤 사명을 하는 것이
뜻인가?”질문하기 전에,
너의 마음을 보아라.
선생과 같이, 부흥강사와 같이
비워져 있는지, 하늘의 역사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지,
간절한 사랑의 마음이 있는지.
너의 그 마음의 차원에 따라
그에 합당한 사명을 이루게 될 것이다.
진정 하늘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해
드리고자 하는 그러한 마음이 있는
자들은 많지 않다.
말은 선생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선생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에
자신의 소망과 관심을 100% 맞추고
그것을 해 드리기 위해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뛰는 자, 아직은 많지 않다.
완벽하게 그렇게 행한 자는 단 한 명,
바로 부흥강사다.
이와 같이 섭리를 뛰는 자가 100명만
있었어도, 아니 50명만 있었어도,
혹은 단 10명만 있었어도, 섭리역사의
판도가 이미 달랐을 것이다.
2015_12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19
부흥강사는 하늘의 길을 오면서
때로는 육이 있어 힘들어도 기쁨으로
행했고 절대 섭리역사를 의심하거나
흔들리지 않았지.
선생을 위해 마신다고 생각하니
쓴잔도 달게 마셨다.
‘내가 이 쓴잔을 마심으로 선생님께서
마시지 않으셔도 되겠구나.’하며
기쁘게 행하였다. 오히려
‘내가 이 쓴잔을 더 마셔서
선생님께서 마시지 않아도 된다면
내가 이것을 달게 마실 테니 선생님께
주지 마시고 제게 주옵소서.’ 늘
기도하였다.
진심으로 그렇게 기도하였고,
또한 그 고백대로 그렇게 행하였다.
너희는 이러한 마음이 있느냐?
섭리를 위해 살고자 하는 자들아.
선생을 사랑한다고,
선생을 위해 살겠다고,
선생의 돛을 달겠다고
고백한 모든 자들아.
너희는 앞으로
남은 2년간 어떻게 행하겠느냐?
사명은 하늘이 주는 것이고,
행하는 것은 땅의 책임분담이다.
하늘의 귀한 사명을 받은 자들아.
하늘은 너희의 마음을 보고
그 사명을 주었다.
선생을 위해 선생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일을 해 드리겠다던
그 약속을 꼭 지키고 끝까지 하여라.
하늘이 귀하게 준 그 사명을 가지고
남은 2년간 어떻게 차원을 높이며
뛸 것인지 연구하여라.
현재 사명이 없는 자들아.
사명이 없다고
안 뛰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사명이 없을 때
더 많은 것을 다양하게 행하며
너를 갖출 수 있다. 기회다.
마음을 칼같이 날렵하게 세우고,
끊임없이 배우며, 새로운 차원으로
날아갈 준비를 하여라.
지금 너희의 마음이 너의 사명이 된다.
사명이 있든, 없든
모두가 가진 사명은 이것이다.
2년간 차원을 높이는 것이다.
선생을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함으로 선생과 함께 뛰는 것이다!
(아멘, 성령님. 저는 이제까지는
섭리에서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해
왔어요. 하지만 이젠 선생님이 저를
필요로 하시는 일들을 해 드리고
싶어요. 시간이 너무 없어요.)
그래. 70년이 다 가 버렸다.
정말 시간이 없다.
선생은 이미 이룰 것을 다 이루었다.
큰 목적을 이뤘으면, 그 속에 작은
목적은 다 이룬 것이 아니냐.
창조 목적을 이뤘으니,
다 이룬 것이다.
지금까지는
‘이루는 역사’였다면
이제부터는 이룬 것 위에
더욱 본격적으로
‘천 년을 준비하는 역사’이다!
씨앗들을 골라내어 천 년간 가꿀
황금벌판을 준비하는 역사, 구원자
당세 때의 휴거 차원을 최대로 높이는
역사이다. 구원자 당세 때의 차원은
천 년의 기준이 되니, 지금 너희가
휴거 차원을 높이는 것은 비단
개인의 역사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천 년 역사에
해당되는 것이기도 하다.
차원을 높이자.
사랑의 사명을 다하는 자,
하늘이 귀하게 보고 능력을 주리라.
사랑의 성령.
2015_12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20
2015년 12월 20일 주일
<현재 할 일>은 ‘지금’
해라 ‘지금 주와 같이’다
[ 전도서 3장 1-8절 ]
1 하늘 아래 모든 일에는 정한 때가 있고,
시기가 있는 법이다.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다.
3 죽일 때가 있고, 고칠 때가 있고,
허물 때가 있고, 건축할 때가 있다.
4 울 때와 웃을 때가 있고,
슬퍼할 때와 춤출 때가 있다.
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들을 모을 때가 있고, 껴안을 때가 있고,
그것을 멀리할 때가 있다.
6 찾을 때가 있고, 포기할 때가 있고,
간직할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다.
7 찢어 버릴 때가 있고, 수선할 때가 있고,
침묵해야 할 때가 있고, 말해야 할 때가 있다.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고,
전쟁할 때가 있고, 화평할 때가 있다.
1 There is a time for everything, and a
season for every activity under heaven:
2 a time to be born and a time to die,
a time to plant and a time to uproot,
3 a time to kill and a time to heal, a
time to tear down and a time to build,
4 a time to weep and a time to laugh,
a time to mourn and a time to dance,
5 a time to scatter stones and a time to
gather them, a time to embrace and a
time to refrain,
6 a time to search and a time to give
up, a time to keep and a time to throw
away,
7 a time to tear and a time to mend, a
time to be silent and a time to speak,
8 a time to love and a time to hate, a
time for war and a time for peace.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현재 할 일은 지금 해라.
지금 주와 같이다.’라는 주제로
짧고 굵게 핵심적으로 말씀해
주겠습니다.
짧은 말씀은 시작할 때부터
확~ 집중해서 들어야 짧아도 깊게
깨닫고 많이 깨닫게 됩니다.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현재에 할 일>은
‘현재’에 하는 것이고,
<미래에 할 일>은
‘미래’에 가서 하는 것입니다.
<현재에 못 한 것>은
‘미래’에 가서 할 수 없습니다.
<현재에 못 한 일>을 미래에 가서
하더라도 이미 <시간>이 지나고
<때>가 지났으니 해도 효과가
없습니다.
또 <미래>에 가서는 ‘미래의 일’을
해야 되니, <현재 일>은 ‘현재, 지금’
해야 됩니다.
<과거에 못 한 것>을 ‘현재’에 하려면
<현재에 할 일>을 못 하게 되고,
<현재에 못 한 것>을 ‘미래’에 가서
하려면 <미래에 할 일>을 못 하게
됩니다.
<현재 할 일>을 못 하고 ‘미래’에 가서
하면, 이는 마치 ‘꽃’이 진 후에
미래에 가서 ‘앙상한 나뭇가지’만 보는
격입니다.
<현재의 것>은 ‘현재’에 해야
<미래>에 가서도 그로 인해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농부가 <현재> ‘씨’를 뿌려야 하는데
안 뿌리면, <미래>에는 ‘곡식’을 얻을
수 없는 격입니다.
<과거>는 ‘현재’를 낳고,
<현재>는 ‘미래’를 낳습니다.
고로 <현재의 것>은
‘현재’에 해야 <현재>도 잘되고,
<미래>에 가서도 얻을 것이 있습니다.
현재 섭리인들은 ‘선생의 육’과는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현재 할 일>을 다 하고
있습니다.
말씀으로 소통하고,
편지로 소통하고,
혼과 영으로 소통하고,
각 분야의 사역자들을 통해서
만나고 가르치고 있고, 이미 때에 맞춰
<휴거 역사>를 펼쳐 나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서로 만나지 못하지만,
<현재>가 ‘최고 기회의 때’입니다.
후에는 만나서 같이 해도
<현재 할 일>은 못 합니다.
섭리인 모두 <현재> ‘선생’을 못
만나도 <현재 지금 할 일>을 하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현재 할 일>을 지금 해 놓지 못하면,
후에 선생을 만나서 같이 해도 못
합니다. 이미 때가 지나가서 안
됩니다.
선생을 만났을 때는
<그때 만나서 할 일>을 해야 됩니다.
<지금 행하지 않는 자>는 선생을
만나도 같이 먹고 누리지 못합니다.
<지금 행하는 자>만 선생을 만나도
같이 먹고 누립니다.
지금 이때 수고하며 뛰고 달린 자들을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주가 그냥
두겠습니까?
“착하고 충성된 자야. 사랑하는 자야.
네가 나의 일에 동참하여 땀을 흘리며
같이 뛰고 달렸으니, 나와 같이 먹고
누리자!” 합니다.
<현재 할 일>을 하며
‘주와 같이 뛰고 달리는 자’가
<지금>도 <미래>에도 ‘주와 같이
먹고 마시며 누릴 자’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역사>는
‘때’에 맞춰 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때’에 맞춰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준비됐든,
준비되지 않았든 꼭 ‘때’에 맞춰
행하십니다.
<계절>을 보세요.
인간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바로 ‘계절의 옷’을
갈아입습니다. 인간도 ‘그 때’에
따라서 행해야 순리로 살게 됩니다.
비행기도, 버스도, 기차도 다 ‘때’가
있습니다. 그 때와 시간에 맞춰 타야
목적지까지 갈 수 있습니다.
섭리역사도 그러합니다.
지금은
2015년 3월 16일 <휴거 날> 이후,
최고의 절정기인 ‘휴거 후 3년 반의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때에 맞춰 이때 할 일을 하며
살아야 최고로 잘됩니다.
2015_12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21
<제때>가 됐는데, 누구를 기다립니까?
혼자 하더라도 ‘제때’ 해야 됩니다.
<제때>가 지나면,
누가 도와줘도 효과가 별로입니다.
<제때>가 지나면,
성삼위가 도와줘도 효과가 별로입니다.
혼자 하더라도 ‘제때 하는 자’가
최고의 지혜자입니다.
때가 지나면 하나님도 말씀하시기를
“그것은 <그때 과거에 할 일>이었다.
그때 못 했으니 어쩔 수 없구나.
지금은 나 여호와가 같이 해도
안 된다.” 하십니다.
비유를 들어서 말해 줄게요.
해가 있을 때 혼자서라도 곡식을
말려야 되는데 혼자라고 안 하고,
도울 사람을 기다리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기다리고,
주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해가 진
후에 오셨습니다.
해가 진 후에 곡식을 말리려고 하니,
“이제는 안 된다.”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같이 할 수 있으니, 지금이라도
해요.” 하고 곡식을 마당에 내다
널었습니다.
밤에 곡식을 마당에 내다 놓으니,
밤이슬에 곡식들이 흠뻑 젖어
버렸습니다.
이래서! 혼자라도 <때>가 되면,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하라는
것입니다. 그때는 도울 자도,
하나님도, 주도 기다리지 말고 해야
됩니다. 혼자라도 ‘제때’에 맞춰 하다
보면 <때>가 돕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해가 떴을 때>와
<해가 졌을 때>는 ‘상황’도 바뀝니다.
이와 같이 <때>가 지나면 ‘상황’도
바뀝니다. <때>에 맞춰 하면 ‘상황’이
안 바뀌어서 잘해집니다. 똑같은
바닷물이라도 <여름철>에는 들어가서
수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운 때’가 지나 <겨울철>이
되면 상황이 바뀌어서 바닷물이
얼음물같이 차가워져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영계>를 보니, 역시 <때>가
지나가면서 ‘상황’이 더 불리해져
갔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물건 값’이
올라가듯, 때가 지나면 자꾸 ‘상황’이
바뀌게 됩니다. 고로 <때>가 되면,
그때 빨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상황’이 뒤바뀌지 않아서 쉽게 잘할
수 있습니다.
<좋은 성전>이 나왔어도 순간
머뭇거리다가는 다른 사람이 계약해
버립니다. 그동안 선생도 기도해 놨고,
하나님도 축복해 주셨고, 그동안 어떤
성전이 적합한지 충분히 알아보았으니
<합당한 성전>이 나왔으면 그 상황에
따라서 그 때 얻어야 됩니다. 그 때가
지나면 ‘상황’이 변합니다. 그러면 못
사고 뺏깁니다.
<생명 전도>도 그러합니다.
‘때’가 있습니다.
때가 지나면 ‘상황’이 바뀝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친구를 꼭
전도하려고 마음을 먹고 대화를 해
보니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즉시 교회로, 말씀으로 연결하지
못하고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
했답니다.
그런데 하루 사이에
‘그 친구를 좋아하던 남자’가
좋아한다고 고백하면서 그 친구가
그쪽에 온 신경을 쏟게 되어 결국
전도하는 데 실패했다고 했습니다.
다음 때를 기다리려니, 좀처럼 오지
않습니다. 만사의 모든 것이 그러하고,
신앙의 세계도 그러합니다. 제때
빨리하지 않으면 ‘당세’에는 못 얻고
<후대>에만 남겨 후대에만 얻고
누립니다.
<후대>에만 물려주면 무슨
소용입니까? <당세>에도 얻고 누리며
살라고, 하나님께서 축복하셨습니다.
그 축복을 받으려면, 어서 뛰고 달려야
됩니다. 그래서 치타처럼 빨리 뛰라는
것입니다. 치타가 그냥 치타입니까?
빨라서 치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빠른 구름’을 타고 행하십니다.
주도 ‘빠른 구름’을 타고 행합니다.
곧 독수리같이, 치타같이 빠른 자를
타고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역사를 제때에 맞춰 이루기
때문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사람이 <같은 거리>를 놓고도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 편히 걸어서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이 있고,
- 힘들지만 뛰어서
빨리 가는 방법이 있고,
- 돈이 들어도 차를 타고
더 빨리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천천히 가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이
그만큼 늦어지고 늦게 얻습니다.
빨리 가면,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여
빨리 얻고 누리게 됩니다.
천천히 가서 늦게 도착하여 늦게
얻느냐, 빨리 가서 빨리 도착하여 빨리
얻고 누리느냐, 이것은 ‘얼마나 제때
빨리 행하느냐’에 따라서 좌우됩니다.
편하게 가더라도 늦게 가면, 얻고 누릴
시간이 없습니다. 고생돼도 뛰고
달려서 빨리 가면, 얻고 누릴 시간이
많습니다. <끝>
어떤 사람은 ‘편한 방법’만 택해서
삽니다. 편하니까 좋지요. 그러나
<편한 것>이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편한 것>이 ‘얻는 방법’은 아닙니다.
그런 사고를 가지고 있으니,
신앙생활도 편하게만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편하게 섭리를 뛰고,
편하게 휴거도 이루고, 편하게 산다고
하며 자랑 삼아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천천히 걸어가면서 신앙을
하니, 해 질 때나 얻게 되어,
먹고 쓰고 누릴 시간이 없습니다.
또한 <휴거 700선>에
도달하는 시간이 늦어집니다.
혹여 <휴거 700선>에 도달했어도
크게 이루지 못하고 ‘작게’ 이루고
끝납니다.
모두 ‘자기 행위’대로 받는 것입니다.
특히 <신앙의 세계>에서는 절대 ‘자기
행위’대로 받습니다.
그러니 누가 “나는 선생님과 친하다.
나는 큰사람이다. 나는 너보다 사랑을
많이 받는다.” 해도 그 말에 귀도
기울이지 말아요.
2015_12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22
<말>은 다 속입니다.
<행위>를 보면 못 속입니다. 그래서
‘큰 자’도 <행위>를 보면 압니다.
그러니 <행위>를 보고 분별하기
바랍니다. 그러나 더 정확하게
분별하는 방법이 있으니,
<영>을 보면 됩니다.
<영>은 ‘자기 권세, 자기 계급’을
아예 ‘옷’으로 입고 다니고,
‘아름다움’으로 지니고 다니고,
‘빛’으로 가지고 다니니,
<영>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절대 못 속입니다.
그러니 오직 <주의 교육>만 받고
<차원>을 높여 영적인 자가 되어 살기
바랍니다. 돌쇠가 늘 충성하면서 밭을
깊이 갈았기에 <밭에 묻힌 보화>를
발견한 것입니다.
섭리사에서 오직 하나님과 주의
뜻대로 충성하면서 주와 함께 방향을
맞춰 부지런히 뛰고 달리는 자들이
결국 빛나게 되고, 크게 이루고,
크게 받게 됩니다.
(* 다시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목적한 거리>를 놓고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 경사가 완만한
길로 편히 가는 방법이 있고,
- 계단으로 가는 방법이 있고,
- 힘들지만 경사가 심한 길로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경사가 심한 길>은 험하지만,
<가는 거리>는 그만큼 짧습니다.
그러나 정신을 몰두해서 전심을 다해
가면, <먼 거리>도 ‘짧은 시간’에 가게
됩니다.
계단으로 가는 자는 ‘보통 사람’이고,
경사가 완만한 길로 가는 자는
‘고생 안 하고 느리게 하는 자’이고,
경사가 급한 길로 가는 자는
‘고생돼도 전심으로 하는 자’입니다.
고생돼도 전심으로 하는 자가
가장 빨리 얻고, 가장 많이 얻고
누리게 됩니다. 이것은 절대 벗어날 수
없는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끝>
각자 얼마나 속력을 내고 자기 인생을
사느냐에 따라서 육과 혼과 영의
운명이 좌우됩니다.
<말씀 마무리>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구약역사>는 ‘남의 일’ 하듯이
4000년 동안 ‘느슨하게’ 행했습니다.
<신약역사>는 자녀들이 ‘자기 일’
하듯이 ‘차근차근’ 행하여 시간을
두 배로 단축해서 2000년 동안
행했습니다.
<성약역사>는 ‘삼위일체와 한 몸’이
되고 ‘삼위일체의 사랑의 대상’이
되어서 사니, ‘삼위의 사랑의 힘’을
받고 흥분되어 아주 무서운 속도로
빨리 행합니다.
고로 <신약역사>보다 시간을 두 배
더 단축하여 <당세>에도 ‘휴거’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었고,
<성약 1000년> 동안 하나님의 역사를
창대하게 펼쳐 나갑니다.
마치 <구약 4000년>은
‘마차’로 가는 역사와 같고,
<신약 2000년>은
‘자동차’로 가는 역사와 같고,
<성약 1000년>은
‘비행기’로 가는 역사와 같습니다.
구약 4000년 -
신약 2000년 -
성약 1000년 역사인데,
<성약 때>는 삼위일체와 한 몸 되어
시간을 최고로 단축해서 뛰니,
하나님의 뜻도 빨리 이루고,
육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최고로 얻고,
그만큼 빨리 얻으니 <당세>에도
누리고 쓸 시간이 충분합니다. <끝>
섭리사 안에서도 그러합니다.
일찍 왔어도
‘느슨하고 느리게만 행하는 자’는
휴거 700선도 늦게 이루게 되고,
육적인 것도, 영적인 것도 늦게 얻고,
늦게 얻으니 누릴 시간이 없습니다.
늦게 왔어도
‘삼위와 주와 사랑 일체 되어서
그 사랑의 힘으로 흥분되어 빨리
행하는 자’는 모든 것들을 빨리
이루고, 많이 얻고, 오래 누립니다.
일찍 왔는데
‘삼위와 주와 사랑 일체 되어서
그 힘을 가지고 빨리 행하기까지
하는 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비행기 차원>을 벗어나
<로켓 차원>으로 가서
행하고 얻고 누립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
2015_12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23
2015년 12월 23일 수요일
감동의 시대다. 기분 좋게 해
주는 시대다. 생각의 시대다.
이때 ‘자기 몸’을 가지고
책임을 해라. <틈>으로
‘운명’이 좌우된다.
[ 1장 6절 ]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for understanding proverbs and
parables, the sayings and riddles of
the wise.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잠언>으로 섭리인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해
주겠습니다. 기억하기 좋고, 사용하기
좋고, 행하기 좋은 지혜의 잠언입니다.
오늘도 짧고 굵게 말씀하고 마치니,
처음부터 집중해서 잘 듣기 바랍니다.
그러면 <말씀>은 짧아도 <깨달음>은
많고 깊습니다.
◎ 말씀 시작합니다. <말씀 시작>
<감동되고 흥분되고 기분이 좋을 때의
생각>과 <평소의 생각>은 다르다.
<감동되고 흥분되고 기분 좋을 때>
해야 된다. 그때는 ‘뇌도, 마음도,
생각도, 몸도 날아다닐 때’다.
고로 그때 하면 잘해진다.
생각났을 때 해야, 잊지 않는다.
<뇌>는 한 번 잊어버리면,
아예 기억이 안 난다.
모두 겪어 봐서 아는 바다.
<눈>으로 볼 때 제대로 봐라.
<눈>에서 안 보이면,
형상도 모양도 사라진다.
<눈>으로 볼 때
‘제대로 뇌에 입력하기, 기억하기’다.
볼 때 ‘눈여겨보기’다.
슬쩍 보면 봐도 긴가민가한다.
<영계>도 ‘들어가서 볼 때’
자세히 봐야 된다.
<눈>은 <뇌>와
‘한 짝’이 되어 기억을 한다.
매일 봐도 그 형상이 기억나지 않기도
한다. 그럴 때는 ‘사진’을 봐라.
<뇌>는 한 번 보면,
그 형상을 훤히 기억하지 못한다.
이 사람을 보다가 다른 사람을 보면,
그쪽으로 형상이 뒤바뀐다.
얼굴의 형상을 잊었다가도
사진을 보면 ‘이름’이 생각나고
‘형체’가 생각난다.
성경도, 말씀도 그러하다.
한 번만 보면, 훤히 기억하지 못한다.
고로 ‘조금씩이라도 매일 보기’다.
최고의 방법은
<말씀>을 생각에서 떼지 말고
정기적으로 생각해라.
그러면 바로바로 생각난다.
잊으면 죽는다. 잊으면 죽는다는 말은
‘뇌에서 사라져 버린다.’ 함이다.
잊지 말라고 하지만 말고,
‘잊지 않도록 생각하기’다.
‘잊지 않도록 행하기’다.
어떤 사람은 하루 종일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잊고 산다.
그러나 ‘잊고 사는 자’만 손해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어느 날>에 ‘그동안 원하던 것’을
주실지 모른다. 그런데 <자기가
삼위일체를 잊고 사는 날>이
<삼위일체가 주시는 날>이면,
못 받고 끝난다.
잊지 않으려면, 항상 부르고 찾아라.
매일 생각해라. 그리고 대화해라.
안 하면, 사망으로 떨어져 죽는다고
생각하면서 해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부르고
찾는 것을 작은 일로 생각하느냐.
소통하고 대화하는 것을 작은 일로
생각하느냐. 해 봐라! 그로 인해 육도,
혼도, 영도 축복이다. 영원한 나라에
가는데, 흐지부지할 것이냐.
개미는 ‘사람들에게 밟혀 죽은 하찮은
벌레’를 보고, 목숨 걸고 땀 흘리며
자기 집으로 끌고 간다. 가다가 자기도
사람 발에 밟힐까 봐 가슴 졸이며
간다. 개미 자신은 그 벌레를 못
잡는다. 사람이 밟아 놨기에 끌고
간다.
개미는 그것을 보고
“횡재했다.” 하며 끌고 간다.
삼위일체와 주가 도와서
<영원한 횡재>를 하게 해 주었다.
그런데도 그것을 확! 잡아서
끌고 가지 않으려느냐.
개미가 스스로는 벌레를 못 잡지만
사람이 밟아 놓은 벌레는 끌고 갈 수
있듯이, 네가 스스로는 얻지 못하는
것이지만 삼위일체와 주가 도와서
얻은 ‘영원한 횡재’다.
어서 잡아서 끌고 가라!
네 것으로 삼아라!
<눈>을 가지고 ‘물건’을 옮기겠느냐.
<눈>으로는 평생 못 옮긴다.
<눈>으로는 보고,
<손>을 가지고 옮겨야 된다.
삼위가 ‘크게 해 주신 것’이 있다.
<손>으로 옮기듯, 나머지는
네가 <책임>을 해야 된다.
그래야 네 것이 된다.
감동의 시대다.
기분 좋게 해 주는 시대다.
생각의 시대다.
감동받았을 때, 기분 좋을 때,
생각났을 때, 이때 ‘자기 몸’을 가지고
책임을 하며 행해라!
<잠시 쉬었다가>
<때>는 마치
‘자기가 행할 것의 자료’와 같다.
때, 자료, 행실이다. 지금은 ‘말씀을
주면서 기억나게 해 주는 때’다.
말할 때만 뇌에서 생각하니
이때 기록해라.
이때 집중해서 기억해라.
그리고 즉시 행해라.
그러면 잊기 전에 행하는 것이다.
성령이 이 잠언을 주실 때,
즉시 받아서 기록했다. 성령이
말씀하실 때 즉시 기록하고 행하니,
잊기 전에 행했다.
<행할 때>는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
그러나 그 시간도 ‘잠깐’이다.
이 잠언들도 순간 ‘틈 시간’에 쓰고
있다. 내가 하고자 하니,
뇌도 생각도 내 몸과 성령과
일체 되어 잠언을 받아 기록한다.
2015_12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24
언제 <말씀>이 올지 모르니,
범사에 늘 기다리고
준비하고 있어야 된다.
성령이 ‘잠언 한 개’를 주시면,
즉시 받아서 기록해야 된다. 그래야
‘뒤에 오는 잠언’을 재치 있게 받아서
기록한다.
늘 준비하고 있다가 ‘틈 시간’을
사용해라. 그 시간에 행한 것들을
합치면, 엄청나다.
<틈 시간에 한 일>이
<하루 종일 한 일>보다 많을 때도
있다. 이는 ‘제때’ 했기 때문이다.
가령 ‘일출 사진’을 찍는다 하자.
순간 뜰 때 1~2분 만에 못 찍으면,
그날 하루 종일 시간이 있어도 ‘일출
사진’은 못 찍는다. 이와 같이
<기회>는 ‘순간’일 때도 있다.
<포착력>이 강하려면
‘비호(飛虎)’같이 빨라야 된다.
<흥분>은 그냥은 안 된다.
노래하거나 춤을 추거나 움직여야
되듯이, 기도하고 삼위일체를 찾고
사랑해야 기쁨이 온다.
<틈 시간>에 행하느냐,
행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좋게, 혹은 나쁘게 좌우된다.
<틈 시간>은 ‘기회’다.
이때 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좋게, 혹은 나쁘게 좌우된다.
<순간의 틈 시간>은
짧고도 짧은 시간이다. 그런데
이 시간에 ‘운명을 좌우하는 자들’이
많다. 위급할 때, <좁고 좁은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고 도망쳐
살기도 한다.
<모기>도 ‘틈’을 노린다. 그 ‘좁은
틈’을 타고 어느새 물어뜯고 간다.
<사탄>도 ‘틈’을 타고 들어온다.
그 ‘틈’으로 인해 ‘운명’이 좌우되기도
한다.
<전능자>도 ‘틈 시간’에 오셨다가
준비가 됐으면 만나고 가시고,
준비가 안 됐으면 순간 가신다.
그 ‘틈’으로 인해
‘운명’이 좌우되기도 한다.
마라톤 선수인데 ‘순간 틈 시간’에
물을 마셔 갈증을 해소하고
뛰어서 우승한 자도 있다.
해도 해도 시간에 쫓기면,
‘틈 시간’을 써라.
그러면 안 쫓긴다.
<틈>은 ‘작은 구멍’이지만,
‘전체의 운명’을 좌우한다. 상대가
‘틈’을 통해 ‘전체’를 쳐다보기
때문이다.
<뚫린 틈>으로 도둑이 쳐다보는데,
어린아이가 평소 습관대로 젓가락으로
틈 사이를 콕 찍었다.
도둑은 젓가락을 눈에 맞고 사라졌다.
<틈>으로 ‘운명’이 좌우된다.
시간도 행위도 그러하다.
<틈 시간>을 가지고 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좌우된다.
<바늘구멍 같은 틈>으로
‘청중’이 다 보인다.
100% 완전하게 해야 된다.
<그 틈>을 통해 ‘적들’이
다 보고 있다.
<틈> 가지고 공격한다.
<틈>에 쉬고
<틈>에 주의하지 않으니,
<틈>에 공격한다.
<틈>을 소홀히 하며 잊으니,
<틈>에 공격한다.
전쟁 중의 작전 때도 항상
<틈 시간>이 ‘적이 노리는 시간’이다.
그때 마음 놓고 있다가 당한다.
사탄은
‘생명을 관리할 때’는 못 건드린다.
그러나 ‘관리 안 하는 틈’에 건드려
쓰러뜨린다. 유괴범도 ‘부모가
어린아이의 손을 놓을 때’를 기다린다.
‘아이가 순간 혼자 있을 때’를 노린다.
<틈>을 노리기 위해 하루 종일
쫓아다니면서 늑대같이 망을 본다.
그러다가 엄마가
“나 힘들어. 저기 가서 5분만 놀다
와.” 하고 아이를 떼 놓는 순간,
아이를 유괴한다. 항상 ‘마음 놓고
태만할 때’ 당한다. 실패한다.
적을 미리 알면, 오히려 ‘적’을
함정으로 유인하여 함정에 빠뜨리고
문제를 해결한다.
어떤 사람은 ‘우리 집에도 강도가
올 가능성이 있다.’ 생각하고,
수시로 틈틈이 창밖을 봤다.
그러던 어느 날, 강도가 자기 집
건물로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휴지통을 던져도 안 되겠고
빗자루를 던져도 안 되겠다 판단하고,
방에 사람이 있다는 인기척을 내면서
강도가 빨리 못 들어오게 한 다음에
물을 뜨겁게 끓여서 강도가 올라오는
곳에 물 폭탄을 쐈다.
강도는 아래로 떨어져 사라졌다.
사탄도 이렇게 공격해라!
자기 게으름도,
자기 나쁜 습관도,
이렇게 공격해라!
그러면 끝장난다!
2015_12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25
2015년 12월 25일 금요일
사랑, 평화, 영광의
성탄절 땅에는 평화,
하늘에는 영광
[ 누가복음 2장 10-14절 ]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But the angel said to them, "Do not be
afraid. I bring you good news of great
joy that will be for all the people.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Today in the town of David a Savior has
been born to you; he is Christ the Lord.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This will be a sign to you: You will find
a baby wrapped in cloths and lying in a
manger."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Suddenly a great company of the
heavenly host appeared with the angel,
praising God and saying,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Glory to God in the highest, and on
earth peace to men on whom his favor
rests."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어제는 <성탄이브>로 ‘예수의
탄생과 성자의 강림’을 축하하며
성삼위께 영광 돌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섭리인들은 ‘성자의 초림과 재림’을
다 맞고, ‘이 시대 보낸 자’까지 맞아
하나님께서 구약과 신약에 이어 차원
높게 역사하시는 마지막 <성약역사>로
와서 ‘시대 말씀’을 듣고 행하여
<신부>로 부활되었습니다. 그리고
‘성자의 승천’과 ‘휴거’까지
맞았습니다.
이것을 알고 성삼위께 영광 돌린
사람들은 더욱 성령 충만하고
은혜로운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 오늘은 <성탄절 당일>입니다.
오늘은 ‘예배’로 성삼위께 영광
돌립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성자의 초림과 재림을 맞고
이 시대 구원자를 맞고, 성자의 승천과
휴거를 맞은 기쁨까지 함께 누리며
뜻깊은 성탄절 보내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성탄절>을 맞아
‘예수님의 일생’에 대해서 말씀해
주겠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이 시대도 그와 같이 그러함을
깨닫기 바랍니다.
< 말씀 시작 >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세상에 보내신 목적>은
보낸 메시아를 통해 행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사랑하는 자들을 ‘죄’에서
구원하려고 이 땅에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에 대해 가르쳐 주어
이 땅에서 ‘육신’을 가지고 살면서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고 사랑하며
같이 살게 하기 위해 이 땅에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그리함으로 ‘영혼’을 구원하여
육신이 죽어도 ‘영’이 천국에 와서
영원히 살게 하기 위해 이 땅에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셋째, 이 땅에서 <메시아>를
‘구원의 왕, 사랑의 왕, 평화의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여, 이 세상에 전쟁도 싸움도 미움도
고통도 없이 평화롭게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게 하려고
이 땅에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넷째, 구약의 연대죄로 인해 ‘종’에
처한 자들이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
예수님을 믿고 ‘아들의 권세’를 받아
4000년 구약 연대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라고 이 땅에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이 시대에는 ‘아들급’에서 한 단계
더 차원을 높여 하나님이 보낸 시대
구원자를 믿고 ‘신부의 권세’를 받아
신부급 구원을 이루고 휴거되어
살라고 이 땅에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원수 ‘사탄’을
멸하고 온전치 못한 ‘비진리’를 멸하고
‘악’을 멸하여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
‘지상천국’을 건설하라고 이 땅에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여섯째, 다른 신은 없으니 유일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만 섬기고,
사신과 우상 신들은 믿지 못하게
하려고 이 땅에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메시아’를 믿고 따름으로
오직 ‘그를 보내신 삼위일체’만 믿고
사랑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게
하여 그 영혼들을 지옥에 보내지
않으려고 이 땅에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일곱째, 가난한 자와 얽매인 자,
병든 자와 죄인들을 위해 이 땅에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여덟째, 최종적으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지금까지 말한 것이
하나님이 <세상에 메시아를 보내신 큰
목적들>입니다. 하나님은 성령님과
성자와 함께 ‘메시아’를 세상에
보내시고, 먼저는 ‘그’가 크고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 과정 중에 삼위일체가
늘 함께하시며, 그가 성장하면
‘그’를 쓰고 <하나님의 목적>을
이 땅에 실현하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고, 믿지 못했고, 받아들이지
못했고, 이단시하고 핍박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이제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의
상황을 말해 주면서, 하나님이
‘메시아’를 세상에 보내셨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대했는지 말씀해
주겠습니다.
(* 쭉~ 화면을 보면서
말씀해 주겠습니다.) <영상1>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그 당시에 그 나라를 통치하던 왕은
‘헤롯 왕’이었습니다. 동방의 세
박사는 ‘별’을 보고 왕이 태어났다는
것을 알고, 예루살렘에 가서
‘헤롯 왕’에게 찾아가 말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있습니까? 동방에서 ‘별의 징조’를
2015_12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26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했습니다. 헤롯은 이 말을 듣고
“내가 왕으로서 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무슨 왕이라는 말이냐?”하며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모아서
물었습니다.
이에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선지자들을 통해 기록되기를,
베들레헴에서 백성들을 다스릴 자가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에 헤롯 왕은 동방의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가서 그 아기를 찾거든,
내게도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해라.” 했습니다.
이는 아기가 태어난 곳을 알아내어
아기를 죽이려 함이었습니다.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별이
인도하는 대로 가다가 별이 멈춰 선
곳에 가니 ‘아기 예수’가 있었습니다.
아기 옆에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 예수
앞에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헤롯 왕에게 가서
아기가 있는 곳을 말하려 했으나,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아라.’
하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꿈을 통해 헤롯 왕이 아기 예수를
죽이려 함을 알고, 다른 길로 돌아서
고국에 돌아갔습니다. 천사들은 주변의
‘양 치는 목자들’에게 계시하기를
“너희를 위해 베들레헴에 구주가
나셨다.” 하여 그들도 기뻐 영광을
돌렸습니다. <끝>
하나님은 이같이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하나님을 믿으면서 메시아를 기다리던
자들’은 <메시아>가 이렇게 올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신비하게
‘하늘 구름’을 타고 ‘어른 메시아’가
올 줄로 알았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그 당시
<하나님을 믿고 있던 유대
종교인들>은 4000년 동안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곧 ‘<하나님>이 와서 구원한다.
<메시아>를 보내어 구원한다.’ 하는
약속이었습니다.
이 <약속>은
‘유대 종교인들의 최고의 희망’이었고,
이로 인해 <4000년 구약역사>는
‘희망의 역사’였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오신다.
<메시아>가 구름 타고 온다.’ 하고
기록되어 있으니, 유대 종교인들은 늘
‘하늘 구름’을 쳐다보면서
‘언제 오시려나?’ 하고 애간장을
태우며 희망으로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하나님을 믿던
유대 종교인들은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이 직접 오실 줄 알았습니다.
아니면, <하나님>이 ‘하늘에서 황태자
같은 메시아’를 ‘하늘 구름’에 태워
보낼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잘못된 인식관을 가지고
메시아를 기다리니,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 예수님>이 ‘땅’에서 ‘사람’으로
나타나도 믿지 않은 것입니다.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4000년 동안
꿈꿔 왔던 최고의 희망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잘못된 인식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아무리 좋게 생각하며 산다 해도
잘못된 희망을 가지고 살면 스스로
‘환상’에서 끝나고, 그 희망도
물거품이 됩니다. 제대로 알고
<메시아>를 맞고 사는 것이
얼마나 ‘기쁜 삶’이고
‘영원한 희망’인지 깨닫고,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성령과 주와 함께 살아야 됩니다.
<가치>를 잊으면 ‘희망’을 뺏기고
‘절망’ 속에 살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면적은 ‘한국의 강원도 크기’입니다.
<2000년 전 유대 종교>의 규모는
<현재의 한 교파>정도의 규모였습니다.
그것도 2000년 전이니 ‘유대 종교의
규모’는 아주 작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사장들’을 중심하여 하나로
똘똘 뭉쳐서 절대 ‘모세의 율법’
아래에서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제사장들은 <옷>에다
‘메시아가 온다는 구약성서의 성구’를
써서 늘 지니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늘 성도들에게 ‘메시아가 온다는
희망’을 심어 주었습니다.
“어려워도 참아라. 곧 메시아가 온다.”
하며 희망을 주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그런데!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는
‘하늘’에서 ‘구름’ 타고 오지
않았습니다. ‘땅’에서 ‘한 여인,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아기’로
태어났습니다. <메시아>라도 똑같이
‘인간’으로 태어나서 이 ‘땅’에서
자라고 성장하며 서서히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라도
이같이 오니, 모르고 안 믿었던
것입니다. <끝>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는 계시를 받고,
<메시아>에 대해 기록해 놓고
당세에도 외쳤습니다. (사 7:14)
다니엘 선지자도
기도하다가 환상을 봤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오더라.” 했습니다. (단 7:13)
<메시아>를 ‘인자’라고 불렀습니다.
<인자>의 뜻은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다니엘 선지자도 제대로
봤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하늘 구름>은
‘정말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아닙니다. 여기서 <구름>은
‘비유’입니다.
첫째,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말대로 메시아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의 태 속에 잉태되어
<어머니의 태>를 타고 태어났습니다.
둘째, <메시아를 따르는 자들>이
‘메시아를 받쳐 주는 청중 구름’이
되어 ‘메시아’는 그들을 타고
나타납니다.
셋째, <메시아 본인>이 ‘구름’이 되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그 육신’을
타고 오십니다. 고로 <구름>은
메시아를 잉태한 자이며,
메시아를 믿고 따르는 자들이며,
2015_12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27
성삼위를 모시고 온
메시아 자신을 말합니다. <끝>
그런데 유대 종교인들은
“사람으로 태어난 자가 어떻게
인생들을 구원하느냐.” 하며
<인자>가 온다는 성경 말씀은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이 직접
오시거나, <하늘 구름>을 타고
<메시아>가 와야 된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확실히 풀지 못하고 잘못
인식하니,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아기’로 태어났는데도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던 자들>이
‘메시아’를 맞지 못한 것입니다.
그저 ‘한 고을의 한 여인에게서
한 생명이 태어났다.’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별의 징조’를
보고 찾아왔다 해도 그저 ‘한 족속의
풍속’으로만 보고 그들을 ‘이상한
자들’로만 봤습니다. 지금도 믿는
자들은 2000년 동안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역시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도
‘다시 오시는 주’는 그렇게 안
오십니다. 역시 ‘땅의 한 여인의
구름’을 타고 ‘사람’으로 오고,
‘믿고 따르는 자들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고, ‘삼위일체’는 ‘그 육신’을
타고 나타나십니다.
<잠시 쉬었다가>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하나님을 믿으며 메시아를 기다리던
자들>의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메시아’를 못 알아보니, 그 당시
왕이었던 헤롯 왕에게도 제대로
설명을 못 해 줬습니다.
고로 헤롯 왕은 ‘내가 왕인데 또 왕이
태어났단 말인가?’ 하며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별의 징조를 보고 찾아온 동방
박사들에게도 꿈에 계시하여 헤롯
왕에게 들러서 예수가 있는 곳을
말하지 말고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게 하셨고, 또 천사를 통해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에게 꿈으로
계시하여 그날 밤 아기 예수를
‘애굽’으로 피신하게 하셨습니다.
헤롯 왕은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가
있는 곳을 찾아가서 경배하고
약속대로 자기에게 와서 말해 줄 것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기다려도 안
오니, 속았다는 것을 알고 심히
노했습니다.
이에 즉시 ‘마병대’를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지역 안에 있는
‘두 살 아래의 사내아이’를 다
죽였습니다. <끝>
헤롯 왕은 무지하여 사탄과 함께
‘최고 악질적인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계시하여
‘아기 예수’를 피신시켰습니다.
이것만 봐도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을 절대 돕고 지킨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특히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의 생명>은
절대 ‘하나님’이 보호하십니다.
헤롯 왕은 그때 ‘유대의 왕으로 태어난
아기’도 100% 죽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후 <예수님>이
‘애굽’에서 크고 있을 때, 헤롯 왕은
죗값으로 죽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다시 천사를 통해 ‘요셉’에게 계시하여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으니,
아기와 그 어미를 데리고 이스라엘로
돌아가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간
요셉은 꿈에 계시를 받아 ‘베들레헴’이
아닌 ‘나사렛’으로 갔습니다. 그때부터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로 성장했습니다.
메시아도 ‘상상도 못 하는 환난’에
처합니다. 그러나 절대 ‘하나님의 보호
아래’ 삽니다.
<메시아를 해하는 자들>이 모르고
그랬어도 그 악한 행위대로 심판을
받아 ‘육신’도 사망에 처하고 그 ‘영’은
영원한 지옥의 고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을 절대
보호하고 지키십니다. 구원자의 생명을
지키듯이, 여러분도 지켜 주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죽지 않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의 생명을
보호하지 않으면 지구 세상 73억 명의
씨가 마른다.” 하셨습니다.
<천사>를 통해 보호하시고,
<사람>을 통해 보호하시고,
<만물>을 통해 보호하시고,
<감동>을 통해 보호하십니다.
이같이 사랑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지켜 주셨기에
‘사탄과 악’으로부터 보호받고
지금까지 큰 것입니다.
어렸을 때 죽지 않고,
크는 과정 중에 죽지 않고 컸으니
이제는 정말 열심히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몸이 되어 그 뜻을 펴면서,
삼위 앞에 영광 돌리고 감사하며
살아야 되겠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로 성장하다가
하나님이 정한 때가 되어 서른 살
때부터 ‘시대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던 자들’이 믿지
않으니, ‘믿고 알고 따르는 자들’만
데리고 다니며 <그 시대에 하나님이
목적하신 뜻>을 펴 나갔습니다. <끝>
하나님을 믿으며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대 종교인들은 <예수님>을 아예
이단시하며 배척했습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어떻게 <땅>에서
<사람>으로 난 자가 메시아냐.’ 하며
안 믿었고, 또 ‘구약 율법과 다르게
가르친다.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 자기를 메시아라고
한다.’ 하며 안 믿었습니다.
어떻게 <시대를 구원할 메시아>가
구약의 율법만을 말하는 제사장들과
같은 말을 하겠습니까?
<메시아>는
‘그 시대를 구원할 말씀’을 가지고
옵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연대죄로
인해 종에 갇혀 있던 자들’을
‘아들’로 구원하기 위해 <메시아로서
하나님께 받은 권세>대로 ‘시대
복음’을 전했습니다.
고로 <예수님이 하는 말>은
‘그들이 하는 말’과는 달랐습니다.
차원도 달랐고, 역사하는 힘도
달랐습니다.
2015_12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28
그 말씀을 들어야만 <종>에서 벗어나
<아들의 권세>를 받아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 종교인들은
‘율법’ 속에 갇혀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하시는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를
만나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면,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의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구원>받으려면,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의 말>을 듣고
믿고 따라야 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오직
‘그 시대에 보낸 구원자’를 통해
말씀하시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펴 나가십니다.
자동차도, 비행기도, 모든 기계도
‘엔진’을 달아야 제 구실을 하지요?
<엔진>이 ‘핵’이며 ‘머리’입니다.
<다른 부속품들>은 ‘지체’와 같습니다.
<핵>인 ‘머리’가 움직여야
나머지 ‘지체들’도 움직입니다.
하나님은
‘머리와 같은 메시아’를 보내어
그를 ‘핵’으로 삼고 ‘하나님의 뜻’을
펴 나가십니다. 하나님은 ‘보낸 자’를
통해서만 말씀하십니다. 보낸
‘구원자’를 통해서 다 말씀하셨으니,
그 이상은 깨닫게만 하시고 더 이상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구원>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일개
민족이 죽음 앞에 처했어도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직접 말씀하지 않으시고
꼭 ‘보낸 메시아’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메시아의 말씀>이
‘생명’입니다. <메시아의 육신>이
‘보이는 하나님’입니다. 온 지체가
있어도 오직 ‘입’으로만 말합니다.
<메시아>가 ‘하나님의 입’과 같습니다.
<메시아가 보낸 자>도 ‘메시아의 입’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말씀하셨고, <예수님>도 직접 말씀하지
못할 때는 ‘제자들’을 보내어 그들을
‘입’으로 삼고 말씀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6>
예수님이
‘3년’ 동안 그리도 목숨 다해 복음을
전했는데, 그동안 기성 신앙을 하고
있었던 자들은 믿지 않고 계속
예수님을 핍박하고 때리면서 살인적인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리도 하나님을 믿으면서 메시아를
기다렸건만, 성경을 잘못 풀어서,
몰라서, 잘못된 인식관 때문에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를 몰라보고
그리도 핍박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모르니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고로 그대로
두면 ‘모두 멸망’이었습니다.
이에 <메시아>는
‘구원의 책임’을 지고, 그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고자 ‘그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죽어
주었습니다. 그로 인해 ‘예수님의
육신’은 영원히 끝났고, <영>이 다시
살아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끝>
<육신>은 ‘메시아’라도 다시 살아날
수도 없고, <육신>은 ‘메시아’라도
천국에 갈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육’을 가지고 ‘우주’에 가려 해도
그냥 ‘맨 몸’으로는 못 갑니다.
<육신>은 ‘맨 몸’으로는 1m도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더군다나 ‘중력권’을
뚫고 올라가지 못합니다.
하물며 빛으로 가도 150억 년 이상이
걸리는 <천국>에 가는데, 어떻게
‘육’으로 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환상적으로만 믿고,
신앙을 환상적으로만 하면 망합니다.
<육신>이 살아서 ‘천국’에 간다는 말은
정말 모르고 믿는 무지자들의
말입니다.
<육신>이 하나님과 메시아를 믿고
그 말씀대로 행하면, 그 <영혼>이
변화되어 <영혼>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메시아’이지만,
똑같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심지도 않고 거두는 줄 아느냐.”
말씀했지요?
<메시아>도 심어야 거두고,
10m를 뛰면 똑같이 10m를 가고,
밥을 안 먹으면 죽고,
병이 들었는데 못 고치면 죽습니다.
이것은 ‘메시아가 되어 본 자’만 알
것입니다. 그러나 <메시아>는
‘하나님이 택한 자, 하나님이
보낸 자’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그 육신’을 쓰고
구원역사를 펴 나가십니다.
그만큼 연단받고 배우고 세상에
나오고, 그만큼 조건을 세우며 세상을
구원하고, 그만큼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과 능력을 받아 행합니다.
오직 <메시아, 구원자>만이
‘구원의 길’이며 ‘생명’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누가복음 23장 43절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의 영>은 ‘낙원’에 가셨습니다.
그때부터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구원받은 자들이
수십만, 수백만, 수천만 명이 되면서
<낙원>은 ‘천국’같이 변화되었습니다.
결국 2000년 동안 ‘예수님이 전하신
신약 복음’이 온 지구 세상을 덮고야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 <2000년 신약
구원역사>가 창대하게 펼쳐졌습니다.
지금은 <예수님>은 ‘신약 세계의
만왕의 왕’으로서 <영>으로
‘신약 세계’를 통치하고 계십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7>
<낙원>도 ‘땅’에서
‘신앙’이 발전하는 만큼 발전됩니다.
<황금성 천국>도 ‘땅’에서 ‘신앙’이
발전하는 만큼 발전됩니다.
어떻게요? (*이하‘낙원 천국’:‘낙원’과
동격의 말인지, 초기 낙원이 발전하여
천국급으로 변화된 것을 ‘낙원
천국’이라 한 건지 애매해요.)
<낙원 천국>도, <황금성 천국>도
땅에서 ‘우리 육신’이 행하는 만큼
건설되기 때문입니다. 월명동도
처음에는 ‘하나의 광야’ 같은
곳이었습니다. 계속 생명들을 전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펴 나가면서 해마다
개발하니 ‘가나안 복지’같이
되었습니다.
2015_12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29
이 세상도, 천국도 만드는 만큼 계속
발전됩니다. <천국>은 ‘땅’에서 ‘우리
육신’이 메시아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만큼
더 아름답고 웅장하게 만들어지고
발전됩니다. <끝>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영’으로
부활하시기 전에는 <낙원>도
‘지옥’과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왜요?
<그 시대>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고,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도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행위대로
<영의 세계인 낙원>도 그만큼만
형성된 것입니다.
그러다 예수님이 죄를 대속하여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후에는
사도의 역사,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예수님을 담대히 증거했고,
더욱 확신에 차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게 되었고, 시간이 갈수록 하나님의
신약역사를 찬란하게 펼쳐 나갔습니다.
그때부터 그 행위에 따라
<낙원>도 ‘천국급’으로 변화됐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8>
<땅>에서 행하는
‘육신의 행위’에 따라 ‘영’이 변화되듯,
<땅>에서 행하는 ‘육신의 행위’에 따라
‘천국’도 건설되어 갑니다.
이 세상에서도 <육>이 행하는 대로
변화되지요? 자기가 건강하게 계속
노력하면 얼굴이 빛나고 건강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영의 세계>도 그러합니다.
<자기 육신>이
‘메시아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만큼
<자기 영>이 변화되고, 하나님이 주신
기본 천국 집에다 <자기 영의 집>이
더욱 아름답고 웅장하게 건설됩니다.
<끝> <전환>
◎ 조금 더 말씀하고,
말씀 마치겠습니다.
이제 <신약역사>가 가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마지막 역사의 때>가
왔습니다.
지금은 <낙원 천국>으로 구원받는
때가 아니고, <황금성 천국>으로
구원받는 ‘신부 역사의 때’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 ‘구원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때에 따라
역사하시어, 이제 ‘휴거 역사’까지
맞았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확신 있게 ‘그’를 믿고,
그가 전하는 ‘생명의 말씀’을 지켜
행하느냐에 따라서 <영>도 변화되고,
황금성 천국에 <자기 휴거 집>도 짓게
됩니다. 그에 따라 <황금성 천국>도
더욱 발전되어 갑니다.
<휴거>를 귀히 여기지 않고
가치를 모르고 산 자들은 <영>이
‘300선 휴거’를 상실하고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육>이 ‘휴거의 가치’를 모르고
예전과 똑같이 행하면서 자꾸
죄나 짓고 부끄러운 짓을 하니
<영>이 휴거 자격을 상실하여
걱정하면서 땅으로 내려옵니다.
다시 휴거되려면 3~7년 동안
절대로 행해야 됩니다.
<휴거>를 귀히 여기지 않으면,
자기의 무지로 인해 ‘축복’도
뺏깁니다. 뺏긴 후에는 그리도
후회합니다.
가치를 상실하지 말고 목숨 걸고
해야 됩니다. 믿습니까? (아멘!)
한번은 새벽에 기도하며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온 인류>를 구원해야 되는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안 믿어서
‘시대 구원’을 못 받고 ‘지옥’으로
가거나 ‘구시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소수의 생명들>만 구원받고 가니,
너무 원통하고 아깝습니다.”
<중요>
이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잘 들어요.)
“뭐가 아깝냐. 농부가 씨를 뿌렸는데
썩었거나 거두지 못했다면 아깝지.
아예 씨를 뿌리지도 않았으면 거둘
것이 없어도 안 아깝다. 아예 나
여호와를 믿지 않고, 내가 보낸 자를
믿지 않고, <자기라는 씨>를 ‘하늘’에
뿌리지도 않았다. <자기 인생>을
‘하늘’에 뿌리지 않고, 그저 밥해 먹고
끝내듯 ‘자기 육의 인생’을 즐기며
끝냈으니 전혀 아까울 것 없다.
저 기성인들은 새 시대에 와서
믿지도 않았고 투자도 안 했다.
이들은 ‘뿌리지도’ 않았으니
‘거둘 것’도 없다.
고로 아까울 것 없다.
다만 섭리역사에 와서
신앙을 하다가 실패한 자들과
인생을 투자했으나 휴거되지 못한
자들이 정말 아깝고 억울한 자들이다.
이들은 씨를 뿌렸으나 거두지
못했으니, 그리도 원통하고 아깝다.”
하셨습니다. <마무리>
오늘은 <성탄>을 맞아
‘예수님의 일생’에 대해 말씀하며,
이 시대도 그와 같이 그러함을 알라고
말씀했습니다.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 주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신
예수님의 삶에 감탄하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성삼위께 영광
돌리기 바랍니다.
그로 인해
‘이 시대’도 그러함을 깨닫고,
가치를 알고 성삼위께 영광 돌리기
바랍니다. <성자의 재림과 승천>까지
아는 섭리인들은 더욱 감사하며
영광 돌려야 되겠습니다.
또한 올해가 정말 얼마 남지 않았으니,
꺼리는 것들을 모두 청산하여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과 성자의 평강과 평화와
사랑을 빌며,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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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7일 주일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극’에 속해 산다
[ 잠언 4장 23절 ]
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23 Above all else, guard your heart, for
it is the wellspring of life.
* 생방송 설교 때는 설교문에서
빼고 전하는 부분이 있었고,
추가 설명도 있었음.
◎ 할렐루야!
◎ 오늘은
2015년 12월의 마지막 주일이자,
2015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 2015년은 <전도의 해>였죠?
올해 3월 16일에 ‘최고로 중요한 날
(휴거 날)’을 보내고, 그때부터
‘성령의 역사, 증거의 역사’가
펼쳐지면서 어떤 사람들은 빠르게
뛰고, 어떤 사람들은 더디게 걸으면서
어느새 2015년의 끝까지 왔습니다.
◎ <휴거의 해, 전도의 해>답게
휴거 이후, 더욱 성삼위와 주를
사랑하며 휴거의 삶을 살면서
더 나아가 생명들을 구원하기 위해
달려온 여러분, 수고 많았습니다.
◎ 특히 휴거 이전에도 이후에도
선생이 받아서 기록한 말씀들을
섭리인 전체가 보고 전할 수 있도록
일일이 정리해 주고, 선생의 심정을
대변해 말씀을 외쳐 주며 한국과 전
세계에 성령의 불을 일으킨 조은
부흥강사,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 자연성전 개발과 관리에 수고한
범석 목사와 성지 사역자들,
수고 많았습니다.
◎ 교단, 교역자들, 지도자들,
각 교회 사명자들 모두 수고했고,
작든지 크든지 섭리사와 각 나라,
각 교회에서 주가 맡긴 사명을 한
여러분, 수고했습니다.
◎ 섭리역사의 기록을 위해 힘써 준
CTN과 사진국, 수고했습니다.
◎ 올해 휴거 이후 “<성자의 승천>과
<휴거>를 외쳐야 불이 일어난다.”라는
말씀에 따라서, <찬양>으로 ‘성자
승천과 휴거’를 불같이 외친 프라비스
찬양의 사역자와 찬양단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이들은 <말씀>보다 강도
높게 <찬양>으로 시대를 증거하며,
듣는 이들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잘했습니다!
주의 속을 시원하게 해 주었습니다.
사람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늘의 방향에 따라서 ‘성자 승천과
휴거’에 대해서 <찬양>으로 강도 높게
불같이 외쳤으니, 올해 <전도의 해>를
누구보다 뜻 있게 보냈습니다.
◎ 또한 주님의교회는
“이대로 <전도의 해>를 보낼 수 없다.”
하며 하반기부터 ‘주일예배’로
생명들을 불러와 <진정한 휴거 잔치,
생명 잔치>를 했습니다. <주일예배>
때는 새로 온 사람이 최고 220명을
넘었고, <성탄이브 행사> 때는
340명을 넘겼습니다.
생명을 ‘문화 행사’나 ‘강의’로
연결하여 가르치기는 쉽지만,
<예배>로 연결하여 바로 하나님과
주와 섭리사를 접하게 하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만큼 오랫동안 점진적으로 차원을
높이고, 교육하고, 인식을 전환시키고,
예배의 수준과 차원을 높이고,
‘하면 된다.’는 의식과 믿음을 가지고,
모두 하나 되어 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실질적으로 몇 달 해 보니 악평을
접하여 끊기는 경우는 단 2%에
불과했다는 통계가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섭리사가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휴거와 황금성에 대해서 궁금해
하며 <다음 예배>나 <강의>로
연결되는 사람들이 40~50%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제 <예배로 연결하는 신입생>만
300명을 넘겨보겠다고 합니다.
◎ 그래서 ‘표상’에게 배우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가 보내어
일체 된 자’에게 배우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안 된다. 저기에는 누가
있어서 잘된다.”라고만 하지 말고,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자기 주관을 비우고 배워야 됩니다.
그래야 자기 교회 수준, 자기 수준을
벗어나 다른 차원으로 갑니다.
◎ 1년 동안 특히 생명을 살리기 위해
관리하고 가르치고 강의한 세계
각 나라 모든 여러분,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 부지런히 말씀을 배운 여러분,
말씀 배우고 깨닫느라 수고했습니다.
◎ 처음 오신 여러분,
정말 반갑습니다.
◎ 여러분 모두에게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감동·감화·증거의 역사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 말씀의 주제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극>에 속해 산다.’입니다.
주제에 따라 ‘극’에 대해 말씀하면서,
후반부에는 ‘주의 몸이 되어 살
자들’에게 말씀해 주겠습니다.
이 말씀은 선생이 부흥강사에게
여러 장의 편지로 심정을 전해 주고
코치해 준 말씀입니다. 잘 듣고 ‘주의
심정, 성령의 심정’ 받기를 바랍니다.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극’에 속해 삽니다. 어떤 것을 두고
할까, 안 할까 생각하지요? 이렇게
<마음과 생각>이 ‘극’에 속해 삽니다.
<행동>도 ‘극’에 속해 삽니다.
어떤 것을 두고 하든지, 안 하든지
하지요? 이렇게 <행동>도 ‘극에 속해
삽니다. <극에 속하는 근원지>는
‘마음과 생각’입니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러합니다.
과거에는 극에 속해 좋게 지냈던
사이였는데, 문제가 생기고 부딪히고
마음이 변하여 앙숙이 되는 극에 속해
버리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부모의
말을 잘 듣고 잘 지내던 자녀였는데,
부모와의 갈등과 문제가 생기면서
남남처럼 지내는 극에 속해 버리기도
합니다.
신앙생활도 그러합니다. 과거에는
하나님과 주를 잘 믿고 신앙생활을
잘하다가도 여러 가지 이유로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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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여 안 하게 되는 극에 속해
버립니다. 반대로 과거에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극에 속해 안 믿던
자가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 믿는 극에
속해 신앙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과거에 5년, 10년, 20년, 30년 동안
그렇게 하나님과 주를 믿으며
신앙생활을 잘했는데, 일순간 극으로
기울어져 신앙을 저버릴 수 있을까?’
합니다. 그럴 만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과거에 오랫동안 주를 믿고
따랐어도 주와 완전히 일체 되지
못하고 열심히 하지 못해서 얻은
것들이 없기 때문에 오랫동안 주를
믿다가도 일순간 극으로 기울어져
신앙을 저버리게 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주와
하나 되어 극에 속해 열심히 했으면,
절대 주를 버리고 떠나지 않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주를 믿고 행함으로
얻은 것과 쌓아 놓은 것이 있고,
미래에 천국의 소망까지 있으니
못 떠납니다.
둘째, 극에 속해 신앙생활을 잘하던
자들이 정반대의 믿지 않는 극의
세계로 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일에 부딪혀
마음이 상해 화가 나고 마음이
뒤집어지니 과거에 얻은 것이고 뭐고,
과거에 기뻐하며 산 것이고 뭐고
다 내던져 버리고 현실에 힘든 것,
어려운 것, 억울한 것만 생각하면서
뇌가 그렇게 작동되어 생각이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고로 그렇게
잘하다가도 ‘반대의 극’으로
기울어집니다.
사람의 마음도, 생각도, 몸도
그때마다 부딪히고 겪고 느끼는 대로
‘극’에 속하게 됩니다. 그때의 마음과
생각으로 결정하게 됩니다.
고로 ‘극’으로 뒤집어집니다.
극도로 화가 나서 마음이 뒤집어지면,
마치 해가 구름에 덮이듯 뇌가
‘반대의 극’으로 뒤덮여서 과거에
좋아하던 것도 그동안 살면서 얻고
즐기던 것도 다 버리고 현실의 ‘극에
속한 생각’으로 가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그렇게 극에 속해 좋아하며
사랑하던 자도 버리고 미워하는 극에
속해 살아가기도 합니다.
과거에 오랫동안 ‘어떤 일’을 하면서
“나는 이 일을 안 버리고 평생
하겠다.” 하던 사람도 어느 날
‘그 일’로 고생하고 힘든 일이 닥치면,
<과거>를 생각하지 않고
<현실에 처한 어려움>만 생각하고
고통스럽고 어려우니 ‘그 일’에서
벗어나 ‘반대의 극’으로 가 버립니다.
거기서 벗어나니까 더 이상
그 일로 인해 고통을 안 받게 되지요?
그러니 좋아하면서 ‘건너편 극’에 속해
살게 됩니다. 그러나 당장 편하고
좋아도 <과거에 한 일로 인한 열매>는
얻지 못하게 됩니다. 비바람이
지나가면 화창한 때가 오는데,
<현실의 어려움>만 생각하고 마음이
뒤집진 채로 행한 것입니다.
사람이 ‘극’에 속해 살다가
‘반대편 극’으로 기울어지면,
참 무섭게 변합니다. 그동안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과도 원수가 되고,
그동안 얻은 것들도 다 버리게 되고,
주를 믿고 따라다가도 싫어하여
버리게 되고, 구원도 천국도 싫어져서
하나님 주관권을 벗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 한
것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세상에 속한 일>은 극에 속해
‘동쪽’에서 살다가 힘들어서 ‘서쪽’으로
옮겨 그쪽 극에 속해 살면서 또
개척해 나가면 그런 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에 속한 일>은
다릅니다.
<하나님과 주를 믿고 사랑하는 극>에
속해 살다가 거기서 벗어나면
<사망의 극>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서는 다시 ‘구원의 삶’을 개척하여
살 수 없습니다. 고로 하나님이
그 사람을 향해 정하신 뜻이 깨지고,
그 사람이 그동안 행하면서 쌓은
공적이 무너집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다른 데’서는
못 폅니다. 100명, 1000명이 뭉쳐서
역사를 펴려 해도 ‘하나님이 그 시대에
보낸 구원자’를 벗어나서는 못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오직
‘한 주관권’에서 ‘보낸 자’를
중심하여 폅니다. 신약 때,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벗어나서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데리고
딴 데 가서 구원역사를 펼 수
있었습니까?
그 시대에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
예수님’을 벗어나서는 하나님이
그 시대에 원하시는 ‘자녀급 역사’를
펼 수 없었습니다.
이 시대도 그러합니다. 섭리역사에서
벗어나 몇 명이 뭉쳐서 딴 데 가서
한다고 하나님의 역사를 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 시대에 원하시는
역사>는 오직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를 중심하여 펴 나갑니다.
<하나님의 새 역사>는
‘여러 군데’서 펴지 않습니다.
<단 한 명의 구원자>를 보내서
그를 ‘머리’로 삼고 뜻을 펴십니다.
나머지는 믿어도 ‘구시대’에 속해
있습니다.
신약역사는 ‘예수님’을 중심하여
개인형, 가정형, 민족형, 세계형으로
역사가 뻗어 나갔습니다. 다른 자를
중심해서 다른 데서 역사를 펴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 시대도 그러합니다.
오직 ‘한 주(主)’를 중심해서
개인형, 가정형, 민족형, 세계형으로
역사가 뻗어 나갑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역사의 극>에
속해 살다가 벗어나지 말아요.
환난·핍박·어려움·고통이 있어도,
시험이 들어도 유혹이 있어도,
형제들과 부딪혀도, 억울함을 당해도,
<현실의 어려움>만 보고 마음
뒤집어지지 말고 주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면서 주와 같이 끝까지 하여
육으로도 영으로도 얻고 거두고
누리기 바랍니다.
<잠시 쉬었다가>
사람이 유혹에 빠지거나,
시험에 들거나, 자기 사명을 못 해
낙심하거나, 그때 그 순간 힘들고
고통을 당하면, 그때는 <마음과
생각>이 ‘그런 고통’을 안 받으려고
2015_12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32
본래 가던 ‘하나님의 주관권’ 벗어나
피해 버립니다. 그리고 자기가 결정한
대로 가게 됩니다.
순간 그 고통은 피했지만,
<영원히 가는 길>을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럴 때는 벗어나서
‘다른 극’으로 가지 말고,
<하나님 주관권 안>에서
성령과 주와 같이 문제를 해결하며
고통을 벗어나야 됩니다. 길을 가는
사람은 ‘목적’을 두고 가게 됩니다.
그런데 가다가 힘들다고
‘그 길’을 벗어나면, 그때부터는
‘목적지’에 못 가게 됩니다.
가다가 넘어졌으면 일어나서 쉬어
가고, 힘들면 잠시 쉬었다가 가고,
길이 험하면 약간만 돌아서 가는
것입니다. 아예 ‘그 길’을 벗어나
버리면 안 됩니다.
사랑해서 결혼하여 같이 살다가도
당장 어려움이 닥치고 힘들다고
마음이 뒤집어져서 과거에 같이
살아오던 것들을 다 버리고 이혼하고
떠나 버리는 자들이 많습니다.
힘들어도 그 안에서 서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이혼>이라는
‘극의 세계’로 가 버리는 것입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도 그러합니다.
순간 얼마간 닥친 험한 길이나
순간 얼마간 닥친 비바람을
벗어나려고, 목적지로 가던
본질의 길을 떠나면 안 됩니다.
순간 안 믿어진다고
홱 돌아서서 하나님과 주를 안 믿고,
순간 오해하여 의심하고 홱 돌아서서
주를 등지고, 화난다고, 힘들다고
하나님과 주를 등지고 벗어나고,
형제들과 싸웠다고 하나님과 주를
등지고 벗어나고, 억울하다고 순간
그 고통을 해결하려고 하나님과
주를 벗어나 ‘다른 세계’로 가면,
하나님이 과거에 역사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것이 다 없어지게 되고,
그동안 받은 것들도 다 버리게 됩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이 앞날에 계획하신
것들은 못 받게 됩니다.
<새 역사, 하나님의 주관권 안에서
쌓은 공적>은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으십니다.
벗어나면, 모든 것이 다 깨진
것입니다. 힘들어도 어려워도
‘끝까지 가는 자’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계획하신 영원한 것을 얻게
됩니다.
현실의 환난과 어려움으로
과거에 열심히 하며 살아온 것과
하나님이 계획하신 뜻을 저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 ‘하나님과
주가 계획하지 않은 극의 길’로
가지 말아요.
주를 믿고 살면서 이성의 유혹을
견디기 어렵다고, 물질 때문에
힘들다고, 오해받는다고, 억울한 일과
힘든 일이 있다고, 핍박을 당한다고,
하나님과 주를 벗어나 세상으로 간
자들이 어떻게 됐는지 그 육도 영도
봤습니다. 5년, 10년 동안 봤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햇빛’을 의로운
자에게나 불의한 자에게나 다 비춰
주시듯 새 역사가 시작됨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민족과 세계 전체에
기본적으로 주시는 혜택만 받을 뿐,
그저 ‘육’에 속해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영원한 세계로 가는 길>은 아예
벗어나서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떠나니 ‘고통’인데,
그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자기
삶으로 인해 오는 고통’을 받으면서
‘육에 속한 극의 삶’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섭리역사에 있다가 세상으로 나간
자들을 보면, 세상에서 ‘육’이
살아가기는 합니다. 자기가 원하던
사랑과 물질을 얻었어도 그 앞에는
‘영생의 삶, 영원한 길’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자기가 원하던 것을
얻으며 육으로 만족하며 살아도
그것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새 역사에 베푸시는 영원한 휴거와
황금성 축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중 더러는 ‘육’이 심판을
받아 병들거나 죽은 자도 있습니다.
더러는 세상에 나가서 괴로우니,
자기가 과거에 신앙생활을 잘못했다고
하며 섭리역사가 나쁘다고 악평하고
막으면서 자기의 괴로움을 잊으려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시대에 행하시는 일을
두고 악평하니, 천법에 의해 ‘영원한
심판’을 받고 그 ‘영’이 지옥이나
무저갱이나 음부에서 살기도 합니다.
고로 그 ‘육’ 역시 사망권에서 살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면
‘모든 것’이 깨지고, ‘육’은 누려도
‘영원한 것을 상실한 세계’에서 살게
되고, ‘화(禍)의 주관권 세계’로
들어가게 되고, ‘물질·명예·기쁨·희망
없는 지옥의 삶’을 살게 됩니다.
<좋은 목재>가 ‘궁’에서 벗어나니
‘개인 집 짓는 곳’으로 팔려 가서
가치 없게 쓰이거나, ‘땔감’으로 팔려
가 한 번 불을 지피고 끝나 버립니다.
<인생>도 그러합니다.
‘하나님과 주’를 벗어나니
‘개인의 삶을 사는 데’로 갔습니다.
거기서 편하게 살 것 같아도,
그 삶을 살면서 또 고생합니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하든지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생명의 길을 가도 고생은 합니다.
그러나 그 길에서의 고생은 ‘고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결국 잘되고
형통하며 ‘영원한 것’을 얻게 됩니다.
이 시대 하나님의 역사를 벗어나면
최고로 영원한 축복인 ‘휴거의 축복’을
못 받고 끝납니다. 그 손해와 억울함은
영원까지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어떤 사람은 여름에 길을 가다가
‘옷’ 때문에 덥다고 옷을 집어던져
버렸습니다. 옷을 버리니 덥지도 않고,
옷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니 편하고
좋았습니다. 그러다 가을이 오니
서늘해졌습니다. 그때 ‘버렸던 옷’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다 겨울이 오니 너무 추웠습니다.
옷을 버린 자는 추위에 지옥 고통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생명의 길’을 버리면 이러합니다.
왜 힘들면 극적으로 마음이
뒤집어져서 버리려고만 합니까?
힘들어도 ‘하나님 안’에서 해결해야
됩니다.
2015_12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33
덥다고 극적으로 옷을 버리지 말고
옷을 벗어서 짊어지고 다니며 더위를
해결하고 추워지면 다시 입듯이,
힘들다고 극적으로 신앙을 저버리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됩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고통과 억울함을 당하면 지혜롭게
해결해라. 순간 고통과 오해와 환난과
유혹을 피하려고 정반대의 극으로
가지 말아라. 그 안에서 해결해라.
내가 함께하니, 나와 같이 하자.”
하셨습니다.
길을 가다가 소나기가 오면, 잠깐
‘남의 집 추녀 밑’에 들어가 비를
피했다가 소나기가 그치면 다시 길을
가면 됩니다.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아예 길을 안 가 버리면 되겠습니까?
이런 생각과 행동은 참으로 미련한
것입니다.
신앙의 길, 구원의 길을 가다가도
그렇습니다. 환난과 핍박도 있고,
어려움과 고통도 있고, 유혹도
있습니다. 그것을 피하려고 아예 극에
처해 신앙을 저버리고, 주를 버리고,
구원과 천국을 버리면 되겠습니까?
주 안에서, 하나님 안에서 잠깐
피했다가 다시 가면 됩니다.
아예 환난과 핍박, 어려움과 고통,
유혹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그 순간
마음 가는 대로, 생각 가는 대로
극으로 치우쳐 정반대의 다른 길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 앞에 문제가 닥쳐도 순간 이기고
해결하는 길이 많다. 기도해라.
싸워 이겨라. 주께 도움을 구하고
옆의 사람과 함께 행하여 이겨라.
하나님과 성자와 나 성령을 불러라.
그러면 “너의 책임이니 네가 해라.”
하면서 쳐다보고만 있지 않고,
꼭 돕는다. 그러니 문제가 생기면
마음 뒤집어져 극으로 벗어나지 말고,
삼위일체를 부르고 주를 불러라.”
하셨습니다. <전환>
◎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극’에 속해 살아간다.
- 이제 이 말씀을 이해했습니까?
◎ 이제 <한 단계 깊은 차원>을
말씀해 주겠습니다.
지금까지 한 말씀은 ‘자기가 깨닫고
지켜야 할 말씀’이라면, 지금부터 하는
말씀은 ‘한 차원 높여 주의 몸이 되어
사는 자들이 주의 심정을 깨닫고
지켜야 할 말씀’입니다.
(특히 교역자들)
신앙생활을 처음 하거나,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어린 생명들은 자기 스스로 자기를
관리하며 신앙을 지키기 힘듭니다.
고로 신앙이 어린 생명이 힘들어할
때는 지도자가 꼭 ‘관리’해 주며
붙잡아 줘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주관권’을 벗어나
‘극의 세계’로 가 버립니다.
<관리 실수, 관리 부족>으로
‘생명 손실’을 보게 됩니다.
누가 볼펜을 쓰다가 잘 안 나오니,
그 볼펜 열 자루를 내게 줬습니다.
잉크가 있는 부분에 공기가 차니
공간이 생겨서 안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볼펜을 잡고 그 부분을 입으로 ‘후~’
하고 불어서 잉크가 나오게 하면
되는데, 기술이 없으니까 내게 준
것입니다.
선생이 다 고쳐서 썼습니다.
선생은 볼펜을 많이 쓰니까 잘 압니다.
(하루에 볼펜 한 자루를 다 쓸 때도
있으니까. 글을 하도 많이 써서.
그렇게 써 보지 않은 사람은
‘에이~ 어떻게?’ 한다.)
또 볼펜이 여름에는 잘 나오는데
겨울에는 안 나옵니다. 그럴 때
선생은 볼펜을 이불 속에 넣어 둡니다.
따뜻해지면 잉크가 풀려서 다시 잘
나옵니다.
<볼펜>도 ‘다루기’입니다.
<인생>도 그러합니다.
<생명>도 ‘잘 다루기’입니다.
볼펜 잉크가 안 나올 때는 방법을
알면 다시 나오게 하여 쓸 수 있듯이,
사람의 <마음과 생각>도 ‘알고
다루기’입니다.
자기 마음을 가지고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 자기에게 인상 찌푸리면 싫듯이,
상대도 누가 인상 찌푸리면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 마음처럼 상대의 마음을 알고
다루기’입니다.
하나님도 그러하십니다.
그 마음과 생각을 알면,
금방 통합니다.
주가 자기를 보고 웃어 주고
자기 말을 잘 들어주면 좋듯이,
주도 자기가 웃으며 대하고 말을 잘
듣고 끝까지 사랑 변치 않고 살면
좋아합니다.
<지도자들>은
그동안 해 봐서 잘 알지만,
<신앙이 어린 자들>은 무엇을 하든지
능숙하지 않습니다. 잘 모르고
많이 안 해 봐서 잘 못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고 무시하고
책망하기만 하니 신앙이 어린 자들이
간 떨어지고 놀라 심장에 지진이 나고,
뇌와 생각이 뒤집어져서 본정신이
아니게 됩니다.
그래서 놀라 쓰러지면,
“왜, 기분 나빠? 그렇게 지적받는 게
싫어?” 하며 또 책망합니다.
그때는 놀라서 뇌세포가 확 굳어
버리니, 아무 말도 안 들립니다.
상대의 마음을 몰라주면,
생명을 다루지 못합니다.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시키면서
이야기해 줘야 됩니다.
선생도 <뇌와 생각>에 대해
자세히 공부하지 않았을 때는
몰랐습니다.
그러니 성자는
“네가 어린 자들을 이해해라.”
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시대 십자가를 지면서
<뇌>에 대해서 공부한 후부터는
생명들을 대하는 것도 확
달라졌습니다.
이렇게 늘 성자께 배웠고,
이제 성령께 배우며 행하고 있습니다.
생명에게 문제가 생기면,
‘바로 해결’해야 됩니다.
2015_12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34
그래야 살릴 수 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놀라서 마음이 뒤집어집니다.
그때 지도자가 또 지적하면,
마음이 확 꺾여서 ‘과거에 잘하던
것’은 아예 생각하지 않고
<섭리역사 하나님의 주관권>을
벗어나서 ‘극’으로 갑니다.
불이 나서 집이 타고 있는데,
“누가 불을 냈냐?” 하면서 따지고
혼내고 있다가는 집이 다 타 버려서
‘극의 세계’에 처하게 됩니다.
불이 나면 불 먼저 끄듯이,
생명에게 문제가 생기면
“네가 잘못했잖아.” 하며 지적하기보다
먼저 마음을 알아주고 문제를 해결해
줘야 됩니다. 그다음에 본정신이
돌아왔을 때 하나하나 설명해
주기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확 뒤집어져서
‘극’으로 가 버립니다. 그때는
어떤 말로 위로하고 설명해 줘도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심폐소생술>도 ‘바로 하기’입니다.
4분만 늦으면, <심폐소생술>을 해도
소용없습니다. 죽습니다.
<신앙의 생명 관리>도 그러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즉시 손대기’입니다.
<자기>가 즉시 손을 못 대면,
<다른 사람>이라도 시켜야 됩니다.
그래야 그 생명이 삽니다.
사람들은
<뇌세포>가 잘 뒤집어집니다.
<생각>이 잘 뒤집어집니다.
사소한 일에도 잘 뒤집어집니다.
그렇게 잘하던 사람도 누구에게
오해를 받으면, 순간 뒤집어져 확
돌변하여 일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그렇게 잘하던 사람도 순간 이성으로
뒤집어져서 타락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령도 주도 ‘뇌’가 안
뒤집어지게 여러분 각 사람의
뇌를 꽉 잡고 다니십니다.
모두 이것을 알고, <자기 생각>을
성령과 주께 맡기고 살기 바랍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아기가 말을 안 듣는다고 엄마가
화가 나서 아기 혼자 내버려 두고
잠깐 어디 갔다 와서 보니, 아기는
온 데 간 데 없고 옆에 ‘큰 뱀’만
있었습니다. 그 뱀이 ‘아기’를
잡아먹어서 배가 불룩해 있었습니다.
그때는 이미 끝난 것입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뱀이 잡아먹기 전에 아기를
챙겨야 됩니다.
어린아이가 엄마 말을 안 듣는다고
엄마가 화가 나서 “너 혼자 집까지
걸어오면서 고생 좀 해 봐라.” 하고,
엄마 먼저 갔습니다.
화가 가라앉은 후에 다시 가 보니,
이미 어린아이는 없어진 후였습니다.
아이를 못 낳는 사람이 데리고 가서
외국으로 떠나 버렸습니다. 아이를
다시 돌려주겠습니까? 절대 안
내줍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도 그러합니다.
한 번 ‘하나님’을 벗어나면,
99%가 못 돌아옵니다.
사탄이 한 번 잡으면, 잘 안 내줍니다.
악평자들을 봐요. 사탄이 한 번 잡으니
안 내주지요? 그러니까 계속 섭리사를
악평하면서, 그것이 뜻인 줄 알고
삽니다. 고로 어떤 꼴을 당해도 생명이
벗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라는 것입니다.
한 번 ‘하나님의 주관권’을 벗어나면,
다시 돌아올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벗어나서 사는 것이
뜻이라고 생각하며 편히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게 ‘뜻’이 아니지요.
<하나님의 주관권>을 벗어나니,
하나님도 그냥 두십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주관권에서 사는
자>만 ‘뜻’을 알고 ‘뜻’을 이루며
‘뜻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나님도
성령도 성자도 구원자도 여러분을
‘애인’같이, ‘신부’같이 대하십니다.
그리고 ‘부모의 마음’으로 대하십니다.
여러분도 생명들을 애인같이, 자녀같이
다뤄야 됩니다. 주의 심정을 가지고
부모의 마음으로 대해야 됩니다.
한 번 사망에 뺏기면, 그 생명은
영원히 끝납니다. 고로 선생은 참고
또 참으며, 끝까지 관리합니다.
주를 배신하고 섭리사를 나가서
고통을 주는 자들을 보면, 그 행위가
너무 악해서 치가 떨립니다.
그 행위가 하도 못돼서 심판받아
마땅합니다.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며
별말을 다 하니까요. 그렇다고 버리면,
그 영혼은 지옥에 갑니다.
그러니 그 행위가 너무 악해도
그 <영혼>을 생각할 때 참 불쌍합니다.
그래서 선생은 생각합니다.
‘지옥만은 절대 안 된다. 영원히 쉬지
않고 고통이다. 그때 내가 더 잡을
것을!’ 하며 한탄합니다. 한 번
<하나님의 새 역사 주관권>을 벗어나
‘악평의 세계, 반대편 극의 세계’로
가니, 그 삶이 섭리의 삶보다 100배
더 못한 삶이어도 그쪽으로 ‘뇌와
생각’을 돌리고 그게 더 좋다고 하며
삽니다.
그러므로 “너 나가면 고생한다.” 하고
놔두면 안 됩니다. 한 번 <새 역사
주관권>을 벗어나면, 고생돼도 다시
안 옵니다. ‘지옥 고통(을) 받으면
다시 오겠지.’ 하지만, 못 옵니다.
<극>으로 가기에 못 옵니다.
영원히 끝납니다.
이것이 ‘인간 심리의 첨단 논리’이며
‘실제’입니다. ‘영계의 비밀’입니다.
<하나님과 주가 택한 자>라도
한 번 벗어나면 거의 못 돌아옵니다.
<나무>도 ‘옥토’에서 캐내어
‘메마른 땅’에 심으면, 자생력이
생겨서 거기서 메마른 대로
살아갑니다.
<바위 절벽의 나무>도 많이는 못
큽니다. 그러나 많이 못 크는 대로
살아갑니다.
이와 같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안 믿어도 “이것이 좋다. 편하다.”
하며 살아갑니다.
섭리사를 벗어난 자들도
“이것이 좋다. 편하다.” 하며
살아갑니다.
한 번 <하나님의 주관권>을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기적입니다.
모두 이것을 알고 ‘생명’을 관리하고,
모두 이것을 알고 ‘자기’를 관리하고,
모두 이것을 알고 지금 하나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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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렀을 때 <하나님의 주관권>으로
쏙 들어오기 바랍니다.
<택한 자>라도
벗어나면, 다시 못 옵니다.
한 번 벗어나면, 영원히 찾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됩니다. 고로 벗어나지
않았을 때 속상해도 희생하고
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관권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보세요.
종교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니,
기나긴 6000년의 세월이 흘러
이 시대에 겨우 복직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관권을 떠나는 것>은
강을 타고 이미 떠내려간 격입니다.
어린아이가 집을 나갔다가 비가 오니
다시 집에 들어오는 격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때 못 하고
벗어나면 ‘당세’에는 못 하고,
몇십 년, 혹은 몇백 년, 혹은
몇천 년 후에 다시 해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은 속상해도,
화가 나도, 그가 잘못했어도 잡아 주며
“내가 잘못했어.” 하면서 대신
회개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도 지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 못 해도 끝까지 기회를
주어 일도 맡기고 사명도 맡기는
것입니다.
특히 지도자들은 이러한 하늘 심정을
알고 주와 같은 마음으로 생명들을
붙잡아 주고 관리해야 됩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해야 되냐고요?
그렇게까지 하는데도 자기가 돌이키지
않으면, 결국 다 뿌리치고 자기가
벗어납니다.
그때까지 잡아 줘야 됩니다.
지금 이 말씀을 쓰는데,
<만물 계시>가 하나 왔습니다.
옷을 입는데, 지퍼가 고장 나서
잘 안 올라갔습니다. 그러니
너무 불편한 거예요.
그러다가 지퍼가 아예 못 쓰게
됐습니다. 지퍼가 멀쩡한 옷이 또
있으니, 그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사람>도 그러합니다.
계속해서 붙잡아 주며 기회를 줬는데
아예 ‘마음과 생각’이 고장 나서
끝까지 속이고 안 하면, 그때!
하나님은 ‘더 좋은 자’를 뽑아 키워서
쓰십니다. 자기가 만들어진 대로만
쓰이게 됩니다. <마무리>
◎ 오늘 말씀
-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극에 속해
살아간다. 마무리합니다.
힘들고, 어렵고, 외롭고, 환난과
핍박이 있고, 유혹이 온다고
순간 그것을 모면하기 위해
<하나님의 주관권>을 벗어나
‘극’으로 가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성령과 주를 부르며
같이 행하기 바랍니다.
또한 한 번 벗어나면
영원히 못 돌아오니, 부지런히
<주 안>에서 ‘자기’를 관리하고
‘생명’을 관리하며 휴거의 삶을 살기
바랍니다.
오늘 처음 오신 분들,
말씀을 듣고 있는 여러분. 지금 이때가
<하나님의 새 역사 주관권>으로 와서
살 때입니다. 이때 의심하고 오해하고
가치를 모르고 벗어나면, 바로 ‘세상의
극’에 처하고 ‘자기 삶의 극’에 처하게
되어 다시 신앙의 기회를 잡는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지금! 이때! 하나님과 주와
‘영원한 인연’ 맺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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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31일 목요
1. 끝까지 하는 자들
2. 행한 대로 갚아 주었다
[ 요한계시록 2장 26절 ]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To him who overcomes and does my will
to the end, I will give authority over the
nations
[ 요한계시록 22장 13절 ]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I am the Alpha and the Omega,
the First and the Last,
the Beginning and the End.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말씀 시작>
오늘은 <2015년의 마지막 밤>입니다.
<처음>도 함께, <과정>도 함께,
<끝>도 함께입니다.
1년 동안 신앙을 지키고,
삼위일체를 모시고 사랑하고,
생명들을 인도하고 가르치고 관리하며,
교회와 섭리사를 위해 뛰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또한 1년 동안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맡기신 일들을 하면서,
또 각자 인생들을 살면서 자기만 아는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마지막까지
끝까지 오느라 정말 수고했습니다.
주가 애타게 받은 말씀을 쉬지 않고
정리하고 교정하며, 섭리사 전 세계에
주의 심정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여
성령의 불을 일으키고 주의 정신을
전하며 각 심령을 깨워 준 조은 목사
정말 수고했습니다. 조은 목사가
없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습니다.
월명동 개발에 힘써 준 범석 목사와
성지 사역자들 수고했습니다.
1년 동안 그리 일하고도 다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습니다. 정신일도
하여 하나님의 손발이 되고 주의 몸이
되어 행했습니다. 또한 섭리 각 나라의
사명자들, 말씀 파트의 사명자들,
교역자들, 관리자들, 봉사한 자들,
강의한 자들, 전도한 자들,
국방 팀들, 경제 팀들 등 각종으로
수고한 자들 정말 수고했습니다.
모두 자기가 행한 것의
10배, 100배로 거둘 것입니다.
선생도 뛰고 달리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선생은 ‘섭리인들이 잘되는 것’을
‘낙’으로 삼고 행했습니다. 각자
몸부림도 치고, 마음고생도 하고,
몸 고생도 하고, 심정도 타고,
애간장이 녹는 일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 가짓수는 ‘1년 365일의 날수’보다
더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기고
‘올해의 끝까지’ 왔으니, <그동안
수고하고 몸부림치고 고생했던
가짓수>만큼 하나님은 <천국>에서도
주시고, <이 세상>에서도 주십니다.
<육을 위해 한 것들>은
먹고 마시고 끝났지만,
<영을 위해 한 것들>은
‘영’이 가지고 있고, 영원한
‘천국 황금성’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품 안에서
성삼위와 함께 주와 함께 살고 있으니,
<고통>도 <고생>도 결국
‘자신의 영광’이 됩니다. 하나님이
‘영’으로도 ‘육’으로도 주십니다.
<영>도 살고 <육>도 살았으니,
받는 것입니다. <영이 죽은 자, 신앙이
아~예 죽은 자>는 마치 ‘육이 죽은
자’같이 ‘수고의 대가’를 받지
못합니다. 다시 살아날 수도 없습니다.
<육과 영이 아예 죽지는 않고
사망권에만 처한 자>는 이기고 나오면
‘승리자’가 되어 <자기가 받을 것>은
‘자기 것’이니 결국 받게 됩니다.
<영>이 ‘순간’ 사망권에 처할지라도
육이 죽듯이 거기서 영이 아예 죽어
버리면, 만사의 모든 것이 끝나
버립니다.
<육>이 아예 죽으면
‘이 세상’에서는 끝나 버리듯,
<영>이 아예 죽으면
‘영계’에서도 끝나 버립니다.
알겠습니까? 고로 <영과 신앙>이
아예 죽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사망권에 처해 있다면,
어서 빨리 돌이켜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2015년>은 역사적으로 전에도
후에도 없을 크고도 큰 뜻을
성자와 함께 이룬 해였습니다.
바로 ‘휴거’입니다.
2015년 3월 16일 성자를 모시고
‘휴거’되고, 성자가 떠나시고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행하고 계십니다.
성자는 천국에 계시면서 영광도
받으시고, 도울 것을 도우십니다.
성자는 가시면서
‘섭리사에 많은 선물’을 주셨습니다.
<성전>도 주셨고 <갖가지 선물>도
주셨습니다. <신앙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이제 성령이 오셔서 계속 역사해
주시고 이끌어 주시니,
<성자가 선물로 주고 가신 것들>을
성령과 주와 함께 귀히 쓰며
성삼위를 사랑하면서 같이 먹고
마셔야 되겠습니다.
또한 <성자가 주고 가신 휴거의 차>를
잘 운영하여 모두 <휴거 700선>을
크고 웅장하게 이루며, 더불어
<생명의 대역사>를 이뤄야 되겠습니다.
<1년 동안의 일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할 것 없이 모두
‘기적과 표적의 역사’였습니다.
앞으로도 삼위일체는 더욱
‘기적과 표적의 역사’로 이끌어
주시니, 더욱 <생각>을 뜨겁게 하고
<희망>이 식지 않게 하면서 새해에는
더욱 미련 없이 뛰고 달리며
<사랑의 세계, 이상세계, 희망의
세계>를 이루기를 축원합니다.
<중요> 한 나라의 여자가 왕에게
도움을 받고, 집과 땅을 받고,
더 나아가 왕 옆에서 왕을 모시게
되고, 더 나아가 왕비가 되었다면
더 이상은 바랄 것이 없는 것입니다.
<더 이상적인 삶>이 있다면,
이제 ‘이것’밖에 없습니다.
이제 ‘왕이 해 줄 것’은 없습니다.
2015_12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37
이제는 ‘왕비로 택함 받은 자’가
왕을 사랑하고, 왕을 위해 살고,
왕의 기쁨이 되고, 매일 왕과
대화하며, 왕이 원하는 것을 해 주는
것만 남아 있습니다.
<중요> 이와 같이 우리는
삼위께 택함 받고 휴거됐습니다.
<성경의 대(大)희망>인 ‘휴거’가
이미 우리에게는 이루어졌습니다!
이보다 더 이상적인 역사와 삶은
없습니다.
<더 이상적인 삶>이 있다면,
‘이것’뿐입니다.
<더 열심히 사는 삶>만이
‘희망’입니다.
곧, 차원 높여 더 뜨겁게
삼위일체와 주를 사랑하며,
더 힘차게 더 뛰고 달리며
<휴거 700선>을 이루고,
더 많은 생명들을 구원하며,
더 주고받으며 희망차게 사는
삶입니다.
<더 행하는 것>이
‘희망’이고, ‘더 좋게 되는 길’입니다.
더 하려면 힘듭니다. 그러나
<더 안 하고 힘든 것>보다
<더 하면서 힘든 것>이
비교도 안 되게 훨씬 낫습니다.
모두 경험해 봤지요?
더 안 하고 힘들면, 육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얻는 것이 없습니다.
<열매 없는 겨울맞이>입니다.
‘몸’을 놀리느니
고생돼도 더 하면
<현재>에도 희망이고,
<미래>에도 얻고 누리고,
<영의 세계>에서도 ‘영원한
희망’입니다.
2015년에는
‘좋은 일’이 정말 많았습니다.
2016년에도 ‘좋은 일’이 많으니,
모두 희망이 꽉 차서 행하기를
삼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올해는 <섭리역사>에도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고,
<민족과 세계>에도
‘각종 일들’이 많았습니다.
작년에는 성자가 떠나시면서
섭리인들을 휴거시키기 위해
<죄>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용서해
주셨고, <연말 심판>도 없이 지나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하나님께서
개인·민족·세계·섭리사적으로
때에 따라 ‘연말 심판’을 하셨습니다.
<심판>은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것입니다.
<각자 행위대로 갚아 주는 것>이
‘심판’입니다.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이
‘심판’입니다.
<죄의 짐>은 절대로 짊어지고
‘새해’로 넘어가면 안 됩니다.
<죄의 짐>을 그대로 짊어지고
‘올해’를 넘겨 버리면, 하나님이
보시고 꺼려서 그냥 두고 보지
않으십니다.
<새해>로 가기 전에
꼭 ‘새 옷’을 입어야 됩니다.
<새 옷>을 입으려면,
‘죄의 옷’을 벗어야 됩니다.
<회개와 용서>로 ‘새 옷’을 입고
‘새해’를 맞기 바랍니다.
회개했으면, 성령님도 성자도 주도
용서하니 ‘죄의 짐’을 다 벗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기 바랍니다.
<죄의 몸>을 가지고서는
‘깨끗한 의의 신부 옷’을 입을 수
없으니,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은
자들의 영>은 ‘신부 옷’을 뺏기고
‘벗은 몸’으로 남게 됩니다.
<의의 신부의 옷>은 ‘자기 영광’이며
‘축복과 명예’입니다. 그러니 꼭
회개함으로 깨끗함을 입고,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행하기 바랍니다.
<잠시 쉬었다가>
또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섭리사, 각 교회, 각 개인에게
‘갖가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한국>은 전쟁이 안 나도록
‘최고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또한 성령님께서 우리와 같이 살아
주시며 ‘용광로의 역사’를 일으켜
주셨습니다.
성자가 떠나시고
‘성령님’에 대해 제대로 알고,
상천하지의 최고 미의 여신이시며
우리와 늘 함께하기를 원하시는
성령님을 많이 부르고 찾고,
늘 성령과 동행하며 같이 살아야
했는데, 성령님을 오해하거나
망각하여 그렇게 살지 못한 자들은
오늘 새롭게 하여 새해부터는 성령과
같이 살아야 되겠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2016년은
<교육의 해>이고
<차원을 높이는 해>입니다.
그래서 주제는
‘교육과 차원’이라고 했지요?
그냥은 <차원>이 높아지지 않습니다.
알아야 차원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교육을 받고 배워야 됩니다.
오직 ‘주의 교육’입니다.
모두 <주의 교육>을 받고 행할 때에
‘차원’을 높이게 됩니다. 비행기가
이륙했어도 ‘차원’ 높여 뜨지 않으면,
앞으로 전진해도 ‘산’이 막아서 못
갑니다. 비행기가 ‘차원’ 높여 뜨지
않으면, 앞에 ‘각종 장애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로 절대 ‘고도’를 높여야 됩니다.
그래야 달립니다. 그래야 납니다.
그래야 앞으로 갑니다.
그래서 2016년은
‘고도를 높이는 해’입니다.
‘차원을 높이는 해’입니다.
그렇게 차원을 높이면 더 앞으로
갈 수 있고, 더 높이 날 수 있습니다.
<고도를 높이지 않는 자>는
어차피 가도 부딪히니까,
하나님은 못 가게 하십니다.
비행기가 차원 높여 날지 않으면
결국 제자리에만 있다가 다시
내려와야 하듯, 때가 됐어도 차원을
못 높이면, <자기 때>와 <기회>까지
지나갑니다. 그러면 그동안 앞날의
희망을 걸고 수고하고 노력하고
고생한 것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2015_12월 주일수요 작품설교집.hwp38
2016년에는
‘정말 차원 높이기. 달리기.
날기’입니다. <차원>을 높이려면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말씀>은 힘이고, 능력이고, 지혜이고,
지식이며, 차원을 높이고 행하는 데
자본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하나님의 역사>도 때가 되면
꼭 ‘차원’을 높였습니다. 크게 보면
‘구약 - 신약 - 성약’입니다.
먼저 <구약>에서
4000년 동안 ‘종급’으로 역사를
펴시다가 때가 되어 <신약 때>
차원을 높여 ‘아들 권세’를 주시고,
2000년 동안 신약역사를 펴
오셨습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어
또 <성약 때> 차원을 높여
‘신부 권세’를 주시고, 지금 현재
‘성약 신부 역사’를 펴 나가고
있습니다.
<성약역사> 중에서도
지금은 ‘휴거 시대’이니,
각자 자기 위치에서
‘휴거의 차원 높이기’입니다. 또한
전도 차원 높이기,
관리 차원 높이기,
설교 차원 높이기,
강의 차원 높이기,
성삼위와의 대화 차원 높이기,
주와의 일체 차원 높이기,
심정 차원 높이기,
행실 차원 높이기 -입니다.
<3.16 성자 승천일, 휴거 날>을
중심하여 <전 3년 반>이
그리도 중하고 중한 때였습니다.
그때는 <휴거>를 위해
‘휴거 말씀’을 듣고 행하여 ‘신부’로서
단장하고 준비할 때였습니다. 그때는
<최하 300선>을 놓고 준비할
때였습니다. 그때 준비하지 못한 자는
휴거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3.16 성자 승천일, 휴거 날>을
중심하여 <후 3년 반>이 그리도
중하고 중한 때입니다.
지금 섭리인들은
‘이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벌써 9개월이 더 지났습니다.
이때는 저마다
<휴거 700선>을 놓고 차원을 높이며,
<휴거>를 완성하는 때입니다.
정말 귀한 때입니다.
하나님은 ‘때’를 정하시고,
‘때’에 따라 축복하시며, ‘때’에 따라
각자 할 일을 행하게 하십니다.
고로 ‘하나님의 때’에 따라 행하는
자는 쉽게 하고, 하는 대로 잘되고,
축복을 받고, 성삼위와 주와 함께 늘
동행하며 같이 살게 됩니다.
<천운>을 탔어도
‘때’에 맞춰 행하지 않으면,
얻지 못하고 실패합니다.
<때의 하나님>이시니,
‘때’에 따라 행하는 자가
천운을 타고 성공하게 됩니다.
2016년에는 주제처럼 모두 <차원>을
높이도록 많이 <교육>해 주겠습니다.
그러니 ‘주의 교육’을 받고,
<자기>라는 차의 액셀러레이터를
힘차게 밟으면서 <자기 인생 운전>을
노련하게 하면 됩니다.
<말씀 마무리>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2016년은 <솟아오르는 해>입니다.
차원을 높여 솟아오르는 자는
<이상적인 역사>를 맞게 되고,
저마다 <꿈>을 이루게 됩니다.
<희망의 꿈>을 꿨어도,
<천운>을 탔어도 솟아오르면서
차원을 높여야만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축복해 주시어 얻게 됩니다.
<솟아오를 것>은
‘정신, 생각, 하고자 하는 마음,
행실’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성부, 성자, 성령의
능력과 사랑과 평강을 빕니다.
2016년에는 영육 건강하고
사랑과 진리와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이 이 시대에 주신 보화들>을
찾고 받기를 축원합니다.
다 같이 힘차게!! 성삼위께
사랑의 인사를 드리고 마칠까요?
<자막>
우리의 육과 영을 살려 주셨으니,
<산 몸>을 가지고 더욱 삼위일체를
사랑하며 그 사랑의 힘으로 뜻대로
행하겠습니다!
내년에도 끝까지 할게요!